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에 코르셋이 있었다면, 중국 여성들에게 존재했던 미의 상징 `전족`
요즘 페미니즘의 상징으로 서양의 '코르셋'이 이야기되길래, 약 1000년 이상 지속되었던 중국 여성들의 미의 상징, '전족'에 대해 소개하려구 해 전족이란? 10세기부터 20세기까지 거의 1000년 동안 중국 여성들에게 지속되어온 풍습으로, 여성의 발을 인위적으로 묶어 저렇게 작게 만드는 거야 이렇게 전족으로 만들어진 작은 발은 미녀의 조건이었고, 큰 발은 추녀의 대명사로 결혼에도 불리했어. 또 결혼을 하면 사람들이 신혼의 침실을 엿보고서는 여성의 발에 대해 품평했고, 시댁에선 발이 크면 며느리를 구박하는 구실로 삼았다고 해. 따라서 전족을 하지 않은 큰 발은 일족의 수치로 여겨졌고 결국 자살로 이어지는 심각한 경우도 있었어. 이 때, '작은 발'이란 얼만한 사이즈를 말하는 걸까? 이상적이고 가장 아름답게 여겨진 발 (세로)길이가 약 7.5~10cm 였다고 해 현대 여성들 발의 절반보다도 작다는 얘기지... (사진주의) 이렇게 작은 발을 만들기 위한 작업은 뼈가 아직 굳지 않은 3, 4세부터 시작됐다고 해. 엄지발가락을 뺀 나머지 발가락을 발 안으로 구부려서 천으로 감은 후 작은 신발을 신기고, 7, 8세가 되면 발등뼈를 탈골시켜 활처럼 구부린 채로 꽁꽁 묶어서 발 자체를 하이힐 모양으로 변형시키는 거지. 그러면 발뒤꿈치부터 발가락까지의 길이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대... (눕혀서 찍은 거 아님.. 까치발 든 것도 아님...) 당연히 고통은 말할 것도 없이 심했고, 열이 나고 마비가 돼서 감각이 없어질 때까지 참고 견뎌야 했어. 잘 때에도 붕대를 감아두기 때문에 비위생적이었고, 무엇보다도 걸어다니는 게 거의 불가능 했지. 전족을 경험했던 89세 할머니의 체험담 할머니의 모친은 우선 발허리가 솟아오르도록 발 밑에 직포기에 달린 사통을 넣고 발을 칭칭 감은 후 억지로 걷게 했다. 천천히 발허리가 부러지고 할머니는 근 한 달을 걸을 수 없었다. 다음으론 발이 썩는 것이 순서였지만 할머니의 발은 좀처럼 썩지 않았다. 그러자 그의 어머니는 깨진 접시 조각을 발바닥과 발허리 등 곳곳에 넣고 천으로 꽁꽁 동여맨 후, 발에 작은 신을 밀어넣고 걷게 했다. 접시 조각이 발을 파고들어 피가 전족 밖으로 흘러나올 정도였고, 발은 검게 썩어 들어가며 악취를 풍겼다. 정신을 잃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고 회상하는 할머니는 당시의 악몽이 되살아난 듯 눈시울을 붉혔다. 당시 심지어 살아있는 벌레 십 여 마리를 전족 속에 넣기도 했다고.. 살을 물고 파고들던 벌레들이 죽고 벌레 사체와 접시조각, 피고름이 한데 뒤섞여 발에서는 엄청난 악취를 풍겼다. 그의 어머니가 하루 한 번씩 피를 닦아주었는데, 할머니는 자신의 발을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전족은 이처럼 발의 성장을 멈추고 살을 썩게 만들어 작은 발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이런 비인간적인 풍습이 언제까지 유지되었을까? 1950년대가 되어서야 겨우 폐지할 수 있었어. 고작 60년 전... 19세기 말-20세기 초, 전족에 대한 비판이 많이 등장했지만 1930년대에도 여전히 많은 문인들, 일반인들이 전족의 아름다움을 찬양했어. 1906년, 도쿄로 유학을 간 저우쭤신(루쉰의 동생)은 일본에서의 첫날 가장 신기하고 특이한 것을 자기가 묵고 있던 하숙집에서 여성이 "맨발로 집안을 걸어 다니는 것"이라고 할 정도였어. 그렇다면 여성들은 이렇게 고통스럽고 억압적인 전족을 무슨 생각으로 했을까? 과연 전족이 100% 여성들에게 강요된 것이었을까? 1) 20세기 초에 태어난 어떤 여성은, 아버지가 전족을 비판하여 전족을 풀라고 하자 "나는 방족(전족을 하지 않는 것)을 하고 싶지 않았다. 세치의 금련(전족)은 천족보다 아름답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라고 생각해 거부했다는 기록을 남겼어. 2) 또 19세기 중반에 일어난 태평천국운동에서는, 그들의 이념상 전족을 반대해서 마을에 전족을 한 여성들이 있으면 방족(전족을 하지 않는 것)을 하도록 했는데 여성들이 이를 수치스럽게 여겨 자살하기까지 했다고 해... 3) 전족 폐지가 결정될 즈음에는 다퉁이란 지역에서, 전족 존속을 주장하는 여성들의 청원 운동까지 일어났지. 결국 이 잔인하고 기이한 풍습에 여성들의 자발적 동참이 있었다는 거지... 아마 이 때의 여성들은 강요되어진 미의식에 길들여져 그것을 '자기 만족'이라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런데 이 전족이 그냥 옛날옛적에 있었던 일일 뿐일까... 현대사회에서 여성들에게 '아름다움'이라는 이름으로 요구되는 것들은? 하이힐, 화장, 성형, 브라자 등등은 이것과 다를까? 우리는 왜 발이 아프고 때론 발이 변형되면서 하이힐을 신고 뼈를 깎고 살을 째며 과도한 성형수술을 하고 건강을 해쳐가면서도 무리한 다이어트를 할까? 우리가 자기만족이라고 생각하며 하는 것들은 정말 자기만족일까? 여성에게 아름다움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가 이걸 '자기만족'이라고 생각하게끔 만든 것은 아닐까? 몇 십년 혹은 몇 백년 후, 우리 자손들은 연예인들의 무리한 다이어트 식단 기사를 보면서 저 하이힐을 신은 무대 사진을 보면서 야만적이라 생각하지 않을까? 참고문헌 : 사카모토 히로코, <발에 관한 담론>, <<중국 민족주의의 신화>> 출처 : 쭉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