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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냉혹한 대일본제국의 희생정신 썰

옛날 옛적 중일전쟁 시절의 이야기다
상하이에서 중꿔와 일본이 멱살잡고 드잡이하던 시절 존나게 웃긴 주작질이 있었드랬다
기세도 등등하게 상하이 상하이 상하이에 트위스트를 추면서 처들어온 것까진 좋았다

하지만 상하이를 지키는 중국군은 지금까지의 오합지졸 븅딱들이 아니라 독일에서 온 나치훈련교관한테 착실하게 훈련받은 파워 짱깨였던고로 일본군은 피떡이 된다
가장 일본군을 괴롭힌게 중국군이 치밀하게 깔아둔 철조망이었는데, 독일식 철조망 진지라 굉장히 튼튼했다

철조망이 개같으면 철조망을 치워야지
일본군은 철조망을 조지러 갈 자원자를 뽑기 시작했다

옛날에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도 나온 파괴통이라는게 있음
길쭉한 원통 안에 폭탄을 넣어서 멀리서 구조물 철거하는데 써먹을 수 있는 신통한 물건이다
이렇게 여러개 이어서 길쭉하게 만들어서 철조망이나 지뢰밭에 넣고 도화선 불 붙여서 터뜨리고 안전하게 진군하는 거다

말로 설명하면 감이 안 잡힐테니까 움짤로 보면 됨(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는 뱅갈로어라고 부른다)
겨우 철조망 뚫자고 쓰기엔 좀 비싸 보이는 물건인데 그래도 병사의 목숨은 소중하니까 앵간한 나라는 다 들고 다녔다
물론 인권을 가장 소중히 생각하는 대일본제국의 자랑스런 육군에도 당연히 파괴통이


없지

설마 있을 거라고 생각했음?
일본군은 철조망이 있으면 사이오닉 정신에너지로 뚫고가라는 프로토스들인데 파괴통 같은게 제식 장비로 있겠냐

그래서 나온게 이 현지급조파괴통(대나무제)다
일본 대나무도 아니고 상하이 현지에서 대나무 짤라다 폭약 채우고 도화선 쑤셔박은게 끝인 조잡한 물건이다

생짜 대나무를 짤라 만든 물건이니 당연히 길이 조정 기능 따윈 없다
도화선도 조잡하기 짝이 없는 물건이라 설치 후에 땡기는 게 아니라 미리 땡겨놓고 달리는 거다

그러니까 농담 아니라 이거랑 똑같다
저 존나 길쭉하고 무거운걸 3명이서 발맞춰서 존나게 달리면서 터지기 전에 던지고 돌아와야 됨

놀라운건 저 병신짓을 자원자를 받아서 처리했다는 건데 위의 3명이 그 자원자들이다.
각각 다케지, 스스무, 이노스케라는 엑스트라같은 이름이 있지만 그냥 개또라이 1호기 2호기 3호기로 통칭하자
이런 개또라이짓에 자원했으니 틀림없이 개또라이들이 분명하니까
이 개또라이 트리오가 그나마 보여준 상식은 딱 하나였는데 이딴 짓을 밤에 했다는 거다. 낮에 했으면 100% 총맞고 죽었을건 분명하고 개 쪽팔렸을 거다

헛둘헛둘헛둘 야밤의 상하이를 트위스트를 추면서 3명의 개또라이가 나아간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맨 앞에 가던 개또라이 1호기가 진흙에 미끄러져 트위스트를 추면서 넘어져버린 것이다
호엑! 호에에엑!
일제히 패닉을 일으키는 상하이 트위스트 3인조. 자원했을 때의 깡은 어디갔는지.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이거 도화선에 미리 불 붙이고 달리는 물건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물건이니 뭐 겁에 질린 건 이해가 간다만 그 뒤의 행동이 또 코미디다
자빠져버린 개또라이 트리오가 도화선을 꺼버리곤 본대로 복귀해버린 것이다

장렬하게 짱깨의 방어선을 작살내고 돌아왔어야 할 개또라이 트리오가 맨몸으로 복귀하자 부대장은 기가 막혔다

당연히 오지게 깨졌다
얼마나 깨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개또라이 트리오가 겁에 질려서 다시 대나무 파괴통을 들고 도로 방어선으로 달려갈 정도는 깨진 모양이다
부대장의 개지랄을 피해 다시 개또라이 3인조는 방어선을 향해 돌격한다
헛둘 헛둘 상하이 상하이 상하이
잠시 후 요란한 폭음이 울려퍼졌다

다시 말하지만 폭파 타이밍 조절 기능 따위 없는 물건이었다.
불 땡기고 터뜨리러 갔다가 자빠져서 돌아오는 시간이 짧았겠냐
이미 타들어갈 대로 타들어간 도화선은 이 빡대가리 3인조와 함께 그대로 폭사했다

1932년 2월 22일의 머저리같은 콩트였다

여기까지만 해도 더이상 ㅄ같을 수 없단 생각이 들겠지만 진짜 ㅄ짓은 이제 시작이다

상하이 사변을 취재하러 온 일본 기레기가 기레기 만랩 스킬을 터뜨린 것이다
아사히 신문에서 온 이 일본 기레기 새끼가 이 작전을 지휘했던 장교를 취재했는데, 당연히 무의미하게 병사를 꼬라박았다고 할 수는 없으니 총알이 빗발치는 가운데 3명의 위대한 육탄용사들이 대나무 폭탄을 껴안고 적진으로 뛰어들어 카미카제를 시도했다는, 듣기만 해도 엄청난 뻥카 인터뷰가 튀어나온 것이다.

개또라이 3인조는 어느 틈엔가 구국의 용사가 되었다. 얼타다 자빠져서 호에엑 거리던 폐급들은 즉시 2계급 승진한 것은 당연하고 그 뒤의 일이 더 가관이다.
오사카 아사히 신문을 통해 중국을 날려버린 감염된 테란 3인조의 영웅담이 전국으로 흘러나가니 온사방에서 자폭찬양이 울려퍼졌다. 심지어는 죽은 병사들을 기린답시고 육군에 기부금이 쏟아져들어왔다.
정말 일본스러운 상황이군

개또라이 3인조는 맥주 광고에 나오기도 하고

조선 학교에서 어린이 논술문제로 출제되기도 했으며(내용: 개또라이 3인조는 어떤 심정으로 꼬라박을 했을지 서술하시오 초우셴징)

결국에는 동상까지 세워진 것이다

물론 당연히 개또라이 3인조를 주인공으로 한 군가도 만들어졌다

과연 대일본제국이다 정말 대-단해
부실한 병신 무기 만들어놓고 닥돌하라는 일본군이나 하란다고 그걸 자원해 하는 또라이들도 븅신이지만 저렇게 자폭 자체를 신성시하면서 몸 흔드는 일본 국민들이야말고 최종병기 아닐까

이렇게 감염된 테란 3인조는 50년 넘게 찬양받다가 뜬금없이 2007년에 아사히 일보가 아 그거 구라였음 ㅈㅅ 정정보도를 내면서 정체가 까발려지고 만다

진짜 개쪽팔렸겠다

상하이 상하이 상하이 트위스트 추면서

[출처 - 디시인사이드 고질라맛스키틀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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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는 온갖 비난과 손가락질을 받을 줄 알면서도 정정이라도 하지 조선일보는 뭐하냐
@Mmark 조선기래기 뚝심하나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기억도 안날쯤 정정했네‥
항상 재밌게 보는데 정말 필력이 좋으십니다 ㅋㅋㅋㅋ
갈금이란게 폭탄을 들고 나갈정도로 무서운거다 하면된다도 저런 정신 아닌가 아무것도 없지만 하면 돼 그러니 무조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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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328년 원나라 말기 심한 기근에 각지에서 도적들이 들끓는 막장 상태의  사회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넷째 아들로 태어남. 이름 중팔. 소작농인 부모와  농사일, 목동일을 하면서 지독한 가난을 겪음 유년기, 끼니도 제대로 못 먹는 상태에서 천연두까지 걸렸으나 이겨내고 살아남.  얼굴이 곰보로 모두 얽어버림. 10대 초반, 지주의 소를 치던 중 너무 배가 고파 친구들과 송아지 한마리를 잡아먹음.  자신이 대표로 몽둥이로 개맞듯이 맞음. 17세, 심한 가뭄과 전염병으로 부모, 형 전원 사망. 마지막까지 막내 중팔과 함께  살아남았던 중팔의 형은 13알의 마지막 볍씨로 풀죽을 쑤어 중팔에게 주었고  형 자신은 배를 곪다가 사망. 재산이 없어 부모와 형의 묘를 세울 땅도 없었고 유계조라는 사람에게 땅을 빌어  귀퉁이의 땅을 얻음. 찢어진 옷 몇벌을 겨우 구해 시신을 덮고  손수 부모와 형의 시신을 매장하고 장례를 치룸. 17세 이후, 절에 가면 밥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다는 마을 사람들의 말을 듣고,  머리를 밀고 황각사라는 절에 들어감. 절에서 마당을 쓸고 밥을 짓고 빨래를 하는 등  허드렛일을 하고 죽을 얻어먹음. 그곳에서 글을 배울 수 있었고 서적을 읽음. 절이 어려워지자, 탁발승(당시에는 거렁뱅이 취급)을 하며 전국을 4년동안 떠돌아다님.  민심이 흉흉하던 때라 바가지로 물을 맞거나 침을 맞는 수모를 당하기도 함. 24세, 곽자흥의 홍건군 휘하에 말단 병졸로 들어가 공을 세우며 승승장구. 2인자의 자리까지 오름. 처음 홍건군에 투신하였을 때, 외모 때문에(...) 첩자로 의심받아 포박 당하여 끌려갔으나  곽자흥이 그의 담력과 총명함을 알아보고 천거함.  곽자흥의 양녀 마씨와 당시 기준으로 늦은 나이에 결혼. 27세, 곽자흥이 죽자 곽자흥이 이끌던 홍건군 군단의 지도자로 추대됨 28세, 남경 점령. 남부의 대 군벌 중 하나로 부상 35세, 최대의 라이벌 진우량을 파양호 대전에서 격파. 36세, 진우량의 세력을 모두 흡수하고 스스로 '오왕'의 자리에 오름. 39세, 또 다른 군벌 장사성을 격파하고 남부 패권 장악 40세, 25만의 대군으로 북벌 단행, 원나라 잔존 세력과 군벌들을 모두 격파하고  베이징 (대도) 점령. 원나라의 잔존세력을 만리장성 이북으로 몰아내고 명(明) 건국. 그 이름 명태조 홍무제 주원장. 중국 역사상 평민으로부터 시작해서 황제가 된 인물들은 있지만, 대부분 젊은시절에도 세력을 키울만한 기본적인 밑천은 가지고 있었다.  평민에서 황제가 되었다는 한 고조 유방조차도 말단이나마 관직이 있었고,  장인이 지역 유지였고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징기스칸과 누르하치는 젊은 시절 고생을 겪었지만 유목세계에서 귀한 혈통을 이었으며 둘 다 부족장의 아들이었다. 그러나 주원장은 가난한 천민에 가까운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홍건적에 투신하기 전까지는 세력도 배경도 아무것도 없었다. 황제가 된 이후, 부모의 묘자리를 내어준 유계조에게 엄청난 포상을 내렸으며 절에서 있던 시절, 가장 힘들었던 일이 사천왕상의 다리 사이에 있는  먼지를 청소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모든 절의 사천왕상은 청소하기 편하도록 반드시 한 발을 들게 만들도록 명령하기도 했다. 이러한 출신 성분과 이후의 치적으로 백성들 사이에서는 명군이란 평가를 받기도 하였지만,  신하들 사이에서는 폭군이란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이는 개국 공신들을 쥐 잡듯이 족쳤기 때문이다.  백성들에겐 명군인데 신하들에겐 폭군이라고 엇갈린 평가를 받는 이유는, 아무래도 역사를 쓰는 사람들이  신하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지도자의 권력 한계상 백성과 신하 둘 중 하나만을 챙길 수밖에 없는데,  신하들은 자기들이 잘 살아야 태평성대라고 봤기 때문이다. 또한 엄청난 워커홀릭으로 유명했다. 그 자신부터 관리들이 일을 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신념을 유지했는데, 이것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그 자신조차 죽을 때까지 20년 동안 엄청난 양의 업무를 소화했다.  태어날 때부터 황실에서 태어나 귀하게 자란 그 아들들이나 손자부터는  생전 주원장의 그 업무량을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보조하는 신하를 두기 시작했고  이것이 사실상의 승상제도처럼 변해버렸다.  그런데도 주원장은 죽을 때까지 승상을 두지 않고 본인이 업무를 맡았다.  기록에 따르면 한번은 얼마나 업무를 처리하는지 계산을 해봤는데  8일 동안 3,391건의 문서를 처리했다고 한다. 대략 하루에 처리한 것이 400건이 넘는 것이다.  이런 사정이라서 누가 글자는 1만 5천자나 되는데 내용은 쥐뿔도 없고 쓸데없는 문서를 올렸다. 주원장은 노발대발하며 그를 숙청해버렸다. 건국군주임에도 후비를 많이 들이지 않은 군주로도 유명한 주원장은,  당시 황후와의 의리를 지킨 점 때문에도 당시 백성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주원장은 자신이 쥐뿔도 없던 시절부터 뒷바라지를 해 주던 마 황후가 사망하자  그녀의 죽음을 매우 비통해 하였으며, 약 일주일 동안이나 식음을 전폐하며  마 황후의 죽음을 슬퍼했다고 한다. 그리고 평생 후비를 들이지도 않았으며 일에 몰두했다. 숙청과 후계 구도 실책으로 후대 신하들에게도 엄청나게 부정적 평가를 받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당대 백성들에게는 영웅으로 추앙받던 황제였다고 한다.
[펌] 2차대전 당시 영국의 뒷마당 벙커
다들 알겠지만 영국은 2차대전 내내 나치들 공습에 뚜들겨맞으면서도 항복하지 않은 근성으로 유명함 한 두 달도 아니고 몇 년을 이렇게 공습을 버텨낸 비결로는 집집마다 벙커 하나씩이라는 정책 덕분에 가능했음 이게 영국 정부에서 배포한 집에서 만드는 방공호 '앤더슨 방공호'임 존나 간단해서 며칠이면 뚝딱 만들 수 있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이 설계도대로 만든다면 누구나 마당에 벙커를 만들 수가 있었음 마당이 없다면 유감이고 앤더슨 방공포의 규모는 이렇게 한 가족이 지낼 수 있는 규모부터 지하 교실이 되는 경우도 있었고 댕댕이 아지트가 될 수도 있었고 아예 아파트가 될 수도 있었다 아무튼 근성의 영길리들은 이렇게 전쟁을 이겨냈다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꾸며진 크리스마스 벙커 참고로 비슷한 집집마다 벙커 정책은 비스무리한 방식으로 다른 나라에서도 했는데 그게 어디냐면 바로 같은 섬나라 일본이다 하지만 어림도 없지 일본은 벙커까지 포함해서 죄다 목재였고 미군은 뽜이야 소이탄을 정말정말 좋아했다. 강까지 끓어올라서 뛰어든 사람을 삶아버리는데 지하벙커 따위로 목숨을 구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일본의 벙커는 그날로 오븐으로 직종을 바꿨다 [출처 디시인사이드] ------------------------------------------------------------ 더불어서 소이탄은 사실 목재든 아니든 상관없이 치명적이라고 합니다. '그럼 나치는 소이탄을 안 썼나?' 궁금했는데 마침 댓글에 이런 내용이 있네요 단지 나치의 소이탄 폭격은 그다지 효과를 보지 못했는데 당연하지만 폭격을 하려면 제공권이 있어야하고 나치는 전쟁 초중반을 제외하면 제공권을 상실했으니 소이탄 떨굴 일이 드물었음 애초에 소이탄 생산도 부족한 마당에 지상 병력도 소이탄을 많이 써야해서 소이탄을 소량만 폭탄에 섞어쓰는 방식으로 썼기 때문에 막 드레스덴이나 충칭 , 도쿄처럼 불바다가 일어나진 않았음 그렇다고 합니다 아이 유익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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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있는 이들은 모두 알겠지만 2차머전은 히틀러가 암살당하면서 사실상 끝난다 사악한 독재자 히틀러 히틀러의 머리통에 권총탄을 박은 용감한 어쌔신 아돌프 원래는 화가가 되고 싶었던 착한 청년 아돌프가 어떻게 히틀러의 벙커를 돌파하고 히틀러의 대갈통에 발터를 쏴갈겼는지는 현재까지도 미스터리며 우리의 아돌프조차도 히틀러와 죽음과 자신의 목숨을 맞바꿔야 했을 정도로 히틀러의 암살은 어려운 일이었다 히틀러를 암살하려는 시도는 30번이 넘게 있었는데 그 중 아돌프 빼고 성공한게 하나도 없는 것만 봐도 그렇다 당연히 2차대전 최고의 기행국 영국도 히틀러를 암살하려 시도한 적이 있었다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는 오랜 지병 고혈압은 아니고 연합군에게 두들겨맞고 쓰러졌다 자세한 점령 내용은 우주갓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우주갓드라마 밴드오브브라더스를 참고하도록 하시오 하여튼 무수히 많은 나치들이 영미 연합군에 포로로 잡혔다. 자아 오징어밥풍 그린소스가 왔습니다 차라리 고문을 해라 개새끼들아 그런데 영국 밥을 먹다 차라리 죽여달라며 애원하던 나치 포로들 중 하나가 엄청난 정보를 털어놓게 된다 다름 아닌 히틀러가 지금 별장에 놀러갔다는 정보였다. 그게 뭔 대단한 정보냐 싶겠는데 이 포로는 '베르크호프'라 불리는 히틀러 별장의 경비원 출신이었다, 여름마다 별장에 놀러와서 빈둥거리는 히틀러의 생활사이클을 완전히 꿰고 있었던 것이다 이 엄청난 정보를 들은 영국은 발칵 뒤집어지고 곧이어 SOE, 영국 특수부대작전집행부가 통째로 출동하는 대사건으로 발전한다 히틀러가 어디서 뭘하고 있는지 정확히 안다면 총알 한 방으로 전쟁 조지는 것도 농담은 아니다 이리하여 영국군의 히틀러 암살 작전인 '폭슬리 작전'이 시작된다 계획의 골자는 단순했다. 히틀러가 별장에 놀러온 순간 조져버리는 것이다 나치포로놈의 콧구멍에 장어파이를 쑤셔넣다가 알아낸 바로는 히틀러 새끼는 하루도 빠짐없이 정확히 오전 10시에 산책을 시작한다고 한다. 그것도 경호원도 없이 산책을 하는데 그 코스까지 숲속 루트를 타서 밖에서는 잘 보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제발 암살해달라고 애원하는 수준이다 이제 중요한 건 그 방식이다 생각하기도 귀찮은데 화끈하게 바주카로 날려버리죠? 가장 먼저 의견을 제시한건 히틀러를 별장째로 날려버리자는 폭탄마들의 의견이었다 이 계획은 폭탄이랑 바주카를 주렁주렁 매단 폭탄마들을 잠입시켜서 히틀러 새끼가 별장에 올 때 열차를 터뜨려버리고, 열차에서 안 뒤지면 기다리고 있다가 바주카로 조져버리고, 바주카가 빗나가면 그때는 별장 자체를 날려버리자는 화끈한 방식이었다 암살(목격자 없으면 암살임) 와 그것 참 등신 같네요! 님들 폴란드 새끼들이 그 지랄하려다 어떻게 됐는지 잊었음? 그런데 폭탄마 암살은 많은 반대에 부딪쳤는데, 전쟁 초기에 폴란드 븅딱들이 폭탄으로 히틀러 날려버리려다 실패한 사례가 있었던 것이다. 당시 폴란드 레지스탕스는 히틀러를 날려버리려고 히틀러가 타고오는 기찻길에 폭탄을 깔았는데, 히틀러가 열차 일정을 변경해버리는 바람에 다른 열차를 폭파시켜버렸다. 결과적으로 애꿎은 430명의 민간인만 조져버렸다. 당연하지만 아무리 전쟁 중이라도 기백명의 민간인 피해는 미친짓이었다. 폭탄파들은 찌그러지고 그 다음에 고려된 것이 독살파였다 독살파들의 지론은 모름지기 암살은 조용하고 섬세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귀에다 속삭이게? 효과 직빵이네 100% 즉사일듯 아니 독 쓴다고 독 ㅆㅂ아 SOE는 물질 1이라고 불리는 무색무취의 독약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걸 별장에 있는 히틀러한테 먹이겠단 계획인 것이다 이걸 위해서 SOE는 포로의 코에 피시앤칩스를 쑤셔넣으면서 히틀러의 홍차 취향까지 알아내는데 성공하는데, 히틀러는 언제나 우유 먼저 넣고 홍차를 위에 붓는 부먹충이라는 걸 알아내는데 성공했다 뭔가 존나 쓸데없어보이는 정보였고 실제로 그랬다 다 좋은데 그래서 누가 히틀러 우유에 독 탈 거임? 그리고 히틀러가 그날은 커피 마시고 싶어지면 어쩔려구? 독약은 준비됐는데 정작 독약을 넣을 에이전트가 하나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다. 게다가 히틀러는 입맛이 존나 변덕스러운 걸로 유명한 놈이라 그 새끼가 뭘 마실지 확실하지도 않았다. 이 새끼는 생활패턴이 개판이라 식사를 번번히 건너뛰었던 것이다. 그럼 기차 물탱크랑 별장 물탱크에 통째로 다 부어버리자 일단 마시면 히틀러 포함해서 다 뒤질 거 아냐 아니 ㅄ아 그럼 폴란드 새끼들이랑 뭐가 다른데 조용함 조용히하세요! 독살파도 만만찮게 병신같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폭슬리 계획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뭐든지 기본에 충실한게 가장 효과적이라는 걸 떠올린 영국은 가장 오소독스한 암살방식을 고르게된다. 바로 저격이었다 별장 근처에 대기타고있다가 총알 한발로 히틀러 짝부랄을 없부랄로 만들겠음 그랬다가 잡히면 너도 없부랄이 될텐데 그래서 안 들키게 독일군으로 변장하고 있을 거임 벌써 독일말 잘하는 폴란드애들까지 섭외했음 그리고 총알 빗나가면 바주카로 쏴죽일 거다 아싸 최종적으로 채택된 암살방식은 저격파와 폭탄파를 믹스한 방식이었는데, 저격수 2명, 바주카 2명을 낙하산으로 별장 근처에 잠입시킨 뒤에 독일군 군복을 입히고 대기 타다가 히틀러를 쏴죽이든 터뜨려죽이든 하겠다는 것이다 암살에 성공한 뒤에는 꽁지빠지게 도망가서 근처에 있는 레지스탕스들에게 합류하는 탈출 계획까지 완성되자 SOE는 의기양양하게 처칠에게 이 계획서를 가져가고 처칠은 일단 저격해보고 안 되면 바주카로 쏜다는 화끈한 계획서를 받아들게 된다 존나 병신같은 생각이네 ㅋㅋㅋㅋㅋ 당장 하자 콜이 떨어졌다. 드디어 처칠의 인증까지 받은 폭슬리 작전의 실행일까지 잡혔다. 폭슬리 작전은 1944년 7월 14일로 작전 실행일을 결정한다 누군가 참 상식적인 딴지를 걸기 전까지 작전은 탄탄대로인 것처럼 보였다 여기까지 올 때까지 아무도 이 질문을 안 한게 존나 이상하긴한데 우리 왜 히틀러 죽이려고 그러는거임? 아니 전쟁 중이잖아 왜 당연한 걸 가지고 그럼 근데 히틀러 뒤지면 전쟁 더 잘하는 새끼가 독일대빵되는거 아님? 어? 존나게 설득력있는 딴지였다 간신히 궤도에 오른 폭슬리 계획이 또 갈팡질팡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히틀러뽕 다 빠진 전쟁 후반에 들어서면 연합군들의 히틀러 평가는 대충 이런 수준이었다 "이 새끼 전쟁 좃같이 못하는 새끼다" 거기다가 당시의 히틀러는 마약 처먹고 말도 안 되는 명령만 연이어 내리는 정신병자였지면 죽은 히틀러라면 이야기가 또 다르다 나치가 죽은 히틀러 대갈통을 십자가에 걸어놓고 유물로 모시면서 광폭화 버프를 받을 가능성도 충분했다 생각해보니 암살을 안 하는 것만 못하게 된 상황이라 SOE 친구들은 누가 그만두자고 총대를 맬지 눈치게임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눈치 없는 처칠이 문제였다 암살대 보냈음?? 언제 보낼 거임?? 빨리 히틀러가 짝부랄에서 없부랄이 되는거 보고싶은데 ;;;;;;;;;;;;; 히틀러 구멍난 대갈통은 나한테 기념품으로 보내줄거지? 표정 왜 그럼? 처칠한테 인증마크까지 받은지라 폭슬리 계획은 도저히 취소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영국군은 나서지나 말걸 후회하면서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드디어 운명의 7월 14일이 다가왔고 작전이 결행되는 순간이 왔다 여기까지 왔는데 뭐 어떡하냐 좋아 가는 거야 히틀러 집에 갔음 냉? 집에 갔다고 영국이 아옹다옹하는 동안 늘어지게 별장에 누워있던 히틀러는 작전결행 당일 아침 일찍 베를린으로 돌아가버렸다 닭 쫓던 개꼴이 된 영길리들은 벙쪄있다가 주섬주섬 퇴근했다 영국이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힝힝 ㅠ 처칠은 폭슬리 작전이 취소된 것 때문에 무척 슬퍼했다고 한다 그 문제의 별장은 빡친 처칠 때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영국 공군이 폭격으로 개아작을 내버렸다 결국 영국스럽게 시작되고 영국스럽게 진행됐다가 영국스럽게 끝난 이 비밀암살작전은 그 동안 쭉 기밀문서로 보관되다가 2000년대에 들어서야 공개됐다
[펌] 냉혹한 중세 전염병의 세계
역사에는 진짜 별별 전염병이 다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원톱 뽑으라면 누구나 고를만한 질병계의 아이돌이 있다 이건 엄청 유명하고 이름도 간지나는지라 영국이 섬인줄 모르는 멍청이들도 이름은 들어봤을 거다 이야기는 1347년의 어떤 공성전에서 시작된다 말 덕후만 잔뜩 모인 몽골, 정확히는 킵차크 칸국이 이탈리아의 식민 도시인 '카파'를 후드려패고 있던 것이다 근데 그 천하의 무적몽골치곤 기세가 좀 많이 비실비실했다 카파의 유럽친구들이 성벽 밖으로 내다보니 이 칭챙총들이 뭔 병이라도 걸렸나 정신을 못차리고 비틀거리고 있다 어떤 놈은 온몸이 시꺼멓게 변했고 어떤 놈은 24시간 내내 피똥을 싸갈기고 있었거든 당연히 카파 친구들은 저 머저리들이 임질에 걸렸나보다 이러면서 매우 신이 났다 실제로 몽골인들 사이에서는 전염병이 돌고있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죄다 전염되어가는 상황이어서 공성전은 개뿔 집에 살아돌아갈 수 있을 지도 애매한 판국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말 덕후들은 성벽 위에서 낄낄대면서 축제를 벌이는 유럽 새끼들이 존나 꼬왔고, 인류평등의 정신을 따르기로 결심한다 내가 좆같으면 니들도 좆같아야 해 호모 사피엔스 역사에 깊이 새겨진 그 유우명한 정신 말이다 그리하여 몽골 말 덕후들은 투석기에 돌덩이 대신 병으로 죽은 동료들의 시체들을 장전하고 쏴갈기기 시작했다 카파 시내 곳곳에 썩어서 팅팅 분 시체들이 철퍽철퍽 떨어지기 시작했다 새로 칠한 지붕 위에 주렁주렁 널린 팔다리내장을 본 유럽 친구들의 표정은 순식간에 썩어들어갔으니 너도 좆같고 나도 좆같았다 마침내 인류평등이 실행되었다 기분만 평등해졌을까? 물론 아니지 유사이례로 금수저건 흙수저건 남녀노소 불문하고 평-등하게 적용되는 원칙이 하나 있다 흑사병 걸리면 누구나 한 방에 훅간다는 거 말이야 몽골 말 덕후들이 가져온 질병은 중앙아시아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던 그 유명한 흑사병이었다 카파에서는 순식간에 발병이 시작되었고 이렇게 세계 역사를 영영 바꿔버린 대전염병 흑사병의 대학살쇼가 개막된다 흑사병은 진짜 뭔 병의 신 같은 병신새끼가 대놓고 인간 멸종시키려고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악랄한 물건이다 제일 악랄한 점은 치사율이 미쳐돌아가는 주제에 잠복기까지 있다는 거다 병에 걸려도 사흘에서 일주일 정도는 걸린 본인도 지가 걸린줄 모른다 엌ㅋㅋㅋ 나 운 존나 좋은듯ㅋㅋㅋㅋ 이러고 안심하고 있을 무렵에 응 아니야~외치면서 활동 시작하는 미친놈이다 발병하면 어떻게 되느냐 일단 몸이 개 추워서 얼어뒤질 것 같은 오한이 온다 근데 정작 몸은 펄펄 끓는 고열에 시달린다 어 독감걸렸나? 싶어서 병원에 가려고 하면 그때부터 끔찍하게도 고추 부근에 주먹만한 종기가 생기기 시작한다 작게는 계란 크기에서 크게는 사과 크기의 종양은 하필 겨드랑이와 고간 같은 부근부터 생기기 시작하는데 이게 건드리기만 해도 존나 아파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드러눕게 된다 하필 계란이랑 사과라니... 당연히 이렇게 혼자서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헬프 외치고 있으면 사람들이 와서 들고가겠지? 그럼 얘네도 감염임 이런 식으로 인간 사이에 퍼지기 쉽게 악랄하게 증상이 디자인된 놈인데 치사율도 엄청 높다 저렇게 고추 사이에 종기 생긴 후엔 기침이 시작되고 피 토하면서 으겍켘켘거리다가 손끝 발끝부터 시꺼멓게 썩어들어가기 시작한다 얼마나 빨리 썩냐면 아직 살아있는 환자가 지 고추 썩어가는 냄새를 맡을 수 있을 정도다 물론 코가 아직 덜 썩었어야 가능하겠지 그러다가 고통스럽게 죽어버리는데 그게 며칠 걸리냐면 빠르면 하루도 안 걸리고 보통은 5일이면 뒤졌다 그러니까 흑사병은 정확히 사람 사이에 퍼질 수 있을 정도로 간 좀 보다 갑자기 발병하고 발병한 후에도 최대한 전염시키려고 지랄을 떠는대다 그러면서도 발병 후에는 존나 빨리 죽여버리는 개새끼라는거지 이런게 퍼지기 시작했으니 이젠 더이상 공성전이 문제가 아니다 카파 시내에 시꺼멓게 썩어가는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이기 시작하자 아직 살아남아있던 유럽인들은 고향으로 필사의 빤스런을 시작함 카파가 이탈리아 식민도시였기 때문에 많은 선원들은 이탈리아 제노바로 빤스런을 했는데 문제는 이 새끼들이 빤스만 입고 간 것이 아니라는 거다 선원들의 빤스창고에는 당연히 쥐새끼들이 우글거렸고, 그리고 그 우글거리는 쥐새끼들의 털 속에는 벼룩도 득실거렸다 흑사병으로 죽은 환자 피를 듬뿍 빤 벼룩들이 말이다 이렇게 유럽에 흑사병이 상륙하게 된다 그것도 하필이면 전 유럽에서 제일 사람이 바글바글대는 상업 도시 제노바에. 흑사병 입장에선 이지모드에서 치트키 치고 하는 상황이다. 결국 지 살겠다고 빤스런한 이 카파 빤스쟁이들은 자기는 물론이고 2억명의 유럽 새끼들을 같이 저승으로 끌고간다. 빤스런은 예전부터 심각한 폐혜였다. 이건 흑사병이 중앙아시아에서 시작해서 온사방을 뒤덮는 과정이다 전유럽이 초토화될 때까지 5년도 안 걸렸다. 그 정도로 중세 유럽은 흑사병이 퍼지기에 최고의 환경이었다 원래 흑사병을 가져온 말 덕후 몽골인들은 유목민이라 인구밀도도 낮고 기동성도 좋아서 전염병에 대처하는 데에는 유리했다 근데 유럽은 도시를 짓고 존-나 많은 사람들이 존-나 좁은데서 우글거리면서 모여산다 뷔페가 따로 없었다 흑사병에 감염된 벼룩은 쥐새끼 버스를 타고 이리저리 쏘다니면서 신나게 에슐리 무료이용권을 소진했다 순식간에 제노바에서는 시체가 쌓이기 시작했고 기겁한 보균자들은 몸에 벼룩을 단 상태로 또 빤스런을 하기 시작했다. 어디로? 다른 뷔페로. 1347년에 시작된 카파 공성전이 1348년이 되자 유럽 남부를 통째로, 제노바, 나폴리, 마르세유 등의 모든 항구도시를 감염시켰다 겨우 1년만에 과장 하나도 안 섞고 진짜 하루에 수천명씩 죽는 세기말 아포칼립스가 도래한 상황이다 듣도보도 못한 질병들이니 의사 새끼들도 뭐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걸리면 걍 죽어야 하니 중세인들은 흔히 하는대로 "아 ㅅㅂ 이거 지져스가 우리 좆같다고 벌주나벼 우리 모두 반성하자" 이 지랄떨면서 회개 모드에 들어갔다 죽기 전에 천국가고 싶어서 성당들이 고해성사 받으려는 빡대가리들로 꽉꽉 들어차서 또 다른 뷔페를 만들었다 천국가고 싶어서 줄서서 기다리는 유럽인들의 종아리는 벼룩들에게 존나 물어뜯겼고 결과적으로 성당 갔다온 친구들은 그날 밤 정말로 천국으로 갔다 흑사병에게는 진짜 의미로 천국같은 세상이었다 거기다 중세 시대라 흑사병-벼룩-쥐-인간 테크를 이해하지도 못했다 흑사병은 벼룩을 타고, 벼룩은 쥐를 타고 빠르게 이동하는데, 이 쥐를 잡아먹어서 그나마 병을 억제하는게 중세의 고양이들이었다 그러나 제정신이 아니었던 유럽놈들은 평소에도 불길하게 여겼던 고양이들이 병을 옮기는 마녀의 사역마들이라고 선언하곤 고양이를 족치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더 좃되어가기 시작했다 인간들의 대흑사병 고객서비스는 이걸로 멈추지 않았으니, 흑사병의 확산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채찍고행단이라는 마조 집단도 있었다 뭐하는 새끼들이냐면 흑사병은 신의 징벌이 분명하니까 우리가 반성하는 기색을 보여주면 물러갈거임 이러면서 지들 등짝을 징박힌 채찍으로 후려갈기면서 돌아다니는 새끼들이었다. 이들은 알몸으로 지져스에게 죄송죄송을 외치며 온 유럽을 떠돌아다녔다. 이 새끼들은 진짜 흑사병한테 표창장이라도 받고 싶었던 게 아닌가싶다 거기다 고행단원들 사이에선 누가누가 더 아프게 때리나 경쟁심리까지 붙어있었다. 스스로 줘패는 강도가 점점 더 강해지면서 사방에 피가 터지기 시작했고 당연히 이 중에는 보균자의 피도 있었으니 채찍고행단 하나가 순식간에 거대한 전염병 덩어리로 바뀌었다. 설상가상으로 채찍고행단 대부분은 "우리 반성해야 되는데 일할 시간도 없음요 ^^"를 외치는 백수들이였다. 이 새끼들이 어떻게 먹고 살았냐면 아무 마을이나 쳐들어가서 회개하라!를 외치고 창고를 털어먹는 것이었다. 일단은 신한테 죄를 비는 새끼들이라니 어떻게 말릴 수도 없는데 순 강도들이 따로 없었다. 그리고 실제로 강도가 맞는 경우도 있었다. "오 저 새끼들 아무도 안 건드리네?"싶어서 강도들이 웃통만 벗고 채찍고행단 사이에 슬쩍 끼어들어가서 마을을 털어먹는 일도 존나 흔했다. 총체적 난국이다 그런데 그 총체적 난국은 의외로 금방 해결됐는데, 빨갱이 서기장 동무가 말했듯이 인간이 없으면 문제도 없기 때문이다. 이윽고 흑사병이 발병하자 채찍고행단이고 강도고 마을사람이고 몽땅 평등하게 죽어버렸다. 스탈린 당신은 도대체... 어떻게 보면 흑사병 그 자체보다 인간이 더 죽고싶어서 안달이 난 거 같은 상황이지만 그래도 해결해보려고 노력한 의사들이 있긴했다 하나같이 쓸모없어서 그렇지 흑사병의 가장 큰 문제점은 도대체 이 새끼가 어떻게 퍼지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700년 전의 중세다.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건 알지도 못했고 벼룩같은 좁쌀만한게 지들을 죽일 수 있을 거라 믿지도 않았다. 그래서 의사들은 흑사병의 원인을 지목했는데 쌩뚱맞게도 악취라는 것이었다 왜냐면 흑사병 걸린 새끼들의 공통점이 몸이 썩어가면서 악취를 풍긴다는 거였는데, 그걸 보고 아 악취를 오래 맡으면 병이 생기나벼 이런 결론을 내린 거다 병에 걸렸으니까 악취가 나는거지 악취가 나서 병에 걸린게 아닌데 말이지 중세라 현미경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었으니 어쩔 수 없다만 결국 의사들의 삽질만 장대하게 이어지게 된다 여기서 그 유명한 흑사병 의사 마스크가 탄생한다 이 무섭게 생긴 가면의 부리 부분에는 꽃이나 향신료등이 잔뜩 들어가 있다 이걸 쓰면 아무튼 악취는 막을 수 있었으니 의사들은 이걸 쓰고 흑사병 환자를 진료하러 갔다. 물론 흑사병은 쥐뿔도 신경 안썼다. 의사들도 다 평등하게 죽어나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유럽인들은 의사 따라한답시고 꽃을 들고 다니면서 수시로 냄새를 맡고 다니기 시작했다. 돈 좀 만진다는 금수저들은 이 무렵에 향수제조에 존나 돈을 투자하는데 이게 나중에 향수산업의 밑거름이 된다 근데 힙스터들은 향기 산업이 대세가 되자 오히려 반대방향으로 가기 시작한다 똥을 빨기 시작한 거다 농담이 아니라 물리적인 의미로 똥을 빨았다. 운좋게 흑사병에서 살아남았거나 아예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의 똥오줌이 비싼 가격으로 팔리기 시작했다. 존나 상상을 초월한다 오줌으론 골든샤워를 했고 똥으로는 목걸이를 만들어 걸고다니거나 심지어는 처바르고 다녔다 여전히 효과는 전무했다. 정말 여러가지 의미로 ㅈ같은 시대다. 하여튼 재미를 실컷 본 흑사병은 1350년 말에 갑작스레 사라져버린다.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죽었다. 숫자로 따지면 수천만명에서 최대 2억명까지다. 이 전염병으로 역사가 바뀌는데 그건 지루하니까 얘기하지 않겠다. [출처 - 디시인사이드 고질라맛스키틀즈]
일본 관료주의의 레전드 병폐 썰
일본 도쿄도 이즈 제도에는 미하라산, 우리말로 번역하면 '삼원산'이 있음. 사진처럼 자연경관이 빼어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는 곳인데, 유명해진 이유는 자연경관 때문이 아니고 활화산인 미하라산에 1928년 1월 도쿄 상류층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의 여학생 두명이 분화구에 투신자살을 하게 됨;;;; 두명이 자살한지 얼마지나지 않아서 6명이 분화구에 뛰어들었고, 25명은 물리적인 제제를 받아 투신에 실패함 1주일에 5-6번 꼴로 일어나는 투신자살을 구경하려는 관광객의 행렬이 줄을 이었음. 적어도 1년동안 140명이 분화구에서 투신자살을 했고 1934년에는 160명 이상의 사람들이 투신했고 1200여명이 경찰에 의해 저지됨 (사스가 자살의 나라;;;;;;;;;;;) 경찰은 24시간 체제로 분화구에서 감시활동을 펼치고 높은 철조망을 둘러침. 그렇게 제제를 해도 1936년에 최소한 600명의 사람이 투신자살... 결국 분화구로 올라가는 진입로를 봉쇄시키기 전까지 최소 1000명이 투신한 것. 그리고 관료주의의 끝을 보여준 사건은 1986년 11월 15일, 미하라산이 활동을 재개하면서 부터임. 화산활동에도 불구하고 당시 분위기는 '야 미하라산 터졌단다 우리 용암분수 보러가자' 이정도. 관광을 수입으로 삼는 지자체는 홍보로 활용하고자 했고 많은 사람들과 기자들이 모여들어 화산을 라이브로 감상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느 정도로 경각심이 풀어져 있었냐면, 분화구 근처까지 관광객을 인솔하겠다는 계획도 있었다고 함. 그러나 분화가 시작된지 일주일. 미하라산은 갑자기 전례없는 활동을 보여주기 시작함. 엄청난 흔들림과 함께 화산재가 8km 상공까지 치솟고 화산탄과 용암류가 흘러내리기 시작해서 주택가로 흘러옴 (8km는 서울역에서 양재역까지의 직선거리임;;) 이 미친사태에 관광객들과 기자들이 정신을 차리고 대피하기 시작함 이 예상치 못한 대폭발 때문에 1만명이 대피를 가야했지만 시도때도 없는 화산성 지진과 주민 3명중 1명이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라 시간이 지체됨ㅠ 설상가상으로 용암류가 방향을 급변경하여 대피하고 있는 '모토마치 항구'로 향함... 마그마가 주변 바다와 닿으면 이른바 '수증기 폭발'이 암시되는 최악의 상황이었음.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당시 이 상황을 접한 도쿄의 정부관료. 이 비상사태에 직면한 국토성은 운수성 등 외부 부처의 담당 과장을 긴급소집한 뒤 오랜 시간동안 회의를 함 근데 그 회의 내용이 가관. 1. 대책본부 이름을 '오오시마 재해대책본부'로 해야하는지 '미하라 화산 분화 대책본부'로 해야하는지? 2. 사고 발생 연도를 '1989년'을 해야하는지 '쇼와 61년'을 해야하는지? 3. 회의의 형식을 '약식각료회의'로 해야할지 '임시내각회의'로 해야할지?  회의가 열리는 도중에도 신속하게 현지의 상황이 보고되었지만, 국토성에서는 '회의중' 이라는 답변만 할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음 결국 회의내용을 알게된 고토우다 마사하루 국방장관은 분노에 차 고함을 지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결국 도쿄도의 관료들에게 맡겼다가는 X된다고 판단, 나카소네 총리를 필두로 고토우다 관방장관과 하시모토 운수대신등이 뭉쳐 피난민 이주대책을 실시하고 총리가 그에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겠다고 선언. 주민들의 긴급피난을 위해 항구로 모여든 인근 해역의 어선, 민간선, 해상보안청 함선, 자위대 함선 등 약 40척이 집결, 화산 폭발 후 약 13시간만에 긴급 피난에 성공함  다음날, 국토성의 기자회견이 또 가관. " 관저 측은 독선적이고 난폭하다 " 저런 반응을 보고도 가만히 있는 일본국민들이 유우머... 이젠 놀랍지도 않음 ㅋㅋ.. 할말이 없다.. 끄읏.
[펌] 냉혹한 영국 수탈의 세계
감자대기근 1800년대의 아일랜드는 영국새끼들한테 존나게 수탈당하고 있었는데 그 수탈의 잔학함이 조선 삥뜯는 일본조차도 ㅈ밥으로 보이게 만들 정도로 악랄했다 얼마나 악랄하게 아일랜드를 뜯어먹었냐면 아일랜드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게 감자밖에 없을 정도였다 감자 빼고 나머지는 전부 영국에게 뜯겼다 문제는 이 시점에 감자만 골라조지는 악랄한 전염병인 감자마름병이 터지기 시작했다는건데, 감자 밖에 없는 나라에 감자를 못 먹게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냐 사람이 과장 하나 없이 수백만 단위로 굶어뒤지기 시작했다. 영국은 어떻게 했냐고? 하지메마시떼 아일란도 하지메마시뗴는 ㅆㅂ 굶어뒤져가는데 우리 좀 도와줘  그동안 우리한테 존나 식량 뜯어갔잖아 이젠 니들이 우리한테 퍼줄 시간 아님? 님 빨갱이임? 갑자기 뭔 빨갱이드립이야 아직 공산주의 만들어지지도 않았음 아니 자유시장의 법칙에 따르면 우리가 니들을 먹여살릴 이유가 전혀 없잖음 ㅋㅋㅋ 정부는 시장에 개입하지 않아야 자본주의가 잘 굴러가는데 니들은 보이지 않는 손 모름? 보이지않는건 니 양심이겠지 징징대는 개소리 잘 들었고연 굶어뒤지지 않으려는 노력이 부족하네여 근데 식량 언제 팔 거임?  뭔 미친 개소리야 우리 먹을 식량도 없는데 뭘 팔라는 소리야 니네 땅 주인이 판다는데? 아참 니네 땅 주인이 나였지  영국 미친놈들은 진짜 개새끼였다. 영국은 아일랜드를 그렇게 삥뜯었던 주제에 굶주리는 아일랜드에 식량을 공급하는 것을 거부한다. 왜냐면 이 당시 영국의 집권당이 자유당이었는데 이 새끼들은 자본주의 돼지들이라 자유방임주의가 모든걸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진짜 거지같은게 아일랜드 땅들은 대부분 영국이 가지고 있었다. 자유방임주의의 원칙에 따라 아일랜드 삥뜯기는 평소처럼 계속되었다. 아일랜드의 땅을 소유하고 있는 영국인 지주들은 길에서 아일랜드 사람이 죽든 말든 식량을 팔아댔고 영국은 또 그걸 좋다고 사갔다. 전 아일랜드의 밭에서 굶주린 농부들이 뒤져가는 동안 영국배들은 부지런히 아일랜드에서 나온 식량을 본국으로 실어나르고 있었다. 이게 역사에서도 유명한 아일랜드 대기근이다 사실상 영국이 수백만 명을 굶겨죽인 사건 때문에 지금도 아일랜드 사람들은 영국을 찢어죽일 정도로 증오하고 있다. 아일랜드의 반영 감정에 비하면 한국의 반일 감정은 우정처럼 보일 정도다. 보어전쟁 보어인이라는 사람들이 있다. 기원이 워낙 복잡한데 간단하게 땡치자면 아프리카에 정착한 네덜란드계 사람들이다. 이 보어인들은 처음엔 비교적 평화롭게 잘먹고 잘살고 있었는데, 문제가 터졌다. 얘네 땅에서 금이랑 다이아몬드가 펑펑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게 왜 문제냐고? 하지메마시떼 보어상~ 영국새끼들이 그걸 알았거든. 이웃집에 좋은 물건이 있으면 정중하게 대문부수고 들어가서 신사적으로 집주인을 때려죽인 다음 품위있게 집으로 가져오는 그 새끼들 말이다. 물론 당연히 보어인들은 영국이 힘들게 세운 나라를 날름 처먹으려는 걸 눈뜨고 보지 않았다. 하지메마시떼는 ㅈㄹ ㅈ이나 까샘 보어인들은 무시무시한 게릴라전을 펼치면서 막강한 전투력으로 영국군을 개박살내는데, 보어인들의 저격실력이 엄청나게 무서웠던 나머지 아직도 명사수의 대명사로 보어인들을 뽑을 때가 있다 아무튼 영국은 대차게 박살이 났다. 보어인들은 민간인들의 도움으로 신출귀몰하면서 영국군의 뚝배기를 까기 시작했고, 영국새끼들은 참 영국스런 해답을 내놓는다. 자꾸 그렇게 비겁하게 민간인들 뒤에 숨을 거임? 정정당당모름? 지구 역사에서 가장 쓰레기같은 놈들한테 듣고 싶은 소린 아닌데 ㅆㅂ 한 마디도 지질 않네. 생각해보니 민간인이 문제임. 민간인만 없으면 게릴라도 못하는데  뭐 민간인을 다 없애기라도 하게? 오또케 알았음? 영국식 정정당당함이란 이런 것이다. 게릴라전으로 골치가 터지니까 영국새끼들은 진짜로 민간인을 없애버리기로 한다. 어떻게 없애버렸냐고? 나치보다 150년 빨리 아우슈비츠를 만들어서 없앴다. 농담 아니고 진짜임. 세계최초의 인종 절멸 수용소는 나치가 아니라 영국이 만들었다. 보어인들은 단지 보어인이라는 이유로 총을 들고 있지 않아도 수용소로 끌려갔다. 수용소 안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은 영국제 총알 뿐이었다. 수만명의 보어인들이 선 채로 굶어뒤졌고 대부분이 아이들이었다. 이렇게 또 영국은 수만 명의 보어인들을 굶겨죽이면서 보어전쟁에서 추하게 승리를 거둔다. 뱅골 대기근 이번에는 2차대전 중의 일이다. 아직 인도가 영국 식민지였던 시절의 이야기다. 일본의 대공세로 인도에는 사방에서 난민이 쏟아져 들어오게 된다. 먹을 입들은 존나게 늘어나고 있는데 식량생산지역은 일본놈들이 다 처먹고 있었다. 필요량은 늘어나는데 공급량이 줄면 어떻게 된다? 굶는 사람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인도 그 넓은 땅에서 식량도 제대로 생산 못하냐는 의문이 들텐데 하필 이 시기에 자연재해가 존나 터지면서 농사가 흉년이 났다. 인도는 고심끝에 지금까지 신나게 자기를 삥뜯어왔던 영국에게 헬프를 치기로 한다. 그동안 삥뜯어왔으니까 이번엔 자기들이 좀 도움을 받아도 되지 않겠냐는 논리였는데 아무리 영국이 씨발새끼들이라도 사람이 굶어뒤져가면 돕지 않을까싶었던... 아. 결말은 뭐 말 안 해도 알 거라 생각한다. 영국아 우리 굶어뒤질 거 같은데 제발 좀 도와줘 아 진짜 내가 돕고 싶은데 내가 정말 진심으로 성심성의껏 돕고싶긴 한데 일본놈들이 너무 무서워 안 되겠음 ㅈㅅ 개소리야 ㅆㅂ아 일본군이랑 우리 굶어뒤지는게 뭔 상관인데 사실 지금 우리 먹을 식량도 없는데 인도인 니들까지 먹일 식량이 없다고 직접적으로 말해버리면 니가 상처입을 거 같았어 미친놈 인도로의 식량 지원을 거부한게 누구냐면 바로 그 자랑스러운 영국의 전쟁영웅 처칠 새끼 되시겠다. 참 영국적인 영웅이긴 하네. 아무튼 인도는 평소에 대영제국의 막대한 부를 지탱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나게 수탈당했지만 정작 본인들이 굶주릴 때는 아무것도 돌려받지 못하면서 수백만명이 또 굶어죽게 된다. 이쯤되면 영국 새끼들이야 말로 기근의 기사가 아닐까 싶다. [출처 - 디시인사이드 고질라맛스키틀즈]
[펌]냉혹한 2차대전의 꽐라 썰
군필들은 군대만큼 알콜이 절실한 동네도 없다는 걸 잘 알 것이다. 한 잔 빨고 선임 새끼 똥구멍에다 소주병을 쑤셔넣고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닐테니까 군대란 집단이 만들어진 순간부터 군대와 술은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최초의 거대문명 중 하나인 이집트 군대만 해도 병사들한테는 무조건 맥주와 유희왕 카드를 보급했을 정도다 생각해봐라 아무 생각없이 밭갈고 살던 농민들을 창칼 앞으로 닥돌시키려면 역시 술이랑 유희왕 카드만한게 없다 맥주 진탕 빨고 죽은자의 소생을 품에 넣고 있으면 닥돌하다 죽어도 왠지 묘지에서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거 같지 않냐 물론 못 돌아옴 고대 이집트 때는 죽은 자의 소생은 금지카드였대 단순히 술을 전투전에 리더십 버프용으로만 먹은 건 아닌게, 옛날에는 물 들고 다니는 것만 해도 보통일이 아니라 금방 썩기 일쑤였다 그리고 물 자체도 개같이 맛이 없는데다 세균도 득실거림 그에 비하면 술은 썩지도 않고 맛도 그럭저럭 있는 편인데다가 옛날 술은 농도가 진해서 칼로리도 제법 됐다. 짬밥이 개같이 맛없으면 걍 술에다 섞어먹어도 되고 팔 잘렸는데 소독제 없으면 급하게 술 들이부어도 된다 여러 모로 물보단 술 들고 다니는게 군대 입장에선 편했던 것이다 그래서 깡패 국가 로마 땅개들은 '포스카'라 불리는 물 탄 포도주를 처마시면서 알딸딸한 상태에서 유럽을 정복했고 몽골은 말젖을 짜다가 술을 담가먹고 꽐라가 된 상태로 유럽놈들을 조지고 다녔던 것이다 술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 이 시절 군대는 군대에서 이등병 영창을 보내는게 아니라 술 배급을 끊어서 처벌을 줬을 정도다 남들 맛난 맥주 마실 때 혼자 썩내나는 초록색 물 들이키는건 확실히 굉장히 개같았을거야 땅개는 그렇다치고 특히 해군에서 이런 형벌을 존나 잘 써먹었는데 왜냐면 해군들은 술 끊기면 미쳐 뒤질 지경까지 가기 때문이다 왜냐면 옛날 해군은 술을 하루에 250ml씩 꼬박꼬박 줄 정도로 술이 존나 중요했기 때문임 생각해봐 옛날 배는 존나 쫍아 냄새도 썩었어 놀 것도 없어 거기다 ㅅㅂ 음식까지 쓰레기야 바다 위에선 보통 이딴걸 처먹으라고 준다고 맨정신으로 못 처먹지 그래서 불쌍한 해군들은 하루종일 일과 끝나고 저녁에 나오는 술만 기다리게 된다 그거 말고는 할 것도 없었으니까 이렇게. 매일매일 꼬박꼬박 럼주가 250ml씩 나옴. 소주병 한병이 360ml 정도니까 매일매일 준다는걸 감안하면 생각보다 양이 제법 됨. 게다가 선상용 럼주는 독한 물건이라 물 타서 주는 거 감안하더라도 충분히 취할 정도는 된다 이렇게 대충 수천년 정도 군대와 술은 떨어지지 않는 사이였다 지금쯤 군필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왜 내가 짬밥 처먹을 땐 소주가 안 나왔을까 생각을 하고 있을 텐데 당연히 꽐라되서 선임 죽빵 갈길까봐 안 주는 거임 옛날엔 그럼 안 갈겼냐고? 물론 걔들이 죽빵 갈겼으니까 요즘 술이 안 나오는 거임 ㅇㅇ 하도 술처먹고 지들끼리 싸움질하다가 심지어 장교까지 쏴죽이는 진상짓이 많이 터지다보니 윗대가리들은 틈만 나면 술을 끊으려고 시도했고 2차대전 들어서면 슬슬 술 배급량이 존나 줄어들기 시작함 그리고 이런 사태에 가장 직격으로 피해를 입은 꽐라들은 잠수함꽐라들이었다 잠수함 생활은 진짜 할 게 못된다 존나게 좁아터진 곳에서 존나게 냄새나는 남정네들이랑 존나게 부대끼면서 존나게 할짓없이 시간을 보내는게 잠수함 생활임 이런 상황이니만큼 산소보다도 중요한게 알콜인데 그걸 끊어버리겠단다 미쳐돌아갈 지경이지 특히 쪽바리 때려잡으라고 태평양에 죽치고 있던 천조국 잠수함꽐라들이 제일 불만이 많았다 이것이 당신의 잭 다니엘입니다 뭐야 ㅆㅂ 돌려줘요 니들 꽐라됐다가 실수로 어뢰 터뜨리면 ㅈ돼잖아 싫어 안 줄 거임 뻐큐드샘 ㅆㅂㄴ 뭐 확실히 아무 이유없이 뺏어간건 아니긴 했다. 잠수함 그 쫍아터진 장소에서 꽐라가 득실대면 진짜 뭔 일이 터질지 모른다. 근대 그렇다고 꽐라들의 불만이 줄어드는건 아니었다. 특히 니들이 비싸고 잘나고 중요한 어뢰 터뜨릴까봐 못 준다는 이유가 개빡치는거였는데, 왜냐면 당시 미군이 쓰던 이 어뢰란 새끼가 비싼 건 몰라도 절대 잘나거나 중요한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2차대전때 미군이 쓰던 어뢰로 말할 것 같자면 이 새끼들이 쓸모있는 용도라곤 어뢰칸 채우는 용도가 전부였다 잘 안 나가고, 잘 안 맞고, 잘 안 터지는 그야말로 환장의 트리오를 모두 갖춘 어뢰계의 적폐였던 것이다 쪽바리도 아니고 미군에서 이런 일이 터졌다는게 잘 안 믿길 정도로 쓰레기 어뢰라 이거 개발한 새끼들 모가지가 죄다 날아가는 초대형 스캔들까지 터졌는데 뭐 그건 중요한게 아니고, 꽐라 얘기하다 갑자기 어뢰 얘기하는 이유가 따로 있다 이 새끼 연료가 알콜임 올ㅋ 알콜 특)마시면 취한다 당연한 원리를 잠수함 꽐라들이 모를 리가 없다. 물론 어뢰에 들어가는 알콜이 술에 들어가는 알콜이랑 같을 리는 없지. 아세톤도 듬뿍 들어가고 에탄올은 물론이고 먹으면 바로 좃되는 유독물질인 메탄올까지 존나게 처들어가서 색깔까지 시뻘건 일명 '핑크 레이디' 알콜이었음. 마시면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라 사전적인 의미로 시체가 된다. 당연하지만 잠수함꽐라들한테는 사소한 문제였다. 이리하여 꽐라가 되고 싶은 잠수함꽐라들이 어뢰 연료를 술로 바꾸려는 기상천외한 시도가 시작된다. 어차피 터지지도 않는 어뢰 뭐에 쓰냐 술이라도 담가먹어야지. 첫번째 단계는 핑크레이디 알콜을 쓱싹 쌔벼오는 것이다. 이건 쉬웠다. 잠수함 안에서는 어뢰 이마빡에 탈모가 올 때까지 어뢰를 닦아대는 거 말고는 할 일이 별로 없다. 어뢰 닦다가 슬쩍 눈치봐서 뚜껑 까고 연료 쌔벼오면 된다. 근데 이 뒤부터 살짝 까다롭다. 방금 적었지만 핑크레이디를 그대로 마시면 골로 간다. 여기서부터 친절한 후임들의 협조가 필요하다 "씹새야 씹새야 저녁식사가 중요하니 저녁술이 중요하니" "당빠 후자죠?" "야 너두? 그럼 저녁으로 나온 식빵 좀 내놔" "아니 씨빵 왜요 씨빵" 느닷없이 빵이 필요한 이유가 뭐냐면 빵을 존나게 뭉치면 이게 필터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핑크레이디에 들어있는 메탄올 아세톤과 알콜은 각자 융해도가 다르다. 즉 핑크레이디를 뭉친빵으로 존나게 거르고 거르고 또 거르다보면 언젠가는 순수한 알콜이 나온다는 거다 이 과정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씹새들의 식빵이 희생되었을까 아무튼 이제 알콜은 얻었으니 이걸 이제 마시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잠수함꽐라들은 그냥 취하기만 하는 걸로는 불만이 많았다. 뭐 마시는 느낌이라도 나야 술이라고 부르지 여기서 또 친절한 후임들의 협조가 필요해진다 다행스럽게도 당시 미군 잠수함에선 술은 안 나왔어도 맛스타는 나왔다. 대량생산된 파인애플 쥬스가 매일매일 보급이 나왔던 것이다. "씹새야 씹새야 저녁음료수가 중요할까 저녁술이 중요할까" "아 진짜 좀" 후임들의 친절한 협조로 맛스타를 얻어내는데 성공했다면 이제 핑크레이디를 걸러 얻은 알콜과 파인애플 맛스타를 2:3 비율로 섞어먹으면 된다 이게 2차대전을 풍미한 전설의 칵테일 어뢰쥬스다 막강한 도수, 그럭저럭 달콤한 맛, 뭣보다 공짜였다. 그야말로 꽐라들의 집념이 빚어낸 기적인 것이다...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는데 물론 아니지 "히끅 ㅆㅂ 눈이 안 보여 히끅" 빵 하나로 아세톤이나 메탄올을 걸러낼 수 있을 리가 없다. 어뢰주스를 마신 잠수함 꽐라들에게는 불행한 일이 닥쳐왔는데, 취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재수없으면 몸에서 경련이 일어나고, 독성이 위장을 녹여버리는 바람에 장출혈이 발생해서 말 그대로 피똥을 싸고, 그리고 제일 치명적인 메탄올 때문에 실명까지 겪게된다. 당연하지만 잠수함 꽐라들에게는 몹시 사소한 문제였다. 어뢰쥬스는 저 문제의 병신 어뢰가 몽땅 교체될 때까지 쭉 잠수함 내에서 신나게 유통된다. 잠수함마다 레시피가 달라서 나중에는 특산품 비스무리한 것까지 생겼다. 꽐라꽐라 [출처 - 디시인사이드 고질라맛스키틀즈] 매번 퍼오면서 느끼는 거지만 원글 작성자는 대체 뭐하는 사람인데 이렇게 많은 걸 다 알고 있는거지?? 그리고 왜 저기서 저런 글을 쓰는거지???
[펌] 19세기 미국을 방문한 일본 최초의 방미사절단의 반응
1860년, 미일수통상조약의 비준 및 교환을 위해 도쿠가와 막부는 일본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에 <공식사절단>을 보내게 됩니다. 막부는 이를 위해 네덜란드로부터 서양식 함선을 구매하여 <간린마루>라는 이름을 짓고 막부의 사절들은 여기에 승선하여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향하게 됩니다. 칸린마루호 동양국가의 정부관료들이 서양에 가보는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이 사절단의 일행으로는 후쿠자와 유키치도 포함되어 있었고일전에 소개해드린 가츠 가이슈도 있었습니다 (그는 진심으로 조선과 중국을 존중했던 인물이었죠)  물론 동양국가 중에서도 일본은 일찍이 서양국가들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이미 수집하고 있었고 체계적으로 정리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직접 서양에 가보는 것은 그들에게도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문명의 조우는 분명 엄청난 충격이었을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많은 양의 기록을 남겼는데요 그 중의 일부를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샌프란시스코 인터네셔널 호텔의 식사에 대해 "국(수프)은 느끼하고 안에는 간이 안 된 생선이 들어있다" "쌀은 일본쌀보다 하얗지만, 정말 맛이 없다" "고기는 짜고 약간의 야채와 하얀 콩이 곁들여져있다" "연어는 그냥 물에 끓인 것이다" "커피라는 차는 너무 쓰고 설탕 없이 먹기 힘들다" "식사는 물론 훌륭하게 준비되었고 미국에서 분명 엄청난 만찬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입맛에는 너무 맛이 없고 버터 때문에 너무 느끼했다. 하지만 우리는 배고픔을 참지 못해서 이것저것 조금씩 맛을 볼 수밖에 없었다" **필라델피아 호텔에서 "아..또 스테이크로다, 미국인들은 우리의 입맛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모양이다" 이에 따라 미국인들이 쌀밥을 준비했지만 버터와 같이 볶은 쌀이어서 사절단 일행은 이를 정중히 거절했답니다. 그래서 미국 측에서 다음날에는 설탕을 친 쌀밥을 준비했더니.. 사절단 일행이 일기에 기록하길 "우리는 쌀밥에 대한 모든 희망을 버렸다. 허기를 채우기 위해 빵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호텔룸에는 차가 준비되지 않았는데... "미국인들은 일본인이 녹차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지 못한다"라고 불평합니다.  이렇게 계속 궁시렁대기는 했지만 아이스크림은 정말 좋아했다고 합니다.  "여러 색으로 칠해진 얼음모양의 과자는 달고 맛있었다" 서양의 테이블 매너도 상당한 고역이었던 모양입니다. "대통령과 동석하는 식사에서 우리는 최대한 예의바른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연속적으로 나오는 접시 하나 하나 모두 낮설었고, 우리는 이를 어떻게 먹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옆에 앉아있던 아가씨들의 행동을 하나하나 따라할 수밖에 없었다.  식사가 끝날 무렵 각자 앞에 작은 물항아리가 놓여졌는데 대통령의 조카딸이 여기에 손을 적시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우리가 이를 봤을 때 는 너무 늦어버렸다. 우리의 비서 모리타가 항아리에 있던 물을 마셔버린 것이다! 오구리가 그의 옷소매를 잡아당기면서 눈치를 주자 그는 그제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뒤늦게 손을 적시는 시늉을 했다." 이어 그들은 무도회장에 초대되었는데 남녀가 뒤섞여 춤을 추는 모습은 정말 낮선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남자가 여자와 함께 방 여기저기 움직이면서 춤을 추는 모습을 보았다. 여인이 움직일 때마다스커트가 엄청 커지는 것을 보니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미국에서는 가난하건 부자이건, 젊은이건 늙은이건 모두 춤을 좋아한다고 한다. 무도회는 자정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이들에게 미국의 정치는 더욱 낮선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미국의 지도자는 왕이나 황제가 아니었고 일반인들이 선출한 또 다른 일반인이었으며 대통령궁은 그의 소유가 아니라 국가의 재산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의 의회는 더욱 더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이곳은 시끄럽고 난잡한 곳이었고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도무지 알기 힘든 곳이었습니다.  사절단이 기록하길 "이곳의 사람들은 큰 몸짓으로 연설을 하는데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보인다" "중요한 국가의 대사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것 같은데, 사람들이 서로 큰 소리로 이야기하고 부의장이란 사람이 연단에 서있는 것을 보니 마치 에도의 니혼바시 시장처럼 보인다" 가장 놀라운 것은 역시 최첨단 기술이었습니다. 그리고 19세기의 기술을 대표하는 물건은 당연 <기차>였습니다. 사절단은 기차를 처음 타면서 적지 않이 놀랐습니다. 바퀴 달린 쇠붙이가 엄청난 소리를 내면서 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달렸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기록하길 "열차는 8개의 차량이 이어진 것이었고 철로를 따라 움직였다. 점점 속도를 내자 실내는 크게 흔들렸으며 너무 시끄러워서 서로의 말을 잘 듣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들이 더욱 놀랐던 것은 열차의 운임이 개인당 24달러에 불과했다는 것이었고 무엇보다 이 엄청난 물건이 그들이 미국에 오기 8년 전에 <민간인>이 건설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인상적은 물건은 민간에 판매되는 <신문>이었습니다. 그들이 봤던 신문에는 일본의 간린마루가 소개되어 있었으며 일본의 사절단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사절단은 미국 신문에서 자기들을 어떻게 다루는지 무척 궁금해했으며 신문이라는 매체를 중요시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Roanoke라는 곳에 머물고 있었을 때 그들은 신문에서 일본에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 일어났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아마 당시의 대로(오늘로 치면 총리) 이이 나오스케의 암살 소식을 들은듯)... 사절단이 기록하길 "10,000 마일이 넘게 멀리 떨어진 곳의 소식이 불과 40일만에 신문에 기사화된다는 것이 자못 놀랍다" 또한 그들이 워싱턴에 왔을 때 그들 주변에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수첩에 메모를 적는 것을 보았는데, 사절단이 저들은 뭐하는 사람들이냐고 물어보자, 저 사람들은 신문사를 위해 일하는 기자들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들이 저렇게 바쁘게 메모하는 이유는 최대한 빨리 기사를 내기 위함이라는 말과 함께 말이죠.  목욕시설도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꼭지를 돌리는 것만으로 물이 쏟아졌고, 왼쪽으로 또는 오른쪽으로 꼭지를 돌리는 것만으로 온수와 냉수를 바로 쓸 수 있었습니다. 또한 시내의 가스등은 밤에도 도시를 환하게 비추었고 미국과 영국처럼 멀리 떨어져있는 곳 또한 '전신'으로 이어져 있어 실시간으로 통신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놀라움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군사력의 실체는 그들을 실망시켰습니다. 그들은 대부분의 요새들이 그저 장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쉽게 깨달았고 또한 군대의 숫자가 부족하다는 것도 제빨리 파악했습니다. 사절단이 기록하길 "Roanoke, Pawhatan, Niagara는 모두 거대한 군함이며 미국인들이 자랑스러워한다. 하지만 이 군함들에는 진짜 군인이 12~13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항해사와 노동자에 불과하다. 우리는 미국을 무척 두려워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총과 대포를 운용할줄 아는 이들은 매우 적었다. 왜냐하면 미국은 군인을 쉽게 고용하고 또 해고하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무사들의 용맹과 충성심으로 미국을 완전히 파멸시킬 수도 있겠다고 은밀히 생각했다" 그들은 또 뉴욕에서 군인 8,000 명의 행진을 구경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코멘트를 남겼습니다. "기병대는 모두 직업군인이지만, 나머지 보병은 모두 며칠밖에 복무하지 않는 상인들에 불과하다" "미국의 군사력은 '실속'이 없다" 무사계급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평민들이 돈을 받고 군대에서 일하는 게 어이없고 허술해보였다는 말입니다.  무사계급과 평민의 신분이 구분되던 막부체제의 관료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죠.  하지만 이렇게 비아냥대면서도 미국의 항구에서 조선소를 방문하고 나서는 입이 쫙 벌어졌다고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서양인들이 여인을 대하는 모습이 이들에게 너무 어색했습니다. "미국인들은 여자를 마치 우리가 부모를 모시듯 섬긴다" "방 안에 남녀가 같이 있을 때 방에 들어오는 자는 여자에게 먼저 인사를 건내고 그 후 나머지 남성들에게 인사한다" "남자는 여자에게 인사할 때 모자를 벗어야 하지만, 여자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길을 걸을 때는 남자가 여자를 위해 길을 비켜주어야 한다" 한 관리의 집에 초대받았을 때는 "가장이 우리를 접대하기 위해 하인들과 같이 분주히 움직일 때 그의 아내는 우리와 함께 방에 머물면서 우리와 담소를 나눴다. 마치 그녀가 가장인듯했다" 사절단은 미국 여인들에 대한 품평도 남겼는데... "미국 여인들은 매우 하얗고 아름다운 옷으로 치장했지만, 그녀들의 머리색은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마치 강아지의 눈색과도 같다" 하지만 흑발의 백인에 대해서는 "백인여인들은 매력적이고 아름답다. 마치 일본인형처럼 생겼다"고 기록했습니다. 미국 대통령의 조카 엘렌이 사절단의 부대사에게 일본여인에 비해 미국여인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을 때 그는 "미국여인들이 더 아름답다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여인들의 피부가 더 희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진짜 그렇게 생각했던건지 아니면 대통령의 조카가 물어보니까 립서비스한건지는 본인이 알겠지만 ~~~~)  다른 사절단이 기록하길 "미국여인들은 가슴을 가리는 데 특별히 신경을 쓴다. 아기에게 모유를 먹일 때에도 천으로 가슴을 가린다" (당시 일본은 어머니가 아기 모유를 먹일 때 가슴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아무튼 이렇게 미국을 여행한 최초의 일본인들은 정말 큰 충격을 받고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돌아갔을 때 총리에 해당하는 대로(大老) 이이 나오스케는 암살되었고 정국의 분위기는 서양을 몰아내고 천황의 존엄을 지키자는 존왕양이파가 주도하게 되었습니다 (근데 역설적으로 나중에 이들이 근대화를 추진한다는 게 함정...) 하지만 이들의 폭넓은 경험은 후일 일본의 개화에 큰 영향을 남겼습니다.  무엇보다 정부관료들과 사회의 엘리트들이 직접 보고 체험한 것이라, 그 영향은 당연 적을 수 없었겠죠.  아무튼 흥미로운 일화입니다.  훗날 조선도 미국에 방미사절단을 보내는데 뉴욕의 현대화된 도시를 보고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았다고함 
[펌] 냉혹한 2차대전의 일본도 여고생
앞에 결전이나 최종이나 비밀 들어가는 병기의 공통점이 있다면 만든 새끼들이 전부 ㅄ이라는 거다 왜 최종결전비밀병기가 ㅄ들이 만드냐면 이딴걸 만든다는 것 자체가 이미 정상적인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없단 뜻이기 대문이다. 물량 맞춰서 정상적으로 싸우는 대신 소수의 개간지나는 사기유닛을 뽑아서 날로 이겨먹어보려는 초딩발상인 거다. 전쟁 잘하는 놈들은 이딴 거 만들 시간에 성능 보증된 양산품 이빠이 뽑아다가 물량으로 밀어버리기 마련이다. 물론 돈도 없고 인력도 없는 나치들은 그럴 여유가 없으니까 대전말기로 갈수록 미사일이니 비행접시니 쥐새끼 같은 거나 개발하는 삽질을 하다가 처절하게 목 따이고 패배한 거다. 어떻게보면 망해가는 악당들의 전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나치 친구인 일본도 태평양 너머에서 몰려오는 지옥의 양키들을 막기 위한 비장의 최종병기를 양산한다 바로 일본도로 무장한 여고생들이었다 진짜로 이 새끼들은 미군을 상대로 근딜세팅 맞춘 여고생들을 내보낼려고 그랬다. 이 새끼들 현실감각은 2010년대나 1940년대나 똑같이 만화스럽다. 물론 처음부터 일본도 여고생들을 주력병기로 내보낸 건 아니었다. 처음에야 그럴듯한 함대가 있었으니까 그걸로 싸웠지 위풍당당한 대일본제국함대 (였던 것) 뭐 있을 때는 그랬다는 얘기고 아메리끼들은 무자비하게 일본 함대를 발라버렸고 이제 일본 본토 공격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기세등등하게 선빵까지 갈겨놓고 개발리다 이제 본진까지 미제 텍사스 친구들이 들어오게 생기자 일본 친구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거 같냐 정상적인 놈들이라면 빤스를 벗고 알몸으로 대굴대굴 구르면서 항복선언을 외쳤겠지만 이 새끼들은 정상이 아니다 일본 새끼들은 차라리 나치들이 현실적으로 보일 정도로 황당한 신무기들을 개발하기 시작한다 "본인 방금 양키 막아내는 상상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선 태평양에서 철갑탄 쏘던 김셔먼ㅋㅋㅋㅋㅋㅋㅋ 레이저포로 뚫어버리고 쾌속진격ㅋㅋㅋㅋㅋㅋㅋ폭격 초전파로 막아버리고 100톤 전차ㅋㅋㅋㅋㅋㅋ"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이 새끼들은 존나 진지하게 레이저포랑 초전파병기랑 초중전차를 연구했는데, 레이저포는 '쿠-고', 초전파병기는 '카-호'라는 구린 프로젝트명이 붙어있었다. 초중전차의 경우에는 마우스탱크랑 덩치가 삐까뜰 정도였다. 이게 그냥 설계도 수준에서 그친게 아니라 무려 일본 육군과학연구소와 그 산하 10개나 되는 연구소들이 야심차게 추진하던 계획이다. 강-력한 레이저 쿠고로는 탱크를 조지고 전파병기 카호로는 폭격기를 구워버린다는 발상이었다. 실현됐냐고? 됐겠냐? 현대기술로도 어처구니없게 들리는데 2차머전 최대미개국 일본이 이런 건담에나 달 법한 무기를 개발하는 건 불가능했다. 쿠-고는 쥐새끼나 태워죽이는 화력이 한계였고 카-호는 전력을 워낙 처먹어서 아예 만들지도 못했다. 100톤 전차 같은 경우에는 말하기도 쪽팔릴 정돈데 바퀴를 달았는데 앞으로 나가질 못했다. 병신... "아직 안 끝났음ㅋㅋㅋㅋㅋㅋ 풍선폭탄 발진 ㅋㅋㅋㅋㅋㅋㅋ 일단 태평양 넘어서 도시마다 소이탄 폭격 타주고 ㅋㅋㅋㅋㅋㅋ 양키들 미안하다고 하지만 이미 늦었음 ㅋㅋㅋㅋㅋ 양키들 빤스런하는데 소이탄 1초마다 숭펑숭펑!!ㅋㅋㅋㅋㅋㅋ" 그나마 실전투입에 성공한 비밀병기가 하나 있긴 한데 그게 참 없어보이는 풍선폭탄이다. "겨울에는 바람이 미국쪽으로 부니까 일본에서 풍선에 소이탄 달아 날리면 미국 좃되겠지?"라는 저렴한 발상으로 개발한 물건이다. 이딴 ㅄ같은걸 9,000개나 만들어서 날렸는데 미국까지 도달한건 딱 1,000개, 그 중에서 실제로 효과를 본 건 딱 하나였다. 우연찮게 소풍 나왔다가 이거에 맞아죽은 양키가 딱 6명 있었다. 그나마 민간인이다. 폭탄 9000개에 민간인 6명. 한 명 죽이는데 1500개 쓴 샘이다. 당연하지만 이딴 걸 만들면서 안 그래도 부족한 자원 낭비하는 동안 미국은 일본군을 갈아마시면서 일본 코앞까지 온 상태였다. 과장이 아니라 이젠 하루에 하나씩 일본의 도시들이 지워지고 있었다. 이미 망한 상태라 더이상 망할 거 같지도 않았지만 폭격만으로도 이렇게 좃된 상황인데 육군이 상륙하면 어떻게 될 거 같음? 개똥줄이 탄 일본군이 똥꼬를 움켜쥐고 있을 때 상남자는 노빠꾸를 외치며 일어선 놈이 있었다. 병신 중의 최고봉이 마침내 납시셨다. 일명 '죽창대장군'이라 불리던 아라키 시다오가 바로 그 분 되시겠다. “죽창 3백만 개만 있으면 열강의 침략 따윈 두려워 할 것이 없다(竹槍 三百万本あれば 列強恐るるに足らず)” 아라키 시다오가 1933년부터 줄창 주장한 개소린데 이건 개소리라고 칭하는건 개한테 미안할 정도다. 1830년에도 안 먹힐 소리가 1933년에 튀어나왔다. 이 개소리의 근거라는게 바로 사이오닉 에너지였는데 농담 아니다. 시다오는 물질적인 전력은 부차적인거고 정신력이 본질이니 죽창으로 대표되는 근접무기에다 정신력으로 찔러박으면 탱크도 뚫을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었다. 구라 아니냐고? '죽창으로 어떻게 폭격기를 잡아 병신들임?'이라고 지적한 마이니치 신문기자가 괘씸죄로 최전선으로 끌려가서 뒤진 거 보면 절대 구라 아니다. 얘네 존나 진지했음. 이리하여 죽창으로 폭격기를 요격하는 자랑스런 대일본제국의 싸이오닉 죽창부대가 결성되니 그 이름하여 국민의용 전투부대 되시겠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여고생부대 탄생이었다. 그 자랑스런 전투계획이란 다음과 같았다. 1억명의 일본 국민 전체를 근딜 돌격대로 무장시키겠단 소리였다. 물리공격은 기본적으로 보조공격이고 일본은 싸이오닉에너지가 주력이니 무기는 뭐가되도 상관없다. 그러니 싸이오닉 에너지를 담기에 가장 적합한 근딜, 그중에서도 일본도의 생산을 늘려야 한다 사소한 문제가 있었는데 그 일본도라는 게 대부분 전쟁터에서 소모되어서 민간에선 이젠 식칼도 구경하기 힘들어졌다는 거다. 갓본도가 부족해도 상관없다 중요한건 싸이오닉에너지이므로 정신력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니 전국에 널린 대나무로 공짜로 만들 수 있는 죽창도 생산한다. 문제는 죽창도 부족했다. 왜냐면 일본 해군은 전쟁 중반부터 고무가 다 떨어져서 구명용튜브 대신 큼직한 대나무를 대신 지급했는데, 일본 해군이 하도 많이 죽어나가느라 전국의 대나무도 그만큼 베여나갔고 결국 대나무밭이 싸그리 말라버렸기 때문이다. 아무튼 무기가 마련되었다면 갓본도 여고생들에게 훈련을 실시한다 '국민 항전 필휴'라는 소책자를 보고 검성으로 거듭난 갓본도 여고생에게 양키는 추풍낙엽처럼 떨어질 것이 틀림없다. 더러운 양키 놈들에게 배풀어줄 정정당당함 따위는 없기 때문에 국민 항전 필휴의 내용 대부분은 꼬추를 가격하는 약점 타격과 뒤에서 공격하는 닌자 기습으로 이루어진 나루토 책이었다. 이리하여 수백만 명이 넘는 여고생은 물론이요, 남고생을 비롯한 애들, 몸빼바지를 입은 아줌마와 할배할매들로 구성된 국민의용대가 무시무시한 위용을 드러내며 전국토를 지키게 된다. 물론 근딜을 보조하는 원딜도 충실히 지급됐다 건물 옥상마다 정신력을 담아 쏘는 싸이오닉 투석기까지 배치됐거든 와 정말 무섭다 일본도여고생과 싸이오닉 투석기라니 이거 완전 무적 아니냐? 일본군은 기세등등해져 외쳤다. 와바랏! 어이 왔다구 1945년 일본은 무조건 항복한다. 갓본도 여고생은 만화에서나 강한 걸로 결론났다. [출처 - 디시인사이드 고질라맛스키틀즈]
[펌] 냉혹한 소련의 가자미 썰
소련 땅에 아랄해라는 바다가 있었음 정확히는 호수지만 뭐 아무튼 바다라는 이름이 클 정도로 존나 큼. 물도 짜고. 근데 짤 보면 알겠지만 개 빠른 속도로 말라가는 중임 왜냐면 빨갱이 쏘련놈들이 목화 키운다고 댐을 지어서 물유입을 막아버렸거든 바다에 소금은 그대론데 물만 마른다고 생각해봐 ㅈ되는 건 당연하겠지? 염도가 엄청나게 높아지자 물고기들이 다 뒈져버림 그리고 당연히 아랄 해에서 물고기 낚아서 먹고 살던 어부들도 때죽음을 당하기 시작했음 아 ㅆㅃ 어떡하지 솔직히 지들 책임이라 모르쇠할 수도 없어서 쏘련놈들이 대책을 강구함. 근데 그 대책이란게 참 공산주의스러웠다. '물고기가 뒤진게 문제니까 물고기를 더 넣죠?' '님 천재임?' 디스 이스 코뮤니즘. 진짜 빡대가리같은 발상이었다 염도가 높아져서 물고기가 뒤지는게 문제인데 염도를 낮출 생각을 해야지 거기 물고기를 더 넣다니 진짜 헬소련스런 해결방식이다 환경을 개선하고 물고기를 풀어야지 그냥 대책없이 물고기를 비행기로 날라서 호수에 그대로 처박으니 당연히 물고기들이 살아서 번식하긴 커녕 전부 뒤져나갔다 아랄 해의 식량생산이 개선되긴 커녕 물고기 시체가 바글바글 썩어가면서 오히려 상황이 악화됐다 돈낭비 환경낭비 인명낭비 그 자체였다 그런데 여기서 예상 외의 사태가 벌어진다 온 사방이 썩어가는 시체로 가득하고 물은 짜고 오염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상황에서도 유입된 쏘-련 가자미가 쌩쌩하게 살아서 번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공산주의 파워인지 뭔지 하여튼 빨갱이 가자미는 강인했다. 아랄해의 오염이 나아지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바다에 다시 물고기가 돌아다니게 만드는데는 성공한 것이다. 이걸로 뽤괭이 친구들은 더 이상 어부들이 굶어죽는 일은 없겠지 싶었다. 근데 또 문제가 생겼다. 어부들이 가자미 먹는 것을 거부한 것이다 왜? 당시 소련은 심심하면 핵실험을 할 정도로 핵에 미쳐있는 친구들이었다 그리고 가자미 면상 꼬라지를 보자 원래 아랄해에는 가자미가 안 살았다. 근데 난데없이 다들 뒤져나가기 바쁜 헬지옥 난이도 바다에서 유일하게 쌩쌩한 물고기가 이렇게 생겨먹었다 눈깔 두 개가 얼굴 한 쪽에 몰려있는 흉악스런 생김새. 이걸 본 어부들 입장에서 도무지 의심을 안 할래야 안 할수가 없었다 이윽고 합리적 의심이 떠돌기 시작한다 아 정부 새끼들 방사능 오염된 물고기 우리한테 짬처리 시킨 거 아니냐? 이거 체르노빌 출신이라던데? 이 새끼들 우리한테 방사능 처먹이고 결과 관찰하려는거 아님? 솔직히 어부를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자미가 바닥에 누워 사느라 저렇게 진화한거긴 하지만 모르는 사람 눈깔에는 영락없는 돌연변이잖아 소련 친구들은 열심히 어부들한테 이거 멀쩡한 물고기라고 해명을 했지만 아무도 안 믿었다 결국 아랄해 가자미를 어부들이 먹게 하려고 소련인이 아니라 덴마크인이 와야 했다 덴마크 사람들이 가자미 요리법까지 가르쳐주고 자기가 직접 먹은 후에야 아랄 어부들은 가자미를 낚아올리기 시작했다 근데 신기한게 인간의 이 개짓거리에도 불구하고 아랄해는 어떻게 복구는 되고 있다 자연은 참 위대하네 [출처 - 디시인사이드 고질라맛스키틀즈] 여담으로 저렇게 댐을 지어서 짓겟다던 목화 농사는 말라가는 아랄해에서 불어온 소금황사때문에 다 조졌다고 합니다. 결말까지 완벽...
[펌] 냉혹한 세종대왕의 수박썰
세종이 즉위하고 5년차 찍었을 시절의 이야기 고기 먹고싶다 세종님 존나 큰일 났음 고기도둑이라도 들어왔음? 아니 고기는 아니고 수박도둑임 내시 새끼가 수박 한 통 훔치다가 들켰음 내가 들키다니 세종 5년 한문직이라는 이름의 내시가 궁궐에서 수박 한 통을 훔쳐먹다가 들킨 사건이 터진 것이다 허허 씨발 그래도 고기는 아니네 고기도둑이었으면 모가지 날렸을 건데 수박이라 내가 봐줌 아싸 대신 병신을 만들어주마 참고로 사극 등에서 존나 만만하게 나와서 그렇지 곤장은 보통 10대만 맞아도 곤죽되기 십상인 하드코어한 형벌이라 한 번에 30대 이상 못 때리는게 원칙이다 근데 이 수박도둑은 무려 곤장 100대를 선고받는다 그냥 맞다 뒤지라는 소릴 한 거다 그런데 세종의 분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백병원은 어디요 백병원 몸에 해로우니 푹 쉬세요 귀양지에서 100대 풀스윙을 견디고 간신히 살아남았더니 이번에는 귀양지 중에서도 존나 불지옥으로 유명한 영해로 귀양까지 보내버렸다 수박 한 통에 꼬추까지 포기해가며 들어온 궁궐 라이프가 완전히 끝장난 것이다 근데 솔직히 세종이 개빡칠만한 것도 한게, 일단 먹는 거 좋아하는 대왕인걸 둘째치고 일단 궁궐 물품 절도죄인데다가 뭣보다 수박이 엄청난 존재였다 조선시대 수박은 사치품 중의 사치품이었는데 수박 한 통이 쌀 다섯말, 즉 쌀 반 가마니였다 뭔소리냐면 수박 하나면 쌀 40kg이고 오늘날 돈으로 10만원이 훨씬 넘는단 소리다. 요즘도 10만원짜리 과일 하면 손 떨려서 못 먹는데 조선시대다. 임금 아니면 맘대로 못먹는다. 세종이 개빡칠만하다 불행히도 세종의 수박을 건드렸다 개작살난건 이 한 명이 아니었다. 7년이 지난 뒤인 세종 12년의 이야기다. 고기 먹고싶다 세종님 또 존나 큰일 났음 고기는 아니지? 또 수박임 휴 다행 내가 또 들키다니 이번에도 범인은 내시였다. 소근동이라는 이름의 내시는 궁궐 창고를 관리하는 작자였는데, 7년 전에 있었던 선배의 소문을 듣지 못한 것인지 또 세종의 수박을 건드린 것이다. 전례가 있어서 그런지 세종이 판결을 내리기도 전에 형조가 칼을 휘두르기 시작한다 세종님 이 새끼 대갈통은 깍둑썰기로 드릴까요 채썰기로 드릴까요 아니 수박 한 통 훔쳤다고 왜 대가리를 짜른다고 지랄임 처음 한 새끼보다 알고도 저지른 두 번째 새끼가 더 질 나빠 그리고 물건 관리하라는 새끼가 물건 훔치는 것도 존나 괘씸해 그런데 7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좀 유해진 것인지 왠일로 세종이 범인을 변호하고 나선다 야 암만 그래도 머갈통 짜르는건 좀 아니다야 불쌍하지도 않니 아니 7년 전에는 수박 도둑 새끼 궁댕이를 아주 뭉개놨더만 왜 이제와서 그래도 머갈통 짜르는 건 좀 그래 연산군 새끼도 아니고 꼭 궁궐에서 피를 봐야하니 내 집에선 육즙말고 다른 고기즙은 보기싫어 그럼 모가지짜르는 거에서 좀 딜해서 죽도록 줘패고 인증마크 찍는 걸로 합의하죠? 줘패는 건 그렇다치고 인증마크는 뭐임 (이마빡에 도둑이라고 타투를 알차게 찍어주겠단 뜻) 불알도 포기했는데 사회 이미지도 포기하게 생긴 소근동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때 세종이 또 끼어든다. 야 잠깐만 얘들아 이것 좀 봐 이 등신새끼 훔친 수박 좀 봐라 이거 푹 썩어서 냄새나는데? 이건 수박도 아니야 걍 음식물쓰레기지 수박 훔친 거면 어쩔 수 없는데 등신같이 음식물 쓰레기 훔치다 걸린걸로 타투 찍는건 좀 그렇지않냐? 기록을 면밀하게 살피는 일중독 세종답게 수박이 썩어있었다는 정보까지 놓치지 않은 것이다. 세종은 이걸 근거로 면상타투형은 면해주라고 명한 것이다. 엌ㅋㅋㅋㅋㅋ역시 세종대왕ㅋㅋㅋㅋㅋㅋ엌ㅋㅋㅋㅋㅋㅋ 근데 물론 빠따는 때릴 거임 80대면 엉덩이가 곤죽까지는 안 가고 팥죽 정도만 될 거다 그렇게 소근동은 곤장 80대를 처맞고 병신이 되는 선에서 간신히 끝났다 그래도 고기였으면 능지처참이었을 거임 수박이면 어쩔 수 없지 [출처 : 디시인사이드 고질라맛스키틀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