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야 하는 이유, 삶을 그만 둘 이유를 찾기로 했습니다
저는 오늘부터 살아야 하는 이유와 삶을 그만둬야 하는 이유를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퇴근 후 집에 들어오자마자 이런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점심 즈음 문득 ‘유서를 써보면 내 삶이 나아질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가족을 비롯한 내 주변에 어떤 말을 남길지 생각하다 보니 ‘유서를 써본다 한들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나 때문에 다들 힘들어지고, 무엇보다 내가 너무 힘든 삶은 유지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기 위해선 스스로 제 삶을 책임져야 하는데, 저에겐 그럴만한 힘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청혼까지 한 애인도 있습니다만, 지금으로선 그 친구의 생활을 책임지는 것도 불가능할 것만 같습니다. 지금은 30대 중반을 지나고 있고 두 번째 직장에서 8개월 가까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전엔 7년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한동안 백수로 놀고먹었죠. 몇 달간 실업급여를 받다가 다행히 지금 직장에 취직을 했습니다. 전에 일했던 곳과 다른 분야지만 업무 연관성이 있어 경력직으로 뽑혔죠. 긴장도 되고 신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즈음 애인에게 결혼하자는 이야기도 진지하게 했습니다. 마침 얼마 뒤가 제 생일이라 그때 가족들에게도 취업 소식을 전했습니다. 덤덤한 척하던 모습과 달리 안도하시던 아버님의 표정, 깜짝 선물이라며 드렸던 새 명함에 어리둥절하다 놀라서 몇 번을 다시 물어보시던 어머님의 모습이 생각나네요. 그날 가족들과 함께했던 저녁 식사는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다시 사람 노릇 하고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며칠 뒤 제 취업에 한시름 놓으신 것 같던 아버님께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말 그대로 정말 갑작스레 돌아가셨죠. 장례를 치르고 회사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그 뒤 몇 달간은 아버님의 여러 사후 처리를 하느라, 또 회사에서 일을 배우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결혼을 위해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려던 계획도 미뤄졌습니다. 그런데 회사에서 제게 할당된 업무들이 소화하기 힘들어지더군요. 처음엔 이제 막 시작한 일이고 적응하는 중이니 그렇겠거니 했습니다. 전 직장과 달리 여러 업무를 동시에 고려하며 순발력 있게 쳐내야 하는 곳이니 더 그럴 거라 여겼습니다. 동료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입사 후 8개월이 지난 지금, 제 업무 능력은 저와 동료들의 기대를 비웃듯 더디게 늘고 있습니다. 인원도 부족한 판에 제 일을 다른 동료가 가져가서 처리해야 하는 일도 빈번합니다. ‘가르치면 나아지겠지’ 하던 동료들이 지쳐가는 모습도 훤히 보입니다. 저라고 노력을 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업무마다 꼼꼼히 챙기지만 실상 들여다보면 구멍 난 곳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경력이지만 신입 같은..... 능력 없는 경력인 거죠. 어느 날부터인가 아침이 되면 숨쉬기가 불편할 정도로 가슴이 답답합니다. 출근 전날 저녁엔 잠도 잘 오지 않습니다. 밥 값 아껴보겠다고 샀던 도시락은 어느새 먼지만 쌓여가고 회사에선 아예 점심을 굶습니다. 야근을 해도 밥도 안 먹죠. 퇴근 후 술을 마시기 위해 먹는 안주가 저녁이 된지 오랩니다. 그렇게 곯아떨어지듯 잠들고 다음 날 출근할 때면 ‘오늘은 제발 일 좀 잘하자’ ‘실수 없이 일하자’고 곱씹습니다. 하지만 그날 하루도 별다를 바 없이 마무리됩니다. 지친 팀장은 따로 저를 불러 앉혀놓고 업무를 하나하나 다시 짚어주며 ‘실수가 이어지면 실력’이라 합니다. 대표는 제 실적이 기준보다 한참 모자라다 합니다. 내년 인사고과에서 연봉이 깎이지만 않으면 다행인 상황 같습니다. 그 와중에도 결혼은 해야겠다 싶어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소주를 따라주며 비전을 묻는 (예비) 장인의 물음에 취업 면접 보듯 준비해 간 말을 읊었습니다. 술잔이 몇 차례 더 꺾이는 동안 비슷한 질문을 다시 하시더군요. 제가 명확하게 답을 해드리지 못했으니까요. 몇 년 후의 장래는커녕 당장 내년 혹은 올해가 지나기 전까지 이 고용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니, 그날 저는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해댄 것만 같습니다. 그리곤 그다음 주에 애인과 함께 저희 어머님께도 인사를 드리러 갔습니다. 부친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적이 있으나, 제 애인과 어머님 모두 낯을 가리는 성격 때문인지 그날 식사는 생각보다 조용했어요. 너무 조용해 제가 더 떠들었습니다. 그러다 어머님께서 문득 그 친구에게 결혼 의사를 물으시더군요. 조용했습니다. 그 친구에게 하신 질문이었지만 제가 답했습니다. 할 거라고. 어색한 식사를 마치고 며칠 뒤 산책을 하던 중 그 친구가 그 일을 이야기하더군요. 제가 모아둔 돈도 넉넉하지 않다 보니 본인도 어쩔 수없이 결혼 후의 생활이 걱정돼서 섣불리 답을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평소 저축현황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으니, 제대로 저축액을 들은 건 일전에 (예비) 장인을 뵈었을 때였을 겁니다.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저도 행복한 결혼이 될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애써 숨기고 설득했습니다. 설득과 미심쩍음이 오가던 대화는 ‘그러니까 열심히 돈 모아!’라는 그 친구의 장난 섞인 말로 마무리됐지만 그날 저는 더 취했습니다. 가족들이 결코 저에게 생활의 부담을 지우지는 않습니다. 어머님도 동생도 모두 본인의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저는 제 가정을 꾸려야 하고, 어머님과 동생도 돌봐야 합니다. 그래서 가장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일이 점점 이루기 어려운 일이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저는 도태되고 있고 제 한 몸 건사할 수 있는 방법도 모르겠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사람 노릇 하기 위해 방법을 찾아봐도 여기저기서 접하는 생존전략은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지난 몇 년 간의 삶을 떠올려보니 가장 즐거웠던 때는 올해 초 제 생일, 가족들에게 취업 소식을 전하던 날 같습니다. 그 외엔 어떤 즐거운 일이 있었는지 생각도 안 나네요. 왜 그럴까요? 저는 제 삶에 만족해본 지 너무나 오래됐고, 그 기간만큼 다른 사람과 저의 삶을 비교했습니다. 남들은 나와 같은 나이에 이만큼의 돈을 벌고 있으니, 나도 그만큼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남들은 나와 같은 나이에 아이를 낳아 키우니, 가정이 없는 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내일은, 다음 주는, 한 달 뒤는, 내년엔 제가 어떤 삶을 살지 불안합니다. 기분과 컨디션은 바닥을 찍었다 조금 나아지기를 반복합니다. 어디선가 주워들은 말 중 자기 통제감, 자기 효능감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전자는 ‘스스로 자신의 행동과 정서, 생각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 후자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옳다는 믿음’이라고 합니다. 이제는 너무나 느끼고 싶은 것들입니다.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회사에서도 주말을 보내는 집에서도 느껴본 지 너무나 오래된 것들이니까요. 몇 년 간 잊고 지냈던 충동, 삶을 멈추고 싶다는 충동을 다시 느끼는 요즘입니다. 그래도 살아보겠다는 마음이 남아있는지 이 저녁에 글을 쓰고 있네요. 당분간 글이라도 써보며 저를 정리해봐야겠습니다. 우울하고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