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멀스멀 뼈 속까지 추위가 느껴지는 12월, 그래도 연중 어느 때보다 좋은 사람들과 마주하는 행복한 시간들이 많이 있는 까닭에 마음만은 페치카 앞에 앉은 기분이다.
먹는다는 것은 인간의 본능인지라 유사 이래 한 번도 중요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거늘, 특히나 요즘에는 더더욱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을 누구나 느낀다.
그 동안 누적된 인류의 음식문화가 대륙을 마구 넘어 다니는데다가, 그 새로운 경험을 너무나 손쉽게 이미지로 담아놓을 수 있으니 나만 먹던 음식이 저 멀리 있는 다른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는 공감의 이슈로 애용되는듯하다.
요리 관심도 증가, ‘먹방’ 열풍
외계에서 왔을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분자요리, 내 생에도 만날 수 있을까 상상해보는 영화 속 우주인의 캡슐 푸드 등 우리가 만나게 될 근 미래의 먹거리에도 관심이 많다. 단순히 먹는 것을 넘어서 음식을 만드는 일에도 열광하기 시작했고 어떻게 먹는지도 중요해졌다.
facebook이나 instagram, pinterest에서도 음식 관련 포스팅은 단연 인기주제 중 하나가 되었고, 최근 방송에서도 마스터셰프코리아, 한식대첩, 식사를 합시다 등 요리와 관련된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드라마의 소재로도 활용되고 있으며 예능프로그램에서도 ‘먹방’ 코드가 각광을 받는다.
세상에 걱정스러운 일이 많아질수록 인간 본연의 욕구에 더 높은 퀄리티의 반응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본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음식, 그 다양한 매력
입으로만 먹지 않는 것, 배만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음식은 매력적이다. 언제 어느 공간에서, 어떤 옷차림으로, 누구와 함께 먹는지에 따라 맛은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인다. 뿐만 아니라 어떤 테이블에 어떤 담음새를 하고 있는지에 따라서도, 혹은 내 귀에 들리는 사운드에 의해서도 맛이 다르게 느껴진다.
적당히 온기 있는 실내 공간(참고로 필자는 발이 시리면 음식에 집중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저 함께 있기만 해도 좋은 사람들, 기분 좋게 들리는 음악, 주방의 아주 약간은 소란스러운 라이브한 소리, 기대와 설렘을 주는 궁금한 냄새, 보기 좋게, 아니 느낌 있게 담겨져 나온 플레이트, 일단 거기까지라도 이미 맛있다.
오색만족 비빔밥을 정갈하게 담아 내놓는다. 그 어떤 음식에 뒤지지 않을 만큼 아름답다.
식전에 나온 무언가가 소박하지만 만족스럽다면 금상첨화다. 커트러리가 접시에 부딪히는 소리가 적당하고, 한 입 떠 넣었을 때 맛있다고 느꼈다면 그 날의 경험지수는 충만할 수 있다.
모든 감각을 열고 먹는 것에 집중할 때 가장 많이 움직이게 되는 감각기관은 아마도 ‘눈’이 아닐까.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는 우리에게 익숙한 옛 말도 있듯이 눈에 만족스러우면 일단 advantage를 주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음식의 담음새에 대한 고민의 역사가 오래되었다고 하지만, 적어도 우리네 주변에서 만나게 된지는 몇 년 되지 않은 것 같다.
自然스러움의 미학
경양식 집에서 만나던 커다란 접시에 자그마한 함박스테이크, 여백이 부끄러운 듯 어색하게 자리 잡은 파슬리, 접시에 반만 채워져 있던 스프에 그 여백이 익숙하지 않아 당황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너무 예뻐서 못 먹을 것 같은 음식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자신을 구속하는 것이 많아지고, 불안요소가 늘어날수록 자연스럽고 편안한 것에 대한 그리움은 더 강해진다. Urban Vintage, Naturalism 트렌드가 지속되고 제품이나 서비스의 본질과 진정성에 대한 갈망이 높아질수록 '없는 듯 있는', '과하지 않지만 괜찮은', '의외의 멋이 있는' 스타일이 각광받는다.
요즘 인기 있는 플레이팅은 이런 트렌드를 그대로 보여준다. 롯지팬에 지글거리는 모습으로 자리 잡은 라자냐, 나무도마 위에 아무렇게나 얹혀진 듯 한 플랫브레드, 먹기 좋게 크랙이 생긴 디저트류 등 매뉴얼대로 완벽하게 세팅된 그림의 떡보다는 조금은 다가가기 쉬운 자연스러운 느낌이 소위 대세를 이룬다.
우리 먹거리, 세계화를 그리며
음식문화의 발전 과정 속에서 형식이 우리를 지배하던 단계로부터 인간 본연의 모습을 조금 더 존중하는 형식으로 변화하고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든다.
프랑스에서 얼마 전 열렸던 '한-불 셰프 공동 한국식품 홍보행사'에서 선보인, 비빔밥을 비롯한 우리 음식 이야기를 보며, 전 세계가 한국의 문화와 크리에이티브를 주목하고 있는 요즈음, 맛과 멋이, 그리고 풍류가 깃들여진 우리 먹거리의 담음새에 대해서도 다시 살펴봐야겠다는 의지가 생긴다.
궁중음식의 잘 짜여진 비주얼시스템 뿐만 아니라, 화롯대에 들어앉은 군밤, 논두렁에 턱 하니 얹힌 먹음직스러운 새참바구니의 모습도 새롭게 해석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도 행복한 저녁 테이블을 상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