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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 감정 쓰레기통 분리수거 하는방법

내 마음속 감정 쓰레기통 분리수거 하는방법





세번 참으면 살인도 면한다고 한다.
한번 참으면 타인을 보호한다.
두번 참으면 자신을 보호한다.
세번 참으면 우리모두를 보호한다.
그런데 참다가 병든 사람들이 있다.
참는 것이 꼭 능사는 아니다.
참더라도 잘 참아야 하며
참았더라도 해소해야 한다.


사실 참는다는 것은 엄청난 분노의
불길을 외부로 던지지 않고
내 가슴속에 박아버리는 것과 같다.
타다 남긴 숯불을 끄지 못하고
가슴속에 버려둔 것과 같기에
누군가가 조금만 화나게 하면
불에 기름을 붓든 자꾸 화가 난다.
급기야 한 순간의 '욱' 을
참지 못하고 그만 돌이킬수 없는
사고(후회)를 치게 된다.

어찌보면 '화'라는 것은 쓰레기와 같다.
물론 화를 마음껏 드러낸다면
그 사람의 맘이 편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묘하게도 화를 잘내는 사람은
당장 지금은 속이 편할지 몰라도
매 순간 부글부글 끓은채 살아간다.
그 사람이 표출할수 있는 감정은
오로지 분노라는 '화' 이기 때문이다.
매일 화를 내다가 화병에 걸린다.
그런데 참아도 화병에 걸린다. ㅠ

어찌해야 하는가?
우리는 쓰레기 분리수거를 한다. 
음식물 쓰레기는 음식물대로..
재활용품은 재활용품대로...
이도저도 아닌것은 재활용봉투에..
그런데 한달만 분리수거를 안하면
그대의 집은 어떻게 되는가?
음식물 쓰레기에서 악취가 난다.
쓰레기가 집 주인이 되어버린다.
퇴근후 집안에 들어가기가 싫다.
화가 나고 짜증이 난다.
잠도 안오고 우울해진다.
당신의 행복했던 모습이 점차
더러운 집안의 모습을 닮아간다.





이처럼 우리 감정도 분리수거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걷잡을수 없는
괴로움과 고통의 늪에 빠진다.
사실 쓰레기는 맘만 먹으면
하루만에 후딱 치울수 있는데
감정 쓰레기를 오랜시간 방치하면
100일 1000일이 지나도 어려울수도 있다.
더 슬픈일은 이 감정 쓰레기가
의식(거실)의 영역을 뚫어버리고
무의식(지하실)속으로
들어가서 또아리를 틀어버리면
쉽사리 건드릴수가 없다는 것이다.


마치 내 심장속에 뱀이 자리를 잡고
혀를 날름거리는 모습을 느끼는것처럼
괴로운 시간을 보낼수밖에 없다.


해소되지 않는, 풀리지 않는 감정은
시간이 지난다고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내 기억에서는 잠시 잊혀졌을지 몰라도
그 감정은 음식물 쓰레기가 되어서
굳어버린채 내 무의식 한켠에서
오늘도 악취를 풍기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부터라도
매일 매일 쌓여버린 내 감정쓰레기를
지혜롭게 분리수거 해야 한다.
시간이 날때마다 잘 풀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금세 상한다.
상한 음식 먹으면 탈나듯
그대의 정신에 탈이 난다.


마음속의 쓰레기 분리수거하는
4가지 방법




1. 화를 내지 말자.
화를 낸다고해서 풀리지 않는다.
자기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해야 한다.
그래야 내 감정이 풀리게 된다.
물론 상대방이 받아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나는 내 감정을 존중했으며 당당하게
솔직하게 표현한 것이다.
나는 내 감정을 쓰레기 취급
하지 않았기 때문에
쓰레기로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


물론 여기저기 떨어진 잔 쓰레기는
빗자루 질 한번이면 충분하기에
그정도는 어느정도 감수를 해야 한다.
세상일이 다 내 맘대로 내 뜻대로 안된다.

화를 내지 말라는 것은
남을 위한것이 아닌
바로 그대 자신임을 기억해야 한다.
물론 상황에 따라 화를 내야 할때는
이러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이런 흐름을 잘 알고 화내야 한다.
화를 냈으면 최소한 그날 안에는
늦어도 일주일 이내에는 풀어내야 한다.
빨리 진화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 마음이 타들어 간다.


2. 잠자기 전 감정을 풀어내자.
눈 감으면 수많은 생각들이 올라온다.
친구랑 다투었던 이야기
남편(아내)이 나를 무시했던 말투
직장 상사의 꼴보기 싫은 얼굴
우울하고 불안하고 괴로운 마음무더기
물론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쉽게 떨쳐버리고 싶지만
그게 맘처럼 되지 않는다.


잠자는 내내 스트레스가 되고
잠을 자더라도 악몽 내지 얕은잠이 된다.
불면증의 가장 주요한 원인이 된다.
과거든 오늘에 있었던 쌓인 감정에
빠져서 괴로워라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 감정에 취하지 않고
그 감정을 분명히 알아차리고
그것을 지혜롭게 건강하게 풀자.


" 그렇게 생각할수도 있겠구나"
" 나도 그렇게 잘한 것은 아닌데..."
" 애쓰지 말고 가볍게 살자"
" 내 자신아! 괜찮아 수고했어"
" 이젠 착한척 하지 않을테야"
" 어차피 인생 한번이야! 쫄지마 "
" 그때 내가 어리석었구나"
" 내가 감당하고 받아들이겠습니다."
" 다음부터는 좀더 말조심해야겠다."

자신에게 위로가 되든
반성이되든 칭찬이 되든
그대 마음속에 쌓인 감정 쓰레기를
깨끗하게 분리수거를 해야 한다.
그러면 청소부아저씨가 오셔서
당신 마음 앞에 놓인 쓰레기를
기분좋게 수거해 가실 것이다.
잠자기전 30분정도 이런 시간을
갖는것은 그대 자신에게
가장 기쁘고 신성한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





3. 몸의 쓰레기도 있다.
마음속에 쓰레기가 가득 찼다는 것은..
마음의 감정을 푸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만큼 중요한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그대의 몸의 쓰레기를 벗겨내는 것...
마음이 그렇게 병이 들었다는 것은
그대의 몸도 병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몸도 분리수거가 필요하다.
그대의 몸에 덕지 덕지 붙어 있는
나쁜(더러운)습관을 떼어내야 한다.
술담배를 멀리 해야 할 것이며
게으른 습관..과식하는 습관....
게임중독...자기 몸을 함부로 대함..


이런 나쁜 습관을 제거하는 것이
몸에 대한 건강한 분리수거이다.
분리수거가 끝나면
건강한 습관을 채워주자.
그러면 마음도 상승작용을 하면서
더 열심히 분리수거 작업을 하게 된다.
친구따라 강남가듯 몸과 마음은 하나다.


4. 집착하지 말자.
이 모든 것이 집착 때문에 발생한다.
무언가를 너무 좋아하면 병이 든다.
무언가를 너무 싫어하면 병이 든다.
그냥 있는 그대로 보며 살아가야 한다.
그러면 몸과 마음의 쓰레기
더미들이 쌓일 이유가 없다.
어찌보면 이 모든 쓰레기는
세상이(타인, 가족, 친구...) 준 것 같지만
결국 이 또한 내가 만든 것이며
내가 좋든 싫든 불러들인 결과물이다.


욕심이 많으면 큰 그릇을 채우고 싶어한다.
나중에는 꽉꽉 채우고 싶어서
온갖 쓰레기를 채워갈 것이다.
물론 당사자는 금은 보화라며
웃으면서 좋아할지 모른다.
'놀부의 박' 에서 도깨비가 나오듯
욕심은 부린만큼 큰 괴로움을 선물한다.
집착하지 않으면 설거지 할 것도 없고
분리수거 할 필요도 없다.
더이상 무언가를 쌓아둘 이유가 없다.
괴로움에서 벗아난 자유함을 얻는다.


감정의 분리수거가 서툰 내 자신에게
해주고 픈 말들이다.
나는 오늘도 묵묵하게 지난날
쌓아둔 감정을 정성스럽게 살펴본다.
그 자리를 깨끗하게 청소하고
페브리즈를 뿌리면 좋은 향기가 난다.
그러면 그 자리는 나의 쉼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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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가 나를 감정의 쓰레기통
취급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꼭 지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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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바라보고 나와 대화하고
나와 호흡하고 나와 교감하고
나와 친구되어 나와 함께하면
나와 힘든인생 나와 웃게된다




김영국 행복명상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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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파악할수 있는 삶의 흔적들 6가지 당신이 아무리 조심스럽게 걸어도 눈길에 발자국이 드러난다. 당신이 아무리 숨 죽인채 숨길지라도 심장은 콩닥콩닥 뛸 것이다. 당신이 아무리 하늘을 나는 재주를 지녔을지라도 바람은 당신을 안다. 생각보다 우리는 쉽게 드러난다. 그 흔적만 잘 살피게 된다면 과거에 어떻게 살아왔으며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지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갈지 알게 된다. 자신을 모르고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씁쓸하고 슬픈일이다. 모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서 많은 고통을 겪게 된다. 물론 그것이 지금은 아닐수도 있지만 삶의 끝자락에서 폭포수같은 눈물을 흘리며 눈을 감을지도 모른다. 잘못이 있으면 반성해야 하고 부족하면 노력해서 채워야하고 잘못된 길을 가면 멈춰야 한다. 자신에 대해서 잘 모를수도 있다. 그것이 잘못은 아니다. 그런데 당신이 남긴 그 흔적들을 잘 살피지 못하고 간과하면 그 흔적의 먼지들이 바위가 되어서 당신의 삶을 짓누르게 될지도 모른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다음의 몇가지를 통해서 나에 대해서 객관적인 판단을 해본다. 1. 관상 얼굴은 그 사람의 마음을 대변한다. 눈빛 표정 목소리등 외적인 모습은 수많은 마음들의 결론이다. 거울에 비친 당신의 모습을 보라. 평온해 보이는가? 즐거워 보이는가? 슬퍼 보이는가? 잔뜩 화를 내고 있는가? 눈빛이 어두워져 가는가? 탐욕으로 가득차 있는가? 젊을때는 다 좋아 보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마음이 얼굴을 통해서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 나는 관상을 크게 믿지 않았는데 한 사람의 마음을 가장 잘 드러내는 마음과학이라는 생각이 든다. 외모와는 다른 개념인듯... 2. 친구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내가 술을 좋아할대는 술친구가 많아지고 내가 공부를 좋아하면 공부친구가 많아진다. 과거의 내 친구를 보면 과거의 나를 알수 있고 현재의 내 친구를 보면 현재의 나를 알수 있다. 내가 변하는 만큼 친구도 변한다. 당신은 어떤 친구와 어떤 대화를 하고 어떤 즐거움을 공유하는가? 아니면 나에게 내 자신이 최고의 친구라고 말할수 있는 멋쟁이인가? 3. 고통 우리는 하나의 포장되어 있다. 본래의 내용물이 드러나는 순간이 있다. 모든 것을 잃었을때.. 위기의 순간에 직면했을때.. 가장 힘들었을때.. 내 삶이 예상치 않게 망가지고 엉망진창이 되는 경우가 있다. 눈 앞이 캄캄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때 당신은 어떤 모습이였는가? 그때 당신의 실제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위기의 순간은 이성보다 본능이 앞선다. 그동안 숨겨진 본래의 내 모습이 드러난다. 그때 이기적인 발톱을 드러내기도 그때 나약함에 빠져서 무너지기도 그때 지혜와 용기가 생기기도 그때 인간미를 발휘할지도 그때 배신을 할지도 여실히 드러난다. 4. 평판 타인의 말을 다 믿을필요는 없다. 그런데 쉽게 넘어가면 안된다. 누군가는 나에게 지적, 비난을 한다. 누군가는 진심으로 조언을 해준다. 다 새겨들을수는 없지만 당신이 주변 사람들(가족, 친구, 지인...) 에게 자주 들었던 말이 있는가? 칭찬의 말들이라면.. - 넌 긍정적이라서 내가 배울게 많아 - 넌 진짜 멋쟁이야! 존경스럽다. - 뭘해도 믿을것 같아! 넌 신중하니까. - 자기관리를 정말 잘하는거 같아. 비난의 말들이라면.. - 술좀 끊어! 그러다 사고친다 - 남의 말좀 들어라! 니밖에 모르니 ㅜ - 그만 의지하고 스스로 노력좀 해라. - 정신차리고 살아! 건강도 챙기고 주변 지인들로부터 자주 들었던 말은 당신의 과거와 현재를 대변한다. 또한 당신의 미래이기도 하다. 5. 습관 습관=나 나쁜 습관은 브레이크를 잡고 가속페달을 밟는 것과 같다. 삶의 성장(자아성찰)이 멈춘것과 같다. 좋은 습관은 삶의 이정표가 된다. 태양열처럼 자가발전을 하고 네비게이션처럼 분명한 목적지를 인식한다. 지치지 않고 가는동안 즐거운 여행이며 비교할수 있는 행복한 안식처가 된다. 이와 달리 나쁜 습관은 사사건건 당신 삶의 제동장치가 될 것이다. 가다 서다 가다 서다 반복하다 결국 당신의 자동차를 삶의 한복판에서 멈추게 될지도 모른다. 나쁜 습관이 당신 삶을 어떻게 만들지 잠시만 생각해봐도 답은 나온다. 6. 직업 직업에 귀천은 없다. 우리는 삶의 2/3를 일하며 산다. 직업(業) 돈을 많이 버느냐 적게 버느냐가 생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지만... 생존을 위해서 직업을 선택하지만 결국 그 직업도 자신의 삶이 반영된다. 직업을 쉽게 선택하는 사람은 없다. 어떠한 가치를 갖고 일을 하는지? 어떤 일에 가치를 갖고 사는지? 회사에서 일할때 어떤 마음을 갖는지? 그 직업을 대하는 태도만 봐도 그 사람의 실제 마음을 알수 있다. 그것이 2/3의 당신이기 때문이다. 쓰레기를 청소하더라도 짜증내면서 일하는 사람과 자부심을 갖고 즐겁게 웃으면서 일하는 사람이 있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향해 갈수밖에 없다. 직업도 그러하다. 자신에게 맞는 것을 찾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 직업을 통해서 우리는 성찰한다. * 집안일도 아주 위대한 직업으로 포함 1. 모든 마음은 얼굴로 드러난다. 2. 친구는 나의 또다른 거울이다. 3. 고통스런 순간 내가 깨어난다. 4. 훈수두는 사람은 냉정하게 본다. 5. 습관이 당신의 미래를 결정한다. 6. 인생의 2/3 일하며 시간을 보낸다. 김영국 행복명상센터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자애명상(ft. 자기사랑)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자애명상(ft. 자기사랑) 1. 분노와 증오: 상대방이 고통을 느끼기를 원함 2. 사랑과 자비 : 상대방이 기쁨과 행복을 느끼기를 원함 3. 마음의 병 3가지 탐욕 ->관용 베품 수행 분노 ->자애 수행 어리석음 ->지혜 수행 * 현대인들이 분노조절장애를 겪는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사랑이 부족한 것이다. 4. 교만한 사람 :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마음 즉, 교만한 사람은 자존감이 낮다. 상대방을 격멸하고 무시하다. 즉 자기사랑이 부족하다. 5. 자애수행의 독특한점 기존 수행법은 자신의 의식을 내면으로 향하는데 비해서 자애수행은 의식을 밖으로, 외부세계로 그리고 외부 존재들에게 자애를 방사한다는 점이 특징 * 마치 어머니가 그의 외아들을 조건 없이 사랑하는 것처럼 모든 존재들을 향하여 무한한 사랑을 위로 아래로 사방 모든 곳으로 사랑을 확장하라는 것이다. 6. 의도가 행위이다. 청정한 마음을 유지하고 계율을 지켜라. 7. 꾸며대는 말을 삼가고, 적당한 때에 말하고, 사실을 말하고, 유익한 말을 하고 가르침을 말하고, 계율을 말하고, 새길 가치가 있고 이유가 있고 신중하고 이익을 가져오는 말을 해야 한다. 8. 붓다는 살아있는 생명을 사랑하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지 않고, 사랑을 나눔에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며, 거짓말을 하지 않고, 정신을 혼미하게 하지 않는 것이 다른 어떠한 성대한 제사를 지내는 것보다 오히려 더욱 큰 과보와 큰 공덕을 낳게 된다. 9. 붓다는 라훌라에게 농담으로라도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설하셨다. 10. 네가지 삶의 유형 - 현재에도 괴롭고 미래에도 괴로운 결과를 초래하는 삶 - 현재에는 즐겁지만 미래에는 괴로운 결과를 초래하는 삶 - 현재에는 괴롭지만 미래에는 즐거운 결과를 초래하는 삶 - 현재에도 즐겁고 미래에도 즐거운 결과를 초래하는 삶. 11. 자애명상의 대상 첫번째는 자기 자신 두번째는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사람 세번째는 무관한 사람 네번째는 원한 맺힌 사람 12. 자애명상 문구 부디 내가 원한이 없기를 부디 내가 악의가 없기를 부디 내가 근심이 없기를 부디 내가 행복하게 삶을 영위하기를 대학원 동문이신 양은실 선생님의 석사논문 자애수행과 계학실천의 상관관계연구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경전이나 논문 내용은 더 방대하지만 눈에 들어온 내용위주로 적었습니다. 좋은 논문 써주심에 감사합니다. 항상 관심 있는 주제라서 올해에는 자애명상을 현대인에 맞도록 좀더 쉬운 프로그램(수행법)으로 만들고 싶은 바람이 생겼습니다. 아무리 옳을지라도 내 말이 맞을지라도 거친 의도와 거친 말과 거친 행동은 지혜롭지 못합니다. 계율을 지키는 것은 자신과 타인을 보호하기 위함이며 청정한 마음을 닦기 위한 기본이라 할수 있습니다. 자애명상의 핵심은 아무리 둘러 보고 둘러 봐도 가장 소중한 존재가 바로 내 자신이기 때문에 타인 또한 그런 마음으로 대했을때 비로소 지혜의 문으로 들어갈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 타인에 대한 자애가 힘들다면 우선 내 자신을 바라보고 탐욕, 분노, 어리석음에 물들지 않도록 꾸준히 자애명상을 한다면... 마음의 기쁨이 생기고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을 것이며 타인과의 다툼이 줄어들 것이며 무기력했던 몸의 감각이 다시 활력을 찾을 것이며 집착하지 않는 즐거움을 누릴것이며 과거와 미래가 아닌 현재를 보게 되지 않을까요? 일단 나를 많이 아껴주고 사랑해줘요. 그리고 그 사랑의 바이러스를 주변 사람에게 뿌려주는 겁니다. 김영국 행복명상센터
사무엘 올만의 시 ‘청춘’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기간이 아니라 그 마음가짐이라네. 장미빛 뺨, 붉은 입술, 유연한 무릎이 아니라 늠름한 의지, 빼어난 상상력, 불타는 정렬, 삶의 깊은 데서 솟아나는 샘물의 신선함이라네. 청춘은 겁없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이라네 때로는 스무 살 청년에게서가 아니라 예순 살 노인에게서 청춘을 보듯 나이를 먹어서 늙는 것이 아니라 이상을 잃어서 늙어 간다네. 세월의 흐름은 피부의 주름살을 늘리나 정렬의 상실은 영혼의 주름살을 늘리고 고뇌, 공포, 실망은 우리를 좌절과 굴욕으로 몰아간다네. 예순이든, 열여섯이든 사람의 가슴속에는 경이로움에의 선망, 어린이 같은 미지에의 탐구심, 그리고 삶에의 즐거움이 있게 마련이네. 또한 너나 없이 우리 마음속에는 영감의 수신탑이 있어 사람으로부터든, 신으로부터든 아름다움, 희망, 희열, 용기, 힘의 전파를 받는 한 당신은 청춘이라네. 그러나 영감은 끊어지고 마음속에 싸늘한 냉소의 눈은 내리고, 비탄의 얼음이 덮여 올 때 스물의 한창 나이에도 늙어 버리나 영감의 안테나를 더 높이 세우고 희망의 전파를 끊임없이 잡는 한 여든의 노인도 청춘으로 죽을 수 있네. SONG,JM www.facebook.com/songjungmin 나를 움직이는 힘은 살아야남아야 하는 이유가 있어서겠죠 그 이유는 나 자신만이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진실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불행한 이유(이제라도 멈추면 안될까요?)
우리가 불행한 이유(이제라도 멈추면 안될까요?) https://youtu.be/SPK7mUVfWzU 어느날 어머니들이 반상회를 열었습니다. 아이들 교육에 대해서 열띤 토론을 합니다. 각자 자녀를 키우면서 느꼈던 속상함을 토로합니다. 다들 힘들어서 우울증에 걸릴것 같다면서 신세를 한탄합니다. 첫번째 어머니 " 전교 1등만 하던 우리 딸이 이번에 전교 2등이 되었어요. 저 우울해서 죽고 싶어요, 살기가 싫을 정도로 속상합니다." 그러자 야유가 쏟아졌다. 두번째 어머니 : 화를 내면... " 우리 아들은 전교 꼴등입니다. 제발 중간이라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1번 어머니는 참 욕심이 많으시네요. 저는 죽고 싶정입니다." 세번째 어머니 : 한숨을 쉬며... " 우리 아들은 가출해서 집에 들어오지를 않습니다. 저는 전교 꼴등도 좋으니 그냥 학교만 다녔으면 좋겠네요. 그렇게 욕심을 부리면 자식 농사 망치게 될 것입니다. 저만큼 힘든 엄마는 없습니다." 네번째 어머니 : 눈물을 훔치며... " 제 딸은 얼마전 교통사고를 당해서 아직도 병원에 입원해 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안해도 좋으니 제발 건강하기만 했으면 소원이 없겠습니다. 다들 자식에 대한 집착이 많네요. 자식을 소유하려고 하지마세요. 저에 비하면 당신들은 엄청 행복한 겁니다." 다섯번째 어머니 : 허탈해 하시며... " 작년 수능이 끝나고 우리 딸은 아파트에서 뛰어내렸습니다. 저에겐 속상해할 기회조차 없습니다. 진작에 딸이 원하는대로 해줄걸 그동안 제 집착으로 아이를 키웠습니다. 저는 매일 가슴이 찢어질정도로 아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 같이 지금이 가장 힘들다고 말을 합니다. 항상 불만족스러운 것을 찾아서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지요. 마치 그렇게 생각해야만 내가 많은 것을 얻으리라 생각합니다. 내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이 과정속에서 자녀가 심각한 정신병에 걸리는 것입니다. 어느정도 문제는 전문가나 주변의 도움으로 회복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정신적 강을 넘어버리는 경우에는 인간의 힘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상황이 오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회개하고 참회를 해도 안됩니다. 자녀에게 아무리 미안하다고 무릎을 끓고 사정해도 이미 허물어져버린 마음은 쉽사리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때 부모는 피눈물을 흘립니다. 다시 되돌리고 싶어도 불가능합니다. 나는 그런 엄마 아빠를 많이 봤습니다. 도와주고 싶지만 솔직히 내가 해줄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더군요. 나 역시도 건강하지 않는 가정에서 살면서 그 강을 건널뻔한 사람으로서 너무 안타깝고 아쉽습니다. 우리는 지금 멈춰야 합니다. 우리는 착각을 합니다.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서 사는것처럼... 마치 미래가 지금의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처럼... 지금 채찔질을 하지 않으면 내일 불행해질것처럼... 내 욕심대로 아들 딸이 착실하게 따라와줄것처럼... 이것이 부모가 할수 있는 최선의 사랑인것처럼... 잃고 나면 모든 것이 확연하게 잘 보입니다. 욕심을 부린 상태에서는 눈과 귀가 멀어버립니다. 심리적인 치매 상태라고 볼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자녀가 힘들다고 말해도 그 슬픈 표정이 안보이고, 자녀의 고통의 소리가 나약한 변명처럼 들립니다. 가슴으로 낳은 자녀의 마음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로지 자식의 성공을 위해서 당신의 욕심에만 스위치를 켭니다. 그러면 자녀의 마음의 방은 불이 꺼집니다. 어두운 곳에 홀로 갇히게 되고 그때부터 마음의 병이 생깁니다. 그 착한 아이가 고통을 받으면서 서서히 괴물이 되어갑니다. 아니, 살기 위해서 사악해지고 잔인해지고 폭력적으로 변합니다. 그때 아이는 지옥의 문을 열고 나를 힘들게 한 대상을 찾아갑니다. 두번 다시 당하지 않기 위해서 내가 먼저 악해져버린것입니다. ㅠㅠ 엄마 아빠가 힘들면 위로를 해줄 정도로 그 착한 아들이... 엄마 아빠의 삶의 희망이 되었던 착한 내 딸이... 이러한 심리적 패턴은 개인에게도 나타납니다. 지금의 삶에 만족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씩 잃게 됩니다. 건강을 잃게 될 것이고, 마음, 감정을 느끼는 법을 잃게 될 것이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를 모를것이며, 소중한 가족이나 친구들이 하나씩 떠나갈 것이며, 내 삶의 방향이나 목적지를 잃어 버리게 됩니다. 아니면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내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은채, 사회와 이별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흔히들 지금이 최악이라 말하고 막장이라 말하고 밑바닥이라 말을 합니다. 나 역시 그렇게 말하며 살아왔지만 밑바닥 밑에는 또다른 밑바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진짜 밑바닥은 아프다는 말조차 할수 없을정도로 무섭습니다. 고통 조차 느낄 심리적 여유가 없는 그저 공포의 덩어리입니다. 나에게 욕심을 내려놓을수 있는, 포기할수 있는, 멈출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은 여전히 밑바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짜 밑바닥은 내가 할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때는 '받아들인다'라는 표현을 할수가 없습니다. 그저 주어진 대로 고통을 받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늘에서 우박이 나에게 내리는 시련이자 고통일수도 있습니다. 그나마 지금은 우산이라도 써서 막을수는 있겠지만, 우산이 없을때는 그저 내리는만큼 맞을수밖에 없다. 내가 잘 살아왔다면 지나가는 친구가 우산을 공유해줄지도...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습니다. 내가 나를 잡아줘야 합니다. 더이상 내 삶이 병들지 않도록 멈춰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우려했던 현실이 내일, 조만간 현실로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쥐는 쥐약을 먹습니다. 그 전까지는 맛있는 음식이라고 생각하며 좋아하지만, 먹는 순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눈이 있습니다. 귀가 있습니다. 코가 있습니다. 소중한 사람들의 조언들이 있습니다. 스스로가 충분히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면 다시 눈을 떠서 볼수가 있습니다. 눈을 뜨는 방법은 단순합니다. 눈을 가리고 있는 그 손을 떼어내면 됩니다. 이 사회가 세상이 나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가 나의 눈을 가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다시 오늘이라는 세상을 묵묵히 건강하게 걸어갈수가 있습니다. 글 : 한국 최면치유 연구소장 김영국
파리는 지금 괜찮은가요?
오늘 이동제한 조치가 실시된 이후 처음으로 외출을 하였다. 조금 작지만 집에서 가장 가까운 마트에 가서 일주일 동안 구멍이 조금 뚫린 성벽을 다시 바를 무언가를 사 오기 위해서였다. 커플이라도 가족이라도 되도록 한 명만 외출을 하여 장을 보고 오라는 게 정부의 지침이어서 프랑스에 온 이후 처음으로 혼자서 장을 보러 가게 되었다. 우리 집은 파리와 남쪽 벙리우를 연결하는 꽤 큰 도로 근처에 있어서 이동제한이 실시된 후의 풍경 변화를 매일같이 실감하고 있었다. 아이의 필통처럼 색색의 볼펜으로 가득 차던 버스는 정류장에 멈춰 조금의 공기를 빼고 채우곤 금세 가벼운 배기음으로 정류장을 떠났다. 점심때와 해 질 녘 장바구니를 메고 끄는 이들이 몇 분에 한 사람씩 괘종시계처럼 우리의 창을 좌우로 가를 뿐 큰 사건도 사건에 걸맞은 소음도 없었다.  우리 건물과 마주 보며 서 있는 건물은 겨울 내내 덧창으로 덮여 있었는데 이제는 덧창을 걷고 해가 지면 은은한 노란빛을 우리의 방안에 보태기 시작했다. 그러기 위해서 마담은 지난 주말 하루 종일 이층의 창들을 물걸레로 닦으셨다. 그것을 바라보다가 괜스레 나도 세탁기를 다 밀어내고 전 거주민들의 역사를 닦아내었다. 사실 내게는 꽤 큰일이 하나 생겼는데 내가 즐겨 바라보던 길 건너 세차장이 그만 폐쇄를 한 것이었다. 상점 영업이 종료된 이후로도 한 이틀 영업을 해서 계속 열 수 있는 건가 했었는데 지난 수요일 아침 일어나 덧창을 열어보니 그 널찍한 공간을 가느다란 줄 몇 가닥으로 막아 두고 있었다. 너무나 큰일이라 내가 쓰고 있는 글에 한 페이지나 써넣었다. “ 주말이면 차들이 꼬리를 물고 늘어서 있던 집 앞 세차장이 폐쇄되었다. 처음에는 축구 경기가 중지가 되었고 공연들이 그리고 학교가 앞을 다투듯이 문을 닫았다. 그리곤 채 이틀을 버티지 못하고 카페와 바, 상점들이 강제로 폐쇄가 되었고, 햇빛이 잔인하던 그 주말, 터지는 봄 꽃 같은 방종이 있은 후, 벌처럼 전 거주민들의 이동이 금지되었다. 아주 먼 곳 내가 이름도 처음 들어 본 곳에서 터진 화산재가 바람을 갈아타며 나의 유일한 재미를 덮쳐버린 것이다. 그것은 분명 가십이었는데 계절을 채 못 벗고 모든 곳들의 일면짜리 뉴스가 되었다. 세차장은 일주일 이주일에 한번 덧창을 열고 담배를 피우러 나오는 어느 마담의 2층 집 옆에 자리를 잡고 있다. 건물은 별 다른 구조랄 것도 없이 중앙에 작은 사무실이 있고 그 위에 갓처럼 넓고 평평한 지붕이 얹어져 있는 게 고작이다. 그 날개 같은 지붕 아래의 공간을 차의 넓이에서 조금씩 여유를 두고 칸막이로 쪼개어 놓아 한번에 5대의 차들이 주차하듯 차를 세워 두고 지붕에서 뿌려 주는 물과 거품으로 차를 씻을 수 있게 되어 있다. 물론 사무실 앞 동전교환기로 가서 코인을 바꾸는 일부터 지붕에 달린 호스를 돌려가며 차에 물을 뿌리고 밀대로 차에 거품을 두르는 일 차를 헹궈내고 걸레로 물기를 닦는 일까지 그전에 차에 앉아서 앞차를 기다리는 일 조금씩 차를 앞으로 당겨 대는 일 그 모든 일들은 각자가 스스로의 힘으로 해야 한다. 햇볕이 좋은 날도 바람이 부는 날도 심지어 비가 내리는 날도 세차장은 차를 받았다. 헬스장이라도 되는 듯 심심한 얼굴의 사람들이 기꺼이 차를 몰고 와서 한참을 앉아 기다리다가 자신의 키만 한 호스와 밀대를 온몸으로 움직이며 차를 씻는 모습, 그런 모습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가 가만히 창 앞에 서서 10분이고 20분이고 지켜보는 것은 무척 우스운 일이다. 그런 우리의 가마 위로 하늘은 늘 너무 밝거나 장엄한 구름이 뒤덮었거나 아이의 그림에서 처럼 명암도 없이 하얀 구름들이 장난처럼 머물러 있거나 했다. 그 어느 날도 세차를 할 만한 날은 없었다. 그 어느 날도 세차를 지켜볼 만한 날은 없었다.  “ 마트를 가는 길은 길어야 5분, 종종걸음으로도 몇 백 걸음이 채 안 되는 거리이지만 초식동물인 나는 어젯밤부터 긴장을 했다. 뒤에서는 나의 정체성을 알아볼 수 없게끔 후드 모자를 덮어써 검은 머리를 가렸고 앞에서 걸어오는 사람들에게선 공격성을 조금이라도 일찍 찾아내기 위해 오감을 다 끌어 썼다.  마트의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서로 2미터 이내로 접근하는 것을 피하라고 했기에 줄은 사람의 수보다 훨씬 긴 길이로 늘어져 있었다. 마트는 실내에 머무는 사람의 수를 제한하기 위해 놀이기구처럼 몇 명씩 단위를 끊어 입장을 시키고 있었다. 지겨운 대기 동안 줄줄이 폐쇄된 상점들을 바라보았다. 철문이 다 내려진 거리 속에 유일하게 햇볕을 토해내는 긴 창 옆에 서 있는 이들의 모습이 마치 날씨가 모진 날 굳이 놀이공원에 놀러 와서 겨우 운영하는 몇 안 되는 기구에 매달려 있는 이들의 모습 같았다. 언짢고 다행이고.. 날씨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사정들. 기막힌 교차. 차례가 되어 마트에 들어가 엠마가 메모해준 쪽지를 보며 장을 보았다. 나와 비슷한 처지의 남자들이 쪽지와 상품을 산만한 눈빛으로 대조하고 있었다. 다행히 과일과 채소 등은 수량이 꽤 풍부했다. 다만 밀가루와 소금 그리고 계란은 재고가 없어 사질 못했다. 다들 서로 피하듯 배려하듯 사람이 없는 칸들을 찾아 들어서고 금세 넘겨주고 하면서 미션처럼 장을 보았다.  마트 안의 사람 수를 제한하다 보니 계산대에서는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바구니에 담아 온 물건들을 다 스캔하고 이미 내 가방에다 다 담았는데 뒤져 봐도 내 주머니 어디에도 지갑이 없었다. 소매치기는 아니었다. 지갑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자물쇠를 허리에 거는 루틴을 빠뜨렸다는 사실이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어떡하지 이 물건들을 다시 가져다 놓고 집으로 가 지갑을 가지고 온 다음 다시 줄을 서서 장을 봐야 하는 걸까. 아무래도 그게 맞는 것 같아 설명을 하려고 하는데 거기에 걸맞은 프랑스어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왜 그러는지 묻는 점원에게 이렇다 할 대답도 못 하고 식은땀만 흘렸다.  “아이 돈 헤브 뽁뜨페이으.” 그 간단한 프랑스어 문장도 완성하지 못해 영어와 섞어 버리는 꼴이라니.. “뽁뜨페이으? 알레지.” 죄송하다며 장 본 물건들을 다시 제자리로 가져다 두려고 하자 직원이 나를 만류하며 얼른 지갑을 가져오라고 하셨다. 나는 운동 부족을 실감하며 집으로 달려갔다. 깜짝 놀라는 엠마에게 지갑을 건네받고 혹시 나 때문에 다른 분들이 기다리진 않을까 염려하며 허벅지를 부여잡고 마트로 달려갔다. 별로 효과도 없었겠지만 카드의 비번을 재빨리 누르고 물건들도 최대한 빨리 가방에 넣었다.  “멕시! 오흐부아.” 장바구니를 어깨에 메고 여전히 가쁜 숨을 내쉬며 마트의 문을 나섰다. 조금 더 길어진 줄이 눈에 들어왔다. 프랑스에 처음 왔을 때 슈퍼에 가기 위해 엠마와 어깨를 한 사람 분만큼 붙이고 걷던 길이 눈에 들어왔다. 대중교통 파업 때 “쿠쿠” 하며 지나가는 차를 잡아 타시던 할머니와 함께 추위에 떨며 버스를 기다리던 버스정류장도 눈에 들어왔다. 감상도 위험한 시기라 고개를 젓고 장바구니를 고쳐 메고 터덜터덜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걸음에 어떤 목적도 담겨있지 않아 보이는 어느 흑인 분을 나도 모르게 경계했다. 못 된 버릇이다. 집 앞 작은 사거리에서 우리에게 가장 먼저 봄을 알려줬던 나무의 꽃이 골목에 바람과 중력을 그리며 떨어져 있었다. 이미 몇몇은 걸음에 짓이겨 있었다. 나무의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외출의 목적과 관계가 없는 리스트에도 없는 걸음과 손짓. 주변을 오가는 사람들이 신경이 쓰여 채 몇 장 찍지도 못하고 얼른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멀리서 나를 인식하고 나를 따라오는 어느 흑인 분의 모습이 보였다. 신경을 안 쓰는 듯 신경을 쓰며 집 현관을 열었다. 지나가겠지 했는데 그 흑인 분이 나를 따라 우리 집 현관으로 들어섰다. 순간 나는 온 신경이 곤두섰다. 차분히 현관에 놓인 우편함을 열어보았다. 흑인 분이 어색한 얼굴로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봉쥬흐.” 우편함이 있는 현관을 지나면 다시 비밀번호를 눌러야만 들어갈 수 있는 문이 나온다. 어찌해야 할까 다시 현관 밖을 나가야 하나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는데 그분이 그 문의 비밀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분명 연기이겠지?’  문이 열렸다. 순간 나는 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워 우편함으로 시선을 돌렸다. 내가 놀란 것을 그분도 느끼셨을 텐데.. 미안함과 씁쓸함에 한참을 더 현관에 머물러 있다가 비밀번호를 풀고 문을 지나 엘리베이터 앞으로 갔다. 엘리베이터는 내가 가려는 층에 멈춰 있었다.  “나와 같은 층에 사시는구나.” 이 곳에서 인종차별도 몇 번 당했지만 떳떳하게 분노하지 못 한 이유는 내가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임을 너무나 분명히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표현을 안 하고 공격을 안 했지만 나는 그들을 신경 쓰고 있었고 피하고도 있었다. 그것이 과연 그렇게나 큰 차이인 걸까. 선과 악이 분명한 사람들. 마음껏 비난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그들과 달리 나는 그 어떤 것들에도 그다지 멀리 있지 못한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가만히 생각을 한다. 정치는 하지 못하고 참여도 하지 못하고 싸움은 진작에 그만두었고 생각만 한다. 비겁한 시간들이다. 너무나 잘 알았었는데 사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씁쓸한 사실 말고는 모든 게 지워져 버렸다. 긴 비행이 있었고 너무 많은 바람이 나를 흘러갔다. 장만 보고 왔는데 하루가 다 지났다. 어느 산, 겨울이 늦게 물러나는 나무 아래에 앉아 사람들은 벌써 잊었을 나를 생각하고 있는 것만 같다. 조용한 곳이라 나는 내가 더 뚜렷이 보이고 너무 뚜렷한 나는 부끄러워 쉽게 산 아래로 내려갈 수가 없다.  우울한 얘기들만 넘쳐나던 유학생 커뮤니티에 프랑스인들로부터 받은 도움이나 두려움을 풀어지게 만드는 친절함 등을 담은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짐을 다 못 담는 이에게 자신의 장바구니를 나눠주거나 트램과 버스를 오르내릴 때 생수통을 대신 들어주거나 하는 몇 주 전이라면 일상의 배경을 그릴 사소함들이었겠지만 지금은 모르는 이들에게 알리고 싶게끔 만드는 소중함이 되었다. 공포도 일상이 되면 조금씩 패닉은 사라지고 우리가 노력해서 되고 싶은 모습이 조금씩 우리의 얼굴을 차지하기 시작한다. 사재기는 줄어들고 인사는 늘어난다. 그러한 것들이 전부 다 가식인 걸까. 나는 그러한 노력들이 반갑다. 공포와 혐오는 분명 우린 안에 있다. 자신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얼굴을 잘 모르거나 애를 써 스스로를 속이는 거겠지. 분명 어둠은 우리 안에 기원처럼 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훨씬 넓은 땅을 두고 벌이는 싸움이다. 가만히 둔다 해도 완전히 어두운 땅이 되기 위해선 낮이 밤이 될 만큼 시간이 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