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mon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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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오는 귀신썰) 톡방에서 가져온 이야기 모음.jpg

안녕!
내가 줄 것도 있고 했는데 정신이 없어서 잊고 있었네
점심시간 잠시 빙글 톡방 들어갔다가 생각이 났어.

요즘 많이들 힘들지?
나가지 못 해서 힘들고,
어쩔 수 없이 나가도 사람들 만나기 껄끄럽고,
괜한 죄책감이 드는 날도 많고
친구들과 약속 잡기도 꺼려져서 혼자인 날이 대부분이고
자영업하는 사람들은 생계를 위협받는 사람들도 있을 거야
이렇게 힘든 날들 작게나마 위안이 되었으면 싶어서 부적을 하나 가져왔어
ㅎㅎ 귀엽지?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는 부적
잡귀를 쫓아내는 부적이야
핸드폰에 하나씩 가지고 있으면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야
그렇게 믿어 보자!

이 부적은 공포미스테리 톡방에서 @star2759667 님이 주신거야 ㅎㅎ
잡귀 물럿거라!
나쁜 일들 다 물럿거라!
코로나 물럿거라!

그래서 오늘은 이 톡방에서 여러분이 나눠준 이야기를 여기다 옮겨 볼게. 아무래도 톡방보다는 카드로 쓰는 걸 보는 사람들이 더 많으니까, 많이들 못 보는 게 아쉬워서 말야.

1. @kyybabo 님의 이야기
조상신의 이야기. 흥미 돋지 않아? 여태 내가 가져온 이야기들 속에서도 조상신은 자주 등장했잖아. 제사를 지내주지 않아서, 또는 묘가 잘못 돼서 자손들을 해코지하는 이야기에서부터 돌아가시고서도 자손들을 지키기 위해 금기를 깨는 분들까지. 뭐 산 사람들도 자신을 챙겨주는 사람들에게는 조금 더 마음이 가기 마련이니까 싶다가도 그렇다고 제사를 지내주지 않는다고 해코지를 하는 건 너무한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었잖아. 그리고 그 결론은 귀신이 되고 나면 마음이 단순해 져서 그런거다-였고. '잊혀진다'는 건 정말 슬픈 거니까, 적어도 제사때 만큼은 기억하자는 의미에서도 나쁘진 않은 거 아닐까?


2. @minji4726 님의 이야기
개도 알아 본 걸까? 동물들은 사람이 보지 못 하는 걸 본다잖아. 사람들이 보지 못 한 어떤 기운을 개가 먼저 알아챈 게 아닐까 싶어.

그러고보니 요즘 개들도 여간 힘든 게 아닐 거야. 나가고 싶은 마음 잔뜩일텐데 이전보다 산책도 줄었을테고... 근데 또 달리 생각하면 이전보다 주인이 집에 있는 날이 많아져서 더 신났을 수도 있겠다 ㅎㅎ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보고 싶다면 톡방 한 번 들러 볼래?
남들에게는 하기 힘들었던 이야기, 여기서 나누다 보면 답답한 마음이 조금 가실지도 몰라.

정말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때문에 세상을 떠났지만 또 지구의 인구를 따져보면 코로나로 인한 락다운으로 대기 환경이 개선되면서 오히려 실질적으로 죽는 사람이 줄었다고 하니 참 아이러니하지? 우리 주변의 사람들은 세상을 떠나는데 우리가 보지 못 했던 죽음들이 줄었다고 하니. 주변에 조금 더 시선을 둬야 하는 시기가 아닌가 싶어.

조금만 더 참아 보자 우리. 적어도 밀폐+밀집한 공간에는 가지 않도록 해. 부득이하게 가야 한다면 마스크는 꼭 착용하고. 알았지?
5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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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별얘기아닌데...민망하네유^^; 근데 저도 호랑이부적 카톡프사에유ㅋㅋㅋ 넘귀여워유~♡
부적 고맙네, 덕분에 점심시간에 한번 웃었어ㅎㅎ 힘들겠지만 다들 즐거운 하루 보내고^^
부적 넘 귀엽 ㅋㅋㅋ
동물은 영혼이 깨끗해서 사람보다 많은것을 볼지도 몰라 주인대신 목숨을 내놓기도 하고 흉한것을 쫒아낼줄도 알고.. 감사히 생각하자~~
무서운얘기 많이.가져와쥬세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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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오는 귀신썰) 소름 돋는 꿈 이야기
안녕 어느새 여름이 훌쩍 와버렸네 이제 조금은 안심하고 지낼 수 있을까 싶었는데 어제부터 난리더라. 이 시국에 클럽이라니... 클럽만큼 밀폐된 공간이 어딨다고, 밀폐된 데다가 잔뜩 달라붙어서 소리 지르고 땀 흘리고 부대끼는 공간인데 왜 가냐 다들 ㅠㅠㅠㅠ 그 용인 확진자한테 구상권 청구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사실 그 날 같이 클럽에 있던 사람들도 다 같지 뭐, 그 사람도 증상이 없을 때 클럽 간 거니까 다를 바 없는 거 아니냐. 마스크 끼고 클럽에서 놀 거 아니면 가지 마 정말 어휴! 부디 더 이상 확진자가 늘지 않기를 바라면서 오랜만에 이야기 같이 볼까? 오늘 가져온 이야기는 옛날에 빙글에서도 본 적 있는 이야기인데 빙글에는 없는 내용도 있어서 그것까지 같이 가져와 봤어. 소름 돋는 꿈 이야기, 어쩌면 그것보다 더 소름 돋는 친구의 이야기 지금부터 시작한다! ___________________ 1) 와 나 소름돋는 꿈 꿨는데 신기있는 친구한테 연락옴 4시쯤에 잠들었는데 꿈을 꿈 꿈에서 어디를 가려고 했는지 내가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음 정류장엔 의자에 사람들이 앉고도 몇명은 서있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음 나는 의자에 앉아있었는데 내 옆에는 어떤 남자가 앉아있었음 나도 그렇고 사람들도 그렇고 다 스마트폰 보고 있는데 그 남자는 글자가 빽빽한 책을 읽고 있어서 무슨책일까 궁금해했던게 생각이 남 좀 기다리니까 버스가 왔음 근데 버스 길이가 엄청 길었음 지하철 만큼은 아니지만 버스치고는 우와 길다 할정도? 그리고 버스 문도 뒤쪽에 달려있었음 우리가 타는 버스는 버스기사님 쪽에 문이 있잖슴 그 반대로... 그땐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거부터가 소름끼침 근데 꿈이라 그랬는지 전혀 이상함을 못느끼고 앞사람들 타는거 기다리다 버스를 탔음 딱 타서 요금 내려는데 그 기계에 갑자기 내 이름이 뜨면서 오히려 돈이 나오는거임; 진짜 이상한데 그때 나는 그냥 오 돈이 나와 개이득 이러고 있었음;; 그래서 기분좋게 돈 뽑으려 하는데 아까 옆에서 책 읽던 남자가 내 뒤에 줄을 섰었나봄 갑자기 나를 그냥 안으로 밀어넣는거임 아직 돈 안뽑았다고 말하는데도 막 밀음 그러더니 내 팔을 잡고 끌고가기 시작하는거임 뭐지?? 싶어서 빼려는데 남자가 잡고 있는 힘이 너무 세고 걸음도 빠르고 따라가기도 벅차서 어떻게 해보지도 못하고 끌려갔음 그러고 좀 가니까 앞은 거의 빈좌석이였는데 그중에 한곳 창문을 열더니 갑자기 나를 안는거임 완전 숨막힐 정도로 꽉 감싸안음 그러더니 창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거임;; 놀래서 하지말라고 뭐하는거냐고 남자한테 소리지르는데 남자 힘이 진짜 너무 센거임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끄떡도 안함 이대로 떨어지면 제대로 착지되는 자세도 아니고 그대로 박치기 할거같아서 너무 무서운거임 눈물이 막 나오려하는데 남자가 날 안은 상태로 창문에 걸쳐앉음 그리고 곧 상체가 넘어가면서 중심을 잃는게 느껴지는거임 남자가 머리부터 거의 다리까지 감싸안아서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진짜 확 젖혀지면서 아찔하는데 내가 소리지를때도 입도 뻥끗 아무말도 안했던 남자가 내 귀에대고 말을 하는거임 아무리 바로 귀에 말을 하는거라지만 남자 목소리가 콕콕 박히듯이 들려서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남 돈은 살아서 받아 딱 이렇게 말했음 그 말 듣자마자 몸은 완전히 기울어서 버스에서 떨어지는데 눈이 확 떠짐 꿈에서 깬거임 깼는데 처음엔 멍했음 뭐가뭔지 인지가 안돼서 좀 있으니까 실감이 나기 시작하는데 아 꿈이여서 다행이다 근데 뭔 그런 남자가 다있지 싶었음 그러다 꿈이 너무 뒤숭숭해서 내용을 곱씹어보는데 돈은 살아서 받아 이 말이 자꾸 웅웅 울리면서 귓가에 맴도는거임 찝찝한게 기분이 너무 나빴음 그러다 출출해서 소세지 하나 먹고 씻고 웹툰 보고 있는데 나랑 제일 친한 친구한테 문자가 온거임 얘가 가족친척 아무도 그런 사람이 없다는데 신기가 좀 있음 얘기가 너무 길어질거 같으니까 친구 얘기는 안할게 가린건 내 이름임 애가 답이 없길래 그랬나보다하고 다른거 하고 있는데 남자 만났지 그 남자가 너 도와줬을텐데 저거 온거보고 진심 소름돋음 바로 전화해서 무슨말이냐 했더니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함 그냥 스친 생각이면 신경 안쓰는데 계속 생각나는게 불안해서 문자했다고... 자세한 얘기는 모르길래 꿈 내용 얘기해줬더니 진짜 안좋은 꿈 꾼거라고 도와준것도 아니고 그 남자가 너 살려준거네 이러면서 내가 큰일 당할수도 있었다 함 그리고 어차피 얘기 다 한 김에 가지고 있어서 좋을거 없다고 200원 주고 꿈 사감ㅠㅠ 원래 꿈도 자주 꾸고 자각몽도 꿔보고 했는데 이런 꿈은 처음 꿔봐서 진심 너무 소름돋고 만약 그 남자가 날 안고 거기서 안나와줬으면 어떤 큰일이 났을까 싶고 고맙고ㅠㅠ 친구랑 계속 폰 붙들고 전화하다 글 쓴다.. 또 꿀까봐 한동안 잠 편히 못 잘듯... 2) 추가 추천이 천이 넘었다니.... 역시 나만 소름돋는게 아니였어ㅠㅠㅠㅠ 글도 잘 못쓰구 허겁지겁 막 올린거라 다시 읽어보니까 부끄러운데 봐줘서 고마워! 댓글 하나하나 읽어보는중인데 꿈이라는게 정말 신기한거같아 같이 꿈 얘기 풀어줘서 시간 가는줄 모르고 계속 판보고 있다ㅠㅠ 근데 진짜 많은 사람들이 소름돋다못해 살떨리는 꿈들을 꾼다.. 내 친구한테 링크 알려줘서 통화 켜놓고 같이 보고 있었는데 천만다행이라는 꿈도 있고 너무 슬프다는 꿈도 있고.. 친구 말 따라 더 이입돼서 읽힌다ㅠㅠ 그런꿈들 꾸느라 고생했어 그리고 어제까지만해도 나 구해준 남자한테 그냥 고맙다고만 생각했었거든 근데 댓글 보니까 띵 한게 나도 궁금해져서 친구한테 물어봤는데 친구도 자세하게 누군지까지는 알 수가 없대 나랑 관련된 사람인건 확실한데 그렇게 몸 날려서 구해줄 몇 안되는 사람이라는것만 알고있으라고 하더라구.. 책 읽는 옆모습이랑 버스안에서 발버둥치면서 휙 돌때 봤던거 생각해보면 선명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내 또래? 많아야 20대 중반? 정도인 남자였는데 나랑 무슨 연이 있어서 나를 그렇게 도와준건지ㅠㅠ 친구가 이제 잘 살면 그걸로 된거라고 깊이 알려고 하지 말래 음 추가 같은 후기였어! 사실 후기 남길것도 없지만 남자에 대해 많이 궁금해하길래 나만 알고 있을수가 없어서 적어 더 써달라고 한건 다음에 기회되면 써볼게 너희는 버스 꿈 같은거 안꿨으면 좋겠다!ㅠㅠ - 이 글 보고 누가 글을 올려서 글쓴이를 찾음 3) 톡선 소름돋는꿈 쓰니 들어와라 안녕 난 신기 정도가 아니라 신을 직접 모시고 있어 어릴적 부터 기가 세서 팔자 안 좋다고 신을 모시게 됐거든 원래 이런 일을 괜히 직접 내가 나서서 도와주진 않지만 네 팔자 생각 해서 말할게 그냥 간단히 꿈 다시 받아와 내 말 들어 안그러면 네 팔자 부정 탄다. 글 읽으면서 부터 내가 모시는 신께서 혀 차시더라 정신병 있는 애로 보일 수 있지만 전부 말씀 하시는게 들리거든? 그런데 꿈 다시 찾아 오는게 네 팔자에 좋을 거라고 말씀해주셨어 그 년 옆에 두지 말래 둬서 좋을 것 없대 그냥 말 듣고 어서 돈 주고 꿈 다시 사가 너가 내 친구 였다면 당장에 그 년 한테 꿈 돌려 주라고 말 해 줬을 텐데 그러지 못 해서 참 답답 하다. 지금 이 사이트에 신기 있는 애들이 전부 말 해 주는 것들 중 틀린 말 들이 별로 없어 진심으로 다들 꿈 다시 되 찾아 오라고 하잖아 그리고 정말로 신기 있는 여자 들은 결혼운,남자복 없어서 꿈 속여 사 가지고 시집 가는 년들이 대다수야 뭣 모르고 꿈 판 애들은 그 신기 있는 여자 인생을 그대로 가져 가게 되고 팔자 꼬는 거지. 그 중에 너 또 한 그렇게 되지 않을 거란 보장도 없고 그냥 내가 말 해줄 수 있는 것은 이것 밖에 없다. 꿈 다시 되 찾아와 그리고 앞으로 그 년과 가까이 하지마 +난 기가 정말 세서 팔자가 꼬일 운명이라 진짜 유명한 무당께 신을 내려 받았어 더 이상 설명 할 수는 없고 본론적으론 꿈을 되 찾아 오라 이거야 내 존재를 믿던 말던 그 몫은 그 글을 쓴 아이고 하나 더 말 하자면 꿈은 우리의 인생과 밀접 하게 연관 되 있어 그게 좋은 꿈 이던 나쁜 꿈 이던 미래 예언 하듯이 꿈 속에서 그 것을 가르쳐 주는거야 물론 전부 맞지 않아 또 한 그냥 일반적인 꿈을 꿀 수 있어 그런데 이런 류의 꿈은 언제 어디서나 꾸어도 이상하지 않다 이거야 아무튼 이런게 있어서 미래를 예언 하시는 분 들도 계시는 거라 알아줬으면 좋겠어 +) 이 글에 달린 리플 [출처] 네이트판 ____________________ 비슷한 이야기를 이전에도 가져온 적 있는 것 같은데, 댓글들을 보니 너무 무섭지 않아? 꿈을 산 뒤에 배우자를 바꿔서 결혼을 한다니... 그런 마음으로 '노리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잖아. 보통 다 지인일텐데 세상 무서워서 살겠나 정말 ㅠㅠ 그나저나 이후로 글쓴이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서 검색해 봤는데, 지금은 글이 삭제되고 없지만 글쓴이가 다시 나타나서 꿈 다시 2000원 주고 돌려 받았다고 해 ㅎㅎ 다행이다 휴 흉몽이든 길몽이든 사고 파는 건 정말 아닌 것 같아. 흉몽이면 흉몽인대로 다른 사람에게 팔아서는 안되고, 길몽 역시 속여서 사면 안 되겠지. 부끄러울 행동들은 하지 말자! 이제 슬슬 본 생활로 돌아가려던 참이었는데 갑자기 확진자가 늘어서 많이들 불안하겠지만 여태까지 잘 해 왔으니까, 하던대로 주의해서 잘 버텨내도록 하자. 나를 위해서도 남을 위해서도 마스크 항상 착용하고, 사람들이 밀집한 밀폐된 공간은 가지 말고. 그럼 곧 또 올게! 건강하자 꼭!
퍼오는 공포썰) 유치원에서 일어난 실화괴담
안녕! 정말 오랜만이지 이제 슬슬 더워진다 정말 6월이면 정말 여름이래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말야. 맘에 드는 이야기 찾기가 너무 힘들어서 한동안 안왔는데 오랜만에 조금은 같이 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챙겨왔지! 맘에 들랑가 모르겄다 ㅎㅎ 귀신이야기는 아니지만 무서운 이야기. 시작해 볼까? ________________ 우리 어머니는 유치원교사야. 우리어머니는 20년동안 한 지역에서 좀 큰 유치원을 운영중이시고, 이름을알면 아는 사람이 잇을까싶어 일단 익명이야. 아무튼 우리 어머니는 90년대부터 유치원을 인수받아 운영중이시고, 한 20년넘게 하셨어. 나름 이 지역에서는 이름이 알려지신 분이고, 솔직히 한 해에 우리 어머니 아래를 거쳐가는 아이들은 엄청 많아. 그 중 몇가지 잊지 못할 이야기가 있는데 , 한번 풀어볼게. 첫번째, 지금은 디자인이 바뀌였지만 과거 90년대에는 어머니가 운영하시는 유치원가방에는 유치원 전화번호가 크게 써져있었어. 그리고 뭐뭐 유치원이라며 글자도 크게 나와 있었지. 그게 미아 방지용인데,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라 만약 그 아이가 유치원에서 무슨 일이 생겨 미아가 되었을 경우 혹시나 행인이나 경찰관이 그것을 발견하고 신고하기 위한 용이였어. 아무튼 거기에 얽힌 조금은 섬찟한 사고가 있었어. 당시는 90년대 후반, 어머니가 운영하시는 유치원엔 A라는 애가 잇었어. 일단 A라는 애는 조금 난폭한 애였는데, 다른 원생을 괴롭히거나 어디서 들었는지 모를 욕을 막 해대서 엄마를 비롯한 다른 교사들도 싫어했어.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A라는애가 문제아라는 말도 있었어. 그런데 그 A라는 애는 아무리 교사들이 야단을 쳐도 나아지지 않았고, 어머니는 참다참다 학부모에게 전화를 했어. 근데 A 아버지라는 사람이 낮에 전화를 하니까 엄청 귀찮다는 식으로 전화를 받더래. 거기다가 "나 지금 자다가 깨서 졸리니까 전화 나중에 걸어." 라며 반말과함께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어. 솔직히 이쯤되니까 어머니는 거의 멘붕수준이였어. 그래서 조금 시간을 뒀다가 다시 저녁에 전화를 걸었는데, 그땐 전화를 받더래. 근데 당시만해도 보통 육아는 어머니쪽이 담당을 하니 우리 어머니는 아무 생각 없이 "죄송하지만 어머님 좀 바꿔주세요." 라고 말했어. 그랬더니 A 아버지는 그 말을 듣자마자 갑자기 쌍욕을 하시더니 일방적으로 끊어버리는거야. 그리고 그 다음 날 A는 진짜 온 몸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서 온거야. 근데 A는 몸이 아프지도 않은지 너무너무 표정이 밝은거야. 그래서 우리 엄마는 "A야. 아빠한테 많이 혼났어? 안아파?" 라고 물었더니 A는 아프기는 커녕 오히려 웃으면서 "내일 유치원 안오고 아빠랑 OO에 있는 동물원에 놀러가요!!" 라고 자랑을 하더란거야. 근데 우리엄만 너무너무 찜찜하더래. 당시엔 유치원 교사가 아동학대가 의심이되어도 신고를 못하던 시절이였거든. 신고는 커녕 남의 집에 무슨 참견이냐며 욕을 먹던 시절이였어. 어쨋든 A는 다음날부터 유치원에 나오지 않았어. 하지만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은 이유가, 당시 A는 원비를 몇달째 밀린 상태였고, 간혹가다가 사정이 여의치 않은 부모가 원비를 내지 않고 멋대로 이사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거든. 무엇보다 철수는 문제아였고, 오히려 A가 오지 않는걸 좋아하는 사람들까지 있었어. 하지만 우리 엄마는 너무 불안한거야. A가 말했던 OO라는 지역에는 동물원이라는게 아예 없었거든 그러다가 한 몇달동안 소식이 없었고, 어머니도 겸연쩍었지만 잊어가고 있었지. 근데 어느 날 경찰에서 연락이 온거야. 지금 OO에 있는 한 저수지에서 동반자살 시체를 발견했는데, 너무 훼손이 되어있어서 신원확인이 어렵다. 근데 시체가 매고 있는 가방에 이 유치원 이름과 전화번호가있다. 이런식으로 전화가와쓴데 엄마는 바로 직감한거야. 혹시 IMF를 기억하는 세대가 있을진 모르겠는데, 당시 IMF때문에 구조조정이 엄청나게 일어나던 시절이였어. 하루 아침에 실업자가 된 사람이 자살하는 경우도 흔했고, 철수 아버지도 마찬가지였어. 실업자가 되면서 아내는 집을 나가고 어린 아들만 있는 상황이였어 그리고 아빠라는 사람은 A에게 온갖 화풀이를 다 한거야. 그러다가 결국은 자살을 계획했는데, 이 사람이 자기 어린 아들도 멋대로 데리고 간거야. 근데 차마 아들에게 죽으러가자곤 못하고 동물원가자고 꼬셔서 데리고 간거지. 아이는 신나서 평소 아끼던 유치원 가방을 매고 따라간거야. 그 사람이 어떻게 자살을 했냐면, 애한테 억지로 술을 잔뜩 먹여서 재운 다음에 자기자신과 아이 몸에 돌을 묶어서 같이 저수지로 뛰어 들었다는거야. 그런데 그나마 남아있던 부정이 있어서 그런지 아이가 아끼던 가방도 그대로 매고 같이 죽은거지. 신원확인을 한덕에 어찌어찌 수습은 되었다고해. 하지만 엄마는 아직도 그날 일을 기억하시면서 A라는 애한테 미안해하셔. 만약 그때 지금처럼 아동학대 의무 고발이나 그런제도가 있었다면, 적어도 그 아이 하나는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죄책감때문이야. 일단 안타까운 일은 여기까지야. 두번째, 이 일도 90년대 초반에 있었던 일이야. 그땐 지금 유치원은 아니고 다른 유치원에서 실무를 쌓고 있던 중이셨어. 그런데 그 유치원에 B라는 여자애가 있었어. 여자애는 좀 잘사는 집 외동딸이였고, 말도 굉장히 잘듣고 엄청 착한 아이였어. 걔를 우리 엄마가 왜 기억하냐면 그 여자애 엄마가 당시에는 엄청 비싼 화장품을 선물로 주더래. 지금은 법적으로 안되지만 , 그땐 나름 고맙기도했고, 상상 이상의 선물이라 임팩트가 크게남았지. 어쨌든 이 B는 당시 엄마가 돌보았는데, 엄마가 맞벌이를 시작하면서 시골에서 친할머니가 올라왔어. 그리고 B할머니는 조금 이상했어. B의 부모님은 두분다 굉장히 좋고 친절하신 분이였는데, B에게도 평소에 "우리 딸, 예쁜 딸" 하며 끔찍히 아꼈는데 그 할머니는 "이 X 저 X" 할 정도로 자신의 손녀딸에게 함부로 말했어. 애가 조금만 실수해도 친구들이 있는 곳에서 대놓고 면박을 주기도했어. 그래도 그냥 마음속으로 '아이를 되게 엄하게 키우나보다.' 라고 생각했어. 근데 어느 날 , 엄마가 주말쯤 일이있어서 유치원 근처에 가게 되었는데 큰 도로 한가운데 B가 서있는거야. 훤한 대낮이였고, 워낙 예뻐하던 아이라 바로 알아볼 수 있었어. 진짜 옆에는 큰 차도 쌩쌩 달리고있던 상황이였고, 우리 엄마는 질색해서 그 아이를 안고 인도로 데리고 나왔어. 근데 B의 할머니가 갑자기 나타나더니 "애가 발이 빨라서 어디갔나 했는데 여기에 있었네~~" 라며 그냥 바로 데리고 가버리더래. 감사인사도 없이. 근데 그게 목소리만 들어도 거짓말이라는게 티가 날 정도로 어색하고 어딘가 굉장히 부자연스러웠데. 그 이후로는 큰 일은 없었어. 그때부터 더더욱 이상했는데, 큰 일이 생긴건 학부모 찬관 현장학습이였어. 그때가 가을이였는데, 이번에도 B는 할머니와 함께 왔어. B의 엄마는 소풍이나 학부모 모임때 못오시니까 대신 할머니가 그런 대소사를 다 관여했어. 당시에 무슨 도토리나 낙엽을 흩어져서 줍는 그런 활동을 했는데, 이게 아이와 보호자랑 짝을 이어서 하는 거였어. 당연희 B는 할머니와 둘이 산기슭으로 갔는데, 현장학습 내내 B와 할머니가 안보이는거야. 심지어 점심 먹는 시간에도 . 엄마를 비롯한 당시 교사들은 모두 걱정했지만 점심먹는 시간이 따로 안정해져있는데다가, 흩어져서 자신이 좋아하는 자리에서 먹는거였기에 따로 찾아나서지는 않았어. 근데 현장학습이 끝나서 집에 갈 시간이되었는데도 할머니와 B는 나타나지 않았어. 당연히 모두들 걱정했고, 몇몇 교사들은 결국 흩어져서 찾기로 했어 그러다가 시간이 늦어지자 다른 아이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교를 했어. 근데 유치원쪽으로 전화가 온거야. B엄마인데, B가 올 시간이 되었는데도 오지않는다고. 그래서 당시 유치원 교사들은 고민하다가 사실대로 말했어. 진짜 최악의 경우 할머니와 B가 조난당했을지도 몰랐을 테니까. 근데 B의 엄마가 그 사실을 듣더니 깜짝 놀라는거야. 왜냐면, 자신은 현장 학습에 대해 전혀 몰랐고, B의 할머니는 지금 집에 있다는거야. 엄마를 비롯한 유치원 교사들은 어처구니가 없었어. 일단 오늘 현장학습이였고 B와 할머니는 분명 참가했거든. 목격자만 해도 굉장히 많았고, B의 엄마는 이 사실을 모르고, 심지어 B의 할머니는 지금 집에있다니? 엄마는 두번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119와 경찰에 신고했어. 혹시 박초롱초롱빛나리 사건 알아? 딱 그쯤 일어난 사건인데, 어린 아이가 납치당해 살해당한 사건이야. 그래서 당시 유치원 교사들은 아이가 사라지는 것에 엄청 민감했어. 아무튼 경찰이나 119도 심각하게 생각하고 곧바로 수색에 들어갔어. 그리고 B의 부모님과 유치원 교사들은 모두 경찰서로 갔어. 근데 진짜 가관인게, 그 할머니라는 작자가 경찰서에 들어가자마자 입을 딱 다물고 아무말도 안하는거야. 상식적으로 손녀가 실종됬는데 그럴 수 없잖아. 하다못해 걱정이라도 해야하는게 정상이잖아. 근데 경찰이 아무리 추궁해도 아무말도 안하고 , "몰라요. 나는 몰라요. 아무것도몰라요" 란 말만 반복하는거야. 유치원 교사들이 뭐라고 하니까 "난 오늘 하루종일 집 밖에 안나갔어." 라는 거짓말까지 하더래. B 어머니는 정신줄 놓고 울고 B 아버지는 할머니께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B어딨냐고 난리치고.. 그러다가 그날 새벽에 산 반대쪽에서 B가 구조되었어. B는 발견될 당시에 추위와 두려움에 지쳐서 반쯤 정신을 놓은 상태였어. 근데 애가 정말 똑똑한게 , 어느정도 수습이 되니까 할머니가 이 곳에 데리고 왔고, 어디어디를 거쳐서 여기에 왔는데, 잠시 기다리라고 한뒤 할머니가 안와서 이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며 상황설명을 완벽하게 한거야. 당시 할머니는 처음엔 모른다고 하다가 산에 같이 갔는데 B가 혼자 자신을 앞질러 가서 놓치는 바람에 그냥 집에왔다고하다가 B는 교사들 책임인데 왜 자신이 책임져야 하냐고 횡설수설 하다가 경찰이 아동 유기는 범죄고, 할머니는 지금 감옥에 갈 수 있다고 겁을주니까 그제서야 본색을 드러내더래. "저 X이 죽어야 우리 아들 손주 본단 말이요!!!!!!!!!!!!!" 그 할머니는 남아선호사상이 강했는데, 어느 날 점을 보러갔는데 그 점쟁이가 "당신네 손녀가 아들 나오는 길을 막고있다. 그 아이가 없어져야 아들이 태어난다." 이 말을 듣고 할머니가 손주를 보고싶다는 욕심에 손녀딸을 죽이려한거야. 저번에 우리 엄마가 B를 도로 한 가운데에 서 있던 것을 본 것도 사실은 손녀를 일부로 차에 치여 죽이려고 했던거야. 그런데 우리 엄마가 발견한 덕에 B는 무사 할 수 있었고, B가 산에서 유기 되었던 날, 가을이라 밤에는 정말 너무 추웠거든. 이 XX할머니는 손녀를 산에 버리고가면 애가 밤새 추워서 얼어죽을 줄 알았던거지. 그리고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도 일부로 시간을 끌어서 애가 발견 못되게 해서 죽게 하려했던거야. 근데 이걸 우리 엄마만 본게아니고 다른 교사들도 할머니가 B를 대하는 태도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 채고 있었어. 그리고 그건 B의 부모도 마찬가지였어. B의 아버지는 이야기가 여기까지 진행되자 어머니고 나발이고 눈이 뒤집혀서 그 할머니 뺨을 떄리고 욕을 하면서 경찰한테 감옥에 어서 쳐넣으라고 난리를 쳤데. 근데 그 할머니가 진짜 미쳤다는게 느껴진게 자기 아들이 뺨을 때리니까 노발대발하면서 "어떻게 나는 널 위해서 그런건데 엄마 뺨을 때릴 수 있냐고!!!!!!!" 하며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역으로 화를 내더란거야. 그 뒤로 B는 유치원을 그만뒀고, 그 다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진 몰라. 아마 내가 태어나기 전이니 이미 그 B는 성인이 되고도 남았을거야. 세번째, 엄마네 유치원은 만 세살부터 일곱살까지 애들을 맡아. 근데 애들은 연령대별로 노는 방식도 다 다른데, 한 세네살정도 되는 아이들은 어른들이나 주위 환경을 모방하고 따라하는 그런 놀이를 주로한데. 가령, 배에다가 뭘 잔뜩 넣고 임산부 놀이라던가, 다리 한쪽을 일부로 질질 끌고다니며 다친 사람 놀이를 한다던가, 악의는 없이 그게 뭔지도 모르며 그냥 어른들의 행동을 보고 따라하는거야. 그 나이 아이들은 노는 방식도 정해져 있지는 않아서 누군가가 "우리 무슨무슨 놀이하자!" 이러면 그냥 따라서 논데. 방식도 정해져 있지 않고 정해진 규칙도 없는 그런놀이인데, 아무튼 놀이 시간에 애들끼리 어울려 노는데 그 날따라 이상한 놀이를 하는거야. 스펀지 블럭 알아?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블럭모양 스펀지인데, C가 누워있고 , 다른 아이들이 주위에 네모모양으로 스펀지 블럭으로 담을 쌓는거야. 그리고 C는 그 안에 꼼짝 하지 않고 누워있는거지. 그 나이 애들은 낮잠을 반드시 재우기 때문에 각자 담요가 잇었는데 그 C가 담요를 머리 끝까지 쓰고 누워 있는거야. 그리고 C가 움직이려고하면 다른 애들이 "야!! 움직이지마!!" 라며 짜증까지 내는거야. 다른 아이들은 장난감 꽃이나 장난감 소꿉노리용 음식같은걸 들고 주위에 빙빙 돌면서 누워있는 C 근처를 장식하는거야. 그래서 엄마가 아이들에게 물어봤어. "얘들아 지금 무슨 놀이하는거야?" 라고 물으니까 애들이 "무덤놀이요!!" 우리 엄만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의 창의성을 굉장히 존중했기 때문에 무슨 놀이를 하던 위험하지 않는 이상 못하게 하진 않거든. 근데 무덤놀이라니까 뭔가 꺼름찍 하더래. 원래 그 나이때 애들은 어른들이 하는 행동을 보고 배운다지만 그게 하필 죽은 사람인 무덤이잖아. 무엇보다 C라는 아이가 평소에 조금 소심한 애라서 혹시 이걸 빌미로 다른 친구들이 괴롭히는건 아닌지 걱정도 되더래. 그 나이때 애들은 놀이 중에 비교적 안좋은 역활을 힘이 약한 아이들에게 억지로 우겨서 떠맡기기도 했거든. 혹시나 그런게 아닐까 싶어서 살짝 혼을 냈어. 근데 다른 아이들이 억울해하면서 "이거 C가 먼저 하자고했어요!!" 라고 하는거야. 엄만 첨에 그 말을 안믿었어. 앞서 말햇듯이 C가 소심한 아이였고 놀이를 하면 끌려다니는 입장이니까. 근데 C가 나서서 다른 애들 편을 들면서 그 말이 맞다고 답하는거야. 엄마는 순간 할말이 없어서 미안하다하고 그냥 놔뒀어. 애들은 엄마가 뭐라하지 않으니까 다시 그대로 무덤놀이를했어. 근데 바로 그 주 주말에 C가 교통사고로 죽었어. 정말 순수한 사고였어. 나도 자세한것은 듣지 못했지만, 건널목을 건너다가 차에 치였다는것 같았어. 엄마는 그 소식을 듣고 엄청 충격을 받았어. 일단 우리 엄마가 워낙 애들을 좋아하고 아끼는편인데다가 누군든 그 어린 아이가 죽으면 충격을 받잖아. 근데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고 문득 예전에 다른 아이들이 하고 놀던 무덤놀이가 생각난거야. 물론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겠지만 엄마는 뭔가 걸리는게 있어서 다른 아이들을 붙잡고 물었어. "얘들아, 너희 이제는 무덤놀이 안해?" 라고하니까 다른애들이 아주 당연하다는듯이 " C가 없어서 이제는 못해요." 그러는거야. 그래서 엄마는 "그럼 다른 친구가 무덤 역활을 하면 되는거아니야?" 라고 물었어. 나쁜 의미가아니라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거지. 그러니까 그 애들은 하나같이 "C가 없어서 못해요. C가 없는데 어떻게해요?" 그러는거야. 그게 과연 놀이를 주선한 C가 없어서 못한다는건지, 아니면 비교적 재미 없는 역활인 무덤 역활을 맡을 아이가 없어서 그런건지 엄마는 도저히 알 수가 없는거야. 3~4살 정도 되는 애들이라 심화적인 대화는 어렵잖아. 무엇보다 아직 죽음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가 아닌지라 다른 아이들은 C가 어디 멀리갔다고만 알고있었거든 일단 그 아이들은 지금 전부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했어. 엄마는 더 묻고싶었지만 묻지않았어. 그 뒤로 유치원에서 무덤 놀이를 하는 아이들은 아무도없고, 지금까지 유치원 원생 중에 사고를 당해 죽은 아이는없어. 물론 전부 우연의 일치일지 모르지만 엄마입장에선 꺼림찍한 일인건 사실이지. 참고로 말하는 거지만 연령대별로 아이들이 조금씩 다른데, 3~4살 아이들은 뭔가, 정말 다른 세계가 있따는 느낌을 자주 받는데. 그 아이들에 관련된 이야기는 하나 더 있어. 이건 근래에 있었던 일이야. 엄마가 직접 내게 상담을 했던 일이기도 하고 , 무서운 이야기일수도, 아님 우리만의 착각일수도 있어. 사건의 발단은 미술시간이야. 그냥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였는데, 3~4살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더라도 엄청나게 추상적인 그림을 그려. 무슨 자동차라고 해놓고 커다란 덩어리에 바퀴만 붙여놓는다던가. 엄마는 아이들이 어떤 그림을 그리던 무조건 잘 그린다고 칭창해줘. 근데 D라는 아이가 있는데, D가 주위에 꽃밭을 그리고 가운데에 새파란 머리를 그리는거야. 눈 코 귀 입 다있고 머리카락은 있는데 몸은 없이 얼굴만 파란 색이였어. 솔직히 뭘 그린건지 난감하잖아. 그래서 엄마는 고민하다가 "D야~ 이거 뭐야?" 라고 물었는데 D가 또박또박 "아저씨" 라고 말하더래. 그래서 엄마는 "아저씨? 아는 아저씨야?" "모르는 아저씨에요." "그런데 이 아저씨는 어디서 봤어?" 라고 대화가 오가다가 다음 질문에 D는 손가락으로 운동장을 가르키면서 "저기서!!!" 라고 하는거야. 일단 애들은 상상과 현실을 구분 못하는 경우가 많아. 상상한 것을 진짜 봤다고 믿는 경우도 많고, 아무튼 운동장이긴하지만 유치원 앞마당 수준인데 거기서 파란 얼굴 아저씨를 상상하다가 그걸 그린건가 하고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어. 근데 얼마 동안 다른 아이들도 파란 얼굴 아저씨를 그리고 있는게 보였어. 이게 뭐냐고 물으면 아이들 모두 대답은 "아저씨!!" 라고만 말햇어.그 아저씨가 어디에 사는지 어디에서 봤는지 누구인진 모르고 아이들마다 파란 아저씨를 그리는 모습은 조금씩 다르긴했지만 공통점을 꼽아 말하자면 1. 아저씨의 표정은 대부분 화가 나고 찡그린 얼굴이다. 메롱을 한 얼굴도 있다. 2. 얼굴은 새파랗다 3.몸이 없다. 머리만 둥둥 떠 있는 식. 4.그냥 아이들 모두 아저씨라고 말할 뿐. 5. 머리카락을 그린 사람도 있고 안 그린 사람도 있는데, 남자인데도 머리가 길다. 하지만 아이들 모두 아줌마가 아니라 아저씨라고 한다. 6.각자 본 장소가 다르다. 정도였어. 이쯤되면 솔직히 소름돋잖아. 엄마는 그래서 처음엔 아동성애자가 몰래 우리 유치원을 염탐하나 하기도했어. 그래서 일부로 교사들과 아이들 노는 시간에 조를 짜서 감시까지 했어. 근데 그 시간대에 유치원에 오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심지어 비가 와서 바깥에 나가지도 못하는 날에도 아저씨를 봤다는 애들도 있었던거야. 근데 재밌는건 6살 이상의 아이들은 파란 얼굴 아저씨를 본적도, 알지도못한다는거야. 딱 3~4살 정도의 아이들만 파란 얼굴 아저씨에 대해 이야기했어. 엄마는 내게 직접 묻기도했어. 혹시 파란 얼굴 아저씨가 무슨 만화에 나오는 캐릭터인데 애들이 캐릭터를 잘못그려서 그냥 추상적으로 그리다보니 그렇게 된건 아닌가싶어서 아이들의 그림을 보여주며 혹시 아는 캐릭터가 있냐고 묻기까지했어. 하지만 난 알 수 없었지. 그냥 괴담레스토랑이라는 만화 아는 사람 있는진 모르겠는데, 난 거기서 파란얼굴 아저씨라는 캐릭터가 있었고 그걸 애들이 배껴그린건 아닌가싶었지. 지금 돌이켜보면 뭔가 섬찟하지만 어느정도 엄마는 몇가지 추리를 하셨는데, 어떤 애가 파란 얼굴 아저씨를 상상해서 그렸고, 그걸 그림으로 그렸는데 애들이 그걸 보고 따라그리거나 이야기에 동참했고, 어느새 그건 놀이가 되어 아이들은 마치 파란 얼굴 아저씨가 있다고 상상하고 현실을 구분못하게 된거라고 생각했어. 물론 아이들 그림이고 아이들만 아는 일이라 캐물을수는 없었어. 그 이후에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아이들의 파란얼굴아저씨의 이야기는 사라졌지만, 지금도 의문인 사건중에 하나지. 네번째. 이건 미신과 민간신앙에 대한이야기야. 교회이야기도 했지만 우리 엄마는 기독교인이고 미신이나 그런건 굉장히 싫어하셔. 그런데 그건 단순히 종교 때문이아니라 미신 때문에 애들한테 어처구니 없는 짓을 저지르는 학부모가 생각보다 많아. 지금은 유명한것중 하나가 안아키?같은 그런거라 할 수 있지. 자잘한건 각설하고, 이 일은 90년대 후반에 있었던 일이야. 유치원에 E라는 여자애가 있었어. 그 여자애는 조금 키도 작고 깡마른 아이였어. 근데 그 E가 주말이 끝나고 월요일에 등원을 했는데, 왼손에 붕대를 둘둘 감고있었데. E의 부모는 "E가 주말에 뭘 하다가 손을 다쳤어요." 라고 밖에 말을 안해서 그냥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어. 근데 유치원이 끝날 즈음 E가 집에 가기 싫다고 펑펑 울면서 매달리더래. 근데 그 이유를 뭐냐고 물으니까 "엄마가 다음주에도 이상한 옷 입은 아줌마한테 데리고 간데요. 근데 그 아줌마가 칼들고 (오른손을 가리키며)이렇게 그었어요. 아파요.집에 안갈래요. 무서워요." 엄마는 그걸 듣고 식겁햇어. 때리는 건 당시에 훈육이라고 넘어 갈 수 잇찌만, 칼을 들고 아이를 찌르는건 엄연한 학대잖아. 혹시 E네 부모님이 좀 이상해서 아이를 죽이려고 할 수도있으니까. 엄마는 한번 사건에 휘말리는 것을 각오하고 E네 부모님께 연락을 했어. 여차하면 경찰 부를 각오까지하고말야. 그리고 정색을 하고 E네 부모님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이건 엄연한 학대중 하나고 교육자로써 이런 말을 들었는데 도저히 웃어넘길 수 가 없다. 도대체 무슨일이냐. 이런식으로 이야기를 했어. 근데 E의 부모라는 작자가 하는 말이 가관인데, E가 허약해서 어느 용한 무당에게 데리고 갔더니 E가 20살을 못넘긴다고 하더라면서 방법을 물어보니 300만원을 주면 무당이 신굿을 하다가 아이의 손에 있는 손금중에 생명선을 쭉 찢어서 길게 만들면 그만큼 아이의 수명이 길어진다고해서 E를 위해서 한일이다. 라고 하더래. 근데 이 무당이 장사를 할 줄 아는게, 일단 왼손은 그었지만 오른손에도 그어야하는데 그러면 또 날짜를 받아야하니 또 신굿을 해야하니까 또 돈을 준비해서 날을 잡자 하더래. 우리 엄마는 진심으로 학부모를 상대로 화가났고, 그게 말이되냐며, 그럼 말기 암환자 손에 칼질하면 그 사람이 살아나냐면서 당신들이 무당 말 믿고 그런 짓하는거 애가 크면 뭐라고하겠냐고 한시간넘게 전화로 싸웠데. 하지만 그 부모는 고집이 쎄서 혹시 모르지않냐고, E를 위해선 그 정도 할 수 있다. 마치 자신들이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거룩한 부모인양 말하더래. 그러다가 일단시간이 늦어서 E를 귀가시켰어. 엄마는 도저히 참고 볼 수가 없어서 만약 다음에도 이러면 일단 경찰부터 부르겠다고 엄포를 놨어. 경찰이 부르면 무당도 나와서 조사 받을테니 세상 사람들이 당신들이 한 짓 다알거라그랬어. 난 교회다니는 사람이고 하나도 안무섭다면서 E네 부모한테 막 뭐라했데. 그제서야 본인들도 자신들이 한짓이 심했다는걸 알았는지, 아님 귀가 얇은 사람이였는지는 몰라도 꼬리를 내렸고, 다행히 E는 무사히 아무탈없이 졸업했어. 우리 엄만 우리 엄마라서가아니라 정말 아이들을 좋아하는 사람이야. 방송에서 소년,소녀가장에 대해 방송하면 맨날 울며 지원하고 봉사활동도 자주했어. 사실 이것도 몇가지 일 때문에 일어난 일인데 여기서부턴 우리엄마가 겪은 이야기는 아니고 80년대 후반에 유치원 교사들 사이에서 퍼졌던 이야기 몇가지야. 좀 옛날이야기인데 유명해서 아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어. 애가 명짧다고 어느 법사가 어린애 몸에 문신으로 부적을 남겼데. 근데 그 부적을 새길때 생긴 상처로 폐혈증에 걸려 쇼크사한 이야기인데, 알고보니 그 법사라는 사람은 전과범에다가 문신도 야매였데. 그리고 애가 나중에 커서 출세하게 한다는 긴 부적을 무당에게 받아서 (한 50cm가량) 잘라서 애한테 억지로 먹이다가 장협착증이 생겨서 애가 돌연사한 사건. 믿기 힘들겠지만 80년대부터 90년대까진 미신 때문에 미친 짓을 저지르는 부모들이 꽤 있었어. 다섯번째. 이건 우리 엄마와 친한 아동상담가 선생님이 해주신 이야기야. 종교적인 이야기가 다수 섞여 잇을지 모르니 불쾌한 사람은 조금 이해해줘. 그 선생님은 지금 자폐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상담실을 운영중이셔, 자폐아 중에서는 교정만 잘하면 일반인과 아무 문제 없이 살 수 있는 가벼운 증상을 가진 아이들도 있어. 그런 경우를 아스퍼거 증후군이나 경증 자폐라고 하는데, 아무튼 그 선생님은 그런 아이들을 대상으로 미술치료를 하시는 분이셔. 그 선생님은 미술교실을 운영중이신데, 그 중에 F라는 아이가 있었어. F는 말이 느리고, 그림은 그려도 제대로 된 그림은 안그리고 그냥 진짜 손이 가는대로 형체만 대강 그리는 그런 아이였어. 옆에서 아무리 말을 걸어도 대답을 안하고, 진짜 자신이 하는 일에 열중하는 자폐증상이 있는 아이였지. 근데 그 애가 그림을 그렸는데, 뭔가 하얗고 노란것이 팔을 번쩍 들고 있는 그림이였어. 그래서 사람을 그리는건가 싶어서 봣찌만 다리가 없이 좀 많이 엉성한 노란색 덩어리? 그쯤 생각하면 될거야. 그래서 이 선생님이 이게 뭔지 궁금해서 "우와 F야~ 이게 뭐야?" 라고 물었데, 근데 평소에는 아무 말 하지 않던 애가 진짜 처음으로 또박또박하게 "나." 라고 하더라는거야. 그래서 그 선생님이 "이거 F야? 근데 왜 발이 없을까?" "원래 없어." " 왜 없을까?" "천사니까" 라고 정말 명확한 발음으로 대답하더래. 일단 여기서 선생님은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을 하지 않았어. 애들이 스스로를 공룡이나 초능력자에 투영하는 경우가 많아. 그리고 천사 같은 경우에는 보통 부모님이 교회나 성당을 다닐 경우에 어디선가 듣고서 상상하는 적도 있거든. 근데 선생님은 일단 자폐 증상이 있었던 F가 자신과 이제 대화를 하기 시작해서 상태가 호전된 줄 알고 계속 대화를 시도했어. "F가 천사구나. 근데 왜 천사야?" "지금은 아니야." "왜 아니야?" "(바닥을 탁탁 치며) 여기 있으니까" "여기 선생님이랑 있으면 F는 천사가 아니야?" "(고개를 도리도리)" "그럼 여기에 있기 전에 천사였어?" "(고개 끄덕끄덕)" 선생님은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자신도 모르게 진지하게 물었데 "그럼 여기에 왜 왔어?" 근데 그 말을 묻자마자 F가 진짜 서럽게 울기시작하는거야 훌쩍훌쩍거리면서. 근데 그 선생님이 교회를 다니시고 신이나 그런 걸 믿는 분이셨거든.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는 F에게 이렇게 물었어. "그럼 누가 여기 가라고 했어?" 그러자 F가 그 자리에서 발작을 일으키고 미친듯이 울기시작하는거야. 선생님은 당황했어. 왜냐면 F는 당연히 엄마가 오라고해서 왔다고 할 줄 알았거든. 선생님의 상담을 주선한 것도 F의 엄마였고, 그 날 아침 F를 데리고 온것도 F의 엄마거든. 근데 여기에 가라고 했다고 그렇게 펑펑 울리가 없잖아. 아무튼 F는 어떻게 진정이 되고, 선생님은 조금 충격 받아서 일부로 F에게 이 이야기를 안꺼냈어. 대신 F네 부모님에게 슬쩍 물어봤어, 별건 아니고 혹시 성당이냐 교회 다니시냐고. 근데 F의 엄마는 딱히 종교가 없는, 집안 자체가 무교인 집안인거야. 성당이나 교회는 F가 태어난 이후로 근처에 가본 적도 없고, 주위에 천사 이야기를 해 줄 사람은 더더욱 없는거지. 아무튼 F는 이후 상담을 통해 많이 호전이 되었어. 학교에 들어갈 쯔음에는 일반 아이들과 별반 다를 바 없이 성장했고, 근데 상담을 그만 두기 전에 선생님은 용기를 내서 F에게 천사 이야기를 꺼냈어. 하지만 F는 아예 질문 자체를 이해 못할 뿐더러 "천사요??????그게 왜요?????" 이런 반응이였데, 일단 선생님도 이걸 주위사람들에게 떠벌리지는 않았어. 다만 우리 엄마와 같은 교회를 다니셨고, 같이 아이들을 돌보는 직업인만큼 신기해서 이야기 해주신거야. 혹시 종교적으로 조금 혐오감 잇는 사람에겐 찝집한 이야기일수도 있겠네. [출처] 유치원에서 일어난 실화괴담 _____________________ 음. 귀신보다는 사람들의 무지가 만들어낸 공포. 사실 이게 더 현실을 파고들어서 무섭잖아. 부모들 중에서도 아직도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기도 할테고, 또 아이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니까 더 무섭고.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어쩌면 아직도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를 이야기라 겁이 난다. '상식적'이라는 건 참 어려운 것 같아. 그리고 그 상식이 상식이 맞는지도 모를 일이라 더욱... 다들 많이 답답하지? 더워서 마스크 쓰기도 더 힘들텐데 그래도 조금만 더 버텨보도록 하자! 기분이라도 시원해 지도록ㅋㅋㅋㅋㅋ 귀신썰 내가 열심히 찾아볼게 그럼 곧 또 보자!
[퍼오는 귀신썰] 학생이 제출한 가장 충격적인 역사 과제
이틀 연달아 온 거 정말 오랜만이지? 오랜만에 정말 맘에 드는 썰을 발견해서 말야. 며칠 묵혀뒀다가 보여줄까 했지만 이거 뭐 참을 수 있어야지!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드릉드릉해서 참지 못하고 와버렸지 뭐야 ㅋㅋ 마지막까지 읽고 잠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더라.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이야기, 같이 볼래? 오늘도 같이 봐줘서 고마워 정말로! __________________ 내가 중학교 역사 선생이 된 후로, 가장 싫어하는 부분은 바로 학기 말에 제출해야 하는 망할 "살아있는 역사" 과제이다.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 옆에 비디오와 녹음기를 들고 앉아 후대를 위한(혹은 후손의 내신 점수를 위한) 가장 오래된 추억들을 녹화하거나 받아 적어야 한다. 난 이 짓을 17년동안 해 왔고 올해 과제를 걷어 올 때만 해도 아주 지루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 학급은 딱히 공부를 잘하는 반은 아니었기 때문에 별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난 집에 가서, 와인 한잔을 따라 놓고 "나 땐 말야, 속옷 두장밖에 가진 게 없었어" 나 "우리 오빠가 야구공을 이웃집으로 쳐 날려서 신문지 말아놓은 걸로 쳐맞았지" 따위 녹음을 듣는, 길고 지루한 밤에 대비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과제들은 당신이 웃을 수 밖에 없는 끔찍한 성차별주의자와 인종차별주의자인 순수한 노친네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이제, 난 올리비아라고 부르는 우리 반의 여자아이에 대해 이야기 하겠다. 그녀는 통통하고 조용하고 성적은 지속적으로 B정도 받는 아이였다. 난 그녀의 과제도 그녀만큼이나 눈에 띄지 않을 거라 생각했고 그게 바로 그날 밤 내가 보고 들은 것이 더 충격적으로 다가온 이유였다. 올리비아는 무슨 까닭에선지 두개의 CD를 제출했고 그래서 난 "인터뷰" 라고 쓰여진 것 부터 보기 시작했다. 내 화면은 두어번 지직되고 나서 인터뷰가 진행되는 거실을 별로 선명하지 않은 화질로 비추었다. 인터뷰 장소는 지옥처럼 음침했다. 올리비아는 팔걸이가 있는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며 겁에 질린 동물처럼 올려다 보고 있었다. 그 맞은편엔 어두침침한 낯빛을 가진 남자가 담배를 태우며 그녀를 기대에 찬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시작하렴" 카메라 뒤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올리비아의 올빼미 같은 눈이 화면을 향해 반짝였고, 남자를 향했다. "전 여기 우리 증조 할아버지 스테판하고 같이 있어요" 그녀는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군대에 있을때 겪었던 가장 오래된 이야기를 해줄 거에요" 증조할아버지, 스테판은 순간 차라리 저주받을 참호속에 있는게 더 좋겠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질문이 시작되기 전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놀라울 것도 없이, 올리비아는 내가 학생들에게 나눠준 질문지를 말 그대로 따라 읽었다. 그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두어번 나는 올리비아의 어머니가 "좀 더 크게 말하렴 올리비아" 라고 속삭이는걸 들었다.  전형적인, 따분한 쓰레기였다. 하지만 난 올리비아가 노트북을 덮고 "군대에 몸 담은 게 좋았나요?" 라고 물어봤을 때, 상당히 흥미를 느꼈다. 그건 대본에 없는 거였다. 스테판씨는 골초 특유의 숨소리를 내쉬었다. "전혀. 마을에서 벗어나서 좋긴 했지만" "어디로 갔는데요?" "발칸반도" "아하..." 그녀가 말했다. 난 올리비아가 발칸반도가 어딨는지 모를거 같다고 생각했고, 그녀가 다음 질문을 했을 때 추측이 맞았다는 걸 알게되었다. "바키반도가 여기랑 많이 다른가요?" "그럼" 어머니가 카메라 뒤에서 헛기침을 했다. 분명 증조할아버지가 좀 더 말을 많이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올리비아는 순수하게 흥미를 느낀 것 같았다.  "스테판 할아버지," 그녀는 물었다. "군대에 있을 때, 최악의 경험이 뭐였어요?" 노인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끄고 천천히 의자에 고쳐 앉았다. "다시 돌아 올게" 그가 중얼거렸고, 카메라가 꺼졌다. 화면이 다시 돌아왔을 때, 별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스테판 할아버지의 온갖 잡동사니가 쌓여있는 커피 테이블위에 종이 몇장이 들어있는 서랍 하나가 놓여있는 것만 빼면. 그중 한장은, 그의 손에 들려 있었다. "난 징병되었을 때, 완전 애송이였지" 그가 올리비아를 보며 말했다."딱 니 오래비 나이였을 거다"  올리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전투같은 걸 본적도 없었고, 내가 배치된 곳은 모두 내전때문에 박살난 동유럽 도심지역이었지. 모든게 엉망이었고, 난 좆같은 곳을 청소하는..." "으흠!" 어머니가 헛기침을 했다. 스테판 할아버지는 한숨을 내쉬고 그의 종이를 내려다 보았다. "우리 부대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학교에 배정되었다. 깨진 창문, 함몰된 방들...그리고 내가 가장 싫었던 건, 우리가 도착하기 몇년 전부터 학교는 이 상태였다는 점이었다. 아무도 이걸 고쳐보려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거다. 난 어린애가 작살난 복도를 걸어다니면서 구걸하거나, 어쨋든 뭔가 개같은 짓을 하는걸..." 카메라가 바닥을 향했고 난 어머니가 스테판 할아버지를 비난하며 속삭이는 걸 들었다. 난 그녀가 뭐라고 말하는지는 듣지 못했지만, 대충 상상은 되었다. "이 젠장할 이야기를 듣고싶은거야 뭐야?" 난 그가 맞받아 고함치는 걸 들었다.  "나한테 어떻게 말하라고 미리 말해 주던가" "엄마" 올리비아가 말했다. "방해하지 말아주세요" "이거 학급전체 앞에서 발표할거니?" "아뇨, 엄마, 이건 그냥 선생님에게 제출하는 거에요" "그 선생이란 놈은 벌써 개자식 어쩌고 하는걸 들었을 거다"  스테판 할아버지가 거들었다. 난 '놈' 이 아니긴 하지만, 어쨌든 그 말은 맞았다. 카메라는 다시 들려졌고, 초점조절을 두어번 한 뒤, 다시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으음...어쨋든 오늘 말을 많이 하는구만" 그가 툴툴거렸다. 그는 종이를 들어 얼굴 가까이 가져갔다. "지하실에서, 난 이 편지를 찾았다. 난 뭐라고 쓰여있는진 몰랐지만 그걸 읽을 수 있는 친구가 있었지. 그래서, 난 이 편지를 읽어줄게다. 그리고 내가 지하실에서 뭘 봤는지 이야기 해 주마" 척추를 타고 오싹한 느낌이 흘렀다. 어머니가 그와 편지를 클로즈업했다. 편지를 든 손이 떨리고 있었다. 편지엔 이렇게 쓰여있었다 : 편지를 읽는 분에게. 전 제 나라를 사랑한 적이 없습니다 .한때 위대한 제국이었던 조각들이 벌이는 힘겨루기와, 애국심이란 것 때문에 너무나 많은 국지전이 벌어졌습니다. 전 우리 마을이 지도에 뭐라고 표기되든지 상관 없어요. 이 싸움은 의미없고 난 가능한 멀리 떨어져 있어요. 내 아내와 아이의 목숨을 빼앗아 간 것은 전투나 습격같은게 아니었어요. 병이었지요. 자비롭게도, 아기는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죠. 나자는 좀 더 오래 고생했어요. 난 내가 할 수 있는게 하나도 없다는 공포에 쌓여 그걸 바라봤지요. 내 유일한 위안은 그들의 숨이 멎는 매 순간마다 내가 함께 했다는 거예요. 난 직장에 나가는 걸 그만뒀고, 아무도 날 찾지 않았죠. 난 그들이 내가 없어진 걸 알아차리지도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학교가 창문에서 보일 정도로 바로 앞에 있어서 일을 하러 매일 몇시간 동안 나갔다 돌아와서 가족을 돌볼 수 있었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제가 하던 건 바닦을 청소하는 것 뿐이었어요. 난 세상에, 그리고 우리 가족에 필요없는 존재였어요. 난 나자를 병원에 데려가려 했지만, 거기까지 가는 길은 너무나 험하고 비쌌죠. 난 그냥 그녀를 집에 데려왔고 그날 밤, 그녀는 죽었죠. 나자와 아기가 죽고 나서...글쎄요 난 별로 많은 걸 기억하지 못하겠어요. 난 가축우리 같은 우리 집을 떠나지 못했고, 먹거나 잠을 자지도 못했어요. 수도 없이 자살을 생각했죠. 몇 번 시도를 했지만 난 무기력함에 움직이지도 못했어요. 날 제정신으로 있게 해준건 라디오 였어요. 난 그걸 단 한번도 끈적이 없어요. 거기서 나오는 말이 뭔지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 사실, 가장 깨끗하게 잡히는 주파수가 영어(아마도)였고, 난 영어를 하나도 할 줄 모르죠. 그렇지만 목소리, 음악, 그리고 이런 폐허 저편에 삶, 생명이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날 지탱해 줬어요. 난 햇빛을 본지 얼마나 되었는지 기억도 하지 못했어요. 난 배가 고파서 어지러웠고 먹을걸 찾아 나섰죠. 당연히 내 라디오를 가지고 다녔고요. 내가 정신을 다잡은 이후로, 라디오는 항상 내 가는곳마다 있었죠. 그건 내가 잘때나 깨어 있을때나 항상 말을 걸어줬어요. 뭐라 말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난 그게 없었으면 죽었을 거에요. 내가 음식과 물을 찾고 나서, 난 다시 일을 하러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일을 하러 나갔죠. 다음날 아침에, 난 그저 내가 청소부로 일하고 있었던 학교로 돌아가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어요. 아무도 크게 문제삼지 않았어요. 제가 말 했듯, 나자는 오랫동안 아팟고, 학교 사람들은 그걸 알고 있었어요.  감사하게도, 내가 인생에서 가장 힘든 나날들을 보내고 돌아왔을 때, 아무도 절 귀찮게 하지 않았죠. 선생님들은 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복도에서 마주보면서 미소를 교환했고 이런 상호 존중이 제가 돌아와야 했던 이유라고 느꼈죠. 학교는 제가 없으니 개판 5분 전까지 갔었나봐요. 그래서 전 제 빗자루와 대걸레를 벽장에서 꺼내 들고 청소를 시작했어요. 모두들 제가 돌아와서 다행이라고 여겼죠. 가장 좋았던 점은, 아무도 제 라디오를 신경쓰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전 그걸 어디에나 가지고 다녔고 학생들 공부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소리를 줄여 놓았죠.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어요. 사실, 전 그들이 라디오 소리를 좋아했다고 생각해요. 학교 관사는 그리 크진 않지만 유지보수를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해요. 바닥은 언제나 끈적거리고 얼룩이 묻어있죠. 그래서 전 바닥을 걸레질하는데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해요. 애들은 언제나 모든걸 엉망으로 만들고-사실 그게 제 일자리가 있는 이유죠. 가끔, 전 바닥을 깨끗하게 청소하기 위해 여러 물건들을 이리저리 움직여야 하요. 하지만 전 언제나 그게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수리할 것들! 학교는 언제나 이곳저곳을 고쳐야 하고, 전 그게 즐겁습니다. 가끔, 전 라디오를 따라 휘파람을 부르며 책상을 고치고 다른때는 더 중요하고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죠. 제가 이런 일을 하는 날에는 전 제 스스로를 커다란 기계에 속한 부품같이 느끼곤 했죠. 저 없이 학교가 어떻게 돌아갈까요? 이런 것들은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전 목적의식을 느끼죠. 학교 뒤에 있는 식품저장고에는 보존식품들이 가득해요. 보수를 받는 대신에 전 이것들을 마음대로 먹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어요. 이 계약은 꽤나 만족스러웠죠. 제가 돈이 있어봐야 뭘 하겠어요? 전 음식들을 집에 가져오곤 했죠. 하지만 제가 지하실에 살기 시작한 이후로 아무도 그걸 눈치채지 못했어요. 이 학교는 제게 특별했고 전 이 학교를 무방비로 놔둘 수 없었죠. 제 아내와 아기 생각이 날때면 전 라디오의 볼륨을 켜고 그런 생각을 떠올리지 않으려 했어요. 이건 언제나 효과적이었죠. 오늘 아침만 빼면 말이죠. 왜냐하면 오늘 아침, 전 죽은듯한 정적속에서 일어났어요. 전 미친듯이 라디오의 어디가 잘못됐는지 찾으려 했어요. 전 솔직히 이걸 연속으로 몇일동안 썻는지 잘 모르겠어요. 이게 단지 너무 낡아서 망가진 걸까요? 전 하루종일 이걸 고쳐보려 노력했어요. 그러는 동안 전 계속 울고 있었어요. 이게 없으면 전 정신을 놓고 말거에요. 전 스스로에게 일몰까지 시간을 줬어요. 이 때까지 이걸 고치지 못하면, 전 스스로 목숨을 끊을거예요. 지금 석양이 지고있고, 전 제가 어떻게 될지 알고 있기 때문에 이 글을 남깁니다.  전 마지막으로 학교 복도를 걸어다니며 학생들과 선생님들께 인사를 해야하나 생각했어요. 전 사람들이 절 그리워 할 거란 것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전 이 방을 떠날 수 없어요. 전 죽은 라디오를 이 방에 놔둔 채 어디에도 갈 수 없어요. 제 몸에 더이상 흘릴 눈물은 남아있지 않아요. 이젠 숨도 쉬기 힘들어요. 나자게 제 옆에서 죽었을 때 처럼, 전 조금 먹은걸 모두 토했고 다시 어지러워지기 시작했어요. 전 이 세상에서 더이상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에, 전 이 문을 잠그고 손잡이 밑에 의자를 기대 놓았어요. 여긴 지하실의 단 하나 있는 방이고, 제가 뭘 하는지 보여줄 빛이 들어오는 작은 여닫이 창 하나가 뚫려 있어요. 친절한 누군가가 저를 찾아 내려온다면, 이 끔찍한 관경을 보지 않는게 좋겠지요. 분명 그들은 문이 막혀있는걸 알아 챌거고, 제 시체가 썩는 냄새를 맡고, 제가 존재했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릴거에요. 하지만 전 제 라디오와 이 편지를 문 밖에 놓습니다. 친절한 당신, 만약 이걸 읽으셨다면, 간절한 부탁 하나만 드리겠습니다 : 제발 라디오를 고쳐 주세요. 제 라디오를 살려 주세요. 이 라디오는 죽기엔 아까워요. 제가 살리지 못한게 너무 부끄럽네요. 이제 전 천국에서 나자와 작은 루드밀라를 만날 준비가 되었어요. 난 이 학교가 내가 그랬던 것 처럼 학교를 사랑하고 돌봐주는 청소부를 다시 고용하길 바래요. 시간이 되었네요. 제 라디오를 잊지 말아 주세요. 스타니스라브. 어머니가 카메라를 줌 아웃 했을 때, 올리비아의 눈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이야기를 나눠줘서 고마워요 스테판 할아버지." 어머니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도 잠겨있었다. "이정도면 충분하겠네요" "잠깐만요!" 올리비아가 소리질렀다. "할아버지는 이야기 할게 더 있어요. 지하실에서 뭘 발견하셨나요?" 스테판 할아버지가 뭔가 말하기도 전에 화면이 나갔다. 난 입을 떡하니 벌렸다. 도데체 뭔가? 스테판 할아버지는 지하실에서 뭘 봤을까? 난 간신히 두번째 CD가 있다는 걸 기억해 냈다. 이건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았다. 그렇지만 난 이게 인터뷰의 나머지를 담고 있기를 바랬다. 여기엔 영상은 없고 목소리만 녹음되어 있었다. 목소리는 올리비아가 말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게리티 선생님, 안녕하세요. 죄송해요 어머니가 할아버지가 나머지를 말하는 걸 찍는걸 거절하셨어요. 하지만 전 할아버지께 나머지를 말해달라고 부탁했고 제 핸드폰의 음성메모로 몰래 녹음해요. 선생님이 학기 초에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여진다고 말씀하셨죠?" 그녀는 숨을 들이쉰 다음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모든 사람의 역사는 중요해요, 그게 슬프더라도, 불행한 사람이라도 그리고 인생에서 모든걸 빼앗긴 사람이라도요. 이 과제를 끝내고 나서 전 한숨도 잘 수 없었어요. 하지만 선생님, 우리 할아버지가 말하는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주세요" 내 눈에도 눈물이 고여 있었다. 진심이 담긴 그녀의 목소리는 아름다웠다. 그리고 난 내가 역사 수업시간에 말한 내용을 기억하고 있는 그녀 덕분에 약간 우쭐해졌다. 내가 더 감정적이 되기 전에, 목소리는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좋아" 어머니의 실망한 목소리가 들렸다. "네가 이야기의 나머지를 듣고싶다면, 좋아, 하지만 이건 학교 과제로는 적당하지 않겠다" "이야기를 끝내게 해줘" 스테판이 가로챘다.  "이게 네가 듣기 거북하다면, 주방에 가서 간식거리라도 좀 찾아봐라. 하지만 올리비아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싶어하는구나" 난 어머니가 뭐라 궁시렁대면서 멀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올리비아와 스테판 할아버지만 남았다. 난 그녀가 할아버지의 얼굴을 기대에 찬 눈으로 바라보는 걸 떠올렸다. "그래서, 라디오는 찾으셨나요? 아니면 학교가 폭격받을 때 사라져 버렸나요?" 그는 숨을 거칠게 내쉬었고, 난 라이터를 찰칵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편지에," 그가 천천히 말했다. "날짜가 적혀 있었어" "무슨 날짜였죠?" 올리비아는 재빨리 물었다. "그 날짜는 우리가 학교를 복구하기 2주 전이었지" "학교가 2년전 쯤에 파괴되었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나요?" "그래," 스테판 할아버지가 답했다. "2년 전부터 학교는 파괴되어 있었지" 정적이 흘렀고 내 팔엔 온통 소름이 돋았다. 내가 머릿속에 떠올린 이미지는 말로 표현하기엔 너무나 벅찼지만 스테판 할아버지는 너무나 담담하게 언어로 표현했다. 그는 평생동안 그 장면을 생각하면서 지냈으리라. "이 남자, 이 스타니스라브라는 남자는 폐허로 들어가서, 무너진 학교에서 피와 시체를, 마치 먼지나 음료수 얼룩처럼 걸레질하고 청소했어. 그는 복도에 있는 죽은 시체들에게 미소지었고, 그들이 자기 라디오를 좋아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미소를 지어줬다고 믿었지. 그는 바닥을 닦기위해 시체들을 이리저리 옮겼어. 지붕은 반쯤 붕괴되어 있어서, 비가 올 때면 그는 분명 온 몸이 젖었겠지.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어" 난 올리비아가 계속 우는걸 들을 수 있었다. "난 그가 말하던 식품저장고를 찾았어. 모조리 절여진 보존식들이었고 분명 맛도 거지같았을 거야. 대부분은 곰팡이가 피어 있었지" "그..그가 죽어 있는걸 보았나요?" "그래. 천장에 목을 멧더군. 하지만 놀라울 정도로...생생해 보였어. 그는 썩어 없어지지 않았어. 몇년 전에 일어난 일도 아니니까" "그는 평화로워 보였나요?" 그녀가 비통한 목소리로 물었다. "잘 모르겠구나. 냄새가 정말 지독했지. 그리고 그의 얼굴은 퍼렇고 눈알은 이렇게 튀어나와 있었단다" 난 그가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는걸 생각했다. "라디오는요?" 올리비아가 훌쩍였다. 난 스테판 할아버지가 담배를 길게 빨아들이는 소리를 들었다. "그건 거기 있었어. 멀쩡하게. 계속해서 켜진 상태로" [출처] 내 학생이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충격적인 "살아있는 역사" 과제를 제출했다. ___________________ 와. 마지막 문장을 읽고 한참을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어. 전쟁통에 가족을 잃고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게 된 걸 수도, 또는 전쟁이 휩쓸고 간 그 처참한 곳에서 홀로 버텨야 하는 주인공을 먼저 떠난 가족 - 아내와 딸 - 이 지켜주기 위해 눈을 가리고, 귀를 가렸던 걸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면 이 가여운 주인공이 안쓰러워서, 그라도 온전히 살아남으라고 학교에 머물던, 이제는 귀신이 된 학생, 선생님들이 웃는 얼굴로 챙겨줬던 걸수도 있겠지. 전쟁이 휩쓸고 간 폐허에 혼자 남은 사람. 어떤 일이 있었다고 해도 납득이 될 것 같아. 제정신이었다면, 또는 그를 보살펴준 - 사람이 아닌 - 무엇이 없었더라면, 아니면 정말로 그냥 그 라디오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아직도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는 전쟁같은 상황들이 발생하고 있잖아. 이런 일들이 얼른 끝이 났으면 좋겠다. 종교나 신념, 또는 다른 이기적인 이유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처참하게 죽어가야 끝이 날까. 부디 모두가 평화로운 밤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라며 좋은 꿈 꿔 모두!
[퍼오는 귀신썰] 수호령의 목소리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더운 초여름밤. 귀신썰 읽기는 아주 딱이잖아. 오늘은 한 분이 제보를 해주신 이야기를 가져와 봤어. 이 자리를 빌어 제보해 주신 @qhgus54321 님 감사감사 ㅎㅎ 서론이 길긴 하지만 언제나 신기하고 재미난 수호령 이야기야. 이런 게 있긴 할까 싶긴 하지만 가끔 출처 없는 목소리, 한 두 번씩 들은 적 있지 않아? 그 때를 상기시키며 같이 읽어보자. 시작할게! ______________________ 약간 특이한 '그 쪽 과(科)'라는 나에게는 어릴 적부터 위기시 직접 말을 해 주는 수호 존재가 있다. 간단하게 수호령이라고 적겠다. 진짜 상황이 급하다싶을 때 목소리로 상황을 인지하게해서 벗어나게 만들곤 하는데 이게 지금 이 나이 되도록 여전히 남아있다만 무섭거나 하진 않다. 당연하지 나한테 이로운거니까 싫겠냐고. 주로 여성의 목소리지만 상황이 위중하거나 심각할 수록 굵고 낮은 남자 음성에 가까워지며 수호령이 아닌게 섞이면 농간질하려는 것들과 수호령의 상충인건지 소리가 한 사람에서 갈라지며 기괴해지면서 둘에서 셋 넷 다섯으로 늘며 이들이 딱 귀신답게 엇박자로 스스로를 부각하며 튀려는듯 다르게 들리곤 한다. 마치 '너 이래도 몬 알아묵냐? 그러면 우리도 별 수 없어. 좀 알아채라고!' 하며 짜증이라도 부리는거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여튼 오래되서 당연하다는 느낌과 안심된다는 그런게 심리 기저에 나는 있다. 말 그대로 수호를 위한, 지켜주기 위한 경우에 존재를 드러내며 소리를 내는 것이기에 복권 번호같은거 알려주거나 시험 정답 알려주면 좋겠다만 절대 아님. 그건 인간 즈덜의 탐욕이 망상 빚는거고, 내가 말하는 경우는 나라는 사람이 죽을 수 있거나 망할 수 있을 상황에, 막아서면서 그 상황을 안전하게 반전시키려고 하는 어떠한 존재를 말한다. 여자 목소리의 경우, 누구의 영인지 진작에 감은 잡아서 후보자 셋은 뭐 꼽아봤으나, 나는 경계에는 있다해도 엄연히 산 자요 죽은 자가 아니기에 과학적으로 이를 규명하거나 확인할 수는 없었다는거. 주로 소리로 알려주고 내 몸에 터치한 경우는 몇 번 없었다만 터치를 했을 때는 정말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던 것. 윗 문장에서 '주로'라고 했다. 그게 아닌 경우도 있다는 의미지. 아주 어릴 적에는, 응 나 쓸데없이 기억력 좋은데 70년대 중후반에는 이것이 형상화 되서, 그러니까 소리라는 청각이 아닌 보여지는 시각으로 위험을 알려왔었다. 아무튼 그 탓인진 몰라도 종교에 대놓고 입문한 무속인, 가톨릭 신부 수녀, 불교 신부님, 개신교는 진짜 목사... 혹은 신끼가 좀 있다싶은 이런 사람들은 끼리끼리 알아보지만 특히 맨마지막 일반인 중의 영매류 제외하곤 굉장히 깍듯하게 대하면서 친절하게 우대한다. 귀족 대우받는 기분, 공주 대접 딱 그거라고 보심 되겠다. 본인들의 신이 말을 해 준다나. 그러니까 옷은 벗었어도 전직 수녀였다던 학교 부사감 눈에도 나는 처음부터 다른 아이들 사이에서 확 집중되며 눈에 뭔가 띄었다고 한다. 어, '아우라' 타령 지금도 종종 듣고. 아우라는 무슨 미친... 이렇게 쑥스러워하듯 나는 그 단어 표현은 버겁다곤 하는데, 보여지고 느껴지는 건 나도 어쩔 도리가 없다는걸 알다보니 그 반응들에 대해서 '그런갑다' 외에 할 수 있을 반응이 딱히 없다. 일종의 나와 평생을 공생하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들의 이야기에는 자극적으로 재미날 그런건 없다. 소소하게 에피소드를 모을 순 있겠지만 딱 보디가드가 휘청거릴 때 잡아줘서 중심 잡게하고 상황 끝나듯이 그 수준의 에피소드가 되어버린다만 당사자인 나는 늘 감사하기도하고 매번 신기하기도 하지. 감사는 한데 왜요 하고 묻는다던가 사람이니 그럴 수 있잖는가. 이번 편은 그런걸 조금 모았다. 이들 중에 무속에서 말하는 조상신도 있을터이고 이에 해당하지 않은 이도 있을거라 보는데, 중요한건 그 수호자가 하나는 아니라는거다. 몇이 있는지는 모른다만 여튼 그 탓에도 잡귀가 농간 부리거나 들러붙거나 가위 눌려 무서운걸 겪게 하거나 봐서는 안 될 것을 보면서 심장 멎을 듯 그럴 일은 일체 없다. 그 부분을 친하다는 무속인들이 '너 걸어다니는 부적이나 다름 없어.'라고 에둘러 표현하신거 같고. 이게 가끔 사람들도 말하는 그 '아우라' 라고 느껴지건 보여지는 그런걸 수도 있겠다. 웃긴건 이것만은 정작 난 못 본다는거예요. 늘 구해지는 대상이라 구해지고나서야 아 또 그랬구나 정도말곤 난 모름. 허나 살려주셔서 감사드린다고 깍듯이 인사는 드리지. 그걸 안 하면 살 의미가 있겠나. 난 그런 성격이다. 간단하게, 말 그대로 부담 없이 짤막한 에피소드들을 모아 적겠다. 그리고 친가 외가에 무속인 없다 절대로. 내 부모님은 과학과 예술 쪽이셔서 원래 점집 안 좋아하시고 당집도 쳐다보지 말라심. 내가 아는 무속인을 그래서 내 가족들은 당연히 모르며, 까짓거 이제 어른인데 내가 알고싶어서 가 보면 그만 아니느냐해서 그런 인연도 생기게 되었을 뿐이다. 즉, 나는 일체 무속에 관해서 작은거라도 들어볼 환경이 아니었다는거. 딱 보통 어르신들이 과거로부터 들어오시던거 알려주신게 전부였다. 감안하시며 보시라. ======================= 1. 1975~1979년 사이의 방식 : 시각화 된 형상 (Feat. 대감님) 70년대 집들은 그 뻔한 연탄가스로부터의 위협이 많았다. 과학적으로 풀자치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하는거지. 맡아봤냐고? 그치, 우리 집이라고 부뚜막에서 안 샜을리가 없지. 아궁이며 부뚜막... 이게 뭐 요즘 보일러처럼 조립이 잘 되어있고 기체가 안 빠질만하게 틈바구니 없고, 이게 아님. 삼시세끼같은 프로그램 부뚜막 보세요. 어릴 적에 한 방에 네 식구가 잤다. 제일 아랫목엔 막내인 나, 내 오른 팔 옆에 내 언니, 그리고 모친 장여사, 제일 윗목에 아버지가 주무셨다. 초저녁부터 잠을 자던 애기애기한 나님, 한참 자는데 머리가 빙글빙글 도는거다. 창경원에서 뭐 돌아가는거 봤을 때처럼. (어, 나는 창경궁 이전의 창경원을 가 본 사람이야.) 뭔가 느글느글하고 숨 쉬어지지가 않고 갑갑한데, 거 왜 눈 꼭 감으면 어두운게 아니라 묘한 무늬도 있고 그렇지? 지금 감아보삼. 거기에서 갑자기 오백원 동전만한 크기로 좌측 상단 쪽으로 좀 밝은게 퐁 퐁 퐁 도장 찍히듯 찍히는거야. 잘 보니 사람이었어. 처음 보는 할아부지인데 낯이 익어. 모자를 썼구요. 점점 진해지면서 또 퐁 퐁 퐁 찍혀. 그러면서 눈이 떠졌는데도 천장이며 벽에 내가 바라보는 족족 그 할아버지가 점차 선명하게 찍히다 사라지길 반복하는거였다. 애기들 도장 찍으며 노는 딱 그런 박자로. 근데 잘 보니 그 할아버지가 눈썹 올리고 화를 내. 나는 그거보단 그 할아부지 모자가 관심이 갔넴. 뾰족 모자, 만지고싶게 생겼다. 파인애플 그림같았지. 조상? 놉! 파인애플 모자 할아부지... 힌트 하나 더 드림. 요즘 오천원, 누구 계시는지? 그렇지, 율곡 이이. 율곡이 쓴 모자를 정자관이라고 하지, 쉽게 말해서 대감님 모자. 한 마디로 율곡 할배가 눈썹 올리며 점점 성을 내면서 이놈 이놈 하듯이 요기 푱~ 조기 푱~ 어둠에서부터 잠도 못 자게 푱 푱 푱 정신없는거야. 귀찮아서 애기가 잠을 못 자게끔 난리를 쳐요 그 분이. 결국 꼬꼬마 나는 신경질도 나구 그 할배 싫고 무서워서 막 소리내서 울기 시작했네. 옆에 언니한테도 땡깡 부리듯 아아앙~ 이러면서 치면서 우니까 언니도 깨고 옆에 엄마도 깨고 아버지까지 다들 깨셔서 안방 불을 켜시려고 한거지. 얘가 왜 이러는지 어디 아픈지 다닥다닥 붙어 자던 단칸방에서 다들 깨버린거야. 그 때 아버지가 휘청하시다가 다시 일어서시고 불 켰지. 할배 사라짐. 거짓말처럼 나 씨리게 굴던 율곡님 자취 감춤. 참고로 나는 경주 김가다. 모친은 안동 장가. 양 쪽의 친척에 우리는 이씨가 없다. 율곡님은 내 조상이랑 아무 관련이 없는거지. 암튼 아부지가 불 켜시고 입 틀어막고 전부 흔들어 깨우셨어. 방문, 부엌문 전부를 다 열어제끼고 이불이랑 베게로 훠이훠이 큰 바람을 내서 환기해야한다고 그러시고 다들 나오라고 소리 빽 치시고나서 클날뻔 했단다. 연탄가스가 자욱했던게지 그 방. 엄마, 언니 다들 토하고 난리들이었고 아버지는 본인도 괴로우신데 참고 동치미 가져오셔서 그 맛없는걸 마시란다. 애기 때는 그런 김치가 제일 싫고 맛없는거잖아. 싫다고 앙앙대도 사극에서 강제로 사약 멕이듯 마셔야 산다고 들이 부으심.  어떻게 요 놈이 깨서 우릴 살렸냐 하며 다들 안심했지. 나는 이후로도 그 연탄가스 종종 새는 집에서 몇 번을 더 같은걸 반복했었다. 하튼 연탄 가스만 샌다 싶으면 정자관 대감님 모습이 좌켠에 퐁 퐁 퐁... 미쳐버리게 안 멈추고 고문도 그런 고문 없음. 자고싶은데 오죽 씨리게 굴었어야지. 오천원짜리만 봐도 이 갈림. 제일 재미없게 생긴 이상한 파인애플 모자나 쓰고 나한테 왜 그러나 싶었지. 그 땐 내가 세 살이니 뭘 알겠나. 이거를 다 큰 어른이 되서 작년인가 아는 무속인 댁에 놀러갔을 때 이야기를 했네. 제단에 정자관이 있었거든. 가만 생각해 보니 나 저거 안다고. 굿? 해 봤어 그 분이랑. 그럴 때 당시 굿판에 무당 너덧명이 번갈아가며 서로 다른 신에게 빙의되서 와서 나에게 말을 합니다. 그 중 유난히 대감신이 빙의된 분, 티나게 이뻐함. 다 해 줄테니까 울지말라고 그런 소리도 하심. 그 생각이 거기서 정자관 보자마자 들어서 "선생님, 저 있잖아요." 하고 이야기를 꺼냈지. 어릴 때마다 입 안에서 단내부터 요상한거 느껴지고 머리 뽀사지고 느글거리는데 잠 못 자게 노려보며 퐁퐁퐁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할아버지가 딱 오천원 율곡처럼 생겼는데 저거 썼다고. 무녀님 그러시더만. 너는 진짜 저 냥반들이 옛날부터 이뻐라 했나보다. 너도 잊지말고 살어. 너네 집은 무속하고는 상관이 별 없는 집인데도 너는 보였나보다. 아가 이제 알았냐고 그러신다며 그 때 무섭게 해서 미안하다고 전해달라셨다나. 그렇게 안 하면 니가 안 울고, 니가 안 울면 식구들을 못 깨웠다고. 그걸 수 십 년이 지나서 1975년도의 일을 2019년에 무속인을 통해서 이유를 들어봐봐 어떨거 같아? 기억의 편린들이랑 다 맞아떨어지더라구. 아, 이게 수호령이구나 하고 급 수긍했다. 참고로 애기 시절 나타난 그 할배 모자는 3층 모자다. 3층 파인애플 모자라고 기억함. 대감 할배는 연탄 가스 아니라도 내가 자다가 무섭게 토사곽란 해 댈 때에도 나타나서 그걸 토하게 했다. 두드러기랑 토하고 설사 좍좍하는게 유난해서 백일날도 옷도 못 입혔다고 해. 죽을만하면 하튼 깨워. 이게 시각적 수호령에대한 기억인거다. 공교롭게 여기 내가 사는 파주시는 율곡 이이를 엠블렘으로 만들었더라. 자운서원 가 봤을 때 뭔가 반가워서 씨익 웃어봤었다. 오천원 속의 얼굴과는 비슷하지만 좀 달라. 좀 다르다구. 2. 13일의 금요일에 사건 나본 사람 여기 있니? 난 있어! (Feat. 청록색 메탈릭 칼라 포니2와 공중 제비) 73년생이라고 깠을거다 앞서 적은 글들에 많이많이. 내가 6학년이던 1985년, 9월 13일은 금요일이다. 자, 이제는 어플같은거 있으니까 궁금하면 금요일이 맞는지 직접 봐. 딱 봐도 저게 뭔 사고인지 알겠지? 저렇게 생긴 차가 와서 어린 나님을 등굣길에 들이받아서 공중으로 날아올랐다는거다. 한 마디로 교통사고. 이 때부터 목소리 수호령이 본격 활동을 개시했다고 봄이 맞어. 그리고 알게된게 정말 내가 죽을 정도가 되면 목소리로만 알려오는게 아니라 자신들이 내 몸에 손을 대서 어떻게 한다는걸 알아버렸다. 여튼 이 일이 나는 아직도 어제처럼 생생하다보니 (저주받은 기억력인지 잊었어야 하는게 너무 아직도 많아서 문제다 늘.)그래서 엔지니어 출신이지만 운전만은 하질 않는다. 갖은 핑계를 대서라도 안 하고싶은거거든 그거. 내가 조심해도 이건 남들이 변수인데 그게 확률상 너무 많아서 감당이 안 되는거다. 걍 대중교통 타고 다녀 걱정마삼. 집채만한 오만가지 기계는 꽤 만져본 놈인데, 선반이니 밀링이니 CNC 머신, 드릴 머신... 3차원 측정기, 측장기, 샤르피 시험 장치, 로크웰 시험 장치같은 파괴시험 장비라던가 비파괴 시험 장비라던가. 나 엔지니어 맞다니깐! 근데 왜 운전만은 안 되느냐? 자 봐라. 저 기계들, 전기 용광로까지 포함해도 공통점이 있다. 나만 원칙대로 안전 수칙 잘 지키면 기계가 사람처럼 변덕부려 사고내지를 않아요. 사람이 항상 문제다. 물론 기계가 수명이 오늘 내일 이럴 경우야 그게 주 원인이 되지만, 원칙적인 안전을 FM으로 지키면 프레스기에 뭐 절단... 안 그래. 재촉을 하고 등등 알잖아. 그래서 인명 사고들 가슴 아프게 뉴스 뜨는거. 사람이 제일 못된거 맞어 그러니까. 여튼 집채만한 저 위에 열거한 기계들은 적어도 기계 다리가 바닥에 안착이 되어있다는거다. 일부러 사람 치일 그런게 없다는거다. 반면 운전은 내가 움직여야하고 남들도 그러고 있고, 그런데 누가 술 마시고 호기 부리건 졸린데도 우격다짐하면... 지만 죽는게 아니라 애꿎은 남이 한 서려서 죽을 수 있다고 진짜! 그래서 나는 그냥 나보다는 운전 잘 하는 베테랑들에게 맡기고 깍듯하게 감사드리면서 타고 다니자 그러거나 엔간하면 걷는다. 때는 1985년 9월 13일 금요일 아침, 나는 6학년이었다. 등어리에 메고 있는 책가방은 유난히 빵빵했는데 가을 운동회를 앞두고 6학년은 부채춤을 맡았다보니 그 준비물로 흰 체육복, 부채, 족두리, 팔 토시로 가득했다. 원래가 서울 사람이고 집안 3대가 전부 서울 토박이인 나는 서대문구 남가좌2동에서 20년을 정확히 살았다. 학교도 까겠다. 공립인 연가국민학교, 연가 초등학교가 여전히 있지요. 거기다. 남가좌동에서도 2동 끝이어서 집 앞에 4차선인지 당시 큰 신호등 사거리가 있었고 거기에 다리도 있었지. 홍남교라고 하지. 거기서 저 아래 가좌역으로 가면 모래내 시장 있는 곳은 사천교고 말야. 앞으로 건너면 연희 2동인가? 대각선이 연희 1동인가? 둘이 바꼈는진 몰라도 하나는 전두환이네 집이 있고, 다른 쪽은 노태우가 살던 동네라 뭐 남가좌동 끄트머리다. 내가 등교하는 길은 그 홍남교의 신호등 건널목 다음에, 신호등이 없는 소위 사각지대라고 부르는 건널목을 건너야만 등교하게 되는 루트였는데, 뭐 황준 소아과니 가좌동광교회가 그 앞에 있었어. 지금도 있는지는 안 가서 모르지만 아무튼!  길 건너려면 우측부터 차 오는걸 봐야하는데 우측이 바로 연희동 언덕 넘어가는 홍남교 사거리 신호등인거다. 거기에 차들이 신호대기로 즐비하면 내가 건너야하는 신호등 없는 다음 건널목 위까지 침범을 해요. 좀 건널목은 냄겨라도 두지, 어디 운전자들이 그러냐고. 운전 드럽게 하지마라 제발. 1차선에 큰 버스가 있었다. 좌회전 신호 받으려는게 아니라 직진할건데 지가 껴든겨. 원칙상 잘못한거잖아? 작은걸 그들 모두 지켰다면 사고 왜 나겠나. 읽으면서도 운전하는 웃대 식구들도 그런 세세한거 꼭 지켜줬음 좋겠다. 큰 차가 가려서 반대편에서 차 오는게 안 보이게 시야가 가려진거다. 건널목 위에 차가 있어서, 건널목 옆에 흰 라인 안은 맞는데 하튼 사다리같은 선의 1.5미터 떨어진 곳이자 흰 라인 안켠에 겨우 내가 비집고 반대편 차선을 보려했다. 저 수치 어케 아냐고? 그 날 오후에 경찰 와서 현장 검증했기에 수치 정확히 1.5미터라고 자로 쟀으니 알지. 내 쪽의 차들은 신호 대기라서 움직일 생각은 없어서 안전해 보였는데 큰 버스 때문에 반대서 오는게 안 보였어. 불안하지만 시간이 늦어가서 건너야만 한거다. '다다다다다...' 종종 걸음으로 소녀는 뛰었는데 안 보였던 반대편 차선, 홍남교 넘어 쪽의 차들도 다 서있었거든. 아마도 신호등으로 따지자면 내가 건너는 타이밍이 맞는거 같은데, 그 때였다 그 목소리를 들은 것이. 진짜 거짓말 안 보태고 한 발만 더 딛으면 황준 소아과 블럭의 인도를 디딜 수 있었다. 그 때 누가 소리를 쳤어. 젊은 여자가 젊은 남자랑 빽 소리를 귀청 떨어지게 지르는거다. 외마디 비명, "위험해!" 이거였다. 한 발을 더 딛었으면... 나 지금 여기 없고 즉사했다. 우측이 갈려서 그 자리에서 죽는거말곤 안 되는 경우다. 외마디 비명과 함께 누가 내 책가방을 두 손으로 탁 잡아서 나를 좌향좌 시키는거야. 인형놀이 하듯 조정한거지. 그러더니 "달려~~~~~~~! 뛰어~~~~~~~!" 하고 외치더니 등어리 책가방을 있는 힘껏 앞으로 밀더라구. 한 발만 딛으면 되는데 난데없이 저 쪽에서 오는 차량하고 방향이 같아진거지. 나 달리기도 못하고 체구도 작아. 지금도 키 작고 우리 집 원래 다 조그만 사람들임. 그 날은 내 다리 느낌이 아니었어. 모터를 달아버린거같이 자동으로 미치게 그렇게 빨리 달릴 수가 없는거야. 심장이 터져나가도록 뛰었다. 왜 달려야되는지도 몰랐고 이상한건 갑자기 만화처럼 시간이 좀 느리게 가더라고. 그 순간 많은 생각을 했다. 달리라고 엎어질만큼을 어디서 외치는지도 모르는 이상한 누군가가 등 떠밀었는데 내 다리는 남의 다리 느낌에 미치게 달리고 있고 나는 언제 멈춰야 되는지 혼란스런 기분인데 뒤에서 미친 차량 하나가 총알처럼 오는게 느껴진거다. 끼이이이익~~~~ 그 차가 브레이크 잡는 소리가 고막이 터질만큼 나를 덮쳐오는 기분이었는데 이게 전부 슬로우 모션으로 생생하게 아직도 기억되는데 운전대 잡고싶겠냐고! 면허는 땄으나 걍 장식용이자 기념품인거다. 버스 안 들어가는 곳은 택시 타면 그만이고 택시 기사들이 내게 해코지같은건 원천적으로 안 되는걸 알다보니 난 그냥 그리 살라구.  여튼 나는 죽을 때 까지 심장이 터져나가도록 겁에 질려 달리라고 해서 달린거다. 그러다가 쾅~~~~ 올 것이 왔지. 갑자기 세상이 미니 레고처럼 조그만해진거다. 나는 하늘을 날고 있었던거다. 차가 등어리의 책가방을 받아서 난 포물선 궤적을 그리면서 공중으로 3미터 튀어 올랐다고 해. 목격자가 우리 아부지 단골 카센터 사장님. 높은거 우라지게 싫어하는 고소공포증 있는 어린 나는, 거기가 내 시야가 아니라 공중이라는걸 알았더랬다. 아버지가 생물학자셔서 늘 "아빠 이거 머예염?"하면 오만 강의를 따라댕기며 해 주셔서 애들보단 과학을 많이 알았는데, 애들은 머리가 크고 무거워서 잘 걷지를 못하고 잘 넘어진다는 소리도 해 주셨다보니 공중에서 하필 그게 떠오르네? 망할 이과병을 내게 심은 사람이 내 아버지신거다. ㅋㅋㅋㅋㅋ 언니도 이과야. 그럼 중력 가속도에 뭐에... 분명 머리가 무거우니까 점점 가까워지는 저 바닥에 내 머리부터 떨어져 계란 깨지듯 터져 즉사할거같은걸 떨어지며 이미 아는거야. 공중에서 허우적 다리도 굴려봐도 멈춰지냐고! 시간이 내게만 느리게 흐르듯 하니까 그 순간에 그걸 다 슬로우 모션으로 보고 그 많은걸 생각하고 겁내고 이런거였달까. 땅이 가까워질 때 최대한 니은자 형태로 엉덩이부터 떨어져야 산다만 기억하고 공중에서 방향이 머리가 아래이지 않게 발버둥을 치며 나는 떨어졌다 차도로. 근데... 수호령 얘기지? 많이 안 다침. 기적이라는게 있다면 이것도 거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는 급으로 안 다쳤다. 당시 내가 입은 의상, 고관절 가까이로 극 짧은 핫팬츠다. 차림새가 비슷한 사진을 얼굴 가려서 넣어볼께. 좌측이 나고, 우측이 내 언니다. 차림새만 가져온거라서 저건 더 어릴 적에 친척집에 가서 찍은거지 우리 집이 아니야. 국민학교 때는 저런 핫팬츠를 잘도 입고 다녔거든. 지금은 놉! ㅎㅎ 공중 제비를 하다가 떨어져버린 나는 결국 뜻대로 엉덩이부터 안전하게 떨어졌다. 그래서 보시다시피 핫팬츠라 허벅지에 살 까지는 찰과상이 있었고, 왼쪽 발목 안 쪽의 복사뼈 위만 1.2센치 정도로 콱 찢겨 찢어졌을 뿐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피 낭자한 그런게 전혀 없고, 도로엔 내 피 한 방울 떨어지지 않았더랬다.   거기가 그래도 상권이 형성된 편이라 자영업 하시는 분들이 꽤 많이 목격한거고 경찰 입회하 진술할 적에 처음부터 자세히 목격한 아저씨가 공중 3미터로 애가 떠올랐다가 떨어졌고 포니2가 미친 듯 속도를 냈는데 대충 60쯤 되어보인다고 진술해 주셨다. 도로에는 그 차가 밟아서 생긴 브레이크 자국만 있었을 뿐이야. 그걸 동그라미 달린 긴 막대기, 아마 동그라미가 돌면서 거리를 측정하는 도구같은데 도로에 검게 밀린걸 경찰관이 체크하고나서 시속 60쯤 밟은게 맞다고 바로 그 여자 데려감. 마름모 모양을 보고 속도 안 줄였다는거. 떨어질 때 누가 안아서 받아준 기분도 들었어. 다급하게 착한 젊은 여자가 바닥에서 버둥이며 머리 만지면서 내 귓전에 대고 "울지마 울지마." 하고 빠르게 속삭이더라. 그러더니 누군가 등 토닥였고 상인들이 뛰어오는게 보이기 시작했어. 정신을 안 잃었거든. 그러니 다 기억하지. "이제 됐다. 아가 안심해. 오옳~지. 착하다...." 하면서 착하고 좀 기운 없는 할머니같기도한 여자 목소리가 쓰담쓰담 하는 손길하고 그러더라고. 그 직후 사람들이 괜찮냐고 일으켜 세우고 한 켠은 싸우는거였다. 나를 친 운전자가 어떤 미친 년인데, 도주하려다가 딱 동네 상인들이 눈치 까시고 여자를 끌어내려 뺑소니 못 치게 한거야. 그 년이 얼마나 나쁜 년이냐면 요즘 사람들이 공분하는 자전거 타고 가던 아이를 따라가서 차로 밀고 뭐라던 여편네 알지? 그걸 하는거야. 나에게 내가 끼어들었다고 욕하고 퍼붓는데 소리가 잘 안 들려. 귀에 손이나 소라 얹듯 먹먹하게 뭐 차단된듯. 화 내며 일그러진 험악한 얼굴로 사과가 아니라 몰아세우고 때리고 있었어 나를. 놀란 나는 그냥 죄송하다고 빌어야되는건가 정신이 나가버리는거야. 아프기도하고 소리도 안 들리고 사람들 정신 없고 촛점도 안 맞는데 악마같이 일그러진 여편네가 사람들이 말리는데도 와서 때려대고 손가락질하고 고함쳐대서 미칠거 같았어. 그나마 상인들이 저지시키면서 카센터 아저씨가 집 번호 대라고 해서 놀란 내 모친이 나오시게 된거임. 상인들이 너무 고맙던게 여자가 튈까봐 아저씨 몇이 여자 잡아놓고, 그 중 한 분이 그 차를 열어서 나를 거기 속에서 쉬라고, 여긴 어른들이 알아서 할테니 집 번호 부르라고하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주셨거든. 살 놈은 사는거더라. 될 놈은 된댔잖나. 내가 그 놈인거다. 어, 여자 목소리가 젊었다가 착한 할무니로 변해 막. 그 당시의 나는 머리가 좀 잘 돌아가는 꼬맹이였다. 일단 엄마한테 맞아죽을까봐 겁은 참 오래 나더라고. 차 조심하라고 했는데 나는 맞아죽었다싶은거지. 그런데 차차 차분해지면서 차 안에서 상황을 보니 아니 내가 왜 도망을 쳐야하고 저 년은 뭔데 지가 사람 치여놓고 나한테 뒤집어 씌우려들고 날 때리냐 싶더라구. 그럴 때 또 뭔가 내 몸을 틀어서 무엇을 보게 했다. 수호령이라고 봐. 80년대는 자동차세 내면 차에 스티커 붙여. 참고로 이미지를 검색해 봤다. 1사분기 2사분기 등등 1년에 4번 갈아붙여야 했고, 거기에 손으로 차의 번호를 적어서 조수석 쪽 유리창 안 쪽에서 보이게 붙이는건데 색도화지처럼 분홍, 파랑, 노랑, 초록 4색인걸로 기억한다. 그거를 보라는듯 내 몸을 잡고 틀어주더라. 저 사진에 저런 스티커 보이지? 저 때는 그런 시절이라구. 네임펜도 없어서 물 만나면 번지는 모나미 검정 싸인펜으로 적어서 붙여야되는거거든 저거. 그럼 저거 숫자가 거울로 반전 시킨듯 좌우가 뒤집히는거지. 3은 ε 이런 식으로 좌우가 뒤집힌 것이 차 안에서는 보이는거임. 차에 치였어, 정신 나간거나 다름없는데 더구나 좌우 반전이 된 그걸 보고 나는 나를 친 년의 차량 넘버를 적었어. 엄마 올 때 까지, 가방 열고 연락장 꺼내서 그걸 똑같이 그린 후에, 종이를 뒤집어서 차 안에서 하늘 향해 번쩍 올려서 67** 라는 그 년의 차 번호를 손수 적었네. 그건 아무도 안 적었다고 해 상인들 중에서도. 처음에는 모친도 처음이기도하고 아버지 급하게 조퇴하시고 오시고 하느라고 용서해 줄까 우린 그랬는데 상인들 전체가 안 된다고, 저 여자가 아까 정신없는 애를 때리고 욕하고 도주하려고해서 따님을 지금 그 차에 넣어놓고 우리가 막았다고, 보험 처리말고 경찰 부르라고 그들이 부모님을 설득하게 되어버린거다. 나 윽박지르고 구타까지 한거 등등 전부 경찰서에 수갑 차고 경찰 아찌가 데려가서 떼쮜해 주심. 벌 받았어. 법대로 처리했어 합의같은거 없이. 반성을 안 하고 애가 갑자기 나온 탓이라고 했는데, 당시 신호가 그 년이 가서는 안 되는 신호여서 그 말 자체가 안 되는 소리였는데다가, 신호등 쪽은 보행자 신호여서 나는 잘못한게 없고, 건널목 위에 차가 있어서 조금 비집고 가긴 했어도 건널목 안에서 엄연히 건넌거였다보니 건널목에서 신호 무시하고 게다가 속도 줄이라는 것도 무시하고 사람 치고 뺑소니도 하려하고 구타까지 한거 전부 싹 다 속 션하게 감옥에 좀 있었다고 해. 나중에 악어의 눈물을 흘리며 지 새끼 등교시켜주고 집 가던 길인데 이러며 선처해 달라는데 이미 빡친 나의 대단한 모친의 그 스위치가 켜져서, 합의 따위 없이 잘 보내버렸었다. 요즘 나온 뉴스 그거 보면서 그 일이 생각나서 치밀더라고. 그 여자도 그 때 내 경우처럼 법으로 짓밟히길 바래. 시작이 뭐던... 사람을 와서 차로 치인거잖아. 수호령인지 차에 있을 때 뭔가 따스한 느낌도 들면서 머리 쓰담하듯 그런거랑 "이제 됐어." 하며 소리들도 사라지더라. 그 날 부모님은 경찰서에 일단 그 여자 넘기고, 카센터 아저씨가 목격자 진술 도와주러 가신 사이에, 나를 데리고 성당 아는 분들 연락 싹 돌려서 세브란스병원 근무하시던 교우분 찾아가서 싹 다 찍어보신거다. 엑스레이만 아니고 그야말로 할 수 있는 촬영은 전부 다 한거지. 눕고 일어서고 까고 오만가지를 다 했거든. 근데 뼈 어느 곳도 깨지거나 금조차 간 곳이 없어서 모두가 놀랐다. 그저 겉에서 보이는 우측 허벅지 찰과상, 일주일이면 사라질 그 수준 살 까진거랑 왼켠 발목 안쪽에 고거 찍힌듯 찢어진거 외엔 상처가 없는거다. 그것도 뭔가 찍힌 상처인데 칼에 벤게 아니라 밀가루 반죽에 면도칼 꽂아 푹 들어간 그거 말야. 근데 피가 안 나. 이상하지? 모두가 그랬다. 거기 모든 사람들도 이상해 했다.  수호령이 좌로 틀은 이유는 일단 내가 등어리에 메고 있는 책가방이 뭐 들었댔지? 체육복이랑 부채춤 도구랑. 그게 에어백 역할을 하면서 포물선 그리며 날아가긴 했어도 어디 하나 안 깨지게 했던거 같다. 소리와 함께 정확하게 두 손으로 내 가방을 잡아서 좌향좌를 시켰고 그 후 그 가방을 두 손바닥으로 확 밀듯 하면서 달려~~ 하고 외쳤다는거. ==================== 이런게 수호령이다. 재밌으셨다면 다행. 차는 직접 몰아도 안 몰아도 항상 조심하는거다. 제대로 안 지킬거면 주변 해 끼치지말고 깔꼼하게 대중교통 타고 다니길 바란다. 더 부지런해져. 그리고 나의 수호령님들은 이후에도 활동들을 많이 하시는지라 소소한 얘깃거린 더 있어서 번호 붙인거다. 은퇴 안 하셨는지 여전히 곁에서 여차하면 도와주시더라구. 살 놈은 하튼 살게 되어있는 모양인거 같다. 그리고 이들이 상당히 쎈거라고 볼 줄 아는 무속인들은 그러시던데, 그래서라도 잡귀가 나한테는 장난같은거 절대 안 걸고 피한다고 한다더라. 이유? 아무도 모르지. 신이 찍었다는게 뭔 기분인지도 모르겠지만 그야말로 조물주님 마음인데 그걸 일개 미물인 내가 알 수가 있을리가. 수호령들 다음 이야기도 해 보도록 하지. [출처] 수호령의 목소리 - 1 ____________________ 어때. 한참 옛날 이야기지만 아주 생생하지 않아? 사실 나도 글쓴이와 같은 이유로 운전을 못하는데, 예전에도 이야기한 적이 있는진 모르겠지만 크고작은 사고를 많이 당했어서 그래. 그리고 모두 상대방 차량이 잘못했던 것. 내가 조심한다고 될 일이 아니란 걸 깨닫고 조금 불편해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살거든 ㅎㅎ 수호령이라는 게 정말 있을까 싶다가도 음. 우리가 자주 하는 조상님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작은 서운함에도 불호령이 떨어지는 조상신이지만 또 고마운 건 잊지 않는 분들이니 후손들을 챙기는 것도 그럴싸하단 생각이 들기도 해. 더불어 잡귀들이 어찌 못하는 수호령이라면 원래부터 큰마음을 가진 분들이셨을테니 더 그럴테고. 며칠간 너무 더웠다 그치. 이제 겨우 6월이 시작됐을 뿐인데. 오늘 내린 비가 더위를 조금이나마 씻어줬으면 좋겠다. 그럼 곧 또 올게! 건강하자!
퍼오는 귀신썰) 같은 꿈을 계속 꾸었다
지이이인짜로 오랜만이지? 이제 정말 완연한 봄이 되었나 싶더니 오늘은 바람이 좀 차다 이럴 때 감기 많이들 걸리니까 조심하도록 해 특히 요즘같은 때는 감기 걸리면 오만 생각이 다 들테니까 더더욱 조심해야 하는 거 다들 알지? 어짜 다들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으려나 모르겠다 부디 아픈 사람이 없었으면 이 시기가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에서 가져온 이야기, 오랜만에 같이 볼까? ㅎㅎ _____________________ 역 앞을 걷다가, 너무나도 이상한 헌팅을 당하고, 끝내는 인생이 완성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아내와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인데, 아마 여기 쓰는 게 맞지 않을까 싶어서. 나는 어렸을 때, 일년에 한번씩 늘 같은 꿈을 꾸곤 했다. 중학교 무렵까지 매년마다 그 꿈을 꾸었던 기억이 난다. 클로버가 곳곳에 피어있는 들판에서, 머리를 양 갈래로 땋은 어린 여자아이가 뛰어다니는 꿈. 이 꿈을 꿀 때면 왜 그런지는 몰라도, 이제껏 느낀 적 없던 종류의 행복감을 느끼며,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꾸지 않다보니, 어른이 되고서는 까맣게 잊고 살고 있었다. 어느 휴일, 서점에 들렀다 돌아오는데, [죄송합니다.] 하고 웬 여자가 어깨를 두드렸다. "어? 나 말인가?" 싶어서 헤드폰에서 귀만 내밀고, [네?] 하고 되물었다. 오묘한 얼굴로 [저와 어디선가 만나지 않으셨나요?] 라고 질문해왔다. "어라, 아는 사람인가?" 싶어서 얼굴을 찬찬히 뜯어봤지만,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아뇨, 아마 잘못 보신 거 같은데요...] 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여자는 찜찜하다는 듯, [그래,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갑작스레 얼굴을 훅 들더니, [저, 첫눈에 반했어요! 사귀어 주지 않으실래요?] 라고 고백을 해왔다. 그제야 나는 겨우, 이게 헌팅인가 싶었다. 전혀 인기가 없던 나는, 여자한테 고백을 받았다는 것만으로 날아오를 듯한 기분이었다. [앗, 잘 부탁합니다...] 하며 조금 폼도 잡아보고. 여자도 웃으며, [그럼 연락처를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하고 휴대폰을 건네와, 그날부터 연락을 하게 되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왠지 헌팅 같은 걸 당해서 말이야~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하면서 자랑을 해댔다. 하지만 여자친구 쪽은, 어쩐지 데이트를 할 때도 연락을 할 때도 무리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긴장이라도 한 걸까 싶었지만, 점점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무렵이었다. 그래도 그럭저럭 3달 정도가 지난 어느날, 같이 드라이브를 가게 되었다. 차를 타고 가자는 이야기를 꺼낸 순간 여자친구의 얼굴이 가면처럼 굳어서 당황했지만, 곧 웃으며 [드라이브 좋겠어! 가고 싶어.] 라고 대답했다. 당일, 여자친구를 만나자 엄청 큰 배낭 같은 걸 메고 왔었다. [소풍도 아닌데 뭘 이렇게 많이 싸왔어.] 하고 웃고는, 꽤 시골인 동네를 떠나 평소와는 다른 도시 쪽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그날 여자친구는 너무 반짝반짝 빛나보였다. 역시 수수한 시골보다는 도시 쪽이 즐겁겠지.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꽤 멀리 차를 타고 나오다 보니, 여자친구가 만들어 준 주먹밥이나 샌드위치를 먹기도 하고, 차 안에서 둘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나도 너무 좋아서 즐거웠다. 이후에도 가끔 드라이브 데이트를 하게 되었고, 여자친구는 매번 이것저것 만들어 와서, 마음의 거리가 줄어든 느낌이었다. 어느날, 언제나 그렇듯 여자친구 집 앞에서 여자친구를 태우고 운전을 하는데, 여자친구가 조수석에 앉자마자 입을 열었다. [오늘인가 보네, 아마.] [어? 뭐가?] 하고 묻자, [응? 나 뭐라고 말했어?] 라고 웃으며 대답해 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오늘 어딜 갈 거라고 이야기를 하다보니 평소와 똑같았기에, 평범하게 데이트를 마치고 저녁을 먹은 뒤 돌아오는 길에 올랐다. 계절은 겨울, 주변은 산길이라 벌써 어두웠다. [내일은 영하래.], [정말? 큰일이다...]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운전을 하고 있었다. 잠시 후, 어쩐지 여자친구의 목소리가 굳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재빨리 얼굴을 바라보자, 왠지 눈이 풀린 것 같았다. [왜 그래? 괜찮아? 추워?] 하고 묻자, [응, 괜찮아.]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거기서부터 대화가 끊겼다. 나는 여자친구가 화가 날만한 말이라도 했나 싶어 걱정하며, 산길 커브를 돌아갔다. 자동차는 슥 하고 커브 바깥쪽으로 걷돌더니, 원심력에 따라 그 기세 그대로 가드레일 너머로 떨어졌다. 엄청난 폭음 후 의식은 사라졌다. 한참 뒤, 여자친구가 나를 흔들어 눈을 떴다. 자동차는 어떻게 된 건지도 모르겠고, 머리는 아픈데 눈은 보이지 않고, 옷이 축축한 것만 느껴졌다. 망연자실하던 와중, 문득 여자친구가 걱정되서 돌아보고는 깜짝 놀랐다. 여자친구는 무사했는지 멀쩡한 모습으로 - 나중에 안 것이지만 실제로는 여자친구도 다친 채였다 - 담담하게 언제나 메고 다니던 큰 배낭에서 거즈와 붕대 같은 걸 꺼내고 있었다. 그리고는 믿을 수 없이 깔끔한 솜씨로, 내 머리에 대고 지혈하며 두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내 머리는 충격으로 깨져서, 그 피로 옷이 젖어 있던 모양이었다. 그 후 여자친구는 휴대폰으로 구조를 청했다. 예보대로 영하의 추위였던 탓에, 배낭 속에 들어있던 손난로를 내 몸에 잔뜩 붙이고, 우리는 꼭 껴안고 체온을 지켰다. 나는 피가 빠져나간 탓인지, 굉장한 추위가 들었고, 공포에 질려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여자친구는 무척 침착했다. 어째서인지 [내가 꼭 지켜줄게.] 라고 나에게 말하며. 나는 무척 신기한 기분이었다. 잠시 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고, 둘이 같이 구조됐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도중, 나는 여자친구에게 그 응급치료 솜씨는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여자친구는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나, 알고 있었어.] 라며,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여자친구는 어릴 때부터 모르는 남자가 밤 중 산길에서 사고를 당해 죽는 꿈을 반복적으로 꾸었다고 한다. 너무 자주 꿈을 꾸다보니,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다고 여기는 사이, 어쩐지 위에서 내려다보던 꿈이 조수석에서 지켜보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리고 차차 꿈을 꿀 때마다, 어떻게 사고가 일어나서 어디를 다치고, 무엇이 원인이 되어 죽는지를 파악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남자가 죽지 않을 수 있도록, 꿈 속에서 필요한 도구를 갖추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노력의 결과, 사고 끝에도 살아나는 게 당연한 일이 되어,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처음 나를 봤을 때, 여자친구는 너무나 큰 충격에 온몸에서 땀이 나고 토할 것만 같았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다. 정기적으로 꿈에 나오던 남자를 현실에서 마주친다면 누구라도 무섭겠지. 처음 말을 건 그날은, 정말 큰맘 먹고 말을 걸었다고 한다. 그저 우연일 뿐이라면 여기서 끝이지만, 만약 꿈이 현실로 이루어질 거라면, 이 남자에게 말을 걸지 않은 걸 평생 후회할 거라 느끼면서. 솔직히 나는 외모적으로는 여자친구의 이상형이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갑자기 친구가 되어달라고 말하면 기분 나빠하고 끝날 거 같아, 첫 눈에 반했다고 그럴듯 하게 둘러댔던 것이다. 사귀고 있다보면 언젠가 그 사고를 마주칠테니, 적어도 그 때까지는 사귀겠다는 마음으로.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통곡했다. 처음 여자친구가 무리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도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사고로 머리를 다쳐서 그런걸까, 오히려 그 이야기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껴졌다. 솔직히 목숨을 건진 기쁨보다, 여자친구가 이제 내 곁을 떠나갈지도 모른다는 것에 절망했다. 나는 통곡하며 [이제 우리는 헤어지는거야?] 라고 물었다. 여자친구는 반문했다. [너는 어떻게 하고 싶어?] [나는 절대로 헤어지고 싶지 않아. 이제 진심으로 좋아하게 됐으니까.] 나는 어쩐지, 결코 여자친구와 헤어져서는 안된다는 예감이 들었다. 당시에는 나 같은 놈이 이런 여자를 놓치면 다음은 없을 거라는 생각에서 그랬다고 여겼지만, 아마 헤어지면 안된다는 것을 내 마음 속 어디에선가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내 대답을 들은 여자친구는, [나도 너를 좋아하게 됐어. 앞으로도 잘 부탁해.] 라며 웃었다. 그로부터 반년 정도를 더 사귄 후, 사귄지 1년쯤 될 무렵 우리는 결혼했다. 결혼하고 2년만에 아이가 태어났다. 어느 화창한 날, 이제는 아내가 된 여자친구가 만든 도시락을 가지고, 피크닉을 갔다. 2살 된 딸은 무척 들떠서, 피크닉 시트를 준비하는 동안에도 뛰어다녔다. 웃으며 위험하니까 이리 오라고 딸에게 손을 뻗던 순간, 나는 번개를 맞은 것 같은 충격에 휩싸였다. 아내가 땋아준 양갈래 머리를 휘날리며 뛰어다니는 딸의 모습은, 내가 어린 시절부터 반복해 꾸어오던 꿈 속의 그 장면이었다. 퍼즐 조각이 맞춰지듯, 모든 것이 딱 맞아떨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내가 나를 돕는 꿈을 꾼 것도, 내가 아내와 결코 헤어지면 안된다고 느낀 것도, 모두가 딸아이를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고. 그 꿈을 보고 느끼던 말로 표현할 수 없던 행복감은, 고작해야 중학생이던 내가 알 턱도 없는 것이었다. 어린 딸을 보는 아버지의 행복감이니까. 지금 처음 맛보는 부모로서의 행복 속에서, 그리움을 느끼는 모순 속에 나는 서 있었다. 내 인생은 이렇게 될 운명이었다고, 지금은 생각하고 있다. [출처] 괴담의 중심 _______________ 뭔가 그 부분이 왠지 감동이더라. 전혀 상관없는 사람일 때는 위에서 내려다 보다가, 계속 해서 보다 보니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는 옆에 앉은 사람의 시선이 되었다는 거. 비단 이렇게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그런 경우가 참 많을 것 같아서 말야. 조금만 관심을 갖고 들여다 보면 도움을 필요로 하는 비극들이 참 많잖아, 그리고 그 중 많은 부분이 어쩌면 누군가의 관심으로 비극이 아니게 될 수도 있다는 것. 지금은 자신을 잡도리('단도리'는 일본말이니까 순우리말인 '잡도리'를 쓰도록 하자!)만 해도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시기니까 함께 조심했으면. 그럼 건강하고, 조만간 또 올게!
[퍼오는 귀신썰] 개구리 노래의 진실
다들 무사히 잘 있기를 확진자가 벌써 5000명이 육박했더라 그 중 대구 경북만 4000명이 넘으니 원... 대부분 신천지발이긴 하지만 주변의 누가 신천지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으니 조심하는 수밖에 없네 집에 어르신이 있는 경우엔 더 조심하고. 그럼, 오랜만에 같이 귀신썰 볼까? _________________________ 어느 연말에 있었던 일입니다. 회사 선배로부터 초대를 받았습니다. "연말연시에는 고향으로 내려가는데, 괜찮다면 우리 집에서 같이 새해 맞이할래? 재밌는 행사가 있거든. 한 번쯤 보여주고 싶었어." 그 사람은 나보다 연상이었는데 너무 편하게 대해주는 사람이었고, 입사했을 때부터 여러 가지로 귀여워해 주셨습니다. 일로도 개인적으로도 많이 보살핌을 받았고, 이곳저곳 데려가 주기도 했지만, 멀리까지 가자고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모처럼의 귀성길이고 가족끼리의 연말연시에 방해가 되지는 않을까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까 오라고 하셔서, 나는 고향에 돌아갈 예정도 없었기 때문에 초대에 응하기로 했습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12월 29일~31일에 선배의 고향에서는 행사가 있는데, 송년 행사를 겸해 그것을 보러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회사는 29일에 마무리를 하고 휴가가 시작되는 건 30일부터입니다. 행사에 대해서 조금 더 물어보니 "우리 마을에서 매년 열리는데, 마을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 선택되면, 그 사람을 위해서 열리는 행사야. 0시가 지나면 시작하니까 정확히는 30일~설날까지 사흘 동안 열리는 거야." "심야에요? 그렇게 늦은 시간에 어떤 걸 하는 거예요?" "그건 직접 볼 때까지 기대해. 올해는 우리 어머니가 선택되셔서 나랑 아버지랑 너무 기뻤어." "그러셨어요? 잘은 모르겠지만, 그런 때 제가 있으면 역시 방해가 되는 게 아닐지..." "괜찮아괜찮아, 우리 가족들은 상관 안 할 거야. 한가한 곳이니까 마음 편히 와도 돼. 쉬는 건 30일부터니까 첫날부터는 못 보겠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몰랐지만 왠지 흥미롭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그 행사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을 알아채고는 "혹시 처음부터 보고 싶으면, 29일 일 끝나자마자 바로 가는 것도 괜찮지. 나도 처음부터 보여주고 싶고. 일 년에 한 번뿐이기도 하고, 올해는 겨우 우리 어머니가 선택받으셨으니까." 라고 했습니다. 가능하면 그렇게 해보고 싶었지만, 너무 호의에 기대기만 하는 것도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 결국 30일에 가기로 했습니다. 선배는 조금 안타까워했지만 내 맘을 이해해주어서 30일부터 1일까지 선배의 집에서 지내기로 했습니다. 당일, 아침 9시. 선배의 차를 타고 목적지로 향했습니다. 선배의 고향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차로 3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가는 길에는 느긋한 마음으로 대화를 하면서 어떤 행사일까 기대감이 커지고 있었습니다. 얼마 정도 가서 경치가 바뀌었을 때, 선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제, 비 온 거 알아?" 선배 말처럼, 전날 29일은 밤늦게까지 비가 내렸습니다. 엉뚱하게 흐름을 끊는 말도 아니고, 일상적인 화제였지만, 어딘가 모르게... 위화감이 느껴졌습니다. "늦게까지 오더라고요. 오늘은 그쳐서 다행이네요. 행사에 비가 와도 괜찮을까요?" "뭐, 괜찮아. 어젯밤에는 예정대로 진행됐어. 사실은 말이야, 나 어제부터 내려갔어서 좀 피곤하네. 회사에서 바로 집으로 내려가서 밤중에 그거 하고 끝난 뒤에 다시 여기로 너 마중하러 올라온 거잖아. 지금 엄청 졸려." 그렇게 말하고 크게 하품하는 선배에게는 좀 전에 느꼈던 묘한 위화감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일상적인 대화를 하며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12시 정각쯤 되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차에서 내려, 선배의 집으로 눈을 돌린 순간, 흠칫 놀랐습니다. 선배의 본가는 오래된 저택처럼 넓은 집이었는데, 집 앞 마당에 웅덩이가 있었습니다. 잉어를 기르는 연못과 같은 크기로. 자연적으로 저렇게까지 크게 생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거기 있던 것은 몇 번을 봐도 부자연스럽게 느껴졌습니다. 흙탕물을 채운 욕조 같은,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이건 대체 뭐지... 그런 생각으로 어리둥절해 있으니 "이것도 행사에 관계된 거야~ 일단 떨어지지 않게 조심해. 꽤 깊으니까." 라고 했습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일단 집 안으로 안내를 받았습니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안쪽에서 여자가 달려 나왔습니다. "늦었네. 아, 이 분이, 손님?" 선배는 그렇다고 대답하며 나를 향해, 그 여자가 어머니의 언니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인사를 끝마치고 점심 식사를 차려놓으셨다며 안쪽으로 안내를 받아 점심을 대접받았습니다. 식후에는 거실에 있던 선배의 아버지와도 인사를 나누고, 선배가 옛날에 쓰던 2층 방으로 안내되었습니다. 방에 들어가서 한숨 돌린 후 문득 창밖을 보다 어떤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웃에 집이 몇 채가 보였는데, 마당에 큰 구멍이 있는 집이 몇 채 있었습니다. 웅덩이가 아닌, 텅 비어있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었습니다. 신경이 쓰여서 선배에게 물었습니다. "아~ 그건 선택받기를 기다리는 집이라는 거지. 구멍이 없는 집은 한 번이라도 가족 중에 누군가가 선택받았거나, 지금은 필요하지 않다는 거고. 선택받은 집은 아까 봤듯이 구멍에 물을 채워서 커다란 웅덩이가 되는 거야. 선택받은 사람은 일이 많아. 어머니도 지금 준비하시느라 집에 안 계시는 거고." 지금 생각해보면, 이때부터 어딘가 이상한 공기가 감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선배의 설명을 들어도,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짐작이 되지 않았습니다. 애당초 축제를 보는 기분으로 즐길 수 있는 행사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뭔가 이상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런 실례되는 말을 꺼내지는 못한 채, 나의 지나친 생각이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그날은 행사가 시작될 때까지 느긋하게 있게 되어서, 전날 거의 잠들지 못했던 선배는 잠들었고, 나는 선배의 이모님과 얘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밤이 되고 저녁을 먹고 목욕을 마친 후, 행사가 시작하기를 멍하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 선배 어머니의 모습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11시를 지났을 무렵, 상황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넷이서 시시한 잡담을 하고 있었는데, 전화가 울렸습니다. 10분 정도 얘기를 하시던 이모가 전화를 끊고, 선배와 선배인 아버지에게는 "슬슬 준비해야 되니까 다녀와" 라고 하셨고, 나에게는 "ㅇㅇ씨는 여기 있어요. 나도 같이 있을 거니까" 라고 했습니다.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네"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선배가 욱한 표정으로 이모님께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갑자기 험악한 분위기가 되어 두 사람이 말다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모, 어제도 집에 남아있었잖아요. 왜 그러세요?" "몇 년 전부터 누누히 말해왔잖아? 나는 인정할 수 없어. 그렇게 꼭 할 거면 너희들끼리 하라고." "겨우 어머니가 선택받았는데 아직도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이모도 선택 받았었으면서. 오늘도 엄마는 계속 준비하고 있는데." "나는 너희들과는 달라. 됐으니까 빨리 가기나 해" 나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서 갈 어찌할 줄 몰랐고, 낮에 느꼈던 불안감이 점점 커져갔습니다. 잠시 두 사람의 말다툼이 계속됐지만, 선배가 시계를 보더니 입을 다물었고, 그제서야 말다툼은 끝이 났습니다. 잠자코 보고 있던 선배의 아버지는 도중에 먼저 나가버리셔서 초조해진 선배는 허둥지둥 나갈 준비를 하고 현관으로 향했습니다. "어제보다 더 힘이 난다~ 지금부터 어떤 일이 있을지 기대해!" 나에게 그렇게 말한 선배가 나갔습니다. 선배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 그 순간, 갑자기 이모님이 서둘러 현관 열쇠를 잠그고, 내 손을 잡고 거실로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내 얼굴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얘기하기 시작했습니다. "ㅇㅇ 씨,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요. 벌써 0시가 지났네. 이후 1시가 되면, 어떤 일이 시작돼요. 이대로라면 당신은 희생자가 되는 거고."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습니다. "네? ...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어요..." "자세한 건 나중에 얘기할게! 어쨌든 지금은 해결하기 위한 얘기를 해줄게요. 이렇게 되어버린 이상, 당신은 그 행사를 보지 않으면 안 돼요. 1시가 되면 2층으로 가서, 창문으로 밖을 보도록 해요. 무슨 일이 있어도, 마지막까지 보지 않으면 안 돼요. 단, 말을 걸거나 해서는 안 돼요. 그저 보고, 듣기만 하면 돼요." "듣다니요? 듣다니 뭐를 말인가요? 대체 무슨 일인 거예요!!!" "노래.. 그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는 거예요. 반드시 마지막까지 듣지 않으면 안돼요. 귀를 막거나 하지 않고 끝까지. 알겠죠?" 이젠 뭐가 뭔지 모르겠고, 그저 울고만 싶었습니다. 어째서 터무니없는 일에 휘말리게 된 것인지.. 어찌해야 좋을지.. 머리가 지끈지끈 거렸습니다. 이모님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괜찮아요" 라고 해주셨지만, 누구를 믿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 사이에도 점점 시간은 다가오고.. 결국, 이모님이 말씀하신 대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점점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기 시작했습니다. 어쩌지... 어쩌지....... 그러는 사이에 1시가 가까워졌고 이모님이 어서 2층으로 가라고 재촉을 하셨습니다. 같이 가주실 수 있는지 부탁드려봤지만, "나는 어디 안 가고, 여기 있어요. 노래가 끝나면 바로 내려와요. 모쪼록 아까 말했던 것을 잘 지켜야 해요." 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도망가고 싶은 발걸음으로 등 떠밀리듯 2층으로 올라가 낮에 있었던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창밖을 볼 수가 없었고, 그저 웅크리고 앉아 떨고 있었습니다. 너무 싫어 무서워 그런 생각뿐이었습니다. 5분... 10분... 얼마나 그렇게 앉아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너무너무 길게 느껴졌습니다. 문득, 무언가 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얘기하는 소리? 고함소리? 나는 무의식적으로 창으로 다가가, 밖을 내다봤습니다. 창밖, 그 웅덩이 주위에 어느샌가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습니다. 아이도 어른도, 여자도 남자도. 10대로 보이는 아이, 대여섯 살 정도의 아이도, 50세 정도의 고령자... 스무 명 정도가, 아니 어쩌면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그 사람들은, 방금 전까지 비라도 맞은 듯 옷도 몸도 흠뻑 젖어있었습니다. 꼼짝도 않고, 전원 물웅덩이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슨 말인가를 하고... 있다.... ? 겁에 질려 굳은 채로 그 광경을 보고 있으니, 점점 확실히 들려왔습니다. 불길하게 들리는 그 소리에 당장이라도 귀를 막고 싶었지만, 이모님의 말을 믿고,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노래였습니다. 이모님이 말씀하신 대로, 확실히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 들려왔습니다. 몇 사람의 목소리가 묘하게 뒤섞여 기분 나쁜 멜로디가 노이즈같이 머릿속에 울리고 있습니다. 들리는 가사는 이랬습니다. 돌아갈 수 없는 아이는 어디에 돌아갈 수 없는 아이는 연못 속에 돌아갈 수 없는 아이는 누구인가 돌아갈 수 없는 아이는 ㅇㅇㅇ (누군가의 이름?) 개구리의 아이는 어디에 개구리의 아이는 연못밖에 개구리의 아이는 누구인가 개구리의 아이는 ㅇㅇㅇ (여기에는 내 이름이 들린 것 같습니다) 돌아가지 못하는 아이는 어찌하나 돌아가지 못하는 아이는 울고 있네 개구리 아이는 어찌하나 개구리 아이는 울고 있네 이런 가사가 두 번 반복되었습니다. 전원이 흠뻑 젖어서 웅덩이를 바라보며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크게 소리를 내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고, 내가 있는 방과도 거리가 있을 텐데도, 그 노래는 분명하게 들려왔습니다. 정말 비길 데 없는 공포였습니다. 노래가 두 번 반복되는 동안, 후들후들 떨면서 그 광경을 바라봤고, 그 노래를 계속 듣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노래가 끝나자마자, 정적에 휩싸인 그 순간에 한 사람이 얼굴을 들어 내 쪽을 봤습니다. 그건 얼굴 가득 미소를 띤 선배였습니다. 아까까지는 너무 어두워서 몰랐는데, 잘 보니 선배의 아버지도 그곳에 있었습니다. 단 한 사람. 나를 올려다보며 웃고 있는 선배에게, 나는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습니다. 잠시 그대로 있었는데, 갑자기 다른 쪽을 보더니 어딘가로 걸어가버렸습니다. 그러자, 주위 사람들도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해, 줄줄이 선배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끝났다.... 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넋을 놓고 있었습니다. 빨리 이모님 계신 곳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멍한 채로 머릿속이 빙빙 돌아 의식을 잃을 것 같았던 그때, 이모님이 2층으로 올라와주셨습니다. "끝났네요. 많이 무서웠죠.. 잘 견뎠어요. 이제 괜찮아요. 이제 괜찮아." 그렇게 말하는 이모님 품에 안겨서 서러움이 폭발한 나는 엉엉 울어버렸습니다. 이제부터 뭘 해야 될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조금 진정이 된 나는 이모님에게 의지하여 거실로 돌아왔습니다. 시간은 벌써 2시를 넘겨있었습니다. "ㅇㅇ씨, 안심하고 있을 시간이 없어요. 그 애랑 그 애 아빠는 오늘은 더 이상 이곳에 오지 않겠지만, 좀 전의 의식이 한 번 더 있을 거예요." "... 네...?" "이번에는 3시에. 노래 내용도 아까 것과는 조금 달라질 테고. 여기서 우물쭈물하고 있으면, 다시 그 사람들이 웅덩이에 모일 거예요. 그러면 더 이상 되돌릴 수 없게 되는 거예요." "말도 안 돼... 어떻게 해야 되는 거죠? 저는.... 대체..." "침착해요. 지금 우리 집으로 가요. 이 마을을 나가서 조금만 더 가면 있으니까. 하지만, 가지고 왔던 것들은 포기해줘요. 가지고 돌아가면 오히려 위험하니까.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합시다. 자, 어서 가요." 그 말대로, 나와 이모님은 집을 뛰쳐나와 조금 떨어진 공터에 세워져있던 이모님이 차에 올라타고 그 마을을 빠져나왔습니다. 어디를 달려도 똑같은 경치로 보여, 미로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1시간쯤 달려 겨우 이모님 댁에 도착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어떤 방으로 안내되었는데 그 방 안을 보고 다시 공포가 온몸으로 퍼졌습니다. 밥상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그 방, 벽 한쪽 면은 천장까지 부적이 빽빽이 붙어 있었습니다. 이상하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혹시... 나... 속고 있는거 아닐까... 이모님도 뭔가... 엄청난 일에 가담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의미를 알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니, 나 자신 이외의 사람에 대해 불신감이 더해져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내 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 이모님이 말했습니다. "복잡한 생각이 들겠죠, 무섭기도 할 거고. 하지만 이 방이 아니면 얘기를 할 수가 없어요. 미안해요. 참아줘요." 이모님은 나를 천천히 밥상 앞에 앉히고 자신은 바로 건너편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여기부터는 이모님의 얘기를 중심으로 적겠습니다. 거의 그대로입니다. "어디부터 얘기를 시작해야 할까... ㅇㅇ씨는 처음에 그 애가 뭐라고 했길래, 왜 그 마을에 온 거예요?" "매년 재밌는 행사를 하니까, 보러 오라고 했어요. 마을 중 한 사람이 선택받아서, 그 사람을 위해 열리는 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어머니가 선택... 받으셨다고....." "기간은 사흘이고, 오늘은 이틀째라는 건 들었어요? 첫날부터 오지 않겠냐고는 하지 않던가요?" "그렇게 말했어요. 첫날부터 보여주고 싶으니까 그렇게 하자고 했었는데, 제가 거절했거든요. 너무 신세 지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 "그랬구나... 그 애가 말한 건 전부 맞아요. 그건 매년 선택된 사람을 위해서 열리는 거고, 올해는 그 애 엄마가 선택됐어요. 첫째 날부터 보여주고 싶다고 했던 건, 특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고요." "무슨 말씀이신지...?" "ㅇㅇ씨, 오늘 한 번이라도 그 애 엄마의 모습을 본적 있나요? 보지 못했죠? 그건 둘째치고,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아무것도 듣지 못했죠? 당연하죠. 그 애의 엄마, 그러니까 내 동생은.. 죽었으니까. 몇 년 전에." "... 네?.........." "그 애가 학생일 때인데, 벌써 한참도 전이죠. 그러니까, ㅇㅇ씨가 그 얘기를 듣었을 때도 처음부터 그 애의 엄마는 없었다는 거예요." "그런... 하지만... 그럼 선택받았다는 건 무슨 얘기예요? 아까 그건 뭐죠?" "그건 죽은 사람을 되살리기 위한 거예요. 선택받았다는 건, 살아 돌아올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고요. 매년, 죽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이 그 기회를 얻게 되죠. 다만, 그것을 가족들이 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고요. 원할 경우에는 정원 같은 곳에 커다랗게 구멍을 파서 그 의지를 보여야 하죠." "선택된 경우, 모르는 새에 구멍에 물이 차서 큰 웅덩이가 완성돼요. 1월 2일부터 12월 1일까지. 긴 시간이 걸려요. 그래서 선택받은 자의 가족은 29일~31일(30~1일)까지 3일간, 좀 전의 그런 걸.. 하는 거죠. 그리고 1월 2일까지 물은 없어지고, 다시 시간이 걸려서 다른 사람이 선택되는 거예요" "아까, 노래를 들었잖아요. 끝까지 들었죠? 어떤 내용이었는지 말해볼래요?" 앞에 썼던 가사를 이모님에게 얘기했습니다. 이모님의 얘기로는 이렇다고 합니다. 돌아갈 수 없는 아이는 어디에 돌아갈 수 없는 자는 연못 속에 돌아갈 수 없는 아이는 누구인가 돌아갈 수 없는 자는 ㅇㅇㅇ (선택된 죽은 사람의 이름) 개구리의 아이는 어디에 개구리의 아이는 연못밖에 개구리의 아이는 누구인가 개구리의 아이는 ㅇㅇㅇ (희생되는 사람의 이름) 돌아가지 못하는 아이는 어찌하나 돌아가지 못하는 아이는 울고 있네 개구리의 아이는 어찌하나 개구리의 아이는 울고 있네 "선택된 죽은 사람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희생될 누군가에게 3일간 노래를 듣게 하지 않으면 안 돼요. 그 애가 첫날부터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 건 그 때문이고요. 노래는 1시부터 2시, 3시부터 4시 사이에 각각 내용이 바뀌면서 두 번씩 불러요. 사흘 동안 6가지 내용의 노래를 총 12번 부르는 거죠. 아까 ㅇㅇ씨가 들은 건 세 번째 노래예요" "6번째, 그러니까 12번째 마지막 노래를 들려준 뒤에, 그 사람을 웅덩이에 밀어 넣는 거죠. 기어올라오게 되는 건 그 사람이 아닌, 선택받았던 죽은 사람. 희생이 된 사람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해요. 그렇게 해서, 살아있던 누군가를 대신해서 죽었던 누군가가 돌아오는 거예요" "그렇다고는 해도, 요즘 사람들은 제사를 지낸다는 생각으로 형식적으로만 하는 게 대부분인데. 최근 몇 년 동안 정말로 되살리려고 한 것은 이번뿐이에요. 그 애만 유독 그러고 있다는 게 맞는 말이겠네요. 그 애는 엄마를 고집하고 있어요. 몇 년이 지나도 끊어내지 못하고 있네요." "자기 엄마가 선택됐다는 걸 알게 됐을 때부터, ㅇㅇ씨 얘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어째서 ㅇㅇ씨가 선택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애는 당신을 희생해서 엄마를 살려낼 작정이었던 거지. 원래라면, 두 번째 날에 온 시점에서 성립되지 않았을 테지만. 사흘간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되니까요. 하지만, 비가 내리면서 잘못되기 시작한 거예요." "노래를 포함해서, 이 모든 일을 개구리의 노래 라고 부르고 있어요. 원래는 옛날부터 신으로 모시고 있는 무언가에 관계되어 있어요.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일인 만큼, 영혼이라던가 하는 차원이 아닐지도 몰라요. 그 무언가는 비를 좋아한다고 전해지고 있어요. 사흘간, 하루라도 비가 내리는 중에 개구리의 노래를 행하게 되면....." (이 부분만.. 얼버무리셨습니다) "어쨌든 어제 비가 비가 내려서, ㅇㅇ씨가 첫 째 날에 없었다는 것이.. 의미가 없어진 거죠. 원래대로라면 일이 끝난 사흘째에 진행되었어야 하는, 그 애의 엄마가 어제 시점에서 그 웅덩이에 들어가 있었으니까. ㅇㅇ씨가 처음으로 봤을 때도, 아까 노래를 부를 때도, 웅덩이 안에서 가만히 당신을 바라보고 있었던 거예요. 엄마가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건, 그런 의미였던 거예요." "아마, 앞으로도 그 애는 포기하지 못할 거예요. 언젠가 다시 선택되기를 계속 기다리면서. 그러니까 그 집 웅덩이가 없어지는 일은 없겠죠."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는 의문이 다 풀리지는 않았지만, 더 물을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그랬다가는... 제정신으로 있을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날 밤은 이모님 집에서 보냈고, 아침이 밝자 우리 집까지 바래다주셨습니다. 헤어질 때, 이모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제로 새해가 되었지만, 앞으로 1년간은 비에 젖으면 안 됩니다. 비가 오는 날은 외출 자체를 하지 마세요. 생활하는데 많이 불편하겠지만, 반드시 지켜야 해요. 1년이 지나면 괜찮아지니까. 혹시 뭔가 걱정되는 일이 생기면 내가 있는 곳으로 와요. 무서운 일을 겪게 해서 너무 미안해요. 잘 있어요." 휴일이 끝난 뒤, 얼마간 선배는 회사에 출근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고 연락이 왔었다고 합니다. 나는 그 해에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이모님께서 충고하신 대로 비 오는 날에는 절대밖에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일을 계속할 수가 없었습니다. 갑자기 비가 올지도 모르기 때문에.. 1년정도 부모님댁으로 돌아가 외출을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면서 선배가 복귀해서 지금도 그 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합니다. 아직까지 얼굴을 마주 볼 엄두가 나지 않네요. 지금, 나는 평범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출처] [2ch괴담] 개구리 노래의 진실 _________________________ 세상에. 엄마를 살리기 위해 점찍어 놓은 회사 후배라니, 그 후배를 희생시켜서 죽은 엄마를 되살리려 하다니. 그걸 앞두고 당사자 앞에서 '힘이 난다'고 이야기를 하다니. 비뚤어진 그리움을 어찌해야 할까. 그래도 이모님 덕분에 무사히 빠져나오게 돼서 너무 다행이야. 아. 이모님도 '선택 받았었다'고 했으니 이모님도 이모님을 그리워하는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희생시키고 '다시' 데려왔던 걸까. 뭐든 감정이 과해져서 극단적이 되면 위험해 지는 것 같아 종교에 빠지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겠지 그래서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나.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그런 식으로 꼬드겨서 빠져 나오기 힘들게 만들다니. 얼른 그들의 폐단이 밝혀 졌으면 좋겠다. 다들 부디 건강하고, 곧 또 올게!
퍼오는 귀신썰) 박보살 이야기 - 22탄
와! 톡방에서 제보를 받고 가져왔어 떠블리님이 박보살 22편을 써주셨구나! 이 얼마만의 박보살 이야기냐 정말 작년 9월에 올려 주셨는데 네이버는 잘 들어가질 않아서 내가 미처 확인을 못했네 제보 주신 김호두님 @khd9108 께 압도적인 감사를! ㅋㅋ 그럼 얼른 이야기 같이 들어가 볼까? 나도 아직 읽진 않았으니까 같이 읽어 보자 ㅎㅎ _____________________ 이번 편은 평소에 많이들 하시는 질문에 답변을 먼저 드리고 이야기를 시작할게요!! 1. 밥솥은 함부로 버리면 안된다고 했는데, 어떻게 버려야 하나요? - 밥솥은 내솥과 외솥을 분리해서 버리셔요! 남이 주워서 쓸수 없게끔이요 ^^ 혹시 외솥을 주워서 내솥을 구해서 쓰면 어떡하나요? 하시는 분들 계셨는데 온전히 솥을 내어주지 않은 거라면 괜찮다고 합니다! 혹 멀쩡한 밥솥을 지인이나 누군가에게 주게 되었다면 꼭 오천원이라도 돈을 받고 파셔요~ 그냥 주는거 아니면 괜찮다고해요 ㅎㅎ 2. 글에서 언급한 대구역 근처 철학관 좀 알려주세요! - 대구역 근처 철학관에 선생님이 혹시 한 손이 불편하신 선생님이 맞는지 문의하신 분들도 계셨는데요 그 선생님 맞으시구요~ 안타깝게도 재작년인가 돌아가셨다고 전해들었습니다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3. 무속인에게 사주를 알려주지 말라고 한 이유 - 이거는 박보살이 저한테 특히 알려주지 말라고 했던건데 많은 분들이 오해를 하셔서 따로 피드백 드려요 아무래도 제가 무속인분들 사이에서는 좀 많이 알려져 있어서 그런가 카페에도 그 쪽 분들이 많이 들러주시고, 저한테 좀 관심이 많으시더라구요. 물론 저보다는 박보살한테 관심이 더 있으시겠지만요! 제가 천권을 쥐고 있는 사주팔자를 타고 태어나서 아는 사람이 보면 탐을 많이 낸다고 해요 ㅠㅠ 그래서 역효과가 날 수도 있으니 제 사주는 될 수 있으면 알리지 말라는 박보살의 당부가 있었습니다 혹시 훼방을 놓으려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사주는 오픈하지 말라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잇님들의 경우엔 여기 저기 다니시면서 사주 알려주는게 왜 좋지 않은지 본문 글에서 알려드릴게요^^ 4. 절소개, 무속인, 철학관 소개를 해드리지 않는 이유 - 제가 다니는 절과 박보살네 절은 불자님들이 기도하러 다니시는 아주 작은 절이지, 스님께서 상담을 해주시는 곳은 아닙니다 정말 기도만 드린다고 하시며 간곡히 부탁하셔서 절을 알려드렸더니 절에 가셔서는 박보살, 떠블리 언급하시며 스님께 무례한 행동을.. 10분이면 8~9분이 하셨어요. 복채 줄테니 봐달라는둥;; 돈 많이 쓸테니 어쩌구 저쩌구 하시면서요 이거 정말 무식하고 부끄러운 행동입니다 ㅠㅠ 위와 같은 이유로 더이상 절 소개는 절대 안해드립니다 그리고 제가 좋아하고 가끔 다니는 절은 알려드렸었는데 그 절에서 떠블리 찾으시면 ㅠㅠ 거기는 저도 개인적인 인연은 없는 곳이라 제 존재 자체를 모르셔요.. 저에게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시는 분들이 많다는걸 느껴서 제가 정말 좋은 마음으로 다가와주시는 잇님들께도 거리를 두게 되는것 같아요 그래서 절 소개는 더이상 부탁하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무속인이나 철학관은요! 솔직히 친구가 박보살이니 만큼.. 박보살 덕에 잘 봐주시는 곳을 조금 알고는 있습니다만 잘 본다의 기준이 참 애매합니다 철학은 학문이라, 그 학문을 공부하신 선생님들이 사주풀이를 해주시는건데 이 풀이가 개개인마다 조금씩은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이 사람 사주에 돈이 많다, 없다를 풀이하실때 ㄱ철학관은 사주에 돈은 늘 있으나 그것이 내것이 되지 못하고 돈이 새어나가면 돈이 없다~ 라고 말씀을 하시구요 ㄴ철학관은 돈을 모으지는 못하지만 늘 풍족하게 쓰는 사주를 보고 돈은 있다~ 라고 말씀을 하셔요 같은 사주를 놓고도 ㄱ철학관과 ㄴ철학관의 이야기가 다르니 제가 소개해 드린 곳을 가셔서 보시고, 잘 안맞다 싶으시면 이건 엉터리다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또 계시구요 저에게 화살을 돌리시는 분들도 계시더라구요 또 A철학관은 궁합을 잘보시고 B철학관은 부동산 문제를 잘보시고 C철학관은 비방을 잘하시고.. 전문으로 하시는 분야가 따로 있어서 제가 나서서 연결해드리고 이렇게는 힘들것 같아요 먹고 살기 바쁘다보니 ㅜㅜ 말씀하시는 사연을 전부 귀기울여 듣고 알려드리고 하기가 조금 버거워요 ㅠㅠ 한두분이면 모르겠는데 하루에 기본 열분은 넘게 연락을 주시거든요.. 무속인은 솔직히 말씀드리면 10집 중에서 9집은 ㅜㅜ 굿을 권하고, 재를 권하고.. 그러시더라구요 몇달 전에 갔던 곳인데 그 다음에 또 가보면 말씀이 다르시고요 물론 그렇지 않은 곳도 있어요 몇 군데를 알고 있고 신기한 경험도 했었어서요 (근데 여기도 철학관과 같은 이유로 소개는 해드리지 않습니다) 그 신기한 이야기를 오늘 에피소드에서 들려드릴게요 그럼 박보살 22편 이야기 시작하겠습니다~^^ 음슴체입니다 벌써 내가 박보살 글을 쓴지도 햇수로 10년이 되었음 그동안 우리에게는 놀라운 일들도 많았고 슬픈일도 있었고 기쁜일도 많았음 10년 동안 21편의 글밖에 못 쓴 것도 놀랍고 ㅋㅋ 여태까지의 에피소드를 대략적인 가닥으로 정리해놓은 노트를 잃어버린 일도 내가 이 에피소드를 썼던가? 긴가민가 하는 일이 잦아진 것도 결혼이라고는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도 않던 두 여자가 결혼을 한 것도 우리 곁을 떠난 소중한 사람들이 꽤 있다는 것도.. 쪼매난 몬나니의 탄생 ㅎㅎㅎ 아무튼 인생이란 희노애락과 예기치 못한 일들의 연속이라며 요 며칠 박보살이랑 수다를 실컷 떨었음 22편은 무슨 이야기를 쓸까 고민을 하는 나에게 박보살이 그랬음 "여태까지 내 아바타처럼 대신 다녔던 곳들 리뷰 좀 해봐라" ㅋㅋ 박보살은 점집이나 철학관엘 가지 않음 지랑 비슷한 언니 동생들 모임이 있는데 거기서 핫하다는 점집이나 철학관 이야기를 주워들으면 꼭 나한테 대신 가보라고 함 일단 내가 박보살 아바타를 자처하며 다녔던 중에 베스트오브베스트를 꼽으라면 1. 인연점 보시던 법사님 2. 가장 최근에 다녀온 할머님 내리신 법사님 3. 달마도 그리시는 법사님 우연의 일치인건지.. 모두 남자분들이심 우선 한곳씩 썰을 풀어보겠음 일단 1번 인연점 법사님은 내가 스무살이 되던 해에 뵈었던 분임 정말 이상하고 놀라운 경험이었음 박보살이 인연점을 잘 보시는 분이 있다고해서 엄마랑 나랑 엄마 지인 분이랑 같이 법사님을 뵈러 감 엄마랑 이모는 인연점을 보러 갔던건 아닌데 그냥 내가 혼자 가기 무섭하고 해서 ㅋㅋ 같이 가주심 상담실이 초가집 같은 지붕에 흙으로 지어진 방이었는데 본인에게서 멀리 떨어져서 벽에 붙어서 앉으라고 하시는거임 뭔가 웃기고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앉아있는데 한사람 한사람을 엄청 자세히 스캔하시더니 우리 엄마한테 그러시는 거임 "양띠랑 혼인 했네요, 아이고 보살님 법 없이도 살 사람이네" 헐 ㅋㅋㅋ 우리 아빠 양띠이심... 그래 뭐 12간지 중에서 하나 때려 맞추는거 못할까~ 했는데 같이 갔던 이모께는 "개띠랑 혼인했는데 옥바라지 하느라 고생을 너무 많이 했다" 헐... 헐....... 엄마 지인이었던 친한 언니분은.. 진짜 남편 옥바라지에 젊은 시절을 다 보냈던 이모임 ㅜㅜ 그리고 이모 남편분이 개띠..... 엄마랑 이모가 본인들 사주를 넣은 것도 아니고 그냥 앉아서 말 한마디 안했는데 그게 보이시나요?? 너무 신기했음 진짜로 그때 나는 대학교 1학년 이었는데 속으로 '나는 결혼 안했는데 뭘 봐주시려나?' 했음 그 법사님이 나를 보시더니 웃으며 말씀하셨음 "애기야 니는 쥐띠랑 결혼한다, 서른 넘겨서 해야하고 서른둘에 결혼하겠구나" 딱히 많은 말씀은 않으시고, 내 말이 틀렸거든 찾아오라시며 (예?? 저 스무살인데 12년뒤에 아니면 찾아오라굽쇼???ㅋㅋㅋ) 복채도 엄청 쿨하게 내는 만큼만 받으셨던 법사님임 그 다음 해인 스물 한살때 내가 쥐띠인 쩐댑을 만났고 이 쉐키 내 애간장을 너무 태워서 (나쁜 복학생 선배 쉐키) 아 얘랑은 인연이 아니구나~ 싶었음 사실 처음에 쩐댑을 봤을때는 첫인상은 왠지 이 선배랑 결혼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었는데 역시 ㅋㅋㅋ 카사노바 쩐댑 ㅋㅋ 여사친들이 너무 많아서 골치가 아팠다는.. 그래서 그때는 걍 정리 ㄱㄱ 했었음 암튼 그래서 굳이 쩐댑이 쥐띠다 생각도 안하고 있었는데 결국 긴 시간을 돌고 돌아서 나는 쩐댑을 다시 만났고, 진짜 내가 서른 두살에 쥐돌이 쩐댑이랑 결혼을 했음 인연점 진짜 대박 신기하지 않음? 그 때 당시에는 뭐 내가 쥐띠를 만날지 안만날지 확실하지 않았으니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다가 쩐댑이랑 다시 만나게 되었을때 이 오빠가 쥐띠라는게 너무 신기한 마음에 친한 언니 동생한테 소개를 해줬음 법사님께서 언니 만나는 사람 띠를 말씀하시면서 (그때 당시 기준) 내년에 결혼 한다~ 하셨는데 언니네 커플은 돈을 좀 더 모아서 할 생각이라 3년 후쯤을 예상하고 있었음 근데 진짜 바로 다음 해에 아가가 먼저 찾아와서 법사님이 말씀하신 해에 결혼을 함 또 다른 동생은 결혼할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글마 나쁜 놈이다, 헤어져라" 하심 진짜 인연은 이번해 겨울에 들어온다고 용띠 남자인데 심성이 착하고 성실하다시며 그 인연이랑 서른 하나에 결혼 할거다 하셨는데 그 동생이 그때는 남친을 너무너무 좋아하고 믿었어서 자기는 이 점사 안 믿는다고 막 그랬었음 근데 왠걸.. 결혼 이야기가 오가고 그 남친이 상견례를 차일피일 미루는거임 알고봤더니 양다리 걸쳤던 여자랑 이미 결혼 준비 중이었음 써글놈의 새끼 ㅡㅡㅋㅋㅋ 암튼 결론적으로 동생은 개막장 이별을 겪고나서 마음을 다 추스르기도 전 그 해 겨울에 지하철에서 잃어버린 지갑을 찾아준 고마운 남자 사람이랑 인연이 닿아서 알콩달콩 연애하다가 서른 하나가 된 올해 5월에 결혼함 지금 이렇게 간단하게 글로 표현해서 그렇지.. 양다리 이별 당하고 완전 정신적 충격으로 너무 힘들어했었음 동생이 ㅜㅜ 근데 지갑 잃어버리고, 그 지갑을 찾아준 지금의 남편한테 밥이라도 한끼 산다며 식당엘 갔다가 이것 저것 본인 이야기를 하는데 나이가 용띠 나이길래 법사님 말씀처럼 이 남자가 내 인연인가 싶어서 두근두근 했다고 ㅋㅋ 제부는 진짜 쏘스윗 리얼허니 그 자체인 사람이라서 연애때는 물론이고 결혼 준비할때도 정말 작은 트러블 하나 없이 일사천리로 일이 착착 진행되었음 아 그리고 진짜 죄짓고 못산다는 말이 맞는게 동생의 구 남친놈은 와이프가 바람펴서 이혼함 ㅋㅋ 건너건너 지인한테 전해들은 소식에 의하면 아기를 낳았는데 아기가 아빨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었고 구 남친놈이랑 친했던 동생이랑 태어난 아기가 신체적인 특징이 너무너무 똑같은 곳이 있어서 추궁했더니 와이프가 지 친한 동생이랑 바람펴서 낳은 아기였음 헐ㅎㅎㅎㅎㅎㅎㅎ 무슨 뻐꾸기 얘기도 아니고 동물의 왕국도 아니고 리얼 막장 스토리임!! 이래서 사람은 죄를 짓고 살면 안됨 남의 눈에 눈물흘리게 하면 지 눈깔에는 피눈물 난단 말이 정답임 옛날에는 내 죄가 대를 물려 자식한테 간다느니 어쩌구 했는데 살아보니 길게 갈 것도 없이 내 죄는 내가 받음 그리고 2번은 최근에 박보살이 엄청 핫하다고 해서 울 엄마랑 직원 동생이랑 같이 다녀온 곳인데 요즘 약간 고민되는 일이 있어서 다녀옴 (월세 내느니 은행이자 내고 오래 살 우리 집과 가게 터를 장만하는게 어떨까.. 해서임. 지금 가게가 터 자체는 우리랑 잘 맞고 좋은데 우린 가진 돈이 크지 않아서 남의 집에 생돈 들여서 보수 하고 그런게 너무너무 아까움ㅜㅜ) 음 자세한 설명을 할수는 없지만 법사님께서 처음에 보시자마자 나랑 쩐댑만 알고 있는 일을 말씀하셔서 깜짝 놀랐음 엄청 큰 비밀은 아닌데 그냥 좀 마음이 아픈 일이었어서 우리만 알고 있기로 했던 일이었음 그러고는 "볼거 없는데 왜 왔어 이년아~ 니 잘 산다 복 많아 좋겠다 이년아" 하심 "아니 저는.. 저희가 월세 걱정없이 살 집이랑 가게자리가 필요해서 조언을...."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년부터 내후년 사이에 터 생기겠다, 애기도 생기겠다" 하시는거임 아니 저희 딩크부부인데 왜때문에 아기가 보이시나요 슨새임ㅠㅠㅠㅠ 선생님께서 나한테 너는 촉도 좋고 감이 있어서 니 생각하는대로 하면 된다고 꼭 필요한 사람 좋은 사람들만 곁에 뒀으니 아무 걱정 말고 이대로만 살면 된다고 하셨음 나는 평소에 인간이 가질수 있는 복 중에서 인복이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을 함 돈이 아무리 많아도 주변에 내 마음 오롯이 터 놓을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살음 좋은 사람이 곁에 많아서 정말정말 행복한 사람임.. 나는 무튼 여기도 사주는 넣지 않고 마주 앉아서 나오는대로만 말씀해 주시는데 할머님이 욕을 아주 찰지게 잘하셔서 ㅋㅋㅋ 울 엄마한테는 보자마자 남의 새끼 키워준 쌔가 빠질년 이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그냥 딱 보면 살아온 길이 보이시는게 너무 신기하지 않음? 엄마는 고생은 했지만 그래도 그 공덕 쌓은 덕분에 딸내미 하나 있는거 잘 키워서 사위도 잘 얻었으니 걱정말고 살어 이년아~ 하셨다는... 그리고 우리 직원 동생은.. 진짜 내가 아끼고 친동생이나 다름없는 동생인데 법사님이 펑펑 울리셨음 ㅜㅜ 나도 이런 저런 상황 다 아니까 같이 울고..ㅎㅎㅎ 법사님이 이년아 니는 왜 달래줘야지 같이 우냐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나 30대 되고 왜캐 눈물이 많아졌는지 사람 돌겠음ㅠㅠ 혼자 막 감동해서 울고, 누구 슬픈일 있음 울고, 결혼식에서도 신부 어머님보다 내가 더울곸ㅋㅋㅋㅋ 결혼식장가면 화장실에서 몰래 눈물 훔치느라 너무 바쁨 미침 증맬루... 그래도 동생은 좋은 인연이 올거라고 하셨으니 더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마음은 정말 정말 편안해졌음 (내 마음이 ㅋㅋ) 그리고 너는 언니 (따브리) 말만 잘 들으면 된다고!! ㅎㅎㅎ 보고있나 마.. 말 잘들어라 ㅋㅋ 법사님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말씀해주셔서, 그리고 나랑 동생 고민을 해결해주셔서 감사했던 곳임 자 여기서 박보살이 왜 점집에다가 사주를 알리지 말라고 한건지 설명을 잠깐 드리겠음 위 두곳은 사주를 넣지 않고 오로지 신점으로만 봐주시는 곳이었지만 어떤곳은 사주풀이로 보시는 곳도 있으신데 진짜 손님이 끊이지 않는 유명한 곳 아니고서는 점사를 보시는 복채만으로 유지가 안되는 곳들이 있음 그럼 굳이 필요하지 않을지언정 굿이나 재를 권하게 됨 해서 나쁠거 없고 도움이 된다면야 굳이 필요하지 않아도 (여유가 된다면) 하는거 뭐 어떻겠음.. 근데 좀 나쁜 케이스는 제대로 보는 것도 아니면서 무조건 비싼 정성만 권유하는 곳이고 (엉터리) 그것보다 더 나쁜건 제대로 보는 집인데 권하는걸 안한다고 하면 살을 날리는 곳임 굳이 필요없는 재나 기도를 권했다가 손님이 안한다고 하면 그 손님 앞길에 약간 훼방을 놓는거임 차 사고가 살짝쿵 나도록 비방을 하거나 살을 날리거나.. 그 선생님 말 들을걸.. 하게끔 유도를 하는 곳도 있다고 들었음 그래서 점집은 자주 가지 말고 정말 고민이 있을때 가는거라고 심심풀이로 다니면 안되는거라고 함 그리고 다들 아시는 이유.. 기가 약하거나 줄이 있는 사람은 재수가 없으면 반드시 하나를 달고 나오게 되어있음 그런것들이 쌓이다보면 내 인생에서 좋은 작용을 할 리가 없음 박보살은 자기가 못가보는 상황이지만, 누군가를 도와줄 일이 있을때를 대비해서 나한테 대신 가보라고 부탁을 하는거고 나한테는 박보살 본인이 있으니 걱정없이 그런 곳을 보내는거임 왜 사람이 살면서 고민이 없을수는 없잖음 근데 이게 조금 지나보면 견뎌낼 만한 고민이 사실은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가끔은 지나치게 무속신앙을 맹신하고 엄청 찾아다니는 분들이 계심 아무리 신이, 무속신앙이, 종교적인 힘이 나를 도와주더라도 내 마음이 단단하지 않으면 결국 나는 그 자리인거임 박보살이 고민이 많은 사람을 보면서 용한데 찾아다니지말고 내안에 부처님한테 기도하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데 그게 정말 맞는말 같음 '내 마음을 정갈하게 그리고 단단하게 하기' 이제 22편의 하이라이트인 달마도 그리시는 법사님 이야길 들려드리겠음 내가 20대 중반 쯤 동네에 (지금은 따브리의 친정 동네) 친한 언니가 있었음 우리 집 근처 마트에서 일하던 언니였는데 오며가며 인사하고 말을 몇마디 트게 됨 그때 방글이가 우리 집에 온지 얼마 안된 때였는데 +방글이는 저희 첫째 딸랑구 말티즈예요 이 언니도 강아지들을 키웠어서 대화거리가 더 많았던거 같음 근데 이 언니가 술을 너무너무너무 좋아함 ㅜㅜ 좋아하는게 아니라 무슨 중독수준처럼 술을 안마시면 자기는 못잔다고.. 나는 진짜 맥주 한 캔 마시면 온 몸이 붉다못해 검어지고 내 자신은 걷고 있다 생각하지만 네발로 기고있음 거의 ㅋㅋㅋ 나는 누구랑 친해지면 밥먹고 카페가고 이게 전부인데 이 언니는 퍼뜩하면 밤마다 술 먹자고 사람을 불러 냄 근데 꼭 자기 집에서 술을 마셔야 함 밖에서는 절대 안마시고 꼭 집에서 배달음식 시켜서 술을 마셨음 사실 강아지 기르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우리가 뭐 먹을때 강아지들이 얼마나 애처롭게 쳐다보는지 그 눈빛 뭔지 알잖음? 나는 그게 정말 괴로움.. 강아지들 보는데서 뭐 먹는거 ㅜㅜ 어떤 스님께서 그러셨는데 (스님 의견에 동의하는건 절대 아님) 사람이 환생할때 개로 가장 많이 환생하는데 욕심 많은 사람은 반드시 개로 태어나서 평생을 킁킁 거리고 산다고.. 개가 그래서 후각이 발달한 거라고.. 그 스님 말씀이 맞든 맞지 않든 어쨌든 후각에 엄청 예민한 댕댕이들이 사람 먹는걸 쳐다만 보고 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임 ㅜㅜ (그래서 쩐댑이랑 나는 집에서 될수 있으면 뭘 안 먹음.. 1층 작업실 주방에서 밥을 먹거나 2층 카페에서 군것질 조금 하고, 집에 올라가서는 물이나 음료 정도만 마심) 그 언니네는 강아지가 세마리 있었는데 얘네가 작은 견종이 아니라서 짖음도 크고 같은 움직임이라도 작은 애들이 움직이는 거랑은 또 다르게 위협적인 몸짓이 있었음 나는 진짜 그때는 저녁에 할 일도 없고 해서 몇번 언니 집에 갔다가 산책도 못나가고 좁은 집안에만 갇혀있는 언니네 강아지들이 불쌍해서 좀 놀아주고.. 결국 무슨 코가 꿰인듯 매일매일 그 언니 호출에 불려나갔음 ㅜㅜ 그러다 어느 날 박보살이 나한테 부탁을 하나 했음 그 달마도를 그리시는 법사님께 박보살 지인이 달마도를 부탁드렸는데 큰 액자가 지인 차에 안 실린다고 혹시 우리 엄마차에 실어서 배달을 한번만 해주면 안되냐는 거였음 박보살이 같이 가면 좋은데 그때 박보살이 대전에 있었을때라 갑자기 오기가 좀 힘들었음 그 법사님께서 관상도 잘 보시고 달마도도 효험있게 잘 해주신다기에 좀 궁금하기도 했고 박보살이 부탁을 잘 하지 않는 앤데 중요한 일인가보다 싶어 오케이를 함 (아빠가 사업을 하셨는데 달마도 그리는 분들 만나봬면 꼭 달마도를 받아오셨어서 우리 집이랑 아빠 사무실엔 늘 달마도가 많았음) 그리고 그 부탁을 받은 날도 마트 언니 호출에 불려갔는데 나 내일 엄마차 운전해서 어디 가야해서 일찍 집에 가야한다고 했더니 어디냐고 꼬치꼬치 캐묻는거임 그래서 달마도 실어서 어디 배달간댔더니 본인도 같이 가자고 계속 조르는거.. 그래 무슨 큰일이야 있겠나 싶어서 다음날 언니랑 같이 가기로 했음 대신 술 좀 덜먹고 자라고 ㅋㅋ 약속하고 말임 다음 날 그 언니를 태워서 법사님께 갔음 인사를 드리고 달마도 가지러 왔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법사님이 엄마차에 달마도를 실어주시고는 차 한잔 하고 가라시며 집무실에서 차를 내어 주셨음 초면에 차마 제 관상은 어떤가요 선생님~ 하고 여쭤볼 용기는 음스므로 ㅋㅋㅋ 다음에 박보살이랑 같이 와봐야지.. 생각 하는데 법사님이 나한테 그러심 "아이고 고집 디기 씨게 생겼다, 재주도 좋고 인복도 많다 초년 중년 말년 두루두루 좋구나 팔자주름하며 두툼한 손하며 돈 없이 살 사주는 아닌데 씀씀이도 크다 좋을땐 둘도 없는 호인인데 한번 돌아뿌면 또라이네" 하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네? 선생님?? 또라이라뇨 정말... 정답입니다 나는 한번 빡 돌아버리면 뭐 없음 끝까지 가야됨 예전일이고 우리가 실수한 일이긴 한데 클레임 건으로 연락을 받았을때 실수를 인정하고, 변경하기 보다는 정말 진심으로 1시간 넘게 사과를 드렸는데 고객이 그냥 작정하고 제대로 진상을 부린 적이 있음 따지고 보면 그렇게까지 화를 낼 실수는 아니었던거 같은데 그냥 화를 내기위한 핑계였음 레몬자몽청 580그램에 약도라지대추배청 580그램을 주문했는데 스텝 실수로 두 병 모두 1키로 짜리로 배송이 됨 본인은 큰사이즈 필요없다고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자기 냉장고에 큰 병 들어가는거 싫다고 완전 쌍욕까지 했음 당장 해결해내라고 그냥 막 난리를 치는거임 사과 필요없고 해결하래요.. 환불도 안된대요 지금 오늘 사이즈 잘못 된거 정정해주고 (케텍스 발송해서 퀵 쏘라고) 잘못 보낸 직원 무릎 꿇리고 사과 동영상 찍어서 보내라고 ㅎㅎㅎ 직원 무릎 꿇리라는 말에 내 이성의 끈이 뚝 끊겼음 전화기에 대고 지름 "야 내가 지금 경기도 광주로 580 사이즈 들고 출발할테니까 니 잘난 쌍판때기 한번 보자 면상 맞대고도 그따위로 욕하는지 한번 보고싶네?" 라고... 계속 사과하던 내가 세게 나가니 아차 싶었나봄 올 필요없다고 됐다고 됐다고 그러길래 나는 장사 접는 한이 있어도 니같은 년 버릇은 단디 고쳐주고 접는다고 오배송된 과일청들 챙겨서 경기도 광주로 바로 출발했음 가는 길에 계속 카톡이 오길래 씹었더니 다시 전화가와서 자기가 분노조절장애가 있대 오지 말래.. 충분히 설명이 되었다나 뭐라나ㅋ 아니 내가 이 상황이 설명이 안되네?? ^^ 니 집 주소 전화번호 이름 다 아니까 가서 얼굴보고 얘기해~ 하고 끊어버림 그 개진상 집앞에 도착했더니 어머나 뭐가 불안한지 마중을 나와 계셔요 집에 애들도 있고 남편도 퇴근해서 와있는데 동네 사람들 다 아는 사람들인데 시끄러워질까봐 나왔다고 ㅎㅎ 먼길 오게해서 미안하다고 이쯤하면 됐다고ㅋ 응? 내가 안됐어^^^^ 시끄러운거 걱정됐으면 그렇게는 안했어야지 아줌마?? ^^^^^^ 내 기분 드러벘던 만큼 갚을거야 어렸을때 누가 때려서 맞고 오면 엄마한테 멘탈이 탈탈 털리도록 혼났어 똑같이 때려주고 와야지, 등신같이 맞고 왔냐고. 자기가 어떻게 하면 되냐길래 내가 했던 것만큼 나한테 그리고 직원한테 사과하라고 했음 계속 미안해요 아유 미안해요만 반복하길래 앵무새냐고 진심을 폭 담아서 진지빨고 사과하라고 납득이 안가는 사과라고 지랄지랄해댔는데 지가 한거에 10분의 1도 안했는데, 난 시작도 안했는데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흘림 가만히 옆에 있던 쩐댑은 차마 참으라 소리는 못하고 계속 침착하라고만 ㅎㅎ 난 참으라 하면 더 돌아버림.. 내 승질 풀릴때가지 해대야됨 인생 뭐 있나 눈에는 눈 이에는 이지 어따대고 갑질이야 갑질이 결국 그 여자가 울면서 직원한테까지 전화하고 사과하고 나도 한시간 넘게 골때리게 해주고 옴 아! 다시 연락할일 없겠지만 다시 연락하면 두고보라고 해줬음 돌이켜 생각하면 정말 ㅜㅜ 내가 미친년이다 싶기도 하고 나도 정말 너무 했다 똑같이 하면 안됐던건데.. 싶은 마음이 들때도 있음 사실 그런 사람들 그냥 환불해주고 다시 정정해서 보내주고 오배송 됐던것도 드시거나 폐기 부탁드린다고 하면 그냥 넘어가는 블랙컨슈머들인데.. 나한테 하는건 괜찮음 근데 직원 건드리니까 돌겠는거임.. 군대 제대하고 복학하기 전에 부모님 부담 덜어드린다고 알바하던 친구였는데 얘가 막 쫄아서 너무 죄송하다고, 숨도 제대로 안쉬어 진다고 우는거임 그래서 내가 더 나섰던 것도 있는거 같음 (성질 드러븐 판매자 만나서 식겁해봤으니 다음에 다른 판매자에게는 절대로 그러지 않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고) 아무튼 이 글을 혹시라도 읽는다면 아주머니! 그때 진짜 너무 못됐게 굴어서 죄송했지만 다시는 누구에게도 그러지 마세요 직원도 판매자도 누군가에게는 정말 소중한 존재들이고요 물건 팔아주시는거 감사한 일이지만 돈을 지불하고 물건을 구매하는건 당연하고 정당한 행위인거지 당신의 감정 쓰레기통이 될 이유도 명분도 없는거니 하대하지 마세요! 왜 영화 극한직업의 대사가 생각이 날까요. "니가 소상공인을 잘 모르나본데, 우린 다 목숨걸고 해" 하 근데 참 내 글은 내가 봐도 너무 산만함 ㅠㅠ 무슨 법사님이 말씀하신 또라이 한 단어에 또라이 썰이 이만큼 풀리니.. 스크롤 압박 죄송죄송!! ㅎㅎ 암튼 그 법사님이 나를 봐주시고, 마트 언니를 보셨는데 아무 말씀도 안하시는거임 그냥 깊은 생각에 잠기신 듯 한참 물끄러미 언니를 쳐다보고 계셨음 그 언니가 약간 말도 빠르고 성격도 급하고 좀 촐싹맞은 구석이 많았는데 법사님이 입을 다무시니 계속 어쩌구 저쩌구 말해달라고 떼를 썼음 법사님께서 이런 일 하면서 업 쌓는 말을 하면 안되는거라고 처음 뵙는 객인데 내가 고민을 얹어주면 되겠냐시며 말씀을 안해주심 (음력 생년월일과 생시만 물어보셨음) 다만 팔아먹으려는 의도가 아니라 집에 꼭 달마도를 두면 좋겠다고 하셨음 근데 이 법사님께서 진짜 1년에 달마도 몇개 안 하심 듣기로는 어느 지역의 유지이셔서 본인 수양하신다며 작품 활동을 하시는거지 돈 벌려고 하시는건 아니라고.. 어떻게 보면 연줄이 없으면 갖고 싶어도 가지지 못하는 건데 마트 언니는 박보살 덕에 운이 좀 좋았던거임 솔직히 나라면 왜요 왜요 막 끝까지 여쭤봤을건데 그 말 많던 언니가 별다른 질문도 하지 않고 법사님께 달마도를 부탁드림 그리고 나도 슬쩍 부탁드리고 싶었는데 법사님이 너는 필요없다시며 안해주심 ㅜㅜ 작업 기간도 꽤 소요되어서 그로부터 3주 쯤 뒤에 언니는 달마도를 받게 되었음 그날도 내가 실어다 줌 ^^ 호구 인증 ㅋㅋㅋ 왜 호구라고 하냐면 그 언니랑 인연이 안좋게 끝났음 ㅎㅎ 암튼 언니가 뭐 달마도 실어주고 소개해줘서 고맙다고 한턱 쏜댔는데 그날도 나를 집으로 부르는거임 어김없이 그날도 만취 인 수다.. 멀쩡한 정신으로 남의 술주정 들어주는게 얼마나 힘든지 ㅠㅠ 진짜 기가 쪽쪽 다 빨리는거 같음 같은말을 듣다가 듣다가 지겨워서 나 집에 간다고 일어나는 순간 벽에 기대서 눈을 감을듯 말듯 하던 언니가 나한테 그랬음 "그래 가라가 이것아, 나 혼자 있어도 안 무서워" "읭? ㅋㅋ 다 큰 어른이 무섭긴! 문단속 잘하고 자면 되지~" 하고 별생각 없이 나는 집에 왔음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는데 이상하게 언니가 연락이 없는거임 또 매일 연락오다가 안오면 궁금하잖음 걱정도 되고 ㅎㅎ 그래서 마트를 슥 한번 가봤는데 언니가 엄청 밝은 얼굴로 인사를 했음 자기 요즘 술도 안마시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고 오 잘됐다~ (속으로 난 해방이다!!) 하고 다음에 밥 한끼 하자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아마 그날이 주말이었을거임 박보살이 대전에서 오는 중인데 달마도 법사님께 가보자고 전화가 왔음 역에서 박보살을 픽업해서 달마도 법사님께 가는 길에 박보살이 또 나를 혼냄 ㅠㅠㅋㅋㅋ 오지랖 넓은 년아 거 뭐하러 선생님한테 갈때 주렁주렁 누굴 달고 갔냐며.. 그래~ 그냥 일방적으로 내가 혼나는 사이지 뭐.. 우리 사이는ㅋ 잠시 뒤에 법사님이 작업하시는 곳에 도착을 했고, 같이 잘 왔다며 반갑게 맞아주셨음 달마도를 작업하시던 중이셨는데, 달마도도 다 같아 보이지만 그게 아니라며 각자의 염원을 작품에 담아주시는거라고 하셨음 엥 근데 마트언니는 염원하는거 안물어보셨는데? 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던 순간 "오늘 내가 박보살을 보자고 한건 니 그 같이 왔던 사람 때문이다" 라고 법사님이 말씀하심 자리에 앉아서 법사님이 하신 말씀은 이러했음 법사님께서 본인은 관상이나 사주를 보실수 있고, 작품에 염력을 담아내시는거지 신줄이 있어서 신통한 점으로 누구를 봐주고 할수는 없으시다고.. 다만 신줄로 보는게 아니더라도 그 언니는 귀문관살과 칠성줄이 세고 무언가가 조짐이 있던게 꽤 된것 같아 보인다고 하셨음 인연이 안 닿았으면 모를까 인연이 닿고도 모른척을 하면 그것이 부처님 제자의 도리겠냐며 그래서 박보살을 좀 보자고 하셨다는 거임 그니까 박보살이 ㅜㅜ 나를 혼낸건 이유가 있는 거였음 사실 뭐 내가 엄청 귀하게 여기고 소중한 사람이라면 박보살이 당연히 도와주고 신경써주지만 몇번 내가 그 언니가 나를 너무 힘들게 한다고 말했던 적이 있었어서 박보살이 그 언니를 좋게 보진 않았을거임 사사로운 그런 인연까지 다 힘써주고 챙겨주기에는 박보살도 사람인지라 힘든 일인건 사실이니까 나한테 잔소리를 조금 했던거였음 그리고 아마 내가 걱정되는 마음도 컸을거임.. 왜냐면 자기 같은 친구 있는걸 알아서 그런 사람들이 더 잘 붙는거 같다고 혹시나 나한테 해가 될까봐 늘 걱정을 하기 때문임 무튼 박보살이 존경하는 법사님께서 내리신 특명이니~ 그 언니를 일단 박보살이 봐야하지 않겠음? 우리의 박보살!! 의리의 떠블리 ㅋㅋㅋ 근데 또 내가 좀 고민이 됐던게, 요즘에야 내가 장사를 하고 많은 분들을 만나고 하다보니 거의 떠블리 = 박보살 친구 이렇게 아시는 분들이 워낙 많으신데 진짜 오프라인 인연은 내가 박보살에 ㅂ자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음 특히 그때는 더더욱 좀 숨겼던? 시기임 "아 이걸 그 언니한테 어떻게 말을 하지요?" 라고 했더니 법사님께서 "갸도 (걔도) 알고 있다" 하셨음 흠 ㅜㅜ 일단 그렇게 말은 들었지만 고민은 계속 되었음.. 그래도 뭐 부딪혀보자~ 싶은 마음에 (언제는 안 부딪혔니 ㅋㅋ) 마트로 언니를 보러 바로 찾아감 내 착각인지 뭔지 그 언니한테 확인은 안해봐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언니가 박보살을 보고 뭔가 그 눈빛이.. 뭐랄까 당황하지는 않았어, 예상은 했으나 좀 놀랐고 그렇지만 올게 왔다?? 아 ㅋㅋㅋ 뭐라고 설명을 해야하나 진짜 뭐 "오 니 친구야?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이런건 절대 아니고 "처음뵙겠습니다 이렇게 빨리 만나게될 줄은.." 이런 느낌?? 무튼 언니가 퇴근할 무렵이었어서 내 차를 타고 셋이 같이 동네 카페엘 갔음 박보살이나 나나 돌려서 말하는 거 못하는 성격이라 박보살이 바로 직설적으로 말을 함 법사님께서 이러이러하다셔서 한번 뵈러 왔는데 지금 영가들을 직접 보는 상황인지, 집에 대물림 신줄이나 공줄이 있는지 등등 그 언니가 말한 본인의 상태는 보이지는 않는데 너무너무 잘 들린다고 자기가 자려고 누우면 귀신들끼리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고 원래는 이렇게 자주 들리지는 않았는데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하고 나서부터는 매일매일 들리고 엄청 많은 영혼의 목소리가 들린다고.. 사실 그래서 매일 술 마시고, 혼자 있기가 무서워서 강아지도 기르고, 누구를 불러서 같이 있던 거였다고 함 누구랑 같이 있으면 안들리는데 혼자 있으면 들려서 이게 뭔지 본인도 정확히는 모르겠다고.. (나는 여기서 좀 빡침.. 그래서 이 순진한 먹는거 밖에 모르는 나를 야식으로 꾀어냈냐 이 언니야!!) 특히 어떤 목소리는 아주 낮고 묵직한 저음으로 '잘자라 우리 아가' 이 자장가를 하염없이 부른다고 하는거임 최근에 너무 무서워서 나를 계속 집으로 불렀던 때에는 자려고 눕기만 하면 잘자라 우리 ㅇㅇ이~~ (그 언니 이름) 하며 언니를 만지는 기분이 들었다고 함 그게 박보살 말로는 들리기 시작하던 보이기 시작하던 초기에 바로 잡아야 했던 문제를 오랫동안 안고 가게 되니 음지에 더 많이 더 빠르게 어둠이 드리우듯이 육체와 정신이 서서히 잠식당하게 된다고 함 왜 빨리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냐 물었더니 사실 언니의 엄마도 이런 문제가 있었는데, 가족들이 다른 종교를 믿고 있고 엄마의 극심한 호소에 무속인을 찾아가보기도 했으나 나아질 기미가 없으니 엄마를 정신병 환자로 치부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게 했다는 것임 처음에는 언니도 엄마가 이상하다, 정신적으로 나약하다, 더 나아가서는 미쳤다 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게 본인에게 와보니 정말 무서웠고 엄마한테 미안했고 그리고 가족들이 본인도 정신질환 환자로 치부할까봐 겁이 났었다고, 그게 제일 두려웠다고 함 무당집이고 절이고 안 찾아가 본 것도 아니고 혼자 벌어서 먹고 사는데 해볼수 있는건 다 해봤었고 그러다 내가 우연히 친구 심부름을 간다고 하는 걸 들었는데, 달마도 이야길 하니까 그때 왠지 너무너무 따라가고 싶었다고.. 달마도도 자기 형편에는 큰 부담이었지만 그래도 이 기회를 놓치면 안될 것 같단 생각에 무리해서라도 장만을 한것이며, 달마도를 들이고 부터는 잠을 너무너무 잘자고 이상한 소리도 안 들린다고 언니가 말을 함 일단 박보살이 달마도가 얼마나 언제까지 액운과 잡귀를 무를지는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니 언니의 집에 방문을 해봐도 되겠냐고 물었고 언니는 굉장히 고맙게 여기며 그 제안을 받아들임 (박보살이 박보살이고 그런 영적인 감과 촉이 좋은 사람인걸 따로 설명을 하지 않았지만 언니도 직감적으로 알아본 듯 했음) 언니의 집에 도착을 해서 박보살이 집터 바깥쪽을 둘러보는데 (원룸 건물) 특정한 방향을 가르키며 언니네 집호수가 혹시 이 쪽이냐고 박보살이 물었음 그 쪽 방향이 맞다고 하니 터가 세고 분명 수맥이 흐르는 느낌이라고 이건 본인도 풍수를 정확히 모르지만 이사오고 나서 들리는 목소리가 더욱 많아지고 횟수도 빈번해진 것은 이 집 내에 분명 많은 영가가 있어서 일거라고 했음 언니네 집이 그 건물의 1층 제일 끝쪽에 있었는데 공용 현관으로 들어서자 이미 너무나도 음산한 기운이 있다고.. 박보살이 계속 춥다며 본인의 팔을 보여줌 완전 닭살이 다다닥 돋아있는걸 보고 나도 직감적으로 알아차림 여기 진짜 뭔가가 있구나 집 안을 살펴보기로 하고 우리가 집에 들어가니 강아지 세마리가 너무너무 우리를 반겼는데 사실 중형견 세마리랑 같이 살기엔 좁은 집이었어서 세녀석이 꼬리흔들고 왔다갔다 하면 맨날 물그릇도 엎어지고 그랬었단 말임 그날 내가 좀 며칠만에 간거라 애들이 완전 흥분을 해서 물그릇 이미 다 엎고 난리가 났었음 제일 활발했던 1번 강아지가 신나면 막 벽에 발을 구르고 하는 애였는데(번호로 말하겠음.. 이름이 좀 특이해서 혹시 그 언니 지인이 알아볼까봐서임) 집에 들어갔더니 마트 언니가 벽에 세워둔 달마도를 1번 애기가 발로 구르는 바람에 달마도가 앞으로 확 넘어지고 말았음 그 순간에 언니랑 나는 액자가 깨질까봐 그리고 강아지가 다칠까봐 어어어~ 하고 박보살도 어어어!! 소리를 지름 난장판이 될 뻔 했지만 다행히 액자는 깨지지 않아서 다시 액자를 세워놓고 언니한테 물었음 못을 박야야지 왜 위험하게 바닥에 기대어 놓았냐고.. 그랬더니 집주인이 집에 못을 박지 말라고 해서 달마도를 벽에 기대서 세워놓았댔음 (세입자의 비애...) 근데 박보살은 본인 살이 찢어져서 마취없이 꿰맬때에도 아 소리 한번 안내는 사람인데 액자가 넘어지는 순간 같이 어어어 하길래 어머 얘도 이런 일에 놀라는구나~ 싶어서 "야 근데 니도 놀랄때가 있네" 했더니 돌아온 답변이 나를 그 자리에 있을 수 없게 만들었음 "야 액자 넘어지는데 액자 뒤에서 귀신들이 수두룩 빽빽하게 튀어나오더라" 박보살 설명에 의하면 아마 달마도가 있기 전에 그 집에 갔었다면 바로 영가들을 봤을거라고 함 그런데 달마를 모시고 나서 달마의 염력 앞에서 영가들이 활개를 칠 수 없으니 모두 액자 뒤에 숨어 있었나 보다고.. 처음에 집안이 생각보다 안 흉흉해서 이거 뭐지? 하는 순간 그 사단이 났고 무슨 경주마 달리듯 휙휙 빠져나오는데 불꽃놀이 하는 줄 알았다고 함 그래서 깜짝 놀란거라며 이 집에 머물던 영가도 많고, 언니가 데려온 영가도 많다며 언니는 빠른 시일내에 이사도 하고 영가천도든 굿이든 하는게 좋다고 함 언니가 당장 그런걸 할 형편이 안된다고 해서 일단 박보살이 봤을때 괜찮은 방향 쪽으로 이사부터 하라고 했음 그리고 비용이 부담이면 7월 백중에 합동으로 영가 천도를 하면 큰 부담없이 할수 있다고 기도 정성껏 잘 올려주시는 곳도 알려줬음 그 언니 집에서 나와서 박보살이 나한테 절대로 그 집에 가지 말라고.. 언니가 이사를 하더라도 언니를 좀 멀리 하라고 신신당부를 했고 그 이후에 언니가 이사를 하게 되면서 직장도 옮기고 자연스럽게 사이가 멀어졌음 근데 이 언니가 알고보니 뒤에서 내 험담을 진짜 많이 하고 다녔다는걸 나중에 알게됨 (마트 사장님이랑 사모님이 왜 그렇게 등신짓 했냐고 내 등짝을 막 때림 ㅜㅜ 왜 태워다니고 뭐 사먹이고 했냐고..ㅎㅎㅎ) 어휴 이제 와서 내가 따지고 싸워봤자 뭐하겠나 싶어서 그냥 잘사쇼 행쇼~ 하고 말았는데 몇년 뒤에 다른 친구가 아버지 건강때문에 그 법사님께 달마도를 부탁드리게 되었을때 법사님을 다시 뵙게 되었음 하.. 근데 이 썩을년 달마도 가격이 만약 100만원이면 50만원 밖에 입금을 안했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완전 도둑년 ㅠㅠ 진짜 법사님께 너무너무 죄송하고 부끄러워서 내가 온 몸이 홍당무가 되었었음 법사님은 한사코 거절하셨지만 내가 그러면 다시는 법사님 못 뵐거라고 우겨서 결국 나머지 금액은 내가 법사님께 드렸음 아마 이 이야기 읽으면 그 언니도 알거임 이 이야기를 못 읽더라도 평생 어쩌면 마주칠까 싶어서 괴로울거고 진짜 우연히 보게 된다면 엄청 부끄러울 일이라는걸.. 난 그거면 됐다고 생각함 맨날 허허실실 좋은게 좋은거지~ 해서 주변 사람들 다들 나한테 호구라는데 호구가 마음은 편함 ㅋㅋㅋ 아 그리고 내가 올해 쩐댑 생일 선물로 달마도를 하나 부탁드려서 받았음 (이건 그 법사님 아니고 그냥 인연이 닿은 곳이 있어서 구입했음) 예전 글에도 있는데 쩐댑이 가위를 엄청 자주 눌렸었음 근데 나를 만나고는 단 한번도 가위를 눌린 적이 없었어서 나한테 액막이라고 ㅋㅋㅋ 박보살이 놀리곤 했었음 근데 그게 단순히 내가 호위무사처럼 지켜줘서 쩐댑이 몸에 와닿게 가위를 눌리거나 탈이 난 건 없지만 우리 집 터가 세서 쩐댑 몸이 조금 힘들다고 함 병든 닭처럼 좀 비실비실하고.. 몸살도 잘 오고 말임 또 담이 그렇게 잘 걸려서 엄청 고생을 하는거 ㅜㅜ 그래서 집에 달마를 모시면 좋다고 해서 모셔왔는데 모셔오고나서 담이 한번 진짜 씨게 옴 목도 못 돌릴 정도로.. 이게 우리 집의 대주인 쩐댑과 달마가 합을 맞추는거라는데 한번 고비를 지나고 나니 요즘 쩐댑이 잠을 엄청 푹 잘자고 (원래 불면증이 있음) 나랑 엄마는 선몽을 자주 받음 이거는 박보살 썰이라고 풀기에는 단편적인 일들이라서 에피소드로 엮기에는 너무 짧은데 말도 안되게 선몽 주신게 잘 들어맞고 조그만한 화라도 잘 피해가서 진짜 너무 만족함 잇님들도 혹시 달마를 그리시는 분들을 우연히 만나게 되시면 작은 달마라도 하나 꼭 장만하시면 좋을거 같음 그럼 저 이제 자러 가볼게요!! 정신없이 쓴 글이라 오타나 맞춤법 양해 부탁드릴게요 ^^ 이제 날씨가 제법 선선해졌어요 큰 명절이 다가오네요~~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손자 손녀 친정 시집 모두모두 행복한 한가위 되시길 바랍니다!! [출처] 박보살 22편|작성자 스윗떠블리 ________________________ 오랜만에 읽으니 정말 반갑고 그러네 거 사람들 참 하지 말라는 걸 자꾸 하려고 하고 말이야 도와주려는 사람을 등쳐먹으려고 하고 말이야 너무 못됐네 ㅠㅠ 처음에는 '이상한 소리 자꾸 들리니까 혼자는 무서워서 사람을 부른 건데 얼마나 무서웠을까 하고 생각해야지 그걸 왜 이용했다고 생각하는 거지'라고 잠시 떠블리님이 너무 한다 싶었는데 읽어보니 나쁜 언니야였군... 그라믄 안돼~ 그나저나 달마도가 좋은 거로군... 내 동생도 가위 종종 눌리는데 엄마방에 있는 달마도를 동생 방으로 옮기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고 ㅎㅎ 그나저나 오늘은 세월호 참사 6주기로구나 앞으로 다시는 그런 억울한 죽음이 없었으면 좋겠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있으니, 남은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어쩌면 자신의 일이 될 지도 모를 우리를 위해서라도 잊지 말고 진상이 밝혀지도록 계속 지켜보고 있어야 할 거야. 잊지 않겠습니다. *친절한 옵몬의 죄다 링크* 퍼오는 귀신썰) 박보살 이야기 - 1탄 http://vingle.net/posts/2070004 퍼오는 귀신썰) 박보살 이야기 - 2탄 http://vingle.net/posts/2070812 퍼오는 귀신썰) 박보살 이야기 - 3탄 http://vingle.net/posts/2071061 퍼오는 귀신썰) 박보살 이야기 - 4탄 http://vingle.net/posts/2071094 퍼오는 귀신썰) 박보살 이야기 - 5탄 http://vingle.net/posts/2072568 퍼오는 귀신썰) 박보살 이야기 - 6탄 http://vingle.net/posts/2072624 퍼오는 귀신썰) 박보살 이야기 - 7탄 http://vingle.net/posts/2073962 퍼오는 귀신썰) 박보살 이야기 - 8탄 http://vingle.net/posts/2073977 퍼오는 귀신썰) 박보살 이야기 - 9탄 http://vingle.net/posts/2074473 퍼오는 귀신썰) 박보살 이야기 - 10탄 http://vingle.net/posts/2074846 퍼오는 귀신썰) 박보살 이야기 - 11탄 http://vingle.net/posts/2074876 퍼오는 귀신썰) 박보살 이야기 - 12탄 http://vingle.net/posts/2074896 퍼오는 귀신썰) 박보살 이야기 - 13탄 http://vingle.net/posts/2074911 퍼오는 귀신썰) 박보살 이야기 - 14탄 http://vingle.net/posts/2074946 퍼오는 귀신썰) 박보살 이야기 - 15탄 http://vingle.net/posts/2074952 퍼오는 귀신썰) 박보살 이야기 - 16탄 http://vingle.net/posts/2074971 퍼오는 귀신썰) 박보살 이야기 - 17탄 http://vingle.net/posts/2075014 퍼오는 귀신썰) 박보살 이야기 - 18탄 http://vingle.net/posts/2075037 퍼오는 귀신썰) 박보살 이야기 - 19탄 http://vingle.net/posts/2075046 퍼오는 귀신썰) 박보살 이야기 - 20탄 http://vingle.net/posts/2132502 퍼오는 귀신썰) 박보살 이야기 - 21탄 http://vingle.net/posts/2521202
[퍼오는 귀신썰] 10년간 제삿상 받은 꿈 꾼 썰
오늘은 날씨가 참 좋다 그치. 덥지도 춥지도 않고 날도 맑고 바람도 좋고 매일 오늘같기만 했으면 좋겠을 날씨네. 괜히 기분이 좋아서 오랜만에 가져오는 귀신썰! 오늘은 귀신썰이라기보다는 꿈 이야기야. 꿈이야기가 다들 그렇듯 해석의 여지가 많지. 이런저런 궁예가 가능할 것 같아서 같이 읽어보고 싶었어. 시작해 볼까? _______________ 걍 다 추측이고 확실한 것도 없음. 패드립같아서 창조주한테도 해본적 없는 얘기인데 익명사이트니까 풀어봄. 글 존나못씀 주으;ㅣ... 1.친가의 남자 대창조주는 나한테 엄청 잘해줬음. 아직도 생각나는게 내가 매번 큰집에 갈때마다 내 손 잡고 같이 슈퍼가서꿀꽈배기(당시 가장 좋아하던 과자)를 사줬던 기억. 그래서 나는 남자 대창조주를 되게 좋아했음. 양가 대창조주 얘기 다나올거라 앞으론 걍 친조부라 할게. 근데 어린 마음에도 느꼈던게 좀 비위를 맞추듯이?? 예뻐해줬던거같음 그니까 어린애가 버릇없이 굴거나 그러면 혼내야되는데 막 아이구 왜 그럴까 우리 아가씨 왜그럴까 이러면서 굽신굽신 달래듯이 달랬었음. 그래서 더 어리광부렸던것도 있고 아무튼 나야 잘해주니까 당근 좋아했음. 2. 처음 이 꿈을 꾼 게 몇 살때인지는 기억 x. 아무튼 초급식 때였던건 맞음. 화이트톤에 모던한 분위기의 공간이었는데 아마 창조주들이 이런 분위기의 카페 단골이라 그런 꿈을 꾼거같음. 이런 느낌의 공간. 근데 액자나 뭐 그런건 하나도 없고 그냥 햇빛 쨍쨍하게 들어오는 하얗고 텅 빈 공간 한 가운데 커다란 제삿상이 있고 거기에 제사음식이 푸짐하게 차려져 있었음. 그리고 그 옆엔 무슨 국드 하늘성 엄마로 나올법한 하얗고 인상 좋은 여자가 무릎꿇고 앉아있었음. 아직도 기억나는게 제삿상의 음식들은 그냥 평범한 제사음식들이었는데 약과랑 옥춘당 옆에 꿀꽈배기가 있었던거. 나붕은 제사음식을 딱히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그냥 편육이랑 동그랑땡 몇개, 약과랑 꿀꽈배기만 집어먹고 끝냄. 음식은 거의 다 남았고. 내가 다 남기고 걍 손 닦으니까 여자가 약간 떨떠름한데 억지로 비위맞추려고 웃는 표정 지으면서 뭐 쓸데없는 부모님 안부 얘기같은거(기억안남) 하다가 "애기씨~ 문을 열어도 될까요?" 이러는 거야 근데 그냥... 그냥 왜? 굳이? 햇빛도 좋고 기온도 딱인데 문을 꼭 열어야하나?? 이런 마음이 들어서 아니. 열지마~ 이러고 꿈 깸. 그리고 이 후로도 초급식~중급식 동안 비슷한 꿈을 세네번 꿨는데 그냥 제삿상 메뉴 조금씩 바뀌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것만 먹고 다 남기고 여자는 똑같은거 물어보고 그때마다 문 열지 말라고 하고 넘어감. 3. 여창조주가 남창조주랑 얘기하면서 친조부가 나붕 좋아하는게 진짜 이상하다고 대화하는걸 엿듣고 전혀 몰랐던걸 알게됨. 친조부가 여창조주를 어어엄청 싫어했대(이땐 이유를 말 안해줌.) 그래서 결혼도 반대했고. 정 결혼하고 싶으면 연끊자고 친가 오지 말라그랬대. 그 때문에 결혼 후 단 한번도 친가 간적 없었는데 나붕 태어나고 갑자기 친가에서 부르더래 어떻게 애가 태어났는데 한번을 안와볼수가 있냐면서(이상한게 윗혈육 태어났을땐 아무말 없었대) 그래서 나 태어난 후부터 친가 들락거리기 시작한거. 그걸 듣고 곰곰히 생각해보니까 진짜 친조부가 내 여창조주랑 윗혈육한텐 말거는걸 한번도 본적이 없는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알고보니 친조부가 진짜 이상한 사람이었구나 싶으면서도 내가 존나 매력이 쩌나보지 하고 넘어감 4. 고급식 입학해서 또 그 꿈을 꿨는데 이 때부터 뚜렷하게 기억함. 모든 게 위의 상황이랑 똑같은데 음식이 아예 바뀜. 뭘로 바뀌었냐면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음식들로 싹 바뀜. 그 때 샌더스할배치킨집 단골이었는데 치킨불고기버거랑 에그타르트, 비스켓이 제삿상 과일 쌓아놓는 모양새 그대로 올라와있고 당시에 피자굼ter라는 피잣집에서 고구마피자 맨날 사먹었는데 그것도 네장이나 쌓여있었음(치즈크러스트로). 그리고 동네에 콜팝치킨 파는게 있어서 자주 사먹었었는데 콜팝치킨이랑 콜팝치즈도 있었음. 보통 제삿상 올릴떄 물그릇 올리는 자리엔 콜라가 놓여져있고. 막 그걸보니까 머리가 하얘지면서 식욕이 미친듯이 돌아갖고 막 정신없이 허겁지겁 먹음. 햄버거 한 6개가 올라가있었는데 그것도 다 먹고 에그타르트도 15개가 넘게 있던거 바삭바삭 다먹고 피자도 조각조각 먹지않고 한판을 그대로 무슨 전 먹듯이 베어먹음. 콜팝치킨도 손으로 걍 쥐어서 와구와구 먹다가 제기 위에 몇개 안 남은거 제기 들어서 탈탈 털어먹음. 중간중간 콜라 마셔가면서(콜라가 안 줄어듦) 그걸 다 처먹음. 그리고 이제 후식으로 마지막 남은 비스켓을 먹기 시작했음. 근데 먹어본 붕들은 알거임 그거 딸기잼이랑 같이 먹는거거든. 근데 딸기잼이 하나밖에 없는거야. 그래서 비스켓을 다섯개인가 아무튼 꽤 많이 남김. 그래도 비스켓 빼고 나머지 음식은 싹싹 다 비움. 여자는 또 떨떠름한 표정으로 "애기씨~ 문을 열어도 될까요?" 이러는데 막 배도 부르고 기분이 좋으니까 바람 쐴겸 열까? 나가서 산책이나 할까? 싶어서 좀 고민하다가 그냥 누워있는게 더 좋을거같아서 열지말라고 하고 누움. 그리고 깸. 5. 창조주들의 결혼 당시의 상황에 대해 자세히 알게됐는데 자세한건 너무 구구절절 ㅅㅌ이라 말할 수 없고 걍 여창조주 집안이 딸려서. 친조모가 여창조주보고 천한 꽃뱀년이 아들을 꼬셨다 뭐 이런식으로 말한적도 있다고함. 게다가 외조모도 친가가 우상숭배하는 사탄의 자식들이라고(기독교인이심..) 결혼 반대해서 당시에 거의 파혼 직전까지 갔다가 본인들 의지가 강해서 결혼했다고 함.  여창조주가 들은 결혼과정에서 겪은 인격모독이 내 상상초월이었고 그 일로 친조부에 대한 내 안의 이미지가 확 나빠짐.  5. 2년만에 저 꿈을 또 꿈. 피자학교 퀘사디아 피자에 확 꽂혀있었는데 비프퀘사디아피자 네 장 치킨퀘사디아피자 네 장 이렇게 쌓여있었음. 또 내가 그 때 회/초밥에 환장할때였는데 광어회/연어회/도미회(끝내줌) 세개가 각자 제기에 진짜 높이 쌓여있고 연어초밥도 둥글게 과일쌓아놓듯 쌓아놓음. 인상깊었던게 내가 회는 초고추장에 찍어먹고 초밥은 간장에 와사비 풀어서 찍어먹거든. 근데 제삿상 사이드에 초고추장이랑 와사비 풀어놓은 간장이 국그릇 두 개에 각자 담겨있었음. 그래서 저번 딸기잼처럼 부족할 걱정없이 다 먹음. 그리고 파스타도 올라와있었는데 내가 크림파스타는 싫어하거든. 근데 딱 아마트리치아나/치즈오븐스파게티/미트볼스파게티 이렇게 토마토 스파게티만 세개가 있었음. 그래서 또 환장하고 이걸 다처먹음. 배부르고 배고프다는 감각보다는 맛있다는 감각밖에 없어서 그냥 회도 한움큼 손에 가득 쥐어서 초고추장에 찍어먹고 파스타는 그냥 제기째로 들고 입에 막 우겨넣음. 그렇게 상을 인생 처음으로 깨끗이 비워봄. 제기 내려놓고 딱 누우니까 옆에 여자가 막 무릎걸음으로 다가와서 잘하셨다 배부르시겠다 뭐 이런 비위맞추는 말 한참 하면서 팔 주무르고 다리 주무르고 하더니 생글생글 웃으면서  "애기씨, 그럼 이제 진짜로 문을 열까요?" 이럼. 근데 그 때 딱 그치, 열어야지. 그런 생각이 팍 드는거야. 설명하려니까 잘 못하겠는데 엄청난 확신? 문 열면 바람도 살랑살랑 들어올거같고 바깥 공기도 좋아보이고 막 문을 열어야만 한다는 확신이 마음속에 가득 참. 그래서 문을 열라고 하니까 여자가 갑자기 깔깔깔깔깔깔깔깔 웃으면서 진짜 미친 속도로 달려가서 문을 엶. 그때서야 안건데 여자가 국드 하늘성에 나오는 엄마들같이 입고 있다 그랬잖아 근데 신발이 버선발이었음. 그리고 문이 열리면서 밖에 있던 사람들(먹을땐 아무도 안보였는데 어디서 나온건지)이 우르르르르르르르 들어오면서 딱 꺰. 그렇게 꿈에서 깨고 막 갑자기 엄청 땀이 남. 이때까지 왜 그 꿈에 대해 이상한걸 하나도 못느꼈지? 왜 그냥 얌전히 그거 열심히 처먹고 문여는게 뭔지도 안물어보고 그렇게 살았지??? 싶었음. 심란한 마음에 그냥 개꿈이겠거니 하고 다시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친조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 들음. 너무 놀라서 꿈에대해 걍 잊어버림. 아무리 이미지가 안좋아졌다해도 날 예뻐하던 사람이고 사이도 좋았으니까 슬픈 마음만 갖고 장례식장에서 보냈음. 근데 장례식 둘째 날에 갑자기 장례식장에 외조모가 오심. 조문 오셨구나 했는데 나를 데려가야겠대. 그래서 남창조주가 무슨 소리냐고 화내니까 하나님이 나한테 보여주시길 마귀가 내 손녀랑 있다고 느그 애비한테 마귀가 붙어서 그런거같다(불꽃 패드립.. 여창조주가 친가한테 워낙 구박을 받아서 외조모도 남창조주 안좋아함) 뭐 이런말해갖고 남창조주랑 진짜 진탕 싸우고 결국 나는 매장할때 다시 오기로하고 외조모네 집으로 감. 그렇게 외조모랑 버스타고 가는데 나한테 하는말이 마귀가 니 앞에서 지옥문을 여는걸 내가 봤디. 이러더라.......... 그 후로 별일 없긴한데 아직도 내가 그 문을 안 열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싶은 생각함. 사실 친조부가 나한테만 잘해준 이유는 그 꿈을 내가 꿀걸 알아서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하고. 음식도 음식인데 친조부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진게 문을 열게된 결정적인 계기가 아닌가도 싶고 아니면 걍 다 추측이고 외조모가 친조부가 너무 미워서 그런거고 꿈은 걍 내가 존나 식탐충이라 그런걸수도 있고.... [출처] ㅅㅌㅁㅇ괴담은 아닌데 햎에서만 말해보는 얘기 ___________________ 뭘까. 정말 쓰니 생각대로 꿈 때문에 모든 일이 벌어진 걸까? 잘 아는 사람 있으면 이야기해주면 좋겠다! 어쨌든 쓰니는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겠군 ㅠㅠ
퍼오는 귀신썰) 할머니한테 들은 증조할머니 이야기 -1-
기온을 보니 정말 봄이구나. 이렇게 좋은 봄날에 밖을 나가기가 조심스러워 날씨를 즐길 수도 없네 따뜻해 졌으니까 귀신 이야기나 같이 보자! 오늘은 그냥 잠자기 전 할머니한테 옛날 이야기 듣는 느낌으로 가볼까? ____________________ 1. 옛날에 문경시라고 이름바뀌기전에 점촌시라고 불렸어. 안불정이란 동네에 운암사라는 절이있는데.(지금도 있다.) 거기에 떡보살님이라는 용한 여자 점쟁이가 증조할머니셨다.당시 할머니는 7살인가 학교갈떄까지만 절에서 지내기로 했었어. 하루는 안동에사는 젊은 연인이 점을 보러 왔었어. 그런데 증조할머니가. 연인이 집안으로 들어오기도 전에 팥을 뿌리고 막 내쫒았어. 썩 나가라면서 죽은 사람은 점을 보면 안 된다고. 어리둥절했겠지. 자신들은 그저 결혼을 앞둔 연인이었고, 우리가 잘 살겠냐는둥 그런걸 물어보러 온 거였거든. 어쨋든 뭐 이런대가 다있어 하면서 젊은 연인은 돌아갔지. 몇일이 지나고 안동에선 독립운동이 한창일어났어.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던 젊은 연인중 남자가 독립시위대와 맞닿은 일본순시군간에 재수없게 엮여서 일본순사 총에 맞아서 그만 죽고 말았어. 여자는 3일장을 지내고 하염없이 슬퍼하다가 문득 몇일전에 점을 보러 갔던 떡보살을 떠올리게 돼. 그래서 찾아갔더니 증조할머니께서 묵묵히 들어오라고 했어. 자기 남편이 죽었는데, 당시에 당신이 죽은 사람은 점을 보면 안 된다고 했던 것이 생각이 나서 왔다.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고싶다면서 증조할머니께 한탄을 했다더라. 그러니까 할머니고 착잡한 표정으로 여자를 다독이면서 말해주었대. 사람은 죽기전에 혼이라는게 반 미쳐버리는데. 당신은 들어올때 당신의 혼도 똑같이 걸어 들어오는데, 당신 남편이 될 남자가 들어올때 그 남자의 혼이 물구나무를 서서 걸어오더라는 거야. 2. 용추계곡에 백사 문경시에는 용추계곡하고 쌍용계곡이라는 아주 좋은 계곡이 두군데가 있어. 지금도 피서철만 되면 발디딜틈이 없을정도로 사람들이 가득 오기도 해. 용추계곡은 용소라고 용이 나온 곳 같은 깊은 담소가 하나있고 쌍용계곡은 두개가 있어. 어릴적에 증조할머님이 놀러갔을때 겪은 것을 할머님이 얘기해주신거야. 증조할머님이 영접이 잦고 령감이 세서 그런가 하는 이야기마다 좀 무서운 편이었다고 해. 1932년도에 당시 진성 '이'家 집안이 율곡 이이쪽 집안이어서 문객이 많고 글을 잘쓰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로 이루어진게 유림회? (이게 맞을듯)그 분들 일가가 용추계곡에 놀러왔었다고해. 어른들은 바위에서 글 (서예)같은 것을 쓰고 유림학당 어린애들은 물에서 물장구 치고 놀았어. 증조할머님도 자제분들 데리고 용추계곡에 놀러갔었는데 전날 비가 많이 와서 그랬는지. 유림학당 어린애 하나가 물에 빠져서 떠내려가버려. 그러다 멈췄는데 하필 그부분이 용추계곡에서 제일 가파르고 깊은 담소였어 전에 비가와서 그날은 더했지.물에 고개만 나왔다가 잠겼다가 반복하면서 살려달라고 하는데도 섵부르게 들어가면 위험하니까 다들 구하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어. 그러다가 한 젊은 이家청년이 옷을 벗고 묶어서 던졌는데 아이가 잡지도 못하고 어우적 거리니까. 결국 자기가 물에 뛰어들었어. 물살이 안으로 역류하는 부분이어서 청년도 잠겼다 나왔다 했지만 청년이 심성이 침착한 편이었는지 결국 애를 끌어안고 뭍까지 나왔어. 나오고 보니 발에 고슴도치에 찔린것 처럼 핏구멍이 수십개가 나있었는데 물에 빠졌던 아이도 마찬가지였어. 둘다 미동도 없이 숨만 약하게 쉬고있었고 사람들은 모여서 괜찮냐고 물어보던 찰나였지. 그런데 난데없이 증조할머님이 가서 발에난 핏구멍에 입을 가져다대고 빨아내고 뱉고를 해. 몇번 반복한 뒤에 유림회에서 사용하던 먹을 가져다가 갈아서 그 부위에 부었어. 사람들이 뭐하는짓이냐고 탓을 했는데 갑자기 아이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벌떡 일어났어. 울면서 엄마를 찾았지. 그런데 청년은 숨을 깔딱깔딱 쉬다가 결국 죽게돼. 증조할머니가 침울하게 말하길 저기 용추계곡물 밑에 허연 뱀떼들이 빠진아이와 청년을 막 물고 당기고 했었고, 아무도 눈치를 못 체고 자신만 본 것 같아서. 범상치 않은 뱀이구나 해서 입으로 빨아내게 되었다는 거지. 결국 청년 시신은 유림회에서 수거해가고 증조할머니는 용추계곡 제일 깊은 곳에서 제를 지냈다고 해. 몇일 뒤에 유림회에서 사람하나가 증조할머니를 찾아 운암사로 왔어. 굉장히 표정이 안좋았다고 해.살았던 아이도 다리를 절더니 몇일째 심한 고열 때문에 아프다고, 근처에 병원도 없고 증조할머니가 용한 보살이니 도움을 달라고. 해서 증조할머니께서 가 보니 아이가 시름시름 앓고 있는데, 입으로는 계속 날좀 꺼내달라고, 꺼내달라고, 하더래. 낌세가 이상해서 아이가 빠졌던 곳으로 가서 마을사람들과 같이 긴 장대로 담소 속을 헤집으니 시체가 무려 8구나 나왔는데 날카로운 산돌에 갈리고 물고기에게 뜯기고 해서 손은 손바닥위로 손가락들이 뾰족한 백골이고, 실제론 그리 깊지 않았는데 안으로 파고드는 물살때문에 시체가 썩어 나온 시독이 흘러가지 못하고 담소 밑바닥에 고여서 밑물이 새카맣게 안보이게 되서 깊어 보였던 거지. 시체를 다 건지고 다시 한번 마을 사람들과 수신제를 지내고 나니 아이가 나았다고하더라. 여담인데 나중에 증조할머니만 알고 당시 사람들에게 안알려준 내용이 있었는데 죽은 청년하고 아이가 물렸던 그 자국이 백골이 된 날카로운 손가락뼈에 찔린 자국같았다고 해. 3. 주인찾는 묘지 6. 25가 끝나고 휴전인 상황에서 문경 점촌은 이름없는 묘지가 굉장히 많았어.이유인 즉슨 문경이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을 끼고있고, 부산으로 산맥을 타고 갈 수 있는 유일한 요충지였으며, 문경새재 근처 산세가 험해 숨기 좋고, 남한의 중심(지도보면 남한의 거의 정 중앙)거점이었으니까. 영덕과 충주밑에 있어서 많은 학도병들도 이곳 출신이 많았고, 잦은 전투로 인해 이름모르는 국군장병들이 장도 치르지 못하고 묻혔고. 와중엔 빨치산 시체들도 더러 묻혔는데 증조할머니가 남한군과 같이 묻으면 큰일난다고 난리피운적도 있다고 하셨다고 해. 그게 묻고 묻다보니 굉장히 큰 언덕이 되었는데 잡귀가 들러붙을까봐 증조할머니께서 장승도 직접 의탁해서 세워두시고 스님들하고 풀도 치고 했었어. 하루는 증조할머님이 당시 점촌으로 시집간 젊은 아가씨였던 할머님을 뵈러 가셨다고 해. 가셔서 살림도 돕고 할아버지셨던 분도 뵙고 (증조할머님은 할아버지를 조 서방이라고 불렀음)다시 운암사로 돌아오는데 할아버님과 할머님이 증조할머님을 배웅하러 마을 어귀까지 나선 모양이야. 그런데 거기서 한 무리의 사람들을 만나게 돼. 농가에 피해주는 멧돼지 사냥을 나섰다가 돌아오는 사내들과 맞딱뜨리게 된거야. 당시 문경은 한창 석탄광이 개발되서 좀 풍요로워 지던 시절이었고 대다수의 농가를 제외한 사내들은 탄광에서 일을하고 돈도 잘벌어오던 그런 시절이었지. 그래서인지 농사를 짓는 사람들과 빈부격차가 나게 돼. 좁은 동네에서 그런게 있을까 하겠냐만은 당시 농가사람들은 되게 못살았어. 보릿고개즈음임에도 탄광에서 일을 하던 사람들은 쌀밥에 고기도 잘 먹었지만 앞서 말했다 싶이 산세가 험한 문경지역은 야생동물도 굉장히 많아. 멧돼지등 따위때문에 농가들은 농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고, 그 해는 가뭄도 심해서 사냥이라도 다닐정도였다는 거지. 말로만 듣던 풀뿌리죽으로 연명하기도 하고, 항간에는 쥐를 잡아 고기를 구워먹을 정도였다고 하니. 보릿고개즈음이라는게 상상이 갔어. 결국 탄광촌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합심해서 쌀 몇가마니를 거들어 보태주기도 했지만 농가쪽 사람들은 아니꼬움만 더 커졌다고해. (탄광은 80년대 즘인가? 폐쇠됐다고하는데 연도는 자세히 모르겠음) 아무튼 당시 할아버지는 탄광에서 일을 하던 청년이었고, 멧돼지 사냥을 나섰다 돌아온 농가쪽 사내들과는 사이가 매우 좋지 못했어. 사내들은 거나하게 취해있어서 시비가 붙었고 졸지에 할아버지와 주먹싸움까지 가게됐어. 할머님과 증조할머님이 말려도 소용이없어서 증조할머님은 할머님을 시켜서 절에가서 스님들을 불러오라고 하게 돼. 할머님이 스님들을 대동해서 오고나니 싸움은 그쳐있었고 할아버지랑 다투던 사내들이 혼이 쏙나가서 벌벌떨고 웅크리고 있더래. 스님들이 농가사람들을 추스려 보내고 할머님이 증조할머님께 물어보니까. 조서방이 흠씬 두들겨 맞고 쓰러져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탕- 하고 총소리가 나서 모두 숨죽여서 엎드렸대. 그러고나서 북한군복을 입은 사내가 오더니 총을 겨누고 먹을 것을 달라고 하더래. 귀신 이런건 아니었고 진짜 북한군. 할아버지 겨우 일어나서는 증조할머님께 챙겨드리려던 옥수수랑 감자 이런것들을 줘버렸고 사내들도 멧돼지 고기를 줬다고 해. 주고나니 북한군 한명이 "뭐하네 걍 다 쏴죽이고 가디안코" 라는 식으로 말을 했더래. 그때 증조할머님이 나서서 여긴 북한군도 많이 묻혀있는 곳이라면서 나라와 당신들의 수령을 위해 목숨바친 장병들 앞에서 이러면 안된다고, 묻어준 것도 우리라고 했더니. "연어간나 아니네?"라는 말을 남기고 갔다고 해. 나중에 알고보니 간첩을 연어간나 라고 하는 모양. 그일이 있고나서 국군이 대대적인 수색을 하게돼. 땅굴같은 곳으로 침투했나 싶어서 급기야 묘지를 파헤치게 됐어. 땅굴 같은 것은 결국 발견되지 않았고, 북한군복을 입은 유해들은 한데모아 불질러버리고 남한국군들만 다시 묻게 됐어. 북한군을 파헤친 구덩이들만 덩그러니 메꿔지지도 않고 남게 됐는데 주인잃은 묘지들이었지. 그걸 그냥 묻었어야했는데... 가뭄은 심해졌고 더욱 먹고살기 힘든 농가쪽 사람들은 북한군을 꺼낸 묘지에다가 죽대창 같은걸 만들거냐 트럼통같은 것을 설치해서 멧돼지 덫을 놓아버렸어.마을 어귀여서 농가로 접어드는 멧돼지들이 많이 출몰햇었다니까.. 그 후로 꼭 하루건너 하루면 사람이 죽어나갔는데. 그 모습이 해괴하고 기괴했다고해. 증조할머님께서는 굿판을 벌이고 위령제를 자주할 정도로 불려나가셨다고 하는데. 할머님이 사정을 알고보니 덫으로 개조 해놓은 묘지마다 사람이 한명씩 죽어서 발견됐대. 어떤사람은 자기가 묘지에 설치한 트럼통에 실수로 빠져버렸는데 멧돼지가 잡식성이다보니 그 사람도 잡아먹으려고 자기도 묘지안으로 뛰어들어선 뜯어먹었다는거야. 하체는 어디가고 없고 벌써 상체만 남아 멧돼지에게 뜯기고있었다고 해. 증조할머님은 직접 보셨다고;; 또 어떤사람은 묘지안에서 아직 죽지 않고 손뻗어서 땅집고 올라오면 되는데 나오지도 못하고 정신이 나가서 발발떨고 있더라는거야. 물어보니 간밤에 덫에서 끼에끼에 하는 새끼돼지소리? 가 들려서 가보니 돼지는 없고 왠 시꺼멓고 동그란게 파헤쳐진 묘지안에 있더래 그래서 잔뜩놀라가지고 호롱불을 비춰보니 여잔인데 북한장교모를쓰고 묘지를 맨손으로 파고 있었다는 거야. 그러다가 고개를 획 돌리니 윗니 아래쪽은 포에 반파가 되었는지 너덜너덜하고 눈동자도 어딜 보는지 모르겠었대. 굉장히 높은톤의 목소리로 자신이 누굴찾고있는데 도와달라고 그냥가버리면 총쏴죽여버리겠다고 해서 나오지도 못하고 정신없이 땅을 파다가 보니 여자가 없어졌다는거야. 손을 보니까 거짓같지는 않았다더라. 어떤 미쳐버린 남자는 밤만되면 묘자리 안에서 조용조용하게 -사삭 사삭-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고.. 호롱불을 비춰보면 소리는 누가 자신을 탁 치고는 도망가는데 검은 사람 형체같은게 재빠르게 사라지고 그랬대.. 날이지나고 꼭 덫을 설치한 곳에는 멧돼지 대신에 사람이 죽어있고 빈 묘지에는 누가 미쳐서 들어가있고 이런일이 계속 일어나니까 묘지가 자기 주인찾는 것 같다고 귀신들기전에 제를 지내야한대서 큰 굿판을 벌이고 패여진 묘지에는 소나무 묘목들을 심고 금줄을 치고 향을 피웠다고 해. 그리고 나선 그뒤론 별일 없었다고 하는데, 사실 증조할머님은 영을 보지만 사람들에겐 잘 말을 안하는 편이래. 그 후로도 풀을치러가면 솔잎이 불긋불긋하고 해가쨍쨍한 대낮도 그곳만 음산하고 검은 사람형채 같은 것들이 군모를 쓰고 조용조용히 나무뒤에 숨어서 자신이 풀치는 것을 지켜봤다고 해.. 최근에는 그 생명령강한 소나무들도 다죽어서 다 들어나고 잔디를 심어도 파릇해지지않아서 방치중이야. (지금도 문경시 점촌에는 시외버스터미널 바로 옆에 장례식장이 있고 건너편에 문경제일병원과 정신병원이 있어.) 4. 부정을 배신한 언청이 문경은 특산품중에 도자기가 있을정도로 불로 만드는 도기나 쇠기들이 유명하고 인간문화재도 있을정도야. 오늘 적을 내용은 메질꾼에 관한 내용이야. 점촌에 탄광이 들어서기 훨씬 오래 전 1920년대에는 소랑 돼지를 키우는 가축업과 벼농사와 밭농사가 요된 업이었다고 해. 때문에 쥐나 해충이 들끓었고, 여름이면 도축한 가축이 빨리상해서 질병도 깊었다고.. 당시엔 지금처럼 서양식 병원도 없었고, 동양식 한의원도 읍내엔 없었다고 해. 그래서 무당이나 역술인 보살들이 조금정도의 약초학을 공부하고 요법같은 것들로 상하고 덧난 것들을 치료를 조금 담당했다고 해. 하루는 증조할머님이 불공을 드리고(모시는 신명님이 불가계통의 육도인? 인가 오도인?인가 그렇다고 들음. 불교인이 아니라 잘 모른다.) 정수를 떠다 약산에서 읍을 드리는데(뭐 기도 같은 거래. 제사지내고 조상님께 새해 원을 비는 그런것과 비슷한 듯) 키는 짤딸막해서 다부진 아저씨가 허겁지겁 증조할머님을 찾더래. 해서 읍을 끝낸후에 떠다놓은 정수(맑은 물)를 그 아저씨에게 줘 버리고 숨을 고르고 왜그러냐고 물으니. 자식놈이 손이 병신이 됐는데 도와달라더래. 사정인 즉슨, 그 아저씨는 가은 아자개장터에선 알아주는 유명한 대장장이 였어. 놋쇠도 만들고 날이선 쟁기도 만드는 유능한 대장장이었지. 당시에 농업과 가축업이 왕성했으니 쟁기나 도축도구들이 잘 팔렸고 대장간이 장사도 잘 되고 덕분에 좋은 새댁만나 장가도 가게 됐는데, 이듬해에 나온 자식놈이 언청이가 심했다고 해. 그놈이 머리도 멍청하고 말도 어버버하니 친구도 없고 그런데도, 심성이 고와서 아버지를 따라서 일도 곧 잘 도와주고 그랬어. 다행이도 부모가 좋은분이어서 아버지도 자식에게 대장간이라도 물려주려고 열심히 가르쳤고, 아버지에게 좋은 메질꾼이 되기위해서 언청이 자식놈도 더욱 열심히 했다지. 메질꾼이 뭔가 하면 대장장이에서 한사람이 달군 쇠를 잡고있으면 한사람이 망치로 땅!땅! 내려치잖아? 그 것을 메질꾼이라고 그래. 그런데 한날은 지 아버지 도와준다고, 석틀에 부어논 쇳물에서 달군쇠를 급하게 꺼내다가 그만 쇳물이 튀어서 손을 지져버렸다고해. 자질러지는 비명소리를듣고 아저씨가 황급히 나가보니 아들놈이 손을 잡고 나뒹구는데... 가서 보니 검지부터 중지약지까지 손가락에 쇳물에 데인거야. 황급히 찬물로 씻고 보니 살이 고온에 뒤엉켜서 엉겨붙어 버렸다더라. 어찌해야되나 하다가 들은건 있어서, 쑥을 빻아서 올려보고 차도를 지켜보니 아물긴 했는데 벙어리 장갑 처럼 손가락중간마디들이 하나로 붙어버린거지.. 엄지와 새끼손가락 빼고. 아무튼 근처에 병원도 없고 한약방 이런대도 없고 용한 무당집은 증조할머니가 이름이 있어서 찾아온거야. 증조할머님이 그 아저씨를 따라서 절간으로 가보니 아들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머리는 더벅해서 냄새가 나고 입은 사구안와 걸린것 처럼 돌아가서 보기 흉측했다고 해. 얼른 그 대장장이 부자(父子)를 방으로 들여 손을 보니까 이건 뭐 제대로 붙어 아물어버려서 고칠방도도 없고 덧나지 말라고 소염효과있는 단약하고 붙이는 검은 고약같은걸 줘서 보냈대. 그리고 몇 일이 지나고 그 부자가 또 온거야. 몰골을 보니 언청이 아들놈은 손에 아버지가 입던 적삼을 둘둘 감고 있었는데 피가 흥건하게 고여서 뚝 뚝 떨어졌다고 해. 그래서 황급히 들여서 상처를 보니 손가락들이 다 떨어져있는거야. 지혈제를 뿌리려고했는데 찾아도 지혈제가 없어서 갖고있던 노리개에 호박보석을 빻아 가루를 내서 지혈을 했다고 해. 언청이 손에 고약붙이고 적상추로 뜸을 만들어 태워서 한숨재우고 난 뒤에 뭔일인고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한동안 자신혼자 일하는걸 지켜만 보다가 또 도와주고 싶어서 붙어버린 손가락으로 망치질을 하는데, 그게되나. 자루가 미끄러지고 헝겊으로 닦거나 하는 세밀한 일들은 잘 되지도 않고, 괜히 쟁기들만 더 망치니까 속에서 복장이터지고 천불이 쌓였는지. 낫으로 갖다가 손가락을 떼려고 그어버렸다는거야. 증조할머니는 참 그 독기에 질리기도 하고, 애가 딱하기도 해서 갖은 정성으로 언청이를 돌봤다고해. 물론 그놈 아버지도 어머니까지 대동해서 장사도 포기하고 정성으로 돌봤고, 그런데 문제가 있었는데 당시 언청이 놈이 낫 갖다가 억지로 손가락을 떼는 과정에서 날이 엇나갔던 모양인지 힘줄이 끊어져서 중지와 검지는 꿈쩍거리지도 못하게 된거야. 어쨋든 이젠 글도 못쓰고 아예 메질도 왼손으로만 해야하니 쇠가 담금질도 제대로 안 되고 망치질도 제대로 안 되서 형편없던거지. 그래서 아저씨 혼자서만 다시 일을 하게 되고 아들놈은 글도 못써, 언청이라 말도 잘 못해, 머리도 둔해서 가축도 못치고 여러모로 골칫덩이가 된거야. 그집 어머니는 홧병이 나서 쓰러지고 아저씨는 하나뿐인 독자가 그 지경이 됐으니 일할맛이 나나. 돈 벌어도 고기국 먹는게 단데. 해가 지나고 증조할머님이 장터 저잣거리에 볼일이 있어서 나가셨는데 제를 지낼 놋그릇을 사러 대장간에 들렀는데 진열된 물건도 없고 장사는 안 하는지 사람도 없는거지. 해서 무슨일인가 물어보니 그집 아저씨가 속병이나서 앓아 누웠는데 마누라는 홧병나서 도망가고, 자식놈이 혼자서 돼지치고 밥해서 아저씨를 모신다는 거였어. 그런가 보다 하고 다른집에서 그릇을 사고 돌아왔대. 또 다시 몇달 지났나? 마을 잔칫날이라 굿도 벌이고 제도 지낼겸 해서 마을사람들이 증조할머님을 불러서 채비를 하고 마을을 갔더래. 굿을 잘 하고 나서 마을사람들이 잔치를 벌이는데 그 언챙이놈이 잔치하는 집 어귀에서 어물쩍 대고 있었대. 팔에는 때가타서 검은 삼베적삼을 둘둘감고 더벅머리에 냄새는 어찌나 심한지... "내,내도 하.한잔 머.먹고갑시다." 하고 어눌하게 입을열어서 실랑이를 하고 있는거야. 그래서 왜 저 언챙이 청년은 잔치에 안 끼워주냐고 물었더니 "한달 전에 저놈 애비가 속에 병이나서 죽었는데, 장을 치뤄주는 사람이 돈이 없으니까 제대로 저놈 애비 장을 못치룬거지. 쯧쯔.. 딱하게 됐어. 그래도 저놈도 하등 나을거 없지. 저놈이 멍청하고 속알맹이가 없어서 그런지. 먹여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거지꼴을하고 구걸이나 하고, 도벽이 있는지 장터에 넘의음식 훔쳐먹고 그러다가 맞기도 많이 맞았더라니. 좋게 볼 사람이 어디있누?" 라는 식으로 말을 하더래. 아무튼 실랑이가 벌어지다가 언챙이놈이 넘어지면서 팔에 두른 삼베적삼이 풀어헤쳐져 버렸는데, 증조할머니가 정말 두눈이 뒤집어질 정도로 깜짝 놀랐다고 해. 그 멍청한놈!, 검지 중지 약지 손가락중간부분이 바느질이 엉성하게 되어있고 불에 지진것 처럼 썩어 문드러졌는데, 중간 마디위로 손가락이 시커멓더라는거야. 증조할머님이 식겁해서 단걸음에 달려나가서 언챙이를 붙잡고 이 손이 어찌 된거냐고 물었더니, 순진한 얼굴로 하는 말이 더 가관이더래. "아바이가 죽고 없으니, 내 할줄아는 것은 메질뿐인데, 손가락이 션찮아 메질을 못하니. 돌아가신 아바이를.."하면서 꺼낸 이야기는 충격적이었어. 지 아비가 죽고 관을 묻으려 땅을 파는데 도와줄 사람없고 지게에 관을 지고 산에 올라오니 힘들었다는 거지. 죽을동 살동 땅을 파서 아버지를 묻는데 손에 힘이 풀려서 관을 엎었고 아버지의 유해가 삐져나왔는데 문득 아버지의 손가락을 보니 꿈찔거리지도 않는 자신 손가락보다 멀쩡하고 단단해 보였다는거야. 해서 낫으로 아버지의 손가락을 잘라다가 자신의 검지 중지 약지를 중간만 남겨두고 자르고 아버지의 손가락을 꿰메고 불로 지져서 붙였다는거야. 그런데 그게 되겠어? 살은 썩어서 욕창이나고 너덜거리기까지하고.  마을사람들도 그걸 다 듣고는 혼비백산하고 잔치고 뭐고 난리가 났지. 언챙이는 매질을 당하다가 맞아 죽기직전까지 돼서 마을에서 쫒겨나고, 증조 할머니는 언챙이의 아버지묘에서 제를 지냈다고 해. 이 후에 마을에서 공부 안 하고 글 못쓰는 애들이 있으면 언챙이가 손가락 잘라간다고 자주 그랬다고 해. 우리 할머니도 그 소리를 들었고 그 소리가 왜 나온건지 물어봤다가 들은 이야기. 5. 납골호 문경시 동로면 마광리에는 지금은 경천댐이라 불리는 경천호가 있다.(동네에선 동로댐으로 많이 불림.) 겨울이면 빙어낚시나 캠핑도 많이오고, 춘추엔 민물낚시하러 많이들 오는 곳이기도 하다. (검색해보면 실제 물색깔이 이럼. 낚시하는 사진들도 다 포함) 근처엔 여름이면 지금까지 불교학교도 자주열고, 규모도 좀 큰 김용사라는 절도 있다. 할머니께선 보통학생(지금의 초등학교)때 즈음이라고 했다. 대략 1940년도로 추정(보통학교 에서 국민학교로 바뀐게 한국은 1942~45년이다.) 초파일(석가탄신일)은 성탄절과 다르게 음력으로 센다. 그해는 초파일이 평달로는 4월30일 윤달로는 5월29일이라는 말이 안되는 날짜였다더라.(뒤져보니 윤년 1944년인듯. 신기한건 그 이후로 2014년까지. 4월달이 석가탄신일인적이 단 두번 밖에 없음. 또 5월 말일로 나온 것도 하나밖에 없다.) 어려운 서론은 접고, 다른해와는 다르게 좀 일찌막히 시작된 초파일에 증조할머니께서 빠질 수 없었지. 떡보살 이름에 걸맞게 간에서 고슬고슬한 수수떡들하고 감자개떡 같은 것들을 지어서 절간에 공양하러 갔다고 했어. 공양을하고 불공을 드린 뒤에, 날씨가 좋아서 진남교반(전국8경중 하나)이랑 이어져서 김룡사 앞까지 길게 곧은 영강을 따라 주욱 강기슭을 거닐러 산책을 하셨단다. 강줄기를따라 경천호까지 자갈이 광활하게 펼쳐져 멋들어지고 강 건너엔 가파지른 절벽사이사이로 장송(소나무)들이 구불구불 자라나있고, 두루미가 날아다니는 천혜의 절경이라 심신이 편안해지고 머리가 맑아졌다고 했어. 그렇게 가다보니 커다란 호수가 나왔는데 절벽에 나온 장송들은 온데간데 없고 맑은물은 탁해져서 녹조가 심했다고했는데, 기운이 사이하고 음습한 것이 좋지 못했다고... 그 와중에 한 부부가 하얀 가루를 호길따라 경천호에 뿌리고 있었는데, 가서 보니 화장(시신을 불태워 장사를 지내는 것)을 한 납골이었어.  노부부가 수척 해 보이고 쪽머리에 은비녀를 곱게 꽂은 女노인이 서럽게 울고있어서 증조할머니께서 가서 다독여 주었어. "뉘 장을 지냈길래 이래 서럽게 웁니겨?" 하고 물으니, 이제 갓 10살되는 종손이 있었는데 지할미 따라 산에 약초랑 나물캐러 갔다가 그만 칠모사(까치살모사, 물리면 일곱걸음안에 죽을정도로 독성이 강하단다.)에 물려서 죽었다고 하고. 男노인이 말하길 "온몸이 푸르죽죽한 것이 지독한 놈한테 물린것 같았다."고 ... 증조할머니는 납골이 다 없어질 때 까지 옆에서 지켜보시다가, 노부부가 남은 손까지 털어 납골을 다 뿌리자, 소매에서 향 하나를 꺼내 자갈을 모아 세우고 제를 지내주셨다고 했어. 노부부에게 감사인사를 받고 다시 절로 돌아오는데 또 다른 가족이 상을 치뤘는지 납골을 들고 왔다. 그래서 드는 생각이, '아. 이 지역이 음습하고 기운이 좋지 못한 것이 이유가 있었구나' 하고 댐 바닥을 보니, 그제서야 녹조들 사이로 떠오르지도 못하고 가라앉지도 못하는 수많은 영들이 보이더란다. 안타깝기도 해서 이듬해에 제를 한번 크게 지내야 겠구나 생각하고 김용사로 돌아왔다고... 밤이 깊어 호롱불이 다 꺼지고, 잠을 청하려고 증조할머니도 자리에 누었는데 -톡 톡 하고 창호지를 가볍게 두두리는 소리가 들려 문을 열어보니. 한 비구니(여자 스님)가 옥수수를 잘 쪄가지고 들어왔어. "산세가 험해 사람도 없는 절이었는데 이렇게 초파일이 되서 많은 불자들이 찾아주니 참 고맙고, 불자님이 또 절에 떡까지 공양해주셨으니, 고마운마음에 이야기 벗이나 할까해서 들어왔습니다." 하니 증조할머니가 흔쾌히 비구니를 자리로 모셨어. 예천에 유명한 대학 찰옥수수를 잘 찐것이 쫀득하고 매우 맛이 좋았다고... 특별할 것 없는 절간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증조할머니께서 생각난듯 오후에 보았던 노부부와 경천댐에서 보았던 영들을 비구니에게 조심스럽게 얘기해보았더니 뜻밖에도 비구니는 매우 놀라운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경천호는 강기슭과 붙어있어서 강길 따라 물장구 치던 아이들이며 헤엄치며 놀던 호기로운 청년들도 거기만 가면 빠져 죽는다는 내용이었는데, 춘추가되면 녹조가 매우 심해져서 물을 뜨면 걸죽허니 녹말(광합성으로 생기는 녹조식물)이 한가득할 정도라고... 경천호에 빠지면 그 녹말이 매우많아 뭍으로 헤엄치기도 힘들고. 신묘한 것이 물이 걸죽허니 사람이 빠지면 뜨지도 못하고 서서히 가라앉아서 증조할머니가 본 영들처럼 죽는 익사자가 많다고... 헌데 보니 경천호 주변 절경이 좋아서 찾기도 많이 찾고, 납골도 많이 뿌리는데 그 골분(뼈가루)들이 떠내려가다가 경천호 바닥에 허옇게 쌓인다고 했다. 녹말이 엉겨붙고, 낚시해서 건져올린 물고기 배를 갈라보면 하얀 사리같은 납골들이 한가득 들어있다고 했다. 해서 증조할머니께서 생각하시길 빠져죽은 영들하고 성불하러 뿌려진 납골의 영들하고 사이가 좋지못해서, 더욱 기운이 사이하고 음습했구나 하고. 마저 이야기를 이으려는데 비구니가 말을 끊더래. "헌데 쪽머리에 은비녀를 한 노부부라면 동로에 사는 약초꾼네 같은데 그 집은 종손이 없습니다." 하더래. 놀란 증조할머니께서  자세히 女노인의 모습을 읊어서 확인해보니, 확실이 비구니가 아는 그 노부부가 맞는데 종손이 없다는 거야. 이야기를 마무리한 채, 의문만 품고 밤을 보내고... 날이 밝자마자 증조할머니는 절에서 불자들과 떡을 만들어 마을에 사는 사람들에게 돌리기위해서 탁발(공양을 받으러 다님)을 나선 스님들과 동행하여 떡을 돌리고 공양을 탁발받고 하는 식으로 초파일을 보냈는데. 어제 경천호에 납골을 뿌리던 그 노부부집도 들르게 됐어. 노부부가 알아보고는 보살님 고맙다고 귀한 약재들을 공양으로 주더래. 감사합니다 하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는데. 아궁이앞에 왠 어린 아이형상의 영이 아궁이를 손짓으로 가리켜서 보게 됐다고.. 그 집 아궁이에서 하얗게 탄 숯들 사이로 허연 뼈같은게 보여서 물으니, "아 얹그제 돼지를 한마리 잡았는데 먹고 남은 뼈같습니다."하니 증조할머니께서 '돼지를 치는 집은 아닌 것 같은데...'하고 돌아가는길에 살짝 뒤를 돌아보니 男노인이 女노인에게 불같이 화를내면서 아궁이에서 그 정체모를 뼈를 꺼내는데, 좀전에 본 아이형상의 영도 그렇고 모골이 송연해지고, 도축하던 집들의 돼지잡고 나온 뼈를 생각해보면 아궁이 속에 뼈는 그보다 작고 여린뼈들임을 딱 봐도 알 수 있었어. 기겁한 증조할머니께서 즉시 스님께 어린아이 유골을 본 것 같다고 고하고 불공드리러온 아저씨들과 청년들에게도 협조를 구해서 다시 한번 노부부 집을 찾았는데. 엉성하게 뭘 급하게 태우고 있더라. 사람들을 보자마자 男노인이 황급히 장작을 막 넣어 무엇을 감추려 했는데 즉시 청년들이 가서 장작을 빼내고 부지깽이로 아궁이를 긁어내니, 어린아이의 두개골이 반쯤 퍼석해져선 나왔어. 이게 뭐냐고 순사를 부르겠다고 사람들이 윽박지르니 노부부가 망연자실하게 자리에 퍼질러 앉아서 한 얘기는 다소 충격적이었어. 뭐 식인을 하거나 그런건 아니었고, 자식들도 다 서울로 떠나고 쓸쓸하게 지내는 찰나, 몇년전에 피촌(갖바치 고리백정같은 조상을 둔 사람들이 그 일들을 이어받아 하는 집단 촌)에서 거지생활을 하는 아이들을 거둬들여 약초를 가르치고, 심부름을 시키고 하면서 키웠다는 거지. 한 날은 아이하나를 데리고 삼을 찾으러 산을 탔는데, 잎이 파릇하고 뿌리는 짙은 질 좋은 산삼을 발견하게 된거야. 그래서 곱게 캐서 바구니에 담고 내려오는데 송이버섯들이 나무밑에 곱게 자라있어서(동로엔 지금도 질좋은 송이버섯이 나온다) 그것도 캐려고 간 찰나에,  당귀하나 찾아캐서 바구니에 담으러온 아이 하나가 시장기가 돌아서 더덕인줄알고 그 비싼 산삼을 먹어버린거지. 바구니를 확인하던 女노인이 놀라서 뱉으라고 아이를 다그치는데 삼킨게 뱉어지나. 결국 주위에 집히는 나무몽둥이로 혼쭐을낸다고 다듬이로 빨래패듯 여기저기를 패다보니 10살도 채 안된 여린아이가 그 매질을 버티겠어? 아이가 죽어버린거야. 온몸에 시퍼렇게 멍이들어서. 그래서 男노인에게는 칠모사에 물려서 시퍼렇게 독이올라 죽었다고 거짓말을 쳤는데 실제로 칠모사에 물린걸 본적이 없으니 물려서 온몸에 멍이들고 부어올라 죽었구나 하고는 대승사에서 화장해서 유골을 뿌리다가 증조할머니를 만난거지. 그후에 노부부가 집에 돌아오니 남은 아이하나가 男노인에게 女노인이 아이를 패서 죽이는 것을 봤다고 고한거지. 그날밤 노부부는 심하게 다퉜고 아이가 읍내나 마을에 나가서 말실수를 할까봐 결국 죽여서 태워버리기로 결심하게 됐고, 일이 이지경까지 오게 된거야. 후에 순사들에게 신고하여 노부부는 잡게 됐대. 알게 모르게 시골에는 퍼지지 않는 사건 사고들이 많은 편이라고 하더라네. 죽은 아이의 넋을 기리려고 경천호를 찾아 불자들과 제를 크게 올리고 빠져죽은 사람들의 넋을 위해 성불제도 올렸다고 해. 제를 올리고 돼지머리를 보자기에 싸서 경천호에 던져 넣으니 뭍에 머리가 보일락 말락 떠있던 영들도 사라지고 이듬해 춘추엔 물이 많이 맑아져서 적당한 녹조였다고 하네. 경천호는 1983년 경천댐으로 준공되게 됐고 경천호와 이어진 진남교반과는 철문으로 단절되게 돼. 그러나 댐 철문에 끼어 죽는 익사자들도 생겨나고,지금도 진남교반 근처에 화장터가 있는데 유족들이 유골을 진남교반 하류에 꽤 많이 뿌린다고 해. 아이러니하게도 꼭 그듬해애는 댐에 녹조가 심해진다고... [출처] 모해유머커뮤니티 (조아라 /글쓴이 담론) ___________________ 옛날 이야기는 귀신썰도 귀신썰인데 사람이 무지해서 벌어진 일들이 더 많아서 좀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 이 썰은 예전에 내가 가져온 줄 알았는데 찾아보니 없더라고. 사람의 기억이란. 내일은 봄비가 내린다니까 방에서 빗소리 들으며 이것저것 작업을 해도 좋을 것 같아 모두 건강하고, 내일 또 올게! * 전체 링크 * -1- http://vingle.net/posts/2802655 -2- http://vingle.net/posts/2803561 -3- http://vingle.net/posts/2805932 -4- http://vingle.net/posts/2806190
[퍼오는 귀신썰] 내가 귀신을 믿게 된 이유
날이 많이 선선하네. 그렇게 세차게 내리던 비는 아침이 되니 멎었고, 그래도 하늘이 꾸물꾸물한 게 딱 오늘같은 날이 귀신 얘기 하기 좋은 날이잖아? 그래서 내가 왔지 ㅎㅎ 옛날처럼 같이 읽어주는 사람들이 많이 안 보이는 기분이지만 그래도 아직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있는 거 아니까 괜춘괜춘! 귀신썰은 잊고 살다가도 또 문득 생각나고 그런거니까 언젠간 또 보러 오겠지. 그 때 인사나 해줘 ㅋㅋ 그럼 오늘도 같이 볼까? ____________________ 별 거 아닌데 비오는 날이라 그런가 생각나서 써봄ㅋㅋㅋㅋㅋ 어릴 때 살던 지역이 제주도였는데 바닷가 근처였음. 사실 근처라고 하기도 애매한 게 창문 열면 바로 바다 보임ㅋㅋㅋ 옆집에 할아버지 그 옆집에 고모 할머니 뭐 이런 식으로 마을 사람들 다 아는 째끄만 마을이었음. 암튼 아무래도 제주도 자체가 관광지라 그런가 거기 외지인이 되게 많이 놀러오고 그랬음. 그 바닷가를 나름 개발해서 해수욕장? 으로 만든 건 한 군데 뿐이었는데 사람들이 그 근처 해변에서 물놀이 하고 그랬어. 뭐 안전 요원도 없고 그렇긴 한데 아무래도 여름철 제주도 해수욕장 존나 사람 많은데 50미터만 더 가면 한가하니까 많이까지는 아니더라도 보면 다섯 팀? 열 팀? 그 정도는 가서 놀고 그럼. 나도 거기서 많이 놀고 그랬어. 집이랑 더 가깝기도 하고 굳이 사람 존나 많은데 가서 뭐함. 내가 거기 길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진짜 꼬꼬마 애기벌때부터 바닷가 댕겨서 어디가 깊고 그런거 다 알았단 말임. 얕은 바다에서 물질도 하고 그랬으니까 바다가 그닥 무섭지도 않았고. 그래서 거기서 놀고 심심하면 돌바위 있는데 가서 보말 줍고 게 줍고 그러다가 집 들어가고 그랬음. 그 바닷가가 생겨먹은게 좀 특이하긴 했어. 중간에 좀 푹 들어간 구덩이? 비슷한 게 있었음. 왜 계곡 보면 갑자기 깊어지는 구간이 있다고 하잖아. 그런 느낌으로 있는 구덩이였는데 수심이 깊은 쪽에 있는 게 아니라서 어른이 들어가면 가슴~목 정도로 물 차는 높이였음. 확실한 건 성인이 거기서 사고를 당할 그런 데는 아니었어. 뻘이 있거나 아래로 계속 가라앉는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말 그대로 구덩이였음. 근데 항상 그 구덩이에서 성인 남자들이 사고를 당했어. 그것도 젊은 남자들만. 아니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 여자 어르신들이 키가 평균적으로 크면 얼마나 크겠음? 젊은 남자들보다야 작을 거 아니냐. 근데 여자 어른들도 들어가면 머리까지 안잠기는 데 거기에서 매년 젊은 남자들이 물에 빠져 죽었음. 딱 20~25살 정도 되는 사람들만 골라서. 마을 어른들이 이유를 알기는 아는 느낌이었는데 딱히 뭔가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었어. 어른들이 그 나잇대 남자들이 그 바닷가 들어가 있으면 나오라고 호통도 치고 특히 군복입고 다니는 남자가 있음 아예 집으로 들여서 옷 갈아입혀서 보내고 그랬음. 어린 내가 보기에도 존나 이상했어. 우리 어머니가 진짜 문 단속 열심히하고 모르는 사람 집에 안들이는 사람인데 여름에 휴가온 군인만 보면 무조건 집에 들여서 옷 갈아입히고 온 집안에 팥을 뿌렸음. 옷 돌려주러 온다 해도 그냥 마을 안에서 군복 입지 말라고 하고 옷은 그냥 가져가도 되니까 마을 벗어날 때까지 절대 군복 입지 말라고만 하고 그럼. 한 번은 잔치가 있었나 해서 마을 어른들이 다들 일하러 나갔었음. 저녁에 잔치 음식 먹었던 거 생각하면 아마 그 날 뭐 결혼식이나 그런 게 있었던 듯. 그래서 바닷가 근처에 어른들이 없었음. 근데 하필 그 날 바닷가에 딱 저 나이대 남자들 대여섯명만 있는거임. 뭔가 그 날 느낌이 영 찜찜하고 그래서 나는 바닷가 안들어가고 걍 그 남자들 근처에서 소라 줍고 그러고 다녔음. 근데 한 명이 그 구덩이 있는 쯤에서 못 나오고 난리가 남. 나도 존나 겁대가리 없었던 게 그 상황에 바다로 들어갔음.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들어갔는지 모르겠음;; 근데 그 땐 진짜 그 바다가 내 집 마당만큼 자주 다니던 데라 겁이 없었나봐 못 나오는 거 보자마자 바로 뛰어들었음. 그 상황에 뭐 물안경을 썼겠어 뭘 했겠어 그 바다 안에서 사람은 막 발버둥치고 모래는 막 휘몰아치는데 눈 뜨고 있으려니까 진짜 눈 빠질 거 같고 그랬음. 난 그래서 내가 잘못 본 줄 알았어. 남자 발목에 뭔 까만 실 같은 게 막 휘감겨 있었음. 첨엔 뭐 미역이나 톳이나 그런 건 줄 알았지. 일단 빼주려고 딱 그 까만 실 같은 걸 잡았는데 약간 뻣뻣한... 실은 아니고, 진짜 관리 안된 머리카락 같은 느낌이었어. 바닷가에서 머리카락? 존나 말도 안되는 거지. 난 그래서 하도 정신 없어서 잘못 봤다고만 생각했음. 근데 내가 손 대니까 남자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안풀리던게 스르륵 풀리는거임. 어쨌든 그 날 남자는 별 탈 없이 돌아갔음. 마을 잔치 있는 날이었으니까 저녁 진짜 배터지게 먹고 나도 집으로 돌아감. 근데 그 날부터 가위에 심하게 눌리기 시작했음. 처음 가위 눌려봐서 첨엔 그게 가위인 줄도 몰랐어. 걍 몸도 안 움직이고 목소리도 안 나오는데 주변은 온통 새까맣고. 근데 좀 이상한 게 그 때 내가 쓰던 침대가 2층침대에서 1층이었단 말임? 자기 전에는 중간에 일어나서 화장실 갈 때 넘어지지 말라고 작은 불을 켜놨었음. 커텐을 쳐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어두울 리가 없는데 온통 새까만거여 침대 바깥쪽이. 그거 생각하자마자 왜인지 모르겠는데 여름 휴가철 그 더운 때에 오들오들 떨리게 한기가 들기 시작했음. 뭔지도 모르고 무서워서 떨고 있는데 갑자기 스륵스륵 소리 나더니 새까맣던 침대 바깥 쪽에서 왠 여자 얼굴이 보였음. 침대 밖이 온통 새까만게 다 그 여자 머리카락이었던 거... 씨발 진짜 존나 무서웠는데 소리도 못지르고 와... 여자가 뭐라 말을 하지는 않고 그냥 눈 마주친 채로 한참 나를 보고만 있었는데 아버지가 들어와서 나 깨워줌. 진짜 너무 무서워서 아버지한테 매달려서 엉엉 울면서 꿈 얘기를 막 했음. 그 때까지도 바닷가에 그 머리카락이랑 연관을 못 지었지. 근데 이게 하루 이틀이어야지 일주일 넘게 그 여자가 꿈에 나옴. 마지막엔 진짜 입이 찢어져라 웃으면서 그 여자가 밖으로 나가는 꿈이었음. 그 꿈에서 여자 목소리를 처음 들었는데 진짜 깔깔 웃으면서 '이번엔 방해하지 마 죽여버리기 전에' 이러고 바닷가 쪽 창문으로 나감. 나는 진짜 뭘 방해하지 말라는건가 싶었는데 그 때까지도 바닷가 생각을 못했어. 근데 그 날 사고가 한 번 더 난거임. 남자가 물에 빠지는 그 사고. 진짜 그 사고 났다고 들었을 때 진짜 머리 맞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바닷가에서 만졌던 머리카락부터 꿈 얘기까지 가족들한테 다 말했음. 할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어디 막 연락하더니 다음 날 왠 무당집에 날 데려갔음. 지금 생각해보니 무당집인거지 뭐 그 땐 무당이라고 생각도 못하게 평범한 가정집이었음. 무당도 걍 평상복 입고 있었고. 그 사람이 뭐가 느껴지긴 했는지 할머니랑 내가 자리에 딱 앉자마자 이 뭔가 있긴 있었는지 나 보자마자 애기 엄마라 해코지는 안했나보다 하는거임. 뭐 한참 할머니랑 모를 얘기를 막 하더니 굿을 하기로 결정이 남. 준비하는 데 한참 걸리니까 바다 근처에도 가지 말라 해서 나는 갑자기 친척집 맡겨지고 난리도 아니었음. 한 반년 쯤 지났나? 어느날 갑자기 할아버지가 날 데리러 와서는 왠 한복을 입히는거임. 애기들 색동 저고리에 노란 치마였음. 완전 형형색색한 옷인데 새 한복 입는 거 기분 좋아서 나는 신나게 그거 입고 할아버지 따라갔지. 그 날 굿판을 하는데 그렇게 음식 많이 차려놓은 거 첨 봤음. 사람도 많아서 그 때 봤던 무당 말고도 다른 네 명이 더 왔어. 무당 다섯이서 나 가운데에 앉혀놓고 뭐라뭐라 막 춤추고 방울 흔들고 난리를 침. 그러다가 갑자기 한 명이 풀썩 넘어짐. 진짜 눈 까뒤집고 난리 나는데 다른 네 명은 신경도 안쓰고 방울 흔들고 부채 흔들고 꽹과리 치고 진짜 말 그대로 굿판을 벌임. 그 와중에 나는 너무 졸렸음. 상식적으로 주변에서 그 난리를 치는데 잠이 올리가 없는데 너무 졸린거야. 근데 누가 자도 된다 해서 나는 그냥 잠들었음. 눈 뜨니까 굿은 끝났고 너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바다 가까이에 살지 말라는 소리만 들었음. 결국 우리 가족 바다 안보이는 곳으로 이사함. 그 뒤로는 한참 지나서 걍 별 생각 없이 살았었는데 나중에야 그 때 굿판을 벌였던 이유를 알았음. 이유도 존나 뜬금 없는데 그 바닷가를 급식때  단체로 가게 된거임. 거기 뭐 볼 게 있다고 그걸 보러 가나 그냥 바닷간데, 그랬는데 그 자리가 4.3때 군부대가 있던 자리였던거임. 그리고 그 바닷가 바로 옆에 있는 동네 뒷산...? 제주도말로는 오름이라고 하는데 암튼 거기에서 사람이 그렇게 많이 죽었대. 특히 결혼한 여자가. 뭐 산에 들어간 무장대 대장 아내가 그 마을에 있다 그랬나 그렇게 헛소문이 돌아서 그 마을에 젊은 결혼한 여자란 여자는 다 죽여서 수장시켜버린거임. 그 오름이랑 제일 가까운 바닷가가 남자만 죽던 그 바다였음. 20~25살 정도면 딱 군인들 나이잖음. 거기다 어른들이 군복은 절대 입지 말라 했으니까... 관련이 있겠다 싶었는데 더 나중에 그 때 굿판에서 눈 까뒤집고 쓰러졌던 무당이 '나도 애 가진 엄만데 방해하지만 않으면 애는 안 건드린다.' 뭐 이런 말을 했대. 그 때 죽은 유부녀들 중에는 아이 있던 사람도 있었을거고 그 때 그 귀신도 그 중 한 명 아니었을까 싶음. 그 때부터는 귀신 무당 이런 거 믿게 됨 [출처] ㅅㅌㅁㅇ 별거 아닌데 나붕이 귀신 믿게 된 이유 ________________ 제주도라고 했을 때부터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바다에서 자꾸 20대 중반의 청년들이 목숨을 잃는다는 이야기에 이미 이유를 알아챘어. 얼마 전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거든. 제주도에 계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중에는 생선을 안 드시는 분들이 계신다고. 어릴 때 부모님이나 친척, 형제들의 시체가 4.3때 그렇게 바다에 많이 버려져서 물고기밥이 되었는데 어떻게 생선을 먹겠냐며. 그 이야기 들으면서 한참 울었던 기억이야. 얼마나 한이 많을까. 사실도 아닌 이야기로 억울하게 잡혀가고, 죽임을 당하고... 살아남고서도 혹여 빨갱이로 낙인이 찍힐까 평생을 쉬쉬하며 살아오신 분들의 이야기. 바닷속에 잠들어 있던 4.3이 밖으로 꺼내진 지도 얼마 안 됐으니까... 그냥 같이 봤으면 좋겠어서 가져와 봤어. 가볍게 시작해 놓고 끝이 너무 무거워서 미안해 ㅎㅎ 동족상잔의 비극이, 억울한 일이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한명 한명이 다 지난 아픈 역사들을 기억해야 겠지. 아프지 말고. 아프게 하지도 말고. 비록 무서운 이야기를 보긴 했지만 ㅎㅎ 좋은 꿈 꿔 모두!
아가동산을 아시나요. 아기는 무슨 짓을 해도 용서가 되거든요.
밖에 나가기도 마음이 편치 않은 무료한 주말, 읽을 거리 하나 던져 주려고 와 봤어. 귀신썰은 아니고, 오늘은 또다른 사이비 종교 이야기. 티비에도 여러번 방영이 돼서 아는 사람들도 많을 거야. 이름부터 사이비 냄새가 풀풀 풍기는 '아가동산'. 아니 얼마전에 미드소마를 봤는데, 사실 무서울까봐 오랫동안 못 보고 있었는데 귀신도 안나오고 놀래키는 장면도 없다기에 큰맘 먹고 봤거든. 근데 그 영화를 보고 있자니 딱 떠오르는 게 바로 아가동산이었어. 미드소마도 사이비종교에 대한 영화기도 하고. 아무튼 아가동산이 떠올랐던 미드소마의 스틸컷들을 몇 장 첨부해 볼게. 여기까지가 미드소마인데 공포영화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색감이 몽환적이고 예쁘지? 그래서 더욱 기괴하게 느껴졌던 영화였어. 아가동산도 마찬가지의 색감(?)을 갖고 있어서 더욱 기시감이... 아래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아가동산의 행사 모습을 몇 장 먼저 같이 보자 어때. 비슷하지 않아? 아가동산은 교주 김기순을 중심으로 돌아갔던 종교야. 시작하기 전에 정보를 조금 더 주자면 1. 교주 김기순은 세 살 짜리 아기천사라 무슨 짓을 해도 용서가 된다. 2. 교주 김기순 외에는 아버지나 어머니 라는 말을 함부로 부르지 못 하게 했기 때문에 교주들은 친부모에게도 아저씨, 아줌마라 부르고 남처럼 지냈다고 한다. 강제 이산가족.. 3. 1년 365일 중 쉬는 날은 광복절, 신정, 크리스마스, 교주 김기순 생일 뿐. 물론 쉬는 날도 교인들은 교주 우상화작업에 투입되므로 실질적 휴일은 없다. 4. 자녀는 학교에 보내지 않으며 아가야법을 따라야 한다. 어차피 천국 가면 배운 놈이나 못 배운놈이나 똑같으니까. 재밌지? 여신도들이 모여서 교주를 위한 생리의 춤을 추거나 하는 것도 소오름. 미드소마에도 비슷한 컨셉이 나와. 그건 영화를 통해 보고, 아가동산의 자세한 이야기는 나무위키에서 가져와 봤으니까 같이 읽어 보자. ________________________ 1982년 경기도 이천군 대월면 대대리, 김기순은 도리리 일대의 땅 4천 평 남짓을 구입해 '아가농장'이라는 것을 세워 신도들을 모아 아가동산이라는 종교를 만들었다. '갈 곳 없는 신도들을 모아 공동체를 만들고 떡 장사, 어묵 장사, 음반 장사 등으로 땅을 샀다.'고 주장하는데, 과연 이 정도 장사로 어떻게 4천 평을 샀을지는... 교주 김기순은 자신을 '아가야'라고 지칭하며 꽃가마를 타고 나타나거나 하얀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추거나 하는 등 비정상적인 행각을 보이곤 했는데 이건 뉴스에서도 여러 차례 보도되었다. 옵몬 : 행사 영상이니까 이거 꼭 봐! 아가동산은 얼핏 보면 일반적인 개신교 종파 같지만, 실체는 개신교에서 예수만 빼고 그 자리에 자신을 대입한 전형적인 사이비 종교였다. 예를 들면 찬송가에 나오는 예수 혹은 예수의 상징을 '아가' 혹은 '아가야'라는 말로 치환해서 김기순 자신을 찬송하게 만들거나 기성 종교에 대한 무차별 비난으로써 자신을 따라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이 종교의 교리는 일단 김기순은 신이고, 3살짜리 아기이기 때문에 김기순은 어떤 말을 해도, 어떤 짓을 해도 죄가 되지 않으며 이걸 아가야 법이라고 부르며 신나라에서는 이 법을 따라야 한다고 하는 상당히 어이 없는 주장이었다. 아가농장은 전형적인 노동착취형 플랜테이션 농장으로 농장관리, 장부관리, 의료관리, 학생관리, 세무관리 등 관리직을 놓고 철저하게 공동체 생활 및 공동작업으로 운영되어서 신도들은 낮에는 논밭에서 농사짓고, 밤에는 공장에서 CD 및 테이프를 만들며 일하는 식으로 원치 않는 투잡을 뛰었다. 물론 거기서 번 수익이 어디로 갔을지는... 지금도 신나라네이처팜이라고 아직도 이천 도리리일대에 있다. 외부에서 파는 채소에 독이 들어있다고 신도들을 현혹시켰다. 당연하지만 과로로 죽는 사람도 수없이 있었을 것이고, 이 과정에서 폭행 및 살인, 암매장을 당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재판에서 폭행과 살해 부분이 무혐의로 밝혀졌다고 하지만 피해 받은 사람들이 증언도 하였던 것으로 봐서는 정말 폭행과 살인이 없었는지는 여전히 진위가 의심스럽다. 아가동산에서 신도 3명을 살해한 것이 발각되었는데 1987년에는 7살이었던 최 모 군이 교주 김기순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주일 동안 굶기고 마구 때려서 죽게 했으며 21살이었던 강 모 씨도 교주의 아들과 사귄다는 이유로 타살당했고 과수원 관리 책임자였던 윤 모 씨도 교주의 말을 잘 안 듣는다며 살해당했다. 결국 이 추악한 사실이 밝혀져 핵심 간부 4명이 구속되었다. 교인들에게는 1년에 딱 4번 휴가를 줬는데, 신정, 광복절, 크리스마스, 그리고 교주 생일이었다고 한다. 교주 생일에 쉬는 이유는 교주 김기순을 우상으로 하는 연극을 상연했기 때문. 텔레비전, 신문, 외부출입, 가족면회 등 바깥소식을 접하는 건 아예 금지되었다. 가족도 김기순만을 사랑해야 한다는 이유로 다 흩어놓고, 부부끼리 동침도 금지, 신도들이 데리고 간 아이들도 대부분이 중졸 정도의 학력에 병역까지 고의로 면탈하도록 종용했다고 한다. 또 김기순은 지상천국을 세운답시고 신도들의 재산 50억 원 정도를 강제로 빼앗기도 했으며 김기순의 은신처에 있는 금고에 만원권 지폐로 헌금 7억 원과 1996년 당시 환율로 1600만원 상당의 달러가 보관 중이었다. 이러한 반인륜적 착취 끝에 6년 만에 4천 평이었던 땅이 13만 평으로 대략 32배나 늘어났지만... 악행과 고혈 위에 쌓은 그 권세는 오래 가지 못했다. 1996년 12월경 아가동산의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30여명의 前 신도들이 검찰에 진정서를 내면서 그 정체가 밝혀졌다. 그리고 1997년 김기순에게는 사형을 구형했으며 나머지 간부들은 중형을 구형했다. 하지만 그 사이 노동법 개악반대 총파업, 한보사태, 김현철 스캔들, 황장엽 탈북 등 숱한 사건들이 잇따라 터지며 아가동산은 점차 잊혀졌고, 그해 5월에 수원지법 여주지원에서 당시 신도 사체 암매장 혐의자였던 굴삭기 기사 윤씨가 진술을 번복한 사실이 밝혀져 검찰의 무리수 의혹이 퍼져나갔다. 결국 주범 김기순은 조세 포탈, 횡령 등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가 인정되어 징역 4년, 벌금 56억 원을 선고받았고 그나마도 무혐의 처분과 함께 보석으로 석방되었다. 신도 살해와 폭력은 위와 같은 이유로 무혐의로 재판 결과가 나왔으나 아직도 이에 대해 증거하는 피해자들이 적지 않았기에 이에 대해선 뭔가 의심스럽다는 평이 많다. 또한 그간 사람들을 착취하고 중노동시킨 죄과에 비해서는 너무 가벼운 처벌이라는 의견이 많았으며, 과거 아가동산의 노동력 착취 피해자들은 이에 대해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여하튼 김기순이 신도들의 노력을 훔쳐 세운 아가동산은 김기순이 구속되고 난 후 그 세가 약해지기 시작, 결국 와해되어 1998년 출소 후 김기순은 교주로써의 권력을 잃고 초라한 모습으로 종교계를 떠난다. 그렇게라도 인과응보격으로 쓸쓸히 살다 죽었으면 좋았겠지만…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뻔뻔스럽게도 김기순은 출소 후 아직도 남 부럽지 않게 살고 있다. 아가동산 간판을 내리고 마지막 남은 사업체인 신나라레코드를 요긴하게 잘 운영해가며 몰래 잘 먹고 잘 살고 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아는 과거 아가동산의 피해자들은 교주 김기순이 "그간의 악행에 비해 가벼운 처벌을 받은 것도 모자라 석방 후 죄값도 치르지 않고 세상을 조롱하듯 부를 누리고 있다"며 분개하고 있다. 게다가 사건 이후 인력들이 전부 떠나간 아가동산을 신나라네이쳐팜이라는 일반 개인 농장으로 바꾸고 추가로 운영하며 재정을 더욱 불리고 있다. 원래 신나라레코드 자체가 아가동산의 계열사로 설립되었고, 아직도 운영 중이며 용산이나 센트럴시티 등지에 지점을 갖추고 있다. 거기다가 아주 잘 나가고 있으며 현재 한국에서 가장 큰 음반 판매 매장이다. 참고로 여기는 아직도 아가동산 명의로 된 회사다. 전술했듯 과거 아가동산의 교주였던 김기순은 현재도 신나라레코드의 회장으로 재임 중이며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여전히 떵떵거리며 부유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우선 아가동산의 명목상 대표 이사는 신옥희라는 사람으로 되어 있다. 신옥희는 사건 당시 아가동산의 경리 담당으로 김기순의 동생 뻘 측근 중 한 명이었다고. 이 '신나라'라는건 신난다 → 신나라가 아니라 아가동산의 교리였던 '신의 나라'라는 뜻의 신(神)나라다. 신나라 미디어 홈페이지에 가면 '노래, 춤, 웃음의 나라 신나라' 라는 문구를 볼 수 있는데, 아가동산의 교리에 의하면 성부, 성자, 성령이 각 노래, 춤, 웃음이라고 한다. 흠좀무. [출처] 나무위키 ________________________ 신나라레코드가 神의 나라 신나라였다니. 옛날에 씨디 많이 살 때는 멋도 모르고 신나라레코드 자주 갔는데 세상에. 사이비 종교는 항상 살인과 연관이 되어 있는데 자리 보전을 위해서, 또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아서가 많은 것 같아 씁쓸하더라. 결국 이런 놈들이 신도들을 쥐어짜 얻은 돈 덕에 별로 크게 벌을 받지 않고 계속 살아 있다는 것도 언짢고. 너무 힘들어서 버티기 힘든 사람들은 종교에 기대기 쉽잖아. 그래서 더욱 사이비 종교들에 빡쳐.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이용하는 거니까. 이럴수록 더 무너지기 쉬운데 말야. 여태까지의 사이비 종교 교주들은 제대로 처단받지 못 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번에 이렇게 사태가 커진 만큼 이번의 그 종교, 그러니까 신천지 만큼은 어떻게든 깊이 파고들어서 발본색원 했으면 좋겠어. 어떤 식으로든 댓가를 치뤘으면 좋겠다. 힘든 사람들을 좀먹은 댓가. 건강하자. 아프지 말고.
퍼오는 귀신썰) 섬의 어느 폐가 이야기 -1-
(사진은 내용이랑 노상관) 안녕? 왜 이렇게 오랜만인 것 같은 기분일까 사실은 얼마 안 됐는데 말야 ㅎㅎ 요즘 맘에 들어오는 썰들이 너무 없어서 잠시 쉴까 하다가 맘에 드는 글을 찾아서 가져와 봤어! 옛날에 @s127127777777s 님이 가져 오시던 갓서른둥이님 글인데 @s127127777777s 님이 다 올리진 않으신 것 같더라구. 검색해 봐도 이 이야기는 안 보이길래 후딱 복사복사 ㅋㅋ 오늘 날이 많이 추운데 괜히 더 춥게 만드는 건 아닌가 몰라 이제 해도 점점 길어 지니까 괜찮겠지? 입춘도 지났고 ㅎㅎ 그럼 오늘도 같이 볼까? ___________________________ 날이 옴팡지게 춥고만요. 엽호판 눈팅족 이었는데 요즘 글도 안 올라오고 해서 저도 하나 슬쩍 밀어 넣어 봐요. 판에 글 재미있게 너무 잘 쓰시는 분들이  많아 감히 저 따위가 글 올려 볼 생각도 못 했었는데, 요즘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너무나 부족하니 이럴 땐 좀 함량 미달인 글도 그냥 읽어 주시리라  믿고 한자 적을래요. 하자 많은 글이지만 너무 타박 마시고 그냥 재미로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전 그냥 길 위에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며 바람 따라 굴러 다니는 흔하디 흔한 낙엽 같은 남자에요. 그러나 눈 만은 높아 고준희씨를 너무나 좋아하는 남자 사람 입니다. 전 기가 쎈 거 약한 거 그런건 잘 모르지만 그냥 사람이 아닌 존재를 믿고 그런 걸 여러번 봤기에 그 중 한 이야기를 해 드리려 합니다. 믿고 안 믿고는 여러분 자유 의사이오니 너무 따지지 마시고 그냥 읽어주면 안되겠니? 전 고준희씨 같은 여친이 음슴으로 음슴체, 싸가지도 없으므로 반말체로 그냥 적을께요. 때는 지금부터 6-7년 전  정확히 7년 전 일이네. 그 당시 나는 대학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갔었어. 논산 훈련소와 후반기 교육 고달픈 짬찌 이등병 생활 부터 육군 5대 장성 이라는 빛나는 작대기 4개 병장으로 보무도 당당히 사회에 나왔지만 현실은 그냥 복학 못한 잉여 인간이었지. 전역을 하니 학기가 시작한 지 한달이 훨씬 넘은 시점이라 거의 1년을 생으로 쉬어야 했어. 그냥 아무거도 안하고 푹 쉬는거도 한달이면 끝이더라. 한달이 지나니까  아침 6시에 기상 하는 몸에 밴 습관은 빠지는 군기와 함께 저 멀리 날라 갔지만 대신 무료함과 지루함이라는 괴물이 찾아 오더라. 그 때 내 무료한 일상을 구해준 취미가 있었으니 바로 낚시 되시겄다. 처음엔 친구들을 따라 몇 번 갔는데 그 때 까지도 낚시에 매력을 못 느꼈었지. 그냥 친구들이랑 어울려 라면 끓여먹고 방해 안 받고 술 마시는 게 좋아서 따라 갔던 거거든. 그런데 이 낚시란게 하면 할수록 빠져들게 만드는 묘한 고준희씨 같은 매력이 있더라구. 그 매력에 빠져들다 보니 나중엔 내가 먼저 나서서 선동하는 경지에 이른거야. 흡사,  난 관심 없었는데 친구가 좋다고 하는 여자를 같이 쫓아 다니다 보니 내가 좋아하게 되버린 거? 김건모 횽아가 보면 지리것소...잘못된 만남. 몇달 죽어라 알바 해서 낚시 풀셋을 구입했지. 낚시가 처음 초도장비 구입비가 좀 비싸서 그렇치 일단 장비만 갖추면 지렁이 한통, 떡밥 한 봉지만 구입하면 하루를 즐길 수 있는 친 주머니적인 저렴한 취미 생활이거든. 낚시를 다니다 초보때 운 좋게도 월척도 하다보니 꿈이 생기더라구. 그 꿈이 뭐냐 하면 모든 낚시인의 환상인 4자 짜리 붕어야. 4자 붕어가 뭐냐면 40센티 이상 되는 대물 붕어를 말해. 무슨 붕어가 그리 크냐구? 그러니깐 꿈이지.  귀해서 그렇치 분명 있는 붕어야. 원래 토종이 아닌 외래종인 떡 붕어는 40센티 넘는 붕어도 꽤 많아. 성장 속도가 엄청 빠르거든. 그렇치만 우리 토종 붕어인 노오란 참 붕어는 4자 짜리는 환상 그 자체야. 그런데 이 4자 짜리 붕어가 살기 위해선 조건이 있어. 첫째, 먹이가 풍부 해야 하고 둘째, 기후.기온이 좋아야 하고 셋째, 사람의 발길이 많이 안 닿은 곳 이라야 하고 넷째, 최소한 10년 이상 바닥이 드러날 만큼 마른 적이 없어야 해. 그런데 그런 곳이 어디 잘 있나? 년중 행사로 가뭄이지. 어딜가도 사람이 북적북적한데. 그러던 와중에 친구에게 희소식을 들은거야. 그 친구 집이 서해의 어느 섬이거든. 자기네 고향집에 뒷산으로 가면 내가 말한 조건과 같은 농업용 저수지가 있다고 하더라고. 친구 얘기론 예전 저수지가 처음 만들어 질 때(그 친구 찌찔이였을 때 만든 저수지라 함 20년 정도 된) 마을 사람중 누군가가 뭍에서 붕어 몇마리 가져다 넣었는데 그때 붕어가 엄청 번성했다고 함. 민물 새우도 같이 방류해서 새우가 저수지에 반이라고 뻥침. 그래서 내가 그랬어. 야!!  마을 뒤면 동네 사람들이 다 잡았겠지. 라고 하니 얘가 살짝 비웃더라. ㅂㅅ아  누가 저수지 가서 붕어 잡고 앉았냐? 양 사방이 다 바단데 갯바위 가서 맛있는 우럭 잡지. 이렇게 얘기 함. 내 생각에도 그렇더라구. 붕어를 누가 잡겠어?  바다낚시 하지..... 그래서 난 그곳으로 출조를 하기로 한거야. 그 녀석을 부모님 살아실 제 한 번이라도 더 찾아 뵙고 효도를 다 하는게 인간의 도리라고 꼬셔서 같이 가기로 했지. 그런데 가기로 약속한 전 날 갑자기 그 애는 사귀던 여자친구랑 급이별을 하게 되었고 광분한 녀석은 술과의 데드매치를 벌여 떡이 되어 누운 거야. 어쩔수 없이 나 혼자 가야 했어. 속으로 내가 알고 있던 8만 4천 가지 욕을 다 퍼부으며 말야. 배 타기 전에 시내 낚시점에 들려 떡밥과 지렁이를 넉넉히 준비했어. 바닷가 가면 바다낚시 미끼만 팔더라구. 난 그 뒤 여러시간 배를 타곤 아침에 내가 뭐 먹었는지를 화장실에서 확인하며 어렵게 친구 고향섬에 갔어 ....죽는 줄 알았다 진짜. 도착 해서 보니 낚시를 오신 분들이 많으셨어. 그러나 그 분들은 바다 낚시를 오신 분들이었지. 나랑은 목적 자체가 틀린 분들이라 경쟁자가 없다는 것이 얼마나 맘이 편하던지 몰라. 그리곤 친구가 미리 설명 해준 길로 마을을 지나 20분쯤 산쪽으로 올라 갔어. 마을 끝에 마지막 보이는 집을 지나 한 300미터 쯤 산쪽으로 오르니 그 저수지가 나오더라구. 저수지라 하기엔 너무 규모가 작은 보통 초등학교 운동장 3분의 1만한 작은 저수지였어. 그런데 딱 봐도 여긴 대물이 살겠구나 하는 느낌이 오더라구. 물가에 오래된 나무들도 있고 물이 맑아 바닥이랑 수초도 다 보였는데 정말 팔뚝만한 붕어들이 떼로 몰려 다니는 거야. 얼마나 급 흥분이 되던지. 서둘러 자리를 잡고는 앉았는데 눈 앞에 그때서야 저수지 맞은 편에 낡은 집 하나가 보이는 거야. 풀이 키만큼 자라 잘 안 보였던 건데 딱 봐도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란 느낌이 들더라. 그냥 보통 시골에서 많이 보던 슬레트 지붕 집인데 아마 초가를 지붕 개량만 했던 듯,  집은 초가 형태 였고 군데 군데 무너지고 방문 창호지도 다 찢어지고 그런 집이었어. 누가봐도 느낌에 사람이 살지 않는구나 하고 느꼈을껄? 뭐 시골 가면 그런 폐가가 흔한지라 그런가 보다 했어. 폐가가 달리 폐간가? 그냥 사람 안 살고 관리 안한지 좀 되면 다 폐간거지. 그렇게 앉아 낚시를 시작 했는데 처음 떡밥을 써서 하는데 입질이 없는거야. 한참 그러다 미끼랑 바늘을 바꿔 달았어. 지렁이로 말야. 그러자 넣기 무섭게 입질이 오기 시작 하더라구. 역시 사람 손이 안 탄 곳이라 붕어들이 떡밥 맛을 몰랐던 거야. 대신 살아있는 지렁이엔 환장 하고 달려 든거고. 잡히는 족족 준척급 이상 되는 씨알 굵은 붕어들이 딸려 올라오는 거야. 정말 신나게 낚시를 했고 시간 가는 줄 몰랐지. 그런데 기대했던 4자 짜리는 소식이 없었어. 워낙 기본 씨알이 굵기는 했지만 진짜 대물은 밤낚시 때나 되어야 나오겠단 생각에 가지고 간 라면을 끓여 저녁을 먹었어. 이 세상에서 젤 맛있는 음식이 만화방이랑 낚시터서 먹는 라면, 그리고 당구장서 먹는 자장면일걸? 남자들 동의 하나? 그렇게 라면을 맛나게 먹고는 잠시 쉬었어. 밤 낚시 준비를 하고는 낚시 의자에 기댄 채 2-3시간을 자고는 밤 낚시를 시작했어. 입질은 좀 뜸 했지만 고기 씨알은 낮에 비해 월등해져서 4짜에 대한 기대를 한껏 부풀려 주더라구. 그렇게 밤이 깊어 가고는 11시가 넘었어. 물론 인기척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나만의 낚시터였어. 갑지기 하늘에서 천둥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거야. 그땐 날씨를 미리 첵크 해야 된다는 기본 상식이 부족했던 지라 날씨를 미리 계산 안한 나의 실수였지. 고갤 들어 하늘을 봤지만 별빛 하나 없는 하늘엔 아무것도 안 보이는 거야. 아마 보였다면 먹구름이 잔뜩 몰려온 하늘을 봤을거라 생각해. 그리고는 순서에 입각하듯 비가 내리기 시작했어. 조금씩 더 많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첨부터 거의 양동이로 쏟아 붓듯 내리는 거야. 비옷도 없이 겨우 조그만 우산 하나 뿐이 없던 나는 그 우산으로 나의 몸이 아닌 소중한 낚시 가방을 보호했어. 그래, 나 낚시 가방만도 못한 남자다 ㅋ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순간 번개까지 치는 거야. 낚시대 잘못 가지고 있다간 피뢰침 역할해서 감전사 하는 경우도 많아. 겁나더라. 더 큰 문제는 비에 잔뜩 젖은 몸이 심하게 떨려 오기 시작하더라고. 아! 이게 저체온증 이구나 했어. 뭔가 결정을 해야 했어. 난 낚시는 그대로 놔두곤 낚시 가방과 간단히 싸온 짐만 들고는 랜턴빛에 의지해 그 폐가로 뛰어 갔어. 밤새 비 맞아 병 드는거 보다는 폐가라도 비나 피할 수 있으면 나을꺼 같았거든. 작은 렌턴을 들고는 폐가로 가선 그 폐가 부엌이었다 생각 하는 곳엘 들어갔어. 내 짐작이 맞아 그곳은 부엌이었고 아궁이도 있었고 그곳 한 모통이엔 쌓아 놓은 마른 장작도 몇개 있었거든. 난 아궁이에 신문지로 불을 지펴 장작을 태우기 시작했어. 불이 나무에 옮겨 붙어 타들어 가니 몸이 녹더라구. 장작이 많이 없어 다 부셔져 너덜너덜한 부엌 나무문도 뽀개서 불에 쑤셔 넣었어. 그리고 코펠에 빗물을 받아 라면 하나를 끓여 먹었지. 비 맞은 생쥐 같은 꼴에 따뜻한 불과 속에 뜨거운 라면이 들어가니 급 졸리기 시작하는 거야. 라면을 먹고는  불 앞에서 꾸벅 꾸벅 졸기 시작 했지. 얼마를 졸았을까? 흥얼 흥얼 하는 낮은 소리를 듣고는 잠에서 깬거야. 무슨 소리지? 잠결에 내가 꿈을 꾼건가? 이렇게 긴가민가 하고 있는데 이번엔 깬 와중에 똑똑히 소리를 들은거야. 소리는 부엌 바로 옆방에서 나고 있었지. 예전 시골집들 봤어? 부엌 바로 옆이 대부분 안방이야. 그리고 부엌과 방 사이엔 대부분 정짓문이라고 하는 문이 있거든. 이 문을 통해 부엌에서 밖으로 안 나가고 출입 하고 방으로 밥상을 들였었거든. 그 문은 대부분 창호문으로 미닫이 문이 대부분이였고. 난 이미 군데 군데 찢어진 창호문 사이로 조심하며 안을 들여다 봤어. 그런데, 그런데, ㅠㅠ 방안에 어떤 하얀 사람 같은 형상이 보였어. 자세히 보니 나이가 많으신 백발의 할머니가 방안을 뺑뺑 돌면서 다니시고 있는 거야. 그 할머니는 그렇게 방을 돌면서 중얼거리셨지. 그 말도 들을 수 있었어. 방이 따뜻하네? 방이 따뜻하네? 그렇게 도시던 그 할머니는 어느 순간 그 찢어진 정짓문 사이로 내 눈 높이에 맞추어 앉아 계시는 거야. 그 뀅한 눈으로 나를 마주 쳐다 보면서................ 얼마나 놀랬는지 몰라  내가 그때 떨어트린 간덩이를 아직도 수습 못했거든.  잉 잉. 그런데 그렇게 할머니 귀신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입으로 말하지도 않는데 머리속에 말이 울리는 거야. 내집 부순게 니놈이구나? 난 짐도 다 놔둔 채 빗속으로 뛰어 나갔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마을 쪽으로 달렸지. 달리다 저수지 건너 내가 낚시 하던 쯤에 왔을 때였어. 꼭 그놈의 망할 호기심이 문제야. 사슴이 포수한테 왜 잡히는 줄 알아? 사슴은 도망가다가 꼭 한 번 멈춰서 뒤돌아 본다고 해. 얼마나 쫓아왔나 하고 말야. 포수는 그때를 안 놓치고 총을 쏴 사슴을 잡는다고 해. 내가 그 사슴 꼴이었음. 뒤 돌아 보니 어느덧 나온 그 할머니가 마당 끝에서 저수지 건너 있는 날 보고 있더라구. 그러더니 빙글 옆으로 돌더니 마당을 가로 질러 길을 따라 날 무서운 속도로 쫓아오는 거야. 진짜 무서운 건 뛰거나 달리는게 아니라 길위를 스키 미끄러지 듯 스르르 미끄러져 빠른 속도로 내게 다가오는 거야. 그 때 부터는 내 정신이 아니였어. 난 젖먹던 힘까지 짜내어 마을 쪽으로 비탈을 달려 내려 갔어. 중간에 한번 360도 회전하며 넘어져 크게 굴렀지만 내 몸이 다쳤는지 살필 새도 없었지. 나중에 보니 무릎이 찢어졌는데 그때 생긴 상처가 아직도 남아 있어. 그렇게 뛰어 드디어 산 바로 밑 마을의 끝집에 도착을 하고는 그집 마당으로 뛰어 들면서 엎어지며 살려 달라고 소리 질렀어. 그리고 길을 보니 내가 내려온 길에 그집 마당이 훤히 보이는 위치에 그 할머니가 서서는 무서운 눈으로 날 쳐다보고 서 있는 거야. 그때 마침 방 안에서 인기척 소리가 들리며 불이 켜졌고 어떤 노인 한분이 나오셨고, 날 쳐다보던 그 할머니는 소리 없이 그 순간 사라졌어. 방에서 나오신 노인은 크게 놀라시며 날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셨어. 나중에 말씀 하시는데 내 모습이 귀신에 가까웠다고 하시더라구. 방에 들어가니 비슷한 연배에 할머니 한분이 놀라며 날 맞아 주셨지. 아마 두분 노 부부만 사시나 보더라구. 그리곤 자리에 털썩 주저 앉은 내게 냉수 한사발을 가져다 주셨어. 난 냉수를 단숨에 들이킨 후 숨을 고르고는 내가 겪은 일들을 얘기 드렸어. 처음엔 왠 젊은 놈이 정신 나간 소릴 하나 하시던 노인 분도 내가 그 할머니 용모를 얘기하자 크게 놀라시며 그러시는 거야. "오메....서산댁 아주머니가 아직도 안 가시고 그 집에 계시나 보구먼." 그리고는 그 노인 분은 그집 얘기를 해 주시기 시작했어. 원래 그 집엔 할아버지가 중학생일 무렵 뭍에서 시집와서 터를 잡으신 노인분 보다 열 몇살 연장인 부부가 살고 있었다고 하더라구. 그리고 부부는 열심히 일해서 자식들도 셋이나 낳고는 행복하게 잘 사셨다고 해. 그러다가 큰 애가 초등 학교에 들어갈 무렵 이 아저씨가 바람이 났던 거야. 그리고는 모아 두었던 재산을 다 들고는 처 자식 다 버리고 뭍으로 도망을 가셨다고 해. 혼자 남으신 아주머니의 고생은 말이 아니였다고 해. 조그만 산을 일구어 만든 밭에서 억척스레 일을 하고 마을 일이나 고기따는 일 등 돈이 되는 일이면 뭐든 해서 3남매를 키우시고 다 장성시켜 뭍으로 공부 보내고 시집 장가 다 보내시고는, 같이 나가 살자고 하는 자식들 말도 다 뿌리치곤 그집에서 홀로 여생을 보내셨대. 말씀은 안 하셨지만 남편과의 추억이 서린 그 집을 버리지 못 하신 거 같다고 하시더군. 평생 그 집에서 남편을 기다린 거지. 그런 할머니와 한 동네에서 오랜 동안 사셨던 노인 부부는 자주 할머니 집도 들여다 보고 먹거리도 나눠 드리고 하셨었나 봐. 그러다가 내가 그 섬엘 가기 몇년 전에 며칠 외딴집 할머니가 안 보이셔서 어디 편찮으신가 걱정이 된 할아버지가 집에 찾아 가보니 홀로 안방에서 주무시다 돌아 가셨던거야. 그뒤 뭍에 있던 자식들을 급히 불러 장사를 모셨다고 해. 그리고는 그 집은 재산 가치도 없고 누가 들어와 살 사람도 돌볼 사람도 없었기에 그대로 폐가로 방치 되었던 거지. 그리고 내가 피신했던 그 집이 어찌 보면 할머니껜 은인네 집 이라고 할 수도 있고 많이 고마웠던 집이였던 거야. 노인 분이 할머니 살아계실 때 많이 도와드렸고 시신도 발견 해주고 장례도 많이 도와주고 그래서 내가 그 집으로 들어가자 차마 더 해꼬지 하진 못한게 아닌가 생각해. 그 집에서 밤을 새우고는 아침 일찍 노인 분과 함께 그 집엘 갔어. 노인분이 집을 살피는 동안 난 짐을 챙기고 낚시도 걷었지. 그리곤 노인이 향 하나를 피워 방에 놓으시며 그러시더라. "아주머니, 뭔 한이 그렇게 많아 아직도 못가고 그러신다요. 다 잊고 빨리 좋은데 가소" 그러고는 돌아 오는데 난 노인을 놓칠새라 바짝 붙어 따라 내려 왔어. 그리고 손님 그냥 보내면 안 된다고 차려 주시는 아침 감사히 잘 먹고 인사 드리고 왔지. 그런데 그게 끝이였음 좋았을 껀데 끝이 아냐. 외딴집 할머니께서 날 따라 뭍으로 출장을 나오셨거든. 다음에 다시 얘기할 기회가 있으면 이 얘긴 그때 해 드리죠. 글 쓴다는 게 정말 만만한 일이 아니네요. 엽호판에 좋은 글 올려 주시는 작가 분들께 이 기회 빌어 다시 한번 감사 드려요. 전 아무 불평 불만 없이 너무 고맙게 잘 읽는 독자이오니 재미난 얘기 많이 부탁 드려요. 전 이만.........뿅~~~~~ [출처] 네이트판 | 갓서른둥이  ________________________ 잘 마무리 됐을 줄 알았는데 뭍으로 출장을 나오시다니 남편분 찾으러 나오신걸까 뭘까 ㅠㅠ 그건 내일 같이 보도록 하자 ㅎㅎ 그나저나 정짓문이란 말 들으니까 재밌네 정지는 부엌의 사투리거든 난 그냥 경상도 사투리인줄 알았는데 꽤나 여러 지방에서 사용하는 거더라. 강원도,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까지... 알고 보니 경기도랑 제주도만 빼고 다 쓰는 거였어 ㅎㅎ 그러면 오히려 부엌이 소수 언어 아닐까 ㅋ 암튼 날 추운데 옷 잘 여며 입고 손 깨끗이 씻고 요즘은 귀신보다 전염병으로 인한 혐오가 더 무서운 것 같아 치사율도 낮고, 젊은 사람들은 그냥 감기나 마찬가지니까 너무 큰 공포감을 조성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어. 물론 내가 걸리는 건 걸리는 거라도 취약한 어르신들이나 아가들한테 옮으면 안되니까 조심하도록 하자. 불필요한 혐오를 더 조심하도록! 그럼 잘 자고 내일 또 올게!
퍼오는 귀신썰) 사촌오빠 친구썰 2화
안녕! 오늘도 왔지 ㅎㅎ 오늘도 따뜻하네 정말 어쩜 이번 겨울은 이런지 몰라 지구야.. 괜찮니..? (아련) 다들 뭐하고 있어? 시간나면 같이 귀신썰 볼까아아? 시작! __________________________ 나를 소름끼치게 만든 사촌오빠 친구 (2) 귀신싸움에 스피커 등 터진 그 날의 충격과 공포가 채 가시기도 전에 2번째 사건이 터졌음. 오빠 친구는 마치 아무 일 없는듯이 지냈다고 함. 다만 우리 오빠는 컴퓨터방을 봉인하고 공부에 미친듯이 집중하기 시작했음 그 말을 듣고 친구는 "문 닫으면 걔네들이 못 넘어 올꺼 같냐?" 라고 비웃었다고 함 역시 오싹한 오빠임 하지만 그것이 사실인 것을 알기에 우린 쫄 수 밖에 없었음 ㅜ ㅜ 사실 며칠 간 아무일도 없이 평화로웠음 근데 그 평화로운것이 문제였던거임. 스피커사건이 터지고 일주일도 채 안 지나서 나는 낮잠을 자다가 이상한 꿈을 꾸게 됐음 내가 내방 침대위에 앉아 있는데, 왠 남자 꼬맹이가 쫄래쫄래 방안으로 들어오는 거임. 사실 정말 안 위험하게 생겼음. 꿈이여서 그랬는지 난 모르는 애가 들어오는 것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음 그런데 그 꼬맹이는 망설임 없이 내 책상으로 다가가더니 갑자기 책상 위에 있던 호치케스로 지 검지를 마구 찍기 시작하는거임. 정말 피가 철철 나는데 걔는 눈 하나 꼼짝을 안 함. 다만 목구녕에서 [드르륵..그르륵] 거리는 쇠 긁는 소리를 간간히 냈음 내 침대를 벗어나면 저것 한테 꼼짝없이 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데 차가운 느낌이 목덜미를 타고 쫙 내려감 얼마나 찍어 댔을까, 호치케스 핀이 다 떨어졌는지 그놈아는 드디어 호치케스를 바닥에 떨구고는 천천히 나를 향해 돌아보기 시작함. 벌써 나는 이게 꿈이라는 걸 잊은지 오래였음 드디어 걔랑 내 눈이 마주쳤을 때 무표정으로 이렇게 말함: "어?... 고장나 버렸네?..." 그러더니 그게 눈알을 돌리면서 이히히히힝ㅎ이힣이ㅣ히이힣히ㅣㅎ 미친듯이 웃기 시작했음. 그 모습에 내가 꿈에서 기절을 했는지 하여튼 그렇게 찝찝하게 잠에서 벌떡 깨어났음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꿈에 그 놈이 서 있던 자리에, 멀쩡히 책상 안 쪽에 있던 스테이플러가 떨어져 있는거임 얌전히 떨어져 있기만 했으면 별거 아니 였을 텐데 안에 있는 핀들이 죄다 떨어져 나와 바닥에 뒹굴고 있었음 근데 님들... 호치케스 핀은, 서로서로 붙어 있다는 사실. 아무리 떨어진 충격이라고 해도 내 방바닥에 떨어져 있었듯아 하나, 하나, 다 분리 돼어 떨어질리가 없음. 정말 그 핀들은, 어느 한 줄 붙어 있는거 없이 누가 하나하나 잡아 떼서 늘어 논 것 처럼 그렇게 바닥에 떨어져 있었음... 심장이 미친듯이 뛰면서 미칠것 같았음 게다가 이건 꿈도 아니였음 =_= 방에서 나가려면 저 떨어져 있는 핀들을 지나쳐 가야 하는데 그건또 못할것 같아, 침대에 앉아 땀만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음 그런데 갑자기 내 귀에다 그애가 "고장난거안고쳐줄꺼야???" 라고 속삭임. 거품 물 뻔 한거 꾹 참고 ㅜ ㅜ 생각할것도 없이 침대 옆 탁자 위에 있던 휴대폰 집어들고 집에서 뛰쳐나감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거울 보고 깜짝 깜짝 놀램 하다 못해 그 짧은 시간동안 귀막고 엘리베이터 구석에서 덜덜 떨었음. 와 나 정말 아무 생각도 안 남ㅋㅋㅋㅋㅋ 진짜 머리속이 5^&*&^%$%^&인 상태에서 아파트 밖으로 뛰쳐나와 사촌오빠한테 전화를 미친듯이 걸었음ㅋㅋㅋㅋㅋㅋ 근데 학원 수업 중이라고 끊어버림ㅋㅋㅋㅋ (*)#)(#*&$) 잊지 않겠다 집에는 못 들어가겠고, 친구한테 연락을 할까 하며 서성이는 도중 다행이 오빠가 나한테 문자를 보냄: [내 친구 간다] 오빠가 빨리 조처를 취해준 건 정말 너무 고마웠지만 왠지 그 친구 라면 더 무서워 질 것 같다는 생각에 피가 나도록 엄지손톱을 잘근잘근 씹었음 근데 정말 안 좋은 예감은 적중하는 것 같음. 역시 그 친구가 느릿느릿느릿 정문을 통과 해 걸어오는 모습이 보이는 거임 그리고 그 오빠 친구는 나한테 오자마자 고개를 갸웃 하더니 "누구야?..." 라고 하는거임. 아오 진짜 앞으로 이 사람이 무슨 말 만 하면 실성할 것 같았음 얘기를 대충 늘어 놨는데 애의 생김새라던지 말해 주지 않았는데: "혹시 눈 돌리는 애?..." 이렇게 물어보는 거임 와나 진짜 순간 그 오빠 집에 갔다 묻어와서 아는건가 싶어서 나보다 3살 많은 사람 멱살 잡을 뻔 함 ㅋㅋㅋㅋㅋㅋ 집에 가보자고 하길래 정말 싫었지만 다시 우리 집으로 올라가서 내 방에 진입했음 와나 정말!!! 미!!치!!는!!! 줄 알았음 이번엔 분리돼서 그냥 사방에 누워 있던 핀들이 한 줄로 쭈-욱 나열 돼 있는거임 그리고 그 핀들은 내 문에서 부터 책상밑을 향하고 있었음... 그렇게 나란히 늘어져 있는 핀들을 눈으로 쫓아서 가보니.. 분명히 내 책상 밑에 뭔가 있는것이 느껴짐. 창문에 커튼 쳐놨던거 걷어 놀껄 이라는 후회를 하고 있는데, 사촌오빠 친구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책상 앞에 가서 바닥에 앉음. 그러더니 책상 밑에 그 무엇인가에 이렇게 말을 건냄: "그 여자 여기 없어." 근데 난 분명히 들었음. 아주아주 잔잔하게 쇠가 긁히는 [드륵드르르륵그륵] 소리가 났는데 분명히 분명히 분명히!!! 그 꼬맹이 목소리가 "나도 알아 이히힣ㅇ히ㅣ히힣" 라고 대답했음. 그럼 좀 꺼져줄래 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음  ㅜ ㅜ 한 순간 긴장이 확!!! 조였다가 확!!! 풀렸다가 그게 반복 돼니까 어지러움 증과 두통 까지 겹침 얼마나 지났을까 그 오빠는 자리에서 별일 없었다는듯이 -_- 일어나서 호치키스 핀들을 줍기 시작함. 그리고 왠만하면 새로운 거 사라더니 호치키스를 들고 나가버림 나도 약간의 영감이 있는지라 내 책상밑에 있던 무언가가 나갔다는 것을 꺠닳음. 그래도 무서워서 쫄래 쫄래 같이 쫓아 나감 ㅜ ㅜ 근데 태울 줄 알았더니 가지고 그냥 자기 집 갔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안 태워?" 라고 했더니 "이걸 어떻게 태워 내가 용광로냐" 라고 대꾸함ㅋㅋ 그리고 그 사촌오빠 친구는 내가 얘기를 잘 들어주게 생긴데다 감이 있는지라, 원한이 많은 원들이 많이 따를 것 같다고 하며 충고 아닌 충고를 해주심. 그 아이가 살아 있을때 너무나 많은 괴롭힘을 당하다가 간 아이 같았다며 호치키스야 계속 써도 문제가 없겠지만 내가 찝찝할 까봐 치워 준 거라고 하심 마지막으로 놀러 갔을 때도 그 떄 그 핀들이랑 호치키스를 자기 방에다 잘 두고 있었음; 그 아이가 죽어서도 '다른 사람들이 내게 또 등을 돌렸구나,' 라고 생각하지 않게 잘 두고 있는거라고 했음.. [출처] 네이트판 ________________________ 뭐야 엄청 착한 사람이잖아 아주 매력이 있는 사람이로군 그래도 이런 사람이 근처에 있어서 마음이 좀 놓였겠다 쓰니나 쓰니 사촌오빠는. 처음에 뛰어나가서 안았던 게 이유가 있었네 ㅎㅎ 다음은 또 무슨 이야기가 있을까? 내일 같이 보도록 하자 오늘 잘 쉬고!
퍼오는 귀신썰) 사촌오빠 친구썰 3화
오늘도 왔다!!!! 어때 일요일은 잘 쉬었어? 피곤함이 조금은 사그라든 일요일이었기를 바라며 오늘도 이야기 이어갈게 같이 보쟈 ㅎㅎ _____________________ 꺄꺄 댓글 달아주신거 너무... 신기해요!!!!! 그런데 제가 글 솜씨가 없어서 ....(//).. 재미 없으시면 어떻게 하죠.... 아 근데 정말 평화로이 낮잠자다 당한 일이라 정말 울기 99%직전이였다는... 우음... 글쓰는 솜씨는 어떻게 하면 좋아지는건가요. 유전은 아닌것 같군요 일단 이거.. 무리해서 10편까지 한 번 가볼생각입니당 그만큼 이 오빠친구는 참 흥미로워요 후후 (   / -ㅅ-)/ ---------------------------------- 나를 소름끼치게 만든 사촌오빠 친구 (3) 전에 얘기에서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물론 우리 사촌오빠는 일반인 (?) 친구도있음. 그 들을 쓰기 편하기 위해 A, B, C, D 로 각각 부르겠음 그 사람들에게서 이 글의 제목이 칭하는 the 사촌오빠 친구의 별명이 [존무대디] 라는 것을 알았음ㅋㅋㅋㅋㅋ (존x 무서운 대디 라고 함, 대디는 그냥 존무라고 하긴 이상해서 붙였다고들 하심) 이거 원 제목을 바꿔야 하나 ㅋㅋㅋ 존무대디는 별명으로 미루어 보건데 원래 성격이 좀 오싹한 성격인가 봄. 그런데 또 친구는 많은 것 같음. 존무대디의 관한 일화들은 참 평범과는 거리가 먼 듯 했음 1. 피부과 이야기 우리 사촌오빠 말고, A오빠와 함꼐 존무대디가 피부과를 같이 가주었다고 함. 그게 지난 겨울이였는데, 이유는 날씨가 너무 건조 하니까 안 그래도 여드름드름 브레이크 현상을 체험하던 A오빠의 피부가 극도록 나빠졌던 것임. A오빠 말로는 멀쩡하던 존무대디가 잠시 진료실에서 나온 의사를 보고 인상을 완전 험악하게 찌뿌렸다고 했음. 워낙 무표정에 모두 아시다시피 왠지 모르게 오싹한 성격이라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A오빠는 간호사 언니가 불러줌에 따라 진료를 받으러 들어갔음. 근데 들어갈떄 막 쳐다봐도 존무대디는 같이 들어가 줄 생각을 안했다고 함. "밖에서 기다릴래?" 라고 물었더니, "어...미안." 이라고 존무대디가 짧게 대답했음. A오빠는 섭섭해도 그냥 그러려니...했음. 근데 진료를 시작하려고 그러는데 존무대디가 갑자기 못참겠다는 듯이 진료실 문을 열고 쳐들어와서 A오빠 팔을 잡아 끌더니 "다른데로 가자" 라고 했다는거임. 의사도 간호사도 벙쪄 있다가 ㅎㅎㅎ왜그러세요 라고 했더니 존무대디는 그냥 A오빠 팔만 미친듯이 잡아 끌었다고 함. 근데 A, B, C, D 중에 A 오빠는 정말 순함. 우리 사촌오빠보다 순한 것 같음 존무대디가 그러는데에는 이유가 있겠지 ... 라고 생각해서 의사쌤과 간호사 언니에게 굽신 인사를 하고 "다음에 뵙겠습니다" 이러고 그냥 나왔다는 거임 ㅋㅋ 집에 돌아오는 내내 못볼 거 봤다는 듯이 정색하는 존무대디에게 A오빠는 춥다고 징징대지도 못한채 무슨일이냐고 계속 물어봤다고 함 존무대디는 그런 A오빠에게 집에 다왔을떄 쯔음에야 "불 탔어...." 라고 웅얼거렸다고 함. 순간 존무대디의 목소리가 너무 섬찟해서 A오빠는 뜻도 알아 듣지 못했지만, 그저 "그래?"  라고 대꾸하고 잊었다고 했음. 근데 여드름드름 브레이크는 정말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심해졌고 A오빠는 어머니의 극성 강추로 인해 제일 가까이 있는 그 피부과를 존무대디와의 일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다시 찾게 됌.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우리 사촌오빠와 같이 갔다고 함.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 사촌오빠는 그냥 같이 따라가 줌. A오빠의 말로는 그때 진료실에 있었던 간호사 언니를 보고나서야 그 때 불탔다고 중얼거린 존무대디의 말이 기억이 났음. 그래서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작성하고 간호사 언니에게 건내주는 순간 그냥 장난끼 어린 마음으로 "여기 불 난적 있어요?" 라고 툭 뱉어봤다고 했음. 근데 간호사 언니가 순간 멈칫 하더니, "네?" 라고 싸늘하게 되물어 봤다는 거임. 그래서 A오빠는 그냥, "여기 불 난적 있냐구요"라고 대꾸했음 근데 그 간호사 언니는 약간 사색이 돼서 "왜 그러시는데요"라고 했다 함. 언니 표정이 너무 안 좋아지는것 같아서 A오빠는 대충 둘러대고 우리 오빠와 함께 차례를 기다렸음 사람이 별로 없어서 한 2사람 뒤에 드디어 A오빠 순서가 왔음. 우리 사촌오빠는 당연히 같이 들어갔는데, 우리 오빠 정말 뻥 안 치고 들어가다 다리 풀려서 주저 앉음. 오빠 말에 의하면, 얼굴 부터 가슴께 까지 홀랑 타버린 무언가가 의사 어깨위에 팔을 두르고 있었다 함. 그것도 콧노래 비스무리 한 걸 부르면서 피부에 물집이 잡혀 터지고 살이 드러나서 근육이 보일랑 말랑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미친듯이 빙빙빙빙빙빙빙빙 돌리고 있었다고 했음. 그러다가 그 꼴을 보고 기겁한 우리 사촌오빠를 눈치채고 안 그래도 찢어진것 같은 입을 쫘아아악 벌리면서 낄낄 대더니, "이 자식이 날 태웠어! 낄끼릭기릮리끼낄끼릴ㄲㄲ릮리" 라고 주장했다고 함. 그리고 밖으로 나가는 간호사 등으로 옮겨 타더니, "이 년도 마찬가지야!! 꺄꺄깎락깔갈ㄲ띾띾랄깔깎ㄹ" 라고 속삭였다고 함. 덕분에도 A오빠는 우리 사촌오빠랑 가서도 치료를 못 받았음. 우리 사촌오빠가 하는 얘기를 듣다 못해 존무대디는 A오빠를 자기가 끌고 좀더 멀리 있는 피부과로 갔음. 그리고는 A오빠한테 "거봐...탔다니까..." 라고 중얼거렸다고 함. 그 병원에 도대체 무슨사연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음. 가보고 싶었지만 난 우리 사촌오빠 보다 겁이 많으면 많았지 덜 하진 않기에 관뒀음 ㅋㅋ [출처] 네이트판 _______________________ 무슨 사연인지 너무 궁금한데 알 수가 없네ㅠㅠ 입원중이던 환자였던 걸까 대충 시나리오는 그려지지만 모를 일이지... 불에 타 죽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고통이라던데 얼마나 아팠을까..ㅠㅠ 존무대디는 말이 많지 않아서 오히려 좋은 것 같아 아주 맘에 드는군 ㅎ 다음 얘기는 내일 또... 알지? 잘 자고 내일 또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