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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돌 토박이말날 기림 잔치]
기쁨 [세 돌 토박이말날 기림 잔치 알림] 손뼉 온 누리를 집어 삼키려 하는 그 분 때문에 세 돌 토박이말날 기림 잔치도 쪼그라들고 말았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과 넓은 곳에서 토박이말날을 함께 기뻐하고 토박이말 놀배움의 맛과 멋을 널리 알리고 싶었는데 많이 아쉽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누리그물(인터넷)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여러 곳에 많은 사람들께 기별을 했지만 나라일꾼뽑기까지 겹쳐서 토박이말날을 알릴 겨를이 나지 않는다는 갚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아래와 같이 토박이말날을 알리는 일에 도움을 주시겠다고 한 분들께는 더욱 고마운 마음이 큽니다. 모람 여러분의 마음을 모아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고마움을 갚는 마음으로 널리 널리 많은 분들께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1. 티비엔경남교통방송(에프엠 95.5/서부경남100.1) 스튜디오 955(09:00~09:45) -진행: 노민주, 프로듀서: 박유진, 작가: 유다혜 무지개달 여드레(4월 8일) 방송 첫머리 오늘의 물음표 물음에 토박이말날과 아랑곳한 물음(질문)이 나가고 09:30부터 토박이말바라기 꼭지에서 토박이말날을 그렇게 잡은 까닭을 알려드립니다. (티비엔교통방송 앱을 내려받으시면 언제 어디서나 들으실 수 있습니다) 2. 우리 모임과 운힘다짐(업무협약)을 한 지란지교컴즈(대표 오진연) 에서 꾸리는 '샘스토리'에서 토박이말날 맞이 물음 잔치(퀴즈 이벤트)를 합니다. http://samstory.coolschool.co.kr/zone/story/tobagimal/streams/69131 3. 경남일보 강진성 팀장님의 도움으로 토박이말날 가로세로 맞히기 잔치를 합니다. 언제 실릴지 알게 되면 알려드리겠습니다. 4. 책집 누리다솜에서 책꼲음이 모심(서평단 모집)을 합니다. 하시고 싶은 분께 '토박이말 맛보기1' 책을 손씻이(선물)로 드립니다. https://blog.naver.com/100nuridasom/221857249389 **한 두 가지가 더 될 수도 있는데 굳어지면 알려드리겠습니다.^^
파리의 밤하늘에 슈퍼문이 떴다
며칠 전이 우리의 5주년 기념일이었다. 괜스레 시계를 자주 보았을 뿐, 언제나처럼 작은 성냥갑 같은 우리의 안전한 보트 위에서 바람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 더 가까이 모여 앉아 있었다. 기술도 지식도 없는 집안에는 부적이 가득하다. 할 수 있는 것들은 머리에 손을 대어 서로의 머리 열을 비교하는 것, 체한 이의 엄지 검지 사이를 비명을 낼만큼 눌러 주는 것, 울음을 바라보고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괜찮다 해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늘 나란히 모여 앉는 것. 나란히 앉으면 서로가 서로의 모니터에 그리고 있는 것들이 다 보인다. 모니터에 반사되는 근심도, 열처럼 피는 열정도, 접히는 모니터가 환영처럼 남기고 간 절망의 얼굴도 다 보인다. 어쩌면 서로의 실패를 바라봐주는 일이 가족이 되어가는 길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남들에게는 얼마든지 괜찮은 사람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아니었잖아. 늘 함께 생활을 하는 스튜디오 안에서 상대 모르게 편지를 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시나리오를 쓰는 척 진땀을 흘리며 편지를 썼다. 줄 수 있는 게 이것뿐인 요즘이라서 손에는 잔뜩 힘이 들어갔다. 몇 달째 써야지 말만 하던 시나리오를 드디어 쓰는구나 흐뭇해하며 엠마는 나를 방해하려 하지 않았다. 엠마는 몰래 화장실에서 편지를 적었던 거 같다. 지난 크리스마스부터 우리의 창은 우리의 유일한 스크린이자 우리의 유일한 알림판이 되어 버렸다. 상장처럼 자랑하려고 늘 서로가 써 준 편지를 창에다 붙여 둔다. 크리스마스와 새해 그리고 기념일까지 창은 낯선 이국의 풍경보다 안전한 서로의 마음을 더 많이 투사해주게 되었다. https://youtu.be/JvaNZWq9zmc 어제는 선물처럼 가장 큰 달이 우리의 편지 옆에 떴다. 선명한 흉터로 자기임 드러내는 노란 구멍. 그것은 빛이 아니었다. 그것은 숨을 들이마시고 후후 내뱉는 입구멍, 우리를 잡아다가 그 뒤의 무엇에다 고발하는 섬뜩한 눈동자였다. 막 설거지를 끝낸 싱크대의 가득 찬 물들이 어느새 찌이익 소리를 내며 빨려 내려가고 있었다. 그처럼 그 구멍 또한 이곳의 지나치게 가득 찬 모든 것들을 자신의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그리곤 호흡처럼 저곳에서 오는 것들이 있었다. 호흡법을 다시 배워야 할 것만 같은 다른 향의 공기. 안개처럼 다른 감각으로 걸어야 할 것 같은 밤. 그 몽롱함에 취해 다 큰 이의 손을 잡자 하고 함께 소원을 빌었다. 속삭이는 입술. 사그락 거리는 호흡. 엠마의 쪽이 더 길어 나는 그녀의 기도를 바라볼 수 있었다. 며칠 째 아침이 올 때까지 잠을 못 이뤘다. 아침의 강한 햇살이 우리의 덧창에 탄흔을 내어 우리의 침대에는 노란 무덤들이 꽃피었다. 방전된 것처럼 갑자기 잠에 들면 일어나서 멍한 얼굴을 한참 동안 더듬어야 한다. 지난밤의 흔적을. 그 마지막 표정들을.  어제도 그제도 7시까지 버티다가 못 견뎌 잠에 들었다. 마트가 문을 여는 시간은 8시 반, 한 시간만 더 깨어 있다가 마트를 다녀와서 편한 마음으로 자야지 했는데 마지막 코너를 못 넘기고 그만 리타이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오늘도 7시쯤, 깜박 잠에 들었다. 알람도 맞추지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깨어 버린 시간은 8시 반. 깬 김에 다녀와야지 하며, 무거운 옷들을 들어 입고 집을 나섰다. 오늘부터 이동 사유에 관한 증명서를 디지털로 쓸 수 있게 되어 나서는 일이 조금 간편해졌다.  몇 걸음 걸었을 뿐인데 등줄기에 땀이 나는 것이 느껴졌다. 두꺼운 코트는 이제 가장 큰 캐리어의 깊숙한 곳에 넣어둬야 하는 날씨가 된 것이다. 10여분 정도 지났을 뿐인데 저번 주보다 더 긴 줄이 마트를 둘러치고 있었다. 마트를 쭉 돌아 물품이 입고되는 창고까지 줄이 이어져 있었다. 사람들의 옷차림은 점점 여름을 향해가고 있었다. 나만 아직 갈비가 서리던 겨울에 머물러 있었다.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이 마스크를 끼고 있었다. 마트를 들어서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잠을 거의 못 잔 눈썹 위로 내리쬐는 햇살에 몽롱한 기분마저 들었다. 읽고 있던 죄와 벌을 닫아 주머니에 넣고 마트의 지하층을 향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갔다가 물품을 골라 들고 올라오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마트 안은 지난주에 비해 모든 물건들이 더 풍족히 진열되어 있었다. 계란도 과일이나 채소들도 마스크를 쓰고 있는 우리들만 아니라면 지난가을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조금 더 익숙해진 손길로 물건들을 골라 담고 실수도 없이 계산을 끝마치고 마트를 나섰다. 거리는 여전히 한 달째 굳게 닫혀 있었다. 이들의 하루를 사라진 수입을 그의 대한 보상을 괜히 염려하다가 집으로 가는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골목의 중간쯤 강아지와 함께 있는 한 여성 분의 모습이 보였다. 강아지가 볼일을 본 건지 검은 비닐로 뒤처리를 하고 있는 듯했다. 지난주에는 못 본 별 거 아닌 모습들.  꽃들이 지고 나뭇잎들이 어느새 골목에 그늘을 만들려 하고 있었다. 여름을 닮은 붉은 꽃들이 다른 담 위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계절과 시간의 무심함이 씁쓸한 웃음을 밀어 올렸다. 왜 그토록 많은 책들이 그림들이 발명과 실험들이 미완으로 끝이 났는지.. 우리는 달을 향해 던져진 돌이라 얼굴은 늘 달을 향해 있는데 몸은 점점 땅을 향해 다가간다.  그 불가능함을 들어 나의 발사를 미리 취소해 준다고 내가 더 기쁠까? “아니. 그럼 뭐 하자고.”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집으로 이어진 3개의 현관을 차례로 열었다. 글 이미지 레오 2020.04.08 파리일기_두려운 날들이 우습게 지나갔다
원망과 이해
저는 엄마아빠를 한때 많이 원망했습니다 왜 비오는날 다른 학부모님들은 초등학교 정문앞에서 기다리는데 나는 혼자 비 맞으면서 큰이모집에 길어서 가야했고 늘 내년이면 집 온다하고 안나타나고 나는 또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매번 속아 이 기약없는 기다림에 기대하게 됐다 어쩌면 그 당시에 내가 버틸수 있었던 이유였을수도.. 어쩌다 와서 나랑 오빠랑 지내면 화날때 나 나은거 후회한다고.넌 내가 죽어야 좋냐는 등 그 칼 같은 말들을 초등학생인 나의 가슴에 꽂아 힘들었기도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부모님은 항상 외국에서 돈벌고 나를 이모네 맡기고 옷하나 제대로 못입어보고 매일 청소에 술상을 치고 이모 구토한거 치우고 눈치밥만 먹었다 그나마 위안은 강아지 얌이였다.. 그러다가 중학생이된 그해 왜 갑자기 같이 살자고 멋대로 데려오고 또 1년만 잘해주고 예전처럼 똑같이 청소 잘 안했다 내가 해야나 내가 니 노예냐는둥 화풀이했다 괴로웠다 허나 이제는 그 모든게 사실 이해가갔다 이른 나이에 애늘 낳고 남편이 외국에서 돈벌어 생과부마냥 혼자 나랑 오빠키우다가 또다시 나가 돈벌고 어쩌면 내가 원망스러웠을수도 있다 참 많이 힘들었겠지 엄마나 나나 어릴때 상처가 크면서 나아지는게 아니라 그냥 시간이 지나면서 무뎌지는 거였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돈이 만능이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작은것도 할수 없다는것을 여러분들은 그거 아세요? 한번 상처받은 사람은 쉽게 다른 사람 받아주지않고 그때 한번 무뎌져버린 마음은 다시 감정을 제대로 느낄수 없다는걸요 여러분들은 저보다 행운아예요 옆에있을때 옆에 있을수 있을때 서로에게 상처주지말고 잘 지냈으면 해요 이제 소설로 자주 글을 올릴건데 다소 평범한 성장 내용일수도있고 또 서투른 필체일수도 있지만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제야 아무는 상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