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h72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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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당신 편

예순이 넘은 내 아내는
요즘 자꾸 이기적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가족 모임은 물론이고 친구들 부부동반 모임에 가서도
다른 사람들이랑 말은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남의 물건을 함부로 만지곤 합니다.

며느리와 사위의 표정이 이상해지고, 
친구들도 뭔가 잘못 먹은 얼굴로 바라보지만,
그럴 때마다 난 미안해하며 물건을 
그들 곁으로 도로 놔줍니다.

나는 연신 미안하다는 말로써 이야기하지만 
가끔은 남들이 안 보는 곳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립니다. 

아내는 원래 늘 남을 배려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길을 가거나, 문을 열 때도 뒷사람을 위해 양보하고
웃음도 많고, 정도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초기 치매 진단을 받은 이후로는 
늘 산만하고, 때로는 내 것 네 것을 못 가리고 
만지는 증세가 생겼습니다.

병 때문에 그런 건데도 
저희 부부를 모르는 사람들은 사실 확인도 
안 하고 화부터 내기 시작합니다.

그런 아내의 행동에 나는 눈물이 나옵니다.
아내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나는 아내를 꼭 껴안고 말했습니다.
"어떤 욕을 들어도 내가 있으니 걱정하지 마.
난 끝까지 당신 편이니까!"
네가 없이 웃을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눈물이나
힘든 시간 날 지켜준 사람
이제는 내가 그댈 지킬 테니

(중략) 

한 송이의 꽃이 피고 지는
모든 날, 모든 순간 함께해

-폴킴, 모든 날, 모든 순간-

내 남편, 내 아내...
가장 가까이 있어서 
우리는 이 사람이 얼마나 눈부신 사람인지 
모르곤 합니다. 

모든 날, 모든 순간을 함께 해온 
내 남편, 내 아내에게 끝까지 
힘이 되어 주세요.


# 오늘의 명언
행복한 결혼은 약속한 순간부터 죽는 날까지
지루하지 않는 기나긴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다.
– 앙드레 모루아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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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버린 장군
6·25 전쟁에서 연합군 중 프랑스군을 지휘하던 라울 마그랭 베르느레 중장은 제1차 세계대전 참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독일군을 상대로 나르비크 전투를 승리로 이끈 맹장이었습니다. ​ 전쟁 후 3성 장군까지 계급이 올라갔지만, 6·25 전쟁에 참전할 때는 5단계나 계급이 내려간 중령 계급장을 달고 있었습니다. ​ 2차 세계대전 후 독일에 유린당한 나라를 재건하던 프랑스는 해외에 대규모의 파병을 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 하지만 자유 민주주의를 위해 피할 수 없는 전쟁이라 생각한 라울 마그랭 베르느레 중장은 제2차 대전에 참전한 경험 많은 예비역을 주축으로 일부 현역 자원병을 지원받아 대대 단위의 부대를 창설했고 스스로 지휘관이 되었습니다. ​ 그러나 당시 국방차관이 중장이라는 높은 계급으로 대대장을 맡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하자 스스로 계급을 중령으로 강등하고 참전한 것입니다. ​ 당시 그에게는 새로 태어날 자녀까지 있었기에 아내뿐만 아니라 주변 모두가 만류했지만, 그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 “나에게 계급은 중요하지 않다. 곧 태어날 자식에게 유엔군의 한 사람으로서 평화라는 숭고한 가치를 위해 참전했다는 긍지를 물려주고 싶다” ​ 그렇게 대대장이 된 라울 마그랭 베르느레 중령은 1951년 2월 경기도 양평군 지평리 전투에서 중공군과 북한군의 공세를 막아내어 유엔군이 전세를 역전시키는 데 혁혁한 전공을 세웠습니다. ​ 지평리 전투 당시 프랑스군은 중공군 3개 사단에 완전히 포위된 상황이었으나 사흘간의 백병전에서 중공군을 격파했으며 유엔군이 중공군을 상대로 거둔 첫 승리이기도 했습니다. ​ 그런데 한국전쟁사를 살펴보면 라울 마그랭 베르느레라는 이름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자유 프랑스군에서 활약할 때 사용한 가명인 ‘랄프 몽클라르’라는 이름을 6·25 전쟁 당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 아마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목숨을 걸고 싸웠던 당시의 이름을 6·25 전쟁에서도 상기시켜서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군인에게 계급이란 때로는 목숨보다도 소중한 그동안의 명예가 담겨 있는 상징과 같은데 다른 나라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서 계급을 낮춘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 그런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는 평화와 자유 등 많은 소중한 것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더더욱 그 많은 희생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 오늘의 명언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한국을 끝까지 지키겠다. – 월튼 워커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해온.......
반려견과 주인
미국과 캐나다 사이에 위치한 수페리어 호수는 세계에서 가장 큰 호수입니다. 미국 위스콘신에 사는 ‘존 언거(John Unger)’는 자신의 반려견 ‘스콥’과 매일 이곳을 찾아와 수영을 했습니다. ​ 스콥과 존은 19년 전 동물보호소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전 주인에게 학대를 받다 구조된 스콥은 존과의 만남으로 새 삶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콥이 존에게 새 삶을 전해 주었습니다. ​ 사랑하던 약혼녀와 이별한 존은 삶을 포기하려 했지만, 스콥은 묵묵히 그의 곁을 지키며 위로해 주었습니다. ​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19살 노령견 스콥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특히 관절염으로 밤새 잠을 못 자며 힘들어하는 스콥을 보고 고민하던 존은 함께 수페리어 호수를 찾았습니다. ​ 미지근한 호숫물에 몸을 띄운 스콥은 다리의 부담과 통증이 줄어들자 다시 예전같이 행복한 표정으로 존을 바라보았습니다. ​ “스콥, 이제 좀 편안하니?”. ​ 물속에서 통증을 잊고 편안히 잠든 스콥을 끌어안은 존은 안타까움에 눈물을 계속 흘렸습니다. ​ 이 소식을 알게 된 사람들은 스콥을 돕고 싶어 수술비를 모금하였지만, 너무 나이가 많은 스콥은 마취를 하면 오히려 깨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너무 높아 수술할 수 없었습니다. ​ 존은 스콥을 위해 모인 성금을 다른 동물들을 위해 쓰일 수 있도록 여러 단체에 기부했습니다. ​ 존은 스콥이 19살 때부터 1년 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호수에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사랑을 받던 스콥은 20살이 되던 해에 여느 때처럼 호수에 들어가 존의 품속에 안겨 평안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반려동물에게 평생을 함께하는 사람은 제일 소중한 부모이고 형제와 같은 존재입니다. 당연히 사람들도 함께하는 반려동물들을 가족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 반려동물은 당신을 지금까지 세상에서 만나본 최고의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그들에게 있어 다정한 친구이자 수호천사입니다.   # 오늘의 명언 사람한테 받는 위로와 그들한테 받는 위로는 달라요. 그들은 우리한테 이유를 묻지 않아요. 그냥 당신이기 때문에 좋아해요. – 강형욱 –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성공하고 싶으면 실천하라
존 워너메이커는 183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필라델피아  변두리의 가난한 벽돌공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최종학력은 초등학교 2학년이 전부였습니다. 가난해서 돈을 벌어야 했기에 14세 때 서점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근면한 노력으로 미국 최초로 백화점을 설립한,  성공한 사업가가 되어 '백화점 왕'으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노년의 존 워너메이커는 사랑하는 손자가 21살이 되는 생일에 직접 쓴 편지를  보내 주었습니다. '이제 성인이 된 네게 할아버지가 그동안 느낀 성공 비결 몇 가지를 알려주고 싶구나.  네가 이것을 확실히 지킬 수만 있다면  네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다.' 손자는 자신도 할아버지와 같이  크게 성공하고 싶었기에 할아버지의 성공 비결을 주의 깊게 읽었습니다. 근면, 꾸준함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고귀, 말과 행동의 진실함이 고귀함을 만든다. 유능, 일을 신속하게 잘 처리할 능력이 필요하다. 명예, 작은 일에 소홀히 하지 말고 큰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재물, 위 네 가지 덕목을 실천하면 재물은 알아서 따라온다. 행복, 멀리서 찾는 것이 아니라 늘 가까이 있다. 특별한 사람이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공한 사람들 대부분은 처음부터 대수롭지 않은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 오늘의 명언 가치 있는 목표를 향한 움직임을 개시하는 순간 당신의 성공은 시작된다. - 찰스 칼슨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