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ang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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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책 이민 가나요?

잘가 멀리안나간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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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동이같은놈을 뽑아주는 동네에 뭘 기대하니?
꺼져라!!
안산은 답 없는 동네
@pram0924 안산 역전했엉^^
# 이번에 깝치다가 사라지는 잉여들 황교안, 나경원, 오세훈, 김태우, 김용태, 김현아, 정우택, 이언주, 김진태, 이은재, 지상욱, 이혜훈, 이준석, 오신환, 전희경, 민경욱, 박종진, 심재철, 김영환, 주광덕 / 녹색당, 여성의당 ᆢ 통쾌하구나ㅋㅋ # 생명력까지도 바퀴벌레같은 것들 태구민, 김은혜, 주호영, 배현진, 정진석, 하태경, 김도읍, 곽상도, 홍준표, 권성동, 장제원, 김태호, / 윤주경, 권은희, 류호정, 김예지 ᆢ 얘네들 생각하면 내가 낸 혈세가 아깝다 ㅉㅉ 윤주경 친일한테 붙었다고 니 할아버지가 참 좋아하시것다 ㅉㅉ 김예지 얘는 무슨 눈도 안보여서 지몸도 못가누는게 뭔 정치냐 참 미친똥합당의 이미지 정치는 하여간 탈북한 빨갱이도 의원시켜주질 않나 ᆢ 태구민 검증된거 맞냐?
@Skella 원유철도 사라지네 ㅋㅋ
미친똥합당 원내대표 당대표 모두 나가리 ㅋㅋㅋ
@Skella 반분이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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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모든 신하들이 짐을 망쳤다." 죽기전에도 신하들 때문에 망했다고 얘기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스스로는 잘못한 게 없다는 고집스런 성격을 대변하기도 하지만, 또한 실망의 심정도 담고 있다고 할 것이다. 너희 신하들이여, 대대로 국가의 은혜를 입었으면서...가장 너희들이 필요할 때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구나, 헛되히 너희를 먹여살렸구나." -명사 장열제 본기 이때 보통 사실상 명나라가 망했다고 평가합니다만 사실 망한게 아니었죠. 아니 당시 명나라는 멸망하는게 말이 안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명나라는 중국 최초로 양자강 이남에서 건국하여 천하를 통일한 왕조입니다. 주원장이 건국한 원래 수도는 북경이 아니라 남경이었습니다. 때문에 영락제 시절 북경으로 수도를 이전 한 이후에도 옛 수도인 남경에는 작은 조정과 작은 정부를 만들어 운영했습니다 (북경함락 이후 남명정부 세력 이자성 세력 판세) (화북 상실 후 남송, 그리고 화북 상실 후 남명 형세)  때문에 북경이 함락이 되었다고 한들 남경에 정부가 이미 있고 재건할 기반도 충분히 있습니다. 당연히 역사적으로 서진이 망하고 동진이 세워지고 북송이 망하고 남송이 세워졌듯 남명이 세워지는게 자연스런 이치인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 중국의 모습과 현대사가 전부 바뀌었을지도 모르죠 다만 명나라는 이전의 국가들과 다르게 나라가 완전 개씹 막장 개판이라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습니다. 일단 남경 정부에서 새로 황제를 옹립하고자 하는데 그 유력 후보가 복왕 주유승입니다. 이전에 낙양에서 농민반군에게 잡혀서 삶아 죽임을 당한 복왕 주상순의 아들입니다. 황위 계승서열이 가장 높아서 옹립을 해야하는데 신하들의 가장 큰 고민이 생깁니다. 그 아버지 복왕 주상순이 탐욕스러운 돼지였듯 아들 복왕 주유승 역시 멍청한 새퀴였단 것입니다 나라가 풍전등화인데 당연히 똑똑한 노왕을 옹립해야 한다. 아니다 나라가 위기일 수록 정통성 있는 복왕 주유승을 옹립해야 한다. 이미 망한 나라의 피난 정부 신하들이 그와 중에 당파로 나뉘어 당파싸움을 하고 자빠집니다. 그러다 결국 복왕 주유승이 남경에서 즉위하게 되니 남명 홍광제입니다. (남명 정부 시절 세력 이동) 사실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사명이 있으니 사람이라면 당연히 정신차리겠지라는 그런 소박한 희망을 품을 법합니다. 신하들도 제발 그러길 빌었고 그럴거라고 여기며 옹립하게 된 것이죠.  하지만 그럴리가요.. 홍광제가 즉위하자 하는 짓이 놀라운 광경을 보여줍니다. 지금 나라가 망하고 겨우 남경에서 연명하는 처지죠. 아니 당장 북쪽에 아버지의 원수 이자성의 농민 반군 있고 청나라 군대가 산해관을 돌파해 남하하는 급박한 그 와중 입니다  기가막히게도 후궁을 왕창 뽑고 궁궐에서 술판을 벌이며 쳐 놀기 시작을 합니다. 이 짓거리를 남경이 함락되는 그날까지 하죠 (나라도 막장인데 황제는 더 막장인 것은 명나라 후기의 전통인듯) 홍광제의 술판에 대한 아름다운 고사가 전해집니다. 나라가 망했는데 임시정부에서 옹립한 황제가 매일 술판을 벌이니 신하 유종주가 통곡을 하며 술을 먹지 말라고 간언합니다. 진심어린 충언을 듣자 홍광제가 반성한다고 위로한 후 그럼 한 잔씩만 마시겠다 하죠 이후 금으로 커다란 술잔을 만들어 한잔씩 먹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반만 마시고 아직 한잔이 안되었다며 첨잔하여 마시니 주량이 더욱 늘었다고 합니다. 이런 비슷한 술잔 농담 이야기는 이전 중국왕조에도 있었고 조선시대에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시절의 술잔 늘리기는 평시에 일어난 해프닝 정도인 반면 당시 남명은 당장 나라가 망하는 중이었단 차이가 있죠 그럼 신하들은 정신을 차렸는가? 아니 나라가 망했는데 무슨 가질 권력이 남아 있다고 그 와중에 권력 쟁탈전이 벌어집니다. 최전선에서 주력군을 이끌고 양자강을 방어하는 장군 좌량옥과 남경의 신료 마사영간의 권력 다툼이 발생했죠 급기야 좌량옥이 양자강 수비군을 이끌고 남경을 공격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결국 이를 막는다고 싸우다 양자강 방어군 태반이 증발해 버렸습니다. 사실 장군들도 쓸모 없기는 매한가지 입니다. 강북 4진이라 불리워지는 남경을 수비하는 중요 방어거점의 장군들은 땅을 수복할 생각은 전혀 없었죠. 나라가 망하는 그와중에 재물을 탐욕하며 남경 정부에 돈을 보내달라 식량을 보내달라 보채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남명 정부가 지원을 안보내 준 것도 아닙니다. 1년치 군량이 240만섬인데 1년 반치 군량인 340만섬을 보냈습니다. 그것도 단 4개월만에 전부 쏟아 부어서 지원해 주었죠. 근데 돌아오는 건 탐욕에 쩔은 장군들이 전투도 안하면서 돈만 계속 달라 하니 미치는 노릇입니다.  이 와중에 가장 중요한 거점인 양주를 수비하는 사가법 장군만 다행히도 제정신을 가진 정상인이었습니다. 묵묵히 청나라 군대를 온전히 혼자 막으며 버티었을 뿐입니다 아니 그럴수 밖에 없는게 양주가 함락되면 바로 남경이 함락되는 상황이라 못 막느면 진짜 나라 망하거든요. 그야 말로 필사적으로 수비했던 것이죠 남경에 구원군을 보내달라고 매일 애타게 부르짖으며... 그리고 남경 정부는 구원병을 안보냅니다...??? 좌량옥 처럼 전방 장군들의 군사력이 강해지면 위험하다는 이유입니다. 그 다급한 와중에 정치질하며 사가법을 견제하고 자빠지는 위엄을 보여주죠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인데 아득바득 수십 일을 버티다 결국 양주성이 함락되고 사가법은 순국하였습니다.  당시 청나라 군대는 엄청난 피해를 주며 항전한 양주성에 10일간 대학살을 벌여 보복을 합니다. 자그만치 80만명이 살육을 당했고 훗날 양주십일기라고 이때 학살을 담은 무시 무시한 기록이 남죠 그리고 당연한 수순으로 남명 정부가 끝장이 납니다. 사가법의 양주성은 남경을 방어하는 목숨 줄과 같은 성이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방어선이 사라졌으니 나라는 망한거고 곧 남경성으로 청군이 들이닥친 것이죠  홍광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환관들과 몰래 남경을 빠져나와 도망을 쳤습니다. 그러다 무호 라는 지역에 이르는데 그곳을 지키던 장군 황득공을 만납니다. 또 다행이 그도 정상인이라 목숨을 바쳐 황제를 보호하고 항전을 하겠다 다짐하였는데 그게 통할리가요... 그 부하장수 전유승과 마득영이 황제를 사로잡아 투항하면 큰 포상을 받을 것이라 여겨 상관인 황득공을 뒤에서 죽여 버립니다. 그리고 홍광제를 산채로 잡아 청나라에 투항합니다. 홍광제는 전유승과 마득영에게 울고불고 사정하며 제발 살려 달라고 빌고 또 빌었는데 전혀 먹히질 않죠. 큰 보배를 잡았는데 행여 도망칠까봐 마치 돼지를 잡은 것 처럼 통나무에 손과 발을 묶어 매달아 끌고 갔다고 합니다. 그렇게 홍광제는 청나라에 끌려가 북경에서 비참하게 참수 당했습니다.   그럼 황제가 몰래 도망간 남명 왕조의 수도 남경성은 어찌 되었을까요? 북경성에서 벌어진 장면이 똑같이 재현이 됩니다. 청나라 군대가 도착하자 성문을 열고 백관이 나와서 향을 사르며 성에 입성하는 청나라 군대를 환영한 것이죠. 바로 얼마 전까지 남명 조정에서 권력쟁탈전을 벌이고 누가 충성이니 누가 반역이니 하며 싸우던 신하들입니다. 그 고명하신 고관대작들은 이제는 청나라 군대를 환영하며 청나라 황제 만만세를 불렀습니다.  그 어이없고 치욕스런 장면을 두고 이를 지켜보던 남경성의 한 거지만이 비분강개해 외쳤으니 "사대부를 삼백년 간 길렀다는 나라인데 내가 비록 거지로 천한 신분이라지만 이런 치욕을 어찌 볼 수 있느냐!!" 관리와 사대부들을 욕하는 말을 남기고 다리에서 몸을 던져 자결을 했습니다 남명 정부가 세워지고 홍광제가 즉위한지 딱 1년만의 일입니다. 이전 왕조의 후손 조차 목숨으로 의리를 지키며 충성을 다한 송나라 일개 거지 조차 치욕스러워 했을 정도로 너도 나도 나라를 팔아먹은 명나라 끝. 펌) 출처 두나라의 끝이 이렇게 다르다니. 명은 추함이 눈을 뜨고 보기 힘들 지경인 반면 송의 마지막은 안타깝기 그지없구려. 몽골의 힘은 정말...!
뉴스저작권 지키라더니.. 기자들은 이렇게 해도 되나?
*이 포스팅은 지난 뉴스저작권 인식조사 결과 발표와 관련한 포스팅 [언론사 기자에게 동의를 구하고 뉴스를 이용했는데 합법이 아니라고?]에 @wlhk1 님께서 댓글로 남겨주신 질문 3가지에 답변드리는 것입니다. (댓글 답변이 아닌 포스팅을 통한 답변으로서 추후 이에 문제가 발생될 시 포스팅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 먼저 "기자들이 뉴스를 베껴 쓰는 것은 저작권법 위반인가요?"라고 질문해주셨습니다. 이후 세부적인 3가지 예시를 들어주셨고 이에 저작로 6번지는 추후 '뉴스저작권지킴이 간담회'와 '한국언론진흥재단 뉴스저작권팀' 연락을 통해 각기 답변을 받았습니다. Q1. 기자들이 출처 없이 비슷한 내용을 쓰는 것, 뉴스저작권 위반인가요? 3가지의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1) 연합뉴스의 자료를 받아 쓴 경우 2) 동일한 보도자료를 받아 쓴 경우 여러 동일한 내용의 기사들이 어디서든 우후죽순 생긴다면 주로 2)일 가능성이 큽니다. 3) 기자가 자료 없이 그냥 베낀 경우 언론 보도 목적이라면 뉴스저작권 위반은 아닙니다. 다만 칼럼, 오피니언 등을 베꼈다면 이는 처벌의 대상이 됩니다. 3가지의 경우 모두 뉴스저작권 위반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아직 베낀 것에 대한 기준이나 법상 체제가 뚜렷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긴 합니다. Q2. 기자들이 해외 신문들 기사를 출처 없이 번역만 해서 가져온 것, 뉴스저작권 위반인가요? "외국 신문기사를 번역한 것은 2차적 저작물로서 원저작물과는 별도의 저작물로서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이와 같이 번역하기 위해서는 비영리를 목적으로 할지라도 원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아야 추후 2차적저작물작성권(법 제22조) 침해 문제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또한 번역한 것을 인터넷 등에 올리기 위해서는 복제권·공중송신권(법 제16조, 제18조)에 대한 허락도 받아야 합니다. 만약 외국 기사가 육하원칙에 근거한 사건사고보도 수준에 불과한 문장이라면 저작권 보호를 받지 못하는 저작물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를 그냥 번역하여도 저작권 침해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출처 : [저작권위원회][이용안내][FAQ][해외뉴스 번역과 저작권 침해] 아직 해외신문에 대해서까지 한국언론진흥재단 뉴스저작권팀이 모니터링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 걸리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는 있습니다. 다만 '무단' 복제하여 번역하는 것은 명시적으로 따졌을 때 위법입니다. 저작권법상 보호를 받지 않는 '사실보도에 불과'한 기사라면 번역에 문제가 되지 않지만 대부분은 기자의 창작성이 들어간 엄연한 저작물이기 때문에 사전 이용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Q3. 커뮤니티 글들을 사실관계 확인 없이 비슷하게 가져온 것, 뉴스저작권 위반인가요? 신문법 제3조(신문 등의 자유와 책임) ② 신문 및 인터넷신문은 제1항의 언론자유의 하나로서 정보원에 대하여 자유로이 접근할 권리와 그 취재한 정보를 자유로이 공표할 자유를 갖는다. 이처럼 기자가 '취재 과정'에서 '보이거나 들리는 것'에 대해서는 쓸 수 있기 때문에 커뮤니티에서 취재 자료를 가져오는 게 위반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다만 신문법 제3조 제3항 "신문 및 인터넷신문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민주적 기본질서를 존중하여야 한다." 이것이 지켜지지 않음으로써 기자의 커뮤니티상 글을 사용한 기사로 인해 손해가 발생했다면 '민법상 손해배상'을 걸 수는 있다고 합니다.
같이 해요) 코로나 시국 환경에 대한 고민
나가서 사람을 만나기 보다는 집에서 혼자 여가를 보내는 날이 대부분이다보니 생각보다 내가 쓰레기를 생산해내는데 굉장한 재능을 지닌 인간이구나 싶더라고요. 내가 쓰레기계 마이다스의 손이었다니! 재활용 쓰레기라고 마음을 놓기에는 재활용 쓰레기 분류 작업이 더 품이 많이 들어서 결국 대부분은 버려진다는 '재활용'이라 불리는 그냥 쓰레기들... 요즘 지구가 엉망이라는, 정확히는 인간이 살기 점점 어려워지는 지구가 돼가는듯한 현상들도 보이고(feat.그치지 않는 대형 산불과 녹아가는 극지방의 빙하...) 1. 2. 미안해.. 인간이 미안해.. 그러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1. 배달 음식을 웬만하면 덜 시킨다 2. 소장중인 저장 용기를 식당에 들고가 담아 온다 ㅋㅋ 3. 택배로 장을 보지 말고 직접 마트에 가서 장을 본다 4. 장볼때 장바구니를 챙겨간다 5. 텀블러를 챙겨 다닌다 (커피숍에서 내 텀블러에 음료를 받는다) 6. 택배박스는 테이프까지 다 제거해서 접어서 내놓는다 7. 배달 용기는 깨끗이 씻어서 내놓는다 8. 술병 등 빈병 보증금 대상 유리병은 소매점에 제출한다 9. 페트병에 붙은 라벨지와 뚜껑은 다 분리해서 배출한다 10. 고기 섭취를 줄인다 (제일 어려움...) 이정도 생각나는데 또 뭐가 있을까요? 9년째 사용중인 텀블러 우선 제일 쉬운 건 텀블러에 음료 담아 다니는 거! 이거는 까먹지 않으면 항상 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택배 박스 테이프 제거나 페트병 라벨지 제거도 매번 하고 있는데 같이 실천하고 고민하고 서로 북돋아주는 사람들이 많으면 더 힘이 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톡방을 하나 만들어 봤습니다. 같이 실천하고 인증하고 고민할 사람들, 혼자서는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사람들 여기 모여서 같이 해보는 거 어때요? 작은 거라도 실천했으면 인증샷도 올리고 칭찬도 받고 칭찬도 해주고 ㅋㅋ 빙글 둘러보다보니까 환경에 대해 고민하는 분들이 보이던데... 같이 하면 좋지 않을까요! 같이 해봐요!! 오세요! 여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