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연방 지도청(Swisstopo)은 역사가 거의 200년 된 제일 오래된 스위스 연방관청이다. 곧 스위스 내 가톨릭 주(Sonderbund, 참조 1)의 반란을 진압하게 될(!) 스위스연방의 기욤 앙리 뒤푸르(Guillaume Henri Dufour) 장군은 군사용으로 보다 더 정확한 지도가 있었으면 했었다. 그래서 세워진(1838) 곳이다. 여담이지만 그는 후에 앙뤼 뒤낭과 함께 적십자를 만드는 주요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정확하기로 소문난 스위스 지도청의 역사가 아니다. 스위스 연방 지도청의 “장난질”이다.
물론 지도를 만들 때, 군사 시설처럼 공개하기 어려운 곳은 그냥 일반적인 창고 건물로 만든다든지, 아니면 그냥 허허들판으로 만드는 등의 수정사항이 있기는 하다. 특히 냉전 당시 그런 식으로 지도를 제작했다고 하는데, 스위스 정부 소속 외청에서 만드는 지도에 거미나 사람 얼굴, 벌거벗은 여자, 등산객, 물고기, 마멋(marmot)이 들어가 있다고 하면 믿으시겠는가?
물론 지도 안에서 거의 월리를 찾아라 급이며, 월리보다 찾기가 더 어렵다. 얼핏 보면 지도의 등고선과 다를바 없기 때문에 장난삼아 그려 넣은지 한참 후에 발견되곤 한다. 즉, 실제로 그런 장난을 친 제작자가 은퇴한 다음에 발견되기 일쑤이기 때문에 공개적인 질책 혹은 해고는 없는 모양이다. 그리고 발견된 이후에는, 다음 버전의 공식 지도에서 사라진다.
그래서 제일 최근에 발견된 장난이 바로 마멋이었다. 짤방에서 보시듯 스위스 알프스에 숨어있다가 2016년, 한 취리히 공대 교수가 발견하여 소셜미디어에 공개하면서 드러났었고 원래는 지도청 내부에서만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지도청 대변인의 말에 따르면, “이들 지도에는 창의력이 필요 없습니다”라고 한다. 다행히 지도청 웹사이트에서 보실 수 있다(참조 2).
제일 먼저 알려진 사례는 “거미”였다. 1981년에 제작된 지도에서, Eiger 산 정상에 웬 거미가 놓여 있기 때문이었다(참조 3). 이 거미를 그려넣은 장본인은 알려져 있다(참조 4). Othmar Wyss라는 제작자였는데, 거미는 7년 후의 버전에서 사라졌다.
1997년 지도에서 발견된 등산객을 보자(참조 5). 사실 이 등산객이 들어간 부분은 스위스 땅이 아니라 인접한 이탈리아 지역인데, 이탈리아로부터 협조를 많이 받지 못 하여 정보가 부족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여백에 등산객을 그려넣은 것이다.
1980년대 초 지도에 나타난 물고기도 뺄 수 없겠다(참조 6). 이 장난은 누가(Werner Leuenberger) 했는지 알려져 있다. 호수에는 물고기가 있어야 한다는 논리였는데, 이번에는 프랑스 쪽 지역이었다. 발견된 이후 1989년판 지도에는 사라졌다.
다시 2016년에 발견된(참조 2) 마멋으로 돌아가자면, 이 마멋은 지도청 내의 암석 지대 전문 지도제작자인 Paul Ehrlich이 그렸으며 그는 2011년에 이미 은퇴했었다. 지도청에서 캐물어 보니(참조 4) 지도를 그릴 때 보니까 마멋이 들어가기에 딱 알맞는 장소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연히 지도청은 그에게 지도에다가 또다른 장난을 친 것이 없는지 물어봤다.

그는 수많은(!!) 아이디어를 실험해 봤지만 마멋이 제일 뛰어났다(génial)고만 답했다. 뭔가 또 있다는 뉘앙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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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1. 1845-1847, “특별한 연합”을 의미하는 독일어이다. 불어권 칸톤(Fribourg와 Valais)이 포함되어 있긴 했지만 대체로 독일어권 칸톤들이 참여했다.
4. Les dessins cachés des cartes nationales(2016년 12월 21일): https://www.swisstopo.admin.ch/fr/home/meta/search.detail.news.html/swisstopo-internet/news2016/didyouknow/161221.html
7. 사실 스위스에는 공식적인 그림에 대한 장난질의 전통이 있다. 이를테면 스위스 베른에 있는 국민의회(Conseil National/연방하원)에 1902년부터 걸려있는 루체른 호수 내의 Urnersee를 묘사한 그림을 보자. “연방의 요람(Die Wiege der Eidgenossenschaft)”이라는 제목의 이 그림은 스위스 화가 샤를 지롱(Charles Giron)이 그렸다.
(공유한 기사에서는 그냥 루체른 호수 그림으로, 그리고 1901년에 완성된 것으로 나온다.)
그림 제목을 연방의 요람이라 한 이유는, 그림이 묘사하는 지역이 스위스/헬베티카 연방의 탄생지(Schwyz 및 Rütli)이기 때문인데, 자세히 보시면 왼쪽 암벽 사이에 웬 송어 한 마리가 놓여 있는 모습을 알 수 있다. 국민의회 의사당 개장을 4월 1일에 했기 때문에, 만우절(불어권에서는 만우절을 poisson d’avril이라 하여, 당일 물고기를 등에 몰래 붙이는 풍습이 있다) 농담으로 송어를 그려넣은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 그림을 보시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