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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벅찬 순간들, Maria Pavlova

요즘처럼 집에 붙어있는 날이 많을 때는 곁에 항상 있어주는 반려동물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죠. 보고 또 봐도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한, 그 순간을 그대로 포착한 듯 한 그림이 있어 소개합니다.
러시아의 화가 Maria Pavlova( 1979- present, Russian)의 그림들이에요. 많은 작품들이 있지만 특히 고양이와 함께 하는 따뜻한 순간들만 뽑아 봤어요.
'예술은 오로지 긍정적인 감정들만 발현시켜야 한다'고 믿는 그녀인 만큼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죠.
그녀는 자신의 그림에 대해 이런 말도 했죠.
"나는 내 방에 걸어놓고 보고싶은 그림만 그려요."
방에 걸어두고 두고두고 보고 싶은 그림들, 같이 볼까요?
귀여워서 살짝 강아지 그림도 가져왔어요 :)
이 그림들이 누군가에게는 위안이 되었기를.
6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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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사랑입니다ㅠㅠㅠㅠㅠ
제가 위로가됫네욥
이런 좋은 글이 무플이라니 참을 수 없어! 잘 봤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계속 부탁하는 맘으로 꿀팁 선물 하나 놓고 갑니당
제가 좋아하는 색상 계열이라 더 좋아요!🤩🤩🥰🥰
그림이 따뜻하고 세상평화 스럽네요~ 정말 방에 걸어놓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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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를 천재화가로 만드는데 기여한 사람
고흐. 살아생전에 자신의 그림은 한장밖에 팔지못했고 반년후에는 유일한 지지자였던 남동생이 죽어서 어떻게 봐도 거기서 '끝'이었어야 할텐데 생전에는 그냥 그런 사이였던 동생의 아내가 하숙집을 꾸리면서 고흐의 그림을 꿋꿋하게 장식하고 전시회를 열거나 하면서 서서히 '천재화가'가 완성되어갔다. 이부분이 제일 가슴이 뜨거워진다 아마도 생전의 요한나는 '고흐의 그림'에 대해 '잘모르겠다' 라는 감상말고는 없었다고 본다. 그래도 남편이 죽은 뒤에는 '남편이 남긴 단 하나의 유지이자 유산'이 되었다. 그 이유 하나만 가지고 자신의 모든 인생을 건 여성이 있었기에 '천재화가 고흐'가 완성되었다. 고갱같은, 생전의 남편이 도움을 주고 남편의 형과도 친교가 있었던 화가들에게 협력을 거절당하면서도 요한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상한 그림이 걸린 하숙집 여주인'이 천재화가 고흐를 만들었다. 만약 그림이 많다고 버렸다면 아무도 고흐를 기억하지 못했다. 요한나는 예술도, 고흐 본인도 아닌 남편이 지닌 화상으로서의 재능과 의지에 모든 것을 걸었다. 자신의 남편은 글러먹은 형님을 실없이 뒷바라지 한게 아니라, 진짜 천재에게 투자한 거라고 수십년에 걸쳐 증명한 것이다. 고흐를 믿는 남편을 믿는 나를 믿어보자! 너무 멋있네요 이 둘의 믿음과 사랑이 없었다면 고흐를 보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이게 바로 사랑이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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