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mumimi
10,000+ Views

영화 기생충에서 ㅇㅇ과 ㅇㅇ가 죽은 이유

아직 기생충을 안 보신 빙글러들을 위해서...

스포주의 !

스포주의!!

스포주의!!!

스포주의!!!!


이미 기생충을 관람하신 분들이라면 흥미있을 내용입니당 후후후


ㅊㅊ 이동진 평론가





문광의 남편인 근세는 자기 아내가 죽자

칼을 들고 저택을 돌아다니다 기정을 찌름

다른 가족들도 다치지만 기정만 죽음



사실 기정은 문광의 죽음과 가장 거리가 먼 사람

문광을 발로 차서 계단에 떨어져 죽게 만든건 기정이 엄마고

문광 죽이려고  수석을 들고 지하실로 갔다가 실패한것도 기정이 오빠인데

왜 기정이만 죽었을까? 🤔








이거에 대한 해석을 정리하면


(1) 기정이 아빠 엄마 오빠는

누군가가 일하고 있던 자리에 비집고 들어갔음

과외선생 운전기사 가정부 다 누가 일하던 자리

그런데 기정은 기존에 없던 미술치료라는 일자리를 스스로 만들어서 쟁취함

그냥 미술만 가르치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받음

자수성가한 부자들에게 보이는 소질




(2) 기택네 집안에서 가장 똑똑하고 당당한 기정

기정이 박사장 집에서 대담하게 거품목욕을 하자

기정이 오빠는 마실거 주면서 나중에 이런 대사를 함

"기정이 너는 이 집이랑 어울려. 원래 여기 사는 사람 같애."

하류층인데도 상류층에 어울리는 자질





결론적으로

기정 =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를 의미하는 인물




그런데 영화에서 가장 수동적이고 상류층에 의지하던 근세가

(지하실에서 박사장을 향해 리스펙트를 외친...)

기정을 죽인 것은

하류층이 상류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급간의 사다리"를 부수어버린 것

내가 못가면 너도 못가 같은 물귀신 작전

하류층 계급끼리의 경쟁






그런데 계급간의 경쟁이 순식간에 연대로 바뀌는 장면이 있음



박사장이 근세의 시체에서 나는 냄새에

불쾌한 표정으로 코를 막으며 차키를 갖가져가려고 하자

기택이 박사장을 칼로 찌르는 장면




그전까지는 기택네 가족 vs 문광근세 부부의 경쟁 구도였음

두 하류층끼리 미친듯이 싸우다가

상류층인 박사장이 죽은 근세를 쓰레기 취급하자

기택은 근세의 이름으로 박사장을 죽여버림






기정과 근세

두 사람의 죽음은 계급간의 경쟁과 연대를 의미



오.... 저는 기택이 대체 왜 박사장을 죽였을까? 계속 자신을 무시하는 꼴이 보기 싫었나? 생각했는데 오........흠터레스팅 아닌가욧!!!!!
7 Comments
Suggested
Recent
전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기택이 박사장네 가족이 갑자기 돌아와 거실에 숨어있다가 박사장이 하는 말을 듣는데 " 절묘하게 선을 지키는데 딱하나 선을 넘는게 있는데 그게 묘한 냄새야" 또 기택이 박사장와잎과 쇼핑할때도 냄새가 언급되었고‥ 결국 그 냄새는 하층민의 치부인데 박사장이 그 혼란의 와중에도 냄새를 건드리자 이성을 잃어버린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게 의도한 바라면 봉감독 정말 천재네요...정말 영화에 푹빠져 몰입하며 봤지만 거기까진 생각도 못했는데... 그걸 캐치한 이동진도 참 대단합니다 역시 그냥 평론가 딱지 다는게 아니에요...
이건 생각도 못했네ᆢ괜히 평론가가 있는게 아니귄ㆍ
집에서 술마시면서 봤는데... 뒤로 갈수록 기억이...
@shm7041 담엔 안주만 드시면서‥😌
피자박스 접을때 곱등이 잡는 장면이 복선인듯요 반지하에 사는 가족. 기생?하는 곱등이 . 그 속의 연가시~! (곱등이의 죽음으로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연가시)
Cards you may also be interested in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쓴 문지원 작가가 18살 때 고등학교를 자퇴하면서 썼던 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쓴 문지원 작가가 18살 때 고등학교를 자퇴하면서 <당대비평>에 썼던 글. 지금 - 학교는 반드시 붕괴되어야 한다. 자퇴한지 넉 달이 지난 지금, 나는 영등포에 있는 하자센터(서울특별시립 청소년 직업체험센터) 영상 디자인 작업장에서 공부하고 있다. 하자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배우는 동안 내가 얻은 것은 '세상을 낯설게 볼 줄 아는 힘'과 '혐오할 것을 혐오할 줄 아는 예민함', 그리고 '나의 언어'이다. 십 년이 넘는 학교생활 동안 내 몸은 온통 싫다고, 여기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데도 나의 교육 받은 이성은 그걸 이해하지도 인정하지도 표현하지도 못했다. 언론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떠들어대고 있는 제도교육의 모순에 관한 이야기는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다 죽은 말이다. 학교 안에 있는 학생들의 입에서 학교의 역겨움과 남성주의와 안이함과 무지에 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올 때,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언론과 학교에 의해 세뇌된 죽은 언어가 아니라 스스로의 가슴으로 느끼고 찾아낸 자신만의 언어일 때 학교는 쓸모 있는 배움의 공간으로 남을 수 있다. 이제, 힘겹게 찾은 내 언어로 말한다 - "학교는 늙은 아버지 같다." 내가 이 말을 하는 순간 세상의 모든 늙은 아버지들이 당대비평을 내던지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것 자체가 이미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다. 나는 왜 아버지를 비판할 수 없나? 나는 왜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라야만 하나? 나는 왜 아직도 아버지의 인생경험에 근거한 삶을 살아야만 하나? 아버지와 다른 꿈을 꾼다는 이유로, 아버지와는 다른 생각을 한다는 이유로, 나는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의 이해와 동의를 빌어야만 하며, 그 모든 짐을 혼자 져야만 하나? 아버지는 세상을 잘 알아서? 아버지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겨서? 이유는 하나뿐이다. 아버지는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라는 이름 뒤에 쌓인 권위의 무게와 전통은 너무나 엄청난 것이어서 그 내용이야 어떠했든 나는 존경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복종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앞에서 "내가 학교에 안 가려고 발버둥쳤던 건 거창한 명분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학교가 너무너무 싫고 내가 더 이상 적응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고있었다. 다만 인정하지 못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나로 하여금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 그것은 바로 학교의 권위다. 그것도 현실을 편견 없이 볼 줄 아는 능력 따윈 잊어버린, 다양한 생각과 언어를 길러내는 힘 같은 건 알지도 못하는, 무능하고 늙은 권위다. 그리고 아직도 학교 안에 있는 수많은 '나'들은 권위의 족쇄에 온 몸과 마음과 정신을 사로잡힌 채 괴로워하고 있다. 또는 착각하고 있다. 이제, '나'들의 언어를 찾기 위해 말한다. '나'들은 스스로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나'들은 스스로의 몸으로 삶을 알 수 있어야 한다. '나'들은 스스로의 언어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나'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우리는 '나'들의 이야기를 인정해야 한다. '나'들이 숨쉴 수 없는 사회, '나'들이 깨달을 수 없고 성장할 수 없는 사회, '우리'가 아닌 '당신'이 지배하는 사회... 이런 사회가 학교라면, 학교는 반드시 붕괴되어야 한다. 전문은 여기에서 와 18살에 이런 생각을 글로 . . *_* 우영우 속 방구뽕이 자캐였다니 !
이색적인 수집 취미들.jpg
피규어 제외 1.마그넷 (냉장고 자석) 최근 해외 여행이 많이 지면서 각나라나 도시의 마그넷을 모으시는 분들이 많아짐 커뮤니티 및 교류도 상당히 활성화 되어 가는중 2. 우표 수집 80~90년대 수집의 취미의 대표 명사로 2000년대 이후로 수집하는 분들이 대폭 감소하긴 했지만 여전히 수집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분야 3. 동전 수집 동전 수집은 크게 기념주화와 일반주화로 나뉘는데 지폐 수집을 하시는분들도 손을 대기 힘들다고함 한번 수집할려면 엄청난 시간과 공을 들여야됨 4. 지폐 수집 우표 수집을 하시는 분들이 병행해서 수집하는 경우가 많음 5. 담배 수집 80~90년대만 해도 담배를 수집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었음 지금은 기념품 정도로만 간직하고 있는 분들이 있고 수집이라는 의미가 사라진 분야 6. 따조 수집 현재 20대 이하분들은 생소한 물건이겠지만 90년대를 거쳐서 성장해 오신분들이라면 모두 아시는 따조 따조 = 딱지의 일종 당시 엄청난 붐으로 따조를 모으기 위해 과자를 사서 따조만 챙긴후 버리는 경우가 많았죠 7. 라이터 수집 담배 애호가들중에 종종 라이터 수집을 하시는 분들이 있음 대표적인 화사는 사진에서 보이시는 zippo가 대표적 8. 만화책 수집 예전이나 지금이나 만화책을 수집하시는 분들은 꾸준히 계시는거 같음 9. 미니카 수집 90년대 반짝 전성기를 구가하며 현재는 어릴때 미니카를 즐기신 분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만든 커뮤니티 한곳이 국내 미니카 시장의 명맥을 유지하는 걸로 알고 있음 10. 병뚜껑 수집 90년대에는 많은 분들이 수집하던 분야 였으나, 지금은 캔,병 수집분야와 비슷한 정도의 명맥을 유지중 11. 병 수집 코카콜라 병 수집이 대표적 병수집 하시는 분들이 보통 병뚜껑 수집도 병행함 12. 복권 수집 90년대에는 우표 수집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름 인기가 있던 수집 분야 대표적인게 주택 복권 수집 13. 술 수집 애주가들의 꿈이죠 대표적으로 미니어쳐 수집을 꼽을수 있겠네요 14. 시계 수집 남자들의 로망중 하나 시계 수집 15. 시티컵 수집 각 나라별로 몇개의 대표적인 도시에서만 판매되는 컵으로 해외 출장이나 여행이 많으신 분들이 수집하는 분야 최근 30대 여성들 사이에서 부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수집 분야중 하나 16. 앨범 및 레코드 90년대 대표적인 수집 분야중 하나 최근에는 많이 사라짐 17. 캔 수집 대표적으로 코카콜라 캔과 제조사 관계 없이 맥주캔이 수집의 대상 18. 텀블러 수집 대표적으로 스타벅스 텀블러 수집 시티컵처럼 나라별로 디자인이 달라서 여행가면 스타벅스 텀블러만 별도로 구매하시는 분들이 있을 정도 19. 포스터 수집 90년대에는 가수, 배우, 공연, 영화, 공익 광고 포스터등 다양한 포스터 수집 분야가 존재 했으나 현재는 영화 포스터 수집으로 축소됨 출처
기존나쎈 조선 최초의 주미 대사.jpg
때는 1887년.. 5년전에 구식 군인들이 일으켰던 임오군란을 진압하기 위해 청나라 군대를 허겁지겁 부르긴 했는데.. 청나라는 군대 진압했으면 좀 꺼지지 조선에 눌러앉아서 온갖 간섭을 하려 했고 일본은 임오군란때 죽은 일본인과 불탄 일본 공사관을 들이밀며 배상 요구를 하려 한것임 심지어 언제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지들 군대도 조선에 주둔시키겠다는 말같지않은 요구도 해버림 하지만.. 고종 고종은 쩔수 없었다.. 그 뒤로 조선은 지겹도록 청나라와 일본 간섭에 시달리게 됨 *잠시 당시 관계 설명* 이 당시 청나라는 서양 국가들에게 탈탈탈 털리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조선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들 따까리 자리를 유지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음 하지만.. 원래 청나라와 조선의 관계는 사대관념에 입각한 조공책봉 관계, 즉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보살펴주고 작은 나라는 큰 나라를 섬기는 그런 관계임. 말그대로 힘에 의한 관계라기 보단 이념에 따른 자발적 관계이고, 당연히 청나라는 조선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았었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청나라가 자꾸 선넘더니 무력을 앞세워 국정에 간섭하기 시작하는 것! 이때부터 조선인들도 머야시발;;하면서 청나라와의 전통적 관계를 끊고 동등한(=근대적인) 관계를 수립하기 위해 조공을 철폐하려고 하는 등 한발자국씩 나아가던 시기였음 ~다시 돌아와서~ 조선의 여러 관료들은 청나라를 비롯한 외세의 개입이 갈수록 심해지는 이 시점에, 어떻게 하면 조선이 자주독립을 지키며 근대화를 이뤄낼 수 있을지 열심히 고민 또 고민했음 그 당시 생각해낸 방법은 바로~~~ <외교> 조선은 외교적 노력을 통해 국제질서에 편입하고자 했음 그렇게 해서 청나라에도 조공책봉 사신이 아닌 동등한 주청 상주 외교관을 파견하고, (물론 청나라는 전통 질서에 혼란 생긴다고 싫어했음 ㅎㅎ 우짤) 도쿄에도 주일 외교관을 파견하고자 했었음 하지만 오늘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바로 조선 최초의 주미 대사 주미특파전권대사 박정양을 파견했다는 것임 고종이 주미 대사를 파견한 것은 미국에 상주 외교관을 파견함으로써조선이 자주독립국가임을 주변국에게 보여주고, 서양의 현재세력 관계를 파악하고, 그 속에서 조선의 독립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자 했다는 고종의 빅 픽쳐 ㅎㅎ 조선은 당연히 파견하기로 결정한 후에 청나라한테도 알려줬음 : 정양이 일행 미국에 보낼거임 ㅎㅎ 위안스카이(원세개) : 미쳤습니까 휴먼? 갑자기 청나라가 존나게 시비를 거는거임;; 대충 뭐라고 했냐면 조선이랑 미국 사이에는 상민도 없고 무역도 안하는데 전권공사는 왜 보내? 돈도없으면서 외교사절은 무슨 ㅎㅎ 낭비 ㄴㄴ 아니 그리고 니네 왜 우리한테 허락 안받음?? 이거 무효야 무효 응.. 개소리 한거임 당시 조선에 주재하던 미국 공사나 고문관도 청나라가 조선과 미국의 조약을 방해하는건 조약 위반이고 조선은 자주독립국이니 냅둬야 한다고 항의했음 이 민폐국 때문에 자꾸 출발이 늦어지니까 어쩔 수 없이 청나라가 요구하는 영약삼단을 받아들임 고종은 청나라의 요구를 마지못해 들어주면서 박정양 일행에게는 “짐의 뜻을 잘 헤아려 처신하라”고 거듭 당부했다고..(대충 영약삼단 지키지 말라는 뜻) 영약삼단이란? ① 주재국에 도착하면 먼저 청국공사를 찾아와 그의 안내로 주재국 외무성에 간다. ② 대한제국 공사는 회의나 연회석상에서 청국공사의 밑에 자리를 잡는다 . ③ 대한제국 공사는 중대사건이 있을 때 반드시 청국공사와 미리 협의한다. =한줄요약: 청나라가 미국에서 조선이 자기네 속국이라고 홍보하기 위해 세가지 약속 지키라고 협박함 조선이 자주독립국인걸 보여주고자 했던게 어지간히 아니꼬웠나 봄 ㅎㅎ 어찌됐건 우여곡절 끝에 워싱턴에 도착한 박정양 일행! 청나라와의 약속 중 첫번째인 ① 주재국에 도착하면 먼저 청국공사를 찾아와 그의 안내로 주재국 외무성에 간다. 를 지켜야 할 차례였음 (조까~) 하지만 기존나쎔 박정양은 청나라 공사가 아닌 미국의 국무부 장관를 먼저 만나러 가면서 영약삼단을 무시해버림 당시 일행 조금 화난 위안스카이 : 영약삼단 지키라해;; 거슬린다해;; 박정양은 청나라가 항의하자 “님 ㅠㅠㅠㅠ 쏴리쏴리 ㅠㅠㅠㅠ 뚜이부치 ㅠㅠㅠ 정부가 청국 공사 먼저 만나러 가라고 나한테 말 안해줬음ㅠㅠㅠ 일부로 그런거 아님 ㅠㅠㅠㅠ” 이라고 해명함 청나라는 그냥 흠....하고 넘어가게 됨 하지만 그 뒤로도 박정양은 미국의 대통령을 만날 때 청의 외교관을 대동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워싱턴에서 공사관의 부임 순서에 따라 방문하는 관례에 따라 28개국 중에 18번째로 청의 공사관을 방문했음 이후에 청국 공사에 방문한 박정양은 더 이상 “몰랐다”고 할 수 없으니 솔직하게 “미국에 도착해서 미국 국무부가 아닌 청 공사를 먼저 방문하는 것은 외교적 결례이고, 이는 미국이 조선과의 교류를 거부할 수 있는 명분이 되어 조선과 미국의 국교라는 파견 명분을 해칠 수 있으므로 영약삼단을 지킬 수 없었다.” 고 말했고, 너무 맞는 말이었기 때문에 청나라에서도 뭐 더 이상 뭐라고 할 수는 없었음. 하지만.. 그 뒤로도 복장같이 사소한 걸로도 다 트집을 잡아서 시비를 걸었음 ㅎㅎ 물론 박정양은 영약삼단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청나라의 압력에 시달렸지만, 그래도 이는 엄청난 의의가 있는 행동이었다는 점 왜냐하면 청의 요구를 벗어나서 주체적으로 외교 활동을 했기 때문임 청나라 공사의 요구들을 거절하고 당당하게 단독으로 활동하며 자주적 외교와 독립국의 지위를 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 (워싱턴 대한제국공사관) 당시 주미공사관 서기관이었던 이상재가 작성한 편지를 보면 "이곳의 인물 풍속 정치 법령은 오로지 우리나라와 일체 상반된다. 날마다 귀와 눈이 처음 듣고 처음 보는 것" "가장 참기 어려운 것은 중국공사가 매번 체제사로 서로 양보하지 않고 고집부리는 것"이라고 할 정도로 청나라가 가지가지 간섭해댔던 시절에도 우짤? 마인드로 조선의 외교를 위해 힘써줬던 그 옛날 기존나쎔 조선 외교관들의 이야기가 흥미로워서 가져와봄 마무리는 이상재의 편지 중 "이 나라에 주재하는 각국 공사는 30여 개국으로 모두 부강한 나라이고, 오직 우리나라만 빈약하지만 각국 공사와 맞서 지지 않으려고 한다. 이때 만약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꺾이면 국가의 수치이고 사명(使命)을 욕보이는 것이다." 문제시 삭제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