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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웨이 해전과 일본 제1항공함대 - 김추성 (내과 전문의)

미드웨이 해전 당시 일본의 함재기들은 함상전투기, 함상폭격기, 함상공격기의 3기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줄여서 함전이라고 부르는 함상 전투기는 제로기로서 방어력이 약하고 급강하시 고속을 낼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으나 장대한 항속거리와 중고도 및 저고도에서 놀라운 운동성을 지녀 미국의 헬캣이 나오기 전까지는 세계 정상급의 함재전투기였다.  제로기  줄여서 함폭이라고 부르는 함상폭격기는 미국의 급강하폭격기와 같은 종류였다. 당시 일본의 함폭은 고정된 랜딩기어를 가진 99식 함상폭격기였다. 99식 함폭은 폭장량이 250kg으로 맞수인 SBD 돈틀레스의 450kg보다 열세였지만 숙련된 조종사가 몰 경우 충분히 위력적이었다.   99식 함상폭격기  줄여서 함공이라고 부르는 함상공격기는 미해군의 뇌격기에 해당했다. 당시 일본의 함상공격기는 97식 함상공격기로서 800kg의 어뢰 1발 또는 폭탄을 장착했다.  97식 함상공격기  일본함재기들은 3대로 이루어진 소대가 기본단위였다. 소대 3개가 모여 중대를 이루었으며, 선임 소대장이 지휘했다. 함폭 1개 중대와 함공 1개 중대가 함전 1개 중대의 호위를 받는 것이 일반적인 공격형태였다. 단 함상공격기들은 1942년 3월부터 2개 소대로 중대를 형성했다. 중대 2-3개가 모여 공격대를 형성했는데 공격대는 기종의 이름을 따서 함상전투기대, 함상폭격기대, 함상공격기대로 불렀다. 공격대들이 모여 항공대를 형성하는데 항공모함의 이름을 따서 아카기 항공대 등으로 불렀다.  1942년 당시 일본 함재기들의 기본 대형. 출처 : Shattered Sword p.81  단기결전으로 끝내야 한다는 강박관념 미드웨이 해전 당시 야마모토 제독이 제1항공함대를 주축으로 한 제1기동부대를 전면에 내세운 데에는 공격을 중시하는 일본해군의 교리가 자리잡고 있다. 일본은 서구열강과 싸울 경우 장기전으로 가면 산업력의 열세 때문에 무조건 패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일본군은 서구열강과 전쟁에 돌입했을 경우 단기결전으로 끝내야 한다고 생각했고, 해군은 군축조약에 의하여 주력함의 비율이 제한되면서 이런 강박관념이 특히 심했다. 일본해군에서는 단기결전을 지향하는 교리가 작전은 물론 무기와 교육에까지 깊이 스며들어 있었다. 군함들은 공격력이 제1의 조건이었으며, 구조적 강도나 안정성, 보수문제 등은 부차적 문제였다. 해군의 항공기도 마찬가지로 공격력과 운동성이 필수였으며, 이런 성능을 활용할 수 있는 우수한 조종사를 중시했다. 그러면서도 조종사의 손실을 줄이기 위한 방탄장비나 연료방루장치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전투에 따르는 필연적인 조종사의 손실을 메꿀 지속적이고 효율적인 조종사 양성계획도 등한시했다. 단기전으로 끝낼 생각이었기 때문에 조종사 보호나 지속적인 충원은 큰 의미가 없다고 본 것이었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공격력은 강하지만 방어력이 약한 제1기동부대를 선두에 내세운 것도 이러한 교리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즉 적을 먼저 발견해서 때리는 것만 생각했지 먼저 발견당해 얻어맞을 경우는 염두에 두지 않은 결과였다. 일본해군이 항공모함을 보호하기 위하여 전방에 수상함대를 내보내기 시작한 것은 미드웨이 해전 이후였다. 겐다 미노루 이러한 일본해군의 공격 중시 사상을 함대항공력 분야에서 극한까지 끌어올린 것이 제1항공함대였다. 그리고 제1항공함대의 창설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일개 중좌에 지나지 않던 겐다 미노루였다. 1940년 10월에 겐다 중좌는 런던 주재 일본대사관 파견근무를 마치고 도쿄로 돌아왔다. 그는 제1항공전대의 항공참모로 발령을 받았으나 부임까지 며칠 남았으므로 도쿄에서 시간을 보내던 중 극장을 찾았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미국의 뉴스 영상이 나왔는데 항공모함 렉싱턴과 새러토가, 그리고 요크타운과 엔터프라이즈가 나란히 항진하고 있었다. 이 장면을 바라보던 겐다 중좌의 머리에 항공모함의 집단을 전시용이 아니라 실전에 사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제1항공함대의 항공참모 겐다 미노루 중좌  일본해군은 1928년에 항공전대를 도입하여 정규항공모함과 경항공모함을 1척씩 짝지어 운용하는 체제를 시험해 보았으나 항모의 집단 운용에 대한 정립된 개념은 없었다. 따라서 항공전대도 정규항모와 경항모를 1척씩 짝짓거나 항모 1척과 호위 구축함들로 이루어지는 등 일관성이 없었다. 당시 제1항공전대는 항공모함 아카기와 구축함 4척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제2항공전대는 항공모함 소류와 히류로 이루어져 있었다. 제1항공함대의 창설 겐다 중좌는 항공전대를 정규항모 2척이나 경항모 2척을 묶어 만들고, 이런 항공전대 2-3개를 합쳐 하나의 항공함대를 만들어 집단운용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면 다수의 급강하폭격기와 뇌격기들이 대규모 전투기 편대의 호위를 받으면서 적을 공격할 수 있을 것이었다. 겐다 중좌는 제1항공전대에 부임하자마자 자신의 구상을 상급자들에게 털어 놓았다. 제1항공전대 사령부는 겐다의 발상에 흥미를 가졌으나 수많은 함재기들을 통제하기 위하여 무전을 사용하면 기도 비닉이 어렵고, 다수의 항공모함에서 이함하는 함재기들이 대열을 갖추려면 항속거리를 희생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더군다나 항공전대의 구조를 획일적으로 항모 2척 체제로 바꾼다는 것은 자신들의 권한을 넘어서는 일로 생각했다. 묻히는 듯하던 겐다 중좌의 아이디어는 1940년 말에 뜻밖의 돌파구를 찾았다. 연말 회식에서 겐다 중좌는 우연히 제3전대장 오자와 지사부로 소장을 만나 자신의 아이디어를 설명했다. 비록 전함 중심의 제3전대를 맡고 있지만 원래 항공주병론자인 오자와 소장은 겐다 중좌의 아이디어에 흥미를 보였다.  오자와 소장은 1941년 새해 인사차 도쿄에 들른 김에 해군성에 찾아가 항공본부장 이노우에 시게요시 중장에게 겐다 중좌의 아이디어를 설명했다. 이노우에 중장은 오자와 소장에게 해군대신 오이카와 코시로 중장과의 면담을 주선해 주었다. 오이카와 중장이 이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면서 1941년 1월부터 항공함대의 창설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941년 4월 10일에 제1항공전대(아카기, 카가), 제2항공전대(소류, 히류) 및 제4항공전대(류조)로 구성된 제1항공함대가 창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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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더 이상 개도국이 아니다?
원글 댓글 왈,,, 저게 한국정부가 와 우리 선진국임 헤헤헤 개도국 안해~ 이런게 아니고 미국이 wto에다가 제소한것 때문에 그래.. 4가지 조건중에 하나라도 충족되면 개도국 일수없다 라고 했는데, 한국은 그 조건 4가지를 모두 충족하는 유일한 나라. (oecd회원국 / g20회원국 / 1인국민소득 12,056달러 이상 / 세계무역량 0.5% 이상 ) 저것 때문에 우리나라만 쫑난게 아니라, 싱가폴 대만 브라질 UAE도 개도국 혜택을 포기했음.. 그래서 개도국 지위를 내려 놓으면 무슨 일이 생기느냐?? 한국은 농업에 한해서만 개발 도상국 지위를 갖고 있는데 이와 같은 경우 위처럼 특별품목으로 지정해 쌀같은 경우는 최대 513% 관세를 매길 수 있음 이번에 개발 도상국 지위를 내려놓는다는 것은 결국 농업 시장이 개방된다는 뜻인데 단적으로 말하자면 (파랑색 2등급 땅, 분홍색 7등급) 한국의 토양의 질 (초록색 1등급, 파랑색 2등급 ...) 미국의 토양의 질 이 두개가 맞붙게 생겼다는 이야기. (농정신문) 결과 농민 피꺼솟 농업에 종사하지 않고 밥벌이 하는 사람의 경우 농축산물 가격의 인하로 싱글벙글 할 수도 있음. 국가적으로는 농업 자급률 떡락으로 식량 무기화 전략에 휘둘릴 여지가 있으나, 세계 무역의 시대 식량 무기화는 허무맹랑 하다는 이야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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