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iza
1,000+ Views

당신의 눈부신 미래를 위해

피곤하고 지쳐가는 현실에
꿈을 놓을까 고민이신가요?

꿈은 우리의 삶을 단단하게
지탱해주는 지팡이와도 같습니다.

인내하고 기다리면 힘차게
비상할 순간이 반드시 다가옵니다.

당신의 꿈이 이뤄질 그날이요.

#독한엄마 #데일리글 #좋은글 #좋은강연 #좋은글귀 #좋은생각

Comment
Suggested
Recent
Cards you may also be interested in
예금과 적금, 무엇이 더 나을까?
※ 이자가 많은 예금 vs. 이자가 적은 적금 | 예금과 적금 | 예금은 목돈을 일정 기간 넣어두고 이자를 받는 상품을 말한다.  가령 1,000만 원을 한꺼번 에 넣어두고 1년 후에 찾으면 예금이다.  적금은 매월 일정한 금액을 저금해서 일정한 기간이 흐른 후에 목돈으로 찾는 상품을 말한다.  가령 매월 10만 원씩 저금한 후, 1년 뒤에 원금 120만 원과 이자를 받는 상품이 있다면 적금이다. 우리는 예금이나 적금을 이용할 때 ‘~%의 이자를 준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여기서 ‘~%의 이자’는 정확히는 ‘연 ~%’의 의미다.  예를 들어 1,000만 원을 연 2%의 이자를 주는 예금에 가입했다면 1년 동안 1,000만 원을 넣어 둔 대가로 은행에서원금 1,000만 원의 2%에 해당하는 20만 원의 이자를 지급한다.  그렇다면 1년이 아닌 6개월만 넣어두면 이자는 어떻게 될까?  1년간 넣어뒀을 때의 절반인 10만 원의 이자를 받는다.  같은 조건으로 1개월만 맡기면 이자는 1년간 받는 이자 20만 원의 1/12인 16,666원을 받게 된다. 은행뿐 아니라 증권사나 보험사 등 금융회사들은 돈을 맡기면 1년을 맡기는 것을 기준으로 해서 이자율을 표시하되, 1년 이하일 경우에는 돈을 넣어둔 기간을 계산해서 그 기간 동안에 발생하는 이자만을 지급한다. 이런 원리를 이해했다면 예금과 적금의 이자율 차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연 2%의 이자를 주는 적금에 매월 100만 원씩 불입한다면, 원금은 1년간 1,200만 원이 된다.  하지만 매월 불입하는 100만 원은 통장에 넣어둔 기간에 따라 이자액이 각각 달라진다.  첫 달에 넣어둔 100만 원은 1년간 통장에 있게 되니까 연 2%에 해당하는 2만 원을 받는다.  하지만 그 다음달에 들어가는 100만 원은 1년이 아닌 11개월만 있게 되니까 1년 기준으로 1개월 동안의 이자를 빼고 준다.  즉, 100만 원에 대한 1년 이자 2만 원에서 1달 이자인 1,643원(30일 기준)을 빼고 18,357원만 이자로 받는다.  이후에 넣은 돈들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1년을 못 채운 만큼의 이자를 기간별로 빼고 받는다. 이런 식으로 1년간 적금에 불입하면 원금 1,200만 원에 대해 받는 실제 이자의 합계는 13만 원이 되고,  이는 원금 대비 1.08% 정도여서 겉으로 표시된 이자율 2%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따라서 적금의 이자율이 2%라고 해서 실제로 내가 받는 이자가 원금의 2%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1년간 목돈 1,000만 원을 예금에 넣어두고 적금도 매월 100만 원씩 붓고 싶다면, 아래의 은행 중 어디가 유리할지 따져보자. (이자소득세 15.4%는 무시한다.)   1. Olive은행 : 예금금리 2%, 적금금리 3%  2. Jin은행 : 예금금리 3%, 적금금리 2% 둘 중 어느 은행을 찾아가는 게 유리할까?  정답은 Jin은행이다. 언뜻 보면 Olive은행의 적금금리가 Jin은행보다 높은 데다 적금의 경우 원금이 1,200만 원(100만 원 × 12개월)이고, 예금은 1,000만 원이기 때문에 Olive은행이 조금 더 유리해 보인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대로 실제 받는 이자금액은 이자율이 같을 경우, 적금이 예금이 비해 절반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예금금리를 더 주는 Jin은행이 돈을 불리는 데 더 큰 도움이 된다. A) Olive은행에 맡겼을 경우 이자 총액 : 39만 5,000원       예금이자 200,000원 + 적금이자 195,000원 = 395,000원 B) Jin은행에 맡겼을 경우 이자 총액 : 43만 원      예금이자 300,000원 + 적금이자 130,000원 = 430,000원
2020년 새로운 도전 BAC
- 🏔BAC 도전중! ✨ - 제1좌 마니산 ☑️ 제2좌 관악산 ☑️ 제3좌 청계산 ☑️ - 1. 강화도에 있는 기가 가장 쎈곳 자연의 기를 받으러 첫 등좌! 몸 컨디션이 안좋았지만 포기하지않음. - 2.관악산 돌계산이 많았고, 푸른소나무 꽃들 물소리 까지 자체로 힐링인 산행 - 3. 청계산 나무계단,돌계단이 많았고, 진달래꽃을 보며 올라가는 재미 매봉 도착후 서울의 모습은 장관. - 코로나로 제약이 많고 참 힘든 한해 이럴때 일수록 우울할수도 있고, 사회적 침체아닌 침체와 부정적 이상한 사건들이 비일비재한 한해 부정적인 마음보다는 긍정적으로 바라보려하고 긍정마인드 품기! - 좋은뜻 좋은건 ,같이 알아가기! . . 유지자사경성 [有志者事竟成] 사람이 하고자 하는 뜻만 있으면 무슨일이든지 이룰 수 있음. . 심청사달[心淸事達] : 마음이 맑으면 모든 일이 잘 이뤄진다. - 빙글러님들도 자연으로 힐링 해보세요~! 어려울때 일수록 주저하지 않아야 할듯 합니다. . 왼쪽에서 부터 관악산룩 - 마니산룩 - 청계산룩 제1좌 마니산을 정복한 모습이에요! 20200314 제 2 좌 관악산 정복! 20200321 날씨가 너무 맑고 조금 더웠던 옷선택이 조금 아쉬운 더웠습니다 :) 제 3 좌 청계산 정복! 20200329 진달래꽃이 참 예뻤습니다! 청계산 정상에서 바라본 서울의 전경은 참 아름다웠습니다. 하루빨리 코로나가 사라져, 마스크없이 좋은 공기 한가득 마시며 다니고 싶습니다! . 빙글러 님들도 코로나 조심하시고, 건강조심 서로 조심 배려하며 극복해보아요 :) #블랙야크100대명산 #100대명산 #블랙야크알파인클럽
'부활'이 주는 5가지 교훈 👨‍🦳
글 속에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이 담겨있는 작가. 톨스토이의 '부활'이라는 책에서 제가 개인적으로 집중이 되었던 포인트를 찝어서 알려드리려 합니다. 편하게 감상해주시기 바랍니다~~ 1. 자신은 자신이 하는 일이 맞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생각을 가진 누군가라도, 그분에게는 자신이 하는 일이 언제나 옳습니다. 그렇게 믿기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지요. 생각이 다르다고 억압을 하는 행위는 틀린 생각을 하는 것보다 무서운 일입니다. 자신이 틀리다고 생각하더라도, 다름은 인정해야 합니다. 2. 땅에 대해서는 누구나 평등하다. 땅도 결국 자연이 우리에게 준 선물입니다. 이상적으로는 땅이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어떻게 분배를 해야 정의로운가?'에 대한 생각은 매우 오래 전부터 있던 고민이죠. 저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과 '사회계약론'이라는 책에서, 사회와 분배에 대해서 적절히 알게 되었어요. 추천합니다! 3. '상류사회'란 무엇인가? 이 책에서 말하는 상류사회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미지 그대로의 상류사회이죠. 주인공인 네흘루도프는 그 사회에 환멸을 느껴, 자신의 일을 좋아하며,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회가 '상류사회'임을 제시합니다. 4. 어떤 신념이 우리의 행동을 이끄는가? 정말 와닿은 말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신념으로만 인생을 살진 않지요. 그렇게 살다가는 다른 사람과 살 수 없을 겁니다. 그러나 얼마만큼 남의 신념을 받아들이며 살 것인가는 반드시 그냥 지나갈 문제가 아닙니다. 이에 대한 고뇌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답변을 우리에게 줄 것입니다. 5. 죄를 벌한다는 것 '죄와 벌'은, 사회적인 관계에서 탄생합니다. 사회가 없다면 죄도 없고, 법도 없죠. 사회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존재임은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사이의 관계를 법으로만 정의할 수 있을까요? 역사적으로, 법은 생각보다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어오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사각지대로 가득했지요. 그러기에 우리 사회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법 이전에 다른 단계가 존재해야 합니다. 톨스토이가 제시하는 것, 바로 '사랑'이지요. <마치며> 정말 좋은 책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톨스토이의 독백에는, 독자에게 깨달음을 주고 때로는 고뇌를 주는 힘이 있는 듯합니다. 재미있게 읽으셨기를 바라며, 유익한 컨텐츠를 또 준비해 오겠습니다~~
사랑 인정 칭찬 존경받고 싶은 마음(ft.욕구의 구걸꾼)
사랑 인정 칭찬 존경받고 싶은 마음(ft.욕구의 구걸꾼)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었다. 오로지 나만 바라봤으면 했다.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나를 최고로 봐줬으면 했다. 모든 사람에게 칭찬받고 싶었다. 내가 잘하는 것만 봐주길 바랐다. 모든 사람에게 존경받고 싶었다. 최고로 멋진 인간이 되길 바랐다. 나는 사랑 인정 칭찬 존경을 구걸하며 살아왔다. 여러분도 그런가요? 단어를 듣기만 해도 입안에 군침이 돌듯 흥분되네요. 사랑 인정 칭찬 존경 위의 네가지 음식만 먹으면 너무나도 행복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침없이 네가지 음식에 욕심을 부립니다.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겠죠? 배가 터지도록 먹고 싶을 겁니다. 개에게 먹다남은 뼈다귀를 주면 허겁지겁 뼈의 살을 뜯어 먹습니다. 그래도 부족했는지 반짝반짝 광이 날 정도로 뼈다귀를 아직도 핧아 먹고 있습니다. 나중에는 뼈다귀만 봐도 미쳐 날뜁니다. 우리는... 사랑을 받기 위해서 구걸도 합니다. 사랑받기 위해 모든 걸 갖다 바칩니다. 자기 삶을 잃어 버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졸졸졸 쫓아다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면 자신과 사랑했던 대상을 훼손해 버립니다. 그렇게 사랑의 노예가 됩니다. 사랑을 받으려고만 합니다. 타인을 사랑해 줄 생각은 하지 않은채... 우리는... 인정받기 위해서 구걸도 합니다. 잘 보이려고 온갖 애교를 부립니다. 인정받으려고 자기 삶을 훼손해 버립니다. 인정 못 받으면 갑자기 돌변합니다. 무시당했다면서 화를 내고 욕을 합니다. 그렇게 인정의 노예가 됩니다. 인정을 받으려고만 합니다. 타인을 인정해줄 생각은 하지 않은채... 우리는... 칭찬받기 위해서 구걸도 합니다. 칭찬받기 위해서 거짓말도 합니다. 칭찬감옥에 감금된채 살아갑니다. 주인만을 졸졸졸 따라다니는 강아지마냥 마냥 예쁜짓만 합니다. 그러다가 나를 칭찬해주지 않으면 크게 짖거나 나중에는 물어 버립니다. 그렇게 칭찬의 노예가 됩니다. 타인을 칭찬해줄 생각은 하지 않은채... 우리는 존경받기 위해서 구걸도 합니다. 존경받기 위해서 단점을 숨깁니다. 추악함을 포장지로 숨겨 버립니다. 본래 모습이 드러날것이 두려워 매일 밤마다 악몽을 꾸며 살아갑니다. 누군가의 작은 비난에도 멘탈이 무너져서 자신과 타인의 삶을 훼손시켜 버립니다. 그렇게 존경의 노예가 됩니다. 타인을 존경해줄 생각은 하지 않은채... 사랑 인정 칭찬 존경받고 싶은 마음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이기도 합니다. 그것을 통해서 내 존재를 확인하고 내가 살아있음을 생생하게 느끼고 소중한 사람이라는 감정을 경험하고 내가 이 사회에서 가치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할테니까요. 그렇지만 이것은 실체가 없는 가짜입니다. 고통의 무더기일 뿐입니다. 처음에는 살코기가 많은 음식처럼 보이지만 달콤함은 잠시일뿐 결국 뼈다귀만 빨고 있는 자신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중독이 되어 갑니다. 자신을 잃어버리고 그것의 노예가 됩니다. 그것이 없으면 죽을 듯 괴로워합니다. 아이에게서 장난감을 떼어내듯.. 개에게 뼈다귀를 떼어내듯.. 슬프게도.. 사랑을 받으려고 할수록 상대방은 당신을 싫어하게 됩니다. 결국 당신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자신을 사랑할수 없게 됩니다. 자신을 이제는 혐오합니다. 인정을 받으려고 할수록 당신은 불신의 대상이 될 겁니다. 인정을 받기는 커녕 누군가의 욕구를 채워주는 먹잇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자신을 인정할수 없게 됩니다. 자신을 이제는 불신합니다. 칭찬을 받으려고 할수록 당신은 비난을 받게 될 것입니다. 결국 자신이 쓸모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과 함께 우울해집니다. 그리고 당신은 자신을 칭찬할수 없게 됩니다. 자신을 이제는 비난합니다. 존경을 받으려고 할수록 당신은 무가치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결국 세상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당신은 자신을 존경할수 없게 됩니다. 자신을 이제는 뼈다귀로 여깁니다. 나를 먼저 사랑해줘야 합니다. 내가 나를 인정해줘야 합니다. 내가 나를 칭찬해줘야 합니다. 내가 나를 존경해줘야 합니다. 나 조차도 나에게 주지 않는 것을 타인에게 갈구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며 불가능합니다. 사랑 인정 칭찬 존경이 나쁜 것이니 그것을 멀리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에 집착하지 않아야 합니다. 사랑 인정 칭찬 존경은 노력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드러나는 현상인것 같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에 의해서 살지 않습니다. 나에 의해서 살아갑니다. You are your master You make your future.
판사의 명판결
1930년 어느 상점에서 빵 한 덩이를 훔치고  절도 혐의로 기소된 노인이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판사가 빵을 훔친 이유를 물었습니다.  "판사님, 저는 지금 이혼한 딸과 살고 있는데  딸은 병들었고 두 손녀딸이 굶고 있습니다.  빵 가게 앞을 지나가는데 나도 모르게  그만 손이 나갔습니다. 잘못했습니다." 노인의 말을 들은 방청객들은 노인에게 동정의 시선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공정한 법의 집행을 내려야 하는 판사는 고민을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판사는 잠시 후에 다음과 같이  판결을 내렸습니다. "아무리 사정이 딱하다 할지라도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은 잘못입니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고 예외가 없습니다.  그래서 법대로 당신을 판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에게 1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합니다." 당시 10달러는 노인에게는 너무나도 컸습니다. 노인의 딱한 사정에 선처를 기대했던 방청객들은  실망스럽다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판결을 내린 판사는 자리에서 일어난 후  법정에 있는 사람들에게 모자를 내밀며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 노인이 빵을 훔쳐야만 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임에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고 방치한  우리 모두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 10달러를 제가 내겠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한다면 50센트를 이 모자에 넣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돈을 거두어 이 노인분에게  다 주도록 하시오." 그렇게 해서 57달러 50센트의 돈이 모였고, 노인은 돈을 받아서 10달러를 벌금으로 내고,  남은 47달러 50센트를 손에 쥐고  눈물을 흘리며 감격했습니다. 이 명판결로 유명해진  피오렐로 라과디아(Fiorello La Guardia) 판사는  그 후 1933년부터 1945년까지 12년 동안  뉴욕 시장을 세 번씩이나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법을 어긴 사람에게 벌은 내리는 이유는  다시는 그런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누군가가 저지른 작은 잘못은 온전히 그의 잘못만의 아니라 세상의 냉대와 무관심 속에 생겨나는  일도 있습니다. 우리 주변의 아픔을 살펴볼 수 있다면  이 세상의 많은 잘못이 생겨나지 않도록  막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 오늘의 명언 관용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애의 소유이다. 우리는 모두 약함과 과오로 만들어져 있다. 우리는 어리석음을 서로 용서한다. 이것이 자연의 제일 법칙이다. – 볼테르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관용 #인간애 #법
가스라이팅: 사람을 노예화 시키는 심리지배자(사기꾼)
가스라이팅: 사람을 노예화 시키는 심리지배자(사기꾼) 가스라이팅 : 상황을 조작해 상대방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어 판단력을 잃게 하는 정서적 학대,심리지배 라고도 한다. 가스라이팅을 당한 사람은 자신의 판단을 믿지 못하게 되면서 가해자에게 점차 의존하게 된다. 유래 : 영국 연극 가스등에서 유래 되었으며 아내 폴라의 유산을 노리고 접근한 남편 그레고리는 거짓말과 속임수로 아내가 스스로를 의심하도록 몰아세움. 부인 : 서랍 속에 브로치가 있을 거에요. 남편 : 서랍에? 없는데.. 부인 : 분명히 내가 거기 넣어 뒀어요. 남편 : 혹시 나를 의심하는거야? 안 되겠어. 아무래도 당신 정신병원에 입원해야겠군. 가스라이팅의 무기들 1. 거짓말 2. 사실에 대한 부정 3. 모순된 표현 4. 비난 가스라이팅 가해자가 자주 사용하는 말들 - 너 치매 걸린거 아냐? - 야! 농담이야 왜 이렇게 민감하니? - 너가 그렇게 안했으면 나도 안했어 - 내가 너를 때린건 너를 사랑해 그런거야. - 내가 너를 잘 알아! 내 말만 들어. - 이게 다 너 때문이야 - 너 정신병 있는거 같아 우리 주변에 나타나는 가스라이트 피해사례 1. 사이비 교주에게 노예가 됨 교주가 하는 모든 행위는 정당하고 어리석은 신도는 노예가 됨 - 교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지옥 2. 부모가 자녀에게. 부부간. 고부간. 상대방을 바보로 만들어 버림 - 90점 맞은 아들에게 " 너는 이거밖에 못하니? " -못마땅한 배우자에게 " 당신은 할줄 아는게 뭐야?' -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 여자 잘못 들어왔더니 집안이... 3. 직장과 학교에서 왕따 따돌림 부하직원을 통제하기 위해 " 너는 사회성이 참 부족해... " 피해 학생을 왕따 시키면서 " 네가 맞을짓을 하니까 때리는 거야 " 4. 연인관계에서 주종관계로 " 날 위해 목숨이라도 바쳐야 하는거 아냐?" " 나나 되니까 너를 만나주는거야 " " 네가 날 의심하니까 바람을 핀거야 " 가스라이팅 피해자 징후들 (By : 심리학자 로빈 스턴 박사) 1. 내 언행을 자꾸 되돌아보고 후회하고 자책한다. 2. "내가 너무 예민한가?" 하고 몇번씩 자문한다. 3. 종종 혼란스럽고 내가 미쳐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4. 나는 늘 내 파트너에게 사과하고 있다. 5. 내 삶에 복받은 점이 많은데 내가 왜 더 행복하지 않은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 6. 나는 주변사람들에게 파트너의 행동에 대해 변명할때가 잦다. 7. 주변 사람들에게 더 이상 설명하거나 변명하기 싫어서 말하지 않고 숨기는 일들이 많다. 8. 뭔가가 심각하게 잘못됐다는 것을 알지만, 나 스스로에게조차 콕 집어서 말할수가 없다. 9. 파트너에게 무시당하거나, 현실을 왜곡당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나는 그에게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10. 나는 간단한 결정조차 하기 힘들다. 11. 이전의 나는 완전 다른 사람이었다는 느낌이 든다. 가스라이팅 벗어나기 1. 나는 가스라이팅 피해자인가? 확인 상대로 인해 자존감이 급격히 낮아지고 자아를 잃어버린 느낌이 들면 가스라이팅 피해자임을 의심해보기 위의 11가지 체크리스트 잘 읽어보셈 2. 주변 사람에게 알려라. 가스라이팅 피해자는 객관적인 판단을 잃어버린 심리적 노예상태와도 같다. 주변 사람에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알려서 객관적인 판단을 받아야 한다. 가해자의 세뇌, 심리지배, 거짓말 등으로 인해서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자각해야만 멈출수 있음 3. 정면으로 받아치기 - 그런식으로 말할거면 그만 이야기하자. - 왜 너만 말하니? 이젠 내 말도 좀 들어 - 사람을 함부로 매도하지 마세요. - (꼬투리잡기) 너도 그때 그랬잖아 - 너 때문에 자존감이 낮아졌어 - 앞으로 그딴 식의 표현은 하지 말아줘 - 난 너의 소유물이 아니야! 착각 마 - 야! 니 인생에나 집중하세요. 4. 인연 끊기 당신이 피해자라면 인연을 끊어야 한다. 끊을수 없는 인연이라면 맞서 싸워야 한다. 아니면 심리적거리를 둬서 멀어져야 한다. 나에게 이득과 도움이 되기 때문에 불편한 동거를 해야 한다면 매 순간 경계해야 한다. 한 순간의 실수로 더 많은 것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나를 통제하기 위해서 거짓을 일삼고 노예화시키는 사람과는 더이상의 인연은 의미가 없다. 인연이란 사람과의 연결끈을 말한다. 가해자는 그저 당신을 잡아먹기 위해서 당신을 붙잡고 있는 하이에나일 뿐이다. 하이에나에게 잡아먹히기 전에 탈출하라. 아니면 먼저 물어 버려라. ㅎ 5. 자존감 높이기 가스라이팅 가해자는 심리적 범죄이다. 그런데 가해자는 항상 약자를 찾아다닌다. 강자 앞에서는 철저하게 비굴해지고 약자 앞에서는 교주처럼 오만방자해진다. 내가 심리가 약하고 의존심이 높은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항상 먹잇감이 된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미안한 말씀이지만 약한 것은 가장 큰 단점이다. 내가 약해서 강자를 찾아가고 의존하려고 하면 당신은 가스라이팅 피해자가 된다. 이제 스스로 비참해지는 관계를 멈추고 당신 자신을 사랑해주기 바란다. 당신의 자존감을 무럭무럭 높이고 당신의 일의 전문성을 살리고 몸과 마음의 건강을 회복하자. 그러면 쉽사리 당신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의도하건 않했던 가스라이팅 가해자였다. 인간은 결국 심리 싸움을 하기 마련이다. 내가 편해지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상대적으로 나에게 맞게끔 길들여야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지속적으로 가스라이팅을 당한 피해자였다. 내가 당한줄도 모르고 모든 것을 잃고 난뒤에야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내가 가스라이팅 가해자도 안되며 피해자가 되어서도 안되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과 타인과 세상을 올바르게 볼수 있는 지혜의 눈이 필요하다. 인간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자애의 마음과 존중이 필요하다. 욕심 탐욕 어리석음에 물들어버리면 가스라이팅의 똥통에 빠지게 된다. 김영국 행복명상센터
파리는 지금 괜찮은가요?
오늘 이동제한 조치가 실시된 이후 처음으로 외출을 하였다. 조금 작지만 집에서 가장 가까운 마트에 가서 일주일 동안 구멍이 조금 뚫린 성벽을 다시 바를 무언가를 사 오기 위해서였다. 커플이라도 가족이라도 되도록 한 명만 외출을 하여 장을 보고 오라는 게 정부의 지침이어서 프랑스에 온 이후 처음으로 혼자서 장을 보러 가게 되었다. 우리 집은 파리와 남쪽 벙리우를 연결하는 꽤 큰 도로 근처에 있어서 이동제한이 실시된 후의 풍경 변화를 매일같이 실감하고 있었다. 아이의 필통처럼 색색의 볼펜으로 가득 차던 버스는 정류장에 멈춰 조금의 공기를 빼고 채우곤 금세 가벼운 배기음으로 정류장을 떠났다. 점심때와 해 질 녘 장바구니를 메고 끄는 이들이 몇 분에 한 사람씩 괘종시계처럼 우리의 창을 좌우로 가를 뿐 큰 사건도 사건에 걸맞은 소음도 없었다.  우리 건물과 마주 보며 서 있는 건물은 겨울 내내 덧창으로 덮여 있었는데 이제는 덧창을 걷고 해가 지면 은은한 노란빛을 우리의 방안에 보태기 시작했다. 그러기 위해서 마담은 지난 주말 하루 종일 이층의 창들을 물걸레로 닦으셨다. 그것을 바라보다가 괜스레 나도 세탁기를 다 밀어내고 전 거주민들의 역사를 닦아내었다. 사실 내게는 꽤 큰일이 하나 생겼는데 내가 즐겨 바라보던 길 건너 세차장이 그만 폐쇄를 한 것이었다. 상점 영업이 종료된 이후로도 한 이틀 영업을 해서 계속 열 수 있는 건가 했었는데 지난 수요일 아침 일어나 덧창을 열어보니 그 널찍한 공간을 가느다란 줄 몇 가닥으로 막아 두고 있었다. 너무나 큰일이라 내가 쓰고 있는 글에 한 페이지나 써넣었다. “ 주말이면 차들이 꼬리를 물고 늘어서 있던 집 앞 세차장이 폐쇄되었다. 처음에는 축구 경기가 중지가 되었고 공연들이 그리고 학교가 앞을 다투듯이 문을 닫았다. 그리곤 채 이틀을 버티지 못하고 카페와 바, 상점들이 강제로 폐쇄가 되었고, 햇빛이 잔인하던 그 주말, 터지는 봄 꽃 같은 방종이 있은 후, 벌처럼 전 거주민들의 이동이 금지되었다. 아주 먼 곳 내가 이름도 처음 들어 본 곳에서 터진 화산재가 바람을 갈아타며 나의 유일한 재미를 덮쳐버린 것이다. 그것은 분명 가십이었는데 계절을 채 못 벗고 모든 곳들의 일면짜리 뉴스가 되었다. 세차장은 일주일 이주일에 한번 덧창을 열고 담배를 피우러 나오는 어느 마담의 2층 집 옆에 자리를 잡고 있다. 건물은 별 다른 구조랄 것도 없이 중앙에 작은 사무실이 있고 그 위에 갓처럼 넓고 평평한 지붕이 얹어져 있는 게 고작이다. 그 날개 같은 지붕 아래의 공간을 차의 넓이에서 조금씩 여유를 두고 칸막이로 쪼개어 놓아 한번에 5대의 차들이 주차하듯 차를 세워 두고 지붕에서 뿌려 주는 물과 거품으로 차를 씻을 수 있게 되어 있다. 물론 사무실 앞 동전교환기로 가서 코인을 바꾸는 일부터 지붕에 달린 호스를 돌려가며 차에 물을 뿌리고 밀대로 차에 거품을 두르는 일 차를 헹궈내고 걸레로 물기를 닦는 일까지 그전에 차에 앉아서 앞차를 기다리는 일 조금씩 차를 앞으로 당겨 대는 일 그 모든 일들은 각자가 스스로의 힘으로 해야 한다. 햇볕이 좋은 날도 바람이 부는 날도 심지어 비가 내리는 날도 세차장은 차를 받았다. 헬스장이라도 되는 듯 심심한 얼굴의 사람들이 기꺼이 차를 몰고 와서 한참을 앉아 기다리다가 자신의 키만 한 호스와 밀대를 온몸으로 움직이며 차를 씻는 모습, 그런 모습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가 가만히 창 앞에 서서 10분이고 20분이고 지켜보는 것은 무척 우스운 일이다. 그런 우리의 가마 위로 하늘은 늘 너무 밝거나 장엄한 구름이 뒤덮었거나 아이의 그림에서 처럼 명암도 없이 하얀 구름들이 장난처럼 머물러 있거나 했다. 그 어느 날도 세차를 할 만한 날은 없었다. 그 어느 날도 세차를 지켜볼 만한 날은 없었다.  “ 마트를 가는 길은 길어야 5분, 종종걸음으로도 몇 백 걸음이 채 안 되는 거리이지만 초식동물인 나는 어젯밤부터 긴장을 했다. 뒤에서는 나의 정체성을 알아볼 수 없게끔 후드 모자를 덮어써 검은 머리를 가렸고 앞에서 걸어오는 사람들에게선 공격성을 조금이라도 일찍 찾아내기 위해 오감을 다 끌어 썼다.  마트의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서로 2미터 이내로 접근하는 것을 피하라고 했기에 줄은 사람의 수보다 훨씬 긴 길이로 늘어져 있었다. 마트는 실내에 머무는 사람의 수를 제한하기 위해 놀이기구처럼 몇 명씩 단위를 끊어 입장을 시키고 있었다. 지겨운 대기 동안 줄줄이 폐쇄된 상점들을 바라보았다. 철문이 다 내려진 거리 속에 유일하게 햇볕을 토해내는 긴 창 옆에 서 있는 이들의 모습이 마치 날씨가 모진 날 굳이 놀이공원에 놀러 와서 겨우 운영하는 몇 안 되는 기구에 매달려 있는 이들의 모습 같았다. 언짢고 다행이고.. 날씨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사정들. 기막힌 교차. 차례가 되어 마트에 들어가 엠마가 메모해준 쪽지를 보며 장을 보았다. 나와 비슷한 처지의 남자들이 쪽지와 상품을 산만한 눈빛으로 대조하고 있었다. 다행히 과일과 채소 등은 수량이 꽤 풍부했다. 다만 밀가루와 소금 그리고 계란은 재고가 없어 사질 못했다. 다들 서로 피하듯 배려하듯 사람이 없는 칸들을 찾아 들어서고 금세 넘겨주고 하면서 미션처럼 장을 보았다.  마트 안의 사람 수를 제한하다 보니 계산대에서는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바구니에 담아 온 물건들을 다 스캔하고 이미 내 가방에다 다 담았는데 뒤져 봐도 내 주머니 어디에도 지갑이 없었다. 소매치기는 아니었다. 지갑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자물쇠를 허리에 거는 루틴을 빠뜨렸다는 사실이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어떡하지 이 물건들을 다시 가져다 놓고 집으로 가 지갑을 가지고 온 다음 다시 줄을 서서 장을 봐야 하는 걸까. 아무래도 그게 맞는 것 같아 설명을 하려고 하는데 거기에 걸맞은 프랑스어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왜 그러는지 묻는 점원에게 이렇다 할 대답도 못 하고 식은땀만 흘렸다.  “아이 돈 헤브 뽁뜨페이으.” 그 간단한 프랑스어 문장도 완성하지 못해 영어와 섞어 버리는 꼴이라니.. “뽁뜨페이으? 알레지.” 죄송하다며 장 본 물건들을 다시 제자리로 가져다 두려고 하자 직원이 나를 만류하며 얼른 지갑을 가져오라고 하셨다. 나는 운동 부족을 실감하며 집으로 달려갔다. 깜짝 놀라는 엠마에게 지갑을 건네받고 혹시 나 때문에 다른 분들이 기다리진 않을까 염려하며 허벅지를 부여잡고 마트로 달려갔다. 별로 효과도 없었겠지만 카드의 비번을 재빨리 누르고 물건들도 최대한 빨리 가방에 넣었다.  “멕시! 오흐부아.” 장바구니를 어깨에 메고 여전히 가쁜 숨을 내쉬며 마트의 문을 나섰다. 조금 더 길어진 줄이 눈에 들어왔다. 프랑스에 처음 왔을 때 슈퍼에 가기 위해 엠마와 어깨를 한 사람 분만큼 붙이고 걷던 길이 눈에 들어왔다. 대중교통 파업 때 “쿠쿠” 하며 지나가는 차를 잡아 타시던 할머니와 함께 추위에 떨며 버스를 기다리던 버스정류장도 눈에 들어왔다. 감상도 위험한 시기라 고개를 젓고 장바구니를 고쳐 메고 터덜터덜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걸음에 어떤 목적도 담겨있지 않아 보이는 어느 흑인 분을 나도 모르게 경계했다. 못 된 버릇이다. 집 앞 작은 사거리에서 우리에게 가장 먼저 봄을 알려줬던 나무의 꽃이 골목에 바람과 중력을 그리며 떨어져 있었다. 이미 몇몇은 걸음에 짓이겨 있었다. 나무의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외출의 목적과 관계가 없는 리스트에도 없는 걸음과 손짓. 주변을 오가는 사람들이 신경이 쓰여 채 몇 장 찍지도 못하고 얼른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멀리서 나를 인식하고 나를 따라오는 어느 흑인 분의 모습이 보였다. 신경을 안 쓰는 듯 신경을 쓰며 집 현관을 열었다. 지나가겠지 했는데 그 흑인 분이 나를 따라 우리 집 현관으로 들어섰다. 순간 나는 온 신경이 곤두섰다. 차분히 현관에 놓인 우편함을 열어보았다. 흑인 분이 어색한 얼굴로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봉쥬흐.” 우편함이 있는 현관을 지나면 다시 비밀번호를 눌러야만 들어갈 수 있는 문이 나온다. 어찌해야 할까 다시 현관 밖을 나가야 하나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는데 그분이 그 문의 비밀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분명 연기이겠지?’  문이 열렸다. 순간 나는 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워 우편함으로 시선을 돌렸다. 내가 놀란 것을 그분도 느끼셨을 텐데.. 미안함과 씁쓸함에 한참을 더 현관에 머물러 있다가 비밀번호를 풀고 문을 지나 엘리베이터 앞으로 갔다. 엘리베이터는 내가 가려는 층에 멈춰 있었다.  “나와 같은 층에 사시는구나.” 이 곳에서 인종차별도 몇 번 당했지만 떳떳하게 분노하지 못 한 이유는 내가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임을 너무나 분명히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표현을 안 하고 공격을 안 했지만 나는 그들을 신경 쓰고 있었고 피하고도 있었다. 그것이 과연 그렇게나 큰 차이인 걸까. 선과 악이 분명한 사람들. 마음껏 비난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그들과 달리 나는 그 어떤 것들에도 그다지 멀리 있지 못한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가만히 생각을 한다. 정치는 하지 못하고 참여도 하지 못하고 싸움은 진작에 그만두었고 생각만 한다. 비겁한 시간들이다. 너무나 잘 알았었는데 사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씁쓸한 사실 말고는 모든 게 지워져 버렸다. 긴 비행이 있었고 너무 많은 바람이 나를 흘러갔다. 장만 보고 왔는데 하루가 다 지났다. 어느 산, 겨울이 늦게 물러나는 나무 아래에 앉아 사람들은 벌써 잊었을 나를 생각하고 있는 것만 같다. 조용한 곳이라 나는 내가 더 뚜렷이 보이고 너무 뚜렷한 나는 부끄러워 쉽게 산 아래로 내려갈 수가 없다.  우울한 얘기들만 넘쳐나던 유학생 커뮤니티에 프랑스인들로부터 받은 도움이나 두려움을 풀어지게 만드는 친절함 등을 담은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짐을 다 못 담는 이에게 자신의 장바구니를 나눠주거나 트램과 버스를 오르내릴 때 생수통을 대신 들어주거나 하는 몇 주 전이라면 일상의 배경을 그릴 사소함들이었겠지만 지금은 모르는 이들에게 알리고 싶게끔 만드는 소중함이 되었다. 공포도 일상이 되면 조금씩 패닉은 사라지고 우리가 노력해서 되고 싶은 모습이 조금씩 우리의 얼굴을 차지하기 시작한다. 사재기는 줄어들고 인사는 늘어난다. 그러한 것들이 전부 다 가식인 걸까. 나는 그러한 노력들이 반갑다. 공포와 혐오는 분명 우린 안에 있다. 자신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얼굴을 잘 모르거나 애를 써 스스로를 속이는 거겠지. 분명 어둠은 우리 안에 기원처럼 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훨씬 넓은 땅을 두고 벌이는 싸움이다. 가만히 둔다 해도 완전히 어두운 땅이 되기 위해선 낮이 밤이 될 만큼 시간이 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