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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추와 중심선

척추와 중심선 인간은 이족보행을 한다. 치타처럼 사족보행을 하면 무게의 분산을 네 발로 나누고 달릴 수 있어서 척추가 유연하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등쪽이 약할 수 있다. 고양이나 개과 동물도 몸통이 두껍냐 얇으냐에 따라 보행방식이 달라진다. 그레이하운드와 닥스훈트의 달리기는 다르다. 달리기에 최적화된 말의 경우 몸통도 두껍고 다리도 두껍다. 척추도 그만큼 강해서 사람이 올라탈 수도 있다. 유인원과의 인간은 애초에 달리기보다 매달리기에 적합했고 지상에 내려와서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기는 현저히 느리지만 대신 초장거리를 달릴 수 있는 지구력이 있다. 에너지 소비효율에 있어 지구최강의 생물로 진화한 것이다. 그 덕분에 뇌가 발달할 수 있었고 지능이란게 압도적인 종족의 특성으로 이어졌다. 에너지가 남는다는 것은 다른 일을 할 여유를 준단 뜻이다. 사람들은 그 사실을 간과한다. 체력이 좋다는 뜻은 생존과 지능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이점이 된다. 똑같은 일을 해도 한 명은 지치고 한 명은 지치지 않는다면 지치지 않는 쪽이 생존에서 절대우위에 선다. 우리는 그런 경쟁의 결과물인 것이다. 인간의 신체는 달리기와 걷기에 최적화되어있다. 손은 세밀하게 발달했고 근력은 현저히 떨어졌다. 대신 하체와 골반, 척추가 견고한 구조를 형성했다. 인간이 달리기를 못한다면 그건 부모가 운동을 시키지 않았거나 본인이 게을렀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체력의 절대치를 좌우하고 생존경쟁을 불리하게 만든다. 신체의 중심선은 척추를 따라 형성된다. 상체나 하체, 팔이나 다리가 아니라 척추를 기준으로 그 신체능력이 발달한다. 이걸 모르면 팔다리가 둔화되고 신체가 약화된다. 척추가 기준이 되지 않는 한 모든 운동은 부상을 예고한다. 역대 단거리 달리기 선수 중에 특이한 자세의 선수가 있다. 마이클 존슨이란 미국선수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달렸다. 마치 다리 짧은 사람이 달리는 것처럼 보였는데도 1등을 했다. 우사인 볼트는 키도 엄청 크고 팔다리도 길다. 그래서 보폭도 넓다. 그러나 우사인 볼트는 척추측만증인 상태에서 골반과 신체의 불균형을 훈련으로 극복하고 선두에서 달렸다. 일반인은 따라할 수 없는 사람이다. 우리가 관심가져야 할 부분은 단거리 선수의 운동역학이 어떠한 형태로 이루어지는가 하는 점이다. 골반전방경사가 나쁘다. 오리궁둥이가 안 좋다. 허리에 무리가 간다 같은 말은 단거리 선수에겐 해당되지가 않는다. 오리궁둥이가 안 좋은거면 그런 엉덩이가 널리고 널린 운동선수가 설명되지 않는다. 엉덩이가 큰 건 장점이지 단점이 아니다. 골반의 경사각보다 중요한 것은 장요근의 역학이다. 그러니까 두 다리가 벌어질 때 척추로 힘이 잘 전달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동양인이 단거리 육상에서 우위에 서지 못하는 이유는 신체조건이 나빠서가 아니라 상체로 힘을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발로 민 힘을 손까지 전달할만큼의 척추 근력이 받쳐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가슴이나 팔근육을 말하는게 아니다. 척추의 기립근과 다열근, 척추다발이 팔과 다리의 힘을 연계해야만 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 처음부터 팔다리가 아니라 척추를 기준으로 훈련해야만 효율적인 발달, 성장을 이룰 수 있다. 어릴 때부터 비쩍 마른 나는 허리통증에 시달렸다. 스무살 초반부터 허리를 다치고 온갖 방법을 시도했다. 결국 알게된 건 허리를 강화하겠다고 허리를 앞뒤로 구부리는게 더 약해지는 길이란 것이다. 허리의 중심에는 척추가 있고 척추와 연결된 근육은 장요근이다. 복근이나 기립근이 기준이 아니라 장요근이 기준이다. 그 다음에 기립근, 복근이다. 이걸 거꾸로 복근, 기립근, 장요근으로 생각하면 상하체가 일체화되지 않는다. 상하체의 불균형은 다시 척추의 강화를 수반할 수 없고 결국 팔다리가 따로 놀게 만든다. 데드리프트나 스쿼트는 전신강화보다 척추와 장요근의 발달에 직접적이다. 그게 모든 중량훈련의 중심이 된 이유다. 그걸 알면 굳이 데드리프트나 스쿼트를 하지 않고도 척추를 강화할 수 있다. 장요근과 기립근이 어떻게 발달하는지를 생각하면 된다. 두 다리를 벌리고 달리면 장요근이 쓰인다. 그게 모든 운동의 기준이다. 팔이 아니라 다리를 벌리는게 먼저고 그 다음 팔을 올렸다 내리면 된다. 신체의 가장 최적화된 동작을 합치면 다리는 앞뒤로 벌리고 팔은 위아래로 든다. 그러면 척추가 강화된다. 척추의 중심선을 강화하는 방향은 골반과 가슴이 결정한다. 몸통은 척추와 흉곽의 발달로 결정된다. 복근이 아니다. 뼈가 기준이고 근육은 보조다. 그러니까 흉곽과 골반을 벌리는게 기준이지 배에 왕자 나오는게 기준이 아니다. 흉곽을 벌리고 골반을 당기려고 복근이 있는거지 복근을 수축시키려고 상체를 당기는게 아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상하체의 연결을 이해할 수 없다. 달릴 때 가슴을 내밀고 다리가 따라온다. 그걸 척추와 복근이 지탱한다. 다리가 나가고 상체가 따라가는게 아니다. 순서가 바뀌면 발달이 안되고 부하가 달라진다. 문제는 무릎이다. 척추가 약하고 흉곽도 열지 않으면 모든 부하는 무릎과 발목으로 집중된다. 시카고 불스가 NBA를 제패할 때 코트에는 두 마리의 말이 항상 앞으로 튕겨나갔다. 젊은 시절의 조던은 그보다 더 빨라서 수비가 따라가지도 못했다. 조던은 탄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집에서도 뒤꿈치를 들고 있었다고 한다. 가장 이상적인 달리기의 움직임은 상체가 약간 숙여진 상태에서 다리보다 상체가 먼저 앞으로 나가는 것이다. 척추가 지면에서 일자가 아니라 전진방향으로 향하는게 지속적인 신체의 부하를 줄여준다. 그렇게 훈련해야만 다리도 그렇게 발달한다. 원래 뒤꿈치를 떼고 달리는게 정석이다. 아킬레스건이 그러라고 가장 굵은 것이다. 물론 다리가 짧으면 상체가 설 순 있는데 그래도 턱은 당기는게 좋다. 축구에서 가장 극명한 두 선수가 메시와 호날두다. 사실 앙리가 더 극단에 있지만 어쨌든 다리의 길이에 따라 보폭이 달라진다. 그래도 상체가 강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다. 다리를 당겨오는 장요근이 척추를 기준으로 당겨지는데 척추가 서거나 뒤로 누우면 교대로 움직이는 발의 균형이 무너진다. 보통은 두 발이 짝 발이 되고 불균형으로 고착화된다. 물론 그에 따른 부상은 덤이다. 발가락과 족두, 발바닥의 앞면에서 아킬레스를 따라 종아리, 무릎, 그리고 허벅지, 그 다음 장요근에서 척추로 이어지는 라인의 역학이 강화되어야만 신체의 중심선을 살릴 수 있고 상체와 하체의 동작이 연결될 수 있다. 유연하거나 다양한 동작을 하는 것도 좋지만 일단 척추가 중심이 되지 않으면 신체는 분명히 불균형으로 보상한다. 어쨌든 팔다리는 움직인다. 허리든 무릎이든 계속 부담을 받는 채로. 운동의 역학도 한 차례 진화가 필요한 때다. 달리기를 잃어버린 현대인에게는 더욱 더.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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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성과 근력의 관계
유연성과 근력의 관계 우리가 생각하는 유연성은 극단적인 일부다. 우리가 생각하는 근력도 극히 한 지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얼마나 유연하냐 얼마나 힘이 세냐는 질문은 잘못되었다. 얼마나 부드럽냐 얼마나 끈질기냐가 정확한 질문이다. 그러니까 극단적인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면 우리가 겪게되는 대부분의 가운데를 완전히 놓치게 된다. 체조선수와 스트롱맨은 양 극단에 있다. 리듬체조와 기계체조도 그 안에서 양 극단에 있다. 유연성과 근지구력은 조화를 이룬다. 유연성만 추구해서도 안되고 근력만 추구해서도 안된다. 둘의 접점은 근지구력에 있고 그 안에서의 유연성은 가동범위의 확보, 지속가능한 충격의 흡수를 뜻한다. 이게 일반인이 겪게 되는 유연성의 본질이다. 사람의 신체는 관절로 연결되어있고, 관절은 힘줄과 인대의 결합조직으로 연결된다. 힘줄은 근육으로 이어지고 근육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수단이 된다. 그러니까 근육은 에너지를 변환하는 장치이지 에너지를 축적하는 창고가 아니다. 인간의 신체는 기계가 아니다. 누적된 강인함은 뼈와 인대와 힘줄의 견고함, 끈질김에서 나오는 것이지 근육의 크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물건을 머리 위로 들어올리는 것이 손과 손목과 아래뼈와 팔꿈치와 위뼈로 밀어올리는 것이지 근육으로 들어올리는게 아니다. 스트롱맨과 보디빌더는 그 지점에서 다르다. 스트롱맨은 뼈 자체의 강인함을 추구하고 보디빌더는 근육의 수축을 중시한다. 그러나 본질은 뼈와 관절이다. 여기서부터 각도와 자세에 차이가 나온다. 근육을 나눠서 부위별로 수축하는 방법과 밀어올린다는 또는 들어올린다는 동작 자체에 집중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턱걸이도 동작에 집중해야지 근육에 집중해선 안된다. 하체는 그러지 않는데 유독 상체는 다양한 동작에 집착한다. 이것 또한 본질에서 벗어난 생각이다. 손으로 철봉을 잡고 당기는게 중요한 것이지 등근육을 수축하고 숄더패킹을 하고 뭐가 어떻고 어떻고 그런게 중요한게 아니다. 내가 손으로 봉을 잡고 당긴다는 행위 자체 손에 힘을 주고 당긴다는 자체가 중요하다. 이런 생각의 차이는 역학의 차이를 낳고 발달의 차이를 낳는다. 유연성은 지속적인 동작이 가능한 관절의 익숙함 자체, 궤적의 반복이다. 관절의 부하를 최소화할 수 있는 동작은 그걸 가장 많이 할 수 있는 궤적이다. 여기에 속도와 박자가 나온다. 그럼 그에 맞게 근육이 수축하고 힘줄이 발달하고 관절이 고정된다. 팔을 안으로 모으면 어깨에 부하가 줄고 팔힘이 는다. 팔을 벌리면 어깨힘이 늘고 팔힘이 준다. 요는 그렇게 했을 때 힘줄이 버틸 수 있느냐는 거다. 힘줄이 버틸 수 없으면 동작을 바꾸고 궤적을 바꿔야 한다. 점진적 강화는 힘줄이 강해지는게 아니라 그와 연계된 근육이 강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턱걸이는 똑같은 자세로 많이 하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회전근개와 승모근, 삼각근이 얼마나 더 힘을 쓸 수 있느냐 발달하느냐가 중요하다. 이렇게 하려면 턱걸이를 어깨에 지듯이 교차로 잡는 방법을 써야한다. 밧줄타기처럼 손이 교차가 되거나 수건턱걸이를 하거나 링턱걸이를 하거나 좌우를 번갈아 당기거나 어깨를 한쪽씩 쓰는 연습을 해야한다. 원숭이가 나무를 한팔로 타지 두팔로 타나. 한팔로 매달려야 어깨의 유연성이 몸을 지탱할 수 있다. 그러니까 턱걸이에서 유연성이란 어깨관절이 몸무게를 버텨주는 근력, 지구력을 포함한다. 수영에서 자유형은 한팔씩 나간다. 한쪽 팔이 물을 잡아당길 수 있는 근력과 범위가 어깨의 유연성이다. 육상, 등산도 마찬가지다. 다리가 굵어지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한발이 내 몸을 차올릴만큼의 힘, 그리고 가동범위가 확보되어야 한다. 멀리뛰기나 삼단뛰기를 보면 인간의 신체능력이 생각보다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7~8미터를 날아가는 도약력, 다리의 범위, 탄력, 교차하는 다리의 움직임이 유연성을 의미한다. 결국 유연성은 동작을 하면서 늘어나는 것이지, 제자리에서 늘리는게 아니다. 근력과 지구력을 포함한 동작의 반복이 힘줄과 인대와 관절과 근육의 능력치를 향상시킨다. 이것을 현대인은 자꾸 따로 나눠서 종류를 세분화한다. 본질은 달리기다. 두 발이 교대로 나가고 발가락으로 차는게 달리기다. 발바닥이 아니라 발가락. 여기서 생물학의 상식 한가지. 잘 달리는 모든 포유류는 발가락으로 선다. 개와 고양이의 발은 발가락이다. 뒤꿈치는 위에 있다. 인간도 빨리뛸 때는 뒤꿈치가 닿지 않는다. 그러니까 유연성의 극대화는 손가락, 발가락을 얼마나 잘 쓸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린 것이다. 반대로 근장력, 최대근력의 극대화는 손 전체와 발 전체를 얼마나 잘 쓸 수 있느냐에 달렸다. 빨라지고 싶으면 발가락에 집중해야되고 힘이 세지고 싶으면 발바닥에 집중해야한다. 나는 물론 전자를 선호한다. 일반인은 힘보다 유연성에 집중하는게 알맞고 그게 본질에 가깝다. 힘은 타고난 골격과 두께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고 기술로도 극복할 수 없다. 비쩍마른 나는 절대 씨름선수로 성공할 수 없다. 애초에 주어진 조건이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수영 육상 등산은 가장 보편적이지만 또 뼈가 두꺼운 사람에겐 적합하지 않다. 운동의 적합도를 구분할 때는 키보다 골격이 더 중요하고 골격보다 두께가 더 중요하다. 손가락이나 손목, 발목, 목의 두께를 보면 알 수 있다. 그에 따라 가능한 유연성의 정도도 다르다. 얇은 사람의 유연성을 두꺼운 사람은 따라갈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덩치 큰 사람이 뻣뻣하기만 할까? 스트롱맨 중에 키에 비해 덩치가 상당히 큰 에디홀이란 선수가 있다. 데드리프트만 500킬로를 든다. 훈련영상을 보다가 깜짝 놀랐던 부분은 어깨와 골반의 가동범위가 상당히 넓었단 것이다. 그러니까 고관절이 큰 사람은 그 유연성과 가동범위도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크다고 뻣뻣하고 작다고 유연한게 아니란 소리다. 그리고 힘이 세려면 그만큼의 유연성도 발달해야함을 동시에 뜻한다. 보통 체격의 일반인에게 중요한 것은 최대근력이나 근육, 크기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가동범위의 확보, 지속적인 근지구력의 확보, 관절의 부하를 최소화할 수 있는 탄력의 확보다. 그걸 통틀어서 유연성, 탄력, 부드러움이라 부를 수 있다. 결국 일반인에게 근력은 근지구력과 탄력의 교집합이지, 엄청난 과부하를 견뎌내는 관절의 견고함이 아니다. 일반인 체격을 가진 파워리프터의 최대치도 700~800kg을 넘기 힘들다. 수년간의 반복과 기술로 관절이 강화되어도 한계는 있다. 내가 볼 때 보통 사람의 강인함은 육상선수, 클라이머, 마라토너에서 찾아야 한다. 인간이 가진 최대의 강점은 거기서 나온다. 아이언맨, 울트라 마라토너같이 엄청난 심폐능력은 타고나지 않아도 누구나 키울 수 있다. 또 근육질의 체형도 병행할 수 있다. 군인들이 그 표본이다. 중요한 것은 유연성의 의미가 관절이 늘어나는게 아니라 관절의 부하가 최소화되는 매커니즘의 확보라는 더 넓은 개념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근력은 그 안에서 설명되어야 한다. 근력을 유연성과 분리하면 부상은 피할 수 없다. 인간의 관절이 순간적인 과부하에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된게 아니니까. 대한 
소화의 역설
소화의 역설 운동을 하면 많이 먹어야 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며 생각보다 개인차가 크다. 일단 지금의 식이섭취방식이 필요이상으로 많이 먹고 있고 단백질이 과다섭취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한다. 나는 특이하고 기존과 다른 주장에 관심이 많다. 궁금증이 샘솟아 그냥 넘어가지를 못한다. 의학에 처음 관심을 가진 것도 150살까지 살 수 있다는 책의 제목을 보면서 부터였다. 그 때부터 또 의학에 관한 책을 사모으기 시작했다. 암, 효소, 고기 등 기존의 주장과 다른 책을 찾기 시작했고 어느 정도의 결론을 얻었다. 육식이 과도해진 유래도 알게 되었고, 칼로리, 우유, 소고기를 많이 먹는 것도 독일에서 시작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각설하고 장수하는 건강식은 지중해 그리스식이 유명하다. 세계에서 장수하는 지역도 주로 바닷가다. 100세 이상이 4만명이 넘는 나라가 일본이고 답은 소식에 있다. 일단 이건 장수의 관점이고, 그럼 젊을 때는 어떻게 먹어야 되느냐? 모든 식단을 클린식품으로 바꿔야 한다. 자연식 관점으로 말하면 근 100년 사이에 등장한 식품은 모두 배제해야한다. 설탕, 정제 탄수화물, 탄산음료, 합성고기도 끊는게 좋다. 결국 가장 좋은 건 한식이 되는데, 일식이나 바닷가 음식도 좋다. 거기에 채소를 더 많이 먹어야 한다. 생각보다 많이. 나는 여기서 소화에 대한 해석을 더하고 싶은데 무엇을 먹느냐보다 그것을 내가 얼마나 어떻게 소화시키느냐가 더 중요하단 것이다. 단백질을 가루로 물에 타서 먹었다 치자. 아니면 칼로리를 맞춰서 탄지단무기질을 골고루 먹었다면 그게 다 잘 소화가 될까? 소화가 되서 근육이 잘 합성되고 회복이 될까? 모든 사람이 똑같이? 내가 볼 때 대부분의 사람은 고기가 소화가 잘 안된다. 소화가 안되는 고기는 똥으로 나온다. 나처럼 신진대사가 빠른 사람은 많이 먹을수록 대변량만 늘어난다. 물론 배속에서 계속 고기를 분해시킬테고 그동안 계속 불편한 상태를 유지해야한다. 자, 반대로 묻자. 하루에 근육이 합성되는 양이 얼마나 될까? 소올직히 기존의 상식은 도저히 납득이 안된다. 단백질이 들어가서 분해되고 무슨무슨 과정을 거치고 다시 신체의 각 조직으로 재합성되는 건 세포수준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배속에 단백질이 많이 들어가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그 단백질이 소화되고 분해되서 합성되는게 중요하단 소리다. 이건 그냥 당연한 생물학이고 과학이다. 전자보다 후자가 훨씬 더 중요한데도 전자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소화를 하고 분해를 하고 합성을 하는게 기준이지 탄지단을 얼마나 먹고 칼로리가 얼마냐가 기준이 아니다. 물론 적게 먹으면 그 과정이 어려울 수 있지만, 적당히 먹는다면 근합성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본다. 막말로 고기안먹어도 근육은 큰다. 채식주의의 비건빌더가 그것을 증명한다. 뭐? 채식인데 근육이 붙는다고? 식물성 단백질을 먹기 때문이다. 나도 궁금해서 탄지단을 공부했다. 결론이 뭐냐면 C H O가 에너지의 기본 구성물질이란 사실이다. 탄소 수소 산소의 결합구조가 탄수화물이다. 간단히 생각하면 식물의 광합성과 반대방식으로 인체가 에너지를 만든다 볼 수 있다. 잘 알지도 못하는 화학을 얘기하는 이유는 신체의 화학적 과정이 원활해지도록 만드는게 많이 먹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소화도 안되는 음식을 그것도 좋지 않은 걸 포함해서 먹으면 부작용이 더 크고 합성작용을 더디게 만든다. 술을 먹고 간에 부담을 준다거나 음료를 먹고 신장에 부담을 준다거나 고기를 많이 먹고 위나 장에 부담을 줘서 시스템을 비효율적으로 만들고서 몸이 건강해질거라는 착각에 빠진다는 것이다. 의사들은 공통적으로 식습관을 말한다. 그런데 고기를 많이 먹는 것에 대해선 말하질 않는다. 서구에 비하면 우리의 육류섭취가 적은 건 맞다. 근데 그래서 우리가 더 건강하단 사실은 말하질 않는다. 설탕과 밀가루, 고기로 점철된 미국식은 고비만자를 낳고 피부도 안좋고 온갖 질병을 만든다. 그럼 그게 근합성엔 도움이 되느냐? 앞서 말했듯이 신체 시스템을 굉장히 비효율적으로 만들고 소화시키는 수준에서 억지로 견디는 것뿐이다. 못 견디면 피부병, 알레르기 질환, 스트레스, 성인병이 된다. 굳이 채식을 하고 지중해식을 할 필요는 없지만, 채소와 과일, 소화와 효소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장건강이 이슈가 된 건 기울리아 앤더스라는 독일의 신예 의학자가 연구를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1990년 생이다. 나도 얼마 전에야 책을 샀다. 매력적인 장 여행. 두뇌와 심장만큼 대장도 중요하다 말한다. 소화가 두뇌에도 영향을 미친단다. 그런데 이런 건 우리도 당연하게 알던 것들이다. 동양의 발효식품은 미생물덩어리다. 김치는 슈퍼푸드다. 그러니까 중요한 건 고기를 많이 먹는게 아니라 고기를 소화시킬 능력이다. 그러려면 장이 건강해야되고 고기를 분해시킬 좋은 대장균이 많아야 한다. 식이섭취의 관건은 식이섬유, 곧 채소고 무조건 채소와 고기를 같이 먹어야 소화가 잘 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토록 간단한 답을 왜 우리는 빙빙 돌아서 찾아야 할까? 샐러드와 유산균, 발효식품, 그리고 약간의 고기, 필요한만큼의 지방과 탄수화물. 그거면 된다. 억지로 많이 먹을 필요도 없고 비싸고 좋은 고기를 먹을 필요도 없다. 굳이 말하자면 다양한 채소를 먹고 한 가지 고기만 먹어도 된다. 어차피 대장에서 분자단위로 분해해서 재합성하기 때문에 비싼 고기 싼 고기가 아무 의미가 없다. 분해하면 다 똑같다. 소화잘되는 고기보다 채소가 훨씬 더 중요하다. 그냥 밥먹고 고기 조금먹고 채소 많이 먹는게 일반인의 근성장에 훨씬 더 유리하다. 거기서 신경을 더 쓰면 이제 탄수화물도 건강식, 지방도 건강식이면 된다. 영양제도 소화가 안되고 합성안되면 별 소용없고 보충제는 말할 필요도 없다. 많이 먹으면 소화가 잘 되든 안 되든 오래 못 살고, 적게 먹으면 오래 살고 건강해진다. 운동을 해도 기본은 똑같고, 에너지원만 더 먹으면 된다. 소화를 잘 시키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소화가 잘 되는 것. 소화가 잘 되도록 하는 채소를 먹는게 중요하다. 채소가 탄지단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고기만 먹는 호랑이, 사자가 왜 풀을 뜯겠나? 채소의 관점에서도 한식이 세계최고다. 마늘 양파 대파 쪽파 고추 배추 콩 아무튼 채소란 채소는 다 음식으로 만들고 고기는 쌈으로 싸먹는다. 전세계가 인정할 날이 곧 올 것이다. 과학적으로 부정할 수가 없다. 삼겹살에 마늘, 된장에 김치, 상추 깻잎 쌈이 엄청나게 과학적이고 소화에 좋은 식습관이다. 항염, 항암까지 된다. 대파는 신선의 음식이라 했다. 소고기무국. 부추. 시금치. 나물반찬 등등등. 대한
스쿼트는 힙업 운동이 아니다.
제목은 어그로 끄려고 저렇게 붙여봤음. 그렇지만 정말로 반정도는 맞는 말이긴 함. 스쿼트는 전신운동이긴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서는 허벅지에 가장 큰 자극이 가는 운동임. 엉덩이 힙업이 되려면 대둔근을 키워야 되는데 대둔근이 생각보다 정말 키우기 힘든 근육임. 대둔근을 키우려면 크게 3가지 방법이 있음. 1. 스쿼트를 존나 무거운 무게로 한다. 스쿼트 무게가 점점 무거워 질수록, 더 깊이 앉을수록 허벅지 근육에 비해서 엉덩이 근육에 자극이 더 많이감. 그래서 힙업에는 스쿼트를 낮은 무게로 많이 하는 것보다 무거운 무게로 적게 하는게 더 중요함. 그래서 맨몸 스쿼트는 허벅지에만 자극이 가고 힙업에는 생각보다 별 효과가 없음. 2. 힙 쓰러스트 운동에 관심 있는 사람은 자주 봤을 운동인데 이게 최근에 각광받는 이유는 둔근만을 키우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운동이기 때문. 실제로 운동선수들도 필수적으로 함. 3. 전력질주 축구선수들이 몸이 안좋아도 엉덩이는 빵빵한 이유는 축구가 전력질주가 가장 많은 스포츠중 하나이기 때문. 어린아이나 고대 그리스인이나 아프리카 원주민이 오늘날 성인에 비해서 엉덩이가 빵빵한 이유는 전력질주를 자주하기 때문. 사실 둔근의 존재목적은 무거운걸 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빠른 달리기를 위해서임. 그래서 서서 달리는 인간이 고릴라나 오랑우탄에 비해서 유독 엉덩이 근육만 큰거임. 헬스장에서 엉덩이 근육을 키우려면 무거운 무게로 스퀏을 하거나 힙쓰러스트를 하거나 둘중하나인데 둘다 제대로된 트레이너의 도움이 없으면 하기 힘든 운동임. 그래서 생각보다 힙업 시키는게 매우 어려움. 헬스장을 가기 힘들면 차라리 운동장에서 전력질주를 하는게 힙업에는 더 유리할수가 있음. 제시가 엉덩이 근육만 저렇게 키울수 있냐는 글이 올라와서 쓴글인데 전문적인 트레이너의 도움을 받아서 빡세게 운동한다면 불가능한건 아님. 시술이 있었냐 없었냐는 뭐 본인만 알겠지만 인스타에 있는 엉덩이큰 미국애들이 시술한 애들도 있지만 헬스장에서 힙쓰러스트로 엉덩이 근육을 조져서 만드는 애들도 많이 있음. 그리고 축구나 농구같은 운동을 전문적으로 한 애들은 '전력질주'를 기본적으로 밥먹듯나 하기 때문에 힙업은 기본 장착임. 출처 : 더쿠 엉덩이가 고민인 빙글러가 있다면 한번 읽어봐도 좋을 것 같아서 퍼왔어ㅋㅋㅋㅋㅋㅋㅋㅋ
운동강도와 회복주기
운동강도와 회복주기 신체발달에 있어서 훈련의 방식은 그 사람의 모든 방향을 좌우한다. 훈련에는 당연히 회복도 포함되어있다. 아마추어는 항상 그 부분을 간과한다. 대개의 초보자는 오버트레이닝을 한다. 그 이유는 그 방법이 직관적이기 때문이다. 신체를 강화하는데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고강도와 고반복이다. 관절의 부하로 보면 둘다 같은 결론으로 수렴한다. 약해지거나 강해지거나. 강화되거나 부상을 입거나. 운동강도의 적정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근육이 아닌 관절의 강화다. 오버트레이닝은 관절의 혹사로 이어지고 이는 곧 부상을 의미한다. 그러면 지속적인 관절의 강화, 신체의 발달은 어떻게 추구하는가. 여기에 회복주기의 중요성이 숨어 있다. 운동강도나 능력과 상관없이 관절이 강화되지 않으면 회복이 덜 된 것이다. 부상이 아니라면 신체는 항상 초과회복된다. 부러진 뼈는 더 단단하게 붙고, 힘줄과 근육이 더 크고 질겨진다. 유연성은 떨어질 수 있어도 힘은 떨어지지 않는다. 여기서 착각하는 것이 고중량을 드는 능력이 나이를 먹으면 떨어진다는 것인데, 그것은 착각이다. 원래가 고중량 운동은 신체와 관절의 협응력으로 드는 것이지, 관절이나 힘줄, 근육의 파워로 드는게 아니다. 물론 약쟁이는 가능하다. 일시적으로. 내가 하는 설명이 계속 복잡해진 이유는 관절의 능력이 연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관절을 기준으로 운동강도를 이해해보자. 손가락을 하루종일 까딱한다고 관절에 과부하가 오진 않는다. 맨손으로 컬을 해도 팔꿈치는 아무 지장이 없다. 반대로 역도선수는 매일 고중량 스쿼트를 해도 무릎에 문제가 없다. 운동선수는 거의 매일 관절을 써도 부상이 발생하지 않는다. 이 말은 본인이 가진 관절능력과 운동강도의 관계를 증명한다. 턱걸이 기네스기록이 내가 알기론 사천번이 넘는다. 아저씨가 하루 반나절을 계속 턱걸이를 했을거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그 사람의 손과 팔힘이 몸무게보다 훨씬 세기 때문이다. 전문 클라이머에게 맨몸 턱걸이는 훈련이 되질 않는다. 왜? 팔힘이 맨몸의 부하를 상회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턱걸이를 계속해도 관절에 무리가 없고 회복할 필요도 없다. 울트라 마라토너는 100km이상을 뛴다. 또는 몇날 며칠을 달린다. 그 사람의 다리는 이미 자신의 체중이 오는 충격을 충분히 견디기 때문이다. 우사인 볼트는 800m 스프린트를 열번씩 했다. 수영선수는 하루에 10km를 수영한다. 그만큼 관절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운동강도나 회복주기에 대해 착각들을 한다. 이게 다 보디빌딩이나 웨이트 트레이닝이 기준 상식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그걸 모르거나 다른 종목에 있던 사람들은 횟수나 강도, 심지어는 회복조차도 신경안쓰고 운동했는데 신체가 발달하고 강해진다. 물론 충분히 쉬지 않으면 언젠가 부상을 입긴 입는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건, 모든 기준은 관절이 견디느냐 강해지느냐 발달하느냐 라는 것이다. 맨몸운동의 경우 관절의 부하는 유연성의 정도에 따라 결정되고 자세와 각도에 따라 달라진다. 보통의 회복주기는 근육통이 사라지는 시일, 또는 신체가 정상컨디션으로 돌아오는 정도로 따진다. 하루에서 길어야 삼일이면 신체는 정상컨디션으로 돌아온다. 문제는 관절이 그 안에 회복되느냐다. 여기서 운동강도의 결정이 중요해진다. 어깨든 골반이든 무릎이든 아프면 안 아플 때까지 쉬어야 한다. 나는 여러 부위를 한계치까지 시험하다 잦은 부상을 입었고, 세달에서 대여섯달도 쉬어봤다. 물론 몸을 쓰는덴 지장이 없었지만 손등의 관절, 무릎 등이 회복되는데 최소 몇 주에서 몇 달을 쉬었다. 인대의 염증이나 염좌 정도라면 몇 주면 회복되지만 그보다 통증이 심하다면 안 아플 때까지 쉬어야 한다. 운동선수는 아파도 다른 운동을 하지만, 일반인은 그럴 필요가 없다. 완전회복되어야 더 강해질 수 있다. 관절의 부상을 단 채로 아무리 재활을 잘해도 그건 결국 근본적인 부상을 치료하지 못한다. 연골이 닳고 힘줄이 약해지고 끊어지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만큼 지금의 운동방식은 잘못되어있다. 초보자나 일반인은 맨몸운동이 맞고 항상 회복이 기준이어야 한다. 보디빌딩에서 개인차가 발생하는 이유는 관절의 수준, 시차에 따른 결과다. 몸무게와 키가 똑같아도 사람마다 뼈의 굵기는 다르다. 힘줄의 강도도 다르다. 관절의 발달수준도 다르고, 회복속도도 다르고, 신경수준도 다르다. 그러니 당연히 운동능력과 회복수준이 다를 수밖에 없다. 자세와 습관이 좋은 건 그만큼 관절이 강하다는 뜻이고 그러면 운동강도가 높아도 관절의 손상은 없거나 적다. 그럼 회복도 빠르고 몇 분할이나 고반복이 가능해진다. 중량을 쓰더라도. 초보자는 신경계가 발달해서 강해지는 걸 근육이 커져서 강해진 것이라 착각하기 쉽다. 파워리프터는 근육이 작아도 근육이 큰 보디빌더보다 훨씬 힘이 셀 수 있다. 그러니까 근육이 기준은 아니란 소리다. 대체적으로 근육이 크면 힘이 센 것이지, 근육때문에 힘이 센 것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힘줄이 센 것이고 그 결과로 근육이 동원되는 것이다. 물론 약쟁이는 힘줄이 그대로여도 근육이 커진다. 그래서 약을 끊으면 다시 원상복귀된다. 아니 더 약해진다. 그동안 힘줄이 견딜 수 없는 강도로 운동해서 손상을 입었으니까. 각자의 관절수준을 기준으로 해야 다른 사람들의 운동강도와 훈련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안전이나 부상을 강조한다고 해서 더 쉬운 운동방법을 제시하는게 아니다. 나는 관절의 한계를 기준으로 방식을 결정한다. 그 한계를 조금씩 늘려나가는 그래서 관절이 회복되는 수준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버티기가 들어가면 중량을 쓰지 않더라도 관절에 무리가 갈 수 있고 운동강도가 현저히 높아진다. 중량에 의한 수동적 부하보다 자발적인 능동적 부하가 더 괴로울 수 있다. 일초이초 더 버티는게 정신적으론 더 괴로울 수 있단 소리다. 장점은 심각한 부상을 회피할 수 있단 것이고 단점은 더 체계적이고 단계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한발 한팔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발 한팔이나 배낭, 물통, 가방을 쓰지 않으면 맨몸운동으로 스트랭스를 늘리기가 어렵다. 엄청나게 고반복을 해야하는데 그러면 결국 시간대비 비효율적이 된다. 그냥 파워빌딩이나 보디빌딩을 하느니만 못하다. 물론 근지구력은 좋아지지만, 그럼 어차피 같이 하면 되는거니까. 내가 고중량이나 과부하의 중량훈련을 배제하고 운동방법을 만드는 이유는 장기적으로 훨씬 더 큰 장점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절 자체가 강해지고 심폐 자체가 강해지고 체력 자체가 강해지는 효과가 맨몸 위주의 훈련으로 달성가능하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울트라 마라토너나 클라이머 같이 월등한 능력을 가지는게 누구나 가능하다. 타고나지 않아도 가능하다. 하지만 고중량 훈련은 그게 불가능하다. 애초에 다른 길이다. 회복주기도 한계가 생긴다. 힘줄과 관절의 협응력이 탄력, 유연성, 지구력과 함께 좋아지면 회복주기가 점점 짧아지거나 필요가 없지만, 관절을 무시한 채 근육에 집착할수록 관절이 손상되고 회복도 느려지고 체력도 약해진다. 전체적인 매커니즘이 비효율적인 몸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이미 미국이나 유럽에는 나이를 먹고도 근육과 체력을 둘다 취하려는 전문가들이 있다. 그들도 결국은 고중량이 아니라 저중량의 버티기, 아이소메트릭을 응용한 고립법을 쓴다. 근데 근육은 빵빵하다. 이미 힘줄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운동강도와 회복주기란 제목이라 일반적인 개념을 기대했겠지만, 나는 그보다 관절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적었다. 관점을 바꿔야 죽을 때까지 운동할 체력을 키울 수 있다. 운동과 회복은 그걸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근육을 키우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대한
신발과 훈련의 관계
신발과 훈련의 관계 온갖 종류의 신발을 사고 버리기를 반복했다. 내 발이 짝짝이란 것도 서른이 넘어서 알게 되었다. 발볼이 넓다는 사실은 그보다 더 뒤에 알게 되었다. 평발도 마찬가지다. 나는 후천적 평발이라 생각했고 현대인의 60%가 후천적 평발이 진행중이라는 뉴스를 본 적이 있었다. 내 스스로가 약하다는 편견과 더불어 내 발도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갖기에 충분했다. 물론 나의 어머니가 완전 평발이고 아버지가 요족에 가깝지만 시간이 흘러도 내 발의 아치는 무너지지 않았고 발목이나 무릎에도 아무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다만 어릴 적에는 잘 넘어지고 자주 접질렀을 뿐이다. 군대를 다녀오고 등산을 하면서는 발의 문제를 느끼지 못했다. 허리의 문제가 가장 커서 발에 대해선 신경쓰지 못했다. 나는 허리의 통증을 잡기 위해 요가를 배우고 수영을 배웠다. 차츰 허리의 통증이 사라지고 전반적인 문제가 해결되었지만, 이제는 오른쪽 골반에 통증이 지속되고 있다. 문제는 결국 발에 있었고 골반의 불균형도 발에서 시작되었다. 유전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오른발과 오른팔이 더 길다. 그런데 나는 왼손 왼발잡이다. 이걸 모르고 운동을 해와선지 왼쪽과 오른쪽의 힘 차이가 커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신발과 깔창으로 차이를 덮어왔단 사실이다. 두껍고 높은 신발은 두 가지 문제를 낳는데 하나는 발과 발목을 약화시킨다는 것이고, 둘은 그대로 불균형을 고착화시킨다는 것이다. 신발을 신으면 안쪽이나 바깥쪽이 많이 닳는 사람이 있다. 보통은 바깥쪽이 먼저 닳는데 그것도 많이 닳으면 발목이 기울어져 있단 뜻이다. 그 상태로 계속 살면 발목만이 아니라 무릎과 골반도 약해진다. 나처럼 두 다리의 차이가 있을 경우 그 차이는 더 커진다. 편한 쪽에 더 힘을 싣고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는 아주 점진적으로 진행되지만, 다시 운동의 강도를 올릴 경우 약한 쪽 다리에 과부하가 걸린다. 주로 관절, 특히 무릎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수많은 신발을 신은 끝에 결국 가장 싸고 얇은 베어풋을 찾고서야 문제해결의 열쇠를 쥐게 되었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다 흰색 실내화를 신었다. 우리 부모세대는 고무신을 신었고 그 윗 세대는 짚신을 신었다. 삼선 슬리퍼에서 아디다스 나이키를 신게 된 지는 불과 이삼십년 안팎이다. 한국은 급속히 서구화되기 시작했고, 음식 복식까지 전부 서구화되고 있다. 서양식이 나쁜 건 아니다. 바닥보다는 의자가 낫고 침대가 낫다. 허나 그것이 자연과 멀어질 때는 무엇이든 문제가 발생한다. 미국이나 유럽은 최악을 찍고 다시 자연을 찾고 있지만, 중국이나 한국은 최악을 향해 가고 있다. 신발도 마찬가지다. 리복의 벌집에어부터 나이키의 에어조던까지 운동화에 기능성을 더한 신발은 신체를 강화하는 것이라 약화시킨다. 사실상 일반인에게 기능성 운동화는 순기능이 아니라 역기능만 일으킨다. 그것이 명백하다 못해 이미 진행중이다. 쿠션이 좋은 신발을 신고 운동할수록 발목은 약해진다. 발과 발목이 약해질수록 무릎에 부하가 가중되고 종아리는 약해진다. 그 결과 운동을 해도 허벅지만 발달하고 종아리는 발달하지 않는 기이한 사태가 일어나는 것이다. 게다가 아주 비싸고 좋은 운동화를 신고 러닝머신만 뛰면 발이 단련될 가능성이 없다. 무릎만 계속 부하를 받는 것이다. 여자들은 종아리에 근육이 생기는 것도 싫고 발이 못 생겨질까봐 걱정을 한다. 그런데 종아리는 체형에 따라 결정될 뿐, 운동한다고 쉽게 굵어지는 부위가 아니다. 일부러 카프레이즈를 하지 않는 한 종아리가 발달하기는 어렵다. 종아리가 굵어지는 이유는 다리가 짧거나 뼈가 굵거나 무게중심이 낮거나 오르막이나 계단을 엄청 많이 오를 경우뿐이다. 마르고 긴 사람은 운동을 많이 해도 종아리가 굵어지지 않는다. 허벅지가 굵어질 뿐이다. 아무튼 가장 큰 문제는 신발이다. 농구화나 키높이 신발, 구두나 하이힐을 신으면 남자든 여자든 발이 약해지게 되어있다. 그 말은 곧 하체가 약해진다는 소리고 그 말은 바로 무릎에 무리가 가고 언젠가 관절염에 걸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군화나 워커도 마찬가지다. 밑창이 두껍고 발을 잘 보호하는 신발은 그 기능에 충실하여 발을 보호하고 무게도 무거워 무릎에 부하를 가중한다. 골반이나 허벅지는 단련될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하체는 약해진다. 그 이유는 밑창이 두꺼워 발가락과 발바닥의 힘을 전혀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게 내가 근본적인 문제라 생각하는 부분이며 결국 최대한 얇은 신발로 돌아온 이유다. 가끔 맨발의 건강을 강조하는 의사나 전문가들이 방송에 나온다. 가능하면 맨발로 있는 시간을 오래 가지라는 것이다. 나이키나 아디다스를 비롯한 신발회사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기능이 좋고 튼튼한 신발일수록 발은 더 약해진다. 비싼 신발을 신으며 스스로 약해지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손을 생각해보자. 맨날 장갑을 끼고 살면 어떻게 될까? 손이 약해질까 강해질까? 사람들은 기준도 없이 장비를 사용한다. 맨몸으로 턱걸이를 하는데 스트랩을 쓴다. 자기 체중보다 낮은 중량에 스트랩을 쓴다? 악력을 무시하고 운동을 하겠다? 훈련을 하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 것도 없이 무분별하게 장비에 집착하고 방법을 찾아 헤매는 건 시간낭비일 뿐더러 부상가능성을 현저히 높이는 일이다. 아니 빠르게 한계에 직면하고 위험을 감수하게 될 것이다. 발앞꿈치부터 뒤꿈치까지 발바닥 전체가 지면에 닿아 땅바닥을 밀어내는 것은 인체의 가장 기본적인 물리적 활동이다. 발에 수많은 뼈가 맞물리고 힘줄과 인대, 근육이 조직된 이유는 신체의 무게를 버티면서 밀어내고 방향을 틀고 민감하게 반응하기 위해서다. 크고 높고 좋은 신발을 신는다는 것은 그러한 발의 엄청난 기능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타고난 기능인 100을 포기한 채로 몇 가지 아이디어로 만든 10 20을 취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신발은 어디까지나 발을 감싸고 보호하기 위해 만든 것이지 강해지기 위한게 아니다. 단단하고 튼튼한 신발이 필요한 경우는 발이 못 견딜 정도로 험악한 지형을 이동할 때 뿐이다. 아니면 특수목적에서 안전화가 필요하거나. 일상생활이나 운동에서 겪는 대부분의 상황은 좋은 신발이 필요가 없다. 정말로 돈들여서 발을 약화시킬 뿐이다. 신발이 강하면 발이 약해지고 신발이 약하면 발이 강해진다. 나는 크로스핏의 위험성을 크게 보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어떤 기능성 운동화보다 크로스핏화가 낫고 조깅화로는 어떤 좋은 런닝화보다 아쿠아슈즈가 낫다. 발을 훈련시키려면 좋은 신발을 신어선 안된다.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