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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사람들이 지금 총기 가게에 줄서는 이유

전쟁도 아닌데 왜 총알을 사지? 라고 생각했는데 이런거였군요ㅠㅠㅠㅠ
폭동 일어날까봐 진짜 무섭네ㅠㅠㅠㅠㅠㅠㅠ 1000달러갖고괜찮을까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
7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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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아버지와 동생이 미국에 있는데.... 그 지역도 셧다운 되었다고합니다. 마음 같아선 들어오시라 하고픈데 가게를 지켜야하니 못들어오세요... 동생은 젊어 괜칞다쳐도 아버진 연세가 많으시고 기관지도 안 좋으신데... 지금 테이저건 하나 구매하셨고 곧 총기도 구매하실 예정이라하십니다. 티는 안 냈지만 불안해 죽겠어요 뭔일 날까봐...ㅠㅠ
헐... 무탈하시길 바랍니다
@mandoojoa 진짜 걱정되는게... 몇달전 도둑 하나 들었는데 동생이 쫓아나가 잡았었거든요... 칼도 들었었는데ㅠㅠ 근데 그땐 그냥 평범한 시기였고 이런 날이 지속되면 미친놈들이 설칠까봐...에효ㅠㅠ 아부지와 동생에게 무조건 몸 사리라고는 해뒀어요.
@luvuml10 아... 무섭네요 근데 예전에 도둑들었다가 도망갔을때 피해를 주면 오히려 역풍 맞던데 요즘은 어떤가요?
미국에서 코로나 한달가면 아수라장되겄네‥😳😳😳
한국 드왔다가 검사받고 진료받고 그러고 다시들어가 거기서 고생하지말고 졸라걱정되네 재외국민들....
아 그래서 배트맨이 강도들만 보면 죽도록 패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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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보건소 자원봉사자들에 갑질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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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부담금 44,150(환급 대상) "박정희가 의료보험 하나는 잘 만들었다”는 글이 자주 보이기에, 한마디 얹습니다. 우리나라 의료보험법은 1963년에 처음 제정되어 1964년부터 시행됐습니다. 당시 군사정권은 '무상의료'를 자랑하는 북한에 맞서기 위해 이 제도를 만들었지만, 임의가입 방식이었기 때문에 가입자는 거의 없었습니다. 고용주와 피고용인이 보험료를 분담하는 강제 가입 방식의 의료보험 제도가 시행된 건 1977년이었습니다. 이때는 공무원, 군인, 교사, 상시 500인 이상을 고용하는 대기업 노동자만 의료보험에 가입할 수 있었습니다. 1977년은 유신체제가 종말을 향해 치닫던 때였습니다. 특히 당시 주력 수출산업으로 육성하던 중화학 공업 분야 대기업 노동자들은 극단적인 저임금에 불만이 매우 높았습니다. 대기업에서 파업이 일어나면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할 것이라 판단한 박 정권은 대기업 노동자들을 회유하는 한편, 공무원 군인 교사 등 정권의 중추를 이루는 사회세력의 환심을 사기 위해 ‘특권적 의료보험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의료보험증은 특권층의 신분증 구실을 했습니다. 의료보험증만 맡기면 어느 술집에서나 외상술을 먹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정당 노태우는 ‘전국민 의료보험 혜택’을 공약으로 내세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의료보험증이 우리 사회의 불평등 양상을 두드러지게 표현하는 ‘증거물’이었기 때문이죠. 이 ‘가시적인 불평등의 증거물’을 없애지 않고서는, 6월 항쟁으로 뜨겁게 분출한 민주화 열기를 가라앉힐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1989년부터 ‘전 국민 의료보험 제도’가 시행된 건 이 때문입니다. 현재의 국민 건강보험 제도는 박정희가 준 ‘선물’이 아닙니다. 우리 국민들 자신이 살인적 폭력과 최루탄에 맞서 싸워 만든 제도입니다. 자기 자신이, 또는 자기 부모가 싸워서 얻은 권리를 남이 ‘선물’한 것으로 생각하면, 허무하게 빼앗기기 쉽습니다. 우리 스스로 만든 것을 누구라도 함부로 훼손하게 놔둬선 안 됩니다. '민영 의료보험증'을 가진 사람이 공공연히 특권층 행세하는 시대로 되돌아 가서도 안 됩니다. 출처 전우용 페이스북 특권층의 신분증 구실을 할 정도로 불평등의 상징이었던 의료보험을 모든 국민의 것으로 만든 것은 6월 항쟁 등의 민주화 열기를 분출했던 우리 국민들이었습니다. 모르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 공유하자면, 1989년 이전까지의 의료보험법은 어느 수준의 부를 가진 인원에 한정된 보험이었고, 실질적으로 국민건강보험을 전 국민적인 체제로 만든 것은 청십자의료보험을 창설한 장기려 선생의 노력과 노태우 정권의 업적이며, 그리고 후술할 통합체계를 갖춰 가입자들의 자금적 부담을 줄이고 확실한 사회보장제도로 자리잡게 한 것은 김대중 정부의 업적이다. (나무위키 발췌) 그렇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