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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엔 "마음을 예술하다" 명상X예술치료 워크숍



<마음을 예술하다> 명상 x 예술치료 워크숍 ⠀

- 일시: 매주(토) 낮1시~3:30 11/30, 12/7, 12/14 (원데이클래스 총3회)​ ⠀ - 장소: 감성 스튜디오 그곳 (서대문구 창천동 112-27 닭꾸버건물 B1)​​ ⠀ - 수강비: 30,000원 (재료&음료 제공)​ ⠀ ⠀ ♥️신청방법 2가지​​ ⠀ ① 입금​ 입금자명, 날짜, 인원수 만 전송~ 숑숑!​ ⠀ ✔연락처 010-9965-1117 카톡, 인스타, 페북 DM: yogadaum​ ⠀ ✔결제 하나은행 419-910047-39508 성다움 카카오페이⭐‍♀️‍♂️ ⠀ ② 어플 가입​ 솜씨당 가입 => 결제
솜씨당 클래스 - 마음을 예술하다 [명상x예술치료 워크숍]
<마음을 예술하다>는 '파자마프렌즈'의 조이, 장윤주, 송지효, 하영님이 함께 하셨던'내추럴 무브먼트'처럼 명상과 예술치료 기법으로 마음을 돌보는 치유의 시간입니다. 옷깃을 여미는 연말 즈음, 한 해를 갈무리하는 따뜻한 쉼 자리에 함께 하시면 어떨까요 :) [명상 yoga meditation]다양한 종류의 요가명상법을 초보자도 편안하게 접할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안내해드립니다. 바빠서, 힘들어서 외면했던 내 마음엔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을까요? 찻물 위 벌어지는 꽃잎처럼 차근차근 만나보아요. [예술치료: MR(movement ritual) + 즉흥춤 + 드로잉 + 글쓰기] 명상으로 만난 내면의 어린아이와 예술놀이를 함께 합니다. 몸치도 곰손도 상관없어요 :)판단·평가 없는 심리적 안전지대에서 마음껏 놀아 보아요~+ 매체전환의 치유원리춤에서 얻은 이미지를 그리고, 그림에서 나온 이야기를 글로 씁니다.그릇을 바꾸면 담긴 물의 모양이 바뀌듯, 매체를 바꿀 때마다 무의식은 새로운 메시지를 드러냅니다.창조의 과정에서 화, 슬픔, 스트레스가 새로운 삶의 도구로 탈바꿈합니다!+ MR(movement ritual)이란?안나 할프린이 개발한 움직임 시퀀스로, 남녀노소 누구나 할 수 있는 ‘몸과의 만남’ 입니다. 신체구조, 중력 등 자연의 힘에 의지하여 몸이 생긴대로, 지구가 품어주는 대로 따라갑니다. 이완 속 맑아진 의식은 보다 섬세한 감각을 얻게 되고, 이는 새로운 춤-삶의 자원이 됩니다.  소요시간: 2시간 30분~3시간 일정별로 수업내용이 조금씩 달라집니다.완성작 설명을 참고해주세요 :) 준비물: 편안한 복장, 개인텀블러, 그림 담아갈 가방 혜택 및 유의점 - 도화지, 파스넷 등 모든 재료를 제공합니다.- 신경계를 안정시키는 아로마오일을 발향합니다.- 따뜻한 허브티를 준비했습니다. (정수기X)- 심신에 불편한 사항이 있으시면 사전에 강사에게 문의 바랍니다. - 12세 이상 수강 가능합니다.
www.sssd.co.kr
솜씨당 클래스 - 마음을 예술하다 [명상x예술치료 워크숍]


* 현장결제 가능!
But 재료준비 관계로
가급적 예약 부탁드립니다‍♀️‍♂️
♥ 어떤 수업이지? ☞ 동영상 클릭!
'파자마프렌즈' 8회 조이, 하영, 송지효, 장윤주님이 함께 하셨던 내추럴 무브먼트(예술치료워크숍)
진행강사가 안내합니다 :)
​http://youtu.be/-TdeRPg3t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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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일간의 소풍
 어머니는 말씀하셨습니다. “먼 곳에 가보고 싶어, 서장이라는 곳에 꼭 가보고 싶어.” ​ 서장은 세계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 비행기를 탈 돈도 없고  자동차도 없는 아들이었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 칠순의 아들은 세 발 자전거에 수레를 매달고, 어머니가 편히 앉아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도록  사방에 창문을 냈습니다. 평생 자신을 위해 희생해 온 어머니를 위해서, 아들은 힘껏 페달을 밟았습니다. ​ 길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냇가에서 빨래를 하면서 아들과 어머니가 함께한 900일 간의 소풍… ​ 안타깝게도 두 사람은 원하던  서장까지는 가지 못했습니다. ​ 하지만 103번째 생일을 앞두고 눈을 감기 직전  어머니는 말씀하셨습니다. ​ “너와 세상 구경하는 동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였어.” ​ 남겨진 아들은 어머니의 유골을 수레에 싣고 7개월간 더 자전거 페달을 밟았습니다. 어머니의 유해를 서장에 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 마침내 도착한 서장… 참았던 눈물을 이제야 쏟은 아들은 어머니가 시원한 바람이 되어 자신의 볼을 쓰다듬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 왕일민의 ‘어머니와 함께한 900일간의 소풍’ 중에서 – 사랑은 포기하지 않는 것.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으로 가족에게 답해 주세요. 분명 행복해할 겁니다.   # 오늘의 명언 어머니는 의지할 대상이 아니라 의지할 필요가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분이다. – 도로시 피셔 –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부모님 #사랑 #효 #가족
외딴 절의 여우
아홉 개의 꼬리를 요염하게 휘두르며 안광을 번뜩여 삿된 기운으로 사람을 홀리고 인간이 되기 위해 사람의 간을 빼어 먹는 구미호는 요괴하면 대표격으로 떠오르는 존재이다. 우리가 흔하게 접하는 이런 설화들은 어쩌면 아주 가끔, 드물게는 인간의 순수한 창작이 아닌 어떤 사람이 실제로 겪었던 영적인 경험에 토대를 둔 걸지도 모른다. 어느 화창한 주말 늦은 오후, 공기가 상쾌하여 선선한 가을날이었다. 나는 모처럼 여자친구와 만나 지방의 한적한 공원에 방문하게 되었다. 공원은 저수지를 겸한 커다란 호수를 중심으로 조성되어 있었는데 우리는 두런 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호숫가 둘레 길을 걷던 중이었다. 공원 초입부의 호수 가장자리는 평지였지만 반대편은 절벽에 가까운 산이어서 풍광이 나름 괜찮았다. 여자친구는 산쪽을 보더니 "저런 뜬금없는 곳에 웬 절이 있네, 한번 가보지 않을래?"라고 말을 건넸다. 그 말을 듣기 전에도 무언가 그 절에서 느껴지는 힘이 있었다. 난데없이 거대한 석불상이 그 절 위로 떠올라 있는 것이 보였던 것이다. 호기심을 느꼈기 때문에 다소 먼 거리임에도 우리는 호수 반대편까지 걸어갔다. 언덕 위에 있는 거의 암자에 가까운 작은 절은 휴일이라 그런 건지 몰라도 전각들이 모두 자물쇠로 잠겨 있었고 경내엔 우리들 외엔 없는 것인지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이미 해가 저물고 있는 마당이어서 가끔 들리는 새소리와 벌레소리가 스산한 느낌을 더해주었다. 절을 구경하던 도중 느낌이 이상해 산신각 입구에서 여자친구를 멈추어 세웠다. 산신각 부근에서 이리 오라는 목소리가 들려서 올라갔는데 산에 있던 작은 바위 위에 어떤 나이든 도사같이 보이는 존재가 걸터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존재는 "내가 누구인 것 같은가?" 라고 물었다. 내가 별로 도사인 것 같지 않고 여우같다고 말을 하니 도사는 순식간에 여우로 변하여 날 보고 피식 웃어버리고는 훌쩍 도망가버리는 것이었다. 에휴... 기껏 낑낑대며 올라왔는데 겨우 여우에게 속은 것이었다니...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탈길을 내려오며 여자친구가 머리가 아프대서 봐줬더니 작은 호랑이 한마리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기에 떼어주고 가다가, 대웅전 지붕을 보니 아까 그 여우가 날보고 비웃고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여우에게 된통 당한 것이다... 보통 공기 좋은 산과 절 같은 장소는 분명 기운도 좋고 마냥 유익한 것들만 가득할 것이라고 생각들을 한다. 탁한 공기에 찌든 현대인들에게는 산과 숲, 계곡의 청명한 이미지가 더 강하게 와닿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평범한 산과 숲에는 의외로 사람에게 영적으로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존재들이 도사리고 있다. 걔중에는 선천적으로 영적인 면에서 민감한 사람에게 다가와 각종 환영을 보여주며 마치 자신이 대단하고 신성한 존재라도 되는 것 마냥 홀리기도 한다... 내가 당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산에 가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은 아니다. 선천적으로 민감한 체질이라거나 산에서 꾸준히 기도라도 하지 않는 이상, 여우를 포함한 산속의 존재들에게 당신은 놀리거나 속여먹기는 곤란한 스쳐지나가는 여행객에 불과할 따름이다.
살면서 반드시 피해야 하는 12명의 어둠의 세력!
우리는 성공과 성장을 위해서 꼭 만나야 할 사람과 네트워킹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살면서 꼭 피해야 할 어둠을 세력들을 선별하는 것도 중요하다.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나에게 방해가 되는 사람들을 멀리 해야 한다.  다시 한번 나의 네트워크를 자세히 살펴보고 아래의 인물이 속해 있는지 확인해 봐야한다. • 나를 힘 빠지게 만든다. • 내가 나의 능력에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 자신만의 아이디어는 없어 보이면서 언제나 나의 의견에는 찬성한다.  • 늘 모든 상황에서 부정적인 면만 본다. • 나를 수세에 몰리게 한다. • 나의 의사결정과 하고 싶은 일을 망설이게 만든다. • 항상 자신의 얘기만 할 뿐 나에게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 나의 의견이나 아이디어를 자신의 것으로 취한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친구를 가려내거나 아니면 주위에 전화해 이제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또한 “너는 이제 내 네트워크에서 아웃이야!”라고 말하라고 권하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 이 작업은 나의 내부 조직에 어떤 인물이 있기를 희망 하는지, 그리고 누가 나와 나의 여정을 응원하지 않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실제로 입 밖으로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일단 나의 발전을 방해하는 부정적인 사람들을 찾아내고 나면 그들에게 얼마만큼의 시간을 할애할지 정하면 된다. 테두리를 치고 시간을 정해서 나의 에너지에 부정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그들을 배제해야 한다.  ※ 주변에 숨어서 당신의 가능성을 제한하며 인생에 걸림돌이 되는 12가지 어둠의 유형 “부정적인 사람들은 당신의 에너지를 빼앗는다. 당신 주변을 사랑과 풍요로 채우고 적대감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라.”  -디팩 초프라 Deepak Chopra-
주술 쓰는 여자
예전에 내가 다니던 직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직장 동료 중에 나보다 약간 나이 드신 A 대리라는 분이 있었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직장인이셨고 나와도 큰 트러블 없이 잘 지내고 있었다. 어느 날, 평소와 다름없이 일을 하던 중이었다. A 대리가 갑자기 어깨 쪽에 통증을 호소하였는데 마사지를 조금 할 줄 알았던 나에게 아픈 곳을 봐 달라고 부탁하였다. 주무르면서 혹여 뭔가 있는 게 아닐까 싶어서 자세히 살펴보니 어깨 견갑골 쪽에 작은 칼이 하나 박혀 있는 것이 보여서 조금 놀랐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더 상세히 투시해 보니 어떤 여자의 모습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체구가 아담하고 얼굴이 동그스름하니 귀엽고 예뻐 보이는 인상의 여자였는데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의 검은 블라우스와 치마를 입고 있었다. 그 여자가 기도 같은 것을 하며 주술적으로 좋지 못한 힘을 행사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고 그녀의 힘은 칼을 꽂아 넣는 형태로 구현되어 A 대리의 신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보아하니 분명 A 대리와 연관이 있던 사람 같았는데 뭔가 치정 관계 같은 느낌이 들었었다. 그러나 이 난감하기 그지없는 상황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대놓고 이 여자 분에 대해서 아시냐고 여쭤 볼 수는 없었다. 직장동료들은 내가 수련을 하는 사람인 줄도 모르는데다가 A 대리는 결혼을 하였고 아이까지 있으신 분인데 그 여자 분에 대해서 물어볼 수 없는 게 당연했다. 그래서 일단 견갑골에 꽂혀있는 칼만 좀 뽑아주고 슬그머니 상황을 마무리 했었다.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른 데에는 분명 동료 분의 책임도 없지 않을 것이기에 내가 확실하게 해결해 줄 명분도 없는 것 같았고, 내 가족이나 친척도 아닌데 그렇게까지는 도와 줄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수련을 하려는 찰나에 주술을 사용했던 그 여자의 내면의식이 나를 찾아왔다. 홀연히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그녀는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린 채 노여움에 가득찬 목소리로 말했다. " 네가 뭔데 나를 방해하는 거야?" 이성보다는 압도적으로 감정의 지배를 받는 인간 내면의식의 특성상 그녀는 문답 무용으로 나에게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내게 주먹을 내지르고 발길질을 하며 난동을 부리는 통에 머리가 어찔거리고 몸이 쑤셔 정신이 없었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대여서 나도 힘을 행사하여 몇 번정도 타격을 입히고 다소 잠잠해진 그녀를 잡아다가 원래 있던 곳으로 던져버렸다. 그녀가 오늘 일을 알아차리던 말던 며칠 간은 몸이 많이 힘들고 피곤할 것이다... 힘을 가진 사람들의 저런 어두운 면을 보면 늘 착잡하고 ‘왜 저렇게 살까?’라는 의문이 든다. 자신이 가진 힘을 안 좋은 방향으로 사용하는 경우 그 끝이 좋지 못할 뿐더러 어떤 형태로든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직접적으로 해를 입는 것을 의식하진 못해도 공격 당하는 쪽이 영력을 가지고 있다면 예상치 못한 반격을 당할 것이며, 행사하는 힘의 원천이 되는 존재에게 본인도 모르게 강하게 예속될 수도 있다. 자신이 쓴 힘의 흔적이 유체에 아로새겨져 지우기 어려운 문신과 같이 작용하여 그 힘의 영역에 속박되기도 하고, 스스로 끊기 곤란한 지긋지긋한 악연의 시작점이 되기도 한다. 물론 저런 분들이 현실 생활에서 인성이 개차반 같은 분들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다. 사람은 환경과 상황에 따라 주위사람들에게 선인일 수도 있고 악인일 수도 있는 이중적인 면모를 지니기 때문에, 그 사람들도 누군가에게는 친근하고 정다운 부모나 형제, 이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할지라도 영적인 차원에서 본인의 욕망을 채우려는 목적으로 보이지 않는 힘을 발휘하여 타인에게 해를 가하는 영혼에게는 어떻게든지 그에 따른 책임이 지워지기 때문에, 만일 누구든지 이런 힘을 가졌으면 힘에 취하지 말고, 힘을 쓴다면 그에 따른 절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물론 저 위에 있는 사례 말고도 더욱 착잡한 이야기도 있으나 공개된 장소에서 올릴 만한 얘기가 아니라서 쓰지는 않았다.
조각상에 깃든 것
보람찬 하루를 마치고 집에서 쉬고 있던 도중의 이야기다. 여자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왔었는데 내용이 뭔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오빠 뭐해?" 나는 시큰둥한 목소리로 그냥 쉬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여친은 카톡으로 어떤 조각상 사진을 보내주며 어떤 것 같은지 봐달라고 부탁을 했다. "이거 우리 엄마가 사가지고 온건데 뭔가 느낌이 그래서 오빠에게 한번 보여주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뭔가 흔히 볼 수 있을 것 같은 두 종류의 나무조각상으로 한 종류는 돼지 암수 한쌍이 세트로 되어있는 조각상이었고 다른 하나는 부엉이 두 마리가 횃대에 앉아있는 형태의 조각상이었다. 여자친구의 말로는 동남아시아에서 제작된 것으로 어머니가 시장에서 복을 불러오는 조각상이라 하기에 기분내어 사온 것이라고 했다. 겉으로 보기엔 별다를 것 없어 보였지만 투시를 해보니 실상은 그리 좋은게 아니였다. 그 두 조각상에 숨어있는 영적인 존재들이 딱히 질이 좋아보이지도 않았으며 집안 살림에 손실만 일으킬 존재들이었으므로, 결론적으로 조각상들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물건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수련을 가르쳐주시는 스승님께 문의를 드리니 그냥 처리하라는 말씀을 듣고 그 존재들을 보내야 할 곳으로 보내버렸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흔히 집안에 장식용으로 혹은 뭔가 잘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이같은 물품 등을 배치 해 두지만, 사람들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상황이 종종 벌어지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그 물건에 실질적으로 무엇이 깃들어 있는지 모른다. 위의 사례처럼 운이 없게도 좋지 못한 물품이 들어온다면 집안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웬만하면 출처도 모호하고 어디서 굴러먹다 들어온 물품인지 모를 것들을 '복을 불러온다, 재물운이 상승한다.' 같은 이유로 집안에 들이는 것보다는 차라리 집안의 쓸데없는 물건들을 정리하는 게 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전부 다 정리하라는 것은 아니고 오래된 물품은 함부로 들이지 않는 게 좋다고 말 하고싶다.
가장 슬픈 복수 <영주>
제목이 좀 선정적인 듯하나, 표현의 강도만은 영화가 담는 무게와 등가가 아닐까 싶다. 영주라는 영화에서 가장 강력한 영화적 요소는 설정이라고 생각된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찾아가 가족처럼 섞여든다는. 이것만으로 굉장히 충격적이고 강렬한 인상을 주어서, 예고편이나 시놉시스만 접해도 꼭 한 번은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차성덕 감독은 대사라는 소리 영역, 촬영기법이라는 영상 영역, 장르영화라는 정체성-분류의 영역에서 최대한 미니멀한 전략을 취했다고 한다. 연기의 디렉션조차, 최대한 연기자의 촬영 순간 감각과 감정을 존중하여 담아내었다고도 했다. 주어진 러닝타임, 스크린 화면, 관객의 심상 공간에서 이와 같은 거의 대부분의 영화적 요소들을 덜고 덜어낸 결과. 가장 도드라지는 것은 설정 그 자체와 그것을 ‘살아내는’ 연기였다. 그래서 다큐가 아님에도 오히려 더 날 것 같은 무게가 면전에 정면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차라리 예전에 이 영화의 모티프 혹은 전신일 수도 있는 페이크다큐식의 단편에 대한 구상처럼, 페이크다큐나 혹은 더 관조적이고 무채색의 톤을 지닌 형태로 담았다면 그 무게감이 훨씬 덜했을 것이다. 이런 쪽으로 영화의 정체성을 두지 않은 것도, 어쩌면 일반의 장르영화(소위 대중영화)적 형태로 가지 않은 이유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설정 그 자체, 그리고 그것을 살아내는 연기의 순간순간 호흡을 그대로 담아 직접 눈 앞에 내미는 것이다. 나는 그래서 오히려 중간중간에 약간씩 눈물이 맺혔고 오히려 마지막에 다수 분들이 눈물 훔치는 소리가 나는 장면까지 가도록 울음은 나지 않았다. 다만 너무나 몸이 무거워졌다. 좌측이 차성덕 감독 이 영화는 성장의 이야기, 과연 어른이란 무엇일까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장 독특한 지점은 역시 설정에 있는데, 가해자와 피해자간의 관계에 그 독특성이 있다. 영화를 보기 전 나는 가해자가 나를 보듬는 자가 될 수도 있고, 그래서 겪는 복잡한 애와 증의 감정, 용서. 이런 것이 담겨있을까 싶었다. 특히 우리나라 영화에서 많이 보이는 것은 감정을 장르영화적 장치로 잔뜩 웃기고 울리다가 나중에는 용서하거나 하는 훈훈함을 꼭 마무리 양념으로 넣는 것이다. 그러면 사실 그 감정선이 즐길만 하고 충분이 따라가며 울 수도 있고 갈무리까지 된다. 이런 구도는 이와 같은 나름의 충분함, 완결감을 심리적으로 주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대중적 재미도 있다. 유럽영화에서 많이 보이는, 차가운 톤의 매우 관조적으로 이러한 설정을 다루는 영화라면 또 그나름의 감상-즐김의 포인트가 설정 자체에서 오는 느낌의 무게와는 별도의, 혹은 부수적인 것으로 주어진다. 예를 들면 영주의 우는 장면을 아름다운 청회색 톤 화면으로 잡고 말그대로 관조만 하는 차가운 시선으로 보는 연출로부터 어떤 예술적 유희의 ‘감상’을 꽤 여유있게 할 수 있다. 이것은 앞서 말한 장르영화가 주는 영화적 재미와 내용은 다르지만 같은 종류의 것이다. 그 즐김, 재미, 감상은 관객으로서 가질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영주는 그와 비교할 때 그 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좁혀진 느낌이다. 오히려 다큐보다도, 혹은 보도물의 기록보다도 더 그 것이 크게 느껴질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미니멀한 연출방법 외에 내용 자체도 그렇다. 다른 여러 의미의 라인과 감정의 결과 주제-이슈가 담겨있지만, 이 무게감을 가장 많이 심어주는 의미의 선은 ‘죄책감의 교환’이다. 이것이 이 감상문의 제목이 왜 ‘가장 슬픈 복수 – 영주’인지를 말해준다. 내가 드린 꽃 들고 좋아하는 감독님ㅎㅎ 영주는 19년의 삶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긴급하고 큰 궁지에 몰린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부모를 죽인 가해자를 찾는다. 혹은 이제 아무 방법이 없으니 그 원망으로 무작정 찾아간다. 그러나 그들은 딱히 과하게 가난하지도, 부유하지도 않다. 또한 악독해보이지도 않고 오히려 다소 선량해보인다. 자신의 부모와, 자신들과 별다른 점이 없는 사람인 것이다. 때문에 영주는 자신의 정체를 밝히며 분노를 뿜어내고, 더 충분한 경제적 보상을 해내라고 외칠 수도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발길을 돌릴 순 없다. 그러면 이제 영주는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그냥 어떻게든 거기에 있어봐야겠다, 그리고 이들을 더 지켜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그 가게의 점원으로 취직을 할 결정을 내리게 했겠지. 영주가 마지막에 말하듯 그는 처음에는 그들에게 복수의 마음으로 신분을 숨기고 스며들었다. 게다가 가게 돈을 훔치는 복수이자 실질적 경제난 해결도 시도했다. 그러나 영주를 그들에게 찾아오게 했던 처음의 그 동기들은 뜻밖에 가해자 남성의 목숨을 구하는 일이 된다. 돈을 훔치러 가게에 왔다가 생명이 위독해진 가해자 남성을 위해 구급차를 부른 것이다. 이 죄책감은 가해자 남성의 부인이 베푸는 무한한 호의로 한 없는 고마움, 그리고 새로 얻은 부모로부터 받는 듯한 사랑의 온기로 뒤바뀐다. 부인은 남편의 목숨을 구해준 고마움도 있고, 영주가 식물인간으로 누워있는 자신의 아들도 떠올리고, 원래의 선량함도 있고, 영주가 도둑질 이전에 보인 성실함과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한 얼굴로 유추한 ‘뭔가 말 못할 사정이 있겠지’ 싶은 아량 등으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영주의 모든 잘못을 묻지 않고, 오히려 필요한 경제적 지원을 해준 것이다. 영주는 그와 같은 교환 속에 복잡한 감정을 느끼지만, 곧 다시 얻은 부모처럼 못 누린 자식으로서 받는 사랑을 만끽한다. 그리고 용서한다. 진짜 부모를 죽인 그들을. 그리고 영주는 새로운 죄책감을 얻는다. 자기 부모를 죽인 사람들과 웃고 맛있는 것을 먹고, 그들의 돈을 받고,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그리고 그들을 부모처럼 좋아하고 따른다는 점. 아마도 자기 부모를 배반하고, 또한 자기 부모의 존재를 엄청나게 강하게 – 마음으로 죽이는 일을 자신이 하고 있다는 죄책감이 들지 않았을까. 그 죄책감을 잊으려, 자기 부모의 죽음 자체가 자신을 버리고 말썽쟁이 동생을 혼자 돌보게 팽개친 가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동생이 그것을 정확히 건드린다. 그들이 과연 영주가 정체를 밝혀도 똑같이 자식처럼 받아줄 것인가 하는 의문을 동생이 제기한 것이다. 영주는 그들을 속이고 있다는 죄책감도 하나 더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불안감도. 이런 엄청난 모든 것을 19세 아이가 혼자 담고 있기에는 너무나 죽을 것 같았을 거다. 결국 자신의 정체를 밝히며, 그 모든 죄책감과 불안감을 떨치고자 한다. 가해자 부부는 처음엔 어른처럼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이지만, 실은 그들도 5년간 짊어진 그 죄책감 앞에서는 너무나 어린 아이와 같아서, 그만 영주가 숨어든 자기 아들의 병실에서 마음을 실토한다. 귀만 열려있는 식물인간 아들의 병실에서 부부는 그간의 죄책감과 어찌할 바 모르는 막막함과 절망감을 울음 운다. 가해자 남성은 이미 5년의 세월간 자살시도와 담배, 술로 몸을 상하게 해왔고 트라우마에 시달려왔다. 그 심리적 연장선으로 친아들까지 식물인간이 되는 ‘벌’을 받았고. 그래서 늘 웃고 살갑게 영주를 대하던, 그리고 영주와 더 친밀한 관계이던 그 부인의 그와 같은 실토와 울음은 더욱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특히 누워있는 아들 대신으로 느껴질만큼 마음을 주었던 부부에게 영주의 스며듦과 정체를 밝히는 그 한 마디는 그야말로 어디에도 없는 가장 크고 슬픈 복수가 되었을 것이다. 부부는 이 거대한 죄책감 앞에서는 속수무책이 되어 더 이상 펼칠 평소의 선량함도, 자세한 것을 묻지 않고 덤덤히 손을 내미는 아량도 쓸 수가 없다. 그저 울 뿐이다. 절망과 상실과 죄책감 속에. 감독님이 주신 초대권♡ 이들을 뒤로 두고 영주는 홀로 집으로 향한다. 다리 위에서, 다시 부모를 여의고 이제 정말 고아가 된 그는 스스로 죽으려다 한참을 운다. 너무나 아이처럼 울고 영주처럼 운다. 영주는 이제 친부모에 가졌던 죄책감, 분노, 동생을 자기 자신처럼 여겼던 마음, 가해자 부부에게서 느꼈던 가장의 부모-자식간의 관계, 감정을 모두 강물 속에 흘리고 걸어간다. 그의 삶으로. 그가 그렇게 해서 어른이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이제 처음으로 스스로의 목소리가 울음으로 나왔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소리는 그렇게 모두와 주고 받던 죄책감이 통곡으로 빠져나와 덜어지자 나올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죄책감은 심리적으로 성장함에 있어 가장 흔하게 장애가 되는 요소다. 누구나 살면서 받게 마련인 상처의 책임을 스스로에게 돌리는 것이니, 그 상처를 치유할 행동을 할 수도 없고 오히려 처벌로서 방치하거나 재차 삼차의 자해를 하게 된다. 그리고 대체로 죄책감은 선량한 사람들이 더 많이 가진다. 이런 사람들 사이에 일어난, 누구의 의도적 잘못도 없는 사고는 너무나 아프게도 서로에게 죄책감을 던지고 넘기고 삼키고 하는 관계를 선물했다. 이것은 너무나 따뜻하고 아프고 슬픈 것이다. 아무도 잘못하지 않고 모두가 커다란 상처를 입고 입는. 그런데 대체로 이렇게 사람들은 죄책감을 주거니 받거니 한다. 그 리얼함을 날 것 그대로 관객석에 앉아 맞으려니 몸이 무거웠던 것 같다. 영화는 그래서 너무나 의미 있고 깊이 있었다고 생각들었지만, 일개인의 관객 입장에서 그리고 지인으로서는 차기작은 좀 덜 무겁거나 덜 직접적인 진지함이었으면 한다. 뭔가 조금씩 더 행복해졌으면 한다. 세상의 모든 영주가. #영주 #차성덕 #인디스페이스 #독립영화 #인디영화 #김향기 이 영화는 이미 매스컴에 많이 알려졌듯, 감독님의 자전적 이야기가 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물론 똑같은 이야기는 아니고, 모티프가 자신의 경험에서 떠올랐다고. 그래서 이 작업은 그 자체가 자신의 어떤 상실의 경험을 마주하고 애도하는 의미가 컸다고 한다. 예술은 이렇게 창작자 스스로가 성찰과 치유를 할 수 있는 가장 큰 도구가 되고, 같은 아픔을 지닌 다른 이들에게도 자원이 된다. 거의 구도에 가까운 작업이라고 생각이 드는 차감독님의 걸음에 응원과 고마움의 마음을 보낸다. ps.그래서인지, 자기성찰을 작업과 긴밀히 연결하기 때문인지 이번에 새로이 열리는 워크숍에도 또 함께 해주신다고 하셨다. (흐흐홍보) 이번주 토요일 11/30 1시 신촌역 근처 <마음을 예술하다> 명상x예술치료 워크숍에서 함께 해요♥ <마음을 예술하다> 명상X예술치료 워크숍 - 일시: 매주(토) 낮1시~3:30 11/30, 12/7, 12/14 (원데이클래스 총3회) ​ - 장소: 감성 스튜디오 그곳 (서대문구 창천동 112-27 닭꾸버건물 B1) ​ - 수강비: 30,000원 (재료&음료 제공) ​ ​ ♥신청방법 2가지 ​ ① 입금: 입금자명, 날짜, 인원수 만 전송! ​ ✔연락처 010-9965-1117 카톡·인스타·페북 DM: yogadaum ​ ✔결제 하나은행 419-910047-39508 성다움 카카오페이★ ​ ② 어플: 솜씨당 가입 => 결제 ​https://www.sssd.co.kr/m/class/detail/6151?cmd=app ​ * 현장결제 가능 BUT 재료준비 관계로 가급적 예약 부탁드립니다! ❤참고영상 '파자마프렌즈' 8회​ 조이, 하영, 송지효, 장윤주님이 함께 하셨던 내추럴 무브먼트(예술치료워크숍) 진행강사가 안내합니다 :) http://youtu.be/-TdeRPg3tds ​https://www.sssd.co.kr/m/class/detail/6151?cmd=app #치유 #심리 #상담 #예술치료 #예술치유 #명상 #걷기명상 #춤명상 #심리치료 #심리치유 #힐링 #테라피 #만다라 #애니어그램 #타로 #마음치유 #상담심리 #무용치료 #미술치료 #동작치료 #문학치료
우울할때 마음다스리는 3가지 방법(알아차림 명상)
우울할때 마음다스리는 3가지 방법(알아차림 명상) 쉬운 주제는 결코 아니다. 개개인의 기분 나쁜 상황이 다르다. 개개인의 성격이나 특성이 다르다. 그래서 답은 없지만 내 나름 몇가지의 방안을 제시해본다. 인터넷 자료를 살펴보면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다. 음악듣는다. 소리를 지른다. 영화를 본다. 여행을 간다. 음식을 먹는다. 웃는다.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명상을 한다. 친구와 수다를 떤다. 운동을 한다. 술 먹고 잊어 버린다. ........................ 위의 방법들이 기분이 우울할때 활용할수 있는 많은 사람들의 검증된(?) 방식일 것이다. 각자에게 맞는 방법을 잘 적용하면 좋을것이다. 다만 실질적으로 문제에 대한 해결이 아닌, 일시적인 도피(피난처, 안식처)가 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기분이 우울할때마다 도망가기에 급급할 것이다. 1. 내가 무엇 때문에 우울한지를 꼭 알아차리자. 일단 도망 가면 안된다. 호랑이를 만나도 정신차리면 살수 있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다. 기분이 우울하다고 해서 불안하다고해서 그 순간을 회피하면 안된다. 눈을 감고 도망가버리면 오히려 우울은 커지게 되고, 불안도 커지게 되고 공포도 커지게 된다. 눈덩이가 불어나듯 우리의 기분이나 감정은 들끓게 된다. 현실을 그대로 직시하면 더이상 불이 번지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왜 우울한지를 명확하게 알아차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만들어내는 망상의 늪에 빠지게 된다. 눈을 뜨고 호랑이를 보는 것과 눈감고 호랑이를 느끼는 것은 천지차이이다. 시험에 떨어져서 우울한가? 친구랑 싸워서 우울한가? 현실의 내가 초라해서 우울한가? 창피한 일을 경험해서 우울한가? 틀림없이 기분이 우울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놓치지 말고 끝까지 알아차리자. 그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 당장 힘들다고 해서 도망가버리면 그림자처럼(괴물?) 졸졸 따라다닐 것이다. 나중에는 내가 왜 우울한지도 모르고 그냥 우울해진다. 그때 당신의 기분, 감정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때 뇌가 바보가 되고 멍청해진다. 내가 내 감정과 기분의 흐름(끈)을 놓쳐버렸기에 아무것도 할수가 없다. 지금 나의 감정을 직시하지 않으면 진짜 기분이 우울해진다. 어떤 사실이 나를 우울하게 만든것 같지만, 내가 느끼는 진짜 우울감은 우울한 사실에 대한 감정을 외면했을때 나타난다고 볼수 있다. 불이 난 자리를 보면 불이 더이상 번지지 않도록 방어할수 있지만, 그 자리에서 도망가버리면 금세 불바다가 되어버릴 것이다. 2. 직시했으면 그것을 지혜로운 방법으로 풀어보자. 시험에 떨어졌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더 우울할까? 시험에 떨어졌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더 우울할까? 우리는 전자가 더 우울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전자가 훨씬 덜 우울하다. 그리고 한번의 우울함을 느낄뿐 서서히 우울감은 사라진다. 그러나 후자는 당장 우울감이 덜할지도 모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울감은 급속도로 커질 것이다. 그래서 답은 명백하다. 떨어졌다는 것은 쿨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아쉽지만, 속상하겠지만, 화가 나겠지만, 되돌리고 싶겠지만 당신은 이 사실을 거부할 이유가 단 1%도 없다. 당장은 마음이 아프겠지만 이제 수술을 할수가 있다. 시험을 포기할 것인지? 며칠 푹 쉬고 다음 시험을 준비할 것인지? 노력이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지금 당장 다시 공부를 할 것인지? 과감한 구조조정을 하면 된다. 그러면 다시 현실적인 대안을 갖고 지금 이 순간 존재할수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시험에 떨어졌다는 우울감의 구렁텅이에 숨어 있게 된다. 친구와 싸웠을때.... - 서운한점을 말하고 나 역시 잘못한 부분을 사과한다. - 서로의 마음이 풀어질때까지 며칠간의 시간을 갖는다. - 친구에게 많은 것을 기대했음을 인정하고 다시 가볍게 다가선다. - 지금당장 도저히 가까워질수 없다면 멀어짐(헤어짐)을 인정한다. 창피함을 경험했을때.... - 천인공노할 나쁜 짓이 아니라면 내 자신을 무조건 용서한다. -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다면 이 또한 무조건 용서한다. - 나의 부족한 점이 있다면 이를 인정하고 노력으로 극복해나가자. - 실수를 겸허히 인정하고 제2, 제3의 실수를 만들지말자. 이처럼 기분이 우울한 상황을 인정하고 현실적으로 가장 지혜로운 해결책을 스스로 찾는 노력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나의 기분을 풀어줄수 있는 가장 건강한 방법을 말이다. 나를 학대하듯 취조하듯 비난하듯 채찍질하듯 다그쳐서는 안된다.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듯 우울한 내 자신에게 지혜로운 엄마가 되어야 할 것이다. 당장 지혜로운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면 이 방법을 활용해보자. 내가 가장 존경하는 멘토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하느님, 부처님께서는... 내가 존경하는 A씨라면... 엄마 아빠라면... 나의 정신적인 멘토가 가장 건강하고 지혜로운 답을 제시해줄 것이다. 나는 믿고 따라가면 된다. 이 방법조차 찾지 못한다면 당신은 우울한채로 방치될 것이다. 3. 마음의 안정을 취하고 밖으로 나가자. 두가지의미 : 실질적인 행동을 함 + 밖으로 나가자 1과 2의 과정을 누군가는 기도로 풀어가거나, 명상을 하거나, 고요히 앉아서 생각하면서 풀어갈수가 있다. 친구나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서 풀수도 있다. 마음에서는 어느정도 정리가 되고 풀어진것 같지만 그 잔상은 여전히 강력하게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필요하다. 매일 아침 세수를 하는 것처럼, 마음이 상해서 기분이 우울해지면 이 또한 씻어내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때 몸의 역할이 중요하다. 마음만 정리되었다고해서 다 끝난것이 아니다. 이제는 몸이 함께 움직여야할 때이다. 내 몸을 가장 기분좋게 하는 나만의 방법을 찾아보자. 등산을 한다. 운동을 한다. 친구를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1시간 이상 걷기를 한다. 겨우 실타래를 풀었는데 그 자리에서 예전습관처럼 고민을 하는 순간 풀려가는 실타레는 금세 다시 꼬이게 될 것이다. 마음만 해결된다고 해서 끝난것이 아니다. 몸만 즐거워진다고해서 끝난것이 아니다. 함께 균형있게 풀어져야 한다. 나와 같은 경우는 기분이 상하거나 이따금 우울할때 한시간정도 아무 생각 없이 걷는 연습을 한다. 그리고 커피숍에서 카페라떼를 먹으면서 글을 쓰곤 한다. 그러면 다는 아니더라도 80% 이상은 풀리는것 같다.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방법을 찾으면 좋다. 자신만의 경험이 없는 사람은 방구석에서 이불을 뒤집어 쓴채 생각만 한다. 자신만이 자기감정을 가장 잘 알수가 있다. 그러나 매번 자기감정을 억압하거나, 모른척하거나 회피하게 되면 시간이 지날수록 엄청난 고통을 받게 된다. 현실로부터 벗어나려고 애를 쓰지 말자. 매도 지금 당장 맞는 것이 좋다.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지금 당장 쿨하게 인정하자. 실수나 실패때문에 괴로워하는데 에너지를 쓰지말고, 지금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에 대해서 연구하고 행동하자. 나의 기분을 우울하게 하는 것은 외부의 환경처럼 보이지만, 실제 우울하게 하는 주인은 바로 '나' 임을 자각해야 한다. 지하실에서 울고 있는 꼬마의 손을 나만이 잡아줄수가 있다. 나에게 벌을 줄 시간에 차라리 기회의 시간을 주자. 지금의 고통이 영원하지 않음을 스스로에게 말해주자. 어릴때는 죽을것처럼 힘든 상처들이 나이들어서 보면 대소롭지 않게 보이듯 그 순간만 죽도록 힘들 뿐이다. 너무 사소한 이에 목숨걸듯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살아있고 숨쉬고 있다면 희망은 여전히 나의 편이라 할수 있다. 그렇게 내가 나의 편이 되어서 살아가보자. 이 힘겨운 세상속에서 나마저 나를 미워하면 지옥의 터널을 지나가듯 막막할 것이다. 우울하게 놔두지 말자. 그러면 더 우울해진다. 우는 아기를 엄마가 따뜻하게 안아주면 아이는 금세 방긋 웃게 될 것이다. 우울할때는 내가 나에게 가장 사랑스럽고 자애로운 엄마가 되어야 할 것이다.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_f8R7Qs4eRUtNRly72beFg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hypnosis21 한국 최면치유 연구소장 김영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