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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 거장의 기묘한 죽음

안녕?
오늘은 마치 자신의 컬트 영화처럼 살다가 자신의 영화 속 비극처럼 세상을 떠난 거장 김기영 감독의 이야기를 짧게 해볼까 해.

봉준호 감독도 종종 자신이 영감을 받았다고 언급을 하고, 박찬욱 감독도 자신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사람으로 김기영 감독을 꼽았으며, 마틴 스콜세지 마저 김기영 감독의 작품 '하녀'에 대해 '전 세계가 봐야 할 위대한 영화다.'라고 했으니 어떤 사람인지 정말 궁금해 지지 않아?

근데 갑자기 내가 왜 영화 얘길 하냐고? ㅎㅎ 생전에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한 영화를 많이 찍으신 감독님이신 건 맞지만 영화 소개를 하겠다는 건 아니고, 지금 얘기하려는 건 마지막 순간에 대한 것.

베를린 영화제에서 열리는 회고전에 초청을 받아 베를린으로 떠나기로 한 날 하루 전, 전기합선 사고로 불이 나서 자택에서 부인과 함께 세상을 떠난 김기영 감독. 그 집에 대해 당시 지인들이 건넨 이야기들을 우선 같이 보자.

남산에서 충무로 쪽으로 내려오는 모퉁이 길이 있어요. 거기 김기영 감독 집이 있었죠. 너무너무 오래 됐는데 수리를 하도 안 하니까 중부경찰서에서 '집수리 좀 하고 사십시오' 하고 여러 번 경고를 했어요. 그런데도 손을 안 대더라고. 결국 집에 불이 나서 두 내외가 죽었잖아. - 신성일

유감스럽게도 김기영 감독은 세상으로부터 다시 조명을 받던 순간에 세상을 떠났다. 베를린 영화제로부터 초청을 받은 그는 출발을 하루 앞두고 낡은 한옥 저택에 난 화재로 사망했다. 애초에 당신 혼자만 초청 받았던 것을 부인과 함께 가는 일정이 아니면 초청에 응하지 않겠다고 고집하는 바람에 부부동반으로 일정을 재조정하는 과정에서 출발이 며칠 미뤄졌고 공교롭게도 그 지연이 죽음의 원인이 됐다. 그가 오랫동안 살았던 혜화동 저택은 전 주인이 사고사를 당했던 사연을 지닌 집이었다. 흉가라는 소문에 입주를 꺼렸던 그 집에 김기영은 그런 집이라면 나에게 더 맞는다고 태연하게 입주했다고 그와 평생 동료였던 김수용 감독은 전했다. - 김영진 <평론가 매혈기>

그 뿐 아니라 귀신이 나온다며 수군대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죽으면 고통도 없으니 얼마나 좋았겠는가. 나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태연하게 말하기도 했다지. 그럴 만도 한 것이, 나쁜 운이 피해가는 것 마냥 감독의 다른 일화를 보자면

평양에 가서 권모 선생의 조언을 얻으려고 했던 김기영은 그가 자신을 만나주지 않자 평양에 체류하면서 몇 편의 연극을 연출했다. 꽤 평판이 좋게 났는데도 여전히 자신을 만나자는 얘기가 없자 그는 직접 권선생을 찾아갔다.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예술을 하려면 돈과 운이 필요하다. 난 당신의 운이 어떤지 모르기 때문에 모스크바 유학을 권할 수 없다." 실망한 김기영은 삼팔선을 건너 돌아왔고 그 직후 남한과 북한은 따로 정부를 수립했다. - 김영진 <평론가 매혈기>

하마터면 북에 꼼짝없이 머물 뻔 했던 것이 '운을 모른다'는 거절에 남한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처럼 말야.

김기영 감독은 원래 돈을 잘 쓰지 않기로 유명했고, 영화 찍는 데만 전념했던 터라 집을 뒤늦게 구입했다고 해. 그것도 흉가라는 소문에 시세보다 싸게 구입할 수 있었던 이층집. 귀신이 있는 집이면 귀신의 취향대로 꾸며야 해를 끼치지 않는다며 집 내부를 모조리 검정색으로 칠했다고 해. 그 집에 사는 동안 영화가 다 잘 되긴 했다지만 뭐.

마지막으로 산 집은 명륜동의 오래 된 한옥이었어. 그 집 역시 전 집과 마찬가지로 흉가라는 소문이 떠돌던 곳. 실제로 이전에 살던 노부부가 함께 대들보 밑에 깔려서 돌아가셨고, 후에 살던 또 다른 부부 역시 동시에 죽음을 맞은 곳이었다고 해. 집이자 자신의 영화의 소품 창고이기도 했던 그 곳은 감독의 그로테스크한 골동품들이 가득 차 있었지. 작은 소품 하나에도 감독의 영향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대. 그 집에서 50여편의 시나리오를 썼지만, 선대의 부부들처럼 그들도 한날 한시에 세상을 떠나게 되고 많은 수의 시나리오가 빛을 보지 못 하고 불에 타 버렸어.

아래는 관련 기사 발췌.

누가 봐도 기묘한 죽음이었다. 김기영 감독 부부는 1998년 2월 5일 새벽, 명륜동 집 화재사건으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까지 미공개 작품이었던 그의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주인공 부부가 화재로 죽는 것이었다.

‘그로테스크’, ‘괴짜’. 1960년대 신문에 실린 영화 인상평부터 김 감독을 따라다니던 말이었다. 그가 전에 기거하던 주자동 양옥집은 귀신이 나오는 흉가라서 싸게 구입해 들어갔다는 소문이 있었다. 아들 동원씨는 “처음에 살던 집에 살던 젊은이가 철조망에 목이 걸려 죽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앞서 인용한 에 따르면 대학로의 집은 이미 두 차례나 노부부가 죽었는데, 대들보가 무너지거나 알 수 없는 이유로 한날 한시에 죽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새벽 2시에 달려갔다. 잿더미가 내 키보다 높게 쌓였다.” 아들 동원씨는 집이 화재로 전소된 후 ‘기이한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다 타서 잿더미가 되었는데 비닐에 싸인 문서가 발견되었다. ‘동원아 보거라’로 시작되는 아버지의 유서였다. “너무 놀랐다. 유서 첫 마디는 ‘내가 이 한옥을 사지 말자고 했는데 네 엄마가 우겨서 샀다’는 책망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그 다음이 이것이다. ‘내가 공중에 떠서 우리집 마당을 내려다 보는데 아마도 내가 죽은 모양이다. 네(동원씨)가 마당에 삼발이를 치고 땅을 파고 있는 것이 보인다.’” 김 감독이 묘사하고 있는 모습이 마당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과 너무나 똑같았던 것이다.



다 타서 잿더미가 됐는데 그 속에서 발견된 유서, 아니 세상에 미리 유서를 써놨다는 사실도 너무 무서운데 자신이 죽은 후의 모습을 보고 쓴 거라니. 두 번째 집은 사실 감독도 기분이 나쁘다며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고, 주변 사람들도 다 반대했는데 부인이 마치 홀린 것 마냥 꼭 사야 한다고 우겨서 샀다는 이야기도 있더라.

더불어,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을 받았을 때 원래 혼자 가는 것이었는데 감독이 부인과 함께가 아니면 안 갈 거라며 영화제 측과 조율해서 날짜를 미룬 것이었으니... 원래대로 혼자 베를린에 갔다면 어땠을까.

그냥 요즘 김기영 감독이 재조명되고 있길래 가져와 봤어. 모르면 몰라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이상씩 사연이 있는 집에는 들어가지 말도록 합시다. 그리고 감독님의 작품들을 다들 찾아 봐도 좋을 것 같아.

그럼 조만간 다시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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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고 김기영 감독의 하녀는 1960년 작이고 우리가 알고있는 전도연 이정재 주연의 하녀는 임상수 감독이 김기영 감독의 작품을 리메이크 한것 쉽게 말하면 하녀 원작자 ㅇㅇ 특이한 이력은 서울대 의대 출신에 부인도 의사출신 이신것도 있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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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몬님...저는 매일 이런 글 들 보며 힐링하는 1인 입니다..자주 올라오던 글들이 요즘 잘 안올라오던데 무슨 일이 있는건 아니신지ㅠㅠ 글 너무 기다리고 있습니다 거짓말 안하고 하루에 10번 남짓 들어왔다 가고는 해요ㅠㅠㅠㅍ 글 업뎃 많이 해주세요오
@rlarlaco 세상이 너무 흉흉해서 귀신썰 가져오기가 애매하네요ㅠㅠ 맘에 드는 글도 못 찾았고.. 상황들 좀 괜찮아 지면 또 가져 올게요! 아니면 이런 상황에 적합한 글들 찾아도 보고!
헐헐 진짜 ㄹㅇ 흠터레스팅,,!!!!!! 잘 읽고 갑니다... 소설같네영,,
헐... 전혀 몰랐어. 자신의 영화 속 마지막 장면처럼 떠났다니. 정말 영화처럼 살다 가신 분이구나
요상하네.. 귀신에 소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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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오는 귀신썰) 섬의 어느 폐가 이야기 -1-
(사진은 내용이랑 노상관) 안녕? 왜 이렇게 오랜만인 것 같은 기분일까 사실은 얼마 안 됐는데 말야 ㅎㅎ 요즘 맘에 들어오는 썰들이 너무 없어서 잠시 쉴까 하다가 맘에 드는 글을 찾아서 가져와 봤어! 옛날에 @s127127777777s 님이 가져 오시던 갓서른둥이님 글인데 @s127127777777s 님이 다 올리진 않으신 것 같더라구. 검색해 봐도 이 이야기는 안 보이길래 후딱 복사복사 ㅋㅋ 오늘 날이 많이 추운데 괜히 더 춥게 만드는 건 아닌가 몰라 이제 해도 점점 길어 지니까 괜찮겠지? 입춘도 지났고 ㅎㅎ 그럼 오늘도 같이 볼까? ___________________________ 날이 옴팡지게 춥고만요. 엽호판 눈팅족 이었는데 요즘 글도 안 올라오고 해서 저도 하나 슬쩍 밀어 넣어 봐요. 판에 글 재미있게 너무 잘 쓰시는 분들이  많아 감히 저 따위가 글 올려 볼 생각도 못 했었는데, 요즘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너무나 부족하니 이럴 땐 좀 함량 미달인 글도 그냥 읽어 주시리라  믿고 한자 적을래요. 하자 많은 글이지만 너무 타박 마시고 그냥 재미로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전 그냥 길 위에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며 바람 따라 굴러 다니는 흔하디 흔한 낙엽 같은 남자에요. 그러나 눈 만은 높아 고준희씨를 너무나 좋아하는 남자 사람 입니다. 전 기가 쎈 거 약한 거 그런건 잘 모르지만 그냥 사람이 아닌 존재를 믿고 그런 걸 여러번 봤기에 그 중 한 이야기를 해 드리려 합니다. 믿고 안 믿고는 여러분 자유 의사이오니 너무 따지지 마시고 그냥 읽어주면 안되겠니? 전 고준희씨 같은 여친이 음슴으로 음슴체, 싸가지도 없으므로 반말체로 그냥 적을께요. 때는 지금부터 6-7년 전  정확히 7년 전 일이네. 그 당시 나는 대학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갔었어. 논산 훈련소와 후반기 교육 고달픈 짬찌 이등병 생활 부터 육군 5대 장성 이라는 빛나는 작대기 4개 병장으로 보무도 당당히 사회에 나왔지만 현실은 그냥 복학 못한 잉여 인간이었지. 전역을 하니 학기가 시작한 지 한달이 훨씬 넘은 시점이라 거의 1년을 생으로 쉬어야 했어. 그냥 아무거도 안하고 푹 쉬는거도 한달이면 끝이더라. 한달이 지나니까  아침 6시에 기상 하는 몸에 밴 습관은 빠지는 군기와 함께 저 멀리 날라 갔지만 대신 무료함과 지루함이라는 괴물이 찾아 오더라. 그 때 내 무료한 일상을 구해준 취미가 있었으니 바로 낚시 되시겄다. 처음엔 친구들을 따라 몇 번 갔는데 그 때 까지도 낚시에 매력을 못 느꼈었지. 그냥 친구들이랑 어울려 라면 끓여먹고 방해 안 받고 술 마시는 게 좋아서 따라 갔던 거거든. 그런데 이 낚시란게 하면 할수록 빠져들게 만드는 묘한 고준희씨 같은 매력이 있더라구. 그 매력에 빠져들다 보니 나중엔 내가 먼저 나서서 선동하는 경지에 이른거야. 흡사,  난 관심 없었는데 친구가 좋다고 하는 여자를 같이 쫓아 다니다 보니 내가 좋아하게 되버린 거? 김건모 횽아가 보면 지리것소...잘못된 만남. 몇달 죽어라 알바 해서 낚시 풀셋을 구입했지. 낚시가 처음 초도장비 구입비가 좀 비싸서 그렇치 일단 장비만 갖추면 지렁이 한통, 떡밥 한 봉지만 구입하면 하루를 즐길 수 있는 친 주머니적인 저렴한 취미 생활이거든. 낚시를 다니다 초보때 운 좋게도 월척도 하다보니 꿈이 생기더라구. 그 꿈이 뭐냐 하면 모든 낚시인의 환상인 4자 짜리 붕어야. 4자 붕어가 뭐냐면 40센티 이상 되는 대물 붕어를 말해. 무슨 붕어가 그리 크냐구? 그러니깐 꿈이지.  귀해서 그렇치 분명 있는 붕어야. 원래 토종이 아닌 외래종인 떡 붕어는 40센티 넘는 붕어도 꽤 많아. 성장 속도가 엄청 빠르거든. 그렇치만 우리 토종 붕어인 노오란 참 붕어는 4자 짜리는 환상 그 자체야. 그런데 이 4자 짜리 붕어가 살기 위해선 조건이 있어. 첫째, 먹이가 풍부 해야 하고 둘째, 기후.기온이 좋아야 하고 셋째, 사람의 발길이 많이 안 닿은 곳 이라야 하고 넷째, 최소한 10년 이상 바닥이 드러날 만큼 마른 적이 없어야 해. 그런데 그런 곳이 어디 잘 있나? 년중 행사로 가뭄이지. 어딜가도 사람이 북적북적한데. 그러던 와중에 친구에게 희소식을 들은거야. 그 친구 집이 서해의 어느 섬이거든. 자기네 고향집에 뒷산으로 가면 내가 말한 조건과 같은 농업용 저수지가 있다고 하더라고. 친구 얘기론 예전 저수지가 처음 만들어 질 때(그 친구 찌찔이였을 때 만든 저수지라 함 20년 정도 된) 마을 사람중 누군가가 뭍에서 붕어 몇마리 가져다 넣었는데 그때 붕어가 엄청 번성했다고 함. 민물 새우도 같이 방류해서 새우가 저수지에 반이라고 뻥침. 그래서 내가 그랬어. 야!!  마을 뒤면 동네 사람들이 다 잡았겠지. 라고 하니 얘가 살짝 비웃더라. ㅂㅅ아  누가 저수지 가서 붕어 잡고 앉았냐? 양 사방이 다 바단데 갯바위 가서 맛있는 우럭 잡지. 이렇게 얘기 함. 내 생각에도 그렇더라구. 붕어를 누가 잡겠어?  바다낚시 하지..... 그래서 난 그곳으로 출조를 하기로 한거야. 그 녀석을 부모님 살아실 제 한 번이라도 더 찾아 뵙고 효도를 다 하는게 인간의 도리라고 꼬셔서 같이 가기로 했지. 그런데 가기로 약속한 전 날 갑자기 그 애는 사귀던 여자친구랑 급이별을 하게 되었고 광분한 녀석은 술과의 데드매치를 벌여 떡이 되어 누운 거야. 어쩔수 없이 나 혼자 가야 했어. 속으로 내가 알고 있던 8만 4천 가지 욕을 다 퍼부으며 말야. 배 타기 전에 시내 낚시점에 들려 떡밥과 지렁이를 넉넉히 준비했어. 바닷가 가면 바다낚시 미끼만 팔더라구. 난 그 뒤 여러시간 배를 타곤 아침에 내가 뭐 먹었는지를 화장실에서 확인하며 어렵게 친구 고향섬에 갔어 ....죽는 줄 알았다 진짜. 도착 해서 보니 낚시를 오신 분들이 많으셨어. 그러나 그 분들은 바다 낚시를 오신 분들이었지. 나랑은 목적 자체가 틀린 분들이라 경쟁자가 없다는 것이 얼마나 맘이 편하던지 몰라. 그리곤 친구가 미리 설명 해준 길로 마을을 지나 20분쯤 산쪽으로 올라 갔어. 마을 끝에 마지막 보이는 집을 지나 한 300미터 쯤 산쪽으로 오르니 그 저수지가 나오더라구. 저수지라 하기엔 너무 규모가 작은 보통 초등학교 운동장 3분의 1만한 작은 저수지였어. 그런데 딱 봐도 여긴 대물이 살겠구나 하는 느낌이 오더라구. 물가에 오래된 나무들도 있고 물이 맑아 바닥이랑 수초도 다 보였는데 정말 팔뚝만한 붕어들이 떼로 몰려 다니는 거야. 얼마나 급 흥분이 되던지. 서둘러 자리를 잡고는 앉았는데 눈 앞에 그때서야 저수지 맞은 편에 낡은 집 하나가 보이는 거야. 풀이 키만큼 자라 잘 안 보였던 건데 딱 봐도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란 느낌이 들더라. 그냥 보통 시골에서 많이 보던 슬레트 지붕 집인데 아마 초가를 지붕 개량만 했던 듯,  집은 초가 형태 였고 군데 군데 무너지고 방문 창호지도 다 찢어지고 그런 집이었어. 누가봐도 느낌에 사람이 살지 않는구나 하고 느꼈을껄? 뭐 시골 가면 그런 폐가가 흔한지라 그런가 보다 했어. 폐가가 달리 폐간가? 그냥 사람 안 살고 관리 안한지 좀 되면 다 폐간거지. 그렇게 앉아 낚시를 시작 했는데 처음 떡밥을 써서 하는데 입질이 없는거야. 한참 그러다 미끼랑 바늘을 바꿔 달았어. 지렁이로 말야. 그러자 넣기 무섭게 입질이 오기 시작 하더라구. 역시 사람 손이 안 탄 곳이라 붕어들이 떡밥 맛을 몰랐던 거야. 대신 살아있는 지렁이엔 환장 하고 달려 든거고. 잡히는 족족 준척급 이상 되는 씨알 굵은 붕어들이 딸려 올라오는 거야. 정말 신나게 낚시를 했고 시간 가는 줄 몰랐지. 그런데 기대했던 4자 짜리는 소식이 없었어. 워낙 기본 씨알이 굵기는 했지만 진짜 대물은 밤낚시 때나 되어야 나오겠단 생각에 가지고 간 라면을 끓여 저녁을 먹었어. 이 세상에서 젤 맛있는 음식이 만화방이랑 낚시터서 먹는 라면, 그리고 당구장서 먹는 자장면일걸? 남자들 동의 하나? 그렇게 라면을 맛나게 먹고는 잠시 쉬었어. 밤 낚시 준비를 하고는 낚시 의자에 기댄 채 2-3시간을 자고는 밤 낚시를 시작했어. 입질은 좀 뜸 했지만 고기 씨알은 낮에 비해 월등해져서 4짜에 대한 기대를 한껏 부풀려 주더라구. 그렇게 밤이 깊어 가고는 11시가 넘었어. 물론 인기척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나만의 낚시터였어. 갑지기 하늘에서 천둥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거야. 그땐 날씨를 미리 첵크 해야 된다는 기본 상식이 부족했던 지라 날씨를 미리 계산 안한 나의 실수였지. 고갤 들어 하늘을 봤지만 별빛 하나 없는 하늘엔 아무것도 안 보이는 거야. 아마 보였다면 먹구름이 잔뜩 몰려온 하늘을 봤을거라 생각해. 그리고는 순서에 입각하듯 비가 내리기 시작했어. 조금씩 더 많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첨부터 거의 양동이로 쏟아 붓듯 내리는 거야. 비옷도 없이 겨우 조그만 우산 하나 뿐이 없던 나는 그 우산으로 나의 몸이 아닌 소중한 낚시 가방을 보호했어. 그래, 나 낚시 가방만도 못한 남자다 ㅋ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순간 번개까지 치는 거야. 낚시대 잘못 가지고 있다간 피뢰침 역할해서 감전사 하는 경우도 많아. 겁나더라. 더 큰 문제는 비에 잔뜩 젖은 몸이 심하게 떨려 오기 시작하더라고. 아! 이게 저체온증 이구나 했어. 뭔가 결정을 해야 했어. 난 낚시는 그대로 놔두곤 낚시 가방과 간단히 싸온 짐만 들고는 랜턴빛에 의지해 그 폐가로 뛰어 갔어. 밤새 비 맞아 병 드는거 보다는 폐가라도 비나 피할 수 있으면 나을꺼 같았거든. 작은 렌턴을 들고는 폐가로 가선 그 폐가 부엌이었다 생각 하는 곳엘 들어갔어. 내 짐작이 맞아 그곳은 부엌이었고 아궁이도 있었고 그곳 한 모통이엔 쌓아 놓은 마른 장작도 몇개 있었거든. 난 아궁이에 신문지로 불을 지펴 장작을 태우기 시작했어. 불이 나무에 옮겨 붙어 타들어 가니 몸이 녹더라구. 장작이 많이 없어 다 부셔져 너덜너덜한 부엌 나무문도 뽀개서 불에 쑤셔 넣었어. 그리고 코펠에 빗물을 받아 라면 하나를 끓여 먹었지. 비 맞은 생쥐 같은 꼴에 따뜻한 불과 속에 뜨거운 라면이 들어가니 급 졸리기 시작하는 거야. 라면을 먹고는  불 앞에서 꾸벅 꾸벅 졸기 시작 했지. 얼마를 졸았을까? 흥얼 흥얼 하는 낮은 소리를 듣고는 잠에서 깬거야. 무슨 소리지? 잠결에 내가 꿈을 꾼건가? 이렇게 긴가민가 하고 있는데 이번엔 깬 와중에 똑똑히 소리를 들은거야. 소리는 부엌 바로 옆방에서 나고 있었지. 예전 시골집들 봤어? 부엌 바로 옆이 대부분 안방이야. 그리고 부엌과 방 사이엔 대부분 정짓문이라고 하는 문이 있거든. 이 문을 통해 부엌에서 밖으로 안 나가고 출입 하고 방으로 밥상을 들였었거든. 그 문은 대부분 창호문으로 미닫이 문이 대부분이였고. 난 이미 군데 군데 찢어진 창호문 사이로 조심하며 안을 들여다 봤어. 그런데, 그런데, ㅠㅠ 방안에 어떤 하얀 사람 같은 형상이 보였어. 자세히 보니 나이가 많으신 백발의 할머니가 방안을 뺑뺑 돌면서 다니시고 있는 거야. 그 할머니는 그렇게 방을 돌면서 중얼거리셨지. 그 말도 들을 수 있었어. 방이 따뜻하네? 방이 따뜻하네? 그렇게 도시던 그 할머니는 어느 순간 그 찢어진 정짓문 사이로 내 눈 높이에 맞추어 앉아 계시는 거야. 그 뀅한 눈으로 나를 마주 쳐다 보면서................ 얼마나 놀랬는지 몰라  내가 그때 떨어트린 간덩이를 아직도 수습 못했거든.  잉 잉. 그런데 그렇게 할머니 귀신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입으로 말하지도 않는데 머리속에 말이 울리는 거야. 내집 부순게 니놈이구나? 난 짐도 다 놔둔 채 빗속으로 뛰어 나갔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마을 쪽으로 달렸지. 달리다 저수지 건너 내가 낚시 하던 쯤에 왔을 때였어. 꼭 그놈의 망할 호기심이 문제야. 사슴이 포수한테 왜 잡히는 줄 알아? 사슴은 도망가다가 꼭 한 번 멈춰서 뒤돌아 본다고 해. 얼마나 쫓아왔나 하고 말야. 포수는 그때를 안 놓치고 총을 쏴 사슴을 잡는다고 해. 내가 그 사슴 꼴이었음. 뒤 돌아 보니 어느덧 나온 그 할머니가 마당 끝에서 저수지 건너 있는 날 보고 있더라구. 그러더니 빙글 옆으로 돌더니 마당을 가로 질러 길을 따라 날 무서운 속도로 쫓아오는 거야. 진짜 무서운 건 뛰거나 달리는게 아니라 길위를 스키 미끄러지 듯 스르르 미끄러져 빠른 속도로 내게 다가오는 거야. 그 때 부터는 내 정신이 아니였어. 난 젖먹던 힘까지 짜내어 마을 쪽으로 비탈을 달려 내려 갔어. 중간에 한번 360도 회전하며 넘어져 크게 굴렀지만 내 몸이 다쳤는지 살필 새도 없었지. 나중에 보니 무릎이 찢어졌는데 그때 생긴 상처가 아직도 남아 있어. 그렇게 뛰어 드디어 산 바로 밑 마을의 끝집에 도착을 하고는 그집 마당으로 뛰어 들면서 엎어지며 살려 달라고 소리 질렀어. 그리고 길을 보니 내가 내려온 길에 그집 마당이 훤히 보이는 위치에 그 할머니가 서서는 무서운 눈으로 날 쳐다보고 서 있는 거야. 그때 마침 방 안에서 인기척 소리가 들리며 불이 켜졌고 어떤 노인 한분이 나오셨고, 날 쳐다보던 그 할머니는 소리 없이 그 순간 사라졌어. 방에서 나오신 노인은 크게 놀라시며 날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셨어. 나중에 말씀 하시는데 내 모습이 귀신에 가까웠다고 하시더라구. 방에 들어가니 비슷한 연배에 할머니 한분이 놀라며 날 맞아 주셨지. 아마 두분 노 부부만 사시나 보더라구. 그리곤 자리에 털썩 주저 앉은 내게 냉수 한사발을 가져다 주셨어. 난 냉수를 단숨에 들이킨 후 숨을 고르고는 내가 겪은 일들을 얘기 드렸어. 처음엔 왠 젊은 놈이 정신 나간 소릴 하나 하시던 노인 분도 내가 그 할머니 용모를 얘기하자 크게 놀라시며 그러시는 거야. "오메....서산댁 아주머니가 아직도 안 가시고 그 집에 계시나 보구먼." 그리고는 그 노인 분은 그집 얘기를 해 주시기 시작했어. 원래 그 집엔 할아버지가 중학생일 무렵 뭍에서 시집와서 터를 잡으신 노인분 보다 열 몇살 연장인 부부가 살고 있었다고 하더라구. 그리고 부부는 열심히 일해서 자식들도 셋이나 낳고는 행복하게 잘 사셨다고 해. 그러다가 큰 애가 초등 학교에 들어갈 무렵 이 아저씨가 바람이 났던 거야. 그리고는 모아 두었던 재산을 다 들고는 처 자식 다 버리고 뭍으로 도망을 가셨다고 해. 혼자 남으신 아주머니의 고생은 말이 아니였다고 해. 조그만 산을 일구어 만든 밭에서 억척스레 일을 하고 마을 일이나 고기따는 일 등 돈이 되는 일이면 뭐든 해서 3남매를 키우시고 다 장성시켜 뭍으로 공부 보내고 시집 장가 다 보내시고는, 같이 나가 살자고 하는 자식들 말도 다 뿌리치곤 그집에서 홀로 여생을 보내셨대. 말씀은 안 하셨지만 남편과의 추억이 서린 그 집을 버리지 못 하신 거 같다고 하시더군. 평생 그 집에서 남편을 기다린 거지. 그런 할머니와 한 동네에서 오랜 동안 사셨던 노인 부부는 자주 할머니 집도 들여다 보고 먹거리도 나눠 드리고 하셨었나 봐. 그러다가 내가 그 섬엘 가기 몇년 전에 며칠 외딴집 할머니가 안 보이셔서 어디 편찮으신가 걱정이 된 할아버지가 집에 찾아 가보니 홀로 안방에서 주무시다 돌아 가셨던거야. 그뒤 뭍에 있던 자식들을 급히 불러 장사를 모셨다고 해. 그리고는 그 집은 재산 가치도 없고 누가 들어와 살 사람도 돌볼 사람도 없었기에 그대로 폐가로 방치 되었던 거지. 그리고 내가 피신했던 그 집이 어찌 보면 할머니껜 은인네 집 이라고 할 수도 있고 많이 고마웠던 집이였던 거야. 노인 분이 할머니 살아계실 때 많이 도와드렸고 시신도 발견 해주고 장례도 많이 도와주고 그래서 내가 그 집으로 들어가자 차마 더 해꼬지 하진 못한게 아닌가 생각해. 그 집에서 밤을 새우고는 아침 일찍 노인 분과 함께 그 집엘 갔어. 노인분이 집을 살피는 동안 난 짐을 챙기고 낚시도 걷었지. 그리곤 노인이 향 하나를 피워 방에 놓으시며 그러시더라. "아주머니, 뭔 한이 그렇게 많아 아직도 못가고 그러신다요. 다 잊고 빨리 좋은데 가소" 그러고는 돌아 오는데 난 노인을 놓칠새라 바짝 붙어 따라 내려 왔어. 그리고 손님 그냥 보내면 안 된다고 차려 주시는 아침 감사히 잘 먹고 인사 드리고 왔지. 그런데 그게 끝이였음 좋았을 껀데 끝이 아냐. 외딴집 할머니께서 날 따라 뭍으로 출장을 나오셨거든. 다음에 다시 얘기할 기회가 있으면 이 얘긴 그때 해 드리죠. 글 쓴다는 게 정말 만만한 일이 아니네요. 엽호판에 좋은 글 올려 주시는 작가 분들께 이 기회 빌어 다시 한번 감사 드려요. 전 아무 불평 불만 없이 너무 고맙게 잘 읽는 독자이오니 재미난 얘기 많이 부탁 드려요. 전 이만.........뿅~~~~~ [출처] 네이트판 | 갓서른둥이  ________________________ 잘 마무리 됐을 줄 알았는데 뭍으로 출장을 나오시다니 남편분 찾으러 나오신걸까 뭘까 ㅠㅠ 그건 내일 같이 보도록 하자 ㅎㅎ 그나저나 정짓문이란 말 들으니까 재밌네 정지는 부엌의 사투리거든 난 그냥 경상도 사투리인줄 알았는데 꽤나 여러 지방에서 사용하는 거더라. 강원도,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까지... 알고 보니 경기도랑 제주도만 빼고 다 쓰는 거였어 ㅎㅎ 그러면 오히려 부엌이 소수 언어 아닐까 ㅋ 암튼 날 추운데 옷 잘 여며 입고 손 깨끗이 씻고 요즘은 귀신보다 전염병으로 인한 혐오가 더 무서운 것 같아 치사율도 낮고, 젊은 사람들은 그냥 감기나 마찬가지니까 너무 큰 공포감을 조성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어. 물론 내가 걸리는 건 걸리는 거라도 취약한 어르신들이나 아가들한테 옮으면 안되니까 조심하도록 하자. 불필요한 혐오를 더 조심하도록! 그럼 잘 자고 내일 또 올게!
퍼오는 귀신썰) 섬의 어느 폐가 이야기 -2-
오늘도 날이 춥다. 다들 감기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 요즘같은 때는 재채기만 해도 주변 사람들이 흠칫하곤 하니까 그래서 나같은 만성비염은 힘들다..ㅎ 귀신썰을 보다 보면 집중해서 재채기도 들어가니까 재채기 방지용으로 오늘도 어제 이야기 이어서 가볼까? 같이 보자! _______________________ 지난 편에 얘기 했듯, 마을 끝집 할아버지 댁에서 시골 밥상 정식을 먹은거야. 머슴밥 이라 부르는 백두산 만큼 높은 고봉밥에 마당 한켠에 심으신 상추며 각종 야채에 장아치와 젓갈류 생선찌게까지 너무 맛있게 싹싹 비우곤 할머니께서 건네 주신 숭늉까지 다 비우고는 할아버지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섰어. 고기 바구니엔 아침에 다 놓아주려다 어탁에 급욕심이 생겨 가장 큰 월척 3마리만 담아왔지. 배를 타러 가선 하루 두어번 밖엔 다니지 않는 배를 기다리며 끔찍했던 지난 밤을 떠올리자 진저리가 쳐지더라구. 이른 시간이지만 육지로 나가는 사람들도 제법 모이고 이윽고 배가 도착 했어. 배에 오른 후 출발을 하자 이제 다 끝났다는 안도감이 드는 거야. 그렇게 배가 출발 하고 얼마를 달렸을까? 불길한 느낌이 엄습 하면서 피할수 없는 그 분이 찾아 오셨다? 그래...배멀미 라는 그 고약한 분 말야. 올때 그리 고생 하고는 무슨 닭대가리처럼 넋놓고 있었던 거지. 키미테도 준비 안하고..... 난 화장실로 달려가서는 아침에 먹은 시골 밥상 정식을 하나 하나 되짚었어. 요건 상추.....요건 생선찌게....요건 조개젓....어라? 이 희끄무리 한건 뭐지?....맞다 너숭늉 이구나? 하며 말야. 내가 교회에 다니지도 않는데 말야. 변기 부여잡고 울면서 아주 처절하게 통성 기도를 했다. 아주. 그렇게 한참을 영혼까지 쏟아 내고는 좀 찬 바람을 쐬면 나을까 해서 갑판으로 나왔지. 갑판엔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었는데, 비바람이 휩쓸고 간 뒤라 그런지 파도도 높았고 날도 잔뜩 흐려 있었어. 그리고 사람들도 하나도 나오지 않고 선실에 들어가 있어 그 넓은 갑판엔 나 혼자 을씨년스럽게 서 있었어. 바람을 맞으니 좀 났더라구.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 였어. 담배 한대 태우고 들어 가려고 막 담배에 불을 붙일 때 였지. 갑자기 내 뒤에 있던 선실로 통하는 문이 끼익!~ 하고 지 혼자 열리는 거야. 그러더니 내가 놀라 바라보는 사이 서서히 닫히더라구... 문이 덜 닫혀 있다 배가 흔들리는 바람에 문이 열린게 아니냐구 하실지 모르지만 절대 그건 아냐. 왜냐면 그 문 위쪽엔 문이 열렸을 때 놓으면 자동으로 닫히게 하는 여러분도 많이 보셨을 그 ㄱ자로 생긴 팔 같은 장치가 달려 있었거든. 이런 문 열어 본 사람은 알잖아? 그게 꽤 힘주어서 밀어야 열린다? 그래도 그때까진 별 대수롭지않게 생각 한거야. 그럴수도 있지....하고 말야. 그리고 다시 돌아서서 바다를 바라보며 담배를 피웠지. 그때 이상한 기분이 드는거야. 꼭 누군가가 날 쳐다보고 있는 거 같은 느낌말야. 난 황급히 주위를 둘러봤지만 당연히 아무도 없었어. 찝찝한 기분이 든 난, 얼른 담밸 끄고는 선실로 들어왔어. 문은 내 생각대로 신경써서 잡아 다녀봐도 꽤나 빡빡 하더라구. 그런데 내가 객실로 들어오며 놓은 문은 천천히 닫히다가 갑자기 뒷사람이 잡은것 처럼 3초정도 멈추는 거야. 그러더니 다시 천천히 닫혔지. 왠지 불길한 예감을 지울수 없었던 나는 그 뒤, 사람 많은 객실에 앉아 육지에 도착할 때까지 담배도 화장실도.........참았어~ 그렇게 몇 시간을 달려 배는 육지에 도착 했고. 난 곧장 서울에 있는 내 자취방으로 올라왔어. 난 그때 서울에 내가 휴학 했던 학교서 20분 정도 떨어진 원룸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거든. 원래 대학을 간신히 인 서울 하면서 부모님이 원룸을 하나 얻어 주셨었는데 군대가며 방을 뺏다가 제대 후 집에 있기가 너무 지루해 복학 준비와 공부를 핑계로 방얻을 돈을 받아 서울로 올라 온거거든. 대신, 아직 복학 전 이므로 집세와 용돈은 내가 벌어 쓰는 조건 이었어. 난 집세와 각종공과금 통신료및 내 용돈...그리고 내 유흥비를 벌어야 하는 일과 돈의 노예 생활을 일찍 시작한거야. 그렇게 집에 도착해서는 화장실 겸 샤워실에 손빨래 때 쓰는 빨간 다라이에 붕어를 풀어 주곤 샤워를 하고 친구에게 전화 했어. 그 섬이 고향인 친구말야. 전화를 받은 놈의 목소리는 오후가 되었는데도 술에 찌들어 있었어. '' 엽때여?~~'' ''미친 ㄴ, 아주 대한민국 술 다 퍼 마시고 죽기로 작정했냐? 그깟 실연 한번 한 거 가지고 아주 쌩쑈를 하네'' ''엉엉...니가 사랑을 알어?   꽃게 쑝끼야? 엉엉'' 하긴...나도 군대에서 이별 하잔 얘기듣고 무장탈영 심각하게 고민 했었긴 하지. ''궁상 그만 떨고 나와. 위로주 한잔 살께. 할 얘기도 있고...'' 좋~텐다! 그렇게 우린 자주 가던 단골 삼겹살집에서 만나기로 하고는 옷을 입으러 방에 들어 갔어. 우리집이 분리형 원룸 이었거든. 방에 들어간 나는 또 한번 놀라게 돼. 난 항상 옷을 벗으면 침대 가운데 벗어 놓는 버릇이 있어. 그런데 내 옷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거야. 상식적으로 침대 가운데 있는 옷이 미끄러 떨어질 리 없잖아? 난 오싹함을 느끼고 서둘러 옷을 입고 집을 나섰어. 그리고 찝찝한 기분으로 약속 장소에 갔다? 이미 와 있는 친구는 벌써 소주 반병을 혼자 까고 있었고 우린 일단 놈의 떠나간 그녀를 안주 삼아 술 한병을 비우곤 화제를 바꿨어. 난 내가 경험한 얘기들을 침을 튀기며 풀어 놓았고, 내 얘길 들은 놈은 대충 믿어주는 분위기 였어. 그전에도 내겐 그런 일이 꽤 많아 놈도 날 귀신 친구쯤으로 알고 있었거든.ㅋㅋㅋ 그리고 놈은 마을 끝집 할아버지네도 저수지 폐가 할머니네도 어려서부터 봐와 잘 알고 있더라구. ''그런데 서른둥이야! 그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간혹 오는 자식들에게 항상 그러셨대. 자기 죽더라도 아버지가 언젠가 돌아오시면 잘 알아보시게 집, 절대 고치지 말고 잘 보존 하라구 말야! 근데 할머니 돌아 가시구 한 두해 뒤에 그 뭍으로 도망간 할아버지 소식이 풍문에 들렸는데 도망가고 얼마 안가서 할머니 보다 훨씬 먼저 사고로 돌아가셨대. '' 마음이 엄청 안 좋더라구. 그래도 남편이라고 평생 기다리시고 죽어서도 못 떠나고 기다리신다 생각하니 말야. 그렇게 뭔가 먹먹한 맘으로 한잔 진하게 빨고 있는데 친구들에게 전화가 온거야. 늘 뭉쳐다니던 얘들이라 우리가 있는 곳으로 불렀지. 그렇게 새로온 친구 2명이 합세 하여 우린 소주 파~~뤼를 벌리고는 2차를 가기로 했어. 실연 당한 친구를 위로 한다는 숭고한 우정을 빙자해서 나이트란 정글로 사냥을 떠나기로 했다? 모두 외관은 멀쩡한 놈들이라 그런 저런 대충 그런 곳 가면 먹어는 줬거든. 그렇게 모 나이트를 가서 기본시키고 스테이지 나가 몸을 풀며 수질 검사(?)를 시작했는데, 그날 따라 물이 진짜 안 좋은거야. 여자들 미모가 어쩐다는게 아니라 전부 쌍쌍이 놀러온 건전한 커플들이었어, 우린 그걸 똥물이라 하지..... 우린 누가 나이트 얘기 꺼냈냐며 궁시렁 거렸어. 니 탓이오, 니탓이오 니 큰 탓이로 쏘이다~~~~~ 그렇게 낸 돈이 아까워 밍기적 거리고 있는데 서광이 비추더라구. 어쩜 맞춤 옷처럼 딱 4명의 레이디들이 들어 온거야. 야시꼴러리한 화장과 잘 빠진 몸매...... 그리고 몸의 반 이상은 절대 가릴 수 없다는 의지가 돋보이는 헐벗은 옷차림은 그들이 범상치 않음을 말해 주더군. 딱 봐도 거칠게 노는 언니들이었어 ^^ 솔직히 남자들 뒤에서 욕해대도 그런 언니들 좋아한다? 내 여친만 아니면 말야. 그리고 얼마안 가 그 나이트에 있던 외로운 늑대 무리 중 그나마 상태가 가장 좋았던 우리와  그 언니들은 자연스럽게 어울렸지..... 그것도 그녀들 중 가장 헐벗고 섹쒸한 누님이 날 찍었네? 난 김칫국을 마구 퍼 마신거야. 앙~~~나 오늘 집에 못들어 가는 거? 아버지가 남자는 밥은 밖에서 먹어도 잠은 꼭 집에서 자야 한다셨는데 어쩜 좋아~~~ㅎㅎㅎㅎㅎㅎ 하면서. 우린 무대로 나가 춤을 췄어. 뭐 그쯤 되면 거의  짝짓기 춤 아니겠어? 랄라라~~~~~ 그런데. 그런데. 춤에 열중하고 있던 내 눈에 너무도 이질적인 모습이 보이는 거야. 무대 가장자리에 있는 기둥 뒤에 모습을 반쯤 가린 흰..무늬 없는 무명 한복 차림의 할머니의 모습. 그리고 내쪽을 무섭게 째려 보고 있던 흰자위 많은 두눈...... 처음엔 별 의심이 없었어. 속으로 '응? 왠 할머니지? 가출한 손녀 딸 잡으러 오셨나?' 했거든. 하지만 그 할머니 모습을 자세히 관찰하곤 사지가 부들 부들 떨려 오는 거야. 그래 맞아. 섬에서 봤던 그 할머니 였어........ 난 할머니 모습을 확인 하자 너무 공포스럽더라구 ㅜㅜ 그래서 가장 거칠게(?)놀 거 같은 언니를 팽개치곤 허겁지겁 자리로 돌아왔어. 뒤에서 황당하단듯 따라오며 궁시렁 거리는 언니의 말이 들렸지만 이미 아웃 오브 관심 이었지. 자리로 돌아와 바로 친구 녀석을 잡아 끌고는  어리둥절해 하는 녀석을 방패 삼아 할머니가 목격된 그곳으로 가봤어. 물론 있으면 얘기가 안되겠지? 난 홀안이 너무 시끄러워 친구를 데리고 화장실로 갔어. 안 마렵다고 앙탈을 부리는 녀석을 억지로 끌고 말야. "미친나?  갑자기 왜그래???" "야!!.... 나 봤어. 그 할머니......" 녀석이 첨엔 무슨 소린지 몰라 어리둥절하다가 곧 내 말뜻을 알아차리곤 심각한 낯빛으로 말하더라구. "진짜?" " 아~~몰라.  너무 무섭다 나가자" 다 잡은 고긴 어쩌냐구 투덜투덜 입이 10리는 튀어나온 친구를 데리고 우리 먼저 간다 하고는 온갖 욕을 들으면서 나왔다? 그 와중에도 날 보고 물귀신 같은 놈이라며 꿍시렁 대는 친구녀석. 아우....몇 시간전만 해도 이별의 아픔에 몸부림 치던 녀석이.. 나도 사내지만 말야.... 사내들 이란. 아까우면 내가 더 아까우니 잡솔 집어치고 술이나 한잔 더 하자며 집에 간다는 녀석의 멱살을 잡고 끌어 술집에 가서는 정말 떡이 되도록 마셨어. 조금전까지만 해도 이 섹쒸한 언니가 오늘밤 채찍 들지도 모른다고 놀라운 경험 하는 거 아니냐며 행복한 고민중 이었는데 말야ㅠㅠ 대부분 술마시면 간이 주체할 수 없이 부어 오르잖아? 그냥 어디 찜질방에라도 들어가던 친구 자취방에 같이 가던 그랬어야 하는데, 무식한 용기가 생겨 넌 너네집으로, 난 나의 집으로 한거야. 집에 도착해서는 계단을 올라 집에 갔어. 3층 이었거든. 한참 비틀 거리며 열쇠를 꺼내 문을 따곤 들어갔지. 우리집이 분리형 원룸이라 그랬잖아? 집 구조가 현관을 지나면 부엌과 화장실이 있고 미닫이 문이 있어. 그 뒤가 방이고. 그리고 현관 바로 옆에 불을 켜는 스위치가 있거든. 난 현관을 열고는 언제나처럼 버릇으로 스위치 부터 켰어. 그런데 불이 안 들어 오는 거 있지? 아까 나갈때 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불이 안 들어 오는 거야. 그런데 현관밖에 있는 움직이면 켜지는 낮은 촉수의 센서등 불빛에 실내가 희미하게 보이는데, 미닫이 문이 열려 있었어. 난 단언컨데 항상 미닫이 문을 닫아 놓고 다녀.  어떠한 일이 있어도. 그리고, 방안 창문쪽에 사람같은 하얀 물체가 서 있었어. 술이 확 깬다는게 그런 느낌이더라구. 아주 순식간에 헤롱헤롱에서 완전 멀쩡한 상태가 되더만? 사람의 생존 본능이란 참 신비로와 . 그치? 그때 난 알았어 그게 그 할머니란 걸......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그게 쓰윽~ 내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어. 난 현관문을 꽝 하고 닫곤 문도 잠그지 못하고 미친듯이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왔어. 내려오다가 1층 다 내려와서 계단에 엎어지기까지 했어. 다친 무릅에 또....젠장!! 아픔을 생각할 여유도 없이 벌떡 일어나 미친듯 달려 건물을 나왔다? 그리곤 친구네 자취방을 향해 졸나게 뛴거야. 꽤 멀리 뛰었는데 따라오는 기색이 없자 급 취기가 다시 돋아 심장이 미친듯이 뛰더만. 잠시 멈춰  숨을 고르며 내 방을 쳐다보는데 내 방안에 서서 날 쳐다보고 있는 그 할머닐 멀리서 확인할 수 있었어. 어쩌겠어? 비명을 지르며 또 뛰었지 뭐. 간신히 친구 집에 가서는 자초지정을 얘기 하고는 친구집에서 잤어. 잠도 안 오더라구....  ㅠㅠ 그렇게 거의 뜬눈으로 밤을 세우고는 다음 날도 너무 무서워서 집엘 가지도 못하고 있다 또 친구 집에서 잤어. 인젠 피로가 몰려 오니 잠이 쏟아 지더라구. 근데 자도 문젠거야. 그 분이 꿈속으로 찾아 오시네? 그때 부터 가위가 눌리기 시작 하더라. 그렇게 꿈에 시달리다 날이 밝은 후 친구와 함께 집엘 갔지. 가기 싫었지만  갈아 입을 옷도 좀 싸와야 하고 문 단속도 안 되어 있고 말야. 집에 가서 문을 여는데 집안에서 썩은내가 나는 거야. 빨간 다라에 넣어둔 붕어들이 튀어나와 자살을 한거지... 내 어탁  ㅠㅠ 치우고 청소하고 옷도 좀 챙기고 했어. 물론 친구에겐 내 시선에서 벗어나면 오늘이 니 제삿날이라고 협박해서 날 졸졸 따라 다니게 하고..^^ 그렇게 집 정리를 하곤 문 단속 후에 다행히 아무일 없이 나올 수 있었어. 그렇게 친구집에서 1주일, 너무 오래 있기가 염치 없어 찜질방에서 1주일을 보냈는데  매일 가위에 눌리고 여러번 할머니 귀신과 원치않는 조우를 하게돼. 그중 가장 무서웠던건 알바중에 급똥 신호가 와서 화장실을 갔는데, 대낮 이라 방심 했는데, 한참 힘주고 있는데 이상한 느낌이 나서 위를 보니, 할머니가 옆칸에서 고갤 내밀고 날 째려 보고 계셨던거야 ㅠㅠ 심장 멎을뻔 했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때 심장,간 다 떨어질 뻔 했잖아?~~ 아마 들에서 싸고 있었으면 그 위에 주저앉았을껄? 난 비명을 지르며 밑도 닦지도 않고 옷도 제대로 못 추리곤 옷을 부여잡곤 뛰어 나갔어. 딸랑 딸랑 거리면서 말야 ^^ 문밖에 아무도 없었길래 망정이지 같이 알바하는 여학생 이라도 마주쳤으면..... 정말 끔찍하다. 졸지에 변태 화장실 바바리맨될 뻔 한 거 있지? 그렇게 한 2주를 시달리다 보니 살이 쪽쪽 빠지는 거야. 그리곤 결심 했지. 이대로 살수는 없다 하고. 그러고 있을 때 마침 전화가 한통 왔어. 춘천 이모.... 모두들 주위에 친한 무속인 한분씩은 다 있잖아? 이거 왜 이래? 무당 친구 하나도 없는 사람들 처럼. 내게도 그런 분이 계셔. 원래 고향이 춘천 이시라 내가 춘천 이모라고 부르는 분 이야. 우리 어머니 보다 2살이 위 이신데 호칭은 이모인데 울 엄마랑은 하나도 안 친하다? ㅋㅋㅋㅋ 서울에서 무업을 하시는 분이야. 내가 보긴 엄청 용하셔. 내가 아는 모든 무속인중 짱 이시지. 근데 왜 그런 일이 있는데 미리 연락 안 했냐구? 그때 이모가 많이 아프셨거든. 무속적으로 관계된 게 아니라 의학적으로 아프신거라 이모도 어쩔 방법이 없이 투병 중이셨거든. 그런 이모께 차마 걱정을 끼칠 수가 없었어. 나 착하지? 근데 그런 이모가 어찌 아시곤 전화를 주신거야. "이모, 몸은 좀 어떠세요?" "그만 그만 하다....그런데 갓서른둥이야!  너 무슨 일이  있지? 니가 자꾸 꿈에 나와,,,어떤 할머니랑 같이...." 난 깜짝 놀랐지만 그땐 말 안할 수 없었어. 내 코가 석자 였거든. 난 일 끝나면 찾아 뵙고 말씀드린다고 하고는 퇴근하고 과일 좀 사들고 이모댁을 방문했어. 이모는 누워 계시다가 날 보시자 힘겹게 일어나 앉으셨어. 그러시며 내 얼굴을 보시고는 다 알겠다는 듯 이런................쯧쯧쯧  하시며 혀를 차시더라구. 난 이모께 그간의 일들을 소상히 얘기 했지. 이모께서는 집에 집착이 엄청나게 강한 혼인데 니가 그 집에 해꼬지를 했다고 생각하고는 너 따라 다니는 거다. 원래 귀신은 생각이 단순해서 뭔갈  하나 생각 하면 거기에 집착을 한다 그러시더라구. 부적을 하나 써 주시면서 항상 몸에 지니고 있으라 말하시면서 내가 몸이 이래서 널 따라가 도울수가 없구나. 하시며 이건 니가 풀어 드려야 한다 그러시더라구. 그러시면서 니가 할수 있는 최선을 가지고 진심으로 사과 하여야 한다셨지. 찜질방에 돌아와 늦게까지 내가 사죄할 방법을 찾았어. 그날 밤은 부적 때문인지 정말 보름만에 가위에 안 눌리고 편안히 잘 수 있었어. 그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친구 집으로 쳐들어 가서는 학교 가야된다는 녀석에게 하루 결석이 중요하냐 친구가 중요하냐를 강제로 선택 하게 하곤 같이 그 섬엘 갔어. 물론 할머니도 보이진 않지만 따라 오셨겠지. 이번엔 준비 단단히 했다 진짜. 밥도 굶고 키미테도 붙이고.  우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젠장, 빈 속이면 멀미를 더 한단 사실을 몰랐어. 빈속이랑 키미테랑 퉁쳐 버리고 난 항상 언제나 일관성 있게 또 변기 부여잡고 또 통성 기도로 내 영혼을 하얗게 불태웠어.ㅠㅠ 섬에 반 주검이 되어 도착한 후 친구 집에 가서는 인사를 드린 후 밥을 먹었어. 멀미가 참 신기해. 땅만 밟으면 멀쩡해지더라? 그리곤 그 폐가를 갔어. 가는 길에 끝집 할아버지 댁에 가서는 인사도 드리고 할아버지를 모시고 폐가에 간거야. 죄송하지만 할아버지는 내겐 살아 계시는 부적이자 최후의 방어선이였거든. 우린 친구집에서 들고 온 여러가지 연장을 들고 폐가엘 갔어. 그리고 끝집 할아버지가 어디서 구해다 주신 중고지만 멀쩡한 문으로 새로 부엌 문도 만들어 달고, 할아버지가 지켜주시는 가운데 방청소도 하고 장작할 나무도 줏어다가 쌓아 놓고 들고간 낫으로 마당의 풀도 정리 하고 정말 열심히 집수리를 했어. 그리곤 다시  할아버지가 방에 피워 놓으신 향앞에서 절을 올리곤  죄송하다며 사죄를 드렸지. 그리고 들은 할머니 남편 얘기도 해 드리고 이미 오래전에 할머니 보다 먼저 저승에 가셨으니 인제 기다리지 마시고 좋은데 가시라고 친구와 할아버지와 함께 마지막 절을 드리곤 나왔어. 돈은 절대 안 받으신다는 할아버지께 가게로 가선 소주 댓병 몇 병을 사선 반주 드시라고 드리니 참 좋아하시더군. 그리고 친구집에서 밥을 먹고 마지막 배를 타고 나왔어. 일이 잘 끝나서인지 아니면  대비를 잘한건지 나오는 뱃길엔 그리 멀미가 심하지 않았어. 그리고 그날밤 할머니가 꿈에 나타나셨어. 처음엔 목소리만 들렸어. 내게 그러시더라구 부적 때문에 갈 수가 없다고 부적 좀 치워 달라고 부탁을 하시는거야. 그리고 깼는데 망설이다가 난 부적을 책상 서랍 깊숙히 치워 놓았어. 나로선 크게 모험을 한건데 내게 들린 목소리가 더 없이 따뜻했거든. 다시 잠들었는데 이번엔 그 할머니가 꿈에 나타나셨어. 그런데 그 무섭던 표정이 우리 할머니처럼 인자하게 변해 있었고 좋은 한복을 입으시고 오셨지. 내게 그동안 괴롭혀서 미안하다 하시며 자긴 이제 가야할 곳으로 떠날꺼니 잘 있으라 인사하며 가셨어. 난 깨서는 더 이상 부적이 필요 없겠구나 했어. 그리고 집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고, 그 뒤엔 한번도 그 할머니를 꿈에라도 뵌 적이 없어. 좋은 곳에 가셨겠지? 다음엔 춘천 이모와의 인연에 대해 얘기 할께요. 이모가 나 살려주신 얘기도요.^^ [출처] 네이트판 | 갓서른둥이 _________________________ 어휴 할아버지는 먼저 돌아 가셨구나 ㅠㅠ 그것도 모르고 할머니는 계속 기다리셨던 거였고 처자식 버리고 떠난 분이 어찌 그리 그리우셨던 걸까 너무 안쓰럽네.. 부디 이젠 좋은 곳에 가셨기를. 다들 감기 조심하고, 손 잘 씻고 남한테 침 뱉지 말고 침 맞으면 바로 씻고 ㅎㅎ 괜히 사람을 미워하진 말자 잘 자고!
[퍼오는 공포썰] 사이비 종교 끝장낸 썰
코로나19 때문에 다들 많이 떨고 있을 것 같아 걱정이 크네 그릇된 믿음 때문에, 여러모로 뒤가 구린 사이비 종교 하나 때문에 바이러스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구나. 사람들의 불안도 점점 커져서 마스크 값이 폭등하고, 마트에 생필품도 다 떨어졌다면서. 사실은 이 정도로 공포에 떨 것이 아닌데. 조심해서 나쁠 건 하나도 없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까지 공포감을 조성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더 무서운 건 역시나 불필요한 혐오인 걸. 벌써부터 나뉘어서 싸우고 있는 걸 보니 두통이 다 생기더라. (물론 신천지 혐오는 인정ㅋ) 그래서 오늘 가져온 건 (조금 많이 길지만) 우리나라의, 잔인하기로는 비할 바가 없는 한 사이비 종교 이야기야. 정말 어마어마해서 영화화도 된 지라 아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이비 종교에 빠진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혹여 지금 사이비 종교에 빠져 사태 파악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면 돌아보라는 의미에서 가져온 글. 글이 너무 길어서 내가 중간 중간 좀 솎아 냈는데도 여전히 기네. 그래서 중요한 부분은 두꺼운 글로 표시를 했어. 다 읽기 싫은 사람들은 두꺼운 글자만 읽어도 크게 문제는 없을 거야. 그럼 시작해 볼까? _________________________ 세상이 거칠고 강퍅할수록 종교는 힘을 얻는다. 일제의 강압이 날로 심해지던 1930년대, 피폐해진 식민지 백성들의 신산한 마음을 뚫고 ‘영생복락’과 ‘부귀영화’를 약속하는 사이비 종교들이 기승을 부렸다. 이 가운데 온 국민을 경악케 했던 것이 수백건의 살인과 음행이 드러난 이른바 ‘백백교 사건’. 그 참담한 최후의 기록을 살펴보면, 사건의 배경에 가난과 무지, 정치적 부자유에 시달린 반도 백성의 안타까운 현실이 자리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25년, 유곤용은 해주에서 가장 큰 한약국 ‘구명당(求命堂)’의 주인이었다. 본디 그의 집안은 온천이 개발되어 전국적인 휴양지로 번성한 신천에서도 손꼽히는 부자였지만, 30여 년 전부터 뚜렷한 이유 없이 재산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여색이나 주색에 빠진 것도, 투기나 도박에 손댄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유곤용의 조부는 수시로 땅을 팔고, 빚을 얻었다. 유곤용이 해주로 나올 즈음 유씨 집안은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몰락했다. 유곤용의 사업은 성공적이었다. 그는 자신의 고유한 비방으로 약을 처방했는데, 특히 위장병, 임질, 뇌신경질환 치료약 조제에 탁월했다. 10여 년의 관록이 붙은 후 그의 명성은 황해도를 넘어 경기도와 평안도에 뻗쳤다. ‘구명당’은 조선 최초의 한약재 연구소를 설립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나 거칠 것 없이 뻗어가던 유곤용에게도 남모를 고민이 있었다. 1933년 임종하기 전, 조부는 유곤용에게 30년간 지켜온 집안의 비밀 하나를 털어놓았다. “할아비는 장차 너의 부귀와 공명을 위해 근 30년간 백백교를 믿어왔다. 대원님께 의지하여 재물 버리기를 초개와 같이 했다. 그러나 아쉬워 말거라. 할아비가 정성을 다해 교에 바친 재물은 이제 곧 몇 곱절, 몇십 곱절이 되어 네 아비와 네게 돌아올 거다.”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였다. 집안이 몰락한 이유는 허망하게도 조부가 백백교라는 신흥종교를 믿은 탓이었다. 조부의 죽음으로 집안의 비극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부친 유인호는 조부보다 더 ‘독실한’ 백백교 신도였다. 조부가 죽은 후 부친 유인호는 얼마 남지 않은 가산을 정리해 가솔들을 이끌고 백백교 본부가 있는 서울로 이주했다. 재산 일체는 물론 18세밖에 안 된 딸마저 대원님께 바쳤다. 그 대가로 받은 것이라고는 고작 ‘장로’라는 허울뿐인 직함과 왕십리에 있는 허름한 방 한 칸이 전부였다. 유곤용은 헛된 망상에서 깨어나라고 4년을 두고 설득했지만, 유인호의 30년 믿음을 돌이킬 수 없었다. 교주의 애첩이 된 누이동생 또한 백백교의 열성 신도가 됐다. - 1937년 2월10일, 음력 설을 맞아 유곤용은 중대한 결심을 하고 아버지 유인호의 처소를 찾았다. 4년 만에 부친을 만난 유곤용은 무릎을 꿇고 그동안의 불효를 고개 숙여 사죄했다.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대원님을 만나 가르침을 얻고자 한다는 뜻을 전했다. 유인호는 자식의 돌연한 개심이 한편으로는 기특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몹시 불안했다. 유곤용은 어떠한 곤란한 명령이라도 순종할 터이니 제발 대원님을 승안케 해달라며 거듭 부탁했다. 그제서야 유인호는 자식의 진심을 믿을 수 있었다. 유인호의 적극적인 주선으로 2월16일 저녁 8시 왕십리 유인호의 자택에서 백백교 교주 전용해와 유곤용이 운명적으로 만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전용해의 애첩이 된 유정전은 오빠 유곤용에게 대원님을 승안할 때 다섯 가지 계율을 명심해서 지켜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첫째, 절대로 대원님의 얼굴을 쳐다보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든 대원님 앞에서 고개를 들면 안 됩니다. 둘째, 대원님을 뵐 때는 몸에다 아무것도 지니지 마셔야 합니다. 수건 하나 휴지 한 장이라도 주머니에 있으면 안 됩니다. 셋째, 백지장 같은 결백한 마음으로 대원님을 대하셔야만 합니다. 넷째, 대원님께서 물으시는 말씀에만 대답을 여쭙지 오라버니 편에서 무슨 말씀이고 하셔서는 아니 됩니다. 다섯째, 대원님께서 내리시는 분부면 어떠한 것이건 절대 복종을 하셔야만 합니다.” 유곤용은 계율을 지키겠노라 다짐하고 사흘 동안 방에 틀어박혀 근신했다. 교주 전용해는 약속한 정각에 애첩 유정전과 부하 두 사람을 거느리고 나타났다. 검정색 외투를 걸치고, 고동색 모자를 쓰고, 검정색 구두를 신은 차림이었다. 겉모양만 보면 영험한 신흥종교 교주라기보다는 흡사 보험회사 두취(頭取·사장)처럼 보였다. 유곤용은 부친과 함께 뜰 아래로 쫓아내려가 공손히 대원님을 영접했다. 방안에 모여 앉은 얼굴과 얼굴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한참 동안의 침묵이 흐른 후 교주 전용해가 어색한 침묵을 깼다. “따지고 보면 자네와 나는 4년 전부터 처남매부지간인데 오늘에야 비로소 만나게 되는구려. 늦은 감이 있지만 어쨌거나 대단히 반갑소.” 간단한 인사말이 있은 후 주연이 벌어졌다. 한잔 두잔 술잔이 거듭됨에 따라 전용해는 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꺼냈다. “아버지와 누이동생도 이미 서울에 와 있으니 차라리 그대도 가산 전부를 정리해가지고 서울로 오는 것이 어떠한가?” 조부와 부친처럼 속히 재산을 바치라는 말이었다. 유곤용은 긴장한 어조로 완곡하게 거절의 의사를 표했다. “그것도 대단히 좋은 말씀이나 사업이 아직 완성되지 않아서 지금 당장 올라오기는 어렵습니다.” ‘신의 아들’ 대원님의 말씀을 감히 거부하는 것은 백백교 교단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전용해는 격분한 어조로 다그쳤다. “그럼, 내 명령을 복종하지 않겠다는 말이지?” 그리고 옆에 앉은 유정전을 보고 또 한 번 소리쳤다. “네 오라비 잘났다.” 일격을 당한 유곤용은 그제서야 본심을 드러냈다. 지난 일주일간 그가 보인 행동은 교주 전용해를 만나 백백교의 악행을 따지기 위한 연극일 뿐이었다. 유곤용은 “백백교의 교리가 도대체 무엇이냐? 그런 얼치기 종교가 어디 있느냐”며 욕질을 했다. 세상에 나서 그런 욕설을 처음 듣는 전용해는 흥분한 나머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호신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나이프’를 빼어들고 유곤용을 찌르려고 덤벼들었다. 이 순간이 그에게는 천려(千慮)의 일실(一失)이었으니 흉악무도한 그들의 죄상이 백일하에 드러나는 단서가 될 줄이야 악의 천재인 그도 예상치는 못하였을 것이다. 안방에서 소란이 일어나자 대청마루에서 추위에 떨며 기다리고 있던 전용해의 수하들이 교주의 신변 보호를 위해 방문을 박차고 뛰어들었다. 유곤용의 힘은 의외로 강했다. 쇄도하는 수하들을 차례로 물리치고, 전용해의 멱살을 잡아 넘어뜨렸다. 힘으로는 도저히 상대할 수 없음을 직감한 전용해는 죽을 힘을 다해 그의 손을 벗어나 도망쳤다. 수하들도 각자 살길을 찾아 도주했다. 유곤용은 위험을 직감했다. 백백교 교도들이 떼지어 몰려올 것이 분명했다. 그는 동대문서 왕십리주재소에 달려가 사정을 말하고 신변보호를 요청했다. 1930년 소위 ‘금화사건’ 이후 완전히 소탕된 줄 알았던 백백교가 지하로 잠복해 밀교로 이어지고 있음을 알게 된 경찰은 현장으로 수사대를 급파했다. 수사대가 전용해의 집에 도착했을 때, 전용해는 이미 자취를 감춘 상태였지만 전용해의 행방을 찾기 위한 신문 과정에서 의외의 사실이 밝혀졌다. 백백교는 교도들의 재산을 갈취하고 정조를 유린했을 뿐만 아니라, 교단의 비밀 유지를 위해 수백명의 교도를 살해, 암매장한 것이었다. 너무나 흉악한 범죄였기에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경찰은 보도를 전면 금지했다. 경찰은 두 달이 지난 4월13일에야 보도금지를 해제하고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백백교는 이름만은 종교단체이나 그 내용에 있어서는 순전한 사기, 부녀자 능욕, 강도, 살인 등을 거침없이 한 흉악무도한 결사다. 소위 교주된 자와 그 간부가 되는 자들은 우매한 지방 농민들을 허무맹랑한 조건으로 낚아 재산을 몰수하고, 부녀자의 정조를 함부로 유린한 후, 그 비밀을 막기 위하여 수단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살육을 감행했다. 교도 중에서 피살된 자가 사백여 명으로 추정되고, 현재 판명된 자만도 158명에 달한다. 전율할 숫자는 세계범죄사상 전무후무한 범죄기록이 될 것이다. (‘조선일보’ 1937년 4월13일자 호외) 교도의 사체를 파묻은 백백교의 비밀 아지트는 한두 곳이 아니었다. 전국에 산재한 20여 곳의 비밀 아지트에서 모두 314구의 사체가 발견됐다. 살인은 서울 한복판에서도 버젓이 자행됐다. ‘벽력사’ 문봉조는 신당리 자택에서 교도를 살해한 후 대담하게도 사체를 자전거에 싣고 백주에 종로와 남대문을 가로질러 한강까지 내달렸다. 서울에서 살해당한 교도 수십명이 한강물에 던져지거나 마포, 청량리 일대에 암매장됐다. 양주군의 ‘천원금광사무소’는 교도 살해에 이용된 비밀 아지트 중 대표적인 곳이다. 당시 전 조선은 황금 열풍에 휩싸여 있었다. 삼천리 방방곡곡에 금광이 들어섰다. 그러한 시기, 깊은 산골에 세운 비밀 아지트는 금광으로 위장하는 것이 제격이었다. 부근을 금은광구로 출원하고 인근 유지와 관리들을 초청해 성대한 개소식까지 거행했다. 수시로 빈 화약을 터뜨렸기에 바로 인근 주민들조차 그곳이 금광을 가장한 ‘도인장(屠人場)’임을 까맣게 몰랐다. 천포금광 일대에서만 40여 구의 사체가 발굴되었다. 죽을 때 비명이 새어나갈까 우려돼서 화약을 함께 터뜨렸다고 한다. 백백교는 홍보를 위해 폐광이 된 금광에 금을 숨긴 다음에 전용해의 힘으로 금광이 다시 터졌다는 식으로 사람을 모았다. 전용해는 만일을 대비해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았고, ‘김두선’을 비롯한 16가지 가명을 쓰는 치밀함을 보였다. 전용해의 인상착의는 전적으로 체포된 백백교 핵심 간부들의 진술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오랫동안 동거하던 애첩들조차 그의 얼굴을 함부로 쳐다본 적이 없어 생김새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의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은 2인자 이경득과 교주의 아들 전종기 정도였다. 경찰은 검거에 나선 지 50여 일 만에 양평군 용문산에서 전용해로 추정되는 사체 한 구를 발견했다. 전종기는 코 아랫부분이 산짐승에게 먹혀 없어진 시체를 보자마자 “아이고 아버지!” 하고 대성통곡했다. 양복 주머니에선 전용해가 차고 다니던 시계와 80여 원이 들어 있는 지갑이 나왔다. 부검 결과 전용해의 사망 시각은 2월21일 정오경으로 밝혀졌다. 자신이 ‘신의 아들’이라 주장했고 자신을 믿는 교도들에게 장생불사를 약속했던 전용해는, 유곤용과 다툰 지 닷새 만에 자신의 손으로 목숨을 끊어 신의 아들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일 뿐임을 스스로 입증해 보였다. 백백교의 기원은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평북 영변 태생의 동학도, 전용해의 부친 전정운은 금강산에 들어가 도를 닦다가 1900년 천지신령의 도를 체득한 후 세상에 나왔다. 그는 함남 문천군 운림면을 중심으로 인근 사람들에게 도를 전했다. 그를 믿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자 1912년 강원도 금화군 오성산에 본거지를 두고 정식으로 백도교(白道敎)를 개창했다. 강원도를 중심으로 부근 각처에 지부를 두고 포교에 힘써 1915~16년에는 교도가 1만명을 헤아렸다. 1919년, 교주 전정운이 죽자 교세 확장 방법을 둘러싼 간부들의 대립과 부친 유산 분배를 둘러싼 골육간의 싸움으로 교단이 분열된다. 결국 세 아들이 모두 독립해 각자 교단을 하나씩 차렸다. 1923년 5월 전정운의 맏아들 전용수는 간부 이희용을 표면상의 교주로 하여 경성부 도화정에 본부를 둔 인천교(人天敎)를 창립했다. 같은 해 7월 둘째아들 용해는 차병간을 표면상의 교주로 내세워 경기도 가평군 북면에서 백백교를 창립했다. 셋째아들 용석도 형들에 지지 않고 경성부 도화정에 도화교(桃花敎)를 세웠다. 파죽지세로 뻗어가던 백백교의 교세는 1930년 7월, 10여 년 전 백도교 교주 전정운이 금화군 오성산에 그의 애첩 4명을 산 채로 파묻은 구악이 폭로돼 한풀 꺾인다. - “일제는 가고 새 세상이 온다” 전용해와 표면상 교주인 차병간은 가까스로 검거망을 벗어났다. 그들은 지방을 전전하며 비밀리에 교단을 재건했다. 이후 전용해는 서울에 본부를 마련하고, 지방에 있는 심복 교도들을 서울로 불러모았다. 백백교 간부들은 평안도, 황해도, 강원도 등을 순회하며 무지몽매하여 세상 물정에 어둡지만 다소 자산이 있는 사람들을 은밀히 포섭했다. 백백교에서는 성별에 따라 외우는 주문이 달랐는데, 남자가 외우는 주문은 아래와 같다. 백백백의의의적적적감응감감응하시옵숭성(白白白衣衣衣赤赤赤感應感感應하시옵崇誠) 위의 해괴한 주문만 외우면 무병장수한다고 한다 (나무위키) “우리 백백교 교주님은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는 분이다. 머지않은 장래에 천위(天位)에 등극할 인물이다. 지금 일본의 통치 아래 있지만, 가까운 장래에 반드시 백백교 교주의 통솔 하에 독립이 될 것이다. 그때 각 교도는 헌성금(獻誠金)의 다소와 인물의 능력에 따라 대신, 참의, 도지사, 군수, 경찰서장 등에 임명될 것이다.” “오래지 않아 큰 전쟁이 날 터이니 교도들은 자산을 팔아가지고 상경하라. 교주는 신통력을 가지고 계신 분이므로 반드시 그대들의 생명을 보장할 것이다.” “3년 내 조선에 서른 자 이상의 큰 홍수가 날 것이다. 일반백성은 모두 물에 빠져 죽더라도 헌금한 우리 백백교도는 금강산 피신궁(避身宮)에 들어가 목숨을 구할 수 있다. 홍수 이후 교주 전용해가 등극하여 천위에 오르면 헌금액에 따라 관직을 제수할 것이다.” (‘백백교 사건의 정체’, ‘조광’ 1937년 6월호) 백백교 간부들은 정감록의 예언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정도령과 소리가 비슷한 교주 ‘전도령’이 후천개벽 세상의 주인이 될 것이라 호언했다. 관존민비의 봉건적 인습에 사로잡힌 사람에게는 관직을 주겠다는 말로, 투기심이 강한 사람에게는 ‘불로장생, 부귀영화’라는 말로 입교를 권유했다. 일단 백백교에 입교하면 교주의 명령에 따라 토지, 가옥, 가재도구 일체를 정리해 서울 본부로 올라왔다. 교주는 신입 교도가 가지고 온 현금을 헌납하게 했다. 데리고 온 가솔 중 미모의 처녀가 있으면 ‘시녀’로 바치게 했다. 교주는 앵정정 본부로 불려온 시녀에게 ‘신의 행사’를 빙자해 욕정을 채웠다. ‘믿음이 약해’ 교주에게 만족을 주지 못하는 여성은 심복 간부에게 넘겨줬다. 간부가 거느린 첩은 모두 이러한 ‘절차’를 거친 여성이었다. 교주는 수십명의 첩을 거느렸다. 7~8명의 첩을 거느린 간부도 있었다. 본부에서 교주와 ‘신의 행사’를 치를 수 있는 여성은 4~5명에 불과했다. 새로운 시녀가 들어오면 기존의 시녀 중 ‘믿음이 약한’ 시녀는 양주, 양평 등지의 심산에 사는 심복 교도들의 집으로 보내졌다. 교주는 한 달에 몇 번씩 교도들의 집을 돌며 시녀들과 ‘신의 행사’를 치렀다. 전 재산과 자녀를 교주에게 바친 교도에겐 “오래지 않아 백백교의 천하가 올 터이니 그때까지 농촌에 가서 농사를 지으면서 기다리고 있으라”는 명령이 하달됐다. 교도들은 연천, 양평, 철원, 평강 등 산간벽지 교통이 불편한 외딴집으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교도들은 화전을 일궈 근근이 연명했다. 교단은 교도들이 근처 부락 사람들과 접촉하지 못하게 막았고, 탈출을 방지하기 위해 교도들을 수시로 이주시켰다. 교도가 수상한 행동을 하면 처자 형제를 각각 다른 지방으로 보내 격리했다.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가족의 신변 걱정에 교도들은 차마 딴 마음을 품지 못했다. 재산과 가족을 빼앗기고 어딘지도 모르는 산간벽지로 보내져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하면서도 임박한 백백교의 세상에 대한 꿈을 잃지 않은 교도가 없진 않았다. 그러나 대부분은 자신의 어리석은 선택을 후회하고 교단에 대해 불만을 품었다. 전용해와 측근 간부는 교단에 불만을 품은 교도를 배교분자로 분류했다. 교주는 배교분자를 비밀 아지트로 데리고 가서 ‘기도’를 올려주었다. ‘기도’는 교도를 살해해 암매장하는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성인들이 타살된 후 딸린 어린 아이들은 산 채로 암매장됐다. 범죄 사상 초유의 대사건이었던 만큼 수사와 예심에만 3년이 소요되었다. 살인기록 보유자 문봉조 외 간부 24명은 보안법 위반, 살인, 사체유기, 상해치사, 살인강도, 외설, 사기 공갈, 횡령, 공사문서 위변조 등 10개 죄목으로 공판에 회부됐다. 피고인 24명 중 살인에 관련된 피고인만 18명이다. 살인 수효를 들으면 한층 더 전율을 느끼게 된다. 문봉조가 공범자와 함께 죽인 사람이 49회에 129명, 이경득이 61회에 166명, 길서진이 48회에 169명, 길군옥이 34회에 121명, 이한종이 11회에 35명 등이다. 그 죽인 방법도 참혹하기 짝이 없어 마치 사람 죽이는 것을 병아리나 죽이듯 쉽게 여겼다. (‘백백교 사건 공판 방청기’, ‘조광’ 1940년 5월호) 공소사실 진술에만 1시간이 소요됐다. 재판장이 검사의 공소사실을 인정하느냐고 묻자 9명의 피고인이 살인 및 사체유기 사실을 부인했다. 재판장은 피고인들을 앉히고 개별심리에 들어갔다. 재판장은 사건을 최초로 고발한 유곤용의 부친 유인호를 일으켜 세우고 신문에 들어갔다. 장로 유인호는 백백교 30년의 역사를 소상히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재판장: 어째서 백백교를 믿었느냐? 유인호: 대원님을 따르면 불로장생 호의호식 한다기에 믿었습니다. 재: 전용해의 부친 전정운이 창설한 백도교에 관계했느냐? 유: 예, 그때부터 믿었습니다. 재: 무슨 동기로? 유: 어렸을 때, 아버지가 백도교를 믿으면 모든 재액을 피할 수 있다기에 믿었습니다. 재: 백백교의 교리가 무엇이냐? 유: 무식해서 교리는 모릅니다. 재: 헌성금은 얼마나 바쳤느냐? 유: 전재산을 모조리 바쳤습니다. 재: 네 딸을 전용해의 첩으로 준 이유는 무엇이냐? 유: 선생께서 요구하기에 바쳤습니다. (‘동아일보’ 1930년 3월14일자) 이어 벽력사 문봉조에 대한 신문에 들어갔다. 문봉조는 백백교의 행동대장격으로 49회에 걸쳐 129명의 교도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재판장: 백백교의 교리가 무엇인가? 문봉조 :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머지않아 서양은 불로, 동양은 물로 심판을 받아 인류가 전멸하는데 그 심판에서 구원을 받으려면 백백교를 믿어야 한다, 심판 때 동해에 영산이 떠오르는데 교도들은 전부 피난해서 거기서 홀로 장생하고 병에도 걸리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선생께서는 신이 사람의 모습을 쓰고 내려온 구주라고 하셨습니다. 재: 헌성금이란 어떤 것인가? 문: 입교한 자는 자기 재산을 팔아 교주에게 바치도록 했습니다. 재: 검거 당시까지 얼마나 받았는가? 문: 알 수 없습니다. 재: 전용해가 교도에게 돈을 준 일이 있는가? 문: 생활이 가난하면 얼마간 주신 일이 있었습니다. 재: 생활이 곤란한 교도 중에는 교주에게 불평을 품은 교도도 있었겠지? 문: 믿음이 엷은 교도 중에는 혹 불평을 가진 사람도 있었습니다. 재: 그런 불평분자는 모두 피고인들에게 명령해서 죽이게 했다지. 문: 예, 그랬습니다. 재: 전용해는 교도 중에서 딸이나 누이동생이 있는 사람에게 그 딸과 누이동생을 바치라 해서 첩을 삼았다지? 전부 몇 명이나 되는가? 문: 정확한 명수는 알 수 없습니다만 앵정정에만 34명 있었습니다. 재: 그래 전용해는 매일 술만 먹고 첩과 음탕한 생활을 해왔다지? 문: 밥보다는 술을 좋아하셔서 매일 ‘월계관’이나 ‘백학’ 한 되쯤씩 자셨습니다. 재: 전용해는 자기 재산은 없이 교도에게서 모은 돈을 물 쓰듯 하여 방탕하고 사치한 생활을 했는가? 문: 예. 재: 그런 음탕한 생활을 하는 전용해를 어떻게 신의 아들이라 믿을 수 있었는가? 문: 지금 생각하니 잘못 믿고 있었습니다. 술 먹은 때는 그렇지만 선생께서 가르치는 말은 모두 훌륭해서 믿었던 것입니다. 재: 그래, 아직도 전용해를 신의 아들로 믿는가? 문: 천만에요. 지금 생각하면 모두 어리석어서 속았던 걸 깨달았습니다. (‘백백교 사건 공판 방청기’, ‘조광’ 1940년 5월호) 문봉조를 비롯한 피고인 전원은 자신의 과오를 뉘우친다고 했지만, 교주를 지칭할 때 꼬박꼬박 경어를 썼다. 오랜 습관 때문인지 뉘우친다고 거짓 진술을 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백백교의 2인자 이경득은 전용해의 인격을 숭배해서 믿었는지 반역하면 죽이는 것이 두려워 믿었는지 묻는 질문에 정말로 신의 아들로 믿었다고 진술했다. 불평을 품고 있을 때마다 교주가 “이 놈 네가 불평을 품고 있구나. 다른 데 가고 싶거든 가거라” 하여 독심술을 가졌다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나머지 피고인들도 모두 교주가 진짜 ‘신의 아들’인 것으로 믿고 백백교에 귀의했다고 진술했다. 23명의 교도를 살해한 이창문은 백백교만 믿으면 가족의 병도 낫고 또 불로장수하는 줄만 알고 입교했으나 교주가 자칫하면 사람을 죽이는 것을 알고 무서워 도망까지 해보았지만 교주 밑에 남기고 온 처자의 목숨이 염려되어 죽음을 각오하고 되돌아간 적이 있었다고 말해 재판정을 숙연케 했다. - 1940년 3월15일, 수은주가 영하 7℃까지 떨어지고 연 이틀 눈이 내렸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억울하게 죽은 314인의 원귀가 내린 저주라 말했다. 때늦은 혹한에도 불구하고 방청석은 여전히 만원이었다. 제2회 공판에서는 살인죄에 대한 사실 심리가 진행됐다. 314건의 살인혐의가 차례로 확인되었다. 재판장: 1930년 8월 둘이서 제2세 교주 우광현을 무주군 설천면 야산에서 목매 죽였는가? 이경득, 길서진: 예. 재: 이유는? 이경득, 길서진: 모릅니다. 대원님께서 죽이라고 해서 죽였을 뿐입니다. 재: 1931년 2월 20세가량의 여자와 그 젖먹이 애를 죽였나? 이경득, 길서진: 예. (중략) 재: 1931년 5월 교주의 첩 문봉례를 죽일 때 업고 가던 젖먹이도 죽였는가? 문봉조 : 문봉례를 죽인 것은 사실이지만, 애는 안 죽였습니다. 대원님께서는 애까지 죽이라 하셨지만 이경득이가 “어린애야 무슨 죄가 있느냐?”며 죽이지 말자고 했습니다. 저 역시 젖 먹다가 어미를 잃은 계집애 처지가 하도 가련해서 집에 데려다가 기르고 있습니다. 재: 문봉례를 죽인 이유는? 문: 처음엔 몰랐습니다만 후에 알고 보니 오빠를 죽인 것을 알까봐 죽이란 것이었습니다. 재: 어째 친형인 문봉진과 그 가족을 죽였는가? 문: 자꾸 서울 오겠다는 걸 말렸지만 듣지 않아 할 수 없이 상경시켰습니다. 어느 날 대원님께서 먼저 “봉진은 어떤가?” 하시는 태도가 죽이자는 뜻이었습니다. 만일 형을 안 죽이면 나도 죽겠고 내 가족 친척도 남모르게 죽겠기에 형을 죽였습니다. (‘백백교 사건 공판 방청기’, ‘조광’ 1940년 5월호) 피고인들은 아녀자는 물론 젖먹이 어린애, 친형까지 대원님의 명이라면 서슴없이 도륙했다. 사흘 후 속개된 제3공판에서도 살인죄에 대한 사실 심리가 계속됐다. 심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살인 사실을 한 묶음 두 묶음씩 통틀어 심리했다. 피고인이 부인하면 부인하는 대로 그냥 넘어가는 식이었다. 몇 가지 혐의에 대해 부인해도 판결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100건의 살인혐의 중 99건의 혐의를 부인해도 판결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살인사건은 1932년 이후 갑자기 증가했다. 그때부터 불평분자 본인만 아니라 한 가족 전부를 몰살해버린 탓이었다. 불평을 가진 자만이 죽은 것도 아니었다. 먹여 살리기에 귀찮다든가 한 장소에 너무 많은 교도가 있어 경찰에 발각될 우려가 있어 죽인 교도도 적지 않았다. 1년은 족히 걸리리라는 예상과 달리 공판은 일주일, 단 4회만에 종결됐다. 검사는 살인과 관련된 18인의 피고인 전원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먼저 피고 가족석에서 울음이 터져나오고 연이어 나이 어린 피고인 몇 명이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과오를 뉘우치고 흘리는 눈물인지 목숨이 아까워 흘리는 눈물인지는 알 수 없었다. 재판장은 가담 정도가 경미한 피고인 4명만 징역 7~15년으로 감형하고 나머지 14명에게 검사의 구형대로 사형을 선고했다. [출처] ‘백백교(白白敎) 사건’ 공판기 __________________________ 읽으면서 많이 놀랍지 않아? 지금 '그' 종교의 실태와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아서 말야. 물론 살인까지는 아니지만... 일제강점기라 사람들의 마음도 많이 약해져 있고, 제대로 된 법 체계도 갖춰져 있지 않았으니 저렇게 안하무인일 수 있었겠지. 약한 마음을 파고들어서 나중의 구원을 약속한 후 재산을 다 헌납하게 하고, 가족까지 끌어들이고 여색을 취하는 게 정말이지 어떤 종교와 같지 않아? 헌금액에 따라 관직을 주고, 처음부터 순박하면서 재산이 있는 사람을 노리는데다 사바사로 그가 혹할 말로 꼬드기고, 게다가 마음 먹고 빠져나오려고 해도 가족들을 볼모로 잡고 있어서 힘든 일인 것 까지. 저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밝혀진 것만) 몇백명을 살인했기 때문에 모두 큰 벌을 받게 되었지만 지금의 종교는 어떨까. 훨씬 더 교묘하게 사회에 파고 들어 있어서 잘 걸러내 질 지도 모르겠네. 부디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 혹여 아직도 '그' 종교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그 종교 뿐만 아니라 모든 이단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한 번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해. 그들은 너를 구원해 주는 존재가 아니라 너의 심약한 마음을 부풀려 잡아 먹는 괴물들일 뿐이니까. 참고로 사형을 선고받은 저들에게 실제로 사형이 집행이 됐는지는 몰라. 직후에 태평양 전쟁이 벌어지는 바람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으니까. 아. 사건이 일단락된 후에 일제는 범죄형 두개골에 대한 연구 목적으로 교주인 전용해의 머리를 잘라내서 포르말린에 절여 범죄형 두개골 표본으로 만들었다고 해. 정말 일본은 박제하는 걸 좋아하지 참? 해방 후에는 국과수가 (이유도 모른 채) 보관하고 있다가 2011년에야 화장을 했고. 약한 사람들 마음을 좀먹고 살았던 사이비 교주의 마지막은 이 정도로 비참해야지. 암.
퍼오는 귀신썰) 김중사의 사랑법
연휴도 끝나가고 이리저리 지친 사람들 많을까 싶어서 급히 또 다른 귀신썰 하나 더 가져왔어 좀 길긴 한데 읽다 보면 어느새 끝나 있더라 시작 부분은 너무 설명이 많아서 그냥 날릴까 하다가 그래도 쓰니가 열심히 쓴거니까 뒀거든 군대 설명 글이니까 1은 넘기고 2부터 봐도 될거야 그럼 오늘도 같이 볼까? _______________________ 1 이 이야기는 실화다. 나와 같은 시기에 전방 *사단, 그 부대에서 근무했던 이라면 이 이야기를 알 것이다. 아니 알지는 못해도, 들어보기는 했을 것이다.  여성독자와 군대를 경험하지 않은 남성독자를 위해 설명드리자면, 박정희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 쿠데타든 내전이든 작은 규모로나마 '전쟁' 혹은 그와 유사한 소요를 일으킬 수 있는 단위가 사단이다. 사단 밑에 연대가 있고, 연대 밑에 대대가 있다. 이것이 면회를 가거나 국도변에서 지나치는 가장 일반적인 '부대'가 바로 이 대대다.  연대는 3개의 대대로 이루어져 있는데, 예외가 없는 한 일반적인 보병 대대는 5개의 중대로 나뉘어 있다. 1대대라면 1, 2, 3, 4중대에 본부중대가 더해진다. 2대대라면 5, 6, 7, 8 중대다. 3대대의 중대번호는 당연히 9, 10, 11, 12다. 당연히 2대대와 3대대도 좋게 보면 브레인, 나쁘게 말하면 잡무쟁이들의 집합소인 본부중대를 갖고 있다. 이 중 4, 8, 12 중대는 화기중대다. 박격포와 K-4등, 미사일을 다루는 전문가들 눈에는 우습겠지만 뼈와 살로 움직이는 (그리고 소위 딱총이라 불리는 소총을 들고 다니는)보병들에게는 무시무시한 무기를 운용한다. 화기중대는 적진에 포탄을 쏟아부으면서 보병중대의 공격과 후퇴를 돕거나, 보병중대가 토끼몰이해 갖다바친 적 병력을 싹쓸이하는 역할을 한다. 중대는 축소판 대대다. 보병대대에 화기중대가 있듯이 보병중대에도 화기소대가 있다. 가장 작은 단위라 할 수 있는 분대에도 (웬만한 병장 전역자들은 한 번쯤 분대장 짓을 해봤다 보면 된다.) 화기부대의 역할을 하는 인원이 있다. 기관총 사수와 유탄('쏘는 수류탄'에 해당한다.)발사기 사수다.  그러나 일반적인 육군부대에서 고되기로 따지면 화기중대원과, 보병중대의 화기소대원을 따라갈 보직이 없다. 김중사는 내가 근무한 대대의 3중대 화기소대 선임하사였다. 계급은 말 그대로 중사. 이름은 밝히고 싶지 않다. 그에게 조금의 예의를 갖추고 싶기 때문이다. 2 김중사는 소위 '체질'이었다. 사회에서 고생을 많이 해서였을까. 그는 스스로도 '먹여주고 재워주고 까라면 까면 되는' 군대란 곳이 세상에 있다는 게 굉장한 일이라고 했다. 까만 얼굴에 웃으면 흰 이가 시원하게 드러났다. 그러면 눈가에 사람 좋아보이는 정말 멋진 주름이 잡혔다.  액수를 들으면 깜짝 놀랄 정도로 적은 중사월급을 타면 위수지역(부대 근처, 오락활동 등이 허락된 민간지역)에 외출외박 나가는 병사들에게 고기와 소주를 아낌없이 쏘곤 했다. 가끔 군기를 잡는다고 기합을 줄라치면 미안해서 자기가 먼저 울어버리는 그런 인간이었다. 김중사는 가만히 있는 법이 없었다. 땡볕에 포와 기관총 사이를 뛰어다니고 주말이면 웃통을 벗고 축구를 했다. 그는 장교들과 하사관(요즘은 부사관이라고 하지만)이 BOQ(장교숙소) 대 BEQ(하사관숙소)로 자존심대결을 할 때면 대학물 먹은 희멀건 소위들을 농락했다. 그래도 할 일이 없으면 일을 만들어 했다. 총기다이와 포다이(총기와 박격포를 세워놓는 거치대)는 그의 작품이었다. 재료를 고물상에서 주워왔지만, 결과는 훌륭했다.  휴게실에서 병장들은 김중사가 쇠파이프 양끝에 시멘트를 굳혀 만든 역기를 들었다. 전역하는 말년 병장들을 위해 나무를 깎아 소소한 기념품들을 만들기도 했다. 김중사는 일등사수였고, 그의 밑에서 쏘는 포는 빗나가는 일이 없었다.  한마디로 착한 구석이 너무 많은 것만 빼면, 완벽한 군인이었다. 군대가 그를 사랑하듯이 그도 군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중사는 군에서 가치있는 인재였다. 사회에서는 그런 가치를 부여받을 수 없었다. 그는 고아였다. 등에 오래된, 바둑판처럼 얽은 끔찍한 흉터가 있었는데 어렸을 때 생긴 것이라 했다. 인간이라 불릴 자격이 없는 어른들에게 학대당한 흔적이었다.  그는 어떤 어린시절을 보낸 걸까... 김중사는 어찌어찌해서 농업고등학교를 나와 군에 자원했다. 고아에게는 징집영장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자원하면 갈 수 있다. 나처럼 <남의 집 귀한 자식>으로 태어나 먹물 좀 묻힌 놈들과는 반대로, 그에겐 군대에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말뚝'을 박아 하사관이 되었다. 김중사는 행복해 보였다.  그에겐 사치스런 취미도 있었다. 비록 간간히 구독하는 오토바이 잡지에 실린 걸작들은 아니지만, 거의 전재산이라 할 수 있는 125cc짜리 오토바이가 있었다. 당시 백만원이 조금 넘었던 대림혼다 VF. 아마 125cc짜리 오토바이를 그보다 잘 관리하고, 잘 몰 수 있는 인간은 세상에 없을 것 같다.  그는 주말이면 상기된 표정으로 VF를 몰고 위수지역으로 애인을 만나러 갔다.  그렇다, 그에게는 애인도 있었다.  3 김중사의 애인은 다방 레지였다. 그녀는 김중사보다 나이가 많았다. 연상연하 커플. 그녀에겐 김중사와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그녀도 고아였다.  그녀도 파릇파릇할 때는, 잘 나가는 화류계 여성이었다 한다. 그러나 늙어갈 때마다 더 가난한 남성들이 드나드는 낮은 등급의 업소로 쫓겨가기도 하고, 팔려가기도 했으리라. 그녀의 몸이 가진 경제적 가치는 빠르게 하락했다. 하향곡선의 종착역은 가난한 전방 군바리동네의 다방이었다. 김중사는 그녀의 단골이었다. 마음에 들었는지 돈없는 병사들이 시켜먹는 오렌지주스나 커피 따위가 아니라 단가가 많이 남는 국산양주를 시키곤 했다. 그러다 그녀를 쫓아다니기 시작했고, 얼마 안 가 애인이 되었다. 애인이 되었어도, 그녀는 자신을 외로운 군인의 위안부 정도로 생각했었을지 모른다. 김중사가 자랑스레 밝힌 얘기지만, 그가 실처럼 얇은 금반지를 약혼반지라고 내놨을 때 그녀가 그렇게 놀라고 또 감격했다고 한 걸 보면 말이다. 워낙 흔한 이름의 다방이었다. 스타벅스를 별다방이라고 부르니까 그 다방을 스타벅스라고 부르기로 한다. 상호의 'ㅂ'자가 오각형 별모양으로 되어 있는 가게였다.  성매매 혹은 유사성매매에 거부감이 있는 분이 있다면 미안하다. 나도 그 다방에서 물탄 주스를 마시며 나보다 나이 많은 여종업원에게 누나 누나 하며 귀여운 척을 했으니 할 말은 없다. 어쨌든 같은 부대 상관의 애인이 일하는 업소다. 매상을 올려주는 건 신성한 의무였다. 다만 당연한 얘기지만, 상관의 약혼녀를 지명하는 것은 금기였다. 물론 그와 상관없이 그녀는 이런저런 손님들에게 음료수와 웃음을 팔아야 했고 가끔은 오봉을 들고 스쿠터를 타야 했다.  그녀에겐 빚이 있었고 그 빚은 김중사의 월급도 까먹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래도 두 사람의 미래는 희망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군인아파트 입주 신청한 게 잘 된 모양이었고 그 아파트는 두 사람 모두에게, 진정한 의미로, 최초의 집이 될 예정이었다.  군인은 결혼하는데 돈이 별로 안 든다. 그런 대소사를 지원해주는 군인회관이 있는데다 멋을 내지 않으려고 작정하면 정말 싸게 할 수 있다. 김중사는 병장들과 함께 담배를 피울 때마다 자랑하곤 했다. 결혼하게 되면 오토바이를 타고 경주로 신혼여행을 갈 거라고... 4 '군 위수지역 다방 레지'는 이 사회에서 가장 저층에 있는 계급 중 하나다. 각자의 사연이야 다양하겠지만, 대부분은 몸의 값어치가 깎이며 그 구석까지 흘러들어온 인생들이다.  게다가 이 일은 다분히 불법성을 갖고 있다. 사회는 그들을 방치하거나 그들의 인격을 무시하는데 어떤 부담도 느끼지 않는다. 그 바닥까지 내려오면 연고가 없거나, 연고를 잃어버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은 이 세상의 불법체류자이다. 다루기 쉬운 존재들이다. 그런데 이 징병제 사회는 그런 이들, 레지같은 여성들을 필요로 한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이 눈가리고 아웅하듯 성매매를 방치하고 조장한 것과 비슷하게, 군 당국과 지역의 공권력은 그런 여성들의 존재를 당연시한다. 그네들이 커피도 팔고 가끔은 몸도 팔아야 그 바닥이 돌아간다고 믿는다.  슬프게도 이 믿음은 대체로 사실이다. 그래서 권력은 이 여성들을 '관리'한다. 국군장병의 건강을 보호한다는 나름의 명분을 갖고, 마치 아파트단지에 방역소독을 하듯, 한 지역의 모든 성매매 여성들을 싹 끄집어내 길다랗게 줄을 세워놓고 일괄적으로 검사한다. 성병 검사다. 물론 강제적이다. 인간이 인간을 이렇게 가축취급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서글픈 진풍경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필사적으로 도망가는 여성도 있는데, 심지어 사냥하듯 그물을 펼쳐 붙잡기도 한다. 만약 성병이 검출되면 더 역겨운 인격박탈의 현장이 기다리고 있다. 어쨌든 김중사의 애인도 검사대상에 포함되었다. 검사 결과, 그녀는 에이즈 환자였다.  5 알고 보니 에이즈 환자였던 다방 레지. 그녀와 가장 많이 몸을 섞은 사람은 누구일까. 당연히 김중사다. 지휘관부터 말단 사병까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렇다면 김중사도 에이즈에 걸렸을 가능성이 높다. 부대는 난리가 났다. 소리없는 난리. 군부대 안에 에이즈 환자가 있어선 안 되었다. 전염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는데다가, 무엇보다 장병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 치명적이다. 지휘관 라인의 목이 줄줄이 잘리는 것은 물론이다. 최소한 좌천에 승진 누락이다. 연대장까진 당연하고, 어쩌면 사단장의 신변까지도 괴롭힐 수 있는 사안이다.  거기에 더해 군부대가 큰 규모로, 어떤 식으로든 뒤집어질 것이다.하지만 군대엔 전통적인 해결책이 있다. 묻어버리는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적당한 핑계를 대어 겉보기에 문제없어 보이는(즉 문제가 없다고 주장할 수 있는) 절차를 밟아 사건 자체를 세상에서 지워버리면 된다.  일단 김중사의 혈액부터 채취해 검사해야 했다. 무슨 핑계로? 윗선 어디까지 고스톱을 짜고 쳤는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대대 전체 장병이 참여하는 헌혈 스케쥴이 생겼다. 물론 헌혈은 이 세상을 위한 훌륭한 봉사행위다... 그런데 헌혈은 깨끗한 피를 가진 장병만 할 수 있으므로, 그 전에 먼저 채혈을 해야 한다는 핑계가 만들어졌다. 훈련소에서 다들 한 번씩 거치는 통과의례지만, 군생활 중에 건강상황이 바뀔 수 있다는 구실이 있었다. 모두들 채혈을 했고 이 집단채혈의 목적이 김중사의 피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모두 침묵했다. 조직은 그런 식으로 자신을 유지하는 법이니까. 그리고 김중사의 혈액은, 양성반응을 보였다. 6 김중사는 투명인간이 되었다. 그는 존재하되 보이지 않는 인간이 되었다. 그는 암적인 존재였고 군의 위신에, 그리고 높은 계급장을 단 사람들의 미래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사실상 가하고 있는) 고장난 부품이었다. 그는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군부대 밖으로 나가서도 안 된다. 목구멍에서 삭아 없어지는 생선 가시처럼, 군대 안에서 증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김중사는 일반에 알려지지 않은 비밀스러운 부대에 가야 했다. 아마도 북한군과 마주칠 가능성이 아주 높은. 작전중 죽어도 아무 상관 없는, 연고자 없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부대.  그런 부대가 있다고 한다. 대체 어떤 부대일까... 아니 그보다 김중사는 어떤 최후를 맞게 될까. 김중사가 죽게 될 것이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었다. 아마 북한군의 총에 죽지는 않게 될 것이었다. 누구나 그 정도로 짱구를 굴릴 줄은 알았다. 나는 당시 김중사의 마음이 어땠을 지 가끔 생각해본다. 그에게 군대는 그가 인정받고, 존중받으며 살 수 있는 유일한 무대였다. 김중사는 그 조직이 이제는 온 힘을 다해 자신을 싫어하고, 자신의 존재를 지우려고 한다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무디지는 않았다. 그러나, 에이즈 환자가 밖에 나가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굴복할 수밖에 없었고 사실 그에겐 굴복할 자유밖에는 허락되지 않았다.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는 되지 않는 법이다. 김중사를 원하는 곳으로 보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고 그는 BEQ의 방에 연금당했다. 방문에는 자물쇠가 걸렸다. 누구도 에이즈 환자와 접촉해서는 안 되었다. 그는 더럽고 위험한 존재였으므로 선임하사들은 그가 있는 공간을 피해 내무반에서 병사들과 함께 잤다. 그는 거기서 긴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무도 그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누구나 그를 알았지만, 그를 전혀 모르는 것처럼 행동했다. 나 역시. 그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 김중사가 갇혀 있던 하사관숙소에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메이커는 짝퉁이었지만 그래도 진짜 가죽으로 된 김중사의 지갑엔 웃고 있는 김중사와 약혼녀 사이로 핑크색 하트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스티커 사진이 붙어있었다.  그가 창고 안에서 그 스티커 사진을 바라본 시간이 얼마나 되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는 얼마나 자주, 또 오래 그녀를 생각했을까. 자신과 마찬가지로 에이즈에 걸린. 고아의 처지로 비정한 세상을 부유하듯 살아온 두 사람은 우연히 만난 서로에게 자신의 인생을 걸었다.  그러나 그들에겐, 운명에 대한 아무런 선택권도 없었다. 나는 둘 사이에 어떤 절절한 사연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다는 건 알 수 있다. 김중사의 애인도 격리수용을 앞두고 있었다. 업소 외에는 오갈곳 없는 여자가 에이즈에 걸리면 '시설'에 가게 되어있다. 자활센터, 보살핌방 등 무척 좋은 간판을 걸고 있지만 시설의 목적은 단순하다. 바이러스의 숙주를 가둠으로써, 즉 사회에서 지워버림으로써 사회를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는 숙주가 서서히 죽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그곳으로 끌려갈 때까진, 그녀가 일하던 다방에 머무는 수밖에 없었다. 행정처리 때문인지 자리가 나지 않아서인지, 당장 끌려가진 않았나보다. 다방 마담과 동료 레지들은 '나쁜 피'로 가득찬 폭탄을 끌어안게 되었다고 생각했으리라.  자유인으로 보내는 마지막 며칠 동안 그녀도 투명인간이 되었을 것이다.  7 두 연인은 이별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미 생이별을 한 상태였고, 두 사람이 다시 만나는 일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세상이 인간에게 그런 짓을 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마 김중사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BEQ에 감금된 지 며칠이 지났을 때였다. 고요한 BEQ에서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간부 숙소는 지휘통제실 근처에 있고, 지휘통제실은 위병소(군부대 대문) 근처에 있다. 그 소리는 위병소를 지키는 초병의 귀에도 들렸다. 몇 초 후, 초병은 김중사가 눈을 부릅뜨고 쇠파이프와 비닐하우스 천으로 가설해 만든, 출퇴근하는 간부들이 승용차를 세워두는 조그만 부대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주차장 구석에는 김중사의 VF도 있었다. 그는 BEQ에 있던 역기로 자물쇠를 부수고, 창문을 깨고 튀어나온 것이었다. 오토바이에 시동이 걸렸다. 평일이었고 군 장병은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되었다. 아니 그것보다, 군대에서 감추고 묵혀야 할 에이즈 환자다. 존재하지 않던 인간이 갑자기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초병은 어째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김중사님, 나가시면 안 됩니다." "저리 비켜 이새끼야!" 그 살기등등한 모습에 초병은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무슨 행동을 해야 좋을지, 생각할 틈도 없이 김중사의 오토바이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사라져갔다. 김중사는 애인을 만나러 갔다. 증거는 없지만 나는 확신한다. 그 뒤에 일어날 일들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애인을 만나지 못했다. 빠른 속도로 신호등도 없는 시골의 흙바닥 사거리 코너를 돌 때, 마을버스가 김중사와 그의 오토바이를 덮쳤다. 그의 몸은 버스 밑으로 빨려들어갔고, 버스 차체와 오토바이에 처참히 칮눌렸다. 충격으로 분해된 오토바이의 부속품들이 그의 몸을 톱니처럼 갈아버렸다.  김중사는 즉사했다.  8 이 대목은, 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았으므로 전해들은 이야기를 옮겨보겠다  - 김중사의 몸이 산산조각난 시각은 오후 1시 경이다. 그런데 그의 연인은, 오후 2시에 그를 만나 이야기를 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야기를 '했다고' 주장했다. 오빠가 다방으로 불쑥 찾아왔다는 것이다. 테이블에 앉아 자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없이 웃고만 있더라는 것이다. 묻는 말엔 대답도 안하고 무작정 잘 있으라고, 자긴 괜찮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렇게 한 시간을 대화 아닌 대화를 하고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시각 다방에 있었던 동료들의 말은 달랐다. 김중사의 애인은, 혼자 테이블에 앉아 허공을 바라보며 혼자 중얼중얼 말을 했다고 한다. 마치 맞은편에 누가 앉아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 날, 그녀는 김중사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물론 믿지는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나랑 만났을 때가 2시인데. 그럴 리가 없어요. 오빠는 살아있어요 -  그녀는 나이 어린 연인을 오빠라고 불렀다  - 그러나 사람들은 그녀에게 부정할 수 없는 죽음의 증거들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저녁 내 미친 사람처럼 횡설수설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밤, 그녀는 다방 천장에 목을 매달았다. 테이블에 의자를 올려놓고, 그 의자 위에서. 밧줄처럼 엮은 속옷을 샹들리에를 모방한 조명에 걸고서...  원피스 차림이었다 한다. 나는 그 자리를 안다. 참으로 싼티나는 빛을 내는 그 장미 모양 조명은 반지하 다방의 한 가운데에 있다. 나도 그 테이블에 앉아 본 적이 있다. 자주색 나는 싸구려 인조가죽 소파와, 인근 소매점에서 뭉치로 사왔을 게 분명한 올록볼록한 싸구려 냅킨 다발과... 플라스틱으로 된 설탕과 프림 종지, 그리고 맹물에 꽂힌 티스푼. 그 위로 - 사람은 목이 졸려 죽으면 오줌을... 남자는 정액을 흘린다고 한다 - 그녀의 체액이 후두둑 떨어지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9 미래의 남편과 미래의 아내가 죽었고 두 사람을 경주로 데려다 줄 예정이었던 오토바이도 고철이 되었다. 우리 부대의 입장에서는, 사건이 해결되는 최상의 방식이었다. 김중사는 근무지를 무단이탈했고, 스스로의 과실로 죽었다. 군은 그의 죽음에 아무런 책임이 없었다.  버스는 경미한 흡집만 났으며 운전자도 승객도 무사했다. 도로교통법상 오토바이 우대가 없던 때였다. 신호등이 없는 곳에서는 직진 우선이다.  김중사는 오직 자신의 잘못으로 스스로를 '삭제'했다. 군대는 그가 남긴 잔해를 치우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김중사는 연고가 없다 - 이는 군에 엄청난 편의를 제공한다. 사망사건에 대한 해명, 그럴듯한 장례, 보상문제, 이런 것들은 죽은 장병의 연고자가 있을 때나 발생한다.  천애고아가 죽었을 뿐이니 간단히 마무리만 하면 된다. 처참하게 이겨진 시신을 수습할 필요도 없었다. 분향소도 장례도 필요 없었다. 그저 치우기만 하면 되었다...  김중사의 시신은 부대 소각장에서 태워졌다. 시신을 깨끗한 재로 만들려면 굉장한 고열이 필요하다. 야매로 만든 소각장에서 잘 태워질 리가 없다. 3중대 병사 몇 명이 재가 되다 만 덩어리를 간간히 삽으로 부수며 태우고 또 태우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남은 가루를 훈련에서 복귀할 때 지나치는 행군로 옆에 가져다 흩뿌렸다. 김중사는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를 제외하면, 모두가 원하는 바였다. 그러나 그의 영은 떠나기를 거부했던 것 같다. 10 새벽 3시에서 4시 사이. 3중대 화기소대 야간근무자는 행정반 옆 화장실에서 물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화장실 간다고 나간 사람은 없었는데? 있었다면 모를 리가 없다. 내무반에서 화장실로 통하는 문은 하나밖에 없고, 바깥 문은 폐쇄되어 있다. 그렇다면 행정반을 지키고 있는 일직사관과 일직하사가 화장실에 간 게 아니겠는가? 어떤 기척도 들리지 않아 이상했지만... 보초는 슬쩍 문을 열어 유리창을 통해 행정반 안을 보았다. 일직하사와 일직사관은 고개를 쳐박고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다. ... 어떻게 된 일일까?  군대물 쭉 빠진 병장 하나가 보고도 하지 않고 슬쩍 소피를 보러 간 걸까? 하지만 어떻게 알아채지 못할 수가 있지?  초병은 자고 있는 인원의 머릿수를 몇 번이나 세어보았다. 아무 이상 없다. 그렇다면, 화장실에 있는 누군가는 외부인이다. 초병은 화장실에 들어가 외쳤다. "누구십니까?" 그리고 대변기 문 칸을 차례로 두들겼다.  칸 하나의 문이 잠겨있다. 똑똑똑. "누구십니까?" 대답이 없다.  고참이거나 간부일 수도 있는지라 점프를 해서 내려다볼 수도 없다. 허락없이 윗사람의 똥과 자지를 봤다간 군생활 꼬인다.  해서 할 수 없이 몰래 고개를 숙이고 문 밑 틈을 봤다. 신발이 보인다. 문제의 인물은 초A급(군에서는 새것을 A급이라고 부른다.) 활동화(군 보급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활동화가 새것인 걸 보면 이등병인가? 아니다. 훈련소를 거쳐야 이등병이 된다. 활동화가 걸레짝이 되는 덴 입대하고 보름이면 충분하다. 새 활동화를 가진 병사는 소대에 아무도 없다. 구질구질한 군대에서 그런 쌔삥은 너무나 눈에 잘 띈다. 대체, 누구란 말인가.  결국 초병은 점프를 해 턱걸이하듯 칸 안을 내려다보았다. 안엔, 아무도 없었다. 그제야 초병은 생각해냈다. 생색만 내는 보급행정. 소대 전체에 내려온 새 활동화 딸랑 한 켤레를, 김 중사가 보급받았다는 사실을. 다음날 초병은 귀신을 보았다는 헛소리를 한 죄로 군장을 돌았다(완전군장을 하고 연병장을 무한워킹하는 얼차려를 말한다.).  그러나 공포는 쉽게 전이되었다. 모두에게 친절했지만 모두에게 존재를 외면당한 김중사... 그 끔찍한 죽음. 그 한이 어느 정도였을지 예상할 만한 상상력은 누구에나 있었기에, 3중대는 공포분위기에 휩싸였다. 공포에 화답하기라도 하듯 사건이 연이어, 밤마다 터졌다...  야간근무자는 쳇바퀴돌듯 내무반의 양쪽 침상 사이의 직사각형 공간을 왔다갔다 가로지른다. 그날의 초병은 한쪽 끝 문앞까지 가서 다시 동작을 반복하려고 뒤를 돌아서는 순간, 저쪽 끝 포다이에 걸터앉아 있는 김중사를 보았다. 생전에 김중사가 깎아 만들었던 포다이... 김중사가 말없이 손짓을 한다. 마음은 공포로 터질 것 같은데도, 초병의 몸은 그 손짓에 이끌려 갔다. 결국 김중사 앞에 다가섰고, 그와 눈이 마주쳤다. 몸은 얼어붙었는데 김중사의 손이 얼굴을 향해 올라왔다고 한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손이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고, 그는 기절했다. 군대의 야간근무는 전 근무자가 후 근무자를 깨우면서 로테이션하는 시스템으로 되어 있다. 어차피 피곤한 몸인지라, 깨우지 않으면 그대로 쿨쿨 자게 마련이다. 결국 김중사를 본 병사가 그날의 마지막 근무자가 되었다. 그는 아침에, 내무반 바닥에 널부러진 채로 발견되었다. 중대는 무섭게 동요했다. 결국 병장들이 총대를 메기로 했다. 당분간 병장들만 근무를 서기로 한 것이다. 병장의 수가 한정되어 있었기에 말년도 예외가 없었다. "*** 병장님" 후임 병장이 몸을 흔들며 깨우는 소리에 눈을 뜬 말년 병사  - 그러나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건, 후임이 아니라 김중사였다. 어두운 내무반에 있는 공포를 못이겨 밝은 행정반으로 뛰어간 병장도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일직하사와 일직사관은 꿈나라에 가 있었다. 문제는, 김중사가 자고 있는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는 거다. 병장의 몸이 얼어붙었다. 그리고 김중사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더니, 병장의 얼굴을 바라보더라는 것이다. 11 패닉. 광기에 가까운 공포가 3중대를 휩쓸었다. 특히 화기소대원들은 넋이 반쯤 나가있는 상태였다. 모두들 내가 김중사에게 무슨 잘못을 했을까 반추해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다들 알고 있었다. 모두의 잘못이었고, 예외는 없었다  - 침묵한 죄. 한 번도 죽은 자의 입장에 서 보지 않은 죄. 공포는-그리고 사건은- 중대 바깥까지 확산되었다.  원래 외부순찰은 일직사관과 일직하사가 함께 돌게 되어 있다. 그런데 간부인 일직사관은 순찰을 일직하사를 맡은 병사에게 떠넘겨버리고 자는 경우가 많다.  귀신 이야기가 돌자 겁이 난 일직사관들은 평소처럼 예의 졸립다는 핑계를 대고 일직하사들을 밤의 공포에 혼자 남겨두었다. 그날 분대장이었던 나는 일직하사 근무를 서고 있었고, 선임하사는 내가 깨웠는데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일어나지 않았다기보다는, 눈을 감은 채 손짓으로 내게 나가라는 표시를 했다.  외부근무는 기본적으로 위병소, 탄약고, 대공초소를 지킨다. 이 중 가장 공포를 자아내는 장소는 대공초소다. 대공초소란 말 그대로 기관포를 얹어 놓고 적의 군용기나 헬기 등, 공중공격에 대비하는 곳이다. 당연히 위쪽 시계가 뻥 뚤려있어야 하고, 부대를 지키는 대신 초소가 독박을 쓰려면 높은 장소여야 했다. 그러다보니 산 속 오솔길을 한참이나 걸어올라가야 산구석에 외롭게 쳐박힌 대공초소가 나온다. 나는 혼자서 이 오솔길을 올라갔다. 낙엽 밟는 소리에, 귓가를 스치는 마른 나뭇가지에 긴장하면서. 대공초소가 저 멀리 눈앞에 보였을 때, 다른 중대 아저씨들(일반적인 육군은 중대가 다르면 계급에 상관없이 서로 아저씨들이다.) 두 명이 내게 반들어 총 자세로 우렁차게 경례를 했다. 사병 혼자서 올라오는데 웬 경례인가. 가까이 가서 근무 이상 없냐고 물어보려는데 내게 묻는 것이었다. "어? 일직사관님은 어디 갔습니까?" "네? 저 혼자 순찰 도는 중인데요." "에에, 그럴 리가. 올라오는 후레시 불빛이 두 개였잖아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제가 왜 후레시를 두 갤 갖고 다니겠어요." "아니 그럼 나머지 하나는..." 일순간 우리 세 사람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바로 어제 있었던 일이다. 순찰자가 탄약고 가는 길에 김중사를 봤다며 실성한 일이...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나와 함께 오솔길을 올라왔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온 몸의 털이 다 선 듯 했다. 나는 대공초소 근무자들에게 거짓말하지 말라고, 농담하지 말라고 했지만 - 그들은 진심이었다. 그리고 그들도, 나와 똑같이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그럼 불빛이 언제 하나가 되던가요?" "가까이서 얼굴을 비추면 하나건 둘이건 할 것 없이 그냥 무작정 눈부시잖아요. 그러고나서 보니... 아저씨만 있어요." 제기랄. 나는 선언했다. 나 혼자 이 오솔길, 못 내려갑니다. 여기서 사이좋게 밤 새던가, 아니면 아저씨들 중 한 분만 같이 제가 내려갈 때까지 동행합시다. "아니 그럼 우리 중 하나는 올라올 때 혼자 올라와야 되잖아요?" "그건 그렇죠... 그렇다고 지금 절 혼자 보낼 겁니까?" 두 병사는 내 입장을 이해했다. 공포는 전 부대를 짓누르고 있었다. 너나 할 것 없었다. "그럼 우리 둘 다 동행할 테니까, 부대 불빛이 보이는 길 중간까지만 내려가요.  혹시 딸,딸이(군 내부회신 전화기. 딸,딸거리는 소리가 난다.) 울리면 늦지 않게 뛰어가서 받아야 하니까요." "그렇게 하죠..." 우리는 길 중간에서 헤어졌다. 서로의 건투를 빌며...  그러나 나의 건투상황은 좋지 않았다. 오솔길을 다 내려오는 참인데, 내 뒤에, 정확히는 내 목 뒤에, 무언가가 붙었다. 차갑다. 소름이 돋는다.  미끈한 질감으로 뭉쳐진, 농밀한 공기... 온 몸의 털이 수직으로 기립하는데, 그 스멀스멀한 것이 옷깃 틈으로 들어갈 것처럼 착 달라 붙어서는 울렁울렁댄다. 풀리는 다리에 애써 힘을 주고 한 칸 한 칸, 흙계단을 내려간다.  그리고, 그 때. 나는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내 전투모가 스윽 하고, 뒤로 돌아갔다. 전투모 챙이 거꾸로 되도록... 그 다음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나는 중대 행정반으로 뛰어갔다. "어어어" 나는 짐승같은 소리를 지르며 행정반 바닥에 널브러졌다.  살았다. 이젠 살았어.  안에는 행여 김중사를 만날까 겁이 난 근무자가 도망쳐와 커피믹스를 마시고 있었다. 치사하게 자는 척 했던 일직사관과 함께. 두 사람은 나를 한참이나 멍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한편, 스타벅스 다방에선 김중사의 애인의 모습이 나타났다고 한다. 처음엔 다방 천장에 목이 매달린 그 모습 그대로, 원피스를 휘날리며 휘적휘적 시계추 운동을 했다고 한다.  그 다음엔 아무도 없는 테이블에 물끄러미 앉아있었다 한다. 그 모습을 본 이가 아무리 도망치려고 해도, 기어코 눈을 마주친다고 했다. 그러면 그녀는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우리 오빠 어딨어요?" 12 나는 즉시 '근무거부자'가 되었다. 배 째십시오. 영창? 가겠습니다. 빨리 보내주시죠. 하지만 나는 영창에 가지 않았다. 영창 갈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원칙대로라면 부대를 반 이상 비워야 하는데,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 사건은 최소한 연대장에게까지 보고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결코 이슈화될 수 없는 사건이었다. 군대는 효율과 과학을 신봉하는 조직이다. 결코 '공식'적으로는 보고될 수도 없고, 보고되어서도 안 되는 사항이다. 그렇다면, 어찌할 것인가. 구원은 엉뚱한 곳에서 왔다. 자대배치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등병이 대대장 면담을 신청했다. 면담내용을 간단히 재구성하면 이렇다. - 저희 어머니가 한 번 통화하자고 하십니다. 자네 어머니가 왜? - 어머니한테 부대 일을 말씀드렸는데... 직업이 무당이십니다. 대대장은 당장 이등병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님의 요구조건은 단순했다. 백일휴가를 좀 빨리 보내줄 수 없느냐는 것. 그게 다였다. 처방은 휴가에서 복귀하는 아들 편으로 보내준다는 거였다.  모든 백일휴가가 꼭 딱 입대 100일 만에 떨어지진 않는다. 그 '즈음'인 경우도 얼마든지 많다. 당연한 말이지만, 무당 어머니도 어머니다. 군에 간 아들을 며칠이나마 일찍 보고 싶었던 것이다. 며칠 후, 이등병은 묘한 처방을 들고왔다. 13 첫째, 김중사의 애인의 시신도 태워라. 두 사람의 재를 한데 섞어라. 땅에 뿌렸다면 그 지점의 흙을 퍼다가 섞어야 한다. 그렇게 섞인 재를 뿌리되, 뿌리는 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양지바른 남향이어야 한다. 그러나 주변에 다른 이의 산소는 없는 것이 좋다. 그러므로 적당한 곳이 없다면 나무를 치든 어떻게든 해서 장소를 만들어라. 이번 일의 경우 물은 좋지 않다. 특히 흐르는 물은 나쁘다. 어느 정도 흙 속에 묻어서 자연스레 땅 속에 스며들게 해라. 둘째, 염을 외우라. 간부 사병 할 것 없이 3중대 인원 모두가 염을 외워야 한다. 염을 외울 때는 반드시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아야 한다. 염은 적어준 그대로 모두가 합창하면 된다 - 모나미 붓펜으로 휘갈겨 쓴 게 분명한, 이등병이 제 엄마한테 받아온 범상치 않은 필체의 그 염 문구. 셋째, 쑥이 필요하다. 먼저 쑥을 캐서 말리는 게 좋을 것이다. 3중대 장병들이 염을 할 때 모두가 제 몫의 쑥을 태워라. 쑥 연기가 원혼을 진정시켜 줄 것이다. 14 김중사의 연인의 시신은 경찰이 보관, 아니 떠맡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시체안치소에 있었는데, 한마디로 '처치곤란'이었다.  이렇게 연고 없는 시신은 보통 해부학 실습용으로 소모된다. 그러나 HIV 바이러스에 감염된 시신이다. 이 바이러스는 공기중에서는 몇 초 안에 죽어버리지만, 그래도 영 께름즉했던 모양이다. 시신은 냉동밀봉된 채 방치되어 있었다고 했다. 군부대가 이 애물단지를 달라고 하자 그 뒤의 절차는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냉동된 시신은 곧 재가 되었다. 문제는 김중사의 재였다. 3중대가 떠맡는 수밖에 없었다. 야밤에 중대장과 병장들이 몇이 삽을 들고 재를 버린 곳으로 몰래 갔다.  그날 밤은 하필 비가 내렸다. 재를 버린 곳, 그 일대의 흙을 모두 파야 했다. 판초우의를 뒤집어쓰고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서걱서걱 삽질을 하는 어두운 표정의 사내들. 저들의 편의를 위해 한 사람의 죽음을 땅에 묻었다가 이번에는 스스로의 안위를 위해서 다시 끄집어내려는 슬픈 군상들.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김중사를 흩뿌려놓은 땅인가. 그걸 알려주기 위해서였을까. 갑자기 빗물을 머금은 땅에서 부글부글, 흰 거품이 솟아올랐다. 시신을 태운 재였다.  그 때였다. 병장 하나가 털썩 주저앉아 흐느꼈다. "으흐흐흑.... 김중사님 죄송합니다..." 그랬다. 김중사는 누구에게도 잘못하지 않았다. 귀신이 되어 나타났어도, 그 모습에 공포를 느꼈어도, 그는 살아서든 죽어서든 누구도 해꼬지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 그를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하나가 되어 땅에 파묻었다. 누군가는 순조로운 승진을 위해, 누군가는 무탈한 군생활을 위해... 아무도 주저앉아 있는 병장에게 무어라 말하지 못했다. 모두들 동작을 멈추고 후레시 불빛 아래 비치는 흰 거품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중대장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계속 파." ... 두 사람의 재는 한 데 섞인 채 '적절한 곳'에 뿌려졌다. 그리고, 염... 나는 그 광경을 잊지 못한다. 백 명이 넘는 사내들이 저마다 종이컵에 담긴 마른 쑥을 태우며 염을, 아니 바리톤 합창을 하는 모습을 말이다.  무럭무럭 올라오는 쑥 연기는 막사 지붕 위에서 하나로 합쳐지더니, 낮게 깔린 구름처럼, 하나의 걸쭉한 덩어리가 되어 부대 위를 짓눌렀다. 참으로 그로테스크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진정한 그로테스크함은 아마 살아남은 자들의 꼴에 있었을 것이다. 자신들이 외면한 진실에 대고 이제는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그 무섭도록 서글픈 광경 말이다.  15 그 뒤로 김중사는-김중사의 귀신이라 하든, 환영이라 하든, 뭐라 하든 상관 없으리라-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원체 천성이 착한 사람이라서 그 정도로 한을 풀어준 걸까. 아니면 사랑했던 그녀와 함께할 영원의 여정이 이승에 미련을 두는 것보다 더 중요했던 걸까.  어쨌든 김중사는 드디어 '사라졌다.' 다음해였을 것이다. 폭우에 수해가 나서 주변 농가가 줄줄이 침수되고 연병장에는 시냇물이 생긴 적이 있었다. 그때 야트막한 산들이 많이 무너졌고, 김중사와 그의 연인의 재를 뿌렸던 곳도 물에 휩쓸려 사라졌다.  두 사람의 재는 어디로 갔을까?  아니 두 사람의 영혼은 어디에 있을까? 나는 두 사람의 영혼이 함께이길 빈다. 그리고 행복하길 빈다. 나는 김중사가 후끈한 땀냄새를 풍기며 보이던 눈가의 자잘한 주름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가 그 모습 그대로 웃고 있을 거라고, 나는 무작정 믿어 본다. VF 뒷자리에 연상의 연인을 태운 채, 새하얀 구름 위를 질주하고 있을 거라고. 1차 출처...불명  2차 출처...짱공유닷컴...예비군봉대령 _________________________ 슬프다 먹먹하네... 끝까지 누구에게도 해코지를 하지 않은 착한 사람 그렇게 재주가 많고 좋은 사람이었는데 고아라는 이유로 쉬이 지워지다니 한을 품고도 누구도 다치지 않게 한 사람 아 너무 슬프잖아 ㅠㅠㅠㅠ 사람들은 정말 어쩔 때는 말도 안되게 잔인해 지곤 하니까 특히 어떤 무리 안에서는 더 죄책감 없이 그리 되니까 그리 되는 것을 정말 조심해야 할 것 같아 이제 진짜 새해니까 부디 상처주지 않는 사람이길 상처 받을 일 없기를 바라며 복 많이 받자!
퍼오는 귀신썰) 사촌오빠 친구썰 1화
안녕! 오늘도 어쩐지 그다지 춥지 않은 밤이네 이번 겨울은 정말 생각보다 따뜻한 것 같아 초반엔 얼마나 추울까 한참 겁먹었더랬는데 겁먹은게 머쓱ㅋ 제주도는 벌써 유채꽃도 폈다며? 그야말로 공포미스테리네... 조금이라도 추위를 느낄 수 있도록ㅋㅋ 오랜만에 시리즈물 가져와 봤어 한동안은 이걸로 같이 달려 볼까? ________________________ 나를 소름끼치게 만든 사촌오빠 친구 (1) 자랑도 아니고, 믿어달라고 할 만한 말도 아니지만, 나랑 우리사촌오빠는 영감이 좀 있음. 오빠는 나보다 좀 뛰어난 편임. (나랑 나이 차 3살) 제목은 분명히 우리 사촌오빠 친구 이야기 이지만, 그 사람에 대해 얘기 하려면 일단 우리 둘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 할것 같아 우리 얘기부터 시작하겠음. 우리 둘이 어렸을 떄 부터 예를 들어 주겠음: 내가 유치원생일 때 쯤인가 하여튼 어렸을때 추석에 온 가족 다 모이면 우리 둘은 항상 제삿상 앞에서 울음을 터뜨렸음. 나는 잘 기억이 안나는데, 하여튼 외숙모 말로는 어른들이 달래도 달래도 소용이 없어서, 매번 도대체 왜 우냐고 물어보면 둘이 동시에 "저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누구야!" 라고 비명을 터뜨렸다고 했음. 특히 오빠는, 조금 더 컸을 때에 성묘를 데리고 갔는데 갑자기 허공에다 대고 절을 막 해대서 삼촌들이 옆에서 잡초제거 하다가 너무 무서워서 한동안 못 하셨다고 하심ㅋㅋㅋㅋ 처음엔 그냥 조상님 무덤이라니까 그런가 보다, 했는데, 절을 도대체 몇 사람한테 하는건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꾸벅 댔다고 함. 이건 전초전 일 뿐임. 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 가겠음. 내가 중3이였을 때에 였나, 오빠 집에 놀러갔더니, 오빠는 어디서 났는지 "화이x데이" 라는, 무슨 학교에 귀신 나오는 3D 게임을 하고 있었음. (혹시 누구 이 게임 아시나요? 그 때도 쪼꼼 오래 됀 게임이였다는...) 기억은 안나는데 당시 나에게는 그래픽이 좀 리얼했던 것으로 기억 남. 음악이 깔리니까 평소에 보던 것들이 나와도 왠지 오싹했음 ㅋㅋㅋ 오빠도 쫄았는지 어디 가지 말고 옆에 있어 달라고 나에게 부탁했음 ㅋㅋ 하여튼 옆에서 구경만 하느라 게임 내용은 자세히 모르겠지만, 학교에 주인공 학생이 갇혔는데 귀신이 미친듯이 등장 하는 스토리였음. 그리고 어떻게든 탈출 해야 함. 탈출 도중에 학교 방송실 맵에 가서 뭔 짓을 해야 하는 미션이 있었음. 3D 게임이라 마우스 휠로 시야를 막 돌릴 수 있었는데, 방송실에서 나와서 뒤로 시야를 돌리니까 왠 큰 발이 천장에 매달려 있는거임. 그 순간 등장하기엔 발이 맵에 비해 너무 컸음. 게다가 흐릿흐릿 한거임. 근데 그게 문제가 아니였음. 당시 오빠는 이 게임을 클리어 할 요령으로 무슨 성경두께 만한, 게임 클리어 법 을 인터넷에서 찾아가지고 인쇄해서 옆에다 두고 읽으면서 게임을 진행 중이였던 거임. 그 클리어법에는 언제 어디서 무슨 귀신이 등장하는지 다 써져 있었는데 방송실에서 뒤돌면 있다는 귀신 발은 없었음. 뒤돌면 벽이 피범벅이 돼 있을거란 말만 써져 있던거임. 오빠가 "어 이상하다..." 이러고 침착하게 다시 마우스 휠을 돌렸는데 그 순간 우리 둘 다 동시에 뒷목에 있는 머리카락이 빳빳하게 서는 현상을 체험 함. 게임상 시야가 마구 바뀌는데 매달려 있는 발은 왠지 그대로 있는거임. 우린 미친듯이 그래픽 에러라고 믿고 싶었음. 근데 오빠가 게임상 시야를 좀더 돌린 순간 우린 둘다 그대로 얼었음. 게임 주인공 시야가 불 꺼진 학교 복도로 돌아가서 모니터가 어두워 진 순간, 화면에 오빠랑 내 얼굴이 비쳐줬는데, 보니까 그 매달려 있는 발이 우리 얼굴 뒤쪽에 매달려 있는거임. 오빠랑 나랑 게임이고 뭐고 "으악 쉬발!!!!!!!!!!!!!!!!!!!!!!!" 마우스 집어 던지고 컴터방 밖으로 뛰어나와서 외숙모 방 텨 들어가서 이불 뒤집어 쓰고 2시간동안 못나옴. 게임분위기 때문에 안그래도 완전 쫄아 있었는데 느끼지도 못한 등장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였음 @_@ 솔직히 난 한시간 후에 답답해서 나오려 했는데, 오빠가 날 붇잡음. "가지마, 가지 말라고... 저 낄낄 대는 소리 안들려!?" 이렇게. 안 들렸지만 나보다 영감이 좋은 오빠가 그러니까 잔뜩 쫄아서 결국 2시간을 그렇게 보냄 ㅜ ㅜ)) 우리 오빠랑 나의 이런저런 경험담은 나중에 시간이 있으면 더 올리겠음 ㅋㅋㅋ 여기서 우리 사촌오빠 친구가 등장 함. 우리 둘이 이불에서 기어나온 이유는 단순히 시간이 많이 지나가서가 아님. ㄷㄷㄷㄷㄷ 떨고 있는데 누군가 벨을 누름. 오빠는 옴짝달싹도 안하더니 벨소리가 울린지 몇 초 후에 스르륵 이불을 벗어 남. 내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오빠.. 그 여자 갔을까?" 라고 물어 봤더니 "낄낄대는 소리가 갑자기 사라졌는데?" 라고 오빠가 소심하게 대답함. 우리 둘은 간신히 이불을 벗어나서, 서로의 웃도리 자락을 잡고 태어나서 현관문으로 제일 느리게 다가갔음. 오빠는 현관문에 달린, 밖에 보는 그 눈구멍?으로 밖을 확인하더니 갑자기 미친듯한 스피드로 문을 열고 밖에 서 있는 사람을 와락 껴안는거임. 난 그냥 그게 사람인게 반가웠음. 그게 바로 우리 사촌오빠 친구였음. 그런데 그 오빠는 대뜸 무표정으로 우리한테 이렇게 물어 봄: "갔냐 그 년?" 사촌오빠 친구는 우리 둘을 거실에 앉혀놓고 한심하단 투로 ㅉㅉㅉㅉㅉ 어떻게 그걸 못 느끼고 둘이 쫄아서 그러고 있었냐고 막 뭐라 그럼. 알고 보니 이 분은 바로 밑에 층에 살고 있는데 평화로운 주말에 갑자기 위에서 우당탕탕 소리가 난뒤에 조용~~해지니까 이상해서 올라와 봤는데 뭐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챘다고 함. 끼리끼리 논다더니... 난 우리 오빠를 힐끗 오빠친구를 힐끗 쳐다보면서 신기해 하고 있었음 그래도 섬뜩했던 기분이 덜 가셔서 나도 어떻게 그걸 못 느끼고 게임에 그렇게 집중하고 있었을까 나 자신을 추궁 중이였음 ㅋㅋ 내가 생각해도 참 정신이 없었음 -_-ㅋㅋ 근데 갑자기 우리 오빠한테 참 쓸데있는 게임도 한다며 뭐라뭐라 그러던 그 오빠가 갑자기 말을 끊더니 완전 짜증나다는듯이 "저기 기어다니는 건 또 뭐야" 라고 중얼거림. 더 섬찟한 건 우리 오빠가 그 말에 뒤돌아 보더니 약간 사색이 됌. 난 아무것도 안보이고 그저 왠지 바닥이 차가워 지는 기분에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남. 그랬더니 그 오빠가 갑자기 움직이면 어떻게 하냐며 자기만 보라고 하는거임. 진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였음. 분명히 뭔가 내 발목을 죄어오고 있었음. 정말 기분나쁘고 소름끼치는 더듬거림이였음. 근데 자기만 보라던 오빠 친구는 뭔가 설명할 수 없는 표정으로 내 발목 부근을 쳐다보면서 완전 느린 말투로 "다리가 없네..." 라는 거임. 으악!!!!!!!!!!!!!!!!!!!! 차라리 아무것도 안 느끼면 좋을 것을 뭔가가 날 잡고 있는 느낌에 진짜 미쳐 버리는 줄 알았음. 식은땀이 줄줄 나고 바퀴벌레+곱등이가 등을 거꾸로 타고 올라오는 기분이였음. 근데 마지막 결정타가 진짜 압권이였음. 우리 사촌오빠는 뻐끔뻐끔 거리고 있는데 이 사촌오빠 친구라는 이..이..이 사람은 완전 사악한 미소를 씨익 짓더니 우리가 2시간전에 뛰쳐나온 방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거임 그러더니 하는 말: "저기에 다리있다... 가져가라" 이러는거임!! &*(#&^*^# 아까 매달려 있던 발을 얘기 하는거임??? 이런 ㅁㅊ 정말 집에서 뛰쳐나가 버리고 싶었음. 근데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 앉아 버리고 말았음. 그 순간 컴퓨터 있는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막 났음. 아까 혼비백산해서 뛰쳐나오느라 컴터를 안끄고 나온 거임 "화이x데이" 라는 이 귀신게임 배경음악이 누가 스피커 볼륨 다이얼을 가지고 돌렸다 풀었다 하는 듯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면서 막 울려 나오기 시작했음. 가뜩이나 그 배경음악도 완전 기괴했는데 진짜 미쳐 버릴 것 같았음. 특히 음악에 귀신 비명소리 나는 부분은 가히 압권중에 압권!!!! 그러더니 퍽!!!! 소리와 함께 조용해짐 스피커가 지랄발광을 하다 터진거임. 진짜 그 후에 우리 사촌오빠 그 컴퓨터 다시는 손도 못댐 우리 오빠 게임에 진짜 환장하는 사람이였는데 외숙모한테 들은 바로는 게임이고 나발이고 컴퓨터 방에 다시 들어가지도 않음 스피커 터지고 집안이 조용해 진 뒤 몇분후에 우리는 오빠 친구 집으로 내려갔음. 기억에 난 반쯤 정신을 버리고 눈물이 나올락 말락 했음 따지고 보면 우릴 구해준거지만 진짜 이 오빠 친구랑 다시 안 엮였으면 했음. 아쉽게도 얼마 안가서 다시 엮이게 됐음 =_=ㅋ.. ----------------------------------------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귀신 앞에서 놀라거나 하면 자기 존재를 알아차려 준다고 생각하고 들러붙을 가능성이 더 높아 진다네요~ 여러분도 혹시 이런 일 있으면 조심하시길..ㄷㄷ [출처] 네이트판 _________________________ 엄청 옛날 글인데 이제야 찾았네 원본은 삭제되고 없는 글이지만 재밌어서 가져와 봤당 앞으로 한동안 이 이야기 또 같이 보도록 하자! 그 오빠 친구는 대체 어떤 사람인걸까?! 궁금하면 내일 또 봐 ㅎㅎ 잘 자고!
퍼오는 귀신썰) 신기있는 외할머니 이야기
오늘도 짧은 이야기! 후딱 볼까? ㅎㅎ 오늘도 같이 봐줘서 고마워! _________________ 이 글은 예전에 제가 아마에 올렸던 글이에요.. 근데 여기 올리면 딱일거 같아서... 지금부터 친구 외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올리겠소 친구 외할머니가 어릴때부터 좀 앞날을 미리 알고하는 능력이 있었다고해요.. 뭐 손님이 연락없이 와도 미리 올것을 알고 음식 준비를 하거나.. 그 외에도 마을 일을 소소히 미리 맞추거나 그랬다고 하오.. 하지만 그런 능력이 남에게 손가락 질 받을정도로 강한 것은 아니었다고 하오... 근데 외할머니가 돌아가실때가 되니깐 자신을 임종을 미리 알고 차곡차곡 준비를 하시었소.. 그리고 밤에 주무시듯이 숨을 거두셨다고 하오.. 그리고 본좌 친구의 언니가 결혼할때가 되어서 중매를 보게 되었소.. 나이가 28살이라서 좀 급한 맘이 있었다고 하오.. 근데 중매를 봤는데 넘 괜찮은 남자가 나왔다고 하오.. 인물, 능력,집안 ,돈,.성격.. 뭐 하나 빠지는게 없었다오.. 그래서 이 친구 집에서도 안 그래도 급했는데 또 친구 언니 나이도 있고 해서 조금만 괜찮아도 그냥 혼사 치를 작정으로 중매를 나가곤 했는데 .. 늦바람에 이런 괜찮은 사람이랑 연결되었다고 마니 조아했소.. 그리고 그 남자 집에서도 이 언니를 좋게 보고 결혼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가 오가게 되었소.. 그 즈음 친구집에서는 .. "**(언니 이름)이 착해서 이런 복이 왔다,,잘 됐다.." 이런 말들이 수도 없이 오갔다고 하오.. 근데 그 남자 집안과 구체적으로 결혼 이야기가 오간 그 날 밤에 친구 어머니가 꿈을 꾸었는데.. 어머니가 옛날 외할머니가 사시던 외갓집 큰 앞마당에 서있고 외할머니나 몹시 무서운 얼굴로 아주 큰 마당 쓰는 빗자루로 어머니를 몹시 때리는 꿈을 꾸었다고 하오.. 이 결혼은 안된다 절대 안 된다!! 이런 말씀을 하시면서 거의 천둥 소리 같은 고함을 치면서 어머니를 그 큰 빗자루로 온 몸을 사정없이 때렸다고 하오.. 근데 이꿈을 꾸고 나면 어머니는 온 몸이 진짜 밧자루에 맞은 것처럼 삭신이 쑤시고 그랬다고 하오.. 친구 어머니도 꿈이 걸렸지만 상대방의 자리가 넘 좋고 언니가 나이도 있기에 이 자리 놓치면 이보다 더 조은 자리를 못 구할꺼 같아서 그냥 일을 진행시켰다고 하오,, 근데 밤마다 어머니가 이런 꿈을 꾸고 점점 더 그 강도가 세졌다고 하오.. 그래도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함 들어오기 전날이었소.. 그날 어머니 꿈에 외할머니가 아주 무섭고 섬뜩한 얼굴로 나타나시더니 외갓댁 앞 마당에 큰 고무 다라이를 갔다놓고 거기에 물을 가득 채우더니 어머니 얼굴을 거기 막 밀어넣으면서  "지 새끼 죽일려고 하는년!! 차라리 니가 죽어라!!! 이 결혼은 안돼!! 차라리 니가 죽어라!! 앞날도 모르는 년!!" 이런 식으로 욕을 하면서 막 어머니 머리를 거기 밀어넣고... 꿈이었지만 정말 죽일듯이 그랬다고 하오.. 그 담날 함이 들어오고 문제는 함이 들어오면서 그 신랑이 계단에서 넘어져 발목을 크게 다쳤다고 하오..(걸을 수 없을 정도로...) 그래서 어머니도 꿈도 있고 ..해서 결혼을 미루는 척 하면서 파혼을 했다오..그 후로는 한번도 그 꿈을 꾼 적이 없다고 하오. 그 후에 그 언니한텐 예전 만큼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자리가 들어와서 결혼을 했다고 하오.. 그러면서도 그 어머니는 그 자리를 아까워했다고 하오. 그러다가 한 일년정도 지나서 친구 어머니랑 친구 언니가 백화점에 갔다가 예전 그 중매쟁이를 만났는데 어머니가 아쉬운 맘에 예전 그 중매 상대 남자가 결혼은 했는지.. 뭐 어떻게 되었는지 .. 소식을 물어보았다고 하오.. 근데 그 중매쟁이 왈,, 그 남자도 파혼 후에 워낙 자리가 괜찮다 보니 바로 괜찮은 여자 집안과 연결되어 결혼을 했다고 하오.. 근데 그 새댁이 결혼 한지 10개월도 안되어서 그 신랑한테 맞아죽었다고 하오.. 그 남자가 의처증에 심한 폭행을 상습적으로 했다고 하오.. 근데 어떻게 죽었냐면 그 남자가 색시를 때리면서 나중에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여자 머리를 거기다 넣었다 뺐다하면서 괴롭혀서 과도한 폭행과 익사 쇼크에 의해 죽었다 하오... 정말 이 얘기 친구 한테 듣고 무서워 죽는줄 알았소 [출처] 마이클럽 _______________________ 암만 결혼을 시키고 싶었다 쳐도 할머니가 저렇게 말리는데 함이 들어올 때까지 밀어 붙인 것도 대단하다 정말. 왜 이렇게 다들 자식들 결혼을 못 시켜서 안달인지 모르겠네... (괜히 다른데서 발끈ㅎㅎ) 글쓴이의 언니는 할머니 덕분에 피할 수 있어서 다행이지만 돌아가신 다른 여성분 너무 가엾다 ㅠㅠ 폭력이 동반된 의처증이라니... 사람 진짜 조심해야 돼 다들!
퍼오는 귀신썰) 사촌오빠 친구썰 2화
안녕! 오늘도 왔지 ㅎㅎ 오늘도 따뜻하네 정말 어쩜 이번 겨울은 이런지 몰라 지구야.. 괜찮니..? (아련) 다들 뭐하고 있어? 시간나면 같이 귀신썰 볼까아아? 시작! __________________________ 나를 소름끼치게 만든 사촌오빠 친구 (2) 귀신싸움에 스피커 등 터진 그 날의 충격과 공포가 채 가시기도 전에 2번째 사건이 터졌음. 오빠 친구는 마치 아무 일 없는듯이 지냈다고 함. 다만 우리 오빠는 컴퓨터방을 봉인하고 공부에 미친듯이 집중하기 시작했음 그 말을 듣고 친구는 "문 닫으면 걔네들이 못 넘어 올꺼 같냐?" 라고 비웃었다고 함 역시 오싹한 오빠임 하지만 그것이 사실인 것을 알기에 우린 쫄 수 밖에 없었음 ㅜ ㅜ 사실 며칠 간 아무일도 없이 평화로웠음 근데 그 평화로운것이 문제였던거임. 스피커사건이 터지고 일주일도 채 안 지나서 나는 낮잠을 자다가 이상한 꿈을 꾸게 됐음 내가 내방 침대위에 앉아 있는데, 왠 남자 꼬맹이가 쫄래쫄래 방안으로 들어오는 거임. 사실 정말 안 위험하게 생겼음. 꿈이여서 그랬는지 난 모르는 애가 들어오는 것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음 그런데 그 꼬맹이는 망설임 없이 내 책상으로 다가가더니 갑자기 책상 위에 있던 호치케스로 지 검지를 마구 찍기 시작하는거임. 정말 피가 철철 나는데 걔는 눈 하나 꼼짝을 안 함. 다만 목구녕에서 [드르륵..그르륵] 거리는 쇠 긁는 소리를 간간히 냈음 내 침대를 벗어나면 저것 한테 꼼짝없이 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데 차가운 느낌이 목덜미를 타고 쫙 내려감 얼마나 찍어 댔을까, 호치케스 핀이 다 떨어졌는지 그놈아는 드디어 호치케스를 바닥에 떨구고는 천천히 나를 향해 돌아보기 시작함. 벌써 나는 이게 꿈이라는 걸 잊은지 오래였음 드디어 걔랑 내 눈이 마주쳤을 때 무표정으로 이렇게 말함: "어?... 고장나 버렸네?..." 그러더니 그게 눈알을 돌리면서 이히히히힝ㅎ이힣이ㅣ히이힣히ㅣㅎ 미친듯이 웃기 시작했음. 그 모습에 내가 꿈에서 기절을 했는지 하여튼 그렇게 찝찝하게 잠에서 벌떡 깨어났음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꿈에 그 놈이 서 있던 자리에, 멀쩡히 책상 안 쪽에 있던 스테이플러가 떨어져 있는거임 얌전히 떨어져 있기만 했으면 별거 아니 였을 텐데 안에 있는 핀들이 죄다 떨어져 나와 바닥에 뒹굴고 있었음 근데 님들... 호치케스 핀은, 서로서로 붙어 있다는 사실. 아무리 떨어진 충격이라고 해도 내 방바닥에 떨어져 있었듯아 하나, 하나, 다 분리 돼어 떨어질리가 없음. 정말 그 핀들은, 어느 한 줄 붙어 있는거 없이 누가 하나하나 잡아 떼서 늘어 논 것 처럼 그렇게 바닥에 떨어져 있었음... 심장이 미친듯이 뛰면서 미칠것 같았음 게다가 이건 꿈도 아니였음 =_= 방에서 나가려면 저 떨어져 있는 핀들을 지나쳐 가야 하는데 그건또 못할것 같아, 침대에 앉아 땀만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음 그런데 갑자기 내 귀에다 그애가 "고장난거안고쳐줄꺼야???" 라고 속삭임. 거품 물 뻔 한거 꾹 참고 ㅜ ㅜ 생각할것도 없이 침대 옆 탁자 위에 있던 휴대폰 집어들고 집에서 뛰쳐나감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거울 보고 깜짝 깜짝 놀램 하다 못해 그 짧은 시간동안 귀막고 엘리베이터 구석에서 덜덜 떨었음. 와 나 정말 아무 생각도 안 남ㅋㅋㅋㅋㅋ 진짜 머리속이 5^&*&^%$%^&인 상태에서 아파트 밖으로 뛰쳐나와 사촌오빠한테 전화를 미친듯이 걸었음ㅋㅋㅋㅋㅋㅋ 근데 학원 수업 중이라고 끊어버림ㅋㅋㅋㅋ (*)#)(#*&$) 잊지 않겠다 집에는 못 들어가겠고, 친구한테 연락을 할까 하며 서성이는 도중 다행이 오빠가 나한테 문자를 보냄: [내 친구 간다] 오빠가 빨리 조처를 취해준 건 정말 너무 고마웠지만 왠지 그 친구 라면 더 무서워 질 것 같다는 생각에 피가 나도록 엄지손톱을 잘근잘근 씹었음 근데 정말 안 좋은 예감은 적중하는 것 같음. 역시 그 친구가 느릿느릿느릿 정문을 통과 해 걸어오는 모습이 보이는 거임 그리고 그 오빠 친구는 나한테 오자마자 고개를 갸웃 하더니 "누구야?..." 라고 하는거임. 아오 진짜 앞으로 이 사람이 무슨 말 만 하면 실성할 것 같았음 얘기를 대충 늘어 놨는데 애의 생김새라던지 말해 주지 않았는데: "혹시 눈 돌리는 애?..." 이렇게 물어보는 거임 와나 진짜 순간 그 오빠 집에 갔다 묻어와서 아는건가 싶어서 나보다 3살 많은 사람 멱살 잡을 뻔 함 ㅋㅋㅋㅋㅋㅋ 집에 가보자고 하길래 정말 싫었지만 다시 우리 집으로 올라가서 내 방에 진입했음 와나 정말!!! 미!!치!!는!!! 줄 알았음 이번엔 분리돼서 그냥 사방에 누워 있던 핀들이 한 줄로 쭈-욱 나열 돼 있는거임 그리고 그 핀들은 내 문에서 부터 책상밑을 향하고 있었음... 그렇게 나란히 늘어져 있는 핀들을 눈으로 쫓아서 가보니.. 분명히 내 책상 밑에 뭔가 있는것이 느껴짐. 창문에 커튼 쳐놨던거 걷어 놀껄 이라는 후회를 하고 있는데, 사촌오빠 친구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책상 앞에 가서 바닥에 앉음. 그러더니 책상 밑에 그 무엇인가에 이렇게 말을 건냄: "그 여자 여기 없어." 근데 난 분명히 들었음. 아주아주 잔잔하게 쇠가 긁히는 [드륵드르르륵그륵] 소리가 났는데 분명히 분명히 분명히!!! 그 꼬맹이 목소리가 "나도 알아 이히힣ㅇ히ㅣ히힣" 라고 대답했음. 그럼 좀 꺼져줄래 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음  ㅜ ㅜ 한 순간 긴장이 확!!! 조였다가 확!!! 풀렸다가 그게 반복 돼니까 어지러움 증과 두통 까지 겹침 얼마나 지났을까 그 오빠는 자리에서 별일 없었다는듯이 -_- 일어나서 호치키스 핀들을 줍기 시작함. 그리고 왠만하면 새로운 거 사라더니 호치키스를 들고 나가버림 나도 약간의 영감이 있는지라 내 책상밑에 있던 무언가가 나갔다는 것을 꺠닳음. 그래도 무서워서 쫄래 쫄래 같이 쫓아 나감 ㅜ ㅜ 근데 태울 줄 알았더니 가지고 그냥 자기 집 갔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안 태워?" 라고 했더니 "이걸 어떻게 태워 내가 용광로냐" 라고 대꾸함ㅋㅋ 그리고 그 사촌오빠 친구는 내가 얘기를 잘 들어주게 생긴데다 감이 있는지라, 원한이 많은 원들이 많이 따를 것 같다고 하며 충고 아닌 충고를 해주심. 그 아이가 살아 있을때 너무나 많은 괴롭힘을 당하다가 간 아이 같았다며 호치키스야 계속 써도 문제가 없겠지만 내가 찝찝할 까봐 치워 준 거라고 하심 마지막으로 놀러 갔을 때도 그 떄 그 핀들이랑 호치키스를 자기 방에다 잘 두고 있었음; 그 아이가 죽어서도 '다른 사람들이 내게 또 등을 돌렸구나,' 라고 생각하지 않게 잘 두고 있는거라고 했음.. [출처] 네이트판 ________________________ 뭐야 엄청 착한 사람이잖아 아주 매력이 있는 사람이로군 그래도 이런 사람이 근처에 있어서 마음이 좀 놓였겠다 쓰니나 쓰니 사촌오빠는. 처음에 뛰어나가서 안았던 게 이유가 있었네 ㅎㅎ 다음은 또 무슨 이야기가 있을까? 내일 같이 보도록 하자 오늘 잘 쉬고!
퍼오는 귀신썰) 사촌오빠 친구썰 6화
뭐야 어제 분명 6화를 올렸는데 왜 7화가 올라간걸까 내가 분명 이 이미지까지 첨부해서 올린 거 생각나는데 왜 7화가 올라가 있고 6화는 온데 간데 없어서 임시저장카드를 보니까 쓰다 만 6화가 남아 있어 이미지 분명 첨부했는데 첨부했던 이미지도 없어져있고 뭐야 무서워... ㄷㄷ 어쨌든 6화를 오늘 다시 시도해 본다 오늘은 무사히 올라가길... 설날이 벌써 모레라니 하루하루가 정말 잘 간다 이러다 금방 할머니 되겠네 ㅎㅎ 귀신썰 읽다 보면 시간이 정말 훅 가잖아 갑자기 주변이 조용해 진 것 같고 시간의 밀도가 엄청 높아진 것 같고 오늘도 그렇게 시간 여행 한 번 해 볼까? 시작하자! _________________________ 갑자기...조회수가 왜이렇게 기하학급수적으로 상승했지?!? 했더니 헐, 어째서 1편이 톡톡 리스트에 올라와 있는겁니까아아아 내려줘요 지금 당장 롸잇나우 ㅠ ㅠ 덕분에 별명만 늘었네요 ㅠ - ㅠ) "이년저년요년"ㅋㅋㅋㅋㅋㅋ..............엄마...ㅠㅠ.... 아 정말 웃는게 웃는게 아니라구용 ; 제발 그냥 무서운/오싹한 얘기 좋아하시는 분만 좋아서 읽어 주시는 분들만 읽어주세요;.. 왜 굳이 읽으시면서까지 나쁜말을 남기시는지 ㅜ,ㅜ)).. 믿어 달라고 따로 부탁 드린 적도 없고, (음;;..) 사촌오빠 친구들 얘기는 들었을때 너무 오싹하면서도 재미있길래, 판에는 무서운 얘기 따로 즐겨 찾아 보시는 분들도 계시고 해서 쓰게 된거라 정말 나쁜 의도는 없었단말이에요... 더 이상 ABCD오빠들/언니와 관련된 얘기는 쓰고 싶어도 없답니다 ㅜㅜㅎ.. 판의 취지는 "타인의 자유를 해하지 않는 모든 자유를 행하라!" 이잖아요 : )~? 정 맘에 안들고 눈에 거슬리시더라도 그냥 무서운 걸 즐기는 분들이 즐겨 찾아 읽는 괴담~~ 정도로 귀엽게 생각해주세요 ㅠ 그냥 읽고 즐겨주세요 +_+ 왜들 이렇게 욕하는데  심각하셔 ㅋㅋㅋ ㅠ - ㅠ .. 서로 스트레스 안 주는 판 세상이였으면 좋겠네요~ 저도 앞으로 좀더 조심스럽게, 안 거슬리도록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ㅠ;ㅎ 주저리가 너무 길었나요 ㅎ_ㅎ))  시작합니다 : )~ -------------------------------------- 존무대디에게 무서운 얘기를 해달라고 조르다가 완전 혼났음. 맨날 공포 분위기는 혼자 있는대로 다 조성하면서 무서운 얘기 해달랬다고 혼내다니... 조금 놀랐음. 나한테 막 혼내다가 내가 궁시렁궁시렁 대니까 완전 사악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음: "너 자꾸 그러면.... 붙는다?" 그래서 조르기를 관뒀음. 진심인지 공갈인지 구분이 안갔지만, 성격이 찔끔스러워서 더 이상 조를 수가 없었음. 그래서 오늘 이야기는 없음............................................... .........................어색한 낙시질죄송합니다 죄송해요 너무 무서운 댓글들이 달려서 장난한번쳐봤어요 다신 안그럴게요 떄리지 마요 아아아악 온가족이 같은 동네, 멀어봤자 옆동네 옹기종기 모여 살게 되어서 우리가족은 (외가쪽) 그 만큼 모이는 일이 많음. 특히 어른분들 생신일때에는 왠만하면 주말 쯔음에 다 같이 모여 축하 하는 일이 잦음. 이렇게 모일 때에 어른들끼리 하는 얘기를, 사촌들과 내가 엿들으면서 조합한 우리 the 사촌오빠의 관한 얘기를 하겠음: 어쩌면 우리 사촌오빠는 태어나지 못했을 지도 모름. 외숙모가 오빠를 임신하셨을 때에 건강상태가 너무 좋지 못했다 하심. 그래서 진지하게 가족단위로 유산에 대해서 논해 보기도 했다 함. 그런데 그 때 당시 외숙모를 괴롭히는 건, 단순히 건강문제와 임신 뿐 만이 아니였음. 배가 불러옴에 따라 심해오는 악몽의 강도 때문에, 외숙모는 더 초췌해지셨다고 함. 그냥, 임신 스트레스 때문이겠지 하시던 외삼촌도, 가면 갈 수록 같이 힘들어 하시고, 하여튼 걱정이 계속돼는 나날이였음. 외숙모 기억에, 악몽의 시작은 정말 별것도 아닌 꿈이였다고 함. 처음 꿈에서 외숙모는 왠지 파~란 옷을 입고 거실에서 테레비를 시청하고 계셨다 하심. 그 옷은 잠옷도 아닌것이, 평상복도 아닌것이, 하여튼 생소 하면서도 처음 보는 옷이였음. 그렇게 티비를 보는 중이셨는데, 누군가 갑자기 현관문 벨을 천천히, 계속해서 눌러댔음. 누구세요? 라며 문을 열였을 때에는, 왠 중년의 여자가 긴 동앗줄을 들고 서 있었댔음. 인상이 그리 좋아 보이는 여자는 아니였다고 하심. 그 여자는 외숙모에게 대뜸, 그 동앗줄로 자기 몸을 묶어달라고 부탁했음. 왜 이럴까.....라며 외숙모는 고개를 갸웃 거리면서 부탁대로 해 주었다고 함. 그리고는 찝찝한 기분으로 문을 닫고 집으로 다시 들어오셨음. 그리고 그렇게 깨셨음. 그게 바로 지긋지긋한 악몽의 시작이 되었음. 그 꿈을 꾼지 몇일이 지났을까, 다시 꾸는 꿈에 외숙모는 다시 파란 옷을 입고 거실에 앉아 계셨음.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그 중년의 여자가, 저번 꿈에서 외숙모가 묶어 준 그대로 나타나서 동앗줄의 다른 끝을 내밀었다고 함. 그 때 부터 외숙모는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하셨음. 아니나 다를까, 외숙모가 동아줄을 잡지 않자 그여자는 다짜고짜 빨리 네 몸도 묶으라며 화를 냈다고 함. 외숙모는 질겁을 하고 현관문을 쾅!! 하고 닫아 버리셨심. 그리고 꿈에서 깨셨음. 그런데 안타깝게도 꿈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음. 그 여자가 이제는 너무나 자주 외숙모 꿈에 등장해서 온갖 방법으로 외숙모를 괴롭히셨다 함. 처음엔 [문열어 이년아!!! 문열어 이년아!!! 문열어 이년아!!!] 라며 계속 현관문을 두들기더라고 함. 밖에서 [흑흑...으흑흑흑흑흑ㅎ극ㅎ긓....] 라며 통곡을 한 적도 많았고, [끼낄낄낄... 니년이 그런다고 내가 못들어 갈 줄 알지?] 라고 협박까지 시도 했음. 그런지 한 몇주가 지나자 외숙모는 주무시는 걸 거부 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너무나 지쳐 계셨음.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어지신 외숙모는 점점 히스테릭하게 변해가셨고, 단순한 임신 스트레스려니... 하셨던 외삼촌도 더는 못 견기겠다고 생각하심. 결국 두 분이 무당분을 찾아가게 만든 결정적 꿈은 이러했다 함: 그 꿈에는 유난히 그 여자가 밖에서 조용했음. 그리고 외숙모는 여전히 똑같은 옷을 입고 거실에서 테레비를 시청하고 계심. 오히려 조용한게 더 불안해진 외숙모는, 왠지 등골이 시려오는 한기에 안방으로 이불을 가지러 가셨음. 근데 왠일인지 안방에 이불이 하나도 없는거임. 이게 말이돼나? 싶어서 외숙모는 안방을 한참 서성이다가 혹시나 해서 외삼촌이 서재로 쓰는 방으로 발길을 돌리심. 복도식 아파트에 거주 하시던 외숙모의 집에, 외삼촌의 서재는 복도쪽에 달린 방이였음. 그래서 외숙모는 방에 들어갔을 때 꿈에서 기절하실 뻔 하심. 왠지 모를 한기는 바로 서재에 있던 창문으로 부터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아까도 말했듯이 외숙모는 복도식 아파트에서 거주중이였음. 그 창문은 바로 바깥 복도가 보이는 창문이였던거임. 그 중년의 여자가 창문에 달린 방범망을 두 손으로 잡고, 기괴한 얼굴로 외숙모를 쏘아보며 웃기 시작했다고 함. 몇날 몇일을 밖에서 지낸 듯이 헝클어진 머리와, 정신이 나간듯이 풀린 눈동자, 그리고 핏발이 센 흰자. 무엇보다 손과 팔뚝에 핏줄이 다 서도록 방범망을 꽉 쥐고 흔들어 대는, 그 것은, 이미 사람이라 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함. 그 아줌마는 방범창을 잡고 미친듯이 흔들며, 문제의 동앗줄을 창문 사이로 밀어 넣기 시작했음. 그리고는 외숙모 귀가 아플정도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고 함: [묶어!! 묶어!! 묶어!! 묶어!! 묶어!! 묶어!!] 잠결에 비명을 지르는 외숙모를 외삼촌은 가까스로 깨우셨고, 외숙모는 깨어나신 후에도 싫다며 계속 오열하셨다고 하심. 결국 다음 날, 외숙모는 외삼촌에게 부탁 해서 전부터 아파트 이웃에게 들어본 용하다는 할머니를 수소문 했음. 그런데, 할머니분 방안에 외숙모가 발을 들여 놓은 순간, 할머니가 너무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 하셨다고 함: "야야...쟈가 아를 달란다...." 깜짝 놀란 두 분은 할머니께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셨고, 그 할머니 분은 이렇게 말씀하심: "니 아니면 갸라도 데꼬 갈란다고, 아 목을 빙빙 감아놨네..." 그 말에 외숙모는 정말 할머니 앞 쓰러지듯이 하시면서 안된다고, 제발 왜 그러는 건지 말씀해 달라며 정말 싹싹 비셨다 하심. 그러자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해 주셨음: "파란 건 안됀다, 파란 건... 애가 춥다 칸다고. 아가 추우믄 안돼. 자꾸 고따우 못됀걸 부른다니까. 아가 목이 아프단다. 창문을 닫아라, 창문을. 닫아햐 케. 창문을 닫아. 창문을 닫아. 창문을 닫아. 창문을." 외숙모는 울면서, 꼭 닫겠다고, 꼭 닫겠다고 하며 할머니한테 하소연 하셨음. 창문을 닫으라고 되뇌이던 할머니는, 갑자기 외삼촌 뒤를 응시하면서 호통을 치셨다고 하심. "이런 못된년!!! 지 애 떨어졌다고 남의 아 목을 빙빙 감아놔??" 외삼촌은 견디지 못하시고 할머니께 알겠다고 감사하다고 사례를 해 드린 뒤 집으로 빨리 돌아오셨음. 그 일이 있은 지 몇일 안 지나, 사촌오빠가 예정일 보다 빨리 나오려는지, 외숙모는 심한 복통을 하소연 하셨음. 그리고 병원에 가셨는데, 탯줄이 태아 목을 감고 있어서, 수술이 불가피 할 것 같다는 말을 듣게 됨. 복통이 너무 심해와서 잠시 정신을 잃을때, 외숙모는 순간 "아, 이게 내 마지막 기회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함. 아니나 다를까 외숙모는 그 짧은 시간에 그 여자가 나오는 꿈을 다시 꾸게 되심. 그 미친 아줌마-_-는 방범창을 잡고 손을 뻗으면서 여전히 [내꺼야 내꺼야 내꺼야 내꺼야 낄끼리끼릮낄낄낄낄낄낄낄] 이라는 헛소리를 짓껄이고 있었다 함. 외숙모는 도대체 자기가 어떻게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다고 하심. "아니야!!!! 아니야!!!!!" 라며 소리를 지르시고는 외삼촌 서재 책상위에 있던 책을 집어 들어 자꾸 집안 안쪽으로 손을 뻗는 그 여자 손을 마구 때리면서 겨우겨우 창문을 닫아 버렸다고 하심. 아니나 다를까 그 미친아줌마는 밖에서 창문/벽/현관문을 마구 두들기며 또 다시 소리지르기 시작함: [묶어!! 묶어!! 묶어!! 묶어!! 묶어!! 묶어!!] 외숙모는 왠지 모르게 자꾸 아기한테 미안하다는 말이 나오셨다고 함 그리고 그 길로 안방에 들어가서 파란옷을 벗어 던져 버리고 장롱 깊숙히 넣어두었던 겨울옷 까지 끄집어 내서 껴 입으셨다고 함. 그리고 꿈에서 깨는 순간, "아 살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심. 7개월만에 태어난 우리오빠는,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 삶을 피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지금 이러 하듯이 건강하게 태어나서 잘 있음. 이건 나중에 오빠가 얼핏 얘기 해 준건데, 자기가 이런 얘기를 모르고 존무대디를 만났을 때, 조금 친해진 후에 존무대디가 처음에 대뜸 한 말이 "너희 어머니한테 평생 고마워 하며 살아라" 였다고 함. -------------------------------------- 하여튼 저랑 제 친척들은 (애들) 어느 순간부터 저희 오빠를 모태민폐라고 부르기 시작했음... ....무서운 댓글은 정말 미워할껍니다 :' (! 꺄 ㅠ ㅅ ㅠ) 재미있게 읽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깜빡할뻔 했네요!! (이런 바보 멍충이) 감사하구 또...또... 또....음......사...사ㄹㅏ,ㅇ,,,,, 우어 못하겠지만 그래도 제맘 아시죠 = ㅅ ㅠ)/ [출처] __________________________ 어무니 정말 대단하시다 본인 몸도 안 좋으신데 아가 지키려고... 덕분에 건강하게 잘 컸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가끔 이런 글들 볼 때마다 조금 궁금해 자신의 아기가 잘못 됐다고 남의 아기를 훔쳐 간다거나 하는 일이 옛날엔 가끔 있었잖아 그게 무슨 마음인지를 잘 모르겠더라고 그게 비뚤어진 모성애인지 아니면 대를 이어야만 한다는 압박 때문에 벌어진 일인지 둘 다 모르겠는데 둘 다 슬프긴 하네 암튼 다들 이제 가족들 만나러 가는 길이겠지? 따뜻한 설 보내길. 내일 또 올게!
퍼오는 귀신썰) 신이 점지해 준 아이
이번 겨울은 진짜 생각보다 덜 춥다 그치 종일 따뜻한 사무실에 앉아 있어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ㅎㅎ 모든 사무실들이 히터 온도 조금만 낮춰도 참 좋을텐데 참 날이 덜 추우니까 미세먼지도 극성이고... 다들 기관지 건강 잘 챙기시길! 오늘도 우리네 이야기로 챙겨와봤어 같이 볼까? _____________________ 제목 : 신이 점지해준 아이 제목은 진짜 내맘대로 ㅠㅠㅋ  내가 알고 지내는 언니 이야기야~  이 언니가 나보다 3살 위인데 지금 거진 중학교 입학을 앞둔 아들 하나를 둔 싱글맘이야  처음 만나게 된 게, 나냔이 학교 봉사활동 하러 재활센터 같은 데에 일하러 갔다가 보게 됐어  그 센터에 아무래도 연세 있으신 분들 비율이 높아서, 엇비슷한 나잇대에 같은 여자고 마음도 잘 맞아서 금세 친해졌어  이 언니의 경우는 아들 때문에 여길 다니게 됐는데, 아들이 선천적으로 다리가 불편해... 제대로 된 병명이 기억은 안 나는데.. 한쪽 다리가 성치를 못해서 성장이 거의 멈췄어. 그래서 다른쪽 다리랑 맞질 않아서 혼자 걷질 못해  이 언니 혼자서 애 데리고 치료 다니랴 일하랴 항상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더라  개인사는 실례가 될 것 같아서 직접 물어본 적은 없었어  그렇게 친해져서 평소에도 시간이 나면 같이 밥 먹고 쇼핑도 하러 다니고, 언니 바쁠 때 아들도 봐주고 하면서 꾸준히 교류를 하고 지냈어  그렇게 알고 지낸지 약 1년쯤 됐을까? 같이 저녁 먹고 술 한잔 하다가 언니가 말을 꺼내더라구  "너 우리 동동이(아들. 가명이야ㅎ;) 아빠에 대해 궁금하지 않니?"  이러면서 . 난 그냥 솔직하게 본인(언니)이 얘기할 맘 없으면 알고 싶지도 않다고 했어  그랬더니 언니가 자긴 딱히 숨기거나 창피한건 아닌데 나서서 할 말은 아니라 별 말 안했다 이러면서 간략하게 얘길 꺼냈어  좀 어려서(고등학교때) 애아빠를 만나서 둘이 선까지 넘고 임신까지 하게 됐대  언니 본인은 애 낳고 바로 취업전선 뛰어들었고, 남자는 대학까지 그대로 갔어  그런 남자의 학비부터 생활비까지 언니가 다 벌어서 부담하며 수발을 들었다는 거야  그리고 이 남자는 자기가 학교 졸업하고 취업만 제대로 하면 너 끝까지 책임진다고 항상 호언장담해서 믿고 기다렸대  근데 옘병ㅋ 졸업 앞두고선 잠수를 타버렸는데, 딴여자랑 결혼했단 소릴 다른 친구 통해서 들었대  그 집까지 찾아가서 애를 나 혼자 낳았냐 어떻게 동동이한테까지 이럴 수 있냐 하면서 호소했더니 남자 부모님이 멀쩡한 애 앞길 망치지 말고, 그 애도 진짜 우리 아들 핏줄인지 어찌 아느냐 하면서 돈 좀 쥐어주고 더이상 연락하지 말라고 거진 내쫓았대  이 언니가 정말 서러운게 만약 동동이가 몸이 완전 성한 아이였어도 애아빠에다 조부모 되는 사람들까지 애를 버렸을까 싶어서 몇날 며칠을 울었대  그치만 아들 하나만큼은 책임지고 키우고 싶었기 때문에 악착같이 일을 해와서, 지금은 혼자 장사도 하면서 한숨 돌릴 정도로 산대  하지만 지금처럼 자리잡기까지 그 과정은 정말 말도 못하게 힘들었대  여자 홀몸으로 아픈 애 데리고 사는게 어디 쉽니...  거기다 저 언니는 고등학교까지 중퇴. 돈이 될만한 일을 하는 것조차 힘들었대  그래서 영 안되겠다 싶어서 애까지 고생시키느니, 동동이를 시설에 맡기거나 다른집에 보내거나 해버릴까.. 하는데까지 생각이 미쳐서 고향에 계신 아버지를 찾아가 상담을 했대...(어머니는 일찍이 여의었다고 하더라) 이런 저런 이야길 했더니 아버지가 단호하게 동동이는 끝까지 니가 키워야 한다! 이러시더래  언니가 말하길, 아버님은 너~무 너무 온순하시고 남 부탁 거절 못하시고 수줍음도 잘 타시고 천상 소년같은 성격의 분이시래. 그래서 자기가 힘든걸 호소하면 편을 들어주며 토닥여 줄줄 알았는데 단호하게 말허리를 잘라서 좀 놀랐대  그러면서 이런 이야길 하나 해주시드래  아버지가 아직 젊으셨을 적, 그러니까 언니가 태어나기 전에 읍내에 일이 있어서 다녀오면서 (이분이 사시는 곳이 완전 시골) 버스를 탔대  완전 산골길이라 버스 안에 다해야 10명도 안되는 사람이 타고 있었는데, 몇 정거장 가니까 왠 젊은 애엄마가 갓난아기를 안고 버스를 탔대  근데 돈이 부족한지 막 주머니를 헤집고 이리저리 뒤지다가 안되겠는지 버스기사한테  "죄송한데 한번만 그냥 태워 주시면 안될까요? 금방 내릴거에요"  하면서 간곡히 부탁을 했대  기사가 성질을 내면서 그냥 내리라고 욕을 하고, 실랑이가 길어지니까 승객들도 그 여자보고 내리라고 당신 때문에 늦어진다고 막 화를 냈대  결국 아버님이 보다 못해서 돈을 대신 내줬대  그랬더니 그 여자가 고맙다면서 앞자리에 앉더니 "어디까지 가세요?"하고 물었대  "어디어디까지 갑니다~" 하고 대답하니까  "다음 정거장에서 그냥 내리고 다음 버스 타세요" 이러더래  버스 배차 간격이 워낙 길어서 정말 한~~참을 기다려야 하니까 아버님은 왠 난데없는 소리야 하면서  "어서 집에 들어가 봐야해서 그건 좀..." 하고 거절했대  근데 그 여자가 너무 간곡히 부탁하더라는 거야 꼭 내리시라고. 그냥 무시해버리고 말았을수도 있지만, 느낌이 이상해서 다음 정거장에서 바로 내리셨대  그리고 다음 버스를 타고 가면서 대체 뭘까...하고 의아해 했는데.. 그렇게 가다가 글쎄 앞전 버스가 사고가 난걸 보게 된 거야.. 이미 시간상으론 꽤 지난거지  나중에 전해 듣기론 2명인가가 죽고, 나머지 승객들도 중경상을 입었대  소름이 돋아서 아버님이 혹시 승객중에 갓난아기와 애엄마가 없는가 알아봤지만, 그런 사람은 전혀 없었대  그 사이에 내린건지 아니면 사람이 아닌 무엇이었는지, 아무튼 자길 살리려는 의도였다고 생각하고 산쪽을 향해 절을 하시고 돌아갔대  그리고 기억 속에서 그날 일이 잊혀져 갈 때쯤,  그 젊은여자가 아버님 꿈에 나왔대, 품엔 여전히 그 갓난아기를 안고 있었는데 그 여자는 아무 말도 안하고 그냥 멀찍이 서있더래  그렇게 마주보고 서 있는데 그 여자 품속의 아기가 바닥으로 툭 뛰어내리더니 아버님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오더래  그런데 애가 걸음을 뗄 때마다 몸집이 커진다 싶더니 점점 형상이 변해서 아버님 눈앞에 왔을 땐 커다란 호랑이가 돼 있더라는 거야  꿈이지만 아버님은 호랑이가 무섭다거나 두렵진 않고, 경외심 같은게 들었대  그러고는 그 호랑이 앞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고 절을 올렸대.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대  잠시 그러고 있는가 싶더니 호랑이가 앞발을 슥 들어서 아버님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 그렇게 잠에서 깼대  그리고 얼마 후 언니가 태어났는데, 아버님은 이게 보통 꿈이 아니다 이 언니는 큰 인물이 될 거다 이 아이를 위해 신이 날 살린거다 라고 생각하고 지극정성으로 키웠대  근데 나이를 들어갈수록 자길 너무 실망시켜서... (혼전 임신에.. 자퇴에..) 내가 잘못 생각한걸까? 그냥 우연히 일어난 일들에 내가 의미를 부여한걸까? 하고 자괴감에 빠지셨다가 세월이 흘러서야 이 모든게 동동이를 위한 거였다는 생각이 드셨다는 거야  실제로 언니가 동동이를 낳을 때도 아버님이 태몽을 꾸셨는데, 그때도 호랑이꿈을 꾸셨대  그러면서 언니를 잘 타이르더래.  어려운건 내가 발벗고 다 도와주겠다.  하지만 동동이만은 니 손에서 떼놓지 말아라. 저 앤 필시 크게 될거다 라면서  솔직히 언니는 그 이야길 듣고도 아버님 말을 안 믿었대  그래도 아버지가 저렇게까지 하시는데 (아버지도 당시 몸이 성치 않으셨다고 하더라) 나도 거기에 순응해야한다 싶어서 이 악물고 버텨서 여기까지 온거래  그런데, 그로부터 근 십여년이 지나고서야 아버지의 꿈 얘길 진짜로 받아들이게 된 일이 얼마전에 있었대  이 언니가 현재 옷장사를 해.  사업수완도 좋고 언니가 눈에 불을 켜고 공부하고 발품 팔아서 점점 단골도 많이 확보하고 자리 잘 잡아가고 있거든  근데 단골 손님중에 신기가 좀 있는 사람이 있대  본인이 밝힌건 아닌데, 말투나 행동들로 어렴풋이 짐작했대  어느날은 이 손님이 또 와서 물건을 사고 계산 할 때에 언니한테 "고민이 많지?"이러고 슬쩍 말을 걸었대  깜작 놀라서 왜 그런걸 묻냐고 하니까  "지금 언니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이런건 함부로 말하면 안돼서 많은 말은 못해주겠는데, 언니가 가장 궁금해하는거 딱 하나만 물어봐, 내가 가능한 선에서 답해줄게"  이러더래  언니는 앞뒤 안보고 "우리 아들의 장래가 걱정돼요" 라고 한마디 했대  그러니까 이 신기있는 분이 이런 말을 하더래  "언니, 언니는 지금 호랑이 새끼를 낳았네. 조상님이 덕을 쌓으셔서 점지받았어  그 애가 혼자 힘으로는 못 걸을지언정, 손가락 하나로 사람 100명을 부리게 될거야.  아이한테 해주는 만큼 몇백배로 돌아올테니 조금만 참아"  동동이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안했었는데 이런 말을 들으니까 소름이 돋더래  그리고 그 분은 복채를 받아야 한다며 언니 소지품 중에 하나를 가져갔대  근데 이게 영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닌게, 동동이가 비록 몸은 성치 않아도 애가 귀신같이 똑똑하거든. 나도 얘랑 몇번 대화 하면서 정말 놀랐어 기억력도 비상해서 한번 보고 듣고 읽은건 정확히 기억하고, 체스라던가 카드게임 같은 것도 항상 이겨 애가 머리를 쓰면서 전술을 짜더라고;  한글이나 영어도 따로 교육한 적이 없는데 책 좀 보고 관련 방송 보면서 혼자서 터득해가는 수준이고 하여튼 얘가 물건이긴 물건이다 싶었어....  완전 두서없지만...이 언니가 남달리 아들을 사랑하고 고생해온걸 조금이나마 봐 와서 그런가 저 말이 진짜였으면 좋겠더라  그날 언니네 아버님이 본 건 역시 신이 아니었나 몰라....  PS. '공포'와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이야기라 여기에 맞는 글인지 판단이 안 서네 ㅠㅠ 이런 신기한 경험 유형의 글도 괜찮을까? 안 맞는 글이면 부드럽게 태클 넣어줘! [출처] 외커 _________________ 뭔가 할머니가 밤에 자기 전에 해줄 법 한 이야기지 않아?ㅎㅎ 그간 언니는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정말 그 무속인의 말이 진짜였으면 좋겠다 약간 전생 이야기 볼 때 마다 슬프더라고 왜 전생의 덕을 후생에서 누리고 전생의 잘못을 후생에서 책임져야 하는지 그냥 현생에서 고생하면 나중에 현생에서 돌려 받으면 얼마나 좋아 그냥 그런 이야기 같아서 가져와 봤어 부디 많이 아프지 않기를 나중에는 다 웃을 수 있기를!
퍼오는 귀신썰) 사촌오빠 친구썰 3화
오늘도 왔다!!!! 어때 일요일은 잘 쉬었어? 피곤함이 조금은 사그라든 일요일이었기를 바라며 오늘도 이야기 이어갈게 같이 보쟈 ㅎㅎ _____________________ 꺄꺄 댓글 달아주신거 너무... 신기해요!!!!! 그런데 제가 글 솜씨가 없어서 ....(//).. 재미 없으시면 어떻게 하죠.... 아 근데 정말 평화로이 낮잠자다 당한 일이라 정말 울기 99%직전이였다는... 우음... 글쓰는 솜씨는 어떻게 하면 좋아지는건가요. 유전은 아닌것 같군요 일단 이거.. 무리해서 10편까지 한 번 가볼생각입니당 그만큼 이 오빠친구는 참 흥미로워요 후후 (   / -ㅅ-)/ ---------------------------------- 나를 소름끼치게 만든 사촌오빠 친구 (3) 전에 얘기에서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물론 우리 사촌오빠는 일반인 (?) 친구도있음. 그 들을 쓰기 편하기 위해 A, B, C, D 로 각각 부르겠음 그 사람들에게서 이 글의 제목이 칭하는 the 사촌오빠 친구의 별명이 [존무대디] 라는 것을 알았음ㅋㅋㅋㅋㅋ (존x 무서운 대디 라고 함, 대디는 그냥 존무라고 하긴 이상해서 붙였다고들 하심) 이거 원 제목을 바꿔야 하나 ㅋㅋㅋ 존무대디는 별명으로 미루어 보건데 원래 성격이 좀 오싹한 성격인가 봄. 그런데 또 친구는 많은 것 같음. 존무대디의 관한 일화들은 참 평범과는 거리가 먼 듯 했음 1. 피부과 이야기 우리 사촌오빠 말고, A오빠와 함꼐 존무대디가 피부과를 같이 가주었다고 함. 그게 지난 겨울이였는데, 이유는 날씨가 너무 건조 하니까 안 그래도 여드름드름 브레이크 현상을 체험하던 A오빠의 피부가 극도록 나빠졌던 것임. A오빠 말로는 멀쩡하던 존무대디가 잠시 진료실에서 나온 의사를 보고 인상을 완전 험악하게 찌뿌렸다고 했음. 워낙 무표정에 모두 아시다시피 왠지 모르게 오싹한 성격이라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A오빠는 간호사 언니가 불러줌에 따라 진료를 받으러 들어갔음. 근데 들어갈떄 막 쳐다봐도 존무대디는 같이 들어가 줄 생각을 안했다고 함. "밖에서 기다릴래?" 라고 물었더니, "어...미안." 이라고 존무대디가 짧게 대답했음. A오빠는 섭섭해도 그냥 그러려니...했음. 근데 진료를 시작하려고 그러는데 존무대디가 갑자기 못참겠다는 듯이 진료실 문을 열고 쳐들어와서 A오빠 팔을 잡아 끌더니 "다른데로 가자" 라고 했다는거임. 의사도 간호사도 벙쪄 있다가 ㅎㅎㅎ왜그러세요 라고 했더니 존무대디는 그냥 A오빠 팔만 미친듯이 잡아 끌었다고 함. 근데 A, B, C, D 중에 A 오빠는 정말 순함. 우리 사촌오빠보다 순한 것 같음 존무대디가 그러는데에는 이유가 있겠지 ... 라고 생각해서 의사쌤과 간호사 언니에게 굽신 인사를 하고 "다음에 뵙겠습니다" 이러고 그냥 나왔다는 거임 ㅋㅋ 집에 돌아오는 내내 못볼 거 봤다는 듯이 정색하는 존무대디에게 A오빠는 춥다고 징징대지도 못한채 무슨일이냐고 계속 물어봤다고 함 존무대디는 그런 A오빠에게 집에 다왔을떄 쯔음에야 "불 탔어...." 라고 웅얼거렸다고 함. 순간 존무대디의 목소리가 너무 섬찟해서 A오빠는 뜻도 알아 듣지 못했지만, 그저 "그래?"  라고 대꾸하고 잊었다고 했음. 근데 여드름드름 브레이크는 정말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심해졌고 A오빠는 어머니의 극성 강추로 인해 제일 가까이 있는 그 피부과를 존무대디와의 일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다시 찾게 됌.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우리 사촌오빠와 같이 갔다고 함.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 사촌오빠는 그냥 같이 따라가 줌. A오빠의 말로는 그때 진료실에 있었던 간호사 언니를 보고나서야 그 때 불탔다고 중얼거린 존무대디의 말이 기억이 났음. 그래서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작성하고 간호사 언니에게 건내주는 순간 그냥 장난끼 어린 마음으로 "여기 불 난적 있어요?" 라고 툭 뱉어봤다고 했음. 근데 간호사 언니가 순간 멈칫 하더니, "네?" 라고 싸늘하게 되물어 봤다는 거임. 그래서 A오빠는 그냥, "여기 불 난적 있냐구요"라고 대꾸했음 근데 그 간호사 언니는 약간 사색이 돼서 "왜 그러시는데요"라고 했다 함. 언니 표정이 너무 안 좋아지는것 같아서 A오빠는 대충 둘러대고 우리 오빠와 함께 차례를 기다렸음 사람이 별로 없어서 한 2사람 뒤에 드디어 A오빠 순서가 왔음. 우리 사촌오빠는 당연히 같이 들어갔는데, 우리 오빠 정말 뻥 안 치고 들어가다 다리 풀려서 주저 앉음. 오빠 말에 의하면, 얼굴 부터 가슴께 까지 홀랑 타버린 무언가가 의사 어깨위에 팔을 두르고 있었다 함. 그것도 콧노래 비스무리 한 걸 부르면서 피부에 물집이 잡혀 터지고 살이 드러나서 근육이 보일랑 말랑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미친듯이 빙빙빙빙빙빙빙빙 돌리고 있었다고 했음. 그러다가 그 꼴을 보고 기겁한 우리 사촌오빠를 눈치채고 안 그래도 찢어진것 같은 입을 쫘아아악 벌리면서 낄낄 대더니, "이 자식이 날 태웠어! 낄끼릭기릮리끼낄끼릴ㄲㄲ릮리" 라고 주장했다고 함. 그리고 밖으로 나가는 간호사 등으로 옮겨 타더니, "이 년도 마찬가지야!! 꺄꺄깎락깔갈ㄲ띾띾랄깔깎ㄹ" 라고 속삭였다고 함. 덕분에도 A오빠는 우리 사촌오빠랑 가서도 치료를 못 받았음. 우리 사촌오빠가 하는 얘기를 듣다 못해 존무대디는 A오빠를 자기가 끌고 좀더 멀리 있는 피부과로 갔음. 그리고는 A오빠한테 "거봐...탔다니까..." 라고 중얼거렸다고 함. 그 병원에 도대체 무슨사연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음. 가보고 싶었지만 난 우리 사촌오빠 보다 겁이 많으면 많았지 덜 하진 않기에 관뒀음 ㅋㅋ [출처] 네이트판 _______________________ 무슨 사연인지 너무 궁금한데 알 수가 없네ㅠㅠ 입원중이던 환자였던 걸까 대충 시나리오는 그려지지만 모를 일이지... 불에 타 죽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고통이라던데 얼마나 아팠을까..ㅠㅠ 존무대디는 말이 많지 않아서 오히려 좋은 것 같아 아주 맘에 드는군 ㅎ 다음 얘기는 내일 또... 알지? 잘 자고 내일 또 보자!
퍼오는 귀신썰) 사촌오빠 친구썰 7화
안녕! 나 왔어! 다들 이번 주도 잘 보내고 있을까? 곧 설 연휴가 시작이라니 올해는 설이 좀 빨라서 더 시간이 빨리 간 기분이 들어 이제 빼도 박도 못 하는 2020년이니까 ㅋㅋ 마음 다잡고 살아야 겠다 다들 기지개 한 번 켜고 같이 존무대디 이야기 볼까? _______________________ 존무대디는 고양이를 두마리 기름. 검은 고양이 두마리 일 줄 알았는데, 둘다 약간 동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누런고양이 이라고 함... 진짜 검은 고양이 아니냐고 그러니까 "내가 그렇게 무섭냐?" 라며 핀잔 줌. 미안했음... 그런 뜻 아니였는데... 근데 무서운건 사실임....ㅋㅋㅋㅋㅋ 고양이를 좋아 하냐고 물어봤더니, 그냥 대체로 동물을 좋아한다고 함. 그래서 왜 강아지는 안키우냐고 물어봤더니, 키우고는 싶은데 사소한거만 나타나도 짖어서 자기 사는데에선 못기르겠다고 함. 반면에 고양이는 뭐가 나타나도 대체로 태도가 이렇다고 함: 뭐 어쩔, 니가 내 밥줄 잡고 있는 사람도 아닌데. 그런데 사실 못키운다는 이유에는 함축적인 뜻이 담겨 있었음. 존무대디가 초등학교 3학년때 쯤인가, 좀 먼 옛날의 얘기라고 함. 그때 당시 존무대디는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시는 관계로, 친할머니/할부지 댁에 내려가서 반년 정도 생활했다 함. 그리고 그 집은 아파트가 아닌, 작은 규모의 전원주택에 가까웠다고 함. 존무대디는 어린마음에 부모님이 자기를 버린 것 아닐까... 하는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생활하기 시작했음. 존무대디는 그래서 그 집이 위치한 시골동네 이곳저곳을 탐방하면서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음. 집 뒤쪽의 언덕을 올라가다 보면, 굴곡이 많고 소나무가 유난히 많은 작은 숲이 존재 했는데, 존무대디는 시원한 바람이 부는 그 곳을 유난히 좋아 했다고 함. 그런데 어느 순간 부터 그곳에 가기 싫어지게 돼었음. 시골동네를 가신 분은 잘 알겠지만, 저런 숲이라던지, 뒷산이라던지, 주위 나무가 많은 곳에는 오솔길 주변에 무덤이 상당히 많음. 그 동네에는 유난히 주인도 없어 보이는, 무덤인지도 모르겠을 정도로 풀로 뒤덮인 무덤이 많았다고 함. 심지어 비석까지 부식돼서 정말 초췌한 모습이였음. 가끔 저녁에 언덕을 오르면 시대와 동떨어지는 한복을 입은 할아버지가 뒷짐을 지고 존무대디 옆을 스쳐 지나가는 일도 종종 있었다고 했음. 계속해서. 같은 방향으로. 존무대디는 그런 할아버지나 사람들 보다는 정말 음침한 아줌마가 있었는데, 그 아줌마를 정말 싫어 했다고 함. 가끔마다 숲을 돌아 다닐 때면, 혼자 무덤에 앉아서 잡초정리를 하고 있는 아줌마가 계셨다고 함. 꼬질꼬질한 복장에, 하나로 묶었지만 많이 헝클어진 머리. 그리고 일 하는데에 불편해 보이는, 등에 두른 아기 포대기... 다행인건 존무대디가 지나가더 말던 자기 할 일만 열심히 하곤 했는데, 존무대디는 그 아줌마가 어쨌거나 저쨌거나 싫었음. 그러던 중 어느 날, 존무대디의 심심해서 미치기 일보직전인 마음을 눈치 챈건가, 할아버지가, 읍내에 나가시더니 왠 똥강아지 한마리를 데리고 오셨다 하심. 존무대디도 어렸을때는 어린애였나 봄 ㅋㅋ 털이 노릿노릿 해서 누룽지로 부를까 하다가 밥 먹는데 기분이 이상해서 [누룽]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함. 누룽이가 자신에게 익숙해 진지 어느덧 일주일. 존무대디는 완전히 친해진 누룽이와 함께 동네를 돌아야 겠다고 생각 함. 둘은 한참을 농경지를 돌다가, 시원한 언덕을 오르게 되었음. 그 날도 왠 할아버지가, 존무대디가 가는 방향 반대 방향으로 걸어오고 계심. 그런데 이게 왠 일? 누룽이를 본 할아버지는, 그 날 처음으로 갑자기 멈춰서서 존무대디를 가만히 노려 보더니 뒤로 돌아서 더 빠른 걸음으로 다다다다다닥 하고 가버리셨다고 함. 막상 누룽이는 개의치 않아 했는데 말임. 그리고 얼마나 올라갔을까, 존무대디가 돌아가야지...라고 생각한 순간 누룽이가 어딘가에 미친듯이 짖어대기 시작했음. 존무대디가 누룽이가 짖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에는, 무덤에서 풀을 하염없이 뽑던 그 아줌마가, 소나무 뒤에서 고개만 빼꼼 내밀고 그 둘을 바라보고 있었음. 그러더니 누룽이를 보더니,  검지 손가락으로 [쉿-!] 이라는 체스쳐를 취했다고 함. 순간 기분이 나빠진 존무대디는 누룽이를 안아들고 허겁지겁 집으로 내려왔음. 내려오는 도중에도 누룽이는 존무대디 품에서 버둥거리며 뒤를 보면서 미친듯이 짖어 댔다고 함. 집에 돌아왔을때 누룽이는 뭔일 있었음? 이라고 말하기라도 하는듯이 또 하염없이 순해졌음. 별거 아니겠지, 라고 생각한 존무대디는 여느때 처럼 밥을 먹고, 씻고,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음. 그리고 자다가 굵어지는 빗소리에 얼핏 잠이 깬 존무대디는, 악-소리도 못내고 침대에서 굳어 버림. 눈을 떴을때 시야에 들어온 건- 천장에 팔과 다리를 딱 붙이고 자신을 노려보는 산속의 그 아줌마 였음. 그 아줌마는 마치 시계의 초침처럼 고개를 좌우로 왔다갔다 거리면서 존무대디에게 계속 이렇게 말했음 [너 때문에 아기가 깼다 너 때문에 아기가 깼다 너 떄문에 아기가 깼다 너 때문에 아기가 깼다] 고개는 왔다갔다 거리면서 눈은 존무대디에게 딱 맞추고 그렇게 5년 같았던 몇분동안 그러다가 사라졌음. 다음날 존무대디는 학교를 가서도 집중도 못하고 수업이 끝나자 마자 집으로 허겁지겁 돌아와서 누룽이가 무사한 것을 확인했음. 그런데 누룽이 개집에 왠 꼬맹이 여자애가 엎드려서 존무대디를 쳐다보고 있었음. 그러더니 이렇게 말함: "너 때문에 아줌마 화 났다...히히히히" 존무대디는 그 길로 혼날 걸 알지만 누룽이를 들쳐업고 자기 방으로 튀어 들어갔다고 함. 그리고는 이불을 덮어쓰고 누룽이와 꼭꼭 숨는답시고 숨었음. 밭을 매고 돌아오신 할머니 할아버지는 존무대디를 겨우 진정시키시고 결국 누룽이를 집안으로 들이는 걸 허락 하실 수 밖에 없었음. 존무대디의 얘기를 들으신 할아버지는, 집안에 있는 떡, 술, 밥, 먹을 것을 바리바리 챙기시고 존무대디와 누룽이를 데리고 문제의 언덕으로 올라 가셨다고 함. 그리고는 걷는 족족 무덤이 보일 떄 마다, 챙겨오신 먹을 것과 술을 던지시며, 종종 "여보게들, 우리 새 식구 좀 잘 봐주시게" 라며 알 수 없는 말로 흥얼 대셨다고 함. 그리고 산 정상에 올라, 무덤풀을 메던 아줌마가 서 있던 그 큰 소나무 주변에도 술을 뿌리시고는 이렇게 말씀하겼다고 하셨음: "아기가 울면 이것만큼 좋은게 없지." 하시며 들고 왔던 음식중에 약과를 살며시 내려 놓으셨다고 함. 그 때문이였을까, 그 후에 존무대디가 누룽이를 데리고 산 속에 올라도, 그 아줌마는 보이지 않았다고 했음. 그리고 존무대디 곁을 맴돌며 돌아 다니던 할아버지도 더 이상 계속해서 나타나 존무대디의 동태를 살피는 듯한 짓은 그만 두셨다고 하심. 하여튼, 일은 일단락 됐지만 누룽이 이후에 존무대디는 개를 못 키우게 됐다고 함. 그 이후에도 누룽이가 조금이라도 짖어댔던 날이면, 무언가가 나타나서 존무대디에게 "보이지? 보이지? 보이지? 보이지? 보이지?" 라며 괴롭혀댔다고 했음. 그래도 이 사람 동물 진짜 참 좋아함... 지나가다가 동네 개만 보면 그냥 지나치는 일이 없다고 함. 자기 같은 사람들에게는 특히 그런 것들이 더 많이 꼬이기 때문에 자기가 강아지를 키우면 강아지도 불행해 질것이라고 믿음. ---------------------------------- 아직 날이 밝으니까 그냥 가벼운 얘기로 썼어요 ㅎㄷㅎ) 섭섭하신 분들은.......... 원래 글 올라오는 시간 것들이 더....괘...괜찮으시려나 ㅠ . ㅠㅎㅎ [출처] 네이트판 _________________________ 아 고양이 얘기 웃겼다 뭐가 보여도 뭔상관? 하는거 귀여워... 나도 고양이 키우고 싶은데 내가 잘 못 챙길 것 같아서 엄두가 안나더라 그나저나 존무대디씨 마음 참 여리네 ㅎㅎ 그 할부지는 좋은 할부진 줄 알았는데 그냥 처음 보는 애라 동태를 살핀 거였구나? 시골이라 텃세 부린건가 싶기도 하고... 그냥 바라는 건 모두 그저 행복하기만 하기를... 그럼 내일 또 올게!
퍼오는 귀신썰) 사촌오빠 친구썰 8화
연휴가 시작됐군! 다들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거나 오랜만에 푹 쉬고 있거나 그럴테지 이러나 저러나 심심할 테니까 같이 귀신썰을 볼까아? 시작하자! _______________________ 존무대디가 [니들 얘기나 써 니들 얘기나] 라네요. 아무래도 한편 정도는 말을 들어야겠죠 =_=?.. 그래서, 추석도 다가오는데 어렸을때에 추석에 대한 기억에 대해서 짧고굵게 쓰기로 함! (짜잔). 제가 이런말 해도 웃기겠지만.. 전 태어나서 가위를 눌려본 적이 한번도 없음. 전 편에 등장한 호치키스 보이를 가위라고 하면 가위겠지만 그 외에는 전혀 기억에 없음. 다만, 가위랑은 다른 기억은 있음. 친가쪽이 아직 경주에 거주 하고 계실적의 무렵임. 나는 외가쪽으로는 막내이지만, 친가 쪽으로는 남자사촌과 함께 제일 큰언니/큰오빠임. 추석때문에 친가쪽 가족이 다 모였을 때에 일임. 전에도 말했다 시피, 외가쪽은 옹기종기 다 모여 살아서, 외가쪽과 함께 지내다가 경주로 내려가 친가와 같이 지낼 수 있는 장점이 있음. 친가쪽은 경주라고 하지만, 아파트가 옹기종기 들어선 곳과는 거리가 멀었음. 논이 즐비한 진흙길을 따라 좀더 들어가면 나오는, 아직도 동네 전체 집들이 옛날 기왓집/초갓집 그대로의 형태를 유지한, 그런 마을이였음. 사촌동생 2명과 나, 그리고 나랑 나이가 같은 사촌남은 워낙 철도 없었고, 동네에는 같은 또래애들도 없었던 지라, 그 오래된 집에서 걸으면 10분 거리에 있는 큰 둔덕에서 비료포대 썰매를 즐겼음. 참 철이 없었긴 없었나 보옴. 그건 둔덕이 아니였음. 무덤이였다고 함. 경주에는 한국의 유물들과 함께 옛왕족들의 무덤이 즐비해 있는데, 잊혀진 무덤들도 참 많다는 사실을 몰랐음.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친가댁에서 애들 걸어 10분 거리에 위치 해 있던것임. 집에서 떠나 작은 논길을 따라 어느정도 걸어가서 작은 숲길을 따라 들어가면, 풀만 무성하게 자란 그 곳에 그 왕릉이 혼자 쓸쓸히 있었음. 그런데 세상에 애들 눈에 그게 어떻게 무덤으로 보였겠음. 그때 작자는 겨우 초등학교 4학년이였을 뿐임. (남들보다 좀 둔하기도 했음;) 가뜩이나 관리 하나 하는 사람들도 없었는데, 앞에 묘비도 아닌것이 돌램프같이 생긴건 그냥 희안하게 생긴 돌 내지는 장식이였고, 그건 그냥 우리들의 썰매 타는 장소 였을 뿐임. 어른들이 툇마루에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에, 당시 고시생이였던 삼촌에 방에 알아 듣지도 못하는 책을 뒤척이다 심심함에 지친 우리는, 곧 어두워 지는데 나가지 말라는 어른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비료포대 한장씩을 들고 풀썰매를 타러 나감. 얼마동안 신나게 오르고 내려오고를 반복했을까, 드디어 해는 져서 시퍼런 어둠이 몰려올 떄 더 놀고 싶다는 동생들을 끌고 사촌남과 나는 집으로 돌아가려 발길을 돌렸음. 그런데 이게 왠일. 3분도 걷지 않아 끝이 나와야 할 숲길이 아무리 걸어도 끝나지 않는 것이였음.... 날은 점점 어두워 지는데, 희미하게 끝이 보이는 숲길은, 아무리 걸어도 걸어도 끝이 나질 않았음. 사촌동생들은 슬슬 다리가 아프다며 칭얼 대기 시작하는데, 사촌남과 나는 뭔가 잘못됐다 라는 기분이 슬슬 들기 시작함. 얼마나 지났을까, 여자 사촌동생이 내 손을 꼭 잡더니 갑자기 이렇게 말을 함.. "언니 아까 여기 지나간데다..." 사촌남과 나는 흠칫 했지만, 애들이 놀래서 울기라고 하면 더 골치 아파 질것 같아서, 사촌남은 암말도 안하고 나는 "에이, 아냐. 어두운데 니가 그걸 어떻게 알아. ㅎㅎ" 라고 달래주었음. 그런데 내 옷자락을 잡고 분명히 사촌동생은 이렇게 웅얼거림. "아까 저기 서있는 아줌마 분명히 지나쳤었단 말야...." 쉣. 그 말에 사촌남과 나는 계속 발길을 재촉하다 우뚝 서 버림. 동생이 말하는 "저기"를 보고 싶었지만 그럴만한 용기따윈 없었음. 그런데 더 어린 다른 사촌동생이, 잘 됐다며 길을 물어보자고 보채기 시작했음. 아무 말도 못하는 나와 달리, 사촌남은 침착하게: "어디 계시는데?" 라고 최대한 안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 봄. 그러자 애가 이렇게 대답함: "모르겠어...갑자기 안보이셔..." 쉣. 그 말에 나는 찔끔 눈물을 보이고 말았음. 그런데 사촌동생의 손을 꽉 잡고 이상한 기분에 뒤를 돌아보니까, 왠 아줌마가 서계셨음 =_= 그러나. 난 다른 것 보다 어두운게 지긋지긋 하도록 싫은 아이였음. 그래서 진짜 동네 아줌마 같이, 선하게 생기신 분이 계시길래, 나는 괜시리 긴장이 풀려서 눈물이 쪼꼼쪼꼼씩 기어나오게 됨. 이상한게 아니었구나, 싶어서... "아줌마 저희가 길을 잃어버린것 같아요"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더니, 아줌마는 어꺠를 다독여 주시더니 이렇게 말씀해 주심: "애들이 어두운데 여기서 놀면 안되지. 아줌마가 길을 아니까 따라오렴." 그래서 나는 사촌남과 사촌동생들을 양손에 잡고 아줌마를 쫄래쫄래 따라가게 됨. 내 눈에는 구세주나 다름 없어 보였음. 사촌남 역시 겁에 질렸었는지 아무 말 없이 땅을 빤히 쳐다보며 걷기 시작했고, 말은 안해도 역시 겁에 질렸었다가 긴장이 풀렸는지, 동생들도 훌쩍훌쩍 울기 시작함. 얼마나 걸었을까, 나의 구세주는 우리를 숲 입구 까지 바래다 주심, 어둠을 빠져나오는 우리는 살았다!! 라는 기분으로 한숨을 푹푹 내쉬게 됨. "자, 이제 절대로 여기서 따로 놀면 안된다. 알겠지?" 라며 아줌마는 다독여 주심. 너무 감사한 마음에 "네, 감사합니다 ㅜ.ㅜ" 라고 연신 굽신거림. 그리고 저 멀리에서 우리를 찾는 가족들의 목소리가 들려옴. "아줌마도 애들이 기다리니까 가봐야 겠다. 여기선 혼자들 갈 수 있지?" 라며 아줌마는 다른 방향으로 발길을 돌리셨음. 당연히 우리는 어른들에게 발견 되었을 때 직살나게 혼이 나고 -_- 땀에 범벅이 된 바람에 아닌 밤중에 목욕을 하고 너무 지쳐서 잠이 들게 됨. 아니, 잠이 들 뻔 했음. 집안에 "애들방" 으로 마련된 작은아랫방에 들어가서 이불에 폭 들어갔는데, 동생들은 물론 먼저 곯아 떨어져 있었음. 근데... 깨어있던 사촌남이 더듬더듬 이렇게 물어봄: "도대체 아까 숲에서 누구랑 얘기 한거야..." 그 날 밤 잠을 못잤음. 생각해보니 애들 따위는 없는 동네였는데, 애들이 기다리니까 가봐야 겠다 라며 간 아줌마는 도대체 무슨 애들한테 간다는 소리였을까? 아마도 왕릉의 주인이 우리한테 화를 낸 건 아닐까? 그런데 그 분이 구해주신게 아닐까? 커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 많은 질문이 쏟아졌음. 동생들은 그걸 기억 못하지만, 사촌남은 생생하게 기억한다고 함. -------------------------------------------- 즐거운 추석 보내세요 ㅎㄷㅎ)/ 혹시 경주에 가시는 분들 계시면 절대로 이름모를 언덕에서 썰매 타지 마세요 무덤일지도 모릅니당 [출처] 네이트판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우리는 설날인데 마침 저 때는 추석이었나 보네 ㅎㅎㅎㅎ 신기하다 ㅎ 그나저나 진짜 그런 걸까 어디 감히 내 무덤을 밟아! 하고 단잠을 자는데 깨신 왕릉 주인분이 화가 나서 애들 골탕을 먹이려는데 아주머니께서 도와 주신 거. 애들이라 아무 것도 몰라서 그런 건데 좀 봐줘요- 뭐 그런거 ㅎㅎ 암튼 이 이야기는 이게 마지막이야 아쉽지. 원래는 9화까지 있었는데 그건 퍼다 놓은 사람이 없나봐 원글은 다 삭제가 됐고... 왜 다 지워 졌는지 궁금해서 찾아 보니까 이런 얘기가 있네 쓰니가 9화까지 쓰고서 연재 중단을 하겠다며 공지를 썼나 봐 정확한 워딩은 모르겠고, 기억하는 사람이 말하기로는 귀신들은 자기 이야기를 옮기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있대 그래서 이야기를 하면 안 좋은 일이 생긴다거나 하는거지 근데 이 이야기를 쓰던 도중 존무대디가 아프기 시작해서 쓰니가 자기가 글을 써서 그런 게 아닌가 싶어서 그만 뒀다고 하더라 그렇게 말하니까 괜히 나도 조금 죄책감이 든다 진짜로 그래서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을 하긴 하지만 괜히 이런 이야기 들으면 아닌 줄 알면서도 괜히 신경이 쓰이잖아 부디 지금은 괜찮아 졌기를 많이 아프지 않았기를... 다들 아프지 말고 연휴 잘 보내도록 하자! 새해 복 많이 받아!
퍼오는 공포썰) 실제로 본 싸이코패스썰
날이 너무 춥네 오늘 같은 날은 금요일이고 뭐고 따신 방 구석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귤 까먹는게 최대 행복 아닐까! 그렇게 따시면 노곤노곤하니까 무서운 썰도 곁들이고 말야 ㅎㅎ 그래서 오늘도 이야기를 가져와 봤어. 귀신썰은 아니고, 어쩌면 우리 주변에도 흔하게 있을 법 한 싸이코패스 이야기. 시작해 볼까? ______________________ 학창시절 부산에서 봤었던 싸이코패스 이야기 부산에는 동천이라는 도심 하천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제법 큰 강이었는데 도시가 개발이 되다보니까 그 면적이 꽤나 많이 줄었죠. 부산의 중심인 서면 언저리에서 부산항 쪽으로 길게 뻗은 하천이고 바다와 점점 가까워 지면서 수심이 깊어 집니다.  어린시절 동천의 하류지역인 문현동에 살았습니다.  학교 다녀오는 길에 동천 위로 놓여져 있는 다리를 건너 오는데 강 양쪽에 난간이 있고 그위를 재미삼아 올라가서 장난치던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애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걔들 끼리 장난치는 과정에서 난간위에서 놀던 애가 강으로 떨어져 버렸어요. 일반적인 하천과는 다르게 얕은 수심에서 점점 깊어지는 그런 식이 아니라 현대식으로 양측에 제방을 쌓고 정비를 해놓았기에 가엣쪽도 수심은 중앙과 별 다를 바 없는 깊은 수심을 가진 곳이었죠. 친구가 빠지가 놀란 친구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알렸고 구경꾼들이 삼삼오오 몰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친구들과 같이 그곳으로 향했죠. 그러는 와중에 초기에 발견했었던 옆에 있는 아저씨가 휴대폰을 들고 다급하게 여기 사람 빠졌다면서 빨리 와주세요 하면서 119에 신고를 했죠. 사람들이 꽤 많은 수십명이 몰려들었는데 당연히 구조될 줄 알았습니다. 도심 한복판을 흐르는 하천이고 경찰서나 소방서도 인근에 위치해 있거든요. 교통이 불편한 위치도 아니고요. 그런데 구조가 못되고 어린 학생은 익사하고 말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일단 주변 분들이 강에 들어가서 구조하려 했던 분이 없었습니다. 수영을 할수 있는 사람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알수가 없지만 그쪽이 물이 오염되어있거든요. 깨끗한 바닷물도 아니고 지금도 가보시면 아시겠지만 에메랄드 빛의 이상한 색을 띄고 있습니다.  게다가 상류쪽이 유흥가를 관통하면서 수질이 워낙 나쁜 곳이기도 하고요. 어차피 주변에 소방서나 경찰서(파출소나 그런곳)이 있기에 금방 와서 구해낼 줄 알았겠죠. 그런데 경찰도, 소방관도 오지 않았습니다.  주변에서 구경하던 나이좀 있으신 분이 처음에 신고를 한 사람한테 어디 신고 했냐고 묻더군요. 왜 119가 안오냐고요.  그러자 초기에 핸드폰 들고 얘기했던 아저씨가 하는 말이 자기는 119에 신고 한 것이 아니라 회사 직원한테 여기 사람이 물에 빠졌으니까 와보라고 (구경하자는 거겠죠?) 전화했다고 하더군요. 그제서야 주변사람이 119에 신고를 했지만 결국 119가 오고 난 후에 물에 빠진 학생을 건지기는 했는데 너무 오랫동안 허우적 거려서 익사했다고 하더군요. 그 자리에서 흰천을 덮어서 구급차에 싣고 떠났습니다.  어떻게 보면 누군가는 신고했겠지? 하는 방관자 효과일수도 있겠지만 거의 최초로 물에 빠진 학생을 목격했던 그 아저씨(전화통화한 사람)의 역할이 너무 뚜렸해 보였기 때문에 주변사람들은 굳이 신고할 이유를 못 느꼈을 것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보고 핸드폰을 꺼내들고 여기 사람 물에 빠졌으니까 빨리 오라고 흥분한 목소리로 통화하던 것을 봤으니까요. 저도 그걸 들었으니까요. 저도 거의 최초 발견자였음. 당시에는 핸드폰을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다니지는 않았어요. 확실히 고가의 제품이었기에 요즘처럼 초등학생, 중학생들도 핸드폰 들고다니는 시대는 아니었죠. 어른들 중에서도 사업이나 회사업무가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죠. 저는 그때의 그 아저씨의 행동을 생각하면 아직도 소름끼치네요. 사람이 빠져서 죽어가는데 빠진 학생들의 친구들이 119에 신고를 해달라고 하는데 저도 그 바로 옆에 있었기에 확실하게 들었거든요. <여기 범일교 옆인데 사람이 물에 빠졌어요 빨리와주세요>  딱 이렇게 들었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와보세요도 아니고 빨리 와주세요, 언어적 해석으로 보면 구조의 요청으로 볼 수 있는데 왜 회사 직원한테 빨리 와보세요도 아닌 빨리 와주세요 이런 식으로 얘기했을까요? 저를 비롯한 최초 발견자 몇몇 분도 그때 실수를 한게 그 사람이 119에 신고를 했다고 믿어버렸던 것이죠. 어쨋든 안타깝게도 어린학생은 수십명의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도심 한복판에서 죽었습니다. 주변인의 방관자 역할도 잘못이지만 최초로 목격하고 119가 아닌 회사사람에게 전화해서 그런식으로 흥분한 어조로 연기했던 그 싸이코패스,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네요. [출처] 학창시절(90년대 후반) 부산에서 봤었던 싸이코패스 이야기 txt. | 오유 ___________________________ +) 이 글에 달린 댓글 음... 정말 이상한 사람 너무 많아요. 저희 시어머님이 친구분이랑 하천변 산책을 매일 하시거든요. 며칠전 한창 가물때 계단 옆에 늘어선 목책 중 하나에서 연기가 피더래요. 주변은 다 마른풀이라서 불붙으면 완전 큰불이 날 상황. 그래서 근처 자전거도로를 달리던 인저씨를 급하게 세워서 죄송한데 그 물 좀달라고 여기 부어서 불을 끄자고 상황설명을 했더니 자긴 이동네에 안 살기 때문에 불나도 아무 상관없고 이 물은 자기가 이따가 마실 물이라서 줄 수 없다고 그냥 갔대요. 귀를 의심했어요. 어떻게 그럴수가.  하천 물이라도떠다 붓고 싶은데 손에다 떠 옮기기엔 거리가 꽤되는 곳이고 해서 어쩌지 하시는데 왠 학생이 자전거에서 내려서 물을 부었대요. 근데도 연기가 계속 피어올라서 결국 119에 신고했더니 와서 목책을 쪼개더래요. 어머님 말씀으로는 목책 안에 빈 공간이 있었는데 거기에누가 기름을 붓고 일부러 불을 놓은거 같더라고... 우리 주변에 어떤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이 그런 소름끼치는 짓을 하는걸까요. 이거 보니까 생각나네요. 저 고2 때 일인데요. 그때 컴퓨터 관련 수업을 하면 컴퓨터실 앞에서 2인1줄로 줄 서서 대기하고 선생님이 잠긴 컴퓨터실 문을 열어줘야 들어갈 수 있었어요. 지각 방지 겸 딴짓 방지하려고 그렇게 했거든요. 제가 당시 반장이라 애들 줄 세우고 선생님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애가 코피가 터져서 애들이 난리가 났어요. 셔츠에 피 묻고 애들도 휴지가 없어서 급하게 근처 간이교무실로 뛰어갔어요. (별관이라 간이교무실이 있었음) 거기에 선생님 한분 계셨는데 새로 부임한 여선생님이었어요. 급하게 사정 설명하고 휴지 좀 달라고 했죠. 근데 그 선생님 정말 표정 하나 안 바뀌고 말하길 "내가 왜?" 순간 너무 뜻밖에 당황해서 어버버했고 그 선생님은 태연히 자기 할일 하더라고요 그때 정말 너무 황당하고 소름끼쳤어요. 다행히 다른 애가 휴지 구해와서 해결하긴 했는데 그때 생각하면 정말 소름끼치고 그 선생이 어딘가에서 또 선생 노릇할거라 생각하니 그것도 소름이네요. 저도 하나... 고등학교때 학교축제준비로 체육관에서 댄스연습하다 학생이 하나 쓰러졌는데 구급차가 교문에 도착하니까 체육선생&수위가 운동장에 인조잔디 깔았다고 구급차 못 들어오게 난리쳐서 구조대원아저씨가 장비다 들고 운동장 가로질러 체육관 4층까지 뛰어올라가셨대요 체육관이 운동장 구석에 쳐박혀있는 구조.. 학생은 결국 병원서 사망했고 토요일 방과후 애들끼리 자율적으로 연습한거라 학교는 책임없다만 번복...의외로 많습니다 싸이코패스 ___________________________ 어우. 본문에 댓글까지 소름 돋는 사람들이 정말 많구나. 어쩌면 우리 주변에도 꽤 많이 있을지도 몰라서 더 무서워. 그냥 평소에는 쌔한 정도의 느낌만 주다가 저런 상황들이 되면 그냥 쌔한 정도를 넘어서게 만드는 사람들. 원글 댓글 중에는 그 신고한 아저씨가 일부러 사람들이 '신고했다고 믿게' 만든 건 아닐까 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더라. 사실 나도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고. 참. 이 카드 첫번째 이미지가 실제 이 글의 사고가 났던 하천이래. 저 정도면 아무리 수영을 잘 했더라도 쉽게 들어갈 생각을 못 했겠지.
퍼오는 귀신썰) 사촌오빠 친구썰 4화
다들 존무대디에게 빠졌구나! 나도 사실 그래 ㅋㅋ 이런 사람이면 나보다 어려도 오빠지 ㅎㅎㅎ 그럼 오늘도 존무대디의 활약을 같이 볼까? 시작! __________________________ 나를 소름끼치게 만든 사촌오빠 친구 (4-1) 정말 이번에 글 쓰다가 소름끼쳤네요 다 써갔는데 렉걸려서 인터넷 창이 꺼져서 지금 다시 쓰는 이 기분이란....ㅠ,ㅠ.ㅠ...ㅠ.ㅠ.ㅠ ------------------------------------------ 2. 피씨방사건 사촌오빠 곁에 있는 "일반인" 친구A,B,C,D중 "피씨방사건"은 B/C오빠에게 일어났음. 요 6명 (사촌오빠, 존무대디, A,B,C,D) 중에서도 B오빠와 C오빠는 정말 각별한 사이임. 성격도 참 잘 맞는거 같음. 둘이 같이 다니면 사람들이 칩멍크 브라더스라고 부름 ㅋㅋㅋ 시끄럽고 잘 놀아서. ㅋㅋ 둘을 보고 있자면, 어떻게 존무대디랑 잘 지내는지 모르겠음. 3은 정말 성격이 극과 극임... 하여튼, B오빠와 C오빠가 얘기 해 준 사건은, 피씨방에서 시작되었음. 둘은 존무대디와 같이 피씨방에 간게 아니였음. 둘이 같이 갔는데 , 이미 피씨방에서는 존무대디가 서x어x 이라는 총쏘는 게임을 하고 있었다 함. 그걸 이 칩멍크 브라더스가 가만 둘리 없었음 ㅋㅋㅋ 존무대디를 발견하자 마자 그 둘은 존무대디 의자 위에서 온갖 주접을 떨며 게임중계를 시작했다고 함 ㅋㅋ 물론 존무대디는 "왔냐 (피식)" 외에 반응은 해주지 않았음. 이 사람... 둔한건지 무심한건지 알 수가 없는 사람임... C오빠보다 체력이 쪼꼼 딸리는 B오빠는, 제 풀에 지쳐서 존무대디 오른쪽 옆에 있는 컴퓨터에 앉았는데, 그 곳에는 컴퓨터 모니터 앞에 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컵라면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음. 이미 누가 여기 자리를 틀었나... 라고 생각한 B오빠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바로 그 오른쪽에 있는 컴퓨터로 자리를 옮겼다고 함. 그런데 C오빠는 원래 호기심이 느무느무 충만 함. 컵라면을 보자마자 "오??" 라며 손을 뻗었음. 그런데 순간, 칩멍크 브라더스의 난리 부르스에도 옴짝달싹 안 하던 존무대디가, 정색을 하며 C오빠의 손을 낚아 챘음. 그리고 이렇게 말헀다 함: "그건 너가 건드릴게 아니야..." 존무대디가 너무 싸- 하게 말을 하니까, 괜히 머쓱해진 C오빠는 "내가 저걸 먹을 것도 아닌데 짜샤" 라며 B오빠 오른편에 자리를 찾았음. 그들이 모두 자리를 잡고 컴터를 시작한지 얼마나 됐을까, 컵라면은 식어 가는데 그 자리엔 아무도 오지 않았다 함. 대수롭지 않게 여긴 B오빠는 게임을 막 하다가, 화장실에 가기 위해 헤드셋을 뺐음. 그런데 헤드셋을 뺀 순간, 오빠의 귀엔 왼쪽 칸막이를 누가 긁는 듯한 소리가 들렸음. [트드드득... 트득....] 하고.. 그렇게 강한 소리는 아니였으나, "응?" 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는 크게 났다고 함. 이상하다 싶어서 B오빠는 의자를 뒤로 살짝 뺴서 왼쪽 칸을 빼꼼 쳐다봤음. 그곳엔 여전히 식어가는 컵라면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었음. 혹시나 해서 오른쪽에 있는 C오빠의 정황도 살펴 봤는데, 세상에 그렇게 열심히 게임을 하고 있을수가 없었다고 함. 그리고 긁는 소리는 분명히 왼쪽에서 났음. 너무 장시간 게임음악을 크게 오래 들어서 그랬나, 하며 B오빠는 그것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냥 화장실에 갔음. B오빠는 볼일을 보러 화장실 안쪽으로 다가갔음. 그런데. 오빠가 변기 쪽으로 다가가는데 좌변기실 문이 갑자기 콰당!!!!!!! 콰당!!!!!!!!!!!! 콰당!!!!!!!!!!!!! 하며 마치 오빠를 따라 오는 듯이 활짝 열린것임: 그냥 열린게 절대로 아니였다고 함. 오빠는 안에서 누가 문을 축구공 차듯이 찬 줄 알았다고 했음. 그리고 B오빠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얼어버림. 더 무서웠던 건, 문이 그 정도 힘으로 쾅!!! 하고 열렸으면 반동 떄문에 다시 돌아와야 하는데, 열린 그 상태로 꼼짝달싹을 안했음. 정말 10초가 1년처럼 느껴지 듯이 모든게 느리게 느껴지고,  다리가 떨려서 미치는 줄 알았다고 함. 나한테 비명도 못 지를 정도로의 공포는 처음이라고 했음. 그런데 오빠를 진짜 골로 보낸건 그 문 들 뿐만이 아니였음. 맨 끝에 있는 화장실 창고문. 화장실 청소도구 라던지 넣어놓는 공간 말임. 그 문이 안에서 잠겨 있었는지 그 문만 열리지 않았다고 함. 그 문만 미친듯이 덜걱거리기 시작했음. 그 때서야 B오빠는 "으..으으으..." 거리다가 자기 머리를 감싸쥐고, 다리가 풀려서 주저 앉은 뒤 "으아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름. 그 소리를 듣고 피씨방 알바생이 뛰어오고, 존무대디도 그 뒤를 따라 후다닥 들어왔음. 당연히 피씨방 직원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리가 없음. 그 들이 화장실에 뛰쳐 들어오자 덜걱거리던 창고 문이 그쳤다고 함. 그런데 존무대디는 들어오면서 B오빠를 보고 거울을 보더니 정색하고 다리가 떨려서 서지도 못한 B오빠를 어떻게 마구 끌고 나왔음. 그리고는 헤드셋 떄문에 B오빠의 비명을 듣지 못한 C오빠도 끌고 피씨방에서 당장 나가자고 했다 함. C오빠는 영문을 몰라서 "뭐야?? 뭔데??" 라고 까불다가 B오빠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입을 다물음. 존무대디는 나가면서 화장실에서 나오는 피씨방 알바생한테 한마디 했다고 함: 기다리는 그 학생, 이제 와도 온게 아니니까, 음식 같은거 올려 놓지 말라고... 바생은 그 소리를 듣더니 들고 있던 화장지 롤을 떨어뜨리고 망부석 처럼 서 있었댔음. 그리고 존무대디에게 무슨 소리냐고, 상당히 급한 말투로 다시 물어 봄. 거기에다 존무대디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함: "걘 이미 와 있어요, 형." 그 일이 있은 후로 B오빠는 몇일 간 화장실도 혼자 못 가고 잠도 못 잤음. 존무대디에게 도대체 그게 뭔 소리였냐고 물어봐도 말을 해주지 않았다 함. 몇날 몇일을 괴로워 하다가 B오빠는 C오빠를 끌고 용기내어 그 피씨방을 다시 찾아갔음. 그리고 알바생한테 도대체  그게 뭔 소리였냐고,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물어봤음. 그리고 더 스트레스 받아서 돌아가실 뻔 했다고 했음. 대략 이야기는 이러 했다 함: 몇달 전 부터 저녁에 유난히 피씨방을 자주 들락날락 거리던 남학생이 하나 있었는데, 차림새가 가면 갈 수록 가관이였다고 함... 딱 눈치가 집 나와서 배회하는 청소년 같았다고 그랬다고 함. 알바생 하던 오빠는 자신의 예전 질풍노도 같던 시기가 기억나서, 컵라면 하나쯤 씩은 올때마다 해 줄 수 있다며, 올때마다 라면 하나씩을 자기 사비로 사주곤 했는데 그 학생이 소심했던지 처음엔 물 담아주면 와서 가져다 먹더니 나중에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조용히 앉아만 있었다고 함 그래서 나중엔 그 학생이 잘 앉던 자리에 알아서 올떄 즈음에 항상은 아니라도 기억이 날때면 컵라면 하나를 셋팅 해주곤 했다고 함 그런데 피씨방 사건 2주전부터 그 학생 소식이 끊겼다고 했음.... 집에 돌아 갔나, 큰일은 없겠지, 싶어서 걱정을 하다가, 혹시나 해서 가끔씩 컵라면 셋팅을 해 놓고 기다려 봤다고도 함. 존무대디의 말을 듣고  컵라면 셋팅은 그만두고, 피씨방에 오는 비숫한 연령대 학생들한테 지금 수소문 중이라고 했음. B오빠랑 C오빠는 피씨방 형이 그 학생 못 찾을거라고 굳게 믿게 됨. 요즘 같은 험난한 세상에 피씨방알바 오빠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아직 그 곳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도 신기함) 존무대디가 그것에 관한 말을 더 이상 하지 않아서 짐작 밖에 할 수는 없음. 솔직히 조금 슬픈 얘기이기도 했음.. ----------------------------------- 그 일 이후에 B오빠도 저희 사촌오빠와 같이 큰 트라우마가 생겨서 - ㅅ -) 절대 피씨방 안간다네요. 저희 사촌오빠는 참고로 아직도 컴퓨터 방 들어가길 꺼려함. [출처] 네이트판 _____________________ ㅠㅠㅠ 그 학생에겐 어떤 일이 생겼던 걸까 슬프다... 피씨방 알바생 마음결이 정말 비단같은 사람이네 세상을 떠나고도 챙겨주던 그 형 때문에 피씨방에 와 있는 건가 보다 슬퍼라 ㅠㅠㅠㅠㅠㅠㅠㅠ 좋은 일이 있었던 것 같진 않고...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모두가 편히 살 수 있는 세상이라면 참 좋을텐데 후... 암튼 내일도 같이 보자!
퍼오는 귀신썰) 사촌오빠 친구썰 5화
오늘 하루도 잘 보냈어? 별 일 없는 하루하루가 쌓여서 불안하지 않은 요즘이 되면 좋겠다 단단한 마음이어야 귀신썰 보고도 겁을 안먹지 ㅎㅎ 물론 난 아직도 불을 켜고 자긴 하지만 ㅋ 그럼 오늘도 이야기 같이 볼까?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나를 소름끼치게 만든 사촌오빠 친구 (5) 3. 학원 편 존무대디는 이성친구가 정말 쪼금밖에 없음. 하지만 존무대디에게 유일하게 "친한친구" 라고 불리우는 언니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D언니임. (짜잔! 다들 오빤줄 알았죵?) D언니는 존무대디와 성격이 비슷함ㅋㅋ 극도의 침착성을 소유 하신 멋진 언니심. 개리 평온함 뺨침ㅋㅋㅋ 다른점이 있다면, 일반인 이라는 것 정도. 이번 얘기는 D언니가 다니는 학원으로 부터 비롯 됨. D언니 집안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별로 좋지 못하심... 그래서 동네 근처에 있는 작은 학원 하나만을 다닌다고 함. 근데, 학원도 "학원" 이라 하기엔 좀 쑥쓰러운게, 선생님도 맨날 지각하고, 공부하다 궁금한거 있으면 물어봐라 식이라서 모두가 "도우미 있는 도서실" 이라고 칭한다 함 그 "학원"은 2층 건물의 2층에 위치 해 있었는데, 들어가는 입구도 무슨 네덜란드 집 처럼 비좁음;;; 문 들어가면 폭이 좁은 계단이 전부라고 함. 1층은 왜 만들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음. 학원에는 방이 꼴랑 2개인데, 방 하나는 뭐 "선생님들" 용이고, 나머지 하나는 소위 "자습방" 이라고 함. *실제로 방은 정말 작고, 물건들 사이의 거리도 상당히 가깝다고 함 언니는 그 날 학원에 원래 수업시간인 10시보다는 조금 늦은 10시 20분 쯤에 도착했다고 함. 그리고 방 안에는 그 학원에서 만난 친구가 혼자 공부 중이였음. 학교가 오늘은 어쨌네 저쨌네 하며 떠들다가, 언니는 교탁 바로 앞 중간에 위치한 책상에 자리를 잡았음. 그리고 책을 펴서 공부를 시작한지 한 30분 정도가 지났을까, 갑자기 옆방에 있던 선생님한 분이 오셔서 문을 벌컥 열고 약간 짜증난 말투로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함: "도대체 뭐하는거야!! 귀도 안아프냐!! 멀쩡한 칠판을 왜 자꾸 긁어??" 앉아서 공부만 하던 D언니와 학원 친구는 급당황 했음. 아니, 방에는 둘 밖에 없고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옆방에서 들릴 정도로 둘이 칠판을 긁었다고 주장하는 선생님의 말이 이해가 될리 없었음. "밖에서 들리는 소리 잘못 들으신거 아니에요?" 라고 D언니는 대충 둘러대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음. 선생님은 "아 뭐야 진짜..." 라며 교탁 앞에 자리를 청하셨음. 그리고 또 시간이 흘렀는데, 그때가 몇시 쯤이였는지는 시계를 보지 않아서 정확히 기억이 안난다고 함. 하여튼, 교탁앞에 앉아서 책을 뒤적이시던 선생님은, 갑자기 두 언니들에게 또 "야, 이거 뭐야..." 라고 하셨음. 뒤에 앉아 있던 학원친구는 보지 못했지만, 앞에 앉아 있던 D언니는 선생님이 교탁위를 보며 인상을 찡그리길래 살짝 일어나서 교탁위를 봤음. 그리고 살짝 놀랐다고 함: 나무로 만들어진 교탁 위에, 짧지만 뭔가가 긁어 놓은 듯한 자국이 5~6개 정도 만들어져 있었음. 아까 누가 자꾸 칠판을 긁냐며 짜증을 내던 선생님의 모습이 기억나서 D언니는 순간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고 함. "뭐지? 아까는 이런 자국 없었는데?" 라고 선생님도 그 긁힌 자국을 손가락으로 따라 그어 보았다고 하심. "원래 있었는데 선생님이 못 보셨나 보죠~ 나무 책상 긁히는게 어제 오늘 일인가요" 라고 D언니는 대꾸했지만 사실 불안한 기분은 감출 수가 없었다고 함 이유인 즉슨, 긁힌 자국이 오래 된 것이였다면, 그렇게 자국 주위에 나무가루가 (톱밥같은) 즐비해 있을 수가 없었다는 거임. 설마 사람이 방안에 3명이나 있는데 무슨일이야 있겠나.. 싶어서 어차피 집에 갈 시간도 다가와 오는데, 괜히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공부나 하자 라고 D 언니는 그것마저 쏘쿨하게 넘김.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존무대디에게서 [야너어디] 라고 문자가 왔다고 함. 언니는 가뜩이나 기분도 찝찝해 죽겠는데.. 라고 생각하며 [학원 ㅇㅇ] 이라고 답장을 대충 쳤음. 그런데 갑자기 전화를 시계로도 안쓰는 존무대디가 전화를 마구 걸기 시작함. 존무대디에게 있어서 휴대폰이란 가끔 컴터 옆에 두면 마우스로 헷갈려서 집게 되는 물건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아는 D언니였기에, 큰일이 났나 싶어 전화를 받았음. 전화를 받았더니 존무대디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고 함: [공부도 그 많이 했으면 됐을테니까, 그냥 나와라] D언니가 "왜??" 라고 하니 존무대디는 [그냥 나와- 꿈자리가-] 이라고 말하다가 갑자기 말을 끊었다고 함. 그리고 몇초가 흘렀을까. D언니는 갑자기 한기가 느껴지고 뒷목에 소름이 돋았다 했음. 그런데 그 순간, 존무대디가, 정말 위협적인 목소리로 느릿느릿 이렇게 말했다고 함: [같지도 않은게 왜 남에 통화를 엿듣고 있어?......] D언니는 그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등골이랑 목뼈가 빳빳해 지는 기분이 뭔지 깨달았다고 했음. 존무대디에게 뭐라 할지 몰라서 전화도 못 끊고 있던 언니에게, 그는 [정말 나와야 되겠다고 생각이 안들어?] 라고 물었다 함. 그때 언니는 머릿속에 "아...." 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고 함. 아까부터의 불안이 뭔지 깨달았음: [지금 나는 여기에 있으면 안됀다.]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요동을 치기 시작한거임. 언니는 두말 할 것도 없이 가방을 챙겼음. 학원친구에게도, 선생님에게도 우리 나가자고 다급히 부탁했지만 이해를 못 한 그 둘은 왜 그러냐며 웃었다고 함. 선생은 급한 일 있으면 가봐도 됀다고 손을 휘저었다고 했음 답답했지만 왠지 모르게 극도로 밀려오는 공포에 언니는 계단을 차근차근 내려와서 학원 건물 밖으로 나왔음. 그리고는 뒤돌아 봤는데... 그 순간 언니는 일평생 쌓아 온 "침착성"을 한번에 다 날려 버림. 뒤를 돌아본 언니에 시야에는, 좁은 학원문과 그 뒤에 학원으로 올라가는 약간 어둑어둑한 계단이 들어왔는데... 계단 위 2층으로 꺾어지는 그 부근에, 분명히 왠 여자가 난간을 두 손으로 붇잡고  앉아서 키득키득 거리는 모습이 보인것임. 그 여자는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킬킬 거리다가, 기어서 윗층으로 올라갔음. 그 모습에 질겁을 한 D언니는, 아직 학원 안쪽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빨리 내려와 달라고 울먹임. 들어가지도 못하겠고, 친구가 알았다고 한 뒤 전화를 끊고 밖에서 발 만 동동 굴렀다고 함. 그런데 갑자기 윗층에서 비명 소리가 들리더니 선생님과 친구가 미친듯이 뛰어 내려 왔음. 둘다 얼굴이 창백하더니 내려 와서도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지겼다고 함. 도대체 왜 그러냐고 했더니, 윗층에서 D언니의 전화를 받고 밖에 무슨 일이 있었나 싶던 학원친구와 선생님이 내려 가 보려는 순간, 방 뒷편에 얌전히 걸려있던 작은 거울이 미친듯이 양 옆으로 왔다갔다 거리더니 그 대로 밑으로 떨어져 깨어져 버렸다고 함. 언니랑 학원친구는 정말 뒤 돌아보기도 무서워서 둘이 소매를 꼭 잡고 버스에서도 떨며 집에 돌아왔다고 함. 집에 와서는 긴장이 풀려서 펑펑 울어 버렸다고 하는데, 밤 늦게 귀가한 딸이 얼이 반쯤 빠져서 갑자기 펑펑 우니까 D언니 부모님은 밖에서 요즘 안그래도 흉흉한데 나쁜일을 당하고 오신 줄 알고 놀라서 같이 우심;;; D언니는 조금 진정하고 부모님한테 자초지종을 대충 설명하고 나서 존무대디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음. 도대체 무슨 꿈을 꿨냐고 물었더니, 존무대디의 사정은 이러했음: 웬 공부 방 인듯 한 곳에, 다리를 못 쓰는 듯한 여자가 쓰러져 있었다고 함. 그 여자는 방안을 마구 기어 다니다가, 방 안에 있는 걸 잡아서 일어서려고 하는 듯 해 보였는데, 칠판에 분필 두는 곳을 잡더니, 일어서려고, 끼이이이기이기이기기이이기기기기긱 소리를 내며 칠판을 긁어 댐. 그러더니 기어코 방안에 있는 책상들을 잡아 지탱삼아 휘청휘청 방안 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댔음. 그러더니 갑자기 D언니 이름을 부르며 기괴하게 웃기 시작했는데, 그 순간 존무대디는 꿈에서 깬 것임... 그리고 그 길로 D언니에게 연락을 취한것이였음. D언니는 그 일 뒤로 두번다시 그 건물 가까이도 가지 않았음. 존무대디는, 그 여자 다리를 못쓰는 걸로 봐서는 지박령인듯 하니, 괜찮을 거라며 언니를 달래 줌. D언니는 선생님이 그때 들었던 칠판긁는 소리가 헛소리가 아니였을거라고 굳게 믿게 됌. 그리고 나는 존무대디가 왠지 더 무서워졌음.... ------------------------------------ 휴 ' ㅅ ');;; 이번 얘기는, 읽으시는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제일 소름 돋아요; [출처] 네이트판 _____________________ 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칠판을 긁어댄 거였구나 얼마나 한이 맺혀 있으면 물리적인 힘을 가할 수 있었던 걸까 무서워... 이런 거 보면 내가 귀신을 본 적이 없어서 너무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 평생 볼 일 없었으면 좋겠다 ㅋ 그럼 내일 또 같이 보도록 하자!!!!
퍼오는 귀신썰) 재래시장에 온 구미호 이야기
역시 귀신썰은 우리나라 귀신썰이 최고지 그래서 오늘도 우리네 전통 귀신ㅋㅋ 구미호 이야기를 가져와 봤어 뭔가 친근하긴 한데 남자 간 뽑아먹는 이야기 말고는 잘 모르는 게 구미호잖아 오늘 우리가 함께 볼 구미호는 어떤 이야기 속의 구미호일까? 궁금하면 같이 보자 ㅎㅎㅎㅎㅎ __________________________ 나는 어릴 때부터 영안이 트여서 재래시장에 살 때, 그 동네 무속인 할머니도, 접골원 할아버지도 애 잘 키우라고, 애 주변에 애 홀려가려고 하는 게 많다고 엄마아빠한테 직접 여러번 말했어 실제로 어릴 때 나는 재래시장에서 그 사람 많은 골목에서 살았는데 저녁 장 보기 전이나 저녁 장을 다 본 후에 자꾸 손님왔다고 옆가게 아줌마한테 말해주고 그랬다고 했어 정작, 손님은 없었지.. 하루는 건어물을 파는 가게 할머니네에 밤10시가 넘었는데 긴 생머리에 하얀 원피스를 입은 손님이 온 거야 그런데 가게 들어가는 문턱을 넘지 못하고 계속 밖에서만 왔다갔다 하길래 내가 다가가서 (그땐 재래시장이 잘 되어서 밤11시에 문닫고 막 그럴 때였어 ㅋㅋㅋ 90년대 초반에 ㅋㅋ) 아줌마 뭐 사러 왔어요? 할머니 불러드려요? 라니까 아줌마가 깜짝 놀라더라고 그런데 자긴 들어갈 수 없으니 북어포 한마리만 사다달라는 거야 내게 돈 만원을 주고 대신 사달래 그래서 이상하지만 워낙에 시장에서 잔심부름을 많이 했던 터라 할머니~ 손님이 북어포 한마리만 달래요~ 그러고 가게에 들어갔지 근데 방에서 할머니가 나오면서 아니 어떤 손님이 이 밤에 북어포를 다 찾아~ 하며 나오면서 나한테 북어포를 봉지에 담아주고 난 돈을 주고 거스름돈을 받아들고 나왔지 그리고 손님한테 북어포랑 잔돈 주면서 여기요~ 할머니가 밤에 티비 봐서 밖에 불러도 잘 안 나와요~ 담엔 그냥 문 열고 들어가서 부르세요~ 라고 말하고 나는 우리집에 갔지~(참고로 우리집은 옷가게를 했어~) 그런데 잔돈은 너 가지라고~ 심부름 값이라며 정말 고맙다고 하곤 골목 위로 사라져버렸어~ 그런데 다음날, 학교 갔다오니 시장이 발칵 뒤집어진 거야 무슨 일인지 어른들 틈바구니에 끼어서 들어보니 건어물 아줌마네 금고통에서 만원짜리 칸에 나뭇잎이 나왔다는 거야 그래서 이상하다고 난리가 난 거지~ 왜냐면 건어물 아줌마네는 애들이 없거든 그래서 그런 장난칠 애들이 없는데 만원이 돈통에 들어가 있으니 이상한 일이 벌어진 거지 그런데 동네 무속인 할머니가 내 뒷더미를 잡아채더니 너 어제 뭐 했어? 누구 만났어? 그러는 거야 -_-;; 그래서 어제 뭐하긴요~ 심부름 하고 숙제하고 동네에서 놀았다고 했더니 그거 말고 너 어제 누구 만났잖아~ 그제야 하얀 원피스 입은 아줌마가 생각나서 아~ 아줌마 심부름으로 북어포 사다줬어요~ 했더니 무속인 할머니가 날 질질 끌고 가더니 대나무 이파리로 날 찰싹찰싹 때리더라고 그리고 팥도 뿌리고;; 알고 봤더니.... 그 하얀 원피스 입은 아줌마는 구미호였던 거야 그런데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지만 아마 그 동네가 갑자기 시장이 들어서면서 산이 밀리고 이러면서 새끼를 아마 잃은 모양이라고 그런데 잃어버린 날이 그날이었는지 북어포를 사서 차려주고 싶어서 산을 내려왔는데 건어물집 할머니 가게 들어가는 문턱에 부적이 있어서 못 들어가고 밖에서 서성였던 거였어 근데 내가 보고 대신 사다주고-_-;;; 흰원피스 아줌마가 낸 만원은... 나뭇잎이었던 거고... 잔돈은 나 줬는데............나만 이득을 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그 이후가 더 웃긴 게.... 우리 초등학교 뒷산에 여우가 산다는 이야기가 있었거든 그래서 다들 가기 싫어하고, 여우가 아이들 길을 잃게 만들어서 미아로 만든다고 그랬거든 실제로 산에 갔다가 길 잃어버려서 파출소며 시장 사람들이 단체로 찾으러 다니기도 했고 근데 이상하게 난 겁나 길을 잘 찾았어............................... 없던 길도 내가 가면 결국 길이 나왔어 그리고 소풍을 가면 보물찾기 1등은 나였어.... 지금은 그나마 있던 산도 밀어버리고 수변공원을 만들었는데 난 되게 아쉬워서 아직까지 거길 가보지 않았어 그냥 뭔가 누군가의 터를 빼앗은 기분이 들어서 못 가겠더라고 늦여름에서 가을께였는데... 그 구미호는 아직도 북어포를 사러 시장에 내려오는지 모르겠어 잘 지냈으면 좋겠는데.... [출처] [공포경험] 재래시장에 왔던 구미호 _________________________ 뭔가 귀여우면서 또 슬픈 이야기였다 그치 먼저 보낸 아가 챙겨주려고 북어를 사러 오는 구미호도, 아무 것도 모르고 마냥 해맑은 글쓰니도 다 뭔가 반짝반짝한 느낌이네 다들 이렇게 어울려서 맑게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결국 사람은 누군가의 터전을 뺏고 누군가는 죽고 아파하고 상처받고 하지만 또 사람 덕에 위안 되는 일들도 있으니 위안을 줄 수 있도록 착하게 잘 살아 보자! 곧 또 올게
[퍼오는 귀신썰] 개구리 노래의 진실
다들 무사히 잘 있기를 확진자가 벌써 5000명이 육박했더라 그 중 대구 경북만 4000명이 넘으니 원... 대부분 신천지발이긴 하지만 주변의 누가 신천지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으니 조심하는 수밖에 없네 집에 어르신이 있는 경우엔 더 조심하고. 그럼, 오랜만에 같이 귀신썰 볼까? _________________________ 어느 연말에 있었던 일입니다. 회사 선배로부터 초대를 받았습니다. "연말연시에는 고향으로 내려가는데, 괜찮다면 우리 집에서 같이 새해 맞이할래? 재밌는 행사가 있거든. 한 번쯤 보여주고 싶었어." 그 사람은 나보다 연상이었는데 너무 편하게 대해주는 사람이었고, 입사했을 때부터 여러 가지로 귀여워해 주셨습니다. 일로도 개인적으로도 많이 보살핌을 받았고, 이곳저곳 데려가 주기도 했지만, 멀리까지 가자고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모처럼의 귀성길이고 가족끼리의 연말연시에 방해가 되지는 않을까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까 오라고 하셔서, 나는 고향에 돌아갈 예정도 없었기 때문에 초대에 응하기로 했습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12월 29일~31일에 선배의 고향에서는 행사가 있는데, 송년 행사를 겸해 그것을 보러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회사는 29일에 마무리를 하고 휴가가 시작되는 건 30일부터입니다. 행사에 대해서 조금 더 물어보니 "우리 마을에서 매년 열리는데, 마을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 선택되면, 그 사람을 위해서 열리는 행사야. 0시가 지나면 시작하니까 정확히는 30일~설날까지 사흘 동안 열리는 거야." "심야에요? 그렇게 늦은 시간에 어떤 걸 하는 거예요?" "그건 직접 볼 때까지 기대해. 올해는 우리 어머니가 선택되셔서 나랑 아버지랑 너무 기뻤어." "그러셨어요? 잘은 모르겠지만, 그런 때 제가 있으면 역시 방해가 되는 게 아닐지..." "괜찮아괜찮아, 우리 가족들은 상관 안 할 거야. 한가한 곳이니까 마음 편히 와도 돼. 쉬는 건 30일부터니까 첫날부터는 못 보겠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몰랐지만 왠지 흥미롭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그 행사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을 알아채고는 "혹시 처음부터 보고 싶으면, 29일 일 끝나자마자 바로 가는 것도 괜찮지. 나도 처음부터 보여주고 싶고. 일 년에 한 번뿐이기도 하고, 올해는 겨우 우리 어머니가 선택받으셨으니까." 라고 했습니다. 가능하면 그렇게 해보고 싶었지만, 너무 호의에 기대기만 하는 것도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 결국 30일에 가기로 했습니다. 선배는 조금 안타까워했지만 내 맘을 이해해주어서 30일부터 1일까지 선배의 집에서 지내기로 했습니다. 당일, 아침 9시. 선배의 차를 타고 목적지로 향했습니다. 선배의 고향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차로 3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가는 길에는 느긋한 마음으로 대화를 하면서 어떤 행사일까 기대감이 커지고 있었습니다. 얼마 정도 가서 경치가 바뀌었을 때, 선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제, 비 온 거 알아?" 선배 말처럼, 전날 29일은 밤늦게까지 비가 내렸습니다. 엉뚱하게 흐름을 끊는 말도 아니고, 일상적인 화제였지만, 어딘가 모르게... 위화감이 느껴졌습니다. "늦게까지 오더라고요. 오늘은 그쳐서 다행이네요. 행사에 비가 와도 괜찮을까요?" "뭐, 괜찮아. 어젯밤에는 예정대로 진행됐어. 사실은 말이야, 나 어제부터 내려갔어서 좀 피곤하네. 회사에서 바로 집으로 내려가서 밤중에 그거 하고 끝난 뒤에 다시 여기로 너 마중하러 올라온 거잖아. 지금 엄청 졸려." 그렇게 말하고 크게 하품하는 선배에게는 좀 전에 느꼈던 묘한 위화감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일상적인 대화를 하며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12시 정각쯤 되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차에서 내려, 선배의 집으로 눈을 돌린 순간, 흠칫 놀랐습니다. 선배의 본가는 오래된 저택처럼 넓은 집이었는데, 집 앞 마당에 웅덩이가 있었습니다. 잉어를 기르는 연못과 같은 크기로. 자연적으로 저렇게까지 크게 생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거기 있던 것은 몇 번을 봐도 부자연스럽게 느껴졌습니다. 흙탕물을 채운 욕조 같은,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이건 대체 뭐지... 그런 생각으로 어리둥절해 있으니 "이것도 행사에 관계된 거야~ 일단 떨어지지 않게 조심해. 꽤 깊으니까." 라고 했습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일단 집 안으로 안내를 받았습니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안쪽에서 여자가 달려 나왔습니다. "늦었네. 아, 이 분이, 손님?" 선배는 그렇다고 대답하며 나를 향해, 그 여자가 어머니의 언니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인사를 끝마치고 점심 식사를 차려놓으셨다며 안쪽으로 안내를 받아 점심을 대접받았습니다. 식후에는 거실에 있던 선배의 아버지와도 인사를 나누고, 선배가 옛날에 쓰던 2층 방으로 안내되었습니다. 방에 들어가서 한숨 돌린 후 문득 창밖을 보다 어떤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웃에 집이 몇 채가 보였는데, 마당에 큰 구멍이 있는 집이 몇 채 있었습니다. 웅덩이가 아닌, 텅 비어있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었습니다. 신경이 쓰여서 선배에게 물었습니다. "아~ 그건 선택받기를 기다리는 집이라는 거지. 구멍이 없는 집은 한 번이라도 가족 중에 누군가가 선택받았거나, 지금은 필요하지 않다는 거고. 선택받은 집은 아까 봤듯이 구멍에 물을 채워서 커다란 웅덩이가 되는 거야. 선택받은 사람은 일이 많아. 어머니도 지금 준비하시느라 집에 안 계시는 거고." 지금 생각해보면, 이때부터 어딘가 이상한 공기가 감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선배의 설명을 들어도,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짐작이 되지 않았습니다. 애당초 축제를 보는 기분으로 즐길 수 있는 행사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뭔가 이상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런 실례되는 말을 꺼내지는 못한 채, 나의 지나친 생각이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그날은 행사가 시작될 때까지 느긋하게 있게 되어서, 전날 거의 잠들지 못했던 선배는 잠들었고, 나는 선배의 이모님과 얘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밤이 되고 저녁을 먹고 목욕을 마친 후, 행사가 시작하기를 멍하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 선배 어머니의 모습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11시를 지났을 무렵, 상황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넷이서 시시한 잡담을 하고 있었는데, 전화가 울렸습니다. 10분 정도 얘기를 하시던 이모가 전화를 끊고, 선배와 선배인 아버지에게는 "슬슬 준비해야 되니까 다녀와" 라고 하셨고, 나에게는 "ㅇㅇ씨는 여기 있어요. 나도 같이 있을 거니까" 라고 했습니다.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네"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선배가 욱한 표정으로 이모님께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갑자기 험악한 분위기가 되어 두 사람이 말다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모, 어제도 집에 남아있었잖아요. 왜 그러세요?" "몇 년 전부터 누누히 말해왔잖아? 나는 인정할 수 없어. 그렇게 꼭 할 거면 너희들끼리 하라고." "겨우 어머니가 선택받았는데 아직도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이모도 선택 받았었으면서. 오늘도 엄마는 계속 준비하고 있는데." "나는 너희들과는 달라. 됐으니까 빨리 가기나 해" 나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서 갈 어찌할 줄 몰랐고, 낮에 느꼈던 불안감이 점점 커져갔습니다. 잠시 두 사람의 말다툼이 계속됐지만, 선배가 시계를 보더니 입을 다물었고, 그제서야 말다툼은 끝이 났습니다. 잠자코 보고 있던 선배의 아버지는 도중에 먼저 나가버리셔서 초조해진 선배는 허둥지둥 나갈 준비를 하고 현관으로 향했습니다. "어제보다 더 힘이 난다~ 지금부터 어떤 일이 있을지 기대해!" 나에게 그렇게 말한 선배가 나갔습니다. 선배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 그 순간, 갑자기 이모님이 서둘러 현관 열쇠를 잠그고, 내 손을 잡고 거실로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내 얼굴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얘기하기 시작했습니다. "ㅇㅇ 씨,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요. 벌써 0시가 지났네. 이후 1시가 되면, 어떤 일이 시작돼요. 이대로라면 당신은 희생자가 되는 거고."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습니다. "네? ...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어요..." "자세한 건 나중에 얘기할게! 어쨌든 지금은 해결하기 위한 얘기를 해줄게요. 이렇게 되어버린 이상, 당신은 그 행사를 보지 않으면 안 돼요. 1시가 되면 2층으로 가서, 창문으로 밖을 보도록 해요. 무슨 일이 있어도, 마지막까지 보지 않으면 안 돼요. 단, 말을 걸거나 해서는 안 돼요. 그저 보고, 듣기만 하면 돼요." "듣다니요? 듣다니 뭐를 말인가요? 대체 무슨 일인 거예요!!!" "노래.. 그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는 거예요. 반드시 마지막까지 듣지 않으면 안돼요. 귀를 막거나 하지 않고 끝까지. 알겠죠?" 이젠 뭐가 뭔지 모르겠고, 그저 울고만 싶었습니다. 어째서 터무니없는 일에 휘말리게 된 것인지.. 어찌해야 좋을지.. 머리가 지끈지끈 거렸습니다. 이모님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괜찮아요" 라고 해주셨지만, 누구를 믿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 사이에도 점점 시간은 다가오고.. 결국, 이모님이 말씀하신 대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점점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기 시작했습니다. 어쩌지... 어쩌지....... 그러는 사이에 1시가 가까워졌고 이모님이 어서 2층으로 가라고 재촉을 하셨습니다. 같이 가주실 수 있는지 부탁드려봤지만, "나는 어디 안 가고, 여기 있어요. 노래가 끝나면 바로 내려와요. 모쪼록 아까 말했던 것을 잘 지켜야 해요." 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도망가고 싶은 발걸음으로 등 떠밀리듯 2층으로 올라가 낮에 있었던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창밖을 볼 수가 없었고, 그저 웅크리고 앉아 떨고 있었습니다. 너무 싫어 무서워 그런 생각뿐이었습니다. 5분... 10분... 얼마나 그렇게 앉아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너무너무 길게 느껴졌습니다. 문득, 무언가 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얘기하는 소리? 고함소리? 나는 무의식적으로 창으로 다가가, 밖을 내다봤습니다. 창밖, 그 웅덩이 주위에 어느샌가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습니다. 아이도 어른도, 여자도 남자도. 10대로 보이는 아이, 대여섯 살 정도의 아이도, 50세 정도의 고령자... 스무 명 정도가, 아니 어쩌면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그 사람들은, 방금 전까지 비라도 맞은 듯 옷도 몸도 흠뻑 젖어있었습니다. 꼼짝도 않고, 전원 물웅덩이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슨 말인가를 하고... 있다.... ? 겁에 질려 굳은 채로 그 광경을 보고 있으니, 점점 확실히 들려왔습니다. 불길하게 들리는 그 소리에 당장이라도 귀를 막고 싶었지만, 이모님의 말을 믿고,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노래였습니다. 이모님이 말씀하신 대로, 확실히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 들려왔습니다. 몇 사람의 목소리가 묘하게 뒤섞여 기분 나쁜 멜로디가 노이즈같이 머릿속에 울리고 있습니다. 들리는 가사는 이랬습니다. 돌아갈 수 없는 아이는 어디에 돌아갈 수 없는 아이는 연못 속에 돌아갈 수 없는 아이는 누구인가 돌아갈 수 없는 아이는 ㅇㅇㅇ (누군가의 이름?) 개구리의 아이는 어디에 개구리의 아이는 연못밖에 개구리의 아이는 누구인가 개구리의 아이는 ㅇㅇㅇ (여기에는 내 이름이 들린 것 같습니다) 돌아가지 못하는 아이는 어찌하나 돌아가지 못하는 아이는 울고 있네 개구리 아이는 어찌하나 개구리 아이는 울고 있네 이런 가사가 두 번 반복되었습니다. 전원이 흠뻑 젖어서 웅덩이를 바라보며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크게 소리를 내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고, 내가 있는 방과도 거리가 있을 텐데도, 그 노래는 분명하게 들려왔습니다. 정말 비길 데 없는 공포였습니다. 노래가 두 번 반복되는 동안, 후들후들 떨면서 그 광경을 바라봤고, 그 노래를 계속 듣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노래가 끝나자마자, 정적에 휩싸인 그 순간에 한 사람이 얼굴을 들어 내 쪽을 봤습니다. 그건 얼굴 가득 미소를 띤 선배였습니다. 아까까지는 너무 어두워서 몰랐는데, 잘 보니 선배의 아버지도 그곳에 있었습니다. 단 한 사람. 나를 올려다보며 웃고 있는 선배에게, 나는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습니다. 잠시 그대로 있었는데, 갑자기 다른 쪽을 보더니 어딘가로 걸어가버렸습니다. 그러자, 주위 사람들도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해, 줄줄이 선배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끝났다.... 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넋을 놓고 있었습니다. 빨리 이모님 계신 곳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멍한 채로 머릿속이 빙빙 돌아 의식을 잃을 것 같았던 그때, 이모님이 2층으로 올라와주셨습니다. "끝났네요. 많이 무서웠죠.. 잘 견뎠어요. 이제 괜찮아요. 이제 괜찮아." 그렇게 말하는 이모님 품에 안겨서 서러움이 폭발한 나는 엉엉 울어버렸습니다. 이제부터 뭘 해야 될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조금 진정이 된 나는 이모님에게 의지하여 거실로 돌아왔습니다. 시간은 벌써 2시를 넘겨있었습니다. "ㅇㅇ씨, 안심하고 있을 시간이 없어요. 그 애랑 그 애 아빠는 오늘은 더 이상 이곳에 오지 않겠지만, 좀 전의 의식이 한 번 더 있을 거예요." "... 네...?" "이번에는 3시에. 노래 내용도 아까 것과는 조금 달라질 테고. 여기서 우물쭈물하고 있으면, 다시 그 사람들이 웅덩이에 모일 거예요. 그러면 더 이상 되돌릴 수 없게 되는 거예요." "말도 안 돼... 어떻게 해야 되는 거죠? 저는.... 대체..." "침착해요. 지금 우리 집으로 가요. 이 마을을 나가서 조금만 더 가면 있으니까. 하지만, 가지고 왔던 것들은 포기해줘요. 가지고 돌아가면 오히려 위험하니까.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합시다. 자, 어서 가요." 그 말대로, 나와 이모님은 집을 뛰쳐나와 조금 떨어진 공터에 세워져있던 이모님이 차에 올라타고 그 마을을 빠져나왔습니다. 어디를 달려도 똑같은 경치로 보여, 미로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1시간쯤 달려 겨우 이모님 댁에 도착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어떤 방으로 안내되었는데 그 방 안을 보고 다시 공포가 온몸으로 퍼졌습니다. 밥상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그 방, 벽 한쪽 면은 천장까지 부적이 빽빽이 붙어 있었습니다. 이상하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혹시... 나... 속고 있는거 아닐까... 이모님도 뭔가... 엄청난 일에 가담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의미를 알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니, 나 자신 이외의 사람에 대해 불신감이 더해져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내 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 이모님이 말했습니다. "복잡한 생각이 들겠죠, 무섭기도 할 거고. 하지만 이 방이 아니면 얘기를 할 수가 없어요. 미안해요. 참아줘요." 이모님은 나를 천천히 밥상 앞에 앉히고 자신은 바로 건너편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여기부터는 이모님의 얘기를 중심으로 적겠습니다. 거의 그대로입니다. "어디부터 얘기를 시작해야 할까... ㅇㅇ씨는 처음에 그 애가 뭐라고 했길래, 왜 그 마을에 온 거예요?" "매년 재밌는 행사를 하니까, 보러 오라고 했어요. 마을 중 한 사람이 선택받아서, 그 사람을 위해 열리는 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어머니가 선택... 받으셨다고....." "기간은 사흘이고, 오늘은 이틀째라는 건 들었어요? 첫날부터 오지 않겠냐고는 하지 않던가요?" "그렇게 말했어요. 첫날부터 보여주고 싶으니까 그렇게 하자고 했었는데, 제가 거절했거든요. 너무 신세 지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 "그랬구나... 그 애가 말한 건 전부 맞아요. 그건 매년 선택된 사람을 위해서 열리는 거고, 올해는 그 애 엄마가 선택됐어요. 첫째 날부터 보여주고 싶다고 했던 건, 특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고요." "무슨 말씀이신지...?" "ㅇㅇ씨, 오늘 한 번이라도 그 애 엄마의 모습을 본적 있나요? 보지 못했죠? 그건 둘째치고,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아무것도 듣지 못했죠? 당연하죠. 그 애의 엄마, 그러니까 내 동생은.. 죽었으니까. 몇 년 전에." "... 네?.........." "그 애가 학생일 때인데, 벌써 한참도 전이죠. 그러니까, ㅇㅇ씨가 그 얘기를 듣었을 때도 처음부터 그 애의 엄마는 없었다는 거예요." "그런... 하지만... 그럼 선택받았다는 건 무슨 얘기예요? 아까 그건 뭐죠?" "그건 죽은 사람을 되살리기 위한 거예요. 선택받았다는 건, 살아 돌아올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고요. 매년, 죽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이 그 기회를 얻게 되죠. 다만, 그것을 가족들이 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고요. 원할 경우에는 정원 같은 곳에 커다랗게 구멍을 파서 그 의지를 보여야 하죠." "선택된 경우, 모르는 새에 구멍에 물이 차서 큰 웅덩이가 완성돼요. 1월 2일부터 12월 1일까지. 긴 시간이 걸려요. 그래서 선택받은 자의 가족은 29일~31일(30~1일)까지 3일간, 좀 전의 그런 걸.. 하는 거죠. 그리고 1월 2일까지 물은 없어지고, 다시 시간이 걸려서 다른 사람이 선택되는 거예요" "아까, 노래를 들었잖아요. 끝까지 들었죠? 어떤 내용이었는지 말해볼래요?" 앞에 썼던 가사를 이모님에게 얘기했습니다. 이모님의 얘기로는 이렇다고 합니다. 돌아갈 수 없는 아이는 어디에 돌아갈 수 없는 자는 연못 속에 돌아갈 수 없는 아이는 누구인가 돌아갈 수 없는 자는 ㅇㅇㅇ (선택된 죽은 사람의 이름) 개구리의 아이는 어디에 개구리의 아이는 연못밖에 개구리의 아이는 누구인가 개구리의 아이는 ㅇㅇㅇ (희생되는 사람의 이름) 돌아가지 못하는 아이는 어찌하나 돌아가지 못하는 아이는 울고 있네 개구리의 아이는 어찌하나 개구리의 아이는 울고 있네 "선택된 죽은 사람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희생될 누군가에게 3일간 노래를 듣게 하지 않으면 안 돼요. 그 애가 첫날부터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 건 그 때문이고요. 노래는 1시부터 2시, 3시부터 4시 사이에 각각 내용이 바뀌면서 두 번씩 불러요. 사흘 동안 6가지 내용의 노래를 총 12번 부르는 거죠. 아까 ㅇㅇ씨가 들은 건 세 번째 노래예요" "6번째, 그러니까 12번째 마지막 노래를 들려준 뒤에, 그 사람을 웅덩이에 밀어 넣는 거죠. 기어올라오게 되는 건 그 사람이 아닌, 선택받았던 죽은 사람. 희생이 된 사람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해요. 그렇게 해서, 살아있던 누군가를 대신해서 죽었던 누군가가 돌아오는 거예요" "그렇다고는 해도, 요즘 사람들은 제사를 지낸다는 생각으로 형식적으로만 하는 게 대부분인데. 최근 몇 년 동안 정말로 되살리려고 한 것은 이번뿐이에요. 그 애만 유독 그러고 있다는 게 맞는 말이겠네요. 그 애는 엄마를 고집하고 있어요. 몇 년이 지나도 끊어내지 못하고 있네요." "자기 엄마가 선택됐다는 걸 알게 됐을 때부터, ㅇㅇ씨 얘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어째서 ㅇㅇ씨가 선택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애는 당신을 희생해서 엄마를 살려낼 작정이었던 거지. 원래라면, 두 번째 날에 온 시점에서 성립되지 않았을 테지만. 사흘간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되니까요. 하지만, 비가 내리면서 잘못되기 시작한 거예요." "노래를 포함해서, 이 모든 일을 개구리의 노래 라고 부르고 있어요. 원래는 옛날부터 신으로 모시고 있는 무언가에 관계되어 있어요.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일인 만큼, 영혼이라던가 하는 차원이 아닐지도 몰라요. 그 무언가는 비를 좋아한다고 전해지고 있어요. 사흘간, 하루라도 비가 내리는 중에 개구리의 노래를 행하게 되면....." (이 부분만.. 얼버무리셨습니다) "어쨌든 어제 비가 비가 내려서, ㅇㅇ씨가 첫 째 날에 없었다는 것이.. 의미가 없어진 거죠. 원래대로라면 일이 끝난 사흘째에 진행되었어야 하는, 그 애의 엄마가 어제 시점에서 그 웅덩이에 들어가 있었으니까. ㅇㅇ씨가 처음으로 봤을 때도, 아까 노래를 부를 때도, 웅덩이 안에서 가만히 당신을 바라보고 있었던 거예요. 엄마가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건, 그런 의미였던 거예요." "아마, 앞으로도 그 애는 포기하지 못할 거예요. 언젠가 다시 선택되기를 계속 기다리면서. 그러니까 그 집 웅덩이가 없어지는 일은 없겠죠."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는 의문이 다 풀리지는 않았지만, 더 물을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그랬다가는... 제정신으로 있을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날 밤은 이모님 집에서 보냈고, 아침이 밝자 우리 집까지 바래다주셨습니다. 헤어질 때, 이모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제로 새해가 되었지만, 앞으로 1년간은 비에 젖으면 안 됩니다. 비가 오는 날은 외출 자체를 하지 마세요. 생활하는데 많이 불편하겠지만, 반드시 지켜야 해요. 1년이 지나면 괜찮아지니까. 혹시 뭔가 걱정되는 일이 생기면 내가 있는 곳으로 와요. 무서운 일을 겪게 해서 너무 미안해요. 잘 있어요." 휴일이 끝난 뒤, 얼마간 선배는 회사에 출근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고 연락이 왔었다고 합니다. 나는 그 해에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이모님께서 충고하신 대로 비 오는 날에는 절대밖에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일을 계속할 수가 없었습니다. 갑자기 비가 올지도 모르기 때문에.. 1년정도 부모님댁으로 돌아가 외출을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면서 선배가 복귀해서 지금도 그 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합니다. 아직까지 얼굴을 마주 볼 엄두가 나지 않네요. 지금, 나는 평범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출처] [2ch괴담] 개구리 노래의 진실 _________________________ 세상에. 엄마를 살리기 위해 점찍어 놓은 회사 후배라니, 그 후배를 희생시켜서 죽은 엄마를 되살리려 하다니. 그걸 앞두고 당사자 앞에서 '힘이 난다'고 이야기를 하다니. 비뚤어진 그리움을 어찌해야 할까. 그래도 이모님 덕분에 무사히 빠져나오게 돼서 너무 다행이야. 아. 이모님도 '선택 받았었다'고 했으니 이모님도 이모님을 그리워하는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희생시키고 '다시' 데려왔던 걸까. 뭐든 감정이 과해져서 극단적이 되면 위험해 지는 것 같아 종교에 빠지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겠지 그래서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나.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그런 식으로 꼬드겨서 빠져 나오기 힘들게 만들다니. 얼른 그들의 폐단이 밝혀 졌으면 좋겠다. 다들 부디 건강하고, 곧 또 올게!
퍼오는 귀신썰) 할머니한테 들은 증조할머니 이야기 -2-
너무 글이 길고 스펙타클하거나 재미 요소는 없어서 혹시 좋아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하다가 몇 년을(!) 못 가져온 글이었는데 좋아해 주니 다행이다. 오늘도 이야기 계속 해서 같이 볼까? _________________________ 6. 모과나무와 문둥병 귀신 모과는 생으로는 먹을수 없는 과(果)실이야. 대신 약재로 쓰거나 잘만쓰면 효용성이 무궁무진해. 입덧이나 설사 감기에 아주 뛰어난 효능을 보였고 특히 도드라지는 것은 통증을 완화 시키는데 탁월하단 거지, 술을 부어 숙성시켜서 먹으면 몸에 열도 오르고 통증완화 효과도 뛰어났어. 목에 좋아서 모과라고도 불렀고 설화중에 성호라는 스님을 공격하던 뱀이 떨어진 모과에 죽었다고 성호과라고도 불렀다네. 울퉁불퉁 못생겨서 심성이 못난사람을 모과심성이라고 놀리기도 했대. 점촌 흥덕동에는 모과나무가 마당에 한 그루 씩, 집집마다 많았다고 해. (지금도 모과나무 있는집 몇집 있더라.) 1930년대 입춘이 좀 지나 춘화가 활짝 필 무렵에 증조할머니의 친가가 상주 양진당쪽에 있는 오천석꾼(썩 부유한 집안을 지칭함)이셨는데 그 집 못에서 수 년간 키우던 잉어가 다 죽어버려서 흉험한 일이 생길까, 증조할머니를 불러서 제를 올렸다고 해. 못 물도 다 퍼내고 새로 갈아낸 후에 연꽃하나 띄우고 새로 잉어를 풀었다고 해. 친가쪽 집은 잘살아서 사례로 쌀 한섬하고 가는길에 2마리가 노새가 끄는 마차에 태워보냈다는데.(당시 교통수단은 대부분 말이었다고 해. 알아보니 목탄자동차? 이런것도 있는데 나무를 태워가는 자동차라... 신기하네) 돌아가는길에 양진당쪽 마부 어르신 한 분하고 말굽갈이(말의 굽을 갈아주는 일을 하는 분)청년 한 명과 증조할머니 이렇게 셋이 오게 됐어. 근데 그 말굽갈이청년이 가려움증이 심한지 오는 내내 자신의 배고 목이고 등이고 벅벅 긁어대더라네. 증조할머니께서 걱정이 되서 마차를 세우고 길퉁이에 쑥이랑 개망초풀을 따다 갈아선 발라줬다고해. 그래도 차도가 좋지못해서 결국 마차안에서 쓰러져 버렸대. 증조할머니댁에 도착과 동시에 되돌아가지 못 하고, 치료를 받게 됐어. 집에 있던 증조할아버지와 마부가 쓰러진 말굽갈이 청년을 들어다가 빈방 한켠에뉘였어. 날이 지나고 보니 긁은 곳은 살 안에서 구혈이나고 곪아버려 상처가 흉하고, 고통이 끔직한지 말굽갈이 청년이 밤낮으로 잠을 못 자길래 증조할머니께선 모과로 술을 담궈서 먹였어. 그러자 신기하게도 이내 편안해졌다고해. 통증이 가라앉고 술 덕에 열이 올라오면, 냉수를 담아둔 장독대 뚜껑을 들어내 말굽갈이 청년 배에 올리고 열을 식혔다고해. 그러니 겨우 잠을 잤다고... 그렇게 나흘이 지나고 차도가 좀 나아지는가 싶었는데 오후만 지나면 또 가려워서 난리도 아니었어. 결국 담궈둔 모과주를 두통이나 더 꺼내놓고 머리맡에 두니 아플때마다 꺼내먹고 겨우 잠을 청하고 했다고 해. 마부어르신은 덩달아 몇 일 묵다가 조상님 산소 이장문제 때문에 결국 노새 한마리를 풀어두고 다른 한마리를 끌고 되돌아 가 버렸어. 증조할아버지는 흥덕장에서 소금장사를 하셨기에 일찍나가셨고, 증조할머니는 별다른 일도 없고 말굽갈이청년이 동생같아서 정성으로 돌봤다고 해. 증조할머니께서 보기에 청년이 몸이 약해지니 영기마저 약해져갔다고... 낮이면 호박속을 풀어 치대고 귀한 갑오징어 뼈가루(문경은 남한의 거의 중심이라 삼면어디든 바다가 멀어서 귀했음)랑 삼베에 넣고 짜서 나온 흰 진액을 상처부위에 발라주고 밤에 자는데, 허해진 청년보고 행여나 잡귀라도 붙을까, 복숭아나무를 태워낸 숯가루를 빻은 쑥, 적상추와 함께 물에풀어 말리고 뜸을 태워서 잠도 재우고 잡귀도 쫒았다고 해. 그렇게 일주일도 안 지나니 상처는 많이 아물고 몸도 꽤 회복됐어. 증조할머니께서 보시더니 "이제 괜찮아지신 것 같은데,  마부 어르신 걱정하실라 가봐야 되는거 아닙니까." 했더니 아녀자 앞에서 웃통을 들춰서 아직 상한부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덜 나았습니다. 이거 보세요 쌀겨같은 것들이 수두룩빽빽히 있잖습니까." 하곤 아프다면서 모과주를 꺼내 마시고 빈둥빈둥 거렸어. 당시 증조할머니께선 젊은처자였는데 낯뜨거워하곤 알겠다고 했지. 하루는 증조할아버지가 일이생겨 왜관으로 갈일이 있었는데, 증조할머니께서 대신 장에 나가 소금팔게 됐어. 곶감아가씨가 소금을 판다고 소문이 나서 애기들이 와서 곶감도 얻어가고 부모들이 와서 소금도 팔아주고 장사가 생각외로 수월했다고 해. 해가 기울고 기분좋게 댁으로 돌아오니 집 앞에 호롱불을 들고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 있더라는거야. "무슨 일입니까?" 하니 "아이고 왔네, 왔어."하고 그 무리중 한 할머니 한 분이 핼쓱한 표정으로 증조할머니의 양팔을 다급하게 잡더라는거야. 알고 보니 자기들은 건너 건너사는 가족인데 귀신이 손녀를 잡아갔다고 찾아달라고 하셨다더라. 처음엔 자신만 본 줄 알았는데 가족들이 하나같이 봤다는거야. 아무리 잡귀로서니 사람을 잡아간 다는 것은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어서 '혹시 그 손녀가 기가 허해서 영이 들려서 나갔거나, 몽유병이거나, 아니면 자신처럼 신기가 있어서 신내림을 느낀걸지도 모르겠다' 싶어서 그사람들 집으로 가 봤다고 해. 웬 커다란 모과나무 한 그루가 마당에 있는 집이었대. 집안에 나쁜 영은 보이지 않고, 그 집안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어디가 영기가 강한가... 싶어서 둘러보니 히끄무레 잘 보이지도 않는 오래된 영들이 나무를 타고 놀고있는데 해로운 영도 아니고 달콤은은한 모과향을 맡고 모인 동자들이었다네.  증조할머니가 나무를 스윽 만지니 따듯한 것이 괜찮았다고, 심보가 못 된 영이나 잡귀라면 시리도록 찬것이 송연하다고 그러더라.  그집 가족은 마을사람들 대동해서 송진에 불을 태워 횃불을 들고 아이를 찾으러 나가고, 증조할머니는 이대로는 아무것도 안 되겠다 싶어서, 집으로 돌아와서 호롱불을 들고 아이를 찾는걸 도우러 나가려는데, 말굽갈이청년의 신발에 왠 흙이 많이 묻어있더라는 거야. 그래서 청년방에 문을 열어보니, 청년은 웃통벗고 자고있는데 다 먹어가는 모과주가 한가득 채워져있고 방안은 술냄새로 가득했다고 해. 그래서 말굽갈이청년을 깨워다가 흔들어 묻는데, 술에 진득허니 취해서는 정신이 있나. 대답도 못하고 헬렐레 하고 있어서, 증조할머니가 느낌이 이상하여 따귀를 살짝 때리니 조금 정신이 들더래. 그래서 냉수한사발을 들고와서 어디다녀왔냐고 하니 기억이 없다고 하더래. 자신은 잠만 잤다면서, 요전에 매번 아플때마다 모과주를 마시더니 하루에 깨어있는 시간보다 취해있는 시간이 많았던 탓인지 청년은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도 모르고 정신도 못차렸어. 그래서 옷을 입게하고 세수를 하게한 뒤, 청년도 같이 횃불을 들고 나섰어. 증조할머니께서 나간 사람들이 아이를 찾았는가 싶어서 청년과 함께 그 집으로 가 보니, 모과나무에 놀던 동자령들이 악귀같은 표정을 짓고는 말굽갈이청년을 경계했다고 해. 증조할머니는 이상하게 여겨서 "당신 여기 온적 있지요?"하니 청년이 화들짝 놀라면서도 "처음 와보는 곳입니다."하고 얼버무리더라네. 수상쩍은 증조할머니께서 지레 겁을 주려고 "지금 여기 모과나무에 사는 목신령이 당신을 등에 올라타 죽일듯 목조르는 시늉을 하고 있으니, 솔직하게 말하세요."라고 거짓말을 했대.  그러자 말굽갈이 청년이 겁을 잔뜩 먹더라는거야. 증조할머니께서 예삿 보살이 아닌걸 알고 있어서인지 더욱 그 말이 와 닿았겠지. "실은 아가씨 댁에 모과주를 다 먹은 것이 죄송하여서 몰래 모과서리를 하러 왔었습니다"고 했어. 아까 모과주가 다시 가득 차 있던게 납득이 됐지. "그게 다에요?" 하고 물으니 고개만 끄덕끄덕하고 "등에 붙은 귀신좀 때주십쇼."하고는 서둘러 집을 나가려고 했대. 할머니는 대충 거짓으로 손을 휘저어 간이적으로 읍을 하는 척 하고는 청년과 집을 나섰대. 밖에 나오니 마을사람들이 애를 들쳐업고 오는데 증조할머니께서 어디서 찾으셨냐고 물으니 "담벼락 뒤에 하천이 있는데 거기에 버려져 있더라."면서 업은애를 보여주는데 호롱불로 살펴보니 머리에 돌 같은걸로 찍었는지 움푹패여 피를 흘리고 있었고, 옷은 어디갔는지 애비가 웃통을 벗어 애기를 둘둘 감았어. 애가 간신히 정신이 들어서 말굽갈이 청년을 보더니 기겁하면서 거품을 물더니 발발떨면서 하는 말이... 증조할머니의 예상보다 충격적이었대. 그 여자아이는 열세살 즈음 돼보였는데 자신과 다섯 살배기 동생이 모과나무밑에서 모과를 줏으며 놀고있었는데, 저 아저씨가 넘어왔다고 해. 상처가 곪은 곳이 아물어 흉측한 상처가 여기저기 나있는 사내가 담을 넘어 들어오니 얼마나 겁이 났겠어? 근데 술냄새가 썩은내처럼 진득하니 풍기고 기이하게 비틀비틀거리니까 설화로 듣던 문둥병귀신인가 싶어서 놀라서 소리를 빽-지르니 가족들이 나오는데 말굽갈이 청년이 퍼뜩놀라서 모과를 들어서 머리에 찍어버리고는 들쳐업고 그대로 줄행랑을 친거야. 문둥병 귀신이 애를 업어갔다 면서 귀신이 손녀를 잡아갔다고 말이 나온거지. 마을사람들이 금세 뒤쫒아 나왔는데 가로등없는 시절에 밤길도 어둡고 골목이 좁아 금새 놓치고 말았다고, 그뒤로 기절해 있던 소녀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보니 치마는 벗겨져 있고 아랫도리와 젖가슴은 시퍼렇게 멍이들어서 아팠다고 해... 너무 겁이나고 주위는 어둡고 무서워서 숨죽여있는데, 횃불소리랑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니 사람들이 찾아낸거야. 그 얘길듣고 사람들은 여자아이가 저 청년에게 강간을 당했다는걸 알 수 있었어. 말굽갈이 청년은 도망가려했고 마을사람들은 쫒아갔는데 말굽갈이 청년이 성급히 도망가다가 그 집 모과나무 가지에 찔려버렸어. 목에 피분수가 이는걸 부여잡고 나뒹굴었다고 해. 증조할머니께서 황급히 적삼을찢어 목을 감고는 마을사람들이 매질을 하려는걸 말렸다고... 나무에는 동자령들이 나무가지를 부여잡고 킥킥거리고 웃는 것을 보았다고하는데... 사람들에게 말하기엔 섬뜻한 얘기라 하진 못했다고... 날이 밝고 말굽걸이청년은 순사에게 잡혀갔고, 잡혀가면서도 "그년이 죽은줄 알았는데 살아있었다니... 계집질할때 시체랑 한 것은 아니었네" 하면서 포악한 내면을 들어냈다고 하네. 마을사람들이 문둥병귀신이 붙어서 저렇게 포악해지고 몸도 저리 변했다고 하더라. 증조할머니께서는 집안 손님이란 것을 사과하고 우리 집안 가족은 아니고 사람을 들여 일을하던 청년이라고 설명해주고는 거듭 사과했다고 해. 7. 견탄리 우물 문경시 호계면 견탄리에는 큰 우물이 하나있어. (2012년에 군부대 확장으로 사라졌지만 거의 100년동안 맑은물을 주민들에게 제공하는 좋은 식수원이었다 함.) 1912년도즈음 만들어졌다는데, 물이 말라서 31년도 여름 즈음에 이전을 했다고 해. 새로 준공한 곳은 지하수가 잘 올라오는 산골이어서 물 마르는 일은 없었다네. 150가구가 훌쩍넘는 동네여서 그런지 우물이전을 잘 치루고 마을 전체가 모여서 잔치굿을 벌였다고... 증조할머니께서 빠질 수 없잖아? 무속인으로 간 것은 아니었지만 동향사람들 경사인데 가서 차림도 도와주고 굿판도 구경하고 또 잔치한다고 모셔온 사당패가 흥을 돋우고 나니, 시골에서 볼거리는 흔치않은데 좋은 볼거리들 이었지. 풍물한마당 하고나서 절차로사당패와 어우러져 무당들과 증조할머니도 같이 지신밟기(지신굿, 터굿 이런걸로도 불리는데  마을을 보살피는 터의 신, 즉 지신을 모시고 마을에 흉없이 잘되게 해달라는 액막이 굿)굿을 했어. 다들 흥이나서 탁주 한사발씩 들고 지신밟기 민요에 맞춰서 춤도 추고, 동네 애들은 우물가에 모여서 등목도 하고, 두레에 물을 퍼다가 물장난도 치고, 참 신명나는 잔치굿이었다고 해. 한바탕 땀을 흘리고 나서 증조할머니께서도 우물물을 퍼다가 마셔보니 시원한게 머리가 맑아지고 정신이 번쩍들더래. 물이참 좋다고 마을사람들이 입이 마르도록 칭찬한 이유를 알게 됐지. 무릇 좋은 터라는게 쉽게 찾아지는 것도 아니니까. 마을의 길복이구나 하곤 잔치가 끝나고 뒷정리를 도우는데 쏴아아- 하고 비가 왔어. 하늘을 보니 먹구름이 그리 넓진 않은게 소나긴가 싶으셨지.  아낙들이 서둘러 애들을 부르니 놀고있던 애들이 하나 둘씩 일어나서 집으로 뛰어가는데 웬 남자아이 하나가 안 일어나고 그자리에 가만히 있는거지. 증조할머니께서 걱정이 돼서 다가가는데 아이가 일어나 뒤를 돌아보니 웬걸 이목구비가 위치가 뒤틀려버린 얼굴은 퉁퉁 불어 새카맣고 손발톱은 다빠져있고 옷도 헤져서 넝마가 따로 없을정도였어. 증조할머니가 화들짝 놀라서 바닥에 채이는 자갈을 틱-틱 하고 던져 보니 응당 사람이라면 움직이는 자갈을 따라가야할 아이시선이 미동도 없고 자신만 뚫어지게 보더라는거야. '터지기(지박령 개념인데 약간은 다름)구나.' 순간 생각해보니 아까 전부터 아이들이 놀던 곳에서 같이 섞여 자연스럽게 놀고있었다는걸 깨닫게 됐어. 물론 아이들이 저 터지기아이를 보고 같이 논것은 아니었고 한데 섞여 있던 것 뿐이지만... 한참을 증조할머니를 쳐다보더니 논두렁사이로 토란이 우거진 흙길로 사라졌어. 다급히 정신을 차린 증조할머니께서 비를 피하기위해 잠깐 포목점(비단 이불 한복을 만드는 가게)안으로 들어갔어. "실례합니다. 흥덕에서 온 보살이온데 비 좀 피하겠습니다."하고 인사를 건네니 후덕한 아주머니가 문을 열어주었어. "하이고 젊은보살님이 고생이 많았네. 얼른 들어와서 감주(식혜 비슷한 곡주)라도 한 잔 들어." 해서 감주담긴 대접을 받고 들어가보니, 안에는 아까 잔치굿판에서 보았던 사당패몇명이 탁주에 편육을 마시고 흥을나누고 있고 이 마을에 살고있는 무당이 증조할머니께 이상한 느낌을 받으셨는지 홱하니 처다보더래. 증조할머니께서 쓴웃음을 지으시며 "죄송합니다. 제가 모시는 분이 신기를 잡아먹는 공험이 있으셔서 ..." 하니 무당이 거리를 벌리고는 먼 발치에서 "잡신을 모시면 그럽디다. 조심하시요. 그러다가 당신 영까지 홀라당 먹힐수도 있우."라고 사납게 받아치셔서 증조할머니께서 멋쩍어 하셨다고 해. 감주가 달달하니 시원달콤해서 맛있었다고 해. "주신 감주 잘 마셨습니다. 그런데 뭐 하나 여쭤봐도 될런지..."하고 증조할머니께서 포목점 아주머니께 여쭸어. 자신의 앞섬을 손날로 가리키면서 이 만한 아인데 머리는 길게 잘 땋고 옷은 검은 저고리를 입었다고 만 말하고 뒤틀린 이목구비에 대해선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해. 그런데 아주머니가 먼저 "하이고 젊은 보살이 용하긴 용한가보네, 혹시 보셨다는 그 애가 눈 코 입이 요래요래 이상하고... 맞죠?"하고는 자신의 얼굴을 우스꽝스럽게 집어서 보여주었어. 자신은 심각한데 말야. 이어서 아주머니가 들려주신 사연인 즉슨, 평소 마을에 그 아이귀신을 보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는말로 시작됐어. 처음엔 다들 무서워 했는데 해코지를 하지도 않고, 마을에 초로한 노인들에게 물어보니, 원래 그집은 집이 가난한데도 불구하고 그 아이 아비가 술과 도박을 좋아하고 도박하다 재산도 날렸는데도 정신 못차리고 가끔 넘의마을에서 소도 훔쳐와서 그걸로 도박하다가 나중엔 걸려서 잡혀가버리게 됐는데, 남은 여인네가 도박 빚이며 소 값이며 품팔아 갚아 나갔다고... 그래봤자 얼마나 되겠어. 빚은 끝도없고 당장 애 먹일 밥도 없어서 그만 자살을 결심한거야. 우물물이 마르지 않았을 적에는 우물이 깊어도 물이 높게 솟아있어서 빠져죽기도 힘들고, 일부러 죽자고 작정하지 않는이상은 빠져도 나올 수 있는 그런 우물이었다고 해. 그런데 우물이 마르고 수심이 사라지니 빠지면 나올 수도 없을만큼 깊어져서 들어가면 나오기 힘들테지. 우물물이 말라서 아무도 사용도 안 하고 관심도 없던 찰나에 사고는 터졌고, 당시 정확한 상황은 모르지만 나중에 사람들이 애 우는 소리를 듣고 가보니. 애랑 애미랑 우물안에서 죽어있었는데 비가 온날에 조금씩 차오르던 물이 시체썩은물이 되서 새카맣게 변했고 시신들은 그 새카만 물에 간신히 잠겨있어 퉁퉁 불어터져서 보기 흉했다고 해. 애 우는소리는 어디서 들린건지 알 방법도 없이 마을사람들이 겁을 먹고는 빨리 장을 치루고 제를 지내야겠다고 두레줄을 타고 내려가 시신을 꺼내려는데, 애 어미는 떨어지면서 목뼈가 부러져 죽은 것 같고, 애는 어미가 안고 떨어졌는지 사지는 멀쩡했는데 얼굴이 불어서 뒤틀려버렸어. 혼자 살아남아서 나오려고 발악을 한 것 같이, 우물 벽면에 손톱자국이 수도없이 나있고 애 손톱은 다 떨어져 나갔다고 해. 얼른 시신을 꺼내서 장을 치루고 성불제를 지냈지만, 유독 비가오는 날이면 불어서 일그러진 얼굴을 한 손톱빠진 아이를 우물가에서 자주 목격했다고, 처음엔 해코지를 할까 겁이났는데 그냥 사람구경만 하염없이 하다가 사라지곤 했다는데. 증조할머니가 듣고는 "아이가 터지기가 되서 자리를 못 뜨는 것 같습니다." 하고는 자신이 제를 다시 올려보겠다고 했어. 비가 그치고 각집에 들어 비를피하던 사람들이 속속이 나왔는데, "하이고메 이게 뭐꼬? 또 이라네 또이래."건너 집에 있던 아주머니가 기겁을 하고 울상을 지었어. 증조할머니께서 우물쪽을 처다보니 썩은내 나는 검붉은 물이 바닥에 왈칵 쏟아져 있었는데 백발성성한 노인이 한 분 나오더니 두레박으로 우물물을 퍼보고는 "괜찮타 물은 멀쩡해. 분명 노름좋아하던 박서방네 자식놈이 장난을 친게야. 지놈 죽을때 썩은 물로 우물에 장난질을 친걸게야."라고 누구 들으라는듯 사방을 주욱 둘러보고 으름장을 놓았어. 그때 아까 증조할머니께 살갑게 대하던 무당 한 분이 나와서 "이건 잡귀가 지신을 이겨먹고 자신이 지신자리를 차지할려고 수를 쓰는겁니다." 하곤 재차 굿판을 벌이길 강요했어. 이틀이 지나고 마을사람들이 돈을 조금씩 모아 다시 굿판을 열었어. 비만 오면 툭하면 검붉은 물이 흘러나왔고 식수원이 오염될까 조마조마하던 사람들이 이런 일이 없어지게 할 수 있다는 무당의 말을 철썩같이 믿은거야. 증조할머니께서는 생각이 달랐지만 지켜보기로 하고 보는데, 무당이 위령제(죽은 넋을 기리는 제)를 지낸다고 우물앞에서 향을 피우고 제를 지내고 지신밟기를 한 곳에서 천신제를 또 올린 거야. 당시 증조할머니는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해. '이 마을 터의 지신이 분명히 있는데 굳이 하늘신에게 제를 올려 마을의 안위를 기원하는 것은 터신에 대한 도리에 맞지 않다'고 생각한거지. 아무튼 굿으로 벌이는 제는 절정을 향해가고 접신을 통해 제를 올리는 무당의 무속적 방언과 무령의 소리(무당방울 혹은 칠성방울이라 불리는 방울여러개가 달린 노리개모양)가 극에 달하자 무당은 땀을 닦아내고 한 숨의 읍으로 굿을 마쳤어. 당분간 비도 오지않고 우물물도 괜찮아서 다 좋아진 것 같았어. 워낙 미신적인 것이 명백한 확증이나 증거가 없다보니. 증조할머니께서도 '그 무당이 천신제를 올린 까닭이 아예 비구름이 오지 않도록 함인가' 할 정도로 쨍쨍한 날만 이어졌다고 해. 그런데 그건 착오였어. 장마대비 먹구름들이 한껏 모이기 위한 전초였던거지. 이윽고 장마가 터졌고 하늘에 구멍난 듯 억수같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해. 두렁이고 밭이고 다 물바다가 되서 쓸려가는데 견탄리도 일이 생기지 않았을까 싶어서 증조할머니께서 두어시간거리를 옹기집 총각도움으로 마차를 타고 단걸음에 가 보니, 사람들이 난리가 나서 안절부절 못 하고 있더라는 거야. 우물은 넘쳐서 검붉은 물이 왈칵왈칵 쏟아졌어. 증조할머니께서 뒷머리 느낌이 사이해서 돌아보니 일전에 아이가 사라진 논두렁사이 토란잎이 주욱난 길이 보였는데 거기에 그 검은 아이가 증조할머니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더라. 증조할머니께서 용기를 내서 다가가니 한걸음 물러서고, 또 다가가니 한걸음 물러서고. 그렇게 아이를 쫒아가다 보니 이전하기 전에 우물이 보였대. 막힌 우물뚜껑을 열고 안을 보니 아무것도 없어서, 다시 뒤를 돌았더니 아이는 온데간데 없었다고.. 무슨 징조인가 싶어서 겁도없이 혼자 두레를 내리고 줄을타고 밑으로 내려갔다고 해. 다시 위를 쳐다보니 검은아이가 삐뚤어진 얼굴로 씨익 웃더래. 악귀가 자신을 이곳에 빠뜨릴려고 장난을 쳤는가 싶어서 소름이 돋고 겁이났지만, 섵부르게 판단하지않고, 주위를 살폈다고 해. 우물바닥에 흙자갈들이 아직까지 시체썩은내를 머금은듯 날이 습해지니까 악취가 스물스물 올라왔어. 우물벽엔 말로 들었던 손톱자국들이 수없이 아로새겨져있었고, 그러던와중에 바닥 한켠에 반쯤 파묻힌 금가락지를 발견하셨대. 훌훌 집어 털어 옷으로 잘 닦으니 예쁜 민둥가락지 였다는데 척 보기에도 혼례반지구나 싶어서 마음한켠이 아렸다고 하시더라. 듣기엔 도박빚도 소값도 갚을 여력이 안 되어 자살까지 결심했다고 들었는데, 그 와중에도 혼례반지는 가지고 있었구나 싶어서 그랬다고 하셨어. 그나저나 다시 올라갈 방도가 막막했다고... 두레줄을 타고 내려올 땐 몰랐는데 올라가려니 빗물젖은 두레줄이 미끄럽기도 하고 가녀린 아녀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올라갈 수가 없어서, 이걸 어쩌나.... 하고 있는데 몇분도 채 안 돼서, 같이 왔던 옹기집 총각이 증조할머니께서 여기로 오는 것을 보았는데 돌아오지 않으니까 와봤다가 빠진 것을 보고 꺼내주게 되었어. 두레줄끝에 연결된 두레박에 발을 올리고 서서 줄을 잡으니 옹기집 총각이 힘껏 당겨서 끌어 올린거야. 다시 사람들한테 돌아와서, 가락지를 보여주고 발견하게된 계기를 설명하니 여태 욕만하던 초로의 노인도 입을 다물고 죽은박서방네 마누라가 측은하다는 듯이 동정어린 말들을 하는 사람까지 나왔어. 증조할머니는 제를 다시 지내야 된다고 하시면서 일전에 포목점 방을 빌려 종이에 붓으로 그림을 그려넣었는데, 소식듣고온 무당이 "무슨 절간 보살이 부적을 그리나."하고 비아냥거리며 보는데, 웬걸 증조할머니께선 부적을 그리신게 아니라 곱게 잘생긴 아이의 얼굴을 그렸는데, 초로의 노인이 그 것을 보고 한 눈에 "참 잘그렸어. 박서방네 아들이구만 뒤틀린 이목구비를 찾아줬네 그려"하고 손뼉을 쳤어. 얼굴을 그린 종이에 양초로 초칠을 해서 비에 번지지 않게 한 뒤에, 증조할머니는 비가 약하게 내리는 틈을타서 사람들과 같이 아이와 박서방네 부인이 묻힌곳으로 갔어. 제는 급하게 준비해서 초라하게 진행됐지만 사람들은 경건하게 읍을 했어. 포목점에서 준 비단에 반지와 아이얼굴을 그린 종이를 네번접어 조심스레 싸 묶고는 모자의 무덤옆에 묻어줬다고 해. 향하나가 다 탈정도로 읍을 한 뒤에 마을사람들과 마을로 돌아오니 검붉은 물들은 온데간데 없고 썩은내도 사라졌다고해. 마을사람들이 한 시름놓고 방안에 모여 탁주와 전을 부쳐 증조할머니께 대접을 하는데, 와중에 한 아낙이 비명을 질러 황급히 사람들이 달려가 물으니 우물에서 상체는 바싹마르고 다리는 물에 퉁퉁 불은 저고리가 새까만 아낙이 물에 둥실떠올라 밖으로 나오더니, 증조할머니께서 아이를 본 그 논두렁 토란길로 걸어가더라는거야. 그러더니 사라졌더래. 행여나 뒤를 돌아 자신을 볼까봐 조마조마했다고... 견탄1리 우물은 후에 산을깎으면서 모자의 무덤을 이장한 뒤에 또 비만오면 검붉은 물이 나왔다고 해. 무덤이 강제로 이장당한 뒤에 비만오면 박서방네 아이를 본 사람이 속속들이 생겼는데, 이목구비는 제자리였다고 하네. 이 우물은 무려 처음 준공부터 100여년간 마을 식수원을 담당했어.  2012년 군부대 공사로 인해 사라져버려서 지금은 없지만 비만 오면 나오는 검붉은 물, 이 일은 뉴스에도 실릴정도로 미스테리한 사건이야. 8. 보릿고개 아귀 1940년즈음 늦여름은 춘궁기 혹은 맥(麥:보리맥)령, 맥궁기(보릿고개를 이르는 말)가 가장 심하던 때 였어. 거기에 도시에선 산업재해까지 함께 터져서 서울부터 지방 끝가지 빈곤의 재해는 최악의 상태였지. 1940년대(일제말기)에 들어와서 수도권 쪽은 정책의 강화로 노동조건이 더욱 나빠졌고, 근로자에 대한 가혹한 착취는 물론이고, 근로환경은 아주 괴악하고 임금마저 쌀 한 되도 사기힘들었다고... 헌데 노동환경은 아주 가혹했고, 일하는 시간마저 하루 온종일 붙잡아 놓으니 식민지를 이용하여 이윤을 골수까지 빨아먹던만큼 일제에 대한 원성도 많이 얻던 시절이었고, 독립운동도 활발하던 그런 시절이었다고 해. 문경도 별 다를게 없었어. 그나마 잘 산다 하는 이들도 보리나 무, 감자따위를 섞어서 죽을 만들어 먹거나 잡곡 이나 쌀겨같은 것으로 싸래기밥을 해먹었다고 해. 이건 그나마 나은 편이야. 그 해는 장마가 너무 심해 추수도 제대로 못한 이들은 그야말로 먹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먹었다고.. 증조할머니께서는 전편에 말했듯이 상주에 사는 양진당쪽 친가댁이 오천석꾼(썩 부유한 부자를 이르는말)부모님에게 식량도 얻고, 증조할아버지께서 소금장사를 하셨으니 항상 간이 된 음식과 밥을 먹을 수 있었대. 흥덕쪽은 배산임수가 좋아서 장마피해를 거의 안 본덕에 다행이 마을 사람들도 괜찮게 연명하고 있었다고 해. 반면에 문경 영순쪽 사람들은 영순강이 장마에 범람해서 그해 식량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 했고, 종래에는 초근목피 같은 말마따나 나무껍질, 풀뿌리, 솔잎 등 으로 죽을 띄워 먹고, 더 심한 쪽은 옷을 해 입을 삼베마저 쪄서 먹고, 전단토나 찰흙같은 것을 쌀겨에 섞어먹기까지 했다고해. 오죽하면 쥐고기조차 귀해서 쥐가 안 보일 정도였다고... 하루는 "떡보살님 계십니까?"하고 문 밖에서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넝마적삼을 입은 비쩍마른 사내 하나가 장작지게를 들고 증조할머니를 찾아 오셨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하고 냉수 한 사발을 가져다 주니까,  벌컥벌컥- 단숨에 물 한대접을 비워버리곤 지게를 벗어 내려놓고 "보살님 저희 집 좀 도와주십쇼. 줄 것은 없고 질 좋은 참나무를 한 지게 가져왔습니다." 하니 증조할머니께서 "일단 들어와서 말씀 듣겠습니다." 하고 사내를 방으로 모셨다고 해. 사연인 즉슨, 자신은 영순에 살고있고 부인하나와 두 남매를 둔 장家 인데 이번에 영순 쪽에 흉년이 심해서, 먹을것도 변변찮아 하루 하루를 힘들게 보내고 있다는 말로 서두를 시작했어. 요즘 형편들을 잘 알고있던 터라 증조할머니께서 마음이 딱해져 듣고있는데, 장家 사내가 이어 하는말이 자신이 사는 곳이 영순강 근처 뱀산이라 불리는 작은 언덕 앞인데, 밭에 무와 배추를 키워 그것으로 간신히 연명을 하고 있었다고 해.  그러던 차에, 하루는 밭에 나가보니 키우던 작물이 거의 다 뽑혀져 바닥엔 배추닢파리가 흐트러져있고... 멧돼지인지, 아니면 어떤 죽일놈이 이런 기근에 마을 이웃끼리 먹을 걸 훔쳐가나 싶어서 그날 밤에 숨어서 지켜보는데, 글쎄 삐쩍꼴아 기력도 없는 장녀가 새벽에 나오더니 밭에있던 무랑 배추를 뽑아서 그자리에서 입에서 피가 날 정도로 닥치는대로 먹어 치웠다고 해. 장家가 놀라서 단걸음에 뛰쳐나가니, 장녀는 신경도 안쓰이는 듯 흘겨보고는 그대로 주저앉아서 마저 먹어대면서 지 애비를 처다보는데, 그 눈빛이 핏발이 불거져 눈은 튀어나올 것 같고 한 일주일 굶은 개가 먹이를 먹듯이 정신없이 씹지도 않고 삼켜댔다고... 장家가 가서 붙잡고 말리니 "이거 놔! 배고파 죽을 것 같아. 죽으면 나를 잡아 먹으려고 그러는거지!" 하면서 사납게 할퀴더래. 결국 그 자리에서 자신이 먹던 양의 서너배는 족히 먹고나서야 쓰러져 잠들었다고 해. 이상한 건 아침엔  기억도 못한 다는 것. 단박에 이 것이 말로듣던 아귀구나 싶어서 증조할머니를 찾아왔다고 해. 이야기를 다 듣고나니 증조할머니께서도 같은 생각이셨는지 통가방에 이것저것 챙겨 장家를 따라나섰다고 해. 장家네에 도착하니 다소 흙바닥이 삭막해 보이는 마당에 깨진옹기가 험악하게 방치되어있어서 집안 사정을 대변하듯 보였다고 해. 부엌을 들여다보더니 "부인은 산에 나물이나 풀뿌리를 캐러간 것 같습니다" 하고 장家가 말하자 소리를듣고 방안에서 두 남매가 뛰어나와 지 애비에게 안기는데 한 눈에 보기에도 장녀는 피골이 상접하여 똑 하고 부러질 것 같았고, 아들래미는 이제 예닐곱살 로 보였는데 누나랑 투닥투닥 하면서 웃는걸 보니, 지 누나랑 사이가 무척 좋아보였다고... 장家말로는 장녀에게 아귀가 드는날에도 지 동생에게는 할퀴거나 해코지 하지않고 가만히 내버려둔다고 했대. 증조할머니께서 부엌에 들어가 가마솥을 여니 말라붙은 쌀겨죽이 참 딱했다고 해. 가방에서 쌀과 소금, 무를 꺼내서 흰 쌀죽과 소금으로 삼삼하게 간을 한 무국을 끓여서 장家네 가족에게 대접을 했어. 장家가 "이런걸 다 챙겨주시고 정말 감사합니다."하고 는 자식들과 식사를 드는데, 갑자기 장녀가 눈이 헤까닥 돌아서는 엄한 숟가락 내버려두고는 손으로 허겁지겁 죽을 퍼먹고 국을 건더기도 씹지않고 단번에 마셔버렸다고 해. 증조할머니께서 깜짝 놀라서 무의식적으로 장家의 아들래미를 팔로 저지했는데, 장녀는 그 것을 신경도 안 쓰고는 지 애비 것, 동생 것 할 거 없이 다 먹어버리고는 부족한지 주위를 두리번 두리번 거렸는데 증조할머니께서 딱 보기에 '기근이 심해셔 기력이 딸리니 정신을 곧게 잡지 못 하여 아귀가 들었구나.' 하고는 장家에게 "따님좀 붙잡고 계셔주세요."하니 장家가 다급히 지 딸의 양 팔을 뒤에서 붙잡았어. 힘이 어찌나 센지 금방이라도 뿌리치고 나올 듯 흉폭하게 날뛰었는데, 증조할머니께서 가방에서 종이를 꺼내 미리 갈아온 먹을 붓에 찍어 飽(배부를 포)를 적어 날뛰는 장家네 장녀의 배에 올리고 흑설탕을 푼 냉수를 한 잔 먹이니 이내 잠잠해졌다고 해. 날이 저물고, 후에 飽(배부를 포)라고 적은 종이를 방안에서 태우고, 그 잿물을 다시 한 번 장家네 장녀의 배에 펴바르니, 집 밖에서 누가 다다닥- 도망가는 소리가 들렸다고 해. 주위를보니 다른 사람들은 못 듣고 자신만 들은 것 같아서 '아귀가 도망갔구나.' 생각하고,  장家에게 "당분간 괜찮을 겁니다. 심신이 약해지지 않게 잘 돌봐주세요." 하고 가지고 온 쌀 한 되를 장家가 해온 참나무값이라고 주고, 나서려는데 장家네 마누라가 나물을 거의 캐지못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자초지종을 듣고 몇뿌리 안 되는 나물을 준다는걸 한사코 뿌리치고 돌아왔다고 해. 집에 돌아와서 증조할아버지에게 얘기를 했더니, 아까운 쌀 왜 퍼주냐고 타박만 들었다고... 며칠이 지나고 매일 쨍쨍하던 날이었는데 그날은 유난히 습하고 칙칙한 날씨였어. 느낌이 사이해서 비가 올까, 말리던 곶감을 집안에 들여 놓고 있는데, 일전에 보았던 장家 마누라가 땀을 뻘뻘 흘린 채 증조할머니를 찾아왔다고해. "보살님 서방님좀 말려주세요." 하고 눈물이 그렁그렁하여 마루에 십자수를 하다만 천으로 땀을 닦으라고 주고 "무슨일인지 숨 고르고 찬찬히 말씀 해보세요."하니. 장家 마누라가 마루에 털썩앉아서 하는 말이 증조할머니께서 다녀 간 뒤 몇 일은 아무일도 없었는데, 가져다준 쌀로 죽을 풀어 먹으니 웬지 보살님이 주신쌀이라 그런지 더 힘도나고 장家가 덫을 놓은 곳에 노루도 잡혀서 잘 지내고 있었다고 해. 그러던 와중에 하루는 잠을 자는데 새벽에 쩝쩝-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일어나 보니 장녀가 누워있던 자리엔 아무도없고 밖에서 계속 쩝쩝-소리가 나더래. 서둘러 서방을 깨워서 호롱불을 들고 나가보니. 장녀가 살을 잘 도려서 옹기에넣어 묻어둔 사슴고기를 꺼내어 뜯어삼키고 있었다고... 장家가 대노(怒:성낼 노)하여, 생고기를 뜯어먹던 장녀를 잡아당겨 팽겨치고, 남은 고기를 다시 손질해서 넣어두려고 보니 뜯어먹은 부위가 냄새가 나고 샛보랗게 색이 변해서 먹지 못 하게 되었다고 해. 분노를 삭힐 틈도 없이 장녀가 "이 죽일놈들 나를 굶겨 죽이려고 그러는구나!" 하고는 장家에게 덤벼들었대. 장家네 마누라는 자기 딸이 눈이 새빨갛게 불거져서 지 애비에게 달려드는걸 보고 소름도 돋고 겁도나서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는데, 장家는 화를이기지 못 하고 그런 딸을 머리를 세게 내리쳐서 기절시키고는 싸리줄을 묶어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장녀를 들쳐업고 두어 시간을 걸어 뱀산 안에 있는 초가집에다가 버렸다고 해. 지금은 없어진 관습이지만 옛날에는 부모가 죽으면 자식이 묘 앞에 집을 지어 길게는 3년까지 장사를 지냈다고 하는데, 그런 집이었어. 아무튼 날이 새고 장家네 마누라가 딸을 데려와야 하지 않겠냐고 장家랑 실랑이를 벌이는데, 장家가 하는 말이 "계속 이렇게 살다간 당신도 나도 그렇거니와, 하나뿐인 장씨집안 지손도 굶어 죽게 생겼어! 아들래미마저 죽일 셈이야?" 하고 장녀를 버린 것을 기정사실로 단락 지어버렸다는 거야. 더이상 다툼은 의미가 없었고, 딸래미를 포기할 수 없었던 장家네 마누라는 증조할머니를 찾아오게 된거지. "아무리 살기 힘들어도 자식살고 부모살아야 하는 것을..."하고는 장家네 마누라를 따라 다시 장家네 집으로 가 보니 아무도 없었는데, 장家네 마누라가 말하길 "나무를 하러 간다고 하더니, 아들래미를 데리고 같이 갔나 봅니다."해서 장家네 마누라와 증조할머니랑 이렇게 둘이서 뱀산으로 향하게 됐어. 산행을 하는 중에 증조할머니께서 가방에서 좀 시간이 지나 딱딱해진 백설기를 꺼내어 나누어 주니"감사합니다." 하곤 허겁지겁 받아 드시더래. 약수터에서 물 한잔 마시고 마저 올라가다보니,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수림이 빽뺵해서 햇빛도 안드는 곳에 황토와 짚으로 지어진 초가집이 하나 나왔어. "그저께 간밤에 딸래미를 버려둔 곳이 이 곳입니다."하고 는 장家네 마누라는 걸음을 멈추고 오한이 드는지 주위만 두리번거리고 가만히 있어서, 증조할머니께서 "여기 계세요. 따님은 변고 없을 겁니다."하고 혼자 걸음을 옮겨서 들어가는데 초가집에 가까이 갈 수록 공기가 차갑고 피부가 따끔거리는 것이 '이 곳 산신이 버린 땅 처럼 기운이 좋지 못하구나...'하고 찬찬히 살피는데 집 안에서, 쩝쩝- 소리가 들려오더래. '터가 음습하여 귀가 숨기 좋은 곳이야. 그 때 도망친 아귀가 여기 숨어있었던 건가.' 생각하고 뒤를 살피니 장家네 마누라는 초가집에서 멀찍이 떨어져서 보고있더래. 증조할머니께서 괜찮다고 손짓을 한 후에, 조심스럽게 너덜한 창호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세상에! 초가집 천장에 짚으로 굵게 엮은 동아줄에 장家네 장녀가 목을 매달아 있었는데, 핏줄이 터져 새빨개진 눈알이 감지도 않고 여기저길 살피고있었고 입에는 아직 삼키지 못한 날고기 같은것을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고 해. 목을 메단 장家네 장녀가 눈과 입이 움직이는걸 보고 '아직 살았구나!' 싶어서 굳어서 풀리는 다리를 겨우 힘을 주어 움직여서  장家네 장녀를 조심스레 내렸어. 장녀의 몸에 닿는 느낌이 한 겨울 얼음덩이같이 차갑고 딱딱해서 내려놓고 보니, 웬걸? 이미 죽은지는 꽤 지난 것 같이 사후경직이 다 진행되었다고 해. '죽은 몸에 아귀가 들렸었구나!'하고 가방에서 성냥을 꺼내 향을 붙여 태우고 아직 먹지 않은 백설기 한 덩이를 내려놓고 떡 밑바닥에 붓으로 갈아온 먹을찍어 瞞(속일 만)을 적고 안 보이게 땅에 놓고 위에는 飽(배부를 포)를 적어서 향을 백설기에 꽂고 급하게 읍을 하고 했다고 해. 간이적으로 제를 올리고 나니 향 잿가루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백설기떡이 샛보랗게 변했다고해. 증조할머니께서 다시 일어나서 뒷문으로 이어진 핏자국을 따라 나가보니 밖에서 또 쩝쩝- 소리가 들리길래 기이하고 모골이 송연하여 조심스럽게 나가보았다고. 그랬더니 핏자국 끝에는 삼분지 일은 파먹힌 정체모를 주검이 초가집 벽에 기대어 있었는데, '작은 소녀가 산짐승을 어찌 잡았을꼬...'하고 가까이 가보니, 삼분지 일은 파먹은 그 고기는 산짐승이 아니었어. 증조할머니께서 아래부터 떨리는 눈으로 훑어보니, 헤진 고무신을 지나 넝마가 된 옷이 벗겨져있고, 거칠게 짖이겨진 고기위에 달린 것은 사람머리가 확실 했거든. 산짐승이라고 생각했던 그 사체는 다름아닌 사람이었는데, 와중에 또 쩝쩝-거리는 소리가 초가집 안에 들려왔지만 증조할머니는 일단 장家네 장녀가 약초꾼이나 나물캐러온 사람을 잡아먹은 건가 싶어서. 시체를 먼저 살폈다고해. 자세히 살피니 시체는 작은 아이였고 고개를 살짝 들어보니 다름아닌 장家네 아들래미 였어. 분명 장家를 따라 나무하는 곳에 갔다고 했건만... 아무래도 장家가 나무를 하러 간 틈을 타, 누나를 찾으러 뱀산에 들어 온 것 같았다고 해. 그렇게 생각하니 자초지종이 이해가 됐지. 아귀들리던 장녀는 배가 부르면 정신이 돌아왔을테고, 죽은 자신의 동생을 보고 이내 자신이 기억이 없는 아귀들린 순간에 동생에게 몹쓸짓 한 것을 깨달았을테였어. 그래서 자살까지 가지 않았을까... 증조할머니는 이걸 어찌해야 되나 싶어서,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죽은 장家네 아들래미 얼굴에 덮어두고. 어떻게든 조치를 해야겠다 싶어서 뒤를 돌았는데 뚫린 창안으로 초가집 안을 보니 백설기는 거의 다 사라지고 없고, 죽은 장家네 장녀의 입에 백설기가루가 잔뜩 묻어있더래. '지독한 악귀구나!' 싶어서 얼른 장家네 마누라에게 돌아가니 불안한 표정으로 무슨일인가 눈치를 살피길래, 한 껏 마음이 무거워진 증조할머니께서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귀신이고 뭐고 겁조차 집어삼킬만큼 깊은 슬픔이 왔는지 장家네 마누라가 삽시간에 달려가더니 죽은 두 남매를 끌어안고 오열을 했다고 해. 그 날 오후에 장家가와 마을사람들을 대동하여 다시 뱀산에 초가집을 찾았고 날이저물기 전에 두 시신을 수습하여 양지바르고 볕잘드는 곳에 묻고는 위령제를 지냈다고 해. 후에 장家네는 다행이도 새로이 득남을 하고 보릿고개도 잘 넘겼다고... 그 후에도 뱀산에 약수를 뜨러 가거나 하는 사람들이 초가집에서 쩝쩝-거리는 소리를 자주 듣는데, 안에서 소리가 나서 들어가면 아무도 없는데 또 밖에서 쩝쩝-소리가 나고, 다시 밖에 나가보면 아무도 없고... 소름돋는 경험을 많은 이들이 겪었다고 하네. 현대시대에 들어서는 옛날에 아귀들렸다는 증세가 지금의 폭식증과 비슷한 것 같아. 지금은 뱀산폐가는 사라졌지만 아직도 문경 점촌 돈달산 약수터를 지나면 폐가같은 뜬금없는 건물이 하나있어. [출처] 모해유머커뮤니티 (조아라 /글쓴이 담론) ___________________ 모두가 근근히 삶을 이어 나가고 있던 시기의 이야기들이라 면면이 너무 슬프다 그치. 6번 이야기는 천하의 못된놈이지만 7번, 8번은 너무 슬프고 무서워서 마음이 자꾸 아려 오더라. 어떤 기분이었을까. 얼마나 사무쳤을까... 내일도 또 이야기 가져 올게. 오늘은 날도 흐렸는데 흐린 날엔 귀신썰이 딱이지. 잘 자고 내일 보자 ㅎㅎ
퍼오는 귀신썰) 할머니한테 들은 증조할머니 이야기 -4-
오늘이 이제 무슨 요일인지도 모르겠다 보고싶은 영화도 많고, 날씨가 좋으니 바람도 쐬고 싶은데 언제쯤 맘 놓고 나설 수 있을까 답답한 마음 볼거리라도 많으면 좋으니까 오늘도 같이 이야기 이어 볼까? ______________________ 11. 항상 잔치 지내는 마을 1931년 금추(가을) 증조할머니께서 젊었을 적 낭랑 열어덟의 나이때에 일. 당시 문경 흥덕에 시집와서 살던 증조할머니께서, 하루는 마루에서 엎드려 글 공부를 하시는데 누가 문을 두드렸더랬다. "누구세요~" 하고 나가보니 웬 청년이었는데 주욱- 훑어보니 우편가방을 울러메고 헤진 고무신에 노란 편지봉투를 들고 있는 집배원. 그 청년이 "편지왔어요." 하니 증조할머니께서 "감사합니다. 아, 잠시만요!" 하고 편지를 받아 펼쳐둔 책사이에 대충 끼워놓고, 냉수를 가져다 집 안 마당 에서 따온 향 진한 모과를 얇게 포떠 물에 띄워 줬다고 해. 집배원이 살갑게 웃으며 단번에 마셔버리곤 모과수의 청량감에 놀란표정을 지으며 "하! 맛이 정말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는 마저 일을 보러 나갔어. 증조할머니께서 마루에 털석- 앉아 편지를 열어보니, 상주 양진당쪽 승곡리에 살고있는 친가에서 온 것이었는데, 내용인 즉슨 상주 승곡리와 은평리는 바로 옆 동네로 매우 가까워, 옆마을 은평리에서 매일같이 잔치를 한 지가 어느덧 보름(15일)이 넘었으니 기회가 되면 할애비도 보러오고 잔치도 놀다 가라는 것이었지. 증조할머니께서 '얼마나 기쁜 경사가 났길래 보름내내 잔치를 하지?' 하곤 오랜만에 외출에 신이나서 방방- 뛰었는데, 마당쓸던 시동이 뭔일인고 처다보았더래. 증조할머니께서 내일 가도 될 것을, 당장 마루에 종이를 펴 날아가지 않게 증조할아버지가 피우시는 곰방대를 올려두고는 저녁에 집에 들어오실 증조할아버지 보란 듯이 <친가 놀러 다녀 올게요. 시동 데리고 갑니다.> 적어놓고는 받은 편지까지 나란히 두었대. 그리곤 통가방에 짐을 챙기더니 시동을 시켜, 나귀를 준비하고 상주로 출발하셨다고. 나귀를 타고 가는길에 시동과 추수하는 농부들을 보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세시간을 넘게 가니, 이윽고 친가에 도착했더래.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은평리와 승곡리 쪽은 풍양 조가 집성촌이어서, 그만큼 조가 분들이 많았겠지? 증조할머니의 친가도 마찬가지로 호군(풍양 조가집안 문중 공파중 하나)조씨 집안이었는데, 기왓집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밝은 분위기의 편지와는 다르게, 집안 사람들은 평소와 다를바 없었더래. 오랜만에 보는 어머님과 살갑게 인사를 하는데, 대청(건넌방과 안방 사이 큰 마루)에서 콜록- 콜록- "명아(아이 아) 왔구나" 하고는 집안 제일 어르신께서 증조할머니애칭을 부르셨대. "네 할아버지. 손녀 왔어요." 하고는 대청으로 올라가 큰 절을 하니 어르신이 말하길 "갑자기 불러서 미안하게 됐구나."라고 서두를 시작하셨대. 증조할머니께서 "아니에요. 그런데 무슨일 있으세요?"하니 어르신이 껄껄- 웃으시면서  "그런거 없다. 실은 옆 마을에 해괴한 일이 좀 있는데, "콜록-"니가 영험하다고 화천(풍양 조가집안 문중 공파중 하나)늙은이 한테 자랑좀 했더니 글쎄, 사례는 크게 할테니 불러 달래는거야." 하셨더래. 조가네 며느리가 따뜻한 유자차를 한 잔 올리자 어르신께서 천천히 마시고 기침을 가라앉혔어. 증조할머니께서 다소곳이 앉아 "그럼 잔치는..."하고 놀고싶은 마음에 성급히 입을 열었다가 어르신의 눈치를 보니 허허- 웃으시면서  "아, 물론 잔치는 하고있지.  매일 해서 문제야." 하면서 이야기를 해주셨더래. 은평리 화천공파 집성촌에서 매일같이 하는 잔치는 우육(소고기)이 남아돌아서 하는 잔치였더래. 당시 상주에는 소 농장이 많았는데, 하루에 한 마리씩 소가 이유모르게 죽어버려. 기이한 것은 죽은 소를 발견해서 보면 배가 목 밑부터 꼬리까지 一자로  갈라져, 안에 장기들이 감쪽같이 없어져 있다고, 하셨다고. 일이 벌어진지 벌써 일주일. 처음에는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산짐승이 내려와서 그랬거니 하고, 죽은 소로 마을사람들을 모아다 잔치를 하고 남은 고기들은 옹기에 잘 담아서 서늘한 냉골에다 넣어두었더래. 그런데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매일같이 소가 죽어나가는 거지. 밤새 마을청년들이 지켜도 산짐승 코빼기도 안 보이는데, 아침이면 어김없이 소가 한 마리씩 죽어버려. 키우던 소가 죽은 집들은 우둔(부위중 하나)은 말리고, 늦게 상하는 고기들을 재우고, 마을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대. 도축하는 사람들은 장사도 망치고, 고기를 가득실어 행상이 장사를 떠나도 고기가 많이 남고 매일같이 소가 죽어가니, 마을은 잔치 아닌 잔치를 계속 벌이게 된거라고 하셨대. 증조할머니께서 이야기를 듣고는 불현듯 생각이 들었는지, 집안 며느리에게 부탁을 드려서 용담(7~9월에 꽃 피우는 약초 뿌리 말린 것, 간 두통 해열 편도 고혈압 관절 소화 메스꺼움 설사등등 효험이 좋다.)을 두둑히 챙겨넣고는, "잘 해결하고, 할아버지 먹을 고기까지 함지박 만하게 받아 올게요." 하니 어르신께서 껄껄 웃고는 "이가 없어서 잘 씹지도 못 해. 가져다준 고기가 많아서 한참 먹어도 남으니 걱정말고 니 서방거나 받아오니라."하여 증조할머니께서 어르신께 인사를 드리고 시동을 부르는데 왠 아저씨도 같이 오더래. 그 아저씨는 짧은 수염을 멋지게 길르고, 양복에 중절모를 썼는데, "반갑습니다. 태화(안동 태화동)에서 온 황 성현이라고 합니다."하고 살짝 고개를 숙이니 증조할머니께서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어르신을 향해 "이 분은..." 하니 어르신께서 "은평리에 근래에 병든사람이 많아졌다고 해서, 내가 불렀다. 그 화천늙은이 나한테 빚 많이 진게야."했어. 안동에 사는 유명한 한의(한의사)였지. 증조할머니께서도 뒤늦게 인사를 드리고 같이 은평리로 출발하게 돼. 친가쪽은 부유하게 잘 사는 집 안이어서 당나귀를 맡기고 이두 마차를 얻어서 마부, 시동, 성현한의, 증조할머니 이렇게 네분이서 은평리로 향했지. 은평리로 다다를 수록 산은 낮고 민둥에다가 흔한 추화(가을에 피는 대부분의 꽃)조차 보이지 않고, 공기가 매우 건조했다고 해. 30분도 채 안 걸려서 도착했는데, 마을 어귀부터 우육 삶는 냄새가 자욱했다고... 마을은 흙길을 중앙에 두고 양 쪽으로 집들이 모여 군집생활을 하는 촌이었어. 화천어르신을 뵈러 마을로 들어서는데, 집집마다 상을 가져나와 큰 버드나무터 밑에 자리를 펴고 다른 음식은 일절 없고, 탁주를 겸하여 고기를 먹고 있었더래. 그 사람들 표정이 하나같이 매우 어둡고, 멋 모르는 아이들만 신나게 뛰어놀고 있드라니, 좀 더 들어가 보니 언덕에 소 농장이 하나있고 고풍스러운 한옥이 한 채 있었는데, 마부가 "도착했습니다. 아가씨."하여 다들 내려서 문을 두드리니 안에서 청년 한분이 나오더래. "어서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하고 인사를 하더래. 마부와 시동에게 건넌방 사랑채에 짐을 풀게 돕고, 성현한의와 증조할머니를 대청옆 안방으로 뫼셨어. 곰방대를 뻐끔- 태우시던 화천어르신이 계셨는데 미간이 골이 깊은 것이, 기가 매우 드세보였다고... 일행이 큰절을하고 서있는데 화천어르신이 "뭘 다들 멀뚱히 서있어! 어서들 앉어." 하여 성현한의가 중절모를 벗어 옆에 내려두고 앉으니 증조할머니께서도 따라 앉았어. 으흠- 하고 한 번 주욱둘러보시다가 입을 열었는데, "너는 호군늙은이 가 보내서 온 손녀보살이고, 너는 태화에서온 한의가 맞을테고." 하고는 곰방대를 화로에 올려놓고 마저 말을 이었는데 "대충 이야기는 들었을 것이야. 쇠(소)들이 잘 먹이고, 잘 치는데도 희떡희떡 죽어가고 있으니, 살핌이 옳다! 저 밖에 임칠(화천공파 24대 칠자돌림)이가 안내를 해 줄것이야." 하고는 나가보라고 손짓을 하니 증조할머니께서 "열심히 살피겠습니다."하고는 살짝 목례를 하고 나왔어. 조임칠이라는 청년의 안내로 시동을 대동하여 다시 버드나무터로 걸어 나와보니 사람들이 흘금흘금 쳐다보는데, 그중 고기삶던 아낙 하나가 "한 분은 용한 보살님이라는데 한 분은 못 보던 분이구만."하니 성현한의가 모자를 벗어 인사하고는 "안동에서온 한의입니다."하니 그제서야 밝은표정으로 사람들이 다가왔지. "매일 고기를 먹으면 안되는 것입니까?"하고 한 사람이 입을 여는데, 사연인 즉슨 소가 죽는 일이 있고나서 일주일정도 지나니 대부분은 계속 먹어도 괜찮은데 그중 소수가 탈이나는 사람도 있어서, 그런 사람들은 우육(소고기)을 먹지 못 하고 지금도 시름시름 앓고 있다는 거였지. 하여 한의가 "제가 가서 살피겠습니다." 하니 서로 자기 집으로 모시려고 실랑이까지 벌어졌어. 그 사이 증조할머니께서는 사람들에게 물어 제일 소가 많이 죽었다는 집으로 갔는데, 임칠청년이 "조금 있다 뫼시로 오겠습니다."하곤 가버려. 시동은 어느틈에 얻어왔는지 큼지막한 고기를 으적으적- 소리내어 씹고 있다가, 증조할머니께서 버럭- 쳐다보자 눈치를 보다가 딸꾹질을 하더랬대. 잠시 기다리는데, 손에 묻은 피를 황급히 헝겊에 닦으며 나오는 아저씨가 있었지 "오시느라 고생많았습니다. 조 현구라고 합니다." 인사를 하고 부엌 뒷문을 지나 큰 외양간으로 뫼시는데 부엌에 손질하다 만 고기들이 있었다고... "저희집이 마을에서 소를 제일 많이 치는데 글쎄, 간밤까지 도합 여덟 마리가 죽어서 큰일입니다." 하고는 외양간을 보여주는데, 시내(시체냄새)가 나고 머리가 어지러워 증조할머니께서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 서서 있더래.  "냄새가 많이 역한가 봅니다."하고 아저씨가 말하자, 시동이 뒤따라 들어와 보니 쇠똥냄새도 나는데 시체썩는 냄새도 같이 어우러져, 손사래를 쳤다고. "군웅(외양간에서 모시는 신, 우마신, 쇠군웅 쇠구영신이라고도 함)은 어디서 뫼십니까?"하고 증조할머니께서 천천히 발을 떼어 안으로 들어가는데, "저깁니다."하고 아저씨가 안내 한 곳으로 가니, 외양간 중앙 목기둥(나무기둥)에 괴황지에 적은 산멕이글(군웅을 산, 산멕이라고 하여, 삼신과 비슷한 급으로 대우함)을 못을 박아 걸어놓았는데, 색이 바라고 그 밑에 공양대엔 아무것도 없었다고 해. 괴황지를 한 번 스윽 만져보니 아무 기운이 없고 종이가 비쩍말랐다고 해. 만진 손 끝에 향을 맡아보니 무취(아무냄새가 없음)에다가 자세히 보니 끝은 조금 찢어져 있었다고... 시동이 아무래도 냄새때문에 안 되겠는지 나가 있으려는데, 증조할머니께서 "나가지 마세요." 하고는 가방에서 부용향(혼인에 쓰던 향의 종류로, 터를 정화하고 잡귀를 쫒을 때 쓰기도 한다.)을 너댓개를 성냥불로 태우니 스산하게 퍼지면서 악취를 없애나갔더래. 그렇게 향을 들고 외양간 끝까지 한 번 주욱 도는데, 끝에있던 소 한마리가 느닷없이 거칠게 울어대길래 증조할머니께서 향을 들고 가까이가니, 투레질을 하면서 뒤로 막 물러나더래. 시동이 증조할머니께서 행여 다칠까 다가와 증조할머니를 뫼시고 뒤로 돌아왔지. "무슨 일인 것 같습니까?"하고 아저씨가 묻자, 증조할머니께서 말하길 "여기에 군웅신이 계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하고는 설명을 덧대는데. 군웅신을 모시지 않으면 집안에 환란이 생기기 때문에 성주신보다 더 위해야 한다고... 이렇게 소에게 변고가 있을땐 외양간에서 제를 지내야 한다고 하셨지. 증조할머니께서 "시집간 따님이 계십니까?" 하니 "작년에 고명딸 하나가 시집을 갔습니다."했대. 불현듯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치며, 군웅은 딸을 따라간다는 말이 있는데, 이 때문에 군웅을 모시는 집에서 딸이 시집을가면 굿을 다시 하여 새로 군웅을 잘 모셔야 한다고... 잘 모시지 않으면 외양간에 귀가들어 심하게는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고 하셨어. "어찌해야 합니까?" 아저씨가 물으니 "일단 확실한지 봐야 겠습니다."하고는 군웅을 모시는 공양대에 가져온 용담을 올려놓고 향을 피워둔채로 나왔더래. 증조할머니께서 상주 읍내에 용한 무당을 불러오도록 시동을 시켜 보내고, 성현한의와 다시 만났는데 한의가 말하길 "탈이난 사람들에게 침술을 놓고 약을 처방해도 차도가 없어서 통증만 가라 앉히고 왓습니다."면서 고민을 하더래. 그 때 낮에 들렀던 집에 아저씨가 헐레벌떡- 증조할머니를 찾아오더니 "소가 쓰러져서 움직이도 않고 숨만 몰아쉬고 있습니다!"해서 성현한의와 증조할머니께서 아저씨를 따라 그 집 외양간으로 다시 가보게 됐지. 날이 어두워져 외양간 안도 잘 보이지 않아서 호롱불을 들고 비춰보니 말대로 소가 쓰러져있는데, 낮에 투레질하며 증조할머니를 피하던 그 소였어. "식초? 냄새 나지 않습니까?"하곤 성현한의가 말하자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했어. 증조할머니께서도 아주 강한식초냄새를 맡으셨더래. 그 때, 갑자기 소 배가 一자로 주욱 찢어지고 장기가 쏟아졌는데, 보고있던 아저씨와 성현한의가 깜짝 놀라서 뒤로 멀찍이 도망가 문 뒤에 숨고 증조할머니께서 헝겊으로 코와 입을 막고 보니 뭔가 꾸물꾸물 배 속에서 나오더라는 거야. 강한 식초냄새를 풍기며 나온 그 것은 새카만 뼈가 다 보일정도로 투명한 몸에 어린아이처럼 작고 가느다란 형상에 머리가 크게 붙어 있었더래. 눈 코도 없이 입만 덩그러니 있는데, 입이 신기할 정도로 동그랗게 크고, 안에 이빨은 동글동글 콩을 박아 놓은 것처럼 생겼다고 해. 사이한 기운을 풍기면서 나온 그 것은 자리를 잡고 앉더니 죽은 소의 내장을 입에 대고 쪽-쪽- 하고 입으로 쏙- 빨아삼켜버렸대. 그렇게 다 먹어치우고는, 옆칸 소의 쇠구(소입)를 벌려서 미끄러지듯 그 소 안으로 들어갔다고... 증조할머니께서 '병귀가 들었구나' 하고는 널찍이 떨어져서 지켜 보시다가, 숨어있던 아저씨와 성현한의에게 "사라졌으니 오세요."하고 손짓을 했대. 그들이 가 보니, 아침마다 죽어있던 소 처럼 장기가 사라져있었지. "어찌된 일입니까?"하니 증조할머니께서 대답 대신에, 가방에서 괴황지를 꺼내어 牛獄(우옥 : 소 우, 옥 옥)이라고 적어 귀가들어간 소 배에 착- 하고 붙이니 소가 낮게 울었어. "군웅이 없는 틈을 타 병귀가 든 것 같습니다." 하고 덧댄 내용인 즉슨 병귀는 질병귀라고도 불리는데, 사람에게 병을 옮기는 나쁜 귀라고 하더래. "아마도 근래에 아프고 병이든 사람들 집은, 군웅을 제대로 모시지 않고 있을 거에요."해서 아닌 밤중에 호롱불을 들고 성현한의가 진료한 집들을 방문해보니. 과연, 외양간 기둥에 천으로 신체를 만들어서 군웅을 뫼시는 집도, 그 천이 다 헤지고 상하였고. 어떤집은 아예 모시지도 않고 있었더래. 다음날 아침에 시동이 무당을 데리고 마을에 오자, 무당이 "이런일은 태어나 처음 봅니다."하고는 증조할머니와 성현한의와 같이 화천어르신께 갔어. 지난밤에 일들을 고하고 증조할머니께서 설명을 덧대자, 화천어르신은 마을 사람들을 모아서 군웅을 잘 뫼시라고 일렀지. 당시 마을에는 미신을 믿지 않는 사람도 꽤 있어서, 다들 반신반의 하면서 제를 올리게 돼. 무당이 버드나무터에서 굿을 하고, 와중에 증조할머니께서 포목점에서 고운 비단을 구비해서 한지와 잘 꿰메어 천자대국님(天子) 이라고 적었어. 그 것을 집집마다 외양간 구유 위쪽에 잘 걸어두고, 시루떡과 북어를 공양대에 간소하게 차린 뒤에 부용향을 피웠어.  그리고는 어제 牛獄(우옥)이라고 적어서 배에 붙였던 소에게 가져가신 용담뿌리를 곱게 갈아 살짝태워 거뭇해진 여물과 섞어 먹이고, 마을 소들에게도 똑같이 먹이라고 하셨더래. 당시에 용담뿌리는 많은 방면에서 효능이있고 진통효과도 뛰어난 데다가 위장병에도 효능이 있다고 알려졌더래. 그렇게 일은 일단락 되고, 후에 소들이 급사하는 일은 사라졌다고... 실제로 지방에선 쇠구신(군웅)을 모시는 집의 딸을 며느리 삼으면 쇠구신이 따라는데 그 집에서 모시지 않으면 해코지를 한다고, 쇠구신을 모시는 집 딸은 며느리 삼기를 꺼리는 곳도 있었다고 해. 아직까지 소를 키우는 곳에서는 군웅을 모시는 신체(위령패 비슷한 것)도 많이 발견 할 수 있어. 12. 전쟁이 몰고 온 망혼 1950년 주하(여름) 할머니(증조할머니의 딸)께서 창창한 여학생때의 일. 지독한 가뭄으로 문경전역은 기근과 열병에 시달리던차에 6.25가 발발했지. 그 것도 매일같이 많은 사람이 죽어나갔더래.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을 끼고있는 천고의 요충지였던 만큼 전투가 잦았고, 한국의 정 중앙에 위치해서 어디 지역으로든 진군하기가 수월했기 때문에 북한에게 문경은 상당히 점령선상의 우위에 있었어. 덕분에 문경에 사는 무고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할머니께서는 당시에 자신이 아둔했다고 자주 말씀 하셨어. 전쟁의 발발은 그 당시 할머니에겐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을 준거라고 생각하는 철없던 시절이었다고 말이지. 실상은 전혀 달랐어.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문경의 많은 남학생들이 학도병(학도 의용군)이 되어 충주, 영덕, 포항등 전역으로 징집당했어. 한국을 수호하기위해 뜨거운 가슴으로 인민군에게 맞섰지. 예외로 여학생들도 학도병을 자처해서 가는 경우도 꽤 있었다고 해. 증조할머니께서 할머니를 잘 붙잡아 두어서 망정이지. 아니면 난 빛도 못 볼뻔 했어. 특히나 지독했던 것은 한국군의 비행기 공습이었다고 했어. 7월말부터 시작된 공습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침에 두 시간씩 매일 폭격이었다고 했어. 무서운 사실 하나는 그 비행기는 인민군과 민간인을 구별하지 않았더래. 사람이 나타나면 무조건 사격을 했다고... 당시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했어. 한국군의 작전 개념으로 보자면 적 치하에 있는 사람은 모두가 무조건 적이었으니까.  당시 문경은 인민군 치하에서 멀쩡한 집은 다 인민군에게 자리를 내어준 채, 콩만한 오두막에 완두콩이 맺힌것 처럼 다닥다닥- 붙어 숨어지내는 집이 많았지. 증조할머니께서도 인민군에게 집을 내주고, 증조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데리고 함창에서 과수원을 하던 이모댁에 피신을 가 있었다고 해. 하지만 8월 중순즈음에. 인민군 한 소대가 이모댁까지 휘저어버려. 하여, 그들은 큰 안채를 차지하고 결국 작은 쪽방에서 이모댁 식구와 증조할머니댁 식구가 모여서 지냈다고해. 하루하루 불길한 긴장감의 연속이었다고... 하루는 멀찍이 인민군의 감시아래, 아낙들이 마을 개천에서 빨래를하다가 한 아낙이 조용히 얘기하길 "하이고 클났네. 백종절(억울하게 죽은 조상이나 망자의 혼을 위해 제를 올리는 날)이 당장 내일 인데..."하고 운을 떼었더래. 탁-탁 거리며 나던 다듬이방망이 소리가 멈추고 다른아낙이 "나라가 흉흉하이 아버지 제사도 못 지내가이고 큰일이라. 망혼일이라도 챙겨야 되는데."하니 증조할머니께서 듣다말고 "그러지말고 음식 하나씩이라도 구해서 제를 지내는게 어떻습니까?"해서 모의가 시작됐더래. 방법인 즉슨, 가뭄이 심한데다가 인민군까지 눈에 불을 키고 있는 마당에 힘들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백중은 어차피 달밤에 지내야 하니, 인민군들이 잠든 새벽에 채소, 과일, 술, 밥을 각자 하나씩 가지고 한 곳으로 모여서 제를 올리자는 것이었지. 한 상에서 여러 조상을 지방(조상 모시는 패를 종이에 쓴 것)써서 모시긴 상이 부족하니 망혼제(조상신 뿐만 아니라, 억울하게 죽은 혼까지 위로하고 후손에게 홍복을 비는 제)의 방식으로 지내기로 한거야.  大지방은 증조할머니께서 준비해서 오기로 했더래. 그렇게 대화를 조용히 나누고 있는데 눈치보던 한 아낙과 감시하던 인민군이 눈이 마주쳐 버렸어. 그러자 갑자기 "녀자들 뭐하는 거이네? 반동꾸밀 생각 말라! 납철알(총알 북한말) 배때지에 박히고 싶디!?" 하고 인민군이 총구를 들이밀고 으름장을 놓아서 더 이상 모의는 하지 못 하고, 이내 빨래가 끝나 흩어졌다고 해. 8월 28일(음력 7월15일 백중또는 망혼일)저녁. 자정이 되기전에 긴박하게 모인 식솔들은 증조할머니네를 포함해서 네 식구. 치맛저고리 품 안에 몰래 가져온 음식들은 다소 조촐하기 그지 없었어. 고사리와 배추닢을 채썰어 간장에 무친 것과, 이모댁 과수원에서 딴 배와 사과, 오래된 곡주 한병과, 몰래 짓느라 설익은 꽁보리밥이 다였지.  다리가 없는 나무로 된 사각 쟁반을 무릎즈음 오는 바위 두개에 걸터 올려놓고는 조촐하게 상을 차렸어. 할머님이 한지에 곱게 적은 지방을 올리고, 목향(절에서 흔히쓰는 나무향)과 초를 피워 제를 올렸어. 증조할아버지께서 두 번 절하고 곡주를 돌린 뒤, 할머니와 증조할머니께서 두 번 절 하고 읍을하면, 다른 식구들도 가장이 나와 절을 두번 올리고 곡주를 전과 같이 돌렸대. 이어 식솔들이 나와서 두 번 절하고 읍을 올리는 식으로 근래에 제사와 매우 비슷하게 진행 됐다고 해. 망혼제라 그런지 대상이 불 분명하고 많은 가족이 모여 지내다 보니 "조상들이 너무 모일까봐 걱정이라. 근래에 전쟁때문에 억울하이 죽으신 분들도 많은데 그 혼까지 다 오는거 아이라?"하며 한 아저씨가 말을 하자 그 집 아낙이 "음식이 작아 화를 부를까도 걱정이에요." 하던차에, 불 붙여둔 초가 꺼질락 말락 하니 바람이 살살 불자, 증조할머니께서 "많이들도 오셨네." 하고 망혼들의 천도(성불의 개념중 하나)를 위해 지방을 한 글자, 한 글자 읊으며 혼을 기리더래. 할머니께서 증조할아버지 바짓가랑이를 살며시 당기면서 "아버지 저건 뭐하는 거에요?"하고 묻자 증조할아버지께서 할머니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주고는"극락왕생 하라고 넋을 달래 주는기라. 내 죽으면 니도 제사 지내 줘야하는기라" 하곤 가지런히 손을 모으고 서 있더래. 망혼제가 잘 지내던 찰나에 갑자기 소리가 난 것은 뒤 쪽이었어. "이...이...! 쌍간나 새끼들 특무상사동무!(일등상사와 준위 사이계급, 지금의 원사와 비슷함.)이리좀 와보시라요!" 하여 제를 지내던 사람들이 기겁을 하고 쳐다보니, 증조할머니 이모댁에 있던 인민군들이 다른 식구집에 있던 자기 소대원들까지 대동하여 나왔어. 그 중에 특무상사동무라고 불린 인민군 하나가 성난 콧김을 내뿜으며 다가오는데 "길티! 내 이럴줄 알았디. 촛불피워논게 뭐이네 하고 와 봤더니, 아새끼들 오마니 아바이 다 데리고 와서리 귀것(귀신 북한말)들 부르고 있구만 기래" 하고는 인민군들을 시켜 총을 겨누게 하곤 망혼제를 올리던 쟁반을 가져가 버렸어. 증조할머니께서 '혼이 떠나질 못 하고, 제 중에 혼들이 먹던 음식을 가져가 버렸으니 큰일났구나.'생각하셨다고 해. 해서 제는 다 지내게 해주고 음식을 가져가 달라고 말할 심산으로 "저기..."라고 입을 떼자마자 "저 종간나들 아가리 물리라우." 하고 옆에 있던 상급병사(병장 북한말)가 명령했더래. 말단 전사(이등병 북한말)들이 증조할머니의 따귀를 짝- 하고 강하게 내려치고는 끌고 갔다고.. "에미내. 락자없이(영락없이) 애옥살이(가난한 삶)척 굴더니만, 이거이 일났구만 기래."하고는 제를 지내던 사람들도 거칠게 끌고 갔다고.... 와중에 한 식솔이 이 맹렬히 반항하며 "집도 주고 먹을 것도 다 줬는데, 머하는 짓거리야!"하고 악다구니를 쓰니 전사 한 명이 개머리판으로 허벅지를 강하게 내리쳐 쓰러뜨리곤 "종다리(종아리) 부서지기 싫으면 얌전히 따라오라." 했어. 다른 인민군들도 낄낄대고 끌고가서는 곡창에 거칠게 쑤셔넣었대. 그러고선 망혼제를 올렸던 음식을 비벼서 나눠먹었다고 해. 물 한 모금 못 먹고 새벽을 보냈는데 날이트고 첫 닭이 울 때 즈음 밖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는데. "진새벽(꼭두새벽) 부터, 뭐이 이리 오구탕(야단법석)이네!?" 하고 특무상사 목소리가 들리더니, 잠시후에 탕- 하고 소리가 들렸더래. 곡창 앞에 서있던 인민군 하나가 부랴부랴 달려가자, 이모댁 할머니께서 살짝 빼꼼-히 문 을 열어보니 마당에 인민군 소대장 특무상사가 총을 맞아 쓰러져있었어. 상급병사가, 넋이 나간 표정을 하고있는 인민전사(이병) 한 명을 보고 "너이 탁없이(터무니없이) 뭐하는 짓이네!"하곤 그 인민전사가 들고있던 총을 빼았았어. "상사동무 정신차리시라요!"  하고 응급치료를 하는데 목을 꿰뚫려버려서 이내 죽어버렸다고... "남... 남조선 놈이었습네다..." 넋 나간 인민전사는 분명 그렇게 말했더래. 퍽-하고 상급병사가 개머리판으로 인민전사 머리를 강하게 내려치더니 다른 병사보고 "이 아새끼래 얼죽여(반 죽음, 빈사)버리라우!" 하고는 특무상사의 시신을 챙겨 나가서 군인들을 동원해서 묻어버렸어. 그와중에 집안에서 "상급병사 동무! 이리좀 와보시라요!"하더니 상급병사가 인상을 쓰고 돌아와서 "또 뭔일이네!?" 하고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곧 시끌벅적- 난리가 났다고... 잠시 후에 "그 쌍간나들 데려오라." 라는 상급병사의 목소리가 들리고, 곡창 문이 열리더니 인민군들이 안에 갇혀있던 사람들을 죄다 빼내어 마당에 무릎을 꿇렸대. "이거 보라우. 네 들이 델고온 귀것(귀신)이 한 짓이 틀림 없디 않네!?"하여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보니 상급병사 옆에 한 인민전사가 죽어있는데 턱에는  흰 토사물이 거품처럼 한 가득 묻어있고 입술은 엉성하게 위 아래로 바느질이 되어있었다고 해. "키대(허우대) 멀쩡한 아새끼래 방안에 혼자 있었는데도 이렇게 됐어. 지가 스스로 입을 꿰맸다는 말이디." 했어. 간밤에 거칠게 반항하던 아저씨가 "정신병이 있었던게지! 우리랑 상관없다."하니 상급병사가 눈썹이 악귀같이 변하곤 퍽- 하고 개머리판으로 아저씨의 머리를 찍어 기절 시켜버렸어. "쥐약이라도 처먹디 않고는 개거품을 물일이 없디 않간?" 하고는 죽은 인민전사를 가리키며"저거이 데리고 나가서리 묻어버리고." 기절한 아저씨를 가리키며"저거는 쏴 죽여버리라우" 했어. 아저씨 가족들이 울면서 그러지말라고 하는데 인민군들이 거칠게 밀어버리곤 기절한 아저씨를 끌고 나가버려. 증조할머니네가 말도 없이 마당에 무릎 꿇은채 조용히 있는데 한기가 몸을 훑고 지나가더니, 대청마루 밑에 어둡게 터를 진곳이 일렁일렁 거리면서 거뭇한 뭔가가 움찔-거리고 있었다고 해. 인민소대가 모여서 쌀겨로 죽을내어 먹고있는데, 기절한 아저씨와 좀전에 죽은 인민전사를 끌고간 인민군들이 급하게 뛰어오면서 소리를 질렀어. "살려주시라요! 살려주시라요!"하면서 들어오니 "뭔일이네!?"하고 상급병사가 대답하자, 헐레벌떡- 달려온 인민전사가 말하길 간 밤에 사라졌던 병사들이 개울가에서 죽어있다면서 시신들이 오체가 분시되고 목이 없어져있다고 하더래. "앙심품은 놈들이 그런거 아니네!?"하곤 상급병사가 벌떡일어나 총기를 들었어. "중급병사동무는 여기 남아서 이 것들 지키고 있으라우." 말하니 가족들을 감시할 중급병사(상병)하나만 남고 나머지 인민군들도 총을들고 다 나가버린거지. 남은 중급병사가 "수작부리디 말라."하면서 포승줄로 남은 사람들을 8자로 꼬아묶고는 "줄 푸는 개미소리(작은소리)라도 들리면 바로 대갈통에 납철알을 박아버리갔어." 하고는 건너 집 살던 아낙을 끌고 곡창으로 향했어. 강간을 하려는 모양이었다고 해. 남은 사람들이 침음성을 삼키며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있는데, 곡창에서 짝- 하니"악!"하고 아낙의 비명소리가 들리더니 시간이 좀 지나자 퍽-퍽- 소리가 들렸대. 증조할머니께서 '인민군이 아녀자를 매질하는 모양이구나."하고 있는데 곡창문이 열리더니 아까 잡혀간 아낙이 몸에는 피칠갑을 하고선 가슴저고리 앞섬이 찢겨, 보이는 속살을 부여잡고 나왔더래. 할머니께서 놀라서 비명을 자지러지게 지르는데. 사람들이 놀라서 쳐다보곤. "뭐, 뭔일이라?"하고 증조할아버지께서 묻자, 아낙이 하는 말이 "저도 모르겠어요." 하고 설명을 덧 대는데, 인민군 힘이 너무 강하여 반항도 못 하고 가슴앞섬이 찢기고 뺨까지 맞아서, 이대로 큰일이 나는가 했는데, 갑자기 인민군이 얼어버린것처럼 옴짝달짝을 하지 않더래. 무얼 봤는지 엄청 놀란표정을 하고 입을 떡- 벌리고 있는데, 침이 질질 흐르는데도 손가락하나까지 움직이지 않더라고, 그래서 밀어보니 그자세 그대로 넘어가더래. 겁이 덜컥나서 구석에서 쪼그리고 벌벌- 떨고있는데, 갑자기 너무 뜬금없게 화가 막 치밀어 오르더니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곡창안에 있던 장작으로 머리를 찍고 있었다고 했지. "영접 입니다."하고 증조할머니께서 말 하자, 다들 얼이빠져 있는데, 증조할아버지께서 "일단 줄좀 풀어." 해서 아낙의 도움으로 다들 줄을 풀고 일어났어. 할머니께서 저고리를 벗어 가슴앞섬이 찢어진 아낙을 덮어주는데, 증조할아버지께서 "여기 있다간 그 놈들이 돌아올테니 얼른 도망가야해." 하고는 대충 이모댁에 짐을대충 챙겨서 가려고 했어. 그 때 아까 인민군들이 기절시켜 데리고 나갔던 아저씨가 대문으로 달려 들어왔지. 헉-헉- "다 죽었어." 느닷없는 아저씨의 말에 "또 뭔일이라?"하고 증조할아버지께서 묻자, 아저씨가 숨을 몰아쉬고 하는 말이, 정신을 차리고보니 바닥에 질질 끌려가고 있었는데, 앞에 가던 한 인민군이 휙- 넘어지더니, 갑자기 벌떡일어나서 대조못(함창에 있는 연못)으로 막 뛰어 들어갔다고... 그러더니 다른 인민군들도 히떡히떡- 넘어지더니 못으로 막 뛰어들어 가더래. "난데없이 뭔 지랄인가 하고 한참을 지켜봤는데, 안 나오드라고. 그래서 돌아왔지." 하면서 허망하게 웃었다고 해. 해서 각자 집으로 돌아가보니 대조못 주변에 진을 치고있던 인민군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더래. 증조할머니께서 마을사람들에게 다시 말하여서, 늦었지만 백중(망혼제)을 재차 지내자 하셨고, 불정에 있는 운암사에 지방을 모셔서 전보다는 거나하게 제를 지내 주었다고 해. 마을 어른들이 절을하고 곡주를 돌리고 읍을하면서 홍복을 비는데, 마을꼬마들이 따라서 절을 하고선 "조상님들 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했다고... 하지만 문경지역 대부분은 9월 25일까지 약 두 달을 적치하에서 움추려야 했어. 그중 인민군이 많이 밀집해있던 곳은 매일아침 폭격도 맞아야 했지. 26일날 함창 영강으로 한국군이 진격해오면서 인민군을 밀어내버려. 그들은 큰 태극기를 여러사람이 들고 강둑 양쪽으로 나눠 행군했다고 해. 이후 재차 51년 1월에 백만 중공군이 문경까지 내려오게 됐지만, 결과적으론 민간인은 거의 죽지 않고, 인민군의 소대본부까지 소이탄으로 화전(火田:불밭)을 만들어 몰아냈다고 하네. [출처] 모해유머커뮤니티 (조아라 /글쓴이 담론) ___________________ 풍경이 선하게 그려지는 글들 너무 현실적이라 더 마음이 아픈 글들 아쉽지만 여기서 끝이야. 긴 글 같이 봐줘서 고맙고 곧 또 이야기거리 가지고 올게! 잘 자 ㅎㅎ
퍼오는 귀신썰) 할머니한테 들은 증조할머니 이야기 -3-
안녕! 오늘 하루는 다들 어땠어? 집에만 있는 시간이 길어져서 많이들 지칠텐데 다들 힘냈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같이 귀신썰 이어 볼까? _____________________ 9. 귀내림 신내림. 신기를 느끼는 사람은 신내림을 꼭 받아야 하는가? 아니다. 신내림은 시기가 있다고 해. 그렇다고 신내림을 모두 받을 필요도 없는데, 대신 그에 상응하는 무접신 해칠살(신은 신대로 대접을 해 주고 몸에 들이지 않고 돌려보내는 것)의 대접을 해드려야 한다고... 예부터 지금까지 신내림을 거부한 사람들도 많다고 해. 그만큼 신내림을 받는 다는 것은, 접신(이을 접)을 하여 신을 몸에 받아들이고 자신의 의식을 나누어 어렵고 고난스러운 길을 가는 것이기 때문이지. 또 신내림을 제대로 받는다 한들, 길게는 2년까지 몸안에 터를 잡은 신이 괴롭히는 기간이기 때문에, 늦게 해칠살을 하는 사람들도 있어. 또 신의 종류도 엄청 다양하지만, 어떤 신이든 간에 신내림을 받을 땐 다른 무속인에게 의뢰하여 내림굿(강신무굿의 일종)을 해야해. 정확한 내림굿이 아니면 허주(가짜주인)가 강신(내릴 강) 하여 몸으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지. 신내림 받을 때 발작 하는 사람들, 접신하는 사람들 듣거나 본적 있을거야. 그 사람들은 의식을 잃고 정신이 미쳐버려서 그런 것이 아니라, 굿을 하는 상황에 맞추어 자신을 다스리고 반의식적인 상태가 되어서 발작을하거나 학질걸린사람처럼 벌벌떨기도 하는거야. 이런 신병(입무과정)을 필수적으로 지나야 지만 신을 받아들이고, 사람과 영신의 세계를 이을 수 있다고 믿는대. 문경시 마성에 처녀보살이 내림굿을 한 다는 얘기를 들은 것은 증조할머니께서 임신을 했을 때 즈음 1931년도에 일. 당시 임신한지 좀 지나서 몸은 무거웠지만, 거동이 불편한 편은 아니었다고 해. 때문에 모처럼 나들이겸 신내림받는 곳으로 가보기로 했는데. 가 보니 문경에서 내노라 하는 무속인들, 역술인(역술인은 신을 받지않음)들도 많이 와 있었어. 증조할머니께서 보시기에 역술인은 영기가 없고 사주가 같은 느낌을 받았어. (실제로 무속인과 역술인은 사이가 좋지 못 해. 역술인은 음양오행을 필두로 한 역학으로 사주를 많이 봄) 무속인들중에는 신기라는 동네에서 유명한 여장을한 박수무당도 와있었는데, 문득 증조할머니와 눈이 마주치니 목안이 청아하게 맑고, 멀리서도 청포향이 그윽한 것이 범상치 않았다고 해. 아직 내림굿은 준비중이었기에 증조할머니께서 상차림을 돕고, 커다란 느티나무에 금줄을 걸기 위해서 당방울과 무속인들이 가져온 노란 괴황지 부적을 같이 동아줄에 달고 있었는데, 내림굿 할 공터 뒤에 삼간 집에서 애기 울음소리가 들렸다고 해. 같이 상차리던 무당을 모시는시동에게 물어보니, "아주 용한 보살님이 오셨네, 오늘 내림굿을 받는 처자가 저기있는데, 동자신을 모실 모양입니다."해서 증조할머니께서 "그렇습니까? 울음소리가 우렁찬게 범상치 않습니다."하니 그 시동이 "저희는 안 들려서 모르지요."하고는 껄껄 웃더래. 신내림을 받기 전에는 아무도 보지 않고,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는게 중요한 법이라고 해. 그렇기에 삼간 집에 있는 사람도 혼자 있는데, 아까 눈여겨본 박수무당과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긴 무녀(무당보다 용한 신을 모시는 영센 무속인)한 분이 그 삼간집으로 걸어가더래. 그래서 증조할머니께서 모시천으로 닦던 무령을 내려놓고 헐레벌떡 뛰어가 "아직 상도 안 차렸는데 지금 데려오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했더니 박수무당이 "강신무를 하기 전에 이 옷으로 갈아입혀야 한다."하고는 들고있던 비단 소복을 보여주더래. 아차 싶으셨는지 "제가 눈이 넓었나 봅니다."하고는 살짝 고개를 숙여 사과드리고는 자리로 돌아오는데, 뒤에서 우렁차던 애기울음소리가 뚝그치고는 웬 음침하게 웃는 여자소리가 들리더래. 깜짝놀라서 주위를 둘러보니 박수무당과 무녀는 물론 다른 무속인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 반응이 없었다고... 후에 사람들도 굿판주위로 빙 둘러 모이고, 준비가 끝나자 내림굿을 받기위해 삼간집 안에 있던 사람이 나왔는데, 젊은 처자였어. 눈을 지긋이 감고 박수무당과 무녀의 인도하에 잘깔린 싸리석(멍석 비슷한 싸리나무로 만든 방석)에 양반자세를 하여 앉고는 읍을 올리듯 두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있었지. 당시 신내림은 매우 조심스럽고 엄숙하게 진행됐는데. 이유인 즉슨 한 예를 들자면, 과거에 조상신을 내림 받는다고 신굿을 하던 사람이 정신을 잃고는 잠시 후, 벌떡 일어나서는 앞에 차려진 상을 허겁지겁 집어먹었다고 해. 후에 해칠살을 해도 차도가 없어서 빙의퇴마를 하니 비로소 의식을 차렸는데, 잡귀중에 늙은 아귀가 "내가 니 몇대 조상이다."라고 거짓말을 치고 접귀를 하여 빙의를 당했다고 해. 자기 증조부 고조부가 어떻게 생긴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알았겠어. 이처럼 신제자가 한 순간에 빙의환자가 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어왔기 때문에, 신내림은 진중하고 엄숙했다고. 무녀가 읍을하고 바닥 주위에 팥을뿌려가며 동자신을 점점 내림받을 처자에게 가게 하여 접신하는 방식으로 시작됐어. 부경(부적에 적히는 글들을 책자처럼 만든 것)을 읽어가면서 무령중 칠성방울(방울이 여러개 달린 무당방울)을 흔들어 대니, 신내림을 받던 처자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애기소리를 뱉어냈어. 갓난 아기가 우는 것처럼 울어댔다고... 어른의 성대로는 인위적으로 만들 수 없는 느낌이었다고 해. 주변에 보고있던 사람들이 오-오- 하고는 고개를 숙여 손을 모으고 받드는 시늉을 해댔어. 증조할머니께서도 읍을 가볍게 하고 보니, 금줄에 부적들옆에 걸어놓은 당방울이 세차게 흔들리면서 딸랑딸랑- 소리를 냈다고 해. 후에도 계속 애기소리를 내기만 할 뿐, 별다른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하진 않았고 비단소복이 다 젖을정도로 땀을 흘리고 쓰러졌다고... 내림굿은 성공적으로 끝난 듯 보였고 굿판이 지나가고 무속인들이 강신마당을 벌였어. 향을피우고 사당패를 들여서 너나할것없이 춤을 췄어. 증조할머니께서는 임신한 몸을 이끌고 춤을 출순 없는 노릇이라 뒤에 앉아서 잔치음식을 먹고 계셨는데,  삼간집안으로 박수무당하고 무녀가 사람을 대동해서 신내림받은 처자를 급히 옮기더래. '내림굿이 끝나고 안정을 도우려고 그러는 구나'하고 수발을 도울겸 따라갔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래. "무슨 일입니까?" 하니 박수무당이 "들어오면 안 되니, 나가있어라." 하고는 문을 닫으려는데 신내림받은 처자가 애기울음소리를 처연하게 내다가, 갑자기 부싯돌 긁어대는 소리처럼 여인 목소리로 그륵그륵- 대더래. 증조할머니께서 "저는 흥덕에서 온 보살이온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하니 무녀가 눈짓을 하고는 끄덕였어. 박수무당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들어와."하고는 손짓을 하더래. 증조할머니께서 다시 한 번"어찌 된 일입니까?"하니 박수무당이 하는 말이 "동자신이 아니야. 태주(새타니, 혹은 아기귀신 명도라고도 불림)가 들어왔어."라고 하고 무녀랑 같이 닭 피를 몸 군데군데 바르더래 무속적인 역학을 떠올려보니 '자고로 닭피란 접신을 막아주는데 효험이 있는 것인데, 도리어 안에 들은 귀신이 나오지 못 하고 처자의 깊은 의식속에 더욱 꽁꽁 몸을 숨겨버리진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무녀에게 귀뜸을 해주려는데, 무녀가 증조할머니뜻을 미리 알아차렸는지, "태주가 무서운게 아니라, 따라다니는 어미귀신이 위험하여 그 것을 막아야 한다."고 했어.  태주란 성불하지 못 하고 죽은 임산부가 귀신이 되어 애기를 낳으면 그 애기가 새타니라고 불리는 태주귀신이었다고 해.   박수무당이 닭피를 몸 군데군데 뿌려두니 처자가 잠잠해졌는데, 그 사이 무녀가 버선발로 나서서는 찾아온 무속인들중에 승려를 한 분 데려오니 증조할머니께서 '퇴마를 하려고 하는구나.'하고 무녀의 심중을 알겠다 싶으셨대. 불자는 무속인 보다 유능한 퇴마를 할 수 있으니까. 승려가 하는 말이 "소승은 육도를 공부하는 승려이온데 어찌하여 부르셨는지요."하니 박수무당이 자초지종을 설명했어. 증조할머니께서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잠자코 보고있는데, 승려가 잠시 고민을 하더니 숨 죽은 정적을 깼어. "구병시식(불가계통의 퇴마행위중 하나)을 해야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자, 증조할머니께서 알고 있는 것이라는 듯이 "제가 상을 준비해 오겠습니다." 하고는 나가서 시식단을 준비했어. 사람들이 무슨일인가 하고 처다보아서 "처자가 빨리 회복하라고 강건제를 해드리려고 합니다."하고는 웃어 넘겼다고 해. 콩, 밥, 국, 청수(물), 배, 시루떡, 나물,  일곱가지를 작은 상에 정갈히 담아서 오니, 승려가 "보살님 고생하셨습니다."하고는 내림굿 받은 처자의 이름을 위패에 적어 상에 올리고, 향로에 향이 가장 센 백단향(불가에서 많이 쓰임. 좋은 향기가 짙게나고, 누르스름하다. 현대에선 가슴이나 배가아플때 약재로도 쓰임.)을 피우니 승려가 박수무당하고 무녀, 그리고 증조할머니에게 "밖에 잠시 나가있어 주십시요."하고 사람들이 나가니, 목탁을 들어 천부경의 서절을 읊었다고 해. 잠시 후에 7시가 지나 날이 꽤나 어둑어둑 해졌는데, 갑자기 창호문으로 비치던 호롱불이 꺼지더니 집 밖에 있는 증조할머니께서도 느낄만큼 거대하고 묵직한 기운이 집 전체에 느껴졌다고 해. 점차 기운이 강해지더니 종래에는 사람 두배는 됨지막한 거녀(巨클 거 女)의 영이 눈을 부라리고 삼간집 창호지 창앞에서 들어가려고 기를 썼어. 그륵그륵- 숨소리가 느껴질 정도로 근거리에 있었는데 그 거녀는 증조할머니를 포함한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는 문틈이 좁으니까 자신의 손가락을 두어개 잡고는 세로로찢어서 가늘어진 팔로 재차 들어가려고 기를 쓰더래. 목탁소리는 점차 강해졌어. 가라다니(퇴마 의식에 사용되는 도경의 방법중 하나)를 할때는 호롱불이 붙었다 꺼졌다 했는데 보고있던 증조할머니께서 머리가 무척어지러우셨다고, 옆에있던 박수무당이 "정신 바짝 잡아! 배속에 애기 죽여내고, 태주를 낳을 수도 있는게야!"라고 해서 증조할머니께서 황급히 소매를 찢어 귀방(막을 방)을 적고 배에 복대처럼 둘른 뒤에 구병시식에 쓰이고 있는 백단향 여분을 꺼내어 태워 들고있었다고 해. 무녀가 그 모습을 되게 호기심 어리게 쳐다봤어. 삼간집 안에 구병시식은 거의 마지막에 들어섰어. 승려가 옴-아-암악(가라다니의 구절)을 108번을 조용하게 말하는데 어떤 의식보다 힘이있고 머리속까지 확실하게 들렸다고 해. 승려가 일어서니 다시 호롱불이 붙었는데, 팔하나를 찢어 넣은 거녀의 모습이 불빛에 비치는데, 머리보다 큰 손아귀가 스님을 향했다고... 몸은 집밖에 있고 팔만 문틈 안으로 들어간 모습이었다고 해. 어찌나 기를쓰는지 거녀의 영이 고함을 지르며 귀구(귀신입)를 벌리니 이빨은 다빠져있고 혀는 새카매서 뱀처럼 길었다고 해.  승려가 붉은 팥을 사방에 뿌리자. 거녀의 팔 곳곳이 맞아서 숭숭 구멍이나서 도망가버려, 증조할머니 혼자서 도망가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다른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 처럼 삼간집 안에만 계속 주시했다고 하네. 증조할머님께서 "간 것 같습니다."하고는 깊은 안도의 한 숨과 배에 둘렀던 소매를 풀고는 삼간집안으로 들어가보니, 박수무당과 무녀도 따라들어갔어. 안에는 승려가 승복이 흠뻑할정도로 땀에 젖어서 앉아있었는데, "장엄염불을 하는데, 머리가 아파서 죽을뻔 했습니다." 하고는 시식단을 치우자, 무녀가 곱게 적신 천으로 내림굿 받은 처자의 몸에서 닭피를 말끔하게 닦아내었어. 그러자 처자가 또 애기소리를 내면서 우는데, 박수무당이 "거녀귀신이 또 올지 모르니 얼른 떼어야 한다." 하자 증조할머니께서 "그 것이 거녀귀신입니까?"하니 다시 박수무당이 "영험한 보살이었구나. 거녀귀신은 원한이 깊어 그 것으로 신병이 들려버리면 많은 사람이 죽을 수 있는 것이야."하였어. 무녀가 "지금 처자가 동자신인줄 알고 잘 못받은 새타니(태주)가 자라면 또 새우니(거녀귀신)가 됩니다. 그러니 몸 안에 태주도 빨리 떼어야 해요." 하고는 처자에게 닭피와 팥을 빻아 섞어 먹이고, 무령(무당방울)을 들고 간이 굿을 했다고 해. 곧이어 처자가 좀 전에 먹은 닭피와 또 검붉은 핏덩이까지 토해냈는데 보고있던 박수무당이 흰비단에 곱게 싸서 부적붙은 동아줄로 묶고는 사람들 안 보는 곳에서 태워버렸다고 해. 그 후에 증조할머니께서 설탕물을 타와 처자에게 먹이고 수면향을 피워재우니 한층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고 해. 이렇게 난리를 치루고 밖에 나오니 사람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잔치상에서 거나하게 탁주를 마시고 사당패랑 어우러져 놀고있었다고... 증조할머니께 무녀가 영험한 보살이라고 칭찬을 하고는 배를 한 번 스윽 만지고 가는데, 배가 온천에 담근 듯 따뜻해졌어. 증조할머니께서 잔치판을 보면서 저 안에 무속인들 중에 가짜도 있고, 멀어지고 있는 무녀를 보면서 오늘 본 것 처럼 진짜배기도 있구나 새삼 느끼셨다고 해. 후에 그 처자는 다시 신내림을 받았는데 다행이도 조상신을 잘 받아 업장(신내림 전에 겪는 영적인 고통)을 잘 견뎌서 무당이 되었다고 해. 때문에 증조할머니께서는 한 해에 굿떡을 두 번 먹었다고 웃으며 이야기 하시더래. 지금 현대에서도 신과 귀의 구분이 애매모호하여 많은 무당들이 신병이 심하고 신내림을 받다가 죽는경우도 있거니와, 신내림때 접신이 잘 못 되어 빙의치료를 받는사람도 많다고 하네. 10. 가마굽는 노인 문경 도자기축제라는 지역에선 꽤 유명한 축제가 있어. 찻사발 축제라고도 하는데, 이런 축제들이 벌어질 만큼, 천년역사를 자랑하는 양질의 도자기들이 많아. 출요(구워진 도자기를 꺼내 선별하여 기준미달은 망치로 깨버림)가 특히 까다로운 만큼 품질이 뛰어나고 특히 선을 많이 감은 자기들이라 유려함이 일품이야. 지금도 인간문화재를 포함하여 8대가 넘게 걸쳐 내려오면서 그 유구한 혼을 굽는 도예 명장들이 아직도 맥을 끊지 않고 훌륭한 작품들을 많이 내놓고 있어. 오늘 쓸 지역인 문경읍 당포리는 일전에 경천호에 관해 쓴 글에 나오는 김용사와 매우 가까운 동네야. 지금 당포리엔 문경요(기와 가마 구울 요)하나만 남고 요가(가마 굽는집)들이 다 사라졌지만,  당시엔 근처에 있는 운달산의 토질이 좋아서 도자기 굽는 요가들이 많았더래. 1937년도 당시 문경에 유치원같은 보통학교(지금의 초등학교)이전에 교육시설이 전무했어. 물론 학교를 안 가는 경우가 더 흔했지만. 헌데 증조할머니께서는 딸(지금 할머니)의 나이 5세때 김용사에 맡기게 되었어. 보통학교에 들어가기전 8세까지는 김용사 1년 운암사 2년 계셨다고 해. 그당시 사람들은 1920~30년대부터 어느정도 돈이나 쌀같은 것을 공양드리고 큰 절에 어린 아이들을 맡기는 경우가 많았다고. 기운 좋고 선한 곳에서 스님들에게 한자 공부도 배우고 또래아이들이나 거기에 사는 동자승(어린 승려)들과 어울려 개구지게 놀기도 하고, 보통학교 입학전 까지는 그렇게 교육하는 방식이 있었다고 해. 그 날은 증조할머니께서 불공도 드리고, 쌀도 공양하고 할머니도 만날겸 김용사로 가셨어. 증조할아버지따라 소금팔던 시동도 데리고, 그렇게 두 분이서 젊고 힘 좋은 당나귀 두 마리를 타고 쌀 반가마니(40kg)와 큼지막한 보따리를 싣고 가셨어. 도착하니 할머니(당시6세)께서 탁트인 암자에서 동자승들과 과수도영(불가의 오도송중 하나로 고승들의 깨달음을 한자로 풀어 노래한 것)을 읊고 계셨는데 낭창하니 듣기 좋았대. "절기종타멱~(절대 그이를 쫒아가 찾지 말아야지.) 초초여아소~(나와는 소원하여 멀어만 가네.) -중략- 거금정시아~(도랑물이 이제 바로 나인데도,) 아금불시거~(나는 이제 도랑물이 아니라네)"하고 까랑까랑 노래를 불르셨다고. 어찌나 고와보였는지 오랜만에 보는 딸이 너무 이뻐서, 당나귀에서 내려 단걸음에 다가갔다고 하셨대. 할머니께서 증조할머니를 보고는 "어머니~!"하고 와락 내려와서 안기니, 암자에 있던 또래 꼬마들이 "좋겠다" 하며 부러워 했어. 앞에 오도송을 가르치던 비구니 한 분이 죽비 (수행자를 지도할 때 사용하는 법구)를 자신의 손바닥에 탁탁- 치고는 꼬마들을 향 해 "초파일(석가탄신일)이 얼마 안 남았으니 부러워 말아라." 하고는 암자에서 내려와서(불가에서는 인사를 할때 더 높은 곳에서 인사하면 안 된다.) 합장하며 증조할머니께 인사를 올렸어. 증조할머니께서 "자주 찾아뵙지 못 하여 죄송합니다." 하고 합장을 올렸어 ."보살님 오셨습니까."하고 비구니가 말하고는 증조할머니 치맛자락에 꼭- 매달려 얼굴을 부비고 있는 할머니를, 한 번 쳐다보시더니, 활짝 웃으며 "괜찮습니다. 오랫만에 따님을 만나셨을 진데,  해인(該仁 :갖출 해, 어질 인 할머니 법명)이와 함께 가시기 전까지 있으시지요." 하고 다시 한 번 합장을 했어. 증조할머니께서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하고는 보고있던 시동을 시켜 암자에 있는 꼬마들에게 보따리안에 담아온 강정하고 가락엿을 다발로 꺼내어 주니, 번갯불에 콩구워먹듯 집어가서는 너도나도 하나씩 입에 물고 줄줄- 빨아먹었다고 해. 이윽고 딸을 데리고 들어간 곳은 주지스님(사찰을 대표하는 스님, 큰스님과는 다름) 계신 불전이었는데, 열려있는 문 사이로 웬 곰보의 노인이 먼저 주지스님과 얘기중이었어. 증조할머니를 발견한 주지스님이 "떡보살님 오셨습니까."하고는 활짝- 웃으시면서 일어나 합장을 하니, 옆에 있던 곰보의 노인도 구부정하게 따라 일어나서 "유명한 떡보살님이 셨구만, 이렇게 반가울데가! 요 앞 물방아골 운달요(기와 가마구울 요)에서 가마굽는 노인입니다."하고 인사를 했어. 해서 증조할머니께서 웃으시며 "아, 네. 반갑습니다..."하는데 옆에서 "우리 어머니는 만병도 고치고 귀신도 잡는 큰 보살님이에요!"하고  할머니께서 말을 끊으셨다고 해.  증조할머니께서 "어른들 말하는데 방해하면 안 돼~"라고 하니, 노인이 "애들이 다 그렇지 않우? 따님이 아주 당돌하네~"하고 껄껄 웃으시더래. 증조할머니께서 툇마루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나며 "그나저나 방해가 된건 아닌지 모르겠어요."라고 자리를 비워줄 심산으로 말하자, 주지스님이 손사래를 내저으며 "아닙니다. 들어오셔서 차 한잔 같이 드시지요." 하고 노인도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더래. 감사의 표시로 살짝 목례하고 다시 올라가서 널찍이 떨어져 앉으셨다고 해. 할머니께서도 따라올라가서 냉큼 다과로 놓여진 약과를 집어가지고 증조할머니 치마폭에 앉아서 먹고있었어.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주지스님이 증조할머니께 차를 한 잔 건네니 "감사합니다. 솔 향이 깊은 것이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아요." 하며 맛을 보니 향 만큼 맛 또한 청량감 있고 훌륭했다고 해."이 찻잔이, 여기 계신 옹(어르신)께서 직접 빚은 것이온데, 아주 훌륭하여 차 맛까지 더 깊습니다."라고 주지스님이 말을 덧대니 곰보의 노인이 기분이 좋은 모양인지 껄껄 웃었어. 노인은 김용사에서 10리정도 떨어진 운달산 물방아골에서 도예를 하는 옹이었는데, 오랫동안 불경공부를 한 불자이기도 했대. 김용사에 잘 만들어진 다과그릇과 찻잔을 공양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했어. 이런 저런 담화를 나누다가 날이 깊어지자 합장을 한 뒤, 증조할머니께서 다 마신 찻잔을 고이 내려놓고는 시동을 시켜 쌀과 가져온 떡을 공양하셨어.  그 후에시동의 방을 얻어주고 자신도 사랑방 안채를 빌려 짐을 풀으셨더래. 해가 저물고 품으로 파고드는 할머니를 팔베게 해주고는 잠자리에 들면서 생각하길 '참으로 예쁜 잔이던데, 내일 일어나면 길을 조금 돌아 가더라도 물방아골에 들러 자기그릇을 몇개 구비해야 겠다.'생각 하셨대. 날이 뜨고 증조할머니께서 짐을 다시 꾸리니 어렸던 할머니는 퉁퉁 눈이 부어서 "어머니 가지마세요... 또 열 밤을 자야 볼 수 있잖아요."하고 엉엉 울더래. 마음이 아렸지만, 후 일을 기약하면서 품에 안아 쓰다듬어주는 보따리 안에서 예쁜 옥노리개를 꺼내어 쥐어주고는 절을 나섰다고 해. 할머니께서 멀어지는 증조할머니의 뒷모습을 보고있는데, 오도송을 가르치던 비구니가 "해인아~ 이제 그만 와야지."하고 불러서 금새 걸음을 뗐다고 해. 증조할머니와 시동이 가는 길은 물방아골 이름처럼 습기가 많고 음습했어. 운달산을 바로옆에 끼고 왼쪽으로 돌아가는 오솔길이어서 그런지 바위의 냉기가 그대로 전해져 서늘한 기분이 일었는데, 장마철엔 산사태도 가끔 일어나는 곳이라서 시동과 증조할머니께선 더욱 조심히 당나귀를 몰게 됐지. 그렇게 한참을 가고있는데 갑자기 시동이 당나귀를 멈춰세우고 "아가씨 따라오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요?" 하니 증조할머니께서 뒤도 안 돌아 보시고는 "저도 알고 있어요. 신경쓰지 말고 가요." 하셨어. 시동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이유를 물으려다가, 문득 뒤에 멀찍이 쫒아오는 사람을 쳐다보게 됐는데 머리가 어깨죽지까지 눌려박혀있어서 인지 양 쪽 눈이 어딜보는지 다른곳을 처다보는 사팔이였다고 해.  결코 멀쩡한 사람의 모습은 아니었지. 시동은 순간 척주가 간질간질- 거리셨는지 부르르떨면서 황급히 다시 당나귀에 올라타 길을 재촉했어. 이따금 힐끔힐끔 뒤를 쳐다보니, 다리를 절뚝절뚝- 절면서 따라오는데도 당나귀를 타고 가고있는 자신들과 거리가 멀어지지 않더래. 그렇게 쫒기듯 아닌듯 긴장속에 십여 분즘 가다가 오솔길을 지나 볕드는 들녘으로 왔는데, 뒤에 쫒아오던 남자가 갑자기 더럭- 땅을 들먹거리며 달려오더니 볕이 닿는 곳 앞에서 뒤틀린 양눈을 똑바로 모아서 억울한 듯 쳐다보다가 사라졌다고... 증조할머니께서 차분하게 나귀를세워 풀을 뜯게하고 잠시 쉬는데 시동이 나무에 당나귀를 묶고 다가와서 "그게 대체 뭐였습니까?" 하니 증조할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그 것은 객귀였다고 해. 객사한 귀신이 저렇듯 죽은 곳 근처를 떠돈다고, 운달산 산자락 절벽에서 자살을 했거나 산사태같은 변고를 당해 죽은 것일 수도 있다고 하시면서, 자칫 붙으면 병도나고 심하면 몸에 붙은 객귀가 쉴새 없이 귓가에 떠들어대니 홧병이나서 죽을 수도 있다고... 시동이 자신의 몸 이리저리를 살피면서 "그럼 행여나 객귀가 씌이면 어찌해야 합니까?"하니, 무당들이 객귀물림이나 푸닥거리를해서 떼는 경우도 많이 있다고 안심시켜줬어. 옛 민담에 밖에서 변고를 당하면 시신을 집에 들이지 않고 밖에서 장을 바로 치뤘다고 해. 탈난 영이 객귀가 되어 해코지를 한다고 믿었던 거지. 반대로 아픈사람이 죽을 때가되면 집으로 옮겨 오는 사람도 많았는데, 집에서 호상을 치르면 영이 악해지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야. 시동이 "그 것 참, 끔찍하게 생겼읍디다."하고는 "아가씨는 무섭지 않으십니까? 어찌 그리 태평하십니까?" 하며 말을 이으니 웃어보이시면서 "저도 무섭지요. 오금이 다 저렸어요. 다음부터는 혼자 도망 가야겠어요." 하고는 싱긋 웃곤 챙겨온 감자를 조신하게 까서 시동에게 하나 건네어 주었다고해 시동이 어버버하게 받아서는 감자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몰랐다고... 운달요에 다다르니 장성한 청년 한 명과 어제 보았던 곰보의 노인이 나와 맞이 해주었어. "보살님 아니시우? 여긴 어쩐일로?" 노인이 물으니 증조할머니께서 "어제 보았던 자기가 예뻐서 몇개 구비해가려고 들렀습니다." 했어. 알겠다는 듯이 "그렇구만, 따라오시요."하고는 뫼셔가는데 시동이 허겁지겁 당나귀를 싸리울타리앞 나무에 묶어놓고는 따라들어왔어. 노인이 안내해서 따라간 황토방은, 시유(초벌구이가 끝난 도자기에 광택을 내기위해 잿물을 바르는 과정)가 끝나고 재벌구이(가마에 초벌한 도자기를 두번째로 굽는 단계)를 기다리는 상감(자개, 금, 은, 호박, 옥 등 따위를 박아꾸미는 것)이 잘 된 훌륭한 자기들이 서른점이 넘게 진열된 곳이었어. 그 중에 특히 한 점(갯수단위)은 정말 고왔는데, 오색자개가 영롱한 봉황모양을 그렸고, 봉황눈에 흑옥이 박힌 멋들어진 작은 백자기 항아 였어. 한참을 쳐다보니 노인이 다가와 "아름답지 않우?"하여 증조할머니께서 고개를 끄덕이니 노인이 재차 말하길 "같은 불제자인데 보살님에게 내가 싸게 드리리다." 하여 15원(당시 쌀한가마니가 13원 정도, 지금돈으로 15원은 20만원 조금 넘음)과 쌀 한되를 더 주어 구비하기로 하셨어. 아직 재벌구이를 해야한다고 하여, 사랑방을 얻어 하루 쉬고 가기로 하였는데 날이 저물고 증조할머니께선 온 김에 남자 둘이 사는 집이라 먹는 것이 변변찮아 보이니, 저녁밥이나 채려줄 요량으로 부엌으로 갔다고 해. 쌀을 씻어 밥을 올리고 말린고기를 불려 국을 끓일 채비를 하는데 갑자기 밖에서 "하이고, 아버지!" 하는 소리가 들리고 시꺼멓게 옷을 태운 시동이 허겁지겁 부엌으로 와서 증조할머니께 "아가씨 퍼뜩 나오셔야 겠습니다!"했어. 상황이 급박 해보여서 무슨일인지 묻지않고 잰걸음으로 성급히 나와보니 노인이 옷을 다 태우고 얼굴이 살짝 발갛게 익어서 쓰러져있고, 노인 아들로 보였던 그 청년이 주저앉아 무릎에 노인의 머리를 받쳐서 찬물에 적신 천으로 얼굴을 닦아주고 있었어. 증조할머니께서 서둘러 달려와 노인의 안위를 살펴보니 다행이 큰 화상은 아니었다고 해. 시동을 시켜 무를 갈아오라 하고, 청년이 노인을 닦아주던 천 안에 넣게해야 살살 닦았어. 증조할머니께서 "어쩌다 이렇게 되셨습니까?"하고 물으니 청년이 말하길 "아버지께서 치매가 살짝 있는데, 돌아가신 형님이 부른다고 가끔 가마로 기어 들어가실 때가 있습니다." 하고는 시커멓게 옷을 태운 시동을 한 번 보고는 "평소에는 저와 같이 불을 떼우시는데 오늘은 제가 잠시 토련(도자기 만들 진흙을 발로밟아 공기를 뺌)하러 간 사이에... 이 분이 발견하고 급히 빼내셨기에 망정이지..." 하여, 증조할머니께서 시동에게 물어보니 "들어는가는 걸 보고 황급히 다리를 잡고 빼내었습니다. 헌데 다시 들어가려고 하는게 아니겠습니까? 노인이 어찌나 힘이 센지, 결국 어쩔 수 없이 뒷 머리밑을 쳐 기절시켰습니다." 하고는 청년의 눈치를 살피더니 청년이 괜찮다는 듯이 목례로 답하곤 가마에 흙을 끼얹어 불을 껐어. 노인을 방으로 옮기고난 뒤, 증조할머니께서 치료물품을 챙겨오지 않은 까닭에 찬 황토진흙을 얼굴이 고이 펴 발르고 식으면 재차 발르고 하면서 하던 간병을 시동에게 부탁하셨어. 청년과 시동이 간병을 하는 사이, 밖으로 나와보니 달볕이 밝아 제법 시야가 보였다고 해. 그 집에 있던 목향(평범한 나무향)을 피워 들고 다니면서 가마 근처를 살펴보니, 뭐 별다른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고... 해서 가마 뒤로 가 보니 향냄새를 피하는 듯 뭔가 후다닥- 도망가다 들썩- 거리고 사라지더래. 불은 껐지만 아직 가마는 열을 내뿜고 있었는데도 유독 가마 뒤쪽은 전혀 열이 나지 않고 냉기가 돌아서 겁이 덜컥나더래. 침착하게 일단 발길을 방으로 돌려서 가려고 했는데, 순간 한 걸음을 채 떼기도 전에 다시 뒤에서 들썩- 거리더니 후다닥-거리는 발 소리가 바로 뒤 쪽에서 멈추었어. 한 겨울 고수동굴 속처럼 냉랭한 한기가 목덜미로 불어오는데 귀를 한바퀴 돌더니 귓 구멍 안으로 서서히 들어오더래. "덕평(시동 이름)총각!!" 하고 증조할머니께서 황급히 소리를 빽- 질렀어. 놀란 시동이 문지방에 걸려 발을 찧을정도로 뛰쳐나왔다고 해. 그랬더니 또 발소리가 멀어지더니 들썩-하고 한기가 사라졌다고... 식은땀이 다한증 심한 사람처럼 손끝에 맺혀 떨어질 정도로 오싹한 경험이었다고 해. 평소에 영을 보는 것과 달리, 무언가 가만히 있으면 굉장히 위험해질 듯한 느낌이었다고... 시동이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무슨 일입니까?"하니 증조할머니께서 "괜찮아요. 우선 청년과 확인할 것이 있어요." 하고는 노인이 누워있는 방에 들어가 청년에게 물어 그 집에있는 곡주(곡식으로 담근 술)를 노인의 입에 붓고는 급한대로 목향을 피워 둔 채, 청년과 시동을 대동하여 밖으로 나왔어. 가마에 홰(횃불 대)를 넣어 불을 붙인 뒤에, 좀 전에 소리가 들리던 곳으로 가 보니 재벌구이가 끝난 도자기들을 식히며 출요(기준미달은 그자리에서 깨어버리고 양질만 고르는 마지막 작업)를 앞두고 있었는데, 유독 큼지막한 자기항아리 하나가 색이 거무튀튀하여 청년에게 "이렇게 거무튀튀한 것은 어찌하면 나옵니까?"하니 청년이 고개를 갸웃 거리면서 "이상합니다. 그을음과는 분명 다른 것인데 흑토(검을 흑)로 빚은 것 처럼 이런 도예는 한 적이 없습니다." 하여 시동이 뒤에서 지레 겁을 먹고는 불안하게 지켜보는데 증조할머니께서 불을 비춰 자기속을 들여다보니, 아까 느꼈던 한기가 안에서 서서히 사그러들고 있더래. 무언가 아차 싶었는지 증조할머니께서 "서둘러 옹(어르신)에게 가봐야 겠습니다." 하고는 먼저 발걸음을 돌리니 시동과 청년이 머리속이 정리가 안 되서 서로 처다보며 흐음- 하며 따라갔는데, 이내 호롱불에 비친 방문으로 그림자 기어다니는 형상을 보고는 눈이 틔어나올정도로 놀랐다고... 겁도 없이 증조할머니께서 문을 덜컥-열자 시동이 본 방안 상황은 이랬어. 곰보의 노인은 깨어 있었어. 그리고는 바닥에 엎드려 기어다니다가 문이 열리니까 앞에 있던 증조할머니를 밀어 젖히고, 다시 가마로 돌진을 하더래. 시동이 막아서는데도 구부정한 노인이 힘이 어찌나 좋은지 성난 황소마냥 바짓가랑이 붙잡은 시동을 질질 끌고갔다고 해. 이윽고 가마 안으로 들어가버려. 다행인 것은 청년이 아까 가마에 불을 끄고 흙을 끼얹었기에 화상을 입을정도의 열은 아니었어. 하지만 무척 뜨거웠다고 해. 그 안에 쪼그리고 앉은 노인은 기이하게도 무척 추은지 벌벌- 떨고있었는데, 시동이 일어나 툭툭- 흙을 털고는 "할아버지! 나오세요. 거기있다가 열병나요." 하는데도 들은 채도 않고 있더래. 증조할머니께서 청년을 보고 "옹 께서 치매가 아닌 듯 해요." 하고는 설명을 덧대는데, 낮에 시동과 오면서 본 객귀가 있었는데 그 것처럼, 지금 노인의 등에 찰싹 달라 붙어있는 령도 객귀같다고 했어. 객귀들린 사람에게서 보는 것 같이, 양 팔과 다리로 노인의 몸을 휘감고 귀에는 무언갈 계속 속삭이고 있는데, 눈은 계속 증조할머니를 쳐다보고 있었다고 해. 그 객귀의 입에서 모공이 송연할 정도로 차가운 한기가 계속 노인의 귀로 들어가고 있다고. 그러자 청년이 불같이 화를 내며 "지금 아버지께서 귀신에 씌였다는 겁니까? 하니 시동이 청년에게 진정하라고 다독이며 말하길 "저도 낮에 객귀를 본 적이 있습니다. 사팔뜨기 절름발이여서 아주 흉측했습니다." 하니 청년이 증조할머니를 쳐다보며"정말 입니까?" 하고 물었어. 증조할머니는 그에 대한 대답대신 다른 말을 했는데 "지금 이 령은 키가 훤칠하고 덩치가 있습니다. 힘이 무척 세서 옹께서 옴짝달싹 못 하시는 것 같습니다."하고 설명을 덧대는데 매부리코에 높게솟은 눈꼬리까지 설명하자 청년이 화들짝 놀라며 말하길. "제가 도예를 배우기전에 형님이 한 명 있었는데, 온달산 높은 곳에서 좋은 흙을 캐러 가신다고 하시곤 돌아오지 않아, 가 보니 낙사(떨어져 죽음)를 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집에 모셔오진 않고 그 곳에서 장을 치뤘는데, 그 형님하고 똑같습니다!" 했어. 그러자 증조할머니께서 잠깐 생각을 하시더니 객귀는 음습한 곳을 좋아하고 낮엔 땅속에 숨어있기도 하는데, 질 좋은 흙에 숨어있다가 청년이 자기 구울 흙을 캐올때 숨어서 딸려온 것 같다고 했어. 청년이 깊은 한 숨을 쉬더니 "얼마 전에 형님이 죽은 곳 근처에서 흙을 해 온적이 있는데, 그것이...." 하면서 말을 멈추더니 어떡해야 할지를 모르고 초조해 하고 있었다가, 재차 노인을 빼내려고 가마 안에 팔을 넣고 힘을 쓰는데, 어찌나 굳건한지 옴짝달싹도 안 하더래. 행여나 남아있는 열기에 살이 익어버릴까 걱정이 되어, 멀뚱히 서있는 시동에게 도움을 청하여 항아리에 담아놓은 물이 바닥날정도로 가마위에 끼얹었다고 해. 할머니께서 그 집 방안에 이불을 가져와 가마위에 얹고 "여기다가 부으세요" 하니 이불이 물을 머금고 좀 더 오래 가마를 식혔어. 그렇게 한참을 반복하자 날이 약간 밝아 첫 닭이 울고 동이 약간 텄는데. 황급히 나귀를 타고 당포1리 마을에 무당을 데려와서 객귀물림굿을 했다고 해. 다행이 무당이 용했는지 할아버지는 가마에서 나올 수 있었고, 다음날 집에서 채비를 다시 해온 증조할머니께서 죽은 청년의 형님 묘자리로 가서 위령제를 올려주고, 객귀가 숨어있었던 거무튀튀한 자기를 가지고 묘 앞에 묻어주었다고 해. 시동이 이유를 묻자 "그 귀신이 흙에 미련이 있어 좋은 자기를 보고 숨어 들은 것 같아요."하고는 행여나 다시 노인을 찾지 않을까 하여 숨어있던 자기를 묘 앞에 묻어 준 것이라고 해. 몇일 뒤에 노인의 안부를 물으러 증조할머니께서 가셨었는데, 노인은 많이 나아져서 청년에게 성을 내며 열정적으로 도예를 가르칠 정도로 괜찮아졌다고...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노인이 곰보인 이유가 증조할머니께서 그 집에 가기전에 자주 가마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그때 마다 얼굴에 화상을 입다보니 곰보가 되었다고 하더래. 고마움의 표시로 봉황자기를 공짜로 주셨다는데, 공짜라고 싱글벙글 하던 증조할머니를 시동이 이해못하겠다는 듯 멍하게 당나귀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셨다고 해. [출처] 모해유머커뮤니티 (조아라 /글쓴이 담론) ___________________ 오늘도 슬프네. 아이를 밴 채 세상을 떠나 악귀가 되어 버린 어머니 귀신과, 흙을 캐러 갔다가 세상을 떠나서 흙에 집착을 하게 되고, 자신의 아버지까지 해할 뻔 했던 귀신 이야기라니. 이룰 것을 두고 귀신이 되고 나니 마음이 단순해 져서 사람을 괴롭히게 된 걸까. 내일도 이야기 가지고 올게 남은 오늘 잘 보내고, 이따 잘 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