simplepoems
10,000+ Views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집을 계약했다.

프랑스의 가을은 하루 걸러 비가 온다.기온은 한국과 크게 차이가 없는 거 같은데 비가 자주 오고 바람이 많이 분다.역시 흐리고 바람이 많이 불던 저녁,차가 막혀 40분을 늦은 므슈와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집을 계약했다. 몇 번, 신중히 생각을 해보려다 집을 놓친 경험이 있어 이번에는 집을 보고 현관을 나오기가 무섭게 므슈에게 ‘이 집을 계약하고 싶어요’라고 메일을 보냈다. 불안함에 곧장 전화까지 걸어 서툰 영어로 나의 마음을 다시 한번 확인을 시켜줬다. “므슈 나 정말로 이 집을 계약하고 싶어.” “그래? 그럼 월요일 5시에 사무실로 와.” 사무실로 오라는 말이 나와 계약을 한다는 뜻인지 아니면 계약 전에 또 다른 절차가 있는 건지, 우리만 오는지 계약을 원하는 모든 사람이 오는 건지 확신할 수가 없어 주말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Ivry에 있는 므슈의 아정스에 15분 정도 일찍 도착했을 때, 므슈의 아정스 앞에는 이미 어떤 한국인 커플이 누군가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 그 순간 ‘아 오늘이 계약을 위한 날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싶어 가슴이 덜컹했다.얼핏 한국어로 ‘5시에 오기로 했어’하는 말이 들렸다. 그 순간 우리의 불안감은 점점 확신으로 바뀌어 갔고 해가 진 파리의 바람은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아정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꼭 붙어 서서 서로의 체온으로 칼 같은 바람을 견디며 우리는 ’적’들의 동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뭐지 오늘 계약하는 건 줄 알았는데 아닌가..” “아닐 거야. 기다려보자.” “우리 뒤에 본 사람들도 계약하고 싶어 한다고 들었는데 그 사람들인가?” “오늘이 소문으로만 듣던 주인과의 면접인 건가? 제길.”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자 우리는 더욱 긴장을 했고 ‘적’들은 산만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적’들이 아정스 옆 건물로 들어가더니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건물 안에서 편한 복장을 한 한국인 한 명이 ‘적’들을 뒤따라 내려오는 게 아닌가. “뭐지?” “세 명이면 우리 집 계약하러 온 건 아닌 거 같은데..” “아 혹시.. 계약할 때 프랑스어 잘하는 친구 데려가곤 하잖아. 그런 거 아니야?” “그런가? 아, 우리 또 졌다.” “근데 캐리어는 왜 가지고 왔지?” “오늘 바로 열쇠 받고 집 들어가는 걸로 착각한 거 아냐?” 불안함에 논리가 부족한 얘기들을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이어가며 추위를 견디고 있을 때 검은색 도요타 프리우스가 그들 앞으로 다가갔다. 그렇다. 그들은 우리의 적이 아니었다.우버 기사가 그들의 캐리어를 드렁크에 실을 동안 그들은 편한 복장을 한 한국인과 포옹을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편안하게 시트의 몸을 기댄 채 꼭 붙어 바람을 견디는 우리를 바라보며 그곳을 떠나갔다. 그래, 서울이면 하지 않을 걱정들이 아직은 많다.
집을 구하는 일이 소문만큼 막막하긴 했다. 파리는 생각보다는 작고 또 높은 건물들도 없어서 그런지 집을 구하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국처럼 이 집 저 집 보면서 며칠간 고민을 하고 결정할 수 있는 여유 따위는 없었다. 한 집은 우리가 한 시간 정도 더 고민을 했을 뿐이었는데 이미 다른 누군가와 계약이 됐다고 했다. 프랑스에 파리에 처음으로 오게 된 우리 같은 학생들과 워홀러들은 집을 구하는 데 있어 몇 가지 큰 제약이 있는데, 이건 어쩌면 비단 프랑스와 파리 만의 일은 아니고 우리나라에 처음 오게 된 외국인들도 겪는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집이 있고 출생신고가 되어 있고 나이가 차면 다 같이 주민등록증을 받고 또 은행 계좌까지도 함께 만든다. 그래서 성인이 된 후에 직접 집을 구할 때 필요한 것들 중에 못 갖춘 건 돈 밖에는 없지만 외국에서 처음으로 집을 구하려고 할땐 우선 모순적인 상황을 먼저 맞닥뜨리게 된다. 임차인을 구하는 대부분의 집주인들은 우선 임차인의 은행 정보를 요구하고 집세와 보증금도 수표로 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은행에서 계좌를 개설하기 위해서는 합법적인 거주에 관한 증명서가 꼭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처럼 아직 프랑스에서 긴 기간 동안 거주할 집이 없어서 거주증명을 하지 못했고 따라서 당연히 은행 계좌도 없는 처지들은 그 모든 것들을 이해해주는 아정스와 주인을 만나야만 한다. 안 그래도 적은 파리의 집들 중에서 우리가 다가설 수 있는 곳이 매우 많이 사라지는 것이다. 또한 프랑스에서는 임차인에 대한 보호장치가 많고 또 강력해서 집주인들이 임차인을 고를 때 매우 신중하게 여러가지를 고려한다. 한번 받은 임차인이 한두 달 임대료를 못 낸다고 해서 주인이 함부로 그들을 쫓아낼 수가 없고 특히 겨울에는 강제 퇴거 자체가 안된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주인들은 임대료를 성실하게 낼 수 있는 임차인을 우선적으로 찾으려고 하고 그러다 보니 꼭 요구하게 되는 게 재정보증이다. 그중에서도 이들이 가장 원하는 재정보증은 임대료의 3배 이상의 월수입을 가지는 프랑스인의 재정보증이다. 당연히 우리가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안 그래도 얼마 안 되는 우리가 다가갈 수 있는 집들 중에서 또 많은 수가 사라진다. 우리처럼 재정보증이 없고 아직 거주지도 없고 은행계좌가 없는 처지는 불법 수수료를 주고(월세 한 두 달 치) 한국인 부동산이나 중국인 부동산을 이용하거나 발로 뛰며 저 모든 상황을 일일이 설명하며 수많은 거절 끝에 이해를 해 줄 누군가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막막하고 불안하고 힘이 들 수밖에.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임대를 원하는 사람들이 거의 같은 시간에 모여 집을 구경한다. 같은 집을 두고 경쟁을 해야 하는 이들과 함께 집을 둘러보고 이것저것 질문을 하는 게 처음에는 여간 어색한 게 아니었다. 파리에서 처음으로 집을 보러 갔을 때 한국인으로 보이는 여성 한 분이 우리가 받은 주소의 건물 앞에 서 있었다. 서로 어색하게 서로를 탐색하며 아정스 므슈를 기다렸고 같이 나선형의 삐걱거리는 계단을 빙빙 돌아 5층의 집으로 올라갔다. 좁은 집 안에서 서로 '빠흐동'을 연발하면 화장실 봤다가 침실을 봤다가 퀴진을 봤다가 정신이 없었다. 집을 보러 오면 이것저것 물어봐야 할 것도 많고 확인해야 할 것도 많지만 우리는 아직 프랑스어를 잘하지 못하기에 멀뚱멀뚱 서로를 바라보다가 구석으로 자기를 옮겨 '어때?'하며 한국말을 속삭이고 할 뿐이었다. 하지만 함께 집을 보러 온 여성분은 프랑스에서 산 기간이 오래 되었는지 프랑스어가 매우 능통했고, 므슈의 곁에 붙어 수많은 질문을 하고 답을 들었다. 졌다. 이미 그 집은 그분에게 넘어간 것이다. 친절한 여성분이 '우리에게 뭐 물어볼 거 있으시면 물어봐 드릴게요.'라고 해주셨지만 의기소침한 우리는 별다른 질문을 떠올리지도 못했고 그분이 므슈대신 들려주는 기본적인 정보들만 듣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이 근처에 여기보다 조금 더 큰 아파트가 있다는데, 두 분 괜찮으시면 므슈가 그 집을 바로 보여주실 수 있대요." 그 친절한 통역이 마치 이 집은 이미 결정이 났으니 그 집이라도 보고 가는 게 좋지 않겠냐는 듯 들려 힘이 빠졌다. 떠밀리듯 다음 집을 보긴 하겠다고 하고 나선형 계단을 다시 돌아 집을 내려오자 건물의 입구에는 프랑스물이 조금도 안 묻은 동양인 네 다섯 명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화기애애하게 둘씩 대화를 나누던 그들이 누군가 미리 집을 보고 있을리라고는 상상을 못 했던 건지 므슈와 함께 내려오는 우리들을 보자 표정이 굳었다. 집 구하기가 쉽지 않구나. 몇 번의 실패 끝에 우리는 좀 더 귀찮은 고객이 되었고, 우리의 처지를 다 알고있는 이 므슈를 끝없이 괴롭혔다. 우리가 지내고 있는 숙소 근처에 매물이 있다며 괜찮으면 집을 보러 가겠냐는 메일이 왔다. '좋다. 오늘 당장 가볼 수 있냐'라고 묻자, '오늘은 안된다. 지금 살고 있는 사람도 한국인이니 직접 연락을 해 약속을 잡아서 집을 보고 연락을 하라.'고 했다. 므슈에게 이 답장을 받은 게 이곳 시간으로 저녁 10시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집 방문 일정을 최대한 빨리 잡고 집 계약 의사를 조금이라도 빨리 밝혀야 집을 계약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겠다 싶어 고민 끝에 지금 살고 있는 세입자 분에게 '늦은 시간 너무 죄송하다'며 문자를 드려 보았다. 다행히 세입자분들은 자신들도 처음 집을 구할 때 같은 마음이었다고 괜찮다며 그 늦은 시간에 흔쾌히 방문 시간을 잡아 주셨다. 집은 므슈가 보내준 사진보다 훨씬 우리의 맘에 들었다. 창이 큰 도로로 향해 나 있었지만 이중창을 닫으니 도로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빛도 잘 들고 깔끔하고 적당히 낡은 게 마음에 들었다. 마치 이미 이 집을 계약한 사람처럼 쓰시던 가구까지 인계받았다.  "이 므슈는 보통 큰 문제가 없으면 선착순으로 계약을 하더라고요." 중요한 팁을 받은 우리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달리듯이 현관을 나와 부리나케 므슈에게 연락을 했다. “므슈 나 정말로 이 집을 계약하고 싶어.” “그래? 그럼 월요일 5시에 사무실로 와.”
아직 어떠한 확신도 할 수 없었지만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우리는 학원 선생님이 예쁘다고 추천해주신 오페라 가르니에를 보러 가기로 했다. 오페라 역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오랜만에 열린 파리의 가을 하늘을 만끽하고 있었다. 이미 늦은 오후라 오페라 내부는 다음에 다시 와서 보기로 하고 우리는 파리의 아이덴디티가 물씬 풍기는 거리를 여행자처럼 걸었다. 멀리 루브르가 보이는 온갖 이국 언어들이 난무하는 길을 어깨를 돌려 길을 내어주며 걸었다. 백년은 더 된 듯한 건물들 아래에 나란히 자리 잡은 키가 크고 멋진 흑인 가드들이 문을 열고 닫아주는 명품샵들을 크게 돌아, 다시 우리의 (적어도) 일 년을 품을 곳으로 어깨를 붙이고 덜컹거리며 돌아왔다. W, M 레오 2019.10.29 파리일기_두려운 날이 우습게 지나갔다
8 Comments
Suggested
Recent
왠지 모를 긴장감... 하지만 마음에 드는 집을 찾을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수고했어요!
@uruniverse 그러게요 ㅜ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이에요 감사해요!
집 계약편 읽는데 긴장감 가득가득한데요
@soozynx 그런가요?? 다시 하라면 못하겠네요 ㅎ 감사합니다!
집주인이 임대인 이고 세입자가 임차인 입니다. 뭐 어때요~ 부동산 일을 하다보니 그냥 그렇다는것 뿐^^! 한국에도 임차인 보호법 이라는게 있어서 한두달 임대료를 안냈다고 쫒아낼수 없는데 거기도 그렇군요^^ 겨울에 못 쫒아내는것도 신기합니다~! 한국은 계절에대한 법률은 없는지라..ㅎ 프랑스에서 집구하는 얘기를 듣고 있으니 저도 같이 긴장되고 신기하네요~! 고생 많이 하셨지만 맘에드는곳 잘 계약하시길 같이 바라봅니다^^!
@anee75500 아 그렇군요!! 중요한 정조를 감사드려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무서운 동네 아닙니까?
@Tm1000 아니요 노인분들이 많은 조용한 동네예요 다행히
Cards you may also be interested in
잘 살자 어떤 땅에서든
지난 주말 형의 결혼식이 있어 프랑스에 온 지 2주 만에 서울에 다녀왔다. 낯선 땅에 더구나 집도 아닌 숙소에 엠마를 혼자 두고 가는 일이 마음에 걸리고 티켓을 끊을 때만 해도 집을 구할지 어떨지 확신이 없어서 최대한 서울에 머무르는 시간을 줄였다. 금요일 밤에 사를 드골 공항에서 출발해서 토요일 밤에 인천 공항에 도착하고 다시 월요일 새벽에 인천 공항에서 출발하여 월요일 저녁에 사들 드골로 돌아오는 그야말로 미친 일정이었다. 그 덕에 나는 4일 동안 서 있는 시간보다 앉아 있는 시간이 더 길었고 근육이 약해진 때에 입주 청소까지 하느라 종아리 근육이 상해버렸다. 무엇이든 혼자서 애써 보는 게 우리 집안의 고집이고 그래서 뭐든 결국은 느리게 되어 버리는 형과 나는 서로 함께 사는 동안은 고장 난 시계를 걸고 살아 애타는 마음만은 죽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형이 뒤늦게 갑작스레 결혼을 한다니 늦은 오후에 잠에서 깬 듯 기분이 이상했다. 높은 구두를 신고 ‘신랑 입장’을 하는 형의 모습을 아슬하게 바라보면서 사람이라는 포물선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저 바보처럼 떨어지고 마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중력 안 있는 것들이 멀리 날아가기 위해서는 결국 떨어지는 일은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거였다. 사람이라는 평범한 신체 속에 우주 같은 마음을 담고 오르다가 결국은 떨어지면서 붙잡은 기록을 넘겨주고 가는 일인걸. 형은 애써왔고 나는 그래서 이제는 형이 떨어지면서 결정해가는 기록에 기꺼이 박수를 쳐 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나는 요즘 낯선 곳이라 그런지 밤마다 꿈을 자주 꾼다. 형의 결혼식을 위해 파리를 떠나기 전날 아버지가 도둑질을 하는 꿈을 꿨다. 아버지는 누군가의 집에서 값진 물건을 발견하고는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들고 일어서다 주인과 눈이 마주치자 별 다른 핑계도 둘러대지 못하고 그 값진 것을 제자리에 놓아두고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왔다. 바보 같았다며 분해하던 그는 이번엔 꼭 그 값진 것을 들고 나오겠다며 엄마와 형 나까지 데리고 그 집 앞으로 갔다. 나쁜 일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그는 지나가는 개와 고양이에게서도 시선을 피하며 반나절을 넘게 우리를 더 많이 바라보며 시간을 죽였다. 마침내 그 값진 물건 앞에 서게 된 그는 꿈에서도 바보인지라 괜한 생각들을 이어가며 괴로워만 할 뿐이었다. 나와 형과 엄마는 더 주린 배를 안고 그를 기다리고 서 있었지만 그는 우리의 생각보다 더 무거운 자신의 생각들을 결코 죽이지 못했다. 우리는 결국 빈손을 얇은 주머니에 찔러 넣고 적당히씩 떨어진 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 밤 등을 돌린 아버지 나는 서로 다른 생각을 했겠지만 낯선 곳에서 잠이 깬 나는 온통 그의 마음속에 있는 것 같았다. 싫은 곳에 굳이 가고 싫은 일이라도 하려고 했었구나. 불쌍한 사람. 아버지의 싸움들. 자신의 우주와 굶주리는 욕심이 많은 우리들 사이에서 무엇하나 잘하지 못하며 휘청거렸던 그의 70년. 나는 이젠 그런 아버지의 등을 귀엽게 바라 봐주겠다. 자주 싫은 곳에 가고 자주 싫은 일을 하려 마음을 먹긴 했겠구나. 4일간의 일정이라 큰 가방도 없는데 굳이 리무진 버스를 태워주겠다며 엄마와 아빠가 함께 새벽 골목을 따라 내려오셨다. 버스가 올 시간이 되어가자 난 미리 인사를 하려고 아버지 손을 잡았다. 아버지는 버스가 오도록 그 손을 놓지 않으셨다. 따뜻하고 큰 손. 돌아가는 비행기, 잠도 오지 않아 죄와 벌을 읽다가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와 메모를 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에게는 어디든 갈 수 있는 곳이 한 군데라도 필요한 거니까요…….” 돌아갈 곳이 있어 나는 기꺼이 떨어지는 일을 기다린다.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싸움들을 피할 수는 없겠지.. 나는 때로는 엠마에게 어리광을 부린다. ‘대단한 예술가가 되려고 했었는데 나를 봐봐’라는 듯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부빈다. “하자.”라는 말을 듣고 나는 마음을 놓는다. 끝까지 흔들릴 수라도 있길. 아버지가 우리를 위해 그 값진 것을 가져오지 않는 것이 나는 정말 고맙다. 막내가 바보라고 놀리는 그의 지금 모습이 나는 고맙다. 붉게 빛나는 사를 드골 공항에 건조해진 비행기가 낙엽처럼 내렸다. 내내 먹통이던 핸드폰을 켜자 엠마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나를 마중 나왔다는 것. 복잡한 공항 건물에서 헤매다가 마침내 내가 갈 수 있는 곳을 만났다. 또한 내가 싫은 일을 하게끔 하는 곳도 함께 만났다. 생각보다는 감정으로 우리는 빠른 포옹을 나눴다. 돌아가는 기차는 지겹지가 않았다. 얼마가 아슬하게 고생을 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다시 왔는지. 큰 얘기보다는 그런 이야기들이 언제나 더 따뜻하고 맛있으니까. 잘 살자 어떤 땅에서든. W, M 레오 2019.11.06
오늘 파리행 티켓을 끊었다
오늘 파리행 티켓을 끊었다. 며칠 전 새벽 괜찮은 가격에 괜찮은 항공사의 티켓이 보인다며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래, 이거 라면 끊을 수 있겠다 싶어 결제를 하려다 덜컥 이게 맞을까 겁이 나서 이것저것 조금만 더 알려보자 하던 참에 가격이 많이 올라버렸다. 탓할 일은 아니랬지만 미안했고 속이 많이 아팠다. "이렇게 오래도록 기다렸는데 뭘 더 망설이는 걸까." 그런데 오늘 아침, 그때 본 가격보다 훨씬 싸게 같은 시간 같은 항공사의 티켓이 풀려서 잠도 못 깬 얼굴로 서둘렀다. 복잡한 화면들이 채 지나가기 전에 카드사에서 친절한 문자가 왔다. 됐구나. 그렇게 서른여덟의 가을, 나는 그녀를 따라서 이유 없는 유학을 떠난다. 몇 해 전에 그녀가 갑자기 유학을 가고 싶다고 말을 했을 때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함께 가자는 말을 돌려주었다. 혼자서 이런저런 걱정을 했던 그녀는 그만큼 많이 놀랐지만 나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걷고 있던 삶이다. 마지못해서 집을 나서고 카페와 공원을, 다른 이의 학교에서 또 걷던 삶이다. 어렵지 않다. (고 생각 했다 그때는.) 서른일곱 해 동안 나는 끈질기게 삶을 미정의 상태 속에 녹여 두려고만 했다는 것을 안다. 무엇이 되려 하기보다 무엇도 안되려고 했었던 나날들. 나의 가장 강력한 마음은 나를 구속하려는 힘들 앞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안다. 나는 사관학교 전체와 싸워 본 적이 있고, 도와준다는 수많은 손들을 적으로 돌리기도 했었다. 붙잡힐 거 같아서 여기에서 이렇게 살면 된다고 혼 내려는 거 같아서 모래 장난처럼 쌓다가도 발로 으깨 버리고 엄마의 한숨을 벽 너머로 들으며 반성하듯 씻고 잠든 나날들. 그곳에서는 우리가 마음먹고 준비를 기다리는 사이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테러가 일어났고 매주 노란 조끼를 입은 분들의 격렬한 시위가 있었고, 공짜와 다름없던 학비가 올랐고, 가장 높은 첨탑이 무너져 내렸다. 그곳은 이제는 더 이상 세상을 이끌어 가는 곳도 아니고 새로운 시도들이 움트는 곳도 아니다. 예술적이기보다는 상업적이고 새롭기보다는 보수적일 수 있다. 넥타이와 턱시도를 강요하고. 시네마를 고정하려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괜찮다. 그곳은 내게는 가장 먼 서쪽. 핑계 없이 감내할 삶을 이제야 가져 볼 이곳 아닌 저곳. 누가 떠민 것도 아니고 그곳의 누구도 나를 받아주겠다고 하지 않는 우리가 억지로 날아가서 내린 땅이기에 괜찮다고. 눈을 뜨고 느껴지는 낯선 공기에 날을 세우고. 오랫동안 끓이기만 하던 죽에 불을 끄고. 우리 함께 먹자. 안전한 나는 삶을 그리지 않고 구상만 하다 잠만 잤으니까. 위험한 우리는 우리보다 조금씩 더 큰일을 해야 할 거라고. 우리는 뭘 모르는 아이들처럼 서로를 안심시켰다. W 레오 P Earth 2019.05.21 파리일기_두려운 날이 우습게 지나갔다
아무도 우리를 부르지 않는 곳에 우리가 있다.
3일 후면 이사를 해야 했기에 파리로 돌아온 다음 날 바로 매트리스를 사러 마들렌느 역에 있는 이케아에 다녀왔다. 시내에 자리 잡은 이케아여서 규모는 크지 않지만 지하철로 바로 올 수 있어 몇 번을 이곳으로만 와서 두 손으로 안고 갈 수 있는 만큼의 물건들만 사서 돌아가곤 했다. 오늘은 며칠 동안 고민하던 매트리스를 사러 온 것. 프레임은 전세입자가 우리에게 넘겨주고 가서 그 위에 얹은 매트리스만 사면 됐는데.. 어떤 매트리스가 좋을지 고민만 하다 지난번에는 미처 사지 못하고 돌아갔고 오늘은 더 이상 미룰 수도 없어 결정을 하고야 말겠다며 두 손을 말아 쥐고 다시 이곳까지 왔다. 서울에 있을 때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 그녀의 마음에 드는 물건이면 괜스레 나도 정말 홀린 듯 굴면서 억지로라도 그녀의 품에 안겨주고 했었는데 프랑스에서는 아무래도 모든 것을 다 터놓고 함께 의논을 하게 된다. 이제는 나의 돈도 아니고 그녀의 돈도 아니고 둘의 지속력의 관한 문제이다 보니, 서로 감정을 누르고 여러 가지를 생각해보게 되는 것. 그러다 보니 그녀는 ‘어때?’라는 질문을 자주 하게 되었다. 나는 서울과 다르지 않게 ‘좋은데?’라고 답을 해주지만 그녀는 좀처럼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늪과 같은 고민에 다시 빠진다.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나와는 다르게 호불호가 분명하고 취향이 확고해서 신기했었고, 그녀와 무엇을 보러 가고 또 자잘한 물건이라도 구경하고 홀리고 사고 만족하는 일들이 내심 즐겁기도 했었는데.. 무엇을 사고 돌아오는 날보다 무엇을 사지 못하고 돌아오는 날이 더 많아져 돌아오는 길 혼자 속으로 가슴이 쓰린 적이 많았다. 당연히 필요한 물건이라도 10유로 20유로가 넘어가면 고민을 하게 되는데.. 옷들도 집에서 필요한 여러 가지 그릇, 컵, 칼, 드라이버, 상자 등도 모두 모두 다 고민의 대상이 되니 큰일이다. 아무래도 규모가 작은 삶이라면 뜻과 다르게 뭔가를 포기를 하고 돌아가는 상황은 최대한 피할 수 있기에.. 나도 그녀도 스스로 모르게 그렇게 되고 마는 것. 하지만 버티기만 하는 삶은 얹는 게 없으니 자신감이 쌓이면 우리 꼭 공격도 하자. 조금 가격이 있는 매트리스를 집에서 같이 마음먹고 왔지만, 결국 이동과 처분의 가능성 등을 고려해서 기본 매트리스 하나와 쉬어 매트리스 하나로 쪼개어 사기로 했다. 상품을 결정하고 온라인으로 주문을 한 후에 유명하다던 이곳 이케아의 핫도그를 먹었다. 고기와 채소들을 섞어 만든 소시지에 튀긴 양파가 바삭해서 아주 맛이 있었다. 한국보다는 양은 작고 진한 카페 알롱제까지 마시니 얼마나 걸었는지는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다. 매트리스와 여러 물건들을 한 번에 결정하지 못해서 몇 번이나 나를 이곳까지 끌고 왔다고 생각한 그녀는 미안한 마음에 내가 저번에 관심을 가지던 마들렌느 성당을 들렸다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난 성당 안은 굳이 지금 갈 필요 없으니 산책이나 하며 조금 돌아서 돌아가자고 했다. 마들렌느 성당의 정면을 지나가면서 성당을 배경으로 두고 걸어가는 그녀를 핸드폰으로 찍고 있었는데 엠마가 ‘왼쪽 봐봐’라고 들뜬 목소리로 나의 팔을 당겨댔다. 고개를 돌려보니 흐렸던 하늘은 어느새 개였고 노랗게 물든 하늘 아래로 노란 머리를 한 가느다란 바늘 같은 기둥이 서 있었다. “왼쪽 보라니까! 봤어?” “응, 근데 저게 뭐지?” 우리는 파리를 오는 동안 준비하는 것들에 치여 어디에 무엇 무엇이 있는지 전혀 조사도 못 하고 왔기에 마들렌느 성당이 무엇과 마주하고 있는지 전혀 몰랐던 것이다. 몇 번을 이 곳에 왔는데 우리의 고개 너머로 이런 장면이 있을 줄이야.. 노란 하늘과 더 노랗게 빛나는 기둥에 이끌려 우리는 그곳으로 걸어갔다. 차들이 분주히 돌아 나가는 거대한 광장.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둥글게 물러나 준 그 한가운데에 서 있는 황금색 머리의 기둥. 우리가 멀리서 보고 따라온 노란 머리의 기둥은 이집트 룩소르 신전에 있다가 프랑스로 건너온 오벨리스크였다. 그리고 여기는 역사책에서만 봐 오던 프랑스혁명의 상징,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에서 목이 잘린 혁명 광장, 지금의 콩코흐드 광장이었다. 파리에 와서 집을 구하고, 매일같이 학교를 나가느라 여행이라면 당연히 갔을 곳들도 2주가 넘게 못 가보고 있었는데, 계획도 없이 이곳으로 걸어오게 됐다는 게 신기했다. 천명이 넘는 사람들의 목이 잘린 자리에 세워진 분수는 노을 빛을 그대로 받아 (아니러니하게도) 매우 아름다웠다. 배로 4년에 걸쳐 파리로 옮겨졌다는 오벨리스크는 그 과정이 그려진 기단 위에 아름다운 상형 문자 무늬를 하며 서 있었고 그 오른쪽으로는 파리라는 글자와 함께 가장 많이 본 상징, La Tour Eiffel 에펠탑이 나무 가지들 너머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그리고 넓은 직선대로의 끝에 개선문이 서 있는 것도 보였다. 그렇다면 저 넓은 대로는 Avinue des Champs-Élysées 샹젤리제 거리겠구나. 우습게도 우리가 지금 파리에 있구나. 아직은 실감이 가지 않아 서로에게 뻔한 질문을 하며 신기함을 즐긴다. 무엇을 하러 왔을까를 끝없이 물어야 하는 곳에 우리가 있다. 왜냐하면 이곳에는 우리가 오기 전까진 우리의 자리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이곳의 학교는 출석을 부르지 않는다. 결석을 해도 이유를 묻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형의 결혼식을 위해 2일간의 수업을 빠진 것을 굳이 선생님께 말하지 않았다. 아무도 우리를 부르지 않는 곳에 우리가 있다. 파리라는 곳에 우리가 있다. 부르지 않아도 많은 예술가들이 굳이 찾아왔던 곳. 더럽고 누추한 곳에서 생을 잘라먹으며 버티다 끝내 묻히기까지 한 이곳. 그 블랙홀 같은 곳에 지독한 중력을 간신히 이겨내고 날아오른 우리가 쉼표도 없이, 기꺼이 빠져들고 있었다. 글, 영상 레오 2019.11.12 파리일기_두려운 날들이 우습게 지나갔다
[친절한 랭킹씨] 이런 사랑 처음이야…‘플라토닉 러브’에 관한 최고의 영화들
발렌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가 있는 2~3월은 사랑의 계절. 좋아하는 친구나 연인한테 초콜릿(사탕)을 건넬 수 있지요. 아직은 설렘으로 그득한, 에로틱한 느낌보다는 정신적 사랑이 먼저 떠오르는 날들이 아닐까 싶은데요. 그래서 찾아봤습니다. 일명 ‘플라토닉 러브’에 관한 최고의 영화 10편을. 과연 어떤 작품들일까요? 새로 단장한 친절한 랭킹씨가 10위부터 1위까지* 소개합니다. * 미국 영화 매체 ‘테이스트 오브 시네마’의 『The 10 Best Movies About Platonic Love. 2018』 기반 ※ 따옴표(“”) 안 내용은 ‘테이스트 오브 시네마’ 본문 중 발췌 우리에게 친숙한 <아멜리에>가 10위로 톱 10의 문을 열었습니다. ‘사랑스러운 영화’ 계보의 상징적 작품으로, ‘색감’ 관련 순위를 꼽을 때도 늘 선정되고는 하지요. 90년대, 홍콩, 청춘, 스타일, 성공적. “사랑에 유통기한이 있다면 만 년으로 하겠다”던 <중경삼림>입니다. 역시 이런 리스트라면 빠질 리 없겠지요? 5위에 자리했습니다. 3위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만큼 플라토닉 러브를 집중 탐구한 영화도 잘 없을 것입니다. 내가 생각한 사랑과 상대방이 생각한 사랑의 간극, 그 거대한 틈을 발견하고 지은 주인공의 아찔한 표정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1위는 <베니스에서의 죽음>이 차지했습니다. 사랑으로서의 ‘플라토닉’을 넘어 탐미라는 ‘관념’의 어떤 궁극으로 치닫는 영화지요. 원작소설만 못 하다는 평도 있지만, 미모의 비요른 안데르센을 발굴한 것만으로 이미 훌륭하다는 그 작품. PS. 이 미소년에게 질투를 느낀 걸까요? 호러영화계의 차세대 거장 아리 에스터 감독은 자신의 영화 <미드소마>(2019)에 나이 든 안데르센(前미소년, 65)을 기어이 출연시켜서는… 친절한 랭킹씨가 소개한 플라토닉 러브에 관한 최고의 영화 10선. 어떤가요? 연인과 함께 보면 좋겠지요? 물론 혼자 보면 몰입이 잘돼 더 좋은 건 안 비밀. ------- 글·구성 : 이성인 기자 silee@ 그래픽 : 홍연택 기자 ythong@ <ⓒ 뉴스웨이 - 무단전재 및 재배포·코너명 및 콘셉트 도용 금지>
피의 언덕, 몽마르뜨
파리의 집들은 건물에 창을 가리는 가리개가 장착이 되어 있다. 오래된 집들은 나무판자로 짜인 나무 덧창이 유리창 바깥쪽에 달려 있고, 우리 집처럼 발같이 내렸다가 올렸다가 할 수 있게끔 되어 있는 곳도 많다. 우리 집은 큰 도로를 끼고 있어, 밤늦은 시간까지도 오가는 차들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우리 집 벽에다 침입자를 풀어놓는다. 하여 내가 좋아하는 노을이 흩어지고 나면 덧창을 돌돌 돌려 빛과 집을 갈라 둔다.  불을 끄면 그야말로 암흑이다. 서로를 더듬어야 찾을 수 있을 만큼 어둡다. 처음에는 이러한 어둠에 적응이 안되었지만 지금은 금세 그녀의 온기에 기절을 해버린다. 아침이 오면 소리는 아침을 알려도 빛은 어떤 소식도 전해줄 수가 없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 어두운 방을 더듬어 창가로 가 무거운 발을 천천히 돌려 열 때면 일종의 기대감이 생긴다. 오늘 날씨는 어떨까? 프랑스의 겨울은 거의 흐리고 비도 잦기 때문에 기대는 자주 무너지지만 오늘처럼 맑은 날이면 어디론가 당장이라도 달려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날이 아주 좋았다. 이틀 전만 해도 소나기가 같은 비가 내리다가 해가 지자 파리에서는 무척 귀하다는 눈이 되어 내렸다. 파리에서 맡는 첫눈이라니. ‘신기하다’ 라는 말을 또 버릇처럼 뱉으며 우리는 아이처럼 팔을 우산 밖으로 내밀어 내리는 눈을 일부러 옷에 묻히곤 했다.  날이 아주 좋았다. 오늘은. 구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햇빛은 어떻게든 틈을 찾아 땅을 노랗게 다 칠을 해두었다. 엠마도 오랜만에 밝은 날에 기분이 좋은지 오늘은 조금 먼 곳까지 가보자고 했다. 어디가 좋을까 하다가 몽마르뜨가 눈에 걸렸단다. 관광객들에겐 악명 또한 높은 곳이라 우리가 여태껏 가볼 생각도 않았던 곳. 우리 집은 파리의 남쪽에 있어서 몽마르뜨까지는 시간이 꽤 걸린다. 프랑스의 겨울은 낮이 짧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부터 서둘렀다. 혹시 몰라 돗자리와 커피, 따뜻한 차까지 챙겨 들고 집시들과 팔찌를 강매하는 이들이 있다는 곳, 몽마르뜨를 향해 겁 없이 발걸음을 서둘렀다. 우리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2호선의 Anvers역이 아니라 14호선의 Abbesses역에서 내렸다. 노을이 내리는 시간에 맞춰 몽마르뜨에 오르기 위해서 시내에서 상점들을 둘러보며 시간을 조금 보냈다. 어제는 노란 조끼 시위 때문에 시내의 주요 역들이 문을 닫았다는데.. 오늘도 알 수 없는 시위가 있어 시내에는 무장한 경찰들이 가득했다. 아직은 본격적인 세일 시즌이 아니어서 쇼핑에는 별달리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거리의 건물들에 내려앉은 귀한 햇빛이나 구경하면서 몽마르뜨 언덕 쪽으로 걸었다.  중간에 생라자흐 역이 있어 화장실도 들를 겸 들려보았다. 생라자흐역의 대합실은 2012년에 전면적인 리모델링을 해 깔끔한 현대식 상점들이 벽을 온통 차지하고 있었다. 모네의 그림과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과 같은 분위기는 적어도 쇼핑몰로 바뀐 지금의 대합실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이미지와 삶의 장소에서 사람들은 전혀 다른 것을 바란다. 유지와 변화, 낡음과 새로움, 불편과 편리 사이의 갈등은 모든 오래된 도시들에겐 쉽게 가라앉힐 수 없는 문제들일 테다. 사람들이 바라는 정상적인 사람들이 모인 도시의 매끄럽고 조용한 하루도 누구에게는 견딜 수 없는 병실 같은 곳이 될 테고. 아무래도 테러가 일어난 지 몇 년이 안 되어서인지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4명씩 짝을 이뤄 역 안을 순찰하고 있었다. 베레모를 쓰고 있지만 허리에 철모를 차고 있었다. 어깨를 뭉치게 할 한 팔 길이의 자동소총을 매고 주변을 둘러보는 병사는 여드름이 다 지워지지 않은 금발의 청년이었다. 역시나 이곳도 파리의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화장실이 유료였다. 1유로나 하는 통에 줄까지 길어 우리는 화장실 가는 것을 포기하고 생라자흐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Abbesses역으로 곧장 가기로 했다.  Abbesses역에서 몽마르뜨 언덕으로 나가는 출구는 무척 독특했다. 병원에서와 같은 육중한 엘리베이터가 두 개쯤 있고 계단은 중세 시대 성처럼 나선형으로 빙빙 돌아 올라가게 되어 있었다. 스무 번도 더 꺾이는 나선형 계단에 어지러움마저 느끼며 허벅지를 부여잡고 지상으로 나가자 아이들이 졸라대는 회전목마 너머로 기대하지 않았던 ‘사랑해 벽’ 이 보였다. 굳이 가봐야지 하는 생각은 안 했었는데 막상 보니 파란색 벽이 무척 예뻤고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아 슬쩍 들려서 사진을 찍고 찍어주었다. “자, 이제 긴장해.” “응, 긴장해.” 서로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인을 해달라는 꼬마들이 천사 같은 웃음을 띄면서 달려들었고, 우리는 ‘농, 파흐동.’을 연발하면서 아이들을 벗어나 좁은 언덕길을 향해 총총걸음을 걸었다.  걱정과 달리 Abbesses역에서 사크헤 쾨흐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는 집시들과 팔찌를 강매하는 무리들이 없었다. 좁은 골목들이 갈라진 틈으로 파리의 시내들이 조금씩 내려다 보였다. 좁은 길에는 카페와 빵집, 작은 레스토랑 그리고 중고의류와 액세서리들을 파는 가게들이 많이 있었다. 우리가 들려 본 한 가게는 옛 창고를 그대로 고쳐서 쓴 듯 철제로 된 나선형 계단을 서로 비켜주면서 내려간 지하 쇼룸은 오래된 지하무덤에 온 것만 같았다. 좁은 쇼룸 안에는 한 벌씩 밖에는 없을 듯한 옷들이 적당히 진열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커플들과 부부들이 그러하듯 여자들은 옷을 고르고 남자들은 통로와 구석에서 자신들의 파트너를 넌지시 바라보면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길을 내어주느라 또 나름 바빴다. 서로 눈이 마주치면 어색해서 한 두 번을 옷을 찾는 듯 뒤적거리는 것도 꼭 같았다. 나도 엠마가 옷을 고르면 가서 한마디 의견을 보태주고 다시 물러나서 여러 사람에게 길을 내주고 다시 자리를 잡고 하는 일을 반복했다. 내심 마음에 드는 옷이 있는 듯했지만 한국과 달리 구입은 하지 않고 나의 손목만 잡고 상점을 빠져나가는 엠마였다.  또 두어 번의 긴 계단을 기어가듯 오르자 하얗고 이질적인 사크헤 쾨흐 대성당이 우리의 눈을 찔러댔다. 대리석 안에 함유된 방해석 성분 때문에 시간이 지나도 하얀빛을 잃지 않는다는 모스크를 닮은 신기한 이름의 거대한 성당. 마치 파리의 자잘한 건물들을 피해 언덕에 내린 우주선 같은 이 이상한 성당을 향해 조금씩 걸어가자 성당을 등 뒤에 두고 어디론가로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수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산 하나 없는, 같은 높이의 건물들로 대지를 말끔히 지워 놓은 파리의 전경이 한눈에 보였다.  “우와.” 우린 우리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우리의 뒤쪽에서 걸어오던 여러 국적의 사람들도 연이어 탄성을 질렀다. 마치 넓게 덮인 구름의 무게에 눌린 듯 지독히도 같은 높이의 건물들이 조금씩 다른 모양으로 조금씩 다른 아이보리 빛을 반사시키면서 번져 있었고 간혹 보이는 뾰족하게 높은 성당의 첨탑들과 두드러지게 높아 보이는 에펠탑의 머리만이 이곳도 역시 하늘을 탐하는 ‘인간’의 도시임을 외치고 있었다. 산도 없고 어떠한 굴곡도 없는 평평하고 둥근 판이 우리를 바늘로 하여 천천히 돌고 있는 듯 어지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아직은 노을도 시간이 남아 우리는 성당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사크헤 쾨흐 대성당은 게임의 속 배경인 것만 같은 둥근 모양의 외형과는 달리 실내는 성당 안에 든 사람들에게 강제로 숭고함을 쥐어주게끔 만들어져 있었다. 넓은 성당의 한가운데에 거대한 돔이 서 있었고 그 돔의 가슴쯤을 갈라 낸 창문들에서 내려온 빛들이 반사와 반사를 이어가면서 성당 전체를 같은 밝기로 밝히고 있었다. 어두운 벽 곳곳에 모자이크된 성화들은 어두운 색들로 채색되어 있어 그림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오기보다는 모두가 성당 안의 어떤 전체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다만 중앙 제대 위의 작은 돔을 가득 덮은 예수의 성심을 나타난 거대한 모자이크화만은 사람들에게 이 성당의 존재 이유를 강변하고 있는 듯 강렬했다. 대성당은 미사와 기도를 드리는 성당 중앙을 비어 두고 관람객들이 그 주변을 한 바퀴 둘러 나갈 수 있게끔 되어 있었다. 우리가 성당 안을 천천히 돌아나가는 동안 1885년부터 끊이지 않고 이어져 오는 성체조배가 행해지고 있었다. 수녀님이 부르는 성가는 조금 섬뜩하게 아름다워 잠시 멈춰 바라보는 사이 하마터만 나의 죄를 다 고백할 뻔했다.  대성당이 자리 잡은 몽마르뜨 언덕은 지금은 낭만과 예술의 상징으로 여겨지지만 역사적으로는 파리 전역을 내려다볼 수 있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파리를 온통 불태울 수 있는 포대가 설치되어 있었던 곳이다. 그런 이유로 이곳은 파리의 최후의 보루였고, 이곳을 차지한 이들이 곧 파리의 주인이기도 했다. 나폴레옹 3세가 프로이센에게 무력하게 항복을 한 후 세워진 제3공화정은 프로이센에 대한 항전을 계속 이어가지만 곧 파리를 포위당하고 만다. 프로이센 군에게 사방을 포위당한 채 132일 동안 외부로부터 어떠한 물자도 공급받지 못한 파리의 시민들은 동물원의 동물들, 거리의 고양이, 심지어 숨은 쥐까지 잡아먹어야 할 만큼 비참한 상황이었다. 이에 결국 3공화정부는 프로이센에게 굴욕적인 항복을 하고 이후 선거를 통해 구성된 정부는 왕당파등 보수파가 다수를 차지하게 된다.  정부를 차지한 보수파들은 대혁명의 유산이자 프로이센에 대항해 최후까지 항전을 하던 파리를 오히려 적으로 여기며 파리를 무력화시키고자 몽마르뜨의 포대를 장악하고 파리에 있는 국민 의용군의 무장을 해제하려고 했다. 그런 공화정부에 반대해 일어난 파리 시민들의 봉기는 세계 역사 상 최초의 사회주의 정부인 파리 코뮌을 출범시키게 된다. 지금 봐도 놀랄만한 여러 가지 진보적인 정책들을 펼치며 시민들에 의한 정부를 꿈꾸었던 파리 코뮌은 72일 만에 사회주의 혁명을 두려워하는 유럽의 지원에 힘입은 보수적인 공화정부에 의해 잔인하게 진압되었다. 당시 175만 정도였던 파리의 인구 중에 2프로에 가까운 3만여 명의 시민들이 한 번에 학살을 당했다. 코뮌에 대한 보수파의 피비린내 나는 학살이 끝난 후 보수파 정부는 프로이센에 대한 굴욕적인 패배를 포함한 이 모든 비극이 자신들의 도덕적인 타락의 징벌이라는 교회의 믿음에 따라 다분히 의심스러운 속죄하는 마음을 담아(속죄하는 말 아래 기존의 질서로 다시 정리되길 원하는 보수파의 의도 또한 담아) 피의 언덕 꼭대기에 이 대성당의 건립을 추진했다. 대성당은 30여 년의 시간 동안 진짜로 징벌을 받고 있었을 민중의 기부금만으로 만들어졌다. 건축가가 이 지독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 건물을 나와 전망대로 유명한 대성당의 돔에 오르려다 6유로나 하는 가격과 가득한 사람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낮 등을 이유로 우리는 그만 발길을 돌렸다. 사람들이 다 보는 곳 말고, 나만이 발견한 것 같은 착각이라도 가질 수 있는 곳을 원하는 건 바꿀 수 없는 나의 혹은 우리의 버릇이다. 어릴 적부터 예술하는 사람을 꿈꾸면서 처음에는 지독히 노력을 했고 마침내는 지울 수 없는 강박이 되어 버린 것이 바로 ‘나만의 것’이라는 환상이다. 어릴 때는 남들이 따라 할까 무서워서 무슨 생각이 들면 남들에게 심지어 선생님에게도 의견을 구하지 않았고 남들을 따라 하게 되는 일도 무서워서 사람들의 충고 또한 흘려듣고 보고 배워야 할 작품들 또한 일부러 보지 않으려 하면서 스스로를 작은 감옥에 가뒤 놓곤 했었다. 이제 와서 보면 예술이라는 것은 자기 안에서 시작하는 것은 맞지만 오로지 자기 안에서만 결정되어 나오는 것은 아니고 문제로 가득한 어떤 가여운 자아가 세상과 부딪히는 순간, 누구의 결재도 없이 어지럽게 튕겨 나오는 것들, 다만 그것 중에 무엇일 뿐인 것을 안다. 그 여러 잔해들 속에서 또 마치 자신 능력 안에서 키워 낸 자신만의 것인 듯 하나를 골라 몰래 적당히 망쳐가다가 너무 늦었다며 께름하게 자기 이름을 써 놓고 뒤돌아 울곤 하는 거겠지. 아름다움은 세상에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은 그저 순수함 그 자체이니까. 아름다움은 순수함을 잡으려는 욕심이고 그래서 순수함을 결국 훼손시키는 폭력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시선은 한계가 있다. 너비와 깊이 또 지속시간에서 모두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결국 바라보는 행위조차 순수함을 잘라내는 것이다. 아름답다면서 무엇과 무엇을 갈라놓고 무엇만을 더 오래 기억하려고 하는 것 그 자체가 일종의 불순함이다. 아름다움이라는 것 자체가 있다고 믿는 사람도 있고, 자신을 아름다움의 시작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결국 그 누구도 자신만의 힘으로는 아름다움을 얻어낼 수 없다. 무엇보다 일단 만나야 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그 어떤 단계에서 조차 순수한 자기만의 의견을 가질 수도 없다. 오래된 무한에 가까운 기억들이 나를 속이고 나의 의견에 남들의 의견을 섞고 티가 나지 않게 흔들어 놓는다.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모르겠다고 하고 내 이름을 써 놓았지만 그게 나의 것일까 나는 결국 무엇일까 하는 질문만은 절대로 지울 수가 없다. 순수하게 넓은 지평에서 나의 우연한 위치와 나의 보잘것없는 선택이 실은 내가 하는 건지도 모를 선택이 모여서 만든 조악한 형상. 그러니까 무엇도 열광할 만큼 대단하지 못하고 또 무엇도 경멸할 만큼 나쁘지 않다. 결국은 하나의 다 우연한 조각일 뿐.  하지만 길을 즐긴다는 불순함은 길을 하나로 보지 않는 일에서만 가능한 것. 한 걸음이 한 걸음과 다르다고 믿게 만드는 몹쓸 자의식이 결국 오해로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를 한 걸음과 다른 한 걸음이 있다고 믿게끔 만드어 주는 것. 결국 예술이 종교에 기대어 생명을 이어왔지만 그것은 일종의 기만이었고 예술은 종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차라리 다른 종교 인지도. 예술을 한다는 것은 내가 우연한 기회에 잘라 가진 무엇으로 ‘이건 정말이지 ‘무엇’ 을 의미하고 있어!’ 라며 누군가에게 강요하는 일. 그러니까 그것은 곧 위험한 포교인 거다. 성공하면 권력을 가지지만 실패하면 돌을 맞거나 쫓겨나 굶주리게 되는 것. 돌아가는 길에 난관을 붙잡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따라 나도 난관에 붙어 노을 안에 선 에펠탑을 찍었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쓰고 그래서 결국 무엇이고 싶은 걸까. 바람이 차서 상점에 들려 털모자를 사려다가 맞는 것이 없어 두고 나왔다. 그리고 우리는 작은 광장에 모여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들을 지나 또 두어 번 긴 계단을 걸어 육중한 엘리베이터가 있는 Abbesses역으로 돌아갔다. 글, 이미지 레오 2019.11.25 파리일기_두려운 시간들이 우습게 지나갔
저게 에펠이야?
11월 11일은 1차 세계 대전이 종전한 날이어서 프랑스에서는 휴일이다. 올해는 그날이 마침 월요일이어서 토일월 3일간의 연휴가 생겼다. 지난주 서울에 다녀오고 또 바로 이사를 하다가 근육을 다쳐서 학교를 오갈 때 어려움이 많았는데 몸과 마음 모두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다행이었다. 토요일 정오에는 계좌 개설을 위한 헝데뷰가 있어 Place D’Italie역 근처의 LCL로 갔다. 담당 직원과 안 되는 영어로 소통을 하려니 등에서 식은땀이 다 났다. 이쪽도 저쪽도 영어가 완벽하지 않으니까 직원도 뭔가를 설명하려다 포기하는 듯하고 나도 뭔가 확실하게 들은 게 없어서 찜찜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프랑스 은행은 한국과 다르게 계좌 유지비가 있고, 카드를 분실했을 때를 대비해서 드는 의무적인(하지만 확실하지는 않는) 보험이 있다. LCL은 학생의 경우 계좌 유지비가 거의 무료와 마친가지라서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은데 직원이 나는 나이가 많아서 해당이 안된다고 했다.(그런데 결국 할인이 됐다.) 원래 엠마와 나 모두 선임급의 직원에게 헝데뷰를 잡았었는데 한 번에 한 사람씩 밖에 상담이 안된다 하여 나는 다른 신참 직원과 상담을 하게 되었다. 신참 직원은 머리와 생김새가 앙투완 그리즈만을 꼭 닮았는데 뭔가를 열심히 하긴 하고 또 꽤나 여유가 있는 척을 했지만 내 눈에 보기에도 많이 서툴렀고 계산이 자꾸 바뀌고 말도 자주 바뀌었다. 몇 번의 한숨, 포기, 번역기를 통한 번거로운 소통을 겪으며 나는 얼른 프랑스어를 잘해야겠다 하는 마음이 굴뚝 넘은 연기만큼 높아졌다. 결국 그 직원은 선임 직원에게 전화로 한소리를 듣고 또 한참을 헤매다가 수요일에 다시 오라는 말을 했는데.. 상담을 끝내고 받은 서류는 엠마와 틀린 게 없었다. 수요일 오라고 한 것도 맞긴 한 건지.. 찜찜한 마음을 안고 지하철을 탔다. 연휴의 시작을 앞두고 엠마가 물었다. “파리에서 제일 가보고 싶었던 곳이 어디야? 거길 가보자.”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을 했다. Place D’Italie역에서 6호선을 타고 서쪽을 향해 갔다. 6호선은 우리가 늘 타는 7호선과는 다르게 문에 있는 손잡이를 위쪽으로 돌려야 문이 열린다. 연휴의 시작이라 그런지 나들이를 가는 연인과 친구들 그리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젊은 부부들이 가득했다. 출근 시간과 다름없이 혼잡한 지하철이 Bir-Hakeim역에 도착을 하자 차 안의 승객 거의 대부분이 내렸다. 당연히 우리도 내렸다. 출구 번호를 찾을 필요도 없었다. 다들 La Tour Eiffel을 보러 온 거니까. 지하철 출구를 나와 센느 강변을 따라 오른쪽으로 발을 돌리자 거대한 철골구조가 두 눈에 들어왔다. “저게 에펠이야?” 가까이에서 본 에펠은 아름답기 보다는 조금 무서웠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가지기 위해서는 상징이 필요하니까 우리가 가지는 것은 결국 상징과 같은 그림들 사진들 그리고 몇 마디의 말이나 글뿐이니까. 상징이 상징다워질 수 있게 우리는 에펠을 지나 조금 멀리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센느강을 따라 예쁘다고 소문이 난 알렉상드르 3세 다리까지 산책을 하기로 했다. 한주 내내 흐리고 비가 오던 파리는 그날만큼은 맑았고 노을이 내려앉은 센느강은 서쪽 끝이 온통 노랗게 불타올라 강이 아니라 커다란 태양이 내뿜는 하나 은색 빛줄기인 것만 같았다. 군데군데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요리조리 피해 가며 동쪽으로 조금 걸어 나가자 거대하고 검고 무섭기만 하던 에펠이 점점 친숙한 모양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한 손에 잡힐 듯 작아진 에펠은 노랗고 푸른 하늘을 걸치고 ‘이젠 어때?’ 말하는 듯했고, 우리는 몇 걸음마다 멈춰 서며 상징을 가지려 애를 썼다. 센느강을 따라 걷고 강변에 앉아 싸온 커피와 크로와상을 먹으면서 다리와 탑 그 자체만이 아닌 그날의 다리와 탑을 즐길 수 있다는 것에 무척 행복했다. 돌아서 가고 돌아가고 다시 또 올 수 있다는 것. 문득 엠마와 처음으로 라오스 여행을 갔을 때, 함께 차를 탄 독일인이 우리의 10일간의 여행 일정을 듣고 매우 놀라워하던 생각이 났다. 어디를 가는 것, 무언가를 가지는 것만 아닌 어디에선가 지내고 무언가를 쓰는 것 그래서 삶과 삶 아닌 것 둘 사이에서 오고 가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가볍게 살아가는 것. 그래 그것이 우선 내가 바란 작은 욕심이었지. 어느새 파리를 외쳐대는 풍경들보다 집에 가기 싫다고 부모의 반대로 달려대는 붉은색 패닝의 꼬마 아이, 파리 안의 (파리가 아니라 그 어디에라도 안의) 사람들에게로 시선이 옮겨갔다. 버리고 온 것도 포기하고 온 것도 아니구나. 어느 곳에서도 피할 수 없는 질문이고 끊을 수 없는 관심이구나. “엠마, 나 잘해볼게.” ‘좋은 날이었다’ 라고 서로 말해주었고, ‘좋은 날이었다’ 고 쓰고 싶었다. 글, 영상 레오 2019.11.14 파리일기_두려운 날들이 우습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