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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랭킹씨] 국방력 1위 미국, 예산도 ‘891조’ 매머드급…한국·북한은?

그런 의미에서 잠깐이나마 국군 장병들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기획 : 이성인 기자 / 그래픽 : 홍연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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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랭킹씨] 한국인이 꼽은 ‘믿을 수 없는 나라’ 1위 ○○
지구에는 많은 나라가 함께 살아가는데요. 사람을 대할 때 감정이 다르듯, 국가들중에도 우리가 호감이 가는 곳과 그 반대인 곳들이 있을 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떤 나라에 좋은 감정을 느끼고 또 나쁜 감정을 갖고 있을까요? 서울대 아시아연구소가 지난 12일 발표한 보고서 '아시아 브리프*'에 이런 내용의 설문조사가 담겼습니다. 우선 ‘감정 온도’ 순위입니다. * “2021 한국인의 아시아 인식 설문조사 결과 분석 보고서” by 서울대 아시아연구소(한국리서치에 조사 의뢰, 성인남녀 1,031 대상 설문) 조사 결과 한국인이 좋은 감정을 느끼는 나라는 미국이 압도적으로 1위. 유일하게 감정 온도 60도를 넘겼습니다. 이어 스웨덴, 호주, 프랑스 등 주로 서구 국가가 상위권에 속했고,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감정 온도는 상대적으로 낮았는데요. 주목할 점은 우리 국민들이 지리상 가까운 중국, 북한, 일본을 감정 온도가 가장 싸늘한 3국으로 꼽았다는 점. 이들 나라와 얽혀서 좋은 기억이 역사적으로 없는데다 미세먼지, 코로나, 한한령(이상 중국), 과거사 왜곡, 무역분쟁(이상 일본), 안보 위협(북한) 등 불편하고 불쾌한 요소로 여전히 얽혀있기 때문일 텐데요. 그러다 보니 이 나라들에 대해서는 ‘신뢰가 안 간다’는 여론도 높았습니다. 신뢰하는 국가, 협력해야 할 국가 각각 미국이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한 가운데, 북중일 3국은 하위권을 면치 못한 것. 특히 신뢰도 꼴찌국 중국은 신뢰할 수 있다는 비율이 미국의 1/10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협력의 필요성 부문에서는 일본이 최하위, 1순위로 꼽은 비율이 1.1%에 불과했습니다. ---------- 어떤가요? 어려울 때 우리나라를 도와줬다는 인식이 강하고, 또 문화적으로도 친숙한 미국은 호(好). 그리고 거리는 가깝지만 심리적으로는 매우 먼 북중일에 대한 불호(不好). 여러분의 생각도 비슷한가요? ---------- 글·구성 : 이성인 기자 silee@ 그래픽 : 홍연택 기자 ythong@ <ⓒ 뉴스웨이 - 무단전재 및 재배포·코너명 및 콘셉트 도용 금지>
러시아제 휴대용 대전차무기 계보
1. RPG-1 RPG-1은 낙-찌 독일의 판저파우스트를 비롯한 휴대용 대전차로켓에 영감을 받아 개발된 물건으로 1944년부터 1948년까지 개발되었음, 초기에는 LPG-44로 명칭되었지만 1944년 후반 그 유명한 RPG로 개칭되었음, 성능은 판저파우스트와 동일하거나 더욱 저열했음, 판저파우스트의 조루 사거리와 탄속은 유지하면서 유효 관통력이 140mm로 이미 그때쯤 나온 전차들의 정면을 관통하기엔 불가능했음, 그런고로 1948년 신형 RPG-2의 개발에 집중하기 위해 RPG-1은 버려짐, 실험에선 2명의 화기조가 분당 4~8발을 발사할수 있었음, 2. RPG-2, RPG-2는 먼저 개발되던 RPG-1의 결함들과 문제점을 개선한 버전으로 신형 PG-2 탄두의 관통력은 180mm로 개선되었음, 또한 유효사거리도 최대 150m로 2배가량 증대되었음, 첫 생산품은 1954년 생산되어 소련군에 보급되었음, RPG-2 화기조는 스테츠킨 기관권총과 RPG-2, 그리고 3발의 PG-2를 수납할수 있는 배낭을 맨 유탄수와 소총을 들고 같은 배낭을 맨 부사수로 구성되었음, 1957년에는 야간전을 위해 1세대 야간투시경을 탑재하는 개량형이 이루어졌고 개량이 이루어진 RPG-2는 RPG-2N으로 개칭되었음, 또한 부카니스탄과 중국, 북베트남에도 수출되어 북베트남에선 원형 RPG-2는 B40(40mm 바주카), 중국산 50식 탄두를 사용하는건 B50으로 명칭함, 중국에선 56식이란 이름으로 복제품이 생산되었고 하마스도 2000년대 초반 RPG-2와 RPG-7을 기반으로한 야신 대전차로켓을 생산함, 3. RPG-43 RPG-43는 휴대용 대전차고폭탄 수류탄으로 바르바로사 작전 초창기 대전차소총밖에 없던 소련군이 허겁지겁 개발한 물건임, 기존에도 RPG-40과 RPG-41 대전차 수류탄이 있었지만 사실상 고폭 수류탄이라 불러야 할정도록 폭압에 의존했음, RPG-43 수류탄은 1943년 4월 첫 투입되었음, 사용법은 사용자가 전차를 향해 던지면 낙하산이 전개되어 90도 각도로 떨어지는 동시에, 75mm의 관통력을 가진 관통자가 폭발하여 전차에 피해를 주는 물건이었음, 문제점은 당연히 사용자가 전차에 가까이 가야되기에 접근하기도 전에 호위하던 보병들에게 벌집핏짜가 되거나 설령 투척했더라도 빗나가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음, 4. RPG-6 기존 RPG-43 대전차수류탄이 쿠르스크 전투에서 문제점을 보이자 동년 9월에 개발이 완료되어 10월에 배치된 신형 대전차수류탄으로서, 대전차고폭탄을 장착한 RPG-43과는 다르게 성형작약을 사용하여 100mm의 관통력과 20m의 살상범위를 가진 범용 대전차수류탄이 되었음, RPG-43과 함께 종전까지 사용되었으며 후에 더욱 개량된 RKG-3 대전차수류탄이 개발되자 우방국에 나누어지는 형식으로 소모되었음, 5. RKG-3 RKG-3는 기존 RPG-43과 RPG-6 대전차수류탄을 전후 대체하기 위해 개발된 수류탄으로 1950년 첫 생산되어 투입되었음, 기존 RPG-43이 사용하던 대전차고폭탄식 관통자가 90도 각도로 터져야 효용이 있다는걸 알고 RPG-6에서 쓰인 성형작약 방식을 그대로 도입했음, RPG-43과 비슷하게 핀을 뽑고 던지면 낙하산이 전개되어 떨어지는데 이때 목표물에 맞거나 땅에 떨어져서 멈출시엔 뇌관이 작동하여 폭발했음, 순정 RKG-3은 125mm, 개량형인 RKG-3T와 RKG-3M, 그리고 RKG-3EM은 각각 165mm, 170mm, 220mm를 관통할수 있음, 또한 폭발 반경 2m 이내로는 치명적인 파편과 폭압이 발생하여 대보병으로도 쓸수 있었음, 우크라이나군은 악성재고로 쌓이던 RKG-3에 3D 프린터로 안정날개를 부착한 버전을 RKG-1600으로 개칭하며 드론에 장착되는 폭탄으로 써먹고 있음, 6. RPG-7 RPG-7은 기존 RPG-2의 디자인을 기반으로 개발된 신형 대전차로켓 발사기로 1961년부터 도입되었음, 현재까지 40개 국가에서 쓰이고 있으며 중국제 69식 화전통을 포함하여 다양한 국가에서 불법이던 합법이던 제작되오 있음, RPG-7은 1967년 6일 전쟁에서 처음으로 실전에서 쓰이고 베트남전에서도 북베트남1군에 손에 들려 사용되었음, 또한 IRA의 손에도 들어가서 영국군 진지들을 향한 공격에도 쓰이거나 모가디슈에서 미군 블랙호크 헬리콥터를 격추하기도 하였음, 1976년 발간된 미군 매뉴얼에 따르면 초속 4m로 움직이는 목표물에 향해서는 50m에서 100%, 100m에서 96%, 200m까진 51%의 명중률을 가진다고 설명함, 대부분의 교전에선 200m이상 넘어가는일이 없었으며 아프간에서는 80m 거리에서 교전이 이루어졌음, 기본 PG-7V 탄두는 260mm를 관통할수 있지만 개량형인 PG-7VM, PG-7VS, 그리고 현용 탄두인 PG-7VL은 각각 300mm, 400mm, 500mm를 관통할수 있음, 그외에도 탄덤탄두 PG-7VR은 600mm(반응장갑 미부착시 750mm), 7m의 살상반경을 가진 대인탄두 OG-7V, 열압력탄두인 TBG-7V도 존재함, 7. RPG-16 RPG-16은 스페츠나츠와 공수군을 위해 개발된 대전차화기로 RPG-7과는 다르게 포신안에 발사체가 완전히 들어가는 형식임, 또한 추진체가 더욱 강력하기에 RPG-7과 비교하여 장거리 교전에 적합했음, 단점은 RPG-7과 다르게 탄두을 개량하기 매우 어렵다는점으로, 관통력이 300mm 수준으로 제한되었음, 탄두는 성형작약 대전차탄두와 고폭탄 대인탄두가 있으며 RPG-7과 다르게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진 않음, 8. RPG-18 RPG-18은 미군의 M72 LAW과 매우 흡사한 1회용 대전차로켓 발사기로 1972년 첫 도입되었음, RPG-18은 64mm PG-18 탄두를 사용하며 최대 350mm까지 관통이 가능함, 소련군뿐만 아니라 위성국 국가들과 소련군의 후신 러시아군, 그리고 아프리카까지 수출되어 현역으로 사용중임, 9. RPG-22 RPG-22는 RPG-18과 비슷한 1회용 대전차로켓 발사기로 1985년 배치되었음, RPG-18과 다르게 거대해진 72.5mm 탄두를 사용하며 관통력도 400mm로 증대되었음, 2000년 9월에는 영국 비밀정보국 본부를 공격하는데 쓰였으며 이 발사기는 동년 8월 크로아티아의 RIRA 무기고 급습때 유출되었던걸로 판명됨, 당시 무기고에선 RPG-22 한개가 겨우 15~35 만원선에서 거래되고 있었음, 10. RPG-26 RPG-26은 RPG-22과 동년에 투입된 1회용 대전차로켓 발사기로 최대 440mm를 관통할수 있음, RShG-2라 불리는 열압력탄두를 장전한 버전도 있으며 베네수엘라에 수출되었음, 11. RPG-27 RPG-27은 1989년에 첫 투입된 1회용 대전차로켓 발사기로 최대 650mm를 관통할수 있으며 RPG-26을 기반으로 개발되었음, RPG-26과 동일하게 RShG-1이란 열압력탄두 버전도 있으며 대전차성능을 희생한 대신 대보병 능력을 강화한 RMG 개량형도 존재함, 12. RPG-29 RPG-29는 1989년 도입된 다회용 대전차로켓 발사기로 1991년 소련 붕괴전 도입된 마지막 RPG 시리즈임, 500m의 사거리를 가지고 전용 탄두인 PG-29V을 사용할시 최대 750mm까지 관통 가능함, 이라크전에선 M1 에이브람스과 첼린저 2, 레바논에선 메르카바 전차를 상대로 싸운 RPG-29는 의외의 전과를 올렸으며, 특히 피해를 많이 본 미군은 새로히 편성된 이라크군이 RPG-29을 구입했다가 반군에 노획되는것을 두려워하여 이라크군의 구매 요청을 거부한적도 있음, 또한 멕시코 마약 카르텔도 RPG-29을 밀수해 사용하다가 노획되거나 시리아에선 자유 시리아군과 ISIL이 쓰는 모습이 포착되었음, 이스라엘은 후에 트로피 능동방어시스템을 장착하여 RPG-29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방어한적이 있음, RPG-29는 TBG-27V 열압력탄두와 OG-29 고폭탄 대인탄두가 있으며 이란은 국내에서 가디르라는 이름으로 생산중임, 13. RPG-30 RPG-30은 2008년 공개된 1회용 대전차로켓 발사기로 최대 650mm까지 관통가능한 탄두를 탑재하였음, 기존 능동방어시스템을 관통하기 위해 구경이 작은 더미 발사체를 보유하고 있는게 특징으로 더미 발사체로 APS를 교란한뒤 실탄두를 발사하여 격파하는 방식임, 미군은 2012년 실전배치되자마자 이를 미군에 대항하는 비대칭전력중 하나로 지정하며 경계하고 있음, 14. RPG-32 RPG-32는 2012년 첫 배치된 다회용 대전차로켓 발사기로 특이하게 요르단의 요청으로 러시아가 함께 개발하였음, 러시아뿐만 아니라 요르단 현지에서도 나샤브라는 이름으로 생산되고 있으며 조준기에는 레이저 거측기와 탄도컴퓨터가 탑재되어 500m까지 명중률이 보장됨, 최대 750mm의 관통력을 가진 RPG-32는 예맨 내전에서 안사르 알-샤리아가 후티 반군을 상대로 사용하는 모습이 포착되었으며, 북이라크에서도 페시메르가군이 사용하는 모습이 포착되었음 군사갤러리 ravdozka님 펌
우러전쟁 이야기 (갈려 나가는 기갑)
우크라이나는 비옥한 흑토 때문에 이질적인 지형을 갖고 있음. 이 이질적인 지형은 우러전쟁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치고 있음. 그것은 바로 라스푸티차라고 불리는 광역 슬로우 디버프임. 기갑의 이동을 제한하는 라스푸티차는 봄과 가을에 발생하고 겨울이 따뜻하면 겨울에도 발생함. 우크라이나군, 러시아군 모두 이 라스푸티차라는 페널티에 걸려 있음. 요즘 러시아군이 무리한 공세를 하다 많이 갈려 나가는 중이라 지형 페널티를 받고 갈려 나가는 우러전쟁 기갑에 대해 쓰려고 함. 우러전쟁 기갑은 진흙탕 서핑을 하고 싶지 않으면 길 따라 기동해야 함. 근데 우크라이나 도로는 협소하고 길이 많지 않아 진격로가 제한됨. 제한된 진격로, 좁디좁은 길, 거지 같은 도로. 기갑이 갈려 나가기 딱 좋은 조건임. 박살 난 선두 전차 때문에 잠시 멈춤 러시아 전차. 어버버하다가 결국 포격 엔딩을 맞음. 우러전쟁, 기갑 부대의 진격을 막는 방법. 대전차 지뢰든, 장애물이든 뭔가로 길을 막는다. 길이 막혀 움직이지 못하는 기갑 부대를 차근차근 박살 낸다. 원숭이도 할 간단한 방법인데, 이게 계속 통하는 상황임. 그렇다고 도로가 아닌 진흙밭을 통과하는 것도 미친 짓임. 라스푸티차 때문에 굼벵이 속도로 진격하다 쓸려나감. 또 우러전쟁 기갑을 위협하는 문제점이 하나 더 있는데 너무 탁 트인 개활지라는 점임. 이런 전장은 공군이 활약하기 최적의 지형인데 아쉽게도 우크라이나, 러시아나 공군이 없음. 탁 트인 개활지여서 생기는 단점. 드론 정찰에 너무 쉽게 잡히고 조금만 멈춰 있으면 포격 맞아 사망임. 드론 정찰로 러시아 기갑을 찾을 우크라이나 보병대. 대전차 미사일 사격으로 깔끔하게 제거함. 라스푸티차로 인한 슬로우 디버프 & 개활지로 인한 엄폐 불가 때문에 기갑이 매우 취약함. 이런 문제점들 때문에 우러전쟁에서 기갑이 쉽게 터져나가고 있음. 날씨와 지형을 면밀히 살펴보고 상황에 맞춰 운영해야 하는데 무지성 돌격하다 갈려 나가는 중임. 그리고 러시아제 기갑은 종이 장갑이라고 할 정도로 장갑이 약해서 포격 몇 방에 쉽게 궤멸되는 편임. 궤멸된 기갑부대에 놀라 달아나는 러시아 병사들. 이게 우러전쟁 전선이 교착 상태인 이유임. 기갑이 힘을 쓰기 힘든 조건이 너무 많음. 다만 우러전쟁에서 기갑이 쉽게 갈려 나가는 것은 기갑 자체의 문제라긴 보단 전장 상황을 무시한 무지성 작전 탓이 큼. 겨울 라스푸티차 기간에는 존버하고 강추위 시기에만 공세했으면 저런 일 없었음. 기념일 따위의 정치적 목적으로 무리하게 작전하는 게 문제임. 우러전쟁에서 기갑이 너무 쉽게 박살 나고 있지만 기갑 자체의 문제라기 보단 무지성 운용이 문제이며 기갑은 전쟁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임. 3줄 요약 1. 우크라이나는 기름진 흑토 때문에 라스푸티차가 매우 매우 심함. 2. 제한된 진격로, 거지 같은 지형 때문에 기갑이 무수히 많이 갈려 나감. 3. 날씨와 지형을 면밀히 살펴보고 진격해야 하는데, 무지성 돌격하다 궤멸됨. 군사갤러리 후지토라님 펌
세계 각국의 다양한 치즈
치즈는 기원전 4000년경 중앙 아시아에서 만들어졌다고해 가축의 젖이 그지역에서 구할수있는 단백질원이였는데 이는 높은기온에서 보관이 어려웟고 우연히 수통에담긴 우유가 굳어 하얗게 덩어리졌는데 이게 치즈의 기원이되었어 치즈의 종류는 1000가지가 넘지만 전부다 할순없으니 대표적인거 마트에서도 구할수있는것들로 해보려고해 예전엔 치즈의 대표국가는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이였는데 요즘은 치즈를 워낙 다양한곳에서 만들어서 미국 호주 스위스등도 치즈강국이됨 치즈는 만드는 방식에따라 여러가지로 분류돼 자연치즈(자연적으로 숙성하고 발효) 가공치즈(자연치즈를 가열하고 섞어서 새롭게 만든것) 생치즈(수분함량80%이상) 연성치즈(수분함량50~70%) 반경성치즈(수분함량40~50%) 경성치즈(수분함량30~50%) 등등 이것말고 다른 분류도 있는데 너무 늘어지니간 넘어갈게 체다치즈(반경성치즈) 영국의 치즈 치즈중에서 가장 익숙한 치즈 흔히 마트에서 슬라이스로 자주보이는 녀석 높은 밀도에 부스러지는듯한 질감의치즈 노란색은 색소를 집어넣어서 그런건데 빨간색소를 집어넣은건 레드체다 착색하지않은것은 화이트체다 혹은 버몬트체다라고 한다 에담치즈(반경성치즈) 네덜란드 북부도시의 에담에서 유래한 이름 예전에 유튜브 먹방이나 asmr에서 인기였던 사과치즈 겉에 빨간건 왁스코팅이 되있는건데 숙성을위해 발라두는것이니 먹어도 죽진않지만 먹진말자 지방함량이 적고 질감이 부드러운게 특징 고다치즈(반경성치즈) 이것도 네덜란드에서 만든 치즈로 에담치즈보다 지방함량이 높고 부드러운맛과 캬라멜향이 특징 모짜렐라치즈(생치즈) 이탈리아의 치즈 흔히 피자치즈로 많이불리는데 사진과 피자치즈를 구분하기위해 '생'모짜렐라라고 혹은 '후레쉬'모짜렐라라고 부름 발효나 숙성과정을 거치지않아 치즈 고유의 향과 맛이 약해 수분함량이 높아서 쉽게상한다는 단점이 있음 열을 가했을때 잘 늘어난다는 특징이 있음 리코타치즈(생치즈) 이탈리아의 치즈 리코타는 이탈리아어로 다시익힌 재조리한 이라는 뜻을 가짐 치즈를 만들고남은 유청을 활용하여만들어서 치즈로 분류하지않고 치즈의 부산물로 보는경우도 있다 주로 샐러드 혹은 빵에 발라먹는다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경성치즈)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치즈 요리방송을 자주보는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봣을수도 있음 양식 위에 마지막에 향과 데코로 뿌려주는치즈가 이거임 최소 1년이상을 숙성하고 4년이상까지 숙성하는 고급치즈 원산지 보호법을 받는 치즈라서 해당지역외에 지역에선 이 이름을 못붙임 이름이 워낙 길어서 파르메잔치즈 혹은 파마산치즈라고 줄여서 부르는데 저렴한가격에 파는거 혹은 피자집에 있는 치즈가루는 다른 재료를 섞어서 만든 모조치즈인 경우가 많음 그라나파다노(경성치즈) 위에 소개한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가 파르마 지역에서만 생산한치즈면 얘는 그 외 지역에서 생산한 이탈리아의 치즈임 원료 지역 생산에 제약이 적기때문에 가격이 훨씬저렴한편 향과 맛은 비슷해서 양식당에서 제일많이 사용함 페코리노 로마노(경성치즈) 양젖으로 만든 치즈 이탈리아의 치즈 특유의 냄새가 강하고 알싸하게 약하지만 매운맛이 느껴지는게 특징 리얼 까르보나라에 들어가는 치즈가 이거 고르곤졸라 치즈(반경성치즈) 이탈리아의 블루치즈 블루치즈의 가장 대표적인 치즈 톡쏘면서 향이 굉장히 강해 치즈를만들때 푸른색 균을 넣고 이후 발효과정에 구멍을 뚫어 산소와 균이 접촉해서 저런 대리석무늬가 생김 우리나라는 고르곤졸라 피자에 많이넣어먹는데 실제로 한판에 들어가는 치즈는 손가락한마디 정도다 에멘탈치즈(경성치즈) 스위스의 치즈 톰과 제리의 나오는 그 치즈맞음 치즈를 숙성할때 쓰는 균이 발효할때 내는 가스로인해 불규칙적인 큰 구멍이 특징 잘녹아서 퐁듀에 많이 사용하고 담백하고 부드러운맛이 특징 그뤼에르치즈(경성치즈) 무살균 우유로 만든 스위스의 치즈 에멘탈치즈와 비슷한데 구멍이 더작고 냄새랑 맛이 더 강함 잘녹아서 퐁듀에 많이 사용함 크래커와 빵과 곁들이면 좋다 라끌렛치즈(반경성치즈) 스위스의 치즈 치즈를 직접 불에 쬐어 녹인후 녹은부분을 긁어내서 채소 빵 고기 등에 얹어서 먹음 저 치즈를 녹이는 전용기계도 있다 스위스의 치즈는 녹여먹는게 기본 브리치즈(연성치즈) 프랑스의 흰 곰팡이치즈 치즈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있다 브리지방에서 만들어졌다 겉에부분은 쫄깃하고 속은 굉장히 부드럽다 와인 크래커 과일등과 먹음 이 외에도 마스카포네치즈 부라타치즈 까망베르치즈 등 여러가지 많지만 여기까지만 할게 지구촌갤러리 ㅇㅇ님 펌
현재 홍콩을 바라본 한 대학생의 외침
길기는 하지만 너무 명문이라 생각되어서 모두 가져옵니다 마땅히 시간이 나지 않는 분들은 클립해서 나중에 봐도 좋을 듯 합니다 연대숲 #66147번째 외침: 콘스탄티노폴리스 1453, 광주 1980, 그리고 홍콩 2019. 인간은 현명하다. 그래서 가망이 있는 싸움인지 아닌지를 쉽게 안다. 인간은 어리석다. 그래서 가망이 없는 싸움임을 알면서도 죽으러 나간다. 인간은 고결하다. 그래서 가망이 없는 싸움에서 결국 승리한다.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 한때 지중해를 빙 둘러쌌던 보편제국 로마의 마지막 조각, 그리스 끝자락의 ‘그리스도를 믿는 콘스탄티누스의 도시’는 이제 십만 명이 넘는 투르크의 포위군과 거대한 대포에 둘러싸였다. 이에 맞선 방어군은 7000명 미만. 교황청과 베네치아가 보내 준 극소수의 병력과 한 줌의 의용군을 제외하면, 서유럽의 수많은 나라 중 단 하나도 도시를 구하러 오지 않았다. 살고 싶으면 무기를 버리고 항복해야 했다. 50여일의 처절한 공방전 후 다가온 투르크군의 총공격 전날 밤, 그리스 혈통의 마지막 로마인들은 살기 위해 성문을 열고 메카를 향해 절하는 대신 하기아 소피아의 그리스도 모자이크 아래에서 밤새 기도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음을 그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다음 날 도시는 함락되었고 시민들은 자신들의 자유와 동방 정교회 신앙을 위해 가망 없는 싸움에서 싸우다 죽었다. 그렇게 이천년의 로마가 끝났다. 1980년, 광주. 도시는 계엄군의 탱크와 장갑차에 둘러싸였다. 학생들과 평범한 아저씨 아줌마들로 구성되었던 시민군의 무장은 경찰서 무기고에서 얻은 소총 수준. 도시의 모든 통신시설은 차단되었고, 당시 평시작전권까지 가지고 있던 주한미군은 계엄군의 병력이동을 알면서도 저지하지 않았다. 그 어떤 서방 선진국들도 적극적으로 개도국 한국의 한 지방도시에 대한 군사작전에 개입하지 않았고, 도시 밖에는 빨갱이들과 북괴의 특수부대가 도시를 점령했다는 거짓 뉴스가 살포된다. 이런 사황에서 계엄군과 맞서면 죽을 것이란 것은 시민군 모두가 알고 있었다. 특히 군필자들은 더 확실히 다가오는 죽음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탱크의 궤도 소리가 들려오던 전남도청의 마지막 밤, 시민군들은 도망치는 대신 애국가를 불렀다. 민간인들이 공수부대를 당해낼 수 있을 턱이 없었으므로, 광주시민들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가망 없는 싸움에서 공화국 대한민국의 주권자로서 저항권을 행사하다 죽었다. 그렇게 1980년 서울의 봄은 광주의 피바다로 끝이 났다. 2019년, 홍콩. 손바닥만한 도시는 인민해방군 특수부대에게 둘러싸였다. 콘스탄티노폴리스와 광주와는 달리, 이번에는 도시 밖의 사람들도 스마트폰으로 도시의 소식을 듣는다. 한 남자 대학생이 건물에서 떨어져 죽었으며 열여섯 살 소녀가 경찰들에게 강간당했고 한 여자 중학생은 바다에서 알몸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2019년’에 들려온다. 시위대는 진압군에게 양궁으로 화살을 쏘고, 진압군은 시위대에게 총으로 실탄을 쏜다. 10대와 20대가 주축을 이루는 시위대는 이제 각 대학의 캠퍼스에 갇혔고, 마오쩌둥 꿈나무 시진핑은 전 세계에 강경진압도 불사하겠다고 큰소리를 친다. 영중공동선언과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정으로 보장되는 “주권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치권은 홍콩특별행정구가 각각 행사한다”는 일국양제의 약속은 시진핑의 말 한마디에 휴지조각이 되었다. 보아하니 지난 학기 국제법 교과서에 쓰인 문장은 실로 참되다. “국제법은 법이 아니다.” 이처럼 베이징의 결단은 명징하다. 홍콩에서 밀린다면, 타이완에서, 티베트에서, 신장위구르에서, 광시좡족 자치구에서 똑같이 밀릴 것이고 그 순간 중화인민공화국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들 것이다. 시진핑에게는 1989년 천안문을 소규모로 재현하는 한이 있더라도, 국제사회의 전방위적 제재를 받는 한이 있더라도 홍콩 시위를 진압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물론 그는 탱크를 구룡반도로 돌진시킬 정도로 멍청한 자가 아니므로, 유혈사태를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시위를 분쇄하려 하겠지만. 중국 본토를 제외한 전 세계가 홍콩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지만, 나설 수 있는 그 누구도 감히 나서지 않는다. 워싱턴의 천자는 민주당의 탄핵 카드와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빨간불이 켜진 재선 상황에서 중국과 국력을 기울여야 할 정도의 극단적인 갈등을 빚을 여력이 없다. 중영공동선언에 의해 홍콩의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때 개입할 의무가 있는 영국 총리는 브렉시트 문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외무장관 시절 보여주던 보리스의 현란한 막말실력은 감히 베이징을 향하지 않는다. 유럽과 이혼중인 이빨 빠진 사자 대영제국은 이제 자신의 손을 떠난 도시 하나 때문에 굴기하는 중국과 맞설 의지도 힘도 없다. 모스크바의 차르는 그의 신민들이 홍콩을 따라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가 홍콩을 위해 힘을 써 줄 이유 같은 건 없다. 예배당과 성당에 경찰이 난입하여 시위대를 끌어내는 상황 속에서, 즉위 이래 평화를 위해 싸워온 로마의 프란치스코도 이번에는 중국을 소리높여 강하게 비난하지 못한다. 수십 년의 갈등 끝에 중국과 바티칸의 주교서임권 정교협약 물밑협상이 막바지에 다다라 있는 상황에서, 그 어떤 전임자들보다 미디어와 도덕성이라는 소프트파워를 잘 다뤄온 교황이 적극적으로 홍콩 편을 든다면, 안 그래도 그리스도교를 체제의 위험분자로 인식해 탄압하는 중국 정부에 의해 본토의 수천만 가톨릭과 개신교 신자들은 지금보다 더한 극도의 박해에 직면할 테니까 말이다. 1980년 광주를 두 눈으로 지켜본 ‘인권변호사’ 출신 대한민국의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2016년 사드배치로 인한 경제보복의 기억이 생생한 상황에서, 한국에게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도시 홍콩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거대한 중국과 맞서는 것은 정치적으로나 외교적으로나 자살행위일 테니까. 그를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홍콩에 대한 그의 침묵을 도덕적 이유가 아니라 현실정치적 이유로 욕하기는 어렵다. 여당도 제 1 야당도 제 2 야당도 이 지점에 있어서는 꿀 먹은 벙어리일 수밖에. 이렇게 전 세계가 보고 있지만, 홍콩의 시위대를 위해 중국과 맞서 줄 세력은 없다. 시진핑은 시위대를 탱크로 밀어버리지는 못하겠지만 이미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실탄사격 개시 명령을 내려놓았다. 그렇기에, 너무나도 슬프고 두렵고 안타깝지만 시위대는 아마 이 싸움에서 이기기 힘들 것이다. 며칠 안으로 홍콩 각 대학의 마지막 저항은 진압되고, 추가적인 사망자가 나올 것이며, 중국은 언제나 그랬듯이 적당히 유화적인 조치와 시위대 사면이라는 당근을 통해 세계에 변명하리라. 아마 홍콩에서 지금 시위하는 10대 소녀 소년들과 20대 남녀 대학생들도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거대한 괴물 중화인민공화국을, 자신들이 ‘지금’이길 수는 없을 것이라고. 그리고 민주주의를 공기처럼 누리는 우리도 그들만큼 잘 알고 있다. 홍콩의 우리 또래, 우리 동생 또래들이 왜 가망이 없는 싸움임을 알면서도 목숨을 걸고 거리로 나서고 캠퍼스에서 농성하는지를. 그렇다면, 홍콩의 시위는 ‘질 수 밖에 없는 싸움’일까? ‘고결한 희생’ 일 뿐일까? 결국 홍콩의 민주주의는 인민해방군의 군화발에 무너질까?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이스탄불로 바뀌어, 영원히 터키의 수중에 남았다. 하지만 함락으로부터 40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후에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기억하는 그리스의 동방 정교회 신도들은 ‘자유가 아닌 죽음을!’을 외치며 가슴에 도시의 회복을 품고 독립운동을 벌여 투르크와 싸웠다. 이번에는 바이런을 필두로 유럽의 열강들이 달려왔고, 그리스인들은 콘스탄티노폴리스는 되찾지 못했으나 자유는 되찾았다. 아직도 그리스에서는 이스탄불을 콘스탄티노폴리라고 부르며, 동방 정교회의 세계총대주교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라고 불린다. 콘스탄티노폴리스는, 그렇게 이름 그대로 그리스인들에게 영원히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의 도시, 그들의 마음 속 도시로 남았다. 광주 민주화 운동은 학살극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그 누구도 1980년을 잊지 않았다. 그 후 7년 동안, 수많은 대학생들은 독재정권과 지속적으로 가망 없어 보이는 싸움을 했다. 대공분실에서 코로 설렁탕을 마셔야 했고, 최루탄 연기를 마셔야 했으며, 고문으로 장애를 얻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1980년 광주에서의 싸움은 전남도청의 피바다로 끝난 것이 아니라 1987년 백양로의 이한열의 피로 끝났다. 그 피로써 공화국은 다시 민주주의와 자유를 얻었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광주는 빛고을이라는 이름 그대로, 우리에게 자유의 빛을 다시 밝혀 주었다. 7. 나는 하느님을 믿는 만큼이나 기적을 믿는다. 그래서 홍콩 시위대가 승리하기를, 더 이상 홍콩의 누구도 피를 흘리지 않기를, 중화인민공화국이 무력진압 대신 타협과 협상을 선택하기를, 그런 기적이 일어나기를 정말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2019년의 홍콩 시위가 진압당한다고 할지라도, 소녀들과 소년들, 남녀 대학생들이 인민해방군의 군화에 짓밟히고 체포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끝은 아닐 것이다. 콘스탄티노폴리스가 그랬고 광주가 그랬듯이, 그것이 홍콩의 끝은 아닐 것이다. 만약 중국이 홍콩을 짓밟는다면, 온 세상이 ‘중화인민공화국’이 빛나는 중화문명의 계승자도, 인민을 위한 나라도, 공동선을 추구하는 공화국도 아닌 시황제의 진나라의 21세기 복제판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고, 중국 대륙에서 중국 공산당에 의심을 품는 모두의 마음 속에 홍콩이 흘린 피와 눈물이 영원이 기억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인들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기억했고, 한국인들이 광주를 기억했듯. 그리고 그 기억이 결국 절망적인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음을 우리는 보았다. 그렇게 2019년의 홍콩에서 벌어지는 이 절망적인 싸움을 통해, 온 세상은 ‘빛나는 중화 문명’의 계승자들이 바다를 등지고 자유와 민주를 위해 싸울 때 얼마나 고결한 향기를 뿜는지를 영원히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시진핑이 아니라 마오쩌둥이 살아돌아와도, 폭력과 살육의 악취로 그 향기를 가리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홍콩 사람들도 결국 가망 없는 싸움에서 승리할 것이다. 8. 홍콩은 향항, 향기로운 항구라는 뜻이다. ------------------------------------------------------------------------------ 中华人民共和国宪法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第三十三条  ....... 国家尊重和保障人权 제33조 ........국가는 인권을 존중시하고 보장한다. 第三十五条 中华人民共和国公民有言论、出版、集会、结社、游行、示威的自由。 제35조 중화인민공화국의 공민은 언론, 출판, 집합, 결사, 행진, 시위의 자유를 가진다. 第三十七条 中华人民共和国公民的人身自由不受侵犯。任何公民,非经人民检察院批准或者决定或者人民法院决定,并由公安机关执行,不受逮捕。禁止非法拘禁和以其他方法非法剥夺或者限制公民的人身自由,禁止非法搜查公民的身体。 제37조 중화인민공화국의 공민의 인신의 자유는 침해받지 아니한다. 어떠한 공민도 인민검찰원의 승인이나 결정 또는 인민법원의 결정을 거친 후 공안기관의 집행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되지 아니한다. 불법구금 및 기타 방법으로 공민의 인신자유를 불법으로 박탈 또는 제한하는 것을 금지하며 공민의 신체를 불법으로 수색하는 것을 금지한다. 第三十八条 中华人民共和国公民的人格尊严不受侵犯。禁止用任何方法对公民进行侮辱、诽谤和诬告陷害。 제38조 중화인민공화국의 공민은 인격의 존엄성을 침해받지 아니한다.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공민에 대하여 모욕, 비방 및 무고, 모함하는 것을 금지한다.
자신의 정원에서 뛰어다니는 생쥐를 보고 집을 지어준 영국인
영국에 사는 사이먼 델 (Simon Dell)씨는 우연히 자신의 정원에서 뛰어가는 생쥐를 발견하고! 생쥐를 위한 집을 지어줬음. 바로 이렇게! 생쥐가 안전하게 살 수 있을만한 집을 지어주고 그 집 주위를 꾸며주기도 함 이렇게 집 주위에 각종 나무열매, 과일 등 생쥐가 좋아하는 것들도 놓아주고.. 눈이 왔을 때는 생쥐네 집 앞에 눈생쥐도 만들어줌 (옥수수 선물 받고 놀란 생쥐) 사이먼씨는 생쥐 이름도 지어줬는데... 생쥐 이름은 스튜어트임! 원래 사이먼씨네 정원에 있던 쥐는 스튜어트 한 마리였는데 어느 순간 그 스튜어트가 자기 짝도 데려왔다고 함 (아마 소개팅을 한듯..? 2018년 봄부터 집밖을 나가서 누굴 만나고 오는 장면을 포착하셨대) 그래서 스튜어트가 짝을 만난 뒤에는 두마리가 행복하게 살고 있음 ㅋㅋ 사이먼씨는 고양이나 강아지가 생쥐 집을 건들지 못하도록 와이어로 생쥐 집 주위에 철조망을 둘러주셨다고 함. 사이먼씨네 정원에는 생쥐뿐만 아니라 여우, 고슴도치, 두더지, 각종 새들도 많이 찾아온다고 하는데, 이런 저택을 만들어준건 생쥐가족이 유일한듯. 집도 굉장히 다양하게 만들어주셔서... 생쥐가족은 1층, 2층, 사다리집 등 다양한 통나무집을 가지고 있다고 함 ㅋㅋ 생쥐들 귀엽고 사이먼씨 사진도 잘 찍으시는 것 같음... 사이먼씨 트위터를 보면 최근에도 생쥐 가족들은 정원에서 잘 살고 있는듯 ㅋㅋ (2021년 12월 25일-26일 크리스마스 파티했던 생쥐가족 모습)
주 페루 일본 대사관 인질사건(1996년)
16세기 잉카제국이 멸망했어도 그 잔존세력은 여전히 남아있었으며 페루 산악지대를 거점으로 후잉카제국은 스페인과 대립하였다 1571년 즉위한 후 잉카 제국의 투팍 아마루는 1572년 스페인의 페루 부왕령 총독에게 끌려가서 우상숭배를 명목으로 처형을 당한다. 이렇게 후 잉카 제국은 완전히 멸망하였지만 18세기에 이르러 원주민 족장 한명이 스스로를 투팍 아마루 2세로 자칭하면서 잉카제국의 승계를 주장하고 독립 운동을 이끈다 그는 흑인이나 메스티소에 대해서 차별을 철폐할것을 요구하며 거병하였지만 스페인의 페루 부왕령 군대에 진압당하고 처형당한다. 그러나 19세기 초에 이르러 호세 데 산 마르틴과 시몬 볼리바르의 활약으로 페루는 마침내 독립하고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페루는 여러 혼란스러운 시기를 거쳐갔었다 19세기 후반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인들은 미주 지역으로 대거 이주했는데  미국과 브라질에는 대규모 일본계 커뮤니티가 형성될 정도였다 그 다음으로 규모가 큰곳은 페루였는데 이곳에서 한 일본계 페루인이 주목 받았다 알베르토 후지모리 Alberto Kenya Fujimori Fujimori는 페루 리마에서 일본 구마모토현 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페루로 돌아와서 tv 토크쇼 진행자로 큰 주목을 받아서 1990년 대통령 자리까지 올라간다 특히 페루는 신자유주의로 나라 경제가 한번 박살났었는데 후지모리는 거기에 반대하는 공약을 내놓았으며 아무튼 80년대말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인 일본의 경제 지원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페루인들의 지지가 컸다고 한다(1990년 시점에서의 페루인들 생각이 저러했다고 하는거지 실제로 어떠했냐 앞으로 어떻게 따지냐를 이야기하는건 무의미함) 그리고 실제로 1990년대 중반까지 그는 페루 경제의 성장을 이끄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1996년.... 1996년 12월 일본의 덴노인 아키히토 생일 축하연이 페루 주재 일본 대사관에서 열렸고 페루에 주재하고 있는 여러 나라의 외교관들이 참석하였다 그런데 이때 투팍 아마루 혁명 운동의 조직원들이 일본 대사관으로 쳐들어가서 대사관을 점거하고 인질극을 벌이기 시작한다 이들 투팍 아마루 혁명 운동은 과거 페루의 독립운동을 이끈 투팍 아마루 2세의 이름을 따와서 만들어진 페루의 좌.파 반군 조직이였으며 이들은 자신들의 조직에 소속되어있던 인원의 석방과 알베르토 후지모리 정권의 경제 정책을 자신들의 요구대로 전환 시킬것등의 조건을 걸고 페루에 주재한 외교관들(주 페루 대한민국 대사 포함)과 일본인 주재원등 600명을 인질로 잡았다 이후 페루 정부는 어떻게든 인질들을 빼내기 위해서 테러범들과 협상을 했으며 주 페루 한국 대사는 운좋게도 4일만에 탈출하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주 페루 쿠바 대사가 한국 대사에게 먼저 나갈수있도록 테러범들과 이야기를 해줬기 때문) 알베르토 후지모리는 직접 방탄복을 입고 범인들과 협상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페루 해군 특수 작전군은 미군과 연계하여 테러범 진압작전을 3개월에 걸쳐서준비하고있었다 페루군은 주 페루 일본대사관 주변의 모든 건물에 대한 정보를 파악한 후에 주 페루 일본 대사관 건물로 통하는 터널을 파기 시작한다 이 당시 인질들은 대사관 2층에 모여있었으며 인질들이 1층에 대부분 모여서 운동을 하는 시간에 맞춰서 대사관 지하까지 파둔 터널을 폭퍄시켜서 개통을 하였다 페루군은 대사관으로 진입 투팍 아마루 해방 운동 단원들을 차례차레 사살하였으며 페루군 2명이 이 과정에서 희생되었다 투팍 아마루 혁명 운동 단원은 총 14명이 사살당한다. 결과적으로 페루군은 인질 전원을 구출하는데 성공하였으며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인질 구출 작전중 하나로 평가받게된다. 거기에 페루 대통령 알베르토 후지모리의 인기는 더욱 치솟기도하였다. 그러나 알베르토 후지모리는 이후 온갖 부패에 연루하여 일본으로 도피하였다가 다시 페루로 돌아와서 감옥에 수감되는 신세가 되었다. 군사갤러리 ㅇㅇ님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