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avened
10,000+ Views

머리에 쓴 거 보고 아랍 사람들 구분하기

머리에 쓴 두건의 종류를 보고 아랍 사람들 구별하기!
ㅋㅋㅋㅋ그냥 너무 흥미롭고 신기해서 가져옴


난 머리에 쓴 두건 보고 아랍 사람들 국적 궁예가 가능함.
요르단
사우디와 두바이
오만
카타르
예만 & 오만
쿠웨이트



자 그렇다면 구분 방법은??


거의 빨간 체크무늬 천 사용. 가장 베이직하다? -> 사우디
평소에 안 웃는거 티나시는 왕자님


청순하게 한 쪽은 넘기고 착용하고
사우디랑 다르게 천 끝에 복슬복슬한 게 달려있따?
->요르단
하얀 걸 써도 한 쪽은 뒤로 넘김


특별한 행사 있을 땐 머리 중간에 장식을 달고 나타남



다음
이렇게 코브라 머리처럼 뾰족하게 하는건 카타르 스타일
코브라 스타일이라고 부르고 이렇게는 카타르가 가장 많이 신경 쓰는 듯



가끔 가다가 고개 숙인 코브라도 있음


근데 자기들끼리 두건 모양 고나리가 심하다.
예멘 출신 바레인 이민자 기자가 코브라 모양 잘못 따라했다가 조롱당함..

킹코브라..?

머리에 있는 동그라미를 ㅇㅏ갈이라고 부르는데
카타르 사람들은 달랑거리면서 다니기도 함.


이런 문양 있는건 주로 예멘
예멘의 신랑 복장
주로 예멘이나 오만 스타일인데 두 나라가 붙어있어서 구분이 좀 힘듦.
허리에 칼 차고 있으면 예멘 사람일 확률이 높음


오만 사람들은 이런 식의 모자를 많이 쓰고 다님.
그물 모양은 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인이 아니더라도 지지하는 의미로 많이 씀.


비 아랍 사람이 오면 목에

걸음.
이 무늬는 대부분 이라크의 쿠르드 족 문양인데
자세히 안보면 팔레스타인이랑 비슷함


이런 알록달록한 체크도 쿠르드 족!

두바이는 사우디처럼 베이직하게 쓰는데 하얀천.
아갈 안 쓸 때는 가볍게 묶어서 사용
흘러내린 코브라는 쿠웨이트.
이런 혼종(?)은 주로 쿠웨이트
푸른 천은 주로 베르베르 족인데 북 아프리카 대륙에 많이 살고 있음.


이런 알록달록한 무늬는 전통무늬 아니고 미군들이 전쟁에 쓰면서 퍼진 것.


이제부터 Tmi
이건 사우디 공항 직원들에게 퍼진 메뉴얼인데
단정함을 위해 멋부리지 말라고 오른쪽으로 통일시키라고 함.
아랍도 코인사를 함.
검지를 하늘로 찌르는건 알라는 위대하다.
수염을 풍성하게 기르는 사람들은 주로 수니파 근본주의자들.
머리에 까만 천을 쓰는 사람들의 경우 테러 분자일 가능성 많음.

사실 그냥 재미로 쓴 거라서
대충 이런식으로만 알고 있고 대놓고 맞추거나 하지 않아야함.
중동국가는 서로 사이가 안좋은 경우가 많으니! 그저 재미로 알고있자~

쿠웨이트 인은 이라크인을 거지라고 생각하고
이라크인은 사우디인을 무식한놈이라고 생각하고
사우디인은 카타르인을 소국이라고 무시하고
카타르인은 또 이집트인을 무시하고~~~~~


(ㅊㅊ - 여성시대 크라라공주)
2 Comments
Suggested
Recent
비슷비슷해서 모르겠네욤 설명해주시니 좀 알거같은 😄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Cards you may also be interested in
'우리 행복했지?' 시간이 야속하게 느껴지는 집사들
꼬리스토리는 여동생과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주먹 만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제자리에 서기만 해도 비틀거리다 픽 쓰러집니다. 행복하게 살았으니 웃으면서 보내주자고 다짐했건만, 세월이 야속하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네요. 01. 인형의 마음 나는 그대로인데 너의 시간은 참 빨리 가네. 그래도 우리 사랑 변치 말자. 02. 시간을 멈추는 방법 눈을 몇 번 감았다 떴을 뿐인데 확확 커 가는구나. 눈을 감지 않으면 너도 그대로일까. 03. 몰랐다 너를 만나기 전까진 시간이 이렇게 짧을 줄 몰랐다. 04. 날 좀 봐요 네가 말을 할 줄 알았다면 어떤 말을 했을까. 너의 눈을 보았다면 그 말이 느껴졌을까. 05. 뽀뽀 뽀뽀를 할 때마다 두 발로 격하게 밀어냈던 너. 이젠 날 밀어낼 힘도 없구나. 06. 간식 살 빼라고 타박해서 미안해. 먹던 간식 뺏어가서 미안해. 지금이라도 한 입만 더 먹어보렴. 07. 생일 언젠간부터 너의 생일이 참 싫더라. 안 한다고 시간이 멈추는 것도 아닌데. 08. 그립다 내 허벅지에 느껴지던 너의 작은 두 앞발에 실린 무게감이. 눈을 뒤집고 정신없이 자는 너의 코 고는 소리가. 내 종아리를 적시던 너의 촉촉한 콧물과 잠결에 들려오던 너의 발톱 소리도. 정말 미안하다 글 제임수 사진 Bored Panda ⓒ 꼬리스토리, 제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꼬리스토리가 들려주는 동물 이야기!
군대실화) 본격 군대에서 축구하는 이야기
안녕하세요! optimic입니다. 누군가가 제게 그러셨죠. "이 분이라면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도 재밌게 쓰실 수 있을걸요?" 항상 마음에 담고 있었습니다. 껄껄... 그 말. 정말인지 확인해보기 위해! 제가 한 번 써보겠습니다. 바로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 ----------------------------------------------------- 나는 육군 출신이다. 육군이란 무엇인가. 밥 먹고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운동뿐이고, 운동 중에서 '축구'와 '족구'에 환장하는 종족. 첫 번째로 동명동 메시, 서초구 히바우두, 달서구 호날두 등등... 전국에서 숨어있던 동네 고수들이 몰려드는 곳이기도 하며. 두 번째. 축구라고는 맥주 한 잔 하면서 프리미어리그를 보며 입으로만 축구하는 남자들이 모이기도 하며. 마지막으로 태어나서 축구를 해본 적도 없는 부드러운 사내들이 모여 눈치를 보는 곳이기도 하다. 나는 저 세 부류들 중 1~2번에 속했다. 축구를 잘하지는 못했다. 중학교 때 축구보다 먼저 '슬램덩크'에 빠진 나는 열심히 농구만 했고, 고등학교 때는 농구를 열심히 했기 때문에 반강제로 골키퍼를 맡았다. 그렇게 대학생이 됐다. 국어국문학과.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많은 학과였고, 사지 멀쩡한 남자들은 체육대회 때 반강제로 축구를 해야 하는 곳이었다. 특히 내가 신입생이 됐을 때, 축구를 열심히 하며 체대생을 꿈꿨지만 부상으로 인해 축구 유망주를 접고 국문과에 입학한 예비역 선배 한 명과, 축구에 미쳐 학과 수업보다 축구를 더 사랑했던 선배 두 명이 날이면 날마다 축구를 할 수 있는 인원들을 모아 반강제로 축구를 시켰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나는 골키퍼를 열심히 하지 말았어야 했다. 단순히 과대라서 선배들에게 잘보이고 싶었던 나는 팔자에도 없는 다이빙을 열심히 하며 골키퍼를 했고, '너에게서 가능성을 봤다'며 축구 유망주를 꿈꿨던 그 선배는 시간날 때마다 나를 호출해 골키퍼 연습을 시켰다. 어찌 보면 고등학생 때까지 축구부에서 배웠던 사람에게 배웠으니, 나도 축구부 시스템으로 훈련받았던 게 아니었을까...? 그렇게 나는 방구석 입축구 전문가에서 국문과 골키퍼가 되었고, 선배들의 무수한 압박 속에 승부차기에서 두 골을 막아내며 국어국문학과가 공대를 꺾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입대한 군대. 그 중에서도 내가 나왔던 부대는 정말 공놀이에 미친 사람들 투성이었다. 군화도 제대로 신지 않은 채 차에서 내린 행보관님이 날렵한 몸놀림으로 족구장에서 서브를 꽂아넣고 하품을 하며 출근하기도 했고, 육중한 몸놀림으로 '훈련이나 받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중대장이 안정환처럼 수비수를 농락한 뒤 세레머니를 하기도 했다. 축구를 너무 하고 싶어서 부대원들과 간부들이 사이좋게 삽 한자루로 언덕을 깎아 평지를 만들고, 정성스럽게 철근을 용접해 부대 내에 풋살 경기장을 만들었던 미친놈들의 소굴이었다. 그리고. 우리 중대에는 '그 사람'이 있었다. 대한민국 프로축구. K-리그에서 유망주로 불리다 불행한 사건에 휘말려 일반 육군으로 입대한 프로 선수. 소속팀과 이름은 밝힐 수 없다는 점. 심지어 그 사람과 동반입대한 친구는 대한민국 프로 씨름선수 출신이었다. 아무도 그 둘에게 개길 수 없었다. 그 선임들이 일병 때였다. 나와 2개월 차이가 났기 때문에 나도 일병이었고, 자주 붙어다녔다. 그 당시 중대에서 운동을 좋아하고 격투기 좀 배웠다 싶은 선임들, 간부들이 모두 그 씨름선수에게 "야. 나랑 씨름 한 판 해보자. 나도 운동 좀 했다." 라고 말하며 도전장을 내밀었고, 그 선임은 넉살 좋게 웃으며 "에이. 진짜 다치십니다. 그럼 저는 프로 출신이니, 다리 하나를 들고 하겠습니다." 라고 하며 샅바를 잡았고, 그 선임은 그렇게 중대의 모든 도전자들을 다리 하나로만 들어서 넘겨버렸다. 그 때 뜨거운 햇볕만큼이나 그 선임의 만두귀는 강렬했고, 보여주기 위한 근육이 아닌 단단하게 들어차 있는 '실전압축근육'은 모든 중대원들에게 경외감을 심어주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만두귀는 피해다녀라' 라는 격언을 인생 좌우명으로 삼으며 살고 있다. 그리고 프로 출신 축구선수였던 그 선임. 군대는 전국 팔도에서 온갖 사람들이 다 모이기에, 축구를 배웠던 사람들, 유학을 다녀왔던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 선임은 어나더 레벨이었다. 프로 구단에서 훈련을 받고 경기를 뛰며 어느정도 촉망받던 유망주였던 그 선임. 미드필더로 이미 스무살의 나이에 1군에 출장한 진짜 '선수'. 티비에서 축구 중계를 할 때 나오던 그 선수.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물론 프로 선수였다는 것은 네이버에만 쳐도 다 나왔기 때문에 믿었지만, "제가 진짜로 하면 축구 재미 없어집니다." 라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대대 축구대회에서 대대 최강 7중대를 상대로 우리 8중대 대표로 나왔던 그 선임은, 후반전 때 팀이 1대 0으로 지고 있자 "하아..." 라는 긴 한숨을 쉬고는 우리 골키퍼에서 상대방 골키퍼까지 혼자 공을 몰고 돌파해 여유있게 두 골을 때려박고 대대 체육대회에서 8중대를 우승으로 올려놓았다. 긴 한숨을 쉬며 어이없다는 듯 그 선임을 쳐다보던 7중대장의 이마. 탈모가 시작된 그 넓은 이마에 맺힌 땀방울만큼이나 그는 빛났다. 적어도 그 때만큼은 그는 호날두였다. 우리중대 호날두...호우... 그 날 이후 우리 중대는 소위 말하는 '짬순'으로 축구를 하던 룰이 사라졌다. 병장이라고 공격수만 할 수 없었고, 이등병이라고 수비수만 하지 않았다. 모든 포지션과 전술은 그 선임이 말하는 대로만 이루어졌다. 그리고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다. 아마 그것은 그 선임 옆에서 듬직하게 지키고 있던 고향만두가 생각나는 귀를 가진 씨름선수 선임의 포스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이기자 역사상 최강의 동반입대병들의 포스는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그 선임들이 운동법과 축구에 관해서 이야기를 할 때는 모두가 경청했다. 사실 군대에 있으면서 어지간한 남자들은 몸 만드는 것과 축구에 목말라있었기 때문에 그 선임들이 하는 말들은 단순한 조언이 아닌 '프로 씨름선수의 피지컬 훈련'과 '프로 축구선수의 기본기 훈련'이었다. 유투브에서 해도 솔깃할 만한 달콤한 조언들 아니겠는가. 그리고 축구 대회가 진행될 때면. "오우. 중대장님 나이스!" "아 그래? 헤헤 성호야 나 잘했어?" 일병이 엄지를 들고 칭찬하면 대위가 쑥쓰러워하며 고마워하는 기상천외한 상황들이 연출됐다. "야. 너는 축구 한 번 배워봐라. 가능성 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오. 신체 밸런스가 괜찮은데? 들배지기 하나 알려주까?" "알려주시면 제 한 몸 씨름을 위해 쓰겠습니다!!!" 그 선임들이 툭 뱉는 칭찬은 후임들에게는 '프로 선수에게 인정받았다'라는 엄청난 동기부여를 주었고, 거의 모든 중대원들이 주말만 되면 오전에는 씨름과 웨이트 트레이닝, 오후에는 공을 들고 운동장을 누비는 광경이 연출됐다. 그렇게 중대원들 몸이 점점 구릿빛으로 진해질 무렵. 나는 상병이 됐다. "어이. 랩쟁이." 가끔 씨름선수였던 그 선임은, 사단 대표로 나가서 노래를 부르고 휴가를 받았던 나를 이렇게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나는 부끄러움이 많은 편이었다. "랩 한번 해보그라." "췍. 췍. 앰네ㅐ뤠눌내무랜ㅁ언ㅁ엉어단아ㅡㅏ 췍!" 그리고 부끄러움보다 만두귀의 공포가 더 많은 편이기도 했다. 그렇게 한 번씩 궁중 광대같은 생활을 하며 터미네이터들에게 예쁨을 받았고, 상병이 되고 그들이 고참이 됐을 때도 그들을 따라다녔다. 그렇게 우리가 상병일 때, 대대에서는 또 체육대회가 열렸고, 축구대회를 위해 선임들은 중대원을 호출했다. "니는 공은 잘 못차는데 달리기가 빠르네. 골키퍼 하지 말고 측면 공격수를 해라." "잘못들었습니다? 저... 저는 공을 잘..." "닥치고 그냥 공 받으면 앞으로 툭 차. 그리고 뛰어. 누가 붙으면 어깨로 밀어. 그리고 슛을 때리던 패스를 하던 알아서 해. 쉽지?" "...그게 축구 맞습니까?" "야씨. 그럼 내가 농구선수냐? 너넨 다 기본기가 부족해서 여러가지 시키면 안돼. 하라는 것만 해." 그렇게 나는 왼쪽 공격수가 됐다. 그 선임의 전술은 매우 간단했다. 한 명 한 명 불러서 뭔가를 주문했는데, 다들 엄청 쉬운 것들이었다. "측면 수비수는 측면 공격수한테 무조건 공을 차. 받아도 그만 못받아도 그만. 오케이?" "중앙 수비수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앞으로 뻥 차던가, 앞에 있는 나한테 주던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공격수는 기다리시면 됩니다. 어떻게든 제가 공 올려드릴테니까, 발만 대시면 됩니다." -끄덕. 공격수를 맡았던 소대장들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시작된 대대 축구대회. 수비수에 있던 씨름선수 선임과 중앙에서 모든 것을 진두지휘했던 프로선수 출신의 선임, 그리고 '우리는 프로들에게 훈련받았다'는 자부심으로 사기가 하늘을 찌르던 중대원들과 간부들. 우리는 파죽지세로 결승전까지 진출했고, 결승전에서 대대 최강이었던 7중대를 다시 만나게 됐다. 무난하게 우리가 이길 거라고 생각했던 결승전은 묘한 양상으로 흘러갔다. 애초에 우리가 연습한 것보다 7중대는 더 열심히 연습을 했었다. 이를 바득바득 갈던 7중대장은 축구대회 전부터 쥐잡듯이 중대원들을 훈련시켰고, 결승전에서 축구선수 선임에게 무려 4명을 붙여 꽁꽁 싸매는 전술을 들고 나왔다. '축구선수는 일반 게임에서 진지하게 뛰면 안된다'는 주의로 중앙에서 패스만 뿌려주던 선임과 실력이 부족한 8중대원들, 그에 비해 악에 받힌 채 뛰어다니던 7중대원들로 인해 경기는 0대0으로 팽팽하게 전반전 막바지까지 흘러갔다. 그렇게 전반전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패스가 최전방에 있던 소대장에게 흘러갔다. 센스있게 중앙에서 패스를 뿌려준 그 선임 덕분에 당시 중위였던 소대장은 마지막 슛을 날리게 됐고, 소대장은 힘차게 공을 찼다. -뚜둑! 공은 프리미어리그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궤적을 그리며 아름답게 골대로 빨려들어갔고, 우리는 환호성을 지르며 소대장에게 뛰어갔다. "와아!!! 소대장님!!! 대박!!!" 하면서 뛰어가던 우리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힘차게 공을 찼는데... '뻥'이 아니라... '뚜둑'...?" 그렇게 생각하며 소대장 쪽을 쳐다보자 "와아!!! 내가 골이다!!!" 라고 말하며 자리에 주저앉아 있는 소대장이 있었고, 축구선수 선임은 "아.. 십자인대 나갔네..." 라고 말하며 절래절래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전반전이 종료되고, 소대장은 대대 엠뷸런스를 타기 위해 들것에 실려나갔다. "내 인생 최고의 슛이었어." 라고 말하며 엄지를 세우던 소대장은 그렇게 엠뷸런스의 구슬픈 사이렌 소리와 함께 대대를 벗어났다. 그렇게 폭풍같던 전반전이 지난 다음 찾아온 후반전. "그러니까 조심 좀 하라니까는 소대장님. 어휴. 나와 이 새끼들아!" 후반전이 시작되자마자, 걸죽한 욕설과 함께 행보관이 공격수로 투입됐다. 장동건과 동갑이었지만 임하룡과 비슷한 연배의 얼굴을 소유한 행보관은 경기 시작부터 욕을 한 바가지로 퍼부으며 상대방 수비진을 농락했다. "나와! 다 뒤질래? 나와! 나오라고!" "7중대! 쫄지마! 얼굴만 늙었지 형이야! 쫄지말고 막아!" "아니 7중대장님 너무하십니다!" "행보관님 애들 겁주지 마세요!" 나름대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각종 예능축구들을 선보이던 행보관. 다행인지 불행인지 공격진에서 시끄럽게 해준 행보관 덕분에 후반전이 시작되고 얼마동안은 1:0이 유지됐다. 우리 수비진들은 평화롭게 산책을 했고, 예상 외의 행보관의 실력에 감탄하고 있었다. 10분동안만... "허억....허억... 아 씨바 힘들어..." 10분이 지나자마자 행보관의 체력은 거짓말처럼 급격하게 방전되기 시작했고, 우리는 위험한 한골 차 리드를 챙긴 채 아등바등 뛰고 있었다. 그리고 후반전이 끝나기 얼마 전. "어! 어! 씨바 비켜!" 축구선수 선임이 차올린 공이 정확히 행보관의 머리 위로 떨어졌고. -팡! -우당탕! 그 공은 정확히 행보관의 발등에 걸렸다. 무려 오버헤드킥. 행보관은 그 짧은 순간 육중한 몸을 띄워 공중에서 공을 차냈고, 공중에서의 임무를 무사히 마친 그의 무거운 몸은 중력과 함께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어..? 어...?" "와아아!!!!!! 행보관님!!!!!" 우리는 믿을 수 없이 멋진 골에 놀란 채 환호하며 흙바닥에 대자로 누워있는 행보관을 향해 달려들었다. "야! 야! 오지마! 이 씨바 오지마! 잠깐만! 진짜 야!" 행보관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지만, 아드레날린이 폭발한 우리들은 행보관 위로 올라타며 기쁨의 세레머니를 했고, 세레머니가 끝난 후 행보관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일어나지 못했다. "야. 소대장님 태우고 간 엠뷸런스... 복귀했으면 일로 오라그래라...빨리..." 그렇게 방금 부대로 복귀해 체육대회를 즐기고자 했던 의무병과 운전병은 다시 들것을 들고 뛰어왔고, 날렵했던 소대장과는 달리 100키로에 가까웠던 행보관을 들기 위해 들것에는 4명의 장정이 달라붙었다. -웨용 웨-용 웨-용 그렇게 행보관은 떠나갔다. 허리가 나갔다며... 엠뷸런스는 오늘따라 더욱 구슬프게 사이렌 소리를 두 번이나 내며 초가을 연병장 바닥에 타이어자국을 남긴 채 떠나갔고, 그렇게 우리 중대는 대대 축구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이 시발 간부가 둘이나 실려간 팀을 어떻게 이겨..." 오늘따라 더 휑해보이는 이마를 빛내며, 7중대장은 절규했다. 그렇게 요란한 금요일이 지나고, 주말이 지난 후. 행보관은 허리에 복대를 찬 채 복귀했다. '앞으로 축구하면 죽여버리겠다'며... 소대장은 돌아오지 못했다. 십자인대 파열로 병원에 입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은 우리 중대장. 기아 타이거즈의 광팬이며 사회인 야구단에서 오래 활동했던 우리 중대장은 "축구하다 사람이 왜 이렇게 다치냐. 당분간 축구는 금지한다." 라고 말하며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야구 글러브 10개를 부대로 주문했다. 그렇게 열심히 축구를 배우던 병사들과, 전직 프로 축구선수, 전직 씨름선수는 모두 4번타자를 꿈꾸며 배트를 휘둘렀고, 중대장은 매주 주말 환하게 웃으며 글러브를 들고 우리를 집합시켰다... ------------------------------끝 이상 군대에서 축구했던 이야기였습니다! 재미는 음... 어... 없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재밌게 읽어 주세요! 감사합니당!
각종 영화 스포) 알면 재미있는 영화 디테일들 -5-
1. 코코 영화에서 대다수의 시간을 좌측처럼 넝마와 맨발로 지낸 핵터는 후반부 오해를 풀고 다시 리베라 페밀리로 돌아오며 신발과 복장이 복원됨 2. 슈렉3 빨간망토가 빌런들과 악당들 클럽에 모여있는것을 볼수 있는데 왜 쟤가 저기있나 의문을 가질수 있지만 슈렉 3편에서 빨간망토의 할머니를 잡아먹은 악당늑대가 슈렉편이기 때문에 이해 가능함 나라도 할매 죽이고 그 옷 입고있는 미친 괴물 있으면 복수하고 싶을듯 3. 데드폴 2 데드폴 2 삭제신 중에 엑스맨 하우스에 엑스맨들 코드네임이 적힌 벨크로가 있는데 그 중 휠체어(Wheels)가 있음 이는 엑스맨 1편에서 프로페시아x에게 울버린이 당신은 휠체어라 불러야 하냐고 비꼰 걸 나중에 데드폴 2에서 표현한것 4. 킬 빌2 페이메이는 엘르 드라이버에게 자신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간접적으로 함 페이메이는 브라이드(우마 서먼) 을 처음 만났을 때 너의 오른팔은 나의 것이라고 하는데 이후 페이메이가 죽고 브라이드가 엘르의 눈을 뽑을때 오른팔을 사용함 5.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신비한 동물사전: 그린델왈드의 범죄 불사조 기사단에서 헤리에게 아빠 위즐리가 마법부 부서간 마법메모가 사용되기 전에는 부서간 문서 이동을 부엉이를 통해서 했다고 말하는데 11년뒤 프리퀄 영화인 그린델왈드의 범죄에서 실제로 마법부 내부에서 부엉이들이 문서를 배달하는 장면이 있음 6. 다시 또 장고 극중 초반에 누렇고 더러운 이빨을 가지고 있던 장고는 마지막에는 비교적 깨끗한 이빨을 보여주는데 이는 같이 다니던 닥터 킹 숄츠가 치과의사로써 실력을 발휘해 줬을것이라고 추정 가능함 7. 스파이더맨 3 찐따파커의 스파이더맨 3의 시작점에 파커의 손을 보면 거미에 물린자국이 있음 8. 알라딘 자스민이 도둑질을 하다 걸린 상황에서 알라 율법에 따라 도둑질을 하다 걸린놈은 손모가지를 자른다는 형벌을 하려는 장면인데 도마를 보면 얼마나 많은 손모가지들이 여기서 잘렸는지 알수 있음 9.주토피아 교통국애서 나무늘보에게 증명사진을 찍으려던 돼지는 엔딩에서 보면 교도관이였음 10. 마다가스카 3 (2012) 영화에서 뉴욕을 그리워한 동물친구들중 마티는 그 특유의 미친 강박관념 덕분에 뉴욕의 스카이라인을 전부 기억해서 진흙으로 만들었는데 2006년 지어진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이 스카이라인에 포함되지 않음 왜냐면 애네들이 뉴욕을 떠난 날짜가 2005년이기 때문에 마티는 모르는것 11. 007 스카이폴, 007 스팩터 007 스펙터에 나오는 M의 복장은 스카이폴과 동일함 스카이폴 직후 M은 자신이 죽을때를 대비해 비디오 유언장을 안전망에 올려놨다고 추정 가능 이후 본드가 그 비디오를 보고 자신이 죽고난 뒤에도 지시를 받을수 있게 함 12. 월E 오프닝 신에서 쓰레기 더미 위에 핵발전소와 풍력 터빈이 있는것을 볼수 있는데 인류가 쓰레기더미에 파묻히면서 뒤늦게 친환경 에너지를 이용하려 했지만 너무 늦어버렸다는것을 암시함 13. 업, 카2 서양 잼민이가 발견한건데 업에서 사용한 정글부분 인트로를 카2에서 재활용함 14. 6 언더그라운드 라이언 레이놀즈가 SNS에 영화 촬영중인 배경으로 노가리 까는 동영상을 올렸는데 영화 14:42에 노가리 가는 라이언 레이놀즈 뒤통수 확인 가능함 15. 라푼젤 마녀가 "널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단다" 하며 라푼젤에게 키스하는데 자세히 보면 이마가 아닌 머리카락에 키스중임 (출처) 이제 마지막인가봐영! 덕분에 재밌었당 +_+
집이라 불리는 세상에서 가장 따듯한 보호소
미국 캔자스시티 스프링힐에는 조금 특별한 유기견 보호소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보호소를 실제 이름보다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부르는데요. 이 보호소의 별명은 바로 '작은 집'입니다. 보호소 직원인 미란다 씨가 손을 뒤로 뻗으며 보호소를 소개했습니다. "작은 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작은 집의 구조는 간식이 가득한 부엌과 24시간 돌아가는 세탁실 그리고 클래식이 흘러나오는 거실과 여러 개의 방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넓은 뒷마당은 아이들이 자유롭게 출입이 가능해 언제든지 신나게 뛰어놀 수 있습니다. 얼핏 보면 아이들을 많이 기르는 다견 가정집처럼 보이지만, 미란다 씨가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아니요. 이곳은 유기견 보호소가 맞아요." 작은 집이 보호소를 평범한 집처럼 꾸민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유기견은 대부분 새 가족을 찾지 못하고 좁은 곳에서 스트레스를 받다 비참하게 떠나요. 우리는 그런 것만은 막고 싶었어요. 보호소에서 마지막 생을 마감하더라도 우리가 가족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물론, 겉모습만 가정집으로 꾸민다고 해서 진짜 집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작은 집의 진짜 강점은 이것에 있습니다. "우리 모두 녀석들을 반려견 대하듯 대해요.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요." 진짜 집 같은 인테리어에서 알 수 있듯, 이곳 직원들은 모든 개와 친밀한 시간을 갖습니다. 특히 밤에 말이죠! 매일 밤, 모든 개는 미란다 씨를 비롯한 모든 직원과 각자 저마다의 친밀한 시간을 보냅니다. "사랑하는 우리 심바. 좋은 꿈 꾸렴." "데릭. 데릭. 아름다운 데릭. 엄마가 사랑하는 거 알지?" "언제나 기분 좋은 코코. 너의 꼬리도 이제 좀 쉬어야 하지 않겠니?" 오랜 시간에 걸쳐 모든 아이가 직원들과 대화를 나눈 후에야 보호소의 조명이 꺼집니다.  밤에도 짖는 소리가 끊이질 않는 일반적인 보호소와 달리, 이곳에 있는 아이들은 모두 조용하고 편안한 상태로 깊은 잠에 빠집니다. 다음 날 아침이 되면 달콤한 밤을 보낸 아이들은 눈을 말똥말똥 뜨며, 케이지 문이 열리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란다 씨가 우리 문을 열어주자, 마당을 뛰어다니거나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거나 소파 위에서 잠을 낮잠을 자는 등 저마다의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미란다 씨는 잔잔한 클래식 음악을 틀고 또다시 하루의 시작을 준비합니다. "집처럼 꾸민 보호소는 아이들에게도 큰 도움이 돼요. 새 가족에게 입양된 아이는 좀 더 수월하게 적응할 수 있고, 입양되지 못한 아이도 여기가 또 다른 집이라는 걸 알고 있거든요." 미란다 씨가 주변을 둘러보고는 활짝 웃으며 말을 덧붙였습니다. "선택받지 못한 유기견들이 충분히 사랑받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요. 그런 세상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이곳, 작은 집은 그 세상을 위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해요." 글 제임수 사진 The Dodo, 인스타그램/alwaysnfurever, 틱톡/alwaysandfureverkc? © 꼬리스토리, 제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꼬리스토리가 들려주는 동물 이야기!
버림받은 아기 고양이에게도 사랑이 찾아올까
지난겨울, 시애틀 거리를 걷던 수의사 가비 씨의 눈에 비틀거리는 아기 고양이가 들어왔습니다. 접힌 귀, 졸린 눈, 짧은 다리 그리고 오들오들 떠는 애처로운 움직임까지. 분명 병에 걸려 엄마에게 버림받은 것이 분명했습니다. 차마 아기 고양이를 못 본체 지나칠 수 없던 가비 씨는 녀석을 집으로 데려와 진찰했지만, 녀석이 살아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은 못 했습니다. 아기 고양이의 떨림은 추위 때문인지, 슬픔 떄문인지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녀석은 크게 절망한듯 자리에 누워 꼼작하지도 않았죠. 진찰 결과, 예상대로 폐렴, 위장병, 피부병 등 다양한 질병까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기 고양이에게 오기라도 생긴 걸까요? 녀석은 온몸을 오들오들 떨지언정 눈은 절대 감지 않았습니다. 마치 '젠장, 언젠간 사랑받고 말테다'라고 되네이는 것처럼 보였죠. 가비 씨는 몸 벌벌 떠는 녀석이 끓는 주전자 같다 하여 티팟(차주전자)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리고 티팟은 꼬리스토리가 들려드리는 모든 아기 고양이가 그렇듯 역경을 이겨내고 건강하게 자라났습니다. 하지만 부족한 영양 탓에 녀석의 덩치까지는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티팟은 453g이었어요. 생후 6주인 고양이에겐 말도 안 되는 무게이죠." 가비 씨는 연약한 티팟에게 친구를 소개해 주기보다는 녀석을 잘 돌볼 수 있는 어르신을 소개해 주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 그 역할에 딱 맞는 분이 계셨습니다. 바로 가비 씨의 반려묘이자 어느덧 18살이 된 노령묘, 스캐어크로우입니다. "스캐어크로우도 티팟처럼 제가 거리에서 데려온 녀석이에요. 녀석이라면 티팟을 잘 돌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티팟이 스캐어크로우를 향해 조심스럽게 접근하자, 스캐어크로우가 시원하게 앞발을 뻗어 티팟을 자신의 품 안으로 끌어당겼습니다. 그렇게 생후 6주의 아기 고양이와 18살의 노령묘 스캐어크로우의 특별한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인연은 스캐어크로우의 삶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스캐어크로우라는 이름을 안 부른지 꽤 됐어요. 언젠가부터 '티팟 할아버지'라고 부르고 있거든요." 티팟은 선천성 갑상선 기능저하증이라는 고양이로서는 희귀한 질병을 추가로 앓기도 했지만, 할아버지는 티팟이 아프다는 이유로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꼭 껴안곤 했죠. 마음이 안정되니 몸도 다시 튼튼해졌습니다. 무좀 양말을 신은 것 같은 또렷한 발가락으로 가파른 경사를 빠르게 올랐으며, 몸무게는 기존의 2배인 906g으로 불었습니다. 비록 할아버지는 매일 낮잠만 자며 함께 놀아주진 않으셨지만, 티팟의 보호자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가족이었습니다. 본래 가비 씨는 티팟이 건강해지면 다른 곳으로 입양을 보낼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나, 전기 장판 위에 누워 서로를 꼭 껴안고 잠든 할아버지와 손자를 보며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티팟을 가장 잘 돌볼 수 있는 집에 보내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녀석을 가장 잘 돌볼 수 있는 보호자가 이곳에 둘이나 있잖아요." 마침내 티팟에게도 영원한 사랑이 찾온 것 같습니다. 사진 Love Meow @Gabi 인스타그램/teapot.cat ⓒ 꼬리스토리, 제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꼬리스토리가 들려주는 동물 이야기!
치킨집 사장님에게 도착한 손편지
눈앞이 흐려져서 글을 못 쓰겠습니다... 나 왜 울고있지...ㅠㅠㅠㅠ 너무 예쁜 마음을 가진 아이들과 사장님이네요ㅠㅠㅠㅠㅠ + 혹시 궁금하실 분들을 위한 손편지 전문 안녕하세요. 저는 마포구 망원동에 살고 있는 18살 평범한 고등학생입니다. 이렇게 편지를 보내는 이유는 철인7호 사장님께서 베풀어 주신 잊지 못할 은혜와 사랑에 대해 감사함을 하고 싶은 마음에 다시 찾아뵙기도 하고 전화도 드렸지만 계속 거절하셔서... 무슨 방법이 있을까 고민했고 인터넷에 철인7호를 검색했습니다. 비비큐나 교촌치킨같이 전국에 여러 곳이 있는 가게구나 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런 식으로라도 철인7호 사장님께 감사 말씀 드리고 싶어서 글을 적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시고 몸이 편찮으신 할머니와 7살 차이 나는 남동생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작년부터 코로나 바이러스가 심해지면서 아르바이트하던 돈가스 집에서 잘리게 되고 지금까지도 이곳저곳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고 있지만 미성년자인 제가 일할 수 있는 곳은 없었습니다. 나이를 속여 가끔 택배 상하차 일을 해서 할머니와 동생의 생활비를 벌어 가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힘이 들지만 동생과 할머니와 제가 굶지 않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동생이 제게 집에 와서는 치킨이 먹고 싶다며 울며 떼를 써서 우는 동생을 달래 주려 일단 바깥으로 데리고 나왔고 치킨집만 보이면 저기 가자며 조르는 동생을 보니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집 근처 치킨집에 들어가 조금이라도 좋으니 5천 원에 먹을 수 있냐 하니 저와 제 동생을 내쫓으셨습니다. 망원시장에서부터 다른 치킨집도 걸어서 들어가 봤지만 다 먹지 못했습니다. 계속 걷다 우연히 철인7호 수제치킨전문집이라는 간판을 보게 되어 가게 앞에서 쭈뼛쭈뼛해 하는 저희를 보고 사장님께서 들어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사장님께서 포장은 안 되고 먹고 가라고 말씀하셔서 얼떨결에 자리에 앉게 되었고 메뉴 이름은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난리 세트라는 메뉴를 저희에게 내어 주셨습니다. 딱 봐도 치킨 양이 너무 많아 보여 사장님께 잘못 주신 것 같다고 말씀드리니 치킨 식으면 맛없다며 콜라 두 병을 가져오시더니 얼른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혹시나 비싼 걸 주시고 어떡해서든 돈을 내게 하려는 건 아닌지 속으론 불안했지만 행복해하며 먹는 동생을 보니 그런 생각은 잊고 맛있게 치킨을 모두 먹었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계산할 생각에 앞이 캄캄해졌고 나쁜 생각이지만 동생 손을 잡고 도망갈 생각도 했습니다. 사장님께선 활짝 웃으시면서 맛있게 먹었어? 라고 물어보셨고 이것저것 여쭤보시길래 잠깐 같이 앉아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외모와 다르게 정이 많으신 분 같았고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참 따뜻했습니다. 치킨값은 영수증을 뽑아 둘 테니 나중에 와서 계산하라고 하시며 사탕 하나씩을 주시고는 그래도 5천 원이라도 내려는 저를 거절하시더니 저희 형제를 내쫓듯이 내보내시더군요. 너무 죄송해서 다음 날도 찾아뵙고 계산하려 했지만 오히려 큰 소리를 내시며 돈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얼마 만에 느껴 보는 따스함이었는지 1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이 납니다. 그 이후에 동생이 언제 사장님께 명함을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저 몰래 사장님께 찾아가 치킨을 먹으러 갔다고 자랑을 하길래 그러지 말라고 동생을 혼냈습니다. 그때도 사장님이 치킨을 내어 주셨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은 덥수룩했던 동생 머리가 깨끗해져서 돌아온 걸 보고 복지사님 다녀갔냐 물어보니까 알고 보니 치킨을 먹으러 간 동생을 보고 사장님께서 근처 미용실에 데려가 머리까지 깎여서 집에 돌려보내신 것이었습니다. 그 뒤로는 죄송하기도 하고 솔직히 쪽팔리기도 해서 찾아뵙지 못하고 있습니다. 뉴스 보니 요즘 가게 자영업자들이 제일 힘들다 그렇다 여러 가지 말들이 많이 들려 철인7호 사장님은 잘 계신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됩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막상 볼펜을 잡으니 말이 앞뒤가 하나도 안 맞는 것 같고 이런 글도 처음 써 봐서 이상한 것 같아요. 이해 부탁드릴게요. 다만 제가 느낀 감사한 감정이 이 편지에 잘 표현되어 전달되었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처음 보는 저희 형제에게 따뜻한 치킨과 관심을 주신 사장님께 진짜 진심으로 감사하단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도 앞으로 성인이 되고 꼭 돈 많이 벌어서 저처럼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면서 살 수 있는 철인7호 홍대점 사장님 같은 멋있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하고 또 감사드립니다.
[퍼오는 귀신썰] 북망산 가는 길 -3-
연휴도 이제 슬슬 끝이 보이네 짧은 듯 긴 듯 사실 최대로 얻을 수 있는 5일 연휴도 사실은 항상 짧은 기분이잖아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항상 더 쉬고싶고 ㅋㅋㅋ 그래도 하루 남은 연휴 맘 편하게 즐기도록 하자아 맘 편한 연휴에는 귀신썰이 최고고... 오늘 북망산 가는 길 마지막 편 같이 볼까? 시작! _______________ 6. “몸은 좀 괜찮냐? 도대체 얼마나 안 좋길래?” 형이 떠난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은 시간, 종범이가 나를 찾아왔다. 괜찮다는 나를 불러내 동네 죽 전문점에 마주 앉았다. ‘남자 둘이 죽 집이라니’ 뜨거운 죽을 앞에 두고 피식 웃었다. “응 몸은 뭐, 며칠 전보다는 많이 나아 졌네.” 몸이 조금 나아지긴 했다. 의식은 여전히 현실과 꿈속 나선형 계단을 오르내리고 있었지만. “형은 잘 보냈지?” “응, 뭐, 잘 갔다. 양평 아버지 모신 가족공원에 같이 모셔놨지.” 우리는 죽을 먹으며 형과 있었던 일화와 어렸던 과거를 추억하며 낄낄 웃었다. “그런데, 음.......” 죽을 후후 불며, 낄낄 거리던 녀석이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너 별일 없냐?” 녀석이 생뚱맞게 물었다. “아픈 게 별일 이지. 더 이상 무슨 일이라도 있어야 돼.” 나는 여전히 농담으로 답을 받았다. “그건 그런데, 이상하게 어제, 그제 꿈속에 형이 계속 나온다. 형이 나와서 계속 너한테 가보라네. 다른 걸 물어보면 말도 안 해. 그 말만 하고 사라 지길래. 나는 너도 아프다더니 정말 심각하게 아픈 건가 해서.” “뭐, 많이 안 좋긴 한데, 몸살인 것 같기도 하고 조금 지나면 나을 것 같기도 하고...그렇긴 한데.” 나는 말을 끌었다. “그런데 뭐?” “그게 이런 말 하면 믿기지 않겠지만 나 요즘 계속 여자 귀신한테 시달린다.” 말을 마치자 녀석이 푸하하 박장대소를 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진짜 뜬금없는 소리긴 하네. 그래 이쁘냐?” 녀석은 연신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어이없다는 녀석 반응을 보자, 괜한 소리를 했다는 후회가 밀려와 심드렁하게 답을 받았다. “아니 뭐, 이쁜건 모르겠는데. 눈이 새빨개” 갑자기 녀석의 움직임이 멈췄다. 심드렁하게 말을 받으며 죽을 푸던 내 눈이 녀석에게 향했다. 녀석은 멍한 표정으로 입을 벌린 채 나를 바라봤다. “그...그 귀신한테 시달린 게 언제 부턴데?” 숟가락을 들고 있는 녀석의 손이 덜덜 떨렸다. 무언가 있긴 있구나. 갑자기 죽집 내부 공기가 싸아 하게 침잔 했다. 7. 영범 형은 몇 해 전 흔적도 없이 사라진 적이 있다. 그때 녀석은 형이 ‘잠수’를 탔다고 했다. 지구상 존재하는 모든 빚쟁이들이 형을 쫓을 때였다. 종범이도 형이 얽어놓은 어마어마 빚보증으로 날마다 한숨지었다. 물론, 나에게도 적지 않은 금전적 신세를 지고 있던 형이 서울에서 사라져 버렸다. 녀석은 술집으로 자리를 옮기자고 했다. 우리는 죽집을 나와 옆 치킨 집으로 옮겨 치킨과 소주를 마주 했다. “사실 그때 이미 형수는 다른 남자하고 바람나 있었거든, 형수가 돈 벌겠다고 식당에 일을 나갔는데 거기 오는 손님하고 눈이 맞았나봐. 형은 그냥 웃더라. 남자가 능력이 없어지면 할 말 있겠냐고. 형수가 이혼하자고 길길이 뛰어서, 사실 그때 형이 이혼도장 찍어 줬어. 조건을 하나 건게 어머니께는 절대 말씀 안드리는거 하고, 애들 다 성인이 될 때까지 말 안하는 거 하고. 뭐 그렇게 말을 했다나봐. 그러고 나서도 형수한테 생활비는 꼬박 꼬박 보내 줬다더라.” 쪼르르 하고, 녀석은 치킨이 나오기도 전에 잔에 술을 채웠다. 형은 목포로 향했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곳이어서, 빚쟁이가 쫒아 오지 못할 것 같아서, 혹은, 조용히 삶을 마감하기 좋을 것 같아서. 여러 가지 이유를 추측할 수 있지만, 아마도 마지막 이유가 크지 않았을까? 친형제 같지 않겠지만, 나도 종범 형을 잘 안다. 겉으로 강한 척 해도, 여리고 여린 그 속내에 주위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말았으니, 그 죄책감을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삶을 정리하기 위한 여정에서 형은 한 여자를 만났다. 거친 선원들을 상대로 웃음과 술을 팔며 삶에 대한 미련을 소모 시키던 여자와 형은, 막다른 길에 들어선 동지로서 연정을 느꼇고, 그 연정은 다시 삶에 대한 강렬한 희망의 불씨를 지폈다. 형은 언젠가 녀석에게 목포에서 그녀와 같이 했던 이년의 세월이 자기 삶에 있어 오월의 햇살 같은 날들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재기를 꿈꾸며 서울로 상경한 그들은 어머니께 철저히 외면당했다. 이혼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있던 어머니는 정식으로 인사드리기 위해 횡성 시골을 찾아 들어간 형과 여자에게 악다구니를 퍼부으셨다. 형이 인사를 가기 며칠 전 종범이가 열심히 사전 작업을 했지만, 어머니에게 이혼이란 하나님 가르침에 정면으로 위배된 배척행위였다. 새 여자와 어머니를 마주한 형은, 진짜 마누라 데려 오라는 호통만 듣고 말았다. 나는 어머님을 이해한다. 어머님은 평생 하나님 테두리 안에 들어 사는 걸 최고의 기치로 여기셨다. 내가 종범이와 단짝 친구가 된 후 내 종교가 기독교가 아니라는 걸 아신 후 어마어마하게 전도를 하셨을 정도니까. 그건, 어머니가 지닌 행복한 삶의 가치기준 이다. 나는 형을 이해한다. 그 여자도 이해한다. 종범이 녀석이 내게 그런 말 일언반구하지 않았던, 아니 못했던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각자 행복에 대한 가치 기준들이 부딪히자. 여자는 목을 맸다. 횡성, 어머니 집 뒷산 나무에서. 왜 하필 그곳에서 목을 매었는지 알수 없지만, 여자는 나름의 방식으로 어머니에 대한 항거했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거기 까지 이야기를 듣자 머릿속이 띵 하고 울렸다. “야, 잠깐만 우리 집에 올라가자.” 소주를 연거푸 입에 붓고 있는 녀석을 끌고 아파트로 올라갔다. 내가 횡성에 들렀을 때, 어머니는 감자와 여러 채소들을 박스에 담아 주셨다. 그리고 떠날 때쯤 모자란 것 같다며 이것저것 더 챙기신 후 커다란 보자기에 싸매 주셨는데, 한눈에 봐도 그 보자기는 너무 고급스러웠다. 그동안 본가에 들르지 못했던 감자와 야채는 고스란히 우립 집에 놔둔 상태였고, 어머니가 보자기로 싸주셨던 그 스카프 또한 여전히 우리 집에 있었다. “엇, 이거” 녀석은 스카프 주인을 바로 알아봤다. 8. 여자의 천도제를 지내는 날 종범이 녀석이 함께 했다. 모친과 자주 만나던, 모친만 보면 시주 좀 해달라고 징징거려 모친에게 가까이 하지 말라고 말했었던 땡중은 제법 법력 높은 천도제를 진행했다. 어쩐 일인지 천도제를 지내며 내 등을 펑펑 계속 때려 댔는데, ‘이 땡중이 내가 뒤에서 욕한걸 알고 사심을 담아 때리는 거 아냐?’ 생각이 들게 했다. 종범이는 나중에 자기도 때리러 올까봐 겁이 났다고 한다. 은혜도 모르는 놈. 내가 누구 때문에 맞고 있는데. “천도제가 저렇게 하는 거구나. 처음 봤네.” 천도제가 끝난 후 청량리 역 앞을 걸으며 녀석이 말했다. “그러게, 그런데 형이 그래서 그랬나? 죽는 날 아침 10시에 나한테 카톡을 보냈더라. 미안하다고.” “어? 무슨 소리야. 형 가기 전날 밤 9시부터 혼수상태 였는데. 네가 뭘 잘못안 거겠지.” 녀석이 생뚱한 표정으로 말했다. 엇?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 내가 뭘 착각 했나보다.” 말했다. 말이 끊겨 그저 조용히, 인적 많은 청량리 번화가를 걷고 있는데, 녀석이 갑자기 걸음을 멈춰 섰다. 왜 그래? 하는 심정으로 녀석을 쳐다보니,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울고 있었다. 소리죽여 가만가만 울다가, 흑흑거리며 제법 크게. 나는, 울고 있는 녀석을 두고 멀찍이 도망갔다. 아, 쪽팔려. 9. 그날 밤 영범 형이 꿈에 나왔다. 어쩐 일인지 그날은 이 상황이 꿈이라 는게 확실히 느껴졌다. 집 앞을 걷고 있는데 아파트 앞 편의점 파라솔 의자에 형이 앉아 웃고 있었다. 한손에 담배와 파라솔 테이블에 커피까지. “어디 가냐?” 아무렇지 않다는 듯, 형은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형, 형 때문에 내 진짜.” ‘죽어서 까지’ 라고 말을 하려다 멈췄다. “야, 뭐 다 그런 거지. 우리가 남이냐?” 형의 말에 갑자기 코끝이 찡해졌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한테는” 말을 끊고 사람 좋은 웃음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냥, 고맙다. 그 커피 마셔라. 너 주려고 사논 거야” “어, 고마워요 형.” 나는 캔 커피를 손에 쥐었다. 꿈인데 따스한 캔 커피 온기가 느껴졌다. “그런데, 좀 어때요 거기는? 이제 천국 지옥 이런데 막 심판 받아서 가나? 형은 어머니 말씀 안 듣고 맨날 교회 땡땡이 쳐서 천국 가기도 힘들 텐데.” 나는 킥킥대며 농을 했다. 내 말에 형은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내가............여태까지 지옥에 있다 이제야 나왔잖니” 억, 나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 이었다. “그런데..” 형은 말을 이었다. “천국이었을 지도 모르지.” 라며 의자에서 일어섰다. “갈게. 늦기 전에 가야지.” 형이 편의점 옆 골목길로 걸어갔다. 그러자 골목 안에서 흰 원피스를 입고 낯익은 여자가 형을 향해 걸어 나와 형 팔짱을 꼇다. 어쩐 일인지 이제 나는 그녀가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얼결에 고개를 꾸벅 숙이자, 여자도 쑥스러운 웃음으로 내게 꾸벅, 목례를 했다. 여자 눈이 빨갰다. “아참, 영범 형이 몸을 돌리며 말했다. 우리 어머니한테 한번 들러라 뭔가 말씀 하실 거다.” 10. 비가 와서 횡성 시골길이 가는 내내 질척거렸다. “야야, 주말에 가면 되지 뭘 그렇게 빨리 가자고 닦달이냐.” 종범이 녀석은 제 어머니에게 가는 길 내내 조수석에 앉아 투덜거렸다. “얌마, 내가 지금 우리 어머니한테 가냐? 너희 어머니한테 가지. 그리고 형가신지 얼마나 됐다고, 아무리 어머니가 괜찮다고 하셔도 마음이 어떠실지 모르는데 너 그러는 거 아니다.” 불퉁거리며 쏘아 붙이자 녀석이 잠잠해 졌다. 하지만, 안다. 녀석이 미안한 마음에 불퉁거린 다는 걸. 오래된 우정은, 사람의 마음으로 이해하기 힘든 어떤 미지의 영역으로 맞닿는다. 그러다 처음 여자 영가와 마주쳤던 곳을 지나며 내가 말했다. “여기다. 내가 처음 여자귀신하고 마주친 데가” “아!” 녀석이 말했다. “여기, 이길, 그 여자 분이 참 좋아 했던 길인데. 자기 어릴 때 자랐던 이모 집 옆 개울하고 닮았다고.” 어머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웃으며 우리를 맞아 주셨다. “주말에 천천히 오지 비도 오는데 뭐 하러 왔어.” 말씀 하시는 어머니 얼굴에 생기가 사라져 있었다. 저녁을 차려 주셨고, 형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 고마웠던 얘기들, 잡다한 이야기를 모자가 나누는 내내 나는 조용히 옆에 앉아 듣고만 있었다. 비가 오면 마당 하수구가 자꾸 막힌다는 말씀에 친구 녀석이 우비를 꺼내 입었다. “넌 앉아 있어라, 내가 후딱 보고 올게.” 녀석이 나가자 어머니는 내게 커피를 타 주셨다. “그래 부모님은 별고 없으시지.” 미소를 가득 담으신 채 말씀 하셨다. “네. 그렇죠 뭐.” “아, 참 그리고.” 어머니는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방에 가셔서 두툼한 봉투를 들고 오셨다. “영범이가 말이다. 예전에 너한테 돈 빌려 쓴게 있다며? 왜 얘기 안했냐. 영범이가 가기 일주일 전쯤에 말이다. 몸도 안 좋았던 놈이 언제 그렇게 악착 같이 모아 놨는지 꽤 돈을 모아 놨더라. 애초 살면서 그런 돈을 만들어 놨으면 그렇게 고생하면서 살지 않았어도 됐을 텐데.” 어머니 말씀을 듣자 사형선고를 받고도 그악스럽게 일을 해대던 형의 모습이 떠올랐다. ‘신세진 사람한테 도리는 하고 가야 하지 않겠냐?’ 형은 말했었다. “이건 네 거라고, 나중에 너 오면 꼭 챙겨 주라고 하더라.” 어머니가 내 주신 봉투에 수표뭉치가 두툼히 들어 있었다. “야뇨 어머님. 전 됐어요. 그게 언제적 얘긴데요. 그냥 어머니 필요 할 때 쓰세요.” 나는 봉투를 다시 어머니께 내밀었다. “아니다. 이건 네 거다. 이건 네 거야. 가져가라. 그래야 나도 마음이 편할 것 같구나.” 어머니는 결연한 표정으로 말씀 하셨다. “그리고 말이다. 네게 항상 고맙구나. 영범이 녀석이나 종범이 녀석이나 힘든 역할은 죄 네게 떠맡기고. 고맙다. 항상, 고마워” 어머니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어딘가 기억 저 깊은 곳, 고왔던 어머니 얼굴은 깊고 깊은 주름으로 그동안 살아오신 굽이친 삶에 회한을 대신했다. 참고 참았던 고삐를 더는 지탱하지 못하셨던 듯 어머니는 낮고 긴 울음을 토해 내셨다. “얘야 넌 말이다.” 잠시 숨을 고르고 낮은 목소리로 말씀 하셨다. “네 어머니.” 나는 다소곳이 대답했다. “너는 스스로 행복 하게 살아라. 스스로 말이다. 효도 하려고 굳이 애쓰지 마라. 효도란 게 말이다...효도란 게.........내 자식이 그저 제가 행복하게 살아 준다면 그만한 효도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너무 늦게 알았지만 어쩌겠니. 산다는 게 그런 거지.” 낮고 길게 오열하는 어머니 손을 나는 꼬옥 잡아 드렸다. 서울로 오는 차안에서 녀석과 나는 말이 없었다. 영동 고속도로는 내내 막혔고 녀석은 분당 지하철에서 내려 달라고 말했다. “야야, 차 너무 막히니까. 나 내려 주고 너 그냥 가라.” 말하며 차 문을 열려는 녀석에게 나는 말했다. “야, 잠깐만 이거” 나는 어머니께 받았던 돈 봉투를 꺼내 들었다. “어머니 집에 벽지도 많이 낡았고 싱크대며 화장실이면 손댈 데가 꽤 많더라. 이걸로 되는대로 수리 좀 해 드리자.” 내가 돈 봉투를 내밀자 녀석은 무슨 말인가 내게 하려 했다. “야, 됐고. 너 돈 안 받으면 나 이돈 그냥 아무 교회 가서 헌금해 버린다. 뭐 교회마다 헌금 봉투 종류도 많더만.” 반 협박을 하자 녀석이 피식 웃으며 봉투를 받아 챈다. “리모델링하려면 이걸로는 좀 모자란다. 내가 보태서 알아서 할게.” 문을 열고 내리는 녀석에게 “그러던지”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나는 녀석에게 말했다. “행복하게 살라더라. 어머니가. 그게 효도라시네. 너도, 행복하게 살아라 친구야.” 녀석은 차문을 닫지 못한 채, 쏟아지는 작달비를 우산도 없이 고스란히 맞으며 씨익하고. [출처] 북망산 가는 길 3 | hyundc ___________________ 아 너무 슬프잖아 마음은 단순하고 단순한 마음은 죽고서 더 단순해지고 왜 그랬을까 생각해봤자 답은 아무도 모르겠지 상처주지 않는 삶을 살아야겠다 매번 그런 생각을 해 모두 그러도록 하자 물론 나 자신에게도 말이야 또 받아랏 새해복!
상남자 그 자체의 삶을 살았던 물리학자, 빌헬름 뢴트겐
오늘의 주인공은 잘생긴 독일의 물리학자 빌헬름 콘라트 뢴트겐이야  다들 막연하게 X선 발견한 사람 정도로 알고있는데 이 사람이 얼마나 멋있는 상남자 였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어린 시절 뢴트겐은 위트레흐트 기술학교에서 퇴학을 당했어. 문제아였기 떄문에 퇴학을 당한것이 아니라 친구가 선생님을 우스꽝스럽게 그린 낙서를 보고 웃었는데 그 낙서를 누가 그렸는지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아서 였음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한번 퇴학을 당하면 독일과 네덜란드에 있는 다른 학교에도 들어갈 수 없었지만 뢴트겐은 끝까지 친구를 밀고하지 않았어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 대충 동문으로는 알버트 아인슈타인, 폰 노이만, 프리츠 하버, 등등이 있다.> 그래도 뢴트겐은 아주 비상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 고등학교 졸업장이 필요없는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에 당당히 합격하고 무사히 졸업까지 마치게 돼 그리고 졸업하고 6년만에 호켄하임대학 물리학 교수, 10년만에 기센대학 물리연구소 소장직을 얻었어 사소한일로 고등학교를 퇴학당하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웠던 초 천재 엘리트였던거지  <"크룩스관" 이라고 불리는 고전압의 진공관. 극초기의 입자가속기라고 생각하면 됨>  뢴트겐은 1895년 고전압의 진공관에서 나오는 음극선을 금속판에 쏘는 실험을 했는데 여기서 나오는 빛이 두꺼운 마분지를 뚫고 나오는것도 모자라 책상 위에 있는 감광지까지 감광시켜 버리는거야  전혀 예기치 못한 발견을 한것이지 하지만 이것도 마냥 운이 좋았다 라고 할 수는 없는게 실험에 사용했던 음극선관을 발명한 "윌리엄 크룩스"도, 동료 과학자였던 "레나르트"도 발광현상을 목격했지만 다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어가버렸지  동료 과학자였던 레나르트도 4년뒤에 노벨상을 수상하긴 했지만 X선 발견이라는 대업적을 놓친걸 아주 아쉬워 했다고 해 < 내가 직접 본 것만 믿는다고? 나는 내가 직접 본 것도 못 믿어 > 하지만 뢴트겐의 통찰력은 이 기현상을 그냥 놓치지 않았어 검은 마분지마저 뚫어버리는 미지의 광선이 두꺼운 책도 뚫을 수 있을까? 라는 궁금증이 생겼지 하지만 놀랍게도 이 미지의 광선은 책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손까지 투과해서 뼈 모양까지 고스란히 드러내 버린거야  나같으면 곧바로 뛰어나가서 온갖 설레발을 다 쳤겠지만 뢴트겐은 그러지 않았어.  오히려 조수들을 모두 내보내고 연구실에서 박혀서 뭔가 잘못된것이 아닌가, 내가 미쳐서 헛 걸 보는게 아닌가 라며 끊임없이 의심하고 고민을 했지 < 나는 내 죽음을 보았다! -안나 베르타 루드비히(뢴트겐 와이프) > 그리고 일주일 후 자기 부인을 조용히 연구실로 불러서 그 의문의 빛에 아내의 손을 찍어봤어  그랬더니 아내의 손 뼈와 반지가 선명하게 감광지에 비춰졌지 그제서야 뢴트겐은 자기가 틀린것이 아니였구나 하고 안심했다고 해  아내는 저게 죽음을 예고하는 해괴한 장치라고 다신 얼씬도 안했다고 했지만 말이야  < 프랑스 과학자 "르네 블랑들로" 설레발 장인 > 반면 프랑스에서는 독일의 뢴트겐이 X선이라는 대발견을 하자 빨리 우리도 뭔가 발견해야된다 라는 조급함이 생기고 X선 발견 2년 뒤, 프랑스 과학자 "르네 블랑들로"는 X선과는 다른 미지의 광선 N선을 발견했다고 주장해 그리고 수백편의 논문이 나왔는데 신기하게도 이게 프랑스 과학자들에게만 발견이 되는거야  < "로버트 W 우드" 최초의 가짜 UFO 사진도 이 양반이 찍었음 > < 오컬트, 유사과학 후두려 패면서 낭만을 없애는 아주 못된 사람임 > 그래서 미국의 과학자 "로버트 우드"는 특히 오컬트나 미신에 회의적이었는데 이런 회의론자의 시선에 N선도 예외일 수는 없었지  원래 장난기가 많아서 남들 골탕먹이는걸 좋아하던 우드는 블랑들로가 납종이가 N선을 차폐할 수 있다 라는 말을 듣고 자신이 납종이를 끼웠다 뺐다 하면서 N선이 검출되는지 블랑들로에게 확인해 보라고 했어 그랬더니 블랑들로는 납종이를 끼우니까 N선이 안보인다고 했고 빼니까 N선이 보인다고 말했지 하지만 그건 우드의 함정이였음  애초에 프리즘을 빼놨던 거임  납종이를 끼우던 말던 N선이 보이면 안되는것이였지  결국 블랑들로는 은퇴하고 쓸쓸한 말년을 보냈다고 해   < 사랑니로 고생한 개붕이들은 모두 뢴트겐에게 감사하도록 하자 >  아무튼 뢴트겐은 1901년 최초의 노벨상을 수상하고 X선 발견은 인류에게 엄청난 발전을 가져다 줬어 하지만 뢴트겐은 이런 대발견을 하고도 매우 겸손했는데 X선의 X도 엄청난 뜻이 있어서 그런게 아니고 자기도 뭔지 몰라서 X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해 오히려 자신의 이름으로 뢴트겐 선이라고 부르는걸 본인은 별로 선호하지 않았다고 하네 < 최초의 노벨 수상자 라기엔 너무나도 검소했던 그의 연구실 >  게다가 뢴트겐은 대중들이 자유롭게 X선을 이용한 장비들을 사용할 수 있도록 특허 등록도 포기했어  조너스 쇼크 박사가 소아마비 백신의 특허를 포기하면서 "태양에도 특허를 낼 건가요?" 라는 말로 유명한데 쇼크 박사가 태어나기도 전에 뢴트겐은 "이미 존재하는것을 발견했을뿐 X선은 인류의 것이다." 라고 말했었지 거기에 노벨상의 막대한 상금도 전부 다 대학에 기부했고 말년은 위대한 과학자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파산 직전의 생활을 하다 77세의 나이로 악성 종양으로 사망했다고 해 1994년에는 그를 기리는 마음으로 111번 원소를 "뢴트게늄"이라 명명했고 오늘날에도 X선 사진은 "뢴트겐 사진" 이라고 불리고 있어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현한 진정한 상남자의 삶 그 자체를 살았던 뢴트겐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하자  "나는 예언자가 아니다. 나는 예언을 반대하는 사람이다. 나는 연구를 위해 계속 노력할 뿐이며, 그 결과가 확인되면 가능한 빨리 공개할 뿐이다. 우리는 보고자 한다면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현재 시작을 했을 뿐이다. 계속 발전해 나갈 것이다” – 빌헬름 뢴트겐 (출처) 내 뺨을 타고 흐르는 이 뜨거운 것이 바로 눈물이란 말인가 아아 뢴트겐 오지게 멋있는 사람이여...!
'웃거나 울거나' 잃어버린 반려동물을 다시 찾은 순간들
반려인에게 하루가 1년 같이 느껴지는 날이 있습니다. 바로 사랑하는 반려동물을 잃어버린 날입니다. 지금도 기다림과 죄책감에 시달리는 반려인들이 계실 텐데요. 포기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잃어버린 반려견을 다시 찾은 사례'만을 모아보았습니다. 01. 나야, 문 열어 산책 중 끈이 풀려 반려견이 멀리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절망한 보호자는 2시간 동안 주변을 수색하다 눈물을 흘리며 집으로 돌아왔는데요. 어? 웬 익숙한 댕댕이 한 마리가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02. 우리 엄마 아세요? 반려견이 낯선 친구(골든 리트리버)를 집에 데려왔습니다. 보호자는 옆집 댕댕이인가 해서 옆집으로 향했는데요. 아니, 글쎄. 옆집 사람이 눈물을 펑펑 흘리더랍니다. 2주 전에 잃어버린 아이였거든요. 03. 사랑은 흔들리는 거야 잃어버린 반려견과 2주 만에 재회하는 여성의 순간 포착입니다. 사진만 봐도 행복함이 여기까지 느껴지는데요. 어찌나 반가운지 카메라가 여성의 손과 댕댕이의 꼬리의 초점을 잡는 데 실패했습니다. 04. 산불 속에 갇힌 아이 2017년 오전 10시 30분경, 캘리포니아에서 거대한 산불이 일어났습니다. 농장을 운영하던 남성은 수 마리에 달하는 반려견과 반려묘를 모두 트럭에 실었습니다. 목양견인 오딘만 빼고 말이죠. 오딘은 끝까지 염소 떼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남성은 오딘을 데려가기 위해 한참을 노력했으나 녀석은 끝내 거부했습니다. 삽시간에 번져오는 산불에 남성은 오딘을 두고 떠날 수밖에 없었는데요. 하루가 지난 후 돌아온 농장은 전부 잿더미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멀리서 염소 우는 소리가 들리더니, 오딘이 염소 떼를 몰고 나타났습니다. 그 와중에도 염소 떼를 불 반대편으로 몰며 끝까지 지켜낸 것입니다. 05. 장난전화 린다 씨는 2년 전 반려견 트윅스를 잃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페이스북을 통해 광고까지 집행했지만, 돌아온 것은 차에 치여 죽은 개의 싸늘한 시신 사진이었습니다. 그녀는 트윅스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머리에 흉터가 있느냐고 물었는데요. 안타깝게도, 죽은 개의 머리에는 그녀가 묘사한 흉터가 정확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그녀는 생각지도 못한 연락을 받았습니다. 처음엔 누군가의 장난전화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네? 정말요? 진짜요? 흑흑흑...' 06. 미안해, 정말 미안해 문을 열자마자 강아지가 바깥으로 뛰쳐나갔습니다. 문을 열었던 아들은 녀석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녀석은 보호소에서 잘 지내고 있었고, 엄마는 이 기쁜 소식을 알리기 위해 녀석을 학교로 데려갔습니다. 이날, 엄마는 아들이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았습니다. 07. 펑펑 우는 아저씨 이사를 앞둔 한 남성이 반려견을 잃어버렸습니다. 새집은 1,930km나 떨어져 있기에, 이사는 곧 이별을 의미했는데요. 이사를 미루면서까지 반려견을 찾아보았지만, 결국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6개월 후, 녀석을 찾았다는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반려견을 본 남성은 녀석을 버리고 갔다는 죄책감에 눈물이 터졌습니다. 08. 트럭보다 소중한 것 한 가족이 도심 한가운데에서 트럭을 도둑맞았습니다. 하지만 하필 트럭 안에는 소중한 반려견이 타고 있었는데요. 일주일 후, 경찰로부터 트럭을 찾았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다행히 트럭 안에는 녀석도 함께 있었습니다. ※ 차 안에는 잠깐이라도 개를 홀로 두면 안 돼요! 희망을 잃지 마세요 글 제임수 사진 Bored Panda ⓒ 꼬리스토리, 제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꼬리스토리가 들려주는 동물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