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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속 안티 스트레스 세계문화유산 산책코스 ; 선릉,정릉,종묘
아이들 역사답사 픽업하다가 복잡한 서울 도심속에서 세계문화유산을 만나는 일은 그야말로 '행운'이다. 평상시에 마음먹고 찾기 힘든 곳이 강남 '선정릉'과 종로의 '종묘'이다. 너무나, 너무나, 지극히 가까이 있기에 잊고 지낸 탓 아닐까? 선정릉의 적송과 벛꽃의 아름다움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도심속에 이런 숲속, 아니 천국이 있나싶을 정도이다. 종묘의 정전 들어가는 입구 또한 숲속으로 나무들이 울창하여 신록이 우거지기 시작하는 4,5월이면 선정릉과 더불어 산책코스로 나무랄데가 없다. 특히나 종묘의 웅장한 정전을 보고 있노라면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건축미를 느낄 수 있다. 복잡한 일상을 벗어나 잠시 휴식을 취하기에 안성맞춤인 도심속 세계문화유산인 선정릉, 종묘를 찾아 떠나보자! 1.선릉, 정릉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현대식 빌딩의 숲에 자리 잡은 삼릉공원 안에 선정릉이 있다. 조선 9대 임금인 성종과 제2계비인 정현왕후의 능인 선릉(宣陵)과 아들 중종의 능인 정릉(靖陵), 이 두 개의 능을 합해서 부르는 이름이 선정릉(宣靖陵)이다. 이 부근은 본래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서학당동이었는데 서울특별시로 편입되면서 현재의 소재지 명칭으로 바뀌었다. 이곳이 능지로 선정된 것은 1495년(연산군 1)에 성종의 능인 선릉이 들어서면서부터였다. 그 뒤 1530년(중종 25) 성종의 제2계비인 정현왕후 윤씨가 죽자 이 능에 안장하였다. 선릉은 왕과 왕비의 무덤이 같은 능역 안에 있기는 하지만 언덕을 달리하는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이다. 선정릉을 입구에서 볼 때 서북쪽에 자리 잡은 묘가 성종의 무덤이고, 건너편 동북쪽 숲 속에 자리 잡은 묘가 왕후의 묘이다. 멀리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울창한 숲이 이루어져 산책하기 가장 알맞은 능이 바로 선릉이다. *출처 :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4》에서 2. 종묘 조선시대 역대의 왕과 왕비 및 추존(追尊)된 왕과 왕비의 신주(神主)를 모신 왕가의 사당. 1963년 1월 18일 사적 제125호로 지정되었다. 총면적 5만 6503평. 서울 종로구 훈정동에 있다. 원래는 정전(正殿)을 가리키며, 태묘(太廟)라고도 한다. 중국의 우(虞)나라에서 처음 시작된 종묘제도는 상(商)·주(周) 시대에는 7대조까지 묘(廟)에 봉안하는 7묘제가 시행되다가 명(明)나라 때에는 9묘제로 바뀌었다. 한국의 경우 종묘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392년(고구려 고국양왕 9)에 보이며, 신라에서는 5묘제, 고려에서는 7묘제로 하였다. 조선 초기에는 5묘제도를 따르다가 중기 이후부터는 치적이 많은 왕은 5대가 지나도 정전에 그대로 모셨으며, 그 밖의 신주는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영녕전(永寧殿)으로 옮겨 모셨는데, 이를 조천(祧遷)이라고 하였다. 종묘의 정전에는 19실(室)에 19위의 왕과 30위의 왕후 신주를 모셨으며, 영녕전에는 정전에서 조천된 15위의 왕과 17위의 왕후 및 의민황태자(懿愍皇太子)의 신주를 모셨다. 신주의 봉안 순서는 정전의 경우 서쪽을 상(上)으로 하고 제1실에 태조가 봉안되어 있고, 영녕전에는 추존조(追尊祖)인 목조(穆祖)ㆍ익조(翼祖)ㆍ도조(度祖)ㆍ환조(桓祖)를 정중(正中)에 모시고 정전과 마찬가지로 서쪽을 상으로 하여 차례대로 모셨다. 이를 소목제도(昭穆制度)라고 한다. 종묘의 조영(造營)은 1394년(태조 3) 12월 태조가 한양(漢陽)으로 천도할 때 중국의 제도를 본떠 궁궐의 동쪽에 영건(營建)을 시작하여 다음해 9월에 1차 완공하였다. 그 뒤 1546년(명종 1)까지 계속되었으며,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8년(광해군 즉위년)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정전의 남문을 들어서면 문의 동쪽으로 공신당(功臣堂), 서쪽으로 칠사당(七祀堂)이 있고, 곧바로 정전에 이른다. 정전의 서문을 나서면 영녕전의 동문과 이어지고, 영녕전에도 정전과 같이 서문·남문·동문이 있으며, 영녕전의 북동쪽에 제기고(祭器庫)가 있다. 정전의 북동쪽에는 전사청(典祀廳)이 있고, 그 주위에 제정(祭井)·판위대(版位臺)·수복방(守僕房)이 있으며, 정전 남동쪽에 재실(齋室)이 있다. 1995년 유네스코에 의해 해인사 장경판전, 석굴암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출처 :《두산백과》 *사진 : doublebook 김현종
세계적인 패셔니스타들의 소장품 자랑앱 'Envicase'
'소장품 자랑앱' envicase가 소수 뉴욕 패셔니스타와 유명 블로거들이 서로의 소장품을 자랑하고 정보를 교환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면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세계 최고의 블로거 Bryanboy, Manrepeller가 사용하기 시작한 직후부터 뉴욕에 기반을 둔 여타의 트렌드 세터들이 반응하기 시작했고, 지나친 상업화/정보부족 그리고 동질감의 결여 등 기성채널에 불편함을 느끼던 다수의 쇼퍼홀릭들과 소장품 자랑족 또한 관심을 보이며 패션피플들의 새로운 놀이터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열린 2015' FW 뉴욕 패션위크에서 패션피플이 꼭 사용해야 할 앱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소장품에 ENVY 버튼을 보내면, 사진 속에 숨겨진 쇼핑스토리가 등장한다. 상업화 된 정보가 아닌, 게시자의 리얼한 쇼핑 스토리와 정보를 볼 수 있기에 더 흥미롭다. 유명인들도 자신의 프라이빗한 쇼핑정보를 스스럼 없이 공유한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에서 매력적인 상품을 발견해도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없었던 불편함이 단순한 ENVY 버튼 하나로 해결된다. 소장품 자랑족들은 더 많이 부러움 받을 수 있고 쇼퍼홀릭은 작은 관심만으로 참신한 쇼핑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인데, 유유상종이랄까, 소장품 사진만으로 속물취급 되었던 기존 소셜미디어에서의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구매행위를 인정받고 싶어하는 뽐내기 본능이 있다"는 영국 옥스포드 대학 던바 교수의 말처럼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을 충족시킴과 동시에, 소장품으로 사람과 사람을 더 감성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다는 새로운 기대감이 소셜미디어 시장에 제3의 물결을 예고하고 있다. http://www.prweb.com/releases/2014/12/prweb12385556.htm
'인간적인 개혁군주'or'잔인한 폭군' 광해는 정말 두명이었던걸까
조선시대에는 폐위된 왕이 많습니다. 그 중 어머니인 인목대비를 폐하고 형제인 영창대군을 죽였다는 죄목으로 폐위된 왕, 광해군. 하지만 광해군은 현대에 들어 재평가받고있는 폐왕중 하나입니다. 권력에 대한 집착으로 폭정을 한 왕, 그리고 백성을 위했던 개혁군주. 광해의 진짜 모습은 어땠던 걸까요? 영화와 시대적 전후사정을 함께 살펴보면 그의 비밀이 숨어있을지도 모릅니다. 두가지 면모를 동시에지닌 광해군의 모습으로 영화 <광해>에서는 광해군이 마치 두명이었던것처럼 풀어냈습니다. # 인간적인 왕을 그려내 일명 '좌파영화'로 분류 된 영화 <광해:왕이된 남자> 영화 <광해>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시시때때로 독살의 위협을 받던 왕이 자신을 위협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방도를 찾습니다. 바로 자신을 대신할 가짜를 찾으라는 것이었죠. 허균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광대 ‘하선’이었습니다. 광해군을 곁에서 모시고 있던 자신 조차 헷갈릴 정도로 똑같이 생긴 광대 하선을 본 허균은 무릎을 칩니다. # 변화를 꿈꾸는 왕과 현상 유지를 원하는 신하들 왜 임금이었던 광해군은 신하들의 위협에 시달려야만 했고, 신하들은 임금을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것도 모자라서 목숨까지 노렸던 것일까요? 그것은 광해군이 가고자 했던 길과 신하들이 가고 싶었던 길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이후 영화의 내용은 아래에서 확인해보세요. 자세히보기 #영웅적 면모 임진왜란과 광해군 7년 간의 기나긴 전쟁 끝에 조선은 겨우 왜군의 침략을 물리칠 수 있었지만 상처뿐인 승리였습니다. 전쟁을 직접 겪었던 광해군은 왕위에 오른 뒤에 국가를 재건할 계획을 세웁니다. 열쇠는 ‘대동법’이었습니다. 공납제를 없애고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고 보관이 쉬운 쌀로 통일해서 세금을 거두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되면 중간에서 관리들이 농간을 부릴 일도 없었죠. 하지만 이런 방식은 그 동안 세금을 빼돌렸던 기득권층에게는 불이익을 가져오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시대적 상황 자세히 알아보기 #폭군의 모습 영창대군의 등장 광해군에게도 고민거리는 있었습니다. 바로 아버지 선조가 뒤 늦게 낳은 이복 형제 영창대군의 존재였습니다. 원래 광해군은 왕후가 아닌 공빈 김씨의 소생으로 정식으로 왕세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임진왜란이 터지고 세자를 서둘러 책봉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자 급하게 왕세자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살얼음판 같던 시간을 지내던 광해군은1608년, 선조가 세상을 떠나면서 아직 어린 영창대군을 제치고 드디어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영창대군은 눈에 가시 같은 존재였습니다. 결국 대북파의 우두머리이자 광해군의 측근인 이이첨 등의 계략으로 인해서 영창대군은 강화도로 귀양을 갔다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이 죽음을 비롯해 광해군은 형제를 죽이고 어머니 격인 인목대비를 폐위한 ‘폭군’이라는 오명을 갖게 됩니다. 자세한 역사적 사실 알아보기 왕좌에 오르기 전의 광해, 그리고 폐위된 후의 조선에 대해서 더 알아보고싶다면, 그 영화의 전후사정 조선 판 왕자와 거지, 광해 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조선왕들 비하인드 스토리.
사도를 위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볼까하다 예전에 북마크에 해놨던 걸 기억해서 오랜만에 다시 읽었는데 재밌네요. 예전에 서핑하다 발견한 블로그인데 사진이 지금은 엑박으로 뜨는게 좀 아쉽네요. 그땐 왕들 얼굴사진 떴었는데. 펌글이 안되서 주소 남길게요. 시간날때 읽어보심 재밌어요~ 후회안합니다. 조선왕들 모두있어요~ 1탄 http://m.blog.naver.com/fuzzycom1/140140173856 2탄 http://m.blog.naver.com/fuzzycom1/140140978982 조선역사 기네스북 1) 7개 국어에 능통했던 신숙주 조선의 영의정을 지낸 범옹 신숙주는 학자로만 평가한다면, 뛰어난 언어학자였으며. 한국 최초의 일본관련 저서인 해동제국기를 저술하는등, 어문학에 많은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특히 신숙주는 설총의 이두문자는 물론, 중국어, 몽고어, 여진어, 일본어에 능통했으며, 인도어, 아라비아어까지 터득했던 언어천재. 신숙주의 후손으로는 단재 신채호, 신규식 선댕등이 있다. 조선역사 기네스북 2) 최장수 인물 홍유손 조선역사에 기록된 최장수인물은 바로 홍유손. 홍유손은 76세에 장가를 들었고, 99세에 사망했다. 소위 죽림칠현으로, 속세를 떠한 청담파를 자처한 인물이다. 조선역사 기네스북 3) 왕의 얼굴을 한번도 보지 않고, 정승에 오른 윤증 우암 송시열의 제자로, 당쟁의 한축이었던 윤증. 그는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으나 36ㅅ 때 내시 교관부터 공조전랑, 사헌부 지평, 호조참의, 대사헌, 우찬성, 좌찬성, 판돈녕부사까지 관직이 부여되고, 제수 받았으나 응하지 않았다. 어쨋든, 윤증은 한번도 조정에 나가지 않고 왕의 얼굴도 보지 않았음에도 정승이 되는 진기록의 보유자. 조선역사 기네스북 4) 조선의 천재 이율곡 율곡 이이는 아홉번의 과거시험에 모두 장원급제한 초초천재적 인물. 우리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며, 정치, 경제, 국방에 대한 지식도 초월할만큼 많았다고. 조선왕조 기네스 기록 1. 32년동안 세자로 있었던 순종 → 조선의 마지막 왕이었던 순종은 2세때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나, 32년간을 세자 신분으로 지냈다. 2. 죽어서 왕위에 오른 인물 → 덕종 : 수양대군의 아들, 세조 1년에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즉위전 사망. 인수대비의 남편이었으며, 슬하에는 월산대군, 성종, 명숙공주를 두었다. → 원종 : 선조의 5남. 인조를 비롯한 4남을 둠 → 진종 :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와 4촌, 6세에 책봉되었으나 즉위전 사망. 양자인 정조가 즉위하자 진종으로 추존됨 → 장조 : 사도세자. 정조의 아버지. 1899년 장조로 추존됨 → 익종 : 순조의 아들, 헌종의 아버지 19세 때 대리청정으로 참정하였으나 4년만에 사망 3. 조선왕조 출산 기네스 → 최고의 아들부자 : 세종이 18명의 아들을 두어 가장 많고, 성종이 16명, 2대 임금 정종이 15명이었다 → 최고의 딸부자 : 태종이 17명, 성종이 12명, 중종과 선조가 11명 4. 조선왕조 제위 기네스 → 가장 짧은 기간동안 재위한 임금 : 인종 9개월 → 가장 오랜 기간동안 재위한 인금 : 영조 51년 7개월 → 가장 단명한 임금 : 단종 17세 사망 → 가장 장수한 임금 : 영조 83세 사망
톱 디자이너 7인을 알면 패션이 보인다
패션계를 쥐락펴락하는 파워 디자이너들. 그들의 발자취만 공부해도 패션 고수가 될 수 있다. 출처: fashionflash.se 깡마른 몸매의 모델, 기괴한 포즈만을 패션의 전부라 생각했다면, 당신은 무궁무진한 패션 세계의 극히 일부만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준비했다. 당신의 패션 지식을 업시켜줄 톱 디자이너 7인의 스토리. 출처: 핀터레스트 / gulliver is lost 1. 칼 라거펠트 1933년 독일 함부르크 출생 20세기 패션계의 가장 영향력 있는 패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는 1982년부터 지금까지 여자들의 영원한 로망, 샤넬의 수장을 맡고 있는 명실상부한 패션계의 거장이다. 또한 그는 1965년부터 현재까지 펜디의 책임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기도 하다. 여기서 상식 하나! 샤넬은 가브리엘 코코 샤넬 여사가 1910년 파리에 문을 연 모자 가게가 시초. 이후 블랙 미니드레스와 2.55 백 등으로 독보적인 지지를 받으며 오늘날까지 최고의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칼 라거펠트의 능력은 디자인이 다가 아니다. 그는 샤넬의 광고 비주얼을 만드는 포토그래퍼이기도 한데, 수준급 실력으로 사진전을 개최할 정도. 또한 샤넬의 스토리를 담은 단편 영화를 제작해 호평을 받기도 했다. 심지어 그의 애완 고양이, '슈베트'도 능력자. 인스타그램 팔로워 5.4만 명에 달하는 슈베트는 패션 잡지 <럭키>의 표지를 장식했고, 뷰티 브랜드 슈에무라와 리미티드 에디션을 출시하는 등, 1년에 35억을 번다고. 젊음과 변신에 대한 칼 라거펠트의 노력 역시 독보적이다. 그는 2000년, 67세의 나이에 에디 슬리먼의 디올 옴므 수트를 입기 위해 13개월 간 무려 42KG을 감량했으며, 현재까지도 그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또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 '칼 라거펠트'로 선글라스, 시계, 가방 라인을 선보이고 있다. 놀라운 건 현재 그의 나이가 무려 82세! 게다가 지금껏 읽은 책은 25만 권에 달한다고(윗 사진이 그의 실제 서재이다). 출처: allets.com, issimag.fr, Gettyimages / 멀티비츠, Brisa Oldfather, Erin Flexon, 핀터레스트 / Marines Desidera', ladoavesso.com.br, squarespace.com, interviewrussia.ru, Holly Jones, Leigh Viner, Anthony Garcia, vonsnef.com, 텀블러 / folstyle, street-love.net, thecitizensoffashion.com, firstglimpse3d.com 2. 마크 제이콥스 1963년 미국 뉴욕 출생 상류층의 럭셔리 스타일에 천진난만함을 더하는 천재 디자이너 1997년, 루이비통의 마크 제이콥스 영입은 참으로 현명한 처사였다. 그간 다소 올드한 이미지가 강했던 루이비통에 위트를 더해 단숨에 젊은 여성들 사이에 루이비통 백 신드롬을 일으켰으니 말이다. 그가 루이비통에 머물렀던 2013년까지 선보였던 많은 히트 아이템 중 특히 그래피티 모노그램 시리즈는 젊은 부유층의 마음을 사로잡은 효자 아이템. 이 시리즈의 성공으로 루이비통의 매출은 무려 4배 이상 상승했다. 그의 위트 넘치는 디자인과 재기발랄한 에너지는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 '마크 제이콥스'에서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레트로 무드에 현대적 시크함을 가미해 젊은이들이 손쉽게 입을 수 있는 하이 패션을 선보이는 것. 출처: allets.com, coastal.com, 핀터레스트 / Blue Ocean, Liz MR, homosassasprings.org, visla.kr, buzznet.com, Gettyimages / 멀티비츠 3. 톰 포드 1961년 미국 텍사스 출생 관능이라는 코드를 패션에 자연스레 녹여낸 크리에이티브 디자이너 그는 1990년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디자이너로 영입된 이후 2004년 떠날 때까지, 구찌를 젊고 섹시한 브랜드로 탈바꿈시켰다. 1999년 부터 2004년까지는 생로랑 디자이너를 겸업, 쿠튀르적 감성까지 입증했다. 또한 영화 <싱글맨>으로 감독으로서의 재능을 보여주기도 했으며, 자신의 남성복 브랜드 톰 포드에서 선보이는 맨즈웨어 컬렉션에는 클래식함에 섹시함을 더해 옷 잘 입는 남자들의 워너비 아이템이 되고 있다. 디자이너로서 그의 재능은 매혹적인 맨즈웨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톰 포드 뷰티의 립스틱은 국내에 선보이자마자 완판되는 기록을 세웠고, 특유의 날렵함이 돋보이는 아이웨어 라인 역시 핫 아이템으로 등극했다. 출처: allets.com, chicprinceb.wordpress.com, Gettyimages / 멀티비츠, 핀터레스트 / Old Focals, trendipia.com, otticabalzarotti.it, galleryhip.com, alisonkerr.wordpress.com 4. 스텔라 맥카트니 1971년 영국 런던 출생 믹스매치의 균형 감각이 돋보이는 에코 패션 디자이너 비틀즈의 멤버, 폴 매카트니와 사진작가 린다 매카트니의 딸로 태어난 스텔라 매카트니는 출생하자마자부터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셀러브리티였다. 부모로부터 예술적 능력을 물려받은 그녀의 컬렉션은 천연 소재와 인공 가죽으로만 제작하는 것이 특징. 환경 보호라는 확고한 신념에 자신만의 믹스앤매치 감각을 더해 탄탄한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그녀는 이밖에도 아디다스와 함께 자신의 이름을 내건 콜라보레이션 라인을 론칭하고 아동복과 언더웨어 라인을 선보이는 등,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출처: allets.com, madame.lefigaro.fr, 핀터레스트 / Jody Lane, Jan Candelora, Sandy Quintan, Votre Vu, ilmondodiingrid.blogspot.com, stylefull.com, fashionhype.com, modanews.ru, Gettyimages/멀티비츠, iloveshoppingwithfede.com, bags.stylosophy.it 떠오르는 아시안 디자이너들 최근 패션계에는 아시아계 디자이너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신선하고 독창적인 감성으로 특히 젊은 패션 피플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는 중. 출처: allets.com, tutnow.com, galleryhip.com, independent.co.uk 5. 알렉산더 왕 - 1983년생, 대만계 미국인 스트리트 무드를 하이 패션에 접목시킨 자신의 브랜드 '알렉산더 왕'으로 대중을 사로잡은 디자이너 29세에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그는 특유의 구조적 커팅 기법과 미니멀리즘 디자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가 H&M과 협업해 선보인 컬렉션 제품을 구입하기 위해 수많은 이들이 밤새 줄을 섰을 정도. 출처: allets.com, Gettyimages/멀티비츠, roastedmontreal.com, 핀터레스트 / Gamze Mine Özcan 6. 타쿤 파니치걸 - 1974년생, 태국계 미국인 패턴과 프린트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그만의 재능을 브랜드 '타쿤'에 녹여내 주목 받은 디자이너 패션 에디터 출신인 타쿤 파니치걸은 미셸 오바마가 대선 마지막날 그의 원피스를 입어 단숨에 유명해졌다. 2010년부터는 타사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아 트렌디한 진주 주얼리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출처: allets.com, Gettyimages/멀티비츠, independent.co.uk, 핀터레스트 / Lily Belle, asiasociety.org 7. 정욱준 - 1966년생, 한국인 오버핏과 트렌치 코트를 앞세운 브랜드 '준지'로 패션의 본토 파리를 들썩인 한국 디자이너 그는 유럽 사람보다도 트렌치 코트를 더 잘 이해한다는 평을 받으며 10번이 넘는 파리 컬렉션을 성공리에 마쳤다. 2015 S/S 시즌, 아디다스와 협업해 선보인 슈퍼스타 리미티드 에디션은 단 3일만에 완판되기도. 출처: allets.com, Gettyimages / 멀티비츠, article.wn.com, offspring.co.uk 지금까지 패션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대표 패션 디자이너 7인의 스토리를 알아보았다. 어쩐지 막연하게만 느껴지던 당신의 패션 지식에 신선한 자극이 되었는지? 출처: 핀터레스트 / Moani Tolentio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