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panoll
500+ Views

‘만년 적자’ 하우스텐보스 탈바꿈 시킨 이 사람

...
...
“국내와 해외의 호텔 사업을 강화해 톱10에 진입하고 싶다. 이를 위해 유니조(UNIZO) 홀딩스와 제휴, 협력 관계를 깊게 하고 싶다.”

저가 여행사 HIS, 하우스텐보스 운영

일본 여행 레저그룹 에이치아이에스(HIS)의 사와다 히데오(澤田秀雄·67) 회장 겸 사장은 지난 7월 이렇게 선언했다. 그가 이끌고 있는 HIS는 일본 최대의 저가 여행사다. 매출의 90%를 여행 사업에서 거둬들이는 HIS는 나가사키의 테마파크 하우스텐보스도 운영하고 있다.

사와다 히데오 회장이 언급한 유니조 홀딩스는 일본흥업은행(日本興業銀行: 현 미즈호 은행)계 부동산 회사로, ‘유니조’(UNIZO)라는 브랜드의 호텔을 일본 전국에 25개 운영하고 있으며, 도쿄를 기반으로 부동산 임대 사업도 하고 있다.

오사카 태생인 사와다 히데오 회장은 저가 패키지 여행의 실질적인 개발자로 통한다. 그는 1980년 ‘히데(秀)인터내셔널 투어’(지금의 HIS)라는 회사를 설립, 일본 최대의 여행레저 그룹으로 키워냈다.

<사진= 나가사키의 테마파크 '하우스텐보스'(작은사진은 사와다 히데오 회장)>
...

‘기업 부활의 명인’ 사와다 히데오 회장

‘기업 부활의 명인’이라고 불리는 사와다 히데오 회장이 큰 주목을 받은 것은 2010년. 18년 연속 적자에 허덕이며 부도 위기를 맞은 하우스텐보스를 인수하면서다. 네덜란드 왕실에서 이름을 따온 하우스텐보스가 개장한 건 1992년이다. 도쿄 디즈니랜드의 세 배 면적 규모로 약 22억 5000만 달러가 건설 비용으로 투입됐다.

하지만 연간 5백만 명 방문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실적 부진을 겪었다. 그러다 2010년 4월 HIS의 사와다 히데오 회장이 문을 닫은 상태였던 하우스텐보스를 인수해 사장을 겸직했다. 명칭에 걸맞게 그는 리모델링 1년 만에 하우스텐보스를 흑자로 돌려 놓았다.

<사진= 나가사키 세계 최초의 로봇 호텔인 ‘헨나호텔’>
...

세계 최초 로봇 호텔 오픈이어 유니조 ‘작업’

그런 사와다 히데오 회장은 2015년에는 나가사키에 세계 최초의 로봇 호텔인 ‘헨나호텔’(헨나: 變な·일본어로 ‘이상한’이라는 뜻)을 선보여 또다시 화제를 불러 모았다. 이후 그가 중점은 둔 곳은 호텔업이다. HIS는 2023년까지 호텔을 100개(현재 운영 33곳)로 늘릴 방침이다. 2014년 부터 M&A나 제휴처를 모색하던 사와다 히데오 회장은 2018년 중순 유니조 홀딩스를 ‘점’ 찍었다.

업무 제휴를 타진한 유니조 홀딩스로부터 이렇다할 만한 답변을 얻지 못하자 HIS는 시장에서 유니조 주식을 사 모으고 4.79%를 보유,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그러곤 최근 TOB(주식 공개 매수) 형태로 제휴를 들이대며 유니조 홀딩스의 목을 조르고 있다.

표적이 된 유니조 홀딩스는 “일방적이고 갑작스럽다”며 반발하는 상황이다. 현재, 소프트뱅크 그룹 산하의 미국 투자펀드 포트리스 인베스트먼트 그룹과 또 다른 투자 펀드 블랙스톤 그룹도 TOB에 나서고 있다. 일본 업계는 “3개 이상의 회사가 TOB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라며 향후 유니조 홀딩스의 선택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에디터 김재현>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count, plural, =0 {Comment} one {Comment} other {{count} Comments}}
Suggested
Recent
Cards you may also be interested in
[투잇] 미국 vs. 일본의 로봇 대결이 성사됐다
로봇을 싫어하는 남자들은 없을 것 같습니다. 어릴 때 로봇이 나오는 만화를 보지 않은 사람을 찾는 것도 어려울 것 같고요. 그래서인지 IT 분야에서 끊임없이 연구되는 주제 중 하나가 바로 로봇입니다. 과거에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했던 이족보행 로봇이 이젠 장난감으로 만나볼 수 있을 정도로 대중화됐고 일본에서는 가정용 로봇인 페퍼가 판매되기도 했습니다. 세계 로봇 시장에서 두 축을 담당하고 있는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일본과 미국인데요. 최근 그 두 나라에서 만든 인간이 탈 수 있는 로봇을 만들었습니다. 일본의 탑승형 로봇의 이름은 쿠라타스(Kuratas), 미국에서 만든 로봇의 이름은 메가봇(MeagaBot)입니다. 사실 쿠라타스가 메가봇보다 형인데요. 쿠라타스는 2012년에 만들어져서 실제로 아마존에서 팔리고 있고 메가봇은 올해 겨우 프로토타입이 나온 상태죠. 그런데 지난달 말 미국의 메가봇이 한 판 붙자고 일본의 쿠라타스에게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1년 이내에 직접 만나서 한 판 붙고 진정한 승자가 누군지 가려보자는 것이었죠.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어제 쿠라타스가 그 도전을 받아들였습니다. 영상을 보면 쿠라타스 로봇을 만드는 스이도바시 공업의 대표인 쿠고로 쿠라타가 "재밌지도 않다. 어떻게 반응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며 너스레를 떨면서 "원래 거대 로봇은 일본의 문화다"라고 "그냥 크게만 만들면 다 로봇이냐?"라고 디스하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쿠라타스 로봇이 대결을 받아들였지만 몇 가지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먼저 대결 장소가 결정 나지 않았고 대전 규칙도 아직 불분명합니다. 무엇보다 파일럿의 안전 문제가 가장 큰데요. 탑승 로봇의 전투다 보니 싸우면서 생길 수 있는 부상 문제가 염려되는 게 사실입니다. 빙글러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큰 크기와 엄청난 파워의 페인트볼로 무장한 메가봇 vs. 초당 6000발의 BB탄 머신건과 빠른 기동력을 갖춘 쿠라타스 둘 중에 어느 쪽이 승자가 될까요? 저는 미리 팝콘부터 사놔야겠습니다.
100년 이상 일본 노포기업 3만 5018개(최신판)
... “1458개 기업이 새롭게 100주년 진입” 흔히 100년 이상된 가게나 기업을 노포(老舗)라고 부른다. 100년은 단순한 숫자를 넘어 전통과 자존심을 의미한다. 일류 명문대를 졸업한 자녀가 부모의 노포에 둥지를 트는 일이 흔한 게 일본이다. 이런 일본에서는 노포기업이 몇 개나 될까. 때마침 도쿄상공리서치가 2020년 최신판 노포기업을 발표했다. 도쿄상공리서치가 12월 2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창업 100주년을 맞는 일본 노포기업은 이토요카도(유통), 킨테츠 백화점 등 1458개사로 조사됐다. 도쿄상공리서치는 “2020년 새롭게 창업 100주년을 맞는 1458개사가 정식으로 노포기업에 진입, 2020년의 노포기업수는 3만 5018개가 된다”(新たに2020年に創業100年を迎える企業の1,458社が晴れて老舗企業の仲間入りし、2020年の老舗企業数は計3万5,018社になる)고 했다. 2020년에 창업 200주년, 300주년, 400주년을 맞는 대표적인 노포기업과 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820년 창업한 직물회사 이부키(伊吹, 교토), 불단 제조업체 에이라쿠야(永楽屋, 시가현) 등 15곳이 업력(業歴) 200년에 올라섰다. △직물업체 야시로니(矢代仁, 교토)와 사찰의 지붕공사를 전문적으로 하는 코지마고무덴(児島工務店, 오카아먀현) 등 4곳은 창업 300주년을 맞았다. △화과자점 토라야혼포(虎屋本舗, 히로시마현)는 유일하게 창업 400주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사찰 건축업체 곤고구미 ‘업력 1443년’ 최고 100년 단위를 넘어 ‘업력 1000년’이 넘는 노포기업도 상당수 있다. △가장 오래된 노포로는 사찰 건축을 전문적으로 하는 곤고구미(金剛組, 오사카부)가 있다. 578년에 창업, 2020년 업력 1443년을 맞는다. △그 다음으로 587년에 창업한 꽃꽂이법인 이케노보카도카이(池坊華道会, 교토)가 업력 1434년으로 그 뒤를 잇고 있다. △이어서 705년에 설립된 니시야마온천(西山温泉)의 게이운칸(慶雲館, 야마나시현)이 업력 1316년으로 3위에 올라있다. 717년 창업한 료칸 고만(古まん,효고현)도 업력 1304년을 자랑한다. <에디터 김재현>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611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제2의 비트코인! 세계최초 앱으로 암호화폐 채굴
최근 해외에서 핫이슈!!! 《세계 최초 모바일 코인채굴》 제2의 비트코인으로 평가되는 어플로 자동으로 코인채굴하는 파이코인을 소개합니다. 파이코인은 구글스토어or앱스토어에 들어가서 파이코인 (pi network) 검색하셔서 다운 받으실수 있습니다. 파이코인은 24시간마다 한번씩 확인만 해주시면 자동 채굴되니 배터리나 데이터 걱정 없이 편리하게 채굴할 수 있습니다. 1인 1계정 원칙으로 타 코인들과 같이 작업장 및 단체에 의해 시세가 조절되는 사태가 없을 거라고 판단되 더욱 경쟁력이 있을거라 전망됩니다. 파이코인은 스탠포드 대학 출신의 암호화폐 전문가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기에 신뢰할수 있습니다. 제 2의 비트코인으로 평가되는 파이코인의 기회를 여러분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아이디 만드실때 성,이름은 꼭 본인정보에 맞게 적어주시는게 좋습니다. 추후 KYC인증시 정보가 맞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할수 있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어플 다운 받으시고 추천자 코드 Simsuyong 추천 드립니다. 채굴 속도는 추천자와 가입자 모두 25%버프 있고요. 추천자이나 추천받는 사람이 채굴 중이여야 다른 사람도 채굴 버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추천할 때도 365일 접속중인 믿을만한 사람을 추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후 추천받은 사람과 추천한 사람들이 보안서클을 형성하여 상호보완 형태로 채굴 속도가 상승되는 방식이 적용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또 보안서클(채굴속도 2배 버프) 형성하는 방법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암호화 화폐에 관심 없으시더라도 한번 시작해 보세요.. 천만명 일억명...이용자가 10배수가 될 때마다 채굴량이 절반씩 감소되기 때문에 지금 바로 시작하셔서 남들보다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시길 바랍니다. 세계적으로 150만명 이상 한국에는 홍보가 덜되 카톡 단톡방에 2500명 정도 있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링크 확인하시면 편합니다. http://minepi.com/Simsuyong 추천인 코드 Simsuyong
셀카봉 다음은 셀카용 드론?
멋진 풍경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고 싶을 때나 친구들과 보내는 즐거운 시간을 단체 사진으로 남기고 싶을 때. 우리가 셀카봉을 가지고 있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아마 많이 없겠죠. 셀카봉은 휴대하기도, 매번 연결하기도 번거로우니까요. 이번에 나온 ‘AirSelfie’는 그런 고충을 덜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공중에서 셀카를 찍어주는 드론인데요. 전에 소개해드린 적이 있던 ‘Hover Camera’와 유사합니다. AirSelfie는 일반적인 스마트폰과 비슷한 작은 사이즈로, 전용 케이스에 넣어 휴대할 수 있습니다. 전용 케이스는 스마트폰 케이스도 겸하고 있는데요. 갤럭시 S7 엣지와 아이폰 6, 아이폰 7에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스마트폰이 두꺼워지긴 하겠지만, 편리한 셀카 촬영을 위해서라면 감수해야겠죠? 드론 조종은 앱으로 할 수 있습니다. 조이스틱을 쓰는 것처럼 쉽게 조종할 수 있고, 버튼 하나로 수평을 스스로 잡아 안정감 있게 셀카를 찍어주죠. 또한 2.4GHz Wi-Fi를 지원해 찍은 사진은 바로 스마트폰으로 전송해줍니다. 무선 연결이 여의치 않을 때는 내장된 4GB 마이크로 SD 카드를 활용하면 됩니다. 화소수는 500만으로, 스마트폰 전면 카메라랑 비슷한 수준입니다. 화질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내장 배터리는 3분 동안 사용할 수 있는데요. 상당히 짧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AirSelfie를 케이스에 다시 끼우기만 하면 쉽게 충전됩니다. 케이스에도 배터리가 따로 들어있어서 AirSelfie를 3번 정도 충전해주죠. 한 번 충전하는 데는 30분 정도 소요되고요. 그래도 불안한 사람을 위해 ‘파워 뱅크’ 케이스도 있습니다. 최대 20번 까지도 충전할 수 있는 대용량 보조배터리 겸 케이스인 셈이죠. 공중에서 셀카를 찍어주는 AirSelfie는 현재 킥스타터에서 크라우드펀딩이 진행되고 있는 아이템입니다. 이미 목표 금액을 달성했네요. 현재 179유로, 한화로 약 22만 3천원부터 펀딩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펀딩에 참여하면 2017년 3월부터 배송 받아볼 수 있습니다. 참고링크
비즈니스북 한 줄/ 성공과 실패는 한 세트
... ... 양말 회사 ‘타비오’의 오치 나오마사 회장 일본 양말회사 타비오(タビオ, Tabio)를 창업한 오치 나오마사(越智直正·79) 회장의 양말 사랑은 대단하다. ‘양말의 신’으로 불리는 그의 대표적인 어록 하나가 ‘좋은 양말인지 아닌지는 씹어보면 알 수 있다’라는 문장이다. 양말을 신는 게 아니고, 씹다니?. 무슨 말인가 할 수도 있다. 품질이 떨어지는 양말에는 이 자국이 그대로 남기 때문이라는 의미다. 오치 나오마사 회장은 다른 브랜드의 새 양말을 접하면 일단 씹어본다고 한다. 만약 자국이 남으면 ‘실패작’이라는 것. 경영 철학 담은 책 ‘양말 외길 60년’ 타비오는 ‘쿠츠시타야’(靴下屋)라는 브랜드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양말 전문 체인점이다. 일본에 300여 호점이 있고 파리, 런던, 중국 등 해외에도 진출해 있다. 이번 ‘비즈니스북 한 줄’은 오치 나오마사 회장의 경영철학을 담은 책 ‘양말 외길 60년’이다. 재팬올이 이 책에서 뽑은 비즈니스북 한 줄은 ‘흥망과 성쇠는 한 세트’라는 말이다. ①저자: 오치 나오마사(越智直正) ②출판사: (주)AK커뮤니케이션즈 ③옮긴이 및 출판년도: 김진희, 2017년 “회장이 아니라 양말 장수라고 봐주길” 1939년 에히메 현에서 11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오치 나오마사 회장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오사카의 킹 양말 스즈시카(King 靴下 鈴鹿)상점에서 심부름 견습일을 시작했다. 독립하여 타비오(Tabio)의 전신인 ‘단 삭스’(Dan Socks)를 창업한 게 1968년이다. 1984년엔 ‘쿠츠시타야’ 1호점을 오픈하고 2008년 회장에 취임했다. 그는 일단 겸손하다. “지금은 회장이라는 요란한 직함을 달고 있지만, 그냥 양말 장수라고 생각해 주길 바란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오치 나오마사 회장의 양말 사랑을 알 수 있는 한 대목. “‘양말이 다 그렇고 그렇지. 뭘 신든 별 차이가 있겠어?’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작은 차이라고 대충 넘기면 다카구라 켄(일본의 유명 배우)과 내 얼굴 만큼이나 차이가 난다.” ‘흥망과 성쇠는 한 세트다’ 풋~하고 웃음을 터트릴만 한 유머 감각이다. 오치 나오마사 회장은 책에서 자신의 경영철학을 ‘흥망과 성쇠는 한 세트’라는 말로 정의한다.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눈앞의 현상만 보고 그때만 통하는 수법으로 약삭빠르게 처신하는 사람은 결국 잔재주가 화가 되어 대성하지 못하는 법이다. 유행을 타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행을 선도하는 데는 리스크가 동반한다. 유행과 싫증, 흥망과 성쇠는 한 세트다. 영원히 유행을 선도할 수는 없다.>(‘양말 외길 60년’ 183쪽 인용) 흥하고 망하고, 성하고 쇠퇴하는 이 상반된 말들은 결코 따로 놀아서는 안되는 마치 ‘깍지 낀 손’ 같은 의미라는 말로 해석된다. <에디터 이재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600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상생 인터뷰/ 안녕하세요 재패니스트 민태규입니다
<사진= 재패니스트와 (주)투어핏을 운영하는 민태규 대표가 사무실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김재현 기자> > 재패니스트와 (주)투어핏을 운영하는 민태규 대표 > 그는 '여행박사'에서 만 12년을 일한 '일본전문가'다 > 2016년 11월 독립법인을 만든 그의 스토리를 들어봤다 서울 성북구청이 1인 창조기업 지원센터를 만든 건 2011년이다. 말 그대로 1인 창업자들을 위한 자립 기반 공간으로, 어플리케이션, VR AR컨텐츠, 게임, 쇼핑몰 등의 개발자들이 많이 입주해 있다. 공간 제공은 성북구청이, 육성 프로그램의 지원은 서울중소벤처기업청과 창업진흥원이 하고 있다. 2016년 중견 여행사 ‘여행박사’에서 중간간부로 잔뼈가 굵은 일본전문가 민태규씨도 이 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여행사 4곳을 거친 베테랑인 그는 더 이상 월급쟁이로 남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 몇 년을 방황했다고 느낀 그의 당시 심정은 비장했다. 그의 여행 사업 아이템을 센터측이 오케이 했고, 그해 11월 법인을 설립하고 둥지를 틀었다. 일본전문가를 뜻하는 재패니스트(japanist) 브랜드를 운영하는 여행사 ㈜투어핏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투어핏은 일본 차량 여행(가이드)&맞춤여행 전문 여행사다. 재팬올 ‘상생 인터뷰’의 이번 주인공은 투어핏의 민태규(44) 대표다. 앞서 인터뷰한 투어베이(Tourbay) 서보택 대표의 추천을 받아 인터뷰를 진행했다. 여행사를 찾아가는 재팬올의 ‘상생 인터뷰’는 추천 방식으로 이뤄진다. <편집자주> # 구청 창조기업 지원센터에 입주 서울 성북구 성신여대입구역에서 10여 분 거리에 있는 ㈜투어핏을 찾은 건 5월 2일 오후 2시다. 빌딩 6층에 들어서자 성북구 1인 창조기업 지원센터로 통하는 문이 보였고, 곧장 안으로 향했다. 파티션들이 촘촘하게 구획 정리돼 있고, 분위기는 사뭇 진지해 보였다. 센터엔 1인용 공간 이외에 사무실 전용 공간이 별도로 마련돼 있었다. ㈜투어핏은 현재 이 공간을 사용하고 있다. 푸근한 인상의 민태규 대표가 먼저 공간 이야기를 꺼냈다. “입주 심사가 간단치는 않습니다. 사업계획서와 인터뷰가 통과돼야 입주가 가능합니다. 저 같은 경우엔 ‘여행도 모바일 시대’라는 점을 강하게 어필해서 입주하는 기회를 얻게 됐습니다. 처음엔 저도 1인용 파티션 공간에 입주했는데, 어느 정도 성과를 내면서 지금은 ‘졸업’했지만 성북구청의 배려로 더 넓은 사무실 공간으로 옮기게 됐습니다. 이곳 센터의 메리트(장점)는 월 사용료가 없다는 거죠. 게다가 각종 편의시설도 함께 사용할 수 있습니다.” 독립법인 창업자들에겐 매달 나가는 사무실 임대비용 한 푼이 아까울 수밖에 없다. 민태규 대표는 그런 비용을 고스란히 줄이고 있는 셈이다. 민 대표는 현재 일본 여행상품 사이트 재패니스트(www.japanist.kr)와 법인인 ㈜투어핏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그는 재패니스트라는 브랜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재패니스트와 투어핏 “사실, 법인명은 (주)투어핏인데 ‘일본 전문가’라는 의미로 학창시절부터 사용하던 메일 주소 ‘재패니스트’로 도메인을 사고 사이트를 만들었습니다. 재패니스트 홈페이지를 보고 들어오는 고객들은 모두 일본 여행지를 찾는 손님들입니다. 일본 거래처에 명함을 줄 때는 투어핏보다 재패니스트를 강조합니다.” 재패니스트는 일본 고객용이라는 얘기다. 투어핏을 별도로 운영하는 건 아내를 돕는 차원도 있다고 한다. 아내 역시 ‘여행박사’ 출신이다. 2007년 신혼 때 민 대표가 여행박사 오사카 지점장으로 발령 났을 때 아내도 동행하며 퇴사했다. “재패니스트는 ‘일본 한정’이라는 이미지가 있어서 법인명은 투어핏(Tour FIT)으로 별도로 정했습니다. 아내가 지금은 포털사이트에서 맘카페 매니저(운영자)를 하고 있어요. 회원들이 꽤 많은데, 제가 엄마들의 여행 상담이나 답변을 많이 해주고 있습니다. 일본만 한정하면(재패니스트) 범위가 줄어들기 때문에 폭 넓게 투어핏 차원에서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아내가 여기 사무실에 나온 건 최근입니다. 제 일을 많이 도와주고 있죠.” <사진= 재패니스트 홈페이지의 일부> # 첫 직장 여행박사와 퇴사 민태규 대표는 올해로 영업 3년 째에 접어들었다. 지금까지 친정인 여행박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여행박사는 12년간 근무한 민 대표에게 일종의 ‘전관예우’를 해주고 있고, 민 대표 역시 판매대리점 자격으로 여행박사의 모객에 힘을 보태고 있다. 투어핏은 여행박사 외에 하나투어, 모두투어의 판매 대리점도 맡고 있다. 대화는 민태규 대표의 본격적인 인생 스토리로 이어졌다. 민 대표는 대학(한국외대)에서 일본어를 전공했고, 졸업 전 일본 배낭여행을 두루 다닌 그야말로 베테랑 일본전문가다. 그가 여행업계에 발을 들여 놓은 건 2001년, 졸업을 하고서다. 첫 직장은 한 해 전에 설립된 ‘여행박사’였다. 이 회사 창업주 신창연 대표와는 졸업 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고 한다. 신창연 대표는 여행박사가 생기기 전, 한국고속해운 서울사무소장을 지냈다. 당시 졸업 전이던 ‘학생 민태규’는 신창연 대표의 큐슈여행 가이드북 독자로 인연을 맺고,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신 대표의 큐슈여행을 소개하는 등 그를 도왔다고 한다. “2000년 어느 날, 신창연 사장님이 ‘태규씨 나, 한국고속해운 그만두고 여행사 하나 차려’라고 말씀하셨어요. ‘여행사 이름이 뭐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여행박사’라는 겁니다. ‘밥 한번 먹자’고 해서 찾아 갔더니 ‘같이 해보지 않겠느냐’고 하시는 겁니다. 2001년 1월 대학을 졸업(그는 94학번이다)하면서 여행박사의 5번 째 직원으로 입사했죠. 신기하게도 1년 만에 직원이 50명 가까이 불어났습니다.” 당시 여행박사는 업계에 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키면서 이른바 ‘잘나가는’ 여행사로 자리매김했다. 민 대표는 그런 여행박사에서 만 12년을 채우고 13년 째인 2012년 이직했다고 한다. 회사를 옮긴 건, 개인적인 문제 때문이 아니었다. 일본 여행업계를 송두리째 삼킨 동일본대지진이 퇴사의 진앙지였다. “2009년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기 전까지 여행박사에서 일본 비중(매출)이 70% 이상이었습니다. 일본지역 담당 직원이 200명 가까이 됐죠. 그런데 대지진이 터지면서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당시 일본여행을 가겠다는 고객은 ‘제로’였습니다. 그때 우리가 하는 일이라곤 걸려오는 고객 전화에 환불해 주는 게 전부였습니다.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죠. 회사로서도 위기 탈출을 위해 무급 휴가도 실시했었죠. 그러면서 일본 직원이 ‘최소화’됐어요. 그럴 즈음 ‘이 기회에 일본 이외의 지역을 좀 키워보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제가 당시 대양주팀을 맡았는데, 일본 담당 후배들을 데리고 해보니 실적이 좋을 리가 없었죠. 정말 힘든 시기였습니다.” #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서 더 이상 회사에 몸을 담고 있는 것은 무리였다. 민 대표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해 2012년 퇴사를 결심했다고 한다. 이후 소개나 추천으로 들어간 회사들에서 근무 주기가 점점 짧아지면서 고민은 더 깊어졌다. “당시 상황은 힘들었지만 나름 공부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때 결정을 했어요. 소개 받아 다른 회사 팀장자리 찾으면 되겠지만 2, 3년 안에 똑같은 ‘도돌이표 인생’이 될 게 뻔했습니다. 그래서 ‘이 시점에서 내 일을 해봐야 되지 않겠느냐”고 스스로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여행박사를 나온 후 ‘4년 간의 경험’은 새로운 사업의 힌트를 제공했다. 가이드 패키지여행과 개별 자유여행의 틈새에서 렌터카 투어나 고급 료칸 투숙상품 등의 아이디어를 활용해 차량(렌터카) 가이드를 주력 상품으로 내놓은 것이다. 민 대표는 “일본 현지 가이드가 본인의 차량으로 유상운송하는 경우 불법적 소지가 있었는데, 우리는 합법화 모델을 연구해 찾아냈다”며 “큐슈를 넘어 6월부터 홋카이도를 대상으로 소그룹 맞춤 전용차량 가이드를 시작한다”고 말했다. # 고객상담&맞춤여행&스토리 기획&성지순례 상품 이외에 민 대표가 중점을 두는 부분은 고객 상담이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투어핏에 패키지 문의를 하시는 손님들께는 하나투어, 모두투어, 여행박사 세 여행사의 상품을 가격, 질, 가성비 측면에서 비교해 드립니다. ‘비행 좌석 몇 자리가 남았다’는 메뉴얼만 되풀이하는 콜센터 방식 상담은 하지 않습니다. 사실, 맞춤여행은 정말 자신 있습니다. 제 이익과 손님 이익이 배치될 경우엔 반드시 손님쪽으로 맞춰 드립니다. 그걸 기본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여행 상담을 하고 있죠.” 스토리가 있는 기획도 투어핏이 추구하는 파트다. 예를 들면 일본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 투어나, 일본의 농업/복지시설 시찰 투어 등이다. 민 대표는 “최근에는 CJ m.net의 마마(MAMA)촬영팀과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경영진 현지방문 등을 기획해 준 적이 있다”며 일반 여행상품과는 다른 차별화 요소를 강조했다. 민태규 대표가 또 신경을 쓰는 것 하나가 성지순례다. 가톨릭 신자인 그는 나가사키 성지순례 상품의 경우엔 직접 가이드로 나서고 있다. 아무리 현지 지식이 뛰어난 가이드라도 달달 외운 정보만으로는 신자들과 진정한 교감을 나눌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민 대표는 “아직 재패니스트와 투어핏의 고정수익이 크지는 않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표현은 ‘곧 고정수익이 커질 것’이라는 말로 들렸다. 그는 1시간 30분간의 인터뷰를 이런 말로 마무리 했다. “이제 자리 잡기 시작한 일본 차량가이드와 렌터카 투어를 지속적으로 홍보하고, 동남아에서도 쇼핑과 옵션이 없는 진정한 가족투어 프리미엄 상품을 소개해 갈 예정입니다.” 자신에게 꼭 맞는 맞춤여행(투어핏), 일본여행에 대한 전문상담(재패니스트)을 원한다면, 아래 번호를 저장해 둬도 좋을 듯하다. ᐅ재패니스트 일본지역 전문상담(070-4820-0108), ㈜투어핏 (02)3274-0108, 홈페이지: www.japanist.kr (다음 인터뷰 대상은 민태규 대표가 추천합니다) <이재우 기자, 재팬올 발행인>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383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샤넬 뿌리치고 한국으로...조아라의 '빅 스케치'
... <사진= 조아라 디자이너는 자신의 이름을 딴 아크(ARCH) 공방을 외부인으로는 처음으로 글로벌 매체 재팬올에 공개했다. 조 디자이너 뒤로 아크(ARCH)의 특이한 CI가 보인다. ARCH라는 글자를 상하로 데칼코마니처럼 붙여서 각도를 90도 틀었다. 마치 상형문자를 보는 듯하다. 조아라 디자이너의 감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뛰 부 트하바이에 아벡 무와?”(프랑스어: 나랑 같이 일해보지 않을래?”) 2014년, 샤넬(Chanel)에서 가장 잘 나가는 아트 디렉터 크리스텔 코셰(Christelle Kocher)는 서른 초반의 동양 디자이너에게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 패션업계에서 콧대 높기로 유명한 샤넬이 아무에게나 이런 제안을 하는 건 아니다. 샤넬의 선택을 받은 이 동양 디자이너는 패션 명문 '파리의상조합학교' 출신의 조아라. 샤넬은 파리 패션계의 걸출한 스타 안 발레리 아쉬(Anne Valérie Hash)와 8년간 같이 일한 조아라의 실력과 평판을 익히 듣고 있었던 터다. 영국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예술대학(Central St Martins College of Art and Design) 출신으로, 샤넬 공방 르마리에(Mason Lemarie)를 맡고 있는 크리스텔 코셰의 눈은 정확했다. 조아라와의 협업 결과는 ‘LVMH(루이비통모엣헤네시) 프라이즈 올해의 디자이너' 수상으로 이어졌다. 수상 당사자는 코셰지만, 패션 작업은 개인의 산물이 아니기에 팀 파워는 그래서 더 소중하고 중요하다. 이후 프랑스 패션업계는 “조아라와 코셰의 '시너지 효과'가 파리에서 주목할 만한 반응을 이끌어 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렇게 파리에서 15년 간 활동한 조아라(37, 프랑스 영주권자) 디자이너는 지난해 완전 귀국, 아크(ARCH)라는 자신의 브랜드를 런칭했다. 한국에서는 아직 낯선 이름 조아라. 하지만 파리에서는 이미 실력파로 인정받았던 그다. 그런 그는 지금 서울에서 ‘빅 스케치’를 구상 중이다. '작은 옷감'이 아닌 ‘한국패션의 미래’라는 큰 그림이다. 우리가 조아라 디자이너라는 이름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아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고 있는 그를 글로벌 매체 재팬올이 만나 3색(블루, 블랙, 레드)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 샤넬 아트 디렉터 크리스텔 코셰(Christelle Kocher)는 현재 중국, 일본 등에서 큰 각광을 받고 있다. 그는 자기의 이름을 딴 ‘코셰’라는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고 있다. 조 디자이너는 코셰에 대해 “미래성이 탁월하고 함께 일 하면서 내 역량도 펼칠 수 있는 동료”라고 소개했다. 패션 잡지 엘르 중국판에 소개된 코셰의 특집 기사.> # 공방에서 만난 스톡맨(stockman)과 주키(JUKI) 재봉틀 서울 양재역에 있는 아크(ARCH)의 공방. 조아라 디자이너가 명함을 건넸다. 잠시 당황스러웠다. 앞뒤 모두 블랙. 특이한 명함이었다. "블랙이 제 컬러이자 컨셉트입니다." 옷도 블랙을 즐겨입는다고 했다. 공방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아담했다. “조만간 개인 컬렉션을 계획하고 있다”는 조아라 디자이너는 손가락 10뼘 되는 크기의 긴 테이블에서 작업 중이었다. 조각조각난 크고 작은 천들, 다양한 작업도구들, 유명 디자이너들의 책들이 테이블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명품 마네킹이 눈길을 끌었다. “프랑스에서 갖고 온 스톡맨(stockman)이라는 인체모형 보디에요. 디자이너들에겐 최고의 작업 도구죠.” 스톡맨엔 세련된 블랙 드레스가 입혀져 있었다. “네오플랜이라는 소재로 만든 작품인데, 스톡맨으로 입체재단 작업을 하면 이 드레스처럼 핏(fit)이 잘 살아납니다.” 스톡맨 외에 다른 2개의 마네킹도 옷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기억(ㄱ)자로 배치된 두 개의 행거에는 그동안 작업한 여성복과 아동복들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곧 세상에 빛을 보게 될 조아라 디자이너의 ‘프렌치적 아이템들’이다. 눈을 잠시 돌렸다. 조 디자이너의 손때가 묻은 공업용 주키(JUKI) 미싱기가 눈에 들어왔다. 15년 패션유학의 경험을 말해주는 소중한 자산이다. <사진= 지난 5월 말 ‘전 세계 패션계의 셀럽’ 패리스 힐튼이 자신의 화장품 런칭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서울 성수동에서 열린 ‘패리스 힐튼 스킨케어 어번 나이트 파티’(Paris Hilton Skincare Urban Night Party) 행사장에 패리스 힐튼과 조아라 디자이너가 나란히 포즈를 취했다. 힐튼은 조 디자이너의 어깨에 손을 살짝 얹었고, 조 디자이너는 힐튼의 허리를 살짝 감쌌다.> #칼 라거펠트-이브생 로랑을 배출한 파리의상조합학교 파리 유학 시절이 궁금했다. 예비 패션 디자이너들은 대개 대학을 졸업하고 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하지만 강원도 강릉 출신인 조 디자이너는 고등학교(계원예고)만 졸업한 채 파리로 떠났다고 한다. 2002년의 일이다. 당돌한 사실 한 가지. 중학교 시절, 아버지에게 “일본 기술 전수학교로 유학을 보내달라”고 졸랐다. 아버지는 기가 찼다. 그래서 한마디 했다. “그래도 고등학교는 졸업해야 하지 않겠니." “일본이든, 프랑스든 언어에 대한 두려움은 전혀 없었다"는 조 디자이너는 자신의 꿈을 키워 줄 학교로 ‘파리의상조합학교’(Ecole de la Chambre Syndicale de la Couture Parisienne)를 선택했다. 1927년 세워진 이 학교는 세계에서 가장 전통있는 패션 스쿨의 하나로 꼽힌다. 4년 과정으로 철저하게 오뜨 쿠띄르(Haute couture: 고급 맞춤복) 기법을 전수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지난 2월 세상을 떠난 ‘패션계의 카이저’(황제) 칼 라거펠트, ‘패션의 전설’ 이브 생 로랑, 일본 유명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가 이 학교 출신들이다. 이 가운데 이세이 미야케(ISSEY MIYAKE) 브랜드는 한국팬층이 두껍다. 히로시마 출신의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1938~)가 런칭한 이 브랜드는 ‘삼성그룹의 홍라희 리움미술관장이 좋아하는 브랜드’로 알려져 있다. 작은 삼각형을 서로 연결해 만든 바오바오(BAOBAO)백과 주름옷으로 불리는 ‘플리츠 플리즈(Pleats Please)’ 라인을 탄생시킨 주인공이 조아라 디자이너의 학교 대선배인 이세이 미야케다. 조 디자이너는 “파리의상조합학교가 가지고 있는 전통성과 기술력 그리고 세 선배 등 이 학교를 나온 사람들의 행보가 나한테 큰 영향을 줬다”고 했다. “커리큘럼 중에서 우리 학교가 가장 신경 써서 가르치는 기법은 ‘입체재단’입니다. 평평한 종이나 천에 자를 대고 옷본을 그리는 평면 재단과 달리, 입체재단은 보디(인체모형)에 직접 얇은 천을 대고 모양을 잘라내서 옷본을 만드는 기법이죠.” <사진= 조아라 디자이너는 한국 패션계에선 아직 낯선 이름이다. 하지만 ‘프랑스 패션계의 자존심’ 샤넬 하우스와 인연을 맺는 등 현지에서는 실력파로 인정 받았던 그다.> 학교를 졸업한 조 디자이너의 주된 무대는 '파리 패션 위크'. 겐조(Kenzo), 프랑크 소르비에(Frank Sorbier), 안 발레리 아쉬(Anne Valérie Hash), 크리스텔 코셰(Christelle Kocher) 등의 테크니션 브랜드들을 거치면서 프레타 포르테(기성복)와 오뜨 쿠띄르(고급 맞춤복)를 섭렵했다. 이중 안 발레리 아쉬의 키즈 라인(브랜드명: 안 발레리 아쉬 마드모아젤)의 프레타 포르테 총괄 디렉터를 맡는 등 안 발레리 아쉬와는 8년간 같이 작업했다. 그런 안 발레리 아쉬는 파리의상조합학교 후배인 조아라에게 “너를 통해 아동복의 미래를 보았다”고까지 높게 평가했다. 조 디자이너는 2004년 '디암 프라이즈 콩쿨' 파이널 리스트와 2005년 '국제 신인 디자이너 콩쿨' 파이널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당시엔 브랜드에 소속되어 있어서 개인적으로 크게 상 욕심을 내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렇다고 욕심이 없는 건 아니다. 그는 "이제는 개인 브랜드를 런칭했으니 코셰처럼 'LVMH 프라이즈' 같은 상을 노려볼 만하지 않겠느냐 (웃음)”고 했다. <사진= 조 디자이너는 여성복, 아동복 패턴을 두루 섭렵했다. 그동안 작업해 온 여성복과 아동복이 행거에 걸려 있다.> <사진= 조 디자이너가 인체모형 마네킹인 스톡맨(stockman)에 작업을 하고 있다.> # 15년 파리 활동 접고 한국으로 돌아온 이유 조 디자이너는 한국으로 오기 전 샤넬 디렉터인 크리스텔 코셰(Christelle Kocher)와 작업했다. 코셰는 2014년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 ‘코셰’(Koché)를 론칭하면서 전 세계 패션 스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지금은 샤넬보다 코셰 브랜드의 약진이 무섭다고 한다. “코셰와 같이 했던 작업은 그동안 샤넬이 해온 모든 전통적인 방식을 활용하돼, 그것을 어떻게 재조합하느냐는 것이었어요. 코셰는 옷에 어떤 포인트를 넣었을 때 사람들에게 어필이 되는지를 잘 아는 디자이너였어요.” 당시 파리엔 “코셰에게는 조아라가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고 한다. 코셰에게 조아라 디자이너의 존재감은 컸다. 그런 코셰는 조 디자이너가 오랫동안 옆에 있어주길 바랐다. 하지만 조아라 디자이너에게는 또 다른 꿈이 있었다. 그는 지난해 안정된 자리를 뒤로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으로 돌아가 제가 해야 할 일이 있었어요. 한국패션의 미래 같은 걸 구상해 보고 싶었어요. 많이 아쉬웠던지 코셰가 저한테 샤넬 디렉터 자리를 제안했어요. 샤넬 스튜디오에서도 콜을 받았지만 이미 마음을 굳힌 뒤였어요. 코셰는 올해 스포츠브랜드 나이키와 협업하면서 중국, 일본 등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코셰의 나이키 작품을 봤더니 제 스타일이 그대로 묻어 있었어요. 나쁘지 않았어요. 최근에 연락이 왔는데, 다시 협업을 해보자고 하더군요." “나이키와 협업에서 코셰가 중점을 둔 건 뭐냐”는 질문에 조 디자이너는 이렇게 말했다. “코셰는 이게 나이키 브랜드인지 디자이너 브랜드 인지 경계가 모호할 정도로 만들었죠. 나이키라는 상업적 이미지에 자신의 프렌치라는 고급스러운 장점을 잘 녹아들게 한 거죠.” <사진= 작업대에서 스케치 작업을 하는 조 디자이너.> # 자신의 영어 이름 따서 아크(ARCH) 브랜드 런칭 대화는 브랜드로 이어졌다. 조 디자이너는 귀국 후 자신의 영어 이름(ARA CHO) 이니셜을 따서 아크(ARCH)라는 브랜드를 런칭했다. 아크에는 건축을 뜻하는 영어 아키텍쳐(ARCHitecture)의 의미도 있다고 한다. “패션디자이너에게는 옷감 소재 선택이 중요한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요. 거기에 뭘 담느냐 하는거죠. 저는 ‘기품 있으면서도 편안한, 그리고 여성성’을 추구합니다. 건축이 건물을 쌓아 올리듯, 아크는 ᐃ기품 ᐃ편안함 ᐃ여성성을 패션예술에 입히는 것이죠.” 조 디자이너는 ‘프랑스 정통 오뜨 쿠띄르’를 지향한다. 15년 파리 유학의 결정체. 그렇다고 마냥 프랑스 스타일만 고집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작품에서 프렌치적 소스를 내세우겠지만, 거기에 코리아 브랜드라는 걸 어떻게 살려야 할지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제 브랜드를 제 능력선에서 뽐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중들에게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큰 숙제 중의 하나죠.” <사진= 15년 파리 생활을 접고 서울에서 또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는 조 디자이너가 거울 앞에 섰다.> <사진= 조 디자아너가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공방의 모습.> # 와인과 고양이 '러버'(lover) 재미난 이야기도 들려줬다. 조아라 디자이너는 프랑스에서 작업하면서 2가지로부터 '작은 힘'을 받곤 했다고 한다. "와인과 고양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프랑스가 와인의 나라인 만큼, 물보다 더 많이 마신게 와인입니다. 혀가 절여지는 느낌까지 받았죠. 자주 들른 가게에서 와인을 사와서 '입에 머금고' 작업하곤 했어요." 실제로 그의 공방에는 와인 행거에 와인이 여러 병 꽂혀 있다. 와인 이름들이 흔하지 않았다. 그럼, 고양이는 왜일까. 조 디자이너는 12살짜리 ‘레아’라는 이름의 프랑스산 고양이와 함께 산다. 덩치가 엄청나다. “제 유학생활을 온전히 함께 했죠. 귀국 하려는데 12년 키운 이 녀석을 도저히 두고 오지 못하겠더군요. 다행히 한국에서도 적응 잘하고 있고 제게도 여전히 힘이 되고 있죠.” 긴 대화지만, 한 마디만 더 물었다. 조 디자이너의 꿈은 옷을 만드는데 만 머물러 있지 않다. “오드리 헵번이 그랬던 것처럼, 패션을 통한 기부 활동이 제가 꿈꾸고 있는 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아이디어가 달릴 때는 ‘검색’보다는 ‘사색’을 통해 답을 찾는다는 조아라 디자이너. 그와 몇 차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내린 결론. “그의 브랜드 아크(ARCH)가 불꽃을 튀기며 솟아 오를 날이 머지 않았구나.” <에디터 이재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502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아베 아버지와 두번 악연…나카소네 전 총리 타계
... <사진= 일본 보수의 상징인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일본 총리가 별세했다.> ...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일본 총리가 11월 29일 타계했다. 101세다. 1947년 28세의 나이에 중의원에 당선, 2003년 정계 은퇴를 할 때까지 무려 20선을 했던 일본 막후정치의 거물이었다. 2010년 그가 92세에 낸 <보수의 유언>이라는 책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일본 보수의 상징과도 같았다. 1983년(전두환 정부)에는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한국을 공식 방문했다. 재팬올이 잘 알려지지 않은 2가지 사건을 통해 나카소네의 정치 이력을 되돌아봤다. ⓵ 잘못 번역된 ‘불침항모’…서로 애칭 부르는 계기 나카소네는 외교적으로 ‘강한 일본’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1982년 총리에 취임하자마자 이듬해인 1월 곧바로 미국을 방문했다. 당시 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서로를 ‘론’, ‘야스’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두 사람이 친밀한 사이가 된 배경에는 그 유명한 ‘불침항모’(不沈航母) 사건이 있었다. 일본을 소련의 미국 공격을 막는 ‘불침항모’라고 부르면서 미일 동맹을 강조했던 것. 하지만 이 이야기는 정확한 팩트가 아닌, 만들어진 스토리였다. 당시 어떤 일이 있었을까? 미국에 도착한 다음 날 나카소네는 워싱턴 포스트의 사주인 캐서린 그레이엄 여사가 개최한 조찬회에 초청을 받았다. 즉석에서 워싱턴 포스트와 인터뷰가 진행됐다. 나카소네는 <보수의 유언>(오대영, 김동호 옮김, 중앙books)에서 인터뷰 내용을 이렇게 썼다. “일본의 방위 개념에는 해협이나 시레인(sea lane: 해상 보급로)을 방위하는 문제가 있지만 기본은 일본 열도 상공을 커버해 소련의 백파이어(소련의 최신예 초음속 폭격기) 침입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백파이어의 성능은 강력하므로 만약 이것이 유사 사태 때 일본 열도나 태평양 주변에서 위력을 발휘한다면 일미 방위협력 체제는 상당한 타격을 입는다는 점을 상정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만일 유사 사태가 벌어지면 적성 외국항공기의 침입을 허용하지 않도록 일본 열도 주변에 높은 벽을 갖고 있는 커다란 배와 같은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보수의 유언‘ 103쪽) 사단은 이 말을 통역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통역이 마지막 문장을 ‘unsinkable aircraft carrier’ 즉, 일본어로 불침항모(不沈航母)라고 통역해 버린 것이다. 통역의 실수였다. 이 발언은 당시 국제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사태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나카소네는 “얼마 후 인터뷰를 했던 오버도퍼 기자로부터 ‘녹음 테이프를 다시 들어봤는데 불침항모라는 말은 없으니까 기사 내용을 정확하게 잡아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며 “하지만 나는 정정할 필요가 없다고 회답했다”고 썼다. 나카소네는 이를 ‘실수를 가장한 행운’이었다고 표현했다. 그의 말을 좀 더 인용해 보자. <불침항모 발언은 기대치 못했던 효과를 발휘하면서 이튿날 레이건 대통령 부부와의 회동이 이뤄졌을 때도 좋은 분위기로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 레이건이 “앞으로 서로 퍼스트 네임을 부르도록 하자”고 말할 정도로 가까워질 수 있었다.>(같은 책 193쪽) ⓶ 아베 아버지를 두 번이나 총리직에서 ‘주저앉혔다’ 나카소네는 아베 신조 총리에게 정치 조언을 마다하지 않는 정치인이었지만, 아베 총리의 아버지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郎)에겐 치명타를 준 인물이기도 하다. 아베 신타로가 총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나카소네 때문에 두 번이나 놓친 것. 1982년과 1987년의 일이다. 도쿄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마이니치신문 기자로 사회생활을 출발한 아베 신타로는 1956년 중의원 선거에 출마해 부친(중의원을 지낸 아베 칸)의 선거구에서 당선됐다. 1979년 자민당 정조회장, 1981년 스즈키 젠코 내각의 통산상(통상장관)을 지낸 아베 신타로는 1982년 총리 자리로 이어지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 나서게 되었다. <아베 신조의 일본>(노다니엘 저, 세창미디어)이라는 책은 당시를 이렇게 쓰고 있다. <1982년 11월, 자민당의 새로운 총재를 뽑는 선거가 있었다. 유력한 후보는 나카소네 야스히로와 아베 신타로였다. 나카소네는 다나카 파벌과 재계의 지원을 등에 업고 있었다. 여기에 대항하는 아베 신타로는 장인 기시 노부스케(전 총리)가 만든 파벌이 그를 지지하고 있었다. 결과는 나카소네의 압승이었다. 바야흐로 ‘대통령형 수상’을 지향하는 야심찬 지도자의 탄생이었다.>(‘아베 신조의 일본’ 51쪽 인용) 비록 나카소네와의 경쟁에서 지긴 했지만, 아베 신타로는 나카소네 정부에서 외상(외무대신)에 발탁됐다. 하지만 아베 신타로는 그 이후 한번 더 불운을 맞는다. 1987년 나카소네가 총리에서 물러나면서 그의 후임을 가리는 자민당 총재 선거가 진행됐다. 아베 신타로도 유력한 후보였다. 하지만 선거 대신 ‘입김’이 작용했다. 일본 저자 아오키 오사무가 쓴 <아베 삼대>(길윤형 옮김, 서해문집)라는 책을 인용해 보자. <(아베 신타로는) 이른바 ‘나카소네 재정’(裁定:중재)을 통해 맹우이던 다케시다 노보루가 후임 총재에 취임하며 눈물을 삼켰다.>(‘아베 삼대’ 175쪽) ‘나카소네 재정’이란 1987년 10월 31일 자민당 총재였던 나카소네 총리가 다케시타 노보루 자민당 간사장, 아베 신타로 자민당 총무회장, 미야자와 기이치 대장상 가운데 차기 후임 총리로 다케시타 노보루를 점찍은 것을 말한다. 결과적으로 나카소네에 의해 아베 신타로는 총리직을 코앞에 두고 두 번이나 낙마하고 말았다. <아베 삼대>는 이어서 이렇게 적고 있다. <아베 신타로는 다케시타 정권이 되어서는 당무를 총괄하는 자민당 간사장에 취임해 ‘다케시타 다음은 신타로’라는 밀약이 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그러나 리쿠르트 사건이 자민당을 직격한 것으로 인해 모든 계획이 물거품으로 돌아갔다.>(같은 책 176쪽) 이 일이 화근이 되어 아베 신타로는 췌장암을 얻어 1991년 5월 15일 세상을 떠났다. 아베 신타로를 두 번이나 낙마시킨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 그의 어록 중엔 ‘정치가는 역사의 법정에 선 피고’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요즘의 정치인들이 곱씹어봐야 할 말임에 틀림없다. <에디터 이재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606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정희선의 재팬토크/ 북콘서트 현장(포토)
... <사진= '라이프 스타일 판매중' 북콘서트 현장.> ... <일본 도쿄=정희선 객원 특파원(기업 분석 애널리스트)> 최근 ‘라이프 스타일 판매중’이라는 비즈니스 책을 냈다. △중앙일보(까르띠에는 왜 10만원짜리 컵라면을 팔았을까) △서울경제신문(매력적인 생활의 제안, 신간 <라이프스타일 판매 중>) 등 여러 매체에서 출간을 다뤄주었다. 출간과 겸해 서울에 잠시 들렀는데, 인터넷 매체 뉴데일리(까르띠에의 쇼킹 상품 '10만원짜리 컵라면'… 일본서 불티난 이유)는 인터뷰를 진행해 줬다. 아울러 11월 26일 서울에서 북콘서트까지 하는 ‘호사’를 누렸다. 서울 용산구 소월로에 있는 머쉬룸이라는 문화공간에서다. 적잖은 비용을 내고도 자리를 해준 열두 분의 독자들이 너무 고맙다. 이날 현장을 사진 몇 장에 담았다. 사진은 김재현 에디터가 도와주었다. (책 내용이 궁금한 독자들은 해당 제목을 클릭해 보길 권한다.) ... 정희선 객원 특파원 △인디애나대 켈리 비즈니스 스쿨(Kelly School of Business) MBA △한국 대기업 전략기획팀 근무 △글로벌 경영컨설팅사 L.E.K 도쿄 지사 근무 △현재 도쿄 거주. 일본 산업, 기업 분석 애널리스트 △'불황의 시대, 일본 기업에 취업하라' 저자.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603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샤토 헤랄레츠 부티크 호텔 & 스파 바이 록시땅
프라하에서 렌터카 타고 출발해 오늘 묵을 고성(古城) 호텔 샤토 헤랄레츠를 향해 갑니다. 한국에서도 타지에 가면 네비를 켜놓고도 헷갈릴 때가 있는데 외국에서는 오죽했겠습니까? 프라하에서 한번 헷갈리고 목적지 근처에서 또한번 헷갈렸습니다 ㅋ. 그나마 구글네비 도움을 받아서 무사히 도착했네요 ㅎ 저희가 패밀리 스위트 매진시켰답니다 ㅋ. 가격대가 좀 있었지만 고성(古城) 호텔에 언제 한번 자보겠습니까^^ 고성(古城)이 생각보다 크지는 않네요^^ 입구에서 인터폰을 누르니 문이 뙇하고 열립니다^^ 이쁘네요^^ 주차장이 꽉 찬걸 보니 손님들이 많은가봐요. 호텔입구치곤 아담하죠^^ 순록인지 사슴인지 저 아이보고 기분이 묘했던게 눈을 보니 진짜 살아있는거 같았어요 ㅡ..ㅡ 동물이 아니고 사람이 뭘 뒤집어 쓰고 있는듯한 느낌적인 느낌이^^ 웰컴 샴페인... 장미도 한송이씩 나눠주더라구요. 자, 이제 룸으로 들어가봅시다... 좌측은 화장실 문, 우측은 장농인데 한폭의 그림같죠^^ 창밖 풍경... 저 이 침대에서 잤어요^^ 슬리퍼 이쁘쥬^^ ㅋㅋㅋ 화장실도 깔끔했어요... 호텔 이름처럼 어메니티가 다 록시땅이네요... 쿠트나 호라 갔다가 돌아와서 저녁에 한잔^^ 살짝 무서버 ㅡ.,ㅡ 조식 먹으러 왔어요... 조식 코스로 나오는데 너무 괜찮았어요... Red velvet Silver wind... 여기서도 하루만 묵고 이제 체스키 크롬로프로 넘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