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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달 어록] 김연아가 말하는. 인생의 중요한 이야기들
오랫만에 책 한권을 제대로 정리해보네요 스무살 김연아가 직접 쓴 '김연아의 7분 드라마' 이 책을 오늘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서 정말 감동 받은 글귀들을 옮겨보았어요.. 두고두고 보고 싶어서요. 보면서 눈물이 난 부분도 있었어요. 이렇게 노력하지 않고서, 힘듦을 경험하지 않고서 대단한 결과를 바란다면 그게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하였고요... 빙글러 분들과 같이 공유해요 진정 감동이네요. 연말에 하나하나 곱씹어 보며 제 인생을 돌이켜볼 기회도 된 것 같습니다. 2014년을 잘 마무리하고 정말 더 멋진 나로 거듭나고 싶으신 분은 꼭.. 일독을 권합니다. --------------------- <김연아가 말하는. 인생의 중요한 이야기들> 훈련을 마치고 밤마다 글을 쓴다는 게 늘 즐겁지만은 않지만, 내 이야기가 조금씩 완성되어 갈수록 신기하고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13년 동안 훈련을 하면서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엉덩방아를 찧었고, 얼음판 위에 주저앉아 수도 없이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런 고통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리까지 한 걸음 한 걸음 올라설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 나는 또다시 새로운 꿈을 꾼다. “행복한 스케이터 김연아’로 살아가기 위해 누구나 우연을 가장한 기회가 찾아온다. 하지만 그것을 붙잡아 행운으로 만드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그 작은 우연을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행운으로 만드는 과정은 무수한 고통과 눈물방울들이 모아 등수를 매길 수 없는 트로피를 만드는 것과 같았다. 아무도 줄 수 없는, 내가 나에게 주는 상. 나는 아직 그 상을 받지 못했다. ‘와 정말 멋지다. 나도 스케이트 선수가 됐으면 좋겠다.’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무언가가 되어보고 싶다는 아주 작은 희망. 그 작은 희망에 ‘꿈’이라는 커다란 이름을 붙여도 된다면, 그래 내 첫 번째 꿈은 ‘스케이터’였다. 엄마 말씀으로는 미셸 콴이라도 된 양 주변은 아랑곳하지 않고 따라하기에 몰두했다고 한다. 레슨이 없는 주말에도 엄마를 졸라 스케이트장에 가서 놀곤 했다. 지금처럼 대회에 대한 압박감이나 잘해야 한다는 중압감없이 순수하게 재미로 스케이트를 타던 시절이 있었다. 언제나 차분한 모습으로 경기에 임하는 미셸 콴을 떠올리며, 피겨 선수에 대한 나의 꿈은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나는 스스로 열이 좀 받았다. ‘대체 왜 안 되는 거야! 다시!’ ‘한 번만 더 해보자!’ 역시 안 됐다. 속이 부글부글 끓으면서 눈물이 찔끔 흘렀다. ‘오늘 이거 안 되면 집에 안 가!’ ‘언젠가 꼭 해내야 하는 거라면 오늘 해내고야 말겠어.’ 어떤 날은 아무 이유도 없이 아예 감각을 잃어버려 처음 배우는 사람처럼 바보가 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점프를 시도하는 것조차 두려워지곤 했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고, 마음은 조급해지고, 이유를 알 수가 없으니 속만 상했다. 도대체 왜?라는 질문에 답할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것, 그런데 그걸 나도 모른다는 데에 화가 나기도 했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이유 중에 절반 이상이 실력 유지가 힘들어서였다. 운동선수뿐 아니라 누구나 그렇겠지만, 한 걸음 나아가는 것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실력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렵다. ‘최고’와 ‘완벽’에의 도전. 하지만 늘 성공률 100%를 유지할 수는 없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니깐. 나도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늘 완벽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완벽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할 뿐이다. 중요한 것은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가 아니라, 실패했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느냐다.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한번 더 도전해보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하다. 99도까지 열심히 온도를 올려 놓아도 마지막 1도를 넘기지 못하면 영원히 물은 끓지 않는다고 한다. 물을 끓이는 건 마지막 1도, 포기하고 싶은 바로 그 1분을 참아내는 것이다. 이 순간을 넘어야 그 다음 문이 열린다. 그래야 내가 원하는 세상으로 갈 수 있다. 때로는 너무 힘들어서 내 기대치를 낮추고 싶기도 했고, 다가온 기회를 모른 척 외면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결코 그럴 수가 없었다. 99도와 100도의 차이, 늘 열심히 해도 마지막 1도의 한계를 버티지 못하면 결과는 확연히 달라진다. 아주 작은 차이 같지만 그것은 물이 끓느냐 끓지 않느냐 하는 아주 큰 차이다.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중요한 건, 마지막 1분 그 한계의 순간이 아닐까. 초등학교 때 밤 늦게까지 연습하고 아침 6시나 7시에 일어나면 너무 피곤해서 눈이 떠지지 않았다. 가끔은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지금은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지만, 그 힘들고 암담했던 기억은 아직도 가슴속에 남아있다. 하지만 환경을 탓하며 불평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런 환경을 모르고 시작한 것이 아니니까. 아쉽고 불편하고 때론 화가 날 정도로 내 처지가 불쌍하기도 했지만, 무언가를 탓하며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불편하고 험난할 줄 알면서도 그 길을 기꺼이 가는 것. 그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일 테니까. 엄마는 가끔 힘들어하는 나에게 이렇게 말씀해주셨다. 탄탄히 다져간 길이 물론 더 쉽고 편하겠지. 하지만 없는 길을 만들어 나가는 것만큼 보람되지는 않을 거야.. 나에게 국제대회는 그야말로 우물 밖 세상이었다. ‘와 멋지다!’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리고 가슴 한켠에서 뭔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국내대회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가슴이 뜨겁게 벅차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또다시 똑 같은 스케줄의 반복. 이런 반복적인 일상이 너무 지겹고 힘들어서 로봇이 된 것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진짜 이러다 미쳐 버리는 건 아닌가 싶을 때도 있었다. 무엇보다 외로웠다.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주고, 나 혼자 텅빈 빙판 위에 서 있는 것만 같았다. 주변은 깜깜하고, 아무리 힘들다고 소리쳐도 들어주는 사람 하나 없고, 나는 그렇게 이 링크를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일까. 나를 둘러싼 모든 게 싫고 답답했다. 내가 좋아서 시작한 스케이팅마저도 엄마가 시켜서 하는 것 같았고, 완벽하게 짜여서 빠져나올 수 없는 틀에 갇혀사는 불쌍한 신세인 것만 같았다. ‘나 그만둘래. 진짜 아파서 못하겠어. 엄만 알지도 못하면서..’ 다른 날과 달리 엄마가 안타까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그런 나를 지켜보는 데 지쳐 있던 엄마도 결국 그러자고 하셨다. 마지막으로 전국체전을 나갔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속이 후련했다. 웬지 몸이 가벼웠다. 그래서였을까?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전국체전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이다. 부상이라는 걸 나조차 믿을 수 없을 만큼 트리플 5종 점프를 완벽하게 뛰었다. 누구에게나 슬럼프가 있다. 그 시기를 얼마나 잘 보내느냐가 앞으로 삶을 결정한다고들 한다. 누구나 강요하는 것을 즐겁게 할 수 없다.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꿈의 이유가 없다면 금세 포기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춘기 시절 롤러코스터처럼 격하게 변하던 내 마음 속에 피겨는 다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으로 자리 잡았다. 나는 그렇게 한바탕 성장통을 앓으며 소중한 것들을 하나씩 배워가고 있었다. 나도 다른 친구들처럼 수업도 듣고 친구들과 점심 먹고 장난치고 수다도 떨고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서인지 가장 추억이 많으면서도 가장 추억하기 싫은 곳이 태릉 아이스링크이다. 나의 가장 큰 경쟁 상대는 바로 나 자신이다. 모든 일은 결국 나 자신과의 싸움이니까. 누구를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을 완성하기 위해 스케이팅을 하는 거니까. 그저 꿈꾸는 것만으로는 오래 행복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그 꿈을 이루고 싶었다. 승부욕이 강한 나는 일등을 하고 싶었고, 그것이 꿈을 이루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나의 경쟁상대는 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먹고 싶은 걸 모조리 먹어 버리고 싶은 나, 조금 더 자고 싶은 나, 친구들과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싶은 나, 아무 간섭도 안 받고 놀러다니고 싶은 나, 하루라도 연습 좀 안 했으면 하는 나… 내가 극복하고 이겨내야 할 대상은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내 안에 존재하는 무수한 나 였던 것이다. 이런 나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 즐겁게 하자.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하지 않았던가? 훈련을 하다 보면 그날따라 안 되는 점프가 꼭 있다. 러츠든 플립이든 아무리 죽어라 연습해도 도무지 성공시킬 수가 없어 뚜껑이 열릴 정도로 화가 날 때가 있다. 매일 밤 매일 아침, 또 아플까, 오늘은 얼마나 아플까,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는 걸까, 두려웠다. 하지만 항상 제자리였다. 매일 눈뜨기가 두려울 정도로 괴로운 날들이 계속되었다. 가장 긴장되는 순간은 첫 포즈로 음악을 기다릴 때다. 정말 소름이 끼치도록 두렵고 이 세상에 나 혼자인 것처럼 외롭다. 나를 도와주고 응원해주시는 많은 분들이 있지만 경기가 시작되는 빙판 위에서, 나는 혼자다. 나는 부상이라는 고통 속에 있었지만 그건 운동선수라면 누구에게나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시련이었다. 그 시련을 견뎌낼 줄 알아야 진정한 성취를 맛볼 수 있는 것이다. 꽃봉우리를 틔우려면 제 살을 찢는 아픔 견뎌내야 하는 것 처럼. 체력도 실력이었다. 나는 더 노력해야 했다. 기적은 신이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일으키는 것이라고 한다. 나의 성적은 부상과 싸우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내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마도 그런 나를 기특하게 여긴 신께서 보내주신 선물이 아닐까. 조금 돌아가더라도, 조금 늦더라도,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끝까지 가보는 것, 그리고 그 끝에서 마침내 그토록 꿈꾸던 일을 이루는 것, 그것이 진짜 성공일 것이다. 그때가 비로소 생애 최고의 금메달을 목에 거는 순간이 아닐까. 나는 아직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을 뿐, 지금 내 눈앞의 목표가 내 삶의 전부는 아니다. 좀 더 멀리보고, 조급함을 버리자. 후회와 미련을 두는 것은 정말 미련한 사람이나 하는 짓이다. 뒤를 돌아보고 자책할 시간에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가는 게 중요했다. 남들은 전력질주를 하고 있는데 내가 왜 늦게 출발했을까 자책하는 건 소용없는 일이니까. 눈물을 쏟아내고 울분을 토해낸 지 몇 시간이 지나자 마음이 점점 편안해졌다. 내가 정말 잘하고 싶다면 마지막까지 잘 끝내고 싶다면, 마음이 약해지면 절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힘들었던 시기마다 나에게 위로와 힘이 되어준 글귀다. 옛날 페르시아의 왕이 슬플 때 좌절하지 않고 기쁠 때 오만해지지 않기 위해 반지에 새겨 넣고 다니던 문구라고 한다. 이 말처럼 모든 것은 흘러가 버린다. 중요한 것은 오늘, 그리고 오늘에서 비롯된 내일이다. 나 또한 기회가 단지 지금, 이 대회만이 아님을 알기 때문에 크게 좌절하거나 낙담하지 않기로 했다. 2008년 세계선수권대회는 나에게 절망을 안겨주기도 했지만 더 큰 희망을 선사하기도 했다. 나의 간절한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그래, 김연아 한번 더 해보는 거야. 매 시즌 최고의 프로글매을 준비하려고 노력하지만 그것이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킬지 그렇지 않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프로그램을 완벽하게 준비하고 그것을 관객들에게 선보이기 전에는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2010년 올림픽 때도 내가 이 경기장, 이 자리에서 장내에 울려 퍼지는 애국가를 들을 수 있을까? 과연 그런 날이 올까? 그렇다고 믿고 싶었다. 정말 간절하게… 미셸 콴 선수를 가까이에서 보니 한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이른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아우라가 느껴졌다. 역시 멋지다. 금메달을 목에 건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뻐근해져 왔다.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애국가가 울려 퍼지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웃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가슴 속 무언가가 터졌는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내가 눈물을 흘린 이유를 솔직히 나도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냥, 그냥 눈물이 막 쏟아졌다. 너무 수고했어. 잘했어. 기특해. 고마워 나는 실력 유지를 하지 못해 사라져 버리는 월드 챔피언들 중 하나가 되기는 싫었다. 그 때문에 더 이를 악물게 됐다. 왜 그럴까, 나도 가끔 생각해본다. 매번 가지고 있던 적당한 긴장감과 자신감을 유지하려 노력한다면,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이지만, 결가가 어떻든 나 스스로한테 실망하지도 않고 후회할 일도 없지 않을까. 내 인생은 올림픽에서 끝나지 않는다. 나는 지금 스무 살이고, 나에게는 더 큰 미래가 있으니까. 나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월드 챔피언이 되기 전까지는 두 개의 큰 산을 목표로 삼았었다. 하나는 세계선수권대회이고, 다른 하나는 올림픽이었다. 나에게는 첫 번째 산이 훨씬 더 높았다. 동기부여가 될 수 있는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됐다. 점수에 신경 쓰는 경기는 하지 않기로 했다. 더 이상 점수에 연연하지 말자. 점수는 별 의미가 없다. 피겨는 기록경기가 아니니까. 무언가가 아무리 나를 흔들어댄다 해도 난 머리카락 한 올도 흔들리지 않을 테다. 김연아, 파이팅! 선수로서 성공했다고 해서 인생에서 성공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는 아직 스무살이고, 앞으로 남은 인생이 더 길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지금의 자리가 인생 성공으로 가는 첫 출발점이 될 것이기에, 하고 싶은 일도 이루고 싶은 이도 아직 많다. 나는 성공한 스포츠 스타가 아니라, 끊임없이 성장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꿈을 위해 최선을 다해 달려가는 훌륭한 선수, 노력하는 인간 ‘김연아’로 기억되고 싶다. 가끔 경기 중 판정이 부당하다고 여겨지면 ‘아예 피겨계를 떠나 버려야지!’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힘들면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쉽기 때문인 것같다. 아이스쇼의 스케팅은 시합과는 전혀 다르다. 온전히 스케이팅을 즐길 수 있고 관객들과 제대로 교감하며 다른 많은 선수들과도 라이벌이 아닌 동료로서 함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나는 아이스쇼를 하면서 스케이터라는 내 일이 정말 멋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스케이팅을 즐기고 있는 나 자신을 새롭게 발견했다. 이런 것들이 계속 스케이트를 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무엇이든 해낼 것 같은 자신감과 스케이터로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보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이유는, 오직 그녀만이 보여줄 수 있는 연기와 피겨에 대한 뜨거운 열정 때문인 것 같다. 그녀의 연기에서 느꼈던 감동이 피겨에 대한 내 꿈을 키웠듯이, 10년 후의 나 또한 내가 받았던 그 감동을 더 많은 이들에게 전파하기 위해 같은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 스케이팅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유롭게 활주할 수 있는 능력, 즉 기초가 탄탄해야 된다는 뜻이 아닐 까 한다. 결국은 그것이 쌓여져 잘 다듬어지면 한눈에 가늠할 수 있는 스케이팅 스킬이 되는 것이다. 스케이팅에 대한 자부심과 긍정적인 사고가 중요하다. 내가 하는 일을 스스로 좋아하지 않으면 작은 실수나 좌절에도 금세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작은 꿈을 이루게 되고, 또다시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하면서 차근차근 희망의 계단을 딛고 올라가게 될 것이다. 어떤 높은 목표를 향해 걸어가는 과정이 보기 좋고 평탄하고 아름답기만 할 수는 없다. 누구나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까지 우여곡절을 경험한다. 후배들에게는 어렵고 힘든 시기를 포기하지 말고 지혜롭게 극복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고, 그들을 지켜보는 사람에게는 여유를 갖고 기다려 달라고 말하고 싶다. 과거는 과거일 뿐, 앞으로 잘하면 된다라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어요. 제 좌우명은 No Pain, No Gain (고통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에요. 이말은 가장 정직하면서도 운동하는 저한테 가장 필요한 말이었어요. 부상이 많았던 시절에 크게 도움이 됐고요. Pain은 저에게 부상이었어요. Gain은 지금의 나의 모습인 것 같아요. 그런 고통들을 이겨내고 여기까지 와서 이룬 것이 지금의 김연아니깐요 저는 제 성격이 마음에 들어요. 자뻑인가.. 여튼 저는 저를 좋아해요. 생각하는 것들이나 그 방향이 틀릴 거라고 생각 안해요. 저를 많이 믿는 편이라고 해야 하나요? 이런 성격이 운동하는 데 도움이 되더라고요. 간절히 원한다면 생각만 하는게 아니라 노력도 같이 하게 되요. 또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자신감이 생기고요. 이게 이미지 트레이닝하고 비슷한 점이 있어요. 제가 고집도 세고 오기도 있고 그렇거든요. 어릴 때는 안 되면 울면서 될 때까지 한 적도 많았어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잘 잊어버리는 제 성격도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순간의 화려한 비상을 위해, 차디찬 얼음 바닥을 수만 번 뒹굴어야 했던 그 고통 속에서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은 무엇인가? 어제의 실패도 오늘의 성공도 순간일 뿐, 영원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 모두가 세계 최고라 말해도, 나는 또다시 새로운 내일을 꿈꾸며 가슴벅찬 오늘을 산다. 나의 꿈도, 나의 삶도, 그렇게 하루하루 새롭게 완성되어 갈 것이다. 출처 / 김연아의 7분 드라마, 김연아. -- 어떤 말이 가장 가슴에 다가오셨나요? * 2014년을 마무리 하며 당신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어록은 무엇인가요? 같이 공유해요! http://www.vingle.net/posts/605720
8년전 의성여고 방과후 컬링클럽의 귀요미 학생들
이 아이들은 8년후 대한민국에 컬링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한편의 드라마를 찍으며 로이터 기자가 SNS에 한국 여자 컬링 용어를 설명하게 만들어버림 심플한건 컬링 용어뿐만이 아니였음★ 외국 선수와 교류를 위해 영어이름을 짓자는 이야기가 나옴 그이야기가 아침식사를 하면서 나오게 되었는데... 팬케이크 먹고 있어서 팬케이크ㅋㅋ 써니 사이드업 계란프라이를 먹고 있어서 써니 고기좋아해서 스테이크 ㅋㅋㅋ 요거트를 먹고 있었는데 요거트 상품 이름이 애니여서 애니 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경기만큼이나 이름도 시원시원하게 지어버림 고 팬케잌! 고 스테이크!!!!!!!!! 계란 가야대~~~ 요플레 가야대~~~~~ 우는 우리 컬링막내초희 부끄러울까봐 목티로 덮어주는 감독님까지 개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컬링 경기장의 길이 42.07m 이런 곳에서 완벽한 주차를 하고 더블 테이크아웃까지 함ㄷㄷ 손안대고 스톤을 조절하는 흑마법사인게 틀림 없음ㅇㅇ 마지막으로 너무 너무 자랑스러운 우리 컬링여자대표팀! 여자컬링이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이래 아시아 국가가 시상식에 오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이미 은메달을 확보 했으니 우리 여자컬링팀이 아시아의 역사를 써나가고 있는 중이네요! 정말 정말 자랑스럽고 고맙습니다♡♡ 관심좀 주세요.. 귀찮으실까봐 댓글 달아달라고 못하는데 클립과 하트 정말 좋아해요...♥
의사가 말해주지 않는 건강검진의 진실
벌써 7년전 일이다. 국내 5위권 안에 드는 대기업의 43세 부장 L 모씨는 서울대 법대 출신의 엘리트다. 촉망받는 인재로 회사 일에 파묻혀 살았지만, 자기 관리도 철저한 편이고, 회사에서 해 주는 건강검진을 대학병원에서 열심히 꾸준히 받았다. 하지만 어느 날, 배가 심하게 아파 찾아가 병원에서 대장암 판정을 받았고, 이듬해 결국 사망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부장. 철저한 자기관리. 회사검진 스케쥴을 충실하게 따랐고, 서울의 대학병원에서 건강검진을 꾸준히 받았다. 하지만 대장암을 막지 못했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대학병원에서 시행한 ‘회사검진’ 프로그램에는 애석하게도 대장내시경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건강검진 업무를 담당하는 내과, 영상의학과, 가정의학과 의사 중 누가 봐도 중요한 검사가 빠진, 조금은 허술한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병원과 회사 사이에 맺은 계약이므로 의사의 의견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 지금 검사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 작년에는 어떤 검사를 받았는지, (더 욕심을 부리자면) 3년 전부터 지금까지 어떤 건강검진을 받아 왔는지를 꼼꼼하게 따져야 한다. 가족 중 어떤 종류의 암 환자가 있었는지, 이 사람의 직업, 생활 습관 등에 의해 어느 암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지, 내년에 어느 병원에 가서 어떤 검사를 받을지 등의 꼭 필요한 정보를 알고 건강검진 설계를 해야 한다. 하지만 회사검진의 경우 그런 기회가 원천적으로 차단된다. 검사 전 건강검진 설계에 의사가 개입 할 여지가 없다. 그냥 건강검진은 진행된다. 마치 서울역 기차는 정시에 떠나는 것처럼 검사는 기계적으로 진행된다. 병원에서 말해주는 검진 권장 주기도 믿을 수 없다? 건강한 사람의 경우 대장 내시경의 권장 주기는 5년이다. 유방암 검진을 위한 유방촬영의 경우 2년 주기로 받으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다음 이야기를 읽어 보면, 권장 주기도 믿을 수 없다. 부산 해운대 아파트에 살던 50대 남자 사업가가 있었다. 매우 꼼꼼하고 본인의 건강도 철저하게 챙기는 편인지라 매년 같은 시기에 규칙적으로 서울까지 와서 꼭 서울대 병원에서 본인비용으로 비싼 건강검진을 받았다. 10여년 철저하게 본인이 만든 지켜 오던 어느 해, 미국 출장 관계로 그 시기를 놓치고 다른 일도 바쁘고 해서 2년 만에 검사를 받게 됐다. 그런데 그 사이에 위암이 생겼고 많이 진행이 많이 돼 결국 돌아가시고 말았다. 검사 주기는 비용과 밀접하게 관계돼 있다. 따라서 이야기하기에는 민감한 사안이다. 병원이나 의사의 입장에서는 검진을 자주 받는 것이 환자의 안전에도 도움이 되고 수입증가에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회사검진, 국가암검진을 하는 회사나 국가측에서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지출해야 하는 비용이 줄어든다. 기간을 늘리고 싶은 유혹에서 쉽게 벋어 날 수 없다. 특히 회사검진, 국가암검진 등 남의 돈이 관련되어 있는 경우엔 검사 주기가 짧아질수록 사회적 비용이 증가된다. 고혈압의 기준이 과거엔 수축기 140 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130 이다. 10 정도 낮아 졌다. 사람 신체에 변화가 온 것일까. 130- 140 사이의 사람들을 고혈압 치료대상에서 제외하려는 보험회사 측의 로비가 있었던 것이다. (기준은 미국에서 정해진 것이며, 보험사 로비도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문제는 이 기준을 전 세계가 따랐다는 것이다 ) 대장암의 경우 채식을 많이 하고 몸을 많이 움직인다면, 발병가능성이 매우 낮아진다. 거꾸로 육식을 많이 하고 운동량이 적다면 발병가능성이 증가한다. 같은 나이의 쌍둥이라고 해서 대장내시경 주기를 같게 할 수 있을까. 유방암의 경우 30세 이전에 첫 아이를 낳고 모유수유를 하며 직장에 다니지 않으면 발병가능성이 현격히 낮아진다. 아이를 낳은 적이 없고, 물론 모유수유를 하지 않으며, 스트레스를 받는 직장 생활을 하는 경우 유방암 발병 가능성은 급격히 높아진다. 같은 나이의 쌍둥이라고 해서 유방암 검사 주기를 똑같이 할 수는 없다. 한마디로 검사주기는 개인의 상황에 따라 그때 그때 다르다. 모르면 자주 하는 것 밖에는 길이 없다. 건강검진, 비용에 따라 달라진다? 서울지역 유명대학병원의 기본건강검진의 경우 남자 61만원, 여자 64만원이다. 프로그램을 분석해 보니 대장내시경이 빠졌다. (물론 대장내시경을 매년 할 필요는 없지만, 아무 생각없이 계속 이 병원의 기본건강검진 을 이용하면 영원히 대장내시경을 못하게 될수도 있겠구나라는 염려가 생긴다.) 흉부 전산화 단층촬영 (가슴 CT)도 빠졌다. (흡연자 필수) 특별한 증상이 없으면 안 해도 되는 세세한 검사들은 제법 많이 포함되었다. 가슴 CT 와 대장내시경을 넣으면 100만원 초반이 될 것이다. 프리미엄 검진을 보니 가슴 CT와 대장내시경, 기타 부위의 초음파. CT 등을 넣어서 178만원을 받는다 (남자기준) 하지만 심장마비. 중풍 위험성을 미리 감지해 주는 검사는 빠졌다. 심장과 경동맥 검사를 추가하니 200만원이다 (남자기준) 얼마 전 배우 안재욱씨가 미국에서 갑자기 뇌수술을 받았다. 지주막하 출혈이라는 병이 었다. 뇌혈관의 일부가 꽈리처럼 부풀었다가 터져서 생기는 병으로 응급 수술을 제때 받지 못하면 바로 사망한다. 터지기 전 뇌혈관 꽈리를 찾아주는 검사도 수요가 급증했다. MRA 라는 검사인데 이것을 넣으니 290만원이다. 비교적 고통 없이 몸의 구석구석을 보면서 암을 가장 초기에 발견해 준다는 검사 PET 이 있다. 위의 검사에 PET 을 넣으니 430만원이다. 호텔에서 하루 재워주고, 고급승용차 안타도 1인당 430만원이다. 부부가 받으면 900만원을 잡아야 한다. 건강검진 설계사 이용하면 비용 줄이고 효과 유지 가능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비용을 줄이면서도 효과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건강검진 설계사를 이용하면 된다. 먼저 건강검진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다. 건강검진은 크게 세 가지로 구성 된다 1. 진단검사의학 영역 : 피 검사. 오줌 검사라고 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쉽게 이야기 하면 피,검사 오줌검사다. 피 한방울, 오줌 한방울로 한두가지부터 수 백가지 까지 다양한 검사가 가능하다. 그래서 가격이 천차만별이 된다. 피, 검사 오줌검사는 기계가 하게 되는데. 검사대행 전문업체가 있다. 국내에서는 녹십자. 이원이라는 곳이 양대산맥이다. 즉 어디서 검사하던지 결국 비슷한 곳으로 간다는 뜻이다. (외주검사) 동네병원에서 피 검사 하나, 대학병원에서 피검사 하나 차이가 없다. 가장 쉽게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검사 영역이다. 꼭 의원에서 검사하는 것이 비용을 줄이는데 큰 도움이 된다. 2. 위 내시경, 대장내시경 내시경을 하는 의사들은 많다. 하지만 전공의 시절부터 체계적으로 내시경을 배우는 의사들은 내과 전문의 들이다. 내과 전문의 중에도 소화기 분야를 특별히 더 공부한 의사가 가장 잘 한다. 의사들도 본인이나 본인 가족의 내시경을 하게 되는 경우에는 내과 전문의 중에도 소화기 내과 전문가에게 의뢰를 한다. 대학병원이냐 의원이냐에 따라 두 배 이상의 가격차이가 난다. 내과 전문의에게 내시경 받는 경우에는 질적인 차이는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3. 초음파 초음파를 하는 의사들은 더 많다. 일부 기관의 경우 의사 감독 하에 의사가 아닌 기사를 통해 초음파를 하는 곳도 있다. 의사 중에서 전공의 시절부터 초음파를 완벽하게 배우는 의사는 영상의학과 전문의 밖에 없다. (기계자체는 물론 초음파 관련 물리학 까지 공부한다) ㄹ혜 대통령이 대학병원에서 초음파를 받게 된다면 어느 병원이 던지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초음파를 하게 된다. 유방초음파의 경우는 소화기내과 전문의처럼, 유방영상전문의가 하게 된다. 대학병원이냐 의원이냐에 따라 두 배 이상의 가격차이가 난다. 영상의학과 전문의에게 초음파를 받는다면 질적인 차이는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만의 건강검진 설계사를 찾을 수 있을까. 일단 집근처 또는 직장 근처의 내과 또는 영상의학과 의원을 찾아간다. (인터넷 검색 : 내과의원 또는 영상의학과 의원) 그곳에서 내과 전문의 또는 영상의학과 전문의임을 확인한다. 건강검진을 받고 싶으며 나에게 알맞은 맞춤형검진을 원한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면 의사는 당신에 대해 자세히 질문을 하게 된다. 가족중에 암으로 고통 받으신 분 또는 중요한 질환이 있었는지, 당신의 생활습관과 직업, 과거 질환, 수술, 입원경력. 현재 아픈 곳, 먹고 있는 약, 작년에 어디서 어떤 건강검진을 받았는가? (국가암검진이든 회사검진, 개인검진 이든 작년에 받은 건강검진 결과표를 가지고 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들은 후 담당 의사는 당신에게 꼭 필요하고 알맞은 건강검진 항목을 만들 수 있고 권유하게 된다. 놓치는 것 없이, 불필요한 것 제외하고, 최적의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다. 국민건강보험에서 실시 하는 국가암검진은 꼭 받는 것이 좋다. 일단은 공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꼭 필요한 검사는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가암검진만 믿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홀수해, 짝수해 2년 주기로 한다는 것도 아쉬운 점 중의 하나다. 받을 수 있는 국가암 검진을 가급적 빨리 받는다. 국가암 검진 결과표를 가지고, 건강검진 설계의사 를 찾아간다. 그러면 최소한 국가암검진에서 시행한 검사는 제외하고 검사를 하게 되므로 비용을 줄 일 수 있다. 10월 이후엔 건강검진 받으려는 사람이 급증한다. 많이 기다려야 하고, 불친절하고 의료진의 집중력도 떨어진다. 서둘러 일찍 받아 두는 것이 여러모로 좋다 tip 똑똑하게 건강검진 받는 법 1. 건강검진 설계의사를 꼭 만들어 둔다. (동네 또는 회사근처 내과의원. 또는 영상의학과 의원) 2. 무료 검진은 착실히 받는다(건강보험공단 건강검진. 회사검진) 3. 결과표를 가지고 건강검진 설계의사를 만나 추가로 검사할 항목을 정하고, 본인이 비용을 지불하고 검사를 더 받는다. 4. 가급적 [- 의원]을 이용한다. 같은 검사를 해도 비용이 저렴하다 5. 내시경은 내과전문의에게 받는다. 6. 초음파 검사는 영상의학과 전문의에게 받는다. (유방초음파는 더욱 까다롭게 의사를 선택해야 한다) 7. 건강검진 결과표는 스크랩하여 보관하고, 새로운 의사를 만날 때마다 가지고 간다. 8. 보다 저렴하게 효과적인 검사를 받기 위해서는 발품을 팔아야 한다. (한 곳에서 완벽한 검사를 받을 순 있지만 비용은 많이 증가한다) 9. 건강검진은 10월 이전에 받는 것을 목표로 한다. 10. 다만 얼마라도 반드시 내 돈을 추가해 검사를 더 받는다. ㅊㅊ https://news.joins.com/article/10964441 2013년도 기사지만 도움 되는 것 같아서 퍼옴
팬들 이벤트에 난입한 김연아
올림픽 금메달 6주년 기념으로 김연아 팬들이 유니세프에 기부모금 하고있는데 갑자기 김연아 난입해서 5천 쏘고 감ㅋㅋㅋㅋㅋㅋ 연아의 인품이야 뭐 말할것도 없죠 피겨실력이 연아의 인품을 못따라가는듯 연아가 춤까지 추며 평창 올림픽 홍보해줬더니............. 이런 연아한테........ㅠㅠ 피가 꺼꾸로 솟네요 연아가 세계적인 피겨 탑급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처럼 보살이 된데에 다 이유가 있네요.. Q.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가? 벤쿠버올림픽 챔피언, 소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보다는 그냥 '김연아'라는 선수가 있었다는 거, 그걸로 만족할 것 같다. 환경을 탓하며 불평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런 환경을 모르고 시작한 것이 아니니까. 아쉽고 불편하고 떄로는 화가 날 정도로 내 처지가 불쌍하기도 했지만, 무언가를 탓하며 주저 앉을 수는 없었다. 불편하고 험난한 줄 알면서도 그 길을 기꺼이 가는 것. 그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일 테니까. 엄마는 가끔 힘들어 하는 나에게 이렇게 말씀해주셨다. "탄탄히 다져진 길이 물론 더 쉽고 편하겠지. 하지만 없는 길을 만들어 나가는 것만큼 보람되지는 않을거야." -2010년 김연아 자서전 <7분 드라마> 中 연아야 꽃길만 걷자♥ 관심좀 주세요.. 귀찮으실까봐 댓글 달아달라고 못하는데 클립과 하트 정말 좋아해요...♥
피겨 스케이터 김연아의 멘탈
나는 스케이터다. 또래 친구들이 '학생' 이라고 불릴때 나는 '피겨 스케이터' 라는 또 하나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아직 자기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 조차 모르는 아이들에 비해 얼마나 행복한 일이냐고. 꿈이 있다는건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나를 독하게 단련해왔는지를 떠올려 보면 매 순간 행복할 수 만은 없었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닌것 같고, 마음은 조급해지고, 이유를 알 수가 없으니 속만 상했다. 답답해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대체 왜? 라는 질문에 대답할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것. 그런데 그걸 나도 모른다는 데에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런 고비들을 불과 몇년 전까지도 겪어왔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그만두고 싶다.' 는 생각을 하게 만든 이유 중 절반 이상이 실력 유지가 힘들어서였다. 매일 매일 죽어라 연습해도 그 날 컨디션에 따라 잘됐다, 안됐다, 기복이 있었다. 어떤 날은 아무 이유도 없이 아예 감각을 잃어버려 처음 배우는 사람처럼 바보가 될 때도 있었다. 그럴때면 점프를 시도하는 것조차 두려워지곤 했다. 고국의 팬들에게 좋은 연기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은 컸다. 홈 어드밴티지? 그런건 전혀 없었다. 연습장도 경기장도 정신없는 환경과 부담 속에서 내가 스케이팅을 계속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뿐 이었다. 정신없이 짐을 챙기고 버스에 탔다. 끊임 없이 날아오는 문자들 하지만 확인하고 나니 너무 섭섭했다. 그 많은 문자들 중에 나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해주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내가 일등이 아니라서? 실수를 해서? 아사다 마오 선수한테 져서? 언제부터 나는 일등을 해야만 축하를 받게 됐을까. 나는 이제 일등이 아니면 축하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된 건가. 나는 위로가 아닌 축하를 받고 싶었다. 내 성적이 나빠지면 국민들 뿐만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마저도 나를 외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외로웠다. 사람들은 내가 잘했을 때만 내편이고 내가 실수를 하고 경기를 잘 못하면 금방 돌아서겠구나... 경기가 시작되는 빙판 위에서, 나는 혼자다. 그 순간에는 모든 것들이 어둠 속으로 밀려가 버리고 덩그러니 나만 남는다. 얼음 위에 발을 내딛는 그 순간 이젠 두려워서 숨을 곳도 피할 방법도 없었다. 긴장 때문에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음악이 시작되었다. 음악이 흐르고 연기가 시작되면 이제는 나도 어찌 할 수가 없다. 4분 10초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나조차도 예상할 수가 없다. 하늘이 정해준 대로 내 몸은 움직일 것이고 넘어질수도, 잘 해낼수도 있었다. 그 후에는 모든 것을 인정하고 받아 들이는 것만이 내 몫으로 남는다. 처음부터 겁먹지 말자. 막상 가보면 아무것도 아닌게 세상에는 참으로 많다. 훈련을 하다 보면 늘 한계가 온다. 어느땐 근육이 터져버릴 것 같고 어느땐 숨이 목 끝까지 차오르며 어느땐 주저앉고 싶은 순간이 다가온다. 이런 순간이 오면 가슴 속의 무언가가 말을 걸어 온다. 이만하면 됐어 충분해 다음에 하자 이런 유혹에 포기하고 싶을때가 있다. 하지만 이때 포기 한다면, 안한 것과 다를게 없다. 환경을 탓하며 불평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런 환경을 모르고 시작한 것이 아니니까. 아쉽고 불편하고 때로는 내 처지가 불쌍하기도 했지만 무언가를 탓하며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불안하고 험난한 줄 알면서도 그 길을 기꺼이 가는것. 그것 또한 의미있는 일일 테니까. 99도까지 열심히 온도를 올려 놓아도 마지막 1도를 넘기지 못하면 영원히 물은 끓지 않는다고 한다. 물을 끓이는건 마지막 1도 포기하고 싶은 바로 그 1분을 참아내는 것이다. 이 순간을 넘어야 그 다음 문이 열린다. 그래야 내가 원하는 세상으로 갈 수 있다. 기적을 일으키는 것은 신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라고 한다. 기적을 바라기만 하고 아무 노력도 하지않는 사람에게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번 시즌에서 내가 거둔 성적은 부상과 싸우면서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내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 했을 것이다. 아마도 그런 나를 기특하게 여긴 신께서 보내주신 선물이 아닐까. 앞으로 또 닥칠지 모르는 일들이지만 큰 두려움은 없다. 그 동안 많은 일들을 겪어 왔고 우습지만 이젠 너무 익숙해서 무덤덤한 것도 사실이다. 무언가가 아무리 나를 흔들어댄다 해도, 나는 머리카락 한 올 흔들리지 않을테다. 내가 부당한 점수 때문에 흔들려서 스케이팅을 망쳤다면 그것이야 말로 나 스스로 지는 결과가 아니었을까. 나에게 닥친 시련을 내가 극복하지 못했다면 결국 내가 패하기를 바라는 어떤 힘에 무릎을 꿇는 결과가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나는 지지 않았다. <김연아의 7분 드라마> 관심좀 주세요.. 귀찮으실까봐 댓글 달아달라고 못하는데 클립과 하트 정말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