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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웨이 그리고 미국의 전략상황

1942년의 첫 4개월 간 미국 태평양함대는 일본해군과의 대결에서 죽을 쑤고 있었다. 일본해군이 1941년 12월 7일에 단행한 진주만 기습은 미해군의 자신감을 뒤흔들어 놓았다. 수십년간 미함대의 주축이었던 전함부대는 2회의 공습으로 절름발이가 되었다. 함대 주력이 분쇄된 태평양함대는 필리핀의 함락을 저지할 수 없었고, 네덜란드령 동인도제도를 지키기 위한 노력에 한 줌의 소함대 외에는 지원할 여력이 없었다. 결국 일본군이 놀라운 속력으로 서부 태평양을 휩쓸며 급속하게 세력을 확장하는 동안 태평양함대는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이 세계 최강이라고 믿어 왔던 미해군으로서는 자존심이 짓뭉개지는 참담한 상황이었다.  만일 체스터 니미츠라는 걸출한 사령관이 나타나서 태평양함대의 침통한 분위기를 추스르고 사기를 진작시키지 못했다면 이 잔인한 1942년의 상반기 동안에 태평양함대의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그렇게 위축된 심리상태에서는 좋은 기회가 왔다한들 미드웨이 해전같이 모든 것을 걸고 한판 승부를 벌여 전략적 판세를 뒤집어 엎어버리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니미츠 제독도 태평양의 암담한 전황을 당장 극복할 방법은 없었고, 4월이 되자 상황은 더욱 암울해졌다. 네덜란드령 동인도제도가 일본군에게 무릎을 꿇으면서 호주가 일본의 침공 위협에 노출되었고, 미국 아시아 함대는 소멸했다. 필리핀의 바탄반도에서 농성 중이던 미-필리핀 연합군의 주력은 4월 9일에 항복했다. 말레이 반도와 싱가포르를 빼앗긴 영국은 버마에서도 일본군에게 쫓기면서 이제 인도가 공격당할까봐 전전긍긍하는 처지로 굴러 떨어졌다. 태평양의 정세는 말 그대로 파국적 상황이었다.  패배가 안겨준 4가지 중요한 깨달음  그러나 이런 참담한 패배를 겪으면서 니미츠 제독을 비롯한 미군 수뇌부는 4가지의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첫째로 전함의 시대는 끝났다는 것이었다. 일본과의 전쟁에서 이기려면 미국은 항공모함으로 제해권을 장악하고, 잠수함으로 남방자원지역과 일본본토와의 교통로를 차단해야 했다. 진주만의 연기가 걷히기도 전에 아군의 항공모함 세력을 보호하고 증강하는 동시에 적의 항공모함을 때려잡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라는 공감대가 태평양함대 내에 형성되었다.  둘째로 일본과의 전쟁은 미국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소규모의 네덜란드 군은 소멸했다. 결정적인 문제로서 영국 세력 또한 태평양에서 사라졌다. 영국 육군은 인도 방어에 전념하고 있었으며, 강력했던 영국해군은 동부 인도양과 태평양 전 해역에서 영향력을 상실하여 영연방인 호주나 뉴질랜드의 방어에도 기여할 수 없었다. 태평양 지역에서 영국 세력의 이러한 갑작스럽고 완전한 몰락은 상상도 못했던 사태였으나 엄연한 현실이었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우수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 없이 일본에 대항하기에는 인구나 산업규모가 턱없이 작았다.  셋째로 미국은 태평양에서 가장 중요한 두 지점 - 하와이와 파나마 운하 - 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파나마 운하는 일본군의 대규모 침공이 어렵다고 생각되었지만 진주만 공습을 경험한 하와이는 문제가 달랐다. 미국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하와이를 고수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방어력을 증강했다. 1941년 10월에 30,000 명이었던 하와이 주둔군은 1942년 4월까지 70,000 명으로 늘어났고, 조만간 115,000 명까지 늘어날 예정이었다. 미국은 필요하면 하와이 주둔군을 20만이고 30만이고 그 이상으로도 늘릴 용의가 있었으며, 미드웨이와 존스톤 섬 등 하와이 외곽을 둘러싼 기지들도 강화했다.  또한 미국이 일본에게 승리하기 위해서는 호주와 뉴질랜드가 필요했으며 이들을 지원하기 위하여 연락선을 확보하는 일이 중요했다. 호주는 1942년 2월말부터 일본군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는데 자국의 정예사단들은 중동에서 영국군과 함께 전투 중이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존 커틴 호주 수상에게 미국이 호주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보장으로서 이미 파견되어 있는 육군항공대와 소규모의 해군에 더하여 빠른 시간 내로 미육군의 정규보병사단 1개, 가능하면 2개를 파견하겠다고 약속했다. 호주에 미군사단을 전개한다는 것은 연락선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즉 호주와 하와이 사이의 피지, 뉴칼레도니아, 사모아 등지에 파견되어 있는 명목뿐인 호주와 뉴질랜드 수비대를 대체할 미군 병력들이 파견되어야 한다는 소리였다.  여기서 마지막 깨달음이 따라왔다. 즉 태평양에서의 병력 수요가 충당될 때까지 미국은 영국과 약속한 "독일 먼저"("German First") 원칙을 '유연하게' 해석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개전 6개월 후인 1942년 중반에 나치 점령 하의 유럽에 상륙하겠다는 전쟁 전 미국의 계획은 태평양의 골치 아픈 문제들이 없었다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일시적이나마 독일 우선 원칙을 뒤로 밀쳐둔다는 것은 극적인 방향전환이었다.  니미츠 제독의 부임  체스터 니미츠 제독은 이렇게 어렵고 중요한 시기인 1941년 12월 31일에 태평양함대 사령관으로 부임했다. 니미츠 제독은 어떤 기준으로 보아도 뛰어난 지휘관이었으며, 사람들을 다루는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태평양함대 사령관에 정식으로 취임하기 1주일 전인 1941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진주만에 도착하여 며칠간 태평양함대의 상황을 파악했다. 니미츠 제독은 태평양함대 장병들의 사기가 지독하게 떨어져 있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진주만 기습 이후 20일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으니 당연했다.  <태평양함대 사령관 체스터 니미츠 제독>   니미츠 제독은 1941년 12월 31일에 잠수함 그래일링 호의 갑판에서 취임했다. 그리고 그날 밤에 벌어진 취임 환영회 겸 송년회에서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던 폭탄선언을 했다. 즉 그는 기존 태평양함대 참모들 및 지휘관들을 전원 유임시키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연회에 참석했던 장교들은 진주만 기습으로 자신들의 경력은 끝났다고 생각했으며 취임 환영회를 자신들을 궁벽진 곳으로 좌천시키기 전에 신임 사령관이 베풀어주는 송별회로 생각했다. 그런데 니미츠 제독의 깜짝 발표가 있자 침울하던 장교들의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하면서 가라앉아 있던 환영회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이 소문이 태평양함대 내로 퍼져나가자 바닥까지 떨어져 있던 진주만의 사기가 하루아침에 뛰어올랐다.  니미츠 제독, 부하들의 존경과 신뢰를 얻다  이후 니미츠 제독은 약속을 지켰고, 몇몇 장교들이 이동했지만 대부분 진급을 위하여 필수적인 해상근무를 나가는 등의 일상적인 이동이었다. 니미츠 제독은 태평양함대 사령관으로 임명되기 직전까지 미해군의 인사를 담당하는 항해국장이었기 때문에 뛰어난 인재들이 태평양함대로 배속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진주만 기습은 이들에게 책임을 물을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이렇듯 니미츠 제독은 부하들의 존경과 신뢰를 얻고 그들의 능력을 이끌어내는 방법을 알고 있었고, 사령관 취임 직전까지 해군장교의 인사를 담당하는 항해국장을 지낸 데다가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근본적으로 니미츠 제독은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고, 그러한 인간관이 부드러운 인상과 관대하고 겸손한 태도로 나타났기 때문에 그를 만나본 사람은 친근하고 편안하며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겉모습과 달리 강인한 내면을 가지고 있어서 스트레스가 심한 상황에서도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이익과 위험부담을 계산하여 행동할 수 있었다. 평소 행동은 신중하고 조심스러웠으나 필요하면 대담하고 공격적으로 돌변했다. 또한 니미츠 제독은 자신의 직속상관인 킹 제독과 마찬가지로 조직화의 명수로서 조직을 통하여 임무를 달성했으며, 조직에 임무를 할당하고, 필요하면 조직을 만들고, 인물을 배치하고, 권한과 한계를 규정하고 조율하는데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태평양함대 사령관으로서 니미츠 제독은 자신의 뛰어난 조직화 능력을 통하여 자신의 개성을 태평양함대라는 거대한 조직의 구석구석까지 불어넣었다. 그의 지휘 하에서 태평양함대는 신중하고 용의주도한 면과 대담하고 공격적인 면을 동시에 갖춘 효율적이고 강력한 전쟁기구로 변모했다.  <미함대총사령관 겸 해군참모총장 어네스트 킹 제독>   니미츠 제독의 확신  니미츠 제독은 에섹스 급 항공모함이 쏟아져 나오는 1943년 후반기가 되기 이전에도 자신이 가진 항공모함 전력만으로 일본해군의 주력, 특히 일본의 항모기동부대를 충분히 격멸할 수 있다고 믿었다. 1942년의 전반기에 일본 항모기동부대의 능력에 대하여 모두들 히스테리에 가까운 공포심을 품고 있을 때에도 니미츠 제독은 자신의 항모기동부대 승무원들과 함재기 조종사들이 일본 항모기동부대와 맞서 대등하게 싸울 수 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물질적인 열세로 인하여 니미츠 제독은 일본해군에게 결전을 강요할 수 없었고, 일본해군의 움직임에 대응하면서 기회를 노리는 수밖에 없었다.  태평양전쟁 개전 당시 미해군이 보유한 항공모함 7척 중에서 일본의 정규항공모함들과 맞대결이 가능한 것은 시험적 성격이 강한 레인저를 빼고 6척이었다. 1942년 4월 1일 현재 6척 중 가장 작은 와스프는 아직 대서양에 있었고, 새러토가는 1942년 1월에 일본잠수함의 어뢰를 맞아 미 본토에서 수리 중이었으며, 가장 늦게 취역한 호넷은 곧 태평양으로 투입될 예정이었다.  니미츠 제독은 사용가능한 렉싱턴, 요크타운, 엔터프라이즈를 사용하여 1942년 2월과 3월에 태평양의 일본군 외곽 기지들을 공격했다. 이러한 공격은 일본군에게 큰 피해를 주지는 못했으나 항공모함 기동부대는 실전경험을 쌓고 사기와 공격정신을 강화시켰다.  일본국민과 군부에 충격을 준 둘리틀 공습  1942년 4월에 태평양함대는 미함대 총사령관 겸 해군참모총장인 킹 대장의 명령에 의하여 특이한 작전을 수행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태평양 전쟁 초기부터 진주만의 원수를 갚고 미국민과 미군의 사기를 높이며 일본인들에게 경고를 주기 위하여 일본제국의 수도인 도쿄를 공습하는 방법을 연구하라고 킹 제독을 압박했다. 도쿄를 공습할 수 있는 거리에 미군 비행장이 없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압박을 견디다 못한 킹 제독과 참모들은 항공모함에 항속거리가 긴 육군항공대의 B-25 쌍발폭격기를 싣고 도쿄 부근에 다가가서 이함시킨 다음 도쿄를 폭격하고 중국으로 향한다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리하여 태평양으로 파견되는 신예항공모함 호넷이 샌디에고에서 B-25 쌍발폭격기 16대를 싣고 태평양함대에서 파견한 항모 엔터프라이즈의 호위를 받으면서 도쿄 부근으로 다가가서 이함시켰다. 제임스 둘리틀 육군중령이 지휘한 이 B-25 쌍발폭격기들은 도쿄를 공습하고 중국으로 도주했다.  '둘리틀 공습'이라고 불린 이 도쿄 공습으로 일본이 입은 물질적 피해는 미미했다. 하지만 대낮에 미군 폭격기에 의하여 수도인 도쿄가 공습당했다는 사실이 일본국민과 군부에 준 충격은 어마어마하여 차기 작전 방향을 두고 대립하고 있던 일본군 수뇌부의 혼란상황을 끝내고 야마모토 제독의 손을 들어 주었다. 그리하여 둘리틀 공습은 맞수인 일본 연합함대의 야마모토 제독과 미국 태평양함대의 니미츠 제독이 서로 바라던 기회, 즉 상대방의 항모기동부대를 말살해 버릴 수 있는 결전장인 미드웨이 해전으로 두 사람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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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롱부리던 너구리를 사살한 경찰, 격분한 주민들
12월 초, 독일 에르푸르트에서 거리에 너구리가 당당하게 등장했습니다. 거리에 버려진 와인을 마시고 취한 것입니다. 술에 취한 너구리는 자신을 구경하던 여성에게 걸어가 신발을 만지작거리고 장난치며, 주변 사람들에게 큰 웃음을 주었고 이는 트위터를 통해서도 널리 퍼졌습니다. 사람들과 놀던 너구리는 술기운이 밀려와 결국 한 건물 앞 계단에 누워 잠이 들었고, 곧 출동한 경찰에 의해 포획돼 어딘가로 이송됐습니다. 사람들은 미소를 지으며 끝까지 실려 가는 너구리를 배웅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귀여운 에피소드 정도로 끝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보호소로 이송될 거로 생각했던 너구리는 사냥꾼에게 넘겨져 총으로 처형되었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해지자 독일 사회는 큰 충격을 받고 격분했고, 여론이 악화하자 경찰은 급하게 너구리를 총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해명했습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관계자는 독일의 동물 보호소는 일반 가정에서 키우는 반려동물만 수용 가능하여 너구리를 돌볼 수 없었으며, 어쩔 수 없이 이를 사냥꾼에게 넘겨야 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너구리는 귀여운 외모와 달리 공격성이 강하고 광견병 등의 질병을 다른 동물에게 옮길 수 있기 때문이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해명에도 주민들은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해결책"이라고 비난하며 "너구리를 죽이는 데 의사결정에 관여한 모든 사람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숲으로 다시 돌려보는 게 그토록 어려운 결정이었을까요? 꼬리스토리가 들려주는 동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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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MIX People's Choice Award에서 2019 올해의 최고의 야생동물 사진작가 상을 선정하기에 앞서 최종 후보 명단과 작품을 공개했습니다. *작품 제목은 꼬리스토리가 각색했습니다. 1. 부성애  캐나다, Martin Buzora 사진 속 남성은 케냐 북부에 있는 Lewa Wildlife Conservancy의 경비원으로, 밀렵으로 어미를 잃은 아기 코뿔소를 사랑스럽게 돌보고 있습니다. 아기 코뿔소를 바라보는 경비원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사랑과 애정이 부성애 못지않네요. 2. 어둠 속의 댄서 영국, Sam Rowley 샘 로울리는 이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영국 지하철에서 며칠 동안 누워 밤을 지새웠다고 합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쥐 두 마리가 음식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얼핏 보면 다투는 게 아니라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죠? 3. 역시 우리 엄마야  독일, Marion Vollborn 캐나다 나키나 강가 근처에서 엄마 곰과 아기 곰을 발견했습니다. 엄마 곰은 나무에 등을 대고 몸을 흔들며 등 긁는 법을 알려주었고, 곧 아기 곰도 엄마를 따라 나무에 등을 긁기 시작했습니다. 역시, 우리 엄마는 모르는 게 없네요! 4. 낮잠 끝, 장난칠 시간 미국, Steve Levi 엄마 곰이 두 어린 새끼들과 놀아주는 모습입니다. 이 사진을 촬영하기 바로 전까지만 해도 두 아기 곰은 낮잠을 자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눈 뜨자마자 투닥거리며 놀고, 그런 아기의 재롱을 받아주는 엄마 곰의 모습이 아름다웠다고 하네요! 5. 널 믿어 독일, Ingo Arndt 작가는 칠레 파타고니아 토레스 델 페인 국립공원에서 사진 속 퓨마를 2년 동안 관찰하며 따라다녔습니다. 야생 동물에게 낯선 존재는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한 존재인데요. 2년 동안 얼굴을 익히다 보니 신뢰가 쌓인 걸까요? 퓨마는 작가를 힐끔 보고는 그대로 낮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6. 자연이 아름다운 이유 케냐, Clement Mwangi 케냐의 마사이 마라 국립 보호구역에서 엎드려있던 표범이 엉덩이를 긁으며 주변을 살피고 있습니다. 매일 생명이 태어나고 사라지는 이 야생에서 이 여유로운 순간이 그토록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입니다.  7. 떠들지 마세요! 스페인, Salvador Colvée Nebot 황조롱이 한 마리가 죽은 나무에 걸터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꾸 까치들이 근처에 날아와 시끄럽게 공공장소에서 소란을 피우네요. 황조롱이가 매너 없게 떠느는 까치들이 무척 신경 쓰이나 보군요. 제발 조용히 좀 해달라고요! 8. 바다의 미소  미국, Jake Davis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그레이트 베어 레인포레스트 앞바다에서 배를 타고 이동 중 사냥하는 혹등고래를 발견했습니다. 물고기를 한곳으로 몰기 위해 빙빙 원을 그리다 바닷속으로 잠수 했습니다. 수면 밖으로 살짝 나온 꼬리가 마치 프링글스 아저씨의 수염 같군요? 9. 내가 앞에 들께, 엄마가 뒤에 들어 레바논, Michel Zoghzoghi 브라질에서 엄마 재규어와 아기 재규어가 사이좋게 먹이를 물고 집에 가고 있습니다. 두 재규어가 입에 물고 가는 건 아나콘다라고 하는데요. 혹시 훈련 중이었을까요? 아기 재규어의 몸집에 맞는 작은 크기의 아나콘다네요. 10. 사랑과 죽음 이탈리아, Marco Valentini 헝가리의 호토바기 국립공원에서 황조롱이들이 사랑을 속삭이고 있습니다. 수컷은 암컷에게 도마뱀을 선물로 주며 고백을 하자, 암컷이 수줍게 황조롱이의 손을 잡고 있습니다. 죽음과 사랑을 동시에 담은 사진으로 어느 쪽의 입장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느낌이 상반될 것 같네요. 그렇죠? 11. 마못 가족의 외출 오스트리아, Michael Schober 마못은 땅속 굴에서 지내며 단체생활하는 동물입니다. 겁이 무척 많아 독수리 같은 포식자가 나타나면 소리를 질러 동료들에게 경고신호를 줍니다. 아니 그 마못들이 단체로 육지로 나오다니 가족사진이라도 찍는 걸까요? 12. 무책임한 보호 정책 스웨덴, Marcus Westberg 중국 산시의 한 보호소에서 지내는 자이언트 판다의 모습입니다. 작가는 중국이 판다 개체 수만 늘리는 1차원적인 정책을 비판하기 '우리에 갇혀있는 판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는데요. 그는 판다를 보호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판다 서식지를 보호하고 늘리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판다가 야생에서 살아갈 곳도 없는 상태에서 개체 수만 늘리는 중국의 정책이 올바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 것이죠.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또 어떤 사진이 제일 감동적이신가요? 어떤 사진에 눈길이 머물렀고, 또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꼬리스토리가 들려주는 동물 이야기!
잃어버린 반려견과 마주친 소년의 반응 'Marry Christmas!'
캐럴이 울려 퍼지며 크리스마스의 들뜬 분위기 거리를 메우고 있지만, 장난꾸러기 소년 카터는 전혀 기쁘지 않아 보입니다. 최근 사랑하는 반려견 파이퍼를 잃어버렸기 때문이죠. 한 달 전, 카터가 가족과 함께 휴가를 떠났을 때 휴게소에서 화장실에 들른 사이 파이퍼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카터의 엄마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우리 가족 모두가 파이퍼를 사랑했지만, 큰아들 카터는 파이퍼를 유독 좋아했어요. 카터에겐 정말 힘든 시기였을 거예요." 가족은 주변을 샅샅이 찾아 돌아다녀보았지만 파이퍼는 보이지 않았고, 주변을 뛰어다니던 카터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습니다. 파이퍼가 실종된 기간이 길어지자 가족은 조금씩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죠. 문제는 카터가 점점 미소를 잃어간다는 것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었지만 카터는 항상 우울한 표정이었으며 크리스마스 나무를 장식할 때에도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얼마 전, 카터의 엄마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바로 파이퍼를 찾았다는 보호소의 연락이었습니다! 카터의 엄마와 아빠는 보호소로 달려가 파이퍼를 발견하고 기쁨의 인사를 나눈 후, 지금도 슬퍼하고 있을 아들 카터를 위해 서프라이즈를 계획했습니다! 엄마는 파이퍼와 함께 카터가 하교하는 시간에 맞추어 학교로 마중 나갔습니다. 종이 울리자 학교에서 학생들이 쏟아져나왔고, 멀리서 카터가 차를 향해 걸어왔습니다. 차로 걸어오던 카터가 차 안에 있는 파이퍼를 발견한 순간! 너무 놀란 카터는 제자리에 우뚝 서 한참을 바라보고는 차 안으로 들어와 파이퍼를 꼬옥- 껴안고 눈물을 터트렸습니다. 카터의 엄마는 이 영상을 SNS에 공개하며 말했습니다. "우리 가족에게 크리스마스 기적이 찾아왔어요. 카터는 매일 밤 파이퍼와 함께 잠듭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크리스마스가 될 것 같네요!"  꼬리스토리가 들려주는 동물 이야기!
참한 척하던 아기 고양이 눈빛 돌변
미국 휴스턴에서 네 마리로 구성된 엄마와 아기 고양이 일가족이 보호소에 입소했습니다. 그런데 그중 한 아기 고양이는 코 근처에 두 개의 진한 점이 있었습니다. 마치 코딱지가 낀 것처럼 말이죠. 바로 막내 고양이 버터넛(호두)입니다. 그런데 버터넛을 비롯한 형제들은 세상을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무지개다리를 건널 위험에 처했습니다. 보호자가 나타나지 않자 안락사 명단에 올린 것이었죠. 다행히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활동하는 구조대가 이 소식을 접하고 휴스턴으로 날아가 버터넛과 형제들을 무사히 데려왔습니다. 버터넛을 비롯한 형제들은 자원봉사자 레인 씨가 돌보고 있습니다. "버터넛은 처음엔 무척 수줍음이 많아서 시간이 필요했어요." 코딱지가 낀 것만 같은 버터넛은 집에서 얼굴만 살짝 내밀어 바깥을 살피곤 다시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온종일 낮잠을 자고 아련한 표정으로 일어나 바깥을 살피고 조용히 엎드려 있었습니다. 레인 씨가 장난감 방울을 버터넛 앞에 흔들어 보아도 고개만 까닥거릴 뿐 쉽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반면, 그의 형제들인 포테이토(감자)와 터키(칠면조)는 눈 뜨는 시간 대부분을 뛰어다니며 보냅니다. "조용하고 소심한 버터넛이 걱정됐어요. 하지만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할 뿐 버터넛 역시 무척 까불거리는 녀석이라는 게 드러났어요." 어느 날과 같이 레인 씨가 장난감 방울을 버터넛 앞에 살살 흔들자, 버터넛의 눈빛이 순식간에 돌변했습니다. 평소였다면 조용히 집안으로 들어갔을 버터넛이 네 발가락을 꼿꼿하게 혀고 번개처럼 달려들었습니다! 방울을 흔드는 레인 씨의 팔이 아플 때까지 집요하게 달려들던 버터넛은 포테이토와 터키가 나타나자 고개를 홱 돌려 노려봤습니다. 그리곤 형제들을 향해 화난 들소처럼 돌진했죠! "저 장난기를 그동안 어떻게 참아왔는지 모르겠네요. 후훕!" 현재 버터넛은 형제들의 머리채를 쥐어뜯고 꿀밤을 주고받으며 하루하루 용감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장난이 끝난 버터넛은 레인 씨에게 아장아장 다가와 무릎 위에 눕습니다. 레인 씨가 머리를 긁어주면 다시 평화로운 낮잠에 빠집니다. 레인 씨를 비롯한 구조대는 버터넛을 비롯한 형제와 엄마 고양이에게 새 가정을 찾아주기 위해 알아보는 중이지만, 설령 가정을 찾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평생 행복한 삶을 보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꼬리스토리가 들려주는 동물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