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5일 치러지는 21대 총선의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이 9일 0시부터 시작됐다. 공직선거법 제108조 제1항에 따라서다. 어떤 일이든 최종 결정이나 선택이 임박하면 평소 예측하지 못한 의외의 변수가 튀어나오기 쉽다. 선거도 마찬가지다. 지금껏 경험했지만 선거일이 임박할수록 선거정보의 중요성이 한층 더 커진다. 그런데도 공직선거법은 이 시기에 여론조사 공표를 금지한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국민의 알 권리가 침해된 상태에서 깜깜이 선거를 초래한다는 비판이 있는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금지기간 중 여론조사 결과가 공표·보도되면 자칫 선거인의 진의를 왜곡시킬 우려가 있고, 불공정하거나 부정확한 여론조사 결과가 공표될 경우 선거의 공정성을 심각하게 저해할 우려가 있다"라며 주의를 당부했다. 중선위는 소위 밴드웨건 효과를 우려한 것이다.
밴드왜건은 악단을 태우고 서커스 행렬을 선도하는 마차나 차량을 말하는 것으로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의 투표 의사결정을 밴드왜건 효과라 부르게 됐다.
그런데 알고보면 밴드왜건 효과를 차단하는 규정이 한국의 법령에 도입된 것은 이승만 정권 때라는 점이다.
1958년 1월 25일 제정된 '참의원선거법'에 "누구든지 선거에 관하여 당선 또는 낙선을 예상하는 인기투표를 할 수 없다"는 제68조 규정이 등장했다.
거의 반세기가 지났음에도 오늘날의 선관위는 유권자 표심의 왜곡을 막기 위한 제도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이를 한국에 처음 도입한 사람들의 의도는 그런 데 있지 않았다.
당시 여당이었던 이승만의 자유당은 불법 개헌 및 장기집권과 실정으로 민심이 이반된 상태에서 자유당 후보들의 저조한 인기가 드러나고 부정선거의 실상이 폭로되는 것을 막고자 공표금지 조항을 도입한 것이다.
자유당이 자금력을 동원해 거짓 여론조사를 벌일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고 하는데 이 조항은 당시 일본의 공직선거법의 내용을 그대로 본떠서 삽입하였다고 한다.
이승만 정권의 자신감 부족으로 인해 한국에 도입된 여론조사 공표금지 조항은 선거 판세는 물론이고 한국 역사에까지 많은 영향을 끼쳤다. 여론조사 결과의 공표를 못하게 하는 것이 부당한 이유는 공표를 못하게 하는 것이고 조사는 허용됨으로서 일부의 관계자나 기자들은 이미 알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해서 돌발 변수가 빈발하고 판세도 곧잘 바뀌는 선거일 직전의 며칠 동안, 유권자들만 깜깜이로 지내도록 만드는 억울한 조항이다.
그나마 인터넷 보급으로 나아졌지만 선거는 '뽑는 행사'이지 '뽑히는 행사'가 아니다.
따라서 선거의 진짜 주역은 '뽑히는 후보'가 아니라 '뽑는 유권자'다. 이것은 유권자들을 대신해 나랏일을 책임질 사람들을 선출하는 일이다. 따라서 유권자가 후보자보다 훨씬 더 역동적이어야 하는데도, '깜깜이 조항' 때문에 유권자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지나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시대가 한참지났다. 변화된 시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은 바꿔야 한다. 이러한 깜깜이 선거를 언제까지 유지해야 한단 말인가? 이런 기막힌 제도를 언제까지 유지를 해야 한단 말인가. 여론조사 공표를 금지한 공직선거법 개정을 촉구한다.
지금은 선거일 기준 일주일 전이지만 당장 전면 폐지를 못하겠다면 삼일 전까지로 기간을 축소한다던지, 그 이후 이틀, 하루로 더 축소하여 결국에는 폐지로 나아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