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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우리를 부르지 않는 곳에 우리가 있다.

3일 후면 이사를 해야 했기에 파리로 돌아온 다음 날 바로 매트리스를 사러 마들렌느 역에 있는 이케아에 다녀왔다. 시내에 자리 잡은 이케아여서 규모는 크지 않지만 지하철로 바로 올 수 있어 몇 번을 이곳으로만 와서 두 손으로 안고 갈 수 있는 만큼의 물건들만 사서 돌아가곤 했다. 오늘은 며칠 동안 고민하던 매트리스를 사러 온 것. 프레임은 전세입자가 우리에게 넘겨주고 가서 그 위에 얹은 매트리스만 사면 됐는데.. 어떤 매트리스가 좋을지 고민만 하다 지난번에는 미처 사지 못하고 돌아갔고 오늘은 더 이상 미룰 수도 없어 결정을 하고야 말겠다며 두 손을 말아 쥐고 다시 이곳까지 왔다. 서울에 있을 때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 그녀의 마음에 드는 물건이면 괜스레 나도 정말 홀린 듯 굴면서 억지로라도 그녀의 품에 안겨주고 했었는데 프랑스에서는 아무래도 모든 것을 다 터놓고 함께 의논을 하게 된다. 이제는 나의 돈도 아니고 그녀의 돈도 아니고 둘의 지속력의 관한 문제이다 보니, 서로 감정을 누르고 여러 가지를 생각해보게 되는 것. 그러다 보니 그녀는 ‘어때?’라는 질문을 자주 하게 되었다. 나는 서울과 다르지 않게 ‘좋은데?’라고 답을 해주지만 그녀는 좀처럼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늪과 같은 고민에 다시 빠진다.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나와는 다르게 호불호가 분명하고 취향이 확고해서 신기했었고, 그녀와 무엇을 보러 가고 또 자잘한 물건이라도 구경하고 홀리고 사고 만족하는 일들이 내심 즐겁기도 했었는데.. 무엇을 사고 돌아오는 날보다 무엇을 사지 못하고 돌아오는 날이 더 많아져 돌아오는 길 혼자 속으로 가슴이 쓰린 적이 많았다. 당연히 필요한 물건이라도 10유로 20유로가 넘어가면 고민을 하게 되는데.. 옷들도 집에서 필요한 여러 가지 그릇, 컵, 칼, 드라이버, 상자 등도 모두 모두 다 고민의 대상이 되니 큰일이다. 아무래도 규모가 작은 삶이라면 뜻과 다르게 뭔가를 포기를 하고 돌아가는 상황은 최대한 피할 수 있기에.. 나도 그녀도 스스로 모르게 그렇게 되고 마는 것. 하지만 버티기만 하는 삶은 얹는 게 없으니 자신감이 쌓이면 우리 꼭 공격도 하자. 조금 가격이 있는 매트리스를 집에서 같이 마음먹고 왔지만, 결국 이동과 처분의 가능성 등을 고려해서 기본 매트리스 하나와 쉬어 매트리스 하나로 쪼개어 사기로 했다. 상품을 결정하고 온라인으로 주문을 한 후에 유명하다던 이곳 이케아의 핫도그를 먹었다. 고기와 채소들을 섞어 만든 소시지에 튀긴 양파가 바삭해서 아주 맛이 있었다. 한국보다는 양은 작고 진한 카페 알롱제까지 마시니 얼마나 걸었는지는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다. 매트리스와 여러 물건들을 한 번에 결정하지 못해서 몇 번이나 나를 이곳까지 끌고 왔다고 생각한 그녀는 미안한 마음에 내가 저번에 관심을 가지던 마들렌느 성당을 들렸다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난 성당 안은 굳이 지금 갈 필요 없으니 산책이나 하며 조금 돌아서 돌아가자고 했다. 마들렌느 성당의 정면을 지나가면서 성당을 배경으로 두고 걸어가는 그녀를 핸드폰으로 찍고 있었는데 엠마가 ‘왼쪽 봐봐’라고 들뜬 목소리로 나의 팔을 당겨댔다. 고개를 돌려보니 흐렸던 하늘은 어느새 개였고 노랗게 물든 하늘 아래로 노란 머리를 한 가느다란 바늘 같은 기둥이 서 있었다. “왼쪽 보라니까! 봤어?” “응, 근데 저게 뭐지?” 우리는 파리를 오는 동안 준비하는 것들에 치여 어디에 무엇 무엇이 있는지 전혀 조사도 못 하고 왔기에 마들렌느 성당이 무엇과 마주하고 있는지 전혀 몰랐던 것이다. 몇 번을 이 곳에 왔는데 우리의 고개 너머로 이런 장면이 있을 줄이야..
노란 하늘과 더 노랗게 빛나는 기둥에 이끌려 우리는 그곳으로 걸어갔다. 차들이 분주히 돌아 나가는 거대한 광장.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둥글게 물러나 준 그 한가운데에 서 있는 황금색 머리의 기둥. 우리가 멀리서 보고 따라온 노란 머리의 기둥은 이집트 룩소르 신전에 있다가 프랑스로 건너온 오벨리스크였다. 그리고 여기는 역사책에서만 봐 오던 프랑스혁명의 상징,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에서 목이 잘린 혁명 광장, 지금의 콩코흐드 광장이었다.
파리에 와서 집을 구하고, 매일같이 학교를 나가느라 여행이라면 당연히 갔을 곳들도 2주가 넘게 못 가보고 있었는데, 계획도 없이 이곳으로 걸어오게 됐다는 게 신기했다. 천명이 넘는 사람들의 목이 잘린 자리에 세워진 분수는 노을 빛을 그대로 받아 (아니러니하게도) 매우 아름다웠다. 배로 4년에 걸쳐 파리로 옮겨졌다는 오벨리스크는 그 과정이 그려진 기단 위에 아름다운 상형 문자 무늬를 하며 서 있었고 그 오른쪽으로는 파리라는 글자와 함께 가장 많이 본 상징, La Tour Eiffel 에펠탑이 나무 가지들 너머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그리고 넓은 직선대로의 끝에 개선문이 서 있는 것도 보였다. 그렇다면 저 넓은 대로는 Avinue des Champs-Élysées 샹젤리제 거리겠구나. 우습게도 우리가 지금 파리에 있구나. 아직은 실감이 가지 않아 서로에게 뻔한 질문을 하며 신기함을 즐긴다. 무엇을 하러 왔을까를 끝없이 물어야 하는 곳에 우리가 있다. 왜냐하면 이곳에는 우리가 오기 전까진 우리의 자리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이곳의 학교는 출석을 부르지 않는다. 결석을 해도 이유를 묻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형의 결혼식을 위해 2일간의 수업을 빠진 것을 굳이 선생님께 말하지 않았다. 아무도 우리를 부르지 않는 곳에 우리가 있다. 파리라는 곳에 우리가 있다. 부르지 않아도 많은 예술가들이 굳이 찾아왔던 곳. 더럽고 누추한 곳에서 생을 잘라먹으며 버티다 끝내 묻히기까지 한 이곳. 그 블랙홀 같은 곳에 지독한 중력을 간신히 이겨내고 날아오른 우리가 쉼표도 없이, 기꺼이 빠져들고 있었다.
글, 영상 레오 2019.11.12 파리일기_두려운 날들이 우습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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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님 글이랑 사진 보면 저도 파리에 가고싶어져요.. ㅎㅎㅎ
@lalamia 그렇게 느끼셨다니 저도 무척 기쁘네요^^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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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에펠이야?
11월 11일은 1차 세계 대전이 종전한 날이어서 프랑스에서는 휴일이다. 올해는 그날이 마침 월요일이어서 토일월 3일간의 연휴가 생겼다. 지난주 서울에 다녀오고 또 바로 이사를 하다가 근육을 다쳐서 학교를 오갈 때 어려움이 많았는데 몸과 마음 모두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다행이었다. 토요일 정오에는 계좌 개설을 위한 헝데뷰가 있어 Place D’Italie역 근처의 LCL로 갔다. 담당 직원과 안 되는 영어로 소통을 하려니 등에서 식은땀이 다 났다. 이쪽도 저쪽도 영어가 완벽하지 않으니까 직원도 뭔가를 설명하려다 포기하는 듯하고 나도 뭔가 확실하게 들은 게 없어서 찜찜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프랑스 은행은 한국과 다르게 계좌 유지비가 있고, 카드를 분실했을 때를 대비해서 드는 의무적인(하지만 확실하지는 않는) 보험이 있다. LCL은 학생의 경우 계좌 유지비가 거의 무료와 마친가지라서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은데 직원이 나는 나이가 많아서 해당이 안된다고 했다.(그런데 결국 할인이 됐다.) 원래 엠마와 나 모두 선임급의 직원에게 헝데뷰를 잡았었는데 한 번에 한 사람씩 밖에 상담이 안된다 하여 나는 다른 신참 직원과 상담을 하게 되었다. 신참 직원은 머리와 생김새가 앙투완 그리즈만을 꼭 닮았는데 뭔가를 열심히 하긴 하고 또 꽤나 여유가 있는 척을 했지만 내 눈에 보기에도 많이 서툴렀고 계산이 자꾸 바뀌고 말도 자주 바뀌었다. 몇 번의 한숨, 포기, 번역기를 통한 번거로운 소통을 겪으며 나는 얼른 프랑스어를 잘해야겠다 하는 마음이 굴뚝 넘은 연기만큼 높아졌다. 결국 그 직원은 선임 직원에게 전화로 한소리를 듣고 또 한참을 헤매다가 수요일에 다시 오라는 말을 했는데.. 상담을 끝내고 받은 서류는 엠마와 틀린 게 없었다. 수요일 오라고 한 것도 맞긴 한 건지.. 찜찜한 마음을 안고 지하철을 탔다. 연휴의 시작을 앞두고 엠마가 물었다. “파리에서 제일 가보고 싶었던 곳이 어디야? 거길 가보자.”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을 했다. Place D’Italie역에서 6호선을 타고 서쪽을 향해 갔다. 6호선은 우리가 늘 타는 7호선과는 다르게 문에 있는 손잡이를 위쪽으로 돌려야 문이 열린다. 연휴의 시작이라 그런지 나들이를 가는 연인과 친구들 그리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젊은 부부들이 가득했다. 출근 시간과 다름없이 혼잡한 지하철이 Bir-Hakeim역에 도착을 하자 차 안의 승객 거의 대부분이 내렸다. 당연히 우리도 내렸다. 출구 번호를 찾을 필요도 없었다. 다들 La Tour Eiffel을 보러 온 거니까. 지하철 출구를 나와 센느 강변을 따라 오른쪽으로 발을 돌리자 거대한 철골구조가 두 눈에 들어왔다. “저게 에펠이야?” 가까이에서 본 에펠은 아름답기 보다는 조금 무서웠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가지기 위해서는 상징이 필요하니까 우리가 가지는 것은 결국 상징과 같은 그림들 사진들 그리고 몇 마디의 말이나 글뿐이니까. 상징이 상징다워질 수 있게 우리는 에펠을 지나 조금 멀리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센느강을 따라 예쁘다고 소문이 난 알렉상드르 3세 다리까지 산책을 하기로 했다. 한주 내내 흐리고 비가 오던 파리는 그날만큼은 맑았고 노을이 내려앉은 센느강은 서쪽 끝이 온통 노랗게 불타올라 강이 아니라 커다란 태양이 내뿜는 하나 은색 빛줄기인 것만 같았다. 군데군데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요리조리 피해 가며 동쪽으로 조금 걸어 나가자 거대하고 검고 무섭기만 하던 에펠이 점점 친숙한 모양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한 손에 잡힐 듯 작아진 에펠은 노랗고 푸른 하늘을 걸치고 ‘이젠 어때?’ 말하는 듯했고, 우리는 몇 걸음마다 멈춰 서며 상징을 가지려 애를 썼다. 센느강을 따라 걷고 강변에 앉아 싸온 커피와 크로와상을 먹으면서 다리와 탑 그 자체만이 아닌 그날의 다리와 탑을 즐길 수 있다는 것에 무척 행복했다. 돌아서 가고 돌아가고 다시 또 올 수 있다는 것. 문득 엠마와 처음으로 라오스 여행을 갔을 때, 함께 차를 탄 독일인이 우리의 10일간의 여행 일정을 듣고 매우 놀라워하던 생각이 났다. 어디를 가는 것, 무언가를 가지는 것만 아닌 어디에선가 지내고 무언가를 쓰는 것 그래서 삶과 삶 아닌 것 둘 사이에서 오고 가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가볍게 살아가는 것. 그래 그것이 우선 내가 바란 작은 욕심이었지. 어느새 파리를 외쳐대는 풍경들보다 집에 가기 싫다고 부모의 반대로 달려대는 붉은색 패닝의 꼬마 아이, 파리 안의 (파리가 아니라 그 어디에라도 안의) 사람들에게로 시선이 옮겨갔다. 버리고 온 것도 포기하고 온 것도 아니구나. 어느 곳에서도 피할 수 없는 질문이고 끊을 수 없는 관심이구나. “엠마, 나 잘해볼게.” ‘좋은 날이었다’ 라고 서로 말해주었고, ‘좋은 날이었다’ 고 쓰고 싶었다. 글, 영상 레오 2019.11.14 파리일기_두려운 날들이 우습게 지나갔다
피의 언덕, 몽마르뜨
파리의 집들은 건물에 창을 가리는 가리개가 장착이 되어 있다. 오래된 집들은 나무판자로 짜인 나무 덧창이 유리창 바깥쪽에 달려 있고, 우리 집처럼 발같이 내렸다가 올렸다가 할 수 있게끔 되어 있는 곳도 많다. 우리 집은 큰 도로를 끼고 있어, 밤늦은 시간까지도 오가는 차들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우리 집 벽에다 침입자를 풀어놓는다. 하여 내가 좋아하는 노을이 흩어지고 나면 덧창을 돌돌 돌려 빛과 집을 갈라 둔다.  불을 끄면 그야말로 암흑이다. 서로를 더듬어야 찾을 수 있을 만큼 어둡다. 처음에는 이러한 어둠에 적응이 안되었지만 지금은 금세 그녀의 온기에 기절을 해버린다. 아침이 오면 소리는 아침을 알려도 빛은 어떤 소식도 전해줄 수가 없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 어두운 방을 더듬어 창가로 가 무거운 발을 천천히 돌려 열 때면 일종의 기대감이 생긴다. 오늘 날씨는 어떨까? 프랑스의 겨울은 거의 흐리고 비도 잦기 때문에 기대는 자주 무너지지만 오늘처럼 맑은 날이면 어디론가 당장이라도 달려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날이 아주 좋았다. 이틀 전만 해도 소나기가 같은 비가 내리다가 해가 지자 파리에서는 무척 귀하다는 눈이 되어 내렸다. 파리에서 맡는 첫눈이라니. ‘신기하다’ 라는 말을 또 버릇처럼 뱉으며 우리는 아이처럼 팔을 우산 밖으로 내밀어 내리는 눈을 일부러 옷에 묻히곤 했다.  날이 아주 좋았다. 오늘은. 구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햇빛은 어떻게든 틈을 찾아 땅을 노랗게 다 칠을 해두었다. 엠마도 오랜만에 밝은 날에 기분이 좋은지 오늘은 조금 먼 곳까지 가보자고 했다. 어디가 좋을까 하다가 몽마르뜨가 눈에 걸렸단다. 관광객들에겐 악명 또한 높은 곳이라 우리가 여태껏 가볼 생각도 않았던 곳. 우리 집은 파리의 남쪽에 있어서 몽마르뜨까지는 시간이 꽤 걸린다. 프랑스의 겨울은 낮이 짧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부터 서둘렀다. 혹시 몰라 돗자리와 커피, 따뜻한 차까지 챙겨 들고 집시들과 팔찌를 강매하는 이들이 있다는 곳, 몽마르뜨를 향해 겁 없이 발걸음을 서둘렀다. 우리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2호선의 Anvers역이 아니라 14호선의 Abbesses역에서 내렸다. 노을이 내리는 시간에 맞춰 몽마르뜨에 오르기 위해서 시내에서 상점들을 둘러보며 시간을 조금 보냈다. 어제는 노란 조끼 시위 때문에 시내의 주요 역들이 문을 닫았다는데.. 오늘도 알 수 없는 시위가 있어 시내에는 무장한 경찰들이 가득했다. 아직은 본격적인 세일 시즌이 아니어서 쇼핑에는 별달리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거리의 건물들에 내려앉은 귀한 햇빛이나 구경하면서 몽마르뜨 언덕 쪽으로 걸었다.  중간에 생라자흐 역이 있어 화장실도 들를 겸 들려보았다. 생라자흐역의 대합실은 2012년에 전면적인 리모델링을 해 깔끔한 현대식 상점들이 벽을 온통 차지하고 있었다. 모네의 그림과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과 같은 분위기는 적어도 쇼핑몰로 바뀐 지금의 대합실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이미지와 삶의 장소에서 사람들은 전혀 다른 것을 바란다. 유지와 변화, 낡음과 새로움, 불편과 편리 사이의 갈등은 모든 오래된 도시들에겐 쉽게 가라앉힐 수 없는 문제들일 테다. 사람들이 바라는 정상적인 사람들이 모인 도시의 매끄럽고 조용한 하루도 누구에게는 견딜 수 없는 병실 같은 곳이 될 테고. 아무래도 테러가 일어난 지 몇 년이 안 되어서인지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4명씩 짝을 이뤄 역 안을 순찰하고 있었다. 베레모를 쓰고 있지만 허리에 철모를 차고 있었다. 어깨를 뭉치게 할 한 팔 길이의 자동소총을 매고 주변을 둘러보는 병사는 여드름이 다 지워지지 않은 금발의 청년이었다. 역시나 이곳도 파리의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화장실이 유료였다. 1유로나 하는 통에 줄까지 길어 우리는 화장실 가는 것을 포기하고 생라자흐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Abbesses역으로 곧장 가기로 했다.  Abbesses역에서 몽마르뜨 언덕으로 나가는 출구는 무척 독특했다. 병원에서와 같은 육중한 엘리베이터가 두 개쯤 있고 계단은 중세 시대 성처럼 나선형으로 빙빙 돌아 올라가게 되어 있었다. 스무 번도 더 꺾이는 나선형 계단에 어지러움마저 느끼며 허벅지를 부여잡고 지상으로 나가자 아이들이 졸라대는 회전목마 너머로 기대하지 않았던 ‘사랑해 벽’ 이 보였다. 굳이 가봐야지 하는 생각은 안 했었는데 막상 보니 파란색 벽이 무척 예뻤고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아 슬쩍 들려서 사진을 찍고 찍어주었다. “자, 이제 긴장해.” “응, 긴장해.” 서로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인을 해달라는 꼬마들이 천사 같은 웃음을 띄면서 달려들었고, 우리는 ‘농, 파흐동.’을 연발하면서 아이들을 벗어나 좁은 언덕길을 향해 총총걸음을 걸었다.  걱정과 달리 Abbesses역에서 사크헤 쾨흐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는 집시들과 팔찌를 강매하는 무리들이 없었다. 좁은 골목들이 갈라진 틈으로 파리의 시내들이 조금씩 내려다 보였다. 좁은 길에는 카페와 빵집, 작은 레스토랑 그리고 중고의류와 액세서리들을 파는 가게들이 많이 있었다. 우리가 들려 본 한 가게는 옛 창고를 그대로 고쳐서 쓴 듯 철제로 된 나선형 계단을 서로 비켜주면서 내려간 지하 쇼룸은 오래된 지하무덤에 온 것만 같았다. 좁은 쇼룸 안에는 한 벌씩 밖에는 없을 듯한 옷들이 적당히 진열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커플들과 부부들이 그러하듯 여자들은 옷을 고르고 남자들은 통로와 구석에서 자신들의 파트너를 넌지시 바라보면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길을 내어주느라 또 나름 바빴다. 서로 눈이 마주치면 어색해서 한 두 번을 옷을 찾는 듯 뒤적거리는 것도 꼭 같았다. 나도 엠마가 옷을 고르면 가서 한마디 의견을 보태주고 다시 물러나서 여러 사람에게 길을 내주고 다시 자리를 잡고 하는 일을 반복했다. 내심 마음에 드는 옷이 있는 듯했지만 한국과 달리 구입은 하지 않고 나의 손목만 잡고 상점을 빠져나가는 엠마였다.  또 두어 번의 긴 계단을 기어가듯 오르자 하얗고 이질적인 사크헤 쾨흐 대성당이 우리의 눈을 찔러댔다. 대리석 안에 함유된 방해석 성분 때문에 시간이 지나도 하얀빛을 잃지 않는다는 모스크를 닮은 신기한 이름의 거대한 성당. 마치 파리의 자잘한 건물들을 피해 언덕에 내린 우주선 같은 이 이상한 성당을 향해 조금씩 걸어가자 성당을 등 뒤에 두고 어디론가로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수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산 하나 없는, 같은 높이의 건물들로 대지를 말끔히 지워 놓은 파리의 전경이 한눈에 보였다.  “우와.” 우린 우리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우리의 뒤쪽에서 걸어오던 여러 국적의 사람들도 연이어 탄성을 질렀다. 마치 넓게 덮인 구름의 무게에 눌린 듯 지독히도 같은 높이의 건물들이 조금씩 다른 모양으로 조금씩 다른 아이보리 빛을 반사시키면서 번져 있었고 간혹 보이는 뾰족하게 높은 성당의 첨탑들과 두드러지게 높아 보이는 에펠탑의 머리만이 이곳도 역시 하늘을 탐하는 ‘인간’의 도시임을 외치고 있었다. 산도 없고 어떠한 굴곡도 없는 평평하고 둥근 판이 우리를 바늘로 하여 천천히 돌고 있는 듯 어지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아직은 노을도 시간이 남아 우리는 성당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사크헤 쾨흐 대성당은 게임의 속 배경인 것만 같은 둥근 모양의 외형과는 달리 실내는 성당 안에 든 사람들에게 강제로 숭고함을 쥐어주게끔 만들어져 있었다. 넓은 성당의 한가운데에 거대한 돔이 서 있었고 그 돔의 가슴쯤을 갈라 낸 창문들에서 내려온 빛들이 반사와 반사를 이어가면서 성당 전체를 같은 밝기로 밝히고 있었다. 어두운 벽 곳곳에 모자이크된 성화들은 어두운 색들로 채색되어 있어 그림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오기보다는 모두가 성당 안의 어떤 전체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다만 중앙 제대 위의 작은 돔을 가득 덮은 예수의 성심을 나타난 거대한 모자이크화만은 사람들에게 이 성당의 존재 이유를 강변하고 있는 듯 강렬했다. 대성당은 미사와 기도를 드리는 성당 중앙을 비어 두고 관람객들이 그 주변을 한 바퀴 둘러 나갈 수 있게끔 되어 있었다. 우리가 성당 안을 천천히 돌아나가는 동안 1885년부터 끊이지 않고 이어져 오는 성체조배가 행해지고 있었다. 수녀님이 부르는 성가는 조금 섬뜩하게 아름다워 잠시 멈춰 바라보는 사이 하마터만 나의 죄를 다 고백할 뻔했다.  대성당이 자리 잡은 몽마르뜨 언덕은 지금은 낭만과 예술의 상징으로 여겨지지만 역사적으로는 파리 전역을 내려다볼 수 있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파리를 온통 불태울 수 있는 포대가 설치되어 있었던 곳이다. 그런 이유로 이곳은 파리의 최후의 보루였고, 이곳을 차지한 이들이 곧 파리의 주인이기도 했다. 나폴레옹 3세가 프로이센에게 무력하게 항복을 한 후 세워진 제3공화정은 프로이센에 대한 항전을 계속 이어가지만 곧 파리를 포위당하고 만다. 프로이센 군에게 사방을 포위당한 채 132일 동안 외부로부터 어떠한 물자도 공급받지 못한 파리의 시민들은 동물원의 동물들, 거리의 고양이, 심지어 숨은 쥐까지 잡아먹어야 할 만큼 비참한 상황이었다. 이에 결국 3공화정부는 프로이센에게 굴욕적인 항복을 하고 이후 선거를 통해 구성된 정부는 왕당파등 보수파가 다수를 차지하게 된다.  정부를 차지한 보수파들은 대혁명의 유산이자 프로이센에 대항해 최후까지 항전을 하던 파리를 오히려 적으로 여기며 파리를 무력화시키고자 몽마르뜨의 포대를 장악하고 파리에 있는 국민 의용군의 무장을 해제하려고 했다. 그런 공화정부에 반대해 일어난 파리 시민들의 봉기는 세계 역사 상 최초의 사회주의 정부인 파리 코뮌을 출범시키게 된다. 지금 봐도 놀랄만한 여러 가지 진보적인 정책들을 펼치며 시민들에 의한 정부를 꿈꾸었던 파리 코뮌은 72일 만에 사회주의 혁명을 두려워하는 유럽의 지원에 힘입은 보수적인 공화정부에 의해 잔인하게 진압되었다. 당시 175만 정도였던 파리의 인구 중에 2프로에 가까운 3만여 명의 시민들이 한 번에 학살을 당했다. 코뮌에 대한 보수파의 피비린내 나는 학살이 끝난 후 보수파 정부는 프로이센에 대한 굴욕적인 패배를 포함한 이 모든 비극이 자신들의 도덕적인 타락의 징벌이라는 교회의 믿음에 따라 다분히 의심스러운 속죄하는 마음을 담아(속죄하는 말 아래 기존의 질서로 다시 정리되길 원하는 보수파의 의도 또한 담아) 피의 언덕 꼭대기에 이 대성당의 건립을 추진했다. 대성당은 30여 년의 시간 동안 진짜로 징벌을 받고 있었을 민중의 기부금만으로 만들어졌다. 건축가가 이 지독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 건물을 나와 전망대로 유명한 대성당의 돔에 오르려다 6유로나 하는 가격과 가득한 사람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낮 등을 이유로 우리는 그만 발길을 돌렸다. 사람들이 다 보는 곳 말고, 나만이 발견한 것 같은 착각이라도 가질 수 있는 곳을 원하는 건 바꿀 수 없는 나의 혹은 우리의 버릇이다. 어릴 적부터 예술하는 사람을 꿈꾸면서 처음에는 지독히 노력을 했고 마침내는 지울 수 없는 강박이 되어 버린 것이 바로 ‘나만의 것’이라는 환상이다. 어릴 때는 남들이 따라 할까 무서워서 무슨 생각이 들면 남들에게 심지어 선생님에게도 의견을 구하지 않았고 남들을 따라 하게 되는 일도 무서워서 사람들의 충고 또한 흘려듣고 보고 배워야 할 작품들 또한 일부러 보지 않으려 하면서 스스로를 작은 감옥에 가뒤 놓곤 했었다. 이제 와서 보면 예술이라는 것은 자기 안에서 시작하는 것은 맞지만 오로지 자기 안에서만 결정되어 나오는 것은 아니고 문제로 가득한 어떤 가여운 자아가 세상과 부딪히는 순간, 누구의 결재도 없이 어지럽게 튕겨 나오는 것들, 다만 그것 중에 무엇일 뿐인 것을 안다. 그 여러 잔해들 속에서 또 마치 자신 능력 안에서 키워 낸 자신만의 것인 듯 하나를 골라 몰래 적당히 망쳐가다가 너무 늦었다며 께름하게 자기 이름을 써 놓고 뒤돌아 울곤 하는 거겠지. 아름다움은 세상에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은 그저 순수함 그 자체이니까. 아름다움은 순수함을 잡으려는 욕심이고 그래서 순수함을 결국 훼손시키는 폭력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시선은 한계가 있다. 너비와 깊이 또 지속시간에서 모두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결국 바라보는 행위조차 순수함을 잘라내는 것이다. 아름답다면서 무엇과 무엇을 갈라놓고 무엇만을 더 오래 기억하려고 하는 것 그 자체가 일종의 불순함이다. 아름다움이라는 것 자체가 있다고 믿는 사람도 있고, 자신을 아름다움의 시작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결국 그 누구도 자신만의 힘으로는 아름다움을 얻어낼 수 없다. 무엇보다 일단 만나야 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그 어떤 단계에서 조차 순수한 자기만의 의견을 가질 수도 없다. 오래된 무한에 가까운 기억들이 나를 속이고 나의 의견에 남들의 의견을 섞고 티가 나지 않게 흔들어 놓는다.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모르겠다고 하고 내 이름을 써 놓았지만 그게 나의 것일까 나는 결국 무엇일까 하는 질문만은 절대로 지울 수가 없다. 순수하게 넓은 지평에서 나의 우연한 위치와 나의 보잘것없는 선택이 실은 내가 하는 건지도 모를 선택이 모여서 만든 조악한 형상. 그러니까 무엇도 열광할 만큼 대단하지 못하고 또 무엇도 경멸할 만큼 나쁘지 않다. 결국은 하나의 다 우연한 조각일 뿐.  하지만 길을 즐긴다는 불순함은 길을 하나로 보지 않는 일에서만 가능한 것. 한 걸음이 한 걸음과 다르다고 믿게 만드는 몹쓸 자의식이 결국 오해로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를 한 걸음과 다른 한 걸음이 있다고 믿게끔 만드어 주는 것. 결국 예술이 종교에 기대어 생명을 이어왔지만 그것은 일종의 기만이었고 예술은 종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차라리 다른 종교 인지도. 예술을 한다는 것은 내가 우연한 기회에 잘라 가진 무엇으로 ‘이건 정말이지 ‘무엇’ 을 의미하고 있어!’ 라며 누군가에게 강요하는 일. 그러니까 그것은 곧 위험한 포교인 거다. 성공하면 권력을 가지지만 실패하면 돌을 맞거나 쫓겨나 굶주리게 되는 것. 돌아가는 길에 난관을 붙잡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따라 나도 난관에 붙어 노을 안에 선 에펠탑을 찍었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쓰고 그래서 결국 무엇이고 싶은 걸까. 바람이 차서 상점에 들려 털모자를 사려다가 맞는 것이 없어 두고 나왔다. 그리고 우리는 작은 광장에 모여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들을 지나 또 두어 번 긴 계단을 걸어 육중한 엘리베이터가 있는 Abbesses역으로 돌아갔다. 글, 이미지 레오 2019.11.25 파리일기_두려운 시간들이 우습게 지나갔
누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오늘은 월요일이지만 1차 세계대전 종전의 날이라 학교를 가지 않았다. 일요일은 주문했던 매트리스를 배송받아 정리를 하고 장을 보고 또 이런저런 집안일을 하면서 보냈기에 오늘은 어느 가보지 않은 곳을 좀 가볼까 했다. 어느 곳이 좋을까 고민을 하다가 비도 오고 한다 해서 실내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을 택했다. 지난밤 엠마가 찾아봐준 곳들은 부흐델 미술관 Bourdelle Museum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르봉막세 백화점 Le Bon Marché 그리고 백화점 건물 바로 옆에 붙어있는 우리의 성모, 기적의 메달 성당 Chapelle Notre- Dame-de-la-Médaille- Miraculeuse이었다. 하지만 출발하면서 경로를 정하려고 검색을 하다 보니 부흐델 미술관은 마침 월요일이 휴관이었다. 할 수 없이 르봉 막세 백화점과 성당을 먼저 들린 후, 시간이 남으면 달리 들를 곳을 더 찾아보기로 하고 지하철에 올랐다. 10호선 Sevres-Babylone역에서 내려 르봉막세 백화점을 향해 걸었다. 때마침 점심때여서 백화점 주변의 어느 레스토랑에 들려 점심을 먹을까 했지만 가격들도 비싸고 마땅한 곳도 찾지 못해서 그냥 백화점 1층에 있는 블랑제리에서 크후와상과 사과 타흐트를 사서 백화점 옆의 이름 모를 작은 공원에서 먹기로 했다. 비 예보가 있었지만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고 짙은 구름이 갈라진 사이로 잠깐의 햇볕이 내려와 줘서 우리는 공원 벤치 위에서 근사한 데쥬네를 가질 수 있었다. 프랑스에 온 후 처음에는 바게트에 반했다가 차차 크후와상에 반해서 매일같이 사 먹고 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해서 커피와 먹기에 아주 좋다. 건조한 음식을 먹으면 곧잘 체하는 나에게는 아주 고마운 Pain이다. 작은 공원에는 아이들은 위한 간단한 회전목마 같은 것이 있어서 손자의 손을 잡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꽤 모여 있었다. 옆 쪽 공터에서는 무뚝뚝한 아버지가 활기찬 꼬마 아이와 축구공 주고받기를 하고 있었다.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다만 빵 냄새를 맡은 비둘기들이 우리를 둘러싸서 우리는 가만히 앉아 식사를 끝내지 못했고 요리조리 걸어 다니며 남은 빵을 먹어야 했다. 르봉막세 백화점 1층의 쇼윈도는 의외로 명품들의 차지가 아니었다.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귀여운 인형들을 기계에 매달아 움직이고 춤을 추게 만들어 아주 그럴듯한 뮤지컬 장면처럼 꾸며 놓았다. 그것도 매우 넓은 건물의 전면을 늑대, 쥐, 올빼미, 닭 등 여러 동물을 주인공으로 여러 무대를 만들어 놓아 벽면에는 아이들이 가득했다. 아이들은 위한 공간이라 그런지 아이들이 쉽게 볼 수 있게끔 두 뼘 높이의 단도 설치해 두었다. 파리의 여러 곳에서 이런 아이들을 위한 배려를 찾을 수 있었다. 르봉막세 백화점에서 유명한 교차 에스컬레이터와 오래된 건물의 여러 구조를 이용해 꾸며 놓은 각 매장들의 디스플레이도 좋았지만 우리나라와 다르게 창이 있어 외부의 빛이 들어오는 것이 참 좋았다. 1층은 거의 창을 가려 놓았고 2층, 3층은 간간히 빛 길을 터 놓았지만 인형과 장난감, 아이들의 옷가지를 파는 4층은 창 전부를 다 터 놓아 환하고 부드러운 분위기가 참 좋았다. 아이들이 나의 고정관념과 다르게 디스플레이된 인형과 장난감들을 스스럼없이 만지고 옮기고 가지고 돌아다니는 데에 놀랐고 직원들의 제지가 없는 것에는 더욱 놀랐다. 서점에는 한국에서는 구하기 힘든 예술과 디자인 관련 책들이 가득해서 바보처럼 여기에 살아야겠다 싶었다. 한국에서 보지 못한 브랜드의 여러 제품들을 서로의 평을 들려주면서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다리가 무거워졌다. 내 걸음이 느려진 것을 보고 엠마가 그만 백화점을 나가자고 했다. 우리는 조금 느린 다리를 끌고 성당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입장료가 있는 건 아닌지, 관광객은 출입하면 안 되는 건지, 조심스러웠지만, 여긴 관광지도 아니고 다만 가톨릭에서는 큰 의미가 있는 작은 성당이었다. 1830년 Catherine Labouré 라는 수녀에게 성모 마리아가 발현한 곳으로 가톨릭에서는 유명한 성지이다. “아버님께서 좋아하시겠다.” 성당에 들어가 앉아 본 게 10년은 된 거 같았다. 성당은 작고 소박했지만 편안한 엷은 파란색으로 꾸며져 있었고 제대 옆에는 Labouré 수녀의 시신이 유리관 안에 안치되어 있었다. 앞 쪽 의자를 가득 채운 신자들이 함께 프랑스어로 기도를 하고 있었다. 뒷 쪽으로 둘씩 하나씩 떨어져 앉은 다양한 머리색의 사람들은 가만히 앞을 보거나 눈을 감고 있었다. 뜻은 모르지만 익숙한 음률의 기도 소리에 그만 옛 생각이 났다. 나는 더 이상 신은 믿지 않지만 추억 덕분인지 지친 다리 때문인지 편안하고 따뜻한 기분이 들었다. 눈을 따라 감고 10년 만에 기도를 해 보았다. 들킬까 수줍어 입술마저 꼭 붙잡은 채로. 기도를 마치자 성당 안이 순간 노랗게 밝아졌다. 신기해 올려다보니 성당 지붕에 난 창으로 구름을 벗어난 빛이 내려오고 있었다. 기적이다. 훗. 기적은, 응답은, 기다리는 자에게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가 너무나 원하기에 어디에 선가라도 반드시 찾아내는 거였다. 찾을 때까지 스스로 찾아내 납득을 하고 말 때까지는 무릎이 아파도 계속 묻고 또 기도하는 것. 그러니 기도는 결국 자신과의 지독한 대화인 것이다. 지친 사람이라면.. 작은 햇빛 하나라도 좋은 대답이라고 믿으면 된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편안히 돌아가는 우리의 등을 보며 누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글 영상 레오 2019.11.16 파리일기_두려운 시간들이 우습게 지나갔다
때를 모르면 시끄럽게 내려야 한다
정오가 채 못 된 시간이었다 이른 점심을 위해 학교를 나와 마트를 찾아 걸었다 학교에서 왼쪽으로 꺾어 휘 데 뾔쁠리에를 따라 걸어 올라가다가 그만 짙은 녹색 천에 담긴 죽음을 보았다 너무나 자연스러워 한참을 뻔히 바라보았다 햇빛이 묻은 흰 주름을 따라 어림되는 덩치 아 그렇구나 더 이상 급할 일도 없어 쁘히베 데 뾔쁠리에 헝세 썽떼 병원 곁은 피가 흐르는 이에 내어주고  조금 떨어진 곳이라도 뭐 어때  수고를 감내하는 구조사의 배려 덕에 우리는 총총걸음 일상 위에서 그만 짙은 녹색 천에 담긴 이를 보았다 빛도 돌리지 않는 앰뷸런스에서 배송을 예약받은 택배처럼 차갑게 들것에 실려 천천히 길을 건너 가신 이 아무도 멈추지 않았다 아무도 멈추지 않게 좋은 타이밍에 매끄러운 바퀴로 길을 건넜다 병원에는 달려 나오는 이가 없었고 문은 자동으로 열리고 닫혔다 죽음이 지나가도 아무도 멈추지 않는다 아무도 멈추지 않았고 그만이 조용히 내렸다 꿀렁이지 않았다 보도를 오르고 내릴 때도 길을 건너 오른쪽으로 틀고 병원을 향해 왼쪽으로 틀 때도 붙들고 있는 것들이 더는 필요가 없겠지만 다행히 우리는 점심을 거르지 않았다 때를 모르면 시끄럽게 내려야 한다 지하철은 늘 만원이라 때를 놓치면 모두를 밀치고 파흐동 소리를 연발로 내지르고 때를 모르면 시끄럽게 내려야 한다 갑자기 툭 내리면 남은 이에게는 얼마간의 상처가 생긴다 가방에 쓸리고 옷이 벗겨진다 달려 나가는 파흐동 소리에 괜찮다는 말도 못 해준다 괜찮다는 말을 못 해줬다 입술을 뗄 만큼 아프지는 않아서 몸을 돌릴 만큼 가까이 있지도 않아서 매일 문은 열리고  얼마 간의 소란이 있고 문은 닫힌다 조금 넉넉하다가 더 비좁아지기도 한다 글, 사진 레오 2019.12.05 시로 일기하기_오늘 날씨 흐림
집들이...
엄빠 찬스로 마련한 집인데.. 사전점검때 다같이 와보고 이삿날 엄마 와본게 다였네... 나쁜 딸래미 ㅠㅠ 11월 23일 오늘은 엄빠의 50주년 결혼기념일, 이걸 금혼식이라 한다 하드라 와 대박 한사람과 50년을 살았어 울엄니 리스펙~~ (아까 파티 하면서도 엄니 아부지랑 50년이나 사느랴 겁네 수고 했어요~~ 했다는) 철부지 늦둥이 막내딸이 오늘은 칼좀 잡았다 집들이 겸 금혼식 기념 (찐 기념은 딱 우리 다섯 식구만 여행가기로 했음 <새끼 버려 배우자 버려 ㅋ> 항상 늦둥이 철부지였던 막내딸이 국 끓여 밥해 야채볶아 새우 구어 김치(물론 엄마가 한거지만) 예쁘게 세팅해... 이 자체가 엄마 아빠는 신기했나보다 평소 엄마가 끓인 국이 짜다 싱겁다 타박하던 울 아부지.... 내가 끓여준 콩나물국(사실 나름대로 소금 많이 넣었다고 생각했으나.... 언니 피셜.. 싱거워... ) 도 맛있다고 한그릇 다 잡숫고. 인터넷 뒤져서 얻은 갈릭버터 새우구이 레시피 ... 아버지가 새우 넘 맛있다고 엄마도 이거 넘 맛있다고... 하는데.. 기분 좋으면서도 울컥하고 뭔가 짠하더라... 삼십여년 아니 거의 사십여년을 함께 살며 엄마가 해주는게 너무 당연했던 삶에서 ... 오롯이 나혼자만의 삶을 살아내는 이 때... 엄마 아빠를 초대해 특히 엄마를 손하나 까딱 하지 않게 하고 나 혼자 좁아터진 주방에서 이것 저것 해대는 이 것이... 이 상차림이... 이렇게 행복한 일인줄을... 이제라도 알게되어 감사하다 소고기 네팩임몀 되겠지? .... 라고 생각했던 착각의 늪 1단계!! 성장기 남자 생명체를 키우는 여자 생명체는 그 생명체는..... 평범하지 않다는걸 미리 알아야 할 필요는 있어.... 기껀 둘째아들은 밥 맥여거 대리고 오라 했건만..... 새우를 버터와 다진마늘에 올리고당 까지 넣어서 버무려 에프에 구웠는데.... 이간 그냥 간식이지... 라는 맨트를 듣는 순간... 하 ... 그냥 게임 접고 실생활 더블로 가~~ 는 이미 우리의 삶 속에서 행해져 왔음을.... 그들은 몰랐던거지.... 더블이 다가 아녀~~<< 그렇게 소고기 4팩은 퀴즈를 맞힐 겨를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고기를 순삭하고나서 우리는 ... 우리의 이십년 단골 빵집의 케익으로 마무리!! 아빠와의 불화합(?)을 말하자면 5박 6일 이상이 필요한 나의 아픈 이야기지만... 그 아픈 이야기 속에서도 전지적 아빠의 시점을 알게되면서... 그 때의 아픔은 나만의 아픔이 아닌 표현이 서툴었단 아빠의 두 세배의 아픔이었음을 알게되었다는.... 그런 통속적이지만 나에게는 짠한 이야기... 아 TMI TMI ....... 그렇게 서로 어색하기 짝이 없지만 그 사랑은 남달랐던 내 삶을 통털어 어색한 어휘를 구사하고 때로는 반어법과 대조적 어휘를 수능 뺨치게 구사하며 속을 뒤집던 나의 아빠는... 그 싱거운 국도 맛있다... 고기도 맛있다.... 새우는 너무 맛있다를 연발하시는데.... 나는 기분이 좋으면서도 아팠다... 나를 이렇게나 사랑하시는구나.... 나에게는 이렇게라도 표현하시는데..: 엄마한텐 그렇게 못하심이... 그래도 딸이라는 감투로서 서운했다....( 딸은.... 어쩔수 없는 엄마편) 평소 내가 즐뎌 먹던 에어프라이용 치킨을 구워 내면서 난 어쩌면 "뭘 아런걸 돈주고 사먹냐?" 할줄 알고 쫄아 있었는데...... 이거 넘 괜찮다 이런게 있었냐 엄마좀 사주라 하는 그런 말들이 난 너무 좋았다 " 어 엄마 이거 진짜 괜찮아? 내가 배송 시켜줄게...:" 난 이 말이 너무 감사하고 고맙다 내가 지금 이순간 숨을 쉬고 우울이라는 쌩 지랄을 떨 때도... 나는 나의 부모로부터 왔음은.. 부정 못할 감정이지싶다 다 떠나서 .... 나를 힘들게 키워 왔던 부모님을 내가 힘들게 번 돈으로 모셔보면... 그게 결코 힘든 혹은 돈이 아까운 일이 아님을 알게 될거다... 부모니까....: 반대로 우리 부모님들은... 자식이니까 내새끼니까... 하면서 어쩌면 세상의 기준은 이해못할 일들을 해내오셨을거다... 내 새끼니까.... 하고 .... 부모님이라는 그 존재는.... 나라는 하찮고 세상에서 핫한 존재가 아닐지라도 세상에서 최고라고 생각하는 ... 그런분 이시구나..
김장 ..(feat.노동주의 힘이란...)
해마다 이맘때면 찾아오는 명절 증후군 보다 더 오지고 지리는 그분.... 김 to the 장 요즘 젊은 주부들은 그냥 김치 사먹거나... 그래도 김장은 집에서 해야지 하는 사람들도 절인 배추를 사다가 한다 하드만... 우리집은 ..... 아예 배추를 심는다 그나마 하찮은 좝이라도 있는 나는 밭에까지 소환 되지는 않는다 엄니 아부지와 언니가 밭에서 배추와 무를 뽑고 대충 다듬어 집으로 배송하면 이제 그때부터 나의 김장헬게이트는 열린다 어서와 올해는 140 포기야~~~ 그나마 올해는 너무 갑작스럽게 잡힌 일정탓에 엄니 혼자 배추를 절궈놓으셨고 언니와 내가 급하게 투입되었다 작년에 배추 씻다가 정말 허리가 아작나고 다음날 움직이지도 못했던 추억으로 우리 둘은 욕실을 한가득 메운 140포기의 이분 혹은 사분으로 나눠져 최소 400개 정도되는 아이들을 쳐다보며.... 언니.... 이건 도저히 맨정신으로 할 짓이 못된다... 맞지? 그럼..... 우리 작업 시작전에 노동주 한잔 때리뿌까? 콜~~ 그리하여 우리둘은 츄리닝 바람으로 동네 봉구비어에 가서 크림맥주 두잔과 소주 한병을 시켜 션하게 말아 묵고 한시간 수다 떨고 편의점 들러 내사랑 스텔라까지 둘러메고 집으로 고고 밤 12시 반부터 배추 3단 목욕 타임 스따뜨~~~~~ 욕조에서 신안 출신의 간수빠진 소금으로 파바박 절궈진 아이들은 1차 다라이에서 흔들어 씻기고 2차 다라이에서 말끔이 헹군 후 바구니에서 잠시 물기를 뺀 후 대왕 소쿠리에 가지런히 담긴다 캬 역시 노동주의 힘은 대단쓰 하나도 힘든줄을 모르겠더이다 ㅋㅋㅋㅋㅋ 반 정도 하고 중간 노동주 타임 ㅋ 맥주 한깬 뽀사먹고 술김에 노동노동 진정 몸쓰는 노동자들이 왜그리 술을 마셔야만 하는지를 몸소 깨달았달까..... 그렇게 배추를 다 씻어 쌓아놓으니 새벽 두시가 넘었다 길건너 사는 언니는 즈그 집으로 퇴근 엄니와 나는 속을 버무린다 아까 미리 썰어놓은 무, 쪽파, 갓, 사과 , 배에 아부지가 여름내 밭에서 키운 고추를 엄니께서 일일이 실로 엮어 베란다 밖에 널어 말린 백퍼 태양초 고춧가루를 넣고 마늘 생강 찹쌀풀 까나리액젓 매실액기스 생새우 새우젓 넣고 버물버물~~ 아 이게 또 보통 힘든작업이 아님 은근 쌔빠짐 그렇게 준비를 다 해 놓으니 새벽 세시 반.... 난 집이 걸어서 삼십분이고 버스는 이미 영업종료 했고 집에 가면 분명 못일어날게 뻔하기에 엄니집에서 합숙 ㅋ 아침 7시에 일어나 아침 든든히 먹고 9시 애들 학교보낸 언니 합류하여 본격 속넣기 시작 내가 배추속을 넣는건지 배추속이 날 넣는건지를 모를만큼 배추와 내가 혼연일체가 됨을 경험하며 노동노동 어느덧 점심때... 김장 날 하면 바로바로 수육 캬~~~~~ 때깔 보소 수육에 또 소맥 찐하게 말아 잡수니 힘듦이 싹 잊혀지는 느낌적 느낌 이맛에 김장한다 진짜 !! 점심먹고 좀 쉬고나서 마지막 피치 끌어당겨 배추속을 야무지게 넣고 떨어진 배춧잎들과 남은 양념 싹싹 긁어모아 겉절이로 대망의 2019김장 완료!! 잠깐의 TMI -이 망할 오빠놈이 바쁘다며 김치통을 안갖고 온거임 하놔 새언니가 김장 같이하는건 이젠 바라지도 않음 김치통이라도 갖고 오라고 ㅠㅠ 속 넣으면서 바로 김치통에 담아야 편한데 저 오빠놈 때문에 울엄니 일 두번했음 모든일을 다 끝내니 오후 3시 잠을 못자고 고된 육체노동을 했더니 잠이 쏟아진다 하.... 나의 불면증은.... 몸땡이가 편해서였구나를 깨닫게 되었음 과외 일요일로 미루고 바로 기절 눈뜨니 밤 9시 사실 이날 아침 일어나 세수도 안하고 바로 일했고 죙일 양념냄새가 온몸에 베어서 간만에~~~ 거품목욕~~~~ 다행히 내가 전에 사다놓은 버블바가 욕실 장 꾸석에 있길래 거의 일년만에 기분좀 내봤음 뜨끈한 물에 들어앉으니 정말 몸이 노곤노곤 그렇게 올해도 엄마랑 언니랑 나는 셋이서 배추 140포기 김장을 해치웠다!! 장하다!!
일기쓰기 / 에세이 쓰기 같이 해보실 분 구합니다~!
안녕하세요! 빙글을 잠깐 쉬었는데 오랜만에 들어와보니까 드로잉 모임도 있고 필사 모임도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제 관심사에 맞게! *에세이 쓰기 / 일기 쓰기* 모임을 열고 함께 하실 분들을 구할까합니다! 저는 사실 에세이(?)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쑥스러운,, 일기같은 글을 쓰는 걸 좋아하는데요. 어쨌든 모든 글이라는 것은 '나'에 대한 글쓰기라고 생각합니다. 글을 잘쓰는 방법이 무엇이냐! 저도 아직 잘 쓰지 못하지만, 가장 첫 번째가 일단 책상 앞에 앉아서 무슨 글이든지, 자판 위에 손을 올려놓고 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주 유명한 작가들 마저 매일 시간을 정해두고 글이 나오든 안나오든 4시간 5시간씩 책상 노트북 자판 위에 손부터 올려둔다고 하죠! 여러분은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시나요? 집중하지 않으면 휙휙 흘러가버리는 하루하루를 보내기 쉬운데, 우리의 삶에서 진짜 나 자신과,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모른다면 너무나 슬프지 않을까요? 솔직하게 내 마음의 단어를 하나하나 눌러담아 적다 보면 항상 새롭게 저에 대한 발견을 하게 됩니다. 일단 제가 생각하는 에세이 쓰기 모임 방식은, 일주일에 1번-2번 정도 주제를 하나 정한 후 시간을 정해서 (오후 5시부터면 다같이 오후 5시에 글을 쓰기 시작) 30분-1시간 정도의 시간을 투자해서 짧든, 길든 에세이 한 편을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하지만 세부적인 부분들은 같이 정해봐요! +일기, 에세이를 비롯해서 시 등 창작문예의 어떤 방식이든 상관 없을 것 같아요! 먼저 저는 국문학과 출신이었어요. 그래서 글을 많이 쓸 수밖에 없었고, 어찌되든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고 싶은 마음입니다! 글이라는 것이 솔직하고 담백하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담는다면, 우열이라는 건 없기 때문에 서로 평가하지 않고 생각과 각자의 시선을 나누면 될 것 같아요! 그러니까 부담가지지 마시고 참여하시라고요! 저도 그냥 있으니까 너무 글을 안써서 같이 서로 독려하며 글을 써볼 분들을 기다립니다. 제발! 댓글을 달아주신다면, 모임을 만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일기를 매일 꼬박꼬박 쓰는 걸로 유명한 아이유와 작가 김중혁씨의 대화를 남깁니다. 단속적인 자아. 매일 변하는 내 자신이 궁금하지 않나요?
#6 필사모임 <쓸모있씀!> 여섯번째 카드 ❄️
어제 첫눈이 왔다던데 보셨나요?! 전 어제 창문을 꽁꽁 닫아두는 바람에 눈이 오는줄도 모르고 집에 있었어요 ㅎㅎ 이제 2019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게 실감이 나는 요즘이에요. 지금처럼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는 날에는 꼭꼭 감기 조심하셔야 합니다! ☃️ <오늘의 문장> 지금처럼 추워지니 생각나는 영화가 있어요. 바로 <리틀 포레스트>인데요. 계절이 바뀌는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있어서 특히 날씨를 많이 타는 겨울에 생각나더라고요 ㅎㅎ 위로가 되는 대사가 많은 영화라 오늘은 리틀포레스트에 나온 명대사들을 들고와봤습니다. 그 날,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이 말 하나는 기억난다. 도망친게 아니라 돌아온거라고. 그렇게 바쁘게 산다고 문제가 해결이 돼? 재하 말이 맞다. 가장 중요한 일을 외면하고, 그때그때 열심히 사는척. 고민을 얼버무리고 있는 것 말이다. 긴 겨울을 뚫고 봄의 작은 전령들이 올라오는  그때까지 있으면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것보다는 분명 의미있는 시간일거라고 믿어. 여러분에게 특별히 위로를 주는 영화가 있나요? 기억에 남는 영화 대사가 있다면 적어주세요. 여러분의 인생 영화 명대사가 궁금합니다! : ) 참여방법 신규 참가신청 언제든 참여신청 가능합니다! 신청 댓글을 쓴 뒤, 가장 최근 필사카드부터 참여할 수 있어요. <쓸모있씀!> 모임 톡방 톡방에 들어와서 인사말을 남겨주시면 새카드알림을 받을 수 있어요! + 참가신청은 하셨지만 아직 한번도 오지 못하신 분들! 😭 오늘도 댓글에 소식이 없으시면 다음 카드에는 멘션알림이 가지 않아요 ㅠㅠ 오늘은 꼭꼭 참여해주세요~~!!! 당신을 기다립니다,, 💓 @hes820 @mundysk @cheeu9193 @jinhoSung @hinajang @steven0902 @glasslake @Shinsy0816 @cool2hj @rndudgml @eun7858 @pgik8568 @wjlove0629 ++ 알림을 꼭 켜두어야 새카드 알림을 받을 수 있어요!! 빙글 내프로필 -> 오른쪽 상단 톱니바퀴 아이콘 -> 푸시알림 -> 내 소식 '나를 언급할 경우' 알림을 꼭 켜주세요!!!
고양이와 남편의 숨막히는 기 싸움ㅋㅋㅋㅋ
몇 년 전, 니콜 씨는 귀여운 당근색 고양이 캐롯을 입양했습니다. 캐롯은 니콜 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빠르게 적응해갔습니다. 하지만 캐롯을 견제하는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니콜 씨의 남편이었습니다. 집안의 2인자 자리를 두고 니콜 씨의 남편과 치열한 기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캐롯은 부엌의 창을 모두 연 다음 냉장고에 붙은 자석을 앞발로 휘저어 모두 바닥으로 떨어뜨렸고, 남편은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며 어지렆혀진 현장을 다시 정돈하곤 했습니다. 캐롯은 자신이 어질러놓은 부엌을 부지런하게 정리하는 남편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미루고 미뤄왔던 캐롯과 남편의 불꽃 튀는 정면 승부가 펼쳐졌습니다. TV에 환한 햇빛이 반사되자 남편이 블라인드를 내렸습니다. 그러자 캐롯이 블라인드를 다시 올리며 남편을 자극했습니다. 남편도 지지 않고 곧장 블라인드를 다시 내렸습니다. 둘은 블라인드를 두고 한참 동안 실갱이 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캐롯이 한 수 위였습니다. 이대론 싸움이 길어질 것 같다고 생간한 캐롯은 블라인드를 두 개씩 열기 시작한 것이었죠. 두 사람의 기 싸움을 지켜보던 니콜 씨는 이 장면을 목격해 영상으로 촬영해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두 어린아이가 서로 싸우고 있네요. 둘 다 사고만 치지 마세요." P.S 남편이 3개씩 열면서 응수하지 않아 다행 꼬리스토리가 들려주는 동물 이야기!
잘 살자 어떤 땅에서든
지난 주말 형의 결혼식이 있어 프랑스에 온 지 2주 만에 서울에 다녀왔다. 낯선 땅에 더구나 집도 아닌 숙소에 엠마를 혼자 두고 가는 일이 마음에 걸리고 티켓을 끊을 때만 해도 집을 구할지 어떨지 확신이 없어서 최대한 서울에 머무르는 시간을 줄였다. 금요일 밤에 사를 드골 공항에서 출발해서 토요일 밤에 인천 공항에 도착하고 다시 월요일 새벽에 인천 공항에서 출발하여 월요일 저녁에 사들 드골로 돌아오는 그야말로 미친 일정이었다. 그 덕에 나는 4일 동안 서 있는 시간보다 앉아 있는 시간이 더 길었고 근육이 약해진 때에 입주 청소까지 하느라 종아리 근육이 상해버렸다. 무엇이든 혼자서 애써 보는 게 우리 집안의 고집이고 그래서 뭐든 결국은 느리게 되어 버리는 형과 나는 서로 함께 사는 동안은 고장 난 시계를 걸고 살아 애타는 마음만은 죽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형이 뒤늦게 갑작스레 결혼을 한다니 늦은 오후에 잠에서 깬 듯 기분이 이상했다. 높은 구두를 신고 ‘신랑 입장’을 하는 형의 모습을 아슬하게 바라보면서 사람이라는 포물선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저 바보처럼 떨어지고 마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중력 안 있는 것들이 멀리 날아가기 위해서는 결국 떨어지는 일은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거였다. 사람이라는 평범한 신체 속에 우주 같은 마음을 담고 오르다가 결국은 떨어지면서 붙잡은 기록을 넘겨주고 가는 일인걸. 형은 애써왔고 나는 그래서 이제는 형이 떨어지면서 결정해가는 기록에 기꺼이 박수를 쳐 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나는 요즘 낯선 곳이라 그런지 밤마다 꿈을 자주 꾼다. 형의 결혼식을 위해 파리를 떠나기 전날 아버지가 도둑질을 하는 꿈을 꿨다. 아버지는 누군가의 집에서 값진 물건을 발견하고는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들고 일어서다 주인과 눈이 마주치자 별 다른 핑계도 둘러대지 못하고 그 값진 것을 제자리에 놓아두고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왔다. 바보 같았다며 분해하던 그는 이번엔 꼭 그 값진 것을 들고 나오겠다며 엄마와 형 나까지 데리고 그 집 앞으로 갔다. 나쁜 일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그는 지나가는 개와 고양이에게서도 시선을 피하며 반나절을 넘게 우리를 더 많이 바라보며 시간을 죽였다. 마침내 그 값진 물건 앞에 서게 된 그는 꿈에서도 바보인지라 괜한 생각들을 이어가며 괴로워만 할 뿐이었다. 나와 형과 엄마는 더 주린 배를 안고 그를 기다리고 서 있었지만 그는 우리의 생각보다 더 무거운 자신의 생각들을 결코 죽이지 못했다. 우리는 결국 빈손을 얇은 주머니에 찔러 넣고 적당히씩 떨어진 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 밤 등을 돌린 아버지 나는 서로 다른 생각을 했겠지만 낯선 곳에서 잠이 깬 나는 온통 그의 마음속에 있는 것 같았다. 싫은 곳에 굳이 가고 싫은 일이라도 하려고 했었구나. 불쌍한 사람. 아버지의 싸움들. 자신의 우주와 굶주리는 욕심이 많은 우리들 사이에서 무엇하나 잘하지 못하며 휘청거렸던 그의 70년. 나는 이젠 그런 아버지의 등을 귀엽게 바라 봐주겠다. 자주 싫은 곳에 가고 자주 싫은 일을 하려 마음을 먹긴 했겠구나. 4일간의 일정이라 큰 가방도 없는데 굳이 리무진 버스를 태워주겠다며 엄마와 아빠가 함께 새벽 골목을 따라 내려오셨다. 버스가 올 시간이 되어가자 난 미리 인사를 하려고 아버지 손을 잡았다. 아버지는 버스가 오도록 그 손을 놓지 않으셨다. 따뜻하고 큰 손. 돌아가는 비행기, 잠도 오지 않아 죄와 벌을 읽다가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와 메모를 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에게는 어디든 갈 수 있는 곳이 한 군데라도 필요한 거니까요…….” 돌아갈 곳이 있어 나는 기꺼이 떨어지는 일을 기다린다.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싸움들을 피할 수는 없겠지.. 나는 때로는 엠마에게 어리광을 부린다. ‘대단한 예술가가 되려고 했었는데 나를 봐봐’라는 듯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부빈다. “하자.”라는 말을 듣고 나는 마음을 놓는다. 끝까지 흔들릴 수라도 있길. 아버지가 우리를 위해 그 값진 것을 가져오지 않는 것이 나는 정말 고맙다. 막내가 바보라고 놀리는 그의 지금 모습이 나는 고맙다. 붉게 빛나는 사를 드골 공항에 건조해진 비행기가 낙엽처럼 내렸다. 내내 먹통이던 핸드폰을 켜자 엠마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나를 마중 나왔다는 것. 복잡한 공항 건물에서 헤매다가 마침내 내가 갈 수 있는 곳을 만났다. 또한 내가 싫은 일을 하게끔 하는 곳도 함께 만났다. 생각보다는 감정으로 우리는 빠른 포옹을 나눴다. 돌아가는 기차는 지겹지가 않았다. 얼마가 아슬하게 고생을 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다시 왔는지. 큰 얘기보다는 그런 이야기들이 언제나 더 따뜻하고 맛있으니까. 잘 살자 어떤 땅에서든. W, M 레오 2019.11.06
100년은 기본! 세계의 오래된 가게 BEST 7
작년부터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복고 열풍을 타고, 컨셉이 아닌 '진짜' 복고 즉, 노포를 찾는 이들이 많아졌죠 :) 짧게는 수십 년에서 길게는 백 년까지... 오랜 전통과 맛을 이어가며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노포! 이런 오래된 가게들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데요. 소설가 헤밍웨이의 단골 레스토랑부터 희대의 바람둥이 카사노바가 즐겨 찾던 카페까지~ 100년은 기본, 300년 가까이 운영되고 있는 세계의 오래된 가게들을 소개합니다 :D 세계의 오래된 가게 BEST 7 01. 카페 플로리안 첫 번째로 소개할 곳은 무려 3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곳입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에 위치한 카페 플로리안! 카페 플로리안은 무려 1720년에 문을 연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라고 하는데요. 특히 이곳은 희대의(?) 바람둥이 카사노바가 즐겨 찾던 곳으로도 유명하답니다. 탈옥한 후 곧장 플로리안에 들러 커피를 마시고 갔을 정도라고 하네요 :) 이곳의 인기 메뉴 역시 카사노바가 즐겨 마셨던 민트 초코와 핫초코! 진-한 초콜릿의 맛과 이탈리아의 역시를 함께 느껴보세요. 02. 보틴 카사노바의 단골 카페를 둘러봤다면, 이번엔 헤밍웨이의 단골 레스토랑으로 떠나볼까요? 스페인 마드리드에 1725년 오픈한 보틴을 소개합니다 :) 보틴은 기네스에 등재된 가장 오래된 레스토랑이라고 해요. 오래된 레스토랑인 만큼 엔틱한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곳이랍니다. 이곳의 인기 메뉴는 새끼 돼지를 통째로 구워낸 코치니요 아사도와 샹그리아라고 해요. 1층은 엔틱한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고, 지하는 동굴 형식으로 되어 있다고 하네요. 인기가 많은 지하 자리는 예약 필수일 정도! 기네스에 등재된 가장 오래된 레스토랑에서 스페인을 맛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03. 두이추(도일처, 都日处) 다음은 1738년, 200여 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만둣집입니다. 베이징에서 가장 오래된 만두 전문점인 두이추(도일처). 두이추는 청나라 황제 건륭제가 산책을 나왔다가 만두 맛을 보고 반해 직접 이름을 지어준 것은 물론 간판에 새겨진 글씨도 직접 써줬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는 곳이랍니다. 도일처는 아주 얇은 만두피로 빚은 샤오마이가 대표메뉴인데요. 그 모습이 마치 한 송이의 꽃과 같이 보이죠? 꽉 찬 소에 촉촉한 육즙... 한 입 먹는 순간, 건륭제의 심정이 이해가 가는 맛! 04. 네르보네 우리나라에서도 즐겨 먹는 곱창! 이탈리아 피렌체에서도 오랜 시간 곱창을 즐겨 먹었다고 하는데요~ 바로, 1872년부터 피렌체 중앙시장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네르보네입니다 :) 이곳에서는 곱창 버거(람프레도토)를 맛볼 수 있다고 해요. 딱딱한 빵 사이에 곱창을 꽉 채워 넣고 바질 소스와 매콤한 비칸데 소스를 곁들여주는데, 이 매운 소스가 느끼함을 잡아주는 비법이라고 하네요. 곱창이라는 식재료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오랜 시간 현지인들에게 사랑받은 만큼 한 번쯤 맛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네요! 05. 뉴욕 카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카페를 소개합니다. 바로,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1894년 오픈한 뉴욕 카페! 뉴욕 카페는 천장 벽화, 크리스털 샹들리에, 대리석 기둥 등 유럽 왕실 못지않은 화려한 실내 장식으로 유명한 곳인데요.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져 웅장함과 화려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곳이랍니다 :D 그 당시 예술가들이 뉴욕 카페에서 예술적인 영감을 받고 작업에 몰두했을 만 하죠! 2001년부터 2006년까지 리모델링을 거쳐 재개장한 이후에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데 뉴욕 카페. 이 정도면 카페를 넘어 문화유산이라고 해도 될 것 같네요. 06. 평산옥 유난히 노포가 많은 도시 부산. 부산에서도 100년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평산옥. 1890년 문을 연 이후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는 수육의 살아있는 전설과도 같은 곳이랍니다. 메뉴는 수육과 국수 단출한 구성이지만, 야들야들 잘 삶아진 수육에 뜨끈~한 국수 한 그릇을 맛보기 위해 많은 이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해요. 수육과 국수 소주 한 잔! 이제 바로 한국인의 소울 푸드가 아닐까요? 07. 이문 설렁탕(이문 설농탕)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이 생각나는 요즘 찾아가기 딱 좋은 곳이죠. 마지막으로 소개할 곳은 이문 설렁탕(이문 설농탕)입니다. 100여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노포 설렁탕집인 이문 설렁탕은 1904년 개업하여 대한민국 첫 식당으로 공식 기재된 곳이랍니다. 인공의 맛이 첨가되지 않은 슴슴하고 맑은 국물에 잘 익은 김치와 깍두기를 한 점 탁! 올려 먹으면 아... 이게 바로 100년의 내공인가 싶은 느낌! 짧게는 100년, 길게는 30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사랑받는 곳들을 함께 알아보았습니다.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까지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노포! 볼로와 함께 세계의 오래된 가게들로 의미 있는 여행을 떠나보시는 거 어떨까요 :D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 ▶ http://bit.ly/2CLDGE5 ▶ http://bit.ly/2CIB2Pu ▶ http://bit.ly/2NPy95W ios : https://goo.gl/kj0EjD android : https://goo.gl/X3xykZ
그만이 조용히 열차에서 내렸다
Il fait beau. 드물게 맑은 날이었다. 햇빛이 색들을 제대로 드러내는 그런 맑은 아침이었다. 요즘은 파리에 제대로 적응을 했는지 자정이 훨씬 넘어서도 좀체 잠들지를 못해 아침마다 큰 전투를 치른다. 마치 수련회의 밤처럼 몇 초 간의 침묵이 이어지다가도 한 명이 말을 꺼내고 잠잠해지면 또 다른 한 명이 말을 꺼내고 하며 영화를 미련처럼 끌고 가는 것. 대단한 얘기들은 아니다. 그냥 학교의 같은 클래스의 누군가를 흉내 내거나 선생님의 흉내를 내곤 한다. 매일 반복되는 레퍼토리인데도 그게 또 너무 재밌다고 ‘미쳤다’ 며 웃고 한다. ‘Bonjour! Bonjour!’ ‘Ça va?’ 하는 인사말 같은 것들이 아이들처럼 귀에도 입에도 머리에도 마음에도 새로워서 자꾸 꺼내서 사탕처럼 빨곤 하는 것. 그러다가 자려는 어떤 마음도 먹지 않다가 갑자기 필름이 끊긴 듯 한쪽이 잠이 들면 다른 이는 놀라운 고요 속에서 이런저런 깊은 생각도 해보곤 하는 것. 언제나 답은 듣지 못하고 그만 멍하니 원치 않는 알람 소리만 듣고 만다. “학교를 가야겠지?” “응, 근데 죽을 거 같아.” 정말 못 가겠다고 머리를 파묻으면 엠마가 발을 올리고 엠마가 모르겠다며 머리를 파묻으면 내가 슬리퍼에 발을 욱여넣어 우리는 아슬한 출석률을 유지하는 중이다. 출석률이 너무 떨어지면 파리에 더 있고 싶어도 체류가 거절될 수 있기에 아침마다 그리고 점심을 먹은 후에도 늘 마음을 누르려고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안돼.” 드물게 맑은 날이었다. 환해서 왠지 비어 보이는 파리의 거리는 코가 따가울 만큼 기온이 떨어져 있었다. ‘서울만큼은 아닐 거야’라고 위로를 해보지만 파리의 겨울도 점점 만만치 않게 식어가는 중이다. 잠을 덜 깨고 오는 20대가 훨씬 넘은 어른들을 깨우려고 선생님은 목으로 심벌즈를 다 치신다. 한 글자 한 글자가 귀를 열고 들어온다. 아직은 모르는 말들이 너무 많아서 수업은 지겨울 새도 없이 끝이 난다. “Merci, Au revoir.” 매일 외식을 하면 생활비가 감당이 안되기에 점심은 다들 간단히 샐러드나 덮밥, 시리얼이나 빵을 싸와서 학교의 휴게실에서 먹곤 한다. 나이지리아에서 온 친구는 컵라면을 자주 먹는다. 처음에는 라면의 냄새가 다른 나라에서 온 친구들에게는 힘겹게 느껴질까 봐 참곤 했는데, 다른 나라 친구들이 컵라면을 사 와서 먹는 모습을 보고 난 후론 가끔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한인마트에서 컵라면을 사 와서 먹곤 한다. 오늘은 날씨도 춥고 해서 컵라면을 사려고 한인마트로 가기로 했다. 은행도 들르고 해야 할 것들이 있어 엉덩이를 깃털처럼 날리며 현관문을 열고 거리로 나갔다. 학교에서 왼쪽으로 나 있는 뾔쁠리에 거리를 따라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총총걸음을 걸었다. 순간 우리의 앞을 매끄럽게 가르는 들것이 나의 눈에 들어왔다. 학교에서 채 몇 분이 안 되는 거리에 쁘히베 데 뾔쁠리에 헝세 썽떼 병원이 있기에 구급차에 실려 온 응급환자인가 했지만 구급차는 그러기에는 병원에서 조금 멀다 싶은 곳에 마치 볼 일을 보러 온 사람의 것처럼 주차가 되어 있었고 들것은 한 명의 손에 너무 천천히 굴러가고 있었다. 덩치를 그리듯 달라붙어 있는 짙은 녹색의 비닐 백, 머리까지 채워진 검은색 지퍼. 그렇다. 지금 적당히 꿈처럼 부유하는 무릎도 아프지 않은 우리의 총총걸음 앞에 죽음이 흘러가고 있다. 바퀴는 소리도 내지 않았고 타이밍도 좋아 우리의 걸음도 바쁜 차들의 진행도 하나 끊어내지 않고 너무도 잘 보이면서도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이미 단단히 닫힌 죽은 이가 지나가고 있었다. 분명 죽음이 있지만 아무도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추위에 속도 붙은 걸음으로 은행까지 멈추지 않고 걸었다. 정오인데도 햇빛은 서서히 기울고 산책 나온 강아지들도 너무 많아 징그러운 비둘기들도 십 년을 훨씬 넘은 파리의 차들도 우리도 멈추지 않고 그만이 조용히 열차에서 내렸다. 인터넷에 이름이 뜨면 읽지 않아도 이유를 알 수가 있다. 여행을 하는 곳에도 구걸하는 이들, 몸을 내던지는 이들, 조용하거나 시끄러운 죽음들이 가득하다. 오히려 너무 많아 죽음조차 꿈처럼 흐릿하게 보인다. 가다 갑자기 덜컥 주저앉아도 이상할 게 없는 시절이다. “죽음이 실감 나지 않으면 정말 위험한 거야.” 끝이 없는 실로는 한 땀도 꿰맬 수 없다. 나는 끝이 날 것이다. 그러니 몰라도 써야 할 때가 곧 온다. 똑똑하지 않아도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아도 이름 아래로 묻히는 끝내지 못한 끝나버린 글들. 하지만 난 아직은 매일 밤 꿈을 꾼다. 웃긴 꿈도 이상한 꿈도. A 눈이 심판처럼 오는 날이었다. 서울은 통제 불가능으로 모두가 서둘러 뭐든 잡아 타고 서울을 벗어나고 있었다. 나는 버스를 얻어 타고 대피를 하고 있었는데 버스가 그만 눈에 파묻히고 말았다. 헛바퀴 굴리기를 여러 번 끝에 운전수는 버스를 포기한다고 선언했고 우리는 금방이라도 얼 것 같은 날씨를 뚫고 어디까지 걸어야 할지 막막했다. 눈이 버스를 점점 눈 아래로 파묻어 갔다. 사람들은 허리보다 높은 눈을 해치면서 길을 서둘렀다. 그때 누군가가 버스의 앞바퀴 쪽의 눈을 온몸으로 파헤치기 시작했다. 재난을 불러온 눈을 사람의 힘으로 이기기에는 무리였지만 그는 의미 없는 몸짓을 반복했다. 몇 사람이 의아함을 품고 돌아가 그에게 물었다. “의미 없어요. 이러다가 죽어요.” “안돼요. 난 엘지 트윈스를 버리고 갈 순 없어요.” 그렇다. 버스는 엘지 트윈스의 구단 버스였다. 그의 어이없는 말에 몇몇의 남자들이 감동하여 달려와 그와 함께 바퀴를 파묻은 눈을 온몸으로 파헤쳤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으면서 일어났다. B 하루는 엠마와 함께 육군사관학교를 다시 가는 꿈을 꿨다. 남녀 생도는 각 방을 쓰지만 왠지 모르게 우리는 룸메이트였다. 그날은 육사에 연예인들이 방문을 해서 떠들썩 한 날이었다. 문득 점호시간이 되었고 우리는 어떤 준비도 없이 점호를 받았다. 상관이 들어오자 나는 버릇처럼 ‘필승’ 이라며 경례를 했다. “공군에서는 필승인지 몰라도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기합을 받았다. 엎드려뻗쳐를 하는데 침대 밑으로 수북한 먼지가 보였다.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상태 불량, 복장 불량, 태도 불량, 관등성명 불량!” 우리는 땀을 뻘뻘 흘리며 기합을 받았다. 간신히 점호가 끝나자 옆방의 한 학년 선배가 우리를 위로를 해주러 방을 방문했다. “필승. 아, 충성.” “괜찮아. 아직 익숙하지 않지?” 선배는 부드러운 말투로 우리를 다독이며 자신의 간식을 나눠줬다. “오늘 학교에 배우들 온 거 알아?” “이소라는 배우가 아니고 가수입니다.” 순간 선배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나는 끝이 없는 기합 끝에 나는 신음을 내며 일어났다. C 경찰서 안이었다. 한 스토커가 심문을 받고 있었다. 그는 형사의 심문에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었다. 지겨운 버티기가 이어졌고 형사들은 지쳐갔다. 그때 막내 형사가 각 자리의 쓰레기들을 수거해서 한데 모으고 있었다. 오래된 쓰레기 냄새가 방안에 가득했다. 그 순간 그 스토커의 신체가 변화했다. 그랬다. 그 스토커가 누군가의 방안을 몰래 훔쳐보는 곳은 그 건물의 쓰레기가 모여 버려져 있는 곳이었다. 나는 썸뜩하게 감탄하며 잠에서 일어났다. 매일 밤 꿈을 꾼다. 여전히 보고 싶은 게 많아서. 얼마 전에 갔던 오페라 가르니에는 너무 화려해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거대한 공간임에도 여백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계단과 난관 벽과 천장의 모든 곳에 장식과 무늬가 가득했다. 빽빽한 욕심들. 눈이 부신 색깔들. 샹들리에들. 꿈같은 천장화. 최고이고 싶은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 외부에서 점수를 벌어온다. 그래서 늘 외부에다 최고를 주문한다. “최고여야 해. 제일 크고 거대하고 눈이 부시게..” 최고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을 설득시킨 많은 ‘결과’ 들이 이곳에는 가득하다. 아주 오래전부터 여전히 지금까지도. 오페라 건너편에 있는 갤러리 라파예트에는 수백만 원은 기본으로 하는 명품들이 가득했다. 가격만큼씩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 있었다. 유명한 것들을 등 돌린 채 속으로 질투하던 나에게 이곳은 재판처럼 나를 온통 까발린다. 눈이 돌아가는 나를 욕심이 나는 나를. 나는 취한 듯 휘청이면서 걷는다. 마음에 물어보지도 않고서 감탄을 해버리고 할 수 있는지 가늠도 않고서 꿈을 꾼다. 정리를 해야 할 시기에 선이 보여야 할 시기에 나는 되돌아갈 듯 90도를 넘는 각으로도 흔들린다. 올 해가 이제 몇일이면 끝이 난단다. 한 해, 그 긴 시간 무엇도 들려주지 못했다며 미안해 해야 할 사람들이 있을까. 있다면 작은 카드를 보내드리리.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밥을 먹습니다 밥은 참 맛이 있습니다 밥을 먹으면 설거지를 합니다 커피를 마시면서 하늘을 봅니다 산책하면 좋을 날씨라 산책을 다녀옵니다 저녁 시간이 다 되어 다시 밥을 짓습니다 조금 더 든든한 것들로 준비를 해봅니다 밥은 참 맛이 있습니다 미루지 않기로 약속한 설거지를 합니다 커피를 마시면서 달력을 넘깁니다 잠이 들어도 잠이 들지 않습니다 조금은 늦잠을 자겠습니다 건강하시죠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글 영상 레오 2019.12.10 파리일기_두려운 날들이 우습게 지나갔다
마오리족의 하카를 아시는가?
혹시 여러분 '하카'를 아십니까? 하카는 뉴질랜드의 원주민인 마오리족 전사들이 전쟁을 앞두고 사기를 높이기 위해 추는 춤으로, 자신들의 힘이 더 강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에서 비롯되었음 제가 잘못했습니다. 항복하겠습니다. 각 부족마다 다른 형태의 하카를 가지고 있으며, 각 부족에는 성별과 상황에 맞게 다양한 하카가 존재하고, 뉴질랜드 학계에서는 전쟁을 위한 춤이 아닌 이웃을 환영하는 의미의 춤이라는 의견도 있음. 이를 반영하여 뉴질랜드 정부에는 국빈 방문하는 외국 정상 등 VIP가 방문할 때 추는 하카도 존재함 ㅇㅇ 뿐만아니라 생일, 결혼식, 축일 또는 족장, 높은 지위의 사람들의 장례식 등의 상황 등 모든 의식적인 상황에서 하카를 추기도 함 이렇게 들었을때는 띠용?하며 생소하게 느껴질수도 있지만 `모아나`의 마우이가 췄었던 그 하카 댄스 맞음ㅇㅇ 아쿠아 맨의 제이슨 모모아는 고향에 도착해 하카를 추며 눈물을 흘리기도 함 ㅠ "우리 폴리네시아인은 육지에 의해 나눠진 것이 아니며, 우리 모두는 물로 연결되어있고 바로 그것이 우리가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폴리네시아는 뉴질랜드, 하와이, 이스터섬을 잇는 지역 안에 있는 천여개의 섬을 가리키는 지역명임 귀여운 뉴질랜드 아가들의 하카 박력은 ㅇㅈ ㅠ 아래는 뉴질랜드 럭비 대표팀이 선보이는 하카 이거 진짜 렬루 지존 멋진 것 같음 ㅇㅇ 진짜 전쟁터로 나가는 전사들 같지 않음? 오졌다 눈빛 좀 보셈;;;; 야수들 아님? 영상으로 보면 진짜 개 지림 이건 위에 보여줬던 제이슨 모모아가 아쿠아맨 프리미어에서 하카를 추는 장면임 이건 분노의 질주 시리즈에서 아이들과 하카를 추는 드웨인 존슨 이번 영화에서는 마오리 문화가 많이 노출됨. 드웨인 존슨의 마오리 문화에 대한 애착이 느껴졌음 여기서 보면 제이슨 모모아도 그렇고 선수들의 팔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타투가 있을 거임 '트라이벌'이라는 타투의 장르인데 가장 오래된 문신장르라고 함 ㅇㅇ 부족별로 상징하는 것들을 문신으로 남긴다고 하는데, 실제로 제이슨 모모아의 부족 상징은 '상어'고 팔뚝의 문신은 상어 이빨을 뜻한다고 함. 저세상 간지의 제이슨 모모아와 드웨인존슨 성님 여기서 잠깐. 하카는 남자들만 출 수 있느냐? ㄴㄴ 그건 아님 하카 댄스는 성별에 구애받지 않으며, 여성들도 춤 럭비 월드컵에서 뉴질랜드 여성팀이 추는 하카 진정 지존 간지란 말임... 내가 상대팀이면 오줌 한 바가지 쌌다고 ㅇㅇ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여줄 하카는 개인적으로 눈물 버튼임 바로 뉴질랜드 뉴질 크라이스트처치 총기테러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전국에서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하카를 췄던 일이 있음 마오리 협회에서 크리스트처치 난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수행된 하카 춤이라고 함 Haka Koiora - Haka for life 삶을 위한 하카 Paiahahā, Paiahahā (Attention! Attention!) 주목하세요! He aha rā ka tāpaea ngā mahi kikino (Why do we wait for something bad to happen) - 왜 우리는 나쁜 것이 일어나길 기다리고 있나요! Ki te kūkūtia tātou katoa e? (To eventually come together?) 결국에 오게 될 거를요? Ia ha ha! E oho, kia tika rā (Wake up, be true!) 정신 차려요, 참됨을 가져요! Unuhia ngā here o te kino, (Strip away bad things like) 나쁜 것들을 없애버려요! Whakatakē, whakaparahako e (Negativity and belittling others) 부정적이고 다른 사람을 하찮게 만드는 것들요 Ko te pūtake o te whakaaro, he kaikir (because the underlining factor is racism) 중요한 사실이 인종차별이기 때문이죠 Takatakahia Hi (Stomp on it) 그걸 짓밟아 버려요 Wherawherahia Hi (Get rid of it) 없애버려요 Kia tū te tangata koia anake (So all that remains is your true person) 그래서 남아 있는 모든 것이 당신의 참된 사람이 되도록 해요 Ko au, Ko koe, ko koe, ko au, ko tāua e (I am you, you are me, this is us) 나는 너, 너는 나 이것이 우리죠 Ko te mea nui o te ao (The greatest thing in this world) 이 세상에서 가장 최고의 것은 He tangata, He Tangata, He Tangata e ('Tis people, 'Tis people, 'Tis people) ('tis = It's) 그건 사람들이죠, 사람들이에요. Hi! 남녀노소 모두 전통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그 것을 지켜나가는 마오리족의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멋져서 박수가 나옴 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