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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자 어떤 땅에서든



지난 주말 형의 결혼식이 있어 프랑스에 온 지 2주 만에 서울에 다녀왔다. 낯선 땅에 더구나 집도 아닌 숙소에 엠마를 혼자 두고 가는 일이 마음에 걸리고 티켓을 끊을 때만 해도 집을 구할지 어떨지 확신이 없어서 최대한 서울에 머무르는 시간을 줄였다.

금요일 밤에 사를 드골 공항에서 출발해서 토요일 밤에 인천 공항에 도착하고 다시 월요일 새벽에 인천 공항에서 출발하여 월요일 저녁에 사들 드골로 돌아오는 그야말로 미친 일정이었다. 그 덕에 나는 4일 동안 서 있는 시간보다 앉아 있는 시간이 더 길었고 근육이 약해진 때에 입주 청소까지 하느라 종아리 근육이 상해버렸다.

무엇이든 혼자서 애써 보는 게 우리 집안의 고집이고 그래서 뭐든 결국은 느리게 되어 버리는 형과 나는 서로 함께 사는 동안은 고장 난 시계를 걸고 살아 애타는 마음만은 죽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형이 뒤늦게 갑작스레 결혼을 한다니 늦은 오후에 잠에서 깬 듯 기분이 이상했다.

높은 구두를 신고 ‘신랑 입장’을 하는 형의 모습을 아슬하게 바라보면서 사람이라는 포물선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저 바보처럼 떨어지고 마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중력 안 있는 것들이 멀리 날아가기 위해서는 결국 떨어지는 일은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거였다. 사람이라는 평범한 신체 속에 우주 같은 마음을 담고 오르다가 결국은 떨어지면서 붙잡은 기록을 넘겨주고 가는 일인걸.

형은 애써왔고 나는 그래서 이제는 형이 떨어지면서 결정해가는 기록에 기꺼이 박수를 쳐 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나는 요즘 낯선 곳이라 그런지 밤마다 꿈을 자주 꾼다.

형의 결혼식을 위해 파리를 떠나기 전날 아버지가 도둑질을 하는 꿈을 꿨다.

아버지는 누군가의 집에서 값진 물건을 발견하고는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들고 일어서다 주인과 눈이 마주치자 별 다른 핑계도 둘러대지 못하고 그 값진 것을 제자리에 놓아두고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왔다. 바보 같았다며 분해하던 그는 이번엔 꼭 그 값진 것을 들고 나오겠다며 엄마와 형 나까지 데리고 그 집 앞으로 갔다. 나쁜 일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그는 지나가는 개와 고양이에게서도 시선을 피하며 반나절을 넘게 우리를 더 많이 바라보며 시간을 죽였다.

마침내 그 값진 물건 앞에 서게 된 그는 꿈에서도 바보인지라 괜한 생각들을 이어가며 괴로워만 할 뿐이었다. 나와 형과 엄마는 더 주린 배를 안고 그를 기다리고 서 있었지만 그는 우리의 생각보다 더 무거운 자신의 생각들을 결코 죽이지 못했다. 우리는 결국 빈손을 얇은 주머니에 찔러 넣고 적당히씩 떨어진 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 밤 등을 돌린 아버지 나는 서로 다른 생각을 했겠지만 낯선 곳에서 잠이 깬 나는 온통 그의 마음속에 있는 것 같았다.

싫은 곳에 굳이 가고 싫은 일이라도 하려고 했었구나. 불쌍한 사람.

아버지의 싸움들. 자신의 우주와 굶주리는 욕심이 많은 우리들 사이에서 무엇하나 잘하지 못하며 휘청거렸던 그의 70년.
나는 이젠 그런 아버지의 등을 귀엽게 바라 봐주겠다.

자주 싫은 곳에 가고 자주 싫은 일을 하려 마음을 먹긴 했겠구나.
4일간의 일정이라 큰 가방도 없는데 굳이 리무진 버스를 태워주겠다며 엄마와 아빠가 함께 새벽 골목을 따라 내려오셨다. 버스가 올 시간이 되어가자 난 미리 인사를 하려고 아버지 손을 잡았다. 아버지는 버스가 오도록 그 손을 놓지 않으셨다.

따뜻하고 큰 손. 돌아가는 비행기, 잠도 오지 않아 죄와 벌을 읽다가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와 메모를 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에게는 어디든 갈 수 있는 곳이 한 군데라도 필요한 거니까요…….”

돌아갈 곳이 있어 나는 기꺼이 떨어지는 일을 기다린다.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싸움들을 피할 수는 없겠지.. 나는 때로는 엠마에게 어리광을 부린다. ‘대단한 예술가가 되려고 했었는데 나를 봐봐’라는 듯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부빈다. “하자.”라는 말을 듣고 나는 마음을 놓는다.

끝까지 흔들릴 수라도 있길.

아버지가 우리를 위해 그 값진 것을 가져오지 않는 것이 나는 정말 고맙다. 막내가 바보라고 놀리는 그의 지금 모습이 나는 고맙다.

붉게 빛나는 사를 드골 공항에 건조해진 비행기가 낙엽처럼 내렸다. 내내 먹통이던 핸드폰을 켜자 엠마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나를 마중 나왔다는 것. 복잡한 공항 건물에서 헤매다가 마침내 내가 갈 수 있는 곳을 만났다. 또한 내가 싫은 일을 하게끔 하는 곳도 함께 만났다. 생각보다는 감정으로 우리는 빠른 포옹을 나눴다.

돌아가는 기차는 지겹지가 않았다. 얼마가 아슬하게 고생을 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다시 왔는지. 큰 얘기보다는 그런 이야기들이 언제나 더 따뜻하고 맛있으니까.

잘 살자 어떤 땅에서든.

W, M 레오

2019.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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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잉 왜 같은 글이 두개 올라온 걸까요
@uruniverse 그러네요 ㅜ 여기 인터넷이 잘 안 터져서 ㅠ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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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사람 좋은글귀 누구나 가능하다. 나는 전화 상담원이고, 남편은 군인이다. 맞벌이 부부가 다 그렇듯이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아가고 있었는데 아내가 언제부턴가 눈이 피곤하다며 일찍 잠자리에 들곤 했다. ˝병원에 안가봐도 되겠어?˝ ˝좀 피곤해서 그럴꺼야 곧 괜찮아 지겠지.˝ 이렇게 두 달이 지난 후에 병원에 갔더니 각막염이라고 했다. 두 눈에 다 퍼져서 수술을 서두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하지만 큰 문제는 없을 거라고 했다. 일주일 후에 아내는 수술을 받았다. 회복하는데 한 3일정도가 걸린다고 해서 입맛이 없는 아내를 위해 반찬도 만들어다 주고 심심해 할때는 책도 읽어 주면서 그 동안 고생만 했던 아내에게 모처럼 남편역할을 하는 것 같아 행복했다. 7일이 지난 후 눈에 붕대를 풀었다. ˝나 보여?˝ 아내에게 물었다. ˝아니 아직 안보여˝ 의사 선생님은 조금 시간이 지나면 보일 거라고 했지만 1시간이 지나고 하루가 지나도 아내의 눈은 세상을 볼 수 없었다. 사랑스런 아내의 눈은 이미 세상의 빛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아내의 마음은 점점 어두워져만 갔다. 3개월이 자나서야 차츰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여보, 나 다시 일 나가고 싶어.˝ 아내가 말했다. ˝무슨 소리야.. 내가 다 알아서 할께.˝ ˝그렇다고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있을 수는 없잖아.˝ ˝그래도 직장생활은 조금…˝ ˝전화 상담원인데 뭐 어때.. 나 할 수 있어˝ 남편은 아내에게 감사했다. 일을 나가겠다는 아내의 생각이 아니라 세상을 받아들여주는 마음이 고마웠다. 회사에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데 출근이 문제였다. 아내와 남편은 근무지가 서로 반대였기 때문에 매일 데려다 줄 수는 없었다. 일단 아내와 남편은 한 달 동안 같이 다니기로 했다. 다행이 한번에 회사까지 가는 버스가 있어 집에서 정류장까지는 같이 나가면 되는데 정류장에서 회사까지가 문제였다. 그래서 아내와 남편은 걸음 수와 주변의 소리를 통해 익히기로 하였다. 차츰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한 달이 지났을 때 아내는 혼자서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남편은 아내가 자랑스러웠다. 점차 마음이 밝아지기 시작하고 웃음도 찾기 시작했다. 이렇게 6개월이 지났다. 아내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버스를 타고 출근을 했다. 아내는 버스를 타면 기사아저씨 뒷자리에 앉는다. 어느 날 회사 앞 정류장에 거의 다 왔을 때였다. 기사아저씨가 말했다. ˝부인은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앞도 못 보는 제가 뭐가 행복하겠어요˝ ˝매일 아침 부인을 지켜보는 사람이 있잖아요˝ ˝네! 누가 저를…˝ ˝모르셨어요?˝ ˝남편이 매일같이 부인이 내리는 모습을 길 건너편에 지켜보고 있답니다. 그리곤 부인이 회사에 무사히 들가는 것을 보고는 되돌아간답니다.˝ – 문학과 사람들 좋은사람 좋은글귀 소식 받아 보기 : http://pf.kakao.com/_xnxcdY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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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오늘은 월요일이지만 1차 세계대전 종전의 날이라 학교를 가지 않았다. 일요일은 주문했던 매트리스를 배송받아 정리를 하고 장을 보고 또 이런저런 집안일을 하면서 보냈기에 오늘은 어느 가보지 않은 곳을 좀 가볼까 했다. 어느 곳이 좋을까 고민을 하다가 비도 오고 한다 해서 실내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을 택했다. 지난밤 엠마가 찾아봐준 곳들은 부흐델 미술관 Bourdelle Museum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르봉막세 백화점 Le Bon Marché 그리고 백화점 건물 바로 옆에 붙어있는 우리의 성모, 기적의 메달 성당 Chapelle Notre- Dame-de-la-Médaille- Miraculeuse이었다. 하지만 출발하면서 경로를 정하려고 검색을 하다 보니 부흐델 미술관은 마침 월요일이 휴관이었다. 할 수 없이 르봉 막세 백화점과 성당을 먼저 들린 후, 시간이 남으면 달리 들를 곳을 더 찾아보기로 하고 지하철에 올랐다. 10호선 Sevres-Babylone역에서 내려 르봉막세 백화점을 향해 걸었다. 때마침 점심때여서 백화점 주변의 어느 레스토랑에 들려 점심을 먹을까 했지만 가격들도 비싸고 마땅한 곳도 찾지 못해서 그냥 백화점 1층에 있는 블랑제리에서 크후와상과 사과 타흐트를 사서 백화점 옆의 이름 모를 작은 공원에서 먹기로 했다. 비 예보가 있었지만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고 짙은 구름이 갈라진 사이로 잠깐의 햇볕이 내려와 줘서 우리는 공원 벤치 위에서 근사한 데쥬네를 가질 수 있었다. 프랑스에 온 후 처음에는 바게트에 반했다가 차차 크후와상에 반해서 매일같이 사 먹고 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해서 커피와 먹기에 아주 좋다. 건조한 음식을 먹으면 곧잘 체하는 나에게는 아주 고마운 Pain이다. 작은 공원에는 아이들은 위한 간단한 회전목마 같은 것이 있어서 손자의 손을 잡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꽤 모여 있었다. 옆 쪽 공터에서는 무뚝뚝한 아버지가 활기찬 꼬마 아이와 축구공 주고받기를 하고 있었다.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다만 빵 냄새를 맡은 비둘기들이 우리를 둘러싸서 우리는 가만히 앉아 식사를 끝내지 못했고 요리조리 걸어 다니며 남은 빵을 먹어야 했다. 르봉막세 백화점 1층의 쇼윈도는 의외로 명품들의 차지가 아니었다.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귀여운 인형들을 기계에 매달아 움직이고 춤을 추게 만들어 아주 그럴듯한 뮤지컬 장면처럼 꾸며 놓았다. 그것도 매우 넓은 건물의 전면을 늑대, 쥐, 올빼미, 닭 등 여러 동물을 주인공으로 여러 무대를 만들어 놓아 벽면에는 아이들이 가득했다. 아이들은 위한 공간이라 그런지 아이들이 쉽게 볼 수 있게끔 두 뼘 높이의 단도 설치해 두었다. 파리의 여러 곳에서 이런 아이들을 위한 배려를 찾을 수 있었다. 르봉막세 백화점에서 유명한 교차 에스컬레이터와 오래된 건물의 여러 구조를 이용해 꾸며 놓은 각 매장들의 디스플레이도 좋았지만 우리나라와 다르게 창이 있어 외부의 빛이 들어오는 것이 참 좋았다. 1층은 거의 창을 가려 놓았고 2층, 3층은 간간히 빛 길을 터 놓았지만 인형과 장난감, 아이들의 옷가지를 파는 4층은 창 전부를 다 터 놓아 환하고 부드러운 분위기가 참 좋았다. 아이들이 나의 고정관념과 다르게 디스플레이된 인형과 장난감들을 스스럼없이 만지고 옮기고 가지고 돌아다니는 데에 놀랐고 직원들의 제지가 없는 것에는 더욱 놀랐다. 서점에는 한국에서는 구하기 힘든 예술과 디자인 관련 책들이 가득해서 바보처럼 여기에 살아야겠다 싶었다. 한국에서 보지 못한 브랜드의 여러 제품들을 서로의 평을 들려주면서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다리가 무거워졌다. 내 걸음이 느려진 것을 보고 엠마가 그만 백화점을 나가자고 했다. 우리는 조금 느린 다리를 끌고 성당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입장료가 있는 건 아닌지, 관광객은 출입하면 안 되는 건지, 조심스러웠지만, 여긴 관광지도 아니고 다만 가톨릭에서는 큰 의미가 있는 작은 성당이었다. 1830년 Catherine Labouré 라는 수녀에게 성모 마리아가 발현한 곳으로 가톨릭에서는 유명한 성지이다. “아버님께서 좋아하시겠다.” 성당에 들어가 앉아 본 게 10년은 된 거 같았다. 성당은 작고 소박했지만 편안한 엷은 파란색으로 꾸며져 있었고 제대 옆에는 Labouré 수녀의 시신이 유리관 안에 안치되어 있었다. 앞 쪽 의자를 가득 채운 신자들이 함께 프랑스어로 기도를 하고 있었다. 뒷 쪽으로 둘씩 하나씩 떨어져 앉은 다양한 머리색의 사람들은 가만히 앞을 보거나 눈을 감고 있었다. 뜻은 모르지만 익숙한 음률의 기도 소리에 그만 옛 생각이 났다. 나는 더 이상 신은 믿지 않지만 추억 덕분인지 지친 다리 때문인지 편안하고 따뜻한 기분이 들었다. 눈을 따라 감고 10년 만에 기도를 해 보았다. 들킬까 수줍어 입술마저 꼭 붙잡은 채로. 기도를 마치자 성당 안이 순간 노랗게 밝아졌다. 신기해 올려다보니 성당 지붕에 난 창으로 구름을 벗어난 빛이 내려오고 있었다. 기적이다. 훗. 기적은, 응답은, 기다리는 자에게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가 너무나 원하기에 어디에 선가라도 반드시 찾아내는 거였다. 찾을 때까지 스스로 찾아내 납득을 하고 말 때까지는 무릎이 아파도 계속 묻고 또 기도하는 것. 그러니 기도는 결국 자신과의 지독한 대화인 것이다. 지친 사람이라면.. 작은 햇빛 하나라도 좋은 대답이라고 믿으면 된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편안히 돌아가는 우리의 등을 보며 누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글 영상 레오 2019.11.16 파리일기_두려운 시간들이 우습게 지나갔다
아무도 우리를 부르지 않는 곳에 우리가 있다.
3일 후면 이사를 해야 했기에 파리로 돌아온 다음 날 바로 매트리스를 사러 마들렌느 역에 있는 이케아에 다녀왔다. 시내에 자리 잡은 이케아여서 규모는 크지 않지만 지하철로 바로 올 수 있어 몇 번을 이곳으로만 와서 두 손으로 안고 갈 수 있는 만큼의 물건들만 사서 돌아가곤 했다. 오늘은 며칠 동안 고민하던 매트리스를 사러 온 것. 프레임은 전세입자가 우리에게 넘겨주고 가서 그 위에 얹은 매트리스만 사면 됐는데.. 어떤 매트리스가 좋을지 고민만 하다 지난번에는 미처 사지 못하고 돌아갔고 오늘은 더 이상 미룰 수도 없어 결정을 하고야 말겠다며 두 손을 말아 쥐고 다시 이곳까지 왔다. 서울에 있을 때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 그녀의 마음에 드는 물건이면 괜스레 나도 정말 홀린 듯 굴면서 억지로라도 그녀의 품에 안겨주고 했었는데 프랑스에서는 아무래도 모든 것을 다 터놓고 함께 의논을 하게 된다. 이제는 나의 돈도 아니고 그녀의 돈도 아니고 둘의 지속력의 관한 문제이다 보니, 서로 감정을 누르고 여러 가지를 생각해보게 되는 것. 그러다 보니 그녀는 ‘어때?’라는 질문을 자주 하게 되었다. 나는 서울과 다르지 않게 ‘좋은데?’라고 답을 해주지만 그녀는 좀처럼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늪과 같은 고민에 다시 빠진다.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나와는 다르게 호불호가 분명하고 취향이 확고해서 신기했었고, 그녀와 무엇을 보러 가고 또 자잘한 물건이라도 구경하고 홀리고 사고 만족하는 일들이 내심 즐겁기도 했었는데.. 무엇을 사고 돌아오는 날보다 무엇을 사지 못하고 돌아오는 날이 더 많아져 돌아오는 길 혼자 속으로 가슴이 쓰린 적이 많았다. 당연히 필요한 물건이라도 10유로 20유로가 넘어가면 고민을 하게 되는데.. 옷들도 집에서 필요한 여러 가지 그릇, 컵, 칼, 드라이버, 상자 등도 모두 모두 다 고민의 대상이 되니 큰일이다. 아무래도 규모가 작은 삶이라면 뜻과 다르게 뭔가를 포기를 하고 돌아가는 상황은 최대한 피할 수 있기에.. 나도 그녀도 스스로 모르게 그렇게 되고 마는 것. 하지만 버티기만 하는 삶은 얹는 게 없으니 자신감이 쌓이면 우리 꼭 공격도 하자. 조금 가격이 있는 매트리스를 집에서 같이 마음먹고 왔지만, 결국 이동과 처분의 가능성 등을 고려해서 기본 매트리스 하나와 쉬어 매트리스 하나로 쪼개어 사기로 했다. 상품을 결정하고 온라인으로 주문을 한 후에 유명하다던 이곳 이케아의 핫도그를 먹었다. 고기와 채소들을 섞어 만든 소시지에 튀긴 양파가 바삭해서 아주 맛이 있었다. 한국보다는 양은 작고 진한 카페 알롱제까지 마시니 얼마나 걸었는지는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다. 매트리스와 여러 물건들을 한 번에 결정하지 못해서 몇 번이나 나를 이곳까지 끌고 왔다고 생각한 그녀는 미안한 마음에 내가 저번에 관심을 가지던 마들렌느 성당을 들렸다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난 성당 안은 굳이 지금 갈 필요 없으니 산책이나 하며 조금 돌아서 돌아가자고 했다. 마들렌느 성당의 정면을 지나가면서 성당을 배경으로 두고 걸어가는 그녀를 핸드폰으로 찍고 있었는데 엠마가 ‘왼쪽 봐봐’라고 들뜬 목소리로 나의 팔을 당겨댔다. 고개를 돌려보니 흐렸던 하늘은 어느새 개였고 노랗게 물든 하늘 아래로 노란 머리를 한 가느다란 바늘 같은 기둥이 서 있었다. “왼쪽 보라니까! 봤어?” “응, 근데 저게 뭐지?” 우리는 파리를 오는 동안 준비하는 것들에 치여 어디에 무엇 무엇이 있는지 전혀 조사도 못 하고 왔기에 마들렌느 성당이 무엇과 마주하고 있는지 전혀 몰랐던 것이다. 몇 번을 이 곳에 왔는데 우리의 고개 너머로 이런 장면이 있을 줄이야.. 노란 하늘과 더 노랗게 빛나는 기둥에 이끌려 우리는 그곳으로 걸어갔다. 차들이 분주히 돌아 나가는 거대한 광장.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둥글게 물러나 준 그 한가운데에 서 있는 황금색 머리의 기둥. 우리가 멀리서 보고 따라온 노란 머리의 기둥은 이집트 룩소르 신전에 있다가 프랑스로 건너온 오벨리스크였다. 그리고 여기는 역사책에서만 봐 오던 프랑스혁명의 상징,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에서 목이 잘린 혁명 광장, 지금의 콩코흐드 광장이었다. 파리에 와서 집을 구하고, 매일같이 학교를 나가느라 여행이라면 당연히 갔을 곳들도 2주가 넘게 못 가보고 있었는데, 계획도 없이 이곳으로 걸어오게 됐다는 게 신기했다. 천명이 넘는 사람들의 목이 잘린 자리에 세워진 분수는 노을 빛을 그대로 받아 (아니러니하게도) 매우 아름다웠다. 배로 4년에 걸쳐 파리로 옮겨졌다는 오벨리스크는 그 과정이 그려진 기단 위에 아름다운 상형 문자 무늬를 하며 서 있었고 그 오른쪽으로는 파리라는 글자와 함께 가장 많이 본 상징, La Tour Eiffel 에펠탑이 나무 가지들 너머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그리고 넓은 직선대로의 끝에 개선문이 서 있는 것도 보였다. 그렇다면 저 넓은 대로는 Avinue des Champs-Élysées 샹젤리제 거리겠구나. 우습게도 우리가 지금 파리에 있구나. 아직은 실감이 가지 않아 서로에게 뻔한 질문을 하며 신기함을 즐긴다. 무엇을 하러 왔을까를 끝없이 물어야 하는 곳에 우리가 있다. 왜냐하면 이곳에는 우리가 오기 전까진 우리의 자리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이곳의 학교는 출석을 부르지 않는다. 결석을 해도 이유를 묻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형의 결혼식을 위해 2일간의 수업을 빠진 것을 굳이 선생님께 말하지 않았다. 아무도 우리를 부르지 않는 곳에 우리가 있다. 파리라는 곳에 우리가 있다. 부르지 않아도 많은 예술가들이 굳이 찾아왔던 곳. 더럽고 누추한 곳에서 생을 잘라먹으며 버티다 끝내 묻히기까지 한 이곳. 그 블랙홀 같은 곳에 지독한 중력을 간신히 이겨내고 날아오른 우리가 쉼표도 없이, 기꺼이 빠져들고 있었다. 글, 영상 레오 2019.11.12 파리일기_두려운 날들이 우습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