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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느끼는 것! w/ random inspirational images
행복해 지는 일은 없다 행복은 그때마다 '느끼는'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은 현재라는 시간뿐이다 오직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은 내일도 모레도 1년 후에도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내일도 모레도,1년 후에도 찾아오는 것은 미래가 아닌 현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뒤집어 말하면 우리는 바로 지금부터 언제든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사사키 후미오 중에서 오늘 아침의 글은 어제의 욜로 타령과 일맥상통하기도 합니다. '한번 사는 인생 내 맘대로' 라는 철학의 목적은 결국 행복을 위한 것 아니겠어요? 행복해진다는 것이 결과를 의미한다면 행복을 느끼는 것은 그때 그때의 상태이며, 과정입니다. 더구나 함께 공존하며 행복을 느껴야 할 가족이 있는 경우에 혼자만 설령 만족과 행복감을 느낀다해도 가정의 행복이 깨진다면 길게 봐선 파국이고 불행이겠지요. 결국 섣부른 욜로타령은 근시안적이고 유아적인 발상이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욜로가 국내에서 소비를 조장하는 편협한 의미로 왜곡되며 본질이 흐려지며 자본주의에 포섭된 면이 있는데, 한번 뿐인 인생 남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삶을 택한 분들의 삶도 마찬가지 의미로 욜로적 삶인 것이죠. 어제 댓글에 비슷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행복은 느끼고 그 향기를 맡는 것. 이 순간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느껴보세요~ 혜연. 참고 https://www.vingle.net/posts/2215970
미국의 공포, 영화 '어스' 솔직후기/리뷰/해설 (스포주의) [5분영화겉핥기]
안녕하세요, 재리입니다. 조던 필 감독이 또 한 번의 사고를 쳤습니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흥행까지 성공한 '겟아웃'의 명성을 이을 새로운 작품을 가지고 찾아왔는데요! 과연 기대는 만족으로 바뀌었을까요? 오늘의 영화는 귀신은 없지만 더 무서운 공포, 영화 '어스'입니다. 겟아웃 정도는 스릴러나 미스테리 정도로 봤는데 이번 영화 '어스'는 확실한 공포영화입니다. 러닝타임이 훅 지나가더군요. 숨 막다가 질식할 뻔 했어요... 여운이 강하게 남는 작품 리뷰 지금 시작할게요! *이 글은 스포성이 다분한 글입니다.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US)의 그림자 조던 필 감독의 풍자란 이미 검증을 마쳤습니다. 겟아웃이라는 작품 하나만으로도 감독의 능력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이번에도 다른 방식의 인종차별을 다루지 않았을까 했는데, 제 실수였습니다. 사실 조던 필 감독은 겟아웃에서도 인종차별이라는 미시적인 주제가 아니라 미국 전체의 위선이라는 거시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었으니까요. 이 영화도 명백히 현 미국의 양면을 '상상력' 만으로 날카로운 검을 가지게 됐습니다. 제목이 'US'인 이유는 미국(United States)의 약자 'US'도 대변하기 때문입니다. 극중 '우리는 미국인이다' 라고 정체를 밝힌 대사를 통해서도 드러나는데요. 처음에는 생뚱한 대답이 아닌가 싶었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 현상, 이 문제, 이 재앙은 우리가 미국인이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빛과 어둠 세상에는 빛이 존재하면 언제나 어둠이 존재하죠. 둘은 양립하기 어려우나 양립하고야 마는 이중적인 성격을 가지기도 합니다. 영화는 양면성에 대해 단순하고도 의미있게 접근합니다. 빛과 어둠은 어느새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죠. 그리고 누가 선이고 악인지도 단순히 빛과 어둠이라는 명사적인 개념을 통해서는 정의 짓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보통 빛이 선하다고 믿고 어둠이 악하다고 믿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을 수 있죠. 심지어 영화를 보는 관객들마저도 시선을 그렇게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저조차도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언제나 어디서나 빛과 어둠은 공존하고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며 존재합니다. 다소 추상적인 말이었는데요! 영화를 자세히 보시면 보이는게 다가 아닐 수도 있음을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핸즈 어크로스 아메리카 감독이 현재 미국을 비판하기 위해 꺼내든 수단이 바로 과거의 '핸즈 어크로스 아메리카'입니다. 이 캠페인은 영화 속에서 매우 큰 장치로 작용합니다.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빨간 캐릭터들이 손을 맞잡고 서있는 티셔츠며 광고를 떠올리시면 됩니다. 이 캠페인의 목적은 빈곤층과 노숙자를 지원한다는 의미의 공익캠페인인데요. 문제는 이 캠페인은 실패했고 그 이유가 공익의 성격을 띄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최근 '보헤미안 랩소디'에서도 등장했던 '라이브 에이드'처럼 당시에 화제였던 캠페인을 통해 화제를 모으고자 무리를 해서 캠페인을 진행했던 행사가 바로 이 '핸즈 어크로스 아메리카'였습니다. 결국 빈부의 격차는 지금까지 지속되고 오히려 더 심화되고 있죠. 이를 증명하는 건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 가족이 꽤 잘사는 집안이라는 점입니다. 집, 음식, 놀이까지 빈곤층의 그것과는 꽤 거리가 있습니다. 단순히 빛과 어둠의 대립, 선과 악의 대립, 진짜와 모조품의 대결이 아니라 부와 빈의 갈등을 묘사하고자 했다고 생각합니다. 예레미아 11장 11절 작품 속에서서는 또한 11:11이 자주 등장합니다. 시간도 11:11, 예레미아 11장 11절이 반복해서 사용됩니다. 실제 예레미아 11장 11절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보라 내가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리니 그들이 피할 수 없을 것이라그들이 내게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할 것인즉 결국 악순환을 끊는 고리로서는 신의 계시, 운명적인 만남이 작용합니다. 그것은 재앙의 시작이고 눈치채지 못할 보복이죠. 하룻밤 사이 세상은 진실로 가득 찼다고 믿게 될 것입니다. 거짓 뿐인 세상과 위선 뿐인 세상을 청소하고 자신들이 어둠에서 나와 세상 빛을 향해 소리치는 건 어쩌면 지금 현실을 꼬집는 영화 속 장면일지 모릅니다. 결국 영화는 이전 겟아웃처럼 시원한 결말로 끝내지 않습니다. 끝나지 않는 재앙의 불씨를 마음에 둔 채 찝찝한 기분을 가지고 집으로 가게 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게 지금 우리의 모습이고 언제나처럼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 감독의 의도입니다. 복제품이 복제품을 아직 정확히 뜻을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만 토끼의 등장은 '복제'를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처음 오프닝과 다르게 우리를 박차고 나와 자유로워진 토끼들의 모습은 빛으로 나와 자신들의 진짜 대상자를 죽이고 살아가는 모조품들을 비유적으로 표현했다고 봅니다. 그들은 모조품이고 토끼들 역시 모조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모조품은 또 모조품을 잡아먹으며 연명하고 삽니다. 위에서 사는 빛을 보는 인간들은 이런 내면에 관심도 없이 말이죠. 겉만 봐서는 터무니 없는 재앙이지만 자세히보면 또 인재고 미국의 그림자를 들춘 설정입니다. 물론 실화라고 말하기에는 억지가 있지만, 영화 초반 등장하는 설명들은 관객들이 이 장치에 몰입할 수 있도록 친절히 도와줍니다. 확실히 잔혹한 영화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이 더 잔혹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는 시점일 수도 있습니다. 그림자가 그림자를 사실 슬픈 작품이기도 합니다. 영화 결말을 보고 정체를 알게되면 다시 이 영화를 봤을때 공포보다는 안타까움과 슬픈 감정도 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론은 동족상잔이니까요. 영화는 어떻게 태어냤나기보다 어떻게 살아가느냐를 말하고 싶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태어난 건 어쩔 수 없지만 그걸 바꾸는 건 한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그림자로 태어난 이들의 운명은 항상 기구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항상 두려움과 죄책감에 평생을 살아가야할지도 모르니까요. 언제나 이용당하고 수동적인 이들의 외침이 영화가 진행될 수록 명백하게 귀에 들려왔습니다. 겟아웃 보다? 영화가 분명 잘 만들어졌습니다. 분명 이전 작품과 비교했을 때도 뒤쳐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번 작품이 메시지가 더 강렬하다고 해야할까요. 그래서인지 전작인 겟아웃보다 훨씬 공포스러웠습니다. 잔혹하기도 했고 긴장감이 엄청났습니다. 하지만 충격과 임팩트는 역시 겟아웃이 강렬합니다. 통쾌한 결말 역시 관객들을 열광시키게 만들었었죠. 각자의 장단점이 갈린다고 보시면 편합니다. 벌써 조던 필의 2번 째 영화를 감상했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더 빨리 다음 작품을 보고 싶게 됐습니다. 시리즈도 아닌데 괜히 시리즈처럼 기다리게 되네요. 오랜만에 간담 서늘한 시간이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들의 이야기, 영화 '어스'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