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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지금 괜찮은가요?

오늘 이동제한 조치가 실시된 이후 처음으로 외출을 하였다. 조금 작지만 집에서 가장 가까운 마트에 가서 일주일 동안 구멍이 조금 뚫린 성벽을 다시 바를 무언가를 사 오기 위해서였다. 커플이라도 가족이라도 되도록 한 명만 외출을 하여 장을 보고 오라는 게 정부의 지침이어서 프랑스에 온 이후 처음으로 혼자서 장을 보러 가게 되었다. 우리 집은 파리와 남쪽 벙리우를 연결하는 꽤 큰 도로 근처에 있어서 이동제한이 실시된 후의 풍경 변화를 매일같이 실감하고 있었다. 아이의 필통처럼 색색의 볼펜으로 가득 차던 버스는 정류장에 멈춰 조금의 공기를 빼고 채우곤 금세 가벼운 배기음으로 정류장을 떠났다. 점심때와 해 질 녘 장바구니를 메고 끄는 이들이 몇 분에 한 사람씩 괘종시계처럼 우리의 창을 좌우로 가를 뿐 큰 사건도 사건에 걸맞은 소음도 없었다. 

우리 건물과 마주 보며 서 있는 건물은 겨울 내내 덧창으로 덮여 있었는데 이제는 덧창을 걷고 해가 지면 은은한 노란빛을 우리의 방안에 보태기 시작했다. 그러기 위해서 마담은 지난 주말 하루 종일 이층의 창들을 물걸레로 닦으셨다. 그것을 바라보다가 괜스레 나도 세탁기를 다 밀어내고 전 거주민들의 역사를 닦아내었다.

사실 내게는 꽤 큰일이 하나 생겼는데 내가 즐겨 바라보던 길 건너 세차장이 그만 폐쇄를 한 것이었다. 상점 영업이 종료된 이후로도 한 이틀 영업을 해서 계속 열 수 있는 건가 했었는데 지난 수요일 아침 일어나 덧창을 열어보니 그 널찍한 공간을 가느다란 줄 몇 가닥으로 막아 두고 있었다. 너무나 큰일이라 내가 쓰고 있는 글에 한 페이지나 써넣었다.
주말이면 차들이 꼬리를 물고 늘어서 있던 집 앞 세차장이 폐쇄되었다. 처음에는 축구 경기가 중지가 되었고 공연들이 그리고 학교가 앞을 다투듯이 문을 닫았다. 그리곤 채 이틀을 버티지 못하고 카페와 바, 상점들이 강제로 폐쇄가 되었고, 햇빛이 잔인하던 그 주말, 터지는 봄 꽃 같은 방종이 있은 후, 벌처럼 전 거주민들의 이동이 금지되었다. 아주 먼 곳 내가 이름도 처음 들어 본 곳에서 터진 화산재가 바람을 갈아타며 나의 유일한 재미를 덮쳐버린 것이다. 그것은 분명 가십이었는데 계절을 채 못 벗고 모든 곳들의 일면짜리 뉴스가 되었다.

세차장은 일주일 이주일에 한번 덧창을 열고 담배를 피우러 나오는 어느 마담의 2층 집 옆에 자리를 잡고 있다. 건물은 별 다른 구조랄 것도 없이 중앙에 작은 사무실이 있고 그 위에 갓처럼 넓고 평평한 지붕이 얹어져 있는 게 고작이다. 그 날개 같은 지붕 아래의 공간을 차의 넓이에서 조금씩 여유를 두고 칸막이로 쪼개어 놓아 한번에 5대의 차들이 주차하듯 차를 세워 두고 지붕에서 뿌려 주는 물과 거품으로 차를 씻을 수 있게 되어 있다. 물론 사무실 앞 동전교환기로 가서 코인을 바꾸는 일부터 지붕에 달린 호스를 돌려가며 차에 물을 뿌리고 밀대로 차에 거품을 두르는 일 차를 헹궈내고 걸레로 물기를 닦는 일까지 그전에 차에 앉아서 앞차를 기다리는 일 조금씩 차를 앞으로 당겨 대는 일 그 모든 일들은 각자가 스스로의 힘으로 해야 한다.

햇볕이 좋은 날도 바람이 부는 날도 심지어 비가 내리는 날도 세차장은 차를 받았다. 헬스장이라도 되는 듯 심심한 얼굴의 사람들이 기꺼이 차를 몰고 와서 한참을 앉아 기다리다가 자신의 키만 한 호스와 밀대를 온몸으로 움직이며 차를 씻는 모습, 그런 모습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가 가만히 창 앞에 서서 10분이고 20분이고 지켜보는 것은 무척 우스운 일이다. 그런 우리의 가마 위로 하늘은 늘 너무 밝거나 장엄한 구름이 뒤덮었거나 아이의 그림에서 처럼 명암도 없이 하얀 구름들이 장난처럼 머물러 있거나 했다. 그 어느 날도 세차를 할 만한 날은 없었다. 그 어느 날도 세차를 지켜볼 만한 날은 없었다. 

마트를 가는 길은 길어야 5분, 종종걸음으로도 몇 백 걸음이 채 안 되는 거리이지만 초식동물인 나는 어젯밤부터 긴장을 했다. 뒤에서는 나의 정체성을 알아볼 수 없게끔 후드 모자를 덮어써 검은 머리를 가렸고 앞에서 걸어오는 사람들에게선 공격성을 조금이라도 일찍 찾아내기 위해 오감을 다 끌어 썼다. 
마트의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서로 2미터 이내로 접근하는 것을 피하라고 했기에 줄은 사람의 수보다 훨씬 긴 길이로 늘어져 있었다. 마트는 실내에 머무는 사람의 수를 제한하기 위해 놀이기구처럼 몇 명씩 단위를 끊어 입장을 시키고 있었다. 지겨운 대기 동안 줄줄이 폐쇄된 상점들을 바라보았다. 철문이 다 내려진 거리 속에 유일하게 햇볕을 토해내는 긴 창 옆에 서 있는 이들의 모습이 마치 날씨가 모진 날 굳이 놀이공원에 놀러 와서 겨우 운영하는 몇 안 되는 기구에 매달려 있는 이들의 모습 같았다. 언짢고 다행이고.. 날씨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사정들. 기막힌 교차.
차례가 되어 마트에 들어가 엠마가 메모해준 쪽지를 보며 장을 보았다. 나와 비슷한 처지의 남자들이 쪽지와 상품을 산만한 눈빛으로 대조하고 있었다. 다행히 과일과 채소 등은 수량이 꽤 풍부했다. 다만 밀가루와 소금 그리고 계란은 재고가 없어 사질 못했다. 다들 서로 피하듯 배려하듯 사람이 없는 칸들을 찾아 들어서고 금세 넘겨주고 하면서 미션처럼 장을 보았다. 

마트 안의 사람 수를 제한하다 보니 계산대에서는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바구니에 담아 온 물건들을 다 스캔하고 이미 내 가방에다 다 담았는데 뒤져 봐도 내 주머니 어디에도 지갑이 없었다. 소매치기는 아니었다. 지갑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자물쇠를 허리에 거는 루틴을 빠뜨렸다는 사실이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어떡하지 이 물건들을 다시 가져다 놓고 집으로 가 지갑을 가지고 온 다음 다시 줄을 서서 장을 봐야 하는 걸까. 아무래도 그게 맞는 것 같아 설명을 하려고 하는데 거기에 걸맞은 프랑스어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왜 그러는지 묻는 점원에게 이렇다 할 대답도 못 하고 식은땀만 흘렸다. 

“아이 돈 헤브 뽁뜨페이으.”

그 간단한 프랑스어 문장도 완성하지 못해 영어와 섞어 버리는 꼴이라니..

“뽁뜨페이으? 알레지.”

죄송하다며 장 본 물건들을 다시 제자리로 가져다 두려고 하자 직원이 나를 만류하며 얼른 지갑을 가져오라고 하셨다. 나는 운동 부족을 실감하며 집으로 달려갔다. 깜짝 놀라는 엠마에게 지갑을 건네받고 혹시 나 때문에 다른 분들이 기다리진 않을까 염려하며 허벅지를 부여잡고 마트로 달려갔다. 별로 효과도 없었겠지만 카드의 비번을 재빨리 누르고 물건들도 최대한 빨리 가방에 넣었다. 

“멕시! 오흐부아.”

장바구니를 어깨에 메고 여전히 가쁜 숨을 내쉬며 마트의 문을 나섰다. 조금 더 길어진 줄이 눈에 들어왔다. 프랑스에 처음 왔을 때 슈퍼에 가기 위해 엠마와 어깨를 한 사람 분만큼 붙이고 걷던 길이 눈에 들어왔다. 대중교통 파업 때 “쿠쿠” 하며 지나가는 차를 잡아 타시던 할머니와 함께 추위에 떨며 버스를 기다리던 버스정류장도 눈에 들어왔다. 감상도 위험한 시기라 고개를 젓고 장바구니를 고쳐 메고 터덜터덜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걸음에 어떤 목적도 담겨있지 않아 보이는 어느 흑인 분을 나도 모르게 경계했다.

못 된 버릇이다.

집 앞 작은 사거리에서 우리에게 가장 먼저 봄을 알려줬던 나무의 꽃이 골목에 바람과 중력을 그리며 떨어져 있었다. 이미 몇몇은 걸음에 짓이겨 있었다. 나무의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외출의 목적과 관계가 없는 리스트에도 없는 걸음과 손짓. 주변을 오가는 사람들이 신경이 쓰여 채 몇 장 찍지도 못하고 얼른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멀리서 나를 인식하고 나를 따라오는 어느 흑인 분의 모습이 보였다. 신경을 안 쓰는 듯 신경을 쓰며 집 현관을 열었다. 지나가겠지 했는데 그 흑인 분이 나를 따라 우리 집 현관으로 들어섰다. 순간 나는 온 신경이 곤두섰다. 차분히 현관에 놓인 우편함을 열어보았다. 흑인 분이 어색한 얼굴로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봉쥬흐.”

우편함이 있는 현관을 지나면 다시 비밀번호를 눌러야만 들어갈 수 있는 문이 나온다. 어찌해야 할까 다시 현관 밖을 나가야 하나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는데 그분이 그 문의 비밀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분명 연기이겠지?’ 

문이 열렸다. 순간 나는 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워 우편함으로 시선을 돌렸다. 내가 놀란 것을 그분도 느끼셨을 텐데.. 미안함과 씁쓸함에 한참을 더 현관에 머물러 있다가 비밀번호를 풀고 문을 지나 엘리베이터 앞으로 갔다. 엘리베이터는 내가 가려는 층에 멈춰 있었다. 

“나와 같은 층에 사시는구나.”
이 곳에서 인종차별도 몇 번 당했지만 떳떳하게 분노하지 못 한 이유는 내가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임을 너무나 분명히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표현을 안 하고 공격을 안 했지만 나는 그들을 신경 쓰고 있었고 피하고도 있었다. 그것이 과연 그렇게나 큰 차이인 걸까.

선과 악이 분명한 사람들. 마음껏 비난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그들과 달리 나는 그 어떤 것들에도 그다지 멀리 있지 못한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가만히 생각을 한다. 정치는 하지 못하고 참여도 하지 못하고 싸움은 진작에 그만두었고 생각만 한다. 비겁한 시간들이다. 너무나 잘 알았었는데 사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씁쓸한 사실 말고는 모든 게 지워져 버렸다. 긴 비행이 있었고 너무 많은 바람이 나를 흘러갔다.

장만 보고 왔는데 하루가 다 지났다. 어느 산, 겨울이 늦게 물러나는 나무 아래에 앉아 사람들은 벌써 잊었을 나를 생각하고 있는 것만 같다. 조용한 곳이라 나는 내가 더 뚜렷이 보이고 너무 뚜렷한 나는 부끄러워 쉽게 산 아래로 내려갈 수가 없다. 
우울한 얘기들만 넘쳐나던 유학생 커뮤니티에 프랑스인들로부터 받은 도움이나 두려움을 풀어지게 만드는 친절함 등을 담은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짐을 다 못 담는 이에게 자신의 장바구니를 나눠주거나 트램과 버스를 오르내릴 때 생수통을 대신 들어주거나 하는 몇 주 전이라면 일상의 배경을 그릴 사소함들이었겠지만 지금은 모르는 이들에게 알리고 싶게끔 만드는 소중함이 되었다.

공포도 일상이 되면 조금씩 패닉은 사라지고 우리가 노력해서 되고 싶은 모습이 조금씩 우리의 얼굴을 차지하기 시작한다. 사재기는 줄어들고 인사는 늘어난다. 그러한 것들이 전부 다 가식인 걸까. 나는 그러한 노력들이 반갑다. 공포와 혐오는 분명 우린 안에 있다. 자신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얼굴을 잘 모르거나 애를 써 스스로를 속이는 거겠지. 분명 어둠은 우리 안에 기원처럼 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훨씬 넓은 땅을 두고 벌이는 싸움이다. 가만히 둔다 해도 완전히 어두운 땅이 되기 위해선 낮이 밤이 될 만큼 시간이 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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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를 여행했을 때 덩치 큰 흑인은 경계의 대상이었답니다. 길을 걷는데 얀팔을 벌려 안으려는 포즈로 다가오는 남자... 재빠르게 피했던 기억이! 두려운 일상이네요. 그래도 서울은 마트에 가면 물건은 늘 진열되어있고, 비록 지금 여의도에 사람이 모이고 있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만 하면 괜찮고...저희 아파트 같은 동에서 확진환자가 두명이 나왔지만 평시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답니다. 빠른시일내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시길 바랍니다. 평범함이 위대함이었다는 사실을 느끼는 요즘입니다^^*
@hmjiny 그러게요 봄을 이렇게 지내보내다보니 계절이라는 것도 날씨라는 것도 참 소중하게 느껴지네요 끝까지 건강 잘 지키시길!
일상이 두려움이 되는 나날들... 그래도 이제 많이들 적응을 하고 있는 듯 해서 다행이에요. 얼른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 뿐입니다. 건강하세요 :)
@CosmicLatte 감사해요! 시간은 좀 더 걸리겠지만 다시 일상의 모습을 찾을 거라 믿어요 힘내시구요 건강하세요!
이래저래 신경 곤두서는 일들이 많겠어요... 저도 뉴욕여행 갔다가 밤시간에 브루클린 브릿지 걷고있는데 덩치 큰 흑인이 빠른걸음으로 따라와 놀랐는데 옆을 지나가는 흑인이 입은 제복 상의에 시큐리티라고 써여있더라구요 ㅡ.,ㅡ
@vladimir76 괜한 것들에 힘을 쓰고 그래서 더 힘이 빠지곤 하네요 ㅜ 끝까지 잘 버티시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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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신천지 경험자의 이야기
불편한 분은 죄송합니다. 할말도 있고 경험한 것도 있지만 용기가 모자랐어요. 새벽의 힘을 빌려 글을 씁니다. 다만 SNS도 커뮤니티도 안해서 여기 올리게 되었어요. 관련자 아니면 무시하셔도 괜찮아요. 그래도 이글이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요. (이런글을 올리는 건 처음이라 조금 읽기 불편할 수 있어요.) 1. 경험담 저는 신천지 교육생(포교대상)인 무교인입니다.  제가 의심많고 신중하게 오래동안 관찰하는 사람이라 그 곳에 빠져들지 않을 수 있었달까요. 처음은 심리상담이었어요. 지인의 부탁으로 세미나(대학일회성특강비슷)에 파트너로 같이 갔는데 끝나고 거기서 서비스형식으로 심리상담을 받게됬어요. 그 후에 상담프로그램을  권유받았고 심리상담이란 게 무게가 있어서 특별한 일 없이 병원가서 받기엔 부담스럽잖아요. 따로 무료로 해준다니 받았어요. 일정시간마다 만나서 대화하는 거였는데 초기에는 심리검사도 하고 하면서 상담했는데 시간이 흐르니 성경을 모티브로 한 작품들을 언급하더니 성경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걸로 성격 개선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하더군요. 성경이 믿을만한 경서기 때문이라며 성경이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해 설명했어요. 그에 제가 종교에 거부감을 보이니까 그건 편견이라고 하며 압박을 넣었어요. 소심한 자신을 변하게 하고 싶다며, 계속 그럴게 살거냐, 할말은 하고 살아야하지 않겠냐, 종교권유 아니다, 단순히 프로그램 과정이다. 그런식으로 계속 종용하니 타협해서 작가가 모티브로 삼은 것처럼 변하기 위한 도구로 삼은채로 휘둘렸죠. 상담은 어느새 수업으로 바뀌었어요. 수업을 하면서 친분을 계속 쌓았고 시간이 지나니까 센터로 반강제로 넣어졌어요. 그 과정에서 실랑이도 있었어요. 저는 기독교에 관심없거든요. 그런데 종교 수업에 넣는다니 버티고 거절했죠. 그런데 매일같이 성경을 거부할때 했던 말과 비슷한 말을 하며 다른 사람들도 많이 성공했다, 불교내용도 나온다, 기본적으론 인문학수업이다. 너만 평생 그렇게 살거냐 등등으로 붙잡고 닦달하니 결국 지쳐서 들어본다고 했어요.  그렇게 어어하는 사이 떠밀리듯 센터수업을 신청하게 되었고 같이 신청할 때 얼굴 본 사람(나중에 알고보니 신천지인)을 짝으로 붙여주더라구요. 짝은 수업에 지각하거나 안오면 전화, 카톡을 보내는데 저같은 부류(나중에 보니 교육생 전부 비슷한 성향-무교인 성실하고 휩쓸리기 쉽고 마음 약한 사람) 는 그러면 미안해져서 안그러려 노력하게 되요.  수업할때 외에 교육생들을 담당하는건 두명의 상담사(전도사)로 이분들은 기본적으로 '좋은사람'카테고리에 속하는 호감형이에요. 수업이 끝난후 1:1상담을 하고 수업에 대한 생각을 물어서 살피고 친분을 쌓아요. 제가 포커페이스여서인지 모두에게 묻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한번씩 제가 자신에게 얼만큼 (인간적)호감을 가지고 있는지 호감도 체크도 하더군요. 나중에는 위의 상담사와 마찬가지로 상담이 아니라 보충수업이 되어버려요 이 시간은 다행히 매일 있는 건 아니예요.  아무튼 그렇게 어영부영 들어가게 됬어요. 수업은 초/중/고 단계로 나뉘어지더라구요.  초급수업은 성경속 내용은 비유로 감추어져 있고 이건 이런뜻이다란 내용으로 성경을 해석해서 읽기위한 수업으로 수업의 질은 좋아요(탄탄해요. 내용적으론 빈틈이 거의 없어요).  (동화, 소설 좋아하면)재미있어요. 포교용 수업이라 생각 못할 정도로요.  문제가 되는건 적응이 어느정도 끝나고 단계가 바뀌면서 강사가 교체되면서 은근한 압박이 들어올 때예요.  초반에는 두 상담사가 은근슬쩍 언급하는 정도예요. 수업들었지, 믿어도 믿지않아도 상관없다면 믿는게 어떠냐, 성경대로 이루어질수도 이루어 지지않을 수도 있는데 이뤄지지 않는다면 믿지않아도 상관없겠지만 이루어졌을때 믿지않았다면 통탄하지 않겠냐 등등 하지만 시간이 가고 수업진도가 나갈수록 믿음을 종용하는 은근한 압력이 점점 진해지고 압박하는 사람도 늘어요. 이때도 신천지임을 밝히지 않아요. 때문에 모두가 한편인걸 모르고 개개인으로 보고 그 개개인 모두가 다른 신앙인으로 저는 인식하고 넘겼어요. 모두 이 수업에서 처음 만난 척했거든요. 솔직히 진짜 힘들어요. 주변 모두가 그러니 괜히 내가 이상한가 싶고 불편하고 물리적으로 악의로 그런게 아니니 뭐라하기도 대응하기도 어렵고.. 묵묵히 혼자 전방위에서 눌러오는 은근한 압박을 버텨야했어요. 저와 비슷한 성향의 어지간한 사람은 지쳐 휩쓸릴정도로 센터 곳곳에서 압박하는 말이 들어와요. 제가 버틴것도 오래도록 가만히 관찰하는 조심스러움 때문이라고 봐요. 이때쯤 상담은 상담이 아니라 제 반응, 생각을 살피고 수업내용에 대한 질문응답, 보충수업을 하는 시간이 되요.  다른 사람들(바람잡이 신천지인들)이 아멘, 기도 등을 하는데 동참하지 않으면 수업이 끝나고 보충이 계속되니 지쳐서 동조하게되요. 이미 대부분은 휩쓸렸어요. 그럼 잡히지 않거든요. 결국 그렇게 저도 거의 마지막에 따라하게 되었죠. 이때도 신천지인건 몰라요. 솔직히 가본적 없는 일반교회도 모르는데 신천지인지 교회인지 성당인지 어떻게 구분하겠어요. 직접 말안하면 모르죠. 심지어 이 사람들이 다 같은 한편인 것도 모르는 걸요. 이쯤에 성경의 시온산에 대해 수업에서 강조하는데 꼭 시온산에 가야한다고 하면서 간다는 대답을 지속적으로 얻어냅니다. 나중에 신천지임을 밝히고 시온산이 비유된 신천지라고 하죠. 이곳이 신천지임을 주변사람, 교육생3\2가 신천지인임을 스스로 밝히는 것은 수업전체 중 막바지입니다. 제가 지쳐서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사상이 괴랄해서 피해를 누군가에게 입히는 것도 아니니 편하게 휩쓸릴까하고 흔들릴때 말하더군요. 그걸 지켜보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어요. 2. 그 후, 생각과 하고싶은 말 그쪽이 신천지임을 스스로 알리고 제가 들은 첫 말은 혹시 배신감 느꼈니?였어요. 애초에 종교에 관심이 없었으니 이러나저러나 상관없어 배신감은 커녕 놀라지도 않았어요. 역시 종교단체의 수업이었구나 정도? 그렇진 않다고하니 웃으며 농담을 하더군요.  사과는 없었어요. 속인 것에 대한 사과요. 별거 없는 한마디지만 당연히 해야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죠. 흘리듯 가볍게 해도 괜찮았어요. 이것을 하냐마냐에서 우린 많은 것을 알 수 있어요. 하지만 당연하다는듯 사과 없이 자연스레 넘어갔어요. 다른 모든 이들에게도 그랬겠죠. 저를, 그들을 사람대 사람으로서 봤다면 분명 가볍게나마 인간관계를 위해 사과를 했을 거예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건 우릴 사람대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의식중이든 무의식중이든 포교대상으로서 포교만 되면 인간관계를 신경쓸 필요없는 대상으로 본게 아닐까요? 이분들은 친분을 쌓으려 노력해요. 이 정도 친분이면 이 정도를 화내지 않고 가볍게 넘길 수 있다는 것처럼. 친분을 충분히 쌓은 다음 화낼만한 것을 고백해요.  정을 잔뜩 쌓은 좋은인연을 만들고 이들과 관계를 계속 이어가려면 신천지로 오라고 살랑살랑 미끼를 흔들어요. 하지만 저는 타협하지않는 극혐 2가지가 있어요.  강요와 차별이에요.  신천지의 포교는 이중에 강요가 맞아요. 시작부터 강요였지만 첫번째 상담가가 신천지인임을 몰랐기에 넘어갈 수 있었어요. 하지만 모든 거짓을 스스로 고백했고 이는 종교를 강요한걸 인정한 거나 마찬가지예요. 물리적 학교폭력만 학교폭력이 아니듯 물리적 접촉이 없다고 강요가 아닌게 아닙니다. 주변환경을 인위적으로 만들고 그 곳에 억지로 넣고 여럿을 붙여 그들로 은근한 압박을 가하게 한 점에서 그것은 강요가 맞아요. 종교는 강요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이만희 총회장은 세계 평화기구(?이름이 갑자기 기억안나요.)를 만들면서 각국 정상급 인물에게 싸인을 받으면서 강제개종을 욕했죠. 하지만 신천지의 포교방식은 폭력과 물리적 제제가 없을 뿐인 일종의 강제개종으로 보여요. 내로남불이네요. 스스로의 모순을 깨달았으면 해요. 제가 보기에 신천지는 수업내용으로 쌓은 신뢰를 잘못된 포교방식으로 신뢰를 스스로 깎아먹는 걸로 보여요. 자업자득이랄까... 저와 같은 처지인 분들께 말할게요. 신천지, 정말로 스스로 선택해서, 원해서 가는 건가요? 주변에 휩쓸리진 않았나요? 인연이 소중하다지만 스스로의 자유의지보다 소중한가요? 원해서 가는 거면 할 말 없지만 휩쓸려가는 거라면 부디 좀 더 생각해 보세요. 정말 '내'의지로 '내'가 원해서 가는 것인가? 3. 손절각오 사건(?) 코로나 관련이에요. 별거 아니지만 완전히 마음을 접고 신천지의 친해진 인연을 끊을 각오를 하게된 사건이었어요. (코로나때는 수업내용을 전화, 메세지로 보내더군요) 뉴스가 워낙 많아서 어디서 본 어느 뉴스인지는 모르겠는데 신천지인 확정자 관련뉴스로 초반엔 분명 음성이었는데 나중에는 확진자가 됬다는 거였어요. 당시엔 그냥 넘겼는데 얼마 후 첫 상담가의 전화가 오더니 만나자고 나오라고 불러내더군요. 조금 잠잠해졌다지만 여전히 확진자, 사망자가 나오는 이 시기에요. 제가 떨떠름한 기색을 가득 담아 이 시기에요? 하고 물으니 "어! 그게 왜?" 할 말을 잃었습니다.... 계속 만나자는 걸 극구 거부하고 어렵게 전화를 끊었어요. 그리고 앞의 그 뉴스가 떠오르더군요. 그리고 어쩌면 그 확진자도 이렇게 불려가서 옮아온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어요. 물론 괜한 의심일 수도 있지만 의심을 안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경험이었어요. 이 시기 이런식으로 불러낸게 과연 몇명 정도일까, 모두 코로나에 걸리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나? 부주의도 정도가 있어요. 안일함이 누군가의 목숨을 위협합니다. 이것은 당신들이 말하는 마귀의 괴롭힘이 아니라 개개인의 안일함, 부주의에 의한 피해입니다. 4. 포교대상 (제가 확인한 소량만 썼어요) 마음이 약하고 마음의 상처를 간직하고 있는 사람 + 성실하고 흔히 착하다는 평을 받는다. 무기력, 우울증까지 있으면 1순위. <마음의 상처> 가정의 문제(남아선호사상, 장자선호 등 포함) 인간관계가 서툰 사람 소심하게 기가 죽은 채로 눈치보는 사람 <공통점> 마음이 약함(사소한 것에도 쉽게 상처받음) 주변에 휩쓸리기 쉬움 길가다 많이 잡힘(포교, 폰, 기부 등) 싸우는 거 싫어함(싸우기보다 불편함 감수) 5. 신천지에 젊은이가 많은 이유 (더 있겠지만 이야기 해봤을때 얻을 수 있었던 정보는 이 정도) ☆다른 교회보다 수업(교리)내용이 합리적이고 탄탄해 설득력을 가진다.   마음이 비교적 약하기 때문(수가 적어 옛날에 비키면 과보호 받으며 키워짐) 사회에서 떨어진 자존감, 자신감 키워주려 노력함 늘어난 학교폭력 피해자 흡수가능. 남아선호사상에 불만을 가질 수 있는 세대라 예전에 그 피해를 입었던 여아들(지금은 여성들)이 다수 흡수됨. 새벽에 쓰기 시작했는데 다듬다보니 지금 끝났군요... 무슨 일기같은 글이 되어버렸네요... 읽으신 모두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특히 저와 같은 입장이신분은 제 충고를 보고 3번정도 생각해보고 선택하세요. 혹시나 다른 곳에 퍼트리실 분은 제 닉은 가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보배드림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