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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틀릴 수도 있다

스티브 잡스에게도 빌 게이츠에게도 오바마 대통령에게도 그 어떠한 관계보다 풀기 힘든 일은 아마도 "Parenting"일 것이다. 조그마한 알람 시계 하나를 사도, 하찮은 조립 장난감 하나를 보너스로 받아도 언제나 사용설명서가 함께 첨부되어 따라 나온다.  얼마 전, 핸드폰 액정이 깨져 핸드폰을 바꾸게 된 나도 따라 나오는 "매뉴얼"의 분량에 벌써 질려 그냥 아는 기능만 쓰고 있다.  가끔, 똑같은 기계를 나보다 훨씬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을 보노라면 나의 무능함이 서글퍼지기도 하고 어찌 같은 기계를 가지고 저리 능숙하게 다룰 수 있을까 하는 부러움과 샘이 생기기도 한다. 엉뚱한 나는, 어쩌면 내 자신이 내 아이의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도와주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다.  부모의 역할이 뭐길래...  에디슨의 어머니가 아이를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다고 에디슨을 우격다짐으로 초등학교 공부를 시켰다면 과연 인류는 전구며 축음기를 가질 수 있었을까? 라이트 형제가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꿈을 펼칠 수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대륙간을 배로 건너 다녀야 할 지도 모른다.  그러면 도대체 내 아이가 무슨 재능을 가지고 인류를 위해 어떤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랄지 어찌 알 수 있단 말인가? 참으로 황당하고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늘 남의 아이가 공부도 운동도 예의 범절까지도 내 아이보다 도드라져 보이는 건 나만의 착시현상인 걸까 아니면 어쩔 수 없이 부딪혀야 하는 벽인 것일까?  부모가 되기 전, 열심히 읽어댔던 육아 책이며 이런 저런 분들의 조언도 내 아이의 상황과는 도대체 맞지 않는 것 같고 내가 잘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아이는 내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간다. 도대체 부모의 역할이 뭐길래 날 이리도 헤매고 힘들게 하는 것인가?  아이도 태어날 때 나의 재능은 무엇이며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 할 것이며 10년 후에는 이렇게, 20년 후에는 이리 키우면 나의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는 것이라는 종이쪽지라도 하나 건네주면 좋으련만… 이건 아이를 낳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첫경험의 연속이다.  첫째 이가 나기 위해 아픈 아기를 들고 밤새 종종거리다 회사에서 졸기도 하고, 언제나 중요한 일이 있으면 어김없이 아파 준다던가, 이런 것은 기본으로 아이를 키우며 겪어야 하는 필수 조건들이다.  게다가, 엄마들이 전부 다 아기 키우는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고, 아이를 안은 부모는 늘 허둥지둥 어떠한 학식도 논리도 통하지 않는 자지러지는 아이를 그저 안고 허둥대기만 하며 이것이 나의 한계구나 하는 실망감에 우울해져 봤던 경험들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내가 이런 것을 잘했고, 이리 해라 하는 지침서를 쓰고 싶은 사람은 아니다. 다만, 자신의 자식이 잘못되기 위해 비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싶어서이다. 아무리 흉악한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낳으면서부터 너는 이 다음에 흉악범이 되어라 하고 복중의 아기에게 저주를 퍼붓는 사람은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아이를 원치 않거나 형편이 되지 않아 입양을 보내는 부모들도 자식들이 자신의 삶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부모는 언제나 옳을까?  하지만, 우리는 언제 우리의 아이들에게 나는 최선을 다해 너를 키우고 싶단다 하는 말을 하는 걸까? 대부분은 그런 기회를 놓지고야 만다. 마치 자식에게 자신의 치부를 들어내는 것 과 같이 부모는 늘 권위 있고 옳은 존재라는 것을 인정받고 싶어하지, 그 반대의 경우를 절대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럼 부모는 언제나 옳을까?  20여 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며, 나는 자신의 꿈을 자식의 꿈으로 포장해 자식에게 무리한 것을 강요하는 부모님들을 무척 많이 보았다. 모든 것에 뛰어나고 인성도 운동 신경도 심지어 외모까지 다른 아이들보다 꼭 특출나야 한다.  하지만, 일단 학교라는 환경에서의 경쟁은 모두가 1등이 될 수 없는 경쟁지이다. 아이들의 “학업성취도”를 측정해 그때그때 기간의 진도를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이 되었던 시험이라는 평가방법은 많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불행하게 만든다.  물론, 이 불행의 내부에는 공부를 잘 못하면 인생의 경쟁에서 뒤쳐질 것 같다는 불안감, 그리고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어하는 인간의 미련한 욕망이 녹아져 있다.  그렇기에 선행학습이 한 학기 정도에서 방학 동안 보습학원 다니던 수준에서 이제는 초등학교 때 고등 수학을 풀어야 한다는 강박감에 많은 학부형들은 자신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자신의 분신들을 불행의 늪으로 던져 넣고 있다.   <어찌하면 이 늪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까? 그 첫 번째 방법은 내려 놓는 것이다.>  내려 놓기  그럼, 어찌하면 이 늪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까? 그 첫 번째 방법은 내려 놓는 것이다. 내 아이가 모든 방면에서 다 뛰어날 수는 없다. 하지만, 꼭 한 가지에서만큼은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다.  못하는 많은 것을 야단치기 전에 잘하는 한가지의 것을 칭찬해 보면 어떠할까? 예를 들자면, 싸움을 잘하는 것도 특기이다. 그 아이는 적어도 외부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자존감과 자신감이 있다는 것 아닌가.  “어머 우리 OO는 싸움은 참 잘하는구나!!!! 하지만 다음부터는 꼭 싸울 일인지 한번 생각해 본 다음에 주먹을 날리면 어떨까?”라고 이야기를 한다면 내가 너무 이상한 엄마인 것인가?  나의 조카 중 한 녀석은 무조건 어떠한 어른의 말에도 토를 달고 학교에서도 자꾸 친구들과 시비가 붙어 엄마가 늘 학교에 불려 다니던 때가 있었다. 그 때 나는 그 조카에게 너는 나라를 위해 싸울 수 있는 국제 변호사가 되라 했다.  어차피 싸움을 잘 하는 것이 그 녀석의 특성이라면 굳이 그것을 나무라는 것보다는 큰 싸움을 위해 준비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 준다면 그 조카는 얼마나 기쁘게 매일매일 싸우며 살겠는가.  물론 조카의 부모인 나의 동생네 부부는 기겁을 했지만, 그래서 그랬는지, 아니면 나이가 들어 그런지 조카는 책을 많이 읽고 공부에 취미를 붙이기 시작하며 여기저기 덤비는 횟수가 잦아들었다.  그럼 나의 조언이 조카아이에게 딱 맞는 조언이었을까? 그건 나는 모른다. 오직 교육에 오래 종사했던 경험으로 그저 한마디 도와준 것뿐이다. 나는 정답을 가진 이모가 아니라 조카가 자신의 장점은 극대화시키고 단점은 보완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을 나의 경험을 토대로 한마디 도왔을 뿐이다.  나머지는 그 아이의 부모와 그 아이에게 달려 있다. 우연인지 결과인지, 조카는 교장선생님께 더 이상 불려가지 않는다 한다.  어설픈 학부모 전문가들과 1등 열풍  지금 대한민국은 인터넷 확산에 따른 어설푼 학부모 전문가들과 1등 열풍에 자식을 기르지 않고 공부 로봇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나는 요즘 개인 레슨을 하지 않는다.  나보다 더 훌륭한 학부형들께서 온갖 동영상과 인터넷 정보들을 가지고 자신의 아이들에게 자신이 가장 좋은 선생님이라고 혹은 학습지도사라고 자부하며 이런저런 풍월을 읊어 대시기에 학생들에게는 발전이 없다.  많은 시간의 경험과 노하우가 필요한 예능 교육에서도 그런데 다른 과목들은 어떠하겠는가… 하지만 1등을 하지 않는다고, 자신의 아이가 특별한 분야에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다고 그것이 무슨 중죄도 아닌데 꼭 노력하지 않아서 못하는 양 학생들을 다그치고 선생님들께 변상을 하라 소리지르는 학부형들도 무척 많다.  모든 일들이 노력으로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추 신수 선수에게 수능 400 점을 맞아 서울대에 꼭 들어가라고 강요하는 부모님이 계셨다면 추 신수 선수가 야구선수로서의 인생을 꿈이라도 꿀 수 있었을까?  부모라는 존재는 늘 모든 것을 알아야 하고, 품 안에 안아주어야 하며 또 자녀들의 길을 열어주어야 하는 부담감이 함께하는 아주 나약하고 어린 겁쟁이들이라고 해도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단호하게 이리해야 한다 하면서도 늘 이것이 맞는 것인지 정답지를 훔쳐보고 싶을 정도로 자신이 없다.  그래서 끼리끼리 서로 모여 자신들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이를 학원에 내려 놓고 수다를 떨며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는 엄마들의 커피타임은 이런 저런 정보를 얻어 내 자식이 뒤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결국 내가 혹시 잘못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불안감 때문 아닐까?  객관적인 제 3자의 눈으로 보기  나는 이 기회에 감히 모든 학부형님들께 자신의 아이를 객관적인 제 3자의 눈으로 보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 나의 아이의 장점은 무엇이며 어떠한 부분을 고쳐야 할지를 파악하고 또 어찌하면 장점은 키우고 단점은 보완해 나가기 위한 전문가의 조언을 진심으로 듣고 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시간이 지나서라도, 나의 관점이 옳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과감히 인정하고 다른 길을 찾아보는 것도 지혜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서 나의 아이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부모이지만, 아이를 가장 객관적으로 판단해 줄 수 있는 것은 경험 있는 전문가들이다. 부모는 신이 아니기에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욕심도 낼 수 있다. 하지만 자녀교육의 제 1 주체는 자녀이지 내가 아니라는 것을 인지한다면 각자 적성을 가진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 할 수 있는 행복한 자녀로 길러 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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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글이네요 많은 가르침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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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소통! 일방통행의 정신적 폭력
의사소통! 일방통행의 정신적 폭력 사랑은 상대방을 위해서 즐겁게 나를 희생할수 있는 마음이다. 배려는 나의 욕구나 감정을 내려놓고 상대방을 먼저 이해하려는 자세이다. 관심은 내 눈으로 상대방의 상태를 잘 살펴보는 행위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최선을 다했다는 표현은 자신의 입장일뿐 자녀의 입장과 다를수 있다. 사랑, 배려, 관심은 사실 자기관점이 아닌 오로지 타인관점을 지향한다. 사랑이 자기관점이면 집착이며 배려가 자기관점이면 자만이며 관심이 자기관점이면 무시이다. 나쁜 마음을 갖고 소통하는 자는 그냥 나쁜 놈이다. 좋은 마음을 자기관점에서 소통하면 이기적인 사람이다. 편협하고 고지식한 사람이 된다. 좋은 마음을 타인관점에서 볼수 있는 사람은 선량하고 지혜로운 자라 할수 있다. 우리의 의사소통 방식은 대체로 자기관점이다. 나 역시도 그러하다. 그런 의사소통은 일방통행이며 보이지 않는 정신적 폭력 행위와도 같다. 나는 내 맘대로 타인의 마음속으로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할수 있다. 일방통행이기 때문에.. 타인은 자유롭게 내 마음속으로 오갈수 없다. 나로인해 심리적인 감금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럴바에는 차라리 소통하지 않는 것이 좋다. 소통이나 대화가 아닌 괴롭힘이기 때문이다. 나는 행복하고 즐거울지 모르겠지만 상대방은 움직이지 못하고 당신에게 통제당해야 한다. 당신이 아무리 미소를 머금고 비싼 과일을 들고갈지라도 상대방은 숨이 막혀서 도망가고 싶을지도 모른다. 상대방을 자기 맘대로 소유하려 하거나 통제하려는 마음은 사랑, 배려, 관심, 최선을 가장한 가장 위험한 정신적 폭력이라 생각한다. 자기의 결핍을 상대방을 통해서 채우려는 그런 마음? 상대방이 나에게 잘 맞춰주고 따라줘야 하는 그런 마음? 당신은 드라큐라인가? 그렇다면 최소한 사랑이니 관심이니 배려이니 그런 고귀한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 역시도 잠시 반성해본다. 김영국 행복명상센터
밥 먹어야지
‘밥 먹어라. 씻어라. 일찍 자라.’ 보통 어머니들이 자녀들에게 똑같이 하는 말이지만 저는 그런 간섭이 싫었습니다. 제가 성인이 된 후에도 어머니의 간섭은  전혀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런 어머니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저는 결국 서울로 무작정 올라가 자취를 시작했고, 직장까지 다니게 되면서는 일 년에 명절 때나 겨우 어머니를 찾아뵙곤 했습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했나요?  그렇게 저에게 어머님의 존재는  점점 멀어져만 갔습니다. 그래서 몰랐습니다. 어머니가 치매에 걸리셨다는 사실까지도요. 오랜만에 만난 어머니는 이미 증상이  많이 진행되어 몸이라는 감옥에  갇혀 계셨습니다. 예전에 그만 자고 일어나서 밥 먹으라며 제 등짝을 후려치던 활기 넘치던 모습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인가요? 식사 시간이 되어 간호사들이 이끄는 대로 요양원 식당에서 멍하니 앉아있던 저는 어머니에게 음식이 담긴 식판을  가져다 드렸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당신의 손에 쥐어 준 숟가락을 저에게 불쑥 내밀며 말했습니다. “밥 먹어야지.” 어머니. 어머니. 죄송합니다. 그때처럼 저를 때려주세요. 이 불효자를 때려주세요.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야.’ 어머니의 충고의 결과는 조금 틀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따뜻한 잔소리의 의도에는 언제나 자식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진심이 담겨 있습니다.   # 오늘의 명언 자녀가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을 보고 어머니는 행복을 느낀다. 자기 자식이 좋아하는 모습은 어머니의 기쁨이기도 하다. – 플라톤 – =Naver"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