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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릴 때는 혼자가 되라]

지식은 갖췄을지 모르나 판단력은 늘 부족해
실수투성이의 삶을 사는 사람이 많다.
살면서 돈 버는 법은 배웠지만 어떤 방법으로
​정확히 맞춰 살지를 못해 돈과 거리가 먼 사람이 있다.
늘 시간에 쫓겨 살지만 실속이 없고
​시간 속에 갇힌 것들은 많지만
소중한 알맹이는 별로 없고 빈 껍질만 가득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아마도 삶의 의미를
시간 속에 가두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전히
철들지 않은 어른아이로 살지 모른다.
죽기 전까지 그렇게 살까봐 두려울 거다. ​
​그럴 때에는 자주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자.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나의 길이 맞느냐고,
​그리고 내가 찾는 것은 무엇이냐고.

스스로에게 묻고 대답하면서
느리게 천천히 뚜벅뚜벅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자.
어떤 것을 선택하거나 결정할 때까지
시간이 길더라도 진중한 선택을 하자.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90%이상 마음이 끌리지 않으면 포기하자.
그렇지 않으면 삶이 휘청거린다.
한 번은 실수로 인정되지만
두 번 이상 반복하면 실패가 된다.
바로 결정하기 힘들면 밖으로 나가자.
​출렁이는 상념을 밖으로 토해내자.
시장을 가거나 산을 오르거나 바다를 찾아
바쁘게 살고 있는 사람을 보며 결정을 하자.
흔들릴 때는
가장 홀로인 순간에 선명한 정답이 보인다.










-김정한 에세이집 '때로는 달처럼 별처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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