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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버 보이

지난 토요일 저녁, 서점 리스본&포르투에서 열린 이 책의 북토크 행사(참조 1)에 참여했었다. 월요일은 역시 독서지. 이 책만 읽어서는 마치 몰랐을 점들을 여러가지 알게 되어서 정말 좋은 기회였다 할 수 있을 텐데 기본적으로 장준우 셰프의 이 책은 예전, “카메라와 부엌칼을 든 남자의 유럽 음식 방랑기(참조 2)”의 두 번째 버전이라 할 수 있다.

즉, 여러가지 유럽 음식에 대한 단상과 연원, 그리고 컬러풀한 사진이 채워져 있다는 얘기인데, 두 권을 같이 봐도 좋고, 이 책을 먼저 보고 예전 책을 그 다음에 봐도 좋다는 의미, 어떻게 보면 하나의 세트이기도 하다.

다만 북토크 행사에서(사진 찍을 생각을 안 했다는 점이 아쉽다) 알게 된 점이 있다. 어차피 요리의 역사라는 것이 haute cuisine, 그러니까 기록이 남아있을 수밖에 없을 고급 음식 위주로 가는 것이 맞을 테지만 기본적으로는 누구와 먹느냐가 제일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나도 며칠 전 회의 관계자들과 먹은 고가의 정식이 맛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밥을 함께 먹으시라.

이 한 마디로 끝낼 수도 있을 텐데, 당연히 내용이 그것만은 아니다. 가령 중세 시절의 이탈리아 음식이 프랑스 음식으로 발전하고, 현대에 와서 프랑스 음식이 온갖 다른 문화권을 받아들인 누벨 퀴진으로, 혹은 과학을(!) 받아들인 분자요리(Gastronomie moléculaire), 북유럽 감성이 더해진 노르딕 퀴진(Det ny Nordiske Kokken, 참조 3)으로 이어졌다는 것. 대충의 계보를 한 눈에 깨달았다. 이건 오로지 장셰프님의 설명이 단순 명쾌하면서 이해하기 쉬웠던 덕분이다.

다만 요리가 아무래도 생명력을 가지려면, 즉 오래오래 가려면 이름이 붙어야 할 테고, 그것은 아마 전세계 셰프들의 희망이자 바람일 것이다. 게다가 이 요리라는 것이 최종 소비자, 즉 먹는 사람에게만 의미있는 것이 아니다. 식재료 생산자와 중간 단계의 생산자/유통업자 모두가 관련되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책에 나오는 파리와 교토의 정육업자들 이야기를 자세히 보시면 알 수 있겠다. 아니 엔초비를 가공하는 사람들 얘기를 보셔도 좋다. 평생에 걸친 노력으로 자신만의 식재료를 만든다는 자세는 인생의 교훈으로 삼아도 좋을 정도다.

그리고… 다음 책에서는 일러스트를 고민 중이시라고 한다. 이거 엘리제궁의 요리장, 기욤 고메즈가 자신의 요리책에서 사진을 없애버렸다는 점(참조 4)과 일치한다는 느낌이다.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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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2. 카메라와 부엌칼을 든 남자의 유럽 음식 방랑기(2019년 1월 15일):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0156852960324831&set=pb.666554830.-2207520000.0.&type=3&theater

3. 덴마크어로 하면 노르딕 누벨퀴진이고 영어로도 노르딕 뉴 퀴진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노르딕 퀴진이 과연 노르딕 전체이냐…는 논쟁이 있는 듯 하다. 불어권에서는 그냥 덴마크식 누벨퀴진(Nouvelle cuisine danoise)으로 부른다.

4. 엘리제의 또 다른 젊은 주인(2017년 5월 14일): https://www.vingle.net/posts/2091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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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필사모임 <쓸모있씀!> 열한 번째 카드 (+ 다양한 쓰기의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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