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mon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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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오는 귀신썰) 섬의 어느 폐가 이야기 -1-

(사진은 내용이랑 노상관)

안녕?
왜 이렇게 오랜만인 것 같은 기분일까
사실은 얼마 안 됐는데 말야 ㅎㅎ

요즘 맘에 들어오는 썰들이 너무 없어서 잠시 쉴까 하다가 맘에 드는 글을 찾아서 가져와 봤어!
옛날에 @s127127777777s 님이 가져 오시던 갓서른둥이님 글인데 @s127127777777s 님이 다 올리진 않으신 것 같더라구. 검색해 봐도 이 이야기는 안 보이길래 후딱 복사복사 ㅋㅋ

오늘 날이 많이 추운데 괜히 더 춥게 만드는 건 아닌가 몰라
이제 해도 점점 길어 지니까 괜찮겠지? 입춘도 지났고 ㅎㅎ
그럼 오늘도 같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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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옴팡지게 춥고만요.
엽호판 눈팅족 이었는데 요즘 글도 안 올라오고 해서 저도 하나 슬쩍 밀어 넣어 봐요.

판에 글 재미있게 너무 잘 쓰시는 분들이  많아 감히 저 따위가 글 올려 볼 생각도 못 했었는데, 요즘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너무나 부족하니 이럴 땐 좀 함량 미달인 글도 그냥 읽어 주시리라  믿고 한자 적을래요. 하자 많은 글이지만 너무 타박 마시고 그냥 재미로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전 그냥 길 위에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며 바람 따라 굴러 다니는 흔하디 흔한 낙엽 같은 남자에요. 그러나 눈 만은 높아 고준희씨를 너무나 좋아하는 남자 사람 입니다.

전 기가 쎈 거 약한 거 그런건 잘 모르지만 그냥 사람이 아닌 존재를 믿고 그런 걸 여러번 봤기에 그 중 한 이야기를 해 드리려 합니다. 믿고 안 믿고는 여러분 자유 의사이오니 너무 따지지 마시고 그냥 읽어주면 안되겠니?

전 고준희씨 같은 여친이 음슴으로 음슴체,
싸가지도 없으므로 반말체로 그냥 적을께요.


때는 지금부터 6-7년 전  정확히 7년 전 일이네.
그 당시 나는 대학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갔었어.
논산 훈련소와 후반기 교육 고달픈 짬찌 이등병 생활 부터 육군 5대 장성 이라는 빛나는 작대기 4개 병장으로 보무도 당당히 사회에 나왔지만 현실은 그냥 복학 못한 잉여 인간이었지.

전역을 하니 학기가 시작한 지 한달이 훨씬 넘은 시점이라 거의 1년을 생으로 쉬어야 했어. 그냥 아무거도 안하고 푹 쉬는거도 한달이면 끝이더라. 한달이 지나니까  아침 6시에 기상 하는 몸에 밴 습관은 빠지는 군기와 함께 저 멀리 날라 갔지만 대신 무료함과 지루함이라는 괴물이 찾아 오더라.

그 때 내 무료한 일상을 구해준 취미가 있었으니 바로 낚시 되시겄다. 처음엔 친구들을 따라 몇 번 갔는데 그 때 까지도 낚시에 매력을 못 느꼈었지. 그냥 친구들이랑 어울려 라면 끓여먹고 방해 안 받고 술 마시는 게 좋아서 따라 갔던 거거든.

그런데 이 낚시란게 하면 할수록 빠져들게 만드는 묘한 고준희씨 같은 매력이 있더라구. 그 매력에 빠져들다 보니 나중엔 내가 먼저 나서서 선동하는 경지에 이른거야. 흡사,  난 관심 없었는데 친구가 좋다고 하는 여자를 같이 쫓아 다니다 보니 내가 좋아하게 되버린 거?

김건모 횽아가 보면 지리것소...잘못된 만남.

몇달 죽어라 알바 해서 낚시 풀셋을 구입했지. 낚시가 처음 초도장비 구입비가 좀 비싸서 그렇치 일단 장비만 갖추면 지렁이 한통, 떡밥 한 봉지만 구입하면 하루를 즐길 수 있는 친 주머니적인 저렴한 취미 생활이거든.

낚시를 다니다 초보때 운 좋게도 월척도 하다보니 꿈이 생기더라구. 그 꿈이 뭐냐 하면 모든 낚시인의 환상인 4자 짜리 붕어야. 4자 붕어가 뭐냐면 40센티 이상 되는 대물 붕어를 말해.

무슨 붕어가 그리 크냐구?
그러니깐 꿈이지. 
귀해서 그렇치 분명 있는 붕어야.

원래 토종이 아닌 외래종인 떡 붕어는 40센티 넘는 붕어도 꽤 많아. 성장 속도가 엄청 빠르거든. 그렇치만 우리 토종 붕어인 노오란 참 붕어는 4자 짜리는 환상 그 자체야.

그런데 이 4자 짜리 붕어가 살기 위해선 조건이 있어.
첫째, 먹이가 풍부 해야 하고
둘째, 기후.기온이 좋아야 하고
셋째, 사람의 발길이 많이 안 닿은 곳 이라야 하고
넷째, 최소한 10년 이상 바닥이 드러날 만큼 마른 적이 없어야 해.

그런데 그런 곳이 어디 잘 있나?
년중 행사로 가뭄이지.
어딜가도 사람이 북적북적한데.

그러던 와중에 친구에게 희소식을 들은거야.
그 친구 집이 서해의 어느 섬이거든.
자기네 고향집에 뒷산으로 가면 내가 말한 조건과 같은 농업용 저수지가 있다고 하더라고.

친구 얘기론 예전 저수지가 처음 만들어 질 때(그 친구 찌찔이였을 때 만든 저수지라 함 20년 정도 된) 마을 사람중 누군가가 뭍에서 붕어 몇마리 가져다 넣었는데 그때 붕어가 엄청 번성했다고 함. 민물 새우도 같이 방류해서 새우가 저수지에 반이라고 뻥침.

그래서 내가 그랬어.
야!!  마을 뒤면 동네 사람들이 다 잡았겠지. 라고 하니 얘가 살짝 비웃더라.

ㅂㅅ아  누가 저수지 가서 붕어 잡고 앉았냐? 양 사방이 다 바단데 갯바위 가서 맛있는 우럭 잡지. 이렇게 얘기 함.

내 생각에도 그렇더라구.
붕어를 누가 잡겠어? 
바다낚시 하지.....

그래서 난 그곳으로 출조를 하기로 한거야. 그 녀석을 부모님 살아실 제 한 번이라도 더 찾아 뵙고 효도를 다 하는게 인간의 도리라고 꼬셔서 같이 가기로 했지.

그런데 가기로 약속한 전 날 갑자기 그 애는 사귀던 여자친구랑 급이별을 하게 되었고 광분한 녀석은 술과의 데드매치를 벌여 떡이 되어 누운 거야.

어쩔수 없이 나 혼자 가야 했어.
속으로 내가 알고 있던 8만 4천 가지 욕을 다 퍼부으며 말야.

배 타기 전에 시내 낚시점에 들려 떡밥과 지렁이를 넉넉히 준비했어. 바닷가 가면 바다낚시 미끼만 팔더라구. 난 그 뒤 여러시간 배를 타곤 아침에 내가 뭐 먹었는지를 화장실에서 확인하며 어렵게 친구 고향섬에 갔어

....죽는 줄 알았다 진짜.

도착 해서 보니 낚시를 오신 분들이 많으셨어. 그러나 그 분들은 바다 낚시를 오신 분들이었지. 나랑은 목적 자체가 틀린 분들이라 경쟁자가 없다는 것이 얼마나 맘이 편하던지 몰라.

그리곤 친구가 미리 설명 해준 길로 마을을 지나 20분쯤 산쪽으로 올라 갔어. 마을 끝에 마지막 보이는 집을 지나 한 300미터 쯤 산쪽으로 오르니 그 저수지가 나오더라구.

저수지라 하기엔 너무 규모가 작은 보통 초등학교 운동장 3분의 1만한 작은 저수지였어. 그런데 딱 봐도 여긴 대물이 살겠구나 하는 느낌이 오더라구. 물가에 오래된 나무들도 있고 물이 맑아 바닥이랑 수초도 다 보였는데 정말 팔뚝만한 붕어들이 떼로 몰려 다니는 거야. 얼마나 급 흥분이 되던지.

서둘러 자리를 잡고는 앉았는데 눈 앞에 그때서야 저수지 맞은 편에 낡은 집 하나가 보이는 거야. 풀이 키만큼 자라 잘 안 보였던 건데 딱 봐도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란 느낌이 들더라. 그냥 보통 시골에서 많이 보던 슬레트 지붕 집인데 아마 초가를 지붕 개량만 했던 듯,  집은 초가 형태 였고 군데 군데 무너지고 방문 창호지도 다 찢어지고 그런 집이었어. 누가봐도 느낌에 사람이 살지 않는구나 하고 느꼈을껄?

뭐 시골 가면 그런 폐가가 흔한지라 그런가 보다 했어.
폐가가 달리 폐간가? 그냥 사람 안 살고 관리 안한지 좀 되면 다 폐간거지.

그렇게 앉아 낚시를 시작 했는데 처음 떡밥을 써서 하는데 입질이 없는거야. 한참 그러다 미끼랑 바늘을 바꿔 달았어. 지렁이로 말야. 그러자 넣기 무섭게 입질이 오기 시작 하더라구. 역시 사람 손이 안 탄 곳이라 붕어들이 떡밥 맛을 몰랐던 거야. 대신 살아있는 지렁이엔 환장 하고 달려 든거고.

잡히는 족족 준척급 이상 되는 씨알 굵은 붕어들이 딸려 올라오는 거야. 정말 신나게 낚시를 했고 시간 가는 줄 몰랐지.

그런데 기대했던 4자 짜리는 소식이 없었어. 워낙 기본 씨알이 굵기는 했지만 진짜 대물은 밤낚시 때나 되어야 나오겠단 생각에 가지고 간 라면을 끓여 저녁을 먹었어. 이 세상에서 젤 맛있는 음식이 만화방이랑 낚시터서 먹는 라면, 그리고 당구장서 먹는 자장면일걸? 남자들 동의 하나?

그렇게 라면을 맛나게 먹고는 잠시 쉬었어.

밤 낚시 준비를 하고는 낚시 의자에 기댄 채 2-3시간을 자고는 밤 낚시를 시작했어. 입질은 좀 뜸 했지만 고기 씨알은 낮에 비해 월등해져서 4짜에 대한 기대를 한껏 부풀려 주더라구.

그렇게 밤이 깊어 가고는 11시가 넘었어. 물론 인기척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나만의 낚시터였어. 갑지기 하늘에서 천둥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거야. 그땐 날씨를 미리 첵크 해야 된다는 기본 상식이 부족했던 지라 날씨를 미리 계산 안한 나의 실수였지.

고갤 들어 하늘을 봤지만 별빛 하나 없는 하늘엔 아무것도 안 보이는 거야. 아마 보였다면 먹구름이 잔뜩 몰려온 하늘을 봤을거라 생각해.

그리고는 순서에 입각하듯 비가 내리기 시작했어. 조금씩 더 많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첨부터 거의 양동이로 쏟아 붓듯 내리는 거야. 비옷도 없이 겨우 조그만 우산 하나 뿐이 없던 나는 그 우산으로 나의 몸이 아닌 소중한 낚시 가방을 보호했어. 그래, 나 낚시 가방만도 못한 남자다 ㅋ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순간 번개까지 치는 거야. 낚시대 잘못 가지고 있다간 피뢰침 역할해서 감전사 하는 경우도 많아. 겁나더라. 더 큰 문제는 비에 잔뜩 젖은 몸이 심하게 떨려 오기 시작하더라고. 아! 이게 저체온증 이구나 했어.

뭔가 결정을 해야 했어.

난 낚시는 그대로 놔두곤 낚시 가방과 간단히 싸온 짐만 들고는 랜턴빛에 의지해 그 폐가로 뛰어 갔어. 밤새 비 맞아 병 드는거 보다는 폐가라도 비나 피할 수 있으면 나을꺼 같았거든.

작은 렌턴을 들고는 폐가로 가선 그 폐가 부엌이었다 생각 하는 곳엘 들어갔어. 내 짐작이 맞아 그곳은 부엌이었고 아궁이도 있었고 그곳 한 모통이엔 쌓아 놓은 마른 장작도 몇개 있었거든.

난 아궁이에 신문지로 불을 지펴 장작을 태우기 시작했어. 불이 나무에 옮겨 붙어 타들어 가니 몸이 녹더라구. 장작이 많이 없어 다 부셔져 너덜너덜한 부엌 나무문도 뽀개서 불에 쑤셔 넣었어. 그리고 코펠에 빗물을 받아 라면 하나를 끓여 먹었지.

비 맞은 생쥐 같은 꼴에 따뜻한 불과 속에 뜨거운 라면이 들어가니 급 졸리기 시작하는 거야. 라면을 먹고는  불 앞에서 꾸벅 꾸벅 졸기 시작 했지.

얼마를 졸았을까?
흥얼 흥얼 하는 낮은 소리를 듣고는 잠에서 깬거야.


무슨 소리지?

잠결에 내가 꿈을 꾼건가?


이렇게 긴가민가 하고 있는데 이번엔 깬 와중에 똑똑히 소리를 들은거야. 소리는 부엌 바로 옆방에서 나고 있었지.


예전 시골집들 봤어?
부엌 바로 옆이 대부분 안방이야.

그리고 부엌과 방 사이엔 대부분 정짓문이라고 하는 문이 있거든. 이 문을 통해 부엌에서 밖으로 안 나가고 출입 하고 방으로 밥상을 들였었거든. 그 문은 대부분 창호문으로 미닫이 문이 대부분이였고.

난 이미 군데 군데 찢어진 창호문 사이로 조심하며 안을 들여다 봤어.

그런데,






그런데,







ㅠㅠ







방안에 어떤 하얀 사람 같은 형상이 보였어.

자세히 보니 나이가 많으신 백발의 할머니가 방안을 뺑뺑 돌면서 다니시고 있는 거야.


그 할머니는 그렇게 방을 돌면서 중얼거리셨지.


그 말도 들을 수 있었어.




방이 따뜻하네?






방이 따뜻하네?






그렇게 도시던 그 할머니는 어느 순간 그 찢어진 정짓문 사이로 내 눈 높이에 맞추어 앉아 계시는 거야.



그 뀅한 눈으로 나를 마주 쳐다 보면서................




얼마나 놀랬는지 몰라 
내가 그때 떨어트린 간덩이를 아직도 수습 못했거든.  잉 잉.

그런데 그렇게 할머니 귀신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입으로 말하지도 않는데 머리속에 말이 울리는 거야.


내집 부순게 니놈이구나?


난 짐도 다 놔둔 채 빗속으로 뛰어 나갔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마을 쪽으로 달렸지.

달리다 저수지 건너 내가 낚시 하던 쯤에 왔을 때였어. 꼭 그놈의 망할 호기심이 문제야. 사슴이 포수한테 왜 잡히는 줄 알아? 사슴은 도망가다가 꼭 한 번 멈춰서 뒤돌아 본다고 해. 얼마나 쫓아왔나 하고 말야. 포수는 그때를 안 놓치고 총을 쏴 사슴을 잡는다고 해.

내가 그 사슴 꼴이었음.

뒤 돌아 보니 어느덧 나온 그 할머니가 마당 끝에서 저수지 건너 있는 날 보고 있더라구. 그러더니 빙글 옆으로 돌더니 마당을 가로 질러 길을 따라 날 무서운 속도로 쫓아오는 거야.

진짜 무서운 건 뛰거나 달리는게 아니라 길위를 스키 미끄러지 듯 스르르 미끄러져 빠른 속도로 내게 다가오는 거야.

그 때 부터는 내 정신이 아니였어. 난 젖먹던 힘까지 짜내어 마을 쪽으로 비탈을 달려 내려 갔어. 중간에 한번 360도 회전하며 넘어져 크게 굴렀지만 내 몸이 다쳤는지 살필 새도 없었지. 나중에 보니 무릎이 찢어졌는데 그때 생긴 상처가 아직도 남아 있어.

그렇게 뛰어 드디어 산 바로 밑 마을의 끝집에 도착을 하고는 그집 마당으로 뛰어 들면서 엎어지며 살려 달라고 소리 질렀어. 그리고 길을 보니 내가 내려온 길에 그집 마당이 훤히 보이는 위치에 그 할머니가 서서는 무서운 눈으로 날 쳐다보고 서 있는 거야.

그때 마침 방 안에서 인기척 소리가 들리며 불이 켜졌고 어떤 노인 한분이 나오셨고, 날 쳐다보던 그 할머니는 소리 없이 그 순간 사라졌어.

방에서 나오신 노인은 크게 놀라시며 날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셨어. 나중에 말씀 하시는데 내 모습이 귀신에 가까웠다고 하시더라구.

방에 들어가니 비슷한 연배에 할머니 한분이 놀라며 날 맞아 주셨지. 아마 두분 노 부부만 사시나 보더라구. 그리곤 자리에 털썩 주저 앉은 내게 냉수 한사발을 가져다 주셨어. 난 냉수를 단숨에 들이킨 후 숨을 고르고는 내가 겪은 일들을 얘기 드렸어.

처음엔 왠 젊은 놈이 정신 나간 소릴 하나 하시던 노인 분도 내가 그 할머니 용모를 얘기하자 크게 놀라시며 그러시는 거야.


"오메....서산댁 아주머니가 아직도 안 가시고 그 집에 계시나 보구먼."


그리고는 그 노인 분은 그집 얘기를 해 주시기 시작했어.

원래 그 집엔 할아버지가 중학생일 무렵 뭍에서 시집와서 터를 잡으신 노인분 보다 열 몇살 연장인 부부가 살고 있었다고 하더라구. 그리고 부부는 열심히 일해서 자식들도 셋이나 낳고는 행복하게 잘 사셨다고 해.

그러다가 큰 애가 초등 학교에 들어갈 무렵 이 아저씨가 바람이 났던 거야. 그리고는 모아 두었던 재산을 다 들고는 처 자식 다 버리고 뭍으로 도망을 가셨다고 해.

혼자 남으신 아주머니의 고생은 말이 아니였다고 해. 조그만 산을 일구어 만든 밭에서 억척스레 일을 하고 마을 일이나 고기따는 일 등 돈이 되는 일이면 뭐든 해서 3남매를 키우시고 다 장성시켜 뭍으로 공부 보내고 시집 장가 다 보내시고는, 같이 나가 살자고 하는 자식들 말도 다 뿌리치곤 그집에서 홀로 여생을 보내셨대.

말씀은 안 하셨지만 남편과의 추억이 서린 그 집을 버리지 못 하신 거 같다고 하시더군.
평생 그 집에서 남편을 기다린 거지.

그런 할머니와 한 동네에서 오랜 동안 사셨던 노인 부부는 자주 할머니 집도 들여다 보고 먹거리도 나눠 드리고 하셨었나 봐. 그러다가 내가 그 섬엘 가기 몇년 전에 며칠 외딴집 할머니가 안 보이셔서 어디 편찮으신가 걱정이 된 할아버지가 집에 찾아 가보니 홀로 안방에서 주무시다 돌아 가셨던거야.

그뒤 뭍에 있던 자식들을 급히 불러 장사를 모셨다고 해. 그리고는 그 집은 재산 가치도 없고 누가 들어와 살 사람도 돌볼 사람도 없었기에 그대로 폐가로 방치 되었던 거지.

그리고 내가 피신했던 그 집이 어찌 보면 할머니껜 은인네 집 이라고 할 수도 있고 많이 고마웠던 집이였던 거야. 노인 분이 할머니 살아계실 때 많이 도와드렸고 시신도 발견 해주고 장례도 많이 도와주고 그래서 내가 그 집으로 들어가자 차마 더 해꼬지 하진 못한게 아닌가 생각해.

그 집에서 밤을 새우고는 아침 일찍 노인 분과 함께 그 집엘 갔어. 노인분이 집을 살피는 동안 난 짐을 챙기고 낚시도 걷었지. 그리곤 노인이 향 하나를 피워 방에 놓으시며 그러시더라.

"아주머니, 뭔 한이 그렇게 많아 아직도 못가고 그러신다요. 다 잊고 빨리 좋은데 가소"

그러고는 돌아 오는데 난 노인을 놓칠새라 바짝 붙어 따라 내려 왔어. 그리고 손님 그냥 보내면 안 된다고 차려 주시는 아침 감사히 잘 먹고 인사 드리고 왔지.

그런데 그게 끝이였음 좋았을 껀데 끝이 아냐.
외딴집 할머니께서 날 따라 뭍으로 출장을 나오셨거든.

다음에 다시 얘기할 기회가 있으면 이 얘긴 그때 해 드리죠.




글 쓴다는 게 정말 만만한 일이 아니네요. 엽호판에 좋은 글 올려 주시는 작가 분들께 이 기회 빌어 다시 한번 감사 드려요. 전 아무 불평 불만 없이 너무 고맙게 잘 읽는 독자이오니 재미난 얘기 많이 부탁 드려요.


전 이만.........뿅~~~~~


[출처] 네이트판 | 갓서른둥이 
________________________


잘 마무리 됐을 줄 알았는데 뭍으로 출장을 나오시다니
남편분 찾으러 나오신걸까 뭘까 ㅠㅠ
그건 내일 같이 보도록 하자 ㅎㅎ

그나저나 정짓문이란 말 들으니까 재밌네
정지는 부엌의 사투리거든
난 그냥 경상도 사투리인줄 알았는데 꽤나 여러 지방에서 사용하는 거더라. 강원도,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까지... 알고 보니 경기도랑 제주도만 빼고 다 쓰는 거였어 ㅎㅎ 그러면 오히려 부엌이 소수 언어 아닐까 ㅋ

암튼 날 추운데 옷 잘 여며 입고
손 깨끗이 씻고
요즘은 귀신보다 전염병으로 인한 혐오가 더 무서운 것 같아
치사율도 낮고, 젊은 사람들은 그냥 감기나 마찬가지니까 너무 큰 공포감을 조성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어. 물론 내가 걸리는 건 걸리는 거라도 취약한 어르신들이나 아가들한테 옮으면 안되니까 조심하도록 하자.
불필요한 혐오를 더 조심하도록!

그럼 잘 자고 내일 또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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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필요한 혐오를 더 조심하자에 공감. 남을 향한 비난과 분노는 꼭 내게 다시 돌아온다는걸 옵몬스 스토리에서 많이 본거같은데~ 뭍으로 출장나온 그분을 또 기다려 봄세^^
다음글 올려주시고 주무세요 제발~~
역시 옵몬님!! 재미나게 읽었어요 또 어찌 기다려야 하나요?ㅠㅠ 어여 2탄 올려주세요~~
다음 궁금해요ㅠㅠ
난 요즘 콧물감기 때문에 훌쩍거리는데 코로나로 오해받을까봐 엄청 눈치보고있음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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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날이 춥다. 다들 감기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 요즘같은 때는 재채기만 해도 주변 사람들이 흠칫하곤 하니까 그래서 나같은 만성비염은 힘들다..ㅎ 귀신썰을 보다 보면 집중해서 재채기도 들어가니까 재채기 방지용으로 오늘도 어제 이야기 이어서 가볼까? 같이 보자! _______________________ 지난 편에 얘기 했듯, 마을 끝집 할아버지 댁에서 시골 밥상 정식을 먹은거야. 머슴밥 이라 부르는 백두산 만큼 높은 고봉밥에 마당 한켠에 심으신 상추며 각종 야채에 장아치와 젓갈류 생선찌게까지 너무 맛있게 싹싹 비우곤 할머니께서 건네 주신 숭늉까지 다 비우고는 할아버지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섰어. 고기 바구니엔 아침에 다 놓아주려다 어탁에 급욕심이 생겨 가장 큰 월척 3마리만 담아왔지. 배를 타러 가선 하루 두어번 밖엔 다니지 않는 배를 기다리며 끔찍했던 지난 밤을 떠올리자 진저리가 쳐지더라구. 이른 시간이지만 육지로 나가는 사람들도 제법 모이고 이윽고 배가 도착 했어. 배에 오른 후 출발을 하자 이제 다 끝났다는 안도감이 드는 거야. 그렇게 배가 출발 하고 얼마를 달렸을까? 불길한 느낌이 엄습 하면서 피할수 없는 그 분이 찾아 오셨다? 그래...배멀미 라는 그 고약한 분 말야. 올때 그리 고생 하고는 무슨 닭대가리처럼 넋놓고 있었던 거지. 키미테도 준비 안하고..... 난 화장실로 달려가서는 아침에 먹은 시골 밥상 정식을 하나 하나 되짚었어. 요건 상추.....요건 생선찌게....요건 조개젓....어라? 이 희끄무리 한건 뭐지?....맞다 너숭늉 이구나? 하며 말야. 내가 교회에 다니지도 않는데 말야. 변기 부여잡고 울면서 아주 처절하게 통성 기도를 했다. 아주. 그렇게 한참을 영혼까지 쏟아 내고는 좀 찬 바람을 쐬면 나을까 해서 갑판으로 나왔지. 갑판엔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었는데, 비바람이 휩쓸고 간 뒤라 그런지 파도도 높았고 날도 잔뜩 흐려 있었어. 그리고 사람들도 하나도 나오지 않고 선실에 들어가 있어 그 넓은 갑판엔 나 혼자 을씨년스럽게 서 있었어. 바람을 맞으니 좀 났더라구.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 였어. 담배 한대 태우고 들어 가려고 막 담배에 불을 붙일 때 였지. 갑자기 내 뒤에 있던 선실로 통하는 문이 끼익!~ 하고 지 혼자 열리는 거야. 그러더니 내가 놀라 바라보는 사이 서서히 닫히더라구... 문이 덜 닫혀 있다 배가 흔들리는 바람에 문이 열린게 아니냐구 하실지 모르지만 절대 그건 아냐. 왜냐면 그 문 위쪽엔 문이 열렸을 때 놓으면 자동으로 닫히게 하는 여러분도 많이 보셨을 그 ㄱ자로 생긴 팔 같은 장치가 달려 있었거든. 이런 문 열어 본 사람은 알잖아? 그게 꽤 힘주어서 밀어야 열린다? 그래도 그때까진 별 대수롭지않게 생각 한거야. 그럴수도 있지....하고 말야. 그리고 다시 돌아서서 바다를 바라보며 담배를 피웠지. 그때 이상한 기분이 드는거야. 꼭 누군가가 날 쳐다보고 있는 거 같은 느낌말야. 난 황급히 주위를 둘러봤지만 당연히 아무도 없었어. 찝찝한 기분이 든 난, 얼른 담밸 끄고는 선실로 들어왔어. 문은 내 생각대로 신경써서 잡아 다녀봐도 꽤나 빡빡 하더라구. 그런데 내가 객실로 들어오며 놓은 문은 천천히 닫히다가 갑자기 뒷사람이 잡은것 처럼 3초정도 멈추는 거야. 그러더니 다시 천천히 닫혔지. 왠지 불길한 예감을 지울수 없었던 나는 그 뒤, 사람 많은 객실에 앉아 육지에 도착할 때까지 담배도 화장실도.........참았어~ 그렇게 몇 시간을 달려 배는 육지에 도착 했고. 난 곧장 서울에 있는 내 자취방으로 올라왔어. 난 그때 서울에 내가 휴학 했던 학교서 20분 정도 떨어진 원룸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거든. 원래 대학을 간신히 인 서울 하면서 부모님이 원룸을 하나 얻어 주셨었는데 군대가며 방을 뺏다가 제대 후 집에 있기가 너무 지루해 복학 준비와 공부를 핑계로 방얻을 돈을 받아 서울로 올라 온거거든. 대신, 아직 복학 전 이므로 집세와 용돈은 내가 벌어 쓰는 조건 이었어. 난 집세와 각종공과금 통신료및 내 용돈...그리고 내 유흥비를 벌어야 하는 일과 돈의 노예 생활을 일찍 시작한거야. 그렇게 집에 도착해서는 화장실 겸 샤워실에 손빨래 때 쓰는 빨간 다라이에 붕어를 풀어 주곤 샤워를 하고 친구에게 전화 했어. 그 섬이 고향인 친구말야. 전화를 받은 놈의 목소리는 오후가 되었는데도 술에 찌들어 있었어. '' 엽때여?~~'' ''미친 ㄴ, 아주 대한민국 술 다 퍼 마시고 죽기로 작정했냐? 그깟 실연 한번 한 거 가지고 아주 쌩쑈를 하네'' ''엉엉...니가 사랑을 알어?   꽃게 쑝끼야? 엉엉'' 하긴...나도 군대에서 이별 하잔 얘기듣고 무장탈영 심각하게 고민 했었긴 하지. ''궁상 그만 떨고 나와. 위로주 한잔 살께. 할 얘기도 있고...'' 좋~텐다! 그렇게 우린 자주 가던 단골 삼겹살집에서 만나기로 하고는 옷을 입으러 방에 들어 갔어. 우리집이 분리형 원룸 이었거든. 방에 들어간 나는 또 한번 놀라게 돼. 난 항상 옷을 벗으면 침대 가운데 벗어 놓는 버릇이 있어. 그런데 내 옷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거야. 상식적으로 침대 가운데 있는 옷이 미끄러 떨어질 리 없잖아? 난 오싹함을 느끼고 서둘러 옷을 입고 집을 나섰어. 그리고 찝찝한 기분으로 약속 장소에 갔다? 이미 와 있는 친구는 벌써 소주 반병을 혼자 까고 있었고 우린 일단 놈의 떠나간 그녀를 안주 삼아 술 한병을 비우곤 화제를 바꿨어. 난 내가 경험한 얘기들을 침을 튀기며 풀어 놓았고, 내 얘길 들은 놈은 대충 믿어주는 분위기 였어. 그전에도 내겐 그런 일이 꽤 많아 놈도 날 귀신 친구쯤으로 알고 있었거든.ㅋㅋㅋ 그리고 놈은 마을 끝집 할아버지네도 저수지 폐가 할머니네도 어려서부터 봐와 잘 알고 있더라구. ''그런데 서른둥이야! 그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간혹 오는 자식들에게 항상 그러셨대. 자기 죽더라도 아버지가 언젠가 돌아오시면 잘 알아보시게 집, 절대 고치지 말고 잘 보존 하라구 말야! 근데 할머니 돌아 가시구 한 두해 뒤에 그 뭍으로 도망간 할아버지 소식이 풍문에 들렸는데 도망가고 얼마 안가서 할머니 보다 훨씬 먼저 사고로 돌아가셨대. '' 마음이 엄청 안 좋더라구. 그래도 남편이라고 평생 기다리시고 죽어서도 못 떠나고 기다리신다 생각하니 말야. 그렇게 뭔가 먹먹한 맘으로 한잔 진하게 빨고 있는데 친구들에게 전화가 온거야. 늘 뭉쳐다니던 얘들이라 우리가 있는 곳으로 불렀지. 그렇게 새로온 친구 2명이 합세 하여 우린 소주 파~~뤼를 벌리고는 2차를 가기로 했어. 실연 당한 친구를 위로 한다는 숭고한 우정을 빙자해서 나이트란 정글로 사냥을 떠나기로 했다? 모두 외관은 멀쩡한 놈들이라 그런 저런 대충 그런 곳 가면 먹어는 줬거든. 그렇게 모 나이트를 가서 기본시키고 스테이지 나가 몸을 풀며 수질 검사(?)를 시작했는데, 그날 따라 물이 진짜 안 좋은거야. 여자들 미모가 어쩐다는게 아니라 전부 쌍쌍이 놀러온 건전한 커플들이었어, 우린 그걸 똥물이라 하지..... 우린 누가 나이트 얘기 꺼냈냐며 궁시렁 거렸어. 니 탓이오, 니탓이오 니 큰 탓이로 쏘이다~~~~~ 그렇게 낸 돈이 아까워 밍기적 거리고 있는데 서광이 비추더라구. 어쩜 맞춤 옷처럼 딱 4명의 레이디들이 들어 온거야. 야시꼴러리한 화장과 잘 빠진 몸매...... 그리고 몸의 반 이상은 절대 가릴 수 없다는 의지가 돋보이는 헐벗은 옷차림은 그들이 범상치 않음을 말해 주더군. 딱 봐도 거칠게 노는 언니들이었어 ^^ 솔직히 남자들 뒤에서 욕해대도 그런 언니들 좋아한다? 내 여친만 아니면 말야. 그리고 얼마안 가 그 나이트에 있던 외로운 늑대 무리 중 그나마 상태가 가장 좋았던 우리와  그 언니들은 자연스럽게 어울렸지..... 그것도 그녀들 중 가장 헐벗고 섹쒸한 누님이 날 찍었네? 난 김칫국을 마구 퍼 마신거야. 앙~~~나 오늘 집에 못들어 가는 거? 아버지가 남자는 밥은 밖에서 먹어도 잠은 꼭 집에서 자야 한다셨는데 어쩜 좋아~~~ㅎㅎㅎㅎㅎㅎ 하면서. 우린 무대로 나가 춤을 췄어. 뭐 그쯤 되면 거의  짝짓기 춤 아니겠어? 랄라라~~~~~ 그런데. 그런데. 춤에 열중하고 있던 내 눈에 너무도 이질적인 모습이 보이는 거야. 무대 가장자리에 있는 기둥 뒤에 모습을 반쯤 가린 흰..무늬 없는 무명 한복 차림의 할머니의 모습. 그리고 내쪽을 무섭게 째려 보고 있던 흰자위 많은 두눈...... 처음엔 별 의심이 없었어. 속으로 '응? 왠 할머니지? 가출한 손녀 딸 잡으러 오셨나?' 했거든. 하지만 그 할머니 모습을 자세히 관찰하곤 사지가 부들 부들 떨려 오는 거야. 그래 맞아. 섬에서 봤던 그 할머니 였어........ 난 할머니 모습을 확인 하자 너무 공포스럽더라구 ㅜㅜ 그래서 가장 거칠게(?)놀 거 같은 언니를 팽개치곤 허겁지겁 자리로 돌아왔어. 뒤에서 황당하단듯 따라오며 궁시렁 거리는 언니의 말이 들렸지만 이미 아웃 오브 관심 이었지. 자리로 돌아와 바로 친구 녀석을 잡아 끌고는  어리둥절해 하는 녀석을 방패 삼아 할머니가 목격된 그곳으로 가봤어. 물론 있으면 얘기가 안되겠지? 난 홀안이 너무 시끄러워 친구를 데리고 화장실로 갔어. 안 마렵다고 앙탈을 부리는 녀석을 억지로 끌고 말야. "미친나?  갑자기 왜그래???" "야!!.... 나 봤어. 그 할머니......" 녀석이 첨엔 무슨 소린지 몰라 어리둥절하다가 곧 내 말뜻을 알아차리곤 심각한 낯빛으로 말하더라구. "진짜?" " 아~~몰라.  너무 무섭다 나가자" 다 잡은 고긴 어쩌냐구 투덜투덜 입이 10리는 튀어나온 친구를 데리고 우리 먼저 간다 하고는 온갖 욕을 들으면서 나왔다? 그 와중에도 날 보고 물귀신 같은 놈이라며 꿍시렁 대는 친구녀석. 아우....몇 시간전만 해도 이별의 아픔에 몸부림 치던 녀석이.. 나도 사내지만 말야.... 사내들 이란. 아까우면 내가 더 아까우니 잡솔 집어치고 술이나 한잔 더 하자며 집에 간다는 녀석의 멱살을 잡고 끌어 술집에 가서는 정말 떡이 되도록 마셨어. 조금전까지만 해도 이 섹쒸한 언니가 오늘밤 채찍 들지도 모른다고 놀라운 경험 하는 거 아니냐며 행복한 고민중 이었는데 말야ㅠㅠ 대부분 술마시면 간이 주체할 수 없이 부어 오르잖아? 그냥 어디 찜질방에라도 들어가던 친구 자취방에 같이 가던 그랬어야 하는데, 무식한 용기가 생겨 넌 너네집으로, 난 나의 집으로 한거야. 집에 도착해서는 계단을 올라 집에 갔어. 3층 이었거든. 한참 비틀 거리며 열쇠를 꺼내 문을 따곤 들어갔지. 우리집이 분리형 원룸이라 그랬잖아? 집 구조가 현관을 지나면 부엌과 화장실이 있고 미닫이 문이 있어. 그 뒤가 방이고. 그리고 현관 바로 옆에 불을 켜는 스위치가 있거든. 난 현관을 열고는 언제나처럼 버릇으로 스위치 부터 켰어. 그런데 불이 안 들어 오는 거 있지? 아까 나갈때 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불이 안 들어 오는 거야. 그런데 현관밖에 있는 움직이면 켜지는 낮은 촉수의 센서등 불빛에 실내가 희미하게 보이는데, 미닫이 문이 열려 있었어. 난 단언컨데 항상 미닫이 문을 닫아 놓고 다녀.  어떠한 일이 있어도. 그리고, 방안 창문쪽에 사람같은 하얀 물체가 서 있었어. 술이 확 깬다는게 그런 느낌이더라구. 아주 순식간에 헤롱헤롱에서 완전 멀쩡한 상태가 되더만? 사람의 생존 본능이란 참 신비로와 . 그치? 그때 난 알았어 그게 그 할머니란 걸......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그게 쓰윽~ 내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어. 난 현관문을 꽝 하고 닫곤 문도 잠그지 못하고 미친듯이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왔어. 내려오다가 1층 다 내려와서 계단에 엎어지기까지 했어. 다친 무릅에 또....젠장!! 아픔을 생각할 여유도 없이 벌떡 일어나 미친듯 달려 건물을 나왔다? 그리곤 친구네 자취방을 향해 졸나게 뛴거야. 꽤 멀리 뛰었는데 따라오는 기색이 없자 급 취기가 다시 돋아 심장이 미친듯이 뛰더만. 잠시 멈춰  숨을 고르며 내 방을 쳐다보는데 내 방안에 서서 날 쳐다보고 있는 그 할머닐 멀리서 확인할 수 있었어. 어쩌겠어? 비명을 지르며 또 뛰었지 뭐. 간신히 친구 집에 가서는 자초지정을 얘기 하고는 친구집에서 잤어. 잠도 안 오더라구....  ㅠㅠ 그렇게 거의 뜬눈으로 밤을 세우고는 다음 날도 너무 무서워서 집엘 가지도 못하고 있다 또 친구 집에서 잤어. 인젠 피로가 몰려 오니 잠이 쏟아 지더라구. 근데 자도 문젠거야. 그 분이 꿈속으로 찾아 오시네? 그때 부터 가위가 눌리기 시작 하더라. 그렇게 꿈에 시달리다 날이 밝은 후 친구와 함께 집엘 갔지. 가기 싫었지만  갈아 입을 옷도 좀 싸와야 하고 문 단속도 안 되어 있고 말야. 집에 가서 문을 여는데 집안에서 썩은내가 나는 거야. 빨간 다라에 넣어둔 붕어들이 튀어나와 자살을 한거지... 내 어탁  ㅠㅠ 치우고 청소하고 옷도 좀 챙기고 했어. 물론 친구에겐 내 시선에서 벗어나면 오늘이 니 제삿날이라고 협박해서 날 졸졸 따라 다니게 하고..^^ 그렇게 집 정리를 하곤 문 단속 후에 다행히 아무일 없이 나올 수 있었어. 그렇게 친구집에서 1주일, 너무 오래 있기가 염치 없어 찜질방에서 1주일을 보냈는데  매일 가위에 눌리고 여러번 할머니 귀신과 원치않는 조우를 하게돼. 그중 가장 무서웠던건 알바중에 급똥 신호가 와서 화장실을 갔는데, 대낮 이라 방심 했는데, 한참 힘주고 있는데 이상한 느낌이 나서 위를 보니, 할머니가 옆칸에서 고갤 내밀고 날 째려 보고 계셨던거야 ㅠㅠ 심장 멎을뻔 했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때 심장,간 다 떨어질 뻔 했잖아?~~ 아마 들에서 싸고 있었으면 그 위에 주저앉았을껄? 난 비명을 지르며 밑도 닦지도 않고 옷도 제대로 못 추리곤 옷을 부여잡곤 뛰어 나갔어. 딸랑 딸랑 거리면서 말야 ^^ 문밖에 아무도 없었길래 망정이지 같이 알바하는 여학생 이라도 마주쳤으면..... 정말 끔찍하다. 졸지에 변태 화장실 바바리맨될 뻔 한 거 있지? 그렇게 한 2주를 시달리다 보니 살이 쪽쪽 빠지는 거야. 그리곤 결심 했지. 이대로 살수는 없다 하고. 그러고 있을 때 마침 전화가 한통 왔어. 춘천 이모.... 모두들 주위에 친한 무속인 한분씩은 다 있잖아? 이거 왜 이래? 무당 친구 하나도 없는 사람들 처럼. 내게도 그런 분이 계셔. 원래 고향이 춘천 이시라 내가 춘천 이모라고 부르는 분 이야. 우리 어머니 보다 2살이 위 이신데 호칭은 이모인데 울 엄마랑은 하나도 안 친하다? ㅋㅋㅋㅋ 서울에서 무업을 하시는 분이야. 내가 보긴 엄청 용하셔. 내가 아는 모든 무속인중 짱 이시지. 근데 왜 그런 일이 있는데 미리 연락 안 했냐구? 그때 이모가 많이 아프셨거든. 무속적으로 관계된 게 아니라 의학적으로 아프신거라 이모도 어쩔 방법이 없이 투병 중이셨거든. 그런 이모께 차마 걱정을 끼칠 수가 없었어. 나 착하지? 근데 그런 이모가 어찌 아시곤 전화를 주신거야. "이모, 몸은 좀 어떠세요?" "그만 그만 하다....그런데 갓서른둥이야!  너 무슨 일이  있지? 니가 자꾸 꿈에 나와,,,어떤 할머니랑 같이...." 난 깜짝 놀랐지만 그땐 말 안할 수 없었어. 내 코가 석자 였거든. 난 일 끝나면 찾아 뵙고 말씀드린다고 하고는 퇴근하고 과일 좀 사들고 이모댁을 방문했어. 이모는 누워 계시다가 날 보시자 힘겹게 일어나 앉으셨어. 그러시며 내 얼굴을 보시고는 다 알겠다는 듯 이런................쯧쯧쯧  하시며 혀를 차시더라구. 난 이모께 그간의 일들을 소상히 얘기 했지. 이모께서는 집에 집착이 엄청나게 강한 혼인데 니가 그 집에 해꼬지를 했다고 생각하고는 너 따라 다니는 거다. 원래 귀신은 생각이 단순해서 뭔갈  하나 생각 하면 거기에 집착을 한다 그러시더라구. 부적을 하나 써 주시면서 항상 몸에 지니고 있으라 말하시면서 내가 몸이 이래서 널 따라가 도울수가 없구나. 하시며 이건 니가 풀어 드려야 한다 그러시더라구. 그러시면서 니가 할수 있는 최선을 가지고 진심으로 사과 하여야 한다셨지. 찜질방에 돌아와 늦게까지 내가 사죄할 방법을 찾았어. 그날 밤은 부적 때문인지 정말 보름만에 가위에 안 눌리고 편안히 잘 수 있었어. 그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친구 집으로 쳐들어 가서는 학교 가야된다는 녀석에게 하루 결석이 중요하냐 친구가 중요하냐를 강제로 선택 하게 하곤 같이 그 섬엘 갔어. 물론 할머니도 보이진 않지만 따라 오셨겠지. 이번엔 준비 단단히 했다 진짜. 밥도 굶고 키미테도 붙이고.  우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젠장, 빈 속이면 멀미를 더 한단 사실을 몰랐어. 빈속이랑 키미테랑 퉁쳐 버리고 난 항상 언제나 일관성 있게 또 변기 부여잡고 또 통성 기도로 내 영혼을 하얗게 불태웠어.ㅠㅠ 섬에 반 주검이 되어 도착한 후 친구 집에 가서는 인사를 드린 후 밥을 먹었어. 멀미가 참 신기해. 땅만 밟으면 멀쩡해지더라? 그리곤 그 폐가를 갔어. 가는 길에 끝집 할아버지 댁에 가서는 인사도 드리고 할아버지를 모시고 폐가에 간거야. 죄송하지만 할아버지는 내겐 살아 계시는 부적이자 최후의 방어선이였거든. 우린 친구집에서 들고 온 여러가지 연장을 들고 폐가엘 갔어. 그리고 끝집 할아버지가 어디서 구해다 주신 중고지만 멀쩡한 문으로 새로 부엌 문도 만들어 달고, 할아버지가 지켜주시는 가운데 방청소도 하고 장작할 나무도 줏어다가 쌓아 놓고 들고간 낫으로 마당의 풀도 정리 하고 정말 열심히 집수리를 했어. 그리곤 다시  할아버지가 방에 피워 놓으신 향앞에서 절을 올리곤  죄송하다며 사죄를 드렸지. 그리고 들은 할머니 남편 얘기도 해 드리고 이미 오래전에 할머니 보다 먼저 저승에 가셨으니 인제 기다리지 마시고 좋은데 가시라고 친구와 할아버지와 함께 마지막 절을 드리곤 나왔어. 돈은 절대 안 받으신다는 할아버지께 가게로 가선 소주 댓병 몇 병을 사선 반주 드시라고 드리니 참 좋아하시더군. 그리고 친구집에서 밥을 먹고 마지막 배를 타고 나왔어. 일이 잘 끝나서인지 아니면  대비를 잘한건지 나오는 뱃길엔 그리 멀미가 심하지 않았어. 그리고 그날밤 할머니가 꿈에 나타나셨어. 처음엔 목소리만 들렸어. 내게 그러시더라구 부적 때문에 갈 수가 없다고 부적 좀 치워 달라고 부탁을 하시는거야. 그리고 깼는데 망설이다가 난 부적을 책상 서랍 깊숙히 치워 놓았어. 나로선 크게 모험을 한건데 내게 들린 목소리가 더 없이 따뜻했거든. 다시 잠들었는데 이번엔 그 할머니가 꿈에 나타나셨어. 그런데 그 무섭던 표정이 우리 할머니처럼 인자하게 변해 있었고 좋은 한복을 입으시고 오셨지. 내게 그동안 괴롭혀서 미안하다 하시며 자긴 이제 가야할 곳으로 떠날꺼니 잘 있으라 인사하며 가셨어. 난 깨서는 더 이상 부적이 필요 없겠구나 했어. 그리고 집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고, 그 뒤엔 한번도 그 할머니를 꿈에라도 뵌 적이 없어. 좋은 곳에 가셨겠지? 다음엔 춘천 이모와의 인연에 대해 얘기 할께요. 이모가 나 살려주신 얘기도요.^^ [출처] 네이트판 | 갓서른둥이 _________________________ 어휴 할아버지는 먼저 돌아 가셨구나 ㅠㅠ 그것도 모르고 할머니는 계속 기다리셨던 거였고 처자식 버리고 떠난 분이 어찌 그리 그리우셨던 걸까 너무 안쓰럽네.. 부디 이젠 좋은 곳에 가셨기를. 다들 감기 조심하고, 손 잘 씻고 남한테 침 뱉지 말고 침 맞으면 바로 씻고 ㅎㅎ 괜히 사람을 미워하진 말자 잘 자고!
퍼오는 귀신썰) 사촌오빠 친구썰 1화
안녕! 오늘도 어쩐지 그다지 춥지 않은 밤이네 이번 겨울은 정말 생각보다 따뜻한 것 같아 초반엔 얼마나 추울까 한참 겁먹었더랬는데 겁먹은게 머쓱ㅋ 제주도는 벌써 유채꽃도 폈다며? 그야말로 공포미스테리네... 조금이라도 추위를 느낄 수 있도록ㅋㅋ 오랜만에 시리즈물 가져와 봤어 한동안은 이걸로 같이 달려 볼까? ________________________ 나를 소름끼치게 만든 사촌오빠 친구 (1) 자랑도 아니고, 믿어달라고 할 만한 말도 아니지만, 나랑 우리사촌오빠는 영감이 좀 있음. 오빠는 나보다 좀 뛰어난 편임. (나랑 나이 차 3살) 제목은 분명히 우리 사촌오빠 친구 이야기 이지만, 그 사람에 대해 얘기 하려면 일단 우리 둘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 할것 같아 우리 얘기부터 시작하겠음. 우리 둘이 어렸을 떄 부터 예를 들어 주겠음: 내가 유치원생일 때 쯤인가 하여튼 어렸을때 추석에 온 가족 다 모이면 우리 둘은 항상 제삿상 앞에서 울음을 터뜨렸음. 나는 잘 기억이 안나는데, 하여튼 외숙모 말로는 어른들이 달래도 달래도 소용이 없어서, 매번 도대체 왜 우냐고 물어보면 둘이 동시에 "저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누구야!" 라고 비명을 터뜨렸다고 했음. 특히 오빠는, 조금 더 컸을 때에 성묘를 데리고 갔는데 갑자기 허공에다 대고 절을 막 해대서 삼촌들이 옆에서 잡초제거 하다가 너무 무서워서 한동안 못 하셨다고 하심ㅋㅋㅋㅋ 처음엔 그냥 조상님 무덤이라니까 그런가 보다, 했는데, 절을 도대체 몇 사람한테 하는건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꾸벅 댔다고 함. 이건 전초전 일 뿐임. 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 가겠음. 내가 중3이였을 때에 였나, 오빠 집에 놀러갔더니, 오빠는 어디서 났는지 "화이x데이" 라는, 무슨 학교에 귀신 나오는 3D 게임을 하고 있었음. (혹시 누구 이 게임 아시나요? 그 때도 쪼꼼 오래 됀 게임이였다는...) 기억은 안나는데 당시 나에게는 그래픽이 좀 리얼했던 것으로 기억 남. 음악이 깔리니까 평소에 보던 것들이 나와도 왠지 오싹했음 ㅋㅋㅋ 오빠도 쫄았는지 어디 가지 말고 옆에 있어 달라고 나에게 부탁했음 ㅋㅋ 하여튼 옆에서 구경만 하느라 게임 내용은 자세히 모르겠지만, 학교에 주인공 학생이 갇혔는데 귀신이 미친듯이 등장 하는 스토리였음. 그리고 어떻게든 탈출 해야 함. 탈출 도중에 학교 방송실 맵에 가서 뭔 짓을 해야 하는 미션이 있었음. 3D 게임이라 마우스 휠로 시야를 막 돌릴 수 있었는데, 방송실에서 나와서 뒤로 시야를 돌리니까 왠 큰 발이 천장에 매달려 있는거임. 그 순간 등장하기엔 발이 맵에 비해 너무 컸음. 게다가 흐릿흐릿 한거임. 근데 그게 문제가 아니였음. 당시 오빠는 이 게임을 클리어 할 요령으로 무슨 성경두께 만한, 게임 클리어 법 을 인터넷에서 찾아가지고 인쇄해서 옆에다 두고 읽으면서 게임을 진행 중이였던 거임. 그 클리어법에는 언제 어디서 무슨 귀신이 등장하는지 다 써져 있었는데 방송실에서 뒤돌면 있다는 귀신 발은 없었음. 뒤돌면 벽이 피범벅이 돼 있을거란 말만 써져 있던거임. 오빠가 "어 이상하다..." 이러고 침착하게 다시 마우스 휠을 돌렸는데 그 순간 우리 둘 다 동시에 뒷목에 있는 머리카락이 빳빳하게 서는 현상을 체험 함. 게임상 시야가 마구 바뀌는데 매달려 있는 발은 왠지 그대로 있는거임. 우린 미친듯이 그래픽 에러라고 믿고 싶었음. 근데 오빠가 게임상 시야를 좀더 돌린 순간 우린 둘다 그대로 얼었음. 게임 주인공 시야가 불 꺼진 학교 복도로 돌아가서 모니터가 어두워 진 순간, 화면에 오빠랑 내 얼굴이 비쳐줬는데, 보니까 그 매달려 있는 발이 우리 얼굴 뒤쪽에 매달려 있는거임. 오빠랑 나랑 게임이고 뭐고 "으악 쉬발!!!!!!!!!!!!!!!!!!!!!!!" 마우스 집어 던지고 컴터방 밖으로 뛰어나와서 외숙모 방 텨 들어가서 이불 뒤집어 쓰고 2시간동안 못나옴. 게임분위기 때문에 안그래도 완전 쫄아 있었는데 느끼지도 못한 등장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였음 @_@ 솔직히 난 한시간 후에 답답해서 나오려 했는데, 오빠가 날 붇잡음. "가지마, 가지 말라고... 저 낄낄 대는 소리 안들려!?" 이렇게. 안 들렸지만 나보다 영감이 좋은 오빠가 그러니까 잔뜩 쫄아서 결국 2시간을 그렇게 보냄 ㅜ ㅜ)) 우리 오빠랑 나의 이런저런 경험담은 나중에 시간이 있으면 더 올리겠음 ㅋㅋㅋ 여기서 우리 사촌오빠 친구가 등장 함. 우리 둘이 이불에서 기어나온 이유는 단순히 시간이 많이 지나가서가 아님. ㄷㄷㄷㄷㄷ 떨고 있는데 누군가 벨을 누름. 오빠는 옴짝달싹도 안하더니 벨소리가 울린지 몇 초 후에 스르륵 이불을 벗어 남. 내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오빠.. 그 여자 갔을까?" 라고 물어 봤더니 "낄낄대는 소리가 갑자기 사라졌는데?" 라고 오빠가 소심하게 대답함. 우리 둘은 간신히 이불을 벗어나서, 서로의 웃도리 자락을 잡고 태어나서 현관문으로 제일 느리게 다가갔음. 오빠는 현관문에 달린, 밖에 보는 그 눈구멍?으로 밖을 확인하더니 갑자기 미친듯한 스피드로 문을 열고 밖에 서 있는 사람을 와락 껴안는거임. 난 그냥 그게 사람인게 반가웠음. 그게 바로 우리 사촌오빠 친구였음. 그런데 그 오빠는 대뜸 무표정으로 우리한테 이렇게 물어 봄: "갔냐 그 년?" 사촌오빠 친구는 우리 둘을 거실에 앉혀놓고 한심하단 투로 ㅉㅉㅉㅉㅉ 어떻게 그걸 못 느끼고 둘이 쫄아서 그러고 있었냐고 막 뭐라 그럼. 알고 보니 이 분은 바로 밑에 층에 살고 있는데 평화로운 주말에 갑자기 위에서 우당탕탕 소리가 난뒤에 조용~~해지니까 이상해서 올라와 봤는데 뭐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챘다고 함. 끼리끼리 논다더니... 난 우리 오빠를 힐끗 오빠친구를 힐끗 쳐다보면서 신기해 하고 있었음 그래도 섬뜩했던 기분이 덜 가셔서 나도 어떻게 그걸 못 느끼고 게임에 그렇게 집중하고 있었을까 나 자신을 추궁 중이였음 ㅋㅋ 내가 생각해도 참 정신이 없었음 -_-ㅋㅋ 근데 갑자기 우리 오빠한테 참 쓸데있는 게임도 한다며 뭐라뭐라 그러던 그 오빠가 갑자기 말을 끊더니 완전 짜증나다는듯이 "저기 기어다니는 건 또 뭐야" 라고 중얼거림. 더 섬찟한 건 우리 오빠가 그 말에 뒤돌아 보더니 약간 사색이 됌. 난 아무것도 안보이고 그저 왠지 바닥이 차가워 지는 기분에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남. 그랬더니 그 오빠가 갑자기 움직이면 어떻게 하냐며 자기만 보라고 하는거임. 진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였음. 분명히 뭔가 내 발목을 죄어오고 있었음. 정말 기분나쁘고 소름끼치는 더듬거림이였음. 근데 자기만 보라던 오빠 친구는 뭔가 설명할 수 없는 표정으로 내 발목 부근을 쳐다보면서 완전 느린 말투로 "다리가 없네..." 라는 거임. 으악!!!!!!!!!!!!!!!!!!!! 차라리 아무것도 안 느끼면 좋을 것을 뭔가가 날 잡고 있는 느낌에 진짜 미쳐 버리는 줄 알았음. 식은땀이 줄줄 나고 바퀴벌레+곱등이가 등을 거꾸로 타고 올라오는 기분이였음. 근데 마지막 결정타가 진짜 압권이였음. 우리 사촌오빠는 뻐끔뻐끔 거리고 있는데 이 사촌오빠 친구라는 이..이..이 사람은 완전 사악한 미소를 씨익 짓더니 우리가 2시간전에 뛰쳐나온 방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거임 그러더니 하는 말: "저기에 다리있다... 가져가라" 이러는거임!! &*(#&^*^# 아까 매달려 있던 발을 얘기 하는거임??? 이런 ㅁㅊ 정말 집에서 뛰쳐나가 버리고 싶었음. 근데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 앉아 버리고 말았음. 그 순간 컴퓨터 있는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막 났음. 아까 혼비백산해서 뛰쳐나오느라 컴터를 안끄고 나온 거임 "화이x데이" 라는 이 귀신게임 배경음악이 누가 스피커 볼륨 다이얼을 가지고 돌렸다 풀었다 하는 듯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면서 막 울려 나오기 시작했음. 가뜩이나 그 배경음악도 완전 기괴했는데 진짜 미쳐 버릴 것 같았음. 특히 음악에 귀신 비명소리 나는 부분은 가히 압권중에 압권!!!! 그러더니 퍽!!!! 소리와 함께 조용해짐 스피커가 지랄발광을 하다 터진거임. 진짜 그 후에 우리 사촌오빠 그 컴퓨터 다시는 손도 못댐 우리 오빠 게임에 진짜 환장하는 사람이였는데 외숙모한테 들은 바로는 게임이고 나발이고 컴퓨터 방에 다시 들어가지도 않음 스피커 터지고 집안이 조용해 진 뒤 몇분후에 우리는 오빠 친구 집으로 내려갔음. 기억에 난 반쯤 정신을 버리고 눈물이 나올락 말락 했음 따지고 보면 우릴 구해준거지만 진짜 이 오빠 친구랑 다시 안 엮였으면 했음. 아쉽게도 얼마 안가서 다시 엮이게 됐음 =_=ㅋ.. ----------------------------------------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귀신 앞에서 놀라거나 하면 자기 존재를 알아차려 준다고 생각하고 들러붙을 가능성이 더 높아 진다네요~ 여러분도 혹시 이런 일 있으면 조심하시길..ㄷㄷ [출처] 네이트판 _________________________ 엄청 옛날 글인데 이제야 찾았네 원본은 삭제되고 없는 글이지만 재밌어서 가져와 봤당 앞으로 한동안 이 이야기 또 같이 보도록 하자! 그 오빠 친구는 대체 어떤 사람인걸까?! 궁금하면 내일 또 봐 ㅎㅎ 잘 자고!
한국 영화 거장의 기묘한 죽음
안녕? 오늘은 마치 자신의 컬트 영화처럼 살다가 자신의 영화 속 비극처럼 세상을 떠난 거장 김기영 감독의 이야기를 짧게 해볼까 해. 봉준호 감독도 종종 자신이 영감을 받았다고 언급을 하고, 박찬욱 감독도 자신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사람으로 김기영 감독을 꼽았으며, 마틴 스콜세지 마저 김기영 감독의 작품 '하녀'에 대해 '전 세계가 봐야 할 위대한 영화다.'라고 했으니 어떤 사람인지 정말 궁금해 지지 않아? 근데 갑자기 내가 왜 영화 얘길 하냐고? ㅎㅎ 생전에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한 영화를 많이 찍으신 감독님이신 건 맞지만 영화 소개를 하겠다는 건 아니고, 지금 얘기하려는 건 마지막 순간에 대한 것. 베를린 영화제에서 열리는 회고전에 초청을 받아 베를린으로 떠나기로 한 날 하루 전, 전기합선 사고로 불이 나서 자택에서 부인과 함께 세상을 떠난 김기영 감독. 그 집에 대해 당시 지인들이 건넨 이야기들을 우선 같이 보자. 남산에서 충무로 쪽으로 내려오는 모퉁이 길이 있어요. 거기 김기영 감독 집이 있었죠. 너무너무 오래 됐는데 수리를 하도 안 하니까 중부경찰서에서 '집수리 좀 하고 사십시오' 하고 여러 번 경고를 했어요. 그런데도 손을 안 대더라고. 결국 집에 불이 나서 두 내외가 죽었잖아. - 신성일 유감스럽게도 김기영 감독은 세상으로부터 다시 조명을 받던 순간에 세상을 떠났다. 베를린 영화제로부터 초청을 받은 그는 출발을 하루 앞두고 낡은 한옥 저택에 난 화재로 사망했다. 애초에 당신 혼자만 초청 받았던 것을 부인과 함께 가는 일정이 아니면 초청에 응하지 않겠다고 고집하는 바람에 부부동반으로 일정을 재조정하는 과정에서 출발이 며칠 미뤄졌고 공교롭게도 그 지연이 죽음의 원인이 됐다. 그가 오랫동안 살았던 혜화동 저택은 전 주인이 사고사를 당했던 사연을 지닌 집이었다. 흉가라는 소문에 입주를 꺼렸던 그 집에 김기영은 그런 집이라면 나에게 더 맞는다고 태연하게 입주했다고 그와 평생 동료였던 김수용 감독은 전했다. - 김영진 <평론가 매혈기> 그 뿐 아니라 귀신이 나온다며 수군대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죽으면 고통도 없으니 얼마나 좋았겠는가. 나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태연하게 말하기도 했다지. 그럴 만도 한 것이, 나쁜 운이 피해가는 것 마냥 감독의 다른 일화를 보자면 평양에 가서 권모 선생의 조언을 얻으려고 했던 김기영은 그가 자신을 만나주지 않자 평양에 체류하면서 몇 편의 연극을 연출했다. 꽤 평판이 좋게 났는데도 여전히 자신을 만나자는 얘기가 없자 그는 직접 권선생을 찾아갔다.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예술을 하려면 돈과 운이 필요하다. 난 당신의 운이 어떤지 모르기 때문에 모스크바 유학을 권할 수 없다." 실망한 김기영은 삼팔선을 건너 돌아왔고 그 직후 남한과 북한은 따로 정부를 수립했다. - 김영진 <평론가 매혈기> 하마터면 북에 꼼짝없이 머물 뻔 했던 것이 '운을 모른다'는 거절에 남한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처럼 말야. 김기영 감독은 원래 돈을 잘 쓰지 않기로 유명했고, 영화 찍는 데만 전념했던 터라 집을 뒤늦게 구입했다고 해. 그것도 흉가라는 소문에 시세보다 싸게 구입할 수 있었던 이층집. 귀신이 있는 집이면 귀신의 취향대로 꾸며야 해를 끼치지 않는다며 집 내부를 모조리 검정색으로 칠했다고 해. 그 집에 사는 동안 영화가 다 잘 되긴 했다지만 뭐. 마지막으로 산 집은 명륜동의 오래 된 한옥이었어. 그 집 역시 전 집과 마찬가지로 흉가라는 소문이 떠돌던 곳. 실제로 이전에 살던 노부부가 함께 대들보 밑에 깔려서 돌아가셨고, 후에 살던 또 다른 부부 역시 동시에 죽음을 맞은 곳이었다고 해. 집이자 자신의 영화의 소품 창고이기도 했던 그 곳은 감독의 그로테스크한 골동품들이 가득 차 있었지. 작은 소품 하나에도 감독의 영향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대. 그 집에서 50여편의 시나리오를 썼지만, 선대의 부부들처럼 그들도 한날 한시에 세상을 떠나게 되고 많은 수의 시나리오가 빛을 보지 못 하고 불에 타 버렸어. 아래는 관련 기사 발췌. 누가 봐도 기묘한 죽음이었다. 김기영 감독 부부는 1998년 2월 5일 새벽, 명륜동 집 화재사건으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까지 미공개 작품이었던 그의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주인공 부부가 화재로 죽는 것이었다. ‘그로테스크’, ‘괴짜’. 1960년대 신문에 실린 영화 인상평부터 김 감독을 따라다니던 말이었다. 그가 전에 기거하던 주자동 양옥집은 귀신이 나오는 흉가라서 싸게 구입해 들어갔다는 소문이 있었다. 아들 동원씨는 “처음에 살던 집에 살던 젊은이가 철조망에 목이 걸려 죽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앞서 인용한 에 따르면 대학로의 집은 이미 두 차례나 노부부가 죽었는데, 대들보가 무너지거나 알 수 없는 이유로 한날 한시에 죽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새벽 2시에 달려갔다. 잿더미가 내 키보다 높게 쌓였다.” 아들 동원씨는 집이 화재로 전소된 후 ‘기이한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다 타서 잿더미가 되었는데 비닐에 싸인 문서가 발견되었다. ‘동원아 보거라’로 시작되는 아버지의 유서였다. “너무 놀랐다. 유서 첫 마디는 ‘내가 이 한옥을 사지 말자고 했는데 네 엄마가 우겨서 샀다’는 책망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그 다음이 이것이다. ‘내가 공중에 떠서 우리집 마당을 내려다 보는데 아마도 내가 죽은 모양이다. 네(동원씨)가 마당에 삼발이를 치고 땅을 파고 있는 것이 보인다.’” 김 감독이 묘사하고 있는 모습이 마당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과 너무나 똑같았던 것이다. 출처 : [단독]고 김기영 감독 유작 시나리오 ‘생존자’ 찾았다 다 타서 잿더미가 됐는데 그 속에서 발견된 유서, 아니 세상에 미리 유서를 써놨다는 사실도 너무 무서운데 자신이 죽은 후의 모습을 보고 쓴 거라니. 두 번째 집은 사실 감독도 기분이 나쁘다며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고, 주변 사람들도 다 반대했는데 부인이 마치 홀린 것 마냥 꼭 사야 한다고 우겨서 샀다는 이야기도 있더라. 더불어,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을 받았을 때 원래 혼자 가는 것이었는데 감독이 부인과 함께가 아니면 안 갈 거라며 영화제 측과 조율해서 날짜를 미룬 것이었으니... 원래대로 혼자 베를린에 갔다면 어땠을까. 그냥 요즘 김기영 감독이 재조명되고 있길래 가져와 봤어. 모르면 몰라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이상씩 사연이 있는 집에는 들어가지 말도록 합시다. 그리고 감독님의 작품들을 다들 찾아 봐도 좋을 것 같아. 그럼 조만간 다시 올게!
퍼오는 귀신썰) 사촌오빠 친구썰 8화
연휴가 시작됐군! 다들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거나 오랜만에 푹 쉬고 있거나 그럴테지 이러나 저러나 심심할 테니까 같이 귀신썰을 볼까아? 시작하자! _______________________ 존무대디가 [니들 얘기나 써 니들 얘기나] 라네요. 아무래도 한편 정도는 말을 들어야겠죠 =_=?.. 그래서, 추석도 다가오는데 어렸을때에 추석에 대한 기억에 대해서 짧고굵게 쓰기로 함! (짜잔). 제가 이런말 해도 웃기겠지만.. 전 태어나서 가위를 눌려본 적이 한번도 없음. 전 편에 등장한 호치키스 보이를 가위라고 하면 가위겠지만 그 외에는 전혀 기억에 없음. 다만, 가위랑은 다른 기억은 있음. 친가쪽이 아직 경주에 거주 하고 계실적의 무렵임. 나는 외가쪽으로는 막내이지만, 친가 쪽으로는 남자사촌과 함께 제일 큰언니/큰오빠임. 추석때문에 친가쪽 가족이 다 모였을 때에 일임. 전에도 말했다 시피, 외가쪽은 옹기종기 다 모여 살아서, 외가쪽과 함께 지내다가 경주로 내려가 친가와 같이 지낼 수 있는 장점이 있음. 친가쪽은 경주라고 하지만, 아파트가 옹기종기 들어선 곳과는 거리가 멀었음. 논이 즐비한 진흙길을 따라 좀더 들어가면 나오는, 아직도 동네 전체 집들이 옛날 기왓집/초갓집 그대로의 형태를 유지한, 그런 마을이였음. 사촌동생 2명과 나, 그리고 나랑 나이가 같은 사촌남은 워낙 철도 없었고, 동네에는 같은 또래애들도 없었던 지라, 그 오래된 집에서 걸으면 10분 거리에 있는 큰 둔덕에서 비료포대 썰매를 즐겼음. 참 철이 없었긴 없었나 보옴. 그건 둔덕이 아니였음. 무덤이였다고 함. 경주에는 한국의 유물들과 함께 옛왕족들의 무덤이 즐비해 있는데, 잊혀진 무덤들도 참 많다는 사실을 몰랐음.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친가댁에서 애들 걸어 10분 거리에 위치 해 있던것임. 집에서 떠나 작은 논길을 따라 어느정도 걸어가서 작은 숲길을 따라 들어가면, 풀만 무성하게 자란 그 곳에 그 왕릉이 혼자 쓸쓸히 있었음. 그런데 세상에 애들 눈에 그게 어떻게 무덤으로 보였겠음. 그때 작자는 겨우 초등학교 4학년이였을 뿐임. (남들보다 좀 둔하기도 했음;) 가뜩이나 관리 하나 하는 사람들도 없었는데, 앞에 묘비도 아닌것이 돌램프같이 생긴건 그냥 희안하게 생긴 돌 내지는 장식이였고, 그건 그냥 우리들의 썰매 타는 장소 였을 뿐임. 어른들이 툇마루에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에, 당시 고시생이였던 삼촌에 방에 알아 듣지도 못하는 책을 뒤척이다 심심함에 지친 우리는, 곧 어두워 지는데 나가지 말라는 어른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비료포대 한장씩을 들고 풀썰매를 타러 나감. 얼마동안 신나게 오르고 내려오고를 반복했을까, 드디어 해는 져서 시퍼런 어둠이 몰려올 떄 더 놀고 싶다는 동생들을 끌고 사촌남과 나는 집으로 돌아가려 발길을 돌렸음. 그런데 이게 왠일. 3분도 걷지 않아 끝이 나와야 할 숲길이 아무리 걸어도 끝나지 않는 것이였음.... 날은 점점 어두워 지는데, 희미하게 끝이 보이는 숲길은, 아무리 걸어도 걸어도 끝이 나질 않았음. 사촌동생들은 슬슬 다리가 아프다며 칭얼 대기 시작하는데, 사촌남과 나는 뭔가 잘못됐다 라는 기분이 슬슬 들기 시작함. 얼마나 지났을까, 여자 사촌동생이 내 손을 꼭 잡더니 갑자기 이렇게 말을 함.. "언니 아까 여기 지나간데다..." 사촌남과 나는 흠칫 했지만, 애들이 놀래서 울기라고 하면 더 골치 아파 질것 같아서, 사촌남은 암말도 안하고 나는 "에이, 아냐. 어두운데 니가 그걸 어떻게 알아. ㅎㅎ" 라고 달래주었음. 그런데 내 옷자락을 잡고 분명히 사촌동생은 이렇게 웅얼거림. "아까 저기 서있는 아줌마 분명히 지나쳤었단 말야...." 쉣. 그 말에 사촌남과 나는 계속 발길을 재촉하다 우뚝 서 버림. 동생이 말하는 "저기"를 보고 싶었지만 그럴만한 용기따윈 없었음. 그런데 더 어린 다른 사촌동생이, 잘 됐다며 길을 물어보자고 보채기 시작했음. 아무 말도 못하는 나와 달리, 사촌남은 침착하게: "어디 계시는데?" 라고 최대한 안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 봄. 그러자 애가 이렇게 대답함: "모르겠어...갑자기 안보이셔..." 쉣. 그 말에 나는 찔끔 눈물을 보이고 말았음. 그런데 사촌동생의 손을 꽉 잡고 이상한 기분에 뒤를 돌아보니까, 왠 아줌마가 서계셨음 =_= 그러나. 난 다른 것 보다 어두운게 지긋지긋 하도록 싫은 아이였음. 그래서 진짜 동네 아줌마 같이, 선하게 생기신 분이 계시길래, 나는 괜시리 긴장이 풀려서 눈물이 쪼꼼쪼꼼씩 기어나오게 됨. 이상한게 아니었구나, 싶어서... "아줌마 저희가 길을 잃어버린것 같아요"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더니, 아줌마는 어꺠를 다독여 주시더니 이렇게 말씀해 주심: "애들이 어두운데 여기서 놀면 안되지. 아줌마가 길을 아니까 따라오렴." 그래서 나는 사촌남과 사촌동생들을 양손에 잡고 아줌마를 쫄래쫄래 따라가게 됨. 내 눈에는 구세주나 다름 없어 보였음. 사촌남 역시 겁에 질렸었는지 아무 말 없이 땅을 빤히 쳐다보며 걷기 시작했고, 말은 안해도 역시 겁에 질렸었다가 긴장이 풀렸는지, 동생들도 훌쩍훌쩍 울기 시작함. 얼마나 걸었을까, 나의 구세주는 우리를 숲 입구 까지 바래다 주심, 어둠을 빠져나오는 우리는 살았다!! 라는 기분으로 한숨을 푹푹 내쉬게 됨. "자, 이제 절대로 여기서 따로 놀면 안된다. 알겠지?" 라며 아줌마는 다독여 주심. 너무 감사한 마음에 "네, 감사합니다 ㅜ.ㅜ" 라고 연신 굽신거림. 그리고 저 멀리에서 우리를 찾는 가족들의 목소리가 들려옴. "아줌마도 애들이 기다리니까 가봐야 겠다. 여기선 혼자들 갈 수 있지?" 라며 아줌마는 다른 방향으로 발길을 돌리셨음. 당연히 우리는 어른들에게 발견 되었을 때 직살나게 혼이 나고 -_- 땀에 범벅이 된 바람에 아닌 밤중에 목욕을 하고 너무 지쳐서 잠이 들게 됨. 아니, 잠이 들 뻔 했음. 집안에 "애들방" 으로 마련된 작은아랫방에 들어가서 이불에 폭 들어갔는데, 동생들은 물론 먼저 곯아 떨어져 있었음. 근데... 깨어있던 사촌남이 더듬더듬 이렇게 물어봄: "도대체 아까 숲에서 누구랑 얘기 한거야..." 그 날 밤 잠을 못잤음. 생각해보니 애들 따위는 없는 동네였는데, 애들이 기다리니까 가봐야 겠다 라며 간 아줌마는 도대체 무슨 애들한테 간다는 소리였을까? 아마도 왕릉의 주인이 우리한테 화를 낸 건 아닐까? 그런데 그 분이 구해주신게 아닐까? 커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 많은 질문이 쏟아졌음. 동생들은 그걸 기억 못하지만, 사촌남은 생생하게 기억한다고 함. -------------------------------------------- 즐거운 추석 보내세요 ㅎㄷㅎ)/ 혹시 경주에 가시는 분들 계시면 절대로 이름모를 언덕에서 썰매 타지 마세요 무덤일지도 모릅니당 [출처] 네이트판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우리는 설날인데 마침 저 때는 추석이었나 보네 ㅎㅎㅎㅎ 신기하다 ㅎ 그나저나 진짜 그런 걸까 어디 감히 내 무덤을 밟아! 하고 단잠을 자는데 깨신 왕릉 주인분이 화가 나서 애들 골탕을 먹이려는데 아주머니께서 도와 주신 거. 애들이라 아무 것도 몰라서 그런 건데 좀 봐줘요- 뭐 그런거 ㅎㅎ 암튼 이 이야기는 이게 마지막이야 아쉽지. 원래는 9화까지 있었는데 그건 퍼다 놓은 사람이 없나봐 원글은 다 삭제가 됐고... 왜 다 지워 졌는지 궁금해서 찾아 보니까 이런 얘기가 있네 쓰니가 9화까지 쓰고서 연재 중단을 하겠다며 공지를 썼나 봐 정확한 워딩은 모르겠고, 기억하는 사람이 말하기로는 귀신들은 자기 이야기를 옮기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있대 그래서 이야기를 하면 안 좋은 일이 생긴다거나 하는거지 근데 이 이야기를 쓰던 도중 존무대디가 아프기 시작해서 쓰니가 자기가 글을 써서 그런 게 아닌가 싶어서 그만 뒀다고 하더라 그렇게 말하니까 괜히 나도 조금 죄책감이 든다 진짜로 그래서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을 하긴 하지만 괜히 이런 이야기 들으면 아닌 줄 알면서도 괜히 신경이 쓰이잖아 부디 지금은 괜찮아 졌기를 많이 아프지 않았기를... 다들 아프지 말고 연휴 잘 보내도록 하자! 새해 복 많이 받아!
퍼오는 귀신썰) 사촌오빠 친구썰 7화
안녕! 나 왔어! 다들 이번 주도 잘 보내고 있을까? 곧 설 연휴가 시작이라니 올해는 설이 좀 빨라서 더 시간이 빨리 간 기분이 들어 이제 빼도 박도 못 하는 2020년이니까 ㅋㅋ 마음 다잡고 살아야 겠다 다들 기지개 한 번 켜고 같이 존무대디 이야기 볼까? _______________________ 존무대디는 고양이를 두마리 기름. 검은 고양이 두마리 일 줄 알았는데, 둘다 약간 동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누런고양이 이라고 함... 진짜 검은 고양이 아니냐고 그러니까 "내가 그렇게 무섭냐?" 라며 핀잔 줌. 미안했음... 그런 뜻 아니였는데... 근데 무서운건 사실임....ㅋㅋㅋㅋㅋ 고양이를 좋아 하냐고 물어봤더니, 그냥 대체로 동물을 좋아한다고 함. 그래서 왜 강아지는 안키우냐고 물어봤더니, 키우고는 싶은데 사소한거만 나타나도 짖어서 자기 사는데에선 못기르겠다고 함. 반면에 고양이는 뭐가 나타나도 대체로 태도가 이렇다고 함: 뭐 어쩔, 니가 내 밥줄 잡고 있는 사람도 아닌데. 그런데 사실 못키운다는 이유에는 함축적인 뜻이 담겨 있었음. 존무대디가 초등학교 3학년때 쯤인가, 좀 먼 옛날의 얘기라고 함. 그때 당시 존무대디는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시는 관계로, 친할머니/할부지 댁에 내려가서 반년 정도 생활했다 함. 그리고 그 집은 아파트가 아닌, 작은 규모의 전원주택에 가까웠다고 함. 존무대디는 어린마음에 부모님이 자기를 버린 것 아닐까... 하는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생활하기 시작했음. 존무대디는 그래서 그 집이 위치한 시골동네 이곳저곳을 탐방하면서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음. 집 뒤쪽의 언덕을 올라가다 보면, 굴곡이 많고 소나무가 유난히 많은 작은 숲이 존재 했는데, 존무대디는 시원한 바람이 부는 그 곳을 유난히 좋아 했다고 함. 그런데 어느 순간 부터 그곳에 가기 싫어지게 돼었음. 시골동네를 가신 분은 잘 알겠지만, 저런 숲이라던지, 뒷산이라던지, 주위 나무가 많은 곳에는 오솔길 주변에 무덤이 상당히 많음. 그 동네에는 유난히 주인도 없어 보이는, 무덤인지도 모르겠을 정도로 풀로 뒤덮인 무덤이 많았다고 함. 심지어 비석까지 부식돼서 정말 초췌한 모습이였음. 가끔 저녁에 언덕을 오르면 시대와 동떨어지는 한복을 입은 할아버지가 뒷짐을 지고 존무대디 옆을 스쳐 지나가는 일도 종종 있었다고 했음. 계속해서. 같은 방향으로. 존무대디는 그런 할아버지나 사람들 보다는 정말 음침한 아줌마가 있었는데, 그 아줌마를 정말 싫어 했다고 함. 가끔마다 숲을 돌아 다닐 때면, 혼자 무덤에 앉아서 잡초정리를 하고 있는 아줌마가 계셨다고 함. 꼬질꼬질한 복장에, 하나로 묶었지만 많이 헝클어진 머리. 그리고 일 하는데에 불편해 보이는, 등에 두른 아기 포대기... 다행인건 존무대디가 지나가더 말던 자기 할 일만 열심히 하곤 했는데, 존무대디는 그 아줌마가 어쨌거나 저쨌거나 싫었음. 그러던 중 어느 날, 존무대디의 심심해서 미치기 일보직전인 마음을 눈치 챈건가, 할아버지가, 읍내에 나가시더니 왠 똥강아지 한마리를 데리고 오셨다 하심. 존무대디도 어렸을때는 어린애였나 봄 ㅋㅋ 털이 노릿노릿 해서 누룽지로 부를까 하다가 밥 먹는데 기분이 이상해서 [누룽]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함. 누룽이가 자신에게 익숙해 진지 어느덧 일주일. 존무대디는 완전히 친해진 누룽이와 함께 동네를 돌아야 겠다고 생각 함. 둘은 한참을 농경지를 돌다가, 시원한 언덕을 오르게 되었음. 그 날도 왠 할아버지가, 존무대디가 가는 방향 반대 방향으로 걸어오고 계심. 그런데 이게 왠 일? 누룽이를 본 할아버지는, 그 날 처음으로 갑자기 멈춰서서 존무대디를 가만히 노려 보더니 뒤로 돌아서 더 빠른 걸음으로 다다다다다닥 하고 가버리셨다고 함. 막상 누룽이는 개의치 않아 했는데 말임. 그리고 얼마나 올라갔을까, 존무대디가 돌아가야지...라고 생각한 순간 누룽이가 어딘가에 미친듯이 짖어대기 시작했음. 존무대디가 누룽이가 짖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에는, 무덤에서 풀을 하염없이 뽑던 그 아줌마가, 소나무 뒤에서 고개만 빼꼼 내밀고 그 둘을 바라보고 있었음. 그러더니 누룽이를 보더니,  검지 손가락으로 [쉿-!] 이라는 체스쳐를 취했다고 함. 순간 기분이 나빠진 존무대디는 누룽이를 안아들고 허겁지겁 집으로 내려왔음. 내려오는 도중에도 누룽이는 존무대디 품에서 버둥거리며 뒤를 보면서 미친듯이 짖어 댔다고 함. 집에 돌아왔을때 누룽이는 뭔일 있었음? 이라고 말하기라도 하는듯이 또 하염없이 순해졌음. 별거 아니겠지, 라고 생각한 존무대디는 여느때 처럼 밥을 먹고, 씻고,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음. 그리고 자다가 굵어지는 빗소리에 얼핏 잠이 깬 존무대디는, 악-소리도 못내고 침대에서 굳어 버림. 눈을 떴을때 시야에 들어온 건- 천장에 팔과 다리를 딱 붙이고 자신을 노려보는 산속의 그 아줌마 였음. 그 아줌마는 마치 시계의 초침처럼 고개를 좌우로 왔다갔다 거리면서 존무대디에게 계속 이렇게 말했음 [너 때문에 아기가 깼다 너 때문에 아기가 깼다 너 떄문에 아기가 깼다 너 때문에 아기가 깼다] 고개는 왔다갔다 거리면서 눈은 존무대디에게 딱 맞추고 그렇게 5년 같았던 몇분동안 그러다가 사라졌음. 다음날 존무대디는 학교를 가서도 집중도 못하고 수업이 끝나자 마자 집으로 허겁지겁 돌아와서 누룽이가 무사한 것을 확인했음. 그런데 누룽이 개집에 왠 꼬맹이 여자애가 엎드려서 존무대디를 쳐다보고 있었음. 그러더니 이렇게 말함: "너 때문에 아줌마 화 났다...히히히히" 존무대디는 그 길로 혼날 걸 알지만 누룽이를 들쳐업고 자기 방으로 튀어 들어갔다고 함. 그리고는 이불을 덮어쓰고 누룽이와 꼭꼭 숨는답시고 숨었음. 밭을 매고 돌아오신 할머니 할아버지는 존무대디를 겨우 진정시키시고 결국 누룽이를 집안으로 들이는 걸 허락 하실 수 밖에 없었음. 존무대디의 얘기를 들으신 할아버지는, 집안에 있는 떡, 술, 밥, 먹을 것을 바리바리 챙기시고 존무대디와 누룽이를 데리고 문제의 언덕으로 올라 가셨다고 함. 그리고는 걷는 족족 무덤이 보일 떄 마다, 챙겨오신 먹을 것과 술을 던지시며, 종종 "여보게들, 우리 새 식구 좀 잘 봐주시게" 라며 알 수 없는 말로 흥얼 대셨다고 함. 그리고 산 정상에 올라, 무덤풀을 메던 아줌마가 서 있던 그 큰 소나무 주변에도 술을 뿌리시고는 이렇게 말씀하겼다고 하셨음: "아기가 울면 이것만큼 좋은게 없지." 하시며 들고 왔던 음식중에 약과를 살며시 내려 놓으셨다고 함. 그 때문이였을까, 그 후에 존무대디가 누룽이를 데리고 산 속에 올라도, 그 아줌마는 보이지 않았다고 했음. 그리고 존무대디 곁을 맴돌며 돌아 다니던 할아버지도 더 이상 계속해서 나타나 존무대디의 동태를 살피는 듯한 짓은 그만 두셨다고 하심. 하여튼, 일은 일단락 됐지만 누룽이 이후에 존무대디는 개를 못 키우게 됐다고 함. 그 이후에도 누룽이가 조금이라도 짖어댔던 날이면, 무언가가 나타나서 존무대디에게 "보이지? 보이지? 보이지? 보이지? 보이지?" 라며 괴롭혀댔다고 했음. 그래도 이 사람 동물 진짜 참 좋아함... 지나가다가 동네 개만 보면 그냥 지나치는 일이 없다고 함. 자기 같은 사람들에게는 특히 그런 것들이 더 많이 꼬이기 때문에 자기가 강아지를 키우면 강아지도 불행해 질것이라고 믿음. ---------------------------------- 아직 날이 밝으니까 그냥 가벼운 얘기로 썼어요 ㅎㄷㅎ) 섭섭하신 분들은.......... 원래 글 올라오는 시간 것들이 더....괘...괜찮으시려나 ㅠ . ㅠㅎㅎ [출처] 네이트판 _________________________ 아 고양이 얘기 웃겼다 뭐가 보여도 뭔상관? 하는거 귀여워... 나도 고양이 키우고 싶은데 내가 잘 못 챙길 것 같아서 엄두가 안나더라 그나저나 존무대디씨 마음 참 여리네 ㅎㅎ 그 할부지는 좋은 할부진 줄 알았는데 그냥 처음 보는 애라 동태를 살핀 거였구나? 시골이라 텃세 부린건가 싶기도 하고... 그냥 바라는 건 모두 그저 행복하기만 하기를... 그럼 내일 또 올게!
퍼오는 귀신썰) 신기있는 외할머니 이야기
오늘도 짧은 이야기! 후딱 볼까? ㅎㅎ 오늘도 같이 봐줘서 고마워! _________________ 이 글은 예전에 제가 아마에 올렸던 글이에요.. 근데 여기 올리면 딱일거 같아서... 지금부터 친구 외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올리겠소 친구 외할머니가 어릴때부터 좀 앞날을 미리 알고하는 능력이 있었다고해요.. 뭐 손님이 연락없이 와도 미리 올것을 알고 음식 준비를 하거나.. 그 외에도 마을 일을 소소히 미리 맞추거나 그랬다고 하오.. 하지만 그런 능력이 남에게 손가락 질 받을정도로 강한 것은 아니었다고 하오... 근데 외할머니가 돌아가실때가 되니깐 자신을 임종을 미리 알고 차곡차곡 준비를 하시었소.. 그리고 밤에 주무시듯이 숨을 거두셨다고 하오.. 그리고 본좌 친구의 언니가 결혼할때가 되어서 중매를 보게 되었소.. 나이가 28살이라서 좀 급한 맘이 있었다고 하오.. 근데 중매를 봤는데 넘 괜찮은 남자가 나왔다고 하오.. 인물, 능력,집안 ,돈,.성격.. 뭐 하나 빠지는게 없었다오.. 그래서 이 친구 집에서도 안 그래도 급했는데 또 친구 언니 나이도 있고 해서 조금만 괜찮아도 그냥 혼사 치를 작정으로 중매를 나가곤 했는데 .. 늦바람에 이런 괜찮은 사람이랑 연결되었다고 마니 조아했소.. 그리고 그 남자 집에서도 이 언니를 좋게 보고 결혼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가 오가게 되었소.. 그 즈음 친구집에서는 .. "**(언니 이름)이 착해서 이런 복이 왔다,,잘 됐다.." 이런 말들이 수도 없이 오갔다고 하오.. 근데 그 남자 집안과 구체적으로 결혼 이야기가 오간 그 날 밤에 친구 어머니가 꿈을 꾸었는데.. 어머니가 옛날 외할머니가 사시던 외갓집 큰 앞마당에 서있고 외할머니나 몹시 무서운 얼굴로 아주 큰 마당 쓰는 빗자루로 어머니를 몹시 때리는 꿈을 꾸었다고 하오.. 이 결혼은 안된다 절대 안 된다!! 이런 말씀을 하시면서 거의 천둥 소리 같은 고함을 치면서 어머니를 그 큰 빗자루로 온 몸을 사정없이 때렸다고 하오.. 근데 이꿈을 꾸고 나면 어머니는 온 몸이 진짜 밧자루에 맞은 것처럼 삭신이 쑤시고 그랬다고 하오.. 친구 어머니도 꿈이 걸렸지만 상대방의 자리가 넘 좋고 언니가 나이도 있기에 이 자리 놓치면 이보다 더 조은 자리를 못 구할꺼 같아서 그냥 일을 진행시켰다고 하오,, 근데 밤마다 어머니가 이런 꿈을 꾸고 점점 더 그 강도가 세졌다고 하오.. 그래도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함 들어오기 전날이었소.. 그날 어머니 꿈에 외할머니가 아주 무섭고 섬뜩한 얼굴로 나타나시더니 외갓댁 앞 마당에 큰 고무 다라이를 갔다놓고 거기에 물을 가득 채우더니 어머니 얼굴을 거기 막 밀어넣으면서  "지 새끼 죽일려고 하는년!! 차라리 니가 죽어라!!! 이 결혼은 안돼!! 차라리 니가 죽어라!! 앞날도 모르는 년!!" 이런 식으로 욕을 하면서 막 어머니 머리를 거기 밀어넣고... 꿈이었지만 정말 죽일듯이 그랬다고 하오.. 그 담날 함이 들어오고 문제는 함이 들어오면서 그 신랑이 계단에서 넘어져 발목을 크게 다쳤다고 하오..(걸을 수 없을 정도로...) 그래서 어머니도 꿈도 있고 ..해서 결혼을 미루는 척 하면서 파혼을 했다오..그 후로는 한번도 그 꿈을 꾼 적이 없다고 하오. 그 후에 그 언니한텐 예전 만큼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자리가 들어와서 결혼을 했다고 하오.. 그러면서도 그 어머니는 그 자리를 아까워했다고 하오. 그러다가 한 일년정도 지나서 친구 어머니랑 친구 언니가 백화점에 갔다가 예전 그 중매쟁이를 만났는데 어머니가 아쉬운 맘에 예전 그 중매 상대 남자가 결혼은 했는지.. 뭐 어떻게 되었는지 .. 소식을 물어보았다고 하오.. 근데 그 중매쟁이 왈,, 그 남자도 파혼 후에 워낙 자리가 괜찮다 보니 바로 괜찮은 여자 집안과 연결되어 결혼을 했다고 하오.. 근데 그 새댁이 결혼 한지 10개월도 안되어서 그 신랑한테 맞아죽었다고 하오.. 그 남자가 의처증에 심한 폭행을 상습적으로 했다고 하오.. 근데 어떻게 죽었냐면 그 남자가 색시를 때리면서 나중에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여자 머리를 거기다 넣었다 뺐다하면서 괴롭혀서 과도한 폭행과 익사 쇼크에 의해 죽었다 하오... 정말 이 얘기 친구 한테 듣고 무서워 죽는줄 알았소 [출처] 마이클럽 _______________________ 암만 결혼을 시키고 싶었다 쳐도 할머니가 저렇게 말리는데 함이 들어올 때까지 밀어 붙인 것도 대단하다 정말. 왜 이렇게 다들 자식들 결혼을 못 시켜서 안달인지 모르겠네... (괜히 다른데서 발끈ㅎㅎ) 글쓴이의 언니는 할머니 덕분에 피할 수 있어서 다행이지만 돌아가신 다른 여성분 너무 가엾다 ㅠㅠ 폭력이 동반된 의처증이라니... 사람 진짜 조심해야 돼 다들!
퍼오는 귀신썰) 사촌오빠 친구썰 2화
안녕! 오늘도 왔지 ㅎㅎ 오늘도 따뜻하네 정말 어쩜 이번 겨울은 이런지 몰라 지구야.. 괜찮니..? (아련) 다들 뭐하고 있어? 시간나면 같이 귀신썰 볼까아아? 시작! __________________________ 나를 소름끼치게 만든 사촌오빠 친구 (2) 귀신싸움에 스피커 등 터진 그 날의 충격과 공포가 채 가시기도 전에 2번째 사건이 터졌음. 오빠 친구는 마치 아무 일 없는듯이 지냈다고 함. 다만 우리 오빠는 컴퓨터방을 봉인하고 공부에 미친듯이 집중하기 시작했음 그 말을 듣고 친구는 "문 닫으면 걔네들이 못 넘어 올꺼 같냐?" 라고 비웃었다고 함 역시 오싹한 오빠임 하지만 그것이 사실인 것을 알기에 우린 쫄 수 밖에 없었음 ㅜ ㅜ 사실 며칠 간 아무일도 없이 평화로웠음 근데 그 평화로운것이 문제였던거임. 스피커사건이 터지고 일주일도 채 안 지나서 나는 낮잠을 자다가 이상한 꿈을 꾸게 됐음 내가 내방 침대위에 앉아 있는데, 왠 남자 꼬맹이가 쫄래쫄래 방안으로 들어오는 거임. 사실 정말 안 위험하게 생겼음. 꿈이여서 그랬는지 난 모르는 애가 들어오는 것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음 그런데 그 꼬맹이는 망설임 없이 내 책상으로 다가가더니 갑자기 책상 위에 있던 호치케스로 지 검지를 마구 찍기 시작하는거임. 정말 피가 철철 나는데 걔는 눈 하나 꼼짝을 안 함. 다만 목구녕에서 [드르륵..그르륵] 거리는 쇠 긁는 소리를 간간히 냈음 내 침대를 벗어나면 저것 한테 꼼짝없이 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데 차가운 느낌이 목덜미를 타고 쫙 내려감 얼마나 찍어 댔을까, 호치케스 핀이 다 떨어졌는지 그놈아는 드디어 호치케스를 바닥에 떨구고는 천천히 나를 향해 돌아보기 시작함. 벌써 나는 이게 꿈이라는 걸 잊은지 오래였음 드디어 걔랑 내 눈이 마주쳤을 때 무표정으로 이렇게 말함: "어?... 고장나 버렸네?..." 그러더니 그게 눈알을 돌리면서 이히히히힝ㅎ이힣이ㅣ히이힣히ㅣㅎ 미친듯이 웃기 시작했음. 그 모습에 내가 꿈에서 기절을 했는지 하여튼 그렇게 찝찝하게 잠에서 벌떡 깨어났음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꿈에 그 놈이 서 있던 자리에, 멀쩡히 책상 안 쪽에 있던 스테이플러가 떨어져 있는거임 얌전히 떨어져 있기만 했으면 별거 아니 였을 텐데 안에 있는 핀들이 죄다 떨어져 나와 바닥에 뒹굴고 있었음 근데 님들... 호치케스 핀은, 서로서로 붙어 있다는 사실. 아무리 떨어진 충격이라고 해도 내 방바닥에 떨어져 있었듯아 하나, 하나, 다 분리 돼어 떨어질리가 없음. 정말 그 핀들은, 어느 한 줄 붙어 있는거 없이 누가 하나하나 잡아 떼서 늘어 논 것 처럼 그렇게 바닥에 떨어져 있었음... 심장이 미친듯이 뛰면서 미칠것 같았음 게다가 이건 꿈도 아니였음 =_= 방에서 나가려면 저 떨어져 있는 핀들을 지나쳐 가야 하는데 그건또 못할것 같아, 침대에 앉아 땀만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음 그런데 갑자기 내 귀에다 그애가 "고장난거안고쳐줄꺼야???" 라고 속삭임. 거품 물 뻔 한거 꾹 참고 ㅜ ㅜ 생각할것도 없이 침대 옆 탁자 위에 있던 휴대폰 집어들고 집에서 뛰쳐나감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거울 보고 깜짝 깜짝 놀램 하다 못해 그 짧은 시간동안 귀막고 엘리베이터 구석에서 덜덜 떨었음. 와 나 정말 아무 생각도 안 남ㅋㅋㅋㅋㅋ 진짜 머리속이 5^&*&^%$%^&인 상태에서 아파트 밖으로 뛰쳐나와 사촌오빠한테 전화를 미친듯이 걸었음ㅋㅋㅋㅋㅋㅋ 근데 학원 수업 중이라고 끊어버림ㅋㅋㅋㅋ (*)#)(#*&$) 잊지 않겠다 집에는 못 들어가겠고, 친구한테 연락을 할까 하며 서성이는 도중 다행이 오빠가 나한테 문자를 보냄: [내 친구 간다] 오빠가 빨리 조처를 취해준 건 정말 너무 고마웠지만 왠지 그 친구 라면 더 무서워 질 것 같다는 생각에 피가 나도록 엄지손톱을 잘근잘근 씹었음 근데 정말 안 좋은 예감은 적중하는 것 같음. 역시 그 친구가 느릿느릿느릿 정문을 통과 해 걸어오는 모습이 보이는 거임 그리고 그 오빠 친구는 나한테 오자마자 고개를 갸웃 하더니 "누구야?..." 라고 하는거임. 아오 진짜 앞으로 이 사람이 무슨 말 만 하면 실성할 것 같았음 얘기를 대충 늘어 놨는데 애의 생김새라던지 말해 주지 않았는데: "혹시 눈 돌리는 애?..." 이렇게 물어보는 거임 와나 진짜 순간 그 오빠 집에 갔다 묻어와서 아는건가 싶어서 나보다 3살 많은 사람 멱살 잡을 뻔 함 ㅋㅋㅋㅋㅋㅋ 집에 가보자고 하길래 정말 싫었지만 다시 우리 집으로 올라가서 내 방에 진입했음 와나 정말!!! 미!!치!!는!!! 줄 알았음 이번엔 분리돼서 그냥 사방에 누워 있던 핀들이 한 줄로 쭈-욱 나열 돼 있는거임 그리고 그 핀들은 내 문에서 부터 책상밑을 향하고 있었음... 그렇게 나란히 늘어져 있는 핀들을 눈으로 쫓아서 가보니.. 분명히 내 책상 밑에 뭔가 있는것이 느껴짐. 창문에 커튼 쳐놨던거 걷어 놀껄 이라는 후회를 하고 있는데, 사촌오빠 친구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책상 앞에 가서 바닥에 앉음. 그러더니 책상 밑에 그 무엇인가에 이렇게 말을 건냄: "그 여자 여기 없어." 근데 난 분명히 들었음. 아주아주 잔잔하게 쇠가 긁히는 [드륵드르르륵그륵] 소리가 났는데 분명히 분명히 분명히!!! 그 꼬맹이 목소리가 "나도 알아 이히힣ㅇ히ㅣ히힣" 라고 대답했음. 그럼 좀 꺼져줄래 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음  ㅜ ㅜ 한 순간 긴장이 확!!! 조였다가 확!!! 풀렸다가 그게 반복 돼니까 어지러움 증과 두통 까지 겹침 얼마나 지났을까 그 오빠는 자리에서 별일 없었다는듯이 -_- 일어나서 호치키스 핀들을 줍기 시작함. 그리고 왠만하면 새로운 거 사라더니 호치키스를 들고 나가버림 나도 약간의 영감이 있는지라 내 책상밑에 있던 무언가가 나갔다는 것을 꺠닳음. 그래도 무서워서 쫄래 쫄래 같이 쫓아 나감 ㅜ ㅜ 근데 태울 줄 알았더니 가지고 그냥 자기 집 갔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안 태워?" 라고 했더니 "이걸 어떻게 태워 내가 용광로냐" 라고 대꾸함ㅋㅋ 그리고 그 사촌오빠 친구는 내가 얘기를 잘 들어주게 생긴데다 감이 있는지라, 원한이 많은 원들이 많이 따를 것 같다고 하며 충고 아닌 충고를 해주심. 그 아이가 살아 있을때 너무나 많은 괴롭힘을 당하다가 간 아이 같았다며 호치키스야 계속 써도 문제가 없겠지만 내가 찝찝할 까봐 치워 준 거라고 하심 마지막으로 놀러 갔을 때도 그 떄 그 핀들이랑 호치키스를 자기 방에다 잘 두고 있었음; 그 아이가 죽어서도 '다른 사람들이 내게 또 등을 돌렸구나,' 라고 생각하지 않게 잘 두고 있는거라고 했음.. [출처] 네이트판 ________________________ 뭐야 엄청 착한 사람이잖아 아주 매력이 있는 사람이로군 그래도 이런 사람이 근처에 있어서 마음이 좀 놓였겠다 쓰니나 쓰니 사촌오빠는. 처음에 뛰어나가서 안았던 게 이유가 있었네 ㅎㅎ 다음은 또 무슨 이야기가 있을까? 내일 같이 보도록 하자 오늘 잘 쉬고!
퍼오는 귀신썰) 사촌오빠 친구썰 3화
오늘도 왔다!!!! 어때 일요일은 잘 쉬었어? 피곤함이 조금은 사그라든 일요일이었기를 바라며 오늘도 이야기 이어갈게 같이 보쟈 ㅎㅎ _____________________ 꺄꺄 댓글 달아주신거 너무... 신기해요!!!!! 그런데 제가 글 솜씨가 없어서 ....(//).. 재미 없으시면 어떻게 하죠.... 아 근데 정말 평화로이 낮잠자다 당한 일이라 정말 울기 99%직전이였다는... 우음... 글쓰는 솜씨는 어떻게 하면 좋아지는건가요. 유전은 아닌것 같군요 일단 이거.. 무리해서 10편까지 한 번 가볼생각입니당 그만큼 이 오빠친구는 참 흥미로워요 후후 (   / -ㅅ-)/ ---------------------------------- 나를 소름끼치게 만든 사촌오빠 친구 (3) 전에 얘기에서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물론 우리 사촌오빠는 일반인 (?) 친구도있음. 그 들을 쓰기 편하기 위해 A, B, C, D 로 각각 부르겠음 그 사람들에게서 이 글의 제목이 칭하는 the 사촌오빠 친구의 별명이 [존무대디] 라는 것을 알았음ㅋㅋㅋㅋㅋ (존x 무서운 대디 라고 함, 대디는 그냥 존무라고 하긴 이상해서 붙였다고들 하심) 이거 원 제목을 바꿔야 하나 ㅋㅋㅋ 존무대디는 별명으로 미루어 보건데 원래 성격이 좀 오싹한 성격인가 봄. 그런데 또 친구는 많은 것 같음. 존무대디의 관한 일화들은 참 평범과는 거리가 먼 듯 했음 1. 피부과 이야기 우리 사촌오빠 말고, A오빠와 함꼐 존무대디가 피부과를 같이 가주었다고 함. 그게 지난 겨울이였는데, 이유는 날씨가 너무 건조 하니까 안 그래도 여드름드름 브레이크 현상을 체험하던 A오빠의 피부가 극도록 나빠졌던 것임. A오빠 말로는 멀쩡하던 존무대디가 잠시 진료실에서 나온 의사를 보고 인상을 완전 험악하게 찌뿌렸다고 했음. 워낙 무표정에 모두 아시다시피 왠지 모르게 오싹한 성격이라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A오빠는 간호사 언니가 불러줌에 따라 진료를 받으러 들어갔음. 근데 들어갈떄 막 쳐다봐도 존무대디는 같이 들어가 줄 생각을 안했다고 함. "밖에서 기다릴래?" 라고 물었더니, "어...미안." 이라고 존무대디가 짧게 대답했음. A오빠는 섭섭해도 그냥 그러려니...했음. 근데 진료를 시작하려고 그러는데 존무대디가 갑자기 못참겠다는 듯이 진료실 문을 열고 쳐들어와서 A오빠 팔을 잡아 끌더니 "다른데로 가자" 라고 했다는거임. 의사도 간호사도 벙쪄 있다가 ㅎㅎㅎ왜그러세요 라고 했더니 존무대디는 그냥 A오빠 팔만 미친듯이 잡아 끌었다고 함. 근데 A, B, C, D 중에 A 오빠는 정말 순함. 우리 사촌오빠보다 순한 것 같음 존무대디가 그러는데에는 이유가 있겠지 ... 라고 생각해서 의사쌤과 간호사 언니에게 굽신 인사를 하고 "다음에 뵙겠습니다" 이러고 그냥 나왔다는 거임 ㅋㅋ 집에 돌아오는 내내 못볼 거 봤다는 듯이 정색하는 존무대디에게 A오빠는 춥다고 징징대지도 못한채 무슨일이냐고 계속 물어봤다고 함 존무대디는 그런 A오빠에게 집에 다왔을떄 쯔음에야 "불 탔어...." 라고 웅얼거렸다고 함. 순간 존무대디의 목소리가 너무 섬찟해서 A오빠는 뜻도 알아 듣지 못했지만, 그저 "그래?"  라고 대꾸하고 잊었다고 했음. 근데 여드름드름 브레이크는 정말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심해졌고 A오빠는 어머니의 극성 강추로 인해 제일 가까이 있는 그 피부과를 존무대디와의 일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다시 찾게 됌.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우리 사촌오빠와 같이 갔다고 함.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 사촌오빠는 그냥 같이 따라가 줌. A오빠의 말로는 그때 진료실에 있었던 간호사 언니를 보고나서야 그 때 불탔다고 중얼거린 존무대디의 말이 기억이 났음. 그래서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작성하고 간호사 언니에게 건내주는 순간 그냥 장난끼 어린 마음으로 "여기 불 난적 있어요?" 라고 툭 뱉어봤다고 했음. 근데 간호사 언니가 순간 멈칫 하더니, "네?" 라고 싸늘하게 되물어 봤다는 거임. 그래서 A오빠는 그냥, "여기 불 난적 있냐구요"라고 대꾸했음 근데 그 간호사 언니는 약간 사색이 돼서 "왜 그러시는데요"라고 했다 함. 언니 표정이 너무 안 좋아지는것 같아서 A오빠는 대충 둘러대고 우리 오빠와 함께 차례를 기다렸음 사람이 별로 없어서 한 2사람 뒤에 드디어 A오빠 순서가 왔음. 우리 사촌오빠는 당연히 같이 들어갔는데, 우리 오빠 정말 뻥 안 치고 들어가다 다리 풀려서 주저 앉음. 오빠 말에 의하면, 얼굴 부터 가슴께 까지 홀랑 타버린 무언가가 의사 어깨위에 팔을 두르고 있었다 함. 그것도 콧노래 비스무리 한 걸 부르면서 피부에 물집이 잡혀 터지고 살이 드러나서 근육이 보일랑 말랑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미친듯이 빙빙빙빙빙빙빙빙 돌리고 있었다고 했음. 그러다가 그 꼴을 보고 기겁한 우리 사촌오빠를 눈치채고 안 그래도 찢어진것 같은 입을 쫘아아악 벌리면서 낄낄 대더니, "이 자식이 날 태웠어! 낄끼릭기릮리끼낄끼릴ㄲㄲ릮리" 라고 주장했다고 함. 그리고 밖으로 나가는 간호사 등으로 옮겨 타더니, "이 년도 마찬가지야!! 꺄꺄깎락깔갈ㄲ띾띾랄깔깎ㄹ" 라고 속삭였다고 함. 덕분에도 A오빠는 우리 사촌오빠랑 가서도 치료를 못 받았음. 우리 사촌오빠가 하는 얘기를 듣다 못해 존무대디는 A오빠를 자기가 끌고 좀더 멀리 있는 피부과로 갔음. 그리고는 A오빠한테 "거봐...탔다니까..." 라고 중얼거렸다고 함. 그 병원에 도대체 무슨사연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음. 가보고 싶었지만 난 우리 사촌오빠 보다 겁이 많으면 많았지 덜 하진 않기에 관뒀음 ㅋㅋ [출처] 네이트판 _______________________ 무슨 사연인지 너무 궁금한데 알 수가 없네ㅠㅠ 입원중이던 환자였던 걸까 대충 시나리오는 그려지지만 모를 일이지... 불에 타 죽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고통이라던데 얼마나 아팠을까..ㅠㅠ 존무대디는 말이 많지 않아서 오히려 좋은 것 같아 아주 맘에 드는군 ㅎ 다음 얘기는 내일 또... 알지? 잘 자고 내일 또 보자!
퍼오는 귀신썰) 재래시장에 온 구미호 이야기
역시 귀신썰은 우리나라 귀신썰이 최고지 그래서 오늘도 우리네 전통 귀신ㅋㅋ 구미호 이야기를 가져와 봤어 뭔가 친근하긴 한데 남자 간 뽑아먹는 이야기 말고는 잘 모르는 게 구미호잖아 오늘 우리가 함께 볼 구미호는 어떤 이야기 속의 구미호일까? 궁금하면 같이 보자 ㅎㅎㅎㅎㅎ __________________________ 나는 어릴 때부터 영안이 트여서 재래시장에 살 때, 그 동네 무속인 할머니도, 접골원 할아버지도 애 잘 키우라고, 애 주변에 애 홀려가려고 하는 게 많다고 엄마아빠한테 직접 여러번 말했어 실제로 어릴 때 나는 재래시장에서 그 사람 많은 골목에서 살았는데 저녁 장 보기 전이나 저녁 장을 다 본 후에 자꾸 손님왔다고 옆가게 아줌마한테 말해주고 그랬다고 했어 정작, 손님은 없었지.. 하루는 건어물을 파는 가게 할머니네에 밤10시가 넘었는데 긴 생머리에 하얀 원피스를 입은 손님이 온 거야 그런데 가게 들어가는 문턱을 넘지 못하고 계속 밖에서만 왔다갔다 하길래 내가 다가가서 (그땐 재래시장이 잘 되어서 밤11시에 문닫고 막 그럴 때였어 ㅋㅋㅋ 90년대 초반에 ㅋㅋ) 아줌마 뭐 사러 왔어요? 할머니 불러드려요? 라니까 아줌마가 깜짝 놀라더라고 그런데 자긴 들어갈 수 없으니 북어포 한마리만 사다달라는 거야 내게 돈 만원을 주고 대신 사달래 그래서 이상하지만 워낙에 시장에서 잔심부름을 많이 했던 터라 할머니~ 손님이 북어포 한마리만 달래요~ 그러고 가게에 들어갔지 근데 방에서 할머니가 나오면서 아니 어떤 손님이 이 밤에 북어포를 다 찾아~ 하며 나오면서 나한테 북어포를 봉지에 담아주고 난 돈을 주고 거스름돈을 받아들고 나왔지 그리고 손님한테 북어포랑 잔돈 주면서 여기요~ 할머니가 밤에 티비 봐서 밖에 불러도 잘 안 나와요~ 담엔 그냥 문 열고 들어가서 부르세요~ 라고 말하고 나는 우리집에 갔지~(참고로 우리집은 옷가게를 했어~) 그런데 잔돈은 너 가지라고~ 심부름 값이라며 정말 고맙다고 하곤 골목 위로 사라져버렸어~ 그런데 다음날, 학교 갔다오니 시장이 발칵 뒤집어진 거야 무슨 일인지 어른들 틈바구니에 끼어서 들어보니 건어물 아줌마네 금고통에서 만원짜리 칸에 나뭇잎이 나왔다는 거야 그래서 이상하다고 난리가 난 거지~ 왜냐면 건어물 아줌마네는 애들이 없거든 그래서 그런 장난칠 애들이 없는데 만원이 돈통에 들어가 있으니 이상한 일이 벌어진 거지 그런데 동네 무속인 할머니가 내 뒷더미를 잡아채더니 너 어제 뭐 했어? 누구 만났어? 그러는 거야 -_-;; 그래서 어제 뭐하긴요~ 심부름 하고 숙제하고 동네에서 놀았다고 했더니 그거 말고 너 어제 누구 만났잖아~ 그제야 하얀 원피스 입은 아줌마가 생각나서 아~ 아줌마 심부름으로 북어포 사다줬어요~ 했더니 무속인 할머니가 날 질질 끌고 가더니 대나무 이파리로 날 찰싹찰싹 때리더라고 그리고 팥도 뿌리고;; 알고 봤더니.... 그 하얀 원피스 입은 아줌마는 구미호였던 거야 그런데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지만 아마 그 동네가 갑자기 시장이 들어서면서 산이 밀리고 이러면서 새끼를 아마 잃은 모양이라고 그런데 잃어버린 날이 그날이었는지 북어포를 사서 차려주고 싶어서 산을 내려왔는데 건어물집 할머니 가게 들어가는 문턱에 부적이 있어서 못 들어가고 밖에서 서성였던 거였어 근데 내가 보고 대신 사다주고-_-;;; 흰원피스 아줌마가 낸 만원은... 나뭇잎이었던 거고... 잔돈은 나 줬는데............나만 이득을 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그 이후가 더 웃긴 게.... 우리 초등학교 뒷산에 여우가 산다는 이야기가 있었거든 그래서 다들 가기 싫어하고, 여우가 아이들 길을 잃게 만들어서 미아로 만든다고 그랬거든 실제로 산에 갔다가 길 잃어버려서 파출소며 시장 사람들이 단체로 찾으러 다니기도 했고 근데 이상하게 난 겁나 길을 잘 찾았어............................... 없던 길도 내가 가면 결국 길이 나왔어 그리고 소풍을 가면 보물찾기 1등은 나였어.... 지금은 그나마 있던 산도 밀어버리고 수변공원을 만들었는데 난 되게 아쉬워서 아직까지 거길 가보지 않았어 그냥 뭔가 누군가의 터를 빼앗은 기분이 들어서 못 가겠더라고 늦여름에서 가을께였는데... 그 구미호는 아직도 북어포를 사러 시장에 내려오는지 모르겠어 잘 지냈으면 좋겠는데.... [출처] [공포경험] 재래시장에 왔던 구미호 _________________________ 뭔가 귀여우면서 또 슬픈 이야기였다 그치 먼저 보낸 아가 챙겨주려고 북어를 사러 오는 구미호도, 아무 것도 모르고 마냥 해맑은 글쓰니도 다 뭔가 반짝반짝한 느낌이네 다들 이렇게 어울려서 맑게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결국 사람은 누군가의 터전을 뺏고 누군가는 죽고 아파하고 상처받고 하지만 또 사람 덕에 위안 되는 일들도 있으니 위안을 줄 수 있도록 착하게 잘 살아 보자! 곧 또 올게
퍼오는 귀신썰) 사촌오빠 친구썰 4화
다들 존무대디에게 빠졌구나! 나도 사실 그래 ㅋㅋ 이런 사람이면 나보다 어려도 오빠지 ㅎㅎㅎ 그럼 오늘도 존무대디의 활약을 같이 볼까? 시작! __________________________ 나를 소름끼치게 만든 사촌오빠 친구 (4-1) 정말 이번에 글 쓰다가 소름끼쳤네요 다 써갔는데 렉걸려서 인터넷 창이 꺼져서 지금 다시 쓰는 이 기분이란....ㅠ,ㅠ.ㅠ...ㅠ.ㅠ.ㅠ ------------------------------------------ 2. 피씨방사건 사촌오빠 곁에 있는 "일반인" 친구A,B,C,D중 "피씨방사건"은 B/C오빠에게 일어났음. 요 6명 (사촌오빠, 존무대디, A,B,C,D) 중에서도 B오빠와 C오빠는 정말 각별한 사이임. 성격도 참 잘 맞는거 같음. 둘이 같이 다니면 사람들이 칩멍크 브라더스라고 부름 ㅋㅋㅋ 시끄럽고 잘 놀아서. ㅋㅋ 둘을 보고 있자면, 어떻게 존무대디랑 잘 지내는지 모르겠음. 3은 정말 성격이 극과 극임... 하여튼, B오빠와 C오빠가 얘기 해 준 사건은, 피씨방에서 시작되었음. 둘은 존무대디와 같이 피씨방에 간게 아니였음. 둘이 같이 갔는데 , 이미 피씨방에서는 존무대디가 서x어x 이라는 총쏘는 게임을 하고 있었다 함. 그걸 이 칩멍크 브라더스가 가만 둘리 없었음 ㅋㅋㅋ 존무대디를 발견하자 마자 그 둘은 존무대디 의자 위에서 온갖 주접을 떨며 게임중계를 시작했다고 함 ㅋㅋ 물론 존무대디는 "왔냐 (피식)" 외에 반응은 해주지 않았음. 이 사람... 둔한건지 무심한건지 알 수가 없는 사람임... C오빠보다 체력이 쪼꼼 딸리는 B오빠는, 제 풀에 지쳐서 존무대디 오른쪽 옆에 있는 컴퓨터에 앉았는데, 그 곳에는 컴퓨터 모니터 앞에 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컵라면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음. 이미 누가 여기 자리를 틀었나... 라고 생각한 B오빠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바로 그 오른쪽에 있는 컴퓨터로 자리를 옮겼다고 함. 그런데 C오빠는 원래 호기심이 느무느무 충만 함. 컵라면을 보자마자 "오??" 라며 손을 뻗었음. 그런데 순간, 칩멍크 브라더스의 난리 부르스에도 옴짝달싹 안 하던 존무대디가, 정색을 하며 C오빠의 손을 낚아 챘음. 그리고 이렇게 말헀다 함: "그건 너가 건드릴게 아니야..." 존무대디가 너무 싸- 하게 말을 하니까, 괜히 머쓱해진 C오빠는 "내가 저걸 먹을 것도 아닌데 짜샤" 라며 B오빠 오른편에 자리를 찾았음. 그들이 모두 자리를 잡고 컴터를 시작한지 얼마나 됐을까, 컵라면은 식어 가는데 그 자리엔 아무도 오지 않았다 함. 대수롭지 않게 여긴 B오빠는 게임을 막 하다가, 화장실에 가기 위해 헤드셋을 뺐음. 그런데 헤드셋을 뺀 순간, 오빠의 귀엔 왼쪽 칸막이를 누가 긁는 듯한 소리가 들렸음. [트드드득... 트득....] 하고.. 그렇게 강한 소리는 아니였으나, "응?" 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는 크게 났다고 함. 이상하다 싶어서 B오빠는 의자를 뒤로 살짝 뺴서 왼쪽 칸을 빼꼼 쳐다봤음. 그곳엔 여전히 식어가는 컵라면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었음. 혹시나 해서 오른쪽에 있는 C오빠의 정황도 살펴 봤는데, 세상에 그렇게 열심히 게임을 하고 있을수가 없었다고 함. 그리고 긁는 소리는 분명히 왼쪽에서 났음. 너무 장시간 게임음악을 크게 오래 들어서 그랬나, 하며 B오빠는 그것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냥 화장실에 갔음. B오빠는 볼일을 보러 화장실 안쪽으로 다가갔음. 그런데. 오빠가 변기 쪽으로 다가가는데 좌변기실 문이 갑자기 콰당!!!!!!! 콰당!!!!!!!!!!!! 콰당!!!!!!!!!!!!! 하며 마치 오빠를 따라 오는 듯이 활짝 열린것임: 그냥 열린게 절대로 아니였다고 함. 오빠는 안에서 누가 문을 축구공 차듯이 찬 줄 알았다고 했음. 그리고 B오빠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얼어버림. 더 무서웠던 건, 문이 그 정도 힘으로 쾅!!! 하고 열렸으면 반동 떄문에 다시 돌아와야 하는데, 열린 그 상태로 꼼짝달싹을 안했음. 정말 10초가 1년처럼 느껴지 듯이 모든게 느리게 느껴지고,  다리가 떨려서 미치는 줄 알았다고 함. 나한테 비명도 못 지를 정도로의 공포는 처음이라고 했음. 그런데 오빠를 진짜 골로 보낸건 그 문 들 뿐만이 아니였음. 맨 끝에 있는 화장실 창고문. 화장실 청소도구 라던지 넣어놓는 공간 말임. 그 문이 안에서 잠겨 있었는지 그 문만 열리지 않았다고 함. 그 문만 미친듯이 덜걱거리기 시작했음. 그 때서야 B오빠는 "으..으으으..." 거리다가 자기 머리를 감싸쥐고, 다리가 풀려서 주저 앉은 뒤 "으아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름. 그 소리를 듣고 피씨방 알바생이 뛰어오고, 존무대디도 그 뒤를 따라 후다닥 들어왔음. 당연히 피씨방 직원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리가 없음. 그 들이 화장실에 뛰쳐 들어오자 덜걱거리던 창고 문이 그쳤다고 함. 그런데 존무대디는 들어오면서 B오빠를 보고 거울을 보더니 정색하고 다리가 떨려서 서지도 못한 B오빠를 어떻게 마구 끌고 나왔음. 그리고는 헤드셋 떄문에 B오빠의 비명을 듣지 못한 C오빠도 끌고 피씨방에서 당장 나가자고 했다 함. C오빠는 영문을 몰라서 "뭐야?? 뭔데??" 라고 까불다가 B오빠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입을 다물음. 존무대디는 나가면서 화장실에서 나오는 피씨방 알바생한테 한마디 했다고 함: 기다리는 그 학생, 이제 와도 온게 아니니까, 음식 같은거 올려 놓지 말라고... 바생은 그 소리를 듣더니 들고 있던 화장지 롤을 떨어뜨리고 망부석 처럼 서 있었댔음. 그리고 존무대디에게 무슨 소리냐고, 상당히 급한 말투로 다시 물어 봄. 거기에다 존무대디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함: "걘 이미 와 있어요, 형." 그 일이 있은 후로 B오빠는 몇일 간 화장실도 혼자 못 가고 잠도 못 잤음. 존무대디에게 도대체 그게 뭔 소리였냐고 물어봐도 말을 해주지 않았다 함. 몇날 몇일을 괴로워 하다가 B오빠는 C오빠를 끌고 용기내어 그 피씨방을 다시 찾아갔음. 그리고 알바생한테 도대체  그게 뭔 소리였냐고,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물어봤음. 그리고 더 스트레스 받아서 돌아가실 뻔 했다고 했음. 대략 이야기는 이러 했다 함: 몇달 전 부터 저녁에 유난히 피씨방을 자주 들락날락 거리던 남학생이 하나 있었는데, 차림새가 가면 갈 수록 가관이였다고 함... 딱 눈치가 집 나와서 배회하는 청소년 같았다고 그랬다고 함. 알바생 하던 오빠는 자신의 예전 질풍노도 같던 시기가 기억나서, 컵라면 하나쯤 씩은 올때마다 해 줄 수 있다며, 올때마다 라면 하나씩을 자기 사비로 사주곤 했는데 그 학생이 소심했던지 처음엔 물 담아주면 와서 가져다 먹더니 나중에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조용히 앉아만 있었다고 함 그래서 나중엔 그 학생이 잘 앉던 자리에 알아서 올떄 즈음에 항상은 아니라도 기억이 날때면 컵라면 하나를 셋팅 해주곤 했다고 함 그런데 피씨방 사건 2주전부터 그 학생 소식이 끊겼다고 했음.... 집에 돌아 갔나, 큰일은 없겠지, 싶어서 걱정을 하다가, 혹시나 해서 가끔씩 컵라면 셋팅을 해 놓고 기다려 봤다고도 함. 존무대디의 말을 듣고  컵라면 셋팅은 그만두고, 피씨방에 오는 비숫한 연령대 학생들한테 지금 수소문 중이라고 했음. B오빠랑 C오빠는 피씨방 형이 그 학생 못 찾을거라고 굳게 믿게 됨. 요즘 같은 험난한 세상에 피씨방알바 오빠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아직 그 곳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도 신기함) 존무대디가 그것에 관한 말을 더 이상 하지 않아서 짐작 밖에 할 수는 없음. 솔직히 조금 슬픈 얘기이기도 했음.. ----------------------------------- 그 일 이후에 B오빠도 저희 사촌오빠와 같이 큰 트라우마가 생겨서 - ㅅ -) 절대 피씨방 안간다네요. 저희 사촌오빠는 참고로 아직도 컴퓨터 방 들어가길 꺼려함. [출처] 네이트판 _____________________ ㅠㅠㅠ 그 학생에겐 어떤 일이 생겼던 걸까 슬프다... 피씨방 알바생 마음결이 정말 비단같은 사람이네 세상을 떠나고도 챙겨주던 그 형 때문에 피씨방에 와 있는 건가 보다 슬퍼라 ㅠㅠㅠㅠㅠㅠㅠㅠ 좋은 일이 있었던 것 같진 않고...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모두가 편히 살 수 있는 세상이라면 참 좋을텐데 후... 암튼 내일도 같이 보자!
퍼오는 귀신썰) 사촌오빠 친구썰 6화
뭐야 어제 분명 6화를 올렸는데 왜 7화가 올라간걸까 내가 분명 이 이미지까지 첨부해서 올린 거 생각나는데 왜 7화가 올라가 있고 6화는 온데 간데 없어서 임시저장카드를 보니까 쓰다 만 6화가 남아 있어 이미지 분명 첨부했는데 첨부했던 이미지도 없어져있고 뭐야 무서워... ㄷㄷ 어쨌든 6화를 오늘 다시 시도해 본다 오늘은 무사히 올라가길... 설날이 벌써 모레라니 하루하루가 정말 잘 간다 이러다 금방 할머니 되겠네 ㅎㅎ 귀신썰 읽다 보면 시간이 정말 훅 가잖아 갑자기 주변이 조용해 진 것 같고 시간의 밀도가 엄청 높아진 것 같고 오늘도 그렇게 시간 여행 한 번 해 볼까? 시작하자! _________________________ 갑자기...조회수가 왜이렇게 기하학급수적으로 상승했지?!? 했더니 헐, 어째서 1편이 톡톡 리스트에 올라와 있는겁니까아아아 내려줘요 지금 당장 롸잇나우 ㅠ ㅠ 덕분에 별명만 늘었네요 ㅠ - ㅠ) "이년저년요년"ㅋㅋㅋㅋㅋㅋ..............엄마...ㅠㅠ.... 아 정말 웃는게 웃는게 아니라구용 ; 제발 그냥 무서운/오싹한 얘기 좋아하시는 분만 좋아서 읽어 주시는 분들만 읽어주세요;.. 왜 굳이 읽으시면서까지 나쁜말을 남기시는지 ㅜ,ㅜ)).. 믿어 달라고 따로 부탁 드린 적도 없고, (음;;..) 사촌오빠 친구들 얘기는 들었을때 너무 오싹하면서도 재미있길래, 판에는 무서운 얘기 따로 즐겨 찾아 보시는 분들도 계시고 해서 쓰게 된거라 정말 나쁜 의도는 없었단말이에요... 더 이상 ABCD오빠들/언니와 관련된 얘기는 쓰고 싶어도 없답니다 ㅜㅜㅎ.. 판의 취지는 "타인의 자유를 해하지 않는 모든 자유를 행하라!" 이잖아요 : )~? 정 맘에 안들고 눈에 거슬리시더라도 그냥 무서운 걸 즐기는 분들이 즐겨 찾아 읽는 괴담~~ 정도로 귀엽게 생각해주세요 ㅠ 그냥 읽고 즐겨주세요 +_+ 왜들 이렇게 욕하는데  심각하셔 ㅋㅋㅋ ㅠ - ㅠ .. 서로 스트레스 안 주는 판 세상이였으면 좋겠네요~ 저도 앞으로 좀더 조심스럽게, 안 거슬리도록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ㅠ;ㅎ 주저리가 너무 길었나요 ㅎ_ㅎ))  시작합니다 : )~ -------------------------------------- 존무대디에게 무서운 얘기를 해달라고 조르다가 완전 혼났음. 맨날 공포 분위기는 혼자 있는대로 다 조성하면서 무서운 얘기 해달랬다고 혼내다니... 조금 놀랐음. 나한테 막 혼내다가 내가 궁시렁궁시렁 대니까 완전 사악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음: "너 자꾸 그러면.... 붙는다?" 그래서 조르기를 관뒀음. 진심인지 공갈인지 구분이 안갔지만, 성격이 찔끔스러워서 더 이상 조를 수가 없었음. 그래서 오늘 이야기는 없음............................................... .........................어색한 낙시질죄송합니다 죄송해요 너무 무서운 댓글들이 달려서 장난한번쳐봤어요 다신 안그럴게요 떄리지 마요 아아아악 온가족이 같은 동네, 멀어봤자 옆동네 옹기종기 모여 살게 되어서 우리가족은 (외가쪽) 그 만큼 모이는 일이 많음. 특히 어른분들 생신일때에는 왠만하면 주말 쯔음에 다 같이 모여 축하 하는 일이 잦음. 이렇게 모일 때에 어른들끼리 하는 얘기를, 사촌들과 내가 엿들으면서 조합한 우리 the 사촌오빠의 관한 얘기를 하겠음: 어쩌면 우리 사촌오빠는 태어나지 못했을 지도 모름. 외숙모가 오빠를 임신하셨을 때에 건강상태가 너무 좋지 못했다 하심. 그래서 진지하게 가족단위로 유산에 대해서 논해 보기도 했다 함. 그런데 그 때 당시 외숙모를 괴롭히는 건, 단순히 건강문제와 임신 뿐 만이 아니였음. 배가 불러옴에 따라 심해오는 악몽의 강도 때문에, 외숙모는 더 초췌해지셨다고 함. 그냥, 임신 스트레스 때문이겠지 하시던 외삼촌도, 가면 갈 수록 같이 힘들어 하시고, 하여튼 걱정이 계속돼는 나날이였음. 외숙모 기억에, 악몽의 시작은 정말 별것도 아닌 꿈이였다고 함. 처음 꿈에서 외숙모는 왠지 파~란 옷을 입고 거실에서 테레비를 시청하고 계셨다 하심. 그 옷은 잠옷도 아닌것이, 평상복도 아닌것이, 하여튼 생소 하면서도 처음 보는 옷이였음. 그렇게 티비를 보는 중이셨는데, 누군가 갑자기 현관문 벨을 천천히, 계속해서 눌러댔음. 누구세요? 라며 문을 열였을 때에는, 왠 중년의 여자가 긴 동앗줄을 들고 서 있었댔음. 인상이 그리 좋아 보이는 여자는 아니였다고 하심. 그 여자는 외숙모에게 대뜸, 그 동앗줄로 자기 몸을 묶어달라고 부탁했음. 왜 이럴까.....라며 외숙모는 고개를 갸웃 거리면서 부탁대로 해 주었다고 함. 그리고는 찝찝한 기분으로 문을 닫고 집으로 다시 들어오셨음. 그리고 그렇게 깨셨음. 그게 바로 지긋지긋한 악몽의 시작이 되었음. 그 꿈을 꾼지 몇일이 지났을까, 다시 꾸는 꿈에 외숙모는 다시 파란 옷을 입고 거실에 앉아 계셨음.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그 중년의 여자가, 저번 꿈에서 외숙모가 묶어 준 그대로 나타나서 동앗줄의 다른 끝을 내밀었다고 함. 그 때 부터 외숙모는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하셨음. 아니나 다를까, 외숙모가 동아줄을 잡지 않자 그여자는 다짜고짜 빨리 네 몸도 묶으라며 화를 냈다고 함. 외숙모는 질겁을 하고 현관문을 쾅!! 하고 닫아 버리셨심. 그리고 꿈에서 깨셨음. 그런데 안타깝게도 꿈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음. 그 여자가 이제는 너무나 자주 외숙모 꿈에 등장해서 온갖 방법으로 외숙모를 괴롭히셨다 함. 처음엔 [문열어 이년아!!! 문열어 이년아!!! 문열어 이년아!!!] 라며 계속 현관문을 두들기더라고 함. 밖에서 [흑흑...으흑흑흑흑흑ㅎ극ㅎ긓....] 라며 통곡을 한 적도 많았고, [끼낄낄낄... 니년이 그런다고 내가 못들어 갈 줄 알지?] 라고 협박까지 시도 했음. 그런지 한 몇주가 지나자 외숙모는 주무시는 걸 거부 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너무나 지쳐 계셨음.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어지신 외숙모는 점점 히스테릭하게 변해가셨고, 단순한 임신 스트레스려니... 하셨던 외삼촌도 더는 못 견기겠다고 생각하심. 결국 두 분이 무당분을 찾아가게 만든 결정적 꿈은 이러했다 함: 그 꿈에는 유난히 그 여자가 밖에서 조용했음. 그리고 외숙모는 여전히 똑같은 옷을 입고 거실에서 테레비를 시청하고 계심. 오히려 조용한게 더 불안해진 외숙모는, 왠지 등골이 시려오는 한기에 안방으로 이불을 가지러 가셨음. 근데 왠일인지 안방에 이불이 하나도 없는거임. 이게 말이돼나? 싶어서 외숙모는 안방을 한참 서성이다가 혹시나 해서 외삼촌이 서재로 쓰는 방으로 발길을 돌리심. 복도식 아파트에 거주 하시던 외숙모의 집에, 외삼촌의 서재는 복도쪽에 달린 방이였음. 그래서 외숙모는 방에 들어갔을 때 꿈에서 기절하실 뻔 하심. 왠지 모를 한기는 바로 서재에 있던 창문으로 부터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아까도 말했듯이 외숙모는 복도식 아파트에서 거주중이였음. 그 창문은 바로 바깥 복도가 보이는 창문이였던거임. 그 중년의 여자가 창문에 달린 방범망을 두 손으로 잡고, 기괴한 얼굴로 외숙모를 쏘아보며 웃기 시작했다고 함. 몇날 몇일을 밖에서 지낸 듯이 헝클어진 머리와, 정신이 나간듯이 풀린 눈동자, 그리고 핏발이 센 흰자. 무엇보다 손과 팔뚝에 핏줄이 다 서도록 방범망을 꽉 쥐고 흔들어 대는, 그 것은, 이미 사람이라 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함. 그 아줌마는 방범창을 잡고 미친듯이 흔들며, 문제의 동앗줄을 창문 사이로 밀어 넣기 시작했음. 그리고는 외숙모 귀가 아플정도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고 함: [묶어!! 묶어!! 묶어!! 묶어!! 묶어!! 묶어!!] 잠결에 비명을 지르는 외숙모를 외삼촌은 가까스로 깨우셨고, 외숙모는 깨어나신 후에도 싫다며 계속 오열하셨다고 하심. 결국 다음 날, 외숙모는 외삼촌에게 부탁 해서 전부터 아파트 이웃에게 들어본 용하다는 할머니를 수소문 했음. 그런데, 할머니분 방안에 외숙모가 발을 들여 놓은 순간, 할머니가 너무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 하셨다고 함: "야야...쟈가 아를 달란다...." 깜짝 놀란 두 분은 할머니께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셨고, 그 할머니 분은 이렇게 말씀하심: "니 아니면 갸라도 데꼬 갈란다고, 아 목을 빙빙 감아놨네..." 그 말에 외숙모는 정말 할머니 앞 쓰러지듯이 하시면서 안된다고, 제발 왜 그러는 건지 말씀해 달라며 정말 싹싹 비셨다 하심. 그러자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해 주셨음: "파란 건 안됀다, 파란 건... 애가 춥다 칸다고. 아가 추우믄 안돼. 자꾸 고따우 못됀걸 부른다니까. 아가 목이 아프단다. 창문을 닫아라, 창문을. 닫아햐 케. 창문을 닫아. 창문을 닫아. 창문을 닫아. 창문을." 외숙모는 울면서, 꼭 닫겠다고, 꼭 닫겠다고 하며 할머니한테 하소연 하셨음. 창문을 닫으라고 되뇌이던 할머니는, 갑자기 외삼촌 뒤를 응시하면서 호통을 치셨다고 하심. "이런 못된년!!! 지 애 떨어졌다고 남의 아 목을 빙빙 감아놔??" 외삼촌은 견디지 못하시고 할머니께 알겠다고 감사하다고 사례를 해 드린 뒤 집으로 빨리 돌아오셨음. 그 일이 있은 지 몇일 안 지나, 사촌오빠가 예정일 보다 빨리 나오려는지, 외숙모는 심한 복통을 하소연 하셨음. 그리고 병원에 가셨는데, 탯줄이 태아 목을 감고 있어서, 수술이 불가피 할 것 같다는 말을 듣게 됨. 복통이 너무 심해와서 잠시 정신을 잃을때, 외숙모는 순간 "아, 이게 내 마지막 기회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함. 아니나 다를까 외숙모는 그 짧은 시간에 그 여자가 나오는 꿈을 다시 꾸게 되심. 그 미친 아줌마-_-는 방범창을 잡고 손을 뻗으면서 여전히 [내꺼야 내꺼야 내꺼야 내꺼야 낄끼리끼릮낄낄낄낄낄낄낄] 이라는 헛소리를 짓껄이고 있었다 함. 외숙모는 도대체 자기가 어떻게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다고 하심. "아니야!!!! 아니야!!!!!" 라며 소리를 지르시고는 외삼촌 서재 책상위에 있던 책을 집어 들어 자꾸 집안 안쪽으로 손을 뻗는 그 여자 손을 마구 때리면서 겨우겨우 창문을 닫아 버렸다고 하심. 아니나 다를까 그 미친아줌마는 밖에서 창문/벽/현관문을 마구 두들기며 또 다시 소리지르기 시작함: [묶어!! 묶어!! 묶어!! 묶어!! 묶어!! 묶어!!] 외숙모는 왠지 모르게 자꾸 아기한테 미안하다는 말이 나오셨다고 함 그리고 그 길로 안방에 들어가서 파란옷을 벗어 던져 버리고 장롱 깊숙히 넣어두었던 겨울옷 까지 끄집어 내서 껴 입으셨다고 함. 그리고 꿈에서 깨는 순간, "아 살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심. 7개월만에 태어난 우리오빠는,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 삶을 피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지금 이러 하듯이 건강하게 태어나서 잘 있음. 이건 나중에 오빠가 얼핏 얘기 해 준건데, 자기가 이런 얘기를 모르고 존무대디를 만났을 때, 조금 친해진 후에 존무대디가 처음에 대뜸 한 말이 "너희 어머니한테 평생 고마워 하며 살아라" 였다고 함. -------------------------------------- 하여튼 저랑 제 친척들은 (애들) 어느 순간부터 저희 오빠를 모태민폐라고 부르기 시작했음... ....무서운 댓글은 정말 미워할껍니다 :' (! 꺄 ㅠ ㅅ ㅠ) 재미있게 읽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깜빡할뻔 했네요!! (이런 바보 멍충이) 감사하구 또...또... 또....음......사...사ㄹㅏ,ㅇ,,,,, 우어 못하겠지만 그래도 제맘 아시죠 = ㅅ ㅠ)/ [출처] __________________________ 어무니 정말 대단하시다 본인 몸도 안 좋으신데 아가 지키려고... 덕분에 건강하게 잘 컸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가끔 이런 글들 볼 때마다 조금 궁금해 자신의 아기가 잘못 됐다고 남의 아기를 훔쳐 간다거나 하는 일이 옛날엔 가끔 있었잖아 그게 무슨 마음인지를 잘 모르겠더라고 그게 비뚤어진 모성애인지 아니면 대를 이어야만 한다는 압박 때문에 벌어진 일인지 둘 다 모르겠는데 둘 다 슬프긴 하네 암튼 다들 이제 가족들 만나러 가는 길이겠지? 따뜻한 설 보내길. 내일 또 올게!
퍼오는 귀신썰) 사촌오빠 친구썰 5화
오늘 하루도 잘 보냈어? 별 일 없는 하루하루가 쌓여서 불안하지 않은 요즘이 되면 좋겠다 단단한 마음이어야 귀신썰 보고도 겁을 안먹지 ㅎㅎ 물론 난 아직도 불을 켜고 자긴 하지만 ㅋ 그럼 오늘도 이야기 같이 볼까?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나를 소름끼치게 만든 사촌오빠 친구 (5) 3. 학원 편 존무대디는 이성친구가 정말 쪼금밖에 없음. 하지만 존무대디에게 유일하게 "친한친구" 라고 불리우는 언니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D언니임. (짜잔! 다들 오빤줄 알았죵?) D언니는 존무대디와 성격이 비슷함ㅋㅋ 극도의 침착성을 소유 하신 멋진 언니심. 개리 평온함 뺨침ㅋㅋㅋ 다른점이 있다면, 일반인 이라는 것 정도. 이번 얘기는 D언니가 다니는 학원으로 부터 비롯 됨. D언니 집안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별로 좋지 못하심... 그래서 동네 근처에 있는 작은 학원 하나만을 다닌다고 함. 근데, 학원도 "학원" 이라 하기엔 좀 쑥쓰러운게, 선생님도 맨날 지각하고, 공부하다 궁금한거 있으면 물어봐라 식이라서 모두가 "도우미 있는 도서실" 이라고 칭한다 함 그 "학원"은 2층 건물의 2층에 위치 해 있었는데, 들어가는 입구도 무슨 네덜란드 집 처럼 비좁음;;; 문 들어가면 폭이 좁은 계단이 전부라고 함. 1층은 왜 만들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음. 학원에는 방이 꼴랑 2개인데, 방 하나는 뭐 "선생님들" 용이고, 나머지 하나는 소위 "자습방" 이라고 함. *실제로 방은 정말 작고, 물건들 사이의 거리도 상당히 가깝다고 함 언니는 그 날 학원에 원래 수업시간인 10시보다는 조금 늦은 10시 20분 쯤에 도착했다고 함. 그리고 방 안에는 그 학원에서 만난 친구가 혼자 공부 중이였음. 학교가 오늘은 어쨌네 저쨌네 하며 떠들다가, 언니는 교탁 바로 앞 중간에 위치한 책상에 자리를 잡았음. 그리고 책을 펴서 공부를 시작한지 한 30분 정도가 지났을까, 갑자기 옆방에 있던 선생님한 분이 오셔서 문을 벌컥 열고 약간 짜증난 말투로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함: "도대체 뭐하는거야!! 귀도 안아프냐!! 멀쩡한 칠판을 왜 자꾸 긁어??" 앉아서 공부만 하던 D언니와 학원 친구는 급당황 했음. 아니, 방에는 둘 밖에 없고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옆방에서 들릴 정도로 둘이 칠판을 긁었다고 주장하는 선생님의 말이 이해가 될리 없었음. "밖에서 들리는 소리 잘못 들으신거 아니에요?" 라고 D언니는 대충 둘러대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음. 선생님은 "아 뭐야 진짜..." 라며 교탁 앞에 자리를 청하셨음. 그리고 또 시간이 흘렀는데, 그때가 몇시 쯤이였는지는 시계를 보지 않아서 정확히 기억이 안난다고 함. 하여튼, 교탁앞에 앉아서 책을 뒤적이시던 선생님은, 갑자기 두 언니들에게 또 "야, 이거 뭐야..." 라고 하셨음. 뒤에 앉아 있던 학원친구는 보지 못했지만, 앞에 앉아 있던 D언니는 선생님이 교탁위를 보며 인상을 찡그리길래 살짝 일어나서 교탁위를 봤음. 그리고 살짝 놀랐다고 함: 나무로 만들어진 교탁 위에, 짧지만 뭔가가 긁어 놓은 듯한 자국이 5~6개 정도 만들어져 있었음. 아까 누가 자꾸 칠판을 긁냐며 짜증을 내던 선생님의 모습이 기억나서 D언니는 순간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고 함. "뭐지? 아까는 이런 자국 없었는데?" 라고 선생님도 그 긁힌 자국을 손가락으로 따라 그어 보았다고 하심. "원래 있었는데 선생님이 못 보셨나 보죠~ 나무 책상 긁히는게 어제 오늘 일인가요" 라고 D언니는 대꾸했지만 사실 불안한 기분은 감출 수가 없었다고 함 이유인 즉슨, 긁힌 자국이 오래 된 것이였다면, 그렇게 자국 주위에 나무가루가 (톱밥같은) 즐비해 있을 수가 없었다는 거임. 설마 사람이 방안에 3명이나 있는데 무슨일이야 있겠나.. 싶어서 어차피 집에 갈 시간도 다가와 오는데, 괜히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공부나 하자 라고 D 언니는 그것마저 쏘쿨하게 넘김.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존무대디에게서 [야너어디] 라고 문자가 왔다고 함. 언니는 가뜩이나 기분도 찝찝해 죽겠는데.. 라고 생각하며 [학원 ㅇㅇ] 이라고 답장을 대충 쳤음. 그런데 갑자기 전화를 시계로도 안쓰는 존무대디가 전화를 마구 걸기 시작함. 존무대디에게 있어서 휴대폰이란 가끔 컴터 옆에 두면 마우스로 헷갈려서 집게 되는 물건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아는 D언니였기에, 큰일이 났나 싶어 전화를 받았음. 전화를 받았더니 존무대디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고 함: [공부도 그 많이 했으면 됐을테니까, 그냥 나와라] D언니가 "왜??" 라고 하니 존무대디는 [그냥 나와- 꿈자리가-] 이라고 말하다가 갑자기 말을 끊었다고 함. 그리고 몇초가 흘렀을까. D언니는 갑자기 한기가 느껴지고 뒷목에 소름이 돋았다 했음. 그런데 그 순간, 존무대디가, 정말 위협적인 목소리로 느릿느릿 이렇게 말했다고 함: [같지도 않은게 왜 남에 통화를 엿듣고 있어?......] D언니는 그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등골이랑 목뼈가 빳빳해 지는 기분이 뭔지 깨달았다고 했음. 존무대디에게 뭐라 할지 몰라서 전화도 못 끊고 있던 언니에게, 그는 [정말 나와야 되겠다고 생각이 안들어?] 라고 물었다 함. 그때 언니는 머릿속에 "아...." 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고 함. 아까부터의 불안이 뭔지 깨달았음: [지금 나는 여기에 있으면 안됀다.]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요동을 치기 시작한거임. 언니는 두말 할 것도 없이 가방을 챙겼음. 학원친구에게도, 선생님에게도 우리 나가자고 다급히 부탁했지만 이해를 못 한 그 둘은 왜 그러냐며 웃었다고 함. 선생은 급한 일 있으면 가봐도 됀다고 손을 휘저었다고 했음 답답했지만 왠지 모르게 극도로 밀려오는 공포에 언니는 계단을 차근차근 내려와서 학원 건물 밖으로 나왔음. 그리고는 뒤돌아 봤는데... 그 순간 언니는 일평생 쌓아 온 "침착성"을 한번에 다 날려 버림. 뒤를 돌아본 언니에 시야에는, 좁은 학원문과 그 뒤에 학원으로 올라가는 약간 어둑어둑한 계단이 들어왔는데... 계단 위 2층으로 꺾어지는 그 부근에, 분명히 왠 여자가 난간을 두 손으로 붇잡고  앉아서 키득키득 거리는 모습이 보인것임. 그 여자는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킬킬 거리다가, 기어서 윗층으로 올라갔음. 그 모습에 질겁을 한 D언니는, 아직 학원 안쪽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빨리 내려와 달라고 울먹임. 들어가지도 못하겠고, 친구가 알았다고 한 뒤 전화를 끊고 밖에서 발 만 동동 굴렀다고 함. 그런데 갑자기 윗층에서 비명 소리가 들리더니 선생님과 친구가 미친듯이 뛰어 내려 왔음. 둘다 얼굴이 창백하더니 내려 와서도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지겼다고 함. 도대체 왜 그러냐고 했더니, 윗층에서 D언니의 전화를 받고 밖에 무슨 일이 있었나 싶던 학원친구와 선생님이 내려 가 보려는 순간, 방 뒷편에 얌전히 걸려있던 작은 거울이 미친듯이 양 옆으로 왔다갔다 거리더니 그 대로 밑으로 떨어져 깨어져 버렸다고 함. 언니랑 학원친구는 정말 뒤 돌아보기도 무서워서 둘이 소매를 꼭 잡고 버스에서도 떨며 집에 돌아왔다고 함. 집에 와서는 긴장이 풀려서 펑펑 울어 버렸다고 하는데, 밤 늦게 귀가한 딸이 얼이 반쯤 빠져서 갑자기 펑펑 우니까 D언니 부모님은 밖에서 요즘 안그래도 흉흉한데 나쁜일을 당하고 오신 줄 알고 놀라서 같이 우심;;; D언니는 조금 진정하고 부모님한테 자초지종을 대충 설명하고 나서 존무대디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음. 도대체 무슨 꿈을 꿨냐고 물었더니, 존무대디의 사정은 이러했음: 웬 공부 방 인듯 한 곳에, 다리를 못 쓰는 듯한 여자가 쓰러져 있었다고 함. 그 여자는 방안을 마구 기어 다니다가, 방 안에 있는 걸 잡아서 일어서려고 하는 듯 해 보였는데, 칠판에 분필 두는 곳을 잡더니, 일어서려고, 끼이이이기이기이기기이이기기기기긱 소리를 내며 칠판을 긁어 댐. 그러더니 기어코 방안에 있는 책상들을 잡아 지탱삼아 휘청휘청 방안 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댔음. 그러더니 갑자기 D언니 이름을 부르며 기괴하게 웃기 시작했는데, 그 순간 존무대디는 꿈에서 깬 것임... 그리고 그 길로 D언니에게 연락을 취한것이였음. D언니는 그 일 뒤로 두번다시 그 건물 가까이도 가지 않았음. 존무대디는, 그 여자 다리를 못쓰는 걸로 봐서는 지박령인듯 하니, 괜찮을 거라며 언니를 달래 줌. D언니는 선생님이 그때 들었던 칠판긁는 소리가 헛소리가 아니였을거라고 굳게 믿게 됌. 그리고 나는 존무대디가 왠지 더 무서워졌음.... ------------------------------------ 휴 ' ㅅ ');;; 이번 얘기는, 읽으시는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제일 소름 돋아요; [출처] 네이트판 _____________________ 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칠판을 긁어댄 거였구나 얼마나 한이 맺혀 있으면 물리적인 힘을 가할 수 있었던 걸까 무서워... 이런 거 보면 내가 귀신을 본 적이 없어서 너무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 평생 볼 일 없었으면 좋겠다 ㅋ 그럼 내일 또 같이 보도록 하자!!!!
퍼오는 귀신썰) 신이 점지해 준 아이
이번 겨울은 진짜 생각보다 덜 춥다 그치 종일 따뜻한 사무실에 앉아 있어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ㅎㅎ 모든 사무실들이 히터 온도 조금만 낮춰도 참 좋을텐데 참 날이 덜 추우니까 미세먼지도 극성이고... 다들 기관지 건강 잘 챙기시길! 오늘도 우리네 이야기로 챙겨와봤어 같이 볼까? _____________________ 제목 : 신이 점지해준 아이 제목은 진짜 내맘대로 ㅠㅠㅋ  내가 알고 지내는 언니 이야기야~  이 언니가 나보다 3살 위인데 지금 거진 중학교 입학을 앞둔 아들 하나를 둔 싱글맘이야  처음 만나게 된 게, 나냔이 학교 봉사활동 하러 재활센터 같은 데에 일하러 갔다가 보게 됐어  그 센터에 아무래도 연세 있으신 분들 비율이 높아서, 엇비슷한 나잇대에 같은 여자고 마음도 잘 맞아서 금세 친해졌어  이 언니의 경우는 아들 때문에 여길 다니게 됐는데, 아들이 선천적으로 다리가 불편해... 제대로 된 병명이 기억은 안 나는데.. 한쪽 다리가 성치를 못해서 성장이 거의 멈췄어. 그래서 다른쪽 다리랑 맞질 않아서 혼자 걷질 못해  이 언니 혼자서 애 데리고 치료 다니랴 일하랴 항상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더라  개인사는 실례가 될 것 같아서 직접 물어본 적은 없었어  그렇게 친해져서 평소에도 시간이 나면 같이 밥 먹고 쇼핑도 하러 다니고, 언니 바쁠 때 아들도 봐주고 하면서 꾸준히 교류를 하고 지냈어  그렇게 알고 지낸지 약 1년쯤 됐을까? 같이 저녁 먹고 술 한잔 하다가 언니가 말을 꺼내더라구  "너 우리 동동이(아들. 가명이야ㅎ;) 아빠에 대해 궁금하지 않니?"  이러면서 . 난 그냥 솔직하게 본인(언니)이 얘기할 맘 없으면 알고 싶지도 않다고 했어  그랬더니 언니가 자긴 딱히 숨기거나 창피한건 아닌데 나서서 할 말은 아니라 별 말 안했다 이러면서 간략하게 얘길 꺼냈어  좀 어려서(고등학교때) 애아빠를 만나서 둘이 선까지 넘고 임신까지 하게 됐대  언니 본인은 애 낳고 바로 취업전선 뛰어들었고, 남자는 대학까지 그대로 갔어  그런 남자의 학비부터 생활비까지 언니가 다 벌어서 부담하며 수발을 들었다는 거야  그리고 이 남자는 자기가 학교 졸업하고 취업만 제대로 하면 너 끝까지 책임진다고 항상 호언장담해서 믿고 기다렸대  근데 옘병ㅋ 졸업 앞두고선 잠수를 타버렸는데, 딴여자랑 결혼했단 소릴 다른 친구 통해서 들었대  그 집까지 찾아가서 애를 나 혼자 낳았냐 어떻게 동동이한테까지 이럴 수 있냐 하면서 호소했더니 남자 부모님이 멀쩡한 애 앞길 망치지 말고, 그 애도 진짜 우리 아들 핏줄인지 어찌 아느냐 하면서 돈 좀 쥐어주고 더이상 연락하지 말라고 거진 내쫓았대  이 언니가 정말 서러운게 만약 동동이가 몸이 완전 성한 아이였어도 애아빠에다 조부모 되는 사람들까지 애를 버렸을까 싶어서 몇날 며칠을 울었대  그치만 아들 하나만큼은 책임지고 키우고 싶었기 때문에 악착같이 일을 해와서, 지금은 혼자 장사도 하면서 한숨 돌릴 정도로 산대  하지만 지금처럼 자리잡기까지 그 과정은 정말 말도 못하게 힘들었대  여자 홀몸으로 아픈 애 데리고 사는게 어디 쉽니...  거기다 저 언니는 고등학교까지 중퇴. 돈이 될만한 일을 하는 것조차 힘들었대  그래서 영 안되겠다 싶어서 애까지 고생시키느니, 동동이를 시설에 맡기거나 다른집에 보내거나 해버릴까.. 하는데까지 생각이 미쳐서 고향에 계신 아버지를 찾아가 상담을 했대...(어머니는 일찍이 여의었다고 하더라) 이런 저런 이야길 했더니 아버지가 단호하게 동동이는 끝까지 니가 키워야 한다! 이러시더래  언니가 말하길, 아버님은 너~무 너무 온순하시고 남 부탁 거절 못하시고 수줍음도 잘 타시고 천상 소년같은 성격의 분이시래. 그래서 자기가 힘든걸 호소하면 편을 들어주며 토닥여 줄줄 알았는데 단호하게 말허리를 잘라서 좀 놀랐대  그러면서 이런 이야길 하나 해주시드래  아버지가 아직 젊으셨을 적, 그러니까 언니가 태어나기 전에 읍내에 일이 있어서 다녀오면서 (이분이 사시는 곳이 완전 시골) 버스를 탔대  완전 산골길이라 버스 안에 다해야 10명도 안되는 사람이 타고 있었는데, 몇 정거장 가니까 왠 젊은 애엄마가 갓난아기를 안고 버스를 탔대  근데 돈이 부족한지 막 주머니를 헤집고 이리저리 뒤지다가 안되겠는지 버스기사한테  "죄송한데 한번만 그냥 태워 주시면 안될까요? 금방 내릴거에요"  하면서 간곡히 부탁을 했대  기사가 성질을 내면서 그냥 내리라고 욕을 하고, 실랑이가 길어지니까 승객들도 그 여자보고 내리라고 당신 때문에 늦어진다고 막 화를 냈대  결국 아버님이 보다 못해서 돈을 대신 내줬대  그랬더니 그 여자가 고맙다면서 앞자리에 앉더니 "어디까지 가세요?"하고 물었대  "어디어디까지 갑니다~" 하고 대답하니까  "다음 정거장에서 그냥 내리고 다음 버스 타세요" 이러더래  버스 배차 간격이 워낙 길어서 정말 한~~참을 기다려야 하니까 아버님은 왠 난데없는 소리야 하면서  "어서 집에 들어가 봐야해서 그건 좀..." 하고 거절했대  근데 그 여자가 너무 간곡히 부탁하더라는 거야 꼭 내리시라고. 그냥 무시해버리고 말았을수도 있지만, 느낌이 이상해서 다음 정거장에서 바로 내리셨대  그리고 다음 버스를 타고 가면서 대체 뭘까...하고 의아해 했는데.. 그렇게 가다가 글쎄 앞전 버스가 사고가 난걸 보게 된 거야.. 이미 시간상으론 꽤 지난거지  나중에 전해 듣기론 2명인가가 죽고, 나머지 승객들도 중경상을 입었대  소름이 돋아서 아버님이 혹시 승객중에 갓난아기와 애엄마가 없는가 알아봤지만, 그런 사람은 전혀 없었대  그 사이에 내린건지 아니면 사람이 아닌 무엇이었는지, 아무튼 자길 살리려는 의도였다고 생각하고 산쪽을 향해 절을 하시고 돌아갔대  그리고 기억 속에서 그날 일이 잊혀져 갈 때쯤,  그 젊은여자가 아버님 꿈에 나왔대, 품엔 여전히 그 갓난아기를 안고 있었는데 그 여자는 아무 말도 안하고 그냥 멀찍이 서있더래  그렇게 마주보고 서 있는데 그 여자 품속의 아기가 바닥으로 툭 뛰어내리더니 아버님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오더래  그런데 애가 걸음을 뗄 때마다 몸집이 커진다 싶더니 점점 형상이 변해서 아버님 눈앞에 왔을 땐 커다란 호랑이가 돼 있더라는 거야  꿈이지만 아버님은 호랑이가 무섭다거나 두렵진 않고, 경외심 같은게 들었대  그러고는 그 호랑이 앞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고 절을 올렸대.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대  잠시 그러고 있는가 싶더니 호랑이가 앞발을 슥 들어서 아버님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 그렇게 잠에서 깼대  그리고 얼마 후 언니가 태어났는데, 아버님은 이게 보통 꿈이 아니다 이 언니는 큰 인물이 될 거다 이 아이를 위해 신이 날 살린거다 라고 생각하고 지극정성으로 키웠대  근데 나이를 들어갈수록 자길 너무 실망시켜서... (혼전 임신에.. 자퇴에..) 내가 잘못 생각한걸까? 그냥 우연히 일어난 일들에 내가 의미를 부여한걸까? 하고 자괴감에 빠지셨다가 세월이 흘러서야 이 모든게 동동이를 위한 거였다는 생각이 드셨다는 거야  실제로 언니가 동동이를 낳을 때도 아버님이 태몽을 꾸셨는데, 그때도 호랑이꿈을 꾸셨대  그러면서 언니를 잘 타이르더래.  어려운건 내가 발벗고 다 도와주겠다.  하지만 동동이만은 니 손에서 떼놓지 말아라. 저 앤 필시 크게 될거다 라면서  솔직히 언니는 그 이야길 듣고도 아버님 말을 안 믿었대  그래도 아버지가 저렇게까지 하시는데 (아버지도 당시 몸이 성치 않으셨다고 하더라) 나도 거기에 순응해야한다 싶어서 이 악물고 버텨서 여기까지 온거래  그런데, 그로부터 근 십여년이 지나고서야 아버지의 꿈 얘길 진짜로 받아들이게 된 일이 얼마전에 있었대  이 언니가 현재 옷장사를 해.  사업수완도 좋고 언니가 눈에 불을 켜고 공부하고 발품 팔아서 점점 단골도 많이 확보하고 자리 잘 잡아가고 있거든  근데 단골 손님중에 신기가 좀 있는 사람이 있대  본인이 밝힌건 아닌데, 말투나 행동들로 어렴풋이 짐작했대  어느날은 이 손님이 또 와서 물건을 사고 계산 할 때에 언니한테 "고민이 많지?"이러고 슬쩍 말을 걸었대  깜작 놀라서 왜 그런걸 묻냐고 하니까  "지금 언니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이런건 함부로 말하면 안돼서 많은 말은 못해주겠는데, 언니가 가장 궁금해하는거 딱 하나만 물어봐, 내가 가능한 선에서 답해줄게"  이러더래  언니는 앞뒤 안보고 "우리 아들의 장래가 걱정돼요" 라고 한마디 했대  그러니까 이 신기있는 분이 이런 말을 하더래  "언니, 언니는 지금 호랑이 새끼를 낳았네. 조상님이 덕을 쌓으셔서 점지받았어  그 애가 혼자 힘으로는 못 걸을지언정, 손가락 하나로 사람 100명을 부리게 될거야.  아이한테 해주는 만큼 몇백배로 돌아올테니 조금만 참아"  동동이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안했었는데 이런 말을 들으니까 소름이 돋더래  그리고 그 분은 복채를 받아야 한다며 언니 소지품 중에 하나를 가져갔대  근데 이게 영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닌게, 동동이가 비록 몸은 성치 않아도 애가 귀신같이 똑똑하거든. 나도 얘랑 몇번 대화 하면서 정말 놀랐어 기억력도 비상해서 한번 보고 듣고 읽은건 정확히 기억하고, 체스라던가 카드게임 같은 것도 항상 이겨 애가 머리를 쓰면서 전술을 짜더라고;  한글이나 영어도 따로 교육한 적이 없는데 책 좀 보고 관련 방송 보면서 혼자서 터득해가는 수준이고 하여튼 얘가 물건이긴 물건이다 싶었어....  완전 두서없지만...이 언니가 남달리 아들을 사랑하고 고생해온걸 조금이나마 봐 와서 그런가 저 말이 진짜였으면 좋겠더라  그날 언니네 아버님이 본 건 역시 신이 아니었나 몰라....  PS. '공포'와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이야기라 여기에 맞는 글인지 판단이 안 서네 ㅠㅠ 이런 신기한 경험 유형의 글도 괜찮을까? 안 맞는 글이면 부드럽게 태클 넣어줘! [출처] 외커 _________________ 뭔가 할머니가 밤에 자기 전에 해줄 법 한 이야기지 않아?ㅎㅎ 그간 언니는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정말 그 무속인의 말이 진짜였으면 좋겠다 약간 전생 이야기 볼 때 마다 슬프더라고 왜 전생의 덕을 후생에서 누리고 전생의 잘못을 후생에서 책임져야 하는지 그냥 현생에서 고생하면 나중에 현생에서 돌려 받으면 얼마나 좋아 그냥 그런 이야기 같아서 가져와 봤어 부디 많이 아프지 않기를 나중에는 다 웃을 수 있기를!
퍼오는 귀신썰) 김중사의 사랑법
연휴도 끝나가고 이리저리 지친 사람들 많을까 싶어서 급히 또 다른 귀신썰 하나 더 가져왔어 좀 길긴 한데 읽다 보면 어느새 끝나 있더라 시작 부분은 너무 설명이 많아서 그냥 날릴까 하다가 그래도 쓰니가 열심히 쓴거니까 뒀거든 군대 설명 글이니까 1은 넘기고 2부터 봐도 될거야 그럼 오늘도 같이 볼까? _______________________ 1 이 이야기는 실화다. 나와 같은 시기에 전방 *사단, 그 부대에서 근무했던 이라면 이 이야기를 알 것이다. 아니 알지는 못해도, 들어보기는 했을 것이다.  여성독자와 군대를 경험하지 않은 남성독자를 위해 설명드리자면, 박정희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 쿠데타든 내전이든 작은 규모로나마 '전쟁' 혹은 그와 유사한 소요를 일으킬 수 있는 단위가 사단이다. 사단 밑에 연대가 있고, 연대 밑에 대대가 있다. 이것이 면회를 가거나 국도변에서 지나치는 가장 일반적인 '부대'가 바로 이 대대다.  연대는 3개의 대대로 이루어져 있는데, 예외가 없는 한 일반적인 보병 대대는 5개의 중대로 나뉘어 있다. 1대대라면 1, 2, 3, 4중대에 본부중대가 더해진다. 2대대라면 5, 6, 7, 8 중대다. 3대대의 중대번호는 당연히 9, 10, 11, 12다. 당연히 2대대와 3대대도 좋게 보면 브레인, 나쁘게 말하면 잡무쟁이들의 집합소인 본부중대를 갖고 있다. 이 중 4, 8, 12 중대는 화기중대다. 박격포와 K-4등, 미사일을 다루는 전문가들 눈에는 우습겠지만 뼈와 살로 움직이는 (그리고 소위 딱총이라 불리는 소총을 들고 다니는)보병들에게는 무시무시한 무기를 운용한다. 화기중대는 적진에 포탄을 쏟아부으면서 보병중대의 공격과 후퇴를 돕거나, 보병중대가 토끼몰이해 갖다바친 적 병력을 싹쓸이하는 역할을 한다. 중대는 축소판 대대다. 보병대대에 화기중대가 있듯이 보병중대에도 화기소대가 있다. 가장 작은 단위라 할 수 있는 분대에도 (웬만한 병장 전역자들은 한 번쯤 분대장 짓을 해봤다 보면 된다.) 화기부대의 역할을 하는 인원이 있다. 기관총 사수와 유탄('쏘는 수류탄'에 해당한다.)발사기 사수다.  그러나 일반적인 육군부대에서 고되기로 따지면 화기중대원과, 보병중대의 화기소대원을 따라갈 보직이 없다. 김중사는 내가 근무한 대대의 3중대 화기소대 선임하사였다. 계급은 말 그대로 중사. 이름은 밝히고 싶지 않다. 그에게 조금의 예의를 갖추고 싶기 때문이다. 2 김중사는 소위 '체질'이었다. 사회에서 고생을 많이 해서였을까. 그는 스스로도 '먹여주고 재워주고 까라면 까면 되는' 군대란 곳이 세상에 있다는 게 굉장한 일이라고 했다. 까만 얼굴에 웃으면 흰 이가 시원하게 드러났다. 그러면 눈가에 사람 좋아보이는 정말 멋진 주름이 잡혔다.  액수를 들으면 깜짝 놀랄 정도로 적은 중사월급을 타면 위수지역(부대 근처, 오락활동 등이 허락된 민간지역)에 외출외박 나가는 병사들에게 고기와 소주를 아낌없이 쏘곤 했다. 가끔 군기를 잡는다고 기합을 줄라치면 미안해서 자기가 먼저 울어버리는 그런 인간이었다. 김중사는 가만히 있는 법이 없었다. 땡볕에 포와 기관총 사이를 뛰어다니고 주말이면 웃통을 벗고 축구를 했다. 그는 장교들과 하사관(요즘은 부사관이라고 하지만)이 BOQ(장교숙소) 대 BEQ(하사관숙소)로 자존심대결을 할 때면 대학물 먹은 희멀건 소위들을 농락했다. 그래도 할 일이 없으면 일을 만들어 했다. 총기다이와 포다이(총기와 박격포를 세워놓는 거치대)는 그의 작품이었다. 재료를 고물상에서 주워왔지만, 결과는 훌륭했다.  휴게실에서 병장들은 김중사가 쇠파이프 양끝에 시멘트를 굳혀 만든 역기를 들었다. 전역하는 말년 병장들을 위해 나무를 깎아 소소한 기념품들을 만들기도 했다. 김중사는 일등사수였고, 그의 밑에서 쏘는 포는 빗나가는 일이 없었다.  한마디로 착한 구석이 너무 많은 것만 빼면, 완벽한 군인이었다. 군대가 그를 사랑하듯이 그도 군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중사는 군에서 가치있는 인재였다. 사회에서는 그런 가치를 부여받을 수 없었다. 그는 고아였다. 등에 오래된, 바둑판처럼 얽은 끔찍한 흉터가 있었는데 어렸을 때 생긴 것이라 했다. 인간이라 불릴 자격이 없는 어른들에게 학대당한 흔적이었다.  그는 어떤 어린시절을 보낸 걸까... 김중사는 어찌어찌해서 농업고등학교를 나와 군에 자원했다. 고아에게는 징집영장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자원하면 갈 수 있다. 나처럼 <남의 집 귀한 자식>으로 태어나 먹물 좀 묻힌 놈들과는 반대로, 그에겐 군대에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말뚝'을 박아 하사관이 되었다. 김중사는 행복해 보였다.  그에겐 사치스런 취미도 있었다. 비록 간간히 구독하는 오토바이 잡지에 실린 걸작들은 아니지만, 거의 전재산이라 할 수 있는 125cc짜리 오토바이가 있었다. 당시 백만원이 조금 넘었던 대림혼다 VF. 아마 125cc짜리 오토바이를 그보다 잘 관리하고, 잘 몰 수 있는 인간은 세상에 없을 것 같다.  그는 주말이면 상기된 표정으로 VF를 몰고 위수지역으로 애인을 만나러 갔다.  그렇다, 그에게는 애인도 있었다.  3 김중사의 애인은 다방 레지였다. 그녀는 김중사보다 나이가 많았다. 연상연하 커플. 그녀에겐 김중사와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그녀도 고아였다.  그녀도 파릇파릇할 때는, 잘 나가는 화류계 여성이었다 한다. 그러나 늙어갈 때마다 더 가난한 남성들이 드나드는 낮은 등급의 업소로 쫓겨가기도 하고, 팔려가기도 했으리라. 그녀의 몸이 가진 경제적 가치는 빠르게 하락했다. 하향곡선의 종착역은 가난한 전방 군바리동네의 다방이었다. 김중사는 그녀의 단골이었다. 마음에 들었는지 돈없는 병사들이 시켜먹는 오렌지주스나 커피 따위가 아니라 단가가 많이 남는 국산양주를 시키곤 했다. 그러다 그녀를 쫓아다니기 시작했고, 얼마 안 가 애인이 되었다. 애인이 되었어도, 그녀는 자신을 외로운 군인의 위안부 정도로 생각했었을지 모른다. 김중사가 자랑스레 밝힌 얘기지만, 그가 실처럼 얇은 금반지를 약혼반지라고 내놨을 때 그녀가 그렇게 놀라고 또 감격했다고 한 걸 보면 말이다. 워낙 흔한 이름의 다방이었다. 스타벅스를 별다방이라고 부르니까 그 다방을 스타벅스라고 부르기로 한다. 상호의 'ㅂ'자가 오각형 별모양으로 되어 있는 가게였다.  성매매 혹은 유사성매매에 거부감이 있는 분이 있다면 미안하다. 나도 그 다방에서 물탄 주스를 마시며 나보다 나이 많은 여종업원에게 누나 누나 하며 귀여운 척을 했으니 할 말은 없다. 어쨌든 같은 부대 상관의 애인이 일하는 업소다. 매상을 올려주는 건 신성한 의무였다. 다만 당연한 얘기지만, 상관의 약혼녀를 지명하는 것은 금기였다. 물론 그와 상관없이 그녀는 이런저런 손님들에게 음료수와 웃음을 팔아야 했고 가끔은 오봉을 들고 스쿠터를 타야 했다.  그녀에겐 빚이 있었고 그 빚은 김중사의 월급도 까먹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래도 두 사람의 미래는 희망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군인아파트 입주 신청한 게 잘 된 모양이었고 그 아파트는 두 사람 모두에게, 진정한 의미로, 최초의 집이 될 예정이었다.  군인은 결혼하는데 돈이 별로 안 든다. 그런 대소사를 지원해주는 군인회관이 있는데다 멋을 내지 않으려고 작정하면 정말 싸게 할 수 있다. 김중사는 병장들과 함께 담배를 피울 때마다 자랑하곤 했다. 결혼하게 되면 오토바이를 타고 경주로 신혼여행을 갈 거라고... 4 '군 위수지역 다방 레지'는 이 사회에서 가장 저층에 있는 계급 중 하나다. 각자의 사연이야 다양하겠지만, 대부분은 몸의 값어치가 깎이며 그 구석까지 흘러들어온 인생들이다.  게다가 이 일은 다분히 불법성을 갖고 있다. 사회는 그들을 방치하거나 그들의 인격을 무시하는데 어떤 부담도 느끼지 않는다. 그 바닥까지 내려오면 연고가 없거나, 연고를 잃어버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은 이 세상의 불법체류자이다. 다루기 쉬운 존재들이다. 그런데 이 징병제 사회는 그런 이들, 레지같은 여성들을 필요로 한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이 눈가리고 아웅하듯 성매매를 방치하고 조장한 것과 비슷하게, 군 당국과 지역의 공권력은 그런 여성들의 존재를 당연시한다. 그네들이 커피도 팔고 가끔은 몸도 팔아야 그 바닥이 돌아간다고 믿는다.  슬프게도 이 믿음은 대체로 사실이다. 그래서 권력은 이 여성들을 '관리'한다. 국군장병의 건강을 보호한다는 나름의 명분을 갖고, 마치 아파트단지에 방역소독을 하듯, 한 지역의 모든 성매매 여성들을 싹 끄집어내 길다랗게 줄을 세워놓고 일괄적으로 검사한다. 성병 검사다. 물론 강제적이다. 인간이 인간을 이렇게 가축취급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서글픈 진풍경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필사적으로 도망가는 여성도 있는데, 심지어 사냥하듯 그물을 펼쳐 붙잡기도 한다. 만약 성병이 검출되면 더 역겨운 인격박탈의 현장이 기다리고 있다. 어쨌든 김중사의 애인도 검사대상에 포함되었다. 검사 결과, 그녀는 에이즈 환자였다.  5 알고 보니 에이즈 환자였던 다방 레지. 그녀와 가장 많이 몸을 섞은 사람은 누구일까. 당연히 김중사다. 지휘관부터 말단 사병까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렇다면 김중사도 에이즈에 걸렸을 가능성이 높다. 부대는 난리가 났다. 소리없는 난리. 군부대 안에 에이즈 환자가 있어선 안 되었다. 전염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는데다가, 무엇보다 장병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 치명적이다. 지휘관 라인의 목이 줄줄이 잘리는 것은 물론이다. 최소한 좌천에 승진 누락이다. 연대장까진 당연하고, 어쩌면 사단장의 신변까지도 괴롭힐 수 있는 사안이다.  거기에 더해 군부대가 큰 규모로, 어떤 식으로든 뒤집어질 것이다.하지만 군대엔 전통적인 해결책이 있다. 묻어버리는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적당한 핑계를 대어 겉보기에 문제없어 보이는(즉 문제가 없다고 주장할 수 있는) 절차를 밟아 사건 자체를 세상에서 지워버리면 된다.  일단 김중사의 혈액부터 채취해 검사해야 했다. 무슨 핑계로? 윗선 어디까지 고스톱을 짜고 쳤는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대대 전체 장병이 참여하는 헌혈 스케쥴이 생겼다. 물론 헌혈은 이 세상을 위한 훌륭한 봉사행위다... 그런데 헌혈은 깨끗한 피를 가진 장병만 할 수 있으므로, 그 전에 먼저 채혈을 해야 한다는 핑계가 만들어졌다. 훈련소에서 다들 한 번씩 거치는 통과의례지만, 군생활 중에 건강상황이 바뀔 수 있다는 구실이 있었다. 모두들 채혈을 했고 이 집단채혈의 목적이 김중사의 피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모두 침묵했다. 조직은 그런 식으로 자신을 유지하는 법이니까. 그리고 김중사의 혈액은, 양성반응을 보였다. 6 김중사는 투명인간이 되었다. 그는 존재하되 보이지 않는 인간이 되었다. 그는 암적인 존재였고 군의 위신에, 그리고 높은 계급장을 단 사람들의 미래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사실상 가하고 있는) 고장난 부품이었다. 그는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군부대 밖으로 나가서도 안 된다. 목구멍에서 삭아 없어지는 생선 가시처럼, 군대 안에서 증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김중사는 일반에 알려지지 않은 비밀스러운 부대에 가야 했다. 아마도 북한군과 마주칠 가능성이 아주 높은. 작전중 죽어도 아무 상관 없는, 연고자 없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부대.  그런 부대가 있다고 한다. 대체 어떤 부대일까... 아니 그보다 김중사는 어떤 최후를 맞게 될까. 김중사가 죽게 될 것이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었다. 아마 북한군의 총에 죽지는 않게 될 것이었다. 누구나 그 정도로 짱구를 굴릴 줄은 알았다. 나는 당시 김중사의 마음이 어땠을 지 가끔 생각해본다. 그에게 군대는 그가 인정받고, 존중받으며 살 수 있는 유일한 무대였다. 김중사는 그 조직이 이제는 온 힘을 다해 자신을 싫어하고, 자신의 존재를 지우려고 한다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무디지는 않았다. 그러나, 에이즈 환자가 밖에 나가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굴복할 수밖에 없었고 사실 그에겐 굴복할 자유밖에는 허락되지 않았다.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는 되지 않는 법이다. 김중사를 원하는 곳으로 보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고 그는 BEQ의 방에 연금당했다. 방문에는 자물쇠가 걸렸다. 누구도 에이즈 환자와 접촉해서는 안 되었다. 그는 더럽고 위험한 존재였으므로 선임하사들은 그가 있는 공간을 피해 내무반에서 병사들과 함께 잤다. 그는 거기서 긴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무도 그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누구나 그를 알았지만, 그를 전혀 모르는 것처럼 행동했다. 나 역시. 그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 김중사가 갇혀 있던 하사관숙소에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메이커는 짝퉁이었지만 그래도 진짜 가죽으로 된 김중사의 지갑엔 웃고 있는 김중사와 약혼녀 사이로 핑크색 하트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스티커 사진이 붙어있었다.  그가 창고 안에서 그 스티커 사진을 바라본 시간이 얼마나 되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는 얼마나 자주, 또 오래 그녀를 생각했을까. 자신과 마찬가지로 에이즈에 걸린. 고아의 처지로 비정한 세상을 부유하듯 살아온 두 사람은 우연히 만난 서로에게 자신의 인생을 걸었다.  그러나 그들에겐, 운명에 대한 아무런 선택권도 없었다. 나는 둘 사이에 어떤 절절한 사연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다는 건 알 수 있다. 김중사의 애인도 격리수용을 앞두고 있었다. 업소 외에는 오갈곳 없는 여자가 에이즈에 걸리면 '시설'에 가게 되어있다. 자활센터, 보살핌방 등 무척 좋은 간판을 걸고 있지만 시설의 목적은 단순하다. 바이러스의 숙주를 가둠으로써, 즉 사회에서 지워버림으로써 사회를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는 숙주가 서서히 죽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그곳으로 끌려갈 때까진, 그녀가 일하던 다방에 머무는 수밖에 없었다. 행정처리 때문인지 자리가 나지 않아서인지, 당장 끌려가진 않았나보다. 다방 마담과 동료 레지들은 '나쁜 피'로 가득찬 폭탄을 끌어안게 되었다고 생각했으리라.  자유인으로 보내는 마지막 며칠 동안 그녀도 투명인간이 되었을 것이다.  7 두 연인은 이별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미 생이별을 한 상태였고, 두 사람이 다시 만나는 일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세상이 인간에게 그런 짓을 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마 김중사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BEQ에 감금된 지 며칠이 지났을 때였다. 고요한 BEQ에서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간부 숙소는 지휘통제실 근처에 있고, 지휘통제실은 위병소(군부대 대문) 근처에 있다. 그 소리는 위병소를 지키는 초병의 귀에도 들렸다. 몇 초 후, 초병은 김중사가 눈을 부릅뜨고 쇠파이프와 비닐하우스 천으로 가설해 만든, 출퇴근하는 간부들이 승용차를 세워두는 조그만 부대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주차장 구석에는 김중사의 VF도 있었다. 그는 BEQ에 있던 역기로 자물쇠를 부수고, 창문을 깨고 튀어나온 것이었다. 오토바이에 시동이 걸렸다. 평일이었고 군 장병은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되었다. 아니 그것보다, 군대에서 감추고 묵혀야 할 에이즈 환자다. 존재하지 않던 인간이 갑자기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초병은 어째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김중사님, 나가시면 안 됩니다." "저리 비켜 이새끼야!" 그 살기등등한 모습에 초병은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무슨 행동을 해야 좋을지, 생각할 틈도 없이 김중사의 오토바이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사라져갔다. 김중사는 애인을 만나러 갔다. 증거는 없지만 나는 확신한다. 그 뒤에 일어날 일들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애인을 만나지 못했다. 빠른 속도로 신호등도 없는 시골의 흙바닥 사거리 코너를 돌 때, 마을버스가 김중사와 그의 오토바이를 덮쳤다. 그의 몸은 버스 밑으로 빨려들어갔고, 버스 차체와 오토바이에 처참히 칮눌렸다. 충격으로 분해된 오토바이의 부속품들이 그의 몸을 톱니처럼 갈아버렸다.  김중사는 즉사했다.  8 이 대목은, 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았으므로 전해들은 이야기를 옮겨보겠다  - 김중사의 몸이 산산조각난 시각은 오후 1시 경이다. 그런데 그의 연인은, 오후 2시에 그를 만나 이야기를 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야기를 '했다고' 주장했다. 오빠가 다방으로 불쑥 찾아왔다는 것이다. 테이블에 앉아 자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없이 웃고만 있더라는 것이다. 묻는 말엔 대답도 안하고 무작정 잘 있으라고, 자긴 괜찮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렇게 한 시간을 대화 아닌 대화를 하고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시각 다방에 있었던 동료들의 말은 달랐다. 김중사의 애인은, 혼자 테이블에 앉아 허공을 바라보며 혼자 중얼중얼 말을 했다고 한다. 마치 맞은편에 누가 앉아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 날, 그녀는 김중사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물론 믿지는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나랑 만났을 때가 2시인데. 그럴 리가 없어요. 오빠는 살아있어요 -  그녀는 나이 어린 연인을 오빠라고 불렀다  - 그러나 사람들은 그녀에게 부정할 수 없는 죽음의 증거들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저녁 내 미친 사람처럼 횡설수설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밤, 그녀는 다방 천장에 목을 매달았다. 테이블에 의자를 올려놓고, 그 의자 위에서. 밧줄처럼 엮은 속옷을 샹들리에를 모방한 조명에 걸고서...  원피스 차림이었다 한다. 나는 그 자리를 안다. 참으로 싼티나는 빛을 내는 그 장미 모양 조명은 반지하 다방의 한 가운데에 있다. 나도 그 테이블에 앉아 본 적이 있다. 자주색 나는 싸구려 인조가죽 소파와, 인근 소매점에서 뭉치로 사왔을 게 분명한 올록볼록한 싸구려 냅킨 다발과... 플라스틱으로 된 설탕과 프림 종지, 그리고 맹물에 꽂힌 티스푼. 그 위로 - 사람은 목이 졸려 죽으면 오줌을... 남자는 정액을 흘린다고 한다 - 그녀의 체액이 후두둑 떨어지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9 미래의 남편과 미래의 아내가 죽었고 두 사람을 경주로 데려다 줄 예정이었던 오토바이도 고철이 되었다. 우리 부대의 입장에서는, 사건이 해결되는 최상의 방식이었다. 김중사는 근무지를 무단이탈했고, 스스로의 과실로 죽었다. 군은 그의 죽음에 아무런 책임이 없었다.  버스는 경미한 흡집만 났으며 운전자도 승객도 무사했다. 도로교통법상 오토바이 우대가 없던 때였다. 신호등이 없는 곳에서는 직진 우선이다.  김중사는 오직 자신의 잘못으로 스스로를 '삭제'했다. 군대는 그가 남긴 잔해를 치우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김중사는 연고가 없다 - 이는 군에 엄청난 편의를 제공한다. 사망사건에 대한 해명, 그럴듯한 장례, 보상문제, 이런 것들은 죽은 장병의 연고자가 있을 때나 발생한다.  천애고아가 죽었을 뿐이니 간단히 마무리만 하면 된다. 처참하게 이겨진 시신을 수습할 필요도 없었다. 분향소도 장례도 필요 없었다. 그저 치우기만 하면 되었다...  김중사의 시신은 부대 소각장에서 태워졌다. 시신을 깨끗한 재로 만들려면 굉장한 고열이 필요하다. 야매로 만든 소각장에서 잘 태워질 리가 없다. 3중대 병사 몇 명이 재가 되다 만 덩어리를 간간히 삽으로 부수며 태우고 또 태우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남은 가루를 훈련에서 복귀할 때 지나치는 행군로 옆에 가져다 흩뿌렸다. 김중사는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를 제외하면, 모두가 원하는 바였다. 그러나 그의 영은 떠나기를 거부했던 것 같다. 10 새벽 3시에서 4시 사이. 3중대 화기소대 야간근무자는 행정반 옆 화장실에서 물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화장실 간다고 나간 사람은 없었는데? 있었다면 모를 리가 없다. 내무반에서 화장실로 통하는 문은 하나밖에 없고, 바깥 문은 폐쇄되어 있다. 그렇다면 행정반을 지키고 있는 일직사관과 일직하사가 화장실에 간 게 아니겠는가? 어떤 기척도 들리지 않아 이상했지만... 보초는 슬쩍 문을 열어 유리창을 통해 행정반 안을 보았다. 일직하사와 일직사관은 고개를 쳐박고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다. ... 어떻게 된 일일까?  군대물 쭉 빠진 병장 하나가 보고도 하지 않고 슬쩍 소피를 보러 간 걸까? 하지만 어떻게 알아채지 못할 수가 있지?  초병은 자고 있는 인원의 머릿수를 몇 번이나 세어보았다. 아무 이상 없다. 그렇다면, 화장실에 있는 누군가는 외부인이다. 초병은 화장실에 들어가 외쳤다. "누구십니까?" 그리고 대변기 문 칸을 차례로 두들겼다.  칸 하나의 문이 잠겨있다. 똑똑똑. "누구십니까?" 대답이 없다.  고참이거나 간부일 수도 있는지라 점프를 해서 내려다볼 수도 없다. 허락없이 윗사람의 똥과 자지를 봤다간 군생활 꼬인다.  해서 할 수 없이 몰래 고개를 숙이고 문 밑 틈을 봤다. 신발이 보인다. 문제의 인물은 초A급(군에서는 새것을 A급이라고 부른다.) 활동화(군 보급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활동화가 새것인 걸 보면 이등병인가? 아니다. 훈련소를 거쳐야 이등병이 된다. 활동화가 걸레짝이 되는 덴 입대하고 보름이면 충분하다. 새 활동화를 가진 병사는 소대에 아무도 없다. 구질구질한 군대에서 그런 쌔삥은 너무나 눈에 잘 띈다. 대체, 누구란 말인가.  결국 초병은 점프를 해 턱걸이하듯 칸 안을 내려다보았다. 안엔, 아무도 없었다. 그제야 초병은 생각해냈다. 생색만 내는 보급행정. 소대 전체에 내려온 새 활동화 딸랑 한 켤레를, 김 중사가 보급받았다는 사실을. 다음날 초병은 귀신을 보았다는 헛소리를 한 죄로 군장을 돌았다(완전군장을 하고 연병장을 무한워킹하는 얼차려를 말한다.).  그러나 공포는 쉽게 전이되었다. 모두에게 친절했지만 모두에게 존재를 외면당한 김중사... 그 끔찍한 죽음. 그 한이 어느 정도였을지 예상할 만한 상상력은 누구에나 있었기에, 3중대는 공포분위기에 휩싸였다. 공포에 화답하기라도 하듯 사건이 연이어, 밤마다 터졌다...  야간근무자는 쳇바퀴돌듯 내무반의 양쪽 침상 사이의 직사각형 공간을 왔다갔다 가로지른다. 그날의 초병은 한쪽 끝 문앞까지 가서 다시 동작을 반복하려고 뒤를 돌아서는 순간, 저쪽 끝 포다이에 걸터앉아 있는 김중사를 보았다. 생전에 김중사가 깎아 만들었던 포다이... 김중사가 말없이 손짓을 한다. 마음은 공포로 터질 것 같은데도, 초병의 몸은 그 손짓에 이끌려 갔다. 결국 김중사 앞에 다가섰고, 그와 눈이 마주쳤다. 몸은 얼어붙었는데 김중사의 손이 얼굴을 향해 올라왔다고 한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손이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고, 그는 기절했다. 군대의 야간근무는 전 근무자가 후 근무자를 깨우면서 로테이션하는 시스템으로 되어 있다. 어차피 피곤한 몸인지라, 깨우지 않으면 그대로 쿨쿨 자게 마련이다. 결국 김중사를 본 병사가 그날의 마지막 근무자가 되었다. 그는 아침에, 내무반 바닥에 널부러진 채로 발견되었다. 중대는 무섭게 동요했다. 결국 병장들이 총대를 메기로 했다. 당분간 병장들만 근무를 서기로 한 것이다. 병장의 수가 한정되어 있었기에 말년도 예외가 없었다. "*** 병장님" 후임 병장이 몸을 흔들며 깨우는 소리에 눈을 뜬 말년 병사  - 그러나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건, 후임이 아니라 김중사였다. 어두운 내무반에 있는 공포를 못이겨 밝은 행정반으로 뛰어간 병장도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일직하사와 일직사관은 꿈나라에 가 있었다. 문제는, 김중사가 자고 있는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는 거다. 병장의 몸이 얼어붙었다. 그리고 김중사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더니, 병장의 얼굴을 바라보더라는 것이다. 11 패닉. 광기에 가까운 공포가 3중대를 휩쓸었다. 특히 화기소대원들은 넋이 반쯤 나가있는 상태였다. 모두들 내가 김중사에게 무슨 잘못을 했을까 반추해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다들 알고 있었다. 모두의 잘못이었고, 예외는 없었다  - 침묵한 죄. 한 번도 죽은 자의 입장에 서 보지 않은 죄. 공포는-그리고 사건은- 중대 바깥까지 확산되었다.  원래 외부순찰은 일직사관과 일직하사가 함께 돌게 되어 있다. 그런데 간부인 일직사관은 순찰을 일직하사를 맡은 병사에게 떠넘겨버리고 자는 경우가 많다.  귀신 이야기가 돌자 겁이 난 일직사관들은 평소처럼 예의 졸립다는 핑계를 대고 일직하사들을 밤의 공포에 혼자 남겨두었다. 그날 분대장이었던 나는 일직하사 근무를 서고 있었고, 선임하사는 내가 깨웠는데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일어나지 않았다기보다는, 눈을 감은 채 손짓으로 내게 나가라는 표시를 했다.  외부근무는 기본적으로 위병소, 탄약고, 대공초소를 지킨다. 이 중 가장 공포를 자아내는 장소는 대공초소다. 대공초소란 말 그대로 기관포를 얹어 놓고 적의 군용기나 헬기 등, 공중공격에 대비하는 곳이다. 당연히 위쪽 시계가 뻥 뚤려있어야 하고, 부대를 지키는 대신 초소가 독박을 쓰려면 높은 장소여야 했다. 그러다보니 산 속 오솔길을 한참이나 걸어올라가야 산구석에 외롭게 쳐박힌 대공초소가 나온다. 나는 혼자서 이 오솔길을 올라갔다. 낙엽 밟는 소리에, 귓가를 스치는 마른 나뭇가지에 긴장하면서. 대공초소가 저 멀리 눈앞에 보였을 때, 다른 중대 아저씨들(일반적인 육군은 중대가 다르면 계급에 상관없이 서로 아저씨들이다.) 두 명이 내게 반들어 총 자세로 우렁차게 경례를 했다. 사병 혼자서 올라오는데 웬 경례인가. 가까이 가서 근무 이상 없냐고 물어보려는데 내게 묻는 것이었다. "어? 일직사관님은 어디 갔습니까?" "네? 저 혼자 순찰 도는 중인데요." "에에, 그럴 리가. 올라오는 후레시 불빛이 두 개였잖아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제가 왜 후레시를 두 갤 갖고 다니겠어요." "아니 그럼 나머지 하나는..." 일순간 우리 세 사람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바로 어제 있었던 일이다. 순찰자가 탄약고 가는 길에 김중사를 봤다며 실성한 일이...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나와 함께 오솔길을 올라왔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온 몸의 털이 다 선 듯 했다. 나는 대공초소 근무자들에게 거짓말하지 말라고, 농담하지 말라고 했지만 - 그들은 진심이었다. 그리고 그들도, 나와 똑같이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그럼 불빛이 언제 하나가 되던가요?" "가까이서 얼굴을 비추면 하나건 둘이건 할 것 없이 그냥 무작정 눈부시잖아요. 그러고나서 보니... 아저씨만 있어요." 제기랄. 나는 선언했다. 나 혼자 이 오솔길, 못 내려갑니다. 여기서 사이좋게 밤 새던가, 아니면 아저씨들 중 한 분만 같이 제가 내려갈 때까지 동행합시다. "아니 그럼 우리 중 하나는 올라올 때 혼자 올라와야 되잖아요?" "그건 그렇죠... 그렇다고 지금 절 혼자 보낼 겁니까?" 두 병사는 내 입장을 이해했다. 공포는 전 부대를 짓누르고 있었다. 너나 할 것 없었다. "그럼 우리 둘 다 동행할 테니까, 부대 불빛이 보이는 길 중간까지만 내려가요.  혹시 딸,딸이(군 내부회신 전화기. 딸,딸거리는 소리가 난다.) 울리면 늦지 않게 뛰어가서 받아야 하니까요." "그렇게 하죠..." 우리는 길 중간에서 헤어졌다. 서로의 건투를 빌며...  그러나 나의 건투상황은 좋지 않았다. 오솔길을 다 내려오는 참인데, 내 뒤에, 정확히는 내 목 뒤에, 무언가가 붙었다. 차갑다. 소름이 돋는다.  미끈한 질감으로 뭉쳐진, 농밀한 공기... 온 몸의 털이 수직으로 기립하는데, 그 스멀스멀한 것이 옷깃 틈으로 들어갈 것처럼 착 달라 붙어서는 울렁울렁댄다. 풀리는 다리에 애써 힘을 주고 한 칸 한 칸, 흙계단을 내려간다.  그리고, 그 때. 나는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내 전투모가 스윽 하고, 뒤로 돌아갔다. 전투모 챙이 거꾸로 되도록... 그 다음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나는 중대 행정반으로 뛰어갔다. "어어어" 나는 짐승같은 소리를 지르며 행정반 바닥에 널브러졌다.  살았다. 이젠 살았어.  안에는 행여 김중사를 만날까 겁이 난 근무자가 도망쳐와 커피믹스를 마시고 있었다. 치사하게 자는 척 했던 일직사관과 함께. 두 사람은 나를 한참이나 멍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한편, 스타벅스 다방에선 김중사의 애인의 모습이 나타났다고 한다. 처음엔 다방 천장에 목이 매달린 그 모습 그대로, 원피스를 휘날리며 휘적휘적 시계추 운동을 했다고 한다.  그 다음엔 아무도 없는 테이블에 물끄러미 앉아있었다 한다. 그 모습을 본 이가 아무리 도망치려고 해도, 기어코 눈을 마주친다고 했다. 그러면 그녀는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우리 오빠 어딨어요?" 12 나는 즉시 '근무거부자'가 되었다. 배 째십시오. 영창? 가겠습니다. 빨리 보내주시죠. 하지만 나는 영창에 가지 않았다. 영창 갈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원칙대로라면 부대를 반 이상 비워야 하는데,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 사건은 최소한 연대장에게까지 보고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결코 이슈화될 수 없는 사건이었다. 군대는 효율과 과학을 신봉하는 조직이다. 결코 '공식'적으로는 보고될 수도 없고, 보고되어서도 안 되는 사항이다. 그렇다면, 어찌할 것인가. 구원은 엉뚱한 곳에서 왔다. 자대배치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등병이 대대장 면담을 신청했다. 면담내용을 간단히 재구성하면 이렇다. - 저희 어머니가 한 번 통화하자고 하십니다. 자네 어머니가 왜? - 어머니한테 부대 일을 말씀드렸는데... 직업이 무당이십니다. 대대장은 당장 이등병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님의 요구조건은 단순했다. 백일휴가를 좀 빨리 보내줄 수 없느냐는 것. 그게 다였다. 처방은 휴가에서 복귀하는 아들 편으로 보내준다는 거였다.  모든 백일휴가가 꼭 딱 입대 100일 만에 떨어지진 않는다. 그 '즈음'인 경우도 얼마든지 많다. 당연한 말이지만, 무당 어머니도 어머니다. 군에 간 아들을 며칠이나마 일찍 보고 싶었던 것이다. 며칠 후, 이등병은 묘한 처방을 들고왔다. 13 첫째, 김중사의 애인의 시신도 태워라. 두 사람의 재를 한데 섞어라. 땅에 뿌렸다면 그 지점의 흙을 퍼다가 섞어야 한다. 그렇게 섞인 재를 뿌리되, 뿌리는 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양지바른 남향이어야 한다. 그러나 주변에 다른 이의 산소는 없는 것이 좋다. 그러므로 적당한 곳이 없다면 나무를 치든 어떻게든 해서 장소를 만들어라. 이번 일의 경우 물은 좋지 않다. 특히 흐르는 물은 나쁘다. 어느 정도 흙 속에 묻어서 자연스레 땅 속에 스며들게 해라. 둘째, 염을 외우라. 간부 사병 할 것 없이 3중대 인원 모두가 염을 외워야 한다. 염을 외울 때는 반드시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아야 한다. 염은 적어준 그대로 모두가 합창하면 된다 - 모나미 붓펜으로 휘갈겨 쓴 게 분명한, 이등병이 제 엄마한테 받아온 범상치 않은 필체의 그 염 문구. 셋째, 쑥이 필요하다. 먼저 쑥을 캐서 말리는 게 좋을 것이다. 3중대 장병들이 염을 할 때 모두가 제 몫의 쑥을 태워라. 쑥 연기가 원혼을 진정시켜 줄 것이다. 14 김중사의 연인의 시신은 경찰이 보관, 아니 떠맡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시체안치소에 있었는데, 한마디로 '처치곤란'이었다.  이렇게 연고 없는 시신은 보통 해부학 실습용으로 소모된다. 그러나 HIV 바이러스에 감염된 시신이다. 이 바이러스는 공기중에서는 몇 초 안에 죽어버리지만, 그래도 영 께름즉했던 모양이다. 시신은 냉동밀봉된 채 방치되어 있었다고 했다. 군부대가 이 애물단지를 달라고 하자 그 뒤의 절차는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냉동된 시신은 곧 재가 되었다. 문제는 김중사의 재였다. 3중대가 떠맡는 수밖에 없었다. 야밤에 중대장과 병장들이 몇이 삽을 들고 재를 버린 곳으로 몰래 갔다.  그날 밤은 하필 비가 내렸다. 재를 버린 곳, 그 일대의 흙을 모두 파야 했다. 판초우의를 뒤집어쓰고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서걱서걱 삽질을 하는 어두운 표정의 사내들. 저들의 편의를 위해 한 사람의 죽음을 땅에 묻었다가 이번에는 스스로의 안위를 위해서 다시 끄집어내려는 슬픈 군상들.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김중사를 흩뿌려놓은 땅인가. 그걸 알려주기 위해서였을까. 갑자기 빗물을 머금은 땅에서 부글부글, 흰 거품이 솟아올랐다. 시신을 태운 재였다.  그 때였다. 병장 하나가 털썩 주저앉아 흐느꼈다. "으흐흐흑.... 김중사님 죄송합니다..." 그랬다. 김중사는 누구에게도 잘못하지 않았다. 귀신이 되어 나타났어도, 그 모습에 공포를 느꼈어도, 그는 살아서든 죽어서든 누구도 해꼬지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 그를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하나가 되어 땅에 파묻었다. 누군가는 순조로운 승진을 위해, 누군가는 무탈한 군생활을 위해... 아무도 주저앉아 있는 병장에게 무어라 말하지 못했다. 모두들 동작을 멈추고 후레시 불빛 아래 비치는 흰 거품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중대장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계속 파." ... 두 사람의 재는 한 데 섞인 채 '적절한 곳'에 뿌려졌다. 그리고, 염... 나는 그 광경을 잊지 못한다. 백 명이 넘는 사내들이 저마다 종이컵에 담긴 마른 쑥을 태우며 염을, 아니 바리톤 합창을 하는 모습을 말이다.  무럭무럭 올라오는 쑥 연기는 막사 지붕 위에서 하나로 합쳐지더니, 낮게 깔린 구름처럼, 하나의 걸쭉한 덩어리가 되어 부대 위를 짓눌렀다. 참으로 그로테스크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진정한 그로테스크함은 아마 살아남은 자들의 꼴에 있었을 것이다. 자신들이 외면한 진실에 대고 이제는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그 무섭도록 서글픈 광경 말이다.  15 그 뒤로 김중사는-김중사의 귀신이라 하든, 환영이라 하든, 뭐라 하든 상관 없으리라-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원체 천성이 착한 사람이라서 그 정도로 한을 풀어준 걸까. 아니면 사랑했던 그녀와 함께할 영원의 여정이 이승에 미련을 두는 것보다 더 중요했던 걸까.  어쨌든 김중사는 드디어 '사라졌다.' 다음해였을 것이다. 폭우에 수해가 나서 주변 농가가 줄줄이 침수되고 연병장에는 시냇물이 생긴 적이 있었다. 그때 야트막한 산들이 많이 무너졌고, 김중사와 그의 연인의 재를 뿌렸던 곳도 물에 휩쓸려 사라졌다.  두 사람의 재는 어디로 갔을까?  아니 두 사람의 영혼은 어디에 있을까? 나는 두 사람의 영혼이 함께이길 빈다. 그리고 행복하길 빈다. 나는 김중사가 후끈한 땀냄새를 풍기며 보이던 눈가의 자잘한 주름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가 그 모습 그대로 웃고 있을 거라고, 나는 무작정 믿어 본다. VF 뒷자리에 연상의 연인을 태운 채, 새하얀 구름 위를 질주하고 있을 거라고. 1차 출처...불명  2차 출처...짱공유닷컴...예비군봉대령 _________________________ 슬프다 먹먹하네... 끝까지 누구에게도 해코지를 하지 않은 착한 사람 그렇게 재주가 많고 좋은 사람이었는데 고아라는 이유로 쉬이 지워지다니 한을 품고도 누구도 다치지 않게 한 사람 아 너무 슬프잖아 ㅠㅠㅠㅠ 사람들은 정말 어쩔 때는 말도 안되게 잔인해 지곤 하니까 특히 어떤 무리 안에서는 더 죄책감 없이 그리 되니까 그리 되는 것을 정말 조심해야 할 것 같아 이제 진짜 새해니까 부디 상처주지 않는 사람이길 상처 받을 일 없기를 바라며 복 많이 받자!
[퍼오는 공포썰] 사이비 종교 끝장낸 썰
코로나19 때문에 다들 많이 떨고 있을 것 같아 걱정이 크네 그릇된 믿음 때문에, 여러모로 뒤가 구린 사이비 종교 하나 때문에 바이러스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구나. 사람들의 불안도 점점 커져서 마스크 값이 폭등하고, 마트에 생필품도 다 떨어졌다면서. 사실은 이 정도로 공포에 떨 것이 아닌데. 조심해서 나쁠 건 하나도 없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까지 공포감을 조성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더 무서운 건 역시나 불필요한 혐오인 걸. 벌써부터 나뉘어서 싸우고 있는 걸 보니 두통이 다 생기더라. (물론 신천지 혐오는 인정ㅋ) 그래서 오늘 가져온 건 (조금 많이 길지만) 우리나라의, 잔인하기로는 비할 바가 없는 한 사이비 종교 이야기야. 정말 어마어마해서 영화화도 된 지라 아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이비 종교에 빠진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혹여 지금 사이비 종교에 빠져 사태 파악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면 돌아보라는 의미에서 가져온 글. 글이 너무 길어서 내가 중간 중간 좀 솎아 냈는데도 여전히 기네. 그래서 중요한 부분은 두꺼운 글로 표시를 했어. 다 읽기 싫은 사람들은 두꺼운 글자만 읽어도 크게 문제는 없을 거야. 그럼 시작해 볼까? _________________________ 세상이 거칠고 강퍅할수록 종교는 힘을 얻는다. 일제의 강압이 날로 심해지던 1930년대, 피폐해진 식민지 백성들의 신산한 마음을 뚫고 ‘영생복락’과 ‘부귀영화’를 약속하는 사이비 종교들이 기승을 부렸다. 이 가운데 온 국민을 경악케 했던 것이 수백건의 살인과 음행이 드러난 이른바 ‘백백교 사건’. 그 참담한 최후의 기록을 살펴보면, 사건의 배경에 가난과 무지, 정치적 부자유에 시달린 반도 백성의 안타까운 현실이 자리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25년, 유곤용은 해주에서 가장 큰 한약국 ‘구명당(求命堂)’의 주인이었다. 본디 그의 집안은 온천이 개발되어 전국적인 휴양지로 번성한 신천에서도 손꼽히는 부자였지만, 30여 년 전부터 뚜렷한 이유 없이 재산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여색이나 주색에 빠진 것도, 투기나 도박에 손댄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유곤용의 조부는 수시로 땅을 팔고, 빚을 얻었다. 유곤용이 해주로 나올 즈음 유씨 집안은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몰락했다. 유곤용의 사업은 성공적이었다. 그는 자신의 고유한 비방으로 약을 처방했는데, 특히 위장병, 임질, 뇌신경질환 치료약 조제에 탁월했다. 10여 년의 관록이 붙은 후 그의 명성은 황해도를 넘어 경기도와 평안도에 뻗쳤다. ‘구명당’은 조선 최초의 한약재 연구소를 설립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나 거칠 것 없이 뻗어가던 유곤용에게도 남모를 고민이 있었다. 1933년 임종하기 전, 조부는 유곤용에게 30년간 지켜온 집안의 비밀 하나를 털어놓았다. “할아비는 장차 너의 부귀와 공명을 위해 근 30년간 백백교를 믿어왔다. 대원님께 의지하여 재물 버리기를 초개와 같이 했다. 그러나 아쉬워 말거라. 할아비가 정성을 다해 교에 바친 재물은 이제 곧 몇 곱절, 몇십 곱절이 되어 네 아비와 네게 돌아올 거다.”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였다. 집안이 몰락한 이유는 허망하게도 조부가 백백교라는 신흥종교를 믿은 탓이었다. 조부의 죽음으로 집안의 비극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부친 유인호는 조부보다 더 ‘독실한’ 백백교 신도였다. 조부가 죽은 후 부친 유인호는 얼마 남지 않은 가산을 정리해 가솔들을 이끌고 백백교 본부가 있는 서울로 이주했다. 재산 일체는 물론 18세밖에 안 된 딸마저 대원님께 바쳤다. 그 대가로 받은 것이라고는 고작 ‘장로’라는 허울뿐인 직함과 왕십리에 있는 허름한 방 한 칸이 전부였다. 유곤용은 헛된 망상에서 깨어나라고 4년을 두고 설득했지만, 유인호의 30년 믿음을 돌이킬 수 없었다. 교주의 애첩이 된 누이동생 또한 백백교의 열성 신도가 됐다. - 1937년 2월10일, 음력 설을 맞아 유곤용은 중대한 결심을 하고 아버지 유인호의 처소를 찾았다. 4년 만에 부친을 만난 유곤용은 무릎을 꿇고 그동안의 불효를 고개 숙여 사죄했다.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대원님을 만나 가르침을 얻고자 한다는 뜻을 전했다. 유인호는 자식의 돌연한 개심이 한편으로는 기특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몹시 불안했다. 유곤용은 어떠한 곤란한 명령이라도 순종할 터이니 제발 대원님을 승안케 해달라며 거듭 부탁했다. 그제서야 유인호는 자식의 진심을 믿을 수 있었다. 유인호의 적극적인 주선으로 2월16일 저녁 8시 왕십리 유인호의 자택에서 백백교 교주 전용해와 유곤용이 운명적으로 만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전용해의 애첩이 된 유정전은 오빠 유곤용에게 대원님을 승안할 때 다섯 가지 계율을 명심해서 지켜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첫째, 절대로 대원님의 얼굴을 쳐다보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든 대원님 앞에서 고개를 들면 안 됩니다. 둘째, 대원님을 뵐 때는 몸에다 아무것도 지니지 마셔야 합니다. 수건 하나 휴지 한 장이라도 주머니에 있으면 안 됩니다. 셋째, 백지장 같은 결백한 마음으로 대원님을 대하셔야만 합니다. 넷째, 대원님께서 물으시는 말씀에만 대답을 여쭙지 오라버니 편에서 무슨 말씀이고 하셔서는 아니 됩니다. 다섯째, 대원님께서 내리시는 분부면 어떠한 것이건 절대 복종을 하셔야만 합니다.” 유곤용은 계율을 지키겠노라 다짐하고 사흘 동안 방에 틀어박혀 근신했다. 교주 전용해는 약속한 정각에 애첩 유정전과 부하 두 사람을 거느리고 나타났다. 검정색 외투를 걸치고, 고동색 모자를 쓰고, 검정색 구두를 신은 차림이었다. 겉모양만 보면 영험한 신흥종교 교주라기보다는 흡사 보험회사 두취(頭取·사장)처럼 보였다. 유곤용은 부친과 함께 뜰 아래로 쫓아내려가 공손히 대원님을 영접했다. 방안에 모여 앉은 얼굴과 얼굴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한참 동안의 침묵이 흐른 후 교주 전용해가 어색한 침묵을 깼다. “따지고 보면 자네와 나는 4년 전부터 처남매부지간인데 오늘에야 비로소 만나게 되는구려. 늦은 감이 있지만 어쨌거나 대단히 반갑소.” 간단한 인사말이 있은 후 주연이 벌어졌다. 한잔 두잔 술잔이 거듭됨에 따라 전용해는 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꺼냈다. “아버지와 누이동생도 이미 서울에 와 있으니 차라리 그대도 가산 전부를 정리해가지고 서울로 오는 것이 어떠한가?” 조부와 부친처럼 속히 재산을 바치라는 말이었다. 유곤용은 긴장한 어조로 완곡하게 거절의 의사를 표했다. “그것도 대단히 좋은 말씀이나 사업이 아직 완성되지 않아서 지금 당장 올라오기는 어렵습니다.” ‘신의 아들’ 대원님의 말씀을 감히 거부하는 것은 백백교 교단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전용해는 격분한 어조로 다그쳤다. “그럼, 내 명령을 복종하지 않겠다는 말이지?” 그리고 옆에 앉은 유정전을 보고 또 한 번 소리쳤다. “네 오라비 잘났다.” 일격을 당한 유곤용은 그제서야 본심을 드러냈다. 지난 일주일간 그가 보인 행동은 교주 전용해를 만나 백백교의 악행을 따지기 위한 연극일 뿐이었다. 유곤용은 “백백교의 교리가 도대체 무엇이냐? 그런 얼치기 종교가 어디 있느냐”며 욕질을 했다. 세상에 나서 그런 욕설을 처음 듣는 전용해는 흥분한 나머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호신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나이프’를 빼어들고 유곤용을 찌르려고 덤벼들었다. 이 순간이 그에게는 천려(千慮)의 일실(一失)이었으니 흉악무도한 그들의 죄상이 백일하에 드러나는 단서가 될 줄이야 악의 천재인 그도 예상치는 못하였을 것이다. 안방에서 소란이 일어나자 대청마루에서 추위에 떨며 기다리고 있던 전용해의 수하들이 교주의 신변 보호를 위해 방문을 박차고 뛰어들었다. 유곤용의 힘은 의외로 강했다. 쇄도하는 수하들을 차례로 물리치고, 전용해의 멱살을 잡아 넘어뜨렸다. 힘으로는 도저히 상대할 수 없음을 직감한 전용해는 죽을 힘을 다해 그의 손을 벗어나 도망쳤다. 수하들도 각자 살길을 찾아 도주했다. 유곤용은 위험을 직감했다. 백백교 교도들이 떼지어 몰려올 것이 분명했다. 그는 동대문서 왕십리주재소에 달려가 사정을 말하고 신변보호를 요청했다. 1930년 소위 ‘금화사건’ 이후 완전히 소탕된 줄 알았던 백백교가 지하로 잠복해 밀교로 이어지고 있음을 알게 된 경찰은 현장으로 수사대를 급파했다. 수사대가 전용해의 집에 도착했을 때, 전용해는 이미 자취를 감춘 상태였지만 전용해의 행방을 찾기 위한 신문 과정에서 의외의 사실이 밝혀졌다. 백백교는 교도들의 재산을 갈취하고 정조를 유린했을 뿐만 아니라, 교단의 비밀 유지를 위해 수백명의 교도를 살해, 암매장한 것이었다. 너무나 흉악한 범죄였기에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경찰은 보도를 전면 금지했다. 경찰은 두 달이 지난 4월13일에야 보도금지를 해제하고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백백교는 이름만은 종교단체이나 그 내용에 있어서는 순전한 사기, 부녀자 능욕, 강도, 살인 등을 거침없이 한 흉악무도한 결사다. 소위 교주된 자와 그 간부가 되는 자들은 우매한 지방 농민들을 허무맹랑한 조건으로 낚아 재산을 몰수하고, 부녀자의 정조를 함부로 유린한 후, 그 비밀을 막기 위하여 수단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살육을 감행했다. 교도 중에서 피살된 자가 사백여 명으로 추정되고, 현재 판명된 자만도 158명에 달한다. 전율할 숫자는 세계범죄사상 전무후무한 범죄기록이 될 것이다. (‘조선일보’ 1937년 4월13일자 호외) 교도의 사체를 파묻은 백백교의 비밀 아지트는 한두 곳이 아니었다. 전국에 산재한 20여 곳의 비밀 아지트에서 모두 314구의 사체가 발견됐다. 살인은 서울 한복판에서도 버젓이 자행됐다. ‘벽력사’ 문봉조는 신당리 자택에서 교도를 살해한 후 대담하게도 사체를 자전거에 싣고 백주에 종로와 남대문을 가로질러 한강까지 내달렸다. 서울에서 살해당한 교도 수십명이 한강물에 던져지거나 마포, 청량리 일대에 암매장됐다. 양주군의 ‘천원금광사무소’는 교도 살해에 이용된 비밀 아지트 중 대표적인 곳이다. 당시 전 조선은 황금 열풍에 휩싸여 있었다. 삼천리 방방곡곡에 금광이 들어섰다. 그러한 시기, 깊은 산골에 세운 비밀 아지트는 금광으로 위장하는 것이 제격이었다. 부근을 금은광구로 출원하고 인근 유지와 관리들을 초청해 성대한 개소식까지 거행했다. 수시로 빈 화약을 터뜨렸기에 바로 인근 주민들조차 그곳이 금광을 가장한 ‘도인장(屠人場)’임을 까맣게 몰랐다. 천포금광 일대에서만 40여 구의 사체가 발굴되었다. 죽을 때 비명이 새어나갈까 우려돼서 화약을 함께 터뜨렸다고 한다. 백백교는 홍보를 위해 폐광이 된 금광에 금을 숨긴 다음에 전용해의 힘으로 금광이 다시 터졌다는 식으로 사람을 모았다. 전용해는 만일을 대비해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았고, ‘김두선’을 비롯한 16가지 가명을 쓰는 치밀함을 보였다. 전용해의 인상착의는 전적으로 체포된 백백교 핵심 간부들의 진술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오랫동안 동거하던 애첩들조차 그의 얼굴을 함부로 쳐다본 적이 없어 생김새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의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은 2인자 이경득과 교주의 아들 전종기 정도였다. 경찰은 검거에 나선 지 50여 일 만에 양평군 용문산에서 전용해로 추정되는 사체 한 구를 발견했다. 전종기는 코 아랫부분이 산짐승에게 먹혀 없어진 시체를 보자마자 “아이고 아버지!” 하고 대성통곡했다. 양복 주머니에선 전용해가 차고 다니던 시계와 80여 원이 들어 있는 지갑이 나왔다. 부검 결과 전용해의 사망 시각은 2월21일 정오경으로 밝혀졌다. 자신이 ‘신의 아들’이라 주장했고 자신을 믿는 교도들에게 장생불사를 약속했던 전용해는, 유곤용과 다툰 지 닷새 만에 자신의 손으로 목숨을 끊어 신의 아들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일 뿐임을 스스로 입증해 보였다. 백백교의 기원은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평북 영변 태생의 동학도, 전용해의 부친 전정운은 금강산에 들어가 도를 닦다가 1900년 천지신령의 도를 체득한 후 세상에 나왔다. 그는 함남 문천군 운림면을 중심으로 인근 사람들에게 도를 전했다. 그를 믿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자 1912년 강원도 금화군 오성산에 본거지를 두고 정식으로 백도교(白道敎)를 개창했다. 강원도를 중심으로 부근 각처에 지부를 두고 포교에 힘써 1915~16년에는 교도가 1만명을 헤아렸다. 1919년, 교주 전정운이 죽자 교세 확장 방법을 둘러싼 간부들의 대립과 부친 유산 분배를 둘러싼 골육간의 싸움으로 교단이 분열된다. 결국 세 아들이 모두 독립해 각자 교단을 하나씩 차렸다. 1923년 5월 전정운의 맏아들 전용수는 간부 이희용을 표면상의 교주로 하여 경성부 도화정에 본부를 둔 인천교(人天敎)를 창립했다. 같은 해 7월 둘째아들 용해는 차병간을 표면상의 교주로 내세워 경기도 가평군 북면에서 백백교를 창립했다. 셋째아들 용석도 형들에 지지 않고 경성부 도화정에 도화교(桃花敎)를 세웠다. 파죽지세로 뻗어가던 백백교의 교세는 1930년 7월, 10여 년 전 백도교 교주 전정운이 금화군 오성산에 그의 애첩 4명을 산 채로 파묻은 구악이 폭로돼 한풀 꺾인다. - “일제는 가고 새 세상이 온다” 전용해와 표면상 교주인 차병간은 가까스로 검거망을 벗어났다. 그들은 지방을 전전하며 비밀리에 교단을 재건했다. 이후 전용해는 서울에 본부를 마련하고, 지방에 있는 심복 교도들을 서울로 불러모았다. 백백교 간부들은 평안도, 황해도, 강원도 등을 순회하며 무지몽매하여 세상 물정에 어둡지만 다소 자산이 있는 사람들을 은밀히 포섭했다. 백백교에서는 성별에 따라 외우는 주문이 달랐는데, 남자가 외우는 주문은 아래와 같다. 백백백의의의적적적감응감감응하시옵숭성(白白白衣衣衣赤赤赤感應感感應하시옵崇誠) 위의 해괴한 주문만 외우면 무병장수한다고 한다 (나무위키) “우리 백백교 교주님은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는 분이다. 머지않은 장래에 천위(天位)에 등극할 인물이다. 지금 일본의 통치 아래 있지만, 가까운 장래에 반드시 백백교 교주의 통솔 하에 독립이 될 것이다. 그때 각 교도는 헌성금(獻誠金)의 다소와 인물의 능력에 따라 대신, 참의, 도지사, 군수, 경찰서장 등에 임명될 것이다.” “오래지 않아 큰 전쟁이 날 터이니 교도들은 자산을 팔아가지고 상경하라. 교주는 신통력을 가지고 계신 분이므로 반드시 그대들의 생명을 보장할 것이다.” “3년 내 조선에 서른 자 이상의 큰 홍수가 날 것이다. 일반백성은 모두 물에 빠져 죽더라도 헌금한 우리 백백교도는 금강산 피신궁(避身宮)에 들어가 목숨을 구할 수 있다. 홍수 이후 교주 전용해가 등극하여 천위에 오르면 헌금액에 따라 관직을 제수할 것이다.” (‘백백교 사건의 정체’, ‘조광’ 1937년 6월호) 백백교 간부들은 정감록의 예언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정도령과 소리가 비슷한 교주 ‘전도령’이 후천개벽 세상의 주인이 될 것이라 호언했다. 관존민비의 봉건적 인습에 사로잡힌 사람에게는 관직을 주겠다는 말로, 투기심이 강한 사람에게는 ‘불로장생, 부귀영화’라는 말로 입교를 권유했다. 일단 백백교에 입교하면 교주의 명령에 따라 토지, 가옥, 가재도구 일체를 정리해 서울 본부로 올라왔다. 교주는 신입 교도가 가지고 온 현금을 헌납하게 했다. 데리고 온 가솔 중 미모의 처녀가 있으면 ‘시녀’로 바치게 했다. 교주는 앵정정 본부로 불려온 시녀에게 ‘신의 행사’를 빙자해 욕정을 채웠다. ‘믿음이 약해’ 교주에게 만족을 주지 못하는 여성은 심복 간부에게 넘겨줬다. 간부가 거느린 첩은 모두 이러한 ‘절차’를 거친 여성이었다. 교주는 수십명의 첩을 거느렸다. 7~8명의 첩을 거느린 간부도 있었다. 본부에서 교주와 ‘신의 행사’를 치를 수 있는 여성은 4~5명에 불과했다. 새로운 시녀가 들어오면 기존의 시녀 중 ‘믿음이 약한’ 시녀는 양주, 양평 등지의 심산에 사는 심복 교도들의 집으로 보내졌다. 교주는 한 달에 몇 번씩 교도들의 집을 돌며 시녀들과 ‘신의 행사’를 치렀다. 전 재산과 자녀를 교주에게 바친 교도에겐 “오래지 않아 백백교의 천하가 올 터이니 그때까지 농촌에 가서 농사를 지으면서 기다리고 있으라”는 명령이 하달됐다. 교도들은 연천, 양평, 철원, 평강 등 산간벽지 교통이 불편한 외딴집으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교도들은 화전을 일궈 근근이 연명했다. 교단은 교도들이 근처 부락 사람들과 접촉하지 못하게 막았고, 탈출을 방지하기 위해 교도들을 수시로 이주시켰다. 교도가 수상한 행동을 하면 처자 형제를 각각 다른 지방으로 보내 격리했다.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가족의 신변 걱정에 교도들은 차마 딴 마음을 품지 못했다. 재산과 가족을 빼앗기고 어딘지도 모르는 산간벽지로 보내져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하면서도 임박한 백백교의 세상에 대한 꿈을 잃지 않은 교도가 없진 않았다. 그러나 대부분은 자신의 어리석은 선택을 후회하고 교단에 대해 불만을 품었다. 전용해와 측근 간부는 교단에 불만을 품은 교도를 배교분자로 분류했다. 교주는 배교분자를 비밀 아지트로 데리고 가서 ‘기도’를 올려주었다. ‘기도’는 교도를 살해해 암매장하는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성인들이 타살된 후 딸린 어린 아이들은 산 채로 암매장됐다. 범죄 사상 초유의 대사건이었던 만큼 수사와 예심에만 3년이 소요되었다. 살인기록 보유자 문봉조 외 간부 24명은 보안법 위반, 살인, 사체유기, 상해치사, 살인강도, 외설, 사기 공갈, 횡령, 공사문서 위변조 등 10개 죄목으로 공판에 회부됐다. 피고인 24명 중 살인에 관련된 피고인만 18명이다. 살인 수효를 들으면 한층 더 전율을 느끼게 된다. 문봉조가 공범자와 함께 죽인 사람이 49회에 129명, 이경득이 61회에 166명, 길서진이 48회에 169명, 길군옥이 34회에 121명, 이한종이 11회에 35명 등이다. 그 죽인 방법도 참혹하기 짝이 없어 마치 사람 죽이는 것을 병아리나 죽이듯 쉽게 여겼다. (‘백백교 사건 공판 방청기’, ‘조광’ 1940년 5월호) 공소사실 진술에만 1시간이 소요됐다. 재판장이 검사의 공소사실을 인정하느냐고 묻자 9명의 피고인이 살인 및 사체유기 사실을 부인했다. 재판장은 피고인들을 앉히고 개별심리에 들어갔다. 재판장은 사건을 최초로 고발한 유곤용의 부친 유인호를 일으켜 세우고 신문에 들어갔다. 장로 유인호는 백백교 30년의 역사를 소상히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재판장: 어째서 백백교를 믿었느냐? 유인호: 대원님을 따르면 불로장생 호의호식 한다기에 믿었습니다. 재: 전용해의 부친 전정운이 창설한 백도교에 관계했느냐? 유: 예, 그때부터 믿었습니다. 재: 무슨 동기로? 유: 어렸을 때, 아버지가 백도교를 믿으면 모든 재액을 피할 수 있다기에 믿었습니다. 재: 백백교의 교리가 무엇이냐? 유: 무식해서 교리는 모릅니다. 재: 헌성금은 얼마나 바쳤느냐? 유: 전재산을 모조리 바쳤습니다. 재: 네 딸을 전용해의 첩으로 준 이유는 무엇이냐? 유: 선생께서 요구하기에 바쳤습니다. (‘동아일보’ 1930년 3월14일자) 이어 벽력사 문봉조에 대한 신문에 들어갔다. 문봉조는 백백교의 행동대장격으로 49회에 걸쳐 129명의 교도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재판장: 백백교의 교리가 무엇인가? 문봉조 :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머지않아 서양은 불로, 동양은 물로 심판을 받아 인류가 전멸하는데 그 심판에서 구원을 받으려면 백백교를 믿어야 한다, 심판 때 동해에 영산이 떠오르는데 교도들은 전부 피난해서 거기서 홀로 장생하고 병에도 걸리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선생께서는 신이 사람의 모습을 쓰고 내려온 구주라고 하셨습니다. 재: 헌성금이란 어떤 것인가? 문: 입교한 자는 자기 재산을 팔아 교주에게 바치도록 했습니다. 재: 검거 당시까지 얼마나 받았는가? 문: 알 수 없습니다. 재: 전용해가 교도에게 돈을 준 일이 있는가? 문: 생활이 가난하면 얼마간 주신 일이 있었습니다. 재: 생활이 곤란한 교도 중에는 교주에게 불평을 품은 교도도 있었겠지? 문: 믿음이 엷은 교도 중에는 혹 불평을 가진 사람도 있었습니다. 재: 그런 불평분자는 모두 피고인들에게 명령해서 죽이게 했다지. 문: 예, 그랬습니다. 재: 전용해는 교도 중에서 딸이나 누이동생이 있는 사람에게 그 딸과 누이동생을 바치라 해서 첩을 삼았다지? 전부 몇 명이나 되는가? 문: 정확한 명수는 알 수 없습니다만 앵정정에만 34명 있었습니다. 재: 그래 전용해는 매일 술만 먹고 첩과 음탕한 생활을 해왔다지? 문: 밥보다는 술을 좋아하셔서 매일 ‘월계관’이나 ‘백학’ 한 되쯤씩 자셨습니다. 재: 전용해는 자기 재산은 없이 교도에게서 모은 돈을 물 쓰듯 하여 방탕하고 사치한 생활을 했는가? 문: 예. 재: 그런 음탕한 생활을 하는 전용해를 어떻게 신의 아들이라 믿을 수 있었는가? 문: 지금 생각하니 잘못 믿고 있었습니다. 술 먹은 때는 그렇지만 선생께서 가르치는 말은 모두 훌륭해서 믿었던 것입니다. 재: 그래, 아직도 전용해를 신의 아들로 믿는가? 문: 천만에요. 지금 생각하면 모두 어리석어서 속았던 걸 깨달았습니다. (‘백백교 사건 공판 방청기’, ‘조광’ 1940년 5월호) 문봉조를 비롯한 피고인 전원은 자신의 과오를 뉘우친다고 했지만, 교주를 지칭할 때 꼬박꼬박 경어를 썼다. 오랜 습관 때문인지 뉘우친다고 거짓 진술을 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백백교의 2인자 이경득은 전용해의 인격을 숭배해서 믿었는지 반역하면 죽이는 것이 두려워 믿었는지 묻는 질문에 정말로 신의 아들로 믿었다고 진술했다. 불평을 품고 있을 때마다 교주가 “이 놈 네가 불평을 품고 있구나. 다른 데 가고 싶거든 가거라” 하여 독심술을 가졌다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나머지 피고인들도 모두 교주가 진짜 ‘신의 아들’인 것으로 믿고 백백교에 귀의했다고 진술했다. 23명의 교도를 살해한 이창문은 백백교만 믿으면 가족의 병도 낫고 또 불로장수하는 줄만 알고 입교했으나 교주가 자칫하면 사람을 죽이는 것을 알고 무서워 도망까지 해보았지만 교주 밑에 남기고 온 처자의 목숨이 염려되어 죽음을 각오하고 되돌아간 적이 있었다고 말해 재판정을 숙연케 했다. - 1940년 3월15일, 수은주가 영하 7℃까지 떨어지고 연 이틀 눈이 내렸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억울하게 죽은 314인의 원귀가 내린 저주라 말했다. 때늦은 혹한에도 불구하고 방청석은 여전히 만원이었다. 제2회 공판에서는 살인죄에 대한 사실 심리가 진행됐다. 314건의 살인혐의가 차례로 확인되었다. 재판장: 1930년 8월 둘이서 제2세 교주 우광현을 무주군 설천면 야산에서 목매 죽였는가? 이경득, 길서진: 예. 재: 이유는? 이경득, 길서진: 모릅니다. 대원님께서 죽이라고 해서 죽였을 뿐입니다. 재: 1931년 2월 20세가량의 여자와 그 젖먹이 애를 죽였나? 이경득, 길서진: 예. (중략) 재: 1931년 5월 교주의 첩 문봉례를 죽일 때 업고 가던 젖먹이도 죽였는가? 문봉조 : 문봉례를 죽인 것은 사실이지만, 애는 안 죽였습니다. 대원님께서는 애까지 죽이라 하셨지만 이경득이가 “어린애야 무슨 죄가 있느냐?”며 죽이지 말자고 했습니다. 저 역시 젖 먹다가 어미를 잃은 계집애 처지가 하도 가련해서 집에 데려다가 기르고 있습니다. 재: 문봉례를 죽인 이유는? 문: 처음엔 몰랐습니다만 후에 알고 보니 오빠를 죽인 것을 알까봐 죽이란 것이었습니다. 재: 어째 친형인 문봉진과 그 가족을 죽였는가? 문: 자꾸 서울 오겠다는 걸 말렸지만 듣지 않아 할 수 없이 상경시켰습니다. 어느 날 대원님께서 먼저 “봉진은 어떤가?” 하시는 태도가 죽이자는 뜻이었습니다. 만일 형을 안 죽이면 나도 죽겠고 내 가족 친척도 남모르게 죽겠기에 형을 죽였습니다. (‘백백교 사건 공판 방청기’, ‘조광’ 1940년 5월호) 피고인들은 아녀자는 물론 젖먹이 어린애, 친형까지 대원님의 명이라면 서슴없이 도륙했다. 사흘 후 속개된 제3공판에서도 살인죄에 대한 사실 심리가 계속됐다. 심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살인 사실을 한 묶음 두 묶음씩 통틀어 심리했다. 피고인이 부인하면 부인하는 대로 그냥 넘어가는 식이었다. 몇 가지 혐의에 대해 부인해도 판결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100건의 살인혐의 중 99건의 혐의를 부인해도 판결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살인사건은 1932년 이후 갑자기 증가했다. 그때부터 불평분자 본인만 아니라 한 가족 전부를 몰살해버린 탓이었다. 불평을 가진 자만이 죽은 것도 아니었다. 먹여 살리기에 귀찮다든가 한 장소에 너무 많은 교도가 있어 경찰에 발각될 우려가 있어 죽인 교도도 적지 않았다. 1년은 족히 걸리리라는 예상과 달리 공판은 일주일, 단 4회만에 종결됐다. 검사는 살인과 관련된 18인의 피고인 전원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먼저 피고 가족석에서 울음이 터져나오고 연이어 나이 어린 피고인 몇 명이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과오를 뉘우치고 흘리는 눈물인지 목숨이 아까워 흘리는 눈물인지는 알 수 없었다. 재판장은 가담 정도가 경미한 피고인 4명만 징역 7~15년으로 감형하고 나머지 14명에게 검사의 구형대로 사형을 선고했다. [출처] ‘백백교(白白敎) 사건’ 공판기 __________________________ 읽으면서 많이 놀랍지 않아? 지금 '그' 종교의 실태와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아서 말야. 물론 살인까지는 아니지만... 일제강점기라 사람들의 마음도 많이 약해져 있고, 제대로 된 법 체계도 갖춰져 있지 않았으니 저렇게 안하무인일 수 있었겠지. 약한 마음을 파고들어서 나중의 구원을 약속한 후 재산을 다 헌납하게 하고, 가족까지 끌어들이고 여색을 취하는 게 정말이지 어떤 종교와 같지 않아? 헌금액에 따라 관직을 주고, 처음부터 순박하면서 재산이 있는 사람을 노리는데다 사바사로 그가 혹할 말로 꼬드기고, 게다가 마음 먹고 빠져나오려고 해도 가족들을 볼모로 잡고 있어서 힘든 일인 것 까지. 저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밝혀진 것만) 몇백명을 살인했기 때문에 모두 큰 벌을 받게 되었지만 지금의 종교는 어떨까. 훨씬 더 교묘하게 사회에 파고 들어 있어서 잘 걸러내 질 지도 모르겠네. 부디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 혹여 아직도 '그' 종교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그 종교 뿐만 아니라 모든 이단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한 번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해. 그들은 너를 구원해 주는 존재가 아니라 너의 심약한 마음을 부풀려 잡아 먹는 괴물들일 뿐이니까. 참고로 사형을 선고받은 저들에게 실제로 사형이 집행이 됐는지는 몰라. 직후에 태평양 전쟁이 벌어지는 바람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으니까. 아. 사건이 일단락된 후에 일제는 범죄형 두개골에 대한 연구 목적으로 교주인 전용해의 머리를 잘라내서 포르말린에 절여 범죄형 두개골 표본으로 만들었다고 해. 정말 일본은 박제하는 걸 좋아하지 참? 해방 후에는 국과수가 (이유도 모른 채) 보관하고 있다가 2011년에야 화장을 했고. 약한 사람들 마음을 좀먹고 살았던 사이비 교주의 마지막은 이 정도로 비참해야지. 암.
퍼오는 공포썰) 아버지가 무서웠던 썰
2019년의 마지막 일요일이네 그래서 그런지 이야기 하나는 전해야 할 것 같아서 부랴부랴 가져왔어. 모두의 올해는 어땠을까? 조금이나마 따뜻한 한 해 였길! 이라고 하면서 무서운 썰 가져오니까 약간 이상하긴 하네 ㅎㅎㅎㅎ 어쨌든 올 한해 같이 읽어줘서 고마웠어! ______________________ 이렇게 써도 될런지 좀 망설여지는데요 2010년도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간밤에 꾼 꿈에 그 친구가 나와서 불현듯 생각이 나서... 써보겠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알던 녀석이 있습니다. 늘 안경을 쓰고, 똘똘하게 생긴것 같으면서도 좀 어벙하던 친구였습니다. 5학년때도 같은 반이었고 중학교 올라가서는 1,2학년 제가 미국으로 이민가기 전까지 같은 반이었습니다. 중학교때부터 많이 친해졌습니다. 좋아하는 게임들도 비슷하고 같이 공부도 하고 여러 친구들과 두루두루 뭉쳐서 자주 놀기도 하고 피시방도 자주 가구요 제가 많이 좀 놀리고 갈구고 걔는 그냥 피식피식 웃고 그런 친구였습니다. 전 많이 짓궂은 타입인데 그녀석은 참 속도 좋은지 저한테 한 번도 화낸 적 없었습니다. 공부도 잘했고, 재수를 하긴 했지만 서울의 명문대 수학과에 들어갔습니다. 미국으로 이민간 뒤, 오랜만에 한국에 나와서 만났습니다. 연락하기도 쉬웠고 만나는 것도 아주 시원시원하게 만났죠. 그녀석 자취방에 가서 자기도 하고, 다른 친구하고 셋이서 만나 찜질방도 같이 가고 제가 한국에 2년간 머무는 동안이라 여러번 만났는데 마지막 만났을때 일어났던 일입니다. 언제나처럼 고기부페 가서 소주 한잔하면서 조금씩 취기가 올라올 무렵 그녀석 폰으로 전화가 오는 겁니다. 번호 확인하더니 그냥 무표정하게 소리를 껐습니다. 뭐 나랑 수다떠는 중이었으니 그랬겠거니 하고 별로 신경안썼는데 전화가 계속 옵니다. 끊으면 오고 끊으면 또 오고 계속 오더군요. "야 뭐야 니 스토커냐? 뭔 전화가 이리 와?" "아버지야. 신경쓰지마 가끔 저러셔. " "니 통금 없잖아. 아버님이 술이라도 드셨나? ㅋㅋㅋㅋ" 제가 농담을 하니까 그녀석 언제나처럼 피식 웃고 맙니다. 한 두잔 정도 더 마셨을 때, 갑자기 녀석이 심각해졌습니다. "내가 우리 아버지 얘기 꺼낸적 없지?" "그러게? 너네 어머니는 중딩때 뵌적도 있고 통화도 한적있는데." "사실 좀 사정이 있다." 약간 놀라운 이야기였습니다. 친구녀석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정도가 좀 심해서, 초등학생 중학생 시절에는 친구하고 친구동생이 많이 얻어맞았다고 합니다. 발가벗기고 거실에 엎드려뻗쳐를 시킨후, 야구방망이로 엉덩이와 등을 마구 때렸는데 심하게는 20분 30분가까이 매질이 계속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몇 년씩이나 계속 이어져왔다고 했습니다. 친구 어머님이 굉장히 착하고 좋은 분이셨고, 이 녀석도 얼굴에 상처가 나있거나 어른들에게 부담감을 느끼거나 하는 모습을 보인적도 없어서 저는 상상도 할 수 없었죠. "무릎 꿇고 앉으라고 한 다음에, 허벅지를 발로 계속 밟아. " "..................." "그걸 쉬지않고 계속 하더라. 나중엔 자기가 자빠져 넘어질 정도로 까. 술 취해서 지 몸도 못가누면서 그렇게 계속 패는데... 난 괜찮았는데 동생 패는거 보고 눈알 돈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듣는 사람도 고통스럽고 무서운 이야기인데 이녀석도 많이 힘든 눈빛으로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요즘은 자기가 커지고 동생도 커져서, 그리고 아버지의 몸이 점점 쇠약해지셔서 폭행은 없다고. 동생과 어머니가 정말 죽을 힘을 다해 보살피는데, 몸 상태는 나아지지 않으시고 대신 어디서 그렇게 술을 몰래 가지고 오시는지, 방문 걸어잠그고 계속 드시면서 취하실 땐 정신병자 같은 행동을 많이 한다고 했습니다. "뭐 어떤 행동...?" "들어봐." 친구녀석은 저한테 자기 폰을 건냈습니다. 부재중 전화 17통 음성메시지 5통. 전부 친구 아버지로부터 왔습니다. 음성메시지를 틀었습니다. 약간 쉰듯 했지만 굉장히 차분한, 평범한 아저씨의 목소리였습니다. 첫번째는 "영훈아(가명)... 시간이 좀 늦었잖아. 얼른 들어와라." 두번째 "큰아들. 어디냐? 위험한데 밖에 너무 오래 돌아다니지 말고....얼른 집에 와야지...." 뭐 대충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친구는 계속 제 표정을 살폈구요 세번째 약간 흐느끼는 목소리로 "영훈아.... 아버지가.... 힘들다.....많이 힘들다.... 지치고 힘들다 아빠가...영훈아..." 네번째 "힘들어..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어..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어..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어..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어..힘들다..힘들다..힘들어..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어..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어..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다..힘들어..힘들다..힘들어..힘들다..힘들다.." 여기서 많이 깜짝 놀랬습니다. 친구도 '안 들어도 알겠다' 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힘들다..힘들다..힘들다 힘들어 내가 힘들다고!! 힘들어!!!으아!!!!!!끼이야야아아아아!!! 힘들다!!죽여버릴거야! 죽여버린다!!개색기야!! 으하하하하하하핳하하 크하하하하하 !! 끄으아아아아!!! " 여기서 너무 깜짝놀래서 심장이 멎을 뻔 했습니다. 진짜 '헉!' 소리 나오면서 폰을 귀에서 땠습니다. 지금도 그 때 생각하면 정말 무섭네요. 수화기 너머로 고래고래 비명지르며 힘들다고 하다가 큰소리로 웃었다가, 죽여버리겠다고 하는 영훈이 아버지의 목소리가 찢어질듯 들렸구요... 녀석은 그냥 아무 말 없이 전화기를 달라는 뜻으로 손을 내밀었습니다. 요즘 이러신다고. 자기도 처음엔 기절할 정도로 놀랬는데, 이럴때마다 패턴이 같아서 지금은 견딜만 하다고. 자긴 밖에 나와서 살고 있지만, 같이 있는 동생이랑 어머니가 걱정된다고 자기 아버지한텐 미안하지만, 병원에 입원시키고 싶었는데 단순한 알코올 중독일뿐 미치거나 하진 않았으니 잘 보살펴라  라는 말밖에 못들었다고 했습니다. 몇 달후, 연락이 왔습니다. 친구아버지가 방안에서 목을 메달아 자살하셨다고 했습니다. 유서 같은건 없었고, 마지막으로 친구에게 "마귀새끼야 지옥에서 보자" 라고 전처럼 비명을 지르는 음성메시지를 남기셨다고 합니다. 친구는 조금씩 떨리는 목소리로 오지 않아도 된다고, 자기가 연락할테니까 잘지내라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2년이 지났네요. 아직까지 연락은 없습니다... [출처] 단편모음 | 네이트판 ___________________ 하. 나도 술을 좋아하긴 하지만 나를 잃을 정도로 마시는 건 정말 위험한 일인 것 같아 이전에 가져온 썰들 중에서도 술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종종 있었지 술이 문제가 아니라, 술을 마셔서 인사불성이 되면 나도 모를 뭔가에 홀리기도 하니까. 연말이라 술자리 많을테니 조심하자는 의미로 가져와 봤어 건강하고 또 건강하자 잘 자고!
퍼오는 공포썰) 실제로 본 싸이코패스썰
날이 너무 춥네 오늘 같은 날은 금요일이고 뭐고 따신 방 구석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귤 까먹는게 최대 행복 아닐까! 그렇게 따시면 노곤노곤하니까 무서운 썰도 곁들이고 말야 ㅎㅎ 그래서 오늘도 이야기를 가져와 봤어. 귀신썰은 아니고, 어쩌면 우리 주변에도 흔하게 있을 법 한 싸이코패스 이야기. 시작해 볼까? ______________________ 학창시절 부산에서 봤었던 싸이코패스 이야기 부산에는 동천이라는 도심 하천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제법 큰 강이었는데 도시가 개발이 되다보니까 그 면적이 꽤나 많이 줄었죠. 부산의 중심인 서면 언저리에서 부산항 쪽으로 길게 뻗은 하천이고 바다와 점점 가까워 지면서 수심이 깊어 집니다.  어린시절 동천의 하류지역인 문현동에 살았습니다.  학교 다녀오는 길에 동천 위로 놓여져 있는 다리를 건너 오는데 강 양쪽에 난간이 있고 그위를 재미삼아 올라가서 장난치던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애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걔들 끼리 장난치는 과정에서 난간위에서 놀던 애가 강으로 떨어져 버렸어요. 일반적인 하천과는 다르게 얕은 수심에서 점점 깊어지는 그런 식이 아니라 현대식으로 양측에 제방을 쌓고 정비를 해놓았기에 가엣쪽도 수심은 중앙과 별 다를 바 없는 깊은 수심을 가진 곳이었죠. 친구가 빠지가 놀란 친구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알렸고 구경꾼들이 삼삼오오 몰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친구들과 같이 그곳으로 향했죠. 그러는 와중에 초기에 발견했었던 옆에 있는 아저씨가 휴대폰을 들고 다급하게 여기 사람 빠졌다면서 빨리 와주세요 하면서 119에 신고를 했죠. 사람들이 꽤 많은 수십명이 몰려들었는데 당연히 구조될 줄 알았습니다. 도심 한복판을 흐르는 하천이고 경찰서나 소방서도 인근에 위치해 있거든요. 교통이 불편한 위치도 아니고요. 그런데 구조가 못되고 어린 학생은 익사하고 말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일단 주변 분들이 강에 들어가서 구조하려 했던 분이 없었습니다. 수영을 할수 있는 사람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알수가 없지만 그쪽이 물이 오염되어있거든요. 깨끗한 바닷물도 아니고 지금도 가보시면 아시겠지만 에메랄드 빛의 이상한 색을 띄고 있습니다.  게다가 상류쪽이 유흥가를 관통하면서 수질이 워낙 나쁜 곳이기도 하고요. 어차피 주변에 소방서나 경찰서(파출소나 그런곳)이 있기에 금방 와서 구해낼 줄 알았겠죠. 그런데 경찰도, 소방관도 오지 않았습니다.  주변에서 구경하던 나이좀 있으신 분이 처음에 신고를 한 사람한테 어디 신고 했냐고 묻더군요. 왜 119가 안오냐고요.  그러자 초기에 핸드폰 들고 얘기했던 아저씨가 하는 말이 자기는 119에 신고 한 것이 아니라 회사 직원한테 여기 사람이 물에 빠졌으니까 와보라고 (구경하자는 거겠죠?) 전화했다고 하더군요. 그제서야 주변사람이 119에 신고를 했지만 결국 119가 오고 난 후에 물에 빠진 학생을 건지기는 했는데 너무 오랫동안 허우적 거려서 익사했다고 하더군요. 그 자리에서 흰천을 덮어서 구급차에 싣고 떠났습니다.  어떻게 보면 누군가는 신고했겠지? 하는 방관자 효과일수도 있겠지만 거의 최초로 물에 빠진 학생을 목격했던 그 아저씨(전화통화한 사람)의 역할이 너무 뚜렸해 보였기 때문에 주변사람들은 굳이 신고할 이유를 못 느꼈을 것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보고 핸드폰을 꺼내들고 여기 사람 물에 빠졌으니까 빨리 오라고 흥분한 목소리로 통화하던 것을 봤으니까요. 저도 그걸 들었으니까요. 저도 거의 최초 발견자였음. 당시에는 핸드폰을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다니지는 않았어요. 확실히 고가의 제품이었기에 요즘처럼 초등학생, 중학생들도 핸드폰 들고다니는 시대는 아니었죠. 어른들 중에서도 사업이나 회사업무가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죠. 저는 그때의 그 아저씨의 행동을 생각하면 아직도 소름끼치네요. 사람이 빠져서 죽어가는데 빠진 학생들의 친구들이 119에 신고를 해달라고 하는데 저도 그 바로 옆에 있었기에 확실하게 들었거든요. <여기 범일교 옆인데 사람이 물에 빠졌어요 빨리와주세요>  딱 이렇게 들었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와보세요도 아니고 빨리 와주세요, 언어적 해석으로 보면 구조의 요청으로 볼 수 있는데 왜 회사 직원한테 빨리 와보세요도 아닌 빨리 와주세요 이런 식으로 얘기했을까요? 저를 비롯한 최초 발견자 몇몇 분도 그때 실수를 한게 그 사람이 119에 신고를 했다고 믿어버렸던 것이죠. 어쨋든 안타깝게도 어린학생은 수십명의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도심 한복판에서 죽었습니다. 주변인의 방관자 역할도 잘못이지만 최초로 목격하고 119가 아닌 회사사람에게 전화해서 그런식으로 흥분한 어조로 연기했던 그 싸이코패스,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네요. [출처] 학창시절(90년대 후반) 부산에서 봤었던 싸이코패스 이야기 txt. | 오유 ___________________________ +) 이 글에 달린 댓글 음... 정말 이상한 사람 너무 많아요. 저희 시어머님이 친구분이랑 하천변 산책을 매일 하시거든요. 며칠전 한창 가물때 계단 옆에 늘어선 목책 중 하나에서 연기가 피더래요. 주변은 다 마른풀이라서 불붙으면 완전 큰불이 날 상황. 그래서 근처 자전거도로를 달리던 인저씨를 급하게 세워서 죄송한데 그 물 좀달라고 여기 부어서 불을 끄자고 상황설명을 했더니 자긴 이동네에 안 살기 때문에 불나도 아무 상관없고 이 물은 자기가 이따가 마실 물이라서 줄 수 없다고 그냥 갔대요. 귀를 의심했어요. 어떻게 그럴수가.  하천 물이라도떠다 붓고 싶은데 손에다 떠 옮기기엔 거리가 꽤되는 곳이고 해서 어쩌지 하시는데 왠 학생이 자전거에서 내려서 물을 부었대요. 근데도 연기가 계속 피어올라서 결국 119에 신고했더니 와서 목책을 쪼개더래요. 어머님 말씀으로는 목책 안에 빈 공간이 있었는데 거기에누가 기름을 붓고 일부러 불을 놓은거 같더라고... 우리 주변에 어떤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이 그런 소름끼치는 짓을 하는걸까요. 이거 보니까 생각나네요. 저 고2 때 일인데요. 그때 컴퓨터 관련 수업을 하면 컴퓨터실 앞에서 2인1줄로 줄 서서 대기하고 선생님이 잠긴 컴퓨터실 문을 열어줘야 들어갈 수 있었어요. 지각 방지 겸 딴짓 방지하려고 그렇게 했거든요. 제가 당시 반장이라 애들 줄 세우고 선생님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애가 코피가 터져서 애들이 난리가 났어요. 셔츠에 피 묻고 애들도 휴지가 없어서 급하게 근처 간이교무실로 뛰어갔어요. (별관이라 간이교무실이 있었음) 거기에 선생님 한분 계셨는데 새로 부임한 여선생님이었어요. 급하게 사정 설명하고 휴지 좀 달라고 했죠. 근데 그 선생님 정말 표정 하나 안 바뀌고 말하길 "내가 왜?" 순간 너무 뜻밖에 당황해서 어버버했고 그 선생님은 태연히 자기 할일 하더라고요 그때 정말 너무 황당하고 소름끼쳤어요. 다행히 다른 애가 휴지 구해와서 해결하긴 했는데 그때 생각하면 정말 소름끼치고 그 선생이 어딘가에서 또 선생 노릇할거라 생각하니 그것도 소름이네요. 저도 하나... 고등학교때 학교축제준비로 체육관에서 댄스연습하다 학생이 하나 쓰러졌는데 구급차가 교문에 도착하니까 체육선생&수위가 운동장에 인조잔디 깔았다고 구급차 못 들어오게 난리쳐서 구조대원아저씨가 장비다 들고 운동장 가로질러 체육관 4층까지 뛰어올라가셨대요 체육관이 운동장 구석에 쳐박혀있는 구조.. 학생은 결국 병원서 사망했고 토요일 방과후 애들끼리 자율적으로 연습한거라 학교는 책임없다만 번복...의외로 많습니다 싸이코패스 ___________________________ 어우. 본문에 댓글까지 소름 돋는 사람들이 정말 많구나. 어쩌면 우리 주변에도 꽤 많이 있을지도 몰라서 더 무서워. 그냥 평소에는 쌔한 정도의 느낌만 주다가 저런 상황들이 되면 그냥 쌔한 정도를 넘어서게 만드는 사람들. 원글 댓글 중에는 그 신고한 아저씨가 일부러 사람들이 '신고했다고 믿게' 만든 건 아닐까 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더라. 사실 나도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고. 참. 이 카드 첫번째 이미지가 실제 이 글의 사고가 났던 하천이래. 저 정도면 아무리 수영을 잘 했더라도 쉽게 들어갈 생각을 못 했겠지.
퍼오는 귀신썰) 화장실 좀 같이 가자...
비가 오네 하늘이 뚫린 것 처럼 그래서 귀신이야기를 들고 왔어 딱 오늘 같은 날이지! 오늘은 크게 무서운 건 아닌데 괜스레 으슬으슬해지는 썰을 하나 가져 왔어. 귀신썰은 역시 시골 귀신썰이 최고 아니겠어? (내 취향) 오늘도 같이 봐줘서 고마워 :) _____________________ 제가 겪은일... 저는 지금 서울에 살고있습니다. 아니 태어날때부터 서울에서 살았었지요... 예전 어릴때는 방학이 되면 사촌누나(고모딸)와 함께 방학내내 있었던 적이 많았습니다. 이야기는 제가 10살정도때 정도로 올라갑니다.누나는 나보다 3살이 많습니다. 그전에도 마찬가지지만 여름 방학이되면 저희 아버지가 저랑 누나랑 데리고 시골로 내려옵니다. 아버지는 우리가 시골이 좋다고 졸라대면 못이기는척 하시곤 데려다 주었습니다. 참고로 저희 시골집은 완전산골짜기에 버스도 하루에 4번정도 다니고 읍내에서 버스로 1시간가량을 들어와야하는곳 말이지요. 그래도 우리는  시골이라 가게며 화장실등이 불편하지만... 거기 아이들과 개울에서 놀기 메뚜기나 잠자리 개구리같은거 잡고 노는게 정말 신나고 할머니가 해주시는 가마솥밥은 김치만 있어도 정말 꿀같은 맛...아느사람은 압니다(침.침)^^ 어찌해서 아버지는 저희를 데리고 오셔서 하룻밤 묵으시고 저희만 두고 다음날 올라가십니다. 일때문이죠... 저희시골집은 대충이러합니다. 똑같진 않아요 대충이런삘~ 초가집 비스무리하죠? 오래전일이니 그때 시골은 거의 저런식이었답니다. 저희는 아버지가 올라가신후 신나게 놀 생각에 잠도 제대로 못자고 아침일찍 일어나 개울가로 달려가 세수를 했습니다.(그땐 수도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지하수만 있었습니다.) 대충 집을 주위로 일케 생겼습니다.왕복2차선 도로 였고 도로는 포장이 안되어있고 자갈밭(편히보기위해 도로그림).. 세수를 하고 밥을 먹고 나니 서울에서 왔다는 소식을 듣고 동네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물론 3명밖에 없습니다. 남매 둘은 8살 10살, 한아이는 8살...그렇게 밖에 없습니다.ㅋㅋ 이녀석들은 저에게 서울 촌놈이라 놀렸고 우리 사촌누나를 좀 좋아했습니다. 좀 이쁘장하게 생겨서 말이죠. 저는 까무잡잡  누나는 피부가 하얗고 참 대조적입니다. 그렇게 동네 녀석들과 만남과 동시에 개울가에서 다슬기며 개구리잡기,잦치기,술래잡기 소 밥주기 등등 다들 시골한번 가신분이라면 아실겁니다 ㅋㅋ 그렇게 놀고 밤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후 씻고(씻는것도 개울가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산골짜기라 여름이지만 해는 더 빨리 떨어지고 그곳엔 tv도 없습니다. 깜깜하면 할게없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일찍 주무십니다.9시도 안되었는데 말이죠. 어릴쩍 시골에 가보신 분은 아실겁니다. 일찍자고 정말 일찍 일어나십니다. 우리는 당연히 잠이 안오죠..누나하고 공기놀이.내가가져간 딱지먹기 등을 하면서 백열전구 밑에서 시간가는줄 몰랐습니다. 12시가 다되어 둘이 졸려서 자기로 하고 누웠죠. 불을끄고 둘다 그렇게 잠이 들었습니다. 한참을 자고 있는데 누나가 깨웁니다. 몇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누나가 화장실이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근데 여기서 문제는 시골집 보셔서 아시겠지만 절대 수세식도 아니고 방안에는 더더욱 없겠죠. 그렇습니다. 화장실을 가려면 방에서 나가서 뒤에 5미터 정도는 가야합니다 전 그리 무서움을 타지 않습니다. 헌데 아시다시피 시골이 가로등이 없습니다. 불빛이 전혀 없습니다. 새벽에 나가면 아실라나요? 하늘에 별이 손을 뻗으면 잡힐꺼 같이 가까이 있고 그렇게 많은 별이 하늘을 가득채웁니다. 당연히 누나한테는 무섭겠죠. 항상그랬듯이 비몽사몽으로 일어나 화장실로 갔습니다. 시골의 화장실이 푸세식이죠. 나무 발판만 있고 문도 비닐로 만든 문입니다. 전 밖에서 기다리고 누나는 볼일보고 잠에 취해 빨리하고 나오라고 재촉했습니다. 이내 볼일 끝내고 같이 방으로 들어와서 잠을 잤습니다. 귀찮긴하지만 어쩔수 없이 주무시는 할아버지를 깨우기가 미안하니까요... 아침이 밝았습니다. 우리는 또다시 노는거에 목숨걸었고 열매같은거 (여름) 따먹고 등등 그렇게 몇일이 지났습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습니다. 낮에 놀다가 제가 급똥이 마려워 열리려하는 괄약근에 온힘을주고 화장실로 갑니다. 헌데 이상합니다. 갑자기 눈앞이 하얗게 되면서 아무것도 안보입니다. 아니 그 짧은 시간에 제가 없어지는 느낌입니다. 멍합니다. 전 분명 가만히 있었는데 머가 철푸덕 합니다. 그제서야 정신이 듭니다. 앗! 다리하나가 밑으로 빠져서 골반이 나무판자에 걸쳐있습니다. 다리가 안보입니다.울었습니다.엉엉 할아버지가 달려오십니다. 논에 가셨다가 잠깐 들어오셨는데 제 울음소리를 들으시곤 오셨습니다. 저를 꺼내어 다리를 씻어 주십니다. 동네애들도 옵니다. 막 놀립니다. 저는 더 웁니다. 챙피합니다. 할아버지는 더 어릴적에도 안빠지더니 왜빠졌냐고 합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날은 그렇게 밥도 안먹고 잡니다. 몇일 동네아이들과 놀지도 않습니다.기분이 나빠서도 그렇지만 챙피해서 그런것 같습니다. 누나는 그럴수도 있지 하면서 나를 달래줍니다.누나는 나보다 나이도 많은데 밤에 화장실도 못가는게 더 챙피한거라고 위로합니다. 그렇게 몇일이 또 흘렀습니다.빠진것도 잊혀질라합니다.그렇게 또다시 노는거에 열성을 다합니다. 여지없이 누나는 가끔 새벽에 일어나 저를 깨웁니다. 화장실을 가자고 합니다. 그러면 같이가서 누나가 볼일보면서 내가 있는지 자꾸 물어봅니다. 누나: "ㅇㅇ아 밖에 있지?" 나:   "응 있어" 누나: "그럼 노래라도 불러라 무섭다" 나: "학교종이 땡땡땡~~~~ 참 귀챃죠잉~ 그런데 어느날 부턴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물어보지도 않습니다. 적응이 되었나 싶습니다. 저도 귀찮아서 그냥 기다리다가 나오면 들어가서 잤습니다. 그러더니 가끔 화장실가더니 매일 새벽 갑니다. 귀찮습니다. 그동안 말은 안하고 그냥 참았습니다. 어느날 누나가 갑자기 할머니 도와드린다고 부엌엘 갑니다. 부엌은 가마솥이 있어서 나무장작을 땝니다. 부엌안에 있으면 눈이 맵습니다. 역시 눈이 맵습니다. 장작이 타고 있으니까요.. 갑자기 곳간에 고구마가 생각납니다. 몇개 가지고 와서 장작 안에 밀어 넣습니다.고구마가 잘 익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누나랑 얘기하면서 굽다가 누나한테 살짝 말했습니다. 먼얘기요? 나: "누나 이제 새벽에 화장실 혼자가면 안돼?" 누나:"???" 나: "나 새벽에 잠결에 가기가 좀 귀찮아..이제 적응좀 되자나 그치?" 누나: "먼 소리해? 나 얼마전부터 새벽에 오줌안마려 요새 잘자" 나:" 엥? 거짓말하지말고......" 누나:"내가 머하러 너한테 거짓말 하냐?" 그래 누나가 나한테 거짓말 한적 거의 없는데 .... 난 그럼 누구랑 그시간에 화장실을 간건가? 어린 나이지만 소름이라는게 아마 그런것일것이다. 머지? 분명 간거 같은데...... 아님 자주 그렇게 같이 가다보니까 헷갈린건가?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앞으로는 갈때 꼭 물어봐야겠다. 근데 그날밤 그 때도 새벽 몇시인지 모른다 누가 날 흔들어 깨운다. 눈만 번쩍 떳다 예전같으면 그냥 누나가 때우는구나 하고 그냥 손만 잡고 나갔다 오늘은 아니다. 눈 번쩍뜨고 고개를 사르르 뒤로 돌렸다.................................... 누나가 서있다. 무섭고 두려웠지만 어느때처럼 똑같은 모습이다. 나: "누나 쉬마려?"(떨리는 목소리) 누나: "응 소변마려 같이가" 나: "근데 누나 맞아?" 누나: " 그럼 내가 누구겠냐?" (살짝 미소짓는다) 그래 누나는 맞는거 같다. 같이 갔다. 또 여느때 처럼 기다렸다. 나를 부르지도 않는다. 에이 혼자가지.....혼자 이런생각 해본다...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누나한테 말해본다 나:"이제 화장실좀 혼자가" 누나:"자꾸 먼소리해 나 요즘 안간다니까?" 나: "아 자꾸 왜그래" 누나:"내가 멀" 나:"진짜야?" 누나:"진짜 너 왜그래? 오늘부터 나 할머니 옆에서 잘꺼야! 그리고 진짜 화장실 가고 싶어도 할머니랑 갈꺼야!" 나: "아..........그래" 그럼 나야좋지 머" 그러고 둘은 좀 어색했다.... 누나는 내가 장난치는줄 아는것 같다. 근데 좀 무섭다 이젠 밤에 혼자 자기가 겁날꺼 같다. 밤에 혼자 뒤척이다 늦게 잠이 들어 버렸다........................ 그날도................................ 몇시인지 모르는 시간에 누가날 뒤에서 흔들어 깨운다. 늦게 잠이 들어서 흔든건 인지하겠는데 빨리 잠에서 꺠어나진 못하고 응?응? 만하다가 갑자기 머리를 얻어 맞은것처럼 번쩍 정신이 든다..... 누나는 지금 여기 없다.누구지? 다시 누나가 왔나? 별의별 생각을 하는데 자꾸 뒤에서 나를 깨운다. 누나: "ㅇㅇ야 빨리 화장실 가자~" 나: "..........................." 누나: "나 급하단 말야" 나:"................"(미치겠다.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땀이 비오듯 등줄기를 타고 흘러 내린다.땀이 흐르며 내려가는데 몸이 간지러움을 느낀다. 더이상 자는 척은 못하겠다. 고개를 천천히 뒤로 돌려본다. . . . . . . . . . ㅠㅠ 누나가 아닌것 같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누나가 맞는데 옷도 맞는데 얼굴을 자세히 볼수가 없다. 아니 보고 싶지가 않아 자꾸 눈을 피한다. 눈을 맞출수가 없다.어렴풋이 누나 얼굴형태가 아닌거 같다. 누나가 내손을 잡고 일으킨다. ㅠㅠ 어찌해야 하나....... 어찌해야하나............ 그냥 손에 이끌려 따라간다. 얼굴은 못맞추고 땅을보며 고개를 쿡 쳐박고 따라간다. 화장실 갈때면 항상 내가 앞장서고 누나는 뒤를 따랐다. 근데 오늘은 내가 끌려간다. 이건 누나가 아니지만 나는 끌려가고 있다 화장실 앞에 섰다...........누나는 들어간다................... 난 밖에 서있다 생각하다가 갑자기 뛰자라는 생각이 들어 냅다 할아버지 할머니 방있는데로 뛰기 시작했는데.... . . . . . . . 갑자기 화장실에서 누나가 뛰쳐나와 따라온다 발이 잘 안떨어진다 너무 느린것 같다 아니 이건 걷는것도 아니다 내생각이 그렇다 그 5미터가 5천미터가 되는것 같다. 뒤에서는 다다닥 소리가 더 가까이 들려온다. 당장에라도 목덜미를 잡을꺼 같다. 정말 돌것같다. 그래 큰소리로 할아버지를 부르자. 근데 입도 잘 안떨어진다. 어렵게 입을떼면서 할아버지 방문을 열었다. " 할!   아!   버!   지!" 할아버지,할머니, 누나가 벌떡일어나면서 깜짝 놀라셨다. 나는 막 울면서 할아버지를 안고 그대로 엎어져버렸다. "엉엉엉 무서워요~" 모두가 무슨일 있냐고 물어보고 나는 뒤에 누가..... 하면서 뒤를 돌아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자초지종을 말했는데 할머니까 꿈꾼거 같다고 한다. 아니라고 아니라고 분명하다고  말했지만 두분과 누나는 꿈 맞는거 같다고 빨리 자자고 그냥 자버리신다. 잠이 안온다..... 그렇게 뜬눈으로 할아버지 곁에서 밥을 세웠다. 아침이 오고 언제 그랬냐는듯...새소리 물소리 등이 들린다. 너무 피곤해서 아침에야 눈을 붙이고 일어나보니 점심시간이다. 누나한테 우리 좀 일찍 서울 올라가자고 했는데 누나는 싫다고 했다. 어쩔수 없이 서울 가는날만을 기다리며 잠은 항상 4명이서 같이 잤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아무일도 없었다. 서울 올라가기 하루전날 저녁밥을 먹고 누나와 나는 옆집에 이제 서울 올라간다는 인사라도 하고 오자하고 인사드리러 나왔다. 옆집이라고는 하나 한 300 미터 정도거리고 날은 어둑어둑 해져버렸다. 어김없이 깜깜해서 하나도 보이지 않고 후레쉬의 빛만 보일뿐이었다. 얼굴은 후레쉬만 정면으로 비춰야 알아볼수있었다. 그날이 여름 중에 제일 더운날이기도 했다. 인사를 드리고 오는길에 집에 거의 다와가는데 누나가  더운데 물좀 적시고 가잔다. 집에가서 수건가져올테니 기다리라해서 기다렸고 이윽고 누나가 수건을 가져왔다. 그래서 후레쉬들고 얕은 개울가에 내려가 발을 담그고 있었는데 엄청 시원했다. 근데 누나는 자꾸 개울위쪽로 올라가는데 나보고 시원하다고 좋다고 오라고했다 난 옷버리니까 그만가라고 했지만 누나는 옷은 갈아입으면 되지 하면서 허리까지 들어가버렸다 누나 깜깜해서 안보여 후레쉬도 있어서 안돼! 했는데 누나가 점점 멀어져 가는것만 같았다. 아 안돼는데.... 하면서 누나쪽으로 다가가서 누나의 얼굴을 비추면서  말하려 했는데........... 그제서야 누나의 얼굴이 정확히 들어왔다.......... 누나가 아니다. 정확히 얼굴을 마주쳤다. 아니 눈을 마주쳤다................... 얼마전 화장실 가려고 뒤를 볼아볼때 눈은 못 맞췄지만 그형태는 기억난다. 나도 물은 허리까지 올라와 있었고 누나가 아니라는 판단과 동시에 뒤로 돌아 뛰려고 하는 순간 물속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얼굴이 잠기면서 정신이 없다. 일어나려해도 일어나지질않는다. 숨을 못쉬겠다. 이제는 누가 발목도 잡아당기면서 보가 있는 깊은곳으로 끌고 가는것 같다. 아무리 발버둥을 치고 발악을해도 더욱더 숨은 막혀오고............ 사람들은 죽음은 앞두고 지난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고 하지만 난 나오려고 발버둥만 쳤고 아무생각도 나지않고 정신만 잃어가고 있었다. . . . . . . . . . . . . 눈이 떠졌다 할아버지 방이다. 누나는 돌아왔는데 나는 돌아오지않아 걱정되어 할아버지가 나오셨는데 개울가 물속에서 첨벙첨벙소리가 나서 봤더니 내가 깊지도 않는물에서 허우적대며 있었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개울밖으로 옮겼는데 정신을 잃은상태고 숨은 쉬고 있는 상태더라 하신다. 나는 누나가 시원하게 몸이라도 적시자는 말에 누나랑 함께 들어갔는데 라고 하니 먼소리냐 누나는 벌써 들어와 짐챙기고 있었단다. 내가 들어오지 않아 나와봤더니 내가 개울가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고 하니 정신을 차려도 멍한상태였고 도무지 할아버지 누나말을 믿을수가 없었다. 온몸이 부서질듯 아팠고 피곤하여 바로 골아떨어지고 다음날 아침이 되어 할아버지와 함께 하루에 4번 운행하는 버스에 몸을싫고 시내로 나와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표를 끊어주시는 할아버지..... 가서 맛있는거 사먹으라며 용돈도 조금 주시고는 우리는 버스에 올라타고 할아버지는 밖에서 손을 흔드시며(어른들 하시는 손동작 안에서 밖으로 밀어내는 손동작)잘가라는 인사를 하신다 서울에 도착하여 아버지는 우릴 마중나와 주셨고 집에 도착해서 시골에서 있던 얘기를 숨도 안쉬고 하면서 울먹거렸더니 아버지가 갑자기 고기를 사오신다. 몸이 허약해져서 잘먹어야 겠다고 하시고는 그렇게 넘어갔고 시간이 지날수록 내 기억속에서 점점 잊혀져갔다 지금도 가끔 펜션이나 야외화장실을 밤에 갈때면 생각나곤 해서 무서움이 느끼면 몸이 찬서리를 맞은것처럼 오싹하고 시원할때가 있다. 이제와 생각해보는 거지만 그게 진짜 귀신인지 몸이 허해서 그런건진 모른다. 다만 그태부터 여태껏 다시는 그런일은 없었고 여름이라 갑자기 생각나서 적어본다 허접한 경험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음써본거라 잘쓰진 못했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감사할따름입니다.^^ [출처] 짱공유 ________________________ 난 이상하게 이런 귀신썰들이 더 끌리더라 뭔가 스펙타클한 이야기가 없어도 그냥 이게 진짜같잖아 왜 그러는지 뭐때문인지 귀신이 맞긴 한 건지 알 수는 없는데 자꾸 생기는 묘한 일들 특히나 캄캄한 시골의 밤 아래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지 다들 어떤 썰들 좋아해? 이야기해주면 다음에 이야기 가져올 때 참고해 볼게 ㅎㅎ
퍼오는 귀신썰) 귀신 보는 내 이야기
아직도 기다려 주는 사람들이 있었구나. 괜히 울컥... 그래서 이야기를 하나 더 가져와 봤어. 쓰여진 귀신썰은 유한하고 내 취향은 정해져 있으니 이야기 고르는 게 너무 힘들지만 비슷한 취향의 여러분을 위해 내 열심히 찾아 보도록 할게 ㅎㅎ 그럼 오늘도 같이 볼까? _______________________ 저는 흔히들 말하는 “헛것을 잘 보는 타입의 사람”입니다. 막말로 하면 “귀신을 보는 체질”이죠. 그래서랄까. 여름을 맞이하면 이야기 거리들이 떠오르지요. 자자. 귀신이야길 좋아하신다면. 거기 앉으세요.……. 지금부터……. 제가 여러분들이 흥미 있어 할지도모를 이야기 몇 가지를 들려드리겠습니다. 1. 봉구 솔직히 정확한 이름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그 소년. 반바지에 흰 러닝셔츠를 걸치고 있었죠. 한손엔 회색 나무막대를 들고. 항상 개울가의 풀숲을 뒤지고 다녔었습니다. 이름이 대충 봉구였나. 했던 것 같지만. 딱 떨어지는 이름은 이제 너무 먼 옛날 일이라 기억나지 않습니다. 제가 겪었던 거의 모든 경험담들이 그렇듯 떠올리는 횟수를 더할수록 기억은 희미해져버리는 것 같더군요. 충격적인 것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그러니 편의상 그냥 봉구라고 부르지요. 하지만. 뚜렷하게 기억납니다. 그 꼬질꼬질한 러닝과 빡빡 민 까까머리……. 그리고 어리숙한표정. 쌍꺼풀이 없는 눈. 그 안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던 회색 눈동자까지도 요. 그 아이는 마을에 제 또래 친구들이 없던 제게 거의 유일에 가까운 친구였습니다. 그 아이는 항상 낮은 싸리 대문 앞까지 쭈뼛쭈뼛하게 걸어와서는 아주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저를 불러내곤 했습니다. “뱀 잡으러 가자.” 봉구는 충치투성이 이빨을 보이며 웃었습니다. 그 아이는 실로 마을 내에 모르는 곳이 없을 정도로 해박했고, 저는 그런 봉구를 따라다니며 노는 것을 즐겼습니다. 어느 날 해가 지도록 함께 풀숲을 헤매다가 문득 한눈을 판 사이 봉구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한참을 이름을 부르며 헤맸지만 봉구는 나타나질 않았습니다. 결국 혼자 집으로 돌아오려다 길을 잃고 말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 어른들의 손에 붙들려 집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저는 어머니께 혼쭐이 났고, 그것을 알았는지 얼마간 봉구는 저희 집 싸리문 앞에 나타나질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밤마다 괴이한 영상들과 소리들에 잠을 설쳤지요. 어머니 아버지가 잠옷차림으로 화장실에서 피를 토하며 서있는 모습이라던가. 매주를 매다는 곳에 할머니 한분이 흰 천에 목이 감겨 매달려 있는 모습이라던가. 앙상한 손이 마루를 기어 다니며 마룻장을 긁어댄다던가. 밤마다 밤마다 계속되는 악몽에 놀라서 깼고. 급기야 마음이 약해진 제게 그 끔찍한 영상들은 낮에도 저를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마당에서 혼자 소꿉놀이를하다 판 구멍 속에 사람 눈알이 보이더군요. 그자리에서 오줌을 싸며, 소리를 높이 지르자 주인집 할머니가 뛰쳐나오셨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봉구가!! 봉구가!!”를 외치며 울었고, 할머니는 제게 자초지정을 들은 그날 팥죽을 쑤셨습니다. 후에 알게 된 이야기였지만. 제가 놀았다는 그 봉구라는 아이는 그집 할머니가 처녀 적 무렵 그 마을에서 살던 고아 소년으로 늙은 할머니 한분과 외딴 집에서 살았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혼자서 뱀을 잡으러 나갔다가 독사에 물려 죽었다나요? 2. 정육점 귀신을 본 경험만큼이나 많은 경험을 말하자면 성추행에 관한 경험일 겁니다. 제가 그다지 예쁜 얼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저는 어려서부터 성추행을 많이 당했습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두암동 부영아파트 앞 정육점 아저씨인데요. 그 아저씨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특별하게 기억나는 것이 없습니다. 더벅머리에 무표정한 얼굴 밖에는 요. 몸집이 어땠는지. 목소리가 어땠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항상 분홍색 불빛 아래서 시뻘건 고기를 자르고 있거나 멍하게 신문을 손에 들고 앉아있었습니다. 어느 날 여름인가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찌개용 돼지고기를 한 근 사러 갔더랬지요. 비가 온 다음날이라 시멘트로 하얗게 발라진 바닥에 물웅덩이가 고여 있었습니다. 가까운 정육점이라고는 그 골목밖에 몰랐던지라 저는 신나게 정육점으로 뛰어갔었다지요. 문득 골목을 접어 들어가는데 정육점 앞에 아주머니 한 분이 서 계셨습니다. 꽃무늬 바지에 파마머리를 한……. 인상도 기억이 나지 않는 그 아주머니가 왜 그리도 선명히 눈 안에 들어왔던지. 아주머니는 움직이는 것 같지도 않은 걸음으로 제 옆을 스쳐가셨고, 저는 오싹한 기분을 누르며 정육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 그 비릿한 피비린내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겁니다. 정육점 안 불빛은 유난히 붉은 선홍빛이었고, 아저씨의 얼굴은 괴괴한 색으로 번들거리고 있었습니다. 고기 한 근을 주문하자 아저씨는 묵묵히 붉은 고기를 썰기 시작했고. 묘한 분위기에 압도되어서였을까요. 저는 자꾸만 아저씨와 마주치게 되는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습니다. 은빛 냉장고가 열려있더군요. 한, 두 마디 쯤? 그 안에 여자애가 있었습니다. 분명히 봤다고 생각했지만. 지금도 확실하지가 않습니다. 검은 눈동자에. 그 시뻘건 불빛 속에서도 흑백으로 보였던 그 여자애가. 진짜 거기 있었는지. 아니면 충격적인 기억으로 인해 혼란이 생겨버린 것인지는 요. 그러나 분명 그 은빛 냉자고 안에서 저를 내다보고 있던 소녀의 혀는 빨갛고 길었습니다. 스크류바 아이스크림을 먹었을때 만큼이나... 빨갰습니다. 제 정신은 멍하게 냉장고를 쳐다보던 제 손을 낚아챈 아저씨가. “고기 만져볼래?” 라고 물어오는 것에의해 퍼뜩 차려졌습니다. 동시에 아저씨는 제 손을 자기 바지 속으로 억지로 쑤셔 넣었고. 저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체 굳어 버렸습니다. 그 순간을 기억하면 무수히 많은 영상들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작은 체구의 여자아이가 아저씨 무릎위에 앉아서 소리를 지르는 모습. 고기가 잘리는 모습. 칼날. 그리고 빨간 전구. 턱 아래까지 나와있는 빨간 혀. 후다닥 뿌리치고 식은땀에 젖어서 뛰쳐나온 그 다음날. 식육점은 문을 닫았고. 그 자리엔 얼마 지나지 않아 문구점이 들어섰습니다. 하지만 묘하게도 그 자리에 들어선 가게들은 모두 일년을 버티지 못하고 망해나갔답니다. 문구점에서 또 다른 문구점으로. 통닭집에서 다시 또 문구점으로. 문구점에서 책방으로. 책방에서 다시 또 통닭집으로. 통닭집에서 문구점으로. 문구점에서 술집으로. 지금은 이사와버려서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그 정육점의 영상들은. 가끔 꿈속에 절 찾아와 제 목을 조릅니다. 3. 가위 이제 와서 뭐 특이할 것도 없겠지만. 저는 가위에 잘 눌립니다. 칠 연타. 팔 연타. 십사 연타. 연속적으로 눌린 횟수를 셈하며 친구에게 농담을 건 낼 정도로요. 한번 가위에 눌리면 몸을 움직일 수도 없고. 숨 쉬는 것조차도 불편해집니다. 제가 눌리는 가위는 보통 두 종류로. 일단 혈액순환 장애로 생기는 가위입니다. 보통 엄청난 소음과 심장 두근거림. 손발에 저리는 듯한 통증 등을 동반하지요. 보통 눈을 뜨고 사방을 둘러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직 가수면 상태인 그런 가위입니다. 이때는 천천히 손가락에 힘을 줘 움직여보거나 노래가사 같은 것을 외워 정신을 집중시키면 깨어나 집니다. 다른 하나는. 저도 잘 모르겠는 종류로. 가위라는 국어사전적 단어의 뜻이 그대로 실현된 것이라고도 상상할 수 있는 그런 가위입니다. 그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요 근래 봉선동 삼익 아파트로 이사 오고 나서 겪었던 가위입니다. 저희 집 앞에는 아담한 산이 하나 있었습니다. 참 예쁜 산이었을 텐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광주 남구 청은 그 산 비탈을 깎고 큰 길을 내자고 한 모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놈의 산이 생긴 것은 멀쩡한 흙산인데. 사실은 거대한 바위 위에 흙이 쌓여 생긴 산이었던 것이죠. 결국 계획에 없었을 딱따구리 차들이 동원되어 이 엄청나게 큰 덩어리의 바위를 쪼아대기 시작했고. 삼익아파트는 소음공해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묘하게도 흙만 퍼낼 땐 조용했던 그 산 앞 작은 임시 도로에서 매일 같이 아저씨들이 싸움을 벌였고. 새벽에는 할머니들이 초와 술. 과일을 들고 와 산을 향해 절을 하거나 경문을 외워대셨답니다. 미친 사람이었을까요? 어떤 여자가 깔깔거리며 다 부서진 산 위를 이리저리 뛰어다니기도 하고. 갑자기 내린 폭우에 그 무거운 포크레인이 바윗돌 아래 깔려 박살나기도 하고. 개인적인 생각을 그대로 담아서 말을 하자면. 산은 부서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밤. 잠결에 장구 치는 소리가 들리며 가위에 눌리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깜짝 놀랐지요. 혈액순환 장애로 인해 오는 시끄러운 소음도 아니고. 귀신에 의한 답답하고 추운 느낌도 아닌. 묘한 솔 향이 섞인 장구소리. 왠지 슬픈 느낌이 들어. 저는 가위를 풀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냥 마냥 누워만 있었습니다. 그 다음날. 비슷한 시간. 장구소리는 조금 더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고. 잠결에 윗집사람이 한 새벽에 장구를 치나? 라고만 생각하고는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그 다음날. 밤. 스산한 바람에 발이 시려 이불을 당기는데 제 침대 발치에 여자가 앉아있더군요. 검은 머리칼에 작은 어깨. 그 여자는 저를 돌아보며 “언니”라고 불렀습니다. 너무나도 친근한 느낌에 “아. 응.”이라고 대답하자 “부탁할게”라고 말하고는 마치 달빛에 부서지는 그림자처럼 홀연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마지막 날 밤. 격렬한 장구소리와 함께 이젠 익숙해진 묘한 가위는 다시 저를 찾아와 제 몸을 눌렀습니다. 숨이 막히지도. 딱히 공포감이 들지도 않아서 가만히 누워있는데. 긴 장발에 진녹색 머리띠를 두른 수려한 “미남자”가 제방에 들어와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저를 돌아보더니 제 발치를 가리키며 조용하고 쓸쓸한 목소리로 제게 말했습니다. “몹시 춥군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거기 옷 좀 집어주시겠습니까?” 저는 멍한 기분으로 발치에 곱게 눕혀져있던 검은 장포를 들어 그에게 건넸고. 그는 빙긋 웃어 보이며 그 장포를 걸치고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습니다. 순간 “아. 떠나는 거구나.”라는 느낌에 눈물이 날것처럼 쓸쓸해지더군요. 별 이유는 없었지만. 저는 그날로 산에 내려가. 산의 조각을 하나 주워 제 방 구석에 세워두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제 방은 그날 이후로. 저희 집에서 가장 추운 방으로 변해버렸답니다. 제가 집을 비운 상태에서는. 저희 집 식구들 중. 저를 뺀 그 누구도 잘 수 없는. 음기의 방. 으로요. 4. 이모 저희 어머니는 일곱 남매 중 막내이십니다. 거의 모든 전래동화에서의 막내들이 그렇듯 유난히 마음씨도 곧고 바르고 착하시죠. 항상 가족들의 일이 다른 무엇보다 우선이고. 또 언니들과 오빠를 소중히 여겨 항상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자 노력하신답니다. 실지로 화가이시며 초교 선생님이신 저희 어머니는 들국화처럼 곧고 청초한 아름다움이 있으셔서 칭찬만 늘어놓자면 귀신이야길 그만 두고 어머니 이야기만 해도 며칠은 밤을 새야 할지도 모릅니다. 거기다 유머감각까지 풍부하셔서 주변에서는 저와 어머니가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깔깔대면 언니 동생 사이 인줄 알았단 말을 많이 듣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어느 날 창백해진 얼굴로 저를 부르셨습니다. 최근 돌아가신 큰 이모님이 꿈속에 자주 나타나신다나요? 저희 어머니는 어느 정도 제가 괴이한 일들과 관계가 깊은 것을 아셔서. 종종 꿈 이야기나 묘한 경험들을 제게 털어 놓으시고 자문을 구하시기도 합니다. 그날 들은 어머니의 꿈 이야기는 실로 “세상에 그런 일이” 진실 혹은 거짓에 출연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괴이했습니다. 밤만 되면 돌아가신 큰 이모님이 어머니 침대를 기어 올라와서는 어머니를 무덤으로 끌고 들어가려고 하거나 팔다리를 뜯어 먹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표독스럽고 무서운지 비명을 마구 지르지만 차마 생전에 잘 챙겨드리지 못한 큰 이모님을 털어내질 못하고 우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죄책감이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어머니를 달랬습니다만. 솔직히 제 마음속에는 무서운 걱정이 고개를 치켜들었습니다. 여러 유의 꿈을 꾸어보고 단언컨대. 죽은 친척이 내 몸이나 머리카락을 먹으려 드는 것은 절대 좋은 꿈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매번 느꼈지만. 그런 꿈 속의 친인척은 당신들이 아니시라는 것이지요. 걱정 속에 밤이 오고, 저와 어머니는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가 퍼뜩 이상한 소리에 정신을 차렸지요. 그것은 뭔가 질퍽한 주머니 같은 것을 바닥에 질질 끄는 듯한 소리였습니다. 깜짝 놀라 사방을 둘러보니 저는 제방 침대가 아니라 어머니 아버지 침실 문 앞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있더군요. 곧이어 부엌 쪽 코너에서 뭔가가 기어 나왔습니다. 그것은 바닥에 배를 붙이고 시커먼 입술을 쫙 벌린 채 웃고 있는 큰 이모님 이었습니다. 차렷 자세로 누워서 마치 뱀처럼 꿈틀 꿈틀 기어오는 큰 이모님을 보고는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렀습니다만. 제 입에서 튀어 나온 소리는 비명소리가 아닌 호통 소리였습니다. “네 이년!!! 네년이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나타난 게냐!!! 당장 물러가지 못해!!!!” 머릿속이 멍해지며 의식이 멀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뭐랄까. 배가 너무 고파서 손발이 떨리며 몸이 차가워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요? 몸은 분명히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는데. 손발은 멋대로 움직였습니다. 저는 발로 바닥을 쾅쾅 차거나 손으로 문을 때리며, 큰 이모님을 닮은 시커먼 입술의 귀신을 쫓았습니다. 벼락같은 소리를 지르고 나자 그 귀신은 괴성을 지르며 부엌 쪽으로 도망쳐 버렸고. 저는 그 꽁지에 대고 다시 한번 호통을 질렀습니다. “네년이 또 여길 찾아오면 불에 지져 죽일 테다!” 아침에 일어나니 온몸이 쑤시고 이불을 바닥에 널브러져 있더군요. 어머니께 간밤의 전투를 보고하며 희한한 꿈이 아니냐고 묻자 어머니가 조용히 웃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일까 간밤엔 큰 이모가 꿈에 안나오더라?” 5. 기숙사 저는 솔직히 상상력이 풍부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입니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들도 많이 보고. 실제로 존재하지만 보여선 안 될 것도 많이 보지요. 그런 것들이 가장 잘 보이는 장소를 꼽는다면. 육교 위나. 어두운 국도 변, 산 속. 호숫가. 그리고 꿈 많고 사연 많은 여자아이들이 모여 있는 여자 기숙사를 꼽겠습니다. 뭐 보이는 것들은 다양합니다. 신발장에 떨어져있는 혀. 아래턱 없이 머리만 펄떡거리고 뛰어다니는 피투성이 머리. 샴푸를 줍기 위해 숙인 시선 속에 잡혔던 젖은 다리. 등을 돌리고 10층 창문 밖에 떠 있던 파란 머리핀의 여자. 등등. 물론 저희 기숙사 건물은 신축 건물이며, 전혀 자살이라거나 낙태 등의 루머가 없는 깨끗한 곳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괴이한 것들이 목격되는 이유는 역시 여자기숙사 앞을 파서 만든 도랑 때문 일거라고 혼자 추측한답니다. ‘물’과 ‘여자’는 어째서인지 ‘귀신’과 친하더군요. 실지로 그 귀신 사건에 6층 여학생 둘이 퇴사해버린 일이 있었습니다. 그 사건이 벌어졌던 날 밤. 저와 제 친구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누워 있다가 찢어지는 비명소리와 물건 넘어지는 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났었다지요. 떠도는 루머를 총 집합해보자면. 6측의 여학생 둘이서 새벽에 샤워를 했답니다. 따듯한 물이 나오지 않을 시간. 약간 서늘한 물에 서둘러 몸을 씻던 둘은 이상한 소리를 듣고. 물을 끕니다. 사방을 둘러봐도 둘 뿐인 샤워 실. 하지만 어디선가 철벅거리는 소리는 계속 들려오고. 그녀들은 이리저리 소리의 근원을 찾던 중. 맞은편 샤워기 쪽에서 샤워 실 바닥을 히죽 히죽 웃으며 기어오던 여자를 보고 맙니다. 하반신은 없었고. 그녀들을 향해 두 팔을 이용해 기어오고 있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하반신이 바닥 속에 있는 것처럼 허리부터 밖으로 나와서 스르륵 미끄러지듯 다가왔다고도 하더군요. 진실이야 어찌되었든 여학생들 중 한명은 그대로 쓰러지고 다른 한명이 비명을 지르며 샤워 실을 뛰쳐나왔답니다. 둘은 공포에 질려 퇴사해버렸고. 그 후 기숙사 샤워 실은 어지간한 담력 없인 혼자 들어가 씻기 힘든 장소가 되어버렸습니다. 6. 보호자 제 곁에는 항상 보호자가 따라다닙니다. 그들은 저와 이야기를 나누기도하고 제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이겠지만. 저는 이 보호자들을 통해 목숨을 여러 번 구제받았답니다. 밤늦은 시간. 서울에서 경기도 이천으로 가기위해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운전은 알던 동생이 하고 있었고. 저는 팔자 좋게 보조석에서 자고 있었지요. 꿈도 꾸지 않고 깊이 자던 중 머릿속을 울리는 커다란 목소리에 깜짝 놀라 깨고 말았습니다. “란디크님!!!!!!!!! 일어나십시오!!!!!!” 제 필명을 부르는 소리에 퍼뜩 놀라 일어나보니 차는 빠른 속력으로 가드레일을 향해 달리고 있었고 동생은 졸고 있었습니다. 저는 황급히 그 아이의 어깨를 쳐 차를 바로 잡았고, 아무런 사고를 당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또 한번. 위의 동생이 모는 차를 타고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습니다. 진도의 어느 국도에선가. 저는 꽤 껄렁하게 두발을 모두 사이드포켓 쪽에 걸치고 보조석에 앉아있었습니다. 그러던 순간 뭔가가 발목을 잡는 느낌에 놀라서 두 발을 내리고 안전벨트를 맸습니다. 동생에게도 벨트를 메도록 지시한 후. 약간은 긴장된 기분으로 길을 달리다, 2차로에서 유턴을 하게 되었습니다. 순간 귓가에 “자. 긴장해.”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소리와 함께 고개를 돌리자 아직 유턴을 다 하지 못하고 길 중앙에 걸려있던 저희 차를 향해 흰색의 트럭 한대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직감적으로 들이 받힐 것이다! 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요. 저는 뭐라 말도 하지 못하고 동생의 어깨를 잡고 “어!! 어어!!”라고 외쳤고. 동생은 깜짝 놀랐는지 더 움직이지 않고 차를 중앙선에 걸쳐 놓은 채 운전을 멈춰 버렸습니다. 술까지 마신 트럭 운전사는 저희 차를 발견하고 브레이크를 밟는 듯 했지만 그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마티즈의 보조석을 들이받고 말았습니다. 엄청난 충격음과 함께 세상이 멈추고. 귓가에 계속해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괜찮아. 너희 둘 다 아무 일 없을 거야. 조심히 옆으로 피해. 내가 지켜줄게.”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자동차 문이 제 쪽으로 찌그러져 왔고. 저는 다리를 살짝 옮기는 것으로 문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유리창 파편이 튀기며 차는 중앙선에서 논두렁까지 밀려나, 도랑을 굴러 거꾸로 처박히고 말았습니다. “침착해. 다치지 않았지?” 머릿속에서부터 들려오던 다정한 목소리에 숨을 가다듬은 저는 뒤집힌 차 속에서 차분한 목소리로 동생에게 물을 수 있었습니다. “어느 쪽 잘못이냐?” 7. 꿈 꿈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제가 그리는 세계 속사람들입니다만. 그렇지 않을 경우엔 개꿈이거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괴한 존재들일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설원의 노인”이 그런 경우 중 대표적인 한명이겠군요. 언재인지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만. 꿈을 꾸었습니다. 이상한 학교에 많은 학생들이 다니고. 그 학교에서 캠핑을 간다는 내용이었습니다만. 캠핑 장소에서 학생들을 기다린 것은 친절한 산지기 아저씨가 아닌. 붉은 자루의 도끼를 든 미친 할아버지였습니다. 그는 아주 능숙하고 편안한 움직임으로 아이들의 머리를 하나씩 부쉈고, 그의 딸과 아들은 둘 다 미쳤는지. 역시 도끼를 들고 학생들을 쫓아 눈 덮인 산을 이리저리 뛰어다녔습니다. 그 피비린내. 그 살 냄새. 제 뒤를 쫓아오던 그 노인의 주름살 하나하나까지도 너무나도 생생했지요. 그러다 문득 밟히는 눈이 차지 않다는 생각에 좀처럼 생기지 않는 자각몽 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꿈인 것을 인지한 저는 즉시 깨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쳤지요.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는 것을 느끼며 사방이 새카매져오더군요. 정신없이 허우적거리며 나름대로 몸과 맞춰지기 위해 팔다리를 휘저었습니다. 익숙한 방 천정이 보인다 싶더니 아래로 쑥 꺼지는 느낌과 함께 등 뒤로 하얀 빛이 비춰왔습니다. 뒤를 돌아보자 하늘에는 제방 천정이. 몇 미터 아래에는 설원이. 그리고 도끼를 들고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어디가 이년아. 이리와.” 라고 중얼거리는 노인이 서 있었습니다. 저는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수영하듯 제 방 천정 쪽으로 헤엄쳐 갔습니다만. 차가운 바람과 함께 눈발이 날리며 몸은 점점 아래로 가라앉아만 갔습니다. 필사적으로 방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필사적으로 몸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필사적으로 엄마와 친구들을 떠올리며. 방으로, 방으로 나아갔지만. 유쾌한 오락프로를 구경하기라도 하는 듯 껄껄거리며 웃는 노인에게로 점점 가까워만 졌습니다. 몇 번을 방과 설원사이에서 가위에 눌린 채 허우적거리던 저는 가까스로 터져나온 비명과 함께 깨어날 수 있었습니다. 일어나보니 당연한 말이겠지만 제 방이더군요. 등은 식은땀에 젖어있었고, 시간은 잠에든지 채 두 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일단은 여기까지. 이외에도 자잘하고 기괴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멀리서 오는 버스에 사람이 너무 빽빽해서 지나쳐 보내려고 보니 텅 비어있거나. 지하철에서 빽빽하게 걸어오는 무표정한 한 무리의 사람들을 피하며 짜증을 내는데 옆에 있던 동생이 혼자 뭐하느냐고 물어왔던 일이나. 그러나 그건 다음기회에 더 하도록 하지요. 지금은 일단 새벽. 차가운 기운들이 일어나는 시간. 이 이상 이상한 이야길 했다간 꿈자리가 사나울 듯하니 말입니다. 재미있으셨을지 모르겠군요. 그다지 무섭진 안았을지도 요. 하지만 여름이 오고, 주변 사람들이 부쩍 귀신이야기를 궁해 할 때면 생각나곤 한답니다. 제가 겪었던. 괴이한 일들이요.  [출처] efahem | 웃대 ___________________ 그러니까 내가 왜 자주 못 왔냐면 말야, 읽을 때는 '어, 볼 만 한데?' 싶었던 글들도 정작 여기다 붙여넣고 줄바꿈을 위해 한줄 한줄 다시 읽어 보다 보면 뭔가 아쉬워 보이더라고. 자꾸 마음에 차지 않아서 올리려고 했다가 말고, 올리려고 했다가 말고. 그렇게 임시저장된 글만 벌써 몇십갠지 모르겠네 ㅎㅎ 근데 반대로 이 글은, 처음에는 그냥 그랬는데 이리저리 떠돌며 이야기를 보다 보니 자꾸 만나게 되더라고. 처음엔 별로였던 글이 두 번, 세 번 보다 보니 갑자기 괜찮아 보여서 가져 오게 되었다는 것. 사람도 글도 다 그런 게 있나봐. 다들 재밌게 봤으면 좋겠다.
퍼오는 귀신썰) 신발로 제사 지내는 아부지 이야기
어때, 그냥 매일 같은 날들이지만 그래도 새해니까 괜히 마음을 다잡게 된다. 모두에게 조금 더 나은 해이기를! 그럼 새해 첫 귀신썰 같이 볼까? 오늘은 가볍게 시작해 보쟈! _____________________ 신발제사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에는 중학교 때 선생님 한 분이 얘기 해주신 이야기가 늘 생각난다. 선생님이 해주신 이야기가 생각난 김에 여기에 적어 볼까 한다. 내 기억이 맞으면 중학교 2학년 때로 기억한다. 그 선생님은 50대 후반쯤의 할머니였고 담당 과목은 도덕이였었다. 평소 수업시간에 수업외의 이야기는 전혀 하시지 않으셨고 수업중에 딴청을 피우는 놈들은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혼내시는게 유명하셨던 분이었다.  그날은 초여름 비가 추적추적 내리며 천둥번개가 치던 날이었다. 그런 날은 으레 수업하러 들어오신 선생님들한테 무서운 이야기 해달라고 졸랐고 선생님들은 이 요구를 무시하면 남은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집중을 1도 안 할 거리는 걸 알기에 또는 자기들도 지루했었는지 무서운 이야기나 지인들이 겪었다고 밀하는 무서운 썰들을 풀어놓으셨다.  점심시간 다음 5교시에 도덕 수업였고 그 할머니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우리 모두는 허튼 소리하면 이 한 시간이 피곤해질 걸 알기에 조용히 침묵을 유지할 때 꼭 눈치없는 놈 하나가 큰 목소리로  "선생님 비도 오는데 무서운 이야기 하나 해주세요" 이러는 거였다.  교탁 바로 앞자리였던 나는 '햐 이제 혼나겠군' 생각했는데 왠걸 선생님은 조용히 우리들을 주시하다가 입을 열었다.  "무서운 이야기가 듣고 싶니들?"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 였을까 우리 모두는 크게 "네~" 하였고 선생님은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 나가셨다. 선생님네는 선생님이 어릴때부터 설날이 지나고 따로 제사를 하나 지냈다고 한다. 근데 이 제사가 조금 특이한게 고무신 운동화 군화등 각종 신발을 음식들과 함께 상에 펼쳐놓고 선생님의 아버지 혼자서만 다락방에서 제사를 지내었다고 한다. 선생님이 국민학교 때 너무 궁금한 나머지 제사를 지낼 때 몰레 올라가다가 크게 혼이 난 후 고등학교 때까지 제사 때 다락방 근처에도 가지 못하셨다고 하셨다. 대입수험을 끝내고 가족들과 축하하는 식사자리에서 선생님은 머리도 커져서였는지 아니면 그 동안 참아온 궁금증 때문이였는지 선생님 아버지한테 그 이상한 제사를 왜 하시느냐고 여쭈어봤고 선생님 아버지는 술을 한두 잔 마시다가 얘기하셨다고 한다. 선생님 아버지는 6.25 때 징집되시어 휴전때까지 군에 복무하셨다고 하셨다. 낙동강까지 밀리다가 인청상륙작전이 성공하면서 북으로 북으로 진격하시다가 중공군의 기습으로 선생님 아버지가 속한 부대가 거진 와해되다시피 했고 선생님 아버지 포함 11명의 부대원들만이 산길을 타고 남으로 남으로 걸어내려오실 때였다고 한다.  워낙 급작스럽게 공격받고 부대가 와해되면서 공급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탄이면 먹을거면 정말 부족했다고 하셨다.  그렇게 추위와 굶주림을 참아가며 산길을 따라 걷다보면 한명 한명이 쓰러졌었는데 그렇게 한명씩 쓰러질 때마다 죽은 병사의 군화를 벗겨내어 군화 윗부분 말랑한 가죽부분을 잘라내어 물에 삶아 먹으면서 내려 왔다고 하셨다. 그렇게 국군을 만날 때까지 말이다. 결국 국군을 만났늘때는 고작 3명만 살아남았다고 하신다. 그렇게 무사히 전역하시고 결혼도 하고 선생님도 출산하시고 평범하게 살고 계실 때 어느날부터인가 꿈을 하나 꾸셨다고 하셨다. 같이 후퇴할 때 죽어나간 7명의 부하들이 차례차례 꿈속에서 나타나 맨발로 엉엉 울면서 말이다. 선생님 아버지는 부하들이 죽고 자기가 살았다는 죄책감에 울면서 그 동안 어디 있었냐고 가자 우리집에 가서 따스한 밥 한끼 하자 하니 부하들이 한결같이 저는 죽어 저승에 가야합니다 하지만 신발이 없어 가지 못합니다 이를 어찌합니까 하며 엉엉 울다 꿈에 계속 깨시니 이에 마음이 불편하다 부대원들이 신발이 없어서 못간다는 얘기가 퍼뜩 생각이 나서 그때부터 설다음날 신발과 함께 제사를 지내셨다고 하셨다고.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자기가 죽어서도 선생님과 선생님 남동생보고 너희들이 그 제사를 이어가달라고 부탁하신다고 말씀을 하셨었는데 임종직전 병원에 모인 가족을 보시며 환하게 웃으시며 하신 말씀이 부하들이 모두 신발을 신고 있는 거를 봤다고 제사는 더 이상 안해도 될 거 같다 하시더니 다음날 그렇게 떠나가셨다고 하셨었다. [출처] 웃대 자본주의맛 ___________________ 괜히 울컥하는 이야기지. 아직도 마음 한켠에 전쟁에 대한 두려움은 다들 있잖아 끝나지 않은 싸움 을 우리는 왜 자꾸 해야 하는 걸까 결국은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이 아닌, 아무 것도 모르고 전장에 나간 사람들만 상처 받고, 평생을 앓고... 선생님 아부지는 평생 그 짐을 지고 살아 오셨겠지 그래도 나중엔 모두 신발을 신고 있었다니 너무 다행이다 임종 직전에 안심하라고 나타나신건가봐 마지막에라도 마음 편히 가시라고 ㅠㅠ 모두의 올해가 따뜻하길 바라면서 올해도 잘 부탁해! 새해 복 많이 받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