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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험 정신과 고고학의 ‘문명 기행’ - 유성호 (한양대 국문과 교수, 문학평론가)

스벤 헤딘의 <티베트 원정기> 고고학적 열정을 통한 인류 근원 탐사 우리 시대에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문화 형식 가운데 하나가 아마도 ‘기행(紀行)’일 것이다. 미지의 공간에 대한 호기심과 그에 따른 고도의 탐험 정신을 필요로 하는 ‘기행’은, 그 시간만큼은 자신을 송두리째 타자화(他者化)함으로써 ‘낯선 자아’와 한껏 마주치게 하는 기능을 한다. 물론 기행은 일상으로의 복귀를 전제로 한 떠남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익숙한 자아’로 귀환하는 회귀형 구조를 취한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자아’는 이미 ‘예전의 자아’가 아니다. 타자의 경험을 내면 깊숙이 받아들인 탓에, 그 ‘자아’는 이미 ‘새로워진 자아’이다. 그래서 “떠나라!”라는 캠페인이 여기저기서 빈번하게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도서출판 학고재에서 의욕적으로 추진한 ‘문명 기행’ 시리즈 2탄인 스벤 헤딘의 <티베트 원정기>는, ‘문명 기행’이라는 고고학적 열정을 통해 인류의 가장 깊은 근원을 탐사한 후, 그것들을 활자의 기록으로 내보이는 과정을 거친다. 출판사 측에서도 “탐구와 헌신과 희생이 바탕이 된 인류의 지적 소산을 갈무리할 ‘문명 기행’ 시리즈는 한 편의 문명 대서사시를 일구는 작업”(363쪽)이라고 밝히고 있듯이, 그 시리즈 가운데 하나인 <티베트 원정기>는 “아시아의 심장부”(19쪽)에 위치하고 있는 티베트를 탐사하고 그 안에 내장되어 있는 불변의 ‘문명 대서사시’를 재구성해 보여준 역작이다. 1934년에 뉴욕에서 출간된 원저(原著)의 국내 초역(初譯)이다. 이 책의 저자 스벤 헤딘(Sven Anders Hedin, 1865-1952)은 스웨덴의 탐험가로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에 이르기까지 티베트를 세 차례 원정하였다. 이 책은 벌써 100년이 지난 그 같은 원정의 흔적을 담은 기록이다. 여기서 우리는 시간이 멈추어버린 것 같은 ‘티베트’를 경험하게 되는데, 그만큼 티베트는 중앙아시아에 존재하는 어떤 한 공간이 아니라 인류의 시원(始原)을 품고 있는 근원적 시간의 형상을 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책을 통해 따라가는 것은 ‘티베트’라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인류의 시원이 숨쉬고 있는 그 시간이기도 한 것이다. <티베트 원정기>는 100년이 지난 그 같은 원정의 흔적을 담은 기록으로 저자 스벤 헤딘은 스웨덴의 탐험가로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에 이르기까지 티베트를 세 차례 원정하였다.    목숨 걸고 도전한 험난한 원정  이 책은 저자가 1896년부터 1908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티베트에 다녀온 이야기를 담고 있다. 중앙아시아 탐사에 독보적 업적을 남긴 저자는, 어렸을 때 티베트 관련 여행기를 읽으며 티베트 여행을 동경하게 된다. 그리고 스무 살 때부터 서아시아의 이슬람 국가들을 탐방하면서, 탐험가로서의 생을 개진하기 시작한다. 그는 여러 대학에서 지질학, 생물학, 언어학 등을 수학한 후 티베트 원정에 도전하게 되는데, 책 곳곳에서 증언되어 있듯이, 그 여정은 매우 어려운 과정과 절차를 가져오게 된다. 그래서인지 그의 기행은 목숨을 걸고 도전한 험난한 원정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책의 1장으로부터 3장까지는 1896년에 북부 티베트 고원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횡단한 여정을, 4장부터 7장까지는 1900년으로부터 1901년까지 남부 티베트와 중부의 호수 지역을 거쳐 인도로 돌아가는 여정을, 그리고 8장으로부터 16장까지는 1906년부터 1908년까지 티베트 불교 가운데 황모파의 대본산이며 종교 지도자 타시 라마가 거처하고 있는 타시룬포를 방문하고 트랜스히말라야 산맥의 산악 지대를 거쳐 인도로 돌아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또한 이 책에는 티베트의 자연 환경, 전통, 생활상, 풍습, 복장 등에 대한 풍부한 사실적 기록이 풍부하게 담겨 있는데, 특히 저자가 직접 소묘한 티베트 풍경이나 지형 혹은 주민 복장 같은 세밀한 그림들은, 마치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처럼 친숙하고도 아름다운 미적 긴장을 느끼게 된다. 물론 이 책이 씌어질 무렵인 19세기말과 20세기초는 사진 기술이 그리 발달하지 않은 때였다. 그래서 저자가 직접 그려낸 온갖 풍경과 풍물들의 삽화는 그 시절 티베트의 생활상과 풍습을 아주 잘 알려주고 있다. 말하자면 당시로서는 서구인의 눈길이 전혀 미치지 않았던 티베트의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로서 가치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그 입구로 들어가 저자가 관찰하고 기록한 티베트의 깊은 속살을 만지게 된다. 어느 날인가 우리는 주목할 만한 한 ‘오보(몽골인들이 그들의 제사용 돌무더기를 이르는 말)’를 지나갔다. 그것은 길이 120-150센티미터쯤 되는 50여 개의 얇은 널빤지 모양의 녹색 점판암들로 이루어졌는데, 끝부분에 잇대어 포개진 채 덮개가 씌워져 있었다. 각각의 점판암에는 티베트어로 성스러운 여섯 글자가 더할 나위 없이 정성스럽게 새겨져 있었다. ‘옴 마니 팟메 훔.’ 오, 연꽃 속의 보석이여, 아멘! 이 말은 ‘구원은 오직 참된 믿음에서만 가능하다’라는 뜻이다.(45-46쪽) 서구의 문명 vs 야만 이분법 벗어난 티베트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그들이 간직하고 있던 ‘오직 믿음’의 테마이다. 그들도 기독교의 ‘오직 믿음으로!(sola fide)’처럼 “연꽃 속의 보석”을 뜨거운 상징처럼 가지고 있지 않았던가. 이러한 원리를 저자는 우리가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사물들을 통해 발견한다. 특히 그러한 믿음의 체계가 사물들 속에 깊이 깃들여 있다는 증언은 100년 전의 티베트가 서구 특유의 ‘문명/야만’의 이분법을 훨씬 벗어난 자리에 자신의 모습을 드리우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어찌 기독교적 시각으로 티베트를 ‘문명’ 이전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 같은 통절한 자각 과정에 따르는 물리적 고통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철저하게 고통 속에서 그러한 자각이 이루어지고, 티베트의 만만찮은 시간들이 발견되고 의미화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가장 우수한 낙타 한 마리가 너무 탈진하여 늑대들에 대비해 경비병과 함께 남겨졌다. 밤중에는 바닥이 딱딱해져 꼼짝달싹 못하는 동물을 구조하기가 한결 수월하겠지만, 다음날 아침이면 진창 속에 얼어붙어 죽어 있었다.(107쪽) 이처럼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혹한 속에서 그는 이처럼 풍부하고도 사실적인 관찰과 기록을 해낸 것이다. 그의 필치를 따라 티베트 유목민의 남다른 삶이 그려지고, 날아가는 새는 절대로 죽이지 않는다는 티베트 사람들의 종교관이 소개되고, 조장(鳥葬)과 고승의 화장(火葬)이 그려지고, 평생을 갇힌 굴과 섬에서 수행하는 수도자의 모습이 이채롭게 전달되고 있다. 거기에 두 명의 남편과 함께 사는 유목민 여인이라든가, 수도승처럼 고독해 보이던 젊은 야크 사냥꾼, 무덤을 절대 남기지 않는 풍습, 타시룬포 신년 축제를 위해 각지에서 모여드는 사람들 등이 타(他)문화에 대한 객관적 시각을 통해 제시된다. 이러한 시선은 우리가 강조해마지 않는 ‘타자성’의 윤리 혹은 ‘똘레랑스’의 원리를 선명하게 연상시킨다. 그만큼 저자는 미지의 땅 티베트에서 시간의 지도를 그린 셈이고, 우리의 기억 속에 새로운 영역을 그려내는 기쁨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북쪽에 있는 이 미지의 영역을 횡단하고, 몇 개의 호수와 산을 발견했으며, 강제초를 측량하여 지도를 만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원정의 목표인 남쪽에 잇는 이 미지의 지역을 탐사하고 인더스 강의 수원을 발견하는 것에 비하면 하찮은 것이었다.(216쪽) 이러한 횡단과 발견과 측량과 탐사의 과정은 즉자적(卽自的)이 아닌 대타적(對他的) 방법으로 시간의 근원을 구성한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저자는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해석에 바탕을 둔 여행기들 사이에서 객관적이고 사실적 재구를 바탕으로 한 기록 정신을 빛나게 보여준다. 하지만 역자들도 밝혔듯이, 이 책이 제국주의의 자기 확장에 필요한 티베트의 사실적 정보를 제공하게 됨으로써 결과적으로 뜻하지 않은 결과를 제공하게 된 것은 일종의 역사적 아이러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강조되어야 할 것은, 번역자인 윤준, 이현숙 교수 부부이다. 이들은 티베트를 지속적으로 방문하여 어린이 교육 사업을 지원해왔다. 그런데 이번에 이 책의 번역 인세 전액을 인도에 있는 ‘티베트 어린이 마을(Tibetan Children's Villages(TCV))’에 기부하기로 했다고 한다. 최근 우리 사회에 확장되고 있는 지식인의 사회 환원의 한 전형을 보는 것 같아 부기해둔다.  옛 힌두족 찬가의 주제인 성스러운 마나사로바 호수는 히말라야 산맥과 트랜스히말라야 산맥 사이에 꿈꾸듯 누워 있다.   ‘속죄(贖罪)’와 ‘구원’의 서사  궁극적으로 저자가 이 책을 통해 탐험하고 경험하고 기록한 인류 문명은 그 양상이 매우 깊다. 그래서 그것들을 찾아가는 기행은 비록 공간 이동의 형식을 빌리고 있더라도, 현저하게 ‘시간’ 탐험의 속성을 지니게 된다. 따라서 그것은 ‘넓이(width)’의 문제가 아니라 ‘깊이(depth)’의 문제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것은 누가 더 많이 가 보았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깊이 들어가 보았느냐의 문제로 수렴되는 것이다. 옛 힌두족 찬가의 주제인 성스러운 마나사로바 호수는 히말라야 산맥과 트랜스히말라야 산맥 사이에 꿈꾸듯 누워 있다. 인도에서 온 순례자들은 그 연안까지 찾아와 수정처럼 맑은 물로 몸을 씻는다. “그 물결로 몸을 씻는 이는 범천(梵天, 브라마)의 극락에 이를 것이다.” “그 물결을 마시는 이는 사바 신의 천국(대자재천大自在天)에 들어가 백세(百世)의 죄에서 구원되리라”라는 말이 전한다.(301쪽) 이 같은 ‘속죄(贖罪)’와 ‘구원’의 서사는 고등 종교끼리 공유하는 원리라 할 것인데, 티베트의 삶과 의식도 이러한 삶의 이법(理法)을 오랫동안 간직해온 셈이다. 우리는 그 깊은 흔적을 이 책을 통해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 이후 지속된 기행록들은, 이처럼 탐험 정신과 고고학적 열정의 만남으로 가능했다. 헤딘의 <티베트 원정기> 역시 이러한 ‘문명 기행’의 성격을 가장 아름답게 보여주는 뜻 깊은 실례이다. 더불어 이 책은 최근 해외여행이 보편화하면서 생겨난 ‘너비’ 중심의 관광(觀光) 문화에 대한 깊은 문화론적 자성(自省)의 계기를 지속적으로 던져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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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컷에서 아버지로
약6백만 년 전 인류의 조상이 침팬지 및 보노보와 갈라질 당시만 해도 아비의 보살핌은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보살핌과 같은 아버지 행동은 인류가 진화해오는 과정에서 새롭게 생성되었다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 아버지의 보살핌은 어쩌면 인간만의 독특한 특징이다. 자식을 돌보는 데서 수컷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포유류의 종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 피터 크레이, 커미트 앤더슨 <아버지의 탄생> 중 아버지는 어머니의 짝꿍으로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친숙한 개념이다. '엄마아빠', '부모'와 같이 하나의 단어로 굳어져 사용되기도 한다. 몸 속에서 10개월간 자녀를 키워 밖으로 내보내는 어머니의 역할과 동등하게 아버지의 기여를 높이 사는 심리가 언어에 반영되어 나타난 결과다. 아버지는 단순한 정자 기증을 넘어서 뱃속의 태아가 온전히 태어나도록 임신한 어머니를 보살피며, 출산 이후엔 태어난 자녀가 무사히 성인이 되도록 지원한다. 위 세대의 아버지들이 주로 물리적 양육에만 치중했다면, 현 세대의 아버지들은 정서적 양육에까지 깊이 관여해 나가는 추세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버지의 탄생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 시점이 길게 잡아야 50만 년 이라고 하니 6백만 년 인류 진화사에서 고작 10%도 되지 않는 가까운 과거다. 그 이전 고대 호미닌 사회에서는 아버지의 개념이 희미했다. 일단 누가 아버지인지가 분명하지 않았다. 유전자 검사가 가능했던 시대가 아니니 수컷으로서는 어떤 새끼가 내 새끼인지 특정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니 괜히 한 아이에게 아버지 역할을 충실하게 하기 위해 다른 생식의 기회를 놓치기가 아까웠을 것이다. 포유류는 암컷이든 수컷이든 새끼의 양육에 깊이 관여하면 할수록 성 호르몬이 저하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수컷에게 '내 새끼인지 아닌지 모를 아이'는 귀찮은 존재였다. 내 자식일 가능성이 높을 경우 아이가 좀 귀찮게 굴어도 아이를 죽이지 않는 '봐주기' 정도만 있었을 뿐, 자녀의 양육은 오로지 아이를 낳은 암컷의 책임이었다. 그러다 보니 수컷은 본능적으로 자기의 유전자가 세상에 남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지니게 되었다. 그래서 그 때부터 나만의 독점적인 암컷을 갖기 위해 피터지게 싸움을 시작한다. 수컷의 몸집이 암컷의 몸집보다 한참 커지는 '성적 이형성'이 발달한 이유다. 수컷끼리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면 큰 몸집은 필수였다. 투쟁하고 투쟁하던 수컷들은 어느 시점이 되자 불필요한 싸움을 그만두고 공평하게 유전자를 퍼뜨릴 기회를 나눠 갖기로 합의를 한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가정'이다. 여자를 두고 투쟁해야 할 필요가 없어지자 남자들의 몸집은 다시 작아지기 시작했다. 현생인류, 즉 우리 호모사피엔스로 오면서 그 현상은 더 두드러졌다. 남성은 구시대의 거친 본능을 조금씩 벗고 더 깊이 육아와 가정에 관여하고 있다. 구인에 비해 성적인 번식 능력은 다소 감소했지만 더 효과적인 번식을 위해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한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구시대의 거친 남성상을 벗어나지 못한 것 같은 남자들도 종종 보인다. 자녀가 있음에도 자녀의 양육보다는 본인의 남성성을 추구하는 데 더 큰 가치를 두는 남자들 말이다. '내가 번 돈을 아내나 아이들이 나눠 쓰는 것이 싫어요'로 대표되는 이 부류의 남자들은 스스로를 상당히 현대적인 가치관을 지닌 남성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진화의 역사 몇 백 년을 후퇴하는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아버지의 역할이 부담스럽다면 답은 간단하다. 아버지가 안 되면 된다. 쾌락적이고 책임이 없는 섹스를 즐기며 남성으로서의 능력을 마음껏 과시하고 살아도 크게 흠 될 것 없는 세상이다. 피임만 잘하면 아버지 역할을 떠안게 될 필요가 없다. 번식은 하고 싶으나 책임은 다하기 싫은 아빠, 혹은 예비 아빠들은 스스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보다 고등한 인간이라고 말할 자격이 있는지 잘 생각해보자. 섹스는 모든 동물에게 내재된 본능을 따르지만, 그 이후의 책임은 오직 인간에게만 귀속되는 특징이다. p.s. 오늘따라 아빠같지 않은 아빠들이 너무 많이 보여서 속상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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