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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화통주의) 항암치료중인 와이프 두고 놀러다닌 남편썰

(펌)

암 투병기간중 내 아픈 마음을 공감하지 않은 남편에 화가 나서 용서 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결혼 24년차 주부 입니다

결혼해서 낭비하지 않고 엄청 알뜰하게 살아서 목돈이 좀 있었고 거기에 어머니가 주신 돈도 좀 있었는데 남편은 자기가 돈을 불리겠다며 목돈을 굴리다 결혼10년만에 모든 걸 탕진해 전세 자금조차 대출할 지경이었습니다

재산 모두를 탕진했어도 저는 아이가 둘이 있었기에 이혼은 생각도 안하고 남편을 용서 했습니다
빚을 얻어 전세를 얻었고 밑바닥부터 다시 일어나야 했기에 저도 일을하며 열심히 살았습니다

전세빚을 다 갚을 때쯤 남편이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고 또 빚을 얻어  사업을 시작하게 되서 저도 도와서 같이 일을 하게되었습니다

벼랑끝에 뒷굼치를 들고 서있었던 심정으로 여기서 더 떨어지면 죽는다는 심정으로 처음 몇년은 잠자는 시간만 빼고 남편보다 더 일에 몰두하며 온갖 궂은일을 하며 사업에 매진했습니다
출퇴근 차에서 쉬는 시간이 행복했다 할만큼 고된 생활도 남편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남편도 여러가지 힘들었겠죠
그렇게 사업이 잘되서 집도 사고 이제 좀 살만하니 사업9년차쯤 제가 암에 걸렸습니다
병원에서는 3기로 암크기를 줄여서 수술을 하자고해서 선항암치료를 8차 까지 하자고 결정을 하고 저는 암선고를 받고 불안과 걱정에 불면증에 시달렸습니다
일도 내가 하던 것이기에 바로 그만 둘수가 없어서 항암치료 전날 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2015년 5월 암선고를 받고 2016년 1월 모든 치료가 끝났습니다

제가 화가 나는 건 지금부터 입니다
얼마전 남편 카톡을 우연히 하나 눌렀다 실망스러워 문자 밴드까지 다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남편 카톡이나 문자 밴드를 한번도 본적이 없었습니다
제가 암선고 받고 며칠 후 저는 걱정에 불면증에 시달리는데 남편은 회사근처에 온 동창(친하지도않은) 술 사줄려고 오라더군요 
대화엔 걱정이라곤 없는 사람 같았습니다

저에겐 가장 강한 항암제가 투여되었고 첫 항암주사를 맞고 걸으면 숨이 차 난간을 잡고 걷기조차 힘들었는데 첫 항암 3일째 되던 날 울남편은 초등동창 밴드에서 누가 콘도로 1박2일 놀러가자고 인원파악하니 간다고 댓글을 달았더라구요

첫 항암시 저는 너무 힘들어하고 있는데 그걸 보면서도 놀러갈 생각이 어떻게 들었을까요

제가 항암중에도 남편은 초등동창회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무척이나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2015년 나간 지 2년정도 된 남편 동창회는 별로 친하지도 않았던 사람들이었는데 이름도 나가서 알았다네요
남편은 내가 아픈데도 자기가 가고 싶은 건 다 갔습니다
네 이해합니다 저 땜에 침울한 건 저도 싫었으니까요

그치만 초등동창들이랑 여자남자 어울려서 삼삼오오 번개팅을 하고 새벽까지 술을 먹고 동창여자들이랑 어울려 콘서트도 가고 뮤지컬도 보러 가고 아주 흥겨워서 신이 나있었습니다 
어디에도 와이프가 아픈 사람 같은 느낌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제 한몸 건사하는 것도 버거워 남편이 이렇게 즐겁고 흥겹게 여자들이랑 어울려 다녔는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저 친구랑 어울리겠거니 했죠

제가 막바지 항암을 하고 수술을 며칠 앞둔 때 울남편은 아예 한달에 한번씩 놀러 가자는 모임을 만들자 제안을 초딩밴드에 했더군요
그리고 수술입원 전전날 놀러 가자는 의견이 모아지고 여자들의 지지를 받으니 남편은 아주 신나 보였고 흥분한 것 같았습니다
어디에도 곧 수술할 암걸린 와이프는 없어 보였습니다

1박2일 가자는의견에는 자기가 11인승 차를 가지고 다 실고 갈거다(항암중에도 설거지도 몇 번 안 하던 사람임) 자기가 심부름꾼이 되어서 뒷바라지 다 할 것 같은 맨트들...

그러다 제가 입원 전전날 배낚시가 결정 되었고  반응에 신나서 좋아하는 남편은 한사람이라도 더 같이 갈려고 카톡 여자들한테 전화질에 가관이 아니더군요
이 건은 하늘이 도왔는지 비로 무산 되어 남편은 무척 아쉬워 했고, 저를 조금이라도 맘아파 했으면 입원 전전날인데 불안해 하는 나를 위해 수술 잘 될 거라고 위로해주고 수술 후유증에 대해 온 인터넷을 뒤지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어디를 놀러갈까 궁리하는 남편 정상이 아니었어요

수술날 남편은 아침에 아이들이랑 왔는데 저는 수술복을 입고 언제 수술실도 들어갈 지 모르는 병실에서 대기 상태인데 남편왈 아침을 안 먹고 왔다고 먹고 오면 안돼냐더군요
수술 언제 들어 갈 지 알고 수술실까지는 같이 가줘야지..지금 생각하니..참 비참하네요

제가 못가게 해서 밥먹으러는 저 수술실 들어간 다음에 갔는데 이게 또 병원식당서 먹어도 되고 수술하는데 샌드위치로 때워도 되지 않나요
굳이 밖에 나가다 노란은행 나무가 이쁘다며 사진을 찍어서 아침꺼까지 12장을 찍어서 골라 밴드 이곳저곳에 올렸더군요
제가 전신마취로 암수술 하고있는 시간에 '은행잎이 이쁘당~~~' 맨트로 올렸더군요

와이프가 전신마취로 암수술하고 있는데 은행잎 예쁜 게 눈에 들어오는 것도, 그걸 밴드에 올리는 것도,수술자리 지키지 않고 밥을 먹으러 나갔으면 빨리 갔다 와야지 밴드에 올리려고 사진 이쁘게 찍으려고 이렇게 찍고 저렇게 찍고 댓글보고 흐믓해 했을 남편이 너무 밉습니다

그리고 제가 치료가 끝나고는 남편은 더 초등동창 여자남자 삼사오오 뻑하면 술마시러 다녔더군요
그중 어떤 여자동창은 울남편을 지들 여자동창 소모임에 끈질기게 불러 내고 있더라구요
결국, 학교다닐 땐 말 한 마디 안해봤다던 그 여자랑 남자 몇 명이서 소규모 혼성 모임을 나 몰래 만들어서 한달에 한번씩 만나고, 번개에서 만나고, 공식 동창회에서, 만나고 경조사에서 만나고, 어떨 땐 한달에 5번도 만났더군요

학교 다닐 땐 말 한 마디 안해 봤다던 그 여자랑 허물없이 친해진 남편은 카톡에서 장난으로 고맙다는 말을 '그대를 사랑합니다 ㅎㅎ' 라고 남겼더라구요

울남편은 결혼후 저의 생일을 3분의 2는 까먹고 지나갔고 챙겨달라 얘기해도 소용 없었고 자기는 생일 이런 거 의미 안둔다던 사람이었고,저는 남편으로부터 생일선물은 커녕 선물 한번 조차 받아보질 못했죠

호구 같지만 그래도 살은 건 이 사람이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 원래 그런 거에 크게 의미를 두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에 위안을 삼았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 생일날 새벽3시까지 놀다 들어 왔어요
그 여자가 남편이 잘 안챙겨줘서 안스럽다나...
기가 차서 나도 지가 안챙겨 줘놓고 그 여자는 불쌍하고...그럼 나는..아프기까지한 나는...

그 여자도 미친거지 유부녀가 남자 동창 3명이나 불러서 새벽까지 놀고...정상이 아니라고 봅니다 저는 남편은 50이 넘었으니 여자도 친구가 될수 있지 않냐 아무 사이도 아니다더군요

저는 항암전날까지 출근을 했고 항암하면서도 자택근무로 집에서 수술전날까지 하루에 두시간은 일을 했고 항암2차 때는 면연력이 없어서 응급실까지 갔고 독한 약으로 머리털은 다 빠지고 손 등에 수포로 청소기 물건 조차 잡을수가 없어서 면장갑끼고 목장갑끼고 집안 일을 했고, 메르스 때는 남편 도시락까지 싸줬습니다

반찬을 할 때면 맨손으로 칼을 잡을 수가 없어서 면장갑 그 위에 고무장갑끼고 칼질을 하려니 넘 불편했지만 참았습니다
여기저기 수포로 걷는게 불편해 밖에도 잘 못나가서 항상 집에서 창밖만 바라보는 생활이었어서 우울했고 많이 혼자 울었습니다
그래도 남편과 애가 올시간에는 아픈몸을 부여잡고 저녁을 하곤했고 이겨내려는 의지를 다졌습니다

그리고 나는 극도의 불안감에 시달리며 괜찮지 않았지만 항상 괜찮다고 얘기 했고, 그렇게까지 한 건 10여년을 남편과 같이 일을 하다 혼자 내보낼려니 미안하고 아퍼서 걱정 끼치는 것도 미안했습니다

항암 때도 다른 사람은 다 가족이 따라 왔지만 난 6번을 혼자 가서 외롭게 치료를 했고 남편이 시간을 내면 올수도 있지만 내가 외로워도 조금 참자 일하는 남편을 위한 배려 였습니다 

생각해보니 남편이 항암 때 나에게 해준게 냉면과 죽 한번 사준 거 월정사 한번 데려간 거 그게 전부더라구요
이게 몸에 좋으니 먹어봐라 사온 적도 없고, 항상 뭐가 안 좋으니 먹지마라 과일 야채 많이 먹어라 그냥 남들이 하는 말 정도 하는 얘기가 전부였네요

남편생각은 자기는 생각을 잘 분리해서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나땜에 맘 아팠고 또 동창은 동창이라고. 왜 밴드를 봐서 2년전 일로 맘 아파하냐고 하네요

저는 와이프가 아픈데 저런 행동을 했다는게 이해가 안 가고 같이 아파해주지 않은 남편이 했던 행동에 큰 배신감과 충격을 받았습니다

생사를 왔다갔다 했던 아픈 와중에도 남편을 걱정하고 배려했던 제 마음은 너무 바래버렸고 그때의 아팠던 저에게 한없이 미안해지고 슬퍼서 눈물이 흐릅니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참고 살았는지 허망하고 나한테 잘해준 거 하나없는 이기적인 남편을 왜 위하고 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남편은 잘못 했다고 하지만 가슴에 분이 안 풀립니다
어떤 충고든 해주세요 저에게든 남편에게든...
남자들 의견도 듣고 싶습니다 저런 행동..그럴 수 있는지..미친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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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미즈넷에 올라온 글이라는데
검색하다 우연히 보고 얼척 없어서 가져옴
나도 남자지면 남편놈 진짜 미친거 아님?
저 정도면 ㄹㅇ 인간의 탈을 쓴 짐승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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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막에 바람난다고 딱이네 초딩 밴드 거기에 밎치면 약도 없는데 뇨자는 한번에 마음이 돌아서지를 않습니다 수없이 시그널을 보낸후 정리를 하지요 저역시 시행착오가 있었구요 넘 가정사 평을 할수는 없지만 부인이 힘든 시기에 몰라라 하는 것은 부부간의 도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끝은 해피앤딩이 안될것 같아 유감입니다
초딩동창들끼리 내연관계인걸 실제로봐서(남편동창남녀) 그 투병기간에 행해졌던 일들이 실로 의심스러움 저 정도의 남편이라면 평상시에도 상당히 이기적인 행동을 했을텐데 여자분 혹시 부처인가요?
남보다도 못하네
동창은 시벌 간판이고 안봐도 뻔한거지 저런걸 남편이라고 애들 아빠라고 같이 살아줬다는게 분함 쓰레기 새끼 분명히 하 아 시발 욕밖에 안나온다. 어떻게 인간이란 새끼가 지때문에 그리 고생하고 암까지 얻어 낼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에 저런짓을 하지? 아무리 정없이 살았다해도 그래도 이혼을 않는 이유는 무언가 끈이 부부사이에 있기 때문인데 저 개새끼는 무슨 심정이었을까? 저 아줌마 죽어도 한 5 년을 흘러 그때서야 눈물바람하면 다행일 새끼네 시발 더럽고 추잡하다 진짜 바람한번 안피는 사람도 있는데 바람한번안핀 새끼가 있냐는 새끼들 마냥 개쓰레기네 하
욕한사발 면상에 퍼부어도 모자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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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구역에 갓는데 1구역 아버지방은 손과발에 족쇄를 차고 잇어야하는 엄중한 죄수구역이고 2구역은 허리굽히고 들어가는 콩크리트 창고인데 계단으로 해서 땅속으로 내려가면서 방들이 잇엇습니다 천정은 살창을 치고 그우에 보초병이 총을메고 보초를 섭니다 2구역은 강제로동을 시키는곳인데 남자들은 벌목과 제재일을하고 (통나무를 판자로 만드느곳) 녀자들은 농사일을 하엿습니다, 3구역은 나이많은 사람들과 어린아이들 .그리고 1.2구역의 가족들이엿는데 죄수들을 치료하는진료소도 잇엇습니다 밥은하루 두끼주엇는데 한끼는 감자1개와소금몇알을주고 다른한끼는 통강냉이 삶은것을 한줌주거나 벼겨,강냉이겨를 가루내여 범벅을 만들어서 한덩지씩 주기도 햇고 통밀을 삶은것을 한줌주기도 햇습니다. 나는 일을 잘하지못한다고하면서 반장이 자꾸만 절반씩 빼앗아갓습니다 그래도 선생님들에게 말하면 안되엿습니다, 감옥주변에는 풀도 제대로 나지못하게 약을쳐서 배가고파도 풀뜿을데가 없엇습니다, 어쩌다가 빽빽이풀과 고마리풀,도꼬마리풀과 강태나무풀을보면 선생들에게 들키지않게 뿌리까지 다 뽑아서 먹고 나머지는 씹어서 덩지 만들어 숨겻다가 밤에 잘때 몰래 먹엇습니다. 3구역안에사는사람들중에는 산에서 도토리를 잘줏거나 송이버섯을 잘따는사람들은 그래도 산에서 일하면서 칡뿌리,머루,다래,돌배도 먹는데 우리처럼 평양에서 살던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니 관리소안에서 시키는일만 햇습니다 작년에 관리소에 들어왓을때 몇달동안은 우리가족이 모두 검토기간여서 남들보다 고생을 숱해햇습니다, 일주일에 2번아니면 3번씩 아버지와 우리가족을 한자리에 모이게하고 여러가지를 물어보앗으며 감시원선생들이 아버지가 제대로 불지않는다고 하면서 우리가족이보는앞에서 각자몽둥이로 아버지를 때리엿으며 메고잇는총에서 소제대를 뽑아서 때렷습니다 또 어떤때는 전동기에 끼우는 피대를 잘라서 만든 채찍으로 때렷습니다 아버지가 맞아댈때마다 어머니는 기절하엿습니다, 어머니가 기절하면 선생들은 물한바게쯔를 떠다가 나에게 주면서 엄마에게 부으라고 하기에 나는 무서워서 떨면서 엄마의몸에 물을 부엇습니다, 아버지가 그때마다 소리치면 선생들은 <이새끼. 아직 정신 덜 들엇다>면서 량옆에서 달려들어 아버지의 관절사이에 각자나무를 끼우고 무릅을 밟아대엿습니다, 어떨때는 아버지를 거꾸로 매달아놓고 <여기자료가 다잇다,돈 얼마를 받앗어.안기부요원대라,너희단체를 대라>하면서 때렷습니다, 너무 맞아대여 아버지는 이발이 남은것이 없고 입이 터져서 말도 제대로 하지못하엿습니다, 머리를 다 깍아놧는데 머리가 너무 맞아대여 성성한데가 없엇습니다. 온몸이 상처가 가뜩햇고 제대로 걷지못하니까 선생들이 량옆에서 끌고 다녓습니다 선생들도 때리고 조사나온 양복차림의 사람들도 때렷습니다, 자꾸만 대라고하면 아버지는 그런일이 없다고하면서 선생들에게 대들고 그러면 여러명이 달려들어 거의죽게 때렷습니다 작년겨울 12월 설날며칠앞두고 우리가족을 모두 불러내여 <설전에 네새끼일 끝내야 한다,골아프다,야 이새끼야! 시원히 확 불어버리믄 너두 편안하구 나두 편안할거 아니냐>면서 1구역안에잇는 작업장창고앞 돌배나무에 묶어놓앗습니다, 양복입은 사람이 동복(외투)큰거 걸치구 나와서 앉아잇고 다른 선생들은 옆에 서잇엇는데 양복입은 사람이 다른선생에게 가서 각자 6개를 가져오라구 시켯습니다 그선생이 한쪽에 메고잇던총을 목에다 걸어 가로메더니 (인민군에서 지어총!자세를보고 하는말) 가서 제재소에서 켜둔 각자나무를 가져왓습니다 어머니와 누나,나에게 하나씩 쥐라고하더니 <이제부터 한마디 물어봐서 말안하면 한사람이 3대씩 힘껏 때리라> 고 하엿습니다 저도 3번이나 9대를 아버지를 때렷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나는 그런걸 모른다.나는 당에 떳떳하다> 하면서 겨우겨우 말햇습니다. 그러니까 선생들은 < 이새끼 이래서는 안되겟다> 하면서 어머니와 누나를 발가벗기더니 마당에 광산에서 쓰는 광차가 4개 잇엇는데 거기에 물을 꼴뚝 ( 가득)채워둔것이 얼어서 곡괭이로 깨더니 (까더니)그안에 들어가라고 하엿습니다, 어머니와 누나는 울면서 발악하니까 선생들이 얼음속에다 엄마와누나를 넣고 나오지못하게 꼭대기에서 발로 누르고 잇엇습니다. 그리고는 아버지앞에 다시세우고 아버지의 죄를불게하면 <너희는 집에 갈수잇다> 하면서 시켯습니다, 제대로 말을하지않는다고 꽁꽁언 어머니와 누나의 온몸을 군관혁띠로 때렷습니다 또다른 선생한명은 우리어머니의 두다리사이를 벌리게하고 <이년 까치둥지 멋잇다>하면서 엄마의 아래도리 털을 당기면서뽑앗습니다, 다른선생은 누나에게 < 야,너 대학다닐때 아새끼들과 (청년들)몇판햇나?>하고물으니까 누나가 울면서 <한번도 그런일이 없습니다>하니까 거짓말한다면서 <벌려라 보자,검열하겟다>하면서 맨땅바닥에 눕게하더니 다리를 하늘공중에 벌리라고하더니 신발신은채로 누나의 아래도리를 후벼대며 그리고는 각자몽둥이로 비비면서 <쌍년 .많이 놀아봣구만 .그래도 거짓말이야>하더니<거짓말한대가다,너 처벌이다> 하더니 가스라이타를 크게 올리더니 <움직이면 밟아죽인다>하면서 소리치며 누나의밑에 불을 달아놓앗습니다 누나가 악!소리치며 비트니까 선생들은 와하고 재밋다고 하면서 고아댓습니다 그날 우리가족은 모두 죽는줄 알앗습니다, 어머니가 기절한후 정신을 차리지못하자 그때에야 조사가 끝낫습니다, 그후 10일이지나서 또 가족이모여 조사를 받앗는데 저녁때까지 하다가 생활총화한다면서 (북한에서는 한주일에한번씩 당생활총화,청년동맹생활총화.지맹원총화등 을한다) 다른선생들은 다 가고 두명이 남아서 아버지는 기둥에 묶어놓고 어머니는 나무무지에다가 바줄로 두손을 묶어놓은다음 나는 어머니와함께 묶어놓더니 누나를 보면서 <이년은 이안에 온지 1년 돼 오는데두 아직 고기 좀 붙어잇구나 ,뭘 도적질해 먹구 고기 안빠졋나?>하더니 누나에게 <네년 이상하다.왜 고기가 안빠지는지 검열해봐야겟다>하면서 억지로 옷을 벗겻습니다 아버지가 묶이운곳에 가마니와갈대로 만든 나래가 잇엇는데 (갈대를 엮어서 두루마리처럼 한것임)선생들이 그걸끌어다가 누나에게 그우에 누으라고 하더니 한 선생이 <이간나 .때 호미루 긁을 지경이다.더러워서 못보겟다>하더니 지하족을 벗고 발사개하나를주면서 광차속에 잇는물에 적셔서 밑을 깨끗이 닦으라고 햇습니다 (자기는 새 발사개를 품에서 꺼내 갈아신엇다고함) 누나가 발사개를 적셔서 닦고 또 닦자 시뻘겋게 되엿습니다 누나가 접어드는 두선생에게 반항하자 누나를 몇대 때리더니 다른 한 선생은 말아피우던 독초꽁초를 (북한군은 권연이 없어 잎담배를 신문지로 말아피움 )누나의 젖꼭지에 비벼대며 죽여버린다고 하면서 누나를 땅바닥에 쓸어뜨리고 누나의 얼굴우에 엉뎅이를 대고 눌러앉아 두손을 발로 눌럿습니다,그래도 누나가 발버둥치자 손과발을 따로따로 묶엇습니다 발하나는 아버지가 묶인 기둥에 묶고 다른발하나는 어머니의 몸과 나무무지에 묶고 두손은 기둥과 광차손잡이에 묶어 놓더니 <네간나 ,오늘 걸레 만들겟다>하면서 강간햇습니다 그리고는 엄마와나에게 다른선생들에게 말하면 너희는 그시간부터 이세상에 없을줄 알라고 윽박질럿습니다, 아버지에게는 이래도 불지않느냐하면서 이런 독종새끼니까 안기부 밀정한다면서 아버지를풀어 얼음물에 잠그려고 하엿습니다 그때순간에 아버지는 최대의; 힘을 다하여 한 선생의 옆구리에 매달려잇는 총창을 비틀어잡고 자기배에 힘껏 찔러 자살햇습니다, 군대들 자동보총에 칼꽃는것을 혁띠에 매달아서 옆구리에 달고다닙니다 . 칼집채로 박히다보니 아버지주변에 피가 숱해 흘럿습니다(북한군 AK자동소총에는 육박전을 위한 총창이 있는데 혁띠에 차게끔 되어잇다) 선생들이 급해서 연락해서 의사들이 와서 담가에 싣고 가는데 그때까지는 아버지가 숨이붙어잇다가 가는도중에 사망햇습니다 그때 엄마가 또 기절하면서 신경이돌아 다음날 정신병자병동에 들어가 있다가 어느날 변소칸에서 인분을 세사발되게 먹고 죽었습니다 (그사건으로하여 처녀를강간햇던 군인 두명은 강직처벌되여 다른부대로 갓다고함 그문제로 하여 우에서 검열까지 내려왓으며 관리소내 군인들 사상투쟁회의도 잇엇다고함 ) 누나도 잡병이 많이와서 계속 앓앗는데 아버지,엄마가죽은후 머리가돌아 정신이 들락날락햇습니다, 나는 하나남은 누나를 살려보려고 내게 나오는 음식을 몰래몰래숨겨 제재소에 심부름갈때마다 누나의 호실에 던져넣엇습니다 매일저녁 사상개조회의를 햇는데 남자들따로,녀자들따로 앉히고 공부시키다보니 누나와 나는 마주보며 소리도 내지못하고 울기만햇습니다 누나는 점점 약해져서 정말 귀신처럼 되엿습니다 머리도 뜿어먹개처럼 (마구헝클어짐)깍아놔서 어떨때는 누나를찾기도 힘들엇습니다 평양에 잇을때 우리누나는 너무 고와서 (예뻐서) 화보에도 (잡지)나고 청년문학에도 나고 하엿습니다, 아빠트사람들이 정말 영화배우감이라고 (북한에서는 예쁜여성들 을 영화배우감으로 비유하여 표현한다) 하면서 성격도 조용하고 말이적고 례절이(예의)밝아서 대학에서랑 누나를 아는 사람들은 다 칭찬햇습니다, 그러나 감옥에 온후 별의별고생을 다당하고 별의별일을 다 당하면서 누나는 병신이되고 페짝이 (페인,식물인간이름)되엿습니다 그러면서 8월달이 되엿는데 그때부터는 관리소에서는 먹을것이 없어 감자밭에서 감자를캐서 죄수들에게 주엇습니다 , 감자캐는건 녀자들이 호미로 감자를 캐놓으면 남자들이 삼태기에 담아 선생이 지키는곳에 가져다 모아놓으면 소달구지가 와서 실어갓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여 선생들이 모여앉아 감자구워먹는다고 경비서던선생가지 불더미에 간사이 남자죄수 3명이 누나에게 달려들어 강간하는데 누나가 저혼자 죽엇습니다 계속 앓는데다가 며칠동안 먹지못하고 있다보니 감자캐러 나와서 경비선생의 눈을피해 생감자를 정신없이 먹엇는데 그게탈이 난데다가 남자들이 달려드니 너무 혼이나가 정신발작까지 일으킨것입니다, 선생들이달려와서는 뻔히 기색을 알면서도 <도적질해 먹으니까 죄만나 죽지>하면서 감자캔줄기로 덮으라고 햇습니다 그리고 남자죄수 3명은 호송선생들이 데려갓습니다 그때나는 감자캐는데 없고 산나물 다듬는조에서 일하다보니 누나가죽은줄 몰랏습니다 계속 안보이기에 선생들에게 누나를 찾아달라고 하면 머리를 때리면서 모른다고만 햇습니다 나와친한 영수가 알려주어서야 나는 누나가죽은줄 알앗습니다 그런줄도 모르고 잇엇는데 사람이 없어지면 관리소가 야단칠텐데 조용하기만햇습니다 며칠동안 비가게속오니 밖에 내보내지않고 감방안에 가둬두기만 하다보니 소식을 알수가없엇습니다, 그게 8월 10일전인데 20일이 다 되여서야 다시감자캐기가 시작되면서 나도 감자캐는데 나갓습니다, 밭에먼저 들어간사람들이 밭정리하면서 누나의 시체를 찾앗습니다 관리소에서는 10일그때 죽은걸 처리해야겟으나 그사이 비가 계속오니까 다시 감자캐기할때가서 날라다 처리하려 한것이엿는데 우리담당선생이 그걸모르고 나를 그만 감자캐기에 내보낸것입니다, 나는 울면서 선생들에게 우리누나 묻어달라고 햇지만 선생들은 가마니에 둘둘 말아 죄수들보고 들라하더니 나를 따라오지못하게하고 그날 화장터에 갓다가 화장해 버렷습니다 관리소안에 화장터가 잇는데 한달에 10명이넘게 화장햇습니다 누나의시체를보니 한손에는 감자줄기가 썩어잇엇고 다른손에는 흙이 잇엇습니다 입안에는 감자썩은것이 흙과 함께 잇엇습니다 그래서 손가락으로 입안의 흙과 썩은감자를 파내면서 누나를안고우는데 선생들이 달려와 나를 때리면서 반장에게 소리쳐 나를 데려가라하더니 가마니에 말아서 누나를 가져갓습니다 나는 며칠을 몰래울며 보냇습니다 우는것이 선생들에게 들키면 반혁명분자를 동정한다하면서 사상투쟁무대에 세우기때문에 우는것이 들키지 말아야햇습니다 나와제일친한애가 영수인데 내보다 두살 더 먹엇는데 <남자새끼.그만한건 참고 견뎌내라.그리구 잊어버려라.어떻게하나 살아야한다,통일되면 무슨일이오겟지> 하면서 나를 생각햇습니다 영수네는 할아버지가 전쟁때 악질치안대로 사람들을 많이죽엿는데 월남한것이들켜 가족이모두 중국에가서 숨어잇엇는데 3년만에 잡혀서 여기온지 4년되엿고 아버지는 그때 인차 죽고 어머니는 2년전에 죽엇다고함니다. 형과누나는 소식을 모른다고 햇습니다, 누나가 중국에 잇다고 하면서 자기네가 중국에 잇을때 못먹어 본것이 없다하면서 중국자랑을 많이햇습니다 9월부터 버섯뜿는조를 만들엇는데 나도 거기에 뽑히게 되엿습니다 아직 버섯이 나지않아 먼저 산나물을 뜾기 시작햇는데 한사람이 하루에 두배낭을 꽈 채워야햇습니다, 영수도 함께 다니게 되엿는데 그애는 자꾸만 도망가자고햇습니다 무섭기도하고 길도모르고 선생들이 총을들고 지키는데 어떻게 도망치겟는가고 하자 고사리 뜿는체하면서 저산만 넘으면 된다고 햇습니다, 자기가 3년넘게 여기를 다녀서 잘아는데 어디에 철조망잇고 어디에 구뎅이가잇고 어디에 지뢰묻은것까지 다 안다고햇습니다 산나물 뜾으러 8일다녓는데 풀이라도 실큰먹으니 힘이좀 낫습니다 우리가 도망치기전날인데 그날 영수는 큰 뱀을 잡앗습니다 대가리만 뜿어버리고 절반을 돌로 끊어버리더니 손가락을 배에넣고 밸을 쏟아버리고 껍질채로 우리는 풀뜾는흉내내면서 씹어 먹엇는데 가죽이 너무질겨 잘 넘어가지 않앗습니다 나는 할수없이 가죽을 버리고 몸뚱이만 꿀꺽꿀꺽 넘기엿습니다 영수는 래일은 꼭 뛰자고 햇습니다, 다음날 보슬비가 많이내렷습니다 선생들은 비옷을쓰고 사회사람들이 물건들을 들고와 산나물과 바꾸는데 술과 바꾸어서 저희들끼리 몰켜서서 마시엿습니다 , 감시조장들이 사방에서 보고잇지만 우리는대담하게 봐둔곳으로 기여나갓습니다, 때마침 저쪽에서 지키던 감시조장 한명이 나무꼭대기 올라가 지키다가 비에 나무가젖어 미끄러지면서 떨어졋는데 그바람에 선생들이 우리에게 신경을 쓰지못하고 거기로 몰켜갓습니다. 그사이 영수와나는 철조망을 나무가지로 벋치고 그밑으로 넘어가 반대켠 산꼭대기로 정신없이 뛰엿습니다, 영수가 미리한말이 몇사람이 이렇게 도망치면서 아래로 뛰는바람에 잡혀 총에 맞앗다고 하면서 산꼭대기에는 관리소 보초들이 보이기때문에 거기로 도망갈 생각을 못한다고하면서 우리는쪼꼬만하기때문에 잘보이지도 않고 보슬비가 내리면서 안개가껴 쌍안경으로도 잘안보일거라하면서 등잔밑이어둡다면서 거기로 가자고 햇습니다 산꼭대기 거의올라 갓는데 총소리가 여러번 낫습니다 우리가없어진걸 알고 찾기시작한거 같습니다 영수와나는 죽을힘을 다하여 뛰고또 뛰여 산2개를 넘엇습니다 골짜기에 물이흘럿는데 영수는 개들이 혹시 냄새 맡을수 잇으니 물속에 숨자면서 물에서 우리 둘은 저녁 어두어 질때까지 잇엇습니다, 그런데 군대들이나 개들이 오지않앗습니다 영수는 저산만 넘어가면 화성 역전이보인다고 햇습니다 나는 그때에야 여기가 함경북도 화성군인걸 알앗습니다 관리소에서 칠보산이 가깝다는 소리는들엇지만 살고잇는데가 어데인지 모르고 잇엇습니다 산에서 마을로 내려오면서 산나물 뜿는사람들이나 소토지(산에 일군 땅에서 부업일하는사람들 ) 일하는사람들 을 보면 멀리피해서 마을 까지 와서 밤이된다음 영수와나는 유치원을 습격햇습니다, 거기서 속도전가루 한중태기와 강냉이쌀 3키로되게 훔쳐가지고 나와서 한집을 또 털어 옷을 갈아입엇습니다 그집에는 먹을것이 없고 배를삶아서 식장안에 둔것이 잇엇는데 우린 영수와 둘이서 다 먹어버렷습니다, 영수는 기차타면 안된다고하면서 길로가지말고 철길을 따라가자고 햇습니다. 세상에나서 함경북도에는 처음왓는데 청진까지 오는데 정말무섭구 힘들엇습니다 걸어서 생기령이라는곳에까지 왓다가 화물방통타고 청진수성에 갓는데 거기서 철이형을 만나게 되엿습니다(중국에 같이온 청진내기아이18살) 철이형은 자기혼자서 중국에 7번이나갓다왓고 중국에 친척이랑 아는사람이랑 많다고하면서 자기가 데려다주겟다고햇습니다. 장마당에서 영수와 싸웟는데 영수가 이겻고 또 영수가 먼저 철이형에게 친구하자고 하는바람에 우리는 3명이 친구가 되엿습니다 철이형이 남양교두에서 기다리다가 중국들어가는 석탄방통에붙자고 햇습니다 나와영수는 수영을 할줄 모르기때문에 두만강물이 깊은데 빠지면 죽는다고하면서 정광이(광석 1차가공 분말가루 ,무산광산에서 캔쇠돌 가루내여 청진제철소에서 철생산하는원료임)중국에 많이 들어가는데 이제 정광방통이 남양역에 들어오면 거기에 동굴을 파고 숨으면 된다고햇습니다, 먼저온성에 갓다오자고햇습니다, 돈을 만들자면 장마당큰데가서 한탕해야 되는데 철이와 영수는 그런 도적질에 펄펄 날앗습니다 온성 주원 장마당옆 다리밑에서 자면서 3일동안 장마당에서 쓰리(소매치기)한돈이 3만원이나 되엿습니다 이제 정광방통 들어오면 검사원에게 돈을주고 우리가 파고들어간 데는 쇠꼬쟁이로 찌르지않게끔 약속한답니다. 먼저 남양군당학교 뒤산에올라 중국쪽을 보앗습니다 아래로 내려가면 결핵병원인지 간염병원인지 잇엇는데 거기로 사람들이 많이다녀서 우리는위험해도 벼랑끝에다가 나무로 벋치고 그날밤 거기서 잣는데 영수가 태질하면서 그기둥을 차는바람에 아래로 떨어졋습니다. 그아래에는 철길이지나가고 군대들의 잠복초소도 잇엇는데 악! 소리치며 영수가떨어지자 사방에서 전지불 (후래시)들이 달려오더니 왁작왁작 햇습니다 철이형은 내입을 틀어막으며 빨리 빠져나가야한다면서 나를끌고 반대켠산으로 도망쳣습니다 나는울면서 영수를 찾지못한채 도망쳐야 햇습니다 깊은산속에서 나는 영수를 부르고 또부르며 울엇습니다 억울하게 아버지,어머니.누나를 관리소에서 빼앗기고 죽으려고 할때도 영수가 없엇으면 나도 죽엇을것인데 지금까지 영수때문에 살아남앗는데 이제는 내 친형이고 형제인 영수마저 죽엇으니 어떻게 합니까 불쌍한 영수는 이렇게 두만강을 앞에놓고 죽엇습니다 그다음날부터 영수가죽은 주변의 불룩한 웅뎅이와 묘지는 다뚜져보앗지만 끝내 영수의 시체를차지못햇습니다 그렇게 4일이지나서 철이형과나는 중국들어오는정광방통에 숨어서 10월5일날 중국안도라는곳에 도착햇습니다, 안도에 잇는철이형 친척은 돈 350원주더니 집에들여놓지않앗습니다 거기서 뻐스를 태워줫는데 목단강나가는차라고햇습니다 철이형과나는 목단강에 7일날도착햇다가 다시버스를타고 철이형이 아는사람의 도움으로 천진에 오게되엿습니다. 북경에서는위험하기때문에 천진에서 기차를타던지버스를타라고 그래서 먼데 안쪽으로들어가라면서 철이형이아는사람이 알려주엇습니다 조선사람식당에서 밥먹고 나오는데 이렇게 한국에서온 기자삼춘을 만나게되엿습니다 지금도 눈앞에서 아버지,어머니,누나,영수의모습이 사라지지않습니다 저는지금 이팝에 고기를 배불리 먹고잇습니다, 먹으면서 항상 생가합니다 나는크면 꼭 복수하고야말겟습니다 아직은내가 어려서 잘모르지만 중국에와서 남조선영화도 많이보앗고 남조선사람도 보앗습니다 기자삼춘이랑 여기고마운사람들을 만나면서 많이알게 되엿습니다 저는크면 꼭 죽은 아버지,어머니,누나,영수의 복수를 할것입니다 기자삼춘이 편지를쓰라고해서 지금 쓰는 이편지가 남조선사람들에게 전달된다고 하니 아버지.엄마.누나생각이 더 나면서 울음박에 나오지않습니다 저를도와 주십시오 은헤를잊지않고 꼭 갚겟습니다. - 복수하겠다는 말도 너무 슬프네요 글이 너무 처절합니다..
조선시대에 존재한 싸이코패스.txt
조선 시대의 유명 연쇄 살인마라면 5명의 기녀와 부총리 유희서를 살해한 선조의 아들인 임해군(臨海君, 1574~1609)과 수십명의 상인과 부녀자를 죽인 해적 김수은, 4명의 여인을 성고문해 죽인 권채(權採, 1399~1438)가 유명 합니다. 이중 임해군이나 김수은은 일종의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었으나 권채는 당시 최고 문장가로 뽑힐 정도로 학문도 깊고 매사에 반듯한 사람 이었죠. 즉 정신은 멀쩡하나 감정이 저하된 사이코패스 기질이 있다고 보입니다. 조선조 세종 9년 5월 22일, 엽기적인 살인사건이 발생해 장안에 떠들썩 했습니다. 여인이 죽은 채로 물에 내려왔는데 시체는 온몸에 상처자국이 있었고 성기에서 항문까지의 부위가 칼로 도려내져 있었습니다. 게다가 얼굴 마저 도려내져 신원을 알수도 없었습니다.. 이후 몇주를 간격으로 실종된 여인들의 시신일 발견 됬는데 온몸이 불로 지져 있다던지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되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분노한 세종은 범인을 잡으라고 명했고 수많은 의금부사와 어사들이 사건을 조사하고 거리를 순찰 했습니다.. 그리고 '무원록(無寃錄-중국 원나라 왕여(王與)가 송나라의 형사사건 지침서들을 바탕으로 편찬한 법의학서로 세종 22년에 이를 바탕으로 <신주무원록(新註無寃錄>을 편찬함, 시체를 검시 하는법등이 상당히 자세 하게 나옵니다)'을 바탕으로 시신을 과학적으로 조사합니다 그리고 그나마 얼굴이 손상되지 않은 한 여인의 골격 등을 살펴 얼굴을 그려냈는데 이를 바탕으로 신원을 조회한 결과 덕금이라는 여인으로 당시 최고 문장가이자 집현적 학자인 권채의 몸종이란걸 알게 됩니다.. 당시 사건을 맡은 의금부 신상은 권채가 세종의 글 스승이기도 했고 당시 문장가라 함부로 집에 들어가지 못하자 아얘 잠복을 했는데 잠복 한지 4일정도 되자 한 여인이 갑자기 대문을 열고 도망나오고 몇몇의 남자들이 그녀를 쫓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신상이 수하들과 함께 여자를 구출 했는데 온몸이 상처 투성이에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앙상 했습니다. 그녀의 진술로 인해 끔찍한 사건의 전말이 밝혀 졌는데 권채가 수하들을 시켜 여자들을 납치해서 일주일간 잔인하게 성고문해 죽인 거였죠. 권채는 3년뒤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을 편찬할 정도로 의학에도 상당히 지식이 있었는데 그는 사람을 서서히 죽이는 방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잡힌 여인들은 거의 일주일을 고통을 당하다 죽었는데 몸의 힘줄과 핏줄을 도려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또 여자의 입을 솜으로 막은 다음 불에 달군 쇠로 음부를 지지고 개의 변을 먹게 하는등 성고문 방법은 잔인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권채는 의금부에 소환됬지만 자신은 잘못한게 없다고 주장 했습니다. 그는 단지 학문 연구를 했을 뿐이라고 일축 했죠. 게다가 수많은 집현적 학자들과 세종이 권채의 편을 들어 결국 무혐의로 풀려 나고 좌천 되지만 곧 복귀 합니다. 대신 애꿎은 권채의 처 정씨가 질투로 노비를 살해 했다는 누명을 받아 곤장 아흔대를 맞다가 죽었죠. 권채는 이후에도 <작성도(作聖圖)>,<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를 편찬 하는등 왕성한 학자활동을 하다가 40살이 되자 갑자기 급사 했습니다. --------------------- 읽다가 ㅎㄷㄷ해서 퍼옴 어디든 싸패는 있지만 특히 지능이 뛰어난 싸패가 많다고는 하지만 세종이 저런 무자비한 싸패의 편을 들어줬다는 말에 놀라서 찾아보다가 다른 글도 찾아서 같이 첨부합니다 ㅋ 위 내용이 사실이라 쳐도 아래처럼 알려져서 그냥 유야무야 넘어간게 아닐까 싶네요 --------------------- 1427년 8월 20일. 거리에서 한 사나이가 알 수 없는 물건을 지고 가는 것이 발견 되었다. 그것은 사람과 비슷한 형상이었으나, 뼈와 가죽만 파리하게 붙은 처참한 모양이었다. 결국 그것은 덕금(德金)이라는 여자로 밝혀졌다. 덕금은 집현전 응교(集賢殿應敎)로 재직하고 있는 권채(權採)의 종으로, 권채와 그 일가족을 조사한 결과, 무서운 사실이 밝혀졌다. 권채는 덕금을 사랑하여 첩으로 삼았는데, 권채의 아내 정씨(鄭氏)는 종인 덕금에게 강렬한 질투와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중, 덕금은 덕금의 할머니가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할머니를 찾아 뵈러 집을 잠시 떠날 것을 청했다. 하지만 평소에 덕금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던 정씨는 덕금이 그 할머니를 찾아가는 것을 허락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덕금은 병에 걸려 죽어가는 자신의 할머니 생각이 너무도 애틋하여, 허락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 잠시 집을 떠나게 된다. 덕금이 사라지자 권채는 덕금을 찾게 되었고, 정씨는 권채에게 덕금이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나서 간통하러 간 것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그러자 권채는 격렬하게 질투하고 분노하게 되어, 덕금이 돌아오자마자 덕금의 머리카락을 잘라버리고 몽둥이로 덕금을 마구 구타하였다. 권채는 덕금의 왼쪽 발에 족쇄를 채워서 외딴 방에 감금하였다. 이후, 권채 일가는 잔혹하고 변태적으로 덕금을 괴롭히게 된다. 장씨는 덕금을 바로 칼로 베어 죽이려 했는데, 또다른 여자종인 녹비(祿非)가 칼로 죽인 시신은 소문이 나기 쉽고 금새 누구인지 밝혀낼 수 있으니, 서서히 고문하면서 병들고 굶어 죽도록 하자는 제안을 한다. 장씨는 녹비의 제안을 받아 들여서 감금되어 있는 덕금을 그대로 굶어 죽이기로 한다. 장씨는 덕금이 덕금 자신의 배설물과 함께 비참한 모습으로 족쇄를 차고 방에 갇혀 있는 모습을 보고, 굶주린 덕금에게 그 오물을 먹으라고 지시한다. 덕금은 오물 사이의 구더기를 보고 질겁하여 격렬히 저항하였는데, 그러자, 장씨는 덕금의 가랑이 사이에 바늘을 찔러 넣으면서 덕금을 괴롭혀서 결국 덕금이 구더기와 오물을 먹게 만든다. 덕금은 그렇게 몇 달 동안이나 갇힌 채 매일 고문 받으면서 서서히 굶어 죽어 갔고, 마침내, 비참한 몰골의 굶어 죽은 시체가 되었다고 보고 걸레처럼 버려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덕금은 발견되던 순간까지 죽지 않은 상태였다. 제정신과 온전한 몸을 유지하고 있지는 못했지만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부지해 살아 남아 있었던 것이다. 결국 조정에서는 이 사건을 두고 권채와 정씨, 그 밖에 권채 집안의 종들을 모두 조사했으며, 권채의 아내인 정씨가 주범으로 모든 죄의 벌을 받게 된다. 권채는 정씨에게 속았을 뿐이며, 덕금의 잔인한 처벌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 지지를 얻어 권채는 이후에도 당당하게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 실제로 권채는 유능한 학문적 재능을 보였으므로, 많은 저작을 남겼으며, 당시 조정에서도 그 실력을 인정 받고 있었다. 몇 개월 동안 덕금에 대한 온갖 잔혹한 고문이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권채는 정말로 이러한 사실을 몰랐다기 보다는, 태연자약하게 자신의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 교묘하게 처신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뛰어난 학식을 자랑한 고아한 양반이었던, 권채는 조선시대 최악으로 손꼽히는 감금 사건에 연루되어 있었던 것이다. 세상 이치가 허망하게도 권채가 남긴 저작 중에서 최고로 꼽히는 것은 인간의 예절과 도리에 대해서 사례를 든 책인 "삼강행실도"의 서문을 쓴 것이다. 덕금은 곧 사망했지만, 후에 권채가 쓴 "삼강행실도"는 우리나라 한문학의 걸작선을 모아 편집한 "동문선"에까지 등재 되어서 지금까지도 널리 읽히고 있다. 권채가 쓴 삼강행실도의 서문 본론 부분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임금과 어버이와 부부의 인륜에 대한 충, 효, 절의(節義)의 도리는 바로 하늘이 내린 천성으로 모든 사람이 다 같이 갖고 있는 것이다. 천지가 처음 생길 때부터 같이 생겼고 천지가 끝날 때까지 없어지지 않는 것이 바로 그 천성이다." ㅊㅊ: 디씨 역사갤러리
네이트판 역대 최악의 사연 ㅋㅋ
이건 진짜 미쳤음 요즘에는 자주는 안보지만 옛날 네이트판 한참 흥할때 열심히 봤는데 그때도 이런 사연은 없었다 따끈따끈한 미친사연 빡칠 준비 하시고 보시죠 요약 신혼여행 갔다가 시댁 가니까 차려주는 음식들 맛이 넘나 익숙한맛 신혼집 돌아가보니 친정 엄마가 해주신 음식들로 채워진 냉장고가 비워져 있음 남편이 시댁에 신혼집 비번 알려줬고 시댁에서 와서 음식 다 챙겨간거임 그리고 그걸로 신행 다녀온 아들네 부부한테 대접한거 ㅋ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빡치는데 이 결혼 시댁에서 돈 보태준거 1도 없음 남편도 3천 들고옴 여자돈 + 여자 부모님이 주신 돈으로 집 마련함 근데 그것도 남자가 자기 명의로 해달라고 징징대는거 겨우 말림 이것만 더해도 빡치는데 몸 안좋아서 일 그만두고 시시는 친정 어머니를 시댁에서 행사 있을때마다 부려먹고 있단 사실을 알게됨 ㅋ 한두번도 아니고 한번은 남자 엄마 생신이라고 여자 엄마 불러서 일시키고 있단 얘기를 듣고 시댁에 찾아감 갔더니 진짜 자기 엄마가 부엌에서 일하고 있고 시댁 식구들 티비보며 놀고있음 ㅋ 빡돌아서 다 집어던지고 소리지르고 이혼하기로 함 알고보니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함 ㅋㅋㅋ 미쳤냐고 무슨 짓이냐고 하니 남편 아버지가 '안사돈 음식 솜씨 좋아서 그 재주 아까워서 그런거'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도른집안ㅋ 네이트판 볼때마다 느끼는건데 내주변 내 친구들 또라이놈들 겁나 많지만 판에 나오는것같은 개진상또라이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결혼하면 또 이런 애들 나올거라 생각하니 겁남 ㄷㄷ 그리고 나는 이런 사람 되지 말아야지 하고 항상 생각함ㅋ
[꿀팁] 간단하고 돈 많이 안드는 액땜 방법.txt
사주 관심 있는 분들도 많은 것 같고 유용할 것 같아서 퍼옴 ---------------------------------- 새해가 되면 한해의 신수를 궁금해 하시고 안 좋은 일이 예상되면 그것을 피해하거나 모면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많이 궁금해 하십니다. 사주팔자를 보는 이유 중에 하나가 그런 나쁜 일을 피해가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가 아닌가 합니다. 사주공부를 해 보신 분들께서는 물상대체에 대해서 한번 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정확히 말하면 “물상 조작술”이라고 하면 정확하게 들어맞는 표현이 아닌가 합니다. 위험하고 흉한 사건을 유사한 사건으로 대체하도록 인위적으로 사건이나 상황을 조작하는 것을 물상대체라고 합니다. 즉 강한 한방의 흉액을 약한 여러 번의 잔펀치로 나누어 맞는 모습으로 바꾸어준다고 이해를 하면 되겠습니다.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액땜은 부적을 쓰기도 하고 굿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거나 큰 비용이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는 방법은 아닐 겁니다. 제가 설명드리고 소개해드리는 방법은 예전에도 카페나 블로그에 올린 글이이기도 한데 개인이 큰 돈 들이지 않고 손쉽게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1.헌혈 피를 흘리는 행위입니다. 피는 저승사자의 노잣돈이라고도 하는데 그 만큼 저승사자가 가장 원하는 것이 피입니다. 그래서 목숨이 오락가락할 정도로 위험한 일부터 가장 일반적인 사고나 수술수를 대체할 수 있는 보편적인 액땜 행위가 됩니다. “나는 이미 피를 흘린 사람이다.”라고 면죄부를 달고 다니는 행위와 같으므로 년초의 정월 즈음에 하게 되면 어지간한 큰 일을 작은 일로 대체하고 넘어가는 작용을 하게 됩니다. 큰 사고 날 것을 작은 사고로 대체하고 넘어가는 작용을 일으키게 합니다. 저승사자가 보기에도 헌혈을 했다는 것은 이미 피를 흘린 사람이라 봐주고 넘어가는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 충살, 형살, 백호대살, 양인살, 편관운 등의 액땜에 유효 2.나누는 행위(음식을 베푸는 행위) 내 것을 나누는 행위인데 주로 남에게 음식을 베푸는 행위가 가장 일반적인 행위입니다. 옛날 수명이 그리 길지 못한 시절에는 갓난 아이가 생후 100일을 견디게 되면 대단히 축하할 만한 일이 되었기에 백일을 기념하기 위해서 떡을 돌리기도 했습니다. 환갑이 되어도 그것을 축하기 위해서 음식을 만들어 주변인들과 나누어 먹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나의 큰 액을 여러 사람과 음식을 통해 나누게 되면서 강한 한방을 작게 여러 개로 쪼개는 형태가 됩니다. 그래서 큰 충격을 완화하여 작은 충격으로 분산을 시키는 것입니다. 가끔 옛날 어른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잔치집 음식을 드시고 나서 동네 어른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었을 겁니다. 그런 일들은 어차피 돌아가실 노인분들께서 액땜용 음식을 먹고 액을 안고 돌아가시는 형태의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 형살, 백호대살, 식신입묘, 편인운, 상관운의 액땜에 유효 3. 방생(활인행위) 물상대체는 사실 인간의 윤리와는 별개로 우주의 눈에서 볼 때 남을 도왔느냐 생명의 살렸느냐 생명이 대체가 되었느냐가 중요합니다. 인간의 윤리와는 별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돈을 산 동물이건 내가 잡은 동물이건 그것을 다시 놓아주는 행위는 대단히 큰 활인행위로 봅니다. 흥부이야기 아시죠? ^^ 제비를 살려주니 박씨를 물고 왔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신 분들이라면 그냥 구전되는 옛날 이야기로 보기에는 너무 심오한 철학적? 의미가 들어있는 이야기라는 것을 아시게 될 겁니다. 반대로 살생을 하게 되면 액이 크게 누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처님께선 살생을 하지 말라고 하셨던 것이고요. 그것을 그대로 실행하시는 분들이 스님들이시죠. 오죽하면 살생한 것들을 입에 대지도 않으시잖습니까? 주변을 보시면 도축이나 생선가공 등 뭔가 살아있는 생물을 죽이는 행위의 직업을 가진 분들을 보면 주변에 흉액이 꼬이는 일을 심심치 않게 보셨을 겁니다. 저도 여러번 보았는데 대체로 근처의 자손들이 흉액을 당하기도 합니다. 하여튼 남을 살리는 행위는 모두 좋은 것이므로 정월에 방생을 하건 남을 돕는 봉사행위를 많이하건 활인행위는 모두 액땜에 좋은 작용을 하게 됩니다. 유사한 건으로는 애완동물을 키우는 방법도 있습니다. 내가 거두어 먹이고 키우는 존재는 우주에서 볼 때에는 나의 가족입니다. 운이 안 좋을 때에는 그런 동물 가족들이 액운을 대신해서 가지고 가기도 합니다. => 형살, 백호대살, 식신입묘, 편인운, 상관운 등의 액땜에 유효 4. 규칙적인 운동 규직적으로 땀을 흘리는 운동은 강하게 한 대 맞을 것을 여러 대 나누어 맞는 것과 같은 분산행위입니다. 우리가 운동을 한다는 것은 격하게 몸을 쓴다는 것이고 이것이 비록 큰 흉액에 비할바는 못하지만 여러번 자주 하게 되면 큰 고통을 나누는 효과가 되는 것입니다. 나는 이미 고통을 받은 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저승사자가 와서 강하게 한 대 때리려 왔다가 고통받은 몸을 보고 봐주게 됩니다. 그래서 평소 운동을 꾸준히 하면서 땀을 흘려주는 행위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액땜행위가 됩니다. 유사한 행위가 수행인의 수도행위, 기도행위, 학습행위도 있습니다. 움직임을 최소화하여 우주에서 볼 때에는 죽은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방법도 있기 때문입니다. 움직임이 적으면 죽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 편관운, 식신입묘운, 충운, 편인운, 편관운 등의 액땜에 유효 5. 여행을 하는 행위 주거를 자주 바꾸는 것은 일명 도망가기입니다. 당장 운동이나 당장 봉사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도망가기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저승사자가 못 찾아오게 주소를 아예 바꾸어 버리는 것입니다. 잡으러 온 저승사자는 어리둥절 할 겁니다. 잡으러 온 놈이 없으므로 다른 놈을 잡아가기도 합니다. 옛날에는 역마살하면 이동수로 보았는데 옛날의 이동, 여행은 목숨을 담보로 한 일이였습니다. 왜냐하면 산길 가다가 호랑이 아니면 산적에게 잡혀 죽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여행, 이사 등이 보편적인 액땜의 행위가 되는데 위에 언급한 이유에서 액땜이 충분히 되기 때문입니다. 관계의 악화부터 사고의 예방까지 이사나 여행은 좋은 액땜행위가 되기도 합니다. => 충, 격각 등의 액땜에 유효 6. 교체와 수리 행위 물건을 교체하고 수리하는 행위도 좋은 액땜이 되기도 합니다. 물건이 들어오고 나감이라고 하는 것은 재산상의 손해와 손재수와 같은 것으로 우주는 인식을 합니다. 저승사자가 사람의 피 다음에 원하는 것이 돈입니다.(=재산) 그래서 사람 목숨(=피)을 가지고 가지 못하면 물건이라도 들고 가야 합니다. 그것이 일반적으로 현금적 손실을 말합니다. 현금적 손실은 우주의 눈에서 볼 때에는 돈이 나가면 되면 해당이 됩니다. 나가는 형태나 이유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현금이 나가면 되는 일이기에 재투자, 물건 구입도 해당이 됩니다. 세탁기의 교체, 자동차의 교체, 에어컨의 수리, 집수리 등이 모두 액땜 행위의 모습들입니다. => 충살, 격각살, 형살, 파살, 년살(12신살), 겁살(12신살), 목욕살 등의 액땜에 유효 돈 안드는 액땜 행위 참 많고 쉽죠잉? ^^ 출처(link)
현시점 네이트판에서 난리난 썰
뭐 재밌는거 없나 하고 오랜만에 네이트판 보다가 재밌는거 발견해서 가져옴 시작은 생각보다 평이하지만 뒤로 갈수록 멘붕에 빠지는 당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ㅋㅋ - 제목 : 네일샵 갔다가 갑질했네요 안녕하세요 카테고리는 관련없지만 속상한 마음을 풀고싶어 글을 올려요 네일샵에서 방금 어처구니 없는일을 겪었네요. 사건의 시작은 동생이 손톱을 물어 뜯는 습관이 있어서 손톱을 예쁘게 길러오면 네일아트를 해주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정말로 길러온게 기특해서 네일샵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네일을 자주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변의 추천을 받아 인스타에서 조사도하면서 망원역에 위치한 미용실안에 있는 네일샵에 예약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약하는 카톡을 보냈는데 가타부타 말이 없으셔서 전화를하니 그 시간에 시술가능하며, 양식서를 작성을 하고 예약금을 넣으라고 하시고는 바빠서 끊어야 된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예약금을 넣고 문자를 넣으니 답이 없어서 바쁘셔서 그런가 보다 하고 5시예약인데 4시45분정도에 갔습니다. 5시예약이라고 하니 앉아 있으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앉아 있었는데 5시 3분? 정도 되었는데도 별말이 없으시길래 예약이 안된건가 싶어서 여쭤봤습니다 나: 혹시... 죄송한데저희 5시 예약된거 맞아요? 직원: 지금 몇시인데요? 나: 5시3분이요 직원: 지금겨우3분늦은거 가지고 말하는거에요? 몇시라고요? 나: 5시 3분이요(여기서 제가 뭔가를 잘못한줄알았어요) 직원: 그쪽이 일찍오셔놓고 3분늦은거 가지고 그러세요 나: (진짜 뭐라해야될지 몰랐었음 바보같이..)아.. 저희가 다음에도 갈곳이 있어서요 직원: 그럼 조금만 기다리세요 나: 네....(고구마 백개) 이때 너무당당하셔서 제가 잘못한줄알았는데 자리에 차분히 앉아 기다리다보니 화가나더라고요.. 이때 할말 생각했어야 했는데 내가 잘못한건가 생각하면서 화만 삭히고 있었어요. 바보같이ㅠㅠㅠ근데 10분이 더지났는데도 아무말이 없으셔서 또 여쭤봤어요. 아까의 대화로 이상한 사람인게 직감으로 느껴져서 혹시나 녹음 버튼을 누르고 대화를 했습니다. 나: 저.. 지금 5시12분인데 얼마나 기다려야하나요?? 직원: 그냥 예약금드릴까요? 나:네 여기는 대충 요약한 대화 직원:근데 예약도 안되어 있으신데 나:카톡으로했는데 연락 없으셔서 전화로 하고 예약금도 넣었어요 직원:아~ 이러고 그냥 나왔는데 너무 기분이 나쁜거에요!! 일부로 한시간거리 온건데 동생한테도 미안하구 ㅠㅠㅠ 그래서 성격 더럽고 찌질해보이는거 아는데 사과가 받고 싶었어요. 그래서 굳이 연락한 제가 잘못이라면 잘못이죠 아래는 대화내용 이에요 정말 아다르고 어다른데 졸지에 개진상이 되어있더라구요.  솔직히 기다리라고하면 기다릴수는 있었는데 말씀하시는게 너무 어이가 없더라구요. 그렇다고 제가 따지듯이 이야기한것도 아닌데 처음부터 왜그렇게 화가 나있으신건지 모르겠어요 3분 늦었다고 제촉하지도 않았고 저기 있는 대화가 다입니다. 혹시나 예약이 안되어 있는건가 싶어서 여쭤봤는데 자기들이 일찍왔다, 겨우3분가지고 이말은 지금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네요 그리고 제가 예약금을 돌려달라고 했다는데 녹음본을 들어봐도 먹고 꺼지라는건지 직원분이 어떠한 설명도 없이 대뜸 준다고 했고요. 저도 서비스직에서 일하기 때문에 이해를 하려할수록 이해가 안되네요. 솔직히 네일하는 사람이라고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편견도 생길것 같아요.. 물론 제가 이런식으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그 가게는 잘될것같지고 않고, 원래 장사가 안되는 곳인것 같아 영향은 없을것같지만 기분이 좋지않아 끄적여 봤네요.. 새해부터 거하게 액땜했다고 생각 해야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ㅠㅠㅠ 여기까지가 끝인 줄 알았지만 그러면 여기 가져오지도 않았죠 ㅋㅋ 추가글 등판 +추가글) 헐..저 혼자 속상해서 끄적인 글이라 파묻힐줄 알았는데 정말 많은분들이 공감해주셔서 잠시나마 내가잘못한건가 고민하고 화가났던게 정말 많이 위로가 되었습니다. 댓글하나 달아주시는것큰 위로가 될줄 몰랐어요. 어떤말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정말 감사드려요... 댓글중에 왜 뒤에 와서 그러냐고하시는데 당황스러웠던게 제일 컸던것 같습니다. 네 저도 알아요 바보같은거ㅠㅠ 그이후에 저 네일샵 직원분께서 사과를 하는것을 바라지도 않았으나 그분이 저의 개인정보를 퍼뜨리고 다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글을 내릴까 고민도 많이 하였는데 공익을 위해 소송을 하더라도 글을 유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무섭기도 하지만 바보같이 굴어서 후회하는 것은 한번으로 족하고싶어서요. 끝까지 당황스러운 대처에 화가나네요. 제가 법쪽을 잘몰라서 변호사님께 상의하기 전에 댓글로 정보를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다시한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네일해주시는 분이 작성자가 예약할 때 제출한 개인정보를 다른 사람들에게 뿌리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온거죠! 개인정보 유출이 얼마나 큰일인지 모르나봉가 ㅋ 대체 저 네일해주시는 분은 어떤 이유로 아무한테나 작성자의 개인정보를 뿌리는 지 알 길이 없고 자기가 잘 못 해놓고 오히려 손님한테 갑질하지 말라니 뭔 생각인지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말 모르겠는 상황에서 작성자는 다음 글을 작성합니다 +추가글2) 네일샵에서 직접 연락이 왔습니다. 네일샵 갔다가 갑질했네요 안녕하세요. 우선 도움을 주신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앞서 쓴 글의 영향력덕분에 네일샵측에서 직접 연락이 왔습니다. 글을 올리지 말까 고민을 했는데 이제껏 같이 분노해주시고 공감해주신 분들께 예의가 아닌것 같아 글을 올립니다. 그러나 죄송하게도 그렇게 좋은 후기는 되지 못할것 같습니다. (본문 끝) ?!?!?!?! 약은 본인이 바짝 오른 것 같은데? 그니까 저 네일샵측 말은 이런거져? 사과할까? 아니야... 잘 풀려서 이 사람이 다시 우리 샵에 오면 어떡하지? 그건 시른뎅... 우리샵 가격 싸서 이 사람 아니어두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손님 많이들 올텐뎅 눈치 보게 하는 손님 시른뎅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커엽다 진짜 저렇게 생각했다면 이야말로 오랜만에 보는 완전체 일이 얼마나 심각한지 파악이 안돼서 그냥 발 뻗고 잘 잘 스타일 ㅋ 아래는 여기 달린 댓글들ㅇㅇ 빙잨ㅋㅋㅋㅋㅋㅋㅋ 뭘로 법적처리를 하신다는 건지..? 여윽시 자극을 찾고 싶을 땐 네이트판 ㄷㄷ 대한민국 이상한 사람 여기 다 모였습니다
무속인이 말하는 사후세계.txt
재미로 봅시다 ㅎㅎ 0. 지옥 천국은 없다. 한생의 업장 그대로 다음 생까지 이어진다. 1. 우리나라 무당 90%는 가짜다. 무당과 점쟁이가 판치는 세상은 망할 흉조다. 2. 점보러 와서 결과를 말해주면 그 결과가 비틀리는 경우가 많다. (점은 보지 않는것이 좋다.) 3. 부적이나 굿받으라고 하는 사람들은 다 사기꾼이다. 믿지 않는것이 좋다. 4. 도화살 무관사주에 집착하지마라 도화살 없다고 인기없는거 아니고 무관사주라 결혼못하는것 아니다. 5. 스스로 자신이 신이고 우주다. 정해진 운명이 아닌이상은 자기 자신의 행동에 그결과가 나타난다. 6. 사주 같은거 무조건 좋다고 하는건 거짓말이다. 모든것은 다 똑같다. 누구든 사람이고 공평하다. 7. 흉가나 폐가는 가지마라. 거긴 온갖 좋지 않은것이 모여 있다. 8. 귀신이 무서운것이 아니다. 무서운건 사람이다. 9. 제대로 죽은 영혼들은 우주같은 공간을 떠돌다 다시 아기로 태어난다. 10. 흔히 전생을 이야기 하는말들은 다 거짓말이다. (절) 11. 부적 사는돈으로 옷사입고 맛있는 음식먹어라 중요한건 마음의 평안을 찾는것이다. 12. 쌍둥이는 전생에 같이 죽은 사람들이다. 쌍둥이가 많이 태어나는 기간은 왜 그런지 한번 생각해 봐라 13. 진짜 무속인을 찾지마라. 너무 힘들면 명상을 해라. 자기 자신과 솔직하게 대화하는것이 제일 좋다 14. 전생은 대단한것이 아니다. 지금 사는 너의 모습이다. 15. 잘 웃는 사람에게 복이 찾아온다. 16. 부부는 전생에 원수일 확율이 높다. 좋은 인연보다는 나쁜 인연이 더 많다. 17. 진짜 무당은 동성애 배척안한다. 오히려 그 에너지를 관대하게 받아드린다. 종교에서 말하는것에 상처받지 마라. 18. 모든것을 가진 사람은 없다. 19. 자살은 운명이 아닌 선택이다. 자살하면 다음생에 그대로 힘이든다. 그거야 말로 무간지옥이 될수 있다. 20. 좋은것만 기역하는것 보다는 트라우마나 고통스러운것들을 용서하고 자연스레 받아드리는 것이 마음의 고통에 끝이 온다. 21. 동물은 워낙 순수한 영혼이라 업장 미련없이 바로 윤회한다. 22. 몸으로 짓는 죄보다 마음의 죄가 더 크게 작용한다. 너무 억울해도 사람을 미워하지 마라 널상처준 사람은 언젠간 업을 받는다. 너까지 같이 그래서 인과하면 손해다. 23. 섹스는 즐기면 즐길수록 좋다. 에너지가 그렇다. 24. 귀신이라는것은 한이 쌓인거다. 전생의 업장을 이번에 못풀고 죽었던가 하는 25. 종교믿는 사람들은 마음이 섬세한 사람들이다. 26. 오늘의 운세는 거짓말이다. 27. 전생의 장군들 현생에는 한나라의, 누구의 영웅 이었겠지만 인과적으로 어느 인간을 죽이고 상처받은거 다 돌려받는다.살인자도 마찬가지 28. 화장 매장 다 부질없는 짓이다. 몸에서 벗어나는 순간 영혼은 자유롭다. 29. 착한일을 하면 복을 받는다. 현생에 좋은 일들만 있는 사람들은 전생에 좋은일만한 사주다. 30. 일본에 기괴한 일들이 많고 하락세인 이유는 인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억울하겠지만 그것이 업이다. 31. 윤회는 인연법이 기본이다. 운명이라면 만난다. 싫어도 만나게 된다. 32. 자폐는 정말 순수한 사람들이 많다. 전생에 도인이거나... 이번생에 힘들더라도 다음생에는 보상받는다. 33. 동물이 아주 가끔 사람으로 태어난다. 하지만 다시 동물로 돌아간다. 영혼이 워낙 순수해서 34. 동물을 학대하는것은 좋지않다. 순수한 영혼을 괴롭히는것은 엄청난 업으로 돌아온다. 35. 순수한 영혼에는 선악의 개념이 없다. 선도 악도 모든 규제도 사람이 만들고 그 안에서만 행해지는 것이다. 36. 남이 잘되길 바라는 기운. 그 기운은 그사람한테 간다. 그리고 그사람도 느낀다. 37. 홧병은 소리 질러라. 주위에 눈치보지 말고 지르고 펑펑울고 화도내라. 하기 싫으면 때려쳐라. 38. 일반인 죽은사람을 달래주는건 마음으로 비는것 밖에 없다. 39. 고기 먹는건 업은 아니다. 먹고 싸는건 생리현상 이다. 대신 감사하면서 먹어라. 40. 이번 생에 하는일이 인과가 되어 다음생으로 가는것이고, 우리는 현생을 살면서 다음생을 만드는 것이다. 41. 남자에게 데이는 여자들은 전생에 자기가 그렇게 한것이다. 전생에 누릴만큼 누린것이지 업 [ karma , 業 ] 심신의 활동과 일상생활. 중생이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선악의 소행을 말하며, 혹은 전생의 소행으로 말미암아 현세에 받는 응보(應報)를 가리킨다. 산스크리트 Karman의 의역으로, 음역하여 갈마(羯磨)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신업(身業)·구업(口業)·의업(意業)으로 나누고 이를 삼업이라 하는데, 신업은 신체적 행동으로 나타나고 구업은 언어적 표현으로 나타나며 의업은 정신적 활동으로 나타난다. 또 삼업을 세분하여 십업을 말하기도 한다. 밀교에서는 이를 삼밀(三密)이라 하여 신밀·구밀·의밀이라 칭한다. 의지의 활동인 사업(思業)과 사업이 끝나고 행하는 사이업(思已業)으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 의업은 사업이고 구업과 신업은 사이업이다. 또한, 착한 마음에서 일어나는 선업(善業)과 악한 마음에서 일어나는 불선업(不善業), 선도 악도 아닌 무기심에서 일어나는 무기업(無起業)으로 나누어 이를 삼성업(三性業)이라고 하며, 그 업과가 나타나는 시기에 따라서는 순현업(順現業)과 순생업(順生業), 순후업(順後業)의 3가지로 분류한다. 중생이 업과(業果)를 받도록 인도하는 것을 업도(業道)라 하며, 여기에는 십선업도(十善業道)와 십악업도(十惡業道)가 있다. 업의 본성에 관하여는 《화엄경(華嚴經)》〈보살명난품(菩薩明難品)〉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중생은 4대(四大)로 이루어져 그 안에는 자아의 실체가 없고, 모든 존재의 본성은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과보를 받는 것은 업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그 업이라는 것도 실체는 없다. 마치 맑은 거울에 비친 그림자가 여러 가지이듯이 업의 본성도 그와 같다. 종자와 밭이 서로 모르지만 싹이 트듯이 업의 본성도 그와 같다. 많은 새가 저마다 다른 소리를 내듯이 업의 본성도 그와 같다. 지옥의 고통이 따로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듯이 업의 본성도 그와 같다.’ 이와 같이 업은 실체가 없지만 일상을 통하여 선악의 업을 쌓으면 그것이 업인(業因)이 되어 업과를 받는다. 다만 선도 악도 아닌 무기업(無起業)은 과보를 이끄는 힘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