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츄파춥스 로고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안녕하세요!
'순간을 영원하게' 로그아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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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이름, 츄파춥스 사탕입니다.
과연 이 츄파춥스의 로고는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오늘의 카드뉴스
시작합니다!
















다음 페이지에 아티스트의 정체가 공개됩니다!



















이제는 초현실주의의 대가로 인정받는 살바도르 달리!
자신의 일에 있어서 확고한 가치관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다음에는 더욱 유익한 콘텐츠로 찾아오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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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좋은 글이 무플이라니 참을 수 없어! 잘 봤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계속 부탁하는 맘으로 꿀팁 선물 하나 놓고 갑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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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화가의 눈으로 본 그때 그 조선
‘Portrait of Miss Elizabeth Keith’ by Ito Shinsui, 1922 20세기 일본 화단의 대가로 꼽히는 이토 신수이(伊東深水, 1898-1972)가 그린 키스의 초상화이다. 엘리자베스 키스(1887-1956) 1919년 엘리자베스 키스라는 호기심 많은 한 영국 여인이 극동의 작은 나라 조선을 방문했습니다. 그녀는 곧, 일제 식민 지배에서 신음하는 이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과 풍습과 경관에 빠져들었고 깊은 애정으로 이를 그림과 글로 담아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녀의 그림은 오랫동안 우리에게는 알려지지 않다가 2006년에야 재미동포 송영달 선생의 노력으로 비로소 빛을 보게 됩니다. 아마, 엘리자베스 키스의 그림을 처음 보시는 분들이 많을 터인데, 1920~1940년대 무렵 옛 우리나라의 모습이 아름답고 정밀하게 나타나 있는 그림들을 보면 경탄을 자아낼 것입니다. ◆ Marriage Procession, Seoul_1921 혼례 행렬 이 그림은 혼례 행렬, 정확히 말하면 신부 행차입니다. 꽃가마가 아주 아름답게 채색되어 있네요. 행렬 앞에는 빨간 모자를 쓴 사람이 신랑 집으로 가마를 인도하여 갑니다. 그 인도자는 백년해로를 뜻하는 기러기를 보자기에 싸서 들고 있습니다. 청사초롱을 든 사람들이 가마 앞뒤에 있고, 동네 아이들이 구경삼아 따라가고, 빨래하던 아낙도 고개를 들어 쳐다보는데, 한 아낙은 길에다 물을 버리고 있네요. 뒤로 동대문이 보이는데, 다리는 청계천의 어느 다리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 East Gate, Seoul, Moonlight_1919 달빛 아래 서울 동대문 푸른 달빛 아래의 동대문(興仁之門). 이 그림에 보이는 돌담 표현은 목판화로는 하기 어려운 기법이라고 합니다. 키스의 작품 중 가장 뛰어난 그림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923년 도쿄 대지진 때 목판 원본이 소실되었고, 이 그림은 키스의 저서 <동양의 창>에 실린 것인데, 현재 누가 실물을 소장하고 있는지는 모른답니다. ◆ East Gate, Pyeng Yang, Korea_1925 평양의 동문 “1392년에 지은 평양 성곽 중 동쪽에 있는 문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다. 서울에 있는 동대문만큼 웅장하지는 못하지만, 평양의 동문은 그 단순한 스타일과 함께 연륜의 은은함이 배어 있는 문이다. 에카르트는 한국의 건축에 대하여 이렇게 논평했다. ‘한국은 그 건축법을 중국에서 들여왔지만, 그것은 한국의 상황에 맞추어 단순하면서도 우아하고 더욱 절제된 형태로 발전시켜 한국 특유의 건축문화를 만들어냈다.’ 평양의 동문은 바로 이런 한국 건축의 진수를 보여준다.” ◆ Riverside, Pyeng Yang_1925 평양 강변 “대동강변의 이 정자는 약 150년 된 것이라고 하며, 그 주변 환경이 너무 완벽하여 그보다 더 오래 전에 아주 조심스럽게 정자 터로 선택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의 경치는 너무나 아름다워 때때로 여행객은 기이한 감동을 맛보게 된다.” 키스가 대동강변이라고 적고 있는 것처럼, 이곳은 모란봉, 을밀대, 부벽루가 있는 근처인 듯싶습니다. ◆ Wonsan_1919 원산 “내가 아무리 말해도 세상 사람들은 원산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 하늘의 별마저 새롭게 보이는 원산 어느 언덕에 올라서서 멀리 초가집 굴뚝에서 올라오는 연기를 보노라면 완전한 평화와 행복을 느낀다.” 명사십리로 유명한 원산. 키스의 그림을 보니 과연 원산이 아름다운 곳임을 알겠습니다. 밤하늘의 별빛과 바다 위 배의 불빛이 기막힙니다 ◆ Korean Domestic Interior 한옥 내부 “비교적 여유 있는 집의 내부 풍경이다. 이 그림을 그린 것은 여름이었는데, 이 집의 가장은 사랑방이 아닌 대청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남녀가 같은 식탁에서 식사를 하지 않으며 부인이 식사를 날라다 준다. 남자들이 기거하는 사랑방은 대문 가까이 있다. 여자들이 기거하는 안채는 보이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의 집은 길가에 붙어 있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집은 마당이 있고 부유한 집은 안채 앞마당까지 해서 마당이 둘이다. 한국 사람들은 방안에서는 신발을 벗는다. 방바닥은 노란 장판지로 덮여 있는데 항상 반짝반짝 닦아놓고 있다. 사랑방 나무기둥에는 ‘집에 연기가 자욱한 것은 즐거운 일이다’라고 써 있는데, 그것은 부엌에서 나는 연기를 가리킨다.” ◆ The Eating House 주막 “맛있는 음식 냄새가 솔솔 밖으로 새어 나온다. 주막은 추운 겨울날 먼 거리를 걸어가거나 무거운 짐을 나르는 시골 사람들에게 아주 인기 있는 곳이다. 이 집을 닮은 초라한 주막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 집 문 위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 달을 쳐다보는데 최고로 좋은 집 >” ◆ The Hat Shop 모자 가게 “간판에 ‘높은 모자, 둥근 모자, 리본 달린 것, 세상 모자란 모자는 다 있습니다’라고 써 있다. 이 자그마한 모자 가게의 주인은 덩치가 큰 사람이었다. 하지만 주인은 어떻게든 공간을 만들어서 키가 큰 친구들까지도 가게 안에 다 들어오게 했다. 그들은 거기서 하루종일 담배를 피우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정하게 나눈다. 한국에서 모자는 중요하다. 학자는 특별한 모자, 그러니까 검은 말총으로 된 모자(갓)를 쓰는데, 오로지 중국 고전을 다 읽은 사람만 쓸 수 있다. 총각은 약혼식에서 노란 짚으로 만든 둥그런 모자를 쓴다. 결혼식 날에는 한 사람이 빨간 모자를 쓰고 손에는 백년해로와 신의의 상징인 기러기를 들고 간다. 이런 옛 풍습은 한국에서 차차 없어져 가고 있다.” ◆ The School - Old Style 서당 풍경 “하늘 천, 따 지, 달 월, 사람 인. 후렴처럼 반복하는 소리가 담장 너머로 들려왔다. 여름 해는 따갑게 비치고 있었는데, 서울 성문에서 멀지 않은 그 집은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었다. 이것은 내가 서당 안을 슬쩍 들여다본 장면을 스케치한 것이다. 남자아이들이 글을 외면서 그 소리에 맞추어 앞뒤로 몸을 흔들어댔다. 나이 많은 훈장은 실내용 모자를 쓰고 앉아서 마치 조각상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는데, 어쩌면 마음속으로 아름다운 한시를 한 수 짓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훈장은 조금도 학생들의 공부를 염려할 필요가 없다. 반장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긴 대나무 작대기를 들고 감시하고 있다가 학생의 외는 소리가 끊긴다거나 조는 듯한 동작을 보이면 곧바로 등이고 어디고 내려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린 학생은 퍼뜩 정신을 차리면서 글 읽는 소리가 조금 커졌다.” ◆ Temple Interior 절의 내부 “서울 동대문 밖에 있는 이 사당은 전쟁의 신을 위해서 지어진 것이라 한다. 노란색의 작은 지붕 밑에 나무로 깎은 시커먼 조각상은 약 3백여 년 전 임진왜란 때 한국을 지켜주었다고 믿어지는 중국 장군의 영혼을 기념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라 한다. 사당은 이상한 모양의 조각상들로 꽉 차 있었고 내부는 어두컴컴하였다. 얇고 가벼운 치마를 입고 땅에 납작 엎드려 염불하는 여인들은 마치 깊고 어두운 숲 속에 떨어진 꽃잎처럼 보였다.“ ※ 여기서 말하는 사당은 지금도 동대문 인근에 있는 관제묘를 말합니다. 동묘라고도 하고 관운장을 모시고 있죠. ◆ White Buddha, Korea_1925 흰 부처 이 그림의 흰 부처는 현재 서울 홍은동 보도각에 있는 백불(白佛)입니다. 14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서울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 A Game of Chess_1936 장기두기 “전형적인 한국 시골의 두 노인이다. 한국에서는 남자들이 장기를 두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는데 때로는 길가에 앉아서도 한다. 한국에는 놀이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내가 보기엔 여자들에겐 그네뛰기가 유일한 놀이이다. 그들은 우리 스코틀랜드 여자들보다 훨씬 높이 그네를 탄다. 그네 타는 여자들은 자리에 앉아서 타는 것이 아니라 일어서서 탄다. 그네는 대개 소나무에 줄을 맨 것이지만, 때로는 벽돌로 세운 기둥에 매기도 한다. 그네는 이런저런 명절에 타기도 하지만 주로 봄에 타는 듯하다.” ◆ Kite Flying 연날리기 “서울은 연날리기에 최고로 좋은 도시이다. 연 날리는 철이 돌아오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이 온통 형형색색의 연으로 뒤덮인다. 웬만한 가게에서는 각종 크기의 연을 파는데, 값도 싸서 어떤 것은 불과 일전밖에 하지 않는다. 여기에 그려본 것은 전형적인 아이들의 연 날리는 모습이다.” ◆ New Year's Shopping, Seoul_1921 새해 나들이 키스는 자신의 저서 <동양의 창>에 “정월 초하루인 설은 한국 최대의 명절이다. 이 날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제일 좋은 옷으로 갈아입고 나들이를 한다”라고 썼습니다. 광화문 해태 상 앞에서 어머니와 함께 나들이를 나온 아이들이 풍선을 가지고 놀고 있군요. 옛 우리의 세시풍경을 그린 귀중한 그림입니다. ◆ Young Korea_1920 한국의 어린이들 색동저고리를 입은 여자아이, 두루마기에 예쁜 꽃신을 남자아이들을 나란히 앉혀 놓고 그림을 그렸군요. 키스의 초기작 중 하나인데 이 그림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아이들이 설빔차림을 한 것 같군요. ◆ Two Korean Child_1925 두 명의 한국 아이들 “아이들의 의상은 그 디자인에 있어서 부모나 조부모가 입는 옷과 다를 바가 별로 없으나 색깔이 더 다양하다. 어린 여자아이들은 분홍장미 색깔의 넓은 치마를 발목까지 내려오게 입고, 어린 남자아이들도 같은 색깔의 옷을 입는다. 조금 큰 남자아이들의 바지는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통이 넓고 발목까지 온다. 갓난아기들의 저고리에는 색동 소매가 달려 있다.” ◆ Country Wedding Feast_1921 시골 결혼잔치 한국인의 풍습을 흥미를 가지고 관찰한 키스는 결혼식 장면을 여러 장 그렸습니다. 혹 그보다는 미혼이었기 때문에 결혼식에 더 흥미가 있었을지도 모르죠. 한번은 신부 행렬을 보려고 급히 따라가다가 물에 빠진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 그림에는 아이 어른 다 합하면 2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흥겹게 잔치를 치르는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 Korean Bride_1938 한국의 신부 “한국에서 제일 비극적인 존재! 한국의 신부는 결혼식 날 꼼짝 못하고 앉아서 보지도 먹지도 못한다. 예전에는 눈에다 한지를 붙이기도 했다고 한다. 신부는 결혼식 날 발이 흙에 닿으면 안 되기 때문에 가족이 들어다가 자리에 앉힌다. 얼굴에는 하얀 분칠을 하고 뺨 양쪽과 이마에는 빨간 점을 찍었다. 입술에는 연지도 발랐다. 잔치가 벌어져 모든 사람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기지만 신부는 자기 앞의 음식을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된다. 때로는 과일즙을 입안에 넣어주기도 하지만 입술연지가 번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하루종일 신부는 안방에 앉아서 마치 그림자처럼 눈을 감은 채 아무 말 없이 모든 칭찬과 품평을 견디어내야 한다. 신부의 어머니도 손님들 접대하느라고 잔치 음식을 즐길 틈도 없이 지낸다. 반면에 신랑은 온종일 친구들과 즐겁게 먹고 마시며 논다.” '신부가 한국에서 제일 비극적인 존재'라는 키스의 표현이 재미있으면서 격세지감을 들게 합니다. ◆ Wedding Guest_1919 결혼식 하객 결혼식 하객으로 온 이 부인은 머리에 장식이 달린 조바위를 쓰고 단아한 자세로 앉아 있습니다. 키스의 관찰입니다. "일본 여자들은 두 다리를 붙이고 무릎을 꿇고 바닥에 앉아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반면에 한국 여자들은 가부좌로 앉아서 피로하면 서슴지 않고 수시로 다리를 고쳐 앉는 게 풍습이다. 교회에 나온 한국 여자들을 그리다 보면, 다리를 고쳐 앉을 때마다 치마가 불쑥하게 들어올려졌다 내려앉았다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재미있는 광경이다.” ◆ Returning from the Funeral_1922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성 안에서 사람이 죽으면 성 밖에 묻는 것이 법이라, 겨울 저녁 어두워진 후에 등불을 켜 든 상여꾼들이 빈 상여를 메고 돌아오는 장면입니다. 성문의 현판에 ‘東大門’이라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 서울은 아니로군요. 키스가 영국에서 전시회를 할 때 영국 왕실에서 이 그림을 구입했다고 합니다. ◆ The Widow_1919 과부 "온화하면서도 슬픈 얼굴을 한 이 부인은 한국 북부 출신의 여인이다. 한국에서는 남남북녀라 하여 북쪽의 여자를 더 쳐준다. 모델을 서려고 내 앞에 앉았던 그 당시,일제에 끌려가 온갖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서 풀려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몸에는 아직도 고문당한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그녀의 표정은 평온하였고 원한에 찬 모습은 아니었다. 타고난 기품과 아름다움이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여인이었다. 이 과부는 남편의 죽음을 마냥 슬퍼할 처지가 못 되었다. 외아들은 일제에 끌려갔고 그녀는 언제 그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상태였다. 아들은 삼일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애국자였다. 이 그림을 그린 것은 여름이었다. 여자는 전통적이고 폭넓은 크림색 치마를 입었고 그 속에는 헐렁한 바지를 입고 있었다. 저고리는 빳빳한 삼베였다. 북부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풍습대로 머리에 두건을 두른다. 무척이나 더운 날씨인데도 여자는 그런 두건을 쓰고 있었다. 여자의 머리는 숱이 많고 길었으며 그것을 땋아서 머리에 감아올리고 있었다.“ ◆ Embroidering, Korea_1921 자수놓기 긴 머리에 빨간 댕기를 하고 수를 놓고 있는 처녀. 혼기를 맞아 자신의 혼수 준비를 하는 걸까요. ◆ Woman Sewing 바느질하는 여자 “중류 가정의 한 여자가 바느질을 하고 있는 모습. 그녀의 옆에는 바느질 그릇과 인두가 꽂혀 있는 놋화로가 놓여 있다. 한국 여자들은 세탁과 바느질을 아주 잘해서 아무리 더럽고 거칠었던 옷도 그들의 손을 거치면 반짝반짝 윤이 나도록 깨끗하게 세탁된다.” ◆ A Hamheung Housewife_1921 함흥의 어느 아낙네 “한반도 북쪽에 있는 함흥의 여자들은 서울 여자들보다 키도 크고 자세도 더 꼿꼿하다. 독특한 옷차림으로 머리에 무거운 짐을 이고 다닌다. 큰 두건 같은 머릿수건은 치마를 이용해서 만든 것이다. 나는 이 여자를 대낮에 그렸다. 그녀는 땡볕도 개의치 않았을 뿐 아니라 머리에는 빨래를 담은 붉은 함지를 이고 있었는데도 별로 힘들어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녀는 옥가락지 두 개를 정성스럽게 끼고 있었다.” 이 그림과 아래의 ‘아침 수다’는 같은 소재의 그림입니다. ◆ A Morning Gossip, Hamheung, Korea_1921 아침 수다 "아침에 빨랫감을 이고 씻어야 할 요강을 들고 냇가로 나가던 여자와 다른 한 여자가 길에서 만나 수다를 떨고 있다. 머릿수건을 기술적으로 두르는 것이 풍습이며, 어떤 때는 치마나 아이들 옷으로 머리를 둘러싸기도 한다. 치마는 풍선처럼 넓게 퍼져 있고 저고리는 무척 짧다.“ ◆ From the Land of the Morning Calm_1939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온 사람 “중하층 계급에 속하는 한국 남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추운 겨울이라 머리에는 털이 안으로 달린 남바위를 쓰고 그 위에 말총으로 만든 갓을 쓰고 있다. 하얀 무명옷에는 솜을 넣어 방한을 하고 있다.” ◆ The Country Scholar 시골 선비 “이 선비는 원산 사람이다. 그가 입고 있는 전통적인 선비 의상은 800여 년 전부터 내려오던 것이고 모자도 옛날식이다. 그가 들고 있는 막대기는 끝 부분이 백옥으로 단장되어 있었고 복장과 잘 어울렸다..선비는 그 부분이 잘 보이도록 막대기를 들고 있었다. 그의 옷고름은 연홍색 비단이고 옷은 엷은 옥색이었는데 까만 단하고 훌륭한 색깔의 조화를 이루었다. 이 나이 많은 한국 선비와 얼굴을 대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그의 표정에서 좋은 가정교육, 자기 절제, 인자한 부드러움 등을 읽을 수가 있었다. 그의 매너는 은근하면서도 정중했다. 그는 속세의 근심을 떠나 별천지에서 노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 Young Man in Red 홍복을 입은 청년 "이 청년은 자기의 아버지, 할아버지가 입궐할 때 입었던 관복을 입고 있다. 붉은색의 겉옷 밑에는 파란색 옷을 입고 있었고, 백색 옥돌이 들어 있는 자그마한 주머니를 달고 있어서 걸을 때마다 패옥 소리가 낭랑했다. 거북이 등과 가죽으로 만든 허리띠는 꼭 매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허리 위로 둥그렇게 두르도록 되어 있었다. 앞으로 내린 에이프런에는 금으로 된 단추가 두 개 있었는데, 그것은 관직 등급을 보여주는 표시였다. 모자는 말총으로 만들어졌는데 금색 칠을 했고, 신발은 넓적하고 코끝이 뭉특해서 발이 작아 보인다.“ ◆ A Daughter of House of Min_1938 민씨 가문의 규수 “이 처녀는 지체 높은 집안의 규수에게 어울리는 복장을 하고 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암살된 명성황후의 친척이다. 나는 그녀를 고풍스러운 병풍 앞에 세웠고 예쁜 신발을 그리고 싶어서 비록 실내지만 일부러 신발을 신게 하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프랑스에 외교사절로 파견된 최초이자 최후의 인물이었다. 또 그는 내가 만난 최초의 한국 양반이었다. 그는 하얀색 옷을 입고 있었고 크림색의 얇은 천으로 된 두루마기를 입고 있었다. 그의 하얀 버선은 발에 아주 잘 맞았다. 만약 내가 시인이었더라면 그의 멋진 발을 노래하는 시를 지었으리라! 훗날 나는, 결혼하여 어린 딸을 둔 이 여자를 다시 만났는데, 그 모녀에게서 그 아버지의 우아함이나 온화함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 여자는 영어를 잘하고 꽤 똑똑해 보였다. 나는 그녀가 좋은 배필을 만난 듯해 기뻤다.” 처녀의 아버지는 조선 말기 최초의 프랑스 공사였다는 것으로 보아 1900년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 특권대사로 파견되었다가 1902년에 주불공사로 임명되어 일본에게 외교권을 박탈당한 1905년까지 공사로 활약한 민영찬으로 추정됩니다. 민영찬은 국권을 빼앗긴 것을 분히 여겨 자결한 충정공 민영환의 동생입니다. ◆ The Gong Player_1927 좌고 연주자 이 악기는 조선 말기 화가 혜원 신윤복의 풍속도에도 보이는 좌고(座鼓)로 생각되는데, 좌고는 궁중음악 연주에 사용되는 북입니다. 보통 삼현육각(三絃六角) 편성으로 연주하거나 춤 반주를 할 때 좌고를 치는데, 앉은 채로 연주할 수 있도록 높이가 낮은 틀에 북을 매달아 놓고 칩니다. 좌고의 북통에는 용을 그리고, 북면에는 태극 무늬를 그려 넣습니다. ◆ The Flute Player_1927 대금 연주자 "이 사람은 과거 국악원 소속이었으나 현재는 조선왕조가 망하여 궁중음악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으므로 일본정부가 이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잇다. 다행히도 나는 국악원 사람을 몇 명 그릴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전에 종묘제례 때 보았던 아주 희귀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은 만나지 못하였다. 제일 보기 드문 악기는 다듬지 않은 옥같이 보이는 삼각형의 돌을 여러 개 나무틀에 걸어놓은 것이었다. (편경을 가리킵니다). 이것을 기술적으로 치면 전 음계의 음정을 낼 수가 있었고 소리가 아주 좋았다. 대개는 피리소리의 효과를 높이는 데 사용하였다. 또 오리 모양으로 만든 나무딱따기도 있었는데, 밝은 색깔의 옷을 입은 20여 명의 사람들이 전후좌우로 돌아가면서 소리를 냈다.(박을 가리킵니다). 북의 종류도 여러 가지여서 각기 다른 소리를 냈는데 언제나 피리소리가 제일 고음이었고 또 제일 아름다웠다. 이 대금 연주자는 연주도 잘하지만 행동도 점잖아서 좋은 가정에서 자란 사람 같았다. 한국 사람들은 일본 사람과 마찬가지로 손이 잘생겼으며, 대금을 부는 사람의 섬세한 손놀림이 정말 보기 좋았다.“ ◆ Court Musicians, Korea_1938 궁중악사 대한제국이 일본에 강제 병합된 후 전통 한국음악의 정수인 궁중음악이 사라져갈 무렵, 키스는 궁중악사들을 애써 찾아 몇 점의 그림을 남겼습니다. 아마 이 예복을 입은 사람들이 고종과 순종 재위 시에 궁중음악을 연주하던 마지막 궁중악사들로 생각됩니다. 출처
한국 현대미술의 정체
목요일은 역시 독서지. 그동안 너무 한국 현대미술을 등한시했었는데, 종합적으로 살펴보려면 아무래도 이 책이 좋지 싶다. 두껍지만 타이트하다. 이를테면 한국에서 어지간한 전공은 대체로 서울대학교가 최상위 그룹을 형성하고 있는데 미술은 왜 홍익대학교인지 의문을 가지셨다면 좋은 해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화대학교 교수다.) 한국 현대미술도 다른 나라의 현대미술처럼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시작됐다고 봐야 할 텐데, 현대의 한국 거의 모든 분야가 그러하듯, 베끼기부터가 시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전후 유럽과 미국은 추상화가 점령했다. 이들은 각각 앵포르멜(informel)과 추상표현주의로 나뉘었는데, 전쟁 중 미술계의 폰 브라운들(가령 뒤샹이나 이브 땅기) 미국도 드디어 미술에 한 몫 끼기 시작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한국전쟁을 누가 구해주고, 누가 한국에 문명을 가져왔다? 일단 미국이다. “일단”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우리가 식민지를 겪었기 때문인데, 그때문에 일본 유학파 출신도 많았다. 즉, 한국의 현대미술 작가들은 미국에서 유행한 추상표현주의를 따라 그리면서도, 일본을 통해 접목한 유럽식(특히 프랑스) 전통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서는 자기들을 “앵포르멜”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미국+일본(프랑스)이 우리나라 현대미술이라는 얘기다. 둘은 한국에서 꼭 구분되지 않았고 합쳐지기도 했었다. 물론 이 “앵포르멜”이라 불리우는 한국식 추상표현주의가 오래가지는 않았다.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다른 식으로의 탈출이 필요했던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화가가 둘 등장한다. 박서보와 이우환이다. 분위기가 베끼기에서 좀더 “한국화”가 되면서 단색화가 나타난 것이다. 단색이라고 해서 그냥 로스코 류를 연상하실 수 있을 텐데 이게 그렇지 않습니다. 제일 비정치적이랄 수 있을 단색으로 작품을 그릴 수밖에 없는 환경과 위에 거론한 중요 인물 두 명 때문이다. 박서보는 한국에서 활동했고 이우환은 일본에서 활동했다(참조 1). 둘이 협력관계로 지내다가 나중에 라이벌 비슷하게 변해가는 과정이 한국 현대미술의 회화 쪽 전개양상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참조 2). 박서보가 한국적 모더니즘에 천착한 반면 이우환은 모더니즘을 해체하고 한국적인 것을 비껴갔었다. 물론 한국 현대미술은 베끼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최신 조류인 팝아트는 물론 하이퍼리얼리즘도 그대로 도입했기 때문이다. 조상현이나 변종곤과 같은 작가를 사례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뒤샹을 따라한 김구림도 생각할 수 있다. 이른바 K-모더니즘을 구현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런 조류가 비단 회화만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예술에도 적용됐다. 그런데 위에 사례로 나온 작가들은 모두 남자들이다. 미술계는 여자 작가들의 존재를 잊을 수 없을 일. 예전부터 나혜석과 천경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런 작가들이 누가 있었는지 알려주고 있으니 확실히 종합적으로 훑어보기에 제격이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 현대미술이란 무엇인가? 미국과 유럽(일본)을 베끼면서/들여오면서 끊임 없이 우리식으로 바꿔버린 이야기이다. 즉, “문화번역은 근본적으로 오역이다. 그러나 오역이야말로 번역의 진정한 의미를 드러내는 지점이기도 하다(p. 197)”. -------------- 참조 1. 박서보가 홍익대를 나왔었고, 그가 이끄는 화가군이 우리나라 미술의 주류를 장악했었다. 이우환은 서울대를 다니다가 일본으로 건너가서 평론가 활동을 하고, 그 다음에 화가로 나서면서 박서보를 활용(?)했다. 물론 둘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존재였다. 2. 물론 이건 절반의 진실에 해당된다. 여성화가들의 존재와 함께 민중미술이라는 독특한 영역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행위예술가 울라이, 향년 76세로 타계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옛 연인이었던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었던 행위예술가 울라이(Ulay)가 향년 76세 나이로 타계했다. 독일 출신의 그는 원래 폴라로이드 사진작가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를 만나 함께 행위예술의 역사를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은 남자, 반은 여자로 하고 다니는 울라이의 모습에 반한 마리나. 둘의 인터뷰에 따르면, 첫 9년은 살면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고 마지막 3년은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별하는 순간을 작품으로 승화시킨 ‘The Lovers(1988)’. 만리장성 반대편에서 2500km를 걸어가 한가운데서 작별하기 위해 만나는 둘은 90일 동안 홀로 먼 길을 걸은 뒤 마지막 포옹을 하고 헤어지게 된다. 이후 2010년 뉴욕현대미술관(New York 's Museum of Modern Art) 회고전 <The Artist is Present>에서 해후한 마리나와 울라이. 22년만에 다시 만난 이들은 침묵 속 오가는 눈빛 만으로 가슴을 저미게 만드는 장면이 연출됐다. 즐거움과 슬픔, 고통 등 모든 순간을 기교없이 표현하고,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진정한 스토리가 담긴 예술의 참 모습을 보여주었던 울라이. 마리나 아브라모치니는 뛰어난 예술가로서 그의 유산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 말하며 그의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아이즈매거진> 링크에서
<똑.독.한 코디맘 : 베이비 캐슬> 1화 스튜디오 촬영 현장 급습?!
<똑.독.한 코디맘 : 베이비 캐슬> 4월 11일 (목) 밤 9시 첫 방송 여러분~ 안녕하세요! E채널입니다(๑•̀ω•́)۶ (만반잘부!) E채널의 2019년 야심찬 NEW 프로그램! '똑.독.한 코디맘 : 베이비 캐슬'의 첫 방송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E채널이 1화 스튜디오 촬영 현장에 급습해보았어요. 함께 보러 가실까요? Go Go! 이곳은 파주의 한 스튜디오! 촬영 당시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똑.독.한 코디맘 : 베이비 캐슬'의 1화 녹화를 위해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셨답니다. 국민 MC에서 국민 아빠로 돌아온강호동! 갓 엄마가 된 배우이시영! 강호동과 이시영의 환상의 케미 폭발?! 그들이 녹화 중 호탕하게 웃은 사연은?ꉂ (๑¯ਊ¯)σ '똑.독.한 코디맘 : 베이비 캐슬'에는 조영구의 아내 방송인 신재은이 출연한답니다. 특히 신재은은 최근 아들 정우 군을 고려대 영재교육원에 입학시켰어요. 그녀가 알려주는 자녀 교육 꿀팁 대방출 예정! 오랜만에 출연한 가수 쿨 출신 유리의 모습도 보이네요. 두 딸과 아들을 둔 다둥이 맘의 특별한 교육법 놓치지 마세요~(ง°̀ロ°́)ง 어랏! 어디서 많이 본 얼굴?! 공부의 신으로 불리는강성태도 출연했다는 사실! (※장기하 아님 주의) 이범수의 아내이자 소을이, 다을이 엄마인 이윤진도 패널로 참여했어요. 통역사이자 영어강사로도 유명한 그녀가 가르쳐주는 육아 꿀팁! 최근 두 아이의 부모가 된 개그우먼김미려와 작년 말 결혼해 예비 맘이 된 개그우먼이수지까지! '똑.독.한 코디맘 : 베이비 캐슬'의 패널들의 활약도 기대됩니다! 내 아이상위 1%로 키우기 프로젝트! '똑.독.한 코디맘 : 베이비 캐슬'의 녹화가 성황리에 마쳤답니다. 4월 11일 목요일 밤 9시 E채널! 본방 사수... 해주실꺼죠...?♥ 특히 첫 방송 본방사수 시 참여 가능한 론칭 기념 EVENT도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과연 행운의 주인공 7명은 누가 될 것인가!(두구두구두구두구)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영상에서 확인하세요.٩(*•̀ᴗ•́*)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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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미친 스터디 모집! 서양화가 최연욱(nuct****) 미술에 관심은 갖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모르는 분 & 미술스토리로 재미는 찾았는데 부족함을 느끼는 분들을 위한 모임입니다. 화요일 미친 스터디는 제가 선정한 108점의 서양미술 작품에 대한 설명과 뒷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입니다. 자료는 모두 제가 준비해 가니 몸만 오시면 됩니다!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 회원 & 예약제로 운영합니다.  시간: 매주 화요일 저녁 7시~9시 일정: 약 한시간 정도 제가 준비해간 자료 설명 이후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시간 장소: 토즈 대학로 (미친스터디로 예약) 인원: 3명 이상  참여 방법: 각 회 공지에 참석 댓글 남기고 회비 입금 후 참석 회비: 1만원 (대관료) 입금계좌: 카카오뱅크 3333-05-4364180 (최연욱) 최연욱 선생님의 주요저서로는 - 비밀의 미술관, 생각정거장 (매일경제출판사) - 반 고흐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알아야 할 32가지, 소울메이트 (원앤원콘텐츠그룹) - 위작 미술사, 위작으로 보는 서양미술 2500년 (가제) 모두 베스트셀러 입니다.. 강연 순서파일이 너무 커서 캡춰에서 잘렸는데요 화가 이름 옆에 작품 제목도 있는데 관심있는분은 카페나 선생님 블로그에서 참고 하시구요.. 전 서울에 산다면 무조건 갈 거 같은데..혹시 관심있는분들 참고하세요. 미술을 공부하는게 아니라 작품애 얽힌 재밌는 이야기들 듣는거입니다.. 너무 재밌어요.. 선생님 블로그: https://m.blog.naver.com/nuctom/221200008553 카페: http://cafe.naver.com/michinc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