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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를 모르면 시끄럽게 내려야 한다

정오가 채 못 된 시간이었다
이른 점심을 위해 학교를 나와 마트를 찾아 걸었다
학교에서 왼쪽으로 꺾어 휘 데 뾔쁠리에를 따라 걸어 올라가다가
그만 짙은 녹색 천에 담긴 죽음을 보았다

너무나 자연스러워 한참을 뻔히 바라보았다
햇빛이 묻은 흰 주름을 따라 어림되는 덩치
아 그렇구나

더 이상 급할 일도 없어
쁘히베 데 뾔쁠리에 헝세 썽떼 병원 곁은 피가 흐르는 이에 내어주고 
조금 떨어진 곳이라도 뭐 어때 
수고를 감내하는 구조사의 배려 덕에
우리는 총총걸음 일상 위에서
그만 짙은 녹색 천에 담긴 이를 보았다

빛도 돌리지 않는 앰뷸런스에서
배송을 예약받은 택배처럼 차갑게 들것에 실려 천천히 길을 건너 가신 이
아무도 멈추지 않았다
아무도 멈추지 않게 좋은 타이밍에 매끄러운 바퀴로 길을 건넜다 병원에는 달려 나오는 이가 없었고 문은 자동으로 열리고 닫혔다
죽음이 지나가도 아무도 멈추지 않는다
아무도 멈추지 않았고
그만이 조용히 내렸다

꿀렁이지 않았다
보도를 오르고 내릴 때도
길을 건너 오른쪽으로 틀고
병원을 향해 왼쪽으로 틀 때도
붙들고 있는 것들이 더는 필요가 없겠지만
다행히 우리는 점심을 거르지 않았다

때를 모르면 시끄럽게 내려야 한다
지하철은 늘 만원이라
때를 놓치면 모두를 밀치고
파흐동 소리를 연발로 내지르고
때를 모르면 시끄럽게 내려야 한다
갑자기 툭 내리면
남은 이에게는 얼마간의 상처가 생긴다
가방에 쓸리고
옷이 벗겨진다
달려 나가는 파흐동 소리에
괜찮다는 말도 못 해준다

괜찮다는 말을 못 해줬다
입술을 뗄 만큼 아프지는 않아서
몸을 돌릴 만큼 가까이 있지도 않아서

매일 문은 열리고 
얼마 간의 소란이 있고
문은 닫힌다
조금 넉넉하다가
더 비좁아지기도 한다

글, 사진 레오

2019.12.05
시로 일기하기_오늘 날씨 흐림
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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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너무 좋네요. 잘 봤습니다.
@boredwhale 좋게 봐주셔서 정말 힘이 되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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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집을 계약했다.
프랑스의 가을은 하루 걸러 비가 온다.기온은 한국과 크게 차이가 없는 거 같은데 비가 자주 오고 바람이 많이 분다.역시 흐리고 바람이 많이 불던 저녁,차가 막혀 40분을 늦은 므슈와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집을 계약했다. 몇 번, 신중히 생각을 해보려다 집을 놓친 경험이 있어 이번에는 집을 보고 현관을 나오기가 무섭게 므슈에게 ‘이 집을 계약하고 싶어요’라고 메일을 보냈다. 불안함에 곧장 전화까지 걸어 서툰 영어로 나의 마음을 다시 한번 확인을 시켜줬다. “므슈 나 정말로 이 집을 계약하고 싶어.” “그래? 그럼 월요일 5시에 사무실로 와.” 사무실로 오라는 말이 나와 계약을 한다는 뜻인지 아니면 계약 전에 또 다른 절차가 있는 건지, 우리만 오는지 계약을 원하는 모든 사람이 오는 건지 확신할 수가 없어 주말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Ivry에 있는 므슈의 아정스에 15분 정도 일찍 도착했을 때, 므슈의 아정스 앞에는 이미 어떤 한국인 커플이 누군가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 그 순간 ‘아 오늘이 계약을 위한 날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싶어 가슴이 덜컹했다.얼핏 한국어로 ‘5시에 오기로 했어’하는 말이 들렸다. 그 순간 우리의 불안감은 점점 확신으로 바뀌어 갔고 해가 진 파리의 바람은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아정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꼭 붙어 서서 서로의 체온으로 칼 같은 바람을 견디며 우리는 ’적’들의 동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뭐지 오늘 계약하는 건 줄 알았는데 아닌가..” “아닐 거야. 기다려보자.” “우리 뒤에 본 사람들도 계약하고 싶어 한다고 들었는데 그 사람들인가?” “오늘이 소문으로만 듣던 주인과의 면접인 건가? 제길.”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자 우리는 더욱 긴장을 했고 ‘적’들은 산만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적’들이 아정스 옆 건물로 들어가더니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건물 안에서 편한 복장을 한 한국인 한 명이 ‘적’들을 뒤따라 내려오는 게 아닌가. “뭐지?” “세 명이면 우리 집 계약하러 온 건 아닌 거 같은데..” “아 혹시.. 계약할 때 프랑스어 잘하는 친구 데려가곤 하잖아. 그런 거 아니야?” “그런가? 아, 우리 또 졌다.” “근데 캐리어는 왜 가지고 왔지?” “오늘 바로 열쇠 받고 집 들어가는 걸로 착각한 거 아냐?” 불안함에 논리가 부족한 얘기들을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이어가며 추위를 견디고 있을 때 검은색 도요타 프리우스가 그들 앞으로 다가갔다. 그렇다. 그들은 우리의 적이 아니었다.우버 기사가 그들의 캐리어를 드렁크에 실을 동안 그들은 편한 복장을 한 한국인과 포옹을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편안하게 시트의 몸을 기댄 채 꼭 붙어 바람을 견디는 우리를 바라보며 그곳을 떠나갔다. 그래, 서울이면 하지 않을 걱정들이 아직은 많다. 집을 구하는 일이 소문만큼 막막하긴 했다. 파리는 생각보다는 작고 또 높은 건물들도 없어서 그런지 집을 구하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국처럼 이 집 저 집 보면서 며칠간 고민을 하고 결정할 수 있는 여유 따위는 없었다. 한 집은 우리가 한 시간 정도 더 고민을 했을 뿐이었는데 이미 다른 누군가와 계약이 됐다고 했다. 프랑스에 파리에 처음으로 오게 된 우리 같은 학생들과 워홀러들은 집을 구하는 데 있어 몇 가지 큰 제약이 있는데, 이건 어쩌면 비단 프랑스와 파리 만의 일은 아니고 우리나라에 처음 오게 된 외국인들도 겪는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집이 있고 출생신고가 되어 있고 나이가 차면 다 같이 주민등록증을 받고 또 은행 계좌까지도 함께 만든다. 그래서 성인이 된 후에 직접 집을 구할 때 필요한 것들 중에 못 갖춘 건 돈 밖에는 없지만 외국에서 처음으로 집을 구하려고 할땐 우선 모순적인 상황을 먼저 맞닥뜨리게 된다. 임차인을 구하는 대부분의 집주인들은 우선 임차인의 은행 정보를 요구하고 집세와 보증금도 수표로 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은행에서 계좌를 개설하기 위해서는 합법적인 거주에 관한 증명서가 꼭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처럼 아직 프랑스에서 긴 기간 동안 거주할 집이 없어서 거주증명을 하지 못했고 따라서 당연히 은행 계좌도 없는 처지들은 그 모든 것들을 이해해주는 아정스와 주인을 만나야만 한다. 안 그래도 적은 파리의 집들 중에서 우리가 다가설 수 있는 곳이 매우 많이 사라지는 것이다. 또한 프랑스에서는 임차인에 대한 보호장치가 많고 또 강력해서 집주인들이 임차인을 고를 때 매우 신중하게 여러가지를 고려한다. 한번 받은 임차인이 한두 달 임대료를 못 낸다고 해서 주인이 함부로 그들을 쫓아낼 수가 없고 특히 겨울에는 강제 퇴거 자체가 안된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주인들은 임대료를 성실하게 낼 수 있는 임차인을 우선적으로 찾으려고 하고 그러다 보니 꼭 요구하게 되는 게 재정보증이다. 그중에서도 이들이 가장 원하는 재정보증은 임대료의 3배 이상의 월수입을 가지는 프랑스인의 재정보증이다. 당연히 우리가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안 그래도 얼마 안 되는 우리가 다가갈 수 있는 집들 중에서 또 많은 수가 사라진다. 우리처럼 재정보증이 없고 아직 거주지도 없고 은행계좌가 없는 처지는 불법 수수료를 주고(월세 한 두 달 치) 한국인 부동산이나 중국인 부동산을 이용하거나 발로 뛰며 저 모든 상황을 일일이 설명하며 수많은 거절 끝에 이해를 해 줄 누군가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막막하고 불안하고 힘이 들 수밖에.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임대를 원하는 사람들이 거의 같은 시간에 모여 집을 구경한다. 같은 집을 두고 경쟁을 해야 하는 이들과 함께 집을 둘러보고 이것저것 질문을 하는 게 처음에는 여간 어색한 게 아니었다. 파리에서 처음으로 집을 보러 갔을 때 한국인으로 보이는 여성 한 분이 우리가 받은 주소의 건물 앞에 서 있었다. 서로 어색하게 서로를 탐색하며 아정스 므슈를 기다렸고 같이 나선형의 삐걱거리는 계단을 빙빙 돌아 5층의 집으로 올라갔다. 좁은 집 안에서 서로 '빠흐동'을 연발하면 화장실 봤다가 침실을 봤다가 퀴진을 봤다가 정신이 없었다. 집을 보러 오면 이것저것 물어봐야 할 것도 많고 확인해야 할 것도 많지만 우리는 아직 프랑스어를 잘하지 못하기에 멀뚱멀뚱 서로를 바라보다가 구석으로 자기를 옮겨 '어때?'하며 한국말을 속삭이고 할 뿐이었다. 하지만 함께 집을 보러 온 여성분은 프랑스에서 산 기간이 오래 되었는지 프랑스어가 매우 능통했고, 므슈의 곁에 붙어 수많은 질문을 하고 답을 들었다. 졌다. 이미 그 집은 그분에게 넘어간 것이다. 친절한 여성분이 '우리에게 뭐 물어볼 거 있으시면 물어봐 드릴게요.'라고 해주셨지만 의기소침한 우리는 별다른 질문을 떠올리지도 못했고 그분이 므슈대신 들려주는 기본적인 정보들만 듣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이 근처에 여기보다 조금 더 큰 아파트가 있다는데, 두 분 괜찮으시면 므슈가 그 집을 바로 보여주실 수 있대요." 그 친절한 통역이 마치 이 집은 이미 결정이 났으니 그 집이라도 보고 가는 게 좋지 않겠냐는 듯 들려 힘이 빠졌다. 떠밀리듯 다음 집을 보긴 하겠다고 하고 나선형 계단을 다시 돌아 집을 내려오자 건물의 입구에는 프랑스물이 조금도 안 묻은 동양인 네 다섯 명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화기애애하게 둘씩 대화를 나누던 그들이 누군가 미리 집을 보고 있을리라고는 상상을 못 했던 건지 므슈와 함께 내려오는 우리들을 보자 표정이 굳었다. 집 구하기가 쉽지 않구나. 몇 번의 실패 끝에 우리는 좀 더 귀찮은 고객이 되었고, 우리의 처지를 다 알고있는 이 므슈를 끝없이 괴롭혔다. 우리가 지내고 있는 숙소 근처에 매물이 있다며 괜찮으면 집을 보러 가겠냐는 메일이 왔다. '좋다. 오늘 당장 가볼 수 있냐'라고 묻자, '오늘은 안된다. 지금 살고 있는 사람도 한국인이니 직접 연락을 해 약속을 잡아서 집을 보고 연락을 하라.'고 했다. 므슈에게 이 답장을 받은 게 이곳 시간으로 저녁 10시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집 방문 일정을 최대한 빨리 잡고 집 계약 의사를 조금이라도 빨리 밝혀야 집을 계약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겠다 싶어 고민 끝에 지금 살고 있는 세입자 분에게 '늦은 시간 너무 죄송하다'며 문자를 드려 보았다. 다행히 세입자분들은 자신들도 처음 집을 구할 때 같은 마음이었다고 괜찮다며 그 늦은 시간에 흔쾌히 방문 시간을 잡아 주셨다. 집은 므슈가 보내준 사진보다 훨씬 우리의 맘에 들었다. 창이 큰 도로로 향해 나 있었지만 이중창을 닫으니 도로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빛도 잘 들고 깔끔하고 적당히 낡은 게 마음에 들었다. 마치 이미 이 집을 계약한 사람처럼 쓰시던 가구까지 인계받았다.  "이 므슈는 보통 큰 문제가 없으면 선착순으로 계약을 하더라고요." 중요한 팁을 받은 우리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달리듯이 현관을 나와 부리나케 므슈에게 연락을 했다. “므슈 나 정말로 이 집을 계약하고 싶어.” “그래? 그럼 월요일 5시에 사무실로 와.” 아직 어떠한 확신도 할 수 없었지만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우리는 학원 선생님이 예쁘다고 추천해주신 오페라 가르니에를 보러 가기로 했다. 오페라 역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오랜만에 열린 파리의 가을 하늘을 만끽하고 있었다. 이미 늦은 오후라 오페라 내부는 다음에 다시 와서 보기로 하고 우리는 파리의 아이덴디티가 물씬 풍기는 거리를 여행자처럼 걸었다. 멀리 루브르가 보이는 온갖 이국 언어들이 난무하는 길을 어깨를 돌려 길을 내어주며 걸었다. 백년은 더 된 듯한 건물들 아래에 나란히 자리 잡은 키가 크고 멋진 흑인 가드들이 문을 열고 닫아주는 명품샵들을 크게 돌아, 다시 우리의 (적어도) 일 년을 품을 곳으로 어깨를 붙이고 덜컹거리며 돌아왔다. W, M 레오 2019.10.29 파리일기_두려운 날이 우습게 지나갔다
생트 샤펠,
좁은 나선형 계단을 앞사람의 등만 보며 올랐다. 어디에선가에서 연이어 터지는 희미한 탄성이 우리의 귀에 조금씩 더 명확하게 들려오기 시작하자 이름 모를 우리 앞의 등들의 걸음이 조금씩 빨라졌고 우리는 이 짧은 고행이 곧 끝남을 알 수 있었다. “와아.”  우리의 뒤를 이어 누군가가 올라오고 있다는 사실도 깜빡 잊은 채 우리는 그만 그 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다. 우리에게 쏟아져 내려오는 것은 빛이 아니었다. 좁은 어깨를 하고 걷던 봄날, 우리의 머리를 뒤덮으며 내리던 시린 붉은 비, 그 여린 듯 진했던 벚꽃비처럼 그것은 한 뭉텅이로 우리의 추억 안에 지울 수 없는 색을 밀어 넣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이 비도 좀처럼 무뎌지지 않을 거라는 것을.  한국에서 받아온 기본 서류들을 번역하고 공증을 받기 위해 트램을 타고 벼룩시장이 유명한 Vanve까지 갔다. 그리곤 다시 지하철 13호선을 타고 주 프랑스 한국대사관이 있는 Varenne역으로 갔다. Varenne역은 근처에 로댕 미술관이 있는 곳으로 지하철 출구로 나와 대사관들이 모인 거리로 걸어가다 보면 왼편으로 육군박물관이 보이고 그 앞 광장 너머로 에펠탑이 보이는 마치 서울의 광화문과 같은 느낌의 지역이다. 육군박물관 뒤편으로 황금색 돔이 유난히 눈에 띄는데 그곳이 바로 프랑스혁명의 영웅이자 동시에 역적인 애증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그의 일가가 묻혀 있는 Tombeau de Napoléon이다. 공증이 완료된 서류를 다음날 오전 11시 이후에 찾으러 오라고 해서, 다음날 오전 수업을 마치자마자 우리는 다시 트램에 올랐다. 트램은 전 세계 각국에서 지원을 받아 만든 그래서 각국의 이름을 딴 기숙사들이 모여 있는 씨떼 유니벡시떼를 지난다. 건물들은 조금 낡았지만 가격이 싸서 인기가 많고 따라서 입주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인 곳이다. 하루를 다녀왔다고 익숙해진 풍경들을 지나 Porte Vanve역에서 메트로 13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기다리는데 우리의 근처에 서있는 누군가의 인상이 문득 나의 눈을 잡아맸다. 오랜 시간 연기를 하고 또 영화를 만들다 보니 사람들을 관찰하고 혼자서 그들의 성격이나 처한 상황 그리고 감정이나 목적까지도 추측 추리 상상하는 버릇이 몸에 깊게 베여 있다. 그래서 사람들을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많은 것들을 지레짐작하게 된다. 그것이 어떤 편견이 되진 않을까 싶어 절로 완료되는 짐작들을 애써 지워 버리려고 애먼 노력을 또 하곤 하는데 이곳은 낯선 땅이라 내 생각들이 편견일 확률 또한 높아서 여태껏 한국에서 보다 더욱 조심을 해왔다. 프랑스의 지하철에 대한 여러 글들을 많이 봤고, 소매치기와 거동이 이상한 사람들을 마주친 여러 사람들의 경험담도 또 그때 그들의 대처들도 지나치게 보고 이곳으로 왔지만, 지난 한 달간 딱히 위험한 상황을 만난 적은 없었다. 프랑스에서 유학하는 사람들이 모여 활동하는 인터넷 카페에서 아무런 사건 없이 생활을 하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방심했을 때 소매치기를 당하고 말았다는 글을 읽고는, 반은 장난으로 ‘방심하다 당한다’ 며 서로에게 잦은 주의를 주곤 했지만, 시간의 힘이 참 무서워 요즘은 긴장을 거의 안 한 채 지내고 있던 참이었다.  13호선은 우리가 주로 타고 다니는 7호선과는 다르게 의자가 한편으로는 한 열이 나있고 다른 한편으로 두 열이 나있는 비대칭 구조이다. 다른 호선의 지하철들처럼 정방향의 의자와 역방향의 의자가 서로 마주 보게 되어 있는 구조는 마찬가지였다. 나와 엠마는 두 열의 의자가 나있는 쪽에 정방향의 의자에 나란히 앉았고, 그 남자는 다른 쪽 한열의 역방향 의자에 앉아 있었다. 문득 들었던 부정적인 인상을 지워내고는 핸드폰으로 뭔가를 검색을 하고 있을 때, 어떠한 짐작되는 이유도 없이 그 남자가 불쑥 나의 앞자리로 자리를 옮겨 왔다. 다른 이곳의 사람들과 달리 나를 빤히 바라보는 모습에 혹 소매치기를 하려는 건 아닐까 싶어 하던 검색을 멈추고 핸드폰을 주머니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런데 이 남자의 목적은 우리의 물건이 아닌 건지 우리를 방심하게 만들려는 어떠한 수작도 없이 노골적으로 우리를 노려보는 게 아닌가. 우리는 괜한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이 남자는 계속 우리의 돌린 옆얼굴을 노려보다가 심지어 창문으로 고개를 돌려 창문에 비친 우리를 눈을 찾아내 노려보기 시작했다. 순간 확실해지는 이상함에 나는 등이 굳었다. 평일 오전이라 객차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창문에 비친 남자를 주의 깊게 견제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했다. 남자는 왠지 모를 흥분까지 느끼며 우리의 돌린 얼굴과 창문에 비친 우리의 이미지를 번갈아 노려보는 일을 지속적으로 반복했고 급기야 몸을 조금씩 떨기까지 했다. 연기를 통해 익힌 경험을 비추어 보면 일반적으로는 감정이 신체의 징후를 만들어내지만 신체의 징후 또한 숨은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에 나는 더욱 긴장을 했다. 남자의 신체 징후는 분명 이 감정이 그의 내면 안에 가만히 갇혀 있을 만한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남자의 감정과 신체가 서로를 계속 불러내며 확장을 해가고 있을 때 열차는 다행히 이름 모를 정거장에 멈춰 섰다. 나는 마치 이곳이 Varenne역인 듯, 당연한 듯 엠마를 데리고 열차에서 내렸다. 엠마도 긴장을 많이 했는지 놀란 얼굴을 쉽게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남자가 우리를 따라 내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어 끝까지 그를 살폈다. 다행히 그 남자는 열차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열차가 정거장을 떠날 때까지 남자는 우리를 노려 보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굳었던 식은땀이 등줄기를 따라 서서히 녹아내렸다. 그리고 그날 밤 우리는 잠자리를 설쳤다. 결국 다음날, 여러 번 울린 알람에도 우리는 침대 위를 떠나지 못했다. 오전 수업이 시작하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우리는 겨우 몸을 일으켰다. 뒤늦게 발을 돌려 올린 창문 밖에서 위로 같은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햇빛을 받으며 숨을 좀 녹인 후 우리는 하나의 사건을 렌즈로 파리를 바라보진 말자고 다짐을 했다.  기왕 학교를 못 간 김에 우리는 파리의 동쪽 크레테유라는 곳에 위치한 우리 지역 CAF 아정스에 서류를 내러 가기로 했다. CAF는 주택보조금을 산정, 집행하는 기관으로 인터넷으로 가입, 신청을 한 후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해서 우편을 통하거나 직접 제출을 하면 검토 후 각자에 맞는 보조금을 산정해준다. 아날로그의 나라 프랑스도 많은 변화가 있어 CAF도 모든 서류를 스캔한 뒤 온라인상으로도 제출할 수 있게 되었다지만 검토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기에 가장 빠르게 처리된다는 직접 제출을 하러 간 것이다. 파리가 아닌 외곽 지역은 위험한 곳도 많다고 들었기에 우리는 어제의 기억까지 더불어 떠올리며 긴장을 했다. CAF 아정스는 우리 집에서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간 후 조금 걸으면 되는 곳에 있었다. 버스를 타고 외곽지역을 둘러가는 동안 보는 풍경은 파리의 중심지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공항을 오가는 도로에서처럼 거리에는 그래피티가 가득했고 현대식으로 지어진 커다란 아파트 단지도 높은 굴뚝이 있는 발전소나 공장 같아 보이는 곳도 자주 눈에 띄었다. 넓어진 센느강의 모습도 고풍스러운 건물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던 파리에서의 모습이 아니라 여느 곳에 흐르는 고요한 강 그 따름이었다. 강변은 온통 풀밭이었고 강 위에는 큰 새들이 앉아 먹이를 찾고 있었다. 낯선 거리의 모습에 경계와 신기함이 반쯤 섞인 시선으로 두리번거리며 CAF 아정스에 도착을 하자 먼저 건물 입구에 긴 줄을 선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파리의 주거비용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벅찬 짐이 되는지 아침부터 먼 곳까지 와 긴 줄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순서를 기다려 아정스의 직원에게 검토를 받고 제출하는 것이 제일 좋다는 글을 인터넷에서 읽었지만 건물 밖에 장치해둔 CAF전용 우체통에 집어넣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는 글도 많아서 우리는 긴 줄에 두 명을 더 보태는 일을 포기하고 그냥 우체통에 서류를 집어넣고 가기로 했다. 우리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우체통에 서류를 집어넣는 모습이 보여 우리는 조금이나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서류가 잘 검토되길 바라며 우체통에 서류를 집어넣고 기념사진을 찍는데 아정스를 들렸다가 나온 한 흑인 아저씨가 우리를 응원을 해줬다. 그리고 홀로 줄을 서고 있던 한 한국 청년이 그 모습을 보며 우리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혹시  한국이신가요? 서류 그냥 여기에 넣고 가면 되는 거예요?” 서류를 봉투에다 넣어서 밀봉을 한 후 우체통에 넣어야 하는데 그 청년은 그런 사항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정스 안에 가면 봉투를 준다는 글을 본 것 같아 청년에게 알려주었다. 청년은 고맙다며 아정스 안으로 가고 우리는 남은 오후를 소중히 보내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먼저 파리의 동쪽에 있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 들려보기로 했다. 내가 무척 가보고 싶어 하던 곳이었는데 영화의 성지에는 역시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이 좋을 거 같아서 프랑스어가 조금 더 들릴 때까지 미뤄둬야지 했었다. 다만 오늘은 파리의 동쪽으로 나온 김에 인상적이라는 건물의 모습도 봐볼 겸, 영화 박물관이라도 봐보고 갈까 해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있는 Bercy역으로 갔다.  역에서 나와 조용하고 깨끗한 거리를 조금 걸으니 사진에서 봐왔던 역시나 다양한 곡선들이 인상적인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눈에 보였다. 이곳은 빌바오에 있는 구겐하임 미술관을 지은 프랭크 게리의 작품으로 원래는 미국 문화원이었던 곳이다. 2005년, 에펠탑을 마주 보고 있어 관광객들에게 유명한 샤이요 궁 안에 있던 옛 시네마테크를 옭겨오기 위해 전면적인 리모델링을 했다고 한다. 영화 몽상가들에 등장하던 68 혁명의 주무대였던 프랑스 영화의 최전성기를 지탱하던 ‘그 시네마테크’ 는 이 건물이 아니지만 시네마테크는 위치나 외형보다는 내용이 더 핵심이기에 Cinematheque Fracaise라는 글자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아이처럼 들떴다. 시네마테크 앞에는 조용하고 예쁜 공원이 있었고 그 안에는 작은 회전목마가 있어 이질적인 건물과 함께 영화와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영화를 보지 않으면 의미가 없을 거 같아 예고편처럼 사진 몇 장만 찍고서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Bercy는 계획도시처럼 긴 공원을 따라 길고 낮은 아파트가 쭉 이어진 곳이었다. 공원이 끝나는 지점에 Bercy village라는 예쁜 쇼핑몰이 있었다. 이곳은 한때 세계 최대의 와인시장이 있었던 곳으로 건물의 외관을 최대한 유지한 채 내부만 리모델링을 해서 지금의 쇼핑몰로 꾸민 곳이다. 당시 와인을 운송하던 기찻길도 그대로 남아 있어 마치 파리가 아닌 지방 소도시의 번화가를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규모는 작지만 테라스 자리에 앉아 햇볕을 쬐기에는 좋은 곳 같았다. 햇볕은 좋았지만 날씨는 꽤 차가웠는데 테라스 자리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우리도 이곳에서 점심을 먹으며 남은 낮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고민해 보기로 했다. 
 엠마가 마침 지하철을 타면 한번 만에 가는 곳에 Châtelet역이 있다며 Sainte Chapelle에 가보자고 했다. 처음 어학교재를 사러 시떼섬에 갔을 땐 긴장된 걸음으로 그 앞을 지나치기만 했던 곳이다. “Oui.” Sainte Chapelle은 고등법원 건물과 붙어 있어 파리의 관광지 중에서도 최고 수준의 보안 검사를 하고 있었다. 흡사 공항에서와 같이 짐 엑스레이 감사와 금속탐지 검사도 거친 후 부속 건물의 뒷문으로 나가자 센느 강 어느 다리에서도 보이던 날카로운 첨탑이 가고일 꼬리를 꽉 쥔 채 우뚝 서 있었다. 검은 괴수들이 사방으로 울부짖고 있는 검은 첨탑 너머의 하늘은 티 없이 파랬다. 그래 신은 이곳에는 없는 거지. Sainte Chapelle은 성루이라고 불리는 루이 9세가 동로마제국의 황제에게 금전적 지원의 형식으로 사들인 예수의 가시 면류관과 후일 모은 예수의 못 박힌 십자가 조각 등의 성물을 보관하기 위해 지은 왕실 전용 예배당이자 보물창고이다. 티켓을 끊고 듣어간 곳은 성당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낮은 높이에 기둥이 유난히 많은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하는 단출한 홀이었다. 심지어 그곳 안에 기념품을 파는 곳과 안내 전단을 배포하는 곳까지 같이 자리하고 있어 더욱 이곳이 사람들이 그렇게나 찾을 만한 곳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알고 보니 그곳은 궁중 관리들과 성당을 관리하는 이들을 위한 예배공간이고 왕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준비된 곳은 이 낮은 홀이 위층 공간이었다. 이곳이 보통의 성당들 보다 낮은 이유도 기둥이 많은 이유도 위층을 위한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다. 파리에 온 후 수없이 오른 나선형 계단을 앞사람의 등만 보며 올랐다. 위쪽 어딘가에서 사람들의 탄성이 연이어 들려왔다. 아래층의 모습에 실망해서인지 별다른 기대는 가지지 않고 허벅지를 손으로 도우며 계단을 오르는 일에만 집중을 하다가 그만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뱉고 말았다. “와아.” 그곳은 그 안 든 것이 어떠한 모습의 어떤 마음의 사람이든 그 안에 든 것이 어떤 피비린내가 나는 프로필을 지닌 물건이든 아이들의 보석함의 고증 없는 ‘보석’ 들처럼, 모두를 모든 것을 그저 순수히 빛나게만 만들어버리는 섬뜩한 마법의 공간이었다. 15미터의 거대한 스테인글라스가 최소한의 테두리만 두른 채 공간 안으로 피할 수 없는 색깔을 쏟아내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고개를 들고 오래도록 바라보게 하는 것들, 가령 하늘이나 별 같은 것들. 내가 한다던 비워내고 납득하는 그런 아름다움 말고 집요하게 강요하는 채우고 또 채워서 지나침을 훨씬 더 지나쳐 내가 모르는 곳으로 그곳으로 넘어가 버린 아름다움을 보면서 나는 내가 하는 예술이 미리 지고서 핑계만 오래 고민하고 있던 건 아닌지 조금 씁쓸했다. 이 곳은 온통 빼곡하다. 빈 손으로 꾸밈도 없이 걷기 위해 오랜 시간 나를 붙잡고 얘기를 해 왔는데 벌칙처럼 온통 내가 못하는 그저 아이처럼 넋 놓고 바라보고 있어야 할 것이 가득한 이 곳으로 불쑥 와버렸다. 우습다. 사람은 그렇게 멋대로 걸어간다. 자기 물건이 가장 지겨워서, 자신과 다른 이의 품으로 기꺼이 간다. 그렇게 걷다 보면 어느새 낯설어진 나를 나는 또 가까스로 소개를 해야 하겠지. 내가 마치 이런 사람이었던 것처럼.
 돈도 잘 내고 길도 잘 찾고 하지만 내일에 해야 말만은 여전히 모른다. Oui ou Non 으로 대답하는 내 시꺼먼 마음에 뭐가 걸쭉하게 녹아 있는지 꺼내지 못해서 모르겠다. 가끔은 주말에 무엇을 또 보러 가기가 조금 겁날 때가 있다. 보고 좋아하는 거 말고 내가 해서 보여주고 싶어 그런 거겠지. 안다. 그 마음.  좋은 것을 보고 나면 우린 더 많이 지쳐 파리 지하철의 악명도 다 잊고서 머리를 붙여가며 졸기까지 한다. 안다. 당신의 그 마음도. 글, 영상 레오 촬영 레오, 엠마 2019.10.29 파리일기_두려운 날들이 우습게 지나갔다
옛 선비들의 배움터, 광양향교
#가을에가볼만한곳 파란 하늘과 붉은 향교의 꿀조합, 옛 선비들의 배움터 광양향교 2021.09.23.(목) 탐방 광양향교 光陽鄕校 전라남도 광양시 광양읍 우산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향교.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11호이다. 광양향교 지정종목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지정번호 제111호 지정일 1985년 2월 25일 소재지 전남 광양시 광양읍 우산리 509번지 시대 조선시대 종 류/분류 향교 1985년 2월 25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11호로 지정되었다. 향교재단이 소유하고 있다. 1397년(태조 6)에 창건한 것으로 전해져 있으나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그뒤 임진왜란 때 건물이 모두 소실되었으나, 1613년(광해군 5) 당시 현감인 남내원(南來爰)이 대성전을 중건하면서 연차적으로 여러 건물을 다시 만들었고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다시 고쳤다. 풍화루, 동재·서재, 명륜당, 상제, 직사제, 대성전, 내삼문, 제기고, 홍살문, 하마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반적인 향교는 교당부와 문묘부가 전후관계로 축배치를 이루고 있으나, 광양향교는 대성전의 문묘부를 명륜당 왼쪽에 두고 있는 좌우배치의 경사지건축이다. 다만 명륜당과 외삼문의 기능도 갖고 있는 풍화루는 동재·서재의 중앙을 지나는 남동향의 축배치를 이루고 있다. 그밖의 건물배치를 보면 동재·서재 외에도 명륜당 왼쪽에 상제가 있는 것은 다른 향교와는 다른 점이다. 풍화루 앞에는 하마비와 홍살문이 있으며 명륜당 왼쪽에는 수령이 500년 정도 된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전후퇴의 1고주 반 9량집이다. 자연석의 덤벙주초석에 민흘림이 있는 원기둥을 세웠다. 공포는 주심도리의 밑에 공안이 없는 두공담차가 있고, 외목도리의 밑에는 행공담차를 익공 상부에 소루를 놓아 받치고 있는 주심포계의 외 1출목 이익공양식이다. 특이하게 도리와 장혀를 받치고 있는 초공이 계두로 되어 있다. 지붕은 겹처마로 맞배지붕이며 풍판이 있다. 동재는 정면 4칸, 측면 1칸으로, 전퇴 5량집의 무익공식 건물이다. 오른쪽 툇간은 회란대가 있는 난간으로 되어 있으며, 지붕은 맞배지붕에 풍판이 있다. 서재는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3량집의 맞배지붕이다. 출입문의 방향이 동재와 마주보지 않고 직사제 쪽으로 나 있다. 풍화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형식 건물로, 초익공양식이며 계자 난간으로 되어 있다. #광양향교 #유형문화재
저게 에펠이야?
11월 11일은 1차 세계 대전이 종전한 날이어서 프랑스에서는 휴일이다. 올해는 그날이 마침 월요일이어서 토일월 3일간의 연휴가 생겼다. 지난주 서울에 다녀오고 또 바로 이사를 하다가 근육을 다쳐서 학교를 오갈 때 어려움이 많았는데 몸과 마음 모두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다행이었다. 토요일 정오에는 계좌 개설을 위한 헝데뷰가 있어 Place D’Italie역 근처의 LCL로 갔다. 담당 직원과 안 되는 영어로 소통을 하려니 등에서 식은땀이 다 났다. 이쪽도 저쪽도 영어가 완벽하지 않으니까 직원도 뭔가를 설명하려다 포기하는 듯하고 나도 뭔가 확실하게 들은 게 없어서 찜찜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프랑스 은행은 한국과 다르게 계좌 유지비가 있고, 카드를 분실했을 때를 대비해서 드는 의무적인(하지만 확실하지는 않는) 보험이 있다. LCL은 학생의 경우 계좌 유지비가 거의 무료와 마친가지라서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은데 직원이 나는 나이가 많아서 해당이 안된다고 했다.(그런데 결국 할인이 됐다.) 원래 엠마와 나 모두 선임급의 직원에게 헝데뷰를 잡았었는데 한 번에 한 사람씩 밖에 상담이 안된다 하여 나는 다른 신참 직원과 상담을 하게 되었다. 신참 직원은 머리와 생김새가 앙투완 그리즈만을 꼭 닮았는데 뭔가를 열심히 하긴 하고 또 꽤나 여유가 있는 척을 했지만 내 눈에 보기에도 많이 서툴렀고 계산이 자꾸 바뀌고 말도 자주 바뀌었다. 몇 번의 한숨, 포기, 번역기를 통한 번거로운 소통을 겪으며 나는 얼른 프랑스어를 잘해야겠다 하는 마음이 굴뚝 넘은 연기만큼 높아졌다. 결국 그 직원은 선임 직원에게 전화로 한소리를 듣고 또 한참을 헤매다가 수요일에 다시 오라는 말을 했는데.. 상담을 끝내고 받은 서류는 엠마와 틀린 게 없었다. 수요일 오라고 한 것도 맞긴 한 건지.. 찜찜한 마음을 안고 지하철을 탔다. 연휴의 시작을 앞두고 엠마가 물었다. “파리에서 제일 가보고 싶었던 곳이 어디야? 거길 가보자.”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을 했다. Place D’Italie역에서 6호선을 타고 서쪽을 향해 갔다. 6호선은 우리가 늘 타는 7호선과는 다르게 문에 있는 손잡이를 위쪽으로 돌려야 문이 열린다. 연휴의 시작이라 그런지 나들이를 가는 연인과 친구들 그리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젊은 부부들이 가득했다. 출근 시간과 다름없이 혼잡한 지하철이 Bir-Hakeim역에 도착을 하자 차 안의 승객 거의 대부분이 내렸다. 당연히 우리도 내렸다. 출구 번호를 찾을 필요도 없었다. 다들 La Tour Eiffel을 보러 온 거니까. 지하철 출구를 나와 센느 강변을 따라 오른쪽으로 발을 돌리자 거대한 철골구조가 두 눈에 들어왔다. “저게 에펠이야?” 가까이에서 본 에펠은 아름답기 보다는 조금 무서웠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가지기 위해서는 상징이 필요하니까 우리가 가지는 것은 결국 상징과 같은 그림들 사진들 그리고 몇 마디의 말이나 글뿐이니까. 상징이 상징다워질 수 있게 우리는 에펠을 지나 조금 멀리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센느강을 따라 예쁘다고 소문이 난 알렉상드르 3세 다리까지 산책을 하기로 했다. 한주 내내 흐리고 비가 오던 파리는 그날만큼은 맑았고 노을이 내려앉은 센느강은 서쪽 끝이 온통 노랗게 불타올라 강이 아니라 커다란 태양이 내뿜는 하나 은색 빛줄기인 것만 같았다. 군데군데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요리조리 피해 가며 동쪽으로 조금 걸어 나가자 거대하고 검고 무섭기만 하던 에펠이 점점 친숙한 모양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한 손에 잡힐 듯 작아진 에펠은 노랗고 푸른 하늘을 걸치고 ‘이젠 어때?’ 말하는 듯했고, 우리는 몇 걸음마다 멈춰 서며 상징을 가지려 애를 썼다. 센느강을 따라 걷고 강변에 앉아 싸온 커피와 크로와상을 먹으면서 다리와 탑 그 자체만이 아닌 그날의 다리와 탑을 즐길 수 있다는 것에 무척 행복했다. 돌아서 가고 돌아가고 다시 또 올 수 있다는 것. 문득 엠마와 처음으로 라오스 여행을 갔을 때, 함께 차를 탄 독일인이 우리의 10일간의 여행 일정을 듣고 매우 놀라워하던 생각이 났다. 어디를 가는 것, 무언가를 가지는 것만 아닌 어디에선가 지내고 무언가를 쓰는 것 그래서 삶과 삶 아닌 것 둘 사이에서 오고 가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가볍게 살아가는 것. 그래 그것이 우선 내가 바란 작은 욕심이었지. 어느새 파리를 외쳐대는 풍경들보다 집에 가기 싫다고 부모의 반대로 달려대는 붉은색 패닝의 꼬마 아이, 파리 안의 (파리가 아니라 그 어디에라도 안의) 사람들에게로 시선이 옮겨갔다. 버리고 온 것도 포기하고 온 것도 아니구나. 어느 곳에서도 피할 수 없는 질문이고 끊을 수 없는 관심이구나. “엠마, 나 잘해볼게.” ‘좋은 날이었다’ 라고 서로 말해주었고, ‘좋은 날이었다’ 고 쓰고 싶었다. 글, 영상 레오 2019.11.14 파리일기_두려운 날들이 우습게 지나갔다
연애 하면 행복해야 하는데, 오히려 정신병 걸릴 것 같은 이유?
연애를 한다면 마음이 들떠 행복을 느껴야 하는 것이 순리일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연애를 하면 정서 불안에 빠지는 여성도 있답니다. 해외의 한 여성 미디어에서는 '연애를 하면 정신이 불안정해 지기 쉬운 여성의 특징'에 대해 소개했는데요. 연애 할 때 당신의 심리 상태는 과연 어떤가요? 특징 1. 자신에게 자신이 없다 가장 큰 특징은 '자신감이 없다'는 것입니다. 연애에 의한 정서 불안의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다는데요. 가장 흔한 증상이 "그 가 내가 아니라 다른 여자를 좋아하면 어떻게 하지?" 라며 불안해 하는 것입니다. 혹시 버려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죠. 이러한 불안감은 자신감이 있는 사람에게는 나타나지 않는답니다. 특징 2. 꿈이나 목표가 없다 두 번째 특징은 꿈과 목표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삶의 보람도 없다는 뜻과 같습니다. 삶의 보람이 없기 때문에 연애가 삶의 전부가 되는 것이죠. 따라서 상대의 말과 행동에 좌지우지 되는 것입니다. 특징 3. 마음과 머리가 한가하다 꿈과 목표가 없다면 마음과 머리가 한가 할 수밖에 없습니다. 취미에 충실하거나 바쁜 일상을 보낸다면? 연애 이외에도 생각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자신의 상태가 연애에 몰입하는 힘이 저절로 줄어든다는 것이죠. 반대로, 시간에 여유가 있다면 연애에 있어 무의미한 것도 과도하게 생각하게 된답니다. 매우 바쁜 사람의 경우 정서 불안이 있을 여유가 없답니다. 특징 4. 소유욕이 강하다 자신이 있는 여성은 다른 사람을 독점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독점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사랑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자신이 없는 여성은 독점욕이 강하답니다. 그가 떨어져 나가지 않을까 하는 불안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징 5. 현재 보다는 과거나 미래를 걱정한다 정서 불안이 되는 큰 원인 중 하나는 과거나 미래를 걱정하는 것입니다. 현재 라는 순간에 눈을 돌리지 못하는 것이죠. 연인과 만나지 않을 때 "지금 뭘 하고 있을까? 혹시 바람을 피우고 있진 않을까?" 걱정하고 있는 것이죠.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집중 하고 있을 경우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답니다. 또한 현재에 집중 해야만 연인과 만날 때, 상대를 괴롭히지 않고 함께하는 시간을 최대한 즐길 수 있답니다. #연애 #정서불안
주남저수지에는 벌써 가을이🌾
추석 연휴를 맞아 본가에 왔더니 해질녘이 되니까 역시나 주남저수지가 부르더라고요. 일몰 시간 맞추려고 잠시 머물렀던 카페에서 커피를 쏟는 바람에 얼룩덜룩한 옷으로 뚤레뚤레 저수지로 향합니다 걷다가 만난 고양이씨. 사진을 찍으려니 나와서 도도하게 걷네요. 사진 찍히는 게 싫은 거냥. 하고 새로 자리잡은 고양이씨의 정면을 다시 잡기 위해 추월하고 뒤로 돌았더니 오 이왕 찍을 거면 더 예쁜 배경으로 찍으라는 고양이님의 혜안 덕분에 고양이님 인생샷 건지셨습니다 앞은 파랗고 뒤는 벌건 주남저수지의 저녁 언제 봐도 카메라를 들이대게 되는 적란운도 있고 그 아래는 멋모르고 잡혀서는 사람들을 태운 마차를 털레털레 끄는 당나구가 있죠. 진짜 왜 이곳에 당나구를 두고 고생시키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 인간이 미안해… 다시 고개를 들면 이렇게 청명한 하늘과 꽃을 피우려고 준비중인 갈대들 추석을 향해 살쪄가고 있는 달 위로 비행기도 지나가구 안 보이신다고요? 왼쪽 위에 조그맣게 있는뎅 노을을 찍고보니 잠자리가 주인공이네요 곱게도 앉아있네 코스모스도 한창이고 적란운은 여기까지 흘러왔고 물들어가는 하늘을 피해 철새는 바삐 날고 덜 살찐 달 아래로도 하늘이 발갛게 물들었네요 세 갈래로 뿜어내는 일!몰!파!워! 산이 겹쳐 만들어내는 그림도 너무 아름답죠 새가 날아든다 온갖 철새가 날아든다 붉은 빛이 점점 약해지고 해가 완전 내려앉아 버릴 기세라 후다닥 집으로 향합니다 나도 새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