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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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끝난 고전영화들 올려주는 유투브 계정

뭔가 고전영화나 만화가 땡기는 고론 시기가 있음
내안의 레트로가 꿈틀거린다.


딱히 뭐 고전영화 잘 모르더라도 여기 나름 개꿀ㅎ이라 공유함 ㅇㅇ
함 도전해보셈 잘 맞을지도 모르잖아

⬇️ 완전 유명한 작품 추천임

티파니에서 아침을 1부

오즈의 마법사 1부

벤허 1부

사랑은 비를 타고 1부

히치콕의 사이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애니는 여기서 보면 됨

뽀빠이

고인돌 가족 플린스톤

톰과 제리

101마리 달마시안

판타지아


시간되면 클립해놓고 꼭 들어가보긩

6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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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와 신기해요!!!
톰과제리! 벤허!👍🏻👍🏻👍🏻😍😍😍 감사해요!
우와~~좋은정보 감사합니당👍
백한마리 달마시안 개꿀! 감사합니다!
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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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하우스] ‘현타’보다 선명한 미래는 없다
- 욕망의 여정으로 보는 원초적 공포 ※ 영화 <라이트하우스>의 결말 등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 ------- 공포영화에서 공포는 주로 ‘어떻게’ 오는가. 우선 어제와 다른 오늘, 익숙한 시공간에 금이 가고 그 틈으로 괴물 또는 괴이한 무언가가 스며들겠지. 가족과 친구들, 주인공의 미래가 그것들에 갉아 먹혀갈 때 공포영화는 그 상황과 괴물을 공포의 근원으로 삼을 터. 이때 공포감의 운동성은 ‘칼’의 움직임과 닮았다. 평온의 막을 베고 침투해서는 난도질, 그러다 훅, 관객의 영역까지 찌르는 모양새. 물론 이 물리적 흐름으로 설명되지 않는 영화들은 있다. 로버트 에거스 감독의 두 번째 장편 <라이트하우스>(2019)도 그중 하나. 이 영화에는 침입, 침투, 그 무엇이든 쳐들어와 헤집는 운동성이 없다. 일상과 비일상 간 대조도, 공포의 제작 및 전달자도 부재하다. 그럼에도 국내외 영화 소개 페이지들은 이 작품을 ‘호러’로 분류 중. 실제로 제법 무시무시하다. 공포 전달용 일반 회로가 장착되지는 않았지만 무섭다는 말, 이 공포감의 정체는 뭘까? # 욕망과 욕망의 오디세이아 흑백으로 촬영된 <라이트하우스>는 20세기 초반의 두 등대지기, ‘고참’ 토마스 웨이크(윌렘 대포)와 ‘신참’ 에프라임 윈슬로(로버트 패틴슨)에 관한 이야기다. 에프라임은 등대 불빛을 교대로 관리하길 바라지만 토마스는 이를 완강히 거부한 채 불빛을 독차지한다. 두 남자, 억누름과 밀어올림. 무슨 일이 일어날까. 영화 중간의 짧은 숏 하나, 거꾸로 보이는 등대가 화면이 뒤집히면서 바로 선다. 이를테면 발기하는 페니스. 실제로 로버트 에거스는 여기다 진짜 페니스를 찍어 붙이려 했으나 무산됐다고 한다. 다시 ‘두’, ‘남자’임을 떠올리자. 그러니까 <라이트하우스>는 발기된 두 개의 욕망에 관한 이야기다. 외부 ‘침입’보다는 서로 간 ‘경합’이 어울릴 듯하다. 욕망은 둘인데 탐할 수 있는 실체적 대상, 즉 등대 불빛은 하나인 상황. 영화는 주로 욕구불만인 에프라임의 의식 흐름을 좇는다. 훔쳐보기는 수순일까. 그는 등대 불빛 칸에서 토마스가 인어인지 거대 촉수인지 모를 무언가와 ‘교미’ 비슷한 것을 하는 걸 보고, 자신을 대입시키고, 분출하고, 분노한다. 이런 식이다. 단, 경험 없는 상상은 결핍을 키우기 마련. 욕망은 끝내 해소돼야 한다. 어떻게? 나를 가로막는 토마스를 없애서라도. 애초에 이럴 운명이기는 했다. 이 등대섬은 그러라고 장만된 무대 같다. 폭풍우는 멈출 기미가 없으며 교대팀의 배는 오지 않는다. 고립은, 공간 감각은 물론 시간 경과에 대한 인식마저 도려낸다. 며칠 혹은 몇 주가 흘렀는지 시간적 배경을 그들도 관객도 모를 지경. 게다가 각자 과거의 고백과 의심이 뒤섞여 두 사람의 정체성마저 뭉개졌다. 에프라임의 ‘욕구 불만족’과 토마스의 ‘수호 의지’만이, 이 우주를 통틀어 남은 유이한 키워드인 것 같다. ‘이때 토마스는 누구인가?’ 토마스는 해독 불가한 모종의 구전 신화를 읊는 등 무언가에 홀린 듯하면서도, 일이 느리고 게으르다며 에프라임을 구박하고 말대꾸 시 급여를 안 주겠노라 협박까지 한다. 원시성과 현실성을 두루 갖춘 억압. 말은 안 통하는데 위협은 실재적이다. 익숙하지 않은가. 이를테면 누구나 한 번은 겪(었)을 폭압적 부모, 스승, 선배, 상사, 또는 그 비슷한 무엇들. 안타깝게도 이 토마스‘들’은 특정한 마법으로 소환된 게 아니라 그냥 원래부터 거기에 있었다. 우리, 그리고 우리의 욕망이 그렇듯. 두 욕망의 역학관계상 나중 것에 의한 전복은 필연이다.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 에프라임은 마침내 등대 불빛을 오롯이 향유한다. 결과는? 그는 불빛을 보며 쾌락인지 고통인지 모를 표정으로 산화하듯 절규하다가 밑으로 굴러 떨어진다. 아마도 죽겠지. 불빛의 정체와 그 순간의 감정은 영영 알 수 없게 됐다. # ‘현타(현실 자각 타임)’와 ‘죽음’, 언제나 참 결자해지의 의지일까. 로버트 에거스 감독은 여기다 최종 숏을 붙임으로써 이 등대 치정극의 ‘장르’는 규정 지어준다. 바로 눈 하나를 잃은 알몸의 에프라임이 바닷가에 널브러져 죽어 가면, 갈매기가 그의 내장을 뜯어먹는 숏. 이때의 에프라임은 제우스의 불을 훔쳐 인간한테 전해줬다가 날마다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게 된 프로메테우스와 노골적으로 닮았다. 이를테면 ‘신화’로 박제된 ‘소멸’의 엔딩. 왜? 에프라임이 욕망했기 때문에. 오르가즘은 태생적으로 증발하는 것 아니던가. 거 ‘현타’ 한번 오지다. 한걸음 더. 욕망의 카테고리 중 가장 큰 것은 ‘숨’의 지속, 즉 생(生)에의 의지다. 이렇게 보면 증발하는 건 결국 우리 자신이요 기다리는 건 죽음이 된다. 선점자인 토마스도, 후발주자인 에프라임도 모두 죽었다. 쾌락이든 목숨이든 일단 점유한 자들은 길게 머무를 수 없다. <라이트하우스>에서 공포란, 곧 소멸할 쾌락을 좇도록 디자인된 우리의 방향성, 궁극적으로는 모든 것의 너머에 있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인 셈이다. 이 정도로 근원적인 공포감이 기존 호러영화들의 운동성을 짜잔, 두르기란 어렵다. 보다 날-공포인 만큼 그 성질에 대한 힌트는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찾아야 한다. 날것, 태초… 그렇게 인류의 출현부터 먼 미래까지를 ‘꿰어’버린 영화로 가보자.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 이 걸작 SF를 꺼내든 건 이 영화에 인류사를 유인원 시절부터 촉발시켜온 검은 돌기둥 ‘모노리스’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색이 입혀지기 전부터 우리 생을 운용했을, 절대적 배후 같은 물질. ‘증발’과 ‘소멸’, ‘죽음’ 따위의 <라이트하우스>적 공포는 바로 이 영험한 유물에 새겨진 지침처럼 존재한다. 애초에 운동성을 띨 필요가 없었던 것. 가라사대, 침투하지 않아도 그저 기다리면 인간들이 도착하리니. ← 공포계에 짜라투스트라가 있다면 이렇게 말했을 거다. (위)<라이트하우스>의 최종 숏 / (아래)<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모노리스’ # 이보다 선명한 미래는 없다 로버트 에거스는 장편 데뷔작 <더 위치>(2016)에서 마녀를 공포감의 근원이 아니라 불가피하게 선택되는 모종의 출구로 다뤘다. 무서운 건 모든 걸 왜곡하는 렌즈, 즉 인식 불능에 빠진 ‘맹신’의 시대였다. 그리고 <라이트하우스>에서는 비율 1.19:1의 흑백 프레임에다 ‘소멸론’을 인류의 기원신화인 양 보존해놨다. 말로 옮기자면 ‘인생은 고통이야, 몰랐어?’ 정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고? 욕망하고 살아가는 우리 앞에, ‘현타’와 ‘죽음’보다 선명한 미래가 또 있을까? ⓒ erazerh ※ 이 글은 ‘브런치’에도 올라갑니다.
그리스 신화속 처세술왕.jpg
아드메토스 그리스 신화에서 테살리아 페라이의 왕이었는데, 이 아저씨의 처세술이 정말 기가막혔다. 아드메토스가 왕으로 있을 무렵, 아폴론이 잘못을 저질러 인간세상에 귀양을 오게 된다.  귀양이기 때문에 아드메토스 왕의 노예로 일하는 벌을 받게 되는데, 여기서 아드메토스의 처세술이 빛을 발한다. 제우스의 명령을 거절 할 순 없으니까 일은 시킨다. 근데 당연하지만 귀양이 영원한 것도 아니고, 아폴론이 귀양 다 끝나고 돌아가면 보복당할 여지가 있으니 일은 형식적으로만 시키고 진짜 깍듯하게 대접했다. 이런 아드메토스의 행동은 아폴론 마음에 쏙 들었다. 형식적으로 일을 시키니 제우스에게 꼬투리 잡힐 일도 없고, 건방지게 안 굴고 예의 차리니 밉지도 않고. 얼마나 대접을 잘 했는지 아폴론은 아드메토스가 맘에 들어서 아드메토스의 모든 소들이 쌍둥이를 낳는 축복까지 내렸다. 그러던 와중, 아드메토스는 이올코스의 공주 알케스티스에게 반하게 된다. 알케스티스의 아버지 펠리아스는 좀 이상한 놈이었다. 딸에게 구혼할 남자는 멧돼지와 사자가 이끄는 전차를 탄 놈이어야만 한다고 박박 우겼거든. 아드메토스가 매우 맘에 들었던 아폴론은 그를 도와주고 싶었다. 우선 사자는 레아(제우스의 어머니)의 수레에서 빌려왔다. 손자의 부탁이라 예뻐보였나보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그 다음은 멧돼지를 데려오는 거였다. 어떻게 데려왔냐고? 아레스를 멧돼지로 변신시켰다. 아레스의 상징이 멧돼지라서 그런건지 모르겠는데 진짜로 아레스를 멧돼지로 변신시켰다. 그렇게 해서 아드메토스는 사자와 멧돼지가 이끄는 전차를 타고 알케스티스에게 구혼했고, 결혼에 성공하게 된다. 근데 이렇게 되면 누가 빡치겠냐 당연히 아레스가 빡친다. 인간주제에 신이 변신한 멧돼지를 타고 다녀? 빡친 아레스는 아폴론에겐 뭐라고 못하니까 아드메토스에게 일한 품삯으로 목숨을 요구한다. 자기가 벌인 일 때문에 아드메토스가 죽을 상황에 놓이자 아폴론도 나름 수습하려고 노력했다. 운명의 여신들과 교섭해서 아드메토스 대신 다른 사람이 죽어준다고 한다면 아드메토스의 목숨 대신, 그 사람 목숨을 가져가기로 약속하는 것에 성공했다. 그러나 누가 함부로 남을 위해서 죽고 싶을까? 아드메토스의 늙은 부모조차 거절했고, 그거에 빡친 아드메토스가 패드립성 발언을 날리기도 할 정도였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다 대신 못 죽어준다고 하는 와중에, 유일하게 아드메토스 대신 죽어준다고 하는 사람이 나왔다. 아드메토스 왕의 아내인 알케스티스였다. 알케스티스가 대신 죽자 아드메토스는 처음엔 살았다는 생각에 좋아했지만, 점점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이 아저씨는 정말 운이 좋았다. 마침 이 아저씨의 친한 친구 한명이 페라이에 머물게 된 것이다. 그 친구가 누구냐고? 바로 헤라클레스였다. 친구인 헤라클레스가 찾아오자, 아드메토스 왕은 슬픈 일이 없는 척 "친도 척도 아닌 가내의 여자가 하나 죽었다."라고 말하며 융숭하게 대접했다. 헤라클레스는 친도 척도 아니니 뭔 여종하나 죽었나보다 하며 부어라 마셔라 논다. 그런 헤라클레스를 보던 아드메토스왕의 하인이 빡쳐서 한마디 했다. 헤라클레스에게 뭐라고 하다니 참 깡도 좋지. 하인에게 일침을 듣고  그제서야 상황파악한 헤라클레스는 "아니 ㅅㅂ 내가 친구 아내가 죽었는데 술마시고 논거야?" 하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다음날, 헤라클레스가 돌아와서 아드메토스 왕을 불렀다. 그리고는 베일 쓴 여자를 보여주며 "아내 죽었다면서? 재혼하지 않을래?"라고 하는 것이다. 보통 사람이면 쌍욕이 나왔겠지만 처세술이 좋은 사람 답게 아드메토스 왕은 헤라클레스를 웃으며 타일렀다고 한다. 아드메토스가 거절하자 헤라클레스가 여자의 베일을 벗겼다. 알케스티스네? 알케스티스여! 전날 뛰쳐나간 헤라클레스는 그대로 알케스티스의 무덤까지 가서 죽음의 신 타나토스를 줘-팸하고 알케스티스를 데려온 것이었다. 이렇게 하루만에 다시 아내를 보게 된 아드메토스가 제일 먼저 한 일이 뭐였을까? 아드메토스는 바로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제우스에게 감사의 제사를 올렸다. 제우스는 이게 웬떡이냐 하고 제물을 받았고 제우스가 ok 내려버린 사안이 되어버려서 아레스와 타나토스는 이 상황에 대해 아무 불만도 표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드메토스 왕은 죽을 때까지 아무 문제 없이 잘 살았다고 한다. (출처) 여윽시 술 중의 술은 처세술이고 왕중의 왕은 처세술왕ㅋ
한 영화에 관해 오래 기억하는 일
어떤 영화를 보고 그것에 관해 생각하고 기록하는 일을 이천 번쯤 한다면 그 삶은 이천 겹만큼의 이야기를 가진다고 믿는 편이다. 지나간 영화에 대해 떠올리는 것도 마찬가지일 텐데 영화 보기를 멈추지 않는 한 계속해서 새로운 영화들을 만나게 될 수밖에 없다. 기억의 방이 있다면 끊임없이 확장되고 늘어나는 형태일지 어느 순간 그것이 예고 없이 멈춰버릴지는 모르지만 좋아하는 영화를 생각하다 보면 그런 두려움 비슷한 것이 생겨날 때도 있다. 그날 그때 거기, 그 영화. 지금 분명 소중하고 각별하게 떠올리는 그 잔영이 어느 순간 새로운 영화들에 가려지고 덧대어 희미해져 버리지는 않을까. 생각과 감정이 다른 것들로 대체되거나 재편집되는 날들이 계속되어 무엇이 소중했는지 잊어버리지는 않을까. 음. 영화에도 끝이 있고 음악에도 끝이 있으니 언제라도 그런 순간이 도래하고야 말겠지만 그럴수록 장면, 표정, 눈빛, 말과 말 사이, 눈과 귀로 들어오는 것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기억하고자 하는 마음들이 앞선다. 그 언젠가. 그런 날이 올까. 지금 기억하고 있는 이 영화가 그저 많고 많은 것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게 되는 순간이. 너무 빨리 오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잊고 싶지 않은 것들을 잊게 되는 순간이. (2021.01.16.)
매일 입는 패딩 새 옷 되는 하루 5분 관리법
1. 얼룩 지우기 패딩을 입다 보면 목과 소매에 때가 타기 쉽다. 특히 여성들이라면 목부분에 화장품이 묻어나는 경우도 많다. "어차피 내일 또 묻을 텐데"라는 생각으로 방치하면 묵은 때가 되어 쉽게 제거되지 않을 수 있다. 때문에 그때그때 얼룩을 닦아주는 것이 좋다. 집에 있는 클렌징 티슈를 이용하거나 화장솜에 클렌징 워터를 살짝 묻혀 얼룩 부분을 두드려 닦아주자. 2. 냄새 제거 음식점에서 밴 냄새나, 흡연 후 밴 담배 냄새를 제대로 빼지 않으면 다음날 패딩을 입을 때 찝찝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보통 섬유탈취제를 뿌려 제거하지만 가끔은 이를 통해 빠지지 않는 냄새들도 있다. 섬유탈취제 냄새가 섞여 오히려 더 역한 냄새가 나기도 한다. 샤워 후 욕실에 수증기가 꽉 찼을 때 옷을 걸어두었다가 빼면 이 같은 냄새를 제거할 수 있다. 욕실에서 빼낸 옷은 마른 수건으로 닦아준 후에 헤어 드라이기나 미니 선풍기 등을 통해 완전히 말려준다. 또는 패딩 위에 신문지를 깔고 헤어 드라이기로 열을 가하는 방법도 있다. 패딩에 밴 냄새가 자연스럽게 신문지로 흡수된다. 3. 후드 퍼 살리기 야외 활동 중 비나 눈을 맞은 경우 패딩 모자에 붙은 퍼가 뭉치고 오염된다. 오랫동안 의자에 앉아있었다면 퍼가 눌려 모양이 변형되기도 한다. 퍼가 젖은 경우 마른 수건으로 지그시 누르거나 톡톡 두드려 물기와 습기를 제거한다. 퍼에 이물질이 묻거나 뭉쳤다면 헤어 린스를 분무기에 한 펌프 넣어 물과 잘 섞이도록 흔든 뒤 가볍게 뿌려준다. 헤어드라이기와 함께 도끼 빗처럼 간격이 큰 빗으로 살살 빗질을 해주면 퍼가 다시 풍성하게 살아난다. 출처 귀찮지만 유용한 방법이 많네요 ㅎㅎ 꾸르팁 클립!!
스튜디오 지브리가 그리는 여성
지브리 팬들도 알겠지만 스튜디오 지브리 (대부분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애니메이션의 여성캐릭터들은 공통점이 있어 그건 바로 남자의 도움 없이 어떤 문제도 해결을 못하는 수동적인 여성캐릭터(민폐여캐)가 없다는 거야 그 예시로 1984년에 개봉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를 보면 주인공은 자연재해를 막는 영웅성이 강한 여자고 그와 대응하는 악역도 여자야 오히려 남자주인공은 서포터 역할을 해 그럼 이제 민폐여캐가 아닌 지브리 애니메이션 여주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여성상을 투영하는지 알아보자 이웃집 토토로 (1988) 주인공이자 언니 역할인 사츠키 부모의 부재중에도 독립적이고 자존감이 강한 여성 마녀배달부 키키 (1989) 키키 환경을 탓하거나 남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자주적이며 미래 지향적인 여성 원령공주 (1998) 자연을 지키기 위해 인간과 싸우고 자신을 희생하며 헌신하는 강인한 여성 산 작품 중 난폭한 자연을 상징함 오히려 남주는 부드러움과 타협, 평화를 상징 인간측을 대표하는 악역 리더 에보시 비록 자연을 파괴하는 악당이지만 남성지배문화를 극복하고 나병 환자와 여성에게 동등한 노동의 기회를 주기도 한 입체적이고 양면성을 가진 여성이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2001) 부모님을 구하기 위해 여러 사람과 유대관계를 맺고 용기를 내며 적극적으로 행동으로 실천하는 여성 치히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 (2004) 모자 가게를 계승하는 장녀 소피 극 중 전쟁이라는 문제와 하울의 마법을 풀어주는 구원자 역할을 하는 여성 캐릭터가 각기 다른 여성상을 투영하고 참 입체적이지?? 그렇다고 스튜디오 지브리가 "여성 만세!" 하면서 여성을 숭배하는건 아니야 *천공의 성 라퓨타* 극 중 남자주인공들 또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해 다만 다른 작품과 차이점은 여자가 남자에게 일방적으로 보호받는것이 아니라 남자와 동등한 비중을 갖고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하는거야 때로는 여자가 남자보다 리더십과 책임감이 강한 인물로 묘사가 되기도 해 이는 남주의 구원만을 기다리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흔해빠진 여성캐릭터와 큰 차이가 있지 또한 스튜디오 지브리의 여성캐릭터는 남자 관객의 눈요기를 위한 노출이나 섹스어필을 하지 않아 다른 작품과의 비교 *너의 이름은* 치마를 입은 여성캐릭터는 속바지를 입고 절대로 가슴이나 팬티 노출을 하는 경우가 없으며 바지를 입은 여성캐릭터도 있고 여자 주인공들의 외모도 개성있고 독특하고 정통 미소녀 얼굴에서 벗어난 경우가 많아 *벼랑 위의 포뇨* 물론 지브리 애니매이션 여성캐릭터도 리본이나 악세사리를 착용하는 등 여성성의 상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진 않아 *키키의 왕리본* *산의 귀걸이와 목걸이* +) 하지만 바지를 입거나 리본을 다는 등.. 선입견 없이 다양한 여주들의 모습을 보여주기에 더 매력적인 것 같아 34년 전부터 스스로의 권리를 찾아가고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여성상을 꾸준히 묘사해온건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그럼 다들 재밌게 읽었길 바라고 좋은 하루 보내! 참고문헌: 백선기 - 영화 그 기호학적 해석 이사벨 마이어스 - 성격의 재발견 마르틴 졸리 - 이미지와 기호 김은주 -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서 나타나는 여성의 이데올로기적 이미지 출처: 쭉빵 , 꽃과 사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