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aubon
1,000+ Views

페레힐 / 라일라 섬 사건(2002)

금요일은 역사지. 이 사건은 내가 모로코에 살던 시절 일어났던 일인데, 당시의 나님은 살고 있던 나라에 대해 별로 잘 알고 있지 못 했었다. 갑자기 생각나서 찾아봤더니 이 영토분쟁(?) 또한 기나긴 사연과 복잡한 관계를 갖고 있었다. 뭐 하나 간단한 일은 없다. 최대한 간단한 설명은 있을 수 있더라도 말이다.

우선 짤방의 지도(참조 1)부터 보자. 왼쪽 상단에 빨간색 원 안에 그려진 섬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 페레힐(Perejil)/라일라(ليلى, 참조 2) 섬이다. 자, 2002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모로코의 해안경비대 선원이 모로코 땅에서 200m도 안 떨어진 저 섬에 모로코 깃발을 두 개 꽂았고, 스페인 해안경비대 순찰선이 이를 발견한다.
며칠 후, 모로코는 아예 해병대를 보내서 이 섬을 점령하고, NATO는 모로코에게 경고를 때린다. 그리고는 처음 점령된지 1주일 후, 스페인은 Romeo-Sierra(참조 3) 작전을 개시, 육해공군을 모두 동원했다. 전투기를 날리고 해군 함정을 보내고 육군을 보내어서 간단하게 모로코 해병대를 제압시킨다. (사상자는 없었다.)

(모로코 병사 12명 잡으려고 육해공을 다 동원한 것인지라, 너무 오바해서 대응했다는 비판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이틀 후, 역시나 최종 보스이신 미국이 개입한다. 콜린 파월 미국 국무장관이 중재를 맡았고, 결국은 그냥 이전 상태로 되돌리기로 한다.

--------------

위에서 언급했지만 지브롤터 해협에 속해 있는 이 섬은 모로코 땅으로부터 불과 200여 미터밖에 안 떨어져있다. 스페인이 북아프리카 해안선의 여러 섬들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 이제서야 세상에 알려졌다.

그렇지만 가까우니 내 땅이오, 하는 주장이 과연 맞말인가… 하면 잘 모르겠다가 정답이다. 이 섬은 예나 지금이나 완전히 무인도이며(암석만으로 이뤄져있으며 축구장 14개 정도 크기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600년 전 포르투갈이 세우타(Ceuta)를 점령하면서 같이 영토에 편입시켰었다. 그랬다가 잠시 포르투갈과 에스파냐 왕실이 합쳐졌고, 그 후에는 스페인 왕국의 영토가 됐다.

즉, 현 모로코 왕조가 생기기도 훨씬 전부터 “스페인의 영토”였다는 의미다. 물론 모로코측의 설명은 스페인이 군대를 동원해서 무력으로 빼앗은 것으로 되어 있다(그러나 전투 기록은 없다). 다시 말하지만 19세기-20세기의 제국주의 시절 스페인이 얻은 땅이 아니다. 15세기 때부터 갖고 있던 땅이며, 특히 세우타와 멜리야는 그 후에도 숱하게 아랍-베르베르의 포위와 침략을 받았지만 다 이겨냈었다.

--------------

미묘한 것은, 어째서 모로코가 2002년에 도발했느냐이다. 주된 설명은 당시 모로코 국내 언론으로부터 엄청나게 두둘겨 맞고 있던 국왕 무하마드 6세(참조 4)를 구하기 위해, 외국을 이용한다…였다. 99년 재위 오른지 얼마 안 되어서 이리저리 놀러다니는 꼴만 보였었기 때문이다. 물론 명확히 밝혀진 것은 현재까지 없다.

또 한 가지 재미난 것은 관련국들의 반응이다. 모로코는 서부사하라 및 알제리 문제 때문에 식민지를 당했다 하더라도 프랑스와의 관계가 매우 좋다(참조 5). 그래서 그런지 이 사건을 두고, 유럽연합은 일제히 스페인을 지지했는데, 여기에 프랑스가 빠졌다. 그래서 EU의 성명은 맥이 빠진 채였다. 말인즉슨, 실제로 전투에 나설 경우 스페인 혼자 나설 가능성이 높았다는 얘기다.

아랍연맹은 당연히 모로코를 지지했었는데, 여기에서는 알제리와 시리아가 빠졌다. 친-서방 국가인 모로코에 반대하기 위함이기도 하고, 알제리는 모로코와 숙명의 라이벌, 그런 관계이기도 하며 서부 사하라 문제(폴리사리오 독립문제)가 걸려 있어서였을 것이다. 이 사건에서 알제리는 스페인을 지지하지는 않더라도 모로코가 잘못했다며 모로코를 비난했다(참조 6).

따라서 오늘의 교훈, 식민관계도 단순하지 않다는 얘기다. 이면을 보면 어느 한쪽을 손들어주기 매우 어렵다. 물론 내가 모로코 시민이라거나 스페인 시민이었다면 전혀 다른 얘기가 되겠지만 말이다.

--------------

참조



2. 영문 위키피디어에서는 명칭이 마다누스(معدنوس) 섬이라 나오지만 무함마드 6세 국왕은 당시 이 섬을 별도로 “투라(تورة, 베르베르어로 “무인도”의 뜻‎)”라 불렀으며, 내가 살던 당시 모로코 언론들은 대부분 라일라 섬이라 칭했었다. 정식 명칭은 라일라 섬이 맞으며, 아랍어 위키피디어에서는 “투라” 혹은 “레일라”로 나온다.

3. 작전명이 어째서 단순한 NATO 음성 문자(NATO phonetic alphabet)로 되어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없다. 추측으로, “주권 회복(Restaurar Soberanía)”의 약자였다는 설이 있다.

4. 아이러니컬하게도 독재와 귄위주의적이었던 부왕 하산 2세와는 달리, 무함마드 6세는 탈권위, 리버럴리즘을 추진하고 있었고, 스페인의 프랑코 이후 시대를 모델로 삼고 있었다. 당연히 국내적으로 반대가 아주 컸기 때문에 국내 정치적 음모에 맞서기 위해서…라는 해석이 있는 것이다. 지금은? 노 코멘트.

5. 가령 모하메드 6세가 국왕이 된 다음 맨 먼저 방문한 나라가 프랑스였다. Relations bilatérales: https://www.diplomatie.gouv.fr/fr/dossiers-pays/maroc/relations-bilaterales/


casaubon
4 Likes
1 Share
Comment
Suggested
Recent
독도 생각이 나네요. 물론 소유국은 반대(?) 상황이긴 하지만...
Cards you may also be interested in
벨라 챠오
넷플릭스의 드라마 시리즈 중, “종이의 집”을 좋아하는데(나의 넷플릭스 아이콘이 “엘 프로페소르”) 그중에서도 제일 인상 깊은 건 바로 노래였다. Bella Ciao(참조 1), 드라마와 아주 잘 어울려서인데, 이 노래 자체가 사연이 많다. 바로 또 다른 주말 특집. 참고기사: ‘Bella Ciao’, a história por trás do hino da liberdade e da resistência(2020년 4월 26일): https://brasil.elpais.com/cultura/2020-04-25/bella-ciao-a-historia-por-tras-do-hino-da-liberdade-e-da-resistencia.html?ssm=TW_CC 해방 이후 밀라노에 입성하는 저항군 벨라 챠오는 원래의 가사가 이탈리아어이고(드라마에서도 출연자들이 이탈리아어로 부른다), 원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반-파시스트, 반-무솔리니 진영에서 즐겨 불렀던 노래다. 비슷한 노래로서 현대 한국의 고려대 응원가 중 “지야의 함성”도 있기는 한데(…) 이 노래는 원래 러시아곡(카츄사)이다. 이 곡에 대해서는 다시 말하겠다. 비교적 현대에 나오기는 했지만 이 노래의 작곡자 작사자가 누구인지는 모른다. 다만 이탈리아가 무솔리니 치하에 있을 때는 물론(…잠깐, 이것도 논쟁의 여지가 있다, 아래 레시스탄짜를 보시라), 현재 마테오 살비니에 대한 반대 시위에도 빠짐 없이 등장하는 저항의 노래다. 그런데 가사를 보면 오히려 좀 서정적이다. 내가 죽으면 묻어주오 예쁜이, 안녕. 가사에 딱히 이념이 없다는 얘기다. 실제로 무솔리니 정권 말기, 무솔리니에 반대해서 일어났던 반-파시스트 운동은 공산당만이 아니라 기독교민주당, 사회주의자, 왕당파, 공화주의자 등등, 극우파를 제외한 모두가 다 합세했었다. 따라서 모든 이념을 다 포함하려면, 역시 이념이 없는 저항가가 제격이었다. 반면 공산당이 주축이 됐던 “가리발디네(Brigate Garibaldi)”, 사실 반-무솔리니의 선봉장이 공산주의자들이었는데 이들이 불렀던 노래는 “바람이 분다(Fischia Il Vento, 참조 2)”였다. 그들의 공식 군가이기도 했던 이 노래에는 가사에 이념이 들어있다(참조 3). 이 노래의 원곡이 바로 러시아의 카츄사(Катюша), 고려대 응원가 “지야의 함성”이기도 하다. 물론 이 노래도 “벨라 챠오”처럼 기독교 민주당에서 부르기도 했고, 1968년 유럽을 휩쓴 데모의 시대에서 청년들이 부르기도 했었다. 이들은 다만 “벨라 챠오”를 즐겨 부르지는 않았다(참조 4). 이념이 없어서라는 이유였고 “자기 손을 더럽히고 싶지 않은 놈들”이나 부르는 노래라는 인식이 있었다고 한다. 아니 그럼 벨라 챠오는 레시스탄짜(resistenza italiana al nazifascismo) 말고는 생각보다 저항곡의 주류가 아니었다는 말씀? 사실 이 노래의 기원이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군에 맞서기 위한 노래에서 나왔다는 주장이 있는 만큼, 그냥 가늘고 길게 간 민중가요라고 볼 구석도 없잖다. 그런데… 사실 레시스탄짜 시절에도 거의 안 불렀다는 주장마저 있다. 해방(!) 이후에서야 많이 불렀다는 증거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 이후, 체코슬로바키아의 반 소련 시위, 68년 당시 베를린에서의 반정부 시위에 이 노래가 퍼졌고, 엉뚱하게도 이 노래를 처음 “녹음”한 가수는 프랑스의 이브 몽땅이었으며(참조 5), 2015년 샤를리 에브도 테러 당시도 프랑스인들은 저항의 상징으로 이 노래를 불렀다(참조 6). 터키의 게지 공원 데모 할 때에도 부르고(참조 7) 심지어 시리아 내 쿠르드 역시 벨라 챠오를 부르고 있다(참조 8). 가늘고 길게, 그리고 전세계로 퍼진 노래 중 하나가 됐다는 의미다. 아마 가사에 이념이 없어서일지도. -------------- 참조 1. Bella Ciao | La Casa de Papel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 자막이 같이 있다!): https://youtu.be/Pa2Vvv2Gw1U 2. 그래서 나는 아직도 미야자키 하야오가 어째서 그 만화 제목을 “바람이 분다”로 했는지 많이 궁금하다. 비단 폴 발레리(Paul Valéry)의 그 시(Le vent se lève !… Il faut tenter de vivre !)만 의미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3. FISCHIA IL VENTO : https://youtu.be/5nqibaqKWuw 4. 대신 이 노래를 불렀다, Per i morti di Reggio Emilia : https://youtu.be/WmFYVEiXGyA 5. Yves Montand "Bella ciao" | Archive INA(1964년 7월 6일): https://youtu.be/mv3iY4v9EOc 6. Christophe Aleveque - Bella Ciao - #JeSuisCharlie(2015년 1월 12일): https://youtu.be/YulNK8djaiw 7. Gezi Park i manifestanti cantano Bella Ciao(2013년 6월 5일): https://youtu.be/rGk4aKtUwIo 8. Il 25 aprile con le combattenti curde che cantano Bella Ciao(2020년 4월 25일): https://www.globalist.it/world/2018/04/24/il-25-aprile-con-le-combattenti-curde-che-cantano-bella-ciao-2023251.html
아스피린과 특허
주말 특집, 바이엘은 과연 베르사이유 조약 때문에 아스피린 특허를 잃었을까? 모두들 아스피린에 대해서는 잘 알고 계실 텐데, 아스피린의 현재 지위는 제너릭이다. 어느 제약회사든 마음 먹으면 만들 수 있는데 당연히 아스피린을 처음 만들 때는 그렇지 않았다. 지금도 있는 독일의 제약회사 바이엘(Bayer)이 1899년 처음 아스피린을 만든 이래 특허화를 노력했었다. 게다가 여전히 그러하듯 특허는 전세계에 통용되지 않고 나라별로 출원을 해야 한다. 그래서 바이엘은 1898년 영국과 독일 그리고 1900년, 당시 무섭게 성장 중이던 미국에도 특허를 받아 놓았는데 미국은 시장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바이엘은 미국에 아예 공장을 세우기로 결정한다(참조 1). 1918년도 광고, 미국땅에서 만들어지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만다. 어차피 미국에 공장이 있으니 그대로 팔면 된다고 생각하기 쉬울 텐데… 그렇지가 않았다. 당시 전세계에 페놀을 공급하던 영국이 전쟁 물자 생산(폭약을 만드는데 페놀이 들어간다) 집중을 위해 수출 규제를 해버린 것이다. 여기에 열받은(참조 2) 토머스 에디슨은 자기가 페놀 공장을 설치해버린다. (뭔가 고순도 불화수소 공장을 만들어버리는 한국 이미지가 오버랩된다.) 막 발명한 레코드를 만들 때 페놀이 필요해서였다. 자, 아스피린 만드는 데에는 페놀이 들어간다. 바이엘은 미국에 Chemical Exchange Association이라는 중개회사를 만들어서 에디슨과 비밀 계약을 맺고, 에디슨이 만드는 모든 페놀을 매입한다. 이 계약이 1915년 언론(New York World, 참조 3)에 노출되어버리는 바람에 결국 중단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 자, 에디슨이 몰래 페놀을 독일 바이엘에게 판매하던 사실을 적발하고 2년 후 미국은 연합국 측에서 붙어 직접 참전까지 한다. 전쟁까지 시작했으니, 미국은 적성국들의 자산을 압류하기 위해 적성국교역법(Trading with the Enemy Act of 1917, 참조 4)을 제정, 미국 내 바이엘 자산을 압류하여 경매를 해버린다. 1918년 바이엘 자산을 경매로 구입한 곳은, 그때까지 거의 종이 회사 수준이었던 Sterling Drug이었다(참조 5). 자, 전쟁이 터졌고, 시기를 보시면 소위 스페인 독감마저 퍼진 시기임을 알 수 있다. 적성국 독일 회사의 특허는 누구도 인정하지를 않았다. 전쟁은 1918년 11월에 끝났고 독일은 전쟁에서 패배했다. 제1차 세계대전 참전국들은 1919년 4월 파리 베르사이유에서 모여 조약을 만들었고, 독일은 여기에 서명하는데, 베르사이유 조약이 어땠는지는 잘 아실 것이다. 독일은 동등한 당사자가 될 수 없었고, 조약문에는 전쟁 기간 중 연합국의 독일 자산(특허 포함) 조치는 그대로 인정되는 조항(참조 6)이 들어가 있었다. 그러니까 예. 정확히 말하자면, 베르사이유 조약에 따라 바이엘은 특허를 잃은 상태를 유지하게 됐습니다…이다(참조 7). -------------- 그러나 위에 언급했듯, 자산을 인수한 Sterling은 그전까지 페이퍼 컴퍼니에 가까웠던 곳인지라 노하우가 별로 없었고 미국 내 생산에도 급급했었다. 그래서 거의 포르투갈과 에스파냐가 전세계를 갈라 먹기로 한 토르데시야스 조약(Tratado de Tordesilhas, 1494)처럼, 바이엘은 독일에서, Sterling은 미국에서 각자 따로 아스피린을 만들기로 한다(참조 8). 물론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고 독일 재벌들을 규합하는 시기에 같이 협약을 맺은 건 타이밍이 안 좋았다. 미국 정부는 Sterling의 자산을 압류하겠다고 위협했고, 1941년 결국 Sterling은 독일 바이엘(이때는 I.G. Farben)과의 관계를 끊는다. 하지만 어지간한 국가에서 특허를 인정 못 받으니 복제품과 유사품이 우후죽순 나왔고, 이전만큼 재미를 보지는 못 한 듯 하다. 특히나 이부로프로펜이 1962년부터 출시됐었다. 아스피린은 이제 진통제 역할에 더해서 암도 예방해주고 계시다. 물론 약은 약이니 무턱대고 복용해서는 안 되지만 말이다. 1958년도 광고, 피곤하면 바이엘 아스피린! -------------- 참조 1. 1900년대 초(시어도어 루즈벨트 시절이다) 미국의 평균 관세율은 거의 50% 내외였다. 공장을 미국 내에 세울 만한 요인이 있었던 것. 2. 제1차 세계대전 초기 미국은 영국 프랑스와 독일 모두에게 꽤 적극적인 중립이었음을 아셔야 한다. 연합국들에 호의적으로 바뀌고 결국 참전까지 하는 계기는 1915년 독일의 루시타니아 호 격침 사건 때문이었다. 3. 당시 신문기사: https://en.wikipedia.org/wiki/Great_Phenol_Plot#/media/File:New_York_World_front_page,_August_15,_1915.jpg 4. 현재까지도 살아 있는 법률로서 미국 내 북한 자산에 적용된 적이 있다(1950-2008). 2008년 이후에는 여러 행정명령과 함께, 별도의 대북제재법(North Korea Sanctions and Policy Enhancement Act of 2016)으로 제재를 하는 중이다. 5. 1994년 바이엘이 다시 미국과 캐나다 내에서의 권리를 사들인다. Aspirin: http://pubsapp.acs.org/cen/coverstory/83/8325/8325aspirin.html 6. 제306조이다. https://en.wikisource.org/wiki/Treaty_of_Versailles/Part_X#Article_306 7. Why did Bayer lose aspirin and heroin trademarks under the 1919 Treaty of Versailles?: https://history.stackexchange.com/questions/55729/why-did-bayer-lose-aspirin-and-heroin-trademarks-under-the-1919-treaty-of-versai 8. ASPIRIN'S LONG RECORD BEGAN WITH GERMANY, WORLD WAR I(1993년 1월 12일): https://www.washingtonpost.com/archive/lifestyle/wellness/1993/01/12/aspirins-long-record-began-with-germany-world-war-i/248b0a5e-6950-488b-ae6e-9be78c45d9c8/ 9. 짤방은 각각 1918년 및 1958년도 바이엘의 아스피린 광고다. 출처는 Aspirin: The First Wonder Drug (2019년 3월 6일): https://www.saturdayeveningpost.com/2019/03/aspirin-the-first-wonder-drug/
IRA 대원의 사진
금요일은 역시 역사지. 이 사진은 아일랜드의 사진사 Colman Doyle이 촬영했다고 한다. 정확한 촬영 날짜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1970년대 북아일랜드의 웨스트 벨파스트에서 AR-18 공격소총을 겨누고 있는 여자 IRA 자원자라는 캡션이 붙어 있다(참조 1). 자, 소총의 견착자세가 왜 저런지는 묻지 말자. 사진의 초점이나 포즈를 봤을 때, 아마 선전용으로 촬영하지 않았나 싶은데, IRA와 저 총의 관계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겠다. 보통 IRA 하면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간의 통일을 위해 북아일랜드에서 영국을 상대로 테러를 하던 무리를 가리키는데, 일단 1960년대로 가 보자. 아일랜드 공화국 독립 이후 IRA는 상당히 약화되기는 했는데, 60년대 당시 가톨릭계 인구 증가를 경계한 개신교계 급진파들이 도발(화염병을 주택에 집어던졌다)하면서 갈등이 심해진다. 이때부터가 T를 대문자로 적는 The Troubles의 시작이다. 이는 1969년 폭동으로 이어지고, IRA가 온건파 IRA와 과격파 IRA로 갈라지는데, 이 과격파가 IRA 임시파(Provisional Irish Republican Army)를 가리킨다. 영화에 나오는 주요 테러리스트들은 보통 이 임시파이다. 이들이 활동한 시기가 1969년부터 2005년 사이다. 자, 왜 이들이 과격하겠는가? 영국을 상대로 진심으로 무장 투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숱한 분열을 경험했던 이들은 서로 믿지 못하는 분위기가 팽배했기 때문에 외국인은 거의 끼어들 여지가 없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동네에서 같이 자라난 남녀 모두를 대원으로 받아들였었다. 즉, 사진처럼 여자 대원들이 활발하게 활동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누가 이들에게 무기를 공급했는가? 크게 두 나라가 있다. 미국과 리비아다. (여담인데, 배를 통해 밀수했다. 아일랜드 선원들을 통해서다.) 사진 속의 저 소총 이름이 AR-18, 원래 M-16의 모태가 되는 AR-15를 만들었던 미국의 ArmaLite사가 만든 AR-15의 개량형이었다. 그런데 미군은 15만 채택했지, 18은 채택하지 않았고, 이 AR-18이 IRA로 흘러들어간다. 누구를 통해서? 미국 내 아일랜드 갱(참조 2)과 아일랜드계 미국인들(NORAID)이었다. 리비아는? 미국에 대한 반발로 서유럽 내 반정부 세력(참조 3)에게 무기를 공급하던 나라가 리비아였다. IRA의 단식투쟁이나 폭동에 감명 받은 가다피는 IRA에게 수많은 무기를 공여했고(그때문에 AK-47도 IRA에서 많이 썼다고 한다), 1986년 미국이 리비아를 폭격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하지만 뭣보다도 IRA의 상징은 미국에서 공급됐던 AR-18이었다. 개머리판도 접을 수 있고 작으면서 견고하고 쉽게 조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IRA도 이 총을 사랑해서, AR-18을 위한 노래/군가를 만들어서 불렀을 정도(참조 4)이고, 이 총을 “과부제조기(widowmaker)”라 불렀다. 넷플릭스 드라마 데리 걸스(Derry Girls, 시즌3가 나온다고는 하는데…)가 그리는 시기는 휴전 직전의 북아일랜드인데, 비극적인 시기인 “더 트러블”에서 코메디를 뽑아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 다만 IRA가 주제에 나왔다 하면 영어권의 키배가 어마어마하다. 데리를 런던데리로 부르느냐, 그냥 데리로 부르느냐가 그 인물의 정체성을 드러내니까 말이다. -------------- 참조 1. Female IRA fighter, 1970s:https://rarehistoricalphotos.com/female-ira-fighter-1970s 2. 영화 Gangs of New York(2002)에 나오니만큼 아일랜드 조폭의 역사는 깊으며 지금도 존재한다. 아일랜드에 무기를 공급한 조직 중 하나는 보스턴에 있는 겨울언덕파(Winter Hill)였다. 3. 서독의 적군파(Rote Armee Fraktion 혹은 Baader-Meinhof-Gruppe/바더-마인호프 그룹)과 이탈리아의 붉은 여단(Brigate Rosse), 그리고 아일랜드의 IRA를 가리킨다. 4. My Little Armalite with lyrics: https://youtu.be/P8wgrZ6t5BA
스페인 사람들이 밤 10시에 저녁식사를 하는 이유는?
스페인의 식사시간은 우리나라의 식사시간과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의 식사시간에 맞춰 12시에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을 찾으면 문을 연 식당을 찾아보기 힘들고, 마찬가지로 7시에 저녁을 먹으려고 하면 점심 식사를 제공하고 남은 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는 불상사를 겪을 수도 있습니다. 스페인 여행 시 좀 더 효율적으로 식당을 찾고 식사 계획을 세우기 위해 RedFriday에서는 스페인의 식사시간 및 식사문화를 알아보겠습니다. 1. 아침 식사 7:00 ~ 9:00 스페인에서는 아침식사를 매우 간단하게 먹습니다. 보통 커피 한 잔과 빵 한 조각을 먹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커피는 카페 콘 레체(cafe con leche,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넣은 것)를 주로 마시며, 크루아상, 츄러스, 올리브오일과 토마토 소스를 곁들인 바게트빵(pa amb tomaquet) 등을 주로 먹습니다. 2. 아침 간식 10:30 ~ 11:00 ‘almuerzo'라고 불리는 아침 간식 시간은 또 하나의 아침 식사 시간 (또는 점심 식사 전에 간단히 간식을 먹는 것)입니다. 스페인 사람들은 아침식사와 비슷한 메뉴로 허기진 배를 채웁니다. 여행객들은 이 때 아침 식사를 하시는 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입니다. 이 시간에 카페에 앉으신다면 스페인의 직장인들과 신문을 읽는 노인들의 모습을 배경삼아 여유로운 아침식사를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3. 점심 식사 2:00 ~ 3:30 Menu del Dia를 찾아라! 2시부터 시작되는 점심 식사는 하루 중 스페인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식사입니다. 그만큼 점심식사 시간에는 '음식 천국'이라고 불릴만큼 합리적인 가격에 만족스러운 식사를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스페인을 여행 중이시라면 'menu del dia(오늘의 메뉴)'라는 간판이 있는 곳을 주목해보세요. 9유로~14유로 정도의 가격에 첫번째 코스(샐러드 등의 애피타이저), 두번째 코스(고기, 또는 생선), 와인 또는 맥주, 커피 또는 디저트를 모두 즐길 수 있습니다. 4. 오후 간식 5:30 ~ 7:30 ‘merienda'라고 불리는 이 시간은 '먹는 것 '보다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에 중점을 두는 시간입니다. 친구들과 만나서 커피도 한 잔 하고,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도 나눕니다. 이 시간에 스페인 사람들은 아이스크림, 초콜렛 크루아상, 초콜렛 츄러스 등 특별히 달콤한 것을 먹거나, 하몽, 초리소, 치즈 등이 들어간 샌드위치를 먹습니다. 이 시간에는 주로 술은 먹지 않습니다. 만약 스페인으로 여행을 가신다면 이 시간에 현지인들이 줄 서 있는 길거리 음식이나 빵집을 공략해보세요. 실패 없는 간식을 먹을 수 있을 것 입니다. 5. TAPAS HOUR 8:30 ~ 10:00 스페인의 저녁식사는 비로소 8:30이 되어서야 시작됩니다. 8:30 이전에는 문을 연 식당도 별로 없을 뿐만이 아니라, 만약 열었다 하더라도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그저 그런' 식당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스페인에서는 점심식사를 가장 거나하게 먹고, 저녁식사는 간단한 '타파스(Tapas)'와 맥주 또는 와인 한잔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타파스는 하나에 1유로~4유로 정도로 가격이 저렴하고 양이 적으며 지역에 따라 그 종류가 수백 수천가지가 됩니다. 6. 저녁 식사 9:00 ~ 11:00 스페인 사람들은 저녁식사에 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저녁 11시까지 식사를 하고 어떻게 잠자리에 들지 걱정을 하지만 스페인 사람들의 저녁식사는 샐러드, 햄이나 치즈 몇 조각, 수프 한 그릇 등으로 매우 소박합니다. 그러나 여행객들의 경우는 다소 다를 수 있습니다. 여행을 하며 클래식한 스페인 전통 정찬을 즐기고 싶다면 9시부터 저녁식사를 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8시 30분 부터 간단한 타파스와 맥주 한 잔으로 저녁을 먹을 준비를 하고 9시 부터는 빠에야, 크로켓, 스페인식 오믈렛 등을 주문해 저녁식사를 즐기시면 됩니다. 한국 처럼 여러가지 요리를 시켜서 나눠 먹는 문화가 있으므로, 식당에서 여러개의 음식을 주문하여 일행들과 함께 즐길 것을 추천합니다. # 원문 출처 : https://redfriday.co.kr/88 # 많이 본 컨텐츠 # 매일 업데이트되는 생활꿀팁과 알아두면 도움되는 이야기를 팔로우 하셔서 쉽게 구독하세요. # ‘좋아요’ 와 ‘공유하기’ 많이 부탁드려요.
작전명 "태양을 만져라"-인류 최초의 태양 탐사선 이야기
미국 시카고대학의 한 무명 교수였던 천체 물리학자 유진 파커 박사 파커 박사는 1958년 ‘천체물리학 저널(The Astrophysical Journal)’에 *태양풍의 존재를 밝히는 논문을 제출함 *태양풍=쉽게 말해 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 태양풍에는 양성자와 전자 등 미립자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입자들이 계속 태양에서 방출된다는 것 현재 우리는 이 흐름을 두고 '태양풍'이라고 부름 하지만 저널 측 논문 검토위원들은 이 이론은 터무니없는 말이라며 파커의 논문을 싣는 것을 파워거절함 왜냐면 당시에 이미 인류 최초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가 발사된 뒤였지만 아무런 장비를 갖추지 않아 인공위성이 우주의 그 어떤 것도 측정도 할 수 없었고, 우주 관측은 지상에서 하는 것이 전부였음 지구-우주 거리가 얼만데 땅에서 봐봤자 얼마나 보이겠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당시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우주는 아무것도 없는 진공상태라고 생각했음 근데 갑툭튀 듣보 박사 놈이 나타나서는 머? 우주는 진공상태가 아니라고?  태양에서 방출된 뭔가가 떠다닌다고? 구라즐; 진공상태가 마즘ㅋ 하지만 파커는 포기하지 않긔 내 가설과 이론은 사실이며 논문을 꼭 싣고야 말거시다 너네 두고바 감안안도 파커는 시카고대학 선배 교수이자 저널 편집자였던 유명 우주물리학자 수브라마니안 찬드라세크하르 박사를 찾아갔음 이름 전래 어렵내; 저겨 박사릠!!!!!!! 논문 검토위원놈들이 내 이론의 전제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거지, 논문 오류를 지적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오류가 없는 논문인데!!! 도대체 왜!!!!! 내 논문을 실을 수 없다는 거시조???!?!?!? 과학자가 돼가지고 지금 그런 사사로운 감정으로 일처리를 하는 겁니까?!?!!!! 수브라 어쩌고 박사 :  어...니 말 듣고 보니..그건 또 그렇네...? 생각해보니까..오류는..업쟈나....? 논문은 오류라고는 없었음 그냥 당시 과학자들이 받아들이기엔 가설부터가 넘나 급진적인 내용이라 다들 무시했던 거였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항의끝에 결국 파커는 자신의 논문을 실을 수 있었어 다들 이해했지?ㅎㅎ 이정도는 껌이잖아ㅎㅎ;;;; 그리고 논문이 실린지 4년 후 1962년 미국 나사(NASA)에서 보낸 금성 탐사선 마리너 2호를 통해 태양풍의 존재가 확인됐음...!! 파커의 이론은 사실이어따!!!!!! 우주더쿠 과학자들은 난리가 났음ㅋㅋㅋㅋㅋㅋㅋ 머?!!? 우주가 아무꺼또 없는 진공상태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고!?!?!?! 에너지 입자가 있고, 심지어 걔네가 흐 른 다 고 !?!1!?!?!?!? 새로운 증거의 등장에 우주물리학자들 심장 터져벌여 헠헠 이 후로 많은 우주탐사선이 발사됐지만 태양열이 너무 뜨거운지라 근거리 관측은 할 수 없었음 그나마 제일 가까웠던 게 1976년 헬리오스B 탐사선이 태양 표면으로부터 4300만km떨어진 지점까지 접근한 거였음 근데 지구-태양 거리는 1억 5000만km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4300만? 많이 가긴 했지만 태양의 비밀을 풀기 위해선 택도 없음; 하지만 태양에 다가가겠다는 인간들이 열망 덕에 수 십 년의 시간에 걸쳐 과학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해찌 이 정도면 해 볼만 하겠다 전래 자신감 충만해진 나사는 이전에 쏘아올린 어느 위성보다 태양에 가까운 위성을 보내겠다는 프로젝트를 시작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래 미국놈들 다운 자신감 아니냐 여튼 그래서 탄생한 프로젝트 태양을 만져라(Touch the Sun) 레오가 부릅니다 터치 말 그대로 인류 역사상 가장 가깝게 태양에 접근하겠다는 프로젝트임ㅋㅋㅋㅋㅋ 엥 완전 이카루스 아니냐? 뭐 그래서 얼마나 가까이 가는데? 이 프로젝트에서 발사 될 탐사선의 목표는 태양 표면으로부터 640만km까지 가는 거임 띠용 앞단위가 바꼈쟈냐 그리고 마침내 2018년 8월!! 인류 최초 태양 탐사선이 발사 준비를 마쳤음 쓰리 투 원 발사~!~!~!~! 지금 만지러 갑니다 헠헠 탐사선의 이름은 파커 솔라 프로브 파커? 아까 그 파커 박사? ㅇㅇ마즘 나사에서 태양풍의 존재를 처음 제시했던 파커 박사의 이름을 붙여서 탐사선 이름을 지었음 그리고 파커 박사의 사진과 태양풍에 관한 논문을 선체에 실어 보내는 등 최고의 예우를 해줌(감덩 더 놀라운 거슨 나사가 생존 인물의 이름을 따서 탐사선 이름을 지은 건 이번이 최초야 그래서 파커 박사는 파커 솔라 프로브의 발사 장면을 직접 볼 수 있었지!! 60년 전 자신이 처음 제시했던, 하지만 무시받았던 이론이 현실이 되는 순간...!(왈칵 사실 이 표정이 너무 감동적이라 글 쓰게 됐음ㅠㅠ 파커 탐사선은 앞으로 7년 동안 태양 주위를 돌며 태양과 코로나(태양의 대기) 정보를 수집할 예정이라고 해 임무가 끝나면 태양 속으로 떨어진다고 함 (무인 탐사선임) 나사는 파커 탐사선이 보내 올 자료를 토대로 지구에서 전자파 교란을 일으키는 태양풍을 분석해 인공위성이나 지상에서의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네 그리고 파커 탐사선을 통해 태양풍이 어떻게 생기고, 언제 강해지는지 등을 밝혀낼 계획임ㅋㅋㅋ 널 낱낱이 파헤져 주겠어!!! 기다려 태양쓰!!  발사 되고 나서는 어떻게 됐냐구? 파커 탐사선이 발사된 지 3개월 후 2018년 11월 연구진들은 파커 탐사선으로부터 모든 장비가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있다는 A등급의 무선 신호를 받음!! 훠우!!!! 파커 짜란다!! 그리고 파커 탐사선은 사진도 한장 같이 보냈는데 태양의 동쪽을 찍은 사진임 이미지 중앙의 밝은 원은 수성이고 어두운 원들은 걍 배경 보정하다 생긴 거래ㅋㅋㅋㅋ 이렇게 보니까 태양 진짜 전래 커;;; 파커는 현재 태양 표면으로부터 2400만km까지 근접했대 1976년 헬리오스B 탐사선이 갖고 있던 4300만km기록을 벌써 깨벌인 것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파커는 순항중! 목표치 640만km까지 파커 힘조~!~!~!~! 나사의 상상도
스페인 여행할 때 메뉴 주문하는 꿀팁.jpg
지금부터 한국인에게 인기 있는 스페인 음식을 하나씩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스페인 요리가 생소했다면, 아래 음식들 부터 주문해보세요. 빠에야 (paella)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알려진 스페인 음식 중 하나인 빠에야입니다. 빠에야는 스페인식 볶음밥으로, 얕고 둥근 형태의 프라이팬에 쌀과 고기, 해산물, 야채 등을 넣고 육수와 함께 장시간 끓여 만든 요리입니다. 어떻게 보면 한국의 볶음밥이나 비빔밥과 비슷한 메뉴입니다. 지역별로 안에 넣는 재료가 해산물부터 고기, 그리고 달팽이까지 아주 다양하다고 해요. paella라고 쓰지만 읽기는 ‘빠엘라’가 아닌 ‘빠에야’라고 읽는데요, 이는 스페인어에서는 l 두개가 같이 있으면 y 발음이 되기 때문이랍니다! 감바스 알 아히요 (gambas al ajillo) 빠에야만큼이나 잘 알려진 음식으로는 감바스 알 아히요, 줄여서 감바스라는 음식이 있습니다. 감바스 알 아히요는 왕새우와 마늘소스라는 뜻에 걸맞게, 마늘기름소스 안에 새우를 넣은 후 빵에 찍어먹는 요리입니다. 마늘을 다양한 요리에서 사용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에 잘 맞는 대표 메뉴입니다. 요리 이름에서 ajillo[아히요]는 마늘소스, gamba[감바]는 왕새우라는 뜻이랍니다. 하몬 (jamón) 하몬은 우리나라 뷔페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메뉴인데요, 돼지 뒷다리 넓적다리 부분을 통째로 2주 정도 소금에 절여 기온이 낮고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서 숙성시켜 만든 스페인식 생 햄입니다. jamón이라고 썼는데 왜 하몬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스페인어의 j는 h 발음으로 소리내기 때문입니다. 페스카도 아사도 (pescado asado) 또 하나의 별미, 페스카도 아사도는 굵은소금을 뿌리고 숯불로 구워낸 생선구이 요리입니다. 이름만 들었을 땐 낯선 음식 같지만, 사진을 보니 우리나라 생선구이와 같은 익숙한 비주얼이죠? 이 이름에서 pescado [페스카도]는 생선, asado [아사도]는 구운을 뜻해서 페스카도 아사도는 사실 ‘구운 생선’이라는 정직한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그리아 (sangria) 마지막으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스페인 음료를 추천합니다. 한국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진 '상그리아'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음료로, 와인에 얇게 썰은 과일과 감미료를 넣어 만든 주류입니다. 스페인식 상그리아는 레드와인을 넣는 것이 정석으로 여겨지지만 포르투갈에서는 화이트 와인이나 스파클링 와인을 더 선호한다고 하네요. 모르겠으면 아래 그림에서 하나씩 짚어주면서 다 먹어보기 꾸르팁 !!
스페인 공대 삼총사, 일본 호러 게임을 한국에 들고 오다
[연재] 멜봇 스튜디오 백장미 대표의 스페인 게임 이야기 BIC 페스티벌은 스페인 인디 개발자에게 꽤 인지도가 높은 이벤트다. 해마다 여러 참가자가 핑계 삼아 한국을 방문했다. 하지만 올해는 시국이 시국인지라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지는 못하고 온라인으로 참가한 스페인 인디 개발사를 소개한다.    똑 부러지는 디자인 담당 라우라, 게임 이야기를 할 때 눈에서 빛이 나는 프로그래머 길롐, 그리고 그 둘을 자랑스럽게 쳐다보는 아티스트 이반. 이렇게 세 친구들이 뭉쳐서 작년에 설립한 개발사가 '엔드플레임' 이다. 공대 친구인 이 세 명은 <이카이>라는 게임을 개발하려 뭉쳤다. <이카이>는 심리 호러 PC 게임이다. 게임은 일본 공포 영화의 느낌을 준다. 그러니까 스페인 공대 친구들이 일본풍 호러 게임을 한국의 인디 게임쇼에 출품한 것이다. 나는 이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렇게 어리고 청순한 친구들이 하필 공포 게임을 만들지?"라는 의문을 품게 되어서 여러 번 물어보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편집= 디스이즈게임 김재석 기자 이반 길롐 라우라 # 왜 스페인 개발자들이 일본 호러 게임을? <이카이>(IKAI, 異界)는 1인칭 공포 게임이다. 일본 민간에서 전해져오는 어두운 이야기를 소재로 한다.  플레이어는 무녀가 되어 각종 공포 현상에 마주하게 된다. 고전적인 심리 공포 게임에서 영감을 받았기에 플레이어는 쉴 새 없이 도망다니면서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야 한다. 글보다 트레일러가 훨씬 설명을 잘 해줄 것이다. 왜 스페인 출신의 개발자가 일본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한 게임을 만들었는지 궁금했다. 이 사람들은 일본 문화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을까?  이들은 진지한 자세로 세밀한 연구 과정을 거쳤다고 답변했다. 게임에서 볼 수 있는 작은 소품, 의자 하나도 모두 조사를 거쳐 집어넣은 것이라고 한다. 얼마 전에 이들은 데모를 플레이한 일본 게이머에게 이메일을 받았다고 한다. 아주 정중하게 게임을 평가하면서, 동시에 에도 시대에 대한 설명을 해줬다고 한다. 게임에 나오는 건물의 붉은색을 조금 더 우디(woody)한 톤으로 각색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에도 시대에는 나무에 그런 색을 입히지 않았다는 보충 설명도 담겨있었다. 개발진 중 라우라는 6년 동안 일본어를 학습 중이다. 게임 속 일본어가 얼마나 정확한지에 대해 일본어 선생님의 도움을 받고 있으며, 게임에 들어간 한자체도 실제 에도 시대에 사용된 글씨체라고 한다. 실제로 서예는 <이카이>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문화적으로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상당히 공을 들인 모양새다. <이카이>의 주요 타겟은 유럽과, 북미, 일본 게이머들이라고 한다. 정작 <이카이>는 스페인에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세 사람은 소재에 연연하지 않고 그저 자기들이 하고 싶은 게임을 만들고 싶은 것 같았다. # BIC가 선택한 공포의 사운드 주인공 나오코는 무녀다. 무슨 사연이 있어 여사제가 되었는지는 게임을 하다 보면 알 수 있다고. 혼자 신사를 지키는 나오코는 구천을 떠도는 귀신들의 한을 풀어줘야 한다. 플레이어는 신사에서 만나는 귀신들과 관련된 물건들을 재배치하고, 부적을 사용해 한을 풀어주게 된다. 공포 장르의 목적인 '깜놀'을 플레이어들이 만끽할 수 있도록 간단한 게임 플레이를 디자인했다고 한다.  게임은 굉장히 느린 흐름으로 진행된다.  어두침침한 신사에서 언제 어디선가 뭔가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아 몸이 굳는다. 여느 호러 어드벤처 장르와 비슷하게 1인칭으로 진행되는데, '깜놀'을 유발하는 오브젝트를 피하기 위해 긴장한 상태로 게임을 진행하게 된다. 그렇지만 뭔가를 찾아내지 않으면 게임이 진행되지 않기 떄문에 계속 두리번거려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스토리도 흥미로웠다. 왜 주인공 나오코는 혼자 신사를 지킬까? 귀신들은 어떤 사연을 품고 있는 걸까? <이카이>의 귀신은 모두가 악령은 아니다. 개중에는 애처로움을 유발하는 캐릭터도 있었다. 개발진은 기존에 있는 미국식 좀비나 슈팅 또는 공상 호러 말고 아직 생소한 일본 호러를 개발하고 싶다고 한다고 이야기했다. <이카이>는 지난 BIC에서 베스트 오디오 상을 수상했다. 내가 다 자랑스러워진다. 아무튼 이 게임 오디오는 진짜 등골을 오싹하게 만든다. # 내년 스팀 출시 예정, 퍼블리셔 찾는 중! <이카이>는 내년 출시를 목표로 개발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현재 스팀에서 데모를 다운받아 해볼 수 있다. 스팀에서 위시리스트에 포함 해주는 게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하니, 호러 장르를 즐기는 유저들은 꼭 방문해서 '찜'을 눌러주시길. 제작진은 현재 투자자 또는 퍼블리셔를 찾는 중이라고 한다. 관심이 있다면 연락 주시라!
인류의 역사를 바꾼 세 번의 제안.jpg
독일의 한 남작가에서 태어난 소년 베르너 폰 브라운 폰 브라운은 엘리트 교육을 받으면서 자란 작곡가를 꿈꾸는 소년이었어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망원경을 주었고 그 후로 이 소년은 천문학에 빠져들게 되지 소년은 공상 과학 소설들을 읽으면서 우주 탐험에 매료됐어 우주에 완전 매료 된 소년은 여태껏 해오던 음악을 때려 치우고 우주를 개척하는 과학자가 되기로 결심하게 돼ㅋㅋㅋㅋ 그 후로 폰 브라운은 수학과 과학을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어 근데 참 이게 하고 싶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닌데 놀랍게도 소년의 수학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 했어 결근한 선생님을 대신해 수학 수업을 진행한 적도 있을 정도라나 뭐라나ㅋㅋㅋㅋㅋㅋㅋ 소년은 학교 공부시간 외에는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도 잊고 달나라 여행을 꿈꿨어 완전 우주 처돌이가 된 소년 폰 브라운은 급기야 17살에는 “우주여행협회”라는 모임에 가입까지 해가며 우주여행의 꿈을 더더욱 키워나갔지 그렇게 작곡가를 꿈꾸던 음악 소년은 1930년 베를린의 로덴부르크 공과대학에 입학하면서 완전히 로켓 연구에 모든 열정을 쏟았어 그러던 1932년 어는 날 폰 브라운이 가입한 우주여행협회는 군 관계자들을 한데 모아 놓고 액체연료 로켓 발사 실험을 진행했어 우주여행협회&군 간부들 : (기대) 셋 둘 하나 쏘세요!! 실험의 결과는 모두의 바람과는 달리 아주 보기 좋게 실패로 끝났어 하지만 당시 독일군의 로켓 개발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던 발터 도른베르거 대위는 폰 브라운을 매우 눈여겨 봤어 아직은 초보 단계이지만 성공만 한다면 로켓이 아주 유망하게 쓰일 수 있다는 걸 알았던 도른베르거 대위는 폰 브라운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해 “대학원 과정을 지원 해줄테니 육군에 들어와서 로켓 개발 연구를 계속 해 보는 게 어떻겠나?” 도른베르거 대위의 말은 폰 브라운의 인생은 물론 앞으로의 인류의 역사를 바꾸게 될 첫 번째 제안이었어 폰 브라운의 대답은 당연히 예스였지 그렇게 폰 브라운은 1932년부터 본격적으로 로켓 연구에 들어갔어 그 후 같은 해 로덴부르크 공과대학을 무려 2년 만에 졸업하고, 곧바로 베를린 대학에 진학 했어 거기다 물리학을 전공한지 2년만인 1934년에 박사학위를 받음ㅋㅋㅋㅋㅋ 첫 대학에 진학한 후 4년 만에 박사학위까지 따냄ㄷㄷㄷ 그리고 같은 해 몇 번의 실패 끝에 결국 A-2 로켓을 만드는 데에도 성공 함 당시 브라운의 나이 고작 22세...! 도른베르거 대위의 원픽은 초대박이었음 ㅋㅋㅋㅋㅋㅋ A-2 로켓이 성공하자 독일 정부에서는 로켓 개발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어 독일은 1936~1937년 발트 해안에 있는 페네뮌데에 아예 로켓 연구소를 설립해벌임 그리고 폰 브라운이 연구소 팀장이 되어 로켓 개발을 주도했지 존나 20대에 연구소 팀장이라니;;;; 폰 브라운이 한창 로켓에 미쳐서 일 하던 어느날 폰 브라운에게 두 번째 제안이 들어왔어 아니 그건 사실 제안이 아니라 명령이었어 1937년 독일은 폰 브라운에게 나치에 입당하라는 명령을 내렸어 폰 브라운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폰 브라운은 나치당에 가입했어 게다가 나치의 친위대인 SS에도 가입했지 <맨 앞 왼쪽=발터 도른베르거 장군, 빨간 동그라미=베르너 폰 브라운, 1941년 3월, 페네뮌데 연구소> ! 폰 브라운은 나치 당원이 되어서도 로켓 연구를 계속 했어 몇 번의 실패 끝 세계2차대전을 1년 앞 둔 1938년 폰 브라은 A-5 로켓 발사에 성공 했어 그 후 폰 브라운은 A-5 로켓의 결과를 토대로 이 전에 발사에 실패했던 A-4 로켓을 다시 설계하기 시작했지 A-4는 세 번의 실패 후 1942년 제2차세계대전이 한창 무르익어 감과 동시에 발사에 성공했어 A-4 로켓의 성공은 독일에게 있어서 아주 큰 의미였어 초기 단계였던 로켓 개발 연구가 이젠 만드는 족족 발사에 성공할 정도로 기술력이 향상 된 건 물론이고, 지금까지 개발 된 로켓과 달리 장거리 비행이 가능한 거의 최초의 로켓이었거든 현대 로켓의 시조격인 셈이지 하지만 A-4 로켓이 바로 생산된 건 아니야 독일 군부의 내부 갈등 때문에 A-4 로켓에 대한 상부 보고가 미뤄졌거든 그래서 A-4 로켓 발사가 성공한지 1년이 지난 후에야 도른베르거 대위와 폰 브라운은 상부에 A-4 로켓에 대해 보고했어 도른베르거 대위와 폰 브라운이 보고 한 사람은 바로 히틀러였어 아까 A-4 로켓이 장거리 비행이 가능한 최초의 로켓이라고 했지? 보고를 받은 히틀러는 A-4 로켓을 곧장 ‘보복의 무기’로 사용하기로 했어 장거리 비행이 가능한 A-4 로켓은 독일에서 멀리 떨어진 대도시들을 무차별 폭격하는데 너무나 안성맞춤인 무기였던거야 독일은 바로 이걸 노리고 로켓 연구를 시작 한 거였어 제1차세계대전이 끝난 뒤 패전국인 독일은 현재 일본처럼 군사력에 제한을 받고 있었어 독일군의 병력은 물론 비행기, 함정, 대포의 수까지 제한하는 베르사유 조약 체결(1919) 때문이었지 하지만 제한 대상에 "로켓"은 포함되지 않았어 다른 나라들이 독일을 제한 할 수 없는 부분을 찾아 낸 거야 독일은 이 맹점을 이용해 1930년부터 로켓 개발을 추진하기 시작했고, 그 연구를 이끌 사람으로 폰 브라운을 영입한 것,,!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A-4 로켓을 보복의 무기로 쓰겠다는 히틀러의 결정으로 이 때부터 A-4 로켓은 V-2 로켓으로 불리기 시작했는데, 로켓의 이름에 들어간 알파벳 A는 독일어 ‘Aggregat(복합기계)’에서 따 온 거고 V는 독일어 ‘Vergeltung(보복)’에서 따 온 거야 성능이 입증되자마자 이름부터 복수로 바꾸다니;; 독일이 처음부터 로켓을 무기로 이용하려고 개발 했다는 걸 아주 잘 알 수 있는 대목임 도칸새끼덜; 보복의 무기로 V-2 로켓이 제일 처음, 그리고 제일 많이 향한 곳은 영국 런던이었어 제2차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약 4,320발의 V-2 로켓이 발사됐는데, 특히 런던은 약 1,200발의 폭격을 받아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대 <V-2의 공격을 받고 파괴된 영국 런던 도심의 빌딩> 하지만 여기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건, V-2 로켓이 어마어마한 위력을 자랑하는 만큼 V-2 로켓 1대가 생산 되기까지의 과정도 어마어마했다는 점이야 V-2 로켓 한 발 쏘는 데 드는 비용 =전차 수천대 생산비용 V-2 로켓 1개 생산하기까지 걸리는 시간>>>>>>>>>>>>>>>>>>>>>>>>>>>>>>>넘사벽>>>>>>>>>>>>>>>>>>>>>>>>>>>>>>미국이 각종 무기를 무한대로 찍어내는데 걸리는 시간 미국ver._쇼_미_더_머니.jpg 단시간에 동일 사양의 무기를 존나 미친 듯이 찍어내던 미국에 비하면 V-2 로켓은 가성비가 매우 안 좋았다고 볼 수 있지 근데 V-2 로켓 생산 비용이 조금만 더 쌌더라면? V-2 로켓이 조금만 더 빨리 완성 됐다면? 히틀러에게 조금만 더 빨리 보고가 됐다면? 그래서 지금보다 더 많은 V-2 로켓이 더 많은 나라로 발사됐다면?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뒤 연합군 사령관 아이젠하워는 V-2 로켓을 두고 이렇게 말했어 만일 V-2가 6개월만 먼저 나왔어도 세계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독일이 엄청난 무기를 개발했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가성비가 너무 후달렸고, 1945년에 접어들면서 전쟁의 승기는 완전 연합군으로 기울었어 독일의 패전을 직감한 폰 브라운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지 폰 브라운은 1945년 5월 히틀러가 자살한 후 미국에 순순히 항복했어 미국은 폰 브라운을 어떻게 했을까? 항복했어도 나치니까 그 자리에서 죽였을까? 살려서 훗날 전범 재판에 세웠을까? 미국은 폰 브라운을 죽이지도, 전범 재판에 세우지도 않았어 당시 미국은 제2차세계대전 때의 전범 기술자을 빼돌려서 자기네 나라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는 데 활용 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어 그래서 미국은 독일 과학자와 기술자에 대한 일명 “블랙리스트”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1순위가 폰 브라운이었다고 함ㅋㅋㅋㅋ (여기에 731 부대장이었던 이시이 시로도 있음ㅡㅡ) 말만 블랙리스트지 실상은 위시리스트 아니냐; 폰 브라운이 왜 1위였는지는 V-2 로켓만 봐도 이미 전쟁 때 그 파괴력이 입증 됐쥬? 그런 위시리스트 넘버원이 제 발로 굴러들어오다니 미국 입장에서는 존나리 땡큐베리머치 아니겠숴? 하지만 폰 브라운은 모다? 나치쟈냐ㅇㅇ 그래서 미국 정부 내에서는 폰 브라운 처분 문제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어 하지만 결국 1945년 6월 미국 국무장관은 폰 브라운과 다른 전문가들을 미국으로 이송하는 것을 승인했어 근데 또 막상 얘를 대놓고 미국으로 데려가자니 나치였던게 넘나 걸리는 거야(염병; 나치랑 찍은 사진도 많아서 나치 아니라고 구라 칠 수도 없었음ㅋㅋㅋㅋ 그래서 폰 브라운은 일명 ‘페이퍼클립 작전(Operation Paperclip)’을 통해 아주 $은.밀.ㅎr.ㄱㅔ-★$ 미국으로 보내졌어 그렇게 미국으로 건너 간 폰 브라운은 무려 15년 동안이나 미군과 함께 일하면서 로켓 개발 연구에 매진 했어 1953년 미국 최초의 대형 단거리 탄도미사일 레드스톤을 개발한 것도 폰 브라운임 우주 처돌이 폰 브라운은 로켓 개발 외에 미국의 우주개발 계획을 선전하는 모델로도 아주 왕성한 활동을 했어 수많은 대중 잡지에 우주개발의 미래에 대한 글을 기고했고, 그 중엔 우주정거장에 대한 개념을 제안 한 것도 있었어 게다가 우주여행에 관한 월트 디즈니 쇼에 정기적으로 출연하는가 하면 디즈니랜드의 기술자문을 맡기도 했대 <월트 디즈니와 전투기 모형을 들고 있는 폰 브라운, 1954년> 전쟁으로 돈도 두둑히 벌었겠다, 로켓 연구 1인자도 데리고 있겠다 미국의 어깨는 아주 하늘 높이 치솟았어 그러던 어느날 세계를 뒤흔든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지 1957년 10월 4일 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해벌임ㅋㅋㅋㅋ 미국은 이 일로 존나 충격을 받았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시발 우리가 원자폭탄에서는 4년이나 앞섰고, 수소폭탄에서는 2년을 앞섰는데 인공위성에서는 뒤졌다고...? 우리가?ㅋㅋㅋㅋ렬루?ㅋㅋㅋㅋㅋ..ㅋ.ㅋ... 위대한!!!!!!!!!!! 우리 유에쎄이가!!!!!!!!!!!! 고작!!!!! 소련 놈팽이들한테 뒤쳐지다니!!!!!!!!!!!! 세계 최초가 유에쎄이가 아니라니!!!!!!!!!  으으으 분하다!!!! 소련이 무섭게 성장하자 똥줄이 타기 시작한 미국은 각잡고 인공위성 연구를 시작했어  그리고 여기엔 아주 당연하게 폰 브라운이 참여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누구보다 우주 로켓 처돌이 +천재였던 폰 브라운은 자신이 개발한 탄도미사일 레드스톤을 개량해 주피터 로켓을 설계했어 그리고 이걸 더 개발해서 주노 1을 완성시켰고, 이듬해인 1958년, 무려 1년만에 주노1 로켓으로 미국 최초의 인공위성인 익스플로러 1호를 발사하는 데 성공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익스플로러 1호 발사 모습> <우주에서의 익스플로러 1호> <위성이 궤도에 진입했음을 확인한 윌리엄 헤이워드 피커링, 제임스 밴 앨런, 베르너 폰 브라운이 워싱턴 DC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익스플로러 1호의 모델을 선보이고 있는 모습> 존나 이제 만들기만 하면 다 성공임ㅋㅋㅋㅋ 이 후로 이제 미국은 본격적으로 우주개발을 추진하기 시작했어 그래서 만들어진 게 바로 미국항공우주국, NASA야 NASA 설립 후 폰 브라운은 자신의 인생을 바꿀 세 번째 제안을 받게 돼 바로 나사에 취직하게 됨ㅋㅋㅋㅋㅋㅋ 1960년 폰 브라운은 NASA의 하부 조직인 마셜 우주비행센터의 소장이 되어 우주비행사를 운반할 수 있는 로켓을 개발하는 일을 맡게 됐어 <마셜 우주 비행 센터에서 촬영한 폰 브라운의 모습, 1964년 5월> 하 지 만 또 다시 미국의 자존심에 금이 가는 사건이 발생함ㅋㅋㅋㅋㅋㅋㅋ 1961년 4월 12일 소련이 이번엔 인류 최초로 우주로 사람을 보내는 데 성공해벌인 것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인류 최초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은 보스토크 1호를 타고 무려 1시간 48분 동안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데 성공했음ㅋㅋㅋㅋ <보스토크 1호에 탑승한 인류 최초 우주인 유리 가가린> <보스토크 1호의 모형> 최초 타이틀 뺏긴 미국 : 아 시발 소련이 또...!!!!(딥빡 당장 사람 태워서 우주로 날려버려!!!!!! 미국은 부랴부랴 우주비행사를 로켓에 탑승시켰어 하지만 대기 상층을 15분 동안 비행하는 데 그쳤고 우주 궤도에는 도달하지도 못했음ㅋㅋㅋㅋ 미국은 존나 분해서 참을 수 없었긔ㅋㅋㅋㅋㅋ 으으으 씨발!! 세계 최초, 인류 최초는 전부 우리 유에쎄이가 해야한다고오옭!!!! 소련 새끼들이 감히!!!!!!! 이 일로 미국은 렬루다가 자존심이 존나리 상했던지 당시 대통령이었던 존 F 케네디 대통령까지 나섰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이 나라가 10년 안에 사람을 달에 착륙시키고 무사히 지구로 귀환하도록 하는 목표를 완수할 것으로 믿습니다.” NASA 듣고있나? 딱 10년 준다. 잘 하자?ㅋ 대통령까지 저 난린데 어쩌겠어;;; 나사는 대통령의 뜻을 받아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어 프로젝트의 이름은 “아폴로 프로젝트 (Apollo Project)” 그리고 아폴로 프로젝트에 참여한 핵심 연구진, 폰 브라운 폰 브라운 팀은 110m 높이의 대형 로켓 새턴을 개발했어 그리고 대망의 1969년 7월 16일 전 세계가 주목하는 앞에서 로켓 새턴이 발사 됐지 바로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아폴로 11호를 태우고 말이야 <1969년 7월 16일 아폴로 11호 발사 성공 이후 발사 통제 센터실에서 기뻐하는 폰 브라운의 모습>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으로 폰 브라운은 평생 염원하던 우주 탐험이라는 꿈을 이루게 된 거야 폰 브라운은 1972년 나사를 은퇴했어 이제 더 이상 미국 정부나 군대와 일 하지 않는 폰 브라운은 그 뒤로 어떻게 됐냐고? 이제라도 전범 재판을 받았을까? 아니 폰 브라운은 나치 전범 재판을 받기는 커녕 미국에서 기업가로 일 하다가 1977년 6월 16일 췌장암으로 사망했어 그리고 폰 브라운은 현재까지도 나치 전범이 아닌 로켓의 아버지로 남아있지 <폰 브라운의 공로를 기리는 명패를 공개하는 모습, 1970년, 미국 앨라배마주 헌츠빌> 인류가 최초로 달에 도달할 수 있게 된 데에는 한때 인류를 끔찍하게 학살했던 나치 당원이 있다는 게 참 아이러니 하지 않아? 역사에 만약이라는 건 없지만 만약에 독일이 로켓 개발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폰 브라운이 나치가 되어 V-2를 개발하지 않았더라면, 폰 브라운이 나사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인류의 역사는 달라졌을까? 만약 당신이 과거로 돌아 갈 수 있다면 폰 브라운을 살리시겠습니까, 죽이시겠습니까? 아니면 미국처럼 자국으로 데려와 자국의 과학기술 발전에 쓰겠습니까? 문제시 크리스탈
우리나라 도깨비 제대로 알기! - 2. 진짜 도깨비, 가짜 도깨비
도깨비는 우리에게 친숙하면서도, 의외로 많은 면에서 오해를 받아. 물론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성격이 달라진 것도 있지만, 이번엔 될 수 있는 한 민간설화에 따라 '기름기 쏙 빠진' 도깨비를 찾아보려고 해. (글 내용이 김종대 박사님의 연구를 많이 따랐다는 걸 먼저 밝힐게.) 그럼 우리 함께 도깨비의 개념을 바로잡아보자! 1. 도깨비의 정체 도깨비는 요괴야, 아님 귀신이야? 요즘 동화에선 도깨비가 막 무섭고 괴팍한 요물 정도로 많이 나와. 하지만 그런 부정적 이미지들은 후대에 도깨비의 위치가 낮아지면서 많이 생긴 거고, 옛 설화 속 도깨비는 요괴도 귀신도 아닌 무려 '신'이었어! 놀랍지 않아? 도깨비가 신이었대 언니들! 도깨비가 신이라니 어색할 수도 있지만, 그는 엄연히 제삿상도 받아먹는 신이었어. 귀신은 사람이 죽어서 생긴 거고, 요괴는 사람이 죽은 건 아니지만 성질이 사악해서 조화를 깨뜨려. 하지만 도깨비는 사람이 죽어서 생긴 것도 아닌데다, 오히려 인간과 어울리고 싶어 하는 '수호자' 격의 신이었지. 그래도 도깨비는 신 치고 왠지 위엄이 덜하지? 도깨비는 높은 상위 신이 아니라 그보다 좀 낮은 하위 신 정도라고 보면 돼. 보통 높고 전지전능한 신일수록 엄청 높은 하늘이나 엄청 깊은 바닷속처럼 사람이 닿기 힘든 곳에 살거든? 하지만 도깨비는 달라. 도깨비의 특징 중 하나가, 산에 살아도 결코 산 꼭대기에 살진 않는다는 거야. 개나 소나 다 넘는 고갯길에도 나타나고, 한밤중에 불쑥불쑥 마을에 내려오기도 하지. 다시 말하지만, 도깨비는 인간과 어울리고 싶어 해. 금 나와라와라 뚝딱, 은 나와라와라 뚝딱♬ 도깨비가 신이라면 과연 무엇을 관장하는 신이었을까? 바로 생산력을 가진 '재물신'으로서, 백성들이 궁핍할 때 '부족함이 언젠가 채워질' 희망을 주는 풍요의 아이콘이었대. 그래서 농촌에서는 도깨비터에 풍년이 든다고 믿고, 어촌에서는 도깨비터에 물고기가 많이 모인다고 믿고 그랬던 거지. 만화영화 <꼬비꼬비>에도 나오듯이 도깨비는 메밀묵을 좋아해. 도깨비 고삿상에도 메밀로 만든 묵이나 떡, 범벅 등이 올라가거든. 그런데 왜 하필 쌀도 아니고 메밀이게? 힌트를 주자면, 메밀은 쌀과 달리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서 기근이나 흉년이 들 때 많이 심었대. 마르고 배고픈 땅에서 키운 메밀로 도깨비에게 고사를 지내는 걸 상상해봐. 도깨비가 옛 농민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감이 좀 올 거야. 2. 도깨비의 설움 '가짜 도깨비'들을 찾아라 역사적인 이유로, 혹은 카더라 통신들 때문에 우리 인식 속에 슬쩍 자리 잡은 이른바 '가짜 도깨비'들이 꽤 있대. 그들의 정체를 파헤쳐보자! (1) 귀면와, 그리고 치우천왕 백제의 귀면와. 귀면와는 '귀신 얼굴 기와' 라는 뜻이야. '귀면와'는 삼국시대 때에도 발견되는 기와인데, '귀면와'의 귀신 귀(鬼)자 때문에 이 기와의 문양이 도깨비의 모습이라는 설이 있어. 하지만 일단 도깨비는 귀신이 아닐 뿐더러, 귀면와는 그 이름만으로도 이미 논란이 좀 있대. (귀면와를 용 문양의 '용면와'라 불러야 한다는 설도 있거든.) 중국의 도철문. 중국의 괴물 도철을 새긴 문양이래. 귀면와에 대한 설을 찾아보면, 일단 중국의 '도철문'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귀면 문양이 나왔다는 설이 있어. 실제로 도철이라는 중국 괴물이 귀면 문양과 되게 비슷하게 생겼다네. 인간의 얼굴에 뿔, 털로 뒤덮인 몸, 호랑이 송곳니 등등... 게다가 귀면 문양은 불교적 성격이 있어서 중국과 일본에도 나타나고, 심지어 우리나라의 귀면와가 인도의 영향을 받았다는 설까지 있어. 그러니까 귀면와는 그 자체도 정체가 불분명하고, 다른 종교의 영향으로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고유의 민속 신앙 대상이었던 도깨비와는 연결 짓기 어렵다는 거야. 한 편, 치우천왕은 단군 조선 이전에 있었던 '배달국'의 14대 왕 '자오지 천왕'을 가리키는 말이야. 그의 이야기는 마치 트로이 전쟁처럼 역사이자 신화처럼 전해진대. 그런데 이 치우천왕이 도깨비의 왕 아니면 조상이라는 말이 있거든? 이건 아까 말한 귀면 문양이 치우천왕의 얼굴 문양이라는 또 다른 설 때문에 그래. 2002 월드컵 때 붉은악마의 공식 캐릭터였던 '치우천왕'이야. 이것 역시 귀면 문양을 닮았지? 그 설을 쉽게 정리하자면, 치우천왕이 중국 등지에서 수호신처럼 여겨지곤 했는데, 귀면와 역시 종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둘을 연관 지은 거야. 그런 식으로 치우천왕이 귀면와와 연결, 그리고 귀면와가 도깨비와 연결이 되면서 결과적으로 "치우천왕은 도깨비의 왕"이라는 인식이 피어나게 되지. 하지만 귀면와나 치우천왕이 '벽사', 즉 '사악한 귀신을 몰아내는' 기능을 가진 반면 도깨비는 재물 생산 능력이라면 모를까 벽사의 기능 같은 건 없어. 오히려 후대에 가서 역병을 몰아온답시고 벽사의 대상이 돼버린 게 도깨비란 말야 ㅠㅠ (2) 독각귀(獨脚鬼) + 이매,망량 등 웹툰 <도사랜드>에 나오는 도깨비왕의 엽전. 저 엽전에 새겨진 한자가 바로 '이매망량(魑魅魍魎)'이야. 디테일 돋네. '독각귀'는 중국의 요괴야.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독각귀나 이매, 망량을 도깨비의 옛 이름으로 알고 있더라고. 그래서 독각귀라는 이름 뜻(한 다리 귀신!) 그대로 도깨비의 다리가 하나 밖에 없다는 이야기도 있고. ...? 석보상절에 등장하는 '돗가비'. 여기서 돗가비를 한자로 풀이하지 않았다는 걸 주목해줘. 도깨비의 어원이 한자어가 아니라 순우리말이라는 증거야. 도깨비의 옛 이름은 한자어인 '독각귀'가 아니라 (가장 오래된 기록을 토대로 했을 때) 15세기 <석보상절>에 한글로 쓰여진 '돗가비'야. 역시 한자어인 '이매'와 '망량'도 도깨비와는 완전 별개지. 사실 이 셋은 중국에서 만들어진 '귀(鬼)', 즉 귀신들이고, 다리가 하나라거나 짐승의 머리를 가졌다는 등의 얘기들도 독각귀의 모습일 뿐이지 도깨비와는 아무 관련이 없대. 그런데 여기서 의문점! -조선시대 문헌에서도 도깨비를 '독각귀', '이매', '망량'이라고 하던데? -백과사전에서도 독각귀나 이매, 망량이 도깨비의 옛 이름이라고 그러던데?  (네이버 백과사전도 그러더라고;;) 그것에 대해 설명하자면... 독각귀, 이매, 망량이 쓰여진 문헌은 당연하지만 한문 문헌이야. 단어 자체가 한자어인걸. 조선시대에 한자는 사대부들의 문자고, 한문 문헌들 역시 사대부들 손으로 쓰였는데, 한글도 없이 한자를 이용해서 순우리말인 '도깨비'를 표기하자니까, 마땅한 한자가 없더란 거야. 그래서 중국 '독각귀'의 이름을 빌려다 쓴 거고, '독각귀=도깨비'라는 오해가 빚어진 것도 이 때문이래. 백과사전들도 이러한 "우리말->한자" 표기상의 차용을 고려하지 않는 바람에 독각귀를 도깨비의 옛 이름으로 설명하는 것 같아. 분명한 건, 독각귀는 이름만 빌려줬을 뿐이지 도깨비와 별개인 중국 귀신이라는 거야. 이해하기 쉽도록 비유를 들어줄게. 여기 동양의 용(龍)과 서양의 드래곤(Dragon)이 있어. 둘은 비슷한 점이 많지만 엄연히 다르지. 출신부터가 다르니까. 그런데 우리는 둘 다 '용'이라고 부르고, 서양 애들은 둘 다 'Dragon'이라고 부른다? 즉, 각자가 사용하는 언어나 문자에 따라 적절한 '이름'을 붙일 뿐이지, 개념상으로는 아예 다르다는 뜻이야. (3) 오니 꼬비꼬비 너마저... 만화영화 <꼬비꼬비>에 나오는 도깨비들. 하지만 이 모습은 일본 요괴 '오니'에 더 가깝다는 사실 ㅠㅠ 이번엔 일본에서 온 '오니'를 살펴보자. 머리에 난 뿔, 튀어나온 이빨, 붉거나 푸른 피부, 원시인 복장, 못이 박힌 철퇴까지... 아마도 오니는 우리의 의식 속에 가장 강하게 자리 잡은 가짜 도깨비일 거야. ??? 오니 이야기를 하자면 빼놓을 수 없는 게 '혹부리 영감' 아니겠어?. '오니=도깨비'라는 오해를 만들어낸 일등공신이니까. 1941년 일제강점기 <초등국어독본>에 실린 '혹부리 영감' 삽화야. 일본식 옷차림의 노인 주변으로 뿔 난 오니들이 보이지? 사실 '혹부리 영감'은 일본 이야기야. 혹부리 영감처럼 노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것 자체가 일본 설화의 특징이래. 우리나라의 설화는 주인공이 대개 젊고, 충이나 효 같은 유교적 이념이 드러나는 게 특징이야. 하지만 혹부리 영감 이야기를 떠올려봐. 유교적 이념부터가 없잖아? 그러면 어쩌다가, 일본 설화에 등장하는 오니한테 도깨비의 자리를 빼앗긴 걸까? 1909년, 일본의 <심상소학독본>에 실린 혹부리 영감 삽화야. 바로 이것이! 1915년, 일제강점기 조선의 <보통학교조선어급한문독본> (초등학교 '읽기' 교과서)에서 이렇게 변신해. "괴슈 독갑이" ("괴수 도깨비") 사실 도깨비는 짐승이나 괴물의 개념이 아니라서 괴수라는 표현 자체가 어색해. 도깨비를 요괴인 오니와 동일시하려고 사용한 표현일 뿐이지. (솔직히 도깨비가 괴수면 막 돈 갖다주고 명당자리 알려주고 그러겠음??) '혹부리 영감' 속 오니는 일제에 의해, 국민 교육의 기반인 초등 교과서 속에서 도깨비라는 이름을 얻은 거야. 바로 여기에 일제의 무시무시한 의도가 숨어있어. "일본의 오니와 조선의 도깨비를 봐, 정말 비슷하지? 사실 둘은 뿌리가 같은 거야! 그러니 조선 문화와 일본 문화는 뿌리가 같아! 뿌리가 같으니 한일합방 또한 자연스러운 거야!" 이러한 메시지를 무의식적으로 조선 사람들 머리에 심으려 했다 이거지. 오니의 탈을 쓴 가짜 도깨비는 일제의 문화 말살 정책이 만들어낸 비밀 병기라는 거! 꼭 기억해 언니들! 그런데 한 가지 기가 막히는 게 뭔지 알아? 저런 메시지의 일부가 아직도 우리나라에 남아있다는 거야. 실제로 문화 연구과정에서 도깨비랑 오니, 독각귀를 똑같이 묶어서 보기도 하고, 심지어 도깨비가 중국에서 생겨나 우리나라와 일본에 전파되었다고 하는 경우도 있대. 쉽게 말해 '독각귀는 중국 도깨비', '오니는 일본 도깨비' 라고 여기는 애매한 생각이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도깨비를 근본 없는 놈으로 만들어 버린 거야 ㅠㅠ (그럼 슈렉은 '유럽 도깨비'게?) 용과 드래곤의 비유를 다시 떠올려보자. 오니를 우리의 언어에 맞춰 '일본식 도깨비'라 편하게 부를 수 있을지는 몰라도, 둘은 개념상 부정적인 '요괴'와 긍정적인 '신'이라는 근본적 차이가 있어. 쓱 보기에 비슷한 면이 몇 가지 있을 뿐 별개의 개념이라는 말이야. 예를 들면, 영화 <슈렉>에서 슈렉은 원래 오거(Ogre)라는 괴물인데 더빙판에선 '도깨비'라고 번역하거든? 그렇다고 슈렉이 정말 도깨비인 건 아니란 말이지. 표면적인 유사성만을 가지고 그 본질까지 함부로 묶어버리는 사고방식은 매우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어. [참고자료] <저기 도깨비가 간다> - 김종대 네이버 캐스트 <백제인의 심성이 스며 있는 여덟 가지 무늬벽돌> 및 동아일보, 경향신문 기사 한배달 치우연구 제2호(2002.12) 네이버 백과사전, 다음 사전, 네이트 지식 등 강조하건대, 도깨비는 도깨비고, 독각귀는 독각귀고, 오니는 오니야. 도깨비는 중국에도, 일본에도 없는 우리나라의 고유 문화 아이콘이지. 만약 아직도 우리 주변에 도깨비가 살아있다면, 도깨비는 얼마나 서러울까? 한때는 함께 어우러져 살던 사람들인데, 이젠 자기 모습조차 제대로 알아주질 않으니 말야. 진짜 도깨비를 알아가는 건 일제가 구겨놓은 우리 문화를 되살리는 일이기도 해. 우리 도깨비한테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져주자! 아이들한테도 진짜 도깨비 이야기를 들려주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