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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 독일어의 출현

일요일은 역시 공부지. 로마제국의 표준어였던 라틴어는 로마 제국 이후로도 끈질기게, 유럽 대륙 언어의 표준으로 살아남았었다는 사실은 모두들 아실 것이다. 그래서 Consumo pomum…하면 지금도 뭔가 있어 보인다(참조 1). 그렇다면 표준적인 독일어라는 것은 언제 출현했을까?

아주 일찍부터 중앙집권 하에, 사법 용어 일원화와 함께 공무용 용어의 법제화(!)를 무기로 순조롭게 일-드-프랑스 지역의 언어인 프랑스어를 표준화시켜온 프랑스(참조 2)와는 달리 독일은, 아니 독일 지역은 중앙집권을 하는 중심 역할을 하는 나라가 계속 없었다. 돌이켜 보면 이게 생각보다 언어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독일어 표준화는 통일한지도 한참 후인 20세기나 되어서야 공식적으로 시작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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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고지 독일어(hochdeutsch)와 저지 독일어(Niederdeutsch)의 분리부터 얘기할 수밖에 없겠다. 고지는 알프스 쪽, 그러니까 남부 지역을 가리키고, 저지는 북해 쪽의 해안, 그러니까 북쪽을 가리킨다. 그리고 독일 지역의 역사의 중심은 언제나 남부 지역이었다(참조 3). 잠깐? 한자(Hansa) 동맹은 북부를 위주로 활동했잖아요?

좋은 지적이기는 한데, 문제는 한자 동맹이 북독일 지역을 주도하던 시절이 너무 옛날이었다는 점이다. 즉, 그당시 배운 이들은 모두 라틴어로 대화를 하던 시기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저지 독일어는 배우지 못 하고 천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쓰는 언어였다.

따라서 신성로마제국의 주요 지역이 어디였는가? 바로 오스트리아 빈과 체코의 프라하 지역. 당연히 고지 독일어 지역이고 실제로 고지 독일어를 사용하는 이들이 독일 지역의 역사를 주도했었다. 실제로 독일 지도를 보시면 인구가 좀 되는 북쪽 독일 도시가 함부르크와 브레멘 정도밖에 없는데, 두 도시가 독일 역사를 주도한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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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고지 독일어가 표준 독일어의 지위를 차지하는 과정을 얘기하고 있다. 음운학적인 면을 얘기하자면 고지독일어 음운추이(Lautverschiebung, 참조 4) 현상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1차와 2차에 걸처(기원 전부터 8세기) 일어나는데, 고지독일어는 이때 “쓰기”가 이뤄졌고, 저지독일어는 그냥 “말로만 하는” 언어로 남았다. 표준 독일어로 삼으려면 역시 고지 독일어였다.

그래서 마르틴 루터도 작센 지역에서 사용하던 고지 독일어를 사용해 성서를 독어로 번역한 것이다. 루터에 뒤이어 고트셰트(Johann Christoph Gottsched, 참조 5), 괴테 모두 고지 독어 사용자들이었다. 결정적으로 좀 북쪽(저지)이랄 수 있을 프로이센의 호엔쫄레른 왕실도 고지 독어 사용자들이었다.

독일어 사전을 처음 만들고 음운추이를 이론적으로 해설한 그림(Grimm) 동화… 아니 형제들은 물론이고, 거의 표준 사전 역할을 하는 두덴 사전의 편집자 콘라트 두덴도 모두 고지 독어가 네이티브.

그러니까 표준 독일어는 아주 최근(프로이센 제국이 스펠링을 합치는 회의를 개최한 것이 1901년이었다)부터였고, 그 뿌리는 고지 독일어에 있다, 이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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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책부록) 하노버는요?

하노버가 최고의 고지 독일어 지역이라는 말(„das beste Hochdeutsch“)이 있긴 한데, 하노버는 니더작센, 꽤 북쪽에 위치해 있다는, 뭔가 궤가 안 맞는 수수께끼가 있다. 사실 답변은 간단하다. 우리나라에서 제주도가 제일 표준어를 정확히 구사하는 이유와 비슷하다. (제주도 사람들이 텔레비전으로 표준 한국어를 습득하기 때문이다.)

하노버가 작센의 공문서 용어(Sächsische Kanzleisprache)를 18세기부터 재빨리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루터가 번역할 때 사용했던 스타일의 독일어다. 그래서 왠지 모르게 하노버는 독일어의 주요 전쟁터 중 하나(참조 6)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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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1. “나 사과 먹는다”는 뜻이다.

2. 프랑스의 사회언어학사(2019년 5월 1일): https://www.vingle.net/posts/2606316

3. 기억하실 텐데 신성로마제국은 왕좌의 게임(…)처럼 대표 황제를 선출했었다. 저지 독일어 지역에서 선제후가 당선된 적은 전혀 없었다. 황제 즉위식 장소는 고지에 속하는 프랑크푸르트였고, 제국의 재판소(Reichskammergericht)도 계속 고지 지역(프랑크푸르트, 뉘른베르크, 아우크스부르크 등등)에 있었다.

4. 정말 쉽게 얘기하자면 자음 발음이 바뀐 것을 의미한다. 가령 영어의 apple과 독어의 Apfel을 보시라. 루터라는 이름도 이전에는 아마 루테르 비슷했을 것이다. 이게 루터가 된다. 즉, 끝의 r 음가가 사라진 것도 이때부터다.

5. 생소한 인물일 수 있을 텐데, “Grundlegung einer deutschen Sprachkunst(독일어의 기반)”이라는 책을 쓴 인물이다.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가 그와 대화한 후, 안 좋은 독어를 자기가 사용했다며 사과한 일화가 있다.

6. 언어의 타락(?)에 저항하라(2019년 3월 27일): https://www.vingle.net/posts/2589499

7. 사진은 Das Neue Duden Lexikon, Mannheim 1989에 나오는 독일어 권역 지도라고 한다. 주황색 부분이 저지 독일어, 나머지는 모두(녹색, 파란색, 노란색) 고지 독일어 지역이다.

P.S. 네덜란드 지역이 저지 독어 지역 중에서도 저지프랑크어(Niederfränkisch)로 되어있는데 여기에 대한 설명은 본 주제를 벗어난다.

저지 독어 지역은 Niedersächsisch로 표기되어 있다. 직역하면 저지 작센어로 되어 있는데, 한국어 표기는 서부 저지 독일어, 그만큼 작센의 영향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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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은 역시 독서지. 이 책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소련이 저지른 베를린 집단 강간에 대한 건조한 보고서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게도 독일 여자가 쓴 이 일기가 독일어로 출판될 수는 없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을 텐데… 일기 원본은 그녀 스스로 마음 속의 검열 때문이었는지 약자나 암시하는 단어로 썼던 모양이다. 읽을 수 있는 글의 형태로는 1950년대 초에 그녀가 직접 옮겼던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출판하려 마음 먹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1950년대에 영어판이 먼저 나왔고, 독일어판이 잠시 나오기는 했다. 그러나 그녀의 책은 50년대 독일 내에서 숱한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독일 여자의 명예를 떨어뜨렸다면서 말이다. 그래서 저자는 독일어판 재출판을 자기 살아 생전에는 못 하게 막았다고 한다. 그래서 독일어판은 그녀가 사망한 이후에서나 다시 나올 수 있었고, 영화(Eine Frau in Berlin)화도 그 이후에나 가능했다. 50년대 독일의 비뚤어진 심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2003년 이후 다시 나온 책에 대해서는 찬사가 이어졌고(하지만 저자는 사망했는 걸?), 역사 분석의 대상이 됐다. 자, 내용 이야기를 하자면 그녀는 1933-34년간 파리 소르본에서 역사/미술사를 공부했었고 그 후 러시아를 여행하면서 약간의 노어를 익혔다고 한다. 당시 기준에서는 상당한 지식인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제3자인 양 건조하게 당시 상황을 쓸 수 있었을까? 상황 판단도 빨랐고, 결국 그녀는 생존할 수 있었다. 그래서 결국은 뭐라도 알고 있어야 생존이 가능하다는 얘기인데, 이 책이 드러낼 수밖에 없을 여성주의적 시각은 나보다 훨씬 잘 쓰는 분들이 많으니 검색해서 읽어 보시기 바란다. 물론 예상한 내용이 대다수일 테지만 말이다. 내가 눈여겨 본 부분은 역시 다양한 면모를 갖춘 러시아 군에 대한 묘사와 언어였다. 공산당이라고는 하지만 러시아 군을 구성하는 것도 인간들이었기 때문이다. 복수를 해야 했던 한편, 불쌍히 여기는 마음도 있었고, 착취하려는 마음도 있었다. 주인공이 잘 한 건, 그나마 장교들을 노렸다는 점이다. 여기서 그녀의 무기는 언어.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어눌하더라도, 어휘가 적더라도 자기 모국어를 말해주는 인물에게 마음이 열리게 되어 있다. 노어를 몰랐던 것보다는 아는 편이 생존에 훨씬 유리했다는 의미다. 게다가 제일 “서구적”인 잘 배운 러시아 장교는 그녀가 할 줄 아는 링구아 프랑카, 불어도 할 줄 알았었다. 물론 그가 큰 도움이 된 것 같지는 않아 보이지만 말이다. -------------- 그리 많은 양은 아니지만 읽기 참 힘들었다. 번역이 안 좋아서도 아니고 책이 지루해서도 아니라 너무 먹먹해서다. 전쟁이 끝나고 남은 사람들은 전리품이 되어버렸으며, 껍데기나마 남은 조국은 남은 사람들을 버렸다. 되돌아온 남자친구가 뭘 의미하겠는가? 실제 저자는 결혼하면서 스위스로 이주했다고 한다. 차마 베를린에서, 혹은 독일 내에서 제 정신으로 살 수 없었을 것이다.
과연 독일은 이번에도 딴지를 걸 것인가
https://zeitung.faz.net/faz/wirtschaft/2020-03-24/bdd1ebbabcd0a0a38e87f2d620789372/?GEPC=s5 오랜 친구들이라면 한때 내가 계속 써왔던 독일헌재 vs. ECB의 연재 시리즈(참조 1)를 잘 알 것이다. 다시 요약하자면 CJEU(유럽사법재판소)는 ECB의 무제한적인 채권 매매 프로그램(OMT, 실제로 시행된 적은 없다)이 ECB의 관할에 들어간다고 판결내렸었고, 독일 연방헌재(BVerfG)는 이를 조건부 기본법 합치로 판결내렸었다. 지금의 코로나 바이러스 상황에서도 뭔가 지출을 늘리자는 것은 과연 독일 기본법 합치일까? 저자인 오트마르 이싱(Otmar Issing)은 ECB의 수석경제학자(1998-2006)를 지냈고 현재는 물론 은퇴한(1936년생이다) 경제학자다. 하지만 독일 보수파 경제계의 수장 중 하나로서 당연히 현재의 코로나 사태때문에 불거진 재정 지출 확대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다. 그의 말마따나 EU는 회원국에 대한 재정지원을 조약상 금지하고 있다(TFEU 제125조). 그의 제안은? 회원국 정부와 국회가 나서서 추경을 하든지 긴급 예산을 편성하든지 하라는 얘기이다. 괜히 EC 혹은 ECB가 나서서 유로본드 같은 수단을 창설하지 말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코로나라는 긴급사태가 여유 있는 국가에서 여유 없는 국가로의 재정 이전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곰곰히 그의 말을 곱씹어 보면, 이는 OMT 혹은 ECB의 양적완화의 경우(참조 2)와 마찬가지의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는 듯 하다. 가령 EU가, 혹은 메르켈이 OK해서 코로나 대응 기금을 조성한다거나, 코로나 대응 채권(이건 바로 유로본드 문제로 직결된다)을 발행하자는 논의를 한다면? ECB가 여기에 개입한다면? 각국 정부와 국회가 나서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곧, 독일 정부와 독일 국회의 결재를 받으라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그의 말마따나 독일 기본법(제115조 제2항)상 자연재해(Naturkatastrophe) 혹은 예외적인 긴급상황(außergewöhnlichen Notsituationen)일 때 예외적인 재정지출을 허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독일 연방하원의 승인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게 하지 않고 EC/ECB 차원에서 계략(?)을 꾸미면? OMT만이 아니다. 독일은 은행연합(참조 3)은 물론 ESM(참조 4)도 모조리 다 독일연방헌재에 소를 제기했었다. 유럽정책의 사법화를 이끄는 일등 공신이 독일, 지금 누군가(…) 논의하고 있는 코로나 대응용 예산 지출, 혹은 EU 차원에서의 펀드에 대해서도 독일연방헌재에 소를 제기할 가능성이 꽤 있어 보인다. 전례를 봤을 때 독일연방헌재는 그 부담을 CJEU로 넘길 것이고 말이다. 독일이 법적으로 야기할(지 모를) EU 조약상의 문제가 해결(?)될 때 쯤이면, 아마 죽을 사람들은 모두 죽은 후일 듯… -------------- 참조 1. 독일 헌재의 OMT 최종 판결(2016년 6월 23일): https://www.vingle.net/posts/1646764 2. 독일 연방헌재는 ECB의 양적완화정책에 대해 기본법에 합치되는지의 판결을 아직 내리지 않고 있다. 3. 독일연방헌재의 은행연합 판결(2019년 8월 5일): https://www.vingle.net/posts/2653223 4. 세 가지 EU 뉴스(2014년 3월 23일): https://www.vingle.net/posts/307356
프랑스어 부정형은 어째서 2단계인가?
수요일은 역시 외국어이지. 짤방부터 봅시다. 이 사진은 프랑스어의 부정형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초-간단하게 그려낸 그래픽이다. 맨 위는 당연히 옛날 불어의 부정형, 중간은 현대 표준 불어의 중간형, 맨 아래는 현재 대화 불어에서의 부정형이다. 이러한 변화를 덴마크 언어학자의 이름을 따서 예스페르센 주기(Jespersen's Cycle, 해당 위키피디어에서 짤방을 가져왔다)라고 한다. 자, 자세히 봅시다. 불어는 문장에서 부정형을 만들 때 동사의 앞뒤에 각각 ne와 pas를 붙인다. 아마 고대영어를 안다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고대 영어(참조 1)에서도 부정형을 붙일 때, 처음에는 동사 앞에 ne만 붙이다가, 후에는 동사 앞뒤에 ne와 nawiht(참조 2)를 붙였기 때문이다. 뭔가 공통점이 느껴지실 텐데, 아이러니한 건 현대에 와서 둘 다 앞의 ne가 약해지거나(프랑스어) 사라졌다는(영어) 점이다. 사실 현대 프랑스어에서, 특히 말로 할 때 예외적 표현(가령 문장 끝에 붙이는 추임새인 n’est-ce pas)이나 무슨 공식적인 발표를 하지 않는 이상 ne를 발음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다. Sais pas(몰라)의 사례처럼 심지어 주어도 생략할 때가 있으며, 시험볼 때 외에는 ne를 쓸 일이 거의 없다. 그렇다면 어째서 공식적으로 ne pas인가? pas는 “걸음”를 의미한다. 더 이상 걸어가지 않는다의 뉘앙스를 의미하는데, 원래는 짤방의 사례처럼 그냥 ne 하나로 하다가 pas가 덧붙여져서 부정을 강조하다가, 아예 그냥 부정형의 문법이 되어버린 것이다. 더이상 사람들은 Sais pas를 “걸음을 안다”로 해석하지 않는다. “모르겠는걸…”의 뉘앙스로 받아들인다. 의문이 들 것이다. 애초에 왜 두 단계로 했을까? 이탈리아어나 스페인어, 포르투갈어는 각각 no나 não로 퉁친다. 동사 뒤에 별도의 부가 단어가 붙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부정형에 대한 강조 사례가 비단 pas에만 있지는 않다. point, rien, personne, plus, jamais, que, aucun, nul, nul part와 같은 용례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시라. no와 não는 분명히 들리지만 ne/느/는 거의 들리지 않는(사라져가는 이유가 있다), 굉장히 약한 단어다. 그래서 불어의 경우, 뒤에 pas부터 시작하여 부정형을 강조해주는, 보충해주는 표현이 꽤 발달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불어에만 있지 않다. 독일어와 네덜란드어나 노르웨이어에서도 발견되기 때문이다(참조 3). 가령 고대 고지 독일어(참조 4)에서의 부정형은 ni + niwiht였다고 한다. 이게 후에는 niwiht만 살아남아 nicht로 바뀐다. 게다가 독일어의 경우는 명사 부정에 쓰이는 kein(참조 5)의 존재 때문에… 프랑스어와는 좀 다른 형태의 부정형 강조 현상이 일어난다. 여기서 never가 출동한다면…? 프랑스어의 경우 위의 강조사례에 들어가 있는 jamais를 쓰는 두 단계 형태의 부정형 문장을 구성한다. 사실 never가 워낙 강력한 부정적 뜻을 갖고 있기에 이 형태에서는 두 단계인 언어가 꽤 있다. 가령 러시아어(никогда не…)라든가 이탈리아어(non mai…)가 있는데, 독일어는 이 경우 nie 하나로 오히려 간단해진다. 그래서 결론은, 언어는 변하고 미래는 문장 구성이 어떻게 또 변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바로 위의 내용만 하더라도 이중부정은 긍정이라는 상식과 배치되는 면이 있잖던가? 물론 프랑스어에 있는 두 단계의 부정형 구성은 순전히 프랑스인들이 부정하는 걸 좋아해서… 아 아닙니다. -------------- 참조 1. 고대 영어의 정의는 앵글로-색슨이 영국 섬에 정착할 때부터, 그러니까 5세기부터 프랑스 노르망디 제후의 잉글랜드 정복 시기(11세기) 까지 정도를 의미한다. 즉, 켈트어에서 벗어난 다음부터, 프랑스어의 점령을 당하기 전까지다. 이때부터는 중세 영어(Middle English)이다. 이 언어는 대충 셰익스피어 시기 전까지다. 2. not + it으로 생각하시면 되겠다. 이것이 후에 nought 혹은 naught로 변하고, 그 다음에는 부정형으로 남는 단어인 not으로도 간단하게 바뀐다. 보너스로 not a thing이 단순화된 형태가 nothing이다. 3. Jespersen’s Cycle and the History of German Negation: https://www.uni-salzburg.at/fileadmin/multimedia/Germanistik/documents/Mitarbeiterinnen_und_Mitarbeiter/Elspaß/Elspass_Schriften_in_Auswahl_pdfs/Elspaß_Langer_Jesp_Cycle_in_Neuphil_Mitt_2012.pdf 4. 표준 독일어의 출현(2019년 12월 1일): https://www.vingle.net/posts/2709049 5. 고대 고지 독일어의 no one을 의미하는 nihein에서 나왔다. ni의 음가가 떨어져나가고 h 음가가 강해지면서 kein으로 바뀐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