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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가슴에 남아♡

빛바랜 사진처럼
항상 가슴에 품고 있는
잊고 싶지 않은 사랑이 있다

내보지 않아도
아스라이
떠오르는 지나간 사랑
그리움이 없다면 사랑이 아니다
가슴 저미는 아픔이 있어도
그리움이 있기에 사랑이다
가슴에 묻어둔 사랑
이루지 못했기에
더욱 애절하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가끔 생각나는 사랑
그리움은 언제나 가슴에 있다
처절하게 외로운 시간
추억 속 얼굴이 떠오르면
행복한 미소에 눈물이 맺힌다
텅 빈 허공에 어리는
아련한 그리움
아프지만 행복하다
아직도 가슴에서
숨 쉬고 있는 사랑
그리움이 있기에 추억은 있다
추억 속의 사랑은
아무도 모르게
가슴에 묻어둔 행복이다

- 조명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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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의 무게
어느 날 갑작스러운 통증으로 병원을 찾았지만 이미 치료 시기를 놓쳐 의사로부터 시한부 판정을 받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뒤로 몸에 좋다는 약도 써보고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했지만, 그의 병세는 조금도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 결국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하였고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 세상을 떠나기 전에 정리해야 할 일들을 적다가 아직 마무리되지 못한 감정들이 생각났습니다. ​ 그 감정 중 하나는 바로 용서였고 자신이 용서해야 할 일과 사람들을 생각하며 천천히 종이에 이름을 썼습니다. ​ 사람들의 이름을 보면서 그동안 자신이 용서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이제는 용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 종이에 적힌 사람들에게 연락해 안부를 묻고는 과거의 과오를 용서한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연락이 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선 그들도 이젠 마음의 짐을 내려놓길 바라며 축복을 빌었습니다. ​ 그렇게 가슴속에 응어리졌던 일들과 쌓인 화를 하나씩 풀고 나니 지금껏 누리지 못했던 평안함이 찾아왔습니다. ​ 병이 치료되는 기적은 끝까지 일어나지 않았지만 점점 나빠지는 병세에 고통이 심해졌음에도 그는 평온함을 유지했으며 편안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용서하지 못한 마음의 무게는 마음을 짓누르다 못해 분노를 일으키고 행복을 소멸시키며 결국 삶까지도 망가뜨립니다. 결국 용서는 남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나를 위한 행동이기도 합니다. ​ 그런데도 내가 받은 상처 때문에 누군가를 용서하기 힘들 때가 너무도 많습니다. 그러나 용서하지 않는다면 내 마음의 상처는 결코 나을 수 없습니다. ​ 다른 사람이 용서 구하기를 기다리지 말고 먼저 용서할 때 평안해질 것입니다. ​ ​ # 오늘의 명언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은 용서하는 것이다. – 엘리잘 벤 주다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 #용서#인생#삶#명언#영감을주는이야기#교훈#따뜻한하루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다녀왔습니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무궁화가 보입니다. 일편단심이라는 꽃말이 떠오르며 허공으로 시선이 흩어집니다. 한 조각의 붉은 마음이 귀한 세상입니다. 대한민국, 본국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긍정보다는 부정에 가까웠던 생각이 이곳에서 죄스러웠습니다.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된 식민지 근대 감옥인 서대문형무소에 다녀왔습니다. 위치: 서울 서대문구 통일로 251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시간: 3월~10월은 9시30분~18시 / 11월~2월은 9시30분~17시 /입장마감은 관람종료 30분전 /휴관일 홈페이지 참고 *코로나로 인해 예약 후 이용가능하며 전시해설, 교육프로그램 예약도 있으니 홈페이지 확인 바랍니다. https://sphh.sscmc.or.kr/reservation/reservation.php 입구를 들어서면 전시관(보안과청사)이 보입니다. 간수들이 업무를 보았던 청사 건물(1923년 건축)로서 역사실과 영상실이 있습니다. 옥사부터 사형장, 격벽장, 망루 등을 모형과 설계도, 배치도 등을 통해 한 번에 볼 수 있습니다. 최대 3,500명의 독립운동가를 수감했다는 설명에 어둠이 내려앉습니다. 보안과청사 지하는 수감자를 조사하고 취조했던 공간입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부터 닭살이 돋기 시작합니다. 어떤 마음으로 형무소에서 고문을 견뎌냈을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습니다. 입감된 후 신체를 조사받고 대기했던 곳입니다. 위축된 어깨를 보니 마음이 슬퍼집니다. 상자 안쪽에 날카로운 못을 박아 놓고, 사람을 상자 안에 집어넣어 마구 흔들어 찔리게 하여 고통을 주었던 고문도구입니다. 예전에 위안부 영상에서 봤던 못판 고문이 생각나면서 두 눈을 감아버립니다. 일제 검찰이 수감자들을 취조했던 취조실이 있으며, 곳곳에서 육성 증언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뒤편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울부짖던 남자의 목소리가 잊히지 않습니다. 벽관 고문 기구에 들어가 봤습니다. 들어갈 때부터 온몸이 뻣뻣해졌는데, 안으로 들어서니 칠흑 같은 어둠뿐입니다. 몸을 움직이지도 못한 채, 한 줌의 빛만 바라볼 뿐입니다. 지상으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세사르 바예호가 한 말이 생각납니다. 온 마음을 다해 오느라고, 늙었구나. 전시관을 나와 간수들이 수감자를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해 근무했던 중앙사로 왔습니다. 반질반질한 간수사무소를 보니 화가 납니다. 인류가 전쟁을 끝내지 않으면 전쟁이 인류를 끝낼 것이다. -존F.케네디 제 10,11,12 옥사를 방사형으로 연결하여 옥사 전체를 감시할 수 있게 파놉티콘 구조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소수의 감시자가 모든 수용자를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감시할 수 있는 형태의 감옥, 소름 끼칩니다. 독방에 처음 들어가 봤는데 음산한 기운에 목이 움츠러듭니다. 성인 남성이 앉아있을 정도의 공간에 어둠만이 가득합니다. 정말 끔찍한 곳이었습니다. 감방 곳곳에는 독립운동가와 관련된 설명 및 영상들이 있습니다. 하나하나 유심히 보던 초등학생의 뒷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밖으로 나와 무거운 숨을 뱉어내도 여전히 팔은 닭살 돋아 있습니다. 제가 감당하기에는 벅찬 곳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볼 때랑은 아주 다른 느낌입니다. 옥사 내 감방안에는 다양한 조형물이 있습니다. 자유와 평화를 향한 신념을 기억하고 기념할 수 있게 노력한 흔적이 보입니다. 푸른 풀빛과 연못이 예쁘다고 생각하다가 안내 문구를 읽고 생각이 멈췄습니다. 많은 의병장이 사형집행 당한 옛 사형집행장 터였던 것입니다. 옥사에서 들었을 절규와 죽은 자의 냄새...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 걸까요. 감옥을 둘러보다 보면, 감사하다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무엇이 혹은 이제 와서 왜 그러냐고 하는 분도 있겠지만, 정말 그러합니다. 감사합니다. 수감자 중 한센병에 걸린 사람들을 격리 및 수용했던 한센병사입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유일하게 중앙 간수소와 연결되지 않은 독립된 옥사로, 당시 일제의 식민지배를 반대하고 항일 독립운동을 하다가 잡힌 ‘사상범’을 주로 가두고서 특별 감시와 통제를 했던 곳이라고 합니다. 형무소에서 순국한 항일 독립운동가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추모비입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일제강점기부터 1987년 서울구치소 이전까지 실제 사형이 집행되었던 사형장입니다. (사진촬영불가) 밧줄과 의자를 보는데 마음이 먹먹해져 왔습니다. 안쪽에 시신을 바깥 공동묘지로 이동하기 위해 외부와 연결해 놓았던 시구문도 있는데 안의 어둠에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여성들이 수감되었던 여옥사에 이효정과 박진홍의 재회 장면이 있습니다. 버튼을 눌러 그들의 대화를 듣는데, 하아 아이를 잘 키울 거라는 희망찬 그녀의 목소리에 울대가 뜨거워집니다. 그 아이는 2년을 채 못 살고 죽었다고 합니다. 여성 독립운동가들은 남성 독립운동가들보다 두세 배 분량의 일들을 감당해야 했다고 합니다. 가사노동과 농사일, 독립운동의 병행.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하신 분들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이 나라를 소중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픔이 없는 민족은 없지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기에 고통스럽지만 과거를 마주 보고 아픔에 공감하며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의 역사를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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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어제의 일기. 어제 일기를 차마 못 썼던 건,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고 그냥, 잠들어버려서다. (나 많이 뻔뻔해졌네.) 그래도 핸드폰을 손에 쥐고 일기를 써야 돼, 써야 돼, 써야 되는데, 하다가 그렇게 됐다. 당연히 변명의 여지는 없다. 조카네 학교에서는 확진자가 나와 비상이 걸렸고, 그래서 이번 명절은 나 혼자만 본가에 가기로 했다. 반쪽짜리 연휴가 될 듯하다. 사실 나도 눈도장만 찍고 바로 집에 오고 싶기는 하다. 정작 집에 있을 때는 나태에 찌들어 있음에도 해야 할 것은 늘 많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에서 추석 특선을 이제 매년 내놓을 생각인지 작년 추석 때쯤 했던 <보건교사 안은영>에 이어 올해는 <오징어 게임>이 올라왔는데, 정말 기대 중이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감독과 출연 배우에 비해 참 먹을 것 없는 화려하고(?) 스타일리시한 잔치였다. 좋게 말하면 재미 빼고는 다 있었던. 이번 <오징어 게임>은 개인적으로 아주 기대해온 작품이다. 역시 감독과 배우들이 탄탄하다. 특히나 배우 이정재의 격렬한 팬으로서 기대하는 바가 아주 크다. 오늘은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들을 몇 개 읽었고, 첫 창작집으로서의, 또 자전적인 부분으로서만이 의의가 있는 것인지, 아직까지는 크게 흥미롭지 않다. 다만 다자이 오사무라는 작가는 확실히 매력적이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탁월한 이야기꾼이라면 다자이 오사무는 확실히 시적인 데가 있다. 둘 중 누가 더 훌륭하다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어쨌든 나는 소설가에게는 소설가다운 것을 가장 요구한다. 이틀 치의 일기를 써야 해서 사실 작년에 빙글에 올렸던 생소 프로젝트 단편소설 <낮잠>에 대한 복기라도 해볼까 했지만, 또 내가 쓴 소설의 복기를 예전부터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어쩌다 보니 시일이 많이 지나서 그 소설을 기억할 만한 이가 있을까. 아무도 모르거나 기억하지 못할 소설의 복기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 일기는 적어도 거울 속에 비친 독자, 그러니까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니 언젠가는 의욕이 생기면 해볼 마음은 있다. 어쩌면 거울 속의 비친 것이 나뿐만이 아닐 수도. 너무 모호한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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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이 하도 어지러워 먼저 읽을 책들을 한쪽으로 빼서 쌓아보았다. 돌 쌓기처럼 뭔가를 기원하는 의식 같기도 하다. 나는 내 나태의 타파를 기원하는 것인가. 보름달을 보고 한 가지를 빌 수 있다면 뭘 빌어야 할까. 따져보면 단박에 떠오르는 뭔가가 없다. 왜냐하면 정말로 원하는 것은 사실상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빈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 보이고, 고만고만한 소원들은 딱히 우선순위가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 시에 썼던 문장은 여전히 유효하고, 앞으로도 내내 그러할 텐데 그 문장인즉슨, “원하는 걸 가질 방법이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걸 꼭 취하고 싶다. 원하는 걸 갖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기 위해.” 그렇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말 모르겠다. 지금은 죽은 어떤 가수의 노랫말 중에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머야”라는 가사를 보며 그거 하나 모르는 내가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그리고 조금 자라자 나는 정말로 내가 원한다기보다 내가 원하는 것 같은 뭔가를 쥐고 오랫동안 으쓱했던 것 같다. 바보같이. 어릴 땐, 아니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꿈이 없다는 사람들을 보면 답답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은 뭔가 멋이 없어 보였다. 그게 문제다. 나는 정말로 꿈이 있다거나, 일종의 드림워커로서 산 것이 아니라 무의미한 멋에 취해, 아니 그런 게 당최 뭐가 멋인지는 모르겠지만, 해볼 만한 일을 하나 선택해 이게 내 꿈이라 믿고 젠체하며 살았던 것 같다. 언젠가 어떤 한국 영화에서 그런 장면을 보았다. 담임교사는 자기가 맡은 학생과 면담을 하며 자꾸 꿈을 강조한다. 학생은 꿈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학생이 딱히 문제아인 것도 아니다. 공부도 잘하는 학생이었을 것이다. 학생은 그저 하급 공무원이 되어 퇴근하면 맥주나 한 캔하고 쉬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그때 나는 사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래, 꿈을 꿔야 한다는 것도 일종의 주입된 사고방식 아닌가. 꿈을 갖고 노력하는 삶을 비하하는 건 당연히 아니지만, 모두가 야심 찬 꿈을 가져야 한다는 것도 일종의 폭력 아닌가, 그런 생각. 사실 영화 속 학생도 꿈이 없는 건 아니다. 그냥 말 그대로 큰 욕심 없이 무탈하게 사는 것이 꿈일 뿐. 그런 건 꿈이 아니라고 하는 것도 사실 코미디다. 사실 요즘 나는 진지하게 그런 생각들이 든다. 내가 정말로 이루고 싶은 건 사실 없다는 것. 그러나 인생이 지루해서, 이렇게라도 꿈이라는 최면을 걸어놓고 살지 않으면 나태의 늪에서 허우적대다 완전히 폐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그런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 그러나 또 한편으로 인생은……, 인생이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툭 하고 내뱉는 것이 다소 거창해 보이지만, 인생은 매번 넘고 넘어야 하는 산들뿐이라 다소 지쳐서 그런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하지만 역시 요즘은 그 부질없음을 묵묵히 견디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태껏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게 사실은 없어서일지도. 아니, 다시 바꿔 생각해보면 어쩌면 정말로 원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라서 애초에 쳐다보지도 않는 것이고, 가능 범위에 있는 것들은 사실 돼도 그만 안 돼도 그만이기 때문일지도. 너무 비관적인 생각으로 들리려나. 그러나 사실 꿈은 삶을 더 윤택하게 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일 뿐 중요한 것은 지금 주어진 삶이다. 꿈이 있는 삶과 없는 삶, 둘 중 무엇이 더 위대한가를 따질 일은 아닌 것 같다. 꿈이 있는 사람은 지금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미래를 보며 사는 것이라서 현실을 지나가기가 어쩌면 수월할 것이며 그 자체가 기쁨일 테고, 꿈이 없는 사람은 어쩌면 지금 현실에 큰 불만이 없으므로 지금에 만족하고 집중하며 살 수 있을 것이다. 뭐가 됐든 둘 다 삶의 비중을 미래에 놓느냐, 현재에 놓느냐의 차이일 거다. 꿈이 있든 없든 중요한 것은 삶이다.
이삭 줍기의 의미
요즘 거대 플랫폼 기업들에 대한 정부의 규제로 주가가 폭락하고 있다. 규제 이유인즉슨 서민들의 골목 상권까지 파고들어 싹쓸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골목 상권은 서민들의 생계수단으로 어떤 면에서는 대기업에서 남겨 논 이삭과 같은 영역이다.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이라는 그림은 성경에서 모티프를 가져왔다고 한다. 세 명의 여인이 가을 들판에서 이삭을 줍고 있는 목가적 풍경이다. 어릴 적 시골 이발소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던 만큼 나이든 사람들에게 마음의 소장품으로 간직하고 있지 않을까? 성경 구약에서는 주인은 추수할 밭의 가장 자리의 일부 곡식은 남겨야 하고 떨어진 이삭은 줍지 못하도록 율법으로 정하고 있다. 가난한 자와 이방인이 가져가 먹고 살 수 있도록 남겨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지주에 대한 규제나 다름없다. 이삭줍기 제도는 땅을 소유한 사람들에게 의무를 지워 준거다. 궁핍한 사람에게 일할 기회를 주어 스스로 하여금 생계를 해결하도록 한 것이다. 현대적 의미의 고용 창출이며 골목 상권 보호다. 옛 제도에서 상생의 참 의미를 본다. 오늘 나는 친구와 함께 주인이 더덕을 캐고 떠난 밭에서 이삭줍기를 했다. 어릴 적 우리는 추수가 끝난 논 밭에서 벼 이삭이나 고구마 등을 꽤나 많이 수확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고 성경의 의미처럼 일부러 남긴 게 아니라 수작업의 한게리라. 현대의 추수는 기계에 의존해 알뜰함이 떨어지지만 많은 시간 단축으로 인해 어느 정도 손실은 감수한다. 하지만 이삭줍기는 가성비가 신통치 않다. 인건비를 감안하면 사먹는 게 훨씬 낫다. 그래도 내가 이삭을 줍는 건 백수라 어차피 공으로 보낼 시간이기 때문이다. 내가 산에 올라 버섯을 따는 일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버섯 따기는 국력을 키우는 행위가 부차적으로 따른다. 체력은 국력이라했거늘, 산을 오르내리는 일은 대단한 체력이 필요하다. 사실은 여기에 더 방점을 둔다. 버섯 또한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이삭과도 같다. 궁핍한 나의 살림살이에 요긴한 일거리다. 잘하면 최저임금도 가능하다. 정부가 최저임금 이상의 수입이 있는 이들에게 입산을 규제하는 법을 만들면 좋겠다. ㅎ 이래저래 가을은 시골 백수에게 바쁜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