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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예술작품들


나치가 독일을 통치했던 기간이 거의 12년인데, 이 긴 세월동안 나치가 탄압했던 예술 작품들은 지금도 퇴폐예술(Entartete Kunst) 장르로 매우 유명하다. 하지만 당연히 나치가 좋아했던 예술작 품들도 존재하고, 나치를 찬양한 예술 작품들도 분명 있기는 있다. 혹시 이거 연합군 측에서 파괴했을까? 아니다.

미국과 독일의 모처 창고에 그냥 모셔두고 있다. 독일에 있는 작품들부터 얘기해 보자. 베를린에 있는 독일 역사 박물관이 Spandau 창고에 900여 나치 작품들을 그냥 모셔두고 있는 이유는 “잊혀지기” 위함이다. 나치 찬양 예술 작품들은 일종의 “타부”이고 그렇게 반성 좋아하는 독일도 그 시절 친나치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부담스러워한다.

미국은 워싱턴 D.C. 근교의 Fort Belvoir에 있는 군용(!) 창고에 있다. 여기에 히틀러의 두상도 고이 모셔져 있다. 전쟁 이후 미군은 대략 9천여 점의 작품을 독일로부터 가져온다. 물론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독일에 돌려준 작품들도 좀 있기는 한데, 친 나치 작품들의 영향력이 우려되는 민감한 작품들은 그냥 미국이 갖기로 했다고 한다. 물론 독일측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에 있는 나머지 작품들도 독일로 다시 반납해야 할까? 미군 대변인은 송환할 계획이 현재로서는 없다 답했고, 독일 문화부는 답변을 독일 외교부로 돌렸다. 게다가 그냥 있다는 점만 알 뿐, 미국에 정확히 어떤 작품들이 얼마나 있는지는 독일도 잘 모른다고 한다.

자… 혹시 이 두 곳 외에, 다른 미술관이나 개인 소장 작품이 있을까? 물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예외가 없지 않지만 감히 전시까지는 못 하는 듯 하다. 그래서 당시 시절 친 나치 작품들에 대한 완전한 연구가 제대로 안 되어 있다고 한다. 게다가 여론도 정말 그런 작품의 존재 자체를 대단히 부담스러워 한다. 에밀 놀데 전시회(참조 1)도 결국은 평이 별로 안 좋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그냥 없는 셈 칠까? 그냥 나타났다 사라진 UFO처럼 여기면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까? 그래서 오히려 미국이 연구한 것이 있다(참조 2). 게다가 미군은 내년, 바로 저 장소에 육군 미술관을 개장할 예정이라고 한다. 과연 친 나치 작품들을 그때 공개할까?

게다가 그 연구를 보면,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친 나치 작품들 중에 모더니즘 작품들도 꽤 존재한다. 나치가 모더니즘을 싫어한 건 맞는데, 그냥 일관성이 없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예술가들의 문제도 있다. 타락했다는 비판을 받은 후, 자기 스타일을 고쳐서 승승장구하다가, 독일 패전 이후 다시금 추상 스타일로 바꿔서 거의 꺼삐딴 리 급으로 계속 성공한 작가도 있는 모양이다.

즉, 에밀 놀데에 대한 독일의 차디찬 반응이 좀 위선성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예술계가 실질적으로는 나치 청산을 못 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이게 다 인간의 삶보다 그림에 훨씬 더 신경썼던 독재자 한 명 때문이라고만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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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1. 에밀 놀데(2019년 6월 19일): https://www.vingle.net/posts/2630740

2. 가령 뉴욕 St. John’s University의 Gregory Maertz 교수가 쓴 Nostalgia for the Future(2019년 5월) : https://cup.columbia.edu/book/nostalgia-for-the-future/9783838212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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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에체리 벼룩시장 갔더니 히틀러 흉상을 팔더라구요...
@vladimir76 헐... 그당시 만든 진품(?)일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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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락된 도시의 여자
월요일은 역시 독서지. 이 책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소련이 저지른 베를린 집단 강간에 대한 건조한 보고서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게도 독일 여자가 쓴 이 일기가 독일어로 출판될 수는 없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을 텐데… 일기 원본은 그녀 스스로 마음 속의 검열 때문이었는지 약자나 암시하는 단어로 썼던 모양이다. 읽을 수 있는 글의 형태로는 1950년대 초에 그녀가 직접 옮겼던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출판하려 마음 먹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1950년대에 영어판이 먼저 나왔고, 독일어판이 잠시 나오기는 했다. 그러나 그녀의 책은 50년대 독일 내에서 숱한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독일 여자의 명예를 떨어뜨렸다면서 말이다. 그래서 저자는 독일어판 재출판을 자기 살아 생전에는 못 하게 막았다고 한다. 그래서 독일어판은 그녀가 사망한 이후에서나 다시 나올 수 있었고, 영화(Eine Frau in Berlin)화도 그 이후에나 가능했다. 50년대 독일의 비뚤어진 심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2003년 이후 다시 나온 책에 대해서는 찬사가 이어졌고(하지만 저자는 사망했는 걸?), 역사 분석의 대상이 됐다. 자, 내용 이야기를 하자면 그녀는 1933-34년간 파리 소르본에서 역사/미술사를 공부했었고 그 후 러시아를 여행하면서 약간의 노어를 익혔다고 한다. 당시 기준에서는 상당한 지식인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제3자인 양 건조하게 당시 상황을 쓸 수 있었을까? 상황 판단도 빨랐고, 결국 그녀는 생존할 수 있었다. 그래서 결국은 뭐라도 알고 있어야 생존이 가능하다는 얘기인데, 이 책이 드러낼 수밖에 없을 여성주의적 시각은 나보다 훨씬 잘 쓰는 분들이 많으니 검색해서 읽어 보시기 바란다. 물론 예상한 내용이 대다수일 테지만 말이다. 내가 눈여겨 본 부분은 역시 다양한 면모를 갖춘 러시아 군에 대한 묘사와 언어였다. 공산당이라고는 하지만 러시아 군을 구성하는 것도 인간들이었기 때문이다. 복수를 해야 했던 한편, 불쌍히 여기는 마음도 있었고, 착취하려는 마음도 있었다. 주인공이 잘 한 건, 그나마 장교들을 노렸다는 점이다. 여기서 그녀의 무기는 언어.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어눌하더라도, 어휘가 적더라도 자기 모국어를 말해주는 인물에게 마음이 열리게 되어 있다. 노어를 몰랐던 것보다는 아는 편이 생존에 훨씬 유리했다는 의미다. 게다가 제일 “서구적”인 잘 배운 러시아 장교는 그녀가 할 줄 아는 링구아 프랑카, 불어도 할 줄 알았었다. 물론 그가 큰 도움이 된 것 같지는 않아 보이지만 말이다. -------------- 그리 많은 양은 아니지만 읽기 참 힘들었다. 번역이 안 좋아서도 아니고 책이 지루해서도 아니라 너무 먹먹해서다. 전쟁이 끝나고 남은 사람들은 전리품이 되어버렸으며, 껍데기나마 남은 조국은 남은 사람들을 버렸다. 되돌아온 남자친구가 뭘 의미하겠는가? 실제 저자는 결혼하면서 스위스로 이주했다고 한다. 차마 베를린에서, 혹은 독일 내에서 제 정신으로 살 수 없었을 것이다.
메르켈이 지금 떠나야 할까?
https://www.bild.de/politik/inland/politik-inland/das-meint-bild-merkel-bringt-die-cdu-in-lebensgefahr-68722782.bild.html 언제나 친 메르켈 언론이었던 Bild가 대담한 기사를 내보냈다. CDU를 살리려면 메르켈이 사임해야 한다고 말이다. AKK를 물러나게 만든(참조 1) 장본인은 아무래도 메르켈일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 AKK를 뽑아놓고(참조 2) 아무 힘도 안 준 장본인 또한 메르켈이다. 게다가 메르켈은 CDU 자체를 위기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메르켈은 그 기나긴 임기 동안 크게 두 가지 실책을 범했다. 이주 그리고 기후변화다. 이게 무슨 의미인가? 이민/이주 문제 관련해서는 AfD에게, 기후변화 관련해서는 (에너지 변환정책을 그녀가 주도했음에도 불구하고) 녹색당에게 대거 표를 빼았겼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메르켈은 무책임하게시리 AKK라는, 연방 차원에서는 신인에 가까운 인물을 지목했고, AKK가 자신보다 더 나아보이지 않게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행동했다. 지금 상황에서 AKK가 아닌 다른 누가 CDU 당수를 맡는다 하더라도 총리 자리에 메르켈이 있는 한 그/녀는 힘쓸 수 없는 상태가 될 것이다. 당수와 총리를 분리해 보려는 메르켈의 실험이 실패했다. SPD는 대연정을 유지하기로 결정내렸으니, 메르켈은 그냥 지금 상태로 2021년 총선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아마 녹색당이 꽤 큰 격차로 1당이 되잖을까? 당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아무래도 지금 혹은 곧 총선을 치르는 편이 나을 테고, 인위적으로 그렇게 하려면 메르켈의 사임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 사임한다고 하여 CDU가 1당이 될 수 있을지도 확실치 않다. 즉, 메르켈이 무엇을 선택하든지간에, 그녀의 마지막이 별로 아름답지는 않을 듯 하다. -------------- 참조 1. AKK의 몰락(2020년 2월 11일): https://www.vingle.net/posts/2763374 2. AKK의 승리(2018년 12월 8일): https://www.vingle.net/posts/2539336
가브리엘레 뮌터
주말은 역시 전시회 아니겠는가. 큰 마음 먹지 않으면 갈 수 없는 전시회 정보다. 제목: 가브리엘레 뮌터, 단도직입적인 그림(GABRIELE MÜNTER. MALEN OHNE UMSCHWEIFE) 기간: 2017년 10월 31일 - 2018년 4월 8일 장소: 독일 뮌헨 렌박하우스(Lenbachhaus) 웹사이트: http://www.lenbachhaus.de/ausstellungen/gabriele-muenter/ 가브리엘레 뮌터는 당연히 별도의 소개가 필요한 인물인데, 또 그렇지도 않다는 점이 함정이다. 가령 까미유 끌로델을 얘기할 때 오귀스트 로댕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과 마찬가지이다. 바실리 칸딘스키 때문이다. 물론 뮌터의 경우 끌로델보다는 훨씬 행복한(?) 삶을 살았다는 점이 함정. 그래서 영화화가 안 됐을 수도 있을 텐데, 그렇다고 칸딘스키랑 백년해로한 것도 아니다. 대략 10년 정도 같이 살았을 뿐(선생과 제자로 만나서 사랑했던 건 로뎅의 경우와 동일하다). 게다가 상당히 삶도 주체적이었다. 바로 “청기사파(Der blaue Reiter)”의 주역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뮌헨의 렌박하우스가 세계에서 아마 청기사파 그림을 제일 많이 보유하고 있을 것이다. 청기사파의 본거지였기 때문이기도 한데 애초에 이 청기사파는 무슨 특별한 미술 사조를 상징하는 파벌이 아니었다. 뮌헨 신인 작가 협회(NKVM)에서 칸딘스키 그림을 의도적으로 떨어뜨렸다 하여 항의의 의미(참조 1)로 바이에른 진더스도르프의 한 커피 탁자에서 만들었다(참조 2). 다만 고등학교 미술 교과서에 그녀의 이름이 거론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청기사파도 칸딘스키를 언급하면서 잠시 지나갔을 뿐이다. 하지만 당연히 고향 독일에서는 유명한 화가였고, 히틀러 통치 기간 동안 숨겨왔던 엄청난 그림들을 모두 렌박하우스에 기증했다(이제 렌박하우스가 왜 중요한 미술관인지 아시겠나?). 그래서 이번 회고전은 네 번째. 여기 전시회가 끝나면 미국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에서 8월 19일까지, 그 다음에는 독일 쾰른의 루트비히 미술관에서 내년 1월까지 한다. 다시 뮌터로 돌아와서, 그녀와 칸딘스키와의 관계 때문에 그녀의 그림이 평가절하된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 독자적인 스타일이 있다. 색깔의 선택은 물론이거니와 유머(!)도 꽤 보이기 때문이다(참조 3, 4). 그걸 보이려는 것이 이번 전시회 목표 중 하나다. 다만 링크한 FAZ의 이 기사가 뮌터를 몰랐던 사람이 보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듯 하다. 뮌터에 대한 평가가 변화하는 상황을 복잡하게 설명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칸딘스키 및 청기사단하고만 관련지어 얘기하는 것도 좀 협소하다. 그녀의 그림이 청기사를, 독일 표현주의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그녀도 당당히 미술사에 이름을 크게 올릴 만하다. ---------- 참조 1. 이 협회(Neue Künstlervereinigung München)는 뮌헨의 표현주의 화가들 모임으로서 유명했으며 칸딘스키 본인이 협회장을 지낸 적도 있었는데, 칸딘스키의 추상화 경향을 협회측이 못마땅해하고 있었다. (후에 히틀러의 퇴폐 예술 지정으로 협회 자체가 사라졌다.) 2. 커피가 이렇게 위험합니다, 여러분. Der Sindelsdorfer Malerweg: http://www.sindelsdorf.de/seite/272861/sindelsdorfer-malerweg.html 3. 가령 기사에 나와 있는 “탁자에 앉은 칸딘스키와 에르마 보시/„Kandinsky und Erma Bossi am Tisch“(1912)”를 보시라. 4. Gabriele Münter: Mit Farbe ins Freie(2017년 12월 29일): https://derstandard.at/2000071147757/Gabriele-Muenter-Mit-Farbe-ins-Freie
한국 현대미술의 정체
목요일은 역시 독서지. 그동안 너무 한국 현대미술을 등한시했었는데, 종합적으로 살펴보려면 아무래도 이 책이 좋지 싶다. 두껍지만 타이트하다. 이를테면 한국에서 어지간한 전공은 대체로 서울대학교가 최상위 그룹을 형성하고 있는데 미술은 왜 홍익대학교인지 의문을 가지셨다면 좋은 해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화대학교 교수다.) 한국 현대미술도 다른 나라의 현대미술처럼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시작됐다고 봐야 할 텐데, 현대의 한국 거의 모든 분야가 그러하듯, 베끼기부터가 시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전후 유럽과 미국은 추상화가 점령했다. 이들은 각각 앵포르멜(informel)과 추상표현주의로 나뉘었는데, 전쟁 중 미술계의 폰 브라운들(가령 뒤샹이나 이브 땅기) 미국도 드디어 미술에 한 몫 끼기 시작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한국전쟁을 누가 구해주고, 누가 한국에 문명을 가져왔다? 일단 미국이다. “일단”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우리가 식민지를 겪었기 때문인데, 그때문에 일본 유학파 출신도 많았다. 즉, 한국의 현대미술 작가들은 미국에서 유행한 추상표현주의를 따라 그리면서도, 일본을 통해 접목한 유럽식(특히 프랑스) 전통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서는 자기들을 “앵포르멜”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미국+일본(프랑스)이 우리나라 현대미술이라는 얘기다. 둘은 한국에서 꼭 구분되지 않았고 합쳐지기도 했었다. 물론 이 “앵포르멜”이라 불리우는 한국식 추상표현주의가 오래가지는 않았다.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다른 식으로의 탈출이 필요했던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화가가 둘 등장한다. 박서보와 이우환이다. 분위기가 베끼기에서 좀더 “한국화”가 되면서 단색화가 나타난 것이다. 단색이라고 해서 그냥 로스코 류를 연상하실 수 있을 텐데 이게 그렇지 않습니다. 제일 비정치적이랄 수 있을 단색으로 작품을 그릴 수밖에 없는 환경과 위에 거론한 중요 인물 두 명 때문이다. 박서보는 한국에서 활동했고 이우환은 일본에서 활동했다(참조 1). 둘이 협력관계로 지내다가 나중에 라이벌 비슷하게 변해가는 과정이 한국 현대미술의 회화 쪽 전개양상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참조 2). 박서보가 한국적 모더니즘에 천착한 반면 이우환은 모더니즘을 해체하고 한국적인 것을 비껴갔었다. 물론 한국 현대미술은 베끼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최신 조류인 팝아트는 물론 하이퍼리얼리즘도 그대로 도입했기 때문이다. 조상현이나 변종곤과 같은 작가를 사례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뒤샹을 따라한 김구림도 생각할 수 있다. 이른바 K-모더니즘을 구현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런 조류가 비단 회화만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예술에도 적용됐다. 그런데 위에 사례로 나온 작가들은 모두 남자들이다. 미술계는 여자 작가들의 존재를 잊을 수 없을 일. 예전부터 나혜석과 천경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런 작가들이 누가 있었는지 알려주고 있으니 확실히 종합적으로 훑어보기에 제격이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 현대미술이란 무엇인가? 미국과 유럽(일본)을 베끼면서/들여오면서 끊임 없이 우리식으로 바꿔버린 이야기이다. 즉, “문화번역은 근본적으로 오역이다. 그러나 오역이야말로 번역의 진정한 의미를 드러내는 지점이기도 하다(p. 197)”. -------------- 참조 1. 박서보가 홍익대를 나왔었고, 그가 이끄는 화가군이 우리나라 미술의 주류를 장악했었다. 이우환은 서울대를 다니다가 일본으로 건너가서 평론가 활동을 하고, 그 다음에 화가로 나서면서 박서보를 활용(?)했다. 물론 둘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존재였다. 2. 물론 이건 절반의 진실에 해당된다. 여성화가들의 존재와 함께 민중미술이라는 독특한 영역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AKK의 몰락
전에 AKK야말로 앙겔라 메르켈의 마지막 희생자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을 했었다(참조 1). 실제로 그녀는 메르켈의 희생자 명단에 오르고야 말았다. 2월 10일 CDU 지도부 회의 후, 여름이 오면 CDU 당수 및 총리 후보직을 모두 사퇴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https://www.faz.net/-gpg-9wd5s AKK는 물론 그동안 숱한 실수를 저질러왔는데, 이번 몰락의 결정적 계기는 튀링엔 주 주총리 선거였다. 원래는 좌파 연합(적적녹)에서 총리를 선출할 것이 기대됐는데, 갑자기 FDP 후보가 총리로 선출된다. 이는 CDU와 AfD의 몰표 덕택이었는데 잠깐만, AfD와 CDU, FDP가 합작한 것임? 이 의문에 AKK는 제대로 답하지 못 했다. 아니 애초에 CDU 의원들 관리를 못 한 탓이기도 했다. 극우파 AfD와는 연합하지 않는다는 당의 방침이 흔들린 것으로서, AKK는 당 내외에서 엄청난 비판에 휩싸였고, 결국은 못 버틴 것이다. 다만 메르켈의 요청에 따라 국방부장관 직까지 물러나지는 않았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그렇다면 여름이 왔을 때 누가 당수 및 총리후보가 될 수 있을까? 물론 친구들은 내가 오래 전부터 프리드리히 메르츠에 대해 써 왔음을 알고 계실 것이다(참조 2). 내 생각에는 그가 1순위, 그는 CDU 젊은 당원들에게도 인기가 많고, (심지어!) 바이에른에서도 우니온(CDU와 CSU) 리더로서 인기가 많다. 성향은 당연히 오른쪽. 물론 라이벌은 있다. 두 명 있는데, 하나는 이제 40세 밖에 안 된 옌스 슈판 복지부장관(참조 3)이 있다. 장관으로서 성적도 꽤 나쁘지 않은 모양이고, 사실 AKK를 당수로 뽑을 때 생각보다 표가 많이 나오기도 했었다. 성향은 메르츠보다 더 오른쪽이다. 옌스 슈판 그 다음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리아 주의 주총리, 아르민 라셰트. 성향은 중도다. 메르켈과 AKK를 그대로 잇는다고 볼 수 있을 테고 협상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메르켈이 혹시 그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 아르민 라셰트 이제와서 AKK가 물러나는 것도 메르켈이 압박해서가 아닐까 싶은데, 어차피 총리 후보와 당수가 분리되는 쪽으로 계속 밀고나간다면 라셰트와 메르츠가 적당히 타협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당권을 라셰트가, 총리를 메르츠가) 슈판은 게이라는 핸디캡도 있고, 너무 오른쪽이어서 오스트리아의 제바스티안 쿠르츠와 닮았다고 보기는 좀 그렇다. 그래서… 만약 메르츠가 총리후보가 되고 실제로 총리가 된다면 그는 그야말로 20년만에 메르켈에게 복수하는 셈이다. 가정적 상황이기는 하지만 정말 인생은 길게 봐야 할 일. 잠깐, 혹시 메르켈이 뭔가 상왕 자리를 만들어서 장기 집권하려는 건 아닐까? (이건 정말 드립으로 끝나기를 바란다.) -------------- 참조 1. AKK의 의도는?(2019년 10월 23일): https://www.vingle.net/posts/2688777 2. 프리드리히 메르츠(2018년 11월 1일): https://www.vingle.net/posts/25228001 3. 옌스 슈판(2018년 2월 13일): https://www.vingle.net/posts/2345480
달리의 타로 카드
https://www.vanityfair.fr/savoir-vivre/story/le-tarot-de-salvador-dali/10573?fbclid=IwAR2HjALqldM0bUymxnL6zAuHXbsPPfsQOprHD-DppdxqDfqtdvMevN_Cfq4 뭔가 아쉬워서 하나 더 쓰는 주말 특집, 살바도르 달리가 정말 온갖 미디어에 다 손을 댔다는 사실(참조 1)을 알고 계시면 이 또한 역시나, 하실 수 있겠다. 살바도르 달리가 직접 제작한 타로 카드들이기 때문이다. 올해 연말 혹은 내년 연초 선물로 제격 아닐까? 원래는 절판됐던 것을 독일의 아트북 전문 출판사인 타셴에서 다시 판매 시작했다(참조 2). 60불 밖에 안 하니까 마음 먹으면 얼마든지 구매 가능(그리고 인쇄된 책은 관세는 물론 부가세도 없습니다?). 잠깐, 절판됐었다고 표현했으니, 이미 이전에도 나왔다는 뜻? 그렇다. 이전에 아주 소량의 한정판으로 판매된 적이 있었다. 그 이유가 있는데… 자, 그럼 달리가 어째서 타로 카드를 제작했을까? 원래는 영화 소품으로 내보내려고 했었다. 어떤 영화? 007 죽느냐 사느냐(Live and let die) 편이었다. 하지만 달리는 비싼 분이다(참조 1). 가격 협상이 안 맞아 결국 그 영화에 소품으로 내보내지 못 했다. 그래서 그냥 소량의 한정판매로 뿌려버린(?) 것(그걸 구매한 이들은 정말 투자를 잘 한 셈이다). 참고로 실제 007 영화에서는 스코틀랜드의 일러스트레이터 Fergus Hall의 타롯 카드(참조 3)를 사용했다. 달리는 짜증이 났다. 그래서 그리던 타로 카드의 “황제” 그림을 007에 나오는 로저 무어가 아닌, 션 코너리를 모델로 해서 그린다(참조 4). 그런데 이 사실 아시는가? 전혀 그런 이미지가 아니고 상당히 흔한 일도 아닌데, 살바도르 달리는 한 아내와 꽤 오랫동안 같이 삶을 살았었다. 러시아(타르타스탄) 출신의 갈라 달리 여사이다. 아내를 사랑하는 달리는 아내를 모델로 하여 타로 카드의 황후 그림을 그렸었다. 마술사 카드는 자기 자신을 그리고 말이다. 이쯤 되면 달리 마음대로 막나가는 거냐, 할 수 있을 텐데 달리는 그래도 됩니다, 고객님. 물론 예술사적으로 이 타로 카드의 가치는 션 코너리나 갈라 달리가 아니다. 달리가 고전 그림을 재해석한 카드 그림이 워낙 많아서다. 고전 그림 뿐만도 아니다. 마르셀 뒤샹의 그림을 풍자한 것도 있다(참조 5). 참고로 달리는 이 카드 작업을 10년간 했었다. 한정판 출시는 1984년이었으며, 타로 카드 놀이, 혹은 예언(…)을 할 때 달리가 무엇을 참조해서 그렸는지, 무슨 의도를 갖고 있는지 몰라도 된다고 한다. p.s. 자기가 달리의 친딸이라 해서(부관참시까지 하여 수행한 DNA 테스트 결과는 아닌 것으로…) 잠시 세계 뉴스에 올랐던 Pilar Abel씨는 직업이 타로 카드 상담사(?)였다. -------------- 참조 1. 살바도르 달리와 플레이보이(2017년 6월 2일): https://www.vingle.net/posts/2113113 2. The Magician, Death, and the Moon : https://www.taschen.com/pages/en/catalogue/art/all/44640/facts.dali_tarot.htm 3. Tarot of the Witches cards by Fergus Hall : https://www.jamesbondlifestyle.com/product/tarot-witches-cards-fergus-hall 4. 숀 코너리와 로저 무어는 당시 상당한 경쟁 관계였다고 한다. 5. 가령 “컵의 여왕” 그림을 보면 두 가지 그림을 섞어서 뒤틀었다. (1) 프랑수아 클루에(François Clouet)의 엘리자베트 도트리슈(Élisabeth d'Autriche) 초상화(1571) (2)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L.H.O.O.Q.(1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