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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필사본은 고양이가 망쳤습니다

주말 특집, 중세의 고양이이다. 먼저 중세 시대 지식의 전수와 보관에 힘쓴 수도원에는 고양이가 아주 많았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종이를 즐겨 먹는 쥐들을 막기 위해서였다. 우선 12세기 투르의 대주교였던 일드베르(Hildebert)의 쥐에 대한 라틴어 저주를 들어 보자. 마지막 문장은 해리 포터의 저주 주문에 나올 법 하다.

Pessime mus, sepius me provocas ad iram; ut te deus perdat.
비열하기 짝이 없는 쥐들이여, 나를 종종 분노케 하는구나. 하느님이 너를 없애시기를!
실제로 수도사들은 거의 고양이와 같이 살았다. 9세기 당시 아일랜드의 한 수도사는 “Pangur Bán”이라 불렀던 자기 고양이에 대한 시를 하나 지었다. (당연히 누군가 현대 영어로 번역했다.)
I and Pangur Bán my cat,
‘Tis a like task we are at:
Hunting mice is his delight,
Hunting words I sit all night.

그러나 이렇게 쥐를 잡는 장점이 있다면, 고양이의 단점이 없지 않았다. 바로 공유한 기사의 내용이다. 우리나라 세종 초기인 1420년경, 네덜란드 데벤터르(Deventer)의 한 수도원에서 필사본을 하나 만들고 있던 수도사가, “내일 와서 다시 해야징” 하고 책을 그대로 펼쳐 놓은 채, 퇴근해버렸다. 그런데 이튿날 와서 보니 고양이가 작업하던 부분에 오줌을 싸버린 것.

수도사는 무척 분노했으나 고양이가 워낙 많으니 어느 고양이인지도 모르겠고 작업하고 있던 페이지는 그냥 비워둔 채 다음 페이지 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는 고양이 그림을 그리고 저주의 말을 적어 놓았다.

“사라진 건 여기 없지만 어느날 밤 고양이가 오줌을 싸 놓았다. 이 놈의 고양이하고 다른 고양이 놈들에게도 저주가 내리기를(Confundatur cattus!). 고양이가 올 수 있으니 밤에 책을 열어놓고 나가지 말지어라…”

그런데 더 귀여운 건, 바로 여기에 오줌을 싸 놓았다고 손가락으로 표시를 해 둔 것이었다. 표시하는 모양의 손가락도 그리고 말이다. 그런데 사실 중세 때 고양이는 애정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미움의 대상일 때가 많았다. 마녀와 이단과 관련 있다고 사람들이 믿었기 때문이다. 사실 쥐를 잡는 능력조차도 중세 시절에는, 귀신이 들려서 쥐를 잘 잡는다는 생각이 있을 정도였다.

즉, 중세 시대에는 쥐를 잡는, 단순한 기능적 용도로만 고양이를 생각했다는 얘기다. 쥐처럼 아무도 모르게 집에 들어와서, 자기 멋대로 나가곤 하고 길들여지지 않았다. 이단들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에 따라 수도사들은 당연히 dog people이었다. 중세 시절 고양이들을 다 못 생기게 그린 이유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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