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ladimir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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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껴도 맑음

그림이 눈에 쉽게 들어오더라구요. 만화책 특히 그래픽 노블은 지금도 여전히 눈에 잘 안들어오더라구요 ㅡ..ㅡ
머 제가 신혼은 아니지만...
뭐가 좋더라...
무조건 이해하고 맞춰나가야죠...
안그런게 더 이상한거 아닙니까 ㅎ
현실에 이런 부부가 존재할까싶을 정도로 알콩달콩 하게 사시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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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에 대한 이해도 높이기 3.
우리가 흥미진진하게 여기는 중국의 삼국시대와 우리의 이목을 끄는 당시의 영웅호걸들.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처럼, 그 영웅들 또한 후한 말의 난세가 만든 영웅들이며 난세와 영웅탄생의 시작은 바로 "황건적의 난"(黄巾之乱)이였다. 사실, 여러분들이 접하는 삼국지 관련 매체들에서는 황건적의 난에 대해 디테일한 설명이 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난은 역사적으로는 오히려 우리가 열광하는 영웅들의 일대기들과 비교 안될만큼 중요한 사안이며 어쨌건 후한이 결국 삼분되는 계기가 된 사건이기에, 오늘의 삼.이.높 세번째 주제로는 삼국지의 서막을 올리는 결정적 계기였던 황건적의 난에 대해 다룬다. 1. 왜 "황"건적인거지?? "창천이사 황천당립 세재갑자 천하대길" (蒼天已死 黃天當立 歲在甲子 天下大吉) '푸른 하늘이 죽고 노란 하늘이 일어나니,  갑자년에 천하가 크게 길하리라.' 저 문장은 황건적의 난의 일종의 슬로건같은건데, 중국 고대의 자연철학인 "오행설"에서 비롯된 말이다. 첨부된 사진을 보면 오행설에서는 세상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근원으로 '화, 수, 목, 금, 토' 라고 주장했다. (저기에 태양과 달을 넣어 일주일의 명칭이 된거다.) 마치 캡틴 플래닛을 소환하는 땅,불,바람,물,마음같은데 살짝 다르다. 아무튼 저 오행들은 서로 상생하기도, 또 서로 상극이기도 하는데... 황건적의 난의 슬로건은 저 중 상생설을 차용한 글귀이다. 잘 보면 가위바위보처럼 절대적인게 없고 서로서로 맞물려 먹고 먹히는 구조다. (첨부사진 2가 상생, 3이 상극) 오행에 의하면 중국의 한(漢)은 불(火)의 기운을 받아 이룩되고 흥한 왕조여서 그 다음의 세력은 응당 흙(土)의 기운을 받은 사람이나 세력이라 생각했고, 바로 그 흙의 상징색인 "노란색"을 아이콘으로 삼은 것. 덧붙여, 불의 기운을 지닌 한나라의 상징컬러는 당근 빨간색이다.(그래서 장기에서도 한 쪽은 글씨가 레드!) 참고로 왜 한이 그럼 불의 기운이냐면.... 한이 건국 전, 진의 시황제의 꿈 속에서 커다란 태양이 자신을 들이받아 자신이 죽는 악몽을 꿨다는데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저 꿈이 태양의 기운을 가진 이가 자신(진)을 제끼고 다음 황제(유방의 한)가 된다는 예지몽으로 받아들여 그렇다고.. (물론 본인에게는 흉몽) 이건 나도 정확한 학계 주장이 맞는지가 기억이 가물가물. 아무튼 태양은 오행설에서 당근 '불'의 기운을 지닌 것으로 본다! 하여튼 저 오행설 중의 상생설 탓인지, 후한 이후 삼국시대가 열리고 삼국의 군주들이 저마다 제위에 오르며 썼던 연호에도 이게 반영되어, 후한을 멸망시킨 위의 첫 연호도 '황초(黃初)', 오의 경우도 손권이 왕을 칭하며 사용한 첫 연호가 '황무(黃武)', 다시 황제를 칭하며 쓴 첫 연호가 '황룡(黃龍)'이다. 반대로 한의 계승을 주장한 촉한의 마지막 연호는  '염흥(炎興)'이었다. 후한이라는 불(火)이 꺼져가며 작아진 불꽃(炎)이 다시 흥(興)하여 크게 불타오르리라는 거창한 뜻이였으나 결과는......... 쉽게 말해, 위와 오는 자기들이 후한의 다음 세력이란, 촉은 자기들이 말 그대로 후한을 잇는 세력이란 주장. 2. Who Is 장각? 황건적의 난에 있어 그 시발점이 된 "장각"의 존재를 빼놓고 논할 수 없다. 오늘날의 중국 허베이 성 싱타이 시 쥐루 현 출신의 종교가이자 도사였던 그는 역시 도사였던 "우길"이 그 개념과 교리를 정립한 "태평도"라는 종교를 사실상 창시하고 전파한 인물이다. 후한 말기의 어수선한 민심을 틈타, 주술이나 부적 등으로 병을 고치는 일종의 사이비 야매 수법으로 민심을 얻었고 이는 오늘날 심리학에서 일컫는 "플래시보 효과" 였을 듯. 보통 사이비교에서 저런 주술이니 부적 따위로 병을 고치는 행위들이 대개 다 그렇듯, 플래시보가 겹쳐 나으면 내 덕, 못 고치면 니새끼 믿음이 부족하고 마음이 불경한 탓이 된다. 아무튼 그짓거리 하고 다니다, 그래도 또 난세는 난세라 그런게 꽤나 먹혔는지 일정 세력이 따르기 시작하자 결국 184년, 장보와 장량 두 동생들과 함께 대장노릇 하며 난을 일으킨다. 거의 중국의 양쯔강 이북 8주(유주, 병주, 기주, 연주, 서주, 청주, 사주, 예주)에 걸쳐 수만 여 명이 봉기했고 사실... 이 시점부터 실질적으로 후한은 멸망이나 진배없는 상태가 된 것이라고 본다. 이때부터 후한은 사실상 무정부 상태에 준했고 한황실도 통제력을 상실했다. 참고로 종교집단에 의한 황실타도의 난리가 일어난 것은 중국의 기나긴 역사상 이 때가 처음. 그리고 저런 거국적 정권타도 목표가 아닐지라도 어쨌건 "종교집단에 의한" 난도 황건적의 난이 최초.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장각 본인은 황건적의 난이 일어난 그 해에 병사하고 말았다. 하지만 워낙 기세가 거셌고 장각의 두 동생의 리드도 있었으며 방대한 지역에 걸쳐 연쇄적으로 발생한 난이여서 그 세가 장각이 죽었다하여 바로 사그라들진 않았다. 일단 당시는 대중매체도, 통신도 전무하다보니 장각의 사망을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였고 이미 당시 난의 파워가 있다보니 관성에 의해 기세는 계속 유지되었다. 3. What Is 태평도? 자, 그럼 "태평도"는 또 뭐냐? 위에서 말했듯 일종의 종교였는데, 이 종교라는게... 카톨릭이나 불교, 이슬람과 개신교, 유대교 등등등등 처럼 뭔가 반드시 절대적인 신이나 그에 준하는 존재들에서 비롯되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민족의 멘탈적 근간이 되는 "유교" 역시 무슨 유교의 신이 존재해서 엑스멘 시리즈의 뮤턴트들처럼 초능력을 흩뿌리고 그래서 생긴 종교가 아니고 평범한(?) '인간'이 만들고 정리한 여러 사상과 제약 등을 일컫는 "교리"가 생기고 이 교리를 따르고 받드는 사람들이 생겨나며 형성되는 것. 어찌 보면 사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서 예전에 회사동료였고 퇴사 후 거제도에 빙수집 차렸다가 거제 조선경기 망하며 같이 망한 정호형이 내세우는 이론들 중에....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피우는 것이다." "여자의 피임은 임신을 피하고, 남자의 피임은 임신시킨 여자를 피하는 것" "일부다처제란 말처럼 처제도 내 여자다" 뭐 이딴 개소리들이 있는데, 이것도 누군가 '오.. 시발 진리다 +_+' 하며 그 가르침을 따르고 저기에 맞춰 생각하고 생활하며...(....) 심지어 그런 찐따들이 늘어나고 지들끼리 저걸 전파하며 그러다보면 저 말같잖은 소리들을 교리 삼아 정호형을 교주로 여기는 종교가 탄생하는 것. 그런데 정호형 뭐 하고 사나? 번호도 바뀌었던데... 결국 깜빵 간건가.. 어쨌건 삼천포로 빠졌는데, 태평도 역시 종교고 그 기원은 이미 여러분도 한 두 번은 들었을 "도교"에서 비롯되었는데, 위에 언급한 우길이란 도사가 도교를 베이스로 자기가 음양과 오행관련 이론 등을 믹스해서 교리를 정립한 종교다. 황건적의 난이 중국을 씹창내고 각지의 호걸들과 제후들이 다시 그 황건적들을 씹창냈지만.. 하도 호된 엿을 잡수신 후한의 지도층들은 "태평도 = 황건적"이라는 공식을 성립시킨 후, 황건적과 무관한 태평교도들에게도 홀로코스트를 자행, 태평도가 탄압을 받기에 이르른다. 결국 태평도는 거의 전멸하다시피 하게 되었지만 이 도교라는 종교가 갖는 파급력이 당시에는 꽤나 먹어줬던 모양이다. 당장 우리가 흔히 쓰는 도 닦는 "도사"라는 표현도 본래 도교의 교리를 공부하고 또 거기 맞춰 생활하는 이들을 일컫는 말이였다. 결국 우리에게 옛날 이야기 구수히 들려주시던 배추도사와 무도사도.. 탈모인들을 좌절에 빠뜨린 머털도사도... 전우주 최강의 전사인 카카로트를 키워낸 명스승 무천도사도... 도교를 연마하시는 분들이였다!!!......는건 뻘소리고 아무튼 그렇게 우리네 일상 속 단어의 유래를 꿰찰만큼 영향력이 있던 종교라는 거다. 하여간 도교는 태평도처럼 여러 아류들이 생겨났는데 또 그 중 하나가 삼국지 속 유명인사 중 한 명인 한중의 "장로"가 이끌던 "오두미도"였는데 이는 추후 따로 설명! 4. 황건이 배출한 스타들. 중국 전역에서 수 만 여 명으로 스타트하여 전성기 때 대략 추산 20여 만 명에 이르던 황건적들답게 삼국지연의 속에는 어느 정도 난이 제압된 이후 그 출신 스타들이 종종 등장하는데, 모두 다 나열할 수는 없으나 네임드들만 대충 거론해 보자면.... 관우의 사이드킥이던 주창, 역시 관우의 사이드킥 출신으로 훗날 촉의 주력 장군까지 올라갔던 요화, 관우의 사이드킥 합류 일보 직전, 조운의 한 창감으로 전락한 비운의 소시민 배원소, 관우의 오관육참 스테이지의 보스 중 하나던 변희, (뭐 이리 관우랑 엮이는 것들이 많나) 유비가 떠돌던 시절, 힘을 합쳐 조조세력과 잠시 맞다이 뜨던 여남의 유벽과 공도 콤비, 도겸의 지시를 받고 조조의 부친인 조숭을 호위하던 중 재물을 노려 조숭일행을 올킬하고 먹튀한 장개, 뭐 당연한 소리지만 장각, 장보, 장량의 삼형제 등등.. 그럼 그렇지, 이 중 반 가까이는 허구의 존재들이다. 주창, 배원소, 변희는 나관중이 지어낸 인물들이고 요화는 황건적 출신은 커녕 오히려 나름 명문가의 귀한 아드님을 나관중이 뭔 억한 심정인지 도적출신 떠돌이로 전락시킨 연의의 피해자 1... 장개도 사료에는 그냥 도겸군의 도위라는 계급의 하급 장교였다고만 나오지, 황건출신이란 언급 없다. 나머지 인물들 및 소설 속 등장하는 다른 황건출신들 역시 실존은 했으나 하지도 않은걸 했다 하거나, 반대로 한걸 안했다거나 스킵하는 등의 각색들을 당한 경우가 많다. 뭐 대개는 삼국지속 영웅들의 초창기에 경험치를 올려주는 잡몹 수준의 비중들이긴 하지만...ㅎ 5. 무엇을 원했나? 황건적의 난 이전에 저런 전국구급 대규모 난으로 진나라 말기에 있었던 "진승 & 오광의 난"이 있다. 이 또한 중국사 최초의 농민(서민)의 난으로서 역사적 의의가 있는 난이며 이 난의 모토는 여러분들도 들어봤을 법한 "왕후장상 따로있나, 못살겠다 갈아엎자" (박력있다ㅋㅋㅋ) 아무튼 저 난의 주동자나 모토나, 여러모로 신분 및 계급에 의한 차별과 부조리를 타파 위한 평등지향적 쿠데타였지만, 황건적의 난은 엇비슷해 보이긴 해도 근본이 다르다. 장각한테 누가 직접 인터뷰를 한 게 아니고, 장각도 어디에 딱 꼬집어서 '아, 저희 황건은 XX를 위한 서민집회입니다! 박ㄹ혜 하야!!' 했던건 아니다보니 역시 여러 정황근거들 통한 훗날 사학자들의 추측이긴 하지만, 여러 근거들과 장씨 3형제의 행태를 볼 때.... 결국 그들의 파이널은 유씨의 한 황실을 엘리시킨 후, 장씨들의 새 황실을 만들려던 것으로 보여진다. 당시 들고 일어난 백성들 역시 이미 타락할대로 타락하고 무능한 한 황실에 대한 실망과 좌절에 분노하여 '장각이나 태평도가 어떤진 잘 몰라도 일단 한은 뻑큐!'라며 분기한 것이 대부분으로 판단된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면.... 일단 황실의 몰락과 그로 인한 권신들의 부정부패와 비리, 그런 황실의 레인지에서 벗어난 지방 제후들의 마구잡이식 백성 프레스, 설상가상의 갖은 대규모 자연재해... 이런 이유들로 전염병과 기아의 확산, 그에 따른 엄청난 인구감소... 위의 이유들에서 비롯된 1차 산업 붕괴로 인한 경제파탄, 높아지는 범죄율과 반비례하는 치안.. 이건 뭐 그야말로 헬, 그 자체. 막장궁지에 다다른 백성(농민)들은 이래죽나 저래죽나 에라 모르겠다가 되어, 마침 가려운 곳 긁어주는 태평도와 인간 사이다 장각의 쇼에 넘어가게 되었던 것. 당시 백성들은 당연히 지적수준들도 낮고 정치에 관한 성숙한 의식과 식견들도 없다보니 냉철한 판단도 없었고... 6. gg........ 기세 좋게 번져 오른 황건적의 난. 그러나 여러 한계들로 인해 결국은 실패하여, 성공했다면 지금쯤 우리들은 황건혁명, 황건운동 등으로 들었겠지만 승자의 편인 역사 탓에 끝내 "난"으로 명명되고 말았다. 패인 1. 장각의 부재. 일단 장각은 이 모든 사태의 주동핵심이였다. 그런 장각이 난의 시작해에 병사함으로 인한 컨트롤타워와 구심점의 부재는 실로 치명적이였다. 예를 들어 2002년 월드컵 당시, 히딩크 없이 대회를 치렀어도 과연 그 결과가 나왔을지 생각해본다면 뻔하다. 황건적은 정규군대 아닌, 그냥 농사짓고 생선잡고 장사하던 평백성들... 그것도 대개 굶주림에 지쳐있던, 무기 한 번 안잡아보고 전투 한 번 못치뤄본 평민들임을 감안하면 더더욱 지휘자의 리딩이 중요했는데, 역시 군지휘관도 아니라 지휘통솔력이 검증안된 장각이 살아 이끌었어도 어떨지 모를 와중에 어쨌건 황건적들의 정신적 지주인 장각의 부재는 매우 컸다. 패인 2. 전투력. 위의 언급대로 황건적의 9할 이상이 그냥 백성들... 아무리 후한이 괴멸직전의 상태였다한들, 정규군이 있었고, 각지의 지방을 이끄는 제후들은 제법 상당한 사병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로마군과 게르만족들의 전투,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에스파냐 콩키스타도르들과의 전투, 동학군v일본군, 광주민주화항쟁 등등 아무리 숫자 많고 기세 등등해도 체계적 군율로 통제되며 훈련된 정규군을 이기긴 매우 버겁고 벅차다. 일반 백성들이 그저 숫자 많고 기세만 높다하여 제대로 통솔도 안되는 와중에 싸움이 될 리 없고, 개개인의 전투력과 무장수준도 형편 없었으며, 또 저런 급조된 오합지졸들은 약간만 전세가 불리해지면 나 살자고 도망치다 자기들끼리 밟히고 치여 죽기 바쁘다. 패인 3. 명분. 황건적들도 쪽수가 불고 세가 오르자 결국 일반 백성들을 약탈하고 겁탈하고 죽이긴 매한가지였다. 일단 기강이 없어 제대로 된 컨트롤도 안되고 정규훈련이나 교육도 부재하니 무슨 최소한의 기본적 윤리나 규율도 없었고... 당장 배는 고픈데, 병참체계가 있길 한가, 지원시스템이 있길 하나.. 결국은 도적질이 답. 그러다보니 황건에 가담 않은 다수의 백성들의 인심도 잃고, 농민들 입장에서는 그냥 삥 뜯는 세력이 늘었을 뿐. 그렇게 명분을 잃다보니 백성들의 지원과 후원도 줄고, 가담자들 역시 실망과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여 이탈하고.. 저런 쿠데타나 혁명 등의 봉기는 구성원들의 집결과 응집을 위해 무엇보다 명분이 중요하다. 명분을 잃은 봉기는 그냥 끈 떨어진 연이 될 뿐. 정말 확실분명한 대의명분이 있고 또 그게 유지 되었다면... 유비, 조조, 손견, 원소, 동탁, 마등, 공손찬 등의 숱한 히어로들은 아마, 머리에 노란 두건을 둘러멨을지 모른다. 이번 삼.이.높.3의 주제인 황건적의 난은 삼국지에 대한 칼럼을 다루려면 결코 생략해선 안될, 오히려 반드시 거론하고 가야할 주제라 생각해서 쓰게 되었는데... 오우, 막상 쓰려다보니 지금까지 써온 주제들에 비해 제가 아는 부분, 기억 나는 부분이 적더라구요... 그래서 이리저리 여러 자료들 다 찾고 뒤적이며 저도 공부해서 쓰느라 좀 시간도 더 걸리고 힘들었어요 T-T 다들 쉽게 이해가 갈지, 지루하고 두서 없어 노잼은 아닐런지 가장 걱정되는 카드가 될 듯 합니다. 쓰기는 제일 고생해서 썼는데...ㅎㅎ 아무튼 끝까지 읽어주셔서 진심 고맙습니다! 여러분들의 팔로우, 좋아요, 클립과 댓글들이 이런 힘듦과 시간할애를 아깝지 않게끔 해줍니다ㅎ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건강한 가정의 9가지 특징
♥건강한 가정의 9가지 특징♥ 1. 많은 대화의 기회 가족 간에 대화, 자발적이고 진솔한 대화를 자주 나눈다. 텔레비전 시청 시간을 줄이고 그 시간에 서로의 입장과 의견을 교환한다. 대화를 통하여 우리의 가정을 염려와 스트레스와 긴장을 해소할 수 있는 안식처로 만들어 보자. 2. 서로 신뢰하고 인정하고 지지해 주는 가정 인간은 가정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와 신뢰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인격발달의 중요한 시기는 출생부터 약 3세로 이 시기에 부모로부터 돌봄과 격려를 받으며 자라는 아이는 세상이 살만하다는 신뢰감을 가질 수 있다. 어떤 교육기관보다도 더 중요한 덕성을 가정에서 배양할 수 있다. 3. 유머 감각 웃음은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친다. 웃을 때에 가족들의 심장박동 수는 늘어나고, 경직되었던 근육이 이완되고, 피돌기가 잘 되고, 산소의 공급량을 증가시켜 가족들의 건강이 증진된다. 4. 윤리와 도덕이 있는 가정 부모들이 일관성이 있는 가치관을 가진 가정이 건강하다. 부모의 위선과 가식적인 행위는 자녀들에게 적개심과 반발심을 가지게 한다. 건실한 가정은 도덕적인 삶을 살 때에 이루어진다. 5. 서로 다른 점을 존중하고 개성을 인정해 주는 가정 다른 사람의 의견과 가치를 존중하는 태도는 가정에서 배운다. 자신을 존중히 여기는 자세를 가정에서 배울 때에 다른 사람들 역시 존중하고 인정해 줄 수 있게 된다. 6. 동일한 전통과 풍습을 공유 긴밀한 유대감을 유지하는 가정, 모이기에 힘쓰는 가정, 집안의 결혼, 생일, 장례 등의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함께 모여 경험을 공유하게 되어 소속감과 유대감이 강화된다. 이 유대감은 특히 어려운 일을 겪을 때에 더없이 필요한 구심점이 된다. 7. 이웃과 인류에 대한 봉사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가정 봉사하는 가정은 생활스타일이 화려하지 않고 단순하다. 체면과 지위를 드러내기 위한 지나친 행동을 하지 않아도 편안하고, 자신들에게 남는 시간과 에너지를 남들에게 바칠 수 있다. 8. 각각의 책임과 공동책임을 자각하고 감당하는 가정 책임을 완수했다는 느낌은 자부심을 갖게 하고, 자신감을 키워준다. 부모와 자녀 모두 자신감을 가지므로 자기의 효능성을 인정하고 유능하다는 자부심을 갖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된다. 9. 자신들이 가진 문제나 결점을 인정할 줄 알고 필요하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개방적인 가정 세상에는 문제없는 가정도, 문제없는 사람도 없다. 건강한 가정에서는 자신의 문제를 시인하고 문제의 성격을 잘 파악하고 있는 데 비하여, 건강하지 못한 가정은 문제를 시인하지도 않고 때로는 파악조차 못한다. 엔돌핀 충전소^^ 하루에 크게 웃고 싶을 때 하루 한가지 최신 유머 스트레스 확 날리는 짧은 웃긴 영상 세상의 모든 유머 https://bit.ly/3gAaxhA << 오늘의 추천 마냥 좋은글 >> 잉꼬 부부의 성 100배 즐기는 방법 8가지 https://bit.ly/38EnBAp 부자 되는 꿈 해몽 10가지 https://bit.ly/3lf4zWg 노인냄새 확실하게 없애는 방법 4가지 https://bit.ly/38ySDcQ 암세포를 골라죽이는 15가지 좋은음식 https://bit.ly/3vFqL0M 노인의 성생활 최적의 횟수는? 일주일에 몇 번? https://bit.ly/3vLlbtE 사람들이 죽기 직전에 가장 후회하는 25가지 https://bit.ly/3vJXvWG 우리가 반드시 피해야 할, 건강에 나쁜생선 9가지 https://bit.ly/3ukfaTx 복부 지방과 치열하게 싸워주는 9가지 음식 https://bit.ly/3hPt5LR 매일 마늘 한쪽씩 먹으면 일어나는 기적같은 변화 6가지 https://bit.ly/3hPt5LR 보약보다 좋은 누룽지의 효능 3가지 https://bit.ly/3hPt5LR 매일 커피를 마시면 일어나는 놀라운 변화 7가지 https://bit.ly/3hPt5LR 성욕을 높여주는 11가지 기운찬 정력 음식들 https://bit.ly/3hPt5LR 100세까지 왕성하게 성 사랑 지속하는 방법 https://bit.ly/3hPt5LR 다시 데워 먹으면 절대 안 되는 음식 7가지 https://bit.ly/3hPt5LR 면역력을 높일 수 있는 간단한 방법 11가지 https://bit.ly/3hPt5LR 눈이 건강해지는 의외의 습관 10가지 https://bit.ly/3hPt5LR 쉽게 간과하면 큰 코 다치는 건강 적신호 8가지 https://bit.ly/3hPt5LR 이것 즐겨 먹으면 장수하는 7가지 이유 https://bit.ly/3hPt5LR 뇌건강을 강화하는 확실한 방법 50가지 https://bit.ly/3hPt5LR #마냥좋은글 #좋은글 #좋은글귀 #좋은글모음 #영감을주는이야기 #명언모음 #인생명언 #아름다운시 #좋은시 #맞팔해요 #짧고좋은글 #동기부여 #행복한글 #행복해지는법 #가슴에와닿는글귀 #마음에와닿은글귀
나본 관중 (羅本 貫中) A.D.1330? ~ 1400
여기서 다뤘거나 다룰 인물들 중 예전에 다룬, "유일한" 생존인물 정대리 외에 사망인물들 중 가장 최근(?) 인물이자, 유구한 중국역사 속 찰나에 불과하며 의미도 그닥인 삼국시대를 지금의 메이져 에이지가 되는데 큰 공 세운 삼대장 중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인 "나관중" 을 한 번 다뤄 보고자 한다. (삼대장 중 둘은 정사의 진수와 그 정사에 주석자 배송지) 처음 제목보고 '응? 나본이 뭐야? 백종원의 프랜차이즈?' 하시는 분도 계실 수 있겠으나 삼국지 속 인물들이 이름 외에 자(字)가 있듯, 나관중의 본명은 "나본"이고 관중은 그의 "자"인데 이거 모르는 분 많으실 듯ㅎㅎ(이하 나관중) 사실, 이 칼럼연재를 시작하며 어찌보면 정사의 저자인 진수와 함께 가장 먼저 다뤘어야 도리였던 사람인데... 그런 사람치고 의외로 기록이 그닥 많지 않은편. 일단 이 사람의 사망연도는 딱 떨어지는 A.D. 1400이나 출생연도는 추정치가 있을뿐 정확하진 않고 고향도 지금 중국 산시성의 타이위안이란 곳쯤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긴 하지만 명확한 고향인지는 알 수 없다. 그게 왜 그러냐? 지금이야 삼국지가 동아시아 최고의 히스토릭 미디어떡밥이지만 나관중 생전에는 서점이 있냐, 도서관이 있냐, 스마트폰으로 검색이 가능했냐.... 인쇄라는 개념도 없어, 책 한 권이 두 권 되려면 누가 붓 가져오고 벼루에 먹 갈아 베껴적어야 하다보니 인기를 얻으며 널리 퍼지는데 막대한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삼국지연의가 그 넓은, 그러나 유통망이나 인프라가 개떡인 수백 년전 중국일대에서 인기를 끌쯤, 이미 나관중은 천국에서 삼국지속 실제인물들을 만난지도 한참 이후... 게다가 지금 현재의 중국조차 인적사항등록이 누락된 인간이 있는 마당에, 당시 명나라 초기의 일반인의 기록이 세세히 있을리가 없다. 지금에나 그런 베스트셀러작가가 명망높지... 당시의 명은 당연히 관직에 나가 벼슬살이 하는게 갑이였고 그 이하 여타 직군들은 별 큰 인기나 선망직종이 아니였다. 어렸을적에 어떤 어린이였고 소년이였는지는 모르겠고, 여튼 머리 크고는 위 언급대로 벼슬아치가 최고였던 시절이다보니 나관중 또한, 명나라의 인싸가 되기 위해 과거에 응시를 했었나본데, 낙방했다.....;;;; 심지어 세 차례 이상 내리 낙방했다고 한다... 물론, 당시 과거는 지금 한국의 공무원 시험 따위와는 댈게 아닌 극악의 난이도여서 벼락치기 좀 했다고 붙는 그런건 아니였어서 수년간 공부했어도 수 차례 물 먹는 사람들이 많은건 사실이였지만, 왠지 뭔가 천재작가 이미지의 나관중조차 여러 번 불합격한건 의외다. 이건 나관중 개인에게는 불행이였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들에겐 다행인거지..ㅎ 벼슬 나갔으면 삼국지같은거 썼겠나. 게다가 당시 명의 천자였던 "홍무제"는 뭐가 불만인지 수틀리면 벼슬아치들을 죽여대던 때여서 홍무제손에 킬된 벼슬아치가 10,000 명이 넘었다하니 어쩌면 나관중 본인에게도 잘된 걸 수도~ 뒤에 이야기들 보면 느끼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 양반이 뭐가 딸려서라기보다 그냥 공부머리가 없었지 싶다. 정사를 꿰고 그 무수한 민담들을 캐내서 집대성하고 스토리텔링을 해낸 그의 재능은 오로지 포커스가 삼국지에 올인 되었을 뿐이였다. 과거에 계속 떨어지기를 여러 번... 어느 시점부터는 그냥 벼슬에 대한 미련 버리고 부친이 하시던 소금장사를 따라다니며 장사를 도왔는데, 공부도 못 하는 주제에, 장사도 못 했고 장사에 별 도움이 안되다보니 아버지한테 한 소리 들었는지, 나중에는 장사를 따라다니는 것도 그만뒀다.ㅋㅋㅋ 이렇게 원나라(그 시절은 아직 원)의 잉여놈이던 나관중은 동네 찻집을 수시로 드나들었는데 당시의 찻집은 옛날 프랑스 파리의 카페와 비슷한... 문학도나 학자들, 혹은 예능인들이 드나들며 의견을 나누던 그런 분위기였다고 보면 된다.(술 안팔았다) 그렇게 드나들던 찻집에서 거의 매일 했던것이 "삼국희곡(三國戱曲)" 이란 공연인데, 이게 뭐냐면 몇 명의 화자가 어떤 내용의 이야기를 연기와 나레이션 섞어서 간단한 연극 비슷하게 만담처럼 진행하는 요즘말로 스탠딩공연같은건데 나관중은 여기에 빠져서 이걸 보려고 싸지도 않은 찻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래도 당시에 소금집 아들이면 나름 먹고사는 집이니 가능했던 듯..ㅎ 이 때 이 찻집의 삼국희곡은 한 잉여의 삶을 바꾸게 된다. 이후 단순 삼국희곡덕후에서 끝난게 아니라, 관련 사료들을 모으고 연관 주석과 민담 및 구전설화들까지 모으게 되는데.. 당시에 이짓은 그야말로 엄청난게, 이때 인터넷이 있나, 도서관이 있나 이런저런 자료들과 이야기들을 모으려면 그야말로 발로 뛰어야 했는데 그렇다고 당시 교통이 좋기를 해.. 심지어 "중국"에서... 여튼 덕중의 덕은 양덕이 아닌 중덕이란걸 보여준 나관중은 이렇게 모은 자료들을 토대로 소설을 쓰고 소설 제목은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 바로 우리가 삼국지연의라는 그 소설이다. 마치 원래는 연극영화과 전공이였고 관련하여 뮤지컬 명성황후를 보다 역사에 매료되어 한국사 강사가 된 설민석 선생님과 엇비슷하다. 자료를 취합하는 나관중의 정성과 열의는 실로 대단한건데, 지금같은 정보화시대에서 알기 쉽지 않은 자료나 정보가 많거늘, 그때는 위에서 말했듯 아무런 인프라도 시스템도 없고 심지어 삼국시대는 나관중이 살던 원말~명초때 당시 기준으로도 1,000년전 역사였으니 이에 대한 자료조사는 맨땅에 헤딩이였다. 그러나 소금집 잉여아들은 이 모든걸 해냈다....! 헌데 당시 그런 어렵고 힘든 과정을 통해 자료수집 하다보니 아무래도 칼같이 정확하고 공정한 기록들만 채집하는건 한계가 있었으며 별 말같잖은 소리나 뜬금없는 자료들도 많아 나관중은 머리를 쥐어뜯었을 것이다.. 게다가 시대상황 따라 인기인물도 바뀌고 그러다보면 아무래도 인기따라 민담이나 에피소드들도 늘고 줄고가 생겼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관중은 삼국지를 기반한 판타지를 쓰려는게 아닌 정말 역사속 사실을 모티베이션한 모큐멘터리급의 작품을 추구했기에 최대한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끔, 설령 쏠림이 발생해도 티나지 않게끔 매끄럽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오늘날에도 한중일 삼국에는 아직도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속 이야기가 모두 팩트라고 잘못 아는 이들이 상당수 있고 무엇이 픽션이고 어디부터 리얼인지를 분간하기 어려워 하는 수작이 나온 것! 이 또한 삼국지연의가 명작반열에 오르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게 아닌가 싶다. 쉽게 말해, 영화로 치면 나관중은 '운장포터와 도술사의 돌', 이런 판타지나 '삼국불패 -촉한웅사-' 같은 무협물이 아닌 '오호대장군 : 적벽워' 같은 허무맹랑한듯 리얼하게 그려낸 덕에 더 많은 이들이 몰입할 수 있는 작품이 되었던 것이다. 삼국지연의를 살펴보면 나관중의 취향을 알 수 있다. 일단 나관중은 지금 표현으로 치면 "마초스러움"을 선호했던거 같다. 서량의 그 마초말고 터프하고 와일드한 전형적 남성미의 그 마초이즘을 말한다. 그 이유는 일단 삼국시대는 물론, 나관중이 생존한 원나라 말 ~ 명나라 초에도 전투시에 그 전투지휘를 일임한 상장이나 총지휘관이 가장 선두에서 지휘하거나 심지어 적장과 1vs1 맞다이를 붙는건 확률이 0에 수렴했음에도 나관중은 그런 네임드간의 일기토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애초에 저런 방식의 전투가 없다시피했기에 당시 일반적인 상식선에서는 언뜻 생각도 못했을 개념인데 저리 도입한걸 보면 소설적 재미추구는 물론, "장수는 싸워야 장수!" 라는 그당시 기준의 마초이즘적 증거가 아닐지.... 또 한가지로, 삼국지연의내에서 장수들의 최후를 그린 부분들이 실제 역사와 다른 경우들이 꽤 있는데 대체로 병사하거나 혹은 죽음의 과정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이들이 연의에서 장렬히 전장에서 간지뿜으며 전사하는 걸로 각색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이질로 앓다 병사한 감녕, 역시 병을 앓다 결국 병상에서 숨 거뒀던 서황, 역시 고열로 인해 헛소리까지 했다는 학소, 역시 죽음 과정에 대한 별 기록이 없던 황충 등... 아참 태사자도 있구나 여러 장수들이 누워서 천장을 보다 저승을 갔음에도 나관중은 이들을 명예롭게 전장에서 요단강을 건넌 것으로 그려내줬다.ㅎ 나관중의 또 다른 취향은 "물량공세" 적벽대전 당시 조조군의 83만명. 관도대전 당시 원소군과 이릉대전 당시 촉-무릉만 연합군 70만명. 촉의 남만정벌 당시 50만명 등.... 지금의 중국으로야 가능해도 당시 빈번한 전란과 자연재해 및 극악의 치안상태와 기아 등으로 전 중국의 인구가 지금의 20분의 1수준에.. 제대로 된 인구통계도 못 내며 심지어 대규모 인원이 필요한 농경사회였던 당시로는 엄두도 못낼 규모의 대병력이 마주치는 이런 물량공세는 역시 나관중이 전쟁을 더욱 흥미롭게 표현키 위한 장치였다. 삼국지연의와 함께 "중국의 4대 기서" 라 불려지는 명작들이 있는데 나머지 세 작품은 수호전, 서유기, 금병매. 유교마인드 뿜뿜인 우리나라 정서상... 야설의 원조격인 금병매는 거의 매장 당하다보니 삼국지연의, 수호전, 서유기가 삼대장이 되었고 서유기가 주로 애니매이션이나 게임같은 어린이~청소년 대상 매체들에서 매만지다보니 성인들에게는 삼국지연의와 수호전이 양대산맥을 이룬다. 놀랍게도 이 중국4대 기서 중 삼국지연의의 나관중이 수호전도 집필했다...!!!! 수호전은 순전히 나관중이 창조했다기보다, 원나라 말기의 시내암(施耐庵)이라는 사람이 원작자에, 나관중이, 쉽게 말하자면 초본상태의 수호전을 사실상 마무리지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예를 들자면 시내암이 수호전이라는 그림을 대강 콘티만 그렸다면 나관중이 거기에 펜선을 그려 디테일을 추가하고 컬러링까지 했다고 하면 비슷한 표현?...ㅎ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단편이라도 소설이나 수필 등을 써본 분이 계시는지 모르겠다만... 아무리 적성이 맞고 본인이 원해 쓴다 할지라도 "글을 쓴다"는 작업은 보통의 인내와 센스로는 하기 어려운 작업이며, 더구나 실제역사를 기반해 철저한 자료조사 및 고증을 더한 작품은 요새도 쓰기가 버겁다. 게다가 요즘은 펜에 원고지로 원고작업 않고 대부분의 작가분들이 컴퓨터를 쓰지만.... 나관중은 명나라 사람이라, 벼루에 먹을 갈고.. 붓으로 먹물을 찍어 썼다. 학창시절 혹시 서예해 보신 분 계시는지?.. 먹을 가는거부터가 존니 진짜...하아..(난 그 먹냄새도 싫었어) 게다가 붓글씨는 정말 글씨쓰기가 거지같고 뭐 좀 쓸라치면 그새 붓의 먹물이 다해서 또 찍고.. 붓의 힘조절이 잘 안되면 글씨가 개판되며 오타가 나면 이건 수정이고 뭐고 처음부터 다시 써야된다.. 게다가 서예반 애들은 거의 대개 부모나 담임이 산만한 애들의 정서함양에 좋다고 시켜놓다보니 애새끼들이 전부 산만하다 -_-;;;;; (게다가 손에 묻은 먹물은 잘 씻기지도 않고 옷에 묻으면 그 옷은 그냥 버려야 된다는...) 여튼 그런 붓글씨로 쓴 소설! 심지어 그냥 소설도 아닌 중국의 4대 기서! 게다가 그중 둘이 Write By 나관중의 위엄은 말로 표현불가다. 위에서 언급했듯, 공부머리가 없었을 뿐 그는 천재고 서양의 세익스피어에 뒤지지 않는 동양최고의 문학가였다. 그런데 수호전을 읽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세상과 사회에 불만이 가득한 이들이 많이 나오고 그러다보니 명나라에서 그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벼르고, 그의 가문은 나관중으로 인해 온집안이 화를 입을까 두려워 그를 가문에서 파문!!! 쉽게 말해서 호적을 파버렸고, 나관중 역시 자신의 신상 및 자기네 집안안위 위해 노년에는 인적 드문곳에 짱박혀 이승윤이나 윤택이 찾아가는 그런 자연인처럼 살다 조용히 죽었다..., 그의 업적대비 참 초라한 최후지만, 당시는 뭐.. 아무거나 트집 하나 잘못 잡히면 그냥 모가지가 날아가는 시대에, 잘못 얽히면 온집안이 풍비박산 나는것도 다반사던 시절이였고 또 천재들은 항상 시대를 앞서가다보니 오히려 살아생전에는 인정은 커녕 가난과 무관심 속에 불운한 삶을 살다간 이들도 부지기수다. 아마 나관중은 앞서 언급했듯, 당시 시스템과 인프라에 따른 자기작품의 빠른 대중화의 한계와 당시 사회적인 직업인식 등으로 인해 생전에는 대문호에 대한 존경같은거 없이 살았을거다. 그냥 간신히 밥이나 먹고 맨날 방구석 처박혀 글이나 쓰고 그러는 Nerd였을 듯 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국지와 수호전이란 두 거작을 만들어낸 그의 근성과 집념에는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매사가 다 그렇다. 뭘 하건 성공을 위해 우리는 당장은 미진해도 꾸준한 시간과 노력의 투자가 쌓여 결국 언젠가는 빛을 발하는거라고 나관중의 삶이 말해준다. . . . 네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심히 창대하리라. - 욥기 8장 7절 - (하지만 난 무신론자)
삼국지에 대한 이해도 높이기 2.
지난번에 이어, 오늘도 삼국지를 보다 쉽고 재미지게 접하는데 도움을 줄만한 팁들을 준비해 봤다. 삼국지를 아직 읽지 않았다면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고 이미 읽어본 분들 역시 한결 넓게 바라볼 수 있게끔 삼국지에 대한 이해도 높이기 2 Start!! 1. 무기. 삼국지연의 속 장수들은 저마다의 무기들을 쓰고 이 무기들은 곧 그 유져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분신의 역할을 하기도 하며, 정말 다양한 무기들이 등장한다. 관우의 청룡언월도, 장비의 장팔사모, 손견의 고정도, 전위의 쌍철극, 여포의 방천화극, 정보의 철등사모, 기령의 삼첨도, 서황의 개산대부, 황개의 철편, 유비의 자웅일대검 등등.. 열거하기 귀찮을만큼 많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숱한 무기들 중의 대다수는 당시에 실존하지 않았던 것들. 대표적인게 관우의 트레이드 마크인 "청룡언월도". 먼저, '도(刀)'는 한쪽만 날이 있는 칼, '검(劍)'은 양쪽 모두 날이 있는 칼을 뜻한다. '청룡도'는 너비가 넓은 도를 일컫는 말이며, '언월도'는 '월도'라고도 했는데 이는 긴 자루가 달린 도를 일컫는다. 고로, '청룡도 + 언월도 = 청룡언월도'라 함은 긴 자루 달린 청룡도를 말한다. 너비가 넓다보니 일정 수준 이상 부피가 있던 무기인 청룡언월도는 대체로 일반 도검들에 비해 중량이 좀 나가는 무기였고, 찌르기보다 베기용이긴 했다만.. 날카로움으로 벤다기 보다는 무게로 내리찍는 용도의 무기였다. 왜냐하면 당시의 제철수준으로 큰 월도를 날카롭게 제련하는 기술력의 한계가 있었고, 설령 내가 쓰는 질레트 마하3 면도기날처럼 어찌어찌 날카롭게 만들었다 한들... 몇 번만 쓰면 금새 날이 무뎌지기 마련. 게다가 날카로우려면 단면이 얇아야 하고 또 얇게 만들다보면 그만큼 가벼워지니 살상력이 떨어진다. 쉽게 말해, 청룡언월도에 맞으면 영화나 만화처럼 '뎅겅~'하고 썰리는게 아니라, 짓뭉개지며 박살이 나는건데, 심지어 연의에서의 묘사에 의하면 관우가 썼다는 청룡언월도의 무게는 무려 "82근"! 혹자는 한대의 한 근은 지금의 한 근보다 가벼워, 당시의 여든 두 근은 대략 18kg쯤이라고 하는데, 나관중이 명나라 사람이라 명대의 도량형으로 설명 했기에 청룡언월도의 무게는 48kg이 맞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무기 + 그 무기 휘두를 덩치 + 갑옷 + 안장 + 마갑 = 어림잡아도 230kg을 넘어가는데 그럼 말은 도대체 무슨 죄인가? 더구나 아무리 장사여도 저 중량의 무기를 휘두르기 위해 마상균형을 잘 잡아야 하는데, 그 시대에는 말 타며 균형 잡고자 발을 거는 등자가 몹시 어설퍼, 제 기능 발현이 어렵던 시기였다. 일단 송나라 때에나 등장한 청룡언월도를 관우가 썼을 리 없고 정사기록에 "관우가 안량을 찌른 후 목을 베었다"라는 구절을 볼 때, 관우는 '삭'으로 불리는, 당시 기병의 보편적 주무장인 찌르기용 창을 썼다고 본다. 그리고 '여든 두 근'이란 표현도 실제 측량무게가 아닌 관우의 파워의 대단함을 묘사키 위한 나관중의 중국인 종특인 과장의 산물이다. 소설과 인물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부여된 일종의 아이템같은 개념이였던 것이다. 장비의 "장팔사모" 역시, 지금 추산 시 5m가량의 기나긴 창으로 묘사되지만 한대에는 그런 긴 창은 쓰지도 않았거니와 동서양 역사에서의 그런 길고 긴 창은 보병의 대기병전용 무장이였지, 말 위에서 휘두르기는 너무 불편한 무기였다. 당시의 백병전은 인정사정 없었고 사소한 실수, 작은 삑사리 하나로 장애인이 되거나 바로 요단강에 발을 담그는 리스크가 될 수 있기에... 여든 두 근 청룡도니, 한 장 여덟 척 장팔사모니 하는 후까시용 무기보다는 그저 실용적이고 쓰기 편한 무기가 답이였다. 여포의 방천화극 또한 그 "방천화극" 자체가 역시 청룡언월도와 마찬가지로 송나라 중엽에서야 등장하는 무기였기에 픽션이며 그냥 찌르기용 '극'을 쓴 것으로 보여진다. 삼국지 등장 장수의 거의 8할이 "찌르기용 창"을 실제로 썼는데, 이는 '베기'보다 '찌르기'가 더욱 적은 에너지와 운동각으로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기에 체력소모와 한 번 움직임에서 다음 움직임 까지의 인터벌을 최소화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베는 창을 쓸 경우, 창을 더욱 높이, 크게 휘둘러야 상대에게 치명상 입힐 수 있는 반면... 빗나갈 경우 오히려 상대에게 역관광을 당하기 제격이다. 그렇다고 적은 각도로 움직이면 운동에너지나 원심력이 제대로 실리지 않아, 상대에게 그만큼 데미지를 많이 주지 못 한다. 놀랍게도 "쌍철극"의 경우, 정사에 전위가 80근의 쌍철극을 휘둘렀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는 그 당시의 사료이므로 한대의 도량형에 따라 지금 기준 약 16~18kg가량의 무기가 맞다. 2. 일기토. 일본어의 "잇키우치(いっきうち, 一騎討ち)"에서 한자어인 '一騎討'만을 우리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기마무사간의 1vs1 대결을 의미한다. 사실 한, 중에서는 거의 안쓰는 한자어인데, 국내에서는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 탓에 1대1 결투의 일반대명사가 되어 버렸다. 삼국지연의를 보면 정말 숱하게 등장하는게 바로 저 일기토이지만... 놀랍게도 실제 역사기록에 의하면 삼국시대에 일기토 기록은 열 손 이내 밖에 없다. 192년 "여포 VS 곽사" (장안) 놀랍게도 곽사가 먼저 결투 신청. 그럼 그렇지, 여포의 창에 맞고 죽기 직전에 부하들이 곽사 구출. 196년 "손책 VS 태사자" (곡아) 말 타고 싸우던 중 손책이 태사자의 말을 찌르고 (나쁜새끼), 태사자의 창을 빼앗자, 태사자는 낙마하며 손책쪽으로 넘어지며 손책의 투구를 슈킹. 196년 "학맹 VS 조성" (하비) 여포에게 반기를 든 학맹과 조성이 싸우던 중 고순이 나타나 학맹을 죽임.(읭?) 196년 "마초 VS 염행" (서량) 그 천하의 마초가 염행의 창에 찔려 죽을 위기 맞음. 단, 당시의 마초는 만 19세로 아직은 경험미숙.. 200년 "관우 VS 안량" (백마) 추후 관우편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음. 202년 "방덕 VS 곽원" (평양) 방덕이 당시 난전 중에 적병을 그냥 막 죽이던 와중에 곽원도 섞여 죽음.(이건 좀...;;) 208년 "여몽 VS 진취" (강하) 유표군과 싸울 당시 선봉이던 여몽이 적 수비대장 진취와 맞서 싸움. 2011년 "김형수 팀장 VS 이민형 과장" (백림호프) 만취한 이과장이 김팀장에게 반말로 도발하자 이에 격한 김팀장이 숟가락 볼록면으로 이과장의 정수리를 갈겨 단 일 합에 이과장을 처단. 사실, 일기토 자체가 성사 쉽지 않을 수 밖에 없는게, 저건 보는 사람이나 재미있지... 당사자들로서는 자신 뒤의 수 많은 군세의 기세를 책임진 상태에서 사소한 실수 하나로 자기 목숨은 물론, 전술적 승패를 갈음 짓는 1대 1 대결은 실로 무모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기고 있거나 우세한 군세의 우두머리가 이겨도 본전에 지면 그야말로 대참극의 아비규환을 불러올지 모를 그딴 제안에 응할 리가 없다. 그럼 상대가 응하지 않는데 홀로 싸울 수도 없다. 그리고 어지간한 급의 장수들은 영화나 만화처럼 행군 중이나 군사들간 대치 상황에서 가장 맨 앞에 나와 보란듯이 있지 않았다. 그럴 경우, 상대방의 활에 의한 저격에 피격될 위험성이 높기 때문. 물론, 장수의 화려한 차림새나 그 주위의 대장기를 든 호위대 등으로 분명 눈에는 띄었을 것이나, 가장 선두에 다 보란듯이 나와 있진 않았다고 한다. 솔직히 이게 뭐라고 쓰는데 두 시간 걸린다는.... 쓰고 나면 지치지만 여러분들이 주시는 관심 가득한 피드백들이 그런 피로를 잊게 해줍니다ㅎ 연재가 더디긴 해도 심도깊은 내용으로 차차 다룰 소재들이 매우 많으니 인내를 갖고 기다려 주시길 양해 바라며 타인을 비방하거나 불쾌히 만들 댓글은 자제 부탁 드려요. 궁금하신 점 등은 댓글로 문의 주시면 아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답변 드리고 있습니다! 주관적 견해를 바탕으로 한 논쟁은 도돌이표인 경우가 많고 감정만 상하기 부지기수라 응하지 않습니다. 역사와 삼국지라는 다소 고루하며 남성적인 소제를 다룸에도 예상외로 적잖은 분들의 관심과 기대에 늘 고마움 갖고 정성껏 쓰고자 애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