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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오는 공포썰) 싸패 택시강도 만난 썰

어제 싸패 이야기를 적고 나니까 또 비슷한 얘기는 없을까 찾아보다가 찾은 이야기야. 특히나 겨울은 춥고, 일찍 어두워 지고, 연말은 약속도 많으니까 조심하자는 의미에서 가져온 글. 같이 읽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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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하게 음슴체로 하겠음.

때는 2007년 겨울이였음. 내가 그당시 알바를 하고있었는데..(등록금에 보탬이 되고자..) 마침 그날이 월급날이였음. 사장님은 꼭 봉투에 만원짜리로 빠방하게 월급을 주는것을 좋아라하시는 분이셨음. 이래야 돈번 느낌이 난다나.. 항상 계좌이체는 절대 안해주시고, 수표도 절대 절대 안주시는 분이셨음.

나는 평일,주간 할거없이. 호프집에서 저녁 5시부터 새벽 3시까지 홀서빙을 정신없이 해서 그 당시 한달에 130만원을 받았음.

집까지는 호프집에서 차로 약 30분 소요됨.(새벽에 차 없을때) 그리고 지역이 달라서 택시를 타면 추가운임도 붙음.(가게는 부천, 집은 인천)

일이 새벽 3시에 끝나면 사장님은 꼭 직원들에게 꼭 택시타고 가라고 택시비를 만원씩 주셨음. 남자 직원들은 직접 태워다 주시기도 하고 그랬음./ 그러고 보니 그 사장님 참 훈내나던 분임. 얼굴도 잘생기고;; 하튼.

그렇지만 나는 택시비라도 아낄려고 꼭 피시방에서 두시간씩 놀다가 버스 첫차로 집에 가곤 했었음.

토요일.
그날따라 손님이 너무너무너무 많아서 힘들었음. 사장님이 수고했다고 월급을 주셨음. 같이 알바하는 애들이 한턱 쏘라고~ 노래방 가자고,호프집 가자고 했지만 너무 피곤하여 내일 쏘겠다고 하고 그냥 퇴근함. (애들별로 첫출근한 날이 달라서 월급날이 다 달랐음)

그리고 무슨생각인지 그날은 택시를 탔음. 4시까지라도 기다렸다가 할증 풀리면 탈까..하다가 몸이 너무 피곤해서 그냥 잡아 탔음. 그당시 한창 택시강도로 뒤숭숭 할때였음. 청주에서 막 부녀자 살인 사건 (택시강도) 일어나고;;

나는 굳이 앞좌석에 탔음. 뒷자석에 탔다가 앞좌석에 누가 쭈그려서 숨어있다가 나온다는 내용을 어디서 주워 들은것 같음.

하여간 앞좌석에 타서
"작전역으로 가주세요." 라고 하는데
택시타면 앞판에 운전자 아저씨 정보가 있지 않음? 근데 이 운전하는 기사아저씨 얼굴이랑 그 운전자 아저씨 정보랑 다른거임.! 얼굴이 다르게 생겼음.

내가 곁눈질로 아저씨를 쳐다보고 운전자 정보있는데를 쳐다보니까 기사가 말했음.

"아~ ^^ 제가 이제 막 교대를 해서요. 그거 안바꿔놓은거예요. 뒷면에 저 있어요~^^ "

정말 사람좋은 얼굴로 웃으면서 말했음.

그러고 보니 살짝 운전자 정보 뒤에 뭐 하나가 더 끼여있었음. 비뚜룸 하니.. 내가 뒷면에 있는 아저씨정보 꺼내서 앞면에 놔줄까..하다가 처음에 의심의 눈초리로 본것도 조금 미안하기도 하고.

그리고 운전자 정보에 있는 아저씨는 험악하게 생긴 반면 지금 운전하는 기사 아저씨는 깔꼼하니 말쑥하니 하튼 눈도 선하게 생겨서 ( 착한사람 같아 보였음. ) 차마 뒷면의 운전자 정보는 확인하지 않았음.

뭐 그래도 경계를 늦추진 않았음.

가방을 꼬옥 쥐고.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면 주시 하면서 길 똑바로 가나.. 누구 합승하지는 않겠지..하며 계속 신경을 곤두세웠음.

그러다가 우리집으로 오는 방향엔 꼭 계양임학차도 를 지나 오는데 그 임학차도를 지나치면서 안도감과 동시에 피곤이 막 밀려오는거임. 눈이 막 굼뻑굼뻑.. 고개를 막 흔들어봐도 계속 졸린거임.

누구에게 전화라도 하면 좋을텐데. 새벽에 전화하기도 그렇고.. 그때 스맛폰이 잇엇다면 절대 안잠들었을텐데!! 난 결국 깜빡 하고 졸고 맘.

고개가 툭 떨어지면서 놀래서 깼음. 나 정말 잠깐 잔줄 알았음.

놀래서 앞을 보니 어딘가.. 처음 와보는데 같음. 갑자기 덜컥 무서워 졌음. 기사 아저씨도 못 쳐다 보겠음.

"여..여기가 어디예요..?"

"계산동이예요. 여기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물어볼려고 깨울려고 했어요~"

아..계산동이구나..(우리집과 매우 가까움) 근데 나는 작전역으로 가달라고 했는데? 왜 계산동으로 왔지..?

이상하다고 생각한 순간. 아저씨가 차를 길가 한켠에 끽~! 세우더니 내 목에 칼을 드밀음.

그때부터 나는 정신이 나갔음. 진짜 발끝까지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었음. 살려주세요 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아무말도 못했음. 진짜 덜더더럳러덛럳럳러 떨고만 있는데

그 미친 강도가

"몇살이야..?" 라고 친근하게 묻는게임!

"살..살려주세요..아저씨 제발요..제발 살려주세요..흐흐흐흑"

나는 살려달라는 말만 계속 했음. ㅠ 진짜 완전 무섭고 죽을거 같았음. 내가 제정신이 아님. "학생이야..?" 라고 물은것 같음. 회사다녀? 했던가. 하튼.

그래서 나는 살아야 한다. 정말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두서없이 막막 이야기 함. 어디서 들었는데 강도나 살인범등을 만나면 주절주절 자기 이야기를 하라고했던게 문득 생각이 났음.

"네..네.. 학생이예요. 대학생이요.. 재수했는데.. 등록금때문에 중간에 휴학도 해서 지금 2학년이예요.. 그리고 아빠랑 엄마랑은 이혼해서 지금은 아빠랑 살고있구요.. 나이차이 많이 나는 여동생이 있어요. 걔는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예요.. 걔는 엄마랑 살고있어요.. 그리고....남자친구는 없구요. 그리고..ㅠㅠ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 하고있고요..오늘 월급 받았어요. 가방에 잇어요. 다 있어요. 하나도 안썻어요. 제발 살려주세요. 아저씨 제발 살려주세요.."

진짜 입에 모터 달은것처럼 막 쉬지도 않고 막 이야기 하면서 연신 두손을 비볐음. 제발 살려달라고.

그랬더니 가만히 아무 변화없는 표정으로 가만히 있더니 강도가 "가방두고 내려" 라고 하는거임!!

"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하면서 덜덜 떠는 손으로 가방을 차에 두고 내렸음. 내리자 마자 다리가 풀려서 털썩 주저 앉는 바람에 문을 못닫았음. 귀찮다는 듯이 강도가 "야 문닫어!" 라고 해서 그제야 문을 닫아 드림. 그러니까 붕~ 하고 가셨음.

너무 울어서 화장 다 번지고 바닥에 주저앉아서 얼마나 있었는지 모름. 갑자기 다시 오면 어떡하나 라는 생각에 부랴부랴 일어나서 막 걸어갔음. 휴대폰도 지갑,신분증도 모두 가방에 있음. 그 강도는 내 학교도, 내주민번호도, 내주소도 다 아는거임. 이제.

주변을 둘러보니 계양산 근처에서 강도가 날 내려준거임. 아직 주변은 많이 깜깜하고 가로등도 몇개 없음 ㅠ 그지같은 동네. 공중전화는 눈에 씻고 찾을래야 찾을수가 없음.

한참 걸었더니 경인여대가 보였음. 경인여대로 막 뛰어들어가서 공중전화를 찾았음. 그리고 1541로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음. 몇번 걸었는데 받질 않다가 나중에서야 짜증난 목소리로 아빠가 받았음.(장난전화인줄 알았다고 함)

아빠 목소리를 듣자마자 내가 막 우니까 아빠가 부랴부랴 경인여대로 날 태우러 옴. 난 빨리 집에 가고 싶고.그리고 난 신고하고 싶지도 않았는데.(너무무서워서) 아빠가 내 이야기를 듣자마자 계양경찰서로 날 끌고 감.

내가 신고한거 알게 되면 어떡하나 라는 생각에 경찰서에 가서도 제대로 말도 못하는데 경찰아저씨가 괜찮다고 우리가 보호해준다고 아저씨들 믿고 말해보라고 해서 강도 인상착의며, 나눈 대화까지 모두다 말했음.

내가 가방을 통째로 줬다고 하자. 그럼 오늘은 집으로 가지 말고 가까운 친척네로 가는게 좋겠다고 하여. 아빠랑 나는 경찰차를 타고 그날,김포 고모네로 갔음.

..

그리고 3일이 지났는데...(난 무서워서 알바도 못가고 고모집에만 있었음) 범인이 잡혔다고 경찰서에서 아빠에게 전화가 왔음. CCTV증거가 있어서 괜찮다고.내가 가서 확인?진술? 안 해줘도 된다고 했음.

그리고 나중에 경찰이 아빠에게 해준 이야긴데. 그 강도가 친절하거나,혹은 내가 살려달라고 빌면서 내 이야기를 하니까 그걸 듣고 마음이 변해서 날 놔준게 아니였음. 강도가 아니라 싸이코패스 살인범이였음.

날 태우기 1~2시간전에 이미 다른여성을 죽이고 트렁크에 시체를 넣어두었던 거임. 근데 택시는 가스차라 트렁크가 좁지 않음? 아무래도 나까지는 넣기 힘들것 같아서 그냥 보내줬다고 그랬다 함 . 그리고 트렁크 비워서 다시 올려고 했다고 함. 우리집으로. 혹은 학교로. 내가 신고하기 전에 나 잡으러.

실제로 우리집 근처 소방서앞에서 검거 되었음.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쓰기 시작했는데 쓰다보니 너무 무서워졌음. ㅠ 난.. 그 이후론 절대 택시를 못탐. 버스타기 어정쩡 해도.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함. 새벽에 버스,지하철 다 끊기면 가까운 찜질방에서 자고 날밝으면 집에 옴.

그리고 그놈은 처음엔 사형, 재심땐 무기징역.그리고 최종 25년형을 받음. 25년뒤면... 날 잊을까? 모범수같은거 하다가 더 줄이는거 아닐까.? 가끔 생각함.

가끔 그 살인범이 감옥에서 내 주민번호랑 이름을 혼자 계속 되뇌이고 있는 악몽을 꿈. 난 돈 모아서 10년안에 이민갈거임.


[원글 출처] 여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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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밤에도 새벽에도 가로등이 많아서 그리 어둡지 않으니까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별 생각 없이 별 걱정 없이 택시를 타서 잠들기도 하고 그런데, 그래도 조심하자는 의미에서 가져와 봤어. 나도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새벽이면 택시를 타니까...

라고 생각하고 가져오긴 했는데 적고나니 진짜 무섭네 ㅠㅠ
글쓴이는 천운으로 살긴 했지만 그래도 얼마나 무섭겠어. 무기징역도 아니고 25년이라니. 사람을 죽였고 또 죽이려고 했는데 25년이라니. 이민 갈거라는 마음 충분히 이해가... 으 ㄷㄷ

정신 바짝 차리도록 하자 다들
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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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죽이고, 또 미수에 그쳤는데 25년이라니...
저도 새벽시간에 택시 탈때가 종종 있는데요 한번은 기사님께서 요즘 세상이 흉흉하니까 택시타면 창문너머 보이는 체인점들 간판을 잘보라고 'XX사거리점' 같이 그 동네이름이 적혀있는 경우가 많아서 무슨일 있을때 바로 경찰에게 위치를 알릴수 있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리고 여성분들같은 경우엔 술취해서 깊이 잠들어 버리면 혹시나 성추행으로 신고당할까봐 흔들어 깨우기도 난처하다고 하시면서 여성분들의 안전과 기사님을 위해서라도 잠들지 않는게 좋다고 하셨어요ㅠㅠ 요즘은 여자고 남자고 할것없이 모두에게 흉흉한 세상임...ㅠㅠ
아 맞아! 이거 내가 전에 살던 동네라서 난리였었는데... 후덜덜... 저 사건때 나 마침 차있어서 집에서 다행이라고 했던게 기억나네...
항상너무너무 감사해요🙃잘보고있어요! 아무거라도 읽을것좀많이주십솨 아부좀..ㅎㅎ 불평없이잘보겠습니다~
역시 사람이 제일 무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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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의 마지막 일요일이네 그래서 그런지 이야기 하나는 전해야 할 것 같아서 부랴부랴 가져왔어. 모두의 올해는 어땠을까? 조금이나마 따뜻한 한 해 였길! 이라고 하면서 무서운 썰 가져오니까 약간 이상하긴 하네 ㅎㅎㅎㅎ 어쨌든 올 한해 같이 읽어줘서 고마웠어! ______________________ 이렇게 써도 될런지 좀 망설여지는데요 2010년도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간밤에 꾼 꿈에 그 친구가 나와서 불현듯 생각이 나서... 써보겠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알던 녀석이 있습니다. 늘 안경을 쓰고, 똘똘하게 생긴것 같으면서도 좀 어벙하던 친구였습니다. 5학년때도 같은 반이었고 중학교 올라가서는 1,2학년 제가 미국으로 이민가기 전까지 같은 반이었습니다. 중학교때부터 많이 친해졌습니다. 좋아하는 게임들도 비슷하고 같이 공부도 하고 여러 친구들과 두루두루 뭉쳐서 자주 놀기도 하고 피시방도 자주 가구요 제가 많이 좀 놀리고 갈구고 걔는 그냥 피식피식 웃고 그런 친구였습니다. 전 많이 짓궂은 타입인데 그녀석은 참 속도 좋은지 저한테 한 번도 화낸 적 없었습니다. 공부도 잘했고, 재수를 하긴 했지만 서울의 명문대 수학과에 들어갔습니다. 미국으로 이민간 뒤, 오랜만에 한국에 나와서 만났습니다. 연락하기도 쉬웠고 만나는 것도 아주 시원시원하게 만났죠. 그녀석 자취방에 가서 자기도 하고, 다른 친구하고 셋이서 만나 찜질방도 같이 가고 제가 한국에 2년간 머무는 동안이라 여러번 만났는데 마지막 만났을때 일어났던 일입니다. 언제나처럼 고기부페 가서 소주 한잔하면서 조금씩 취기가 올라올 무렵 그녀석 폰으로 전화가 오는 겁니다. 번호 확인하더니 그냥 무표정하게 소리를 껐습니다. 뭐 나랑 수다떠는 중이었으니 그랬겠거니 하고 별로 신경안썼는데 전화가 계속 옵니다. 끊으면 오고 끊으면 또 오고 계속 오더군요. "야 뭐야 니 스토커냐? 뭔 전화가 이리 와?" "아버지야. 신경쓰지마 가끔 저러셔. " "니 통금 없잖아. 아버님이 술이라도 드셨나? ㅋㅋㅋㅋ" 제가 농담을 하니까 그녀석 언제나처럼 피식 웃고 맙니다. 한 두잔 정도 더 마셨을 때, 갑자기 녀석이 심각해졌습니다. "내가 우리 아버지 얘기 꺼낸적 없지?" "그러게? 너네 어머니는 중딩때 뵌적도 있고 통화도 한적있는데." "사실 좀 사정이 있다." 약간 놀라운 이야기였습니다. 친구녀석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정도가 좀 심해서, 초등학생 중학생 시절에는 친구하고 친구동생이 많이 얻어맞았다고 합니다. 발가벗기고 거실에 엎드려뻗쳐를 시킨후, 야구방망이로 엉덩이와 등을 마구 때렸는데 심하게는 20분 30분가까이 매질이 계속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몇 년씩이나 계속 이어져왔다고 했습니다. 친구 어머님이 굉장히 착하고 좋은 분이셨고, 이 녀석도 얼굴에 상처가 나있거나 어른들에게 부담감을 느끼거나 하는 모습을 보인적도 없어서 저는 상상도 할 수 없었죠. "무릎 꿇고 앉으라고 한 다음에, 허벅지를 발로 계속 밟아. " "..................." "그걸 쉬지않고 계속 하더라. 나중엔 자기가 자빠져 넘어질 정도로 까. 술 취해서 지 몸도 못가누면서 그렇게 계속 패는데... 난 괜찮았는데 동생 패는거 보고 눈알 돈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듣는 사람도 고통스럽고 무서운 이야기인데 이녀석도 많이 힘든 눈빛으로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요즘은 자기가 커지고 동생도 커져서, 그리고 아버지의 몸이 점점 쇠약해지셔서 폭행은 없다고. 동생과 어머니가 정말 죽을 힘을 다해 보살피는데, 몸 상태는 나아지지 않으시고 대신 어디서 그렇게 술을 몰래 가지고 오시는지, 방문 걸어잠그고 계속 드시면서 취하실 땐 정신병자 같은 행동을 많이 한다고 했습니다. "뭐 어떤 행동...?" "들어봐." 친구녀석은 저한테 자기 폰을 건냈습니다. 부재중 전화 17통 음성메시지 5통. 전부 친구 아버지로부터 왔습니다. 음성메시지를 틀었습니다. 약간 쉰듯 했지만 굉장히 차분한, 평범한 아저씨의 목소리였습니다. 첫번째는 "영훈아(가명)... 시간이 좀 늦었잖아. 얼른 들어와라." 두번째 "큰아들. 어디냐? 위험한데 밖에 너무 오래 돌아다니지 말고....얼른 집에 와야지...." 뭐 대충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친구는 계속 제 표정을 살폈구요 세번째 약간 흐느끼는 목소리로 "영훈아.... 아버지가.... 힘들다.....많이 힘들다.... 지치고 힘들다 아빠가...영훈아..." 네번째 "힘들어..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어..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어..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어..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어..힘들다..힘들다..힘들어..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어..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어..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어..힘들다..힘들어..힘들다..힘들다.." 여기서 많이 깜짝 놀랬습니다. 친구도 '안 들어도 알겠다' 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힘들다..힘들다..힘들다 힘들어 내가 힘들다고!! 힘들어!!!으아!!!!!!끼이야야아아아아!!! 힘들다!!죽여버릴거야! 죽여버린다!!개색기야!! 으하하하하하하핳하하 크하하하하하 !! 끄으아아아아!!! " 여기서 너무 깜짝놀래서 심장이 멎을 뻔 했습니다. 진짜 '헉!' 소리 나오면서 폰을 귀에서 땠습니다. 지금도 그 때 생각하면 정말 무섭네요. 수화기 너머로 고래고래 비명지르며 힘들다고 하다가 큰소리로 웃었다가, 죽여버리겠다고 하는 영훈이 아버지의 목소리가 찢어질듯 들렸구요... 녀석은 그냥 아무 말 없이 전화기를 달라는 뜻으로 손을 내밀었습니다. 요즘 이러신다고. 자기도 처음엔 기절할 정도로 놀랬는데, 이럴때마다 패턴이 같아서 지금은 견딜만 하다고. 자긴 밖에 나와서 살고 있지만, 같이 있는 동생이랑 어머니가 걱정된다고 자기 아버지한텐 미안하지만, 병원에 입원시키고 싶었는데 단순한 알코올 중독일뿐 미치거나 하진 않았으니 잘 보살펴라  라는 말밖에 못들었다고 했습니다. 몇 달후, 연락이 왔습니다. 친구아버지가 방안에서 목을 메달아 자살하셨다고 했습니다. 유서 같은건 없었고, 마지막으로 친구에게 "마귀새끼야 지옥에서 보자" 라고 전처럼 비명을 지르는 음성메시지를 남기셨다고 합니다. 친구는 조금씩 떨리는 목소리로 오지 않아도 된다고, 자기가 연락할테니까 잘지내라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2년이 지났네요. 아직까지 연락은 없습니다... [출처] 단편모음 | 네이트판 ___________________ 하. 나도 술을 좋아하긴 하지만 나를 잃을 정도로 마시는 건 정말 위험한 일인 것 같아 이전에 가져온 썰들 중에서도 술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종종 있었지 술이 문제가 아니라, 술을 마셔서 인사불성이 되면 나도 모를 뭔가에 홀리기도 하니까. 연말이라 술자리 많을테니 조심하자는 의미로 가져와 봤어 건강하고 또 건강하자 잘 자고!
퍼오는 공포썰) 실제로 본 싸이코패스썰
날이 너무 춥네 오늘 같은 날은 금요일이고 뭐고 따신 방 구석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귤 까먹는게 최대 행복 아닐까! 그렇게 따시면 노곤노곤하니까 무서운 썰도 곁들이고 말야 ㅎㅎ 그래서 오늘도 이야기를 가져와 봤어. 귀신썰은 아니고, 어쩌면 우리 주변에도 흔하게 있을 법 한 싸이코패스 이야기. 시작해 볼까? ______________________ 학창시절 부산에서 봤었던 싸이코패스 이야기 부산에는 동천이라는 도심 하천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제법 큰 강이었는데 도시가 개발이 되다보니까 그 면적이 꽤나 많이 줄었죠. 부산의 중심인 서면 언저리에서 부산항 쪽으로 길게 뻗은 하천이고 바다와 점점 가까워 지면서 수심이 깊어 집니다.  어린시절 동천의 하류지역인 문현동에 살았습니다.  학교 다녀오는 길에 동천 위로 놓여져 있는 다리를 건너 오는데 강 양쪽에 난간이 있고 그위를 재미삼아 올라가서 장난치던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애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걔들 끼리 장난치는 과정에서 난간위에서 놀던 애가 강으로 떨어져 버렸어요. 일반적인 하천과는 다르게 얕은 수심에서 점점 깊어지는 그런 식이 아니라 현대식으로 양측에 제방을 쌓고 정비를 해놓았기에 가엣쪽도 수심은 중앙과 별 다를 바 없는 깊은 수심을 가진 곳이었죠. 친구가 빠지가 놀란 친구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알렸고 구경꾼들이 삼삼오오 몰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친구들과 같이 그곳으로 향했죠. 그러는 와중에 초기에 발견했었던 옆에 있는 아저씨가 휴대폰을 들고 다급하게 여기 사람 빠졌다면서 빨리 와주세요 하면서 119에 신고를 했죠. 사람들이 꽤 많은 수십명이 몰려들었는데 당연히 구조될 줄 알았습니다. 도심 한복판을 흐르는 하천이고 경찰서나 소방서도 인근에 위치해 있거든요. 교통이 불편한 위치도 아니고요. 그런데 구조가 못되고 어린 학생은 익사하고 말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일단 주변 분들이 강에 들어가서 구조하려 했던 분이 없었습니다. 수영을 할수 있는 사람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알수가 없지만 그쪽이 물이 오염되어있거든요. 깨끗한 바닷물도 아니고 지금도 가보시면 아시겠지만 에메랄드 빛의 이상한 색을 띄고 있습니다.  게다가 상류쪽이 유흥가를 관통하면서 수질이 워낙 나쁜 곳이기도 하고요. 어차피 주변에 소방서나 경찰서(파출소나 그런곳)이 있기에 금방 와서 구해낼 줄 알았겠죠. 그런데 경찰도, 소방관도 오지 않았습니다.  주변에서 구경하던 나이좀 있으신 분이 처음에 신고를 한 사람한테 어디 신고 했냐고 묻더군요. 왜 119가 안오냐고요.  그러자 초기에 핸드폰 들고 얘기했던 아저씨가 하는 말이 자기는 119에 신고 한 것이 아니라 회사 직원한테 여기 사람이 물에 빠졌으니까 와보라고 (구경하자는 거겠죠?) 전화했다고 하더군요. 그제서야 주변사람이 119에 신고를 했지만 결국 119가 오고 난 후에 물에 빠진 학생을 건지기는 했는데 너무 오랫동안 허우적 거려서 익사했다고 하더군요. 그 자리에서 흰천을 덮어서 구급차에 싣고 떠났습니다.  어떻게 보면 누군가는 신고했겠지? 하는 방관자 효과일수도 있겠지만 거의 최초로 물에 빠진 학생을 목격했던 그 아저씨(전화통화한 사람)의 역할이 너무 뚜렸해 보였기 때문에 주변사람들은 굳이 신고할 이유를 못 느꼈을 것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보고 핸드폰을 꺼내들고 여기 사람 물에 빠졌으니까 빨리 오라고 흥분한 목소리로 통화하던 것을 봤으니까요. 저도 그걸 들었으니까요. 저도 거의 최초 발견자였음. 당시에는 핸드폰을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다니지는 않았어요. 확실히 고가의 제품이었기에 요즘처럼 초등학생, 중학생들도 핸드폰 들고다니는 시대는 아니었죠. 어른들 중에서도 사업이나 회사업무가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죠. 저는 그때의 그 아저씨의 행동을 생각하면 아직도 소름끼치네요. 사람이 빠져서 죽어가는데 빠진 학생들의 친구들이 119에 신고를 해달라고 하는데 저도 그 바로 옆에 있었기에 확실하게 들었거든요. <여기 범일교 옆인데 사람이 물에 빠졌어요 빨리와주세요>  딱 이렇게 들었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와보세요도 아니고 빨리 와주세요, 언어적 해석으로 보면 구조의 요청으로 볼 수 있는데 왜 회사 직원한테 빨리 와보세요도 아닌 빨리 와주세요 이런 식으로 얘기했을까요? 저를 비롯한 최초 발견자 몇몇 분도 그때 실수를 한게 그 사람이 119에 신고를 했다고 믿어버렸던 것이죠. 어쨋든 안타깝게도 어린학생은 수십명의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도심 한복판에서 죽었습니다. 주변인의 방관자 역할도 잘못이지만 최초로 목격하고 119가 아닌 회사사람에게 전화해서 그런식으로 흥분한 어조로 연기했던 그 싸이코패스,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네요. [출처] 학창시절(90년대 후반) 부산에서 봤었던 싸이코패스 이야기 txt. | 오유 ___________________________ +) 이 글에 달린 댓글 음... 정말 이상한 사람 너무 많아요. 저희 시어머님이 친구분이랑 하천변 산책을 매일 하시거든요. 며칠전 한창 가물때 계단 옆에 늘어선 목책 중 하나에서 연기가 피더래요. 주변은 다 마른풀이라서 불붙으면 완전 큰불이 날 상황. 그래서 근처 자전거도로를 달리던 인저씨를 급하게 세워서 죄송한데 그 물 좀달라고 여기 부어서 불을 끄자고 상황설명을 했더니 자긴 이동네에 안 살기 때문에 불나도 아무 상관없고 이 물은 자기가 이따가 마실 물이라서 줄 수 없다고 그냥 갔대요. 귀를 의심했어요. 어떻게 그럴수가.  하천 물이라도떠다 붓고 싶은데 손에다 떠 옮기기엔 거리가 꽤되는 곳이고 해서 어쩌지 하시는데 왠 학생이 자전거에서 내려서 물을 부었대요. 근데도 연기가 계속 피어올라서 결국 119에 신고했더니 와서 목책을 쪼개더래요. 어머님 말씀으로는 목책 안에 빈 공간이 있었는데 거기에누가 기름을 붓고 일부러 불을 놓은거 같더라고... 우리 주변에 어떤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이 그런 소름끼치는 짓을 하는걸까요. 이거 보니까 생각나네요. 저 고2 때 일인데요. 그때 컴퓨터 관련 수업을 하면 컴퓨터실 앞에서 2인1줄로 줄 서서 대기하고 선생님이 잠긴 컴퓨터실 문을 열어줘야 들어갈 수 있었어요. 지각 방지 겸 딴짓 방지하려고 그렇게 했거든요. 제가 당시 반장이라 애들 줄 세우고 선생님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애가 코피가 터져서 애들이 난리가 났어요. 셔츠에 피 묻고 애들도 휴지가 없어서 급하게 근처 간이교무실로 뛰어갔어요. (별관이라 간이교무실이 있었음) 거기에 선생님 한분 계셨는데 새로 부임한 여선생님이었어요. 급하게 사정 설명하고 휴지 좀 달라고 했죠. 근데 그 선생님 정말 표정 하나 안 바뀌고 말하길 "내가 왜?" 순간 너무 뜻밖에 당황해서 어버버했고 그 선생님은 태연히 자기 할일 하더라고요 그때 정말 너무 황당하고 소름끼쳤어요. 다행히 다른 애가 휴지 구해와서 해결하긴 했는데 그때 생각하면 정말 소름끼치고 그 선생이 어딘가에서 또 선생 노릇할거라 생각하니 그것도 소름이네요. 저도 하나... 고등학교때 학교축제준비로 체육관에서 댄스연습하다 학생이 하나 쓰러졌는데 구급차가 교문에 도착하니까 체육선생&수위가 운동장에 인조잔디 깔았다고 구급차 못 들어오게 난리쳐서 구조대원아저씨가 장비다 들고 운동장 가로질러 체육관 4층까지 뛰어올라가셨대요 체육관이 운동장 구석에 쳐박혀있는 구조.. 학생은 결국 병원서 사망했고 토요일 방과후 애들끼리 자율적으로 연습한거라 학교는 책임없다만 번복...의외로 많습니다 싸이코패스 ___________________________ 어우. 본문에 댓글까지 소름 돋는 사람들이 정말 많구나. 어쩌면 우리 주변에도 꽤 많이 있을지도 몰라서 더 무서워. 그냥 평소에는 쌔한 정도의 느낌만 주다가 저런 상황들이 되면 그냥 쌔한 정도를 넘어서게 만드는 사람들. 원글 댓글 중에는 그 신고한 아저씨가 일부러 사람들이 '신고했다고 믿게' 만든 건 아닐까 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더라. 사실 나도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고. 참. 이 카드 첫번째 이미지가 실제 이 글의 사고가 났던 하천이래. 저 정도면 아무리 수영을 잘 했더라도 쉽게 들어갈 생각을 못 했겠지.
퍼오는 귀신썰) 아주 신기한 인연에 대한 이야기
오늘도 잘 버텨낸 모두 칭찬해 수고했어! 그러니까 오늘도 같이 이야기 볼까? 오늘은 가볍게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가져와 봤어 시작! ______________________ 얼마전 고등학교 동창의 결혼식 피로연을 갔다가 희안한 이야기를 듣게 되어 써 보겠습니다. 세상에는 인연이라는게 있다고 느끼게끔 하는 일화이기도 하네요. 고등학교 졸업 후 결혼식 까지 단 한 번도 연락이나 만남을 갖지 못했던 그 친구는 저희끼리 운영하는 상조회에 연락을 해 왔다고 상조회 총무가 전하더군요. 결혼을 하게 되니 상조회 멤버들의 전화번호를 알고 싶다는 내용이었다네요. 그런 이유 였는지 처음 전화를 받을 때는 누군가 하고 의아해 하다가 반가워 했던 기억이 있네요. 몇일에 결혼을 하니 꼭 와달라고 하더군요. 연락 한번 없이 지내다가 염치도 없이 연락한게 굉장히 미안하다고, 얼굴을 보고 싶으니 꼭 참석해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흔쾌히 응하고 이메일로 청첩장을 받게 되었죠. 저는 결혼식 돌 등등 기타 행사에 연락을 취해 참석을 요청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무슨일이 있어도 참석하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소한 나를 잊지 않고 연락을 했다는 성의 표시로 생각을 하죠. 어중간하게 친한 친구가 청첩장이나 연락 한 번 없이 참석하기를 기대한다면, 저는 기대에 응해주지 않는 성격도 가지고 있습니다. 결혼식 당일날 상조회의 여러 멤버들이 모여 그의 결혼을 축하해 주었고 식사 도중에 인사차 들르게 된 새신랑이 참석한 친구들을 위해 동인천에 한 술집을 예약해 두었다는 말을 전해 주고 돌아가는 것을 보았답니다. 그 때 쯔음이 약 3시? 예약된 시간까지는 3시간 정도가 남아있어서, 식사 후 집에 들렀다가 옷을 갈아 입고 오겠다는 친구들이나 기타 사정으로 참여가 어려운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시간 떼우기용 당구장에 가자는게 거의 지배적인 의견으로 가고 있었죠. 그리고 시간은 흘러 저녁 6시. 피로연 장소에서 신나게 웃고 떠들다 보니 어느새 9시를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자정이 넘은 시간... 돌아갈 친구들은 이미 다 돌아갔고, 다음날 오후 비행기를 예약해 두었다는 새신랑은 굉장한 여유를 부리고 있었죠. "야 다른 애들은 피로연장도 안가고 바로 튀던데, 너는 괜찮냐?" "비행기표가 없어서 어찌하다 보니 그렇게 됐네." 대충 저런 사정이었고 자정이 넘은 시간에 우리는 1차를 끝내고 2차를 목표로 한 술집으로 들어갔죠. 이젠 자정이 훨씬 넘어 다음날로 날짜가 넘어간 시간. 거의 다 직장인이라 새벽으로 가는 시간에 장사가 없는 것인지, 그 때 모인 인원은 새신랑과 새신부 저 포함 약 8명 정도 되어보였는데, 그 중에서도 자리에 앉자마자 뻗어 버리는 친구들도 몇 있더랬죠. 한 5명의 남녀가 술잔을 주고 받고 있었는데, 친구 중 한명이 묻기를, "제수씨. 이 녀석 어떻게 만났나요?" "아....이 이요?" "이이? 벌써 그렇게 불러요?" "아니 그게 대외적으로는....그렇게 하는게..." 살짝 웃으며 고개를 젖는 새신부. 신부 화장기가 조금은 남아 있는 듯 해 보였습니다. "야야. 아까 그만큼 놀렸으면 됐지. 그만해라." 새신랑이 방어하고 나서더군요. 하긴 피로연장에서 무척이나 짖궂은 일을 많이 당했으니까요. "내가 대신 이야기 해 줄게. 듣고 놀라지나 마라." "약점잡고 협박하고 그런거 아냐 이거?" "어허. 일단 들어봐." 사연은 이랬습니다. 군대 제대 후 마땅히 할일이 없어, 이왕이면 서울에서 뒹굴자라는 생각으로 무작정 서울에 숙식 제공하는 회사를 찾아 여기 저기 구직활동을 벌였답니다. 하지만 생각대로 쉽지는 않았고, 끝내는 그냥 인천에서 직장을 구해야 하는 원점으로 돌아오게 되었다네요. 그 와중에 생긴 인연이 있었으니, 구직을 위해 계속 전화를 하며 정이 든 아웃소싱 업체의 한 여성 즉 지금의 새신부가 주인공이었답니다 "허...인연이 그렇게도 생기냐? 재주도 좋네..." 저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부러울 따름이었죠. 그 속 사정이야 어찌되었든 여기저기 구직자리를 알아보면서 전화로 여러번 이야기 하다 보니 서로간 호기심도 생기고 해서 한 번 만난 계기가 연인으로 발전하고 지금 까지 오게 되었다는 군요. "그런데 말야 얘랑 인연이....." 웃음기 섞인 얼굴이 약간 거둬들이며 고개를 돌려 새신부를 바라보는 그. 집게손으로 신랑의 볼을 꼬집고 흔드는 모양새가 참 다정해 보이기는 개뿔...ㅜㅜ 하여튼... 그들의 연애기간이 약 7년 정도 되었다는데... 항상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모양입니다. 다른 연인들과 마찬가지로, 싸우고 헤어지기도 몇번. 그리고 그 싸운 이력중에 정말이지 다시는 안 볼것 같이 싸우고 헤어진게 결혼전 마지막이었을 때 였다네요. "그때 얘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무슨 여자가 고집이 그렇게...아!! 아야!" 정말 보기에도 아플정도인 팔뚝의 살점을 떼어내듯 꼬집는 새신부의 손짓이 보는 저도 두렵게 만들더군요. "왜 그러게 여자를 화나게 해. 그러고도 결혼까지 용케왔다." "그렇죠?" 맞장구를 치는 새신부. 저는 언제나 여성의 편입니다. 각설하고...... 그 다음 이야기를 계속 잇는 새신랑. 그렇게 심하게 싸우고 몇일이 지나고 몇주가 지나더니 금새 두달이 지나갔다고 하더군요. 술도 엄청 마셨다고 하네요. 정말이지 이제는 정말로 끝인가 싶어 울기도 많이 울었다네요. 그래도 예전에는 누구 한쪽이 먼저 전화를 해 화해하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그럴 낌새마저 느껴지지 않았고, 새신랑도 그 때 만은 자존심이 허락을 하지 않아 연락을 참으며 거의 반 폐인 상태로 직장을 다니고 있었던 시기였다고 하네요. 그러던 어느날 이었답니다. 야근을 하고 나온 시간이 약 밤 9시 정도 였답니다. 종로5가에 직장이 있어 인천행 전철을 타고 용산까지 와서는 다시 동인천행 직행 열차를 타고 종점에서 내리는 변함없는 코스인데.... 그날따라 좀 변한게 있다면 직행을 타는 이유가 빨리 가는 것도 있지만, 자리에 앉아 갈 수 있는 편안함이죠. 그런데 희안하게 그날은 서서 가야겠다는 생각이 계속 들더랍니다. 그래서 문가 손잡이에 기대고 서서 이어폰을 꼽고, 노래나 감상하자는 생각으로 창밖의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네요. 어느새 전철은 신도림을 지나고, 그렇게 한산하던 공간도 거의 다 사람으로 가득찼더랍니다. 그리고 역곡을 지나 부천으로 가는 중간 지점이었다나요? "응?" 뭔가 귀에 스친듯한 소리를 따라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네요. 고개를 돌린 눈앞에 보이는 건 몇몇 서있는 사람들과 앉아서 졸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정도. 이어폰에서는 계속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바깥소리는 안 들릴정도로 볼륨을 올려놓고 듣는 취향이라 그 소리를 깨고 들어올 정도의 소리였다면... 그전에 희안하게 신경을 쓰게 만드는 소리였답니다. 돌린 고개 그대로 시선이 닿는 이곳저곳을 세세하게 살펴보았지만, 뜻모를 소리가 귓가에만 남아있지, 근원지처럼 보이는 형태의 사물은 전혀 분간해 낼 수 없었던 모양새였답니다. '노래 소리에 그런게 섞여있을리는 없는데....' 하는 정도로 생각하고 말았답니다. 그의 말로는 수백번도 더 들은 노래이고, 그런 소리가 당연히 섞일리는 없다고 전해주더군요. 저 또한 그렇게 어렵지 않게 이해 할 수 있었고요. 수십 수백번도 더 들은 노래에 뭐가 섞여 들렸으니, 그렇게 반사적으로 반응했을 것이고요. 그냥 환청을 들은 것이겠거니 하고, 별 생각없이 어두운 창문을 바라보며 지금 지나는 곳이 부천과 송내 중간쯤이라는 것을 인지 할 수 있었던 그 때였답니다. '또?' 이번엔 확실하게 들을 수 있었답니다. 귓가에 남은 여운을 확실히 되새겨주는 소리. 자기도 모르게 고갤 돌려 보지 못했던 등뒤에 풍경을 보며, 소리의 근원을 찾으려 했답니다. '나한테 들릴정도의 흐느낌이면, 거의 울먹이는 정도일텐데....' 돌아본 등 뒤나 마주 본 정면에서 울먹이고 있는 여자를 찾을 수는 없었답니다. 당연히 그렇게 큰 울음 소리를 주위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반응으로 앉아 있을리는 없었으니 말이죠. 그는 내심 의구심이 들면서도, 확실히는 부정하지 못하고,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보기는 했지만, 주위의 풍경만으로는 절대 찾아 볼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 정도쯤 되자 그냥 무시 할 수는 없는 소리가 되서, MP3 의 볼륨을 조금 낮추고 그 흐느낌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답니다. 그러나 다시 들리지는 않았던 모양이더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귀에 신경을 모으고 소리를 잡아내는데 열중하다가 한순간 긴장을 풀었던 그 순간이었다고 하네요. '흐흐흑...' 온몸이 저릴 정도로 소름이 돋아오르며, 소리는 귓가에 확실히 새겨지고 있었답니다. 발끝부터 올라오는 공포를 겨우 억누르며, 고개를 돌리면 또 보이지 않을 것 같아 어두운 창문에 반사된 풍경으로 그 소리의 근원을 찾아 볼려던 그 순간 이었답니다. 어두운 창문으로 반사된 전철안의 풍경안의 하얀 소복을 입은 긴 검은 머리의 여자가 돌아앉아 흐느껴 울고 있더라는 겁니다. "허헉!!!" 반사적으로 비명이 먼저 튀어나왔다네요. 아무 의구심 없이 살펴보던 풍경이라 놀라움은 극에 달했다네요. 뒷 걸음질 치며 넘어질 뻔 한 몸을 겨우 가누고 나니, 주위에서 자신에게 집중된 시선을 따갑도록 느낄 수 있었답니다. 운이 좋았던건지 때마침 전철문이 열리고 그는 확인도 안하고 바로 전철에서 내려 저만치 멀리 자리를 옮겼답니다. 그쯤되자 무서움 보다는 쪽팔림이 더 우선이었고, 자신을 쳐다보는 누가 있나 싶어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고 있었을 때였답니다. '옘병...저런게 진짜 있네...' 그때서야 자신이 본게 헛것인지 가늠도 안될 귀신일까 싶은 존재였던가 생각되니 오싹함이 온몸을 강타하더랍니다. 괜시리 쪽팔림은 사라지고 얼른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야하겠다 싶어 개찰구로 나가는 계단을 향해 잰걸음으로 달리듯 걸었답니다. 그러던 중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는데, '부평?' 부평이라는 역 이정표가 보이더랍니다. 그 때 즈음 되니 무서움도 족팔림도 다 사라지고 한가지 생각나는게 있더랍니다. 얼마전 싸우고 헤어진 여자친구를 항상 데려다 주던곳이 부평역이었다죠. 정말 누구의 의지로 그랬는지 모를정도로 주머니안에 핸드폰을 꺼내 여자친구의 전화번호 단축키를 누르게 되더랍니다. 약 10여 회 이상의 신호가 가더니, 상대편에서 통화를 수락한 음이 들리면서 귀에 익숙한 여자친구의 목소리가 들리더랍니다. "...여보세요..." 누가 들어도 알 수 있는 흐느낌이 섞인 목소리. 그는 하마터면 핸드폰을 손에서 그냥 놔 버릴 뻔 했다고 손에 핸드폰을 들고 힘없이 떨어뜨리는 시늉을 해 보이더군요. 전철안에서 들렸던 흐느낌이 익숙하다고 느낌을 받고, 그토록 소리의 근원을 찾으려던 이유를 전화넘어로 들려오는 여자친구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네요. 그렇게 소리에 반사적으로 행동했던 것은 여자친구의 목소리임을 불현듯 알고 있었던 본능이랄까 하는 식으로 표현을 하네요. 그는 자신도 모르게 첫 마디로, "너 무슨일 있니?" 하는 물음을 던졌고, 여자친구는 한참을 흐느끼다가, "아빠 돌아가셨어...." 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답니다. 그는 그길로 위치를 물어 병원으로 달렸고, 병원에 도착한 그 시간이 그녀의 아버님이 돌아가신지 10시간 정도 흐른 시간이었답니다. 평소에 지병이 있으신 아버님은 그녀가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한달 정도 후에 입원하셨고, 끝내는 그날 오후 1시정도 운명을 달리하셨다는 이야기를 도착해서 들을 수 있었다는데, 그곳에 도착해 한 번더 놀란 것은 하얀 소복을 입고 머리를 묶지 않은 그녀를 보았을때 였답니다. 그 모습은 전철안에서 봤던 그것의 모습과 완전히 판박이 였다고 하네요. 때마침 머리를 풀어 헤치고 다시 묶을려던 그 모습이 아니었다면, 절대 상상하기도 힘들었을 모습이었기도 했다고 전해주더군요. 여기까지 듣고나니 저는 왠지 새신부가 무섭게 까지 느껴지더군요. 눈치를 챘는지 눈웃음치며 그런 표정 하지 말라고 하던 새신부의 얼굴도 기억합니다. 얼마전 신혼여행 잘 갔다왔다고 친구에게 문자가 왔는데, 답문은 못 보내고 그저 잘 살겠거니 생각한답니다. 정말 인연이란게 어찌볼때는 무섭기까지 하네요. [출처] 인연 | 공포게시물 __________________ 너무 신기한데 또 너무 무섭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을까? 아니면 돌아가신 아버지가 다시 이어준 인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걸 보면 만날 사람은 만나는구나 싶기도 하고 그러네. 오늘도 같이 봐줘서 고마워 날이 많이 추우니까 옷 잘 챙겨입고 감기 조심하고 내일 또 보자 ㅎㅎ 잘자!
퍼오는 귀신썰) 신이 점지해 준 아이
이번 겨울은 진짜 생각보다 덜 춥다 그치 종일 따뜻한 사무실에 앉아 있어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ㅎㅎ 모든 사무실들이 히터 온도 조금만 낮춰도 참 좋을텐데 참 날이 덜 추우니까 미세먼지도 극성이고... 다들 기관지 건강 잘 챙기시길! 오늘도 우리네 이야기로 챙겨와봤어 같이 볼까? _____________________ 제목 : 신이 점지해준 아이 제목은 진짜 내맘대로 ㅠㅠㅋ  내가 알고 지내는 언니 이야기야~  이 언니가 나보다 3살 위인데 지금 거진 중학교 입학을 앞둔 아들 하나를 둔 싱글맘이야  처음 만나게 된 게, 나냔이 학교 봉사활동 하러 재활센터 같은 데에 일하러 갔다가 보게 됐어  그 센터에 아무래도 연세 있으신 분들 비율이 높아서, 엇비슷한 나잇대에 같은 여자고 마음도 잘 맞아서 금세 친해졌어  이 언니의 경우는 아들 때문에 여길 다니게 됐는데, 아들이 선천적으로 다리가 불편해... 제대로 된 병명이 기억은 안 나는데.. 한쪽 다리가 성치를 못해서 성장이 거의 멈췄어. 그래서 다른쪽 다리랑 맞질 않아서 혼자 걷질 못해  이 언니 혼자서 애 데리고 치료 다니랴 일하랴 항상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더라  개인사는 실례가 될 것 같아서 직접 물어본 적은 없었어  그렇게 친해져서 평소에도 시간이 나면 같이 밥 먹고 쇼핑도 하러 다니고, 언니 바쁠 때 아들도 봐주고 하면서 꾸준히 교류를 하고 지냈어  그렇게 알고 지낸지 약 1년쯤 됐을까? 같이 저녁 먹고 술 한잔 하다가 언니가 말을 꺼내더라구  "너 우리 동동이(아들. 가명이야ㅎ;) 아빠에 대해 궁금하지 않니?"  이러면서 . 난 그냥 솔직하게 본인(언니)이 얘기할 맘 없으면 알고 싶지도 않다고 했어  그랬더니 언니가 자긴 딱히 숨기거나 창피한건 아닌데 나서서 할 말은 아니라 별 말 안했다 이러면서 간략하게 얘길 꺼냈어  좀 어려서(고등학교때) 애아빠를 만나서 둘이 선까지 넘고 임신까지 하게 됐대  언니 본인은 애 낳고 바로 취업전선 뛰어들었고, 남자는 대학까지 그대로 갔어  그런 남자의 학비부터 생활비까지 언니가 다 벌어서 부담하며 수발을 들었다는 거야  그리고 이 남자는 자기가 학교 졸업하고 취업만 제대로 하면 너 끝까지 책임진다고 항상 호언장담해서 믿고 기다렸대  근데 옘병ㅋ 졸업 앞두고선 잠수를 타버렸는데, 딴여자랑 결혼했단 소릴 다른 친구 통해서 들었대  그 집까지 찾아가서 애를 나 혼자 낳았냐 어떻게 동동이한테까지 이럴 수 있냐 하면서 호소했더니 남자 부모님이 멀쩡한 애 앞길 망치지 말고, 그 애도 진짜 우리 아들 핏줄인지 어찌 아느냐 하면서 돈 좀 쥐어주고 더이상 연락하지 말라고 거진 내쫓았대  이 언니가 정말 서러운게 만약 동동이가 몸이 완전 성한 아이였어도 애아빠에다 조부모 되는 사람들까지 애를 버렸을까 싶어서 몇날 며칠을 울었대  그치만 아들 하나만큼은 책임지고 키우고 싶었기 때문에 악착같이 일을 해와서, 지금은 혼자 장사도 하면서 한숨 돌릴 정도로 산대  하지만 지금처럼 자리잡기까지 그 과정은 정말 말도 못하게 힘들었대  여자 홀몸으로 아픈 애 데리고 사는게 어디 쉽니...  거기다 저 언니는 고등학교까지 중퇴. 돈이 될만한 일을 하는 것조차 힘들었대  그래서 영 안되겠다 싶어서 애까지 고생시키느니, 동동이를 시설에 맡기거나 다른집에 보내거나 해버릴까.. 하는데까지 생각이 미쳐서 고향에 계신 아버지를 찾아가 상담을 했대...(어머니는 일찍이 여의었다고 하더라) 이런 저런 이야길 했더니 아버지가 단호하게 동동이는 끝까지 니가 키워야 한다! 이러시더래  언니가 말하길, 아버님은 너~무 너무 온순하시고 남 부탁 거절 못하시고 수줍음도 잘 타시고 천상 소년같은 성격의 분이시래. 그래서 자기가 힘든걸 호소하면 편을 들어주며 토닥여 줄줄 알았는데 단호하게 말허리를 잘라서 좀 놀랐대  그러면서 이런 이야길 하나 해주시드래  아버지가 아직 젊으셨을 적, 그러니까 언니가 태어나기 전에 읍내에 일이 있어서 다녀오면서 (이분이 사시는 곳이 완전 시골) 버스를 탔대  완전 산골길이라 버스 안에 다해야 10명도 안되는 사람이 타고 있었는데, 몇 정거장 가니까 왠 젊은 애엄마가 갓난아기를 안고 버스를 탔대  근데 돈이 부족한지 막 주머니를 헤집고 이리저리 뒤지다가 안되겠는지 버스기사한테  "죄송한데 한번만 그냥 태워 주시면 안될까요? 금방 내릴거에요"  하면서 간곡히 부탁을 했대  기사가 성질을 내면서 그냥 내리라고 욕을 하고, 실랑이가 길어지니까 승객들도 그 여자보고 내리라고 당신 때문에 늦어진다고 막 화를 냈대  결국 아버님이 보다 못해서 돈을 대신 내줬대  그랬더니 그 여자가 고맙다면서 앞자리에 앉더니 "어디까지 가세요?"하고 물었대  "어디어디까지 갑니다~" 하고 대답하니까  "다음 정거장에서 그냥 내리고 다음 버스 타세요" 이러더래  버스 배차 간격이 워낙 길어서 정말 한~~참을 기다려야 하니까 아버님은 왠 난데없는 소리야 하면서  "어서 집에 들어가 봐야해서 그건 좀..." 하고 거절했대  근데 그 여자가 너무 간곡히 부탁하더라는 거야 꼭 내리시라고. 그냥 무시해버리고 말았을수도 있지만, 느낌이 이상해서 다음 정거장에서 바로 내리셨대  그리고 다음 버스를 타고 가면서 대체 뭘까...하고 의아해 했는데.. 그렇게 가다가 글쎄 앞전 버스가 사고가 난걸 보게 된 거야.. 이미 시간상으론 꽤 지난거지  나중에 전해 듣기론 2명인가가 죽고, 나머지 승객들도 중경상을 입었대  소름이 돋아서 아버님이 혹시 승객중에 갓난아기와 애엄마가 없는가 알아봤지만, 그런 사람은 전혀 없었대  그 사이에 내린건지 아니면 사람이 아닌 무엇이었는지, 아무튼 자길 살리려는 의도였다고 생각하고 산쪽을 향해 절을 하시고 돌아갔대  그리고 기억 속에서 그날 일이 잊혀져 갈 때쯤,  그 젊은여자가 아버님 꿈에 나왔대, 품엔 여전히 그 갓난아기를 안고 있었는데 그 여자는 아무 말도 안하고 그냥 멀찍이 서있더래  그렇게 마주보고 서 있는데 그 여자 품속의 아기가 바닥으로 툭 뛰어내리더니 아버님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오더래  그런데 애가 걸음을 뗄 때마다 몸집이 커진다 싶더니 점점 형상이 변해서 아버님 눈앞에 왔을 땐 커다란 호랑이가 돼 있더라는 거야  꿈이지만 아버님은 호랑이가 무섭다거나 두렵진 않고, 경외심 같은게 들었대  그러고는 그 호랑이 앞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고 절을 올렸대.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대  잠시 그러고 있는가 싶더니 호랑이가 앞발을 슥 들어서 아버님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 그렇게 잠에서 깼대  그리고 얼마 후 언니가 태어났는데, 아버님은 이게 보통 꿈이 아니다 이 언니는 큰 인물이 될 거다 이 아이를 위해 신이 날 살린거다 라고 생각하고 지극정성으로 키웠대  근데 나이를 들어갈수록 자길 너무 실망시켜서... (혼전 임신에.. 자퇴에..) 내가 잘못 생각한걸까? 그냥 우연히 일어난 일들에 내가 의미를 부여한걸까? 하고 자괴감에 빠지셨다가 세월이 흘러서야 이 모든게 동동이를 위한 거였다는 생각이 드셨다는 거야  실제로 언니가 동동이를 낳을 때도 아버님이 태몽을 꾸셨는데, 그때도 호랑이꿈을 꾸셨대  그러면서 언니를 잘 타이르더래.  어려운건 내가 발벗고 다 도와주겠다.  하지만 동동이만은 니 손에서 떼놓지 말아라. 저 앤 필시 크게 될거다 라면서  솔직히 언니는 그 이야길 듣고도 아버님 말을 안 믿었대  그래도 아버지가 저렇게까지 하시는데 (아버지도 당시 몸이 성치 않으셨다고 하더라) 나도 거기에 순응해야한다 싶어서 이 악물고 버텨서 여기까지 온거래  그런데, 그로부터 근 십여년이 지나고서야 아버지의 꿈 얘길 진짜로 받아들이게 된 일이 얼마전에 있었대  이 언니가 현재 옷장사를 해.  사업수완도 좋고 언니가 눈에 불을 켜고 공부하고 발품 팔아서 점점 단골도 많이 확보하고 자리 잘 잡아가고 있거든  근데 단골 손님중에 신기가 좀 있는 사람이 있대  본인이 밝힌건 아닌데, 말투나 행동들로 어렴풋이 짐작했대  어느날은 이 손님이 또 와서 물건을 사고 계산 할 때에 언니한테 "고민이 많지?"이러고 슬쩍 말을 걸었대  깜작 놀라서 왜 그런걸 묻냐고 하니까  "지금 언니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이런건 함부로 말하면 안돼서 많은 말은 못해주겠는데, 언니가 가장 궁금해하는거 딱 하나만 물어봐, 내가 가능한 선에서 답해줄게"  이러더래  언니는 앞뒤 안보고 "우리 아들의 장래가 걱정돼요" 라고 한마디 했대  그러니까 이 신기있는 분이 이런 말을 하더래  "언니, 언니는 지금 호랑이 새끼를 낳았네. 조상님이 덕을 쌓으셔서 점지받았어  그 애가 혼자 힘으로는 못 걸을지언정, 손가락 하나로 사람 100명을 부리게 될거야.  아이한테 해주는 만큼 몇백배로 돌아올테니 조금만 참아"  동동이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안했었는데 이런 말을 들으니까 소름이 돋더래  그리고 그 분은 복채를 받아야 한다며 언니 소지품 중에 하나를 가져갔대  근데 이게 영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닌게, 동동이가 비록 몸은 성치 않아도 애가 귀신같이 똑똑하거든. 나도 얘랑 몇번 대화 하면서 정말 놀랐어 기억력도 비상해서 한번 보고 듣고 읽은건 정확히 기억하고, 체스라던가 카드게임 같은 것도 항상 이겨 애가 머리를 쓰면서 전술을 짜더라고;  한글이나 영어도 따로 교육한 적이 없는데 책 좀 보고 관련 방송 보면서 혼자서 터득해가는 수준이고 하여튼 얘가 물건이긴 물건이다 싶었어....  완전 두서없지만...이 언니가 남달리 아들을 사랑하고 고생해온걸 조금이나마 봐 와서 그런가 저 말이 진짜였으면 좋겠더라  그날 언니네 아버님이 본 건 역시 신이 아니었나 몰라....  PS. '공포'와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이야기라 여기에 맞는 글인지 판단이 안 서네 ㅠㅠ 이런 신기한 경험 유형의 글도 괜찮을까? 안 맞는 글이면 부드럽게 태클 넣어줘! [출처] 외커 _________________ 뭔가 할머니가 밤에 자기 전에 해줄 법 한 이야기지 않아?ㅎㅎ 그간 언니는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정말 그 무속인의 말이 진짜였으면 좋겠다 약간 전생 이야기 볼 때 마다 슬프더라고 왜 전생의 덕을 후생에서 누리고 전생의 잘못을 후생에서 책임져야 하는지 그냥 현생에서 고생하면 나중에 현생에서 돌려 받으면 얼마나 좋아 그냥 그런 이야기 같아서 가져와 봤어 부디 많이 아프지 않기를 나중에는 다 웃을 수 있기를!
퍼오는 공포썰) 그 어린 것이 무슨 죄가 있다고
오랜만이지! 오랜만에 왔는데 공포미스테리 커뮤니티가 너무 허전해보여서 글 하나 올리고 가려고 ㅎㅎ 그런 김에 프레지던트 지원도 했는데... 시간 남는 사람들 에디터 지원해주라 애착 많은 커뮤니티인데 으쌰으쌰 같이 하던 시간들이 그립구만 다시 그런 날로 돌아가보는건 어떨까! 암튼 이야기 오랜만에 같이 볼까? 아니 글에 오랜만이란 말이 몇 갠지 ㅎㅎㅎㅎ 그러니까 오랜만에 (ㅋㅋ) 시작! ________________ 어느 부대였는지는 밝히지 않을거야. 뭐가 좋다고 살인 사건 난 부대를 밝히겠냐.  09년도 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토요일 오전 시간, 짬 안되는 애들은 종교활동 가고 빠질대로 빠진 병장이었던 난 동기 새끼랑 그 당시 중대에서 유행하던 Bang! 이라는 카드 게임하다가 서로 멱살잡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10시 40분 쯤, 종교 활동이 끝나고 얘들이 슬슬 복귀하고 지들도 끼워달라고 징징대고, 창 밖에서는 연병장에서 1대대 새끼들이 욕짓거리 퍼부으며 축구하는소리가 들려오던, 평범하고 평화로운 주말이었어.  몇 시간 뒤, 부대가 발칵 뒤집어 지기 전 까지는.  오후 13시 경.  밥 먹기 싫어서 PX 에서 냉동 돌리고 있는데 있는데, 1대대 동기 놈이 나한테 이상한 소리를 하더라.  이번에 들어온 좀 정신 이상한 새끼가 있는데 이 새끼가 이젠 자해까지 하나 보더라고. 무슨 소린지 궁금하고, 심심하기도 해서 캐 물어보니까, 아까 축구하면서 봤더니 그 이등병 새끼 활동복이 존나 더럽더라는거야. 처음에는 그게 뭔지도 몰랐대. 그 당시 이등병들이 입던 활동복은 회색이었지만, 걘 전역한 병장한테 받은 주황색 활동복이었거든.  여튼, 활동복이 너무 더럽길래 뭐지 이 새끼 하면서 좀 빨아 처입으라고 갈구면서 잘 보니까 그게 피였다는겨. 그래서 축구하면서 어디 다친거 아니냐고 괜찮냐고 물어보니까 그 새끼가 이러더래.  안 다쳤습니다. 제 피 아닙니다.  1대대 동기놈은 고문관새끼 상대하기도 싫고 해서 아 그려.. 그럼 좆까라 하고 Px 에 냉동 돌리러 왓다가 날 만난거지.  낄낄대면서 그 새끼는 젖꼭지로 생리하는거 아니냐고 말하면서 PX를 나왔는데.. 헌병대 차량이 미친속도로 막사쪽으로 달려가는게 보이더라.  아마 시간이 13시 30분 근처였던걸로 기억난다. 생활관에 올라와보니 짬 있는 새끼 없는 새끼 할 것 없이 다 모여있더라고.  막내는 이동병력 찾아서 생활관 복귀 하시라고 온 사방 팔방 뛰면서 전파중이고, 영내 방송으로 계속 생활관 대기하라고 나오고 있고.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상황이 좀 이상하게 돌아간다 싶었는데 갑자기 간부들이 생활관을 돌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더라고. 헌혈증이 있는 사람들은 빨리 제출 해 달라고.  한 1시간 우당탕 쿠당탕 거리고 그 이후는 기분 나쁠 정도로 정적만 이어졌어. 근무 나가는 인원을 제외한 모든 인원 이동 통제가 하루 종일 이어졌지. X간부 애가 칼에 찔렸다는 이갸기를 들은 건, 석식 무렵에서였어. 범인이 즉시 잡혔다는 것과, 그 범인이란놈이 1대대 이등병 그 새끼였다는 것 역시.  그래. 그 미친 새끼는 종교활동이 끝난 후 인원이 다 빠져 나간 교회에서, 혼자 놀고있던 7살 짜리 간부 얘를 칼로 찍어 죽였던거야.  찔러 죽인게 아냐. 찍어 죽인거야. 특히, 목 주위를.  그리고 그 피가 튄 옷을 입은 채, 태연하게 중대원들이랑 축구를 했던거야.  그 이후로 주말이 어찌 지나갔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아. 다만, 조금이라도 기억나는 건 계속된 생활관 대기에도 불평하는 병사는 없었던 것과, 종종 간부가 와서 헌혈증 더 없냐고 물어보고, 가끔은 헌병대가 와서 상투적인 질문 몇 개 던지고 갔던가, 아니었던가...  그렇게 끔찍하게 조용했던 주말이 끝나고 일과는 평소처럼 이어졌다.  1대대를 제외한 모든 연대원들은 평소처럼 훈련도 하고, 작업도 하면서, 그렇게 또 3~4 일이 지나갔지.  그렇게 기분 나쁠 정도로 평범하고, 찝찝한 일상이 이어졌지. 몇일 후, 그 찔렸다는 간부의 아이는 결국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는 이야기가 들렸어.  병사들은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중대별로 부조금을 모아 간부들에게 제출했지. X 간부에게 전해달라면서.  그리고 또 몇일 후 우리 중대가 연병장에서 한참 차렷포 훈련을 하고 있을 때, 연병장 뒤편의 병사식당에서는 헌병대 주도 하에 현장 검증이 이루어 지던 참이었어. 중대원들 모두가 말은 안 했지만 훈련을 건겅건성하면서 흘긋거리며 그 장면을 훔쳐보기 바빴지.  그리고 현장검증의 자리에는 그 아이의 아버지였던 X간부도 참여중이었지.  간부, 병사가 모두 빠지고 아이들만 남는 시간을 체크하고.. 흉기로 사용할 칼을 보관하는 곳과, 그 보관대의 열쇠를 두는 곳을 확인하고, 취사병들이 막사로 복귀하는... ..그는 결국 그 현장을 끝까지 견디지 못했어.  사람이 짐승처럼 울부짖는다는 표현은, 더 할 것도, 뺄 것도 없는 표현이야.  x 간부는 소리내서 울면서 말로 변하지도 않는 고함을 외쳐댔지. 날뛰기 시작한 X 간부를 진정시키기 위해 헌병대들이 달려들었어.  난 그 광경을 도저히 끝까지 볼 수가 없었고, 훈련을 접기로 결정했지.  한참 이른 시간이지만 훈련을 접고 막사로 복귀했지만 중대장은 아무 말을 하지 않았지.  그걸로 끝이었어.  다시 훈련과 작업의 반복적인 일상으로 돌아갔지. x 간부는 그 이후로 보이질 않았지만, 누구도 그 일을 물어보거나 하진 않았어.  아무일도 없었던 것 마냥, 국방부 시계는 잘도 지나가더구만.  몇달 후, 전역하기 직전에서야 1대대 동기한테서, 그 미친 이등병 새끼가 왜 그딴 개같은 일을 저질렀는지, 들을 수 있었지. 그 어린 여자아리를 그렇게 끔찍하게 죽인 이유가 뭐였는지 아냐? 자기는 군대라는 감옥에 갇혀있는데, 자유롭게 웃고 뛰어노는 아이들이 너무 밉고, 증오스러워서 견딜수가 없었다더라.  그렇다더라.  자신보다 한참 어린데다, 피지도 못한 철 없는 아이를 죽이는데 그 이상의 이유가 필요 없었나봐.  다시 생각하니 또 속이 거북해지네.  제일 좆같은 건, 이게 진짜 괴담 따위가 아니라 내가 직접 보고 겪은 일이라는거지.  차라리 지어낸 괴담이었으면 좋았을 걸.  군대는 온갖 미친새끼들이 다 모여있는 곳이라는게 참 틀린 말은 아니더라고. [출처] 09년도 모동원사단 이등병 간부 자녀 살해 사건 __________________ 언제나 그렇듯 사람이 제일 무서운 거라고... 사람은 생각보다 너무 약하고 쉽게 죽잖아 근데 그렇다고 해서 사람을 죽이려는 생각을 보통은 품지 않는데 그런 생각을 품은 사람들이 있긴 하다는 게 너무 무서워 그 아이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계획까지 해서 죽이냐 정말... 세상엔 좋은 사람이 훨씬 많지만 이런 걸 볼때마다 인류애가 조금씩 사그라든다 ㅠ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이길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자살 사건.
1. 로널드 오퍼스의 죽음 1994년 3월 23일,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오퍼스라는 남자가 10층 아래로 투신했다. 기이하게도 그의 시체는 바닥에 떨어진게 아니라 8층에 쳐진 안전망에 걸쳐져 있었다. 이 건물에는 창문을 닦는 인부들을 위해 8층 높이에 안전망을 설치해 놓고 있었다. 안전망에 떨어진 사람이 과연 죽을 수 있을까? 경찰은 부검을 의뢰했다. 2. 타살로 밝혀지다. 부검 결과 오퍼스의 직접 사인은 머리를 관통하 라이플 총탄이었다. 즉, 그가 투신할 당시 머리를 관통한 총탄에 의해 이미 죽은 상태였다는 것이다. 혹시 자살을 가장한 타살은 아니었을까? 경찰은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투신할 지점을 비롯한 어느 곳에서도 핏자국은 발견되지 않았다. 3. 다시 자살로 바뀌는 증거 이때 그의 방에서 자필로 된 유서가 발견되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머리에 난 총상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가 자살하기 전에 라이플 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쏘고 떨어졌다면, 그 주변에 핏자국이나 흔적 혹은 라이플 총이 남아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따. 사건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4. 용의자로 떠오른 노인 사건을 추적해가던 경찰은 그날 놀라운 제보를 받았다. 바로 그 건물 9층에 살던 노부부의 집에서 총소리가 울려싸는 것이다. 조사를 해보니 실제로 그 집 바깥 창문이 깨져있었고 그 흔적은 총탄 구멍이었다. 이로써 사건의 실체가 드러났다. 오퍼스는 10층에서 뛰어내린 직후, 9층을 통과하는 순간 거기서 날아온 총탄에 머리를 맞은 것이다. 그 날 노부부는 심한 말다툼을 벌였는데, 이때 격분한 남편이 총을 들고 나와 부인에게 총을 쏘았고 그 총알이 부인을 빗나가 낙하하는 오퍼스의 머리를 맞힌 것이다. 우연치고는 정말 기막힌 우연이었고, 어차피 오퍼스는 자살을 위해 투신한게 아닌가? 그렇지만 우연히 총에 맞아 죽는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경찰의 생각은 달랐고 노인은 기소되었다. 5. 과실치사 혐의 문제는 사건 당시 8층에는 안전망이 쳐져 있었다는 것이다. 만약에 오퍼스가 머리에 총탄을 맞지 않았을 경우 그는 안전망에 의해 살아날 가능성이 높았다. 즉 자살 미수로 살수도 있었는데, 그 총탄으로 사망했으므로 9층 노부부 중 남편은 과실치사 혐의가 된다는 것이었다. 남편이 부인을 겨냥해 총을 쏘았더라도 만약 그게 부인에게 맞았을 경우 일급 살인이 되지만 부인을 빗나가 그 옆의 다른 사람이 맞았을 경우는 2급 살인 즉 과실치사가 되며, 이 사건의 경우로서 9층에 사는 노인은 과실치사 혐의가 적용된다는 것이다. 6. 사건은 다시 원점으로 경찰의 혐의 적용이 이렇게 풀려가자 그 노부부는 곧 자신들은 항상 그 총에 총탄을 넣어두지 않으며, 어떻게 그 총이 장전되어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그들에 따르면, 그들은 평소 부부싸움에는 항상 남편이 빈 총을 들고나와 부인에게 쏘는 시늉을 하면서 위협하는 등의 습관이 있었는데, 분명한 건 자신들이 결코 그 총에 탄환을 장전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는 총탄이 장전된 지 모르고 총을 발사했으므로 살해 의도가 전혀 없었으며 (일급 살인죄를 면함), 또 마침 오퍼스가 그 와중에 총탄을 맞았으므로 오퍼스는 사고사로 처리되어야지 자신이 살인죄를 적용받는 건 억울하다는 것이다. 경찰은 증거 불충분으로 노인을 풀어주고 수사를 재개했다. 7. 새로운 용의자의 등장 그렇다면 사건의 핵심은 누가 과연 그 총탄을 장전했다는 것인가? 그 총탄을 장전한 사람이 이번 사건의 유죄가 될 것이었다. 경찰은 수사 끝에 그 노부부의 아들 중 한 명이 사건 6주 전 총탄을 장전했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 아들은 직장에서 해고되고 어머니로부터 금전적인 도움을 외면당하게 되자 아버지의 습관 (어머니를 향해 빈 총을 발사하는 습관)을 떠올리고 어머니를 살해하기 위해 몰래 총탄을 집어넣은 것이다. 그런데 그 아들은 총탄을 장전한 지 6주가 지나도록 자신의 부모가 부부싸움을 하지 않고 어머니가 살해된 희망이 점점 없어지자 결국 절망한 채로 10층에서 자살하기로 한 것이다. 즉, 다시 말하자면 그 아들이 바로 자살한 로널드 오퍼스였던 것이다. 8. 그러나 사건은 조작되었다. 이 사건은 1994년 8월부터 전 미국에 퍼져 나갔으며, 한국의 TV에서도 방영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모두 거짓으로 밝혀졌으며 그 장본인은 바로 미국의 법의학자였다. . . . 로널드 오퍼스(Ronald Opus)는 투신자살하려다가 타인이 실수로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고 알려진 가상의 인물이다. 이 가상의 인물 이야기는 1987년 미국 법의학 학술대회에서 당시 회장이었던 돈 하퍼 밀스 (Don Harper Mills)가 학회의 만찬에서 한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 밀스는 살인 사건에서 고려할 법적 요소를 사람들이 흥미를 느끼고 생각하도록 이야기를 지어냈다고 밝혔다. 그는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실화로 생각하는 것에 약간 놀랐다고 밝혔다. 이 이야기는 1994년부터 미국에서 전세계로 실화처럼 퍼져 나갔고 그 이후로는 미국 밖에서도 인터넷뿐만 아니라 TV 및 영화에서까지 인용되었다. 가장 유명한 예는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매그놀리아>인데, 여기서는 주인공의 이름이 시드니 배린저로 나온다. 한국에서는 TV <서프라이즈>에서 이 이야기가 실제 있었던 일로 방송된 적이 있었으며, 아직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사건이 실제 일어난 일이라고 믿고 있다. 이 사건은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자살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세계를 떠돌고 있다. 모야 나도 이거 실화인줄 알고 있었음ㅋㅋㅋㅋㅋ ㄹㅇ 마지막이 찐 반전이넼ㅋㅋㅋㅋㅋㅋㅋ 심지어 꽤 자주 본 글이라 오홍이 했는뎈ㅋㅋㅋ 암튼 다시 읽어도 재밌어서 퍼옴 ㅇㅇ^^
군대실화) 본격 군대에서 축구하는 이야기
안녕하세요! optimic입니다. 누군가가 제게 그러셨죠. "이 분이라면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도 재밌게 쓰실 수 있을걸요?" 항상 마음에 담고 있었습니다. 껄껄... 그 말. 정말인지 확인해보기 위해! 제가 한 번 써보겠습니다. 바로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 ----------------------------------------------------- 나는 육군 출신이다. 육군이란 무엇인가. 밥 먹고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운동뿐이고, 운동 중에서 '축구'와 '족구'에 환장하는 종족. 첫 번째로 동명동 메시, 서초구 히바우두, 달서구 호날두 등등... 전국에서 숨어있던 동네 고수들이 몰려드는 곳이기도 하며. 두 번째. 축구라고는 맥주 한 잔 하면서 프리미어리그를 보며 입으로만 축구하는 남자들이 모이기도 하며. 마지막으로 태어나서 축구를 해본 적도 없는 부드러운 사내들이 모여 눈치를 보는 곳이기도 하다. 나는 저 세 부류들 중 1~2번에 속했다. 축구를 잘하지는 못했다. 중학교 때 축구보다 먼저 '슬램덩크'에 빠진 나는 열심히 농구만 했고, 고등학교 때는 농구를 열심히 했기 때문에 반강제로 골키퍼를 맡았다. 그렇게 대학생이 됐다. 국어국문학과.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많은 학과였고, 사지 멀쩡한 남자들은 체육대회 때 반강제로 축구를 해야 하는 곳이었다. 특히 내가 신입생이 됐을 때, 축구를 열심히 하며 체대생을 꿈꿨지만 부상으로 인해 축구 유망주를 접고 국문과에 입학한 예비역 선배 한 명과, 축구에 미쳐 학과 수업보다 축구를 더 사랑했던 선배 두 명이 날이면 날마다 축구를 할 수 있는 인원들을 모아 반강제로 축구를 시켰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나는 골키퍼를 열심히 하지 말았어야 했다. 단순히 과대라서 선배들에게 잘보이고 싶었던 나는 팔자에도 없는 다이빙을 열심히 하며 골키퍼를 했고, '너에게서 가능성을 봤다'며 축구 유망주를 꿈꿨던 그 선배는 시간날 때마다 나를 호출해 골키퍼 연습을 시켰다. 어찌 보면 고등학생 때까지 축구부에서 배웠던 사람에게 배웠으니, 나도 축구부 시스템으로 훈련받았던 게 아니었을까...? 그렇게 나는 방구석 입축구 전문가에서 국문과 골키퍼가 되었고, 선배들의 무수한 압박 속에 승부차기에서 두 골을 막아내며 국어국문학과가 공대를 꺾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입대한 군대. 그 중에서도 내가 나왔던 부대는 정말 공놀이에 미친 사람들 투성이었다. 군화도 제대로 신지 않은 채 차에서 내린 행보관님이 날렵한 몸놀림으로 족구장에서 서브를 꽂아넣고 하품을 하며 출근하기도 했고, 육중한 몸놀림으로 '훈련이나 받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중대장이 안정환처럼 수비수를 농락한 뒤 세레머니를 하기도 했다. 축구를 너무 하고 싶어서 부대원들과 간부들이 사이좋게 삽 한자루로 언덕을 깎아 평지를 만들고, 정성스럽게 철근을 용접해 부대 내에 풋살 경기장을 만들었던 미친놈들의 소굴이었다. 그리고. 우리 중대에는 '그 사람'이 있었다. 대한민국 프로축구. K-리그에서 유망주로 불리다 불행한 사건에 휘말려 일반 육군으로 입대한 프로 선수. 소속팀과 이름은 밝힐 수 없다는 점. 심지어 그 사람과 동반입대한 친구는 대한민국 프로 씨름선수 출신이었다. 아무도 그 둘에게 개길 수 없었다. 그 선임들이 일병 때였다. 나와 2개월 차이가 났기 때문에 나도 일병이었고, 자주 붙어다녔다. 그 당시 중대에서 운동을 좋아하고 격투기 좀 배웠다 싶은 선임들, 간부들이 모두 그 씨름선수에게 "야. 나랑 씨름 한 판 해보자. 나도 운동 좀 했다." 라고 말하며 도전장을 내밀었고, 그 선임은 넉살 좋게 웃으며 "에이. 진짜 다치십니다. 그럼 저는 프로 출신이니, 다리 하나를 들고 하겠습니다." 라고 하며 샅바를 잡았고, 그 선임은 그렇게 중대의 모든 도전자들을 다리 하나로만 들어서 넘겨버렸다. 그 때 뜨거운 햇볕만큼이나 그 선임의 만두귀는 강렬했고, 보여주기 위한 근육이 아닌 단단하게 들어차 있는 '실전압축근육'은 모든 중대원들에게 경외감을 심어주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만두귀는 피해다녀라' 라는 격언을 인생 좌우명으로 삼으며 살고 있다. 그리고 프로 출신 축구선수였던 그 선임. 군대는 전국 팔도에서 온갖 사람들이 다 모이기에, 축구를 배웠던 사람들, 유학을 다녀왔던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 선임은 어나더 레벨이었다. 프로 구단에서 훈련을 받고 경기를 뛰며 어느정도 촉망받던 유망주였던 그 선임. 미드필더로 이미 스무살의 나이에 1군에 출장한 진짜 '선수'. 티비에서 축구 중계를 할 때 나오던 그 선수.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물론 프로 선수였다는 것은 네이버에만 쳐도 다 나왔기 때문에 믿었지만, "제가 진짜로 하면 축구 재미 없어집니다." 라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대대 축구대회에서 대대 최강 7중대를 상대로 우리 8중대 대표로 나왔던 그 선임은, 후반전 때 팀이 1대 0으로 지고 있자 "하아..." 라는 긴 한숨을 쉬고는 우리 골키퍼에서 상대방 골키퍼까지 혼자 공을 몰고 돌파해 여유있게 두 골을 때려박고 대대 체육대회에서 8중대를 우승으로 올려놓았다. 긴 한숨을 쉬며 어이없다는 듯 그 선임을 쳐다보던 7중대장의 이마. 탈모가 시작된 그 넓은 이마에 맺힌 땀방울만큼이나 그는 빛났다. 적어도 그 때만큼은 그는 호날두였다. 우리중대 호날두...호우... 그 날 이후 우리 중대는 소위 말하는 '짬순'으로 축구를 하던 룰이 사라졌다. 병장이라고 공격수만 할 수 없었고, 이등병이라고 수비수만 하지 않았다. 모든 포지션과 전술은 그 선임이 말하는 대로만 이루어졌다. 그리고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다. 아마 그것은 그 선임 옆에서 듬직하게 지키고 있던 고향만두가 생각나는 귀를 가진 씨름선수 선임의 포스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이기자 역사상 최강의 동반입대병들의 포스는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그 선임들이 운동법과 축구에 관해서 이야기를 할 때는 모두가 경청했다. 사실 군대에 있으면서 어지간한 남자들은 몸 만드는 것과 축구에 목말라있었기 때문에 그 선임들이 하는 말들은 단순한 조언이 아닌 '프로 씨름선수의 피지컬 훈련'과 '프로 축구선수의 기본기 훈련'이었다. 유투브에서 해도 솔깃할 만한 달콤한 조언들 아니겠는가. 그리고 축구 대회가 진행될 때면. "오우. 중대장님 나이스!" "아 그래? 헤헤 성호야 나 잘했어?" 일병이 엄지를 들고 칭찬하면 대위가 쑥쓰러워하며 고마워하는 기상천외한 상황들이 연출됐다. "야. 너는 축구 한 번 배워봐라. 가능성 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오. 신체 밸런스가 괜찮은데? 들배지기 하나 알려주까?" "알려주시면 제 한 몸 씨름을 위해 쓰겠습니다!!!" 그 선임들이 툭 뱉는 칭찬은 후임들에게는 '프로 선수에게 인정받았다'라는 엄청난 동기부여를 주었고, 거의 모든 중대원들이 주말만 되면 오전에는 씨름과 웨이트 트레이닝, 오후에는 공을 들고 운동장을 누비는 광경이 연출됐다. 그렇게 중대원들 몸이 점점 구릿빛으로 진해질 무렵. 나는 상병이 됐다. "어이. 랩쟁이." 가끔 씨름선수였던 그 선임은, 사단 대표로 나가서 노래를 부르고 휴가를 받았던 나를 이렇게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나는 부끄러움이 많은 편이었다. "랩 한번 해보그라." "췍. 췍. 앰네ㅐ뤠눌내무랜ㅁ언ㅁ엉어단아ㅡㅏ 췍!" 그리고 부끄러움보다 만두귀의 공포가 더 많은 편이기도 했다. 그렇게 한 번씩 궁중 광대같은 생활을 하며 터미네이터들에게 예쁨을 받았고, 상병이 되고 그들이 고참이 됐을 때도 그들을 따라다녔다. 그렇게 우리가 상병일 때, 대대에서는 또 체육대회가 열렸고, 축구대회를 위해 선임들은 중대원을 호출했다. "니는 공은 잘 못차는데 달리기가 빠르네. 골키퍼 하지 말고 측면 공격수를 해라." "잘못들었습니다? 저... 저는 공을 잘..." "닥치고 그냥 공 받으면 앞으로 툭 차. 그리고 뛰어. 누가 붙으면 어깨로 밀어. 그리고 슛을 때리던 패스를 하던 알아서 해. 쉽지?" "...그게 축구 맞습니까?" "야씨. 그럼 내가 농구선수냐? 너넨 다 기본기가 부족해서 여러가지 시키면 안돼. 하라는 것만 해." 그렇게 나는 왼쪽 공격수가 됐다. 그 선임의 전술은 매우 간단했다. 한 명 한 명 불러서 뭔가를 주문했는데, 다들 엄청 쉬운 것들이었다. "측면 수비수는 측면 공격수한테 무조건 공을 차. 받아도 그만 못받아도 그만. 오케이?" "중앙 수비수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앞으로 뻥 차던가, 앞에 있는 나한테 주던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공격수는 기다리시면 됩니다. 어떻게든 제가 공 올려드릴테니까, 발만 대시면 됩니다." -끄덕. 공격수를 맡았던 소대장들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시작된 대대 축구대회. 수비수에 있던 씨름선수 선임과 중앙에서 모든 것을 진두지휘했던 프로선수 출신의 선임, 그리고 '우리는 프로들에게 훈련받았다'는 자부심으로 사기가 하늘을 찌르던 중대원들과 간부들. 우리는 파죽지세로 결승전까지 진출했고, 결승전에서 대대 최강이었던 7중대를 다시 만나게 됐다. 무난하게 우리가 이길 거라고 생각했던 결승전은 묘한 양상으로 흘러갔다. 애초에 우리가 연습한 것보다 7중대는 더 열심히 연습을 했었다. 이를 바득바득 갈던 7중대장은 축구대회 전부터 쥐잡듯이 중대원들을 훈련시켰고, 결승전에서 축구선수 선임에게 무려 4명을 붙여 꽁꽁 싸매는 전술을 들고 나왔다. '축구선수는 일반 게임에서 진지하게 뛰면 안된다'는 주의로 중앙에서 패스만 뿌려주던 선임과 실력이 부족한 8중대원들, 그에 비해 악에 받힌 채 뛰어다니던 7중대원들로 인해 경기는 0대0으로 팽팽하게 전반전 막바지까지 흘러갔다. 그렇게 전반전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패스가 최전방에 있던 소대장에게 흘러갔다. 센스있게 중앙에서 패스를 뿌려준 그 선임 덕분에 당시 중위였던 소대장은 마지막 슛을 날리게 됐고, 소대장은 힘차게 공을 찼다. -뚜둑! 공은 프리미어리그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궤적을 그리며 아름답게 골대로 빨려들어갔고, 우리는 환호성을 지르며 소대장에게 뛰어갔다. "와아!!! 소대장님!!! 대박!!!" 하면서 뛰어가던 우리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힘차게 공을 찼는데... '뻥'이 아니라... '뚜둑'...?" 그렇게 생각하며 소대장 쪽을 쳐다보자 "와아!!! 내가 골이다!!!" 라고 말하며 자리에 주저앉아 있는 소대장이 있었고, 축구선수 선임은 "아.. 십자인대 나갔네..." 라고 말하며 절래절래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전반전이 종료되고, 소대장은 대대 엠뷸런스를 타기 위해 들것에 실려나갔다. "내 인생 최고의 슛이었어." 라고 말하며 엄지를 세우던 소대장은 그렇게 엠뷸런스의 구슬픈 사이렌 소리와 함께 대대를 벗어났다. 그렇게 폭풍같던 전반전이 지난 다음 찾아온 후반전. "그러니까 조심 좀 하라니까는 소대장님. 어휴. 나와 이 새끼들아!" 후반전이 시작되자마자, 걸죽한 욕설과 함께 행보관이 공격수로 투입됐다. 장동건과 동갑이었지만 임하룡과 비슷한 연배의 얼굴을 소유한 행보관은 경기 시작부터 욕을 한 바가지로 퍼부으며 상대방 수비진을 농락했다. "나와! 다 뒤질래? 나와! 나오라고!" "7중대! 쫄지마! 얼굴만 늙었지 형이야! 쫄지말고 막아!" "아니 7중대장님 너무하십니다!" "행보관님 애들 겁주지 마세요!" 나름대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각종 예능축구들을 선보이던 행보관. 다행인지 불행인지 공격진에서 시끄럽게 해준 행보관 덕분에 후반전이 시작되고 얼마동안은 1:0이 유지됐다. 우리 수비진들은 평화롭게 산책을 했고, 예상 외의 행보관의 실력에 감탄하고 있었다. 10분동안만... "허억....허억... 아 씨바 힘들어..." 10분이 지나자마자 행보관의 체력은 거짓말처럼 급격하게 방전되기 시작했고, 우리는 위험한 한골 차 리드를 챙긴 채 아등바등 뛰고 있었다. 그리고 후반전이 끝나기 얼마 전. "어! 어! 씨바 비켜!" 축구선수 선임이 차올린 공이 정확히 행보관의 머리 위로 떨어졌고. -팡! -우당탕! 그 공은 정확히 행보관의 발등에 걸렸다. 무려 오버헤드킥. 행보관은 그 짧은 순간 육중한 몸을 띄워 공중에서 공을 차냈고, 공중에서의 임무를 무사히 마친 그의 무거운 몸은 중력과 함께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어..? 어...?" "와아아!!!!!! 행보관님!!!!!" 우리는 믿을 수 없이 멋진 골에 놀란 채 환호하며 흙바닥에 대자로 누워있는 행보관을 향해 달려들었다. "야! 야! 오지마! 이 씨바 오지마! 잠깐만! 진짜 야!" 행보관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지만, 아드레날린이 폭발한 우리들은 행보관 위로 올라타며 기쁨의 세레머니를 했고, 세레머니가 끝난 후 행보관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일어나지 못했다. "야. 소대장님 태우고 간 엠뷸런스... 복귀했으면 일로 오라그래라...빨리..." 그렇게 방금 부대로 복귀해 체육대회를 즐기고자 했던 의무병과 운전병은 다시 들것을 들고 뛰어왔고, 날렵했던 소대장과는 달리 100키로에 가까웠던 행보관을 들기 위해 들것에는 4명의 장정이 달라붙었다. -웨용 웨-용 웨-용 그렇게 행보관은 떠나갔다. 허리가 나갔다며... 엠뷸런스는 오늘따라 더욱 구슬프게 사이렌 소리를 두 번이나 내며 초가을 연병장 바닥에 타이어자국을 남긴 채 떠나갔고, 그렇게 우리 중대는 대대 축구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이 시발 간부가 둘이나 실려간 팀을 어떻게 이겨..." 오늘따라 더 휑해보이는 이마를 빛내며, 7중대장은 절규했다. 그렇게 요란한 금요일이 지나고, 주말이 지난 후. 행보관은 허리에 복대를 찬 채 복귀했다. '앞으로 축구하면 죽여버리겠다'며... 소대장은 돌아오지 못했다. 십자인대 파열로 병원에 입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은 우리 중대장. 기아 타이거즈의 광팬이며 사회인 야구단에서 오래 활동했던 우리 중대장은 "축구하다 사람이 왜 이렇게 다치냐. 당분간 축구는 금지한다." 라고 말하며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야구 글러브 10개를 부대로 주문했다. 그렇게 열심히 축구를 배우던 병사들과, 전직 프로 축구선수, 전직 씨름선수는 모두 4번타자를 꿈꾸며 배트를 휘둘렀고, 중대장은 매주 주말 환하게 웃으며 글러브를 들고 우리를 집합시켰다... ------------------------------끝 이상 군대에서 축구했던 이야기였습니다! 재미는 음... 어... 없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재밌게 읽어 주세요! 감사합니당!
옛날 톡톡 유명했던 일화.. 후..
안녕하세요 20대 중반 여자입니다. 제가 톡한지 얼마 안돼서 글을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지만너무 속상하고 어디다 풀데도 없어서아는 동생 아이디 빌려서 이렇게 씁니다.혹시라도 아는사람 나올까봐 동생아이디 빌린거니까동생 아는분은 오해하지말고 봐주세요.. 4년 사귄 남자친구가 있습니다.아니 있었습니다.근데 요근래 낌새가 이상하더라고요.. 발렌타인 때 초콜렛줘도 별로 좋아하는 기색도 없고영화보러가자 그랬더니 다른사람이랑 이미 봤다고 싫다그러고.. 너무 속상해서 전 언니에게 울면서 남친이 나한테 정이 떨어진거같다며 상담까지 했죠. 지금 생각하니 언니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우스웠을거같지만 전 정말 속상해서 언니에게 다 털어놨어요. 근데 10일쯤인가 남친이 헤어지자고 하더라고요. 사실 조금 낌새가 이상해서 그럴 줄 알았거든요. 그래도 우리 4년동안 사겼는데 안믿겼죠. 서로가 서로에게 정말 연인이기도 하지만 베스트 프랜드였거든요. 이렇게 쉽게 끝낼 순 없어서 붙잡고 울고불고 했는데... 집에 와서 언니에게 엉엉 울며불며 미친듯이 울자 달래주던우리 착한 천사표 언니!! 헤어지고 몇일 후 밥먹고 멍하니 앉아있는데언니가 슬며시 오더니 "언니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넌 언니 편이지?" 라더라고요.. 전 당연히 하나뿐인 언니인데 그럼 뭔짓을 해도 용서할 수 있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에 "응" 이라면서 우리 언니를 보는데 언니가 제 남친이랑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다더라구요 서로? 하하... 그러면서 절 붙들고 울고 불고"언니가 미안해 근데 우리 둘이 너무 사랑해.." 감정이 싹튼지는 3달이 넘었다더라고요. 그 말하고 언니는 제 전 남친이랑 술마신다고 나가고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까 너무 어이가 없어서 지금 웃음밖에 안나오더군요. 그렇게 어이없게 있는데 마침 아빠한테 전화가 오더군요. 전 무슨 정신에 어떤 얘길 했는지도 생각안나지만.. 아빠는 남자친구 얼굴을 알거든요.. 집에 몇번 놀러왔고 오래사겼으니까.. 아빠랑 얘기를 하는데 말도 안나오고 아빠부르면서 우니까 깜짝놀라서 **(남친이름)때문에 우냐고, 그 나쁜놈보다 더 좋은 놈 만날꺼라고, 너 버리고 간 여자도 분명 거지같을꺼라고 나를 위로해주길래 가만히 있다가 제가 "그 여자가 우리언니래. 3달전부터 좋은감정 가지고 만나고 있었대. 나 어떻게 하지 아빠 내 맘알지" 이러면서 울었어요.. 아버지 가만히 있으시다가 니 언니 지금 어디있냐고 물어서 울면서 "지금 남자친구랑 같이 술마시고 있어." 라고 말하니까 일단 저보고 너 지금 이상한 생각하지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시길래 계속 "내가 못나서 내가 못나서" 하고 막 울었네요.. 아빤 저보고 니가 못난게 뭐냐고 지금 일단 진정하고 아빠엄마가 집으로 갈께 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오시는 도중에 아마 언니에게 전화하셨겠죠. 그날 엄마아빠가 집에 들어와서 저를 앉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서 사정을 이야기했어요. 엄마아빠도 어이가 없는지 한숨만 쉬시는데 초인종이 울려서 일단 모두 나가보니 언니가 아닌 남친이 왔더라구요. 절보고 일을 어떻게 이렇게 크게 만들수 있냐면서 중얼거리는걸 아버지가 듣고 소리를 지르는데언니가 울었는지 눈 빨개져서 남친에게 이끌려 오더군요. 그때 순간 너무 속상해서 아무리 일이 이렇게 되었지만 이 집에 내 앞에 어떻게 남친을 데려올수 있는지 그래서 서러워서 울었어요. 친구들이 이럴 때일수록 머리쓰고 교묘하게 잘해야한다는 말도 기억안나고 그냥 서러워서 울고 꺼지라고 욕하니까 언니도 같이 울면서 사랑하는데 어떡하냐고 사람 마음이 맘대로되는게 아니라고 우는데 그냥 뭐라고 해야할 말도 없어서 그냥 입밖으로 나오는 욕을 그대로 했어요. 그러니까 남친이 언니편을 들더라구요. 지가 뭘 잘했다고 나한테 그러는지 소리지르면서 자기가 먼저 마음이 가서 그런거니까 언니 욕하지 말라고. 그런 얘길 하는도중에 아빠가 일단 남자친구를 보냈어요. 꼴도보기싫으니까 당장 꺼지라는식으로. 그리고 남친따라 같이 가려는 언니를 집안으로 불렀는데, 언니가 죽어도 남자친구랑 못 헤어지겠다그러네요. 그래놓고 둘 사이를 허락해 줄 때까지 금식을 한다나 뭘한다나.. 웃기는게 저를 제 3자로 만들어 놓고 그저 부모님에게만 허락받으려고 안달인거예요. 듣고있기 뭣같아서 내 생각은 안하냐고 이야기했더니 "언니가 진짜 미안한데 일단 너는 잠시 뒤에있다 이야기 하면 안돼겠니?" 이해가 가나요? 저는 도저히 이해가안가는 상황이라 말도 안나왔죠. 엄마가 우리는 제 3자라고.. 동생한테 용서부터 구하라고 화내니까 그제서야 중얼중얼 변명하던데 다 쓰기도 구질구질하네요. 아빠가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말라고, 한 발자국만 나가면 너 내 딸아니라고 하는데 저한테 울고불고 제 방에서 지랄떠는거 하루간 무시했더니 A4용지에 뭐라뭐라 써놓고 집을 나가버렸어요. 그래도 가족이라고 연락도 없이 안들어 오니까 걱정하고 있었는데 이렇게까지 만들어서 이제 기분편하냐고 독하다는식의 문자를 보내네요.그래도 딸이라고 계속 안들어오는 언니 때문에 걱정인지 아버지는 모르겠고 어머니가 은근슬쩍 눈치를 주네요. 용서하라는게 아니라 일단 니가 먼저 전화를 해보라는 식으로 언질하시는거 보니까. 참 이렇게 글 쓰는것 보니 두서도 없네요. 계속 언니는 전남친이랑 집을 나갔고, 엄마는 은근슬쩍 연락해보라고 저를 찌르고 아빠는 화가나서 아무말도 안하고. 집안이 살얼음판.. 이젠 정말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정말 저도 속상해 죽고싶어요.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게 거짓말과 불륜이예요. 아빠가 단단히 화난 것 같은데 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네요. 주변 친구랑 또 언니친구 한 명은 이 이야기의 전부를 알고 있어서 주변에는 이미 소문이 조금 돈 모양인데 주변에 소문이 어떻게 퍼져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엄마한테 언니한테 온 문자보여주고 너무 화가나서 나 죽는 꼴 보기 싫으면 거기서 그만 말하라고 해버렸어요. 그러니까 아빠가 왜그러냐고 해서 이야기 하니까 엄마보고 뭐라고 한 것 같은데 나보고도 일단 진정하라고... 제가 너무 흥분해서 절보고 지금 뭐라뭐라 하시는데, 아빠도 언니 걱정이 더 먼저인것같아요. 다른 분들이 보시기에 이 상황이 지금 제가 냉정을 유지하고 진정할 상황인가요?정말 서러워서 살기싫어요. 맨날 저만 악역이고 피해를 보더라도다 받아줘야 하는 상황으로 만드는 이 집안 꼴이 싫어요. 언니는 계속 술퍼먹고'일 이렇게 만드니까 좋냐 독한년' 이렇게 문자하고 언니가 보낸 문자를 받고 충격이였어요. "독한년" 이라니- 평소 다정하고 상냥하던 언니였기에 정말 배신감밖에 안느껴지더군요. 한편으론 착한언니를 가로채간 그 놈이 미워요. 이젠 언니가 제 착하고 상냥하고 절 보듬어주던 언니가 맞는지 그것도 모르겠고요.. 문자를 보여주고 제가 힘들어하니 엄마의 채근거리는건 일단 일단락되었지만.. 문열고 일단 밥부터 먹으라는거 무시하고 소리지르면서 울어대며 부모님 가슴에 피멍들게 했지만 그 전에 제가 미친년이고 불효녀라도 제가 못살 것 같아서 밥 생각도 안나고 그러네요. 게다가 엄마가 언니한테 전화한 것 같던데 언니 남자친구 자취방에 있는 것 같아요. 정말 언니가 제 친언니가 맞는지 이게 진짜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 이젠 지치고 학이 떼이네요. 차라리 둘이 모텔에 들어있다는게 덜 충격적이였을텐데 자취방에 있네요. 정말 언니가 제 정신일까 정말 무슨생각인지 묻고 싶어요. 진짜 왜 저러는거야 도대체.. 지금은 언니랑 전 남친 얼굴 꼴이 보기싫어서 어떻게 이 상황을 끝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곰곰히 생각해보니 평생 얼굴 안보고 살수도 없는 일이고 또 이 일은 아무렇지도 않게 묻어가겠지요. 답답하네요. 일단 친한 친구들하고 언니랑 제 얘기를 아는 언니에게 얘기는 다 해놨는데... 정말 어떻게 해야할지.. 이 글도 정말 힘들게 썼어요.. 제가 지금 제정신인지도 모르겠네요.. 너무 힘들어서 죽고싶어요.. 살고싶지않아요.. 이젠. 언니 만큼은 믿었는데.. 4년 동안 저하고 전 남친 하고 사귀는거 다 보고 들은 언닌데.. 어떻게 이럴수가 있죠? 그래도 익명으로라도 글 쓸 수 있어서 조금이라도 기분은 나아지는것 같지만 정말.. 생각할수록 가슴이 막막하네요.. 차라리 언니가 아니라 모르는 여자였으면 좋겠어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처 오랜만에 읽어보는데도 굉장히 충격적인 내용... 동생이 입양아라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군요... 어휴.. 저러고도 잘 살거라고 생각하나.. 어디선가 "인과응보란 시차는 있어도 오차는 없다."라는 글을 읽었는데 분명 꼭 벌을 받으리라.. 믿습니다.
벽지 안쪽 확인 해본 사람?
사실 벽지는 빛깔만 이쁘면 됐지, 무슨 상관이겠어. 그런데 나한테는 안 좋은 기억이 있거든. 오늘따라 문뜩 떠오르네. 그때는 내가 새내기였던 14년도였어. 집이 조금 멀기도 하고 자취 한 번 해보고 싶어서 2월 초부터 열심히 원룸가를 돌아다녔어. 그런데 집을 구한다는게 썩 쉬운일이 아니더라구. 월세가 싸면 대학이랑 멀고. 대학이랑 가까우면 비싸고. 가까운데 월세가 싸면 벌래가 나오더라. '이러다가 영락없이 1시간짜리 통학하겠네' 싶을 무렵, B원룸을 찾았어. 월세는 20만원밖에 안됐고, 학교하고는 어찌나 가까운지 비비탄총을 쏘면 강의실까지 닿을 것 같았어. 벌래? 도배까지 새로 싹 해서 그렇게 깔끔한데 나올리가 있나. 그래, 지금 생각해보니 그 방만 유난히 도배를 새로 했더라고. 그 당시의 나는 호구처럼 순삭간에 싸인했고, 짐을 풀었지. 그때에도 꿈자리가 조금 뒤숭숭하거나, 깨고나면 몸이 찌뿌둥하긴 했어. 특히 술 마시고 들어온 날은 다음날 내가 반죽음이 되어있더라고. 숙취가 심했거니 하고 무시하긴 했지만 말이야. 진짜 문제는 개강총회날에 일어났어. 나는 유난히 들떠서 평소 주량보다 조금 많이 마셨었지. 그래도 정신머리는 붙어있어서, 용캐도 집까지 걸어들어왔어. 그런데 문을 연 순간, 갑자기 구역질이 나오는거야. 난 처음엔 술때문인줄 알았어. 하지만 고작 그런 이유는 절대 아니었지. 혹시 심령사진 본 사람있어? 그냥 분위기만 무서운 사진 말고. 보는 순간 등줄기에 소름이 돋고 사진 전체가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 사진 말이야. 내 방 안을 보는 순간 그런 경험을 했어. 방 전체가 일그러져 보이고, 서있으려는 다리가 자꾸 풀리는거야. 그리고 조금씩 짙어지는 역한 냄새가 있었어. 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기억해. 비릿하면서도 냉장고에 오래 방치된 살코기 같은? 하지만 피냄새는 아니었어. 정신이 바짝 들더라고. 술? 그딴건 진작에 깨버렸지. 나는 뒷걸음질 쳐서 원룸 밖으로 나왔어. 그리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한 까치를 꺼내 물었지. 그때는 팔리아멘트를 피웠는데, 호흡이 다급하니까 망할게 엄청 안 빨리더라고. 그렇게 한 개피 태우고 내 방으로 올라갔는데, 여전히 그 염병할 냄새가 나더라. 무슨 깡이었는지는 몰라.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갔어. 처음 가진 내 집이라서 그랬나봐. 그리고 코를 킁킁거렸어. 증거를 찾고 싶었어. 분명 내가 짬을 안 버려서 냄새가 나는 걸 꺼라고 생각했어. 만약 그런게 아니면... 진짜 귀신이 있다는뜻이잖아. 미칠 것 같더라고. 그런데 그 냄새는 사방에서 나는거야. 정확히는 벽에서 나고 있었어. 사방의 벽에서. 나도 미쳤지, 부엌에서 칼 하나를 가져와서 책장 뒤편의 벽지에 칼질을 했어. 분명 이 뒤에 뭔가가 있는 것 같았거든. 그리고 내 생각이 맞았어. 시맨트 바닥이니까 회색일줄 알았는데, 뭔가 붉은 면이 있더라고. 보는 순간 느낌이 왔어. '아, 이게 원인이구나.' 그래서 칼질을 조금 더 넓게 해봤어 그땐 뭐 별다른 생각이 없었어. '시발 벽지 까짓거 물어주면 되지' 싶더라고. 그런대 그 붉은 색이 그냥 면이 아니라 한자더라? 무슨 한잔지는 모르겠는데, 뭐 한자 생긴거 뻔하잖아. 벽면이 부적인 것처럼 붉게 적혀있었어. 또 손이 떨리더라고. 하필 칼을 들고 있으니까 오죽하겠어. 나는 미친놈처럼 벽 한 면에 붙은 벽지를 칼로 뜯어냈어. 그러고 나서 보니 벽면 전체에 빼곡하게 붉은 한자가 적혀있었어. '아 여기 있으면 안되겠다' 싶어서 칼 떨어뜨리고 뛰쳐나왔어. 다리가 다 후들거리더라. 그날 밤은 과방에서 보냈어. 다음 날 주인 아줌마한테 연락했지, 방 뺀다고. 그 씨발년은 다 알면서도 나한테 세놨더라. 깽판칠려다가 도배값은 지가 낸다고 해서 말았어. 뭐... 그 후부터는 졸업할 때까지 통학했지. 다시는 모르는 벽에 기대서 자고 싶지 않더라. 지금은 직장때문에 어쩔 수 없어 원룸에서 살고 있는데, 주인 몰래 벽지 살짝 뜯어서 확인해보고 계약했어. 그때처럼 한자가 붉게 세겨진 원룸은 거의 없더라 ㅋㅋ 근데 있긴 했어. 출처) 마지막 줄 너무 무섭잖아요 있긴 했어라니ㅠㅠㅠㅠㅠㅠㅠㅠ 이사갈 때 벽지 조금씩 뜯어봐야 하나요................
50대 악마에 5년간 성폭행 당한 20대 여성의 ‘지옥같은 삶’
지난달 27일 경찰서로 뛰어 들어온 한 여성이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눈물범벅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아가씨.” 형사들의 거듭된 질문에 박은경(가명·27) 씨는 “저를… 저를…죽이려 해요”라며 1시간 가까이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그녀의 휴대전화가 쉬지 않고 울렸다. 형사들의 설득에 가까스로 전화를 받았다. “어디야!” 스피커폰으로 굵은 저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4년 8개월 동안 성폭행을 당했지만 도저히 신고할 엄두를 못 냈던 그 사람, 이경수(가명·55)였다. 신고 후 일주일 만인 6일. 어렵게 인터뷰에 응한 박 씨는 우윳빛 피부에 단아한 외모였다. 대학 시절 그녀의 꿈은 스튜어디스였다. 5년 전 항공사 면접을 앞두고 찍은 이력서 사진은 이제 경찰서 조사 서류에 붙어 있었다. 담당형사는 “지금도 예쁘지만 그땐 정말 티 없이 맑은 아가씨였네”라며 혀를 찼다. 지난 5년간 그녀에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 ‘친절한 아저씨’와의 만남 두 사람의 악연이 시작된 것은 2006년 여름. 박 씨는 외국인들이 많이 오는 한 지역축제에서 영어통역 봉사를 하고 있었다. 말을 타고 해변을 오가던 이 씨가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젊은 사람이 참 성실하네. 수양딸 삼고 싶어.” 박 씨는 “머리가 벗어지고 얼굴이 쭈글쭈글한 게 딱 봐도 할아버지였다”고 그의 첫인상을 떠올렸다. 그래도 동네 주민의 호의려니 생각한 박 씨는 부담 없이 마음을 열었다. 박 씨가 어학연수를 마치고 돌아와 취업 준비를 위해 통역 봉사를 하게 됐다는 걸 파악한 이 씨는 “대기업 임원 친구들을 소개해 주겠다”며 저녁 식사자리에 초대했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 이 씨는 갑자기 모텔 앞에 차를 세우고 문을 잠그더니 17cm 회칼을 꺼냈다. 성폭행을 한 뒤엔 휴대전화로 촬영한 나체 사진을 보여주며 “신고하면 네 엄마 아빠한테 사진 보내고 몰살해버리겠다”고 말했다. 단 하루의 악몽이길 바랐지만 그게 시작이었다. 박 씨가 취업 준비를 위해 고향을 떠나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가 연락을 피하자 이 씨는 고시원 앞까지 찾아오기 시작했다. 박 씨는 그 와중에도 토익 점수를 만점 가까이로 올리고 회계관리사 등 7개의 자격증도 땄다. 대학을 수석 졸업한 박 씨는 고향에 있는 초봉 3500만 원의 유명 공기업에 취직했다. 하지만 이 씨는 “어렵게 들어간 회사 못 다니게 하겠다”며 박 씨를 협박해 휴일마다 자기 집으로 불러 성폭행했다. 몸부림치며 저항하면 방 안에 있는 비상탈출용 완강기 줄로 목을 조르며 “목숨으로 사랑을 맹세하라”고 강요했다. 또 “같이 죽자”며 각자 한 손씩 손수건으로 묶은 뒤 저수지로 끌고 들어가 익사 직전까지 갔다 낚시꾼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지기도 했다. 그때마다 박 씨는 “살려주면 시키는 대로 하겠다”며 애원했다. 정말 죽을 수 있겠다는 공포가 매번 신고할 용기를 꺾었다. 직장 동료들은 금요일이 되면 화색이 돌았지만 박 씨는 목요일부터 두통에 시달렸다. 회사에 안 가는 공휴일, 명절도 마찬가지였다. “달력을 펼쳤는데 그달에 공휴일이 많으면 정말 죽고 싶었어요.” 평일에도 자유는 없었다. 오전 8시와 점심 식사 후 낮 12시 반, 퇴근 무렵인 오후 5시 반, 자기 전인 오후 9시 반, 휴대전화에선 알람이 울렸다. 하루 4차례 중 한 번이라도 전화를 빼먹으면 그녀의 집까지 달려와 밤새 괴롭혔기 때문이다. ○ 그렇게 당하면서 왜 신고도 못 했냐고요? 지옥이 시작된 지 1년쯤 되던 날, 박 씨는 단짝 친구에게서 자신처럼 성폭행을 당한 후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 친구와 함께라면 신고할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친구가 먼저 신고를 하자 경찰은 범인을 체포해 피해여성 8명을 추가로 밝혀냈다. 하지만 그들은 경찰의 진술 요청에 하나같이 “기억이 안 난다”며 거부했다. 결국 범인은 징역 2년의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 박 씨는 이 씨를 경찰에 신고해도 잠깐 잡혀 있다 다시 나와 반드시 보복할 것이란 생각에 또 용기를 접었다. 이 씨는 종종 자신의 동창 모임에 박 씨를 데리고 갔다. 그러곤 “내 마누라야. 영계랑 사는 게 부럽지”라고 자랑했다. 그때마다 박 씨는 죽고 싶을 만큼 치욕을 느꼈다. 하루는 이 씨의 ‘50년 친구’라는 사람이 조용히 박 씨를 불렀다. “앞길이 창창한 처녀가 왜 이러고 사니. 내가 네 아버지라면 지금 당장 저놈을 죽여버릴 거야.” 박 씨가 눈물을 흘리며 “가족을 다 죽이겠다는데 어떻게 신고해요”라고 하자 그는 “그럼 이렇게 계속 살래? 죽을 때 죽더라도 신고해서 잠시라도 편하게 사는 게 낫잖아”라고 했다. 그 사람 말처럼 박 씨도 수없이 신고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끝내 단념하게 만드는 건 ‘엄마’였다. 박 씨가 대학 1학년 때 엄마는 아버지와 이혼하고 경남의 한 소도시에서 홀로 살았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박 씨는 매달 생활비와 한약을 지어 보냈다. “대학 수석 졸업하고 좋은 데 취직한 효녀라고 주변 분들에게 그렇게 자랑을 하셨어요. 근데 제 상황을 아시면…제가 엄마한테 어떻게 그 얘기를….” 박 씨는 내내 침착하게 과거를 얘기했지만 엄마 얘기가 나오면 목이 메었다. 그 효심이 박 씨에겐 아킬레스건이었다. 이 씨는 그녀가 연락을 피할 때마다 그녀의 엄마가 사는 도시로 내려가 해당 지역번호인 0××가 찍히도록 전화를 걸었다. “지금 네 엄마 집 앞인데 쇠망치로 대가리를 부숴 버리겠다”고 협박했다. 이 씨는 늘 회칼과 손잡이 부분에 붕대가 감긴 30cm 길이의 무거운 쇠망치를 가지고 다녔다. 침대 머리맡에 있던 공기총도 수시로 꺼내 겨누곤 했다. 마음을 굳게 먹었다가도 박 씨는 “제발 엄마는 건드리지 마라” 하고 사정해야 했다. 그렇게 억지로 만난 날 밤이면 박 씨는 옆에서 코를 골며 자는 그의 얼굴을 보며 손잡이 붕대가 누렇게 된 쇠망치를 수없이 들었다 놓았다. 박 씨를 만나기 전 이 씨에겐 강간치상 등 6번의 전과가 있었다. 이 씨는 이혼한 전처와 그 이혼을 도와준 처남을 죽이겠다며 칼로 협박하다 2008년 7월 다시 수감됐다. 그는 교도소에 가면서 “미행 붙여놨으니 다른 남자 만날 생각하지 말고 면회와 편지를 꼬박꼬박 하지 않으면 나와서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박 씨에겐 빈말이 아니었다. 이 씨는 전처와 처남을 죽이기 위해 공기총과 청산가리를 구하러 갈 때마다 박 씨를 데리고 다녔다. “너도 반항하면 이걸로 죽는다”며 겁을 줬다. 결국 이 씨가 수감된 10개월 동안 그녀는 매달 2, 3차례 면회를 가고 매주 2통씩 편지를 써야 했다. 이 씨는 철저하고 집요했다. 교도관이 배치된 감옥 면회장에선 박 씨를 부드럽게 대했다. 그러나 그는 출소하던 날 “저번에 보니까 가방도 없이 왔던데 어디서 어떤 놈 만나고 있다가 슬쩍 와가지고 가식을 떠느냐”며 주먹을 휘둘렀다. 박 씨는 고막이 터져 두 달간 치료를 받았다. ○ 자살해 버리겠다는 말에 “기다리자…” 2009년 5월 출소한 이 씨는 “나를 감옥에 보낸 전처와 처남을 죽이고 나도 자살하겠다”고 버릇처럼 말했다. 당뇨로 체중이 20kg 이상 줄고 이도 대부분 빠졌지만 살인 계획에만 몰두했다. 주말에 그의 집에 가면 일주일 동안 혼자 끼적인 메모가 수십 장 쌓여 있었다. “최대한 악랄하고 결단력 있게 계획을 끝내야 한다”며 스스로 다짐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하루 종일 공기총 사격 연습을 해 손가락에 박인 굳은살과 캡슐에 담은 청산가리를 보여줬다. 박 씨는 “아무 희망도 없고 무서울 게 없는 사람이라 언제든 말을 실행으로 옮길 것 같아 신고할 엄두를 못 냈다”고 했다. 신고도 못하고 직접 죽이지도 못하니 박 씨는 그가 자살하겠다고 한 ‘그날’이 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올여름까지’라던 ‘그날’은 그해 말, 이듬해 여름으로 계속 미뤄졌다. 그 무렵 이 씨는 화투에 몰두했고 박 씨에게서 도박 자금으로 4000만 원을 뜯어 갔다. 힘들게 일해 번 돈이었지만 이 씨가 화투를 치러 가 있을 땐 잠깐이나마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어 차라리 나았다. 그가 해수욕장 인근 도박장에 있는 동안 박 씨는 여행객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가족들끼리 친구들끼리 큰 소리로 웃으면서 물놀이하는 게 너무 부러웠어요. 나는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있는데….” 도박장에서 파출소까지는 불과 150m 거리였다. 이 씨가 “이번 계획은 진짜”라고 약속한 날을 하루 앞둔 지난달 27일. 박 씨는 조심스럽게 이 씨에게 말을 꺼냈다. “2월이 다 가는데 언제 정리가 되는 거야?” 하지만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 씨는 “넌 내가 죽기를 바라는 거냐”며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곤 회칼과 쇠망치를 가져왔다. 떨리는 손으로 금고 비밀번호를 눌러 공기총도 꺼냈다. 이 씨는 숫돌에 칼을 갈며 “그동안 아주 가식을 떨었구나. 오늘 너부터 죽인다.” 읊조리듯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살기가 서려 있었다. 박 씨가 방을 나가려 하자 이 씨는 그녀의 머리채를 잡고 쇠망치로 머리를 내리치려 했다. 허벅지에 이미 한 대를 맞은 박 씨는 망치를 든 이 씨의 손을 잡았다. 혹시나 칼로 바꿔 잡을까 봐 20분 넘게 죽을힘을 다해 버텼다. 흉기를 내려놓은 이 씨는 “저수지로 죽으러 가자”며 집을 나섰다. 그는 대문 앞에 묶여 있던 강아지의 머리를 쇠망치로 내리쳤다. 목이 돌아간 강아지의 입에서 비명소리가 났다. 저수지를 100여 m 앞두고 차 옆자리에 있던 이 씨가 담배를 사겠다며 내렸다. 앉았던 자리에는 쇠망치와 회칼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이 씨가 편의점에 들어가는 걸 본 박 씨는 핸들을 틀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택시를 잡아타고 쫓아올까 봐 신호도 무시하고 10여 분을 무작정 달렸다. 경찰서에 들어서자 박 씨는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경찰이 이 씨의 위치를 파악해 도착한 곳은 평소 그가 고스톱을 치던 민박집이었다. 담배를 물고 패를 살펴보던 이 씨는 그 자리에서 체포돼 구속됐다. 도망친 박 씨가 경찰에 신고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 신고는 했지만… 경찰 신고 후 그가 없는 첫 주말. 박 씨는 친구를 만났다. 5년 만에 처음 맛보는 자유였다. 하지만 떠나지 않는 그놈 목소리. 그는 아직 곁에 있다. 이 씨가 쇠망치로 머리를 내리치는 악몽을 매일 꾸고 초인종이나 전화벨이 울리면 심장이 미친 듯 뛴다. 공포의 끈질김. 악몽 속에선 단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 박 씨는 “출소하면 어떻게든 나와 가족들을 찾아내 죽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민을 갈까 했지만 혼자 도망친다고 될 문제가 아니었다. 박 씨는 4년째 다닌 직장을 그만두고 경찰이 되기로 결심했다. “하루 종일 경찰서에 있을 수 있잖아요. 총을 소지할 수 있는 유일하게 합법적인 방법이고.” 잃어버린 5년의 세월도 엄마에게 털어놓을 생각이다. 출소에 대비해 거처를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엄마가 피눈물을 흘리시겠지만 결국 얘기하게 될 것을…. 누군가 저 같은 처지에 있다면 공포의 덫에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언제나 현실이 소설보다 영화보다 무섭죠 너무 무서운 일이 현실이었다니ㅠㅠㅠㅠ 지금은 행복하게 지내고 계시길 바랍니다ㅠㅠㅠㅠㅠ
[퍼오는 귀신썰] 밤의 낚시터에서 만난 노인
지금으로부터 3년 정도 전의 이야기다. 당시 나는 구마모토현의 어느 중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었다. 그 곳은 대단한 시골로, 전교생 수가 백명도 안 되는 매우 작은 학교였다. 도쿄 토박이었던 나에게 큐슈로 이사 가는 것은 불안한 일이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타지에서 온 나에게 무척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요리를 잘 못하는 나를 위해 반찬을 가져다 준다거나, 마을 잔치에 초대해주는 등 많은 배려를 받았다. 그 덕에 어느 정도 불편한 것은 있었지만, 마음만큼은 도쿄보다 즐거웠었다. 그리고 부임한 지 2년 정도 되자, 나도 어느새 꽤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다. 도시에서 즐길 수 있는 것들은 없지만, 시골에서는 그 나름대로 즐거운 것들이 얼마든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산에서 노는 법을 가르쳐 준 것은 학생들이었다. 도시의 아이들과는 달리, 그 아이들은 대부분 일년 내내 산에서 놀고 있었다. 물론 도시 아이들처럼 야구나 축구를 하기도 하고, 비디오 게임도 즐겨 했었다. 하지만 비중으로 따지면 단연 산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이 가장 많았다. 처음에 나는 아이들끼리 산에 가면 위험하지 않나 생각했다. 그렇지만 주변의 선생님이나 학부모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도시에서만 살던 나에게는 이 곳이 위험한지 아닌지 전혀 판단이 서지 않았지만, 학생들은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함께 산에 가서도 [선생님, 그 쪽은 위험해요.] , [헤엄은 여기서만 쳐야 되요.] 라고 한 수 배웠을 정도였다. 내가 학생들에게 배운 것 중 특히 놀라웠던 것은 낚시였다. 아이들은 스스로 대나무를 자르고, 낚싯대를 만들었다. 시냇가에서의 낚시는 금새 나를 매료시켰다. 나는 거의 매일 학교가 끝나면 산기슭의 시냇가로 나가 낚싯줄을 늘어트렸다. 처음에는 미끼를 끼우는 것도 힘들어했지만, 점점 물고기를 낚는 맛에 빠지기 시작했다. 나는 학생들이 놀랄 정도로 낚시에 빠졌다. 낚은 물고기는 그 자리에서 잡아서 모닥불에 구워먹었다. 은어 같은 물고기는 민물고기 특유의 냄새도 없어서 매우 맛있었다. 여름도 반쯤 지나가고, 추석이 막 지나갔을 무렵이었다. 나는 평소처럼 시냇가에 나가 평소보다 상류로 올라갔다. 학생들은 상류로 올라가는 것은 꺼리고 있었지만, 그 때 나는 등산 장비들을 모두 갖추고 있었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걷기 시작하고 1시간 정도 지났을 때, 나는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강을 거슬러 상류로 올라가는 사이, 어느새인가 안개가 끼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지금까지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짙어서, 팔꿈치 아래 쪽은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을 무렵에는, 이미 해가 기울고 있었다. 어둠이 찾아오는 것은 금방이었다. 금새 산에 내리쬐던 햇빛은 사라지고, 갑자기 공기가 차가워졌다. 그런데도 변함 없이 안개는 짙게 끼어 있었다. 어떻게든 돌아갈까 생각도 했지만, 나는 섣불리 안개 속을 움직이지는 않기로 했다. 큐슈에는 곰 같은 큰 육식 동물이 없다. 비록 여기서 밤을 새더라도 짐승에게 습격당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다행히 나는 장비를 제대로 챙겨오고 있었다. 낚시도구 뿐 아니라 전기 랜턴도 가져왔던 것이다. 나는 산에서 하루를 보낼 각오를 하고, 근처에서 마른 가지를 찾아 신문지에 불을 붙여 모닥불을 피웠다. 산에 갈 때 신문지가 있으면 여러모로 편리하다고 가르쳐 준 학생들에게 정말 감사했다. 그리고 브랜디를 꺼냈다. 산에 갈 때면 챙겨오는 나만의 즐거움이다. 나는 술이 강한 편은 아니기에 많이 마실 수는 없지만, 그 대신 그만큼 좋은 술을 마신다. 그 때는 마침 브랜디에 꽂혀서 잔뜩 모아두고 있을 때였다. 모닥불을 쬐면서 안개 속에서 브랜디를 조금씩 마신다. 그럭저럭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비상식량으로 가져온 칼로리 밸런스를 먹고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비교적 부드러운 곳을 찾아 누웠다. 습기가 심하긴 했지만, 젖어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푹신한 부엽토 덕에 기분이 좋았다. 눕자마자 잠이 몰려와, 나는 정신을 잃는 것처럼 잠에 빠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갑자기 눈을 떴다. 모닥불 근처에 누군가 있었다. 나는 놀라서 일어났다. 그 사람은 자연스러운 손놀림으로 가지를 꺾어 불 안에 던졌다. 노인이었다. 나이는 70대 정도로, 수염이 길게 자라 있었다. 삼베옷을 입은채, 놀란 나를 보며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내가 조심스럽게 인사하자, 가볍게 인사를 돌려주었다. 그리고 또 가지를 꺾어 불에 던졌다. 어떻게 보더라도 현지 사람이었다. 유령으로는 보이지 않았고, 하물며 요괴일리는 전혀 없었다. [불을 살펴봐 주고 계셨습니까?]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싱글벙글 웃으며 내 손에 있는 것을 보고 있었다. 브랜디였다. [아, 한 잔 하시겠습니까?] 노인은 기쁜 듯 고개를 끄덕이고 품 속에서 이상한 모습의 잔을 내밀었다. [우와, 연꽃의 꽃잎입니까?] 풍류가 넘치는 그 모습에 나는 감동 받았다. 분명 이 사람은 우아한 정취가 넘치는 사람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세련될 수가 없다. 큰 연꽃의 꽃잎에 나는 브랜디를 따랐다. 노인은 브랜디를 본 적이 없는 듯, 매우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입에 맞으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무쪼록 한 잔 하시지요.] 노인은 기쁜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그대로 잔을 들이켰다. 가슴을 지나가는 뜨거움에 고개를 숙였다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정말 기뻐하는 것 같은 얼굴이어서, 술을 권한 나까지 행복한 기분이었다. [마음에 드셨습니까? 외국에서 온 브랜디라는 술입니다.] 노인은 기쁜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품 속에서 잔 하나를 더 꺼내 나에게 주었다. 물론 연꽃의 꽃잎이었다. 밤이슬에 젖어 무척 부드러웠다. 노인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나의 잔에 브랜디를 따라 주었다. 물론 나도 노인의 잔에 한 잔 더 따라드렸다. 우리는 건배를 하고 함께 술을 마셨다. 연꽃 잔에 따른 브랜디는 놀라울 정도로 달고 향기로웠다. 그리고 나와 노인은 함께 술병이 비도록 신나게 술을 마셨다. 다음날 눈을 떴을 때 노인의 모습은 없었다. 대신 머리맡에 물고기가 몇 마리, 비쭈기 나무의 가지로 매여서 놓여 있었다. 게다가 손 안에는 잔으로 썼던 연꽃의 꽃잎이 남아 있었다. [답례로 놓고 가신걸까?] 우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감탄했다. 안개는 완전히 걷혀 있어서, 나는 그 길로 집에 돌아갔다. 이틀 뒤 나는 방학인데도 학교에 나와 있던 학생들에게 그 노인에 관한 이야기를 해줬다.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학생들은 모두 놀라는 것이었다. 학생들 뿐 아니라, 주변에서 풀을 뽑고 있던 교장 선생님까지 내게 다가오셨다. 나는 자세히 노인에 관해 이야기했다. 상냥한 할아버지로, 매우 말이 없었지만 함께 술을 마셨다고. 게다가 선물로 물고기를 주었다고 말이다. 아이들은 [우와!] 라고 신기해하고, 교장 선생님은 [이야, 자네는 운이 좋구만!] 이라며 등을 두드리며 웃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내가 [혹시 유명하신 분인가요?] 라고 묻자, 그 노인은 산신령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산신령은 여러 모습으로 변하는데, 노인부터 소녀, 가끔씩은 동물로도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보통 다른 지방의 산신령은 매우 못생긴 여자라지만, 구마모토현의 산신령은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내가 만난 것은 아쉽게도 미녀는 아니었지만, 무척이나 상냥한 분이었다. 그 때 이후로 단 한 번도 그 노인을 만난 적은 없다. 단지 가끔 브랜디를 그 곳에 두고 돌아가면, 다음날에는 반드시 없어져 있었다. 술의 답례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는 신기하게도 물고기가 잘 잡혔다. 나는 지금 시코쿠의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지만 그 때 그 체험만은 잊을 수 없다. 결혼할 때 지금의 아내에게 [난 산신령과 술을 마신 적이 있다.] 고 이야기했던 적이 있다. 당연히 아내는 웃었기 때문에, 나는 증거를 보여주었다. 연꽃으로 만든 술잔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꽃잎은 시들지 않고 지금도 촉촉하게 젖어있다. 언젠가 다시 그 노인과 즐겁게 술을 마시고 싶다. [출처] [번역괴담][2ch괴담]산신의 연꽃 | VKRKO _________________ 산신령과의 술자리라니 너무 좋잖아 뭔가 이런 묘한 이야기가 나는 참 좋더라 일본 귀신썰들은 대부분 기괴하고 뭔가 꼬여있는 느낌인데 반면 신에 관련된 이야기들은 이렇게 따뜻하고 신묘하더라구. 그래서 맘에 들구 아직 음력으로는 1월을 보내지 않았다며 붙잡고 있지만 ㅎㅎㅎ 날이 많이 따뜻하니 진짜 봄이 오긴 했나봐 곧 이야기 또 들고 올게!
지난 여름에 있었던 무서운 기억
대학이 집과 떨어진 곳이라서 자취 생활을 현재 4년째 하고 있는데 이 일은 2년전 여름에 있었던 일입니다. 지금은 원룸에 오토락이 거의 대부분 설치 되어 있지만 2년 전까지만 해도 그냥 열쇠로 문을 잠그는 원룸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원룸의 특징상 대부분이 혼자 사는 사람들이라서 집에 오면 문단속에 철저했는데 저도 집에 오면 항상 문부터 잠그는게 일이었습니다. 한날은  시험을 친다고 밤을 세서 낮에 잠깐 낮잠을 한두시간 자서 그런지 새벽 3시가 되었는데도 잠이 안와서 침대에 누워서 딩굴거리고 있었습니다. 이때 저는 원룸의 3층에 살고 있었는데(사실상 원룸의 일층은 주차장이라서 높이는 4층) 워낙 방음이 안되어서 밤늦게 조용하면 일층에서 계단을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도 들리는 그런곳이었습니다. 이때도 누가 집으로 오는지 일층으로 올라오는 계단 오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제가 사는 원룸은 대학교 근처라 그런지 늦은 시간에도 술마시고 들어오는 학생들이 많은지라 (저도 역시 그럼 학생중 하나였고 말이죠..) 별 생각없이 누가 늦게까지 놀다가 이제야 들어오는 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발자국 소리가 일층(사실상 이층)에서 멈추더니 문 손잡이소리가 들리더군요 '철컥' 하고 말이죠 그리고 문이 잠겨있는지 문이 더이상 열리지 않고 부딪치는 소리가 '쿵' 하고 났습니다. 그리고는 또다시 발소리가 들리더니 '철컥............쿵' 하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저는 이소리를 듣고 처음에는 누가 술에 취해서 자기집을 제대로 못 찾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었죠. 근데 들어 보니 발소리가 술에 취한것 취고는 너무 일정하다는 생각에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던중 걸국 그소리는 일층에있는 방의 수인 4개 만큼 2번의 소리가 더 났습니다. '뚜벅뚜벅뚜벅..........철컥.....쿵.......뚜벅뚜벅뚜벅..........철컥.....쿵.......' 하고 말입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별생각이 없었는데 발소리가 이층으로 올라오기 시작하더군요. 이때 부터 저는 조금 무서운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보통 술이 취해도 자기집 층수까지 착각하지는 잘 않으니깐 말입니다. 게다가 발자국 소리가 취했다고 하기에는 너무 일정했고 말이죠. 이 발자국은 2층에 올라와서도 일층과 똑같았습니다. '뚜벅뚜벅뚜벅..........철컥.....쿵.......' '뚜벅뚜벅뚜벅..........철컥.....쿵.......' '뚜벅뚜벅뚜벅..........철컥.....쿵.......' '뚜벅뚜벅뚜벅..........철컥.....쿵.......' 하는 4번의 서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는 3층에 올라오기 시작하더군요. 이때 부터 저는 점점 무서운 생각에 이불을 꼭지고 눈을 감았습니다. 제가 이러고 있는 순간에도 발자국은 점점 제가 있는곳 까지 조금씩 다가오는게 느껴졌습니다. '뚜벅뚜벅뚜벅..........철컥.....쿵.......' '뚜벅뚜벅뚜벅..........철컥.....쿵.......' 결국 발자국은 제가있는 3층의 제집까지 왔고 제집 문고리까지 돌렸습니다. '철컥' 하지만 문이 잠겨있는 관계로 결국 문은 열리지 않았고 발자국은 다음 집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결국은 제가 있는 건물의 12개의 문이다 열리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문고리를 돌리고 한동안 조용하더니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가 들리더군요. 그 발소리는 결국 일층을 지나서 제 귀에 안들릴 만큼 멀어져 갔습니다. 2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12개의 문중 하나라도 잠겨있지않고 열려있었다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를 상상하면 지금도 등뒤로 소름이 돋곤합니다. (출처 : 짱공유) 귀신도 귀신이지만 이런 이야기가 진짜 무서운 것 같아요 저 때 만약 누군가가 현관문을 잠그지 않고 집에 있었다거나 나갔다면 어떻게 됐을까요ㅠㅠㅠㅠ
'도와주세요' 까마귀 떼에게 스토킹 당하는 여성
지난 12월, 레딧에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익명 고민 글이 올라왔습니다.  게시글의 제목은 '어쩌다 까마귀 군대를 창설했습니다'입니다. 자신을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사는 20대 여성이라고 밝힌 글쓴이는 얼마 전부터 자신의 동네에 사는 까마귀에게 밥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녀가 까마귀에게 밥을 준 이유는 TV에서 다룬 까마귀 다큐멘터리 때문이었습니다. '까마귀는 사람의 얼굴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영리하며, 까마귀에게 먹이를 주면 녀석들은 선물을 물어와 은혜를 갚기도 합니다.' 그녀는 TV에서 본 내용처럼, 까마귀들이 정말 자신을 알아보고 선물을 주는지 확인해 보기 위해 꾸준히 먹이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까마귀들은 정말 그녀를 알아보고 매일 같이 찾아와 선물을 물어다 놓았습니다. 심지어 그녀가 문밖으로 나오면 까마귀들이 그녀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기까지 했습니다.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문제는 그녀의 뒤를 따라다니는 까마귀의 숫자가 급속도로 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처음엔 5마리였던 까마귀가 현재 15마리까지 늘었습니다. 까마귀는 사람들의 생각보다 훨씬 영리합니다. 정보를 공유하는 능력까지 있어서 자신들의 동료와 가족에게 믿을 만한 인간이 누구인지 알려주기도 합니다. 이제 그녀가 집 밖으론 새파랗던 하늘이 어두워집니다. 이때부터 그녀는 까마귀들이 조금씩 무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집을 둘러싼 까마귀들은 그녀를 24시간 감시하는 듯 보였습니다. 주변의 모든 나무에는 까마귀들이 숨어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머리 위를 날아다니거나 지붕에 앉아 있는 까마귀가 모두 자신을 아는 것만 같았습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녀에 대한 까마귀들의 애정이 더욱 깊어졌다는 것입니다. '까마귀들이 제 집 앞을 지나는 이웃을 공격하기 시작했어요.'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는 친절하던 이웃들도 그녀와 가까이하기를 꺼렸습니다.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기만 하면 어디선가 까마귀 군대가 나타나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까마귀는 최대 몸길이 50cm에 날개 길이가 38cm에 달하며, 눈앞에서 보면 생각보다 커다란 덩치에 놀라기도 합니다. 발톱도 날카로워 자칫 큰 상처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결국, 그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레딧에 고민을 올린 것인데요. 정말 다행히도 까마귀에 대해 잘 아는 생물학자가 그녀의 고민에 응답했습니다. '까마귀에게 당신의 이웃이 적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까마귀의 방식으로 까마귀와 소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웃들에게 음식이나 빛나는 물건을 들고 방문해달라고 요청하세요. 또한, 당신 역시 이웃들이 방문할 때마다 간식을 건네주세요. 만약에 한 마리라도 이웃을 공격한다면, 24시간 동안 먹이를 주지 마세요. 까마귀는 무척 영리한 동물이기 때문에 이 정도만으로 당신의 의중을 금방 이해할 것입니다.' 사진 Bored Panda ⓒ 꼬리스토리, 제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꼬리스토리가 들려주는 동물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