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gotg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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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 민주화 운동 백일장에서 대상탄 고3이 쓴 시

그 날 나가 자전거 끌고잉 출근허고 있었시야

근디 갑재기 어떤 놈이 떡 하니 뒤에 올라 타블더라고

난 뉘요 혔더니, 고 어린 놈이 같이 좀 갑시다 허잖어 가잔께 갔재

가다본께 누가 뒤에서 자꾸 부르는 거 같어 그랴서 멈췄재

근디 내 뒤에 고놈이 갑시다 갑시다 그라데

아까부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어른한티 말을 놓는거이 우째 생겨먹은 놈인가 볼라고 뒤엘 봤시야

근디 눈물 반 콧물 반 된 고놈 얼굴보담도 저짝에 총구녕이 먼저 뵈데 총구녕이 점점 가까이와

아따 지금 생각혀도... 그땐 참말 오줌 지릴 뻔 했시야

그때 나가 떤건지 나 옷자락 붙든 고놈이 떤건지 암튼 겁나 떨려불데

고놈이 목이 다 쇠갔고 갑시다 갑시다 그라는데 잉 발이 안떨어져브냐

총구녕이 날 쿡 찔러 무슨 관계요? 하는디 말이 안나와

근디 내 뒤에 고놈이 얼굴이 허어애 갔고서는 우리 사촌 형님이오 허드랑께

아깐 떨어지도 않던 나 입에서 아니오 요 말이 떡나오데

고놈은 총구녕이 델꼬가고, 난 뒤도 안돌아보고 허벌나게 달렸쟤

심장이 쿵쾅쿵쾅 허더라고

저 짝 언덕까정 달려 가 그쟈서 뒤를 본께 아까 고놈이 교복을 입고있데

어린놈이...

그라고 보내놓고 나가 테레비도 안보고야, 라디오도 안틀었시야

근디 맨날 매칠이 지나도 누가 자꼬 뒤에서 갑시다 갑시다 해브냐

아직꺼정 고놈 뒷모습이 그라고 아른거린다잉...


-정민경,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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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살 고3 소녀의 시에는 5월의 아픔과 비극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5·18 민중항쟁 서울기념사업회'(이사장 함세웅)가 최근 주최한 '5·18 민중항쟁 기념 서울 청소년 백일장'에서 시 부문 대상을 차지한 정민경(18·경기여고 3년·사진) 양은 여수에서 태어나 7살 때까지 광주에서 자랐다.
지난 1995년 근무지를 옮긴 부모를 따라 서울로 이사 갔다.

"친척들에게 들은 이야기, 광주에서 자란 경험이 오월의 아픔을 느끼게 한 것 같습니다. 걸쭉한 사투리는 할머니에게 배운 것이고…"

대상작인 '그날'은 자신의 자전거에 올라탄 학생이 진압군에게 붙잡혀 끌려가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도움을 청하는 학생을 진압군에게 내주고, 평생을 후회와 슬픔으로 살아야 했던 '나'에 대한 고해성사(告解聖事)인 것이다. 심사를 맡은 정희성 민족문화작가회의 이사장은 "처음 접하는 순간 몸이 떨렸다. 항쟁을 직접 경험한 사람도 이렇게 쓸 수 없다"며 극찬했다.
정양은 "소외된 이들의 '그날'을 알리는 게 꿈"이라며 "수능이 끝나면 5·18 묘지도 가보고 피해자들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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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화니 10쉑히야ᆢ넌 먼짓을 한건지 모르냐? 시벌너마ᆢ양심에 털난쉑히ᆢ 머더뽀큐ᆢ고투헬이다ᆢ
이렇게 말했던 ㅅㄲ의ㅅㄲ가😡😡😡😡
😡😡😡😡😡😡😡 저 ㅅㄲ는 사죄하지 않을것이다.
@ys7310godqhr 죄다 몰수하고 싶다!시벌것들 목구녕이 넘어가드나
@unshe714 제말이요.. 버러지 보다 못한 것들입니다.
전두환은 안궁금하다... 사진에 진압봉들고 총부리겨누며 광주시민학살하던 저 군인들은 지금 뭘하고 있을까....왜 진실에 침묵하는지 정말 궁금하다...... 국민앞에 고해성사하길....
@WOOYCHUI 티비 보면서 그생각 했어요 저군인들은 뭐하고 살까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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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진정한 국모였던 마지막 황후 - 순정효황후
역사상 마지막 황후인 순정효황후 본명은 윤증순임  순종이 동궁이었을 때 태자비 민씨가 죽자 열세살의 나이로 무려 스무살 연상인 순종에게 시집을 감. 태자비로 간택된 뒷얘기에는 아버지 윤택영이 황실에 거액의 뇌물을 바쳐서 됐다고는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 <순정효황후와 순종> 순종은 아버지 고종처럼 커피를 즐겨마셨는데 어느 날 역관 김홍륙이 황제와 태자가 마시는 커피에 독을 타 넣음 개씨발 그걸 몰랐던 순종이 먼저 커피를 마심 "아바마마, 오늘 커피가 유난히 쓴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듣고 고종은 입 안에 머금고 있던 커피를 바로 뱉었으나 순종은 이미 삼킨 뒤였음 ㅠㅠ 해서 순종은 사내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ㅠㅠ 아이에 대한 소망이 간절했던 어린 부인에게 평생 미안해했음... 새 태자비의 집안은 엄청난 친일파 집안이었음 특히 아비 윤택영과 큰아버지 윤덕영이 대표적인 친일파개새끼 였음 하지만 황후와 오라비 윤홍섭은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었음 윤홍섭은 독립운동가였는데 황후는 오빠를 돕기 위해 자신의 내탕금을 독립운동자금으로 내기도 하고,  유학생들의 학자금으로도 몰래 주었음 순종이 즉위하고 황후가 되자 만백성이 기뻐했음. 백성들은 황후를 보고 '백옥으로 만든 관음보살'이라고 칭송함 <왼쪽부터 영친왕, 순종, 고종, 순정효황후, 덕혜옹주> 순종과의 결혼 생활은 매우 순조로웠음. 둘은 서로를 아끼며 매우 존중해주었음 하지만 순종은 가면 갈수록 심해지는 외세의 압박으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있었고, 그로 인해 점점 건강이 악화되어 갔음 게다가 황후의 아비랑 백부랑 매일 같이 찾아와 합방을 종용함씨부럴 그러던 어느 날 황후가 된지 3년후인 1910년, 황후가 17살일 때 일이었음 한일합방의 조약을 맺는 어전회의가 열리는 날이었음 "폐하! 제국을 위해서라도 합방 조약을 맺으셔야 하옵니다!" 대신들은 순종을 계속 압박해왔음 황후는 모든 걸 병풍 뒤에서 듣고 있었음 합방을 체결할 때 반드시 옥새가 있어야 한다는 걸 알았던 황후는 몰래 빠져 나와 덕수궁에 갇혀 있던 고종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이미 일본 군인들이 전화선을 끊은 뒤였음 그 때 명을 받든 내시가 옥새를 가지고 지나갔음 황후는 옥새를 빼앗아 치마폭에 꽁꽁 감췄음 그러나 황후가 옥새를 빼돌렸다는 걸 대신들이 아는건 시간문제였음 ㅠㅠ 백부 윤덕영이 황후에게서 옥새를 강제로 빼앗았고, 이후 국권은 피탈되고 대한제국은 몰락하였음... <순종의 장례 행렬> 1926년 순종이 승하하자 황후는 창덕궁 낙선재로 거처를 옮김 이후 광복 때까지는 있는 듯 없는 듯 살았음 마침내 광복이 찾아오자 황후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음 그러나 기쁨도 잠시,  5년 후 한국전쟁이 터짐 <서울을 침공한 인민군 5사단> 인민군은 3일만에 서울을 점령했고, 황후가 있던 창덕궁에 들이닥침 상궁들은 혼비백산하여 황후에게 피신할 것을 요청함 "마마! 저 해괴한 놈들이 언제 옥체를 해할 지 모릅니다 속히 피하셔야 합니다!" 하지만 황후는 입을 꾹 다물고 눈을 매섭게 뜬 채 꼼짝도 하지 않았음 마침내 인민군이 낙선재에 들이닥침 황후는 꼿꼿하게 앉은 채 인민군들에게 소리쳤음 "이 곳은 나라의 어머니가 사는 곳이다. 물러들 가지 못할까!" 인민군들은 황후의 위엄에 놀라 깨갱 하고 물러감 아직 정부보단 황실에 대한 인식과 존경이 강한 시대였기에  군말 없이 물러선 것이 아닐까 싶음 어찌됐든 진짜 멋있음....bbbbbbb 하지만 이듬해부터 전세가 심해지자 황후도 피난길을 피할 순 없었음 그러나 어느 시골 농민 가족의 덕분에 무탈없이 지낼 수 있었음 마침내 휴전 협정이 맺어지자, 황후는 다시 낙선재로 돌아가려 했음 하지만 이승만은 황후를 두려워했음 애초에 백성들로부터 존경받아왔고 인민군을 쫓아냈다는 일화가 퍼진 이후로 황후에 대한 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은 하늘을 찔렀음 게다가 전국적으로 황실을 복귀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퍼져있었음 결국 이승만의 방해로 황후는 정릉 수인제에서 머물게 됨 ㅠㅠ 그러던 1960년, 전 황실사무총국장 오재경의 도움으로 다시 낙선재로 돌아올 수 있었음 1962년에는 정신병으로 오랫동안 일본 병원에 갇혀있던 덕혜옹주가 귀국함 덕혜옹주는 이미 정신질환을 심하게 앓아 사람을 못알아 볼 정도였는데 황후가 버선발로 뛰어나오자 황실의 예법대로 협배를 올리고 황후의 눈을 올려다보지 않았다고 함... <1960년 내빈을 접견 중인 순정효황후> 황후는 이후 죽을 때까지 낙선재에서 지내며 소일거리로 피아노 연주를 즐겨했으며 영어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고 함 그 실력이 타임지를 읽을 정도였다고; 그리고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불교에 귀의하여 '대지월'이라는 법명을 받기도 함 <마지막 황후 순정효황후의 장례 행렬> 그리고 1966년 2월 3일, 창덕궁 석복헌에서 73세에 노환에 의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남 그리고 경기도 남양주시 유릉에 순종과 순명효황후(순종의 태자비 였으나 후에 황후로 추존 됨)와 함께 합장됨 죽는 그 순간까지 온화한 성정과 기품을 잃지 않아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당당함과 냉철함으로 남은 황실의 식솔들을 이끌었던 순정효황후. 격동의 현대사에 지친 국민들에게 얼마나 큰 기둥이고 절대적인 나라의 상징이었는지 상상이 됨 이런 순정효황후의 일대기는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여성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음 순정효황후 [ 純貞孝皇后 ] (1894 ~ 1966)
비운의 황녀를 죽는 날까지 사랑했던 어느 왕자 이야기 (feat. TMI 파티)
태초에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있었음. 오랫동안 영국을 다스린 빅토리아 여왕은 4남 5녀를 낳았는데, 공주들이 유럽 왕실 여기저기로 시집을 가고....외손녀들도 여기저기 시집을 가면서 유럽 왕실마다 자기 피를 남김. 이건 존나 큰 문제였음. 왜냐면 (대충 있어보이는 관련 사진) 여왕은 혈우병 보인자였기 때문이다. 혈우병은 뭐고 보인자는 뭐냐면 자 일단 인간의 X 염색체에는 혈액을 응고시키는 인자가 있는데, 이게 결함이 있으면 피가 잘 멈추지 않는 혈우병이 되는 거임. 혈우병이 진짜 무서운 점은 외상이 아니라 내출혈의 경우임. 내출혈이 일어났을 때 피가 멈추지 않고 계속 고이면 혈종이 생겨서 장애나 사망까지 이르는 무서운 병임. 보인자도 뭔지 설명해줌. 혈우병은 위에서 설명한대로 X 염색체에 결함이 있는 거임. 남성은 XY라 X 하나에 결함이 있으면 바로 혈우병임. 근데 여자는 성염색체가 XX라 하나가 결함이 있어도 다른 X 염색체가 보완을 해서 본인은 혈우병 증상이 없음 ㅇㅇ 하지만 본인의 X 염색체에 결함이 있기 때문에 자식한테 그게 내려가면 혈우병 유전이 되기 때문에 보인자라고 부름. 빅토리아 여왕은 본인이 혈우병 보인자란걸 몰랐음. 그 시대에 염색체에 대한 개념도 없을 뿐더러 부모님과 남편은 혈우병이 없었고 본인도 혈우병 증상이 없기 때문에.... 참고로 빅토리아 여왕 부모님 둘 다 환자가 아닌데 빅토리아 여왕이 혈우병 보인자로 태어난건 돌연변이라서임. 문제 없던 염색체도 나이가 들면 혈액응고 인자가 자기 기능을 상실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빅토리아 여왕 아버지가 50대에 낳은 늦둥이 딸이었기 때문에 여왕이 보인자로 태어난게 학계 정설. 여왕의 혈우병 인자는 둘째 딸인 앤 공주, 다섯째 딸 베아트리스 공주, 넷째 아들 레오파드 왕자에게 내려감. 사진이 둘째 딸 앤 공주임. 앤 공주는 독일의 헤센 대공국으로 시집 감. 앤 공주는 아주 불행한 인생을 살게 됨.... 2남 5녀를 낳았는데 막내아들 프리드리히 왕자가 앤 공주의 혈우병 인자를 물려 받아 혈우병 환자로 태어났기 때문 ㅠ 프리드리히는 놀다가 창문 밖으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는데 죽을 부상이 아니었지만 피가 멈추지 않아서 과다 출혈로 사망함. 일곱 아이들 중에서 프리드리히를 가장 아꼈던 앤 공주는 죽을 때까지 프리드리히를 마음에 묻고 살았고, 프리드리히가 죽고 태어난 막내딸 마리 공주에게 집착하게 됨. 거기에 디프테리아 라는 전염병이 헤센 대공국에 퍼졌고 어린 마리 공주가 사망함. 막내 아들 딸을 전부 보내고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앤 공주도 디프테리아로 죽음. 앤 공주의 둘째, 즉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인 엘리자베트는 러시아 대공 세르게이와 사랑에 빠짐. 당시 러시아 황제의 동생이었던 세르게이는 엘리자베트처럼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었는데 그 아픔을 공유하면서 가까워졌다함. 당시 러시아 황실은 불안정했고, 외할머니 빅토리아 여왕은 "러시아로 시집 가는건 이 할미 눈에 흙이 들어가도 안 된다!!!!" 라고 난리를 쳤지만 원래 사랑에 빠지면 아무 것도 안 들리는 법. 여튼 둘이 결혼하는 날.... 앤 공주의 다섯째 자식이자 엘리자베트의 여동생인 알릭스도 언니의 결혼을 축하하는 파티에 참석함. 여기서 알릭스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되는데 러시아의 황태자였던 니콜라이임. 세르게이의 조카였던 니콜라이도 당연히 삼촌 결혼 축하하러 왔다가 알릭스를 만났고 둘은 사랑에 빠짐. 빅토리아 여왕 : (환장) 앤 공주가 일찍 죽은 후 빅토리아 여왕은 실질적으로 외손녀들의 어머니 노릇을 해주며 양육에 많이 관여했는데, 금쪽같이 키운 손녀들이 쌍으로 러시아라니 환장을 안 할 수가 없음. 심지어 엘리자베트는 황족이긴 해도 황위랑 관련 없는 대공이지만 알릭스는 차기 황제가 될 황태자였음. 뭐 그치만 알릭스는 이름도 러시아 식으로 바꾸고 종교도 개종해가며 니콜라이와 결혼해 러시아의 황후가 됨. 올가, 타티아나, 마리아, 아나스탸사, 알렉세이 5남매를 낳음. 자 여기서 잊고 있던 혈우병 인자가 ㅎㅇ 하고 나타남. 빅토리아 여왕 -> 앤 공주 -> 알릭스 -> 알렉세이 황태자 루트임. 겨우 얻은 귀한 막내아들이 혈우병 환자로 태어났으니 알릭스는 미칠 지경이었음. 알릭스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온갖 방법을 동원했는데 그 방법 중 최악의 악수가 라스푸친....(코난에 나오는 걔) 머 이건 상관 없는 이야기니 패스 이 사람은 앤 공주의 장녀이자 알릭스의 언니인 빅토리아 공주임. 어머니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을 따서 지은 거라 함. 유럽은 원래 이럼. 빅토리아 공주는 4남매를 낳는데 막내아들 루이가 존나 잘생김. (사진 오른쪽이 루이고 왼쪽은 영국 왕임) 위에서 말했듯 어머니 앤 공주가 일찍 죽었기 때문에 빅토리아-엘리자베트-알릭스 자매의 양육은 외할머니 빅토리아 여왕이 많이 관여함. 그래서 빅토리아 공주나 루이는 본인을 영국인으로 생각했다함. 여튼 루이는 러시아에 놀러감. 러시아 황후인 알릭스는 이모, 황제 니콜라이 2세는 이모부, 러시아 황녀들은 루이에게 이종사촌이니까ㅇㅇ 루이는 한살 연상이자 셋째 황녀인 사촌누나 마리아 황녀에게 반함. 폴인럽해버린 것이에요. 사촌인데? 할 수 있는데 이거 20세기 초반 일임. 유럽, 특히 왕실은 근친혼에 대한 개념이 딱히 없었음. 근친혼에 관한 문제들이 제기된건 현대 ㅇㅇ 루이가 돌아온 후에도 둘은 종종 편지를 주고 받았지만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황제 일가는 폐위 후 유폐 당함. 마리아의 생사도 알 수 없게 된 루이는 전전긍긍하며 마리아가 무사히 살아남길 기도했지만 1918년, 황제 일가는 모조리 총살 당함 ㅠㅠㅠ 1968년 방영된 다큐멘터리 본인 피셜에 따르면 루이는 마리아 황녀와 진지하게 결혼하고 싶었다고 함. 루이는 폭탄테러로 사망했는데 죽는 날까지 서재에 마리아 황녀의 사진을 놓고 살았다고 함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끗 하기 아쉬우니까 TMI 1 루이의 친누나인 앨리스는 청각장애인으로 태어났고 평생을 신경쇠약에 시달리며 수녀원을 전전했음. 앨리스는 그리스 왕자와 결혼했는데 남편도 일찍 죽음. 거기다 그리스도 왕정이 전복 되는데 루이는 그리스에서 도피한 누나랑 조카를 자기 집에 데려옴. 루이는 이 조카를 자기 친아들처럼 키웠는데 그 필립이 영국 현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남편 필립 마운트배튼 (aka 망언제조기) (아버지가 그리스 왕자라 필립도 그리스 왕족인데 여왕이랑 결혼하려고 그리스 왕위계승권 포기함. ) 따지고보면 엘리자베스 2세는 빅토리아 여왕의 직계후손이고, 필립 공도 빅토리아 여왕의 고손자라 둘이 8촌임 ㅇㅅㅇ 필립 아들인 찰스 왕세자도 루이를 친할아버지처럼 생각했다고 함. 여기서 존나 블랙코미디.... 원래 영국 왕실에서는 1970년대에 루이 공의 손녀인 아만다를 찰스 왕세자랑 결혼 시키려고 했음. 근데 왕실 사람들은 이미 찰스가 카밀라랑 이렇고 저렇고 하는 관계인거 알고 있었고, 루이 공의 딸인 패트리샤 부부는 "시발 안 됨 ㄴㄴㄴㄴ 내 딸을 찰스랑 결혼 시킨다고? 지랄 ㄴㄴㄴㄴ" 라고 격렬히 반대함. 때마침(?) 루이 공이 폭탄테러로 사망하면서 패트리샤 부부는 "아버지가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나셔서 저희 부부 멘탈이 너무 힘듭니다. 이 시기에 딸 시집 보내기 싫음 ㅈㅅ" 이라고 거절하면서 결혼은 파토나고 찰스는 다이애나랑 결혼함. 존나 선견지명 오졌던 부분. 어쨌든 루이는 현 영국 왕실 모두의 존경을 받던 어른이라 최근 태어난 영국 왕자 이름도 루이라고 지음. 루이는 원래 프랑스식 이름이라 영국에서는 인기 없는 이름이기 때문에 루이라는 이름을 가진 최초의 영국 왕족임. TMI 2 마리아 황녀가 죽은 후 루이는 당대 최고의 부자 상속녀였던 에드위나랑 결혼함. 에드위나의 개인재산이 록펠러 재산의 10분의 1....존나 부자 ㅇㅇ...... 둘의 결혼은 오픈 매리지, 즉 니가 누구랑 섹스하고 사귀든 상관 안 함. 대신 내가 누구랑 사귀고 섹스하든 상관 ㄴㄴ 라는 계약을 맺고 한 결혼이었음. 에드위나는 온갖 사람들이랑 염문설을 뿌렸는데 대표적으로 1. 자와할랄 네루 (;;;) 2. 미하일로브나 후작부인 = 루이의 형수 = 자기 동서 (.....?) 3. 남편 루이의 섹파 (......????) 루이의 전섹파랑 사귄게 아니라 루이의 현섹파랑 사겼다함....WOW 여튼 루이의 형수이자 에드위나의 애인이었던 (.....) 미하일로브나 후작부인은 당대 미국 최고 재벌 중 하나였던 밴더빌트 가문의 며느리 글로리아 모건이랑 사겼는데 글로리아 모건은 딸 글로리아 밴더빌트의 양육권을 두고 시댁이랑 재판 뜸. 이 재판은 TV에 방영될 정도로 당대 이슈였고 존나 추잡한 폭로전이 오고갔는데, 재판에서 시댁이 양육권을 얻으려고 글로리아 모건이랑 미하일로브나 후작부인이 사귀는걸 폭로했다함. 개막장;;;;;; 유투브에 찾으면 아직도 있음ㅋ.... 여튼 이 글로리아 밴더빌트의 아들이 앤더슨 쿠퍼 ㅇㅅㅇ 앤더슨 쿠퍼는 커밍아웃한 게이인데, 자기 외할머니가 동성애자였기 때문에 자기의 동성애 성향이 유전인가 괴로워했었다구 함. - 대체 어쩌다가 앤더슨 쿠퍼까지 온 건지 모르겠지만 쨌든 끗 - 출처 : 여성시대 / 오로오로오로로
퍼온글, 왜 윤미향을 공격하나.
김두일 님은 페이스북에 아래와 같은 글을 올렸다. 단편적인 회계부정과 개인의 일탈 외의 부분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1. 아베와 일본극우가 윤미향을 극도로 싫어하는 이유는 여러번 설명했다. 한번 더 요약 반복하면 ‘평화헌법’을 개헌해서 ‘군대’를 만들고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를 만들려고 하는데 제국주의 시대 일본이 벌였던 만행이 개헌에 방해가 되고 있다. 일본은 ‘불법을 저지른 적이 없다'는 일관된 주장을 하고 있는데 ‘위안부’ 문제는 일본의 주장을 반박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고 있고 그 문제를 부각시키고 지금도 국제사회에 가장 열심히 알리는 사람이 윤미향이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정부의 최대 목표는 일본 대사관 앞에 있는 것을 포함한 전 세계에 퍼져있는 ‘소녀상 철거’이다. 이 소녀상은 일본군의 만행을 전 세계사람들에게 알리는 역사박물관의 효과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2. 내 주장이 사실인지는 일본 언론을 보면 바로 확인이 된다. 오늘(20일) 일본 산케이 신문은 ‘반일 집회 그만두고 소녀상 철거를’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비판에 귀를 기울여 반일 증오의 상징인 소녀상을 조속히 철거하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이 이 문제 관련해서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밝혔다. 정의연과 윤미향을 비토하는 한국과 일본의 언론들의 입장은 놀라울 정도로 흡사한 주장이라 놀랍다. 내가 산케이 신문 주장에 자격은 없지만 대신 답변을 해 주고 싶다. “싫.다. 누.구.좋.으.라.고.... ” 3. 나는 정의연과 윤미향에 대한 한국 언론의 공격이 시작되자마자 이런 상황이 올 것이라 예측하고 '위안부 문제와 한일 현대사에 얽힌 배경설명'의 글을 이어서 썼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지금 윤미향과 정의연의 문제가 ‘단순하게 회계부정을 하고 개인 착복을 한 비리’의 문제로 접근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놀랐다. 그리고 내가 왜 그런 역사문제를 쓰는지 '이해가 안된다'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개혁적 성향을 가졌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조차 말이다. 지금은 좀 생각이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일개 시민단체의 부정과 비리를 파헤치는데 한국의 대다수 언론이 이렇게 똘똘 뭉쳐 움직이고 검찰이 압수수색을 한다는 것이 납득이 가는가? 그렇게 당하고도 또 당하나? 4. 오늘 진혜원 검사의 페이스북을 보니 어제 동일한 조건으로 뉴스검색을 해보니 윤미향 374만건, 윤석열 장모는 64만건이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약 6배 차이가 나는 것이다. 조국 일가 수사 때도 비슷했다. 표창창, 사모펀드, 인턴확인서, 웅동학원 등 매일매일 경쟁하듯이 쏟아져 나오는 기사들… 불과 9개월 전인데 당시 언론이 쏟아낸 추측성 기사들 중에서 사실로 밝혀진 것은 없다. 도리어 (실수로 인한) 오보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속인 가짜뉴스들은 많다. 재판과정에서 자신들이 보도했던 기사들이 모두 거짓인 것이 나오는데 정정보도는 커녕 모두 조개처럼 입을 다물고 먼산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 한국 언론의 민낯이다. 그리고 정부에 광고예산 미리 달라고 하는 그 뻔뻔함은 어디서 나오는지? 5. 정의연에서는 ‘외부회계감사까지 받겠다’고 선언했지만 언론은 계속해서 자극적인 기사를 양산하고 있다. 하나하나 반박을 하기에는 어차피 하루 이틀 지나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판명되니 너무 생산성이 떨어지는 일 같아 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래도 윤미향 아버지가 거주했다는 ‘컨테이너 사진의 조작질’만큼은 지적해야 겠다. 윤미향 아버지가 안성 쉼터에서 많은 돈을 받고 편하게 놀면서 관리인 노릇을 하고 있다는 식의 기사들이 나오고, 각 커뮤니티에 퍼가서 신나게 까는 무리들이 있다. 하지만 첨부한 두 장의 사진을 비교해 보면 한국일보 기사에 나온 사진은 각도가 예술이다. 글 뿐만 아니라 사진으로도 '조작질' 하는 언론에 일관된 모습에는 진심으로 감탄한다. 6. 내가 살고 있는 상하이 집에는 잔디가 있는 마당에 꽤 넓은 집이라 나도 아는데 저런 집 관리하려면 대단히 바쁘고 힘들다. 하루 종일 무언가를 해야 제대로 관리가 된다. 나도 잔디 몇 번 깎아 보았다가 GG치고 결국 사람 쓴다. 윤미향 아버지가 저 건물을 관리하면서 '7,500만원을 받았다'고 기사의 헤드라인으로 나왔고 “저거 봐, 저런 식으로 기부금 빼 먹었네”라고 분개 하지만 기실 그 7,500만원이 7년 동안 일하면서 받은 것이라는 것은 기사 본문에 슬쩍 넣는 것이다. 월 평균 100만원 조금 넘고 최저임금도 안되는 돈을 받고 일을 한 것인데 말이다. 잔디와 나무 상태를 보니 얼마나 꼼꼼하게 관리했는지가 보인다. 그런데 2020년의 시대를 살아가는데 윤미향 아버지가 거주하는 컨테이너에 '에어콘이 있다'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더라. 하하. 에어콘이 없는 시골 컨테이너에서 하루만 살아본 후에 '입을 털라'고 권하고 싶다. 7. 이번에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괴뢰단체'의 '프로고발러'가 윤미향을 고발했고 검찰은 거기에 부응해서 기다렸다는 듯이 신속하게 움직여서 오늘 정의연에 대한 전격적인 압수수색을 들어갔다. 사실 이 정도 사안은 경찰에서 수사를 하는 것이 맞는데 검찰이 직접 나서는 이유를 묻자 ‘특별한 이유는 없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이렇게 보면 대한민국 검찰은 참 쿨하지 않은가? 생각해보니 동양대 표창장으로 이중 기소까지 한 열정을 보면 검찰은 참 이해하기 힘든 수사에 열정을 보인다. 물론 시키니 하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8. 송요훈 기자의 페이스북을 보니 윤미향을 고발한 단체의 인물이 흥미롭다. 조국 전 장관, 정경심교수의 1심 재판관이던 송인권 판사,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 유은혜 교육부장관, 조희연 교육감, 검찰과 채널A의 검언유착을 제보한 고발자 등을 모두 한 사람이 나서서 고발했다. 단체의 이름은 가끔씩 바뀌는데 등장하는 인물은 똑같다. 아니, 이런 빌런의 출현을 여태 모르고 있었다니.... 해당 글에 진혜원 검사가 남긴 설명을 보니 검찰사건사무규칙 69조 3항 5호에 따르면 이렇게 소문이나 언론기사만을 근거로 고발하는 경우 원칙적으로 각하하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검찰이 이렇게 직접 나서서 수사를 하는 것은 이른바 ‘기획고발’이자 '표적수사'를 자인한 셈이다. 9. 즉 이번에도 괴뢰단체의 프로고발러가 나서서 검찰에 고발을 하면 검찰이 기다렸다는 듯이 즉각 수사에 착수하고, 언론은 누가 고발했는지 그 단체가 과거에 어떤 활동이나 (혹은 어떤 고발을 했는지에 대한) 내용은 쏙 빼 놓고 “그저 시민단체에 의해 고발 당했다”는 기사를 내 보낸다. 그러면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제는 워낙 반복해서 보니까 이 패턴이 수학공식처럼 외워졌다. 유시민도 채널A와 검찰의 모의가 사전 미수로 끝나지 않았다면 똑같이 이 공식대로 움직였을 것이다. 그러면 또 많은 사람들은 “유시민도 무언가 문제가 있는지도 몰라”라고 의심을 했을 것이다. 이제 지긋지긋하다. 저 프로고발러에 대한 정체는 언론이 취재를 하지 않으면 네티즌들이 파헤치지 않을까 싶다. 얼굴이 너무 팔려서 다음에는 다른 인물로 대체가 될 것 같다. 10. 일본의 주요언론에서는 지금까지는 한국의 뉴스를 전달하는 수준이었다면 오늘부터는 본격적으로 본격적으로 ‘소녀상 철거’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 표명’ 같은 그들의 진짜 마음이 담긴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제 때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해서 일본은 앞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한국의 주요한 언론을 포함한 반개혁세력의 기득권층은 집요하게 윤미향을 공격하는 것일까? 나는 두 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1. 첫째 일본극우와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세력들이 주로 이 문제를 이끄는 역할을 한다. 대표적으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그렇다. 태생부터 현재와 미래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함께 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기본적으로 그들이 정의연을 문제 삼는 것은 친일파가 독립군 자금 출처 조사하겠다는 것과 다름 없다고 생각한다. 이건 개혁세력이 비난할 이슈가 아니다. 싸워서 없애기 위해 노력해야 할 대상으로 대화와 설득의 가치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주 심플한 문제다. 둘째 정부여당에 대해 비토하는 세력들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 동안의 적폐세력의 집요한 공격에도 전혀 끄덕도 없는 워낙 굳건한 지지율을 가지고 있어 이제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도 판단하는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는 모든 공격은 민주당으로 화력이 집중될 것이다. 특히 415 총선의 민주당 대승으로 압도적인 의석수를 가지게 되었으니 반개혁 기득권 입장에서는 그 어느때보다 경계심도 생길 것이고 때문에 ‘민주당을 흔들 수 있는 재료’가 된다면 그 어떤 수단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12. 문재인 대통령은 한 명이지만 민주당은 워낙 많은 정치인들이 각각의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균열을 가져오기도 쉽다. 지지자들이 조심해야 할 행동은 특정 사안에 대해 민주당 내 개별 정치인의 발언이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게 과격한 욕으로 이어지면 분열로 이어진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나도 그래서 박용진을 비난할 뻔 했지만 꾹 참았다) 13. 우리는 그저 거대 여당이 국민들이 원하는 개혁을 흔들림 없이 처리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목소리를 내주면 된다. 과거에는 국회의원들이 언론에만 휘둘렸다면 이제는 온라인 여론에도 많이 흔들리고 의지한다. 언론은 어차피 우리편이 아니니 ‘온라인에서 싸울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주장이다. 합리적 비판은 하되 의원 개개인 혹은 당을 흔드는 비난은 ‘자중하자’는 이야기다. 그게 저들이 원하는 노림수이고 과거 '열린우리당 백팔번뇌'의 시작도 지금과 동일한 방식이었다. (그 당시는 화물연대 파업으로 분열을 만들기 시작했다) 14. ‘윤미향 사퇴’는 저들의 최종 목표이자 강력한 동기부여이다. 윤미향이 사퇴하면 아베도 신나고 아베와 뜻을 같이 하는 한국의 토착왜구들도 신나고, 민주당을 싫어하는 이들도 신나는 일이 된다. 검찰은 윤미향 수사를 통해 민주당 힘도 빼고 (그래서 은근히 검찰개혁의 동력이 약해지기를 기대하고) 윤석열 장모 건도 관심을 돌리는 일석이조의 효과이니 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수사이다. 15. 내 생각에 언론이 재료로 삼을만한 이용수 할머니 입에서 더 나올만한 이야기는 없을 것이다. 무언가 자극적인 이야기가 나와야 하는데 이미 언론에서는 다 써먹었다. 어차피 그들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과 '고통'에는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에 더 나올 새로운 이야기가 없다면 더 이상 이용수 할머니를 찾지 않을 것이다. 즉 이용수 할머니는 그들에게 이용만 당하게 된 것이고 앞으로 외로워질 것이다. 이 부분은 그저 안타깝다. 아마도 이제부터는 검찰이 수사를 진행하면서 검찰의 입을 빌어 나오는 (정의연이 어쩌구 윤미향이 저쩌구 하는) 피의사실을 중심으로 언론에 흘리기 시작할 것이고 여기서부터 윤미향과 정의연을 향한 두번째 공격이 시작될 것이다. 16. 난 윤미향의 사퇴를 반대한다. 또한 적어도 외부회계감사 결과가 나올 때 까지 민주당에서는 윤미향을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당 지도부에서 “외부회계감사 결과를 받아 들이고 사퇴유무를 결정하자”는 이야기를 윤미향 당선인과 조용히 의논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지금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서 개별 정치인이 당내에서 윤미향을 흔드는 일은 제발 하지 말자. 윤미향은 스스로 떳떳한 모습의 스탠스였기에 당에서 그런 제안을 한다면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한다. 17. 자, 검찰까지 참전한 이상 이제 이 싸움도 장기전이 될 것이다. 21대 국회가 시작을 앞두고 있고, 일본 극우 정치세력과의 문제도 있으니 이제 이 문제는 정치적 이슈가 되었고 검찰개혁, 언론개혁 등 각종 개혁과제와도 맞물린 사건이 되었다. 덕분에 내 노선은 더욱 분명해 졌다. 개혁을 바라는 국민들도 나와 비슷할 것이라 생각한다.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공격의이유 #유아낫언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