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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의 다보스

FT에서 대단히 재미있는 기사가 올라왔다. 100 년 전 다보스이다. 스위스야 그때나 지금이나 주요국이 교섭을 하는 장소로 유명했으니, 그때에도 세계경제포럼이 열릴 만하다. 예나 지금이나 다보스가 외진 곳에 있었을 테니, 시위꾼들(이때는 반세계화 시위가 아니라, 서프라젯, 그러니까 여성참정권자들 시위가 대세였다) 막기에도 제격이었을 것이다. 다보스는 호텔이 충분하지 않은 곳이다. 보통은 초대받은 지도자/유명인사들 방만 근처에 제공되고 수행원들은 아랫동네(?)에 머물면서 매일매일 산을 올라가야 하는 구조다. ...가고 싶을까? 정말 꼭 가서 자신을 드러낼 필요성이 있는 인사들만 간다는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부자들 말잔치에 스위스 브랜드를 입힌 것 뿐이라는 비판이 많지만, 어떻게 보면 공사를 불문한 고위인사들이 서로 어울리는 곳이 흔치 않음도 사실이다. (빌더버그는 나도 모르니 꺼내지 마시라.) 아무튼 1914년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는 어떤 인사들이 참석했을까? 서유럽 강대국들은 물론 러시아 제국(!)과 오스트리아 제국(!!), 중국은 신해혁명 때문에 못 갔을 테고, 일본은 다이쇼 천황이... (주변 평도 그렇고 건강도 그렇고) 아마 못 가지 않았을까? 짐작컨데 (을미사변의 범인인) 미우라 고로가 가잖았을까 싶다. 지금 같았다면 을미사변은 ICC에 제소할 만한 사안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때도 세계를 뒤바꿀 기술업계 인사들이 꽤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토마스 에디슨과 굴리엘모 마르코니. 전기/전신을 만들고 퍼뜨린 그들은 아마 바쁘다는 핑계로 안 갔을 가능성도 꽤 크다. 당시 영국 외교부장관인 그레이는 외교부장관답게 외국인 혐오증(...)으로 안 갔을 테고, 존재감을 알려야 할 윈스턴 처칠은 좋다고 갔을 것이다. 당시 영국 총리인 아스퀴쓰는 아일랜드 문제와 참정권 문제로 아마 못 왔을 듯. 미국은 아마 머핸 제독이 참여하여 해양력이 관건이리라 얘기했을 테고, HG 웰즈와 토마스 만이 등장했을 수도 있겠다. 아마 이 모든 상황을 트로츠키(!!!)라는 저널리스트가 열심히 취재했을 테고 말이다. 독일의 빌헬름 황제도 기꺼이 참가하여 독일의 평화정책을 열심히 홍보했을 것이다(영국과의 군비 경쟁은 쏙 뺀 채로 말이다). 그 말을 조젭 카요 프랑스 재무부 장관은 "위, 위!" 하면서 들었을 테고, 푸앙카레 대통령은 대단히 짜증을 냈을 것이다. (카요는 친독파였고, 푸앙카레는 반독파였다. 여담인데, 카요의 부인은 이듬해 피가로 편집장을 권총살해한 걸출한 인물이었다.) 세상은 제1차 발칸 전쟁(오스만투르크에 대항)과 제2차 발칸 전쟁(불가리아 대 나머지 국가들)으로 진력이 난 상태였다. 하지만 어떻게든 서유럽 국가들이 개입하여 세계 질서를 다시금 바로 잡은 상태. 위기는 바로 잡을 수 있다. 이듬해에도 우리 다시 만나서 세계 정세를 논의하자며, 서로 웃으며 헤어졌을 것이다. 이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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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pint 이듬해는 계속돼야 합니다! ㅎㅎ
이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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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찰떡같이 말해줘도 개떡처럼 알아듣는 대일본제국
성형작약탄이라는 신통한 물건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지루하니까 생략하고 폭발력을 사방으로 분출시키는게 아니라 한점으로 모아서 엄청난 관통력을 얻은 탄이라고 생각하면 됨 독일군이 발견하고 독일군이 제일 쏠쏠하게 써먹었다 가끔 2차머전 영화에 보면 뜬금없이 나치들이 존나 큰 몽둥이를 가지고 다니는 경우가 보이는데 이게 성형작약탄임. 이렇게 멀리서 발사하는 형태도 있었지만 좀 더 구식인 형태로는 그냥 땡크 옆구리에 철썩 붙여서 터뜨리는 흡착지뢰도 있었다. 자석이 들어있어서 전차 옆구리에 갖다 붙이면 알아서 찰싹 붙는다. 이 상태에서 터뜨리면 아무리 두꺼운 양키나 쏘련 전차라도 구멍이 뚫리는 물건이다. 물론 개 위험하다. 전차말고 이거 들고 있는 불쌍한 나치 가 미친듯이 굴러다니는 탱크에 이거 붙이려고 개다리스텝으로 뛰어당기는 것만큼 위험한 일도 드물다. 뭐 그래도 독일은 이거라도 있어서 제법 괜찮게 버틴 편임. 태평양에서 미국 땅크들에게 고통받는 일본은 상황이 훨씬 안 좋았다. 일본 친구들로 말할 거 같으면 미국 땅크는 지옥에서 올라온 디아블로 같은 존재였음. 땅크가 뒤지질 않아 일본은 양키 땅크를 잡으려고 폭탄 껴안고 궤도 밑으로 기어들어가고 관측창에다 총검을 쑤셔넣으려고 시도하고 심지어는 청산가리 유리병을 해치에 넣어서 안에 있는 양키를 독살하려고도 시도했지만 별로 효과는 없었다. 얘네는 왜 탱크도 근딜로 잡으려고 지랄할까. 물론 기술력이 똥이라 그렇다.  이 꼴을 보다 못한 독일군이 저 모자란 놈들이 그래도 하나 밖에 없는 친구니까 도와주겠다며 흡착지뢰의 설계도를 보내준다 성형작약탄에 자석 붙이고 땅기면 되니 설마 아무리 멍청이들이라도 이걸 못 만들진 않겠지 싶었을 것이다 물론 못 만듬 2차머전 최대미개국 대일본제국을 너무 과대평가했던 것은 아닌가? 어케어케해서 성형작약탄 부분까진 만들었는데 자석을 못 만들었다. 보통 폭탄보다 자석이 더 만들기 쉬울 거 같지만 아무튼 그런 고로 폭탄을 들고 있어봐야 땅크한테 붙일 수가 없었음.  그래서 일본은 포기...하지는 않고 참으로 일본스러운 해결책을 생각해냈다. 자석의 용도가 터질 때까지 땅크에 달라붙어 있는 용도가 전부라면 그걸 굳이 자석으로 할 필요가 없잖엉 인간한테 들고 꼬라박으라고하면 되지 그리하여 성형작약탄을 죽창 끝에다 달아서 탱크한테 찔러넣는 대전차죽창 자돌폭뢰가 개발된다. 사용법은 존나게 간단했는데 사무라이 정신으로 무장하고 지나가는 탱크에 달려들어 꼬라박으면 된다. 성형작약탄이라 관통력은 개확실하니 전차는 확실히 죽고 이거 들고 있는 새끼는 더 확실하게 야스쿠니로 즉시사출된다. 정말 일본스런 병기다. 뭐 여기까진 자돌폭뢰가 존나 유명하기도 하고 나무위키에만도 쳐봐도 나오는 내용이다. 근데 잘 안 알려진, 존나 스케일이 큰 에피소드가 하나 더 있다. 자돌폭뢰가 가끔 가다 로또샷 터져서 무적으로 보였던 양키 탱크를 잡는 모습을 보자 눈이 돌아간 윗대가리들이 어마어마한 계획을 내놨다. 탱크도 잡는데 항공모함이라고 못 잡겠냐? 이 미친 놈들이 존나 큰 성형작약탄을 만들어서 항모에 꼬라박기로 한 것이다. 다들 알겠지만 일본은 열심히 카미카제로 양키 항공모함에 꼬라박고 있었지만 짤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효과는 별로 없었다. 온몸을 떡장으로 두른 항공모함에 쥐톨만한 비행기로 꼬라박아봤자 항공모함이 입는 피해는 페인트칠을 다시해야 하는 정도가 대부분이었음 왜냐면 비행기는 가볍고 가벼운 놈이 전속력으로 꼬라박아봐야 관통력엔 한계가 있으니까 근데 나치들이 보내준 신통방통한 관통력을 자랑하는 성형작약탄을 보고 이거라면 항모에 빵꾸내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한 병신들의 폭주가 시작된 것이다 근데 육지에서라면야 불쌍한 일본인 하나 골라서 성형작약탄 들고 꼬라박으라고 할 수 있지만 바다에서는 어떻게 할 거 같음 당연히 카미카제죠 시바 보통 비행기도 아니고 존나 큰 폭격기를 통째로 개조해서 비행기 자체를 성형작약탄으로 만들어버렸다. 저기 등짝에 동그랗게 튀어나온 부분 보이냐? 저게 통째로 성형작약탄임. 이게 자랑스런 대일본제국의 일격필살항모격침병기 '벗꽃탄'이었다 물론 무인비행기는 당연히 아니다. 안에는 이 존나 큰 빅-성형작약탄을 항공모함까지 배달하는 불쌍한 파일럿이 들어있다. 이 새끼들 자폭 집착은 진짜 답이 없다. 이거 몇 대만 있으면 양키 함대는 모조리 용궁행 게이바로 보낼 수 있다며 득의양양하기 시작한 일본이었지만 이따위 곱추 비행기로 항모를 격침시킬 수 있는게 말이되냐며 상식적인 딴지를 건 사람도 있었음. 그래서 이 굉장하신 자폭무기가 항모를 한 방에 격침할 수 있다면서 쇼를 보여주기로 한다. 물론 실험목적이니까 미군이 아니라 지들 물건을 상대로 쇼를 해야 했음. 그래서 이 븅신들은 안 그래도 배 부족해서 난리인 주제에 항모 한 척을 통째로 벚꽃탄 실험용도로 날려버린다. 진짜로.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자폭무기 실험한답시고 지들 항모를 날려버렸다고. 뭐 일단 저렇게 존나 크게 만든 폭탄을 꼬라박았으니 일단 침몰하긴 했고, 일본 친구들은 득의양양하게 웃으며 이 물건의 양산에 들어갔음. 그리하여 1945년, 항복이 임박한 일본인들의 절박한 기원을 담아 제작된 벚꽃탄들이 일제히 양키 항공모함을 목표로 날아오름 그리고 전부 가던 도중에 추락해서 행방불명됨 이 새끼 생긴 꼬라지 봐라 등짝에 저런 종양을 달고 멀쩡히 비행할 수 있겠냐 결국 항모 한 척을 꽁으로 날려먹고 수십대의 폭격기를 자폭무기로 개장해서 얻은 전과는 0였다 참으로 일본스런 결과였다. 찰떡같은 기술력을 전해줘도 개떡같이 알아먹는 놈들한텐 아무 의미가 없어요.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존나 웃긴 반전이 있는데 이거 일본 육군에서 개발한 무기다. 해군이 아니라.  [출처 - 소녀전선2 마이너갤러리 고질라맛스키틀즈]
히틀러의 비밀병기가 된 원시 OMR카드
18세기 말 미국 당시 미국은 급격히 늘어나는 사람들로 인해 골머리를 썩히고 있었다. 나라에 몇 명이 살고 있는지 조사해야 하는데 엄청난 이민 열풍으로 온 세상의 사람들이 물밀듯이 밀려 들어오니까 답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정부로부터 이 이야기를 들은 미국 인구 조사국의 반응은 매우 난감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의 조사 방법은 집마다 찾아가서 펜이랑 종이를 들고 머리 수를 센 다음 전국의 종이를 모아 합계를 계산하는 방식으로 1년에만 100만이 넘는 사람들이 이주를 하는 판국에  인구조사를 하더라도 늘어나는 인구로 인해 결과는 부정확해지고 만들면 또 새로 만들어야 되는 매우 비효울적인 일이었다. 인구조사국은 자기들이 직접 수를 세는 대신 공모전을 열어서 제일 빠르게 인구를 조사하는 사람에게 거액의 상금을 주기로 결정하기로 한다. 그리고 이 공모전을 유심히 보던 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통계학자이자 발명가였던 허만 홀러리스였다. 홀러리스는 일정한 크기의 종이에 조사할 항목인 나이나 성별을 적고 규칙적으로 구멍을 뚫어서 이 구멍의 위치로 정보를 확인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이것이 바로 천공카드 시스템이었다. 순식간에 수 많은 정보가 처리되는 천공카드 시스템을 바탕으로 인구조사가 시작되자 이전까진 작성 하는 데만 7년이 걸린다는 인구조사는 단 6주만에 끝나게 됐다. 신세계를 경험한 인구 조사국은 홀러리스에게 만장일치로 상금을 수여했고 홀러리스는 상금을 바탕으로 이 천공카드를 읽는 기계에 특허를 내고 1896년에 회사를 차려 천공카드를 관공서에 팔며 아주 막대한 돈을 벌게 됐다. 그리고 이 회사는 합병과 인수를 거쳐 이후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국제 사무기기 회사'로 이름이 바뀌게 된다. 바로 'IBM'으로 말이다. IBM이 천공카드 사업을 전세계로 확장하며 승승장구 하고 있던 순간 이것을 매우 유심히 보던 한 인물이 있었다. 독일의 지도자 아돌프 히틀러였다. 당시 히틀러의 지시하에 이루어진 유태인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기 전 독일의 지도부는 홀러리스의 천공 카드시스템을 주목하고 있었는데 단지 간단하게 숫자를 세는 기계가 아니라 특정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관리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리고 곧 이것을 자신들의 엄청나고도 무시무시한 계획에 사용하기로 한다. 1939년 인구조사를 위탁받은 IBM의 독일 지사인 데호마그는 무려 75만명에 달하는 인구조사원들을 고용한 후 독일 전역에 퍼져 매우 특정한 사람들의 데이터 목록을 하나 둘 모으기 시작했다. 이들이 모은 것은 바로 집시 유색인종 공산주의자 그리고 유태인의 목록이었다. 이 목록들은 1942년 독일이 실시했던 인종청소의 살생부 역활을 톡톡히 해내게 됐고 그들이 점령한 지역 어느 곳 에서나 이 천공카드가 사용됐다. 학대와 처형방법의 규정은 총 16개의 카테고리로 분류됐고 천공카드로 인해 결과적으로 약 20만명의 달하는 사람들이 말 그대로 끔찍한 최후를 맞이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어두운 과거를 뒤로한 채 이후 IBM은 기존의 천공카드 식에서 한단계 업그레이드 OMR 시스템을 개발하게 되어 우리의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해준 이 편리한 천공카드는 어떤 사람이 어떤 목적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희대의 발명이 되었고 희대의 학살도구가 되기도했으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수 없다. [출처 - 개드립]
따발총을 든 소녀
이 사진은 도대체 누구인가? 1956년 헝가리 혁명을 아마 알고 계실 텐데 당시 11월 초 부다페스트 거리에서 촬영한 반소련 저항군 일원 중 하나이다. 이름은 Szeles Erika Kornélia, 셀레시 에리커 코르넬리어(참조 1)이다. (헝가리어는 성씨가 앞에 오는 거 알고 계실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진은 어디에 실렸는가? 덴마크의 오래된 주간지, Billed Bladet의 1956년 11월 13일자로 나와 있었다고 한다. 촬영자는 Vagn Hansen. 문제가 있다. 잡지가 나온 11월 13일은 이미 셀레시 에리커가 목 뒤로 총을 맞아 사망한 이후였다(참조 2). 일단 셀레시 얘기부터 해 보자. 그녀는 1941년생이고 유태계 가족에서 태어났었다. 그래서 잠시 세이브더칠드런 덴마크 지부로 보내서 살려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덴마크어를 좀 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당연히(?) 강제수용소에 끌려가 사망했고 어머니가 무남독녀로 홀로 키워낸다. 당시 사정에 맞게 크고 나서는 고등학교까지 진학하지는 않고 조리학교에 들어간 다음, 한 호텔에 보조 요리사가 된다. 그당시 서너살 위의 한 오빠와 사귀면서 사상전향(?)이 일어난다. 유태계 집안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어머니는 상당한 공산주의자였다고 한다. 그러나 딸인 에리커는 급격한 반공주의로 바뀐다. 그래서 당시 소련의 억압에 대해 반항했고 급기야는 반항군에도 들어간 것. 어차피 헝가리군을 당시 소련이 해체시켰기에 반항군은 군 출신도 많았다. 이때가 10대 중반, 헝가리 혁명의 시기인 1956년이다. 다르게 보면 스탈린 사망 이후, 헝가리가 간이 커졌다고 볼 수도 있을 텐데, 아직 너무나 어린 나이인 15세여서 반항군 내에서는 에리커가 전투병을 하기에는 너무 어리지 않나 하는 의견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간호 보조로 역할을 바꾼다. 바로 그당시 Vagn Hansen을 포함한 덴마크 저널리스트들이 멋대로(외교관 차량을 위조(!)해서 들어갔다, 참조 3) 헝가리에 들어갔었고, 아직 편제가 바뀌기 직전의 에리커를 촬영했던 것이다. 그러나 에리커는 수 일 후, 적십자 마크를 달고 쓰러진 반항군을 구하러 다니다가 소련군의 총에 맞아 사망한다. 11월 7일이었다. -------------- 1956년 당시 에리커의 사진이 나온 잡지를 본 Henning Schultz는 이 소녀에 대한 동경과 사랑의 감정이 휘몰아쳤다. 도대체 이 따발총을 들고 다부진 표정을 한 소녀는 누구일까? 문제는 잡지 사진에 이름만 덩그러니 있다는 점이었다(참조 4). 과연 그 때 살아있기는 했을까? (답: 사망했다.) 에리커 사진에 대한 집념을 갖고 있던 그는 지리학자로서 은퇴한 이후인 2000년대 후반부터 그녀를 찾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도 그 잡지를 여러 권 갖고 있던 그에게 있어 그녀는 일종의, 헝가리 혁명의 상징(참조 4)이었다. 슐츠는 헝가리 언론사와 정부, 박물관 등 여러 군데에 의뢰를 했고 그제서야 초등학교 동창, 포크댄스 그룹의 일원 등등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때에서야 자세한 신원을 알 수 있었다(참조 5). 2008년, 슐츠의 도움을 통해 사진 촬영가였던 Vagn Hansen은 공식적으로 이 사진을 포함한 헝가리 혁명 당시 촬영한 사진들을 헝가리 역사 박물관 측에 기증한다(참조 6). 그리고 그녀는 정말로 헝가리 혁명의 상징 중 하나가 됐다. -------------- 참조 1. 한국에도 알려져 있는 인물이기는 하다. 자유를 향한 '혁명의 순간' 사진으로 남았다(2016년 11월 7일): http://naver.me/FcUMXfsQ 2. The heroes of 1956: The girl, who was already dead when her photo went around the world (2016년 10월 17일): https://dailynewshungary.com/heroes-1956-girl-already-dead-photo-went-around-world/ 3. »Pressefotograf var det værste. Jeg ville være fin portrætfotograf på femte sal”(2005년 5월 25일): https://journalisten.dk/pressefotograf-var-det-vaerste-jeg-ville-vaere-fin-portraetfotograf-pa-femte-sal/ 4. "Vörös hajú, szeplős, zsidó származású kislány volt" - Rábukkantunk a forradalom titokzatos jelképére!(2008년 11월 2일): https://mazsihisz.hu/hirek-a-zsido-vilagbol/archiv/voros-haju-szeplos-zsido-szarmazasu-kislany-volt-rabukkantunk-a-forradalom-titokzatos-jelkepere 5. https://hu.wikipedia.org/wiki/Szeles_Erika_Korn%C3%A9lia 6. AJÁNDÉK DÁNIÁBÓL(2008년 3월호): http://fotomuveszet.net/korabbi_szamok/200803/ajandek_daniabol
영화 '기생충'을 언급한 할리우드 스타들
배우 알 파치노 (출처: USA Today 기자 패트릭 라이언 트위터) "나를 흔들어놓은, 기생충이라는 영화를 봤다. 세상에, 강렬한 영화였다." 배우 조엘 에저튼 (출처: 제임스 코든쇼) "저는 한국영화에 중독됐어요. 이 영화를 홍보하러 나온 건 아닌데요, 제가 안 나오니깐요. 봉감독의 기생충을 보세요. 한국은 영화도 문화도 음식도 끝내줘요. 한국으로 이사할까봐요." 배우 크리스 락 (출처: 본인 인스타그램) "이 영화는 너무나 훌륭하다. 당신에게 말을 걸 뿐만 아니라, 당신이 평생 품고 있었던 질문을 답해주는 예술작품을 만난 적 있는가. 문제는 트럼프도 아니고 오존도 아니다. 안주하는 게 독이다. 이 영화를 꼭 봐라. 기생충. 와우." 배우 토니 콜레트 (출처: 본인 인스타그램) "어제 기생충을 봤다. 내 마음을 흔들었다. 그 어떤 영화와도 다르다. 완전히 창의적이고 천재적이다. 여기저기서 상을 받는 게 놀랍지 않다. 봉준호, 브라보." 배우 조이 카잔 (출처: 본인 트위터) "폴*이 나 빼고 기생충을 보고 왔는데 이혼하기 위해서라도 결혼해야할까." "정확히 말하면 폴은 봉감독과 친구라서 시사회에 초대됐고 우리는 베이비시터가 없었거든. 뭐 아무튼 변호사를 알아봐야겠네." *폴 다노: 조이 카잔의 파트너 배우 레인 윌슨 (출처: 본인 트위터) "기생충을 봐라. 입이 벌어지는 영화다. 희극/비극/액션/호러/사회 비판이 영화 한 편에 담겨있다." 뮤지션 프랭크 오션 (출처: Blonded Radio) "기생충을 보세요." [버드맨] 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출처: 칸 영화제 기자회견) "기생충은 굉장히 특별한 경험이었다. 심사위원 모두를 사로잡았다. 이 영화는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여러 장르 속으로 관객들을 데려간다. 한국을 담은 영화지만 전지구적으로 긴급하고, 우리 모두의 삶에 연관이 있는 무언가를 효과적으로 이야기한다." [빅 쇼트] 감독 아담 맥케이 (출처: 본인 트위터) "오늘 기생충을 봤다. 웃기고, 충격적이고, 기념비적이다. 이 영화는 즉시 자본주의라는 종교에 관한 가장 훌륭한 영화적인 선언 중 하나가 되었다." [유전] 감독 아리 애스터 (출처: 본인 트위터) "필름 코멘트에 기생충에 관해 기고했는데, 아무리 말해도 과함이 없다. 기생충은 놀랍다. 장르 스토리텔링에 있어 봉준호는 독보적이다. 아찔할 정도로 효율적이고, 완전히 미쳤고, 대단히 슬픈 영화." [화씨 9/11] 감독 마이클 무어 (출처: 본인 페이스북) "오늘 볼 영화를 찾고 있어? 내 추천작: 조조 래빗, 기생충, 아이리시맨, 허니 보이, 그리고 물론 조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감독 제임스 건 (출처: 본인 인스타그램) "봉준호는 내가 제일 존경하는 감독 중 1명이다. 마더는 나의 21세기 최고의 영화 중 하나고, 괴물도 바로 그 뒤에 있으며, 기생충은 분명 2019년 최고의 영화다. 슬프고 웃기고 무섭고 아름답다. 가끔은 24 프레임 하나만으로도 그렇다." [베이비 드라이버] 감독 에드가 라이트 (출처: 본인 트위터) "봉준호는 지난 20년간 다양한 장르의 훌륭한 시네마를 만들었다.  그가 기생충으로 이렇게 거대하게 (게다가 홈구장에서) 인정받는 걸 보니 만족스럽다. 야만스럽게 오락적인 스릴러. 뼈를 칠 정도로 웃기고 당신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든다. 다시 볼 날이 기다려진다." [닥터 슬립] 감독 마이크 플래너건(출처: 본인 트위터) "기생충은 어메이징하다. 올해 영화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 진정으로 걸작이다." [닥터 스트레인지] 감독 스콧 데릭슨 (출처: 본인 트위터) "올해 최고의 영화 - 기생충이 끝나고 16살 아들이 했던 말" [더 페어웰] 감독 룰루 왕 (출처: 본인 트위터) "젠장. 기생충. 와우 와우 와우. 전적으로 천재적이다. 오락적이고, 사색적이고, 의외로 정서를 자극하는, 너무나 많은 것을 담은 영화. 거장의 역작." [허슬러] 감독 로렌 스카파리아 (출처: 본인 트위터) "기생충기생충기생충기생충기생충기생충기생충기생충기생충기생충기생충기생충기생충기생충기생충기생충기생충기생충기생충기생충기생충기생충기생충기생충기생충기생충기생충기생충기생충기생충기생충기생충기생충" 블럼하우스 제작자 제이슨 블럼 (출처: 본인 트위터) "어제 기생충을 봤다. 봉감독은 거장이다." 디즈니 전 CEO 마이클 아이스너 (출처: 본인 트위터) "기생충을 봤다. 올해 최고의 외국어영화이자, 올해 최고의 영화 중 하나가 될 한국영화이다. 훌륭한 깜짝 영화." https://extmovie.com/movietalk/51536465 미스터 봉!!!!!!!!!!!!!!! 당신 정말!!!!!!!!!!!!!!!
트위터로 본 현재 영국 상황 #부들부들
ㅠㅠㅠㅠㅠ 지금 영국에 계시는 빙글러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 어때여 분위기는? 직접 가볼수가 없으니 트위터를 통해 본 분위기 한번 전해 봅니다 ㅋ 저 사실 읽다가 감정이입해서 좀 서러워졌어여 ㅠㅠㅠㅠㅠㅠㅠㅠ 어제 백인 남자가 나보고 외국인이라고 큰소리로 외쳤어. 저런 가벼운 인종차별은 런던 살면서 처음이야. 고맙다 브렉시트. 78%가 무슬림인 학교에 도착했어. 백인남자가 지나가는 가족들한테 승리사인을 하고있네. 이게 우리가 합법화한 인종차별이야 내딸이 그러는데 오늘 누군가가 학교 화장실벽에 ○○는 루마니아로 돌아가라라고 써놨대.. 134번 버스에서 늙은 여자가 젊은 폴란드 여자와 그녀의 아기에게 버스에서 내려서 짐이나 싸라고 즐겁게 말했어. 끔찍해 (인도계 영국 정치인) 시마 말호트라가 말하길 그녀의 선거구에서 아이들이 인종차별적 언어폭력을 당하기 쉽대. 길거리에서 어른들에게 말이야.. 브렉시트의 결과야 blockely에서 남자들이 무슬림 여성에게 '나가 나가 나가'하고 외쳤다. Enfield 은행에 있던 여자가 '여긴 잉글랜드고 우린 백인이야. 우리나라에서 나가라고!'라고 외쳤고. 어제 내 파트너가 폴란드출신 커피샵 종업원에게 사람들이 '너 이제 집에 간다'고 조롱하는걸 목격했대 오늘 저녁에 birmingham에서 딸이 퇴근하는데 남자애들 무리가 무슬림소녀를 코너에 몰고 "나가 우린 떠나라고 투표했어"라고 소리치는걸 봤대. 끔찍한 시간들이야.. 영국 : 미대륙을 식민화하고 수천명의 원주민들을 학살함. 아시아를 침략함 아프리카를 침략함 90%의 나라를 침략하고 그 과정에서 수백만명의 원주민들을 학살함 그리고 현재 영국 : 니네 나라로 돌아가 외국인들아! 이건 우리 나라야!! 아 진짜 중간에 좀 울컥해서 울뻔 진짜 슬프다... 뭐 EU 있으면서 많이 답답하기도 했겠지만 그래서 이런 일이 일어난거지만 그렇다고 해서 몇세대동안 영국인이었던 사람들까지 이렇게 차별 받는건 또 괜히 서럽네여 또 영국의 젊은 사람들 입장도 생각하면 씁쓸.. 삶의 터전이 엄청나게 좁아져 버렸잖아여 유럽이라면 어디든 가서 살 수 있고 결혼할 수 있고 친구만들기도 쉽고 학교 다니기도 일하기도... EU라면 다 쉬운거였는데 청년들의 터전이 줄어 버렸네여 영국 페친이 그런 말 하는데 진짜 그렇더라구여... 진짜 우주님이 올려주신 톡처럼 노엘갤러거가 맞는 말 했네여 ㅋ 그런거 하라고 뽑아서 돈주는건데 x나 어려운건 맨날 우리한테 시키고 ㅋㅋㅋ 우리끼리 싸우게 하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국회의원들 다 똑같나봐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고나니 또 슬퍼진다) 영국에 계신 분들 부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무탈하시길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현재 홍콩을 바라본 한 대학생의 외침
길기는 하지만 너무 명문이라 생각되어서 모두 가져옵니다 마땅히 시간이 나지 않는 분들은 클립해서 나중에 봐도 좋을 듯 합니다 연대숲 #66147번째 외침: 콘스탄티노폴리스 1453, 광주 1980, 그리고 홍콩 2019. 인간은 현명하다. 그래서 가망이 있는 싸움인지 아닌지를 쉽게 안다. 인간은 어리석다. 그래서 가망이 없는 싸움임을 알면서도 죽으러 나간다. 인간은 고결하다. 그래서 가망이 없는 싸움에서 결국 승리한다.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 한때 지중해를 빙 둘러쌌던 보편제국 로마의 마지막 조각, 그리스 끝자락의 ‘그리스도를 믿는 콘스탄티누스의 도시’는 이제 십만 명이 넘는 투르크의 포위군과 거대한 대포에 둘러싸였다. 이에 맞선 방어군은 7000명 미만. 교황청과 베네치아가 보내 준 극소수의 병력과 한 줌의 의용군을 제외하면, 서유럽의 수많은 나라 중 단 하나도 도시를 구하러 오지 않았다. 살고 싶으면 무기를 버리고 항복해야 했다. 50여일의 처절한 공방전 후 다가온 투르크군의 총공격 전날 밤, 그리스 혈통의 마지막 로마인들은 살기 위해 성문을 열고 메카를 향해 절하는 대신 하기아 소피아의 그리스도 모자이크 아래에서 밤새 기도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음을 그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다음 날 도시는 함락되었고 시민들은 자신들의 자유와 동방 정교회 신앙을 위해 가망 없는 싸움에서 싸우다 죽었다. 그렇게 이천년의 로마가 끝났다. 1980년, 광주. 도시는 계엄군의 탱크와 장갑차에 둘러싸였다. 학생들과 평범한 아저씨 아줌마들로 구성되었던 시민군의 무장은 경찰서 무기고에서 얻은 소총 수준. 도시의 모든 통신시설은 차단되었고, 당시 평시작전권까지 가지고 있던 주한미군은 계엄군의 병력이동을 알면서도 저지하지 않았다. 그 어떤 서방 선진국들도 적극적으로 개도국 한국의 한 지방도시에 대한 군사작전에 개입하지 않았고, 도시 밖에는 빨갱이들과 북괴의 특수부대가 도시를 점령했다는 거짓 뉴스가 살포된다. 이런 사황에서 계엄군과 맞서면 죽을 것이란 것은 시민군 모두가 알고 있었다. 특히 군필자들은 더 확실히 다가오는 죽음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탱크의 궤도 소리가 들려오던 전남도청의 마지막 밤, 시민군들은 도망치는 대신 애국가를 불렀다. 민간인들이 공수부대를 당해낼 수 있을 턱이 없었으므로, 광주시민들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가망 없는 싸움에서 공화국 대한민국의 주권자로서 저항권을 행사하다 죽었다. 그렇게 1980년 서울의 봄은 광주의 피바다로 끝이 났다. 2019년, 홍콩. 손바닥만한 도시는 인민해방군 특수부대에게 둘러싸였다. 콘스탄티노폴리스와 광주와는 달리, 이번에는 도시 밖의 사람들도 스마트폰으로 도시의 소식을 듣는다. 한 남자 대학생이 건물에서 떨어져 죽었으며 열여섯 살 소녀가 경찰들에게 강간당했고 한 여자 중학생은 바다에서 알몸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2019년’에 들려온다. 시위대는 진압군에게 양궁으로 화살을 쏘고, 진압군은 시위대에게 총으로 실탄을 쏜다. 10대와 20대가 주축을 이루는 시위대는 이제 각 대학의 캠퍼스에 갇혔고, 마오쩌둥 꿈나무 시진핑은 전 세계에 강경진압도 불사하겠다고 큰소리를 친다. 영중공동선언과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정으로 보장되는 “주권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치권은 홍콩특별행정구가 각각 행사한다”는 일국양제의 약속은 시진핑의 말 한마디에 휴지조각이 되었다. 보아하니 지난 학기 국제법 교과서에 쓰인 문장은 실로 참되다. “국제법은 법이 아니다.” 이처럼 베이징의 결단은 명징하다. 홍콩에서 밀린다면, 타이완에서, 티베트에서, 신장위구르에서, 광시좡족 자치구에서 똑같이 밀릴 것이고 그 순간 중화인민공화국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들 것이다. 시진핑에게는 1989년 천안문을 소규모로 재현하는 한이 있더라도, 국제사회의 전방위적 제재를 받는 한이 있더라도 홍콩 시위를 진압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물론 그는 탱크를 구룡반도로 돌진시킬 정도로 멍청한 자가 아니므로, 유혈사태를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시위를 분쇄하려 하겠지만. 중국 본토를 제외한 전 세계가 홍콩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지만, 나설 수 있는 그 누구도 감히 나서지 않는다. 워싱턴의 천자는 민주당의 탄핵 카드와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빨간불이 켜진 재선 상황에서 중국과 국력을 기울여야 할 정도의 극단적인 갈등을 빚을 여력이 없다. 중영공동선언에 의해 홍콩의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때 개입할 의무가 있는 영국 총리는 브렉시트 문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외무장관 시절 보여주던 보리스의 현란한 막말실력은 감히 베이징을 향하지 않는다. 유럽과 이혼중인 이빨 빠진 사자 대영제국은 이제 자신의 손을 떠난 도시 하나 때문에 굴기하는 중국과 맞설 의지도 힘도 없다. 모스크바의 차르는 그의 신민들이 홍콩을 따라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가 홍콩을 위해 힘을 써 줄 이유 같은 건 없다. 예배당과 성당에 경찰이 난입하여 시위대를 끌어내는 상황 속에서, 즉위 이래 평화를 위해 싸워온 로마의 프란치스코도 이번에는 중국을 소리높여 강하게 비난하지 못한다. 수십 년의 갈등 끝에 중국과 바티칸의 주교서임권 정교협약 물밑협상이 막바지에 다다라 있는 상황에서, 그 어떤 전임자들보다 미디어와 도덕성이라는 소프트파워를 잘 다뤄온 교황이 적극적으로 홍콩 편을 든다면, 안 그래도 그리스도교를 체제의 위험분자로 인식해 탄압하는 중국 정부에 의해 본토의 수천만 가톨릭과 개신교 신자들은 지금보다 더한 극도의 박해에 직면할 테니까 말이다. 1980년 광주를 두 눈으로 지켜본 ‘인권변호사’ 출신 대한민국의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2016년 사드배치로 인한 경제보복의 기억이 생생한 상황에서, 한국에게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도시 홍콩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거대한 중국과 맞서는 것은 정치적으로나 외교적으로나 자살행위일 테니까. 그를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홍콩에 대한 그의 침묵을 도덕적 이유가 아니라 현실정치적 이유로 욕하기는 어렵다. 여당도 제 1 야당도 제 2 야당도 이 지점에 있어서는 꿀 먹은 벙어리일 수밖에. 이렇게 전 세계가 보고 있지만, 홍콩의 시위대를 위해 중국과 맞서 줄 세력은 없다. 시진핑은 시위대를 탱크로 밀어버리지는 못하겠지만 이미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실탄사격 개시 명령을 내려놓았다. 그렇기에, 너무나도 슬프고 두렵고 안타깝지만 시위대는 아마 이 싸움에서 이기기 힘들 것이다. 며칠 안으로 홍콩 각 대학의 마지막 저항은 진압되고, 추가적인 사망자가 나올 것이며, 중국은 언제나 그랬듯이 적당히 유화적인 조치와 시위대 사면이라는 당근을 통해 세계에 변명하리라. 아마 홍콩에서 지금 시위하는 10대 소녀 소년들과 20대 남녀 대학생들도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거대한 괴물 중화인민공화국을, 자신들이 ‘지금’이길 수는 없을 것이라고. 그리고 민주주의를 공기처럼 누리는 우리도 그들만큼 잘 알고 있다. 홍콩의 우리 또래, 우리 동생 또래들이 왜 가망이 없는 싸움임을 알면서도 목숨을 걸고 거리로 나서고 캠퍼스에서 농성하는지를. 그렇다면, 홍콩의 시위는 ‘질 수 밖에 없는 싸움’일까? ‘고결한 희생’ 일 뿐일까? 결국 홍콩의 민주주의는 인민해방군의 군화발에 무너질까?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이스탄불로 바뀌어, 영원히 터키의 수중에 남았다. 하지만 함락으로부터 40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후에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기억하는 그리스의 동방 정교회 신도들은 ‘자유가 아닌 죽음을!’을 외치며 가슴에 도시의 회복을 품고 독립운동을 벌여 투르크와 싸웠다. 이번에는 바이런을 필두로 유럽의 열강들이 달려왔고, 그리스인들은 콘스탄티노폴리스는 되찾지 못했으나 자유는 되찾았다. 아직도 그리스에서는 이스탄불을 콘스탄티노폴리라고 부르며, 동방 정교회의 세계총대주교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라고 불린다. 콘스탄티노폴리스는, 그렇게 이름 그대로 그리스인들에게 영원히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의 도시, 그들의 마음 속 도시로 남았다. 광주 민주화 운동은 학살극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그 누구도 1980년을 잊지 않았다. 그 후 7년 동안, 수많은 대학생들은 독재정권과 지속적으로 가망 없어 보이는 싸움을 했다. 대공분실에서 코로 설렁탕을 마셔야 했고, 최루탄 연기를 마셔야 했으며, 고문으로 장애를 얻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1980년 광주에서의 싸움은 전남도청의 피바다로 끝난 것이 아니라 1987년 백양로의 이한열의 피로 끝났다. 그 피로써 공화국은 다시 민주주의와 자유를 얻었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광주는 빛고을이라는 이름 그대로, 우리에게 자유의 빛을 다시 밝혀 주었다. 7. 나는 하느님을 믿는 만큼이나 기적을 믿는다. 그래서 홍콩 시위대가 승리하기를, 더 이상 홍콩의 누구도 피를 흘리지 않기를, 중화인민공화국이 무력진압 대신 타협과 협상을 선택하기를, 그런 기적이 일어나기를 정말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2019년의 홍콩 시위가 진압당한다고 할지라도, 소녀들과 소년들, 남녀 대학생들이 인민해방군의 군화에 짓밟히고 체포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끝은 아닐 것이다. 콘스탄티노폴리스가 그랬고 광주가 그랬듯이, 그것이 홍콩의 끝은 아닐 것이다. 만약 중국이 홍콩을 짓밟는다면, 온 세상이 ‘중화인민공화국’이 빛나는 중화문명의 계승자도, 인민을 위한 나라도, 공동선을 추구하는 공화국도 아닌 시황제의 진나라의 21세기 복제판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고, 중국 대륙에서 중국 공산당에 의심을 품는 모두의 마음 속에 홍콩이 흘린 피와 눈물이 영원이 기억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인들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기억했고, 한국인들이 광주를 기억했듯. 그리고 그 기억이 결국 절망적인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음을 우리는 보았다. 그렇게 2019년의 홍콩에서 벌어지는 이 절망적인 싸움을 통해, 온 세상은 ‘빛나는 중화 문명’의 계승자들이 바다를 등지고 자유와 민주를 위해 싸울 때 얼마나 고결한 향기를 뿜는지를 영원히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시진핑이 아니라 마오쩌둥이 살아돌아와도, 폭력과 살육의 악취로 그 향기를 가리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홍콩 사람들도 결국 가망 없는 싸움에서 승리할 것이다. 8. 홍콩은 향항, 향기로운 항구라는 뜻이다. ------------------------------------------------------------------------------ 中华人民共和国宪法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第三十三条  ....... 国家尊重和保障人权 제33조 ........국가는 인권을 존중시하고 보장한다. 第三十五条 中华人民共和国公民有言论、出版、集会、结社、游行、示威的自由。 제35조 중화인민공화국의 공민은 언론, 출판, 집합, 결사, 행진, 시위의 자유를 가진다. 第三十七条 中华人民共和国公民的人身自由不受侵犯。任何公民,非经人民检察院批准或者决定或者人民法院决定,并由公安机关执行,不受逮捕。禁止非法拘禁和以其他方法非法剥夺或者限制公民的人身自由,禁止非法搜查公民的身体。 제37조 중화인민공화국의 공민의 인신의 자유는 침해받지 아니한다. 어떠한 공민도 인민검찰원의 승인이나 결정 또는 인민법원의 결정을 거친 후 공안기관의 집행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되지 아니한다. 불법구금 및 기타 방법으로 공민의 인신자유를 불법으로 박탈 또는 제한하는 것을 금지하며 공민의 신체를 불법으로 수색하는 것을 금지한다. 第三十八条 中华人民共和国公民的人格尊严不受侵犯。禁止用任何方法对公民进行侮辱、诽谤和诬告陷害。 제38조 중화인민공화국의 공민은 인격의 존엄성을 침해받지 아니한다.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공민에 대하여 모욕, 비방 및 무고, 모함하는 것을 금지한다.
4년만에...
4년전 그러니까 2015년 가을 친한 동생들과 뉴욕으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다시 같은 멤버가 4년만에 동유럽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뱅기표를 끊고나니 아직은 멀었지만 살짝 여행가는 느낌이... 체코에서 렌터카를 이용해 오스트리아까지 여행하기로해서 렌터카도 알아보고... 결국은 스코다로 낙점... 차량 픽업은 프라하에서 반납은 빈 역에서 하기로... 첫날 숙소는 요기로... 폴란드 항공으로 부다페스트로 들어가서 담날 우라질 라이언 항공타고 체코로 넘어가서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하기로 합니다. 심심할때마다 여행갈 도시 날씨를 검색해봅니다 ㅋ 저희가 매진시킨 체코의 고성 호텔... 만족스러웠습니다. 부다페스트 첫날 숙소는 레트로 아파트로 예약했습니다. 넘 마음에 들었었던 체코 첫숙소... 구시가지 광장 근처였는데 넘 좋았어요. 근데 하루만 머무른건 안비밀 ㅋ ㅋ 오늘도 궁금해서... 잘츠부르크에 가는데 황희찬을 안보고 올수가... 근데 예매 안하고 직접가서 현장에서 표끊고 들어갔어요. 미리 희찬이 경기도 수시로 봐줬답니다... 서울 여행가서도 날씨 검색 ㅋ 국제면허증 금방 발급해주더라구요... 이제 그만 알아보자 지겹다 ㅋ 일단 유로만 좀 환전했어요... 아, 드디어 가는건가... 일단 김포공항으로... 김포에서 인천까지 리무진버스 타고 갈랬는데 헐 마감이 되버렸네요. 그래서 공항쟈철타고 이동... 인천공항 밤늦은 시각이라 넘 조용하네요... 로밍하니깐 컵라면을... 지루해서 맥주 한잔했어요... 와우 마지막으로 포카 당첨... 어, 전광판에 드디어 떴다... 자, 이제 부다페스트로 떠나봅니다... 기내식 두번 먹고나니 어느새 부다페스트에... 어느새라고 했지만 넘 지겨웠어요 ㅋㅋㅋ... 아휴,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