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월 24일부터 27일까지 세계 최대 모바일 행사인 MWC2014가 개최됐다. 올해 키워드나 트렌드는 어찌 보면 평범하다. 굳이 MWC가 아니더라도 알 수 있는 웨어러블이나 사물인터넷 같은 것만 해도 그렇다.
거센 중국 바람 역시 마찬가지다.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이 언급한 것처럼 과거에는 기술 중심 트렌드였다면 이젠 인간 중심 가치 창출이 많이 눈에 띈다는 부분도 늘 기술적 면에선 상향평준화가 되어가는 IT 시장의 특성을 감안하면 큰 틀에선 변하지 않는 트렌드일 수 있다.
하드웨어를 중심으로 보자면 클 틀에서 보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콘텐츠의 융복합 현상이나 스마트폰을 매개로 삼아 스마트카나 스마트홈, 더 나아가 사물인터넷 등으로 영토를 확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경쟁에서 삼성전자나 LG전자가 줄 수 있는 ‘임팩트’가 약해지거나 소프트웨어나 콘텐츠 인프라 부재로 인한 차별화 포인트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은 불안감으로 작용한다는 지적도 있다. 레노버를 비롯한 중국 업체가 해마다 약진을 거듭하고 있는 데다 격차가 점점 줄어든다는 신호가 매년 커지고 있는 것도 불안 요인 가운데 하나다.
삼성전자는 이번 MWC2014 기간 중 삼성 기어2와 네오 같은 웨어러블 컴퓨터에 안드로이드 대신 타이젠을 택해 눈길을 끌었다. 가전 등을 중심으로 타이젠을 파급시킬 계획을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타이젠 스마트폰이 늦어지는 것에 대한 의아함과 뒤섞여 앞날이 여전히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행사 기간 중 신종균 삼성전자 IM 부문 사장은 “하드웨어 사양 경쟁은 끝나지 않았다”면서 “하드웨어 혁신이 많이 일어나 제품의 중요한 경쟁력 요소가 됐다”고 말했다.
맞다. 정확하게 말해 ‘사양’이라기보다는 하드웨어 쪽이라고 하는 게 좋을 듯싶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아래에선 중국 업체가 근접 공격(?)이 가능한 수준까지 올라오고 있고 소프트웨어와 콘텐츠 인프라를 동반한 애플에 맞서기에는 인프라 부재에 시달린다. 콘텐츠를 다수 보유한, 예를 들어 아마존 같은 잠재적인 경쟁자도 태블릿 뿐 아니라 스마트폰이나 TV 등으로 시장을 확대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삼성전자는 어디로 가는 게 옳을까.
◇ 제3의 운영체제가 답일까=그동안 삼성전자를 두고 운영체제나 콘텐츠 인프라 부재에서 오는 불안감에 대한 우려가 많았다. 삼성전자도 자체 운영체제와 인프라 구축을 위해 타이젠 같은 대안을 확대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삼성전자를 비롯한 스마트폰 제조사를 대상으로 구글은 유저인터페이스(UI) 등을 비롯한 상당 부분을 자신들의 통제 아래에 두려 한다. 대안을 고민하는 건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자칫 자체 운영체제와 콘텐츠 인프라를 구축하려는 노력이 노키아의 전철을 밟는 모습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운영체제에 대한 점유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데다 애플 학습 효과라고 해야 할 지 콘텐츠 사업자 역시 이미 웬만한 곳에 깃발을 꽂고 접근하는 진영이 많다.
삼성전자가 이런 상황에서 타이젠 하나를 키워보겠다고 ‘몰빵’을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소극적 간보기만 계속 하다간 키우기도 전에 안락사를 시켜야 할지도 모른다.
문뜩 떠오르는 건 타이젠이 아닌 다른 대안은 없겠느냐다. 애플이 창업 초기부터 소프트웨어와 콘텐츠 인프라를 함께 몰고 다녔다. 하지만 애플이 좌절을 겪고 패배의 맛을 봤던 건 같은 종목으로 대결해서가 아니다. 바로 IBM PC와의 대결에서다. 폐쇄적인 ‘나홀로 멀티플레이어’는 손잡고 덤비는 데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이 오래된 사례에서 떠오르는 건 ‘열어야 산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관심을 둘 만한 건 노키아가 아닐까 싶다(관련 기사 : 노키아표 안드로이드폰엔 “윈도폰이 보인다”( http://techholic.co.kr/archives/13228 )). 노키아가 선보인 노키아X 시리즈는 기반은 안드로이드지만 외형은 위도폰이다. 구글플레이 대신 노키아스토어를 이용한다. 우스갯소리로 이 제품이 윈도폰 확대를 위한 백도어라는 얘기가 나온다. 중국 제조사 OPPO 같은 곳도 마찬가지다. 이런 방식의 백도어를 고려해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런 점을 떠나 삼성전자는 수직계열화된 체계를 갖추고 있다. 가전이라는 애플이 진입하지 않은 분야도 두루 포진하고 있다. 지금부터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운영체제와 소프트웨어 인프라 확보하겠다고 나서는 것보다는 장기인 하드웨어로 맞서면 어떨까. ‘오픈 하드웨어’ 정책 정도가 어떨까 싶다.
◇ 애플? 프로젝트 아라를 벤치마킹하라=가장 큰 예로 들고 싶은 건 모토로라의 프로젝트 아라(Project Ara)다. 라즈베리 파이나 아두이노 얘기도 곁들이면 더 좋다. 하드웨어 사양에서 오는 혁신이 아니라 하드웨어 자체에 대한 혁신이 삼성전자의 차별화가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스마트폰은 물론 가전 분야까지 삼성전자판 프로젝트 아라를 준비하는 것이다. 모든 걸 다 모듈화하지 않아도 좋다. 하지만 같은 갤럭시S5에서 모듈 몇 가지 교체로 보급형에서 플래그십 모델까지 선택이 가능하게 하는 건 물론 운영체제나 이에 따른 소프트웨어 인프라까지 모두 열어버리는 식이면 어떨까. 소프트웨어 환경도 아예 ‘모듈처럼’ 안드로이드와 타이젠, 윈도 등 어느 것이나 설치 혹은 선택 가능한 형태가 되는 것도 방법이다. 이런 모듈화된 획기적인 하드웨어를 취하는 건 수직계열화된 체계를 갖춘 삼성전자가 콘텐츠, 소프트웨어에 장기를 둔 경쟁자를 압도할 수 있는 유리한 쪽이기도 하다.
또 애플이나 아마존처럼 차별화 콘텐츠가 없으면 진입이 더딘 곳과 달리 삼성전자는 가전까지 두루 하드웨어를 생산하고 있는 만큼 이 ‘삼성판 프로젝트 아라’를 확대해 ‘하드웨어에서의 우월적 지위’를 최대한 누릴 수 있는 판을 만드는 게 어떨까 싶다.
자사의 모든 제품에 대해 옵션이라도 ‘커넥티트 모듈’을 끼우면 ‘커넥티트 인터넷(Connected Internet)’ 환경을 구축할 수 있게 하고 아두이노나 라즈베리 파이처럼 오픈소스 형태를 취해 어떤 운영체제나 소프트웨어적인 인프라도 이식할 수 있는 판을 만드는 것이다. 자사의 모든 제품에 사물인터넷의 기반이 될 수 있는 ‘센서’ 관련 모듈을 탑재 가능한 형태로 하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다. 이런 표준화된 형태의 모듈은 스마트카나 스마트홈 같은 분야에 대한 공략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모듈 자체에 대한 것도 마치 애플 제품이 거대 액세서리 시장을 창출했듯 서드파티 업체를 위해 열어줄 여지도 많을 수 있지 않을까. 핵심 모듈이 아닌 다음에는 모두 다 열어버리는 것이다. 서드파티 뿐 아니라 개인에게도 스마트폰을 예로 들면 본체 겉면이나 케이스 같은 건 3D 도면을 공개하고 일정 규격에 맞으면 누구나 만들 수 있게 레퍼런스 디자인을 공개해버리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런 열어둔 공간이 있다면 자생적 인프라가 생겨날 가능성이 커진다.
이 때 삼성전자가 반드시 잡아야 할 건 모듈 자체보다는 내부에 들어가는 부품일 것이다. 대량생산을 중심으로 한 산업시대에서 개인을 중심으로 한 소량생산시대로의 전환을 미리 준비하는 발판도 될 수 있다. 모듈화를 시도하면서 특허나 표준화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센서와 칩 관련 기술을 중점적으로 확보하고 인수합병을 시도하는 것도 필요할 수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표준화와 ‘오픈’에 있다. 이 2가지가 빠진다면 소니 같은 일본 업체가 빠지기 십상인 갈라파고스섬으로 직행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 가장 잘하는 하드웨어 패러다임 혁신이 필요하다=삼성전자에 필요한 게 소프트웨어나 운영체제 같은 인프라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하지만 필자는 반대로 삼성전자에게 정말 필요한 건 경쟁력 없는 부분에 대한 집착이나 부담이 아니라 가장 경쟁력 있는 하드웨어 자체의 혁신에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하드웨어 인프라의 틀,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버리는 혁신이 몇 년 뒤 위기가 올지도 모른다는 삼성전자의 미래를 위해 가장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특정 운영체제나 소프트웨어 인프라를 키우겠다는 건 어찌 보면 구글과 경쟁하겠다고 검색엔진 만들겠다거나 마이크로소프트와 싸우겠다고 오피스 만들고 아마존과 경쟁하겠다고 출판사 만드는 꼴이 될 수도 있다. 가장 잘 하는 하드웨어 쪽에서의 혁신으로 경쟁해야 한다. 다만 하드웨어 사양이라는 건 앞서 말했듯 IT 분야가 늘 상향평준화되는 경향이 있는 만큼 사양에만 매달리면 경쟁력 자체가 없거나 격차가 크지 않다는 게 문제다. 패러다임을 바꿀 차별화 요소가 필요하다.
삼성전자가 몇 년 안에 위기를 겪게 될 것이라는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스마트폰 하나에 몰려 있는 구조 탓이다. 새로운 성장 동력에 대한 고민이 지난 몇 년 동안 계속되어 왔을 것이다.
애플의 길보다 지금은 프로젝트 아라의 길을 따라가는 게 더 삼성전자의 역량에 맞지 않을까. 물론 그냥 스마트폰을 모듈화한다면 프로젝트 아라 따라한 꼴만 된다. 가전을 포함한 모든 분야를 대상으로 모듈화를 시도하는 게 어떨까. 스마트폰이나 웨어러블, 스마트카나 스마트홈 등을 가리지 않는 세계 최대 스마트 모듈 제조사라는 슬로건은 어떨까. 강점을 더 살린 전략이 좋지 않을까 싶다.
한때는 삼성전자의 롤 모델인 적도 있었던 소니가 자신들의 성지나 다름없던 건물 등을 매각할 계획이라고 한다. 소니는 전성기 시절 이 근방에만 10여 개에 달하는 건물을 보유했고 소니타운이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강남에 위치한 삼성타운이 소니타운의 길이 걷지 않으려면 세계 1위도 ‘생존을 위한 혁신’을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