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pa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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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련한 과거와 화려한 현재가 뒤섞인 곳, 대한민국

너무 익숙해서 잊고 있었던 우리나라의 아름다움
오늘은 외국 사진작가들의 카메라에 담긴 우리나라의 모습을 준비해봤습니다 :)

모든 이미지의 출처는 unsplash.com 입니다 !
저작권이 없는 이미지로 마음대로 보정하시거나 배경화면으로 사용하셔도 돼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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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감동적인 현대미술 일화
미술사에서 아주 유명한 행위예술가인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참고로 그녀에 대한 검색은 자제하는 편이 좋음. 작품에서 누드랑 고어 요소가 심해서 짤림. 그리고 그녀는 자신과 같은 예술가이자 오랜 연인이었던 울라이와 작품도 여러번 같이 작업했었음. 그리고 사이가 안 좋아져서 헤어질 각이 보였는데, 역시 예술가들은 평범한 이별은 싫었는지 그 이별조차 작품으로 만들려고 했음. 작품명 '만리장성 걷기' 서로 만리장성 끝쪽에서 걷기 시작해서 2천 오백킬로미터를 걷고나서 딱 중앙에서 만나는 행위예술임. 그리고 아무 말도 헤어지는게 작품의 마무리. 그리고 이 두 사람은 이 이후로 만나지 않았음. 그렇게 또 몇십년이 흘렀음. 2010년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또 다른 행위예술 시리즈를 시작하는데 그 이름은 "아티스트는 실존한다" 아브라모비치는 아무것도 안하고 앉아 있고 맞은편에 관객들이 자유롭게 앉는거임 아브라모비치는 눈을 감고 있다가 관객이 앉으면 눈을 뜨고 바라봄. 아브라모비치는 아무 말도 안 함. 그냥 눈빛의 교환을 통해 대화를 시도하는거. 관객들의 반응은 각양각생이었음 '뭐 어쩌라고"라는 표정으로 보거나 머쓱해서 웃거나 '아니 시발 이게 뭐임ㅋㅋㅋ'하고 웃거나 아니면 종종 뭔가에 감명받아서 우는 사람도 있었음 그런데 이 전시 중에 예상치못한 사건이 생김. 전남친 울라이가 난입한거임ㅋㅋㅋㅋㅋ 원래 아브라모비치는 작품의 의도대로 아무 반응이 없이 앉아있어야 했는데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게 전남친이라서 심경이 흔들렸는지 표정이 흐트러짐ㅋㅋㅋ 그리고 만남의 마무리는 원래 가만히 있어야하는 아브라모비치가 손을 내밀고 울라이도 손을 내밀어 서로 손을 맞잡음으로 주변 관객들은 또 이 재회의 순간에 박수를 쳐줌으로서 감동적이게 끝났음 울라이는 그렇게 전시장을 떠났고 아브라모비치는 눈물을 닦은 후 다시 평소대로 전시를 진행함. 1:16초 경 난입하는 울라이 하지만 이렇게 훈훈하게 일이 끝났으면 이런 글 안올렸짘ㅋㅋㅋ 울라이는 몇년 있다가 1999년에 공동 작업했던 행위예술에 대한 수익 문제로 아브라모비치를 고소함ㅋㅋㅋㅋ [출처 - 루리웹]
남자 장발러들이 모두 공감한다는 분노의 한탄글
나는 남자 치고는 머리가 꽤 긴 편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남자보다는 단발 여자들하고 비교해야 할 정도의 길이에 가깝다. 머리를 길러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겠지만, 이 나라에서 머리가 긴 남자라는 것은 당장 불태워야 할 공공의 적이요, 악마의 자식이라는 말과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 이 것은 명백한 진실이다. 하지만 머리를 길러본 남자가 그렇게 많지도 않을테고, 지금 내가 하는 말이 쉽게 와닿지는 않을테니 이해를 돕기 위해 예시를 들자면, 나는 지금도 가끔 지하철에서 ‘너희 부모님께서 정성껏 기르신 고추를 그따위로 쓸거면 확 수확해다 내버려라’같은 식의 원색적인 비난을 받는다. 그러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어딘가 속시원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 자리의 가장 큰 죄인은 장발로 머리를 기른 나이며, 인간조차 되지 못한 죄인 장발장이 되어 나를 향한 배심원들의 비난을 들어야만 한다. 그것이 이 나라에서 장발 남자, 그것도 잘생기지 않은 장발 남자가 겪는 일상이다. 하지만 이런 부류의, 주로 아재체를 사용하는 직설적인 비난은 듣다 보면 꽤 정겨운 것도 사실이다. 그 본질은 나에 대한 비난이라기보다는 자신들의 기존의 가치관에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 같은 나의 머리에 대한 거부감이라는 것이 느껴지고, 또 학교에 지각해 면도도 제대로 하지 않고 지하철을 탔던 날에 이발비를 줄테니 당장 자기와 이발소를 가자며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던 할머니와의 만남은 꽤 가슴 한켠이 따듯해지는 경험이기도 했다. 요컨대 통칭 꼰대들과의 만남은 모두가 생각하는 것 만큼 기분 나쁜 경험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 무엇 때문에 지금 이렇게 쓸데없는 글을 적고 있는가 하면, 내가 머리를 기르면서 나를 가장 빡치게 만들었던 것은 놀랍게도 내 또래의 애새끼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새끼들은 맨날 뻑하면 뇌가 굳은 꼰대들이 이 나라를 조사놨다고 투덜대는게 일상인 주제에 정작 지들 대가리도 시금석을 갈아버릴 만큼 빡빡하다는 생각은 못하는지 아주 사람을 환장하게 만드는데에 재주가 있다. 이새끼들한테는 무산 말을 하더라도 결국 한가지 결론으로 귀결되는데, 어머니의 ‘컴퓨터를 너무 많이 해서 그래’와 비슷한 용법을 가진다. 앞머리가 거슬린다 / 머리를 짤라 머리를 말리기가 귀찮다 / 머리를 짤라 늦잠을 자는 바람에 머리를 못감고 나왔다 / 머리를 짤라 나는 긴머리가 좋다 / 머리를 짤라 … / 머리를 짤라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이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했다 / 너는 머리를 짤라 니 씨* 개 *같이 생긴 새끼야 / 투블럭은 어때? 매번 이와 같은 말을 들을때마다 나는 상당히 직설적으로 이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개*끼들은 매일매일 무슨 마을 입구 경비병 NPC마냥 내 얼굴을 볼때마다 ‘우리 마을에 온 것을 환영하네! 우리 마을은 머리를 짤라 마을이라고 하네!’하면서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이 새끼들은 전부 정신병자들이 틀림없다는 생각까지 들곤 한다. 이들이 이와 같은 반복성 멘트를 사용하는 이유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그들은 마치 거대한 비밀을 알려주는 것처럼 나에게 저 말을 하곤 하기 때문이다. 마치 소원을 이루어주는 마법의 주문이라도 알려주는 것 같은 분위기로 나에게 다가와서는 한다는 소리가 ‘짧은 머리를 하면 더 잘 어울릴거야’인 시점에서 이미 그들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파악하는 것은 간단하다. 이 병신새끼들에게는 그저 자신들의 기준에서 썩 괜찮지 않은 머리를 하고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한 것이다. ‘남자는 짧은 머리가 더 잘 어울린다, 그러니 나라면 짧은 머리를 할 것이다, 그러니 저 새끼도 짧은 머리를 해야만 한다.’와 같은 기적의 삼단논리를 들고 와서는 나를 위한답시고 저딴 개쌉소리를 하면서 사람 복장을 뒤집어 놓는 것이다. 즉 저들에게 나의 장발은 이미 7대 원죄와도 같은 존재이며, 그 머리를 자르라는 자신의 조언은 기독교식으로 만하면 인류의 죄를 사한 예수의 피와도 같은 존재인 것이다. 아주 씨* 가관이다. 처음에는 나도 이렇게 무작정 화만 내지 않고 내가 머리를 기르는 이유를 천천히 설명하곤 했었다. 하지만 상술했다시피 저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그게 무슨 사탄의 속삼임인 양 귓구멍을 틀어막아놓곤, ‘너는 머리를 자르면 잘생겨보일거야’라며 사람의 울화통을 터트렸고, 나는 내가 말하는 그 모든 것이 저 개*끼들에게 완전히 무의미하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요컨대 장발의 눈으로 바라본 20대나 어른들이나 모두 똑같은 꼰대들이고, 20대는 본인들이 이미 꼰대가 되어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점에서 더욱 더 악질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그냥 내가 머리를 기르는 이유를 설명하기보다, 그냥 나는 여자가 되고 싶어서 머리를 기른다고 말한다. 나중에 학교를 졸업하면 성전환 수술을 받을거라고. 그럼 그들은 그 *같은 말들을 멈추고, 많은 생각을 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그런 너를 응원한다고 말하곤 한다. 이게 무슨 말인지 아는가? 대한민국의 꼰대 지망생들에게는 장발보다는 트랜스젠더가 더 많은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씨*새끼들은 ‘나는 트랜스젠더나 동성애자도 차별하지 않는, 이해심 많은 어른이 되어서 절대 우리 윗세대처럼은 되지 말아야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주제에 막상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기준을 들이대면 본인들이 그렇게 변해 버린다. *같은 새끼들. 본인은 꼰대가 되지 않을거라고 생각하는 꼰대들이 자식새끼들을 하나둘씩 키우고 있을 이십년 후를 생각하면, 나는 너무나 기대가 되어서 애써 기른 머리카락이 쑥쑥 빠지는 기분이 들곤 한다. 출처 : 대나무숲 쓸데 없이 오지랖이 넓어서 잘라라 말아라 어쩌고 저쩌고 말 얹는 새끼들은 자신의 머가리나 자를 것. 타인의 외적인 부분에 너무나 관심이 많고 심지어 지들이 뭐라고 통제하려는 인간들이 꼭 주위에 한 명씩은 있음 특히나 여성의 코르셋을 조장하며 화장은 안 한 민낯을 비웃고 조롱하며 끊임없이 꾸밈노동을 강요하는 인간들, 꼭 그런 놈들은 지는 안 꾸미더라 젤루 구림^^;
랩퍼들 순살치킨으로 만드는 대중음악평론가
양자를 희롱하는 왕, 스윙스 뇌는 머리의 밀도를 높이려고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뇌는 두개골의 강도를 검증하기 위한 피실험체로서 거기 있는 것이 아니다. 뇌는 경추에 하중을 조금이라도 더 가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뇌는 이런 역할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뇌의 주된 기능 중 하나는 사고를 담당하는 것이다. 뇌는 다른 신체 부위들이 받은 자극을 종합적으로 인지해 감각과 감정을 합리적으로 다스린다. 어떤 행동을 할 때 그간 축적된 정보들을 바탕으로 체계적인 계획을 세우고 적합한 판단을 하게 한다. 상상을 통해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해 내기도 한다. 뇌는 이처럼 생각 전반을 맡는다. 생각에는 제어도 포함된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 쌓은 지식과 경험을 갈무리해 애초에 뜻했던 말이나 행동을 통제하는 것도 생각의 한 부분이다. 이로써 사람 사이의 불필요한 갈등이 방지되고 남에게 해를 입힐 일이 줄어든다. 하지만 이성적인 사고에 의한 여과가 이뤄지지 않을 때에는 보통 사람들의 인식 또는 사회의 규범에 어긋나는 행동을 저지르게 된다. 그런 경우에는 어김없이 ‘생각 없는 사람’이라는 지찬이 쏟아진다. 지난 3월 말 스윙스가 대중으로부터 뭇매를 맞은 일도 무절제한 행동에 기인한다. 그는 래처 비즈니즈가 2010년 7월에 낸 < Ego >의 수록곡 중 ‘불편한 진실’에 참여해 2008년 세상을 떠난 최진실을 가사의 소재로 썼다. 고인을 기리는 것이 아닌 단순한 비유를 위한 선택이었기에 눈살이 찌푸려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그가 시기하는 누군가를 모욕하고 자신을 강한 존재로 수식하기 위해 망자를 이용해 먹으니 역겨움마저 든다. 당장 토가 나와도 전혀 이상한 반응이 아니다. MC몽 등장이 민폐다. 국민을 기만한 허수아비들에 대한 공분이 화력을 더해야 할 판에 포털사이트 검색어의 자리 하나를 꿰차며 찬물을 끼얹었다. 물론 엠씨몽(MC몽)의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것은 좋은 의미든 그렇지 못하든 그를 향한 대중의 극대한 관심을 증명하는 현상이다. 하지만 온갖 비위와 공작으로 나라가 혼란한 때에 정세를 희석하는 듯해 영 달갑지 않다. 검색어를 차지한 시간은 비록 잠깐이었다고 해도 꺼림칙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맥 끊기의 저력을 보여 줬다. 원래 9월 초 발매 예정이었던 일곱 번째 정규 앨범 <U.F.O>는 음악적 완성도를 이유로 출시가 연기됐다. 하지만 약 두 달간의 숙성을 더 거치고 나온 신작에서 엠씨몽이 명목으로 내세운 완성도는 여간해서는 감지되지 않는다. 싱잉 스타일의 훅, 마지막 음절 모음을 한 번 더 끌거나 에코를 주는 방식, 두더지 게임의 두더지처럼 여기저기서 꼬박꼬박 등장하는 현악기 등 이전에 발표한 노래들과 크게 차이 없는 비슷한 형식이 이번에ㅗ 계속된다. 예술 작품에서 완성도는 참신성과 세련미가 바탕을 이룰 때 빛나는 법이다. 주형에 그릇을 찍어 내다시피 하는 이가 대단한 옹기장이인 척하니 실소를 금하기 어렵다. 동어 반복 또한 완성도의 불가능성을 촉진한다. 인스트러멘틀과 히트곡 위주로 편집한 ’Show’s just begun’. 스트리밍 서비스가 이뤄지지 않는 ‘U.F.O’ (이 노래를 확인하기 위해 CD를 사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를 제외한 아홉편의 노래에서 ‘사랑’과 ‘love’는 각각 39회, 40회 등장한다. 같은 단어를 거듭함으로써 엠씨몽은 다양한 소재 확보를 위한 노력결여, 표현력과 창의력의 빈곤함만 선전하고 있다. 한편으로 이토록 사랑을 부르짖는 이가 나라에 대한 사랑에는 인색했다는 사실이 애석하다. 동일한 어휘를 되풀이해 가뜩이나 싫증이 나는 마당에 엠씨몽은 예전 가사를 가져와 지루함을 곱절로 키운다 그는 ‘And you’와 ‘꽃’에서 2005년 히트곡 ‘I love U oh thak U’의 제목과 같은 노랫말을 마감재로 사용한다. 특히 ‘꽃’은 과거 김태우와의 듀엣을 기념하기라도 하듯 그를 다시 불러 “I love you, oh thak you”를 줄기차게 외친다. 엠씨몽에게는 이 문장이 자신의 업적을 기리는 표어가 된 듯하다. 본인에게는 뜻깊을지 몰라도 문학적으로 근사한 표현, 혹은 고매한 잠언은 결코 아니다. 별 의미 없는 말 또 하고 아까 했던 그 말 또 하는 술자리 진상의 모습니다. 피처링의 과한 집적은 지긋지긋하다 못해 징글징글하다. 6집 <Miss Me Or Diss Me>와 마찬가지로 이번 앨범 역시 모든 수록곡에 객원 가수를 꽃아 성대함을 이룬다. 버벌진트에게 나는 길바닥에 함부로 오물을 버리지 않는다. 나는 무단횡단을 하지 않는다. 나는 분리수거도 꼼꼼하게 한다. 내 주변 사람들은 내가 법과 질서를 얼마나 고지식하게 지키는지 알고 있다. 그런 내가 음주운전을 한 범죄자이자 잠재적 살인마에게 쓰레기라는 말을 들어야 할 하등 이유가 없다. 나는 아량이 넓다.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고 행동을 배려한다. 하지만 유아적 나르시시즘에 빠져 비평을 겸허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불쾌한 말을 일삼는 철딱서니 없는 행위는 그냥 넘기지 않는다. 네가 생각 없이 트위터에 싸지른 말은 앞으로 네가 실수나 잘못을 할 때마다 언급될 것이다. 나는 죄는 용서해도 사람은 용서하지 않는다. 저런 리뷰와 마찬가지로 이 글 역시 웹진의 편집 방향과 무관하다. 그러니 그때처럼 소심하게 남의 노래에서 “온갖 izm에 물든 꼰대집단”이라는 둥 투정 부리는 일은 없길 바란다. 디스를 할 거면 실명 거론하면서 하는 게 쿨해 보인다. 찌질이 주제에 진실한 척 구느라 애썼다. 술 조심하고, 운전 조심하고, 부디 입도 조심해라. ㅊㅊ: 비평가 한동윤 버벌진트는 보고 울었겠는데? 진짜 ㅈㄴ 찰지게도 패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